반응형 硏究篇---綜合文學168 이지李贄-분서焚書 시문 선집 서문時文後序,代作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시문 선집 서문時文後序,代作 팔보 [1] ‘시문’(時文)이란 이를 통해 오늘날 인재를 뽑는 글로, 옛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잣대로 옛날의 글을 보면 옛날의 글은 진정 지금의 글이 아니요, 훗날의 잣대로 지금의 글을 보면 지금의 글은 다시 옛날의 글이 된다. 그러므로 글이란 시대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한다. 오르락 내리락한다는 것은 저울질하는 것을 말한다. 그 시대의 저울질을 통해 평가가 내려져 뛰어나다고 인정된 작품은 후세에도 유행한다. 어찌 구차하다 하겠는가! 천고(千古)의 세월 동안 윤리가 같다면 천고의 세월 동안 문장도 같다. 같지 않은 것은 한 때의 형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5언시(五言詩)가 흥성하자 4언시(四言詩)는 옛날 것이 되었고, 당대(唐代)..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6. 이지李贄-분서焚書 선행록 서문先行錄序, 代作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선행록 서문先行錄序, 代作 팔보 말言이란 한 가지지만, 여기에는 ‘실천이 앞서는 말’先行之言이 있고, ‘실천을 할 만한 말’可行之言이 있고, ‘실천을 해야 할 말’當行之言이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말을 기준으로 군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더욱이 이로써 입언(立言)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실천이 앞서는 말’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공자가 자공(子貢)에게 한 말[1]이다. 말하기에 앞서 먼저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하는 것이 실천하는 것보다 지나친 폐단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실천을 할 만한 말’이란 무엇인가? 《역경》(易經)이나 《중용》(中庸)에 있는 말과 같은 경우이다. 《역경》[2]에서 “멀리 있는 것을 역의 도(道)로 설명하면..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5. 이지李贄-분서焚書 소자유의 노자 해설 서문子由解老序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소자유의 노자 해설 서문子由解老序 팔보 [1][子由解老序] 먹으면 배부른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남쪽 사람은 벼[稻]를 먹으면 달게 느끼고, 북쪽 사람은 기장[黍]을 먹으면 달게 느낀다. 그런데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를 부러워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더러 각각 바꾸어 먹게 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안 먹고 버리는 일도 없다. 공자(孔子)의 도와 노자의 도는 마치 각각 남과 북의 벼와 기장과 같다. 어느 한쪽에 만족스러워 다른 쪽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쪽을 차버리면 되겠는가?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든 먹고 배부르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 정말 굶주린 사람은 가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북방에서 공부를 할 때 주인의 집 일을 ..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4. 이지李贄-분서焚書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傳序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傳序 팔보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한비자》(韓非子)의 (說難)⋅(孤憤)은 성현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것이다”[1]라고 했다. 이로써 보자면 예로부터 성현들은 발분하지 않으면 저술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발분하지 않았는데 저술을 하는 것은 마치 춥지도 않은데 떠는 것과 같고 병도 없는데 신음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비록 저술을 한다 해도 무슨 볼 것이 있겠는가? 《수호전》(水滸傳)은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송(宋)나라 왕실이 성하지 못하게 된 때로부터, 모자를 밑에 쓰고 거꾸로 신발을 위에 신은 듯, 현명한 사람들이 아랫자리에 있고 모자란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멸시하고 천대하던 이적(夷狄)이 윗자리를 차..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3. 이지李贄-분서焚書 배반자 세 사람三叛記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배반자 세 사람三叛記 팔보 배반자 세 사람三叛記[1] 때는 중복(中伏)이라, 한낮에는 괴롭도록 덥더니, 밤에는 그런대로 시원하다. 호수에 어느덧 물이 차오르고, 보름달이 마악 올라오고,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데, 객이 찾아와 함께 지내니, 이것이 바로 노자가 ‘恥目合’ 했던 때이다. 양반(楊胖)은 평소에 꾸벅꾸벅 잘 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 밤에는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하고, 그렇게 좋은 일도 없는데 빙그레 웃으며, 나비가 장주(莊周)의 꿈을 꾼 듯 놀라고,[2] 철저(鐵杵)가 광(廣)을 먹은 것처럼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화상(和尙)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네는 왜 그리 웃는가?”라고 묻자, “지금 생각하니 세 배반자가 있어서, 전기(..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2. 이지李贄-분서焚書 벌레 세 마리三蠢記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벌레 세 마리三蠢記 팔보 벌레 세 마리三蠢記 유익(劉翼)은 성격이 올곧아서 남 욕을 잘 했다. 이에 대해 이백약[1]은 사람들에게 “비록 유(劉) 아무개가 아무리 욕을 해도, 사람들은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 이백약 같은 사람이야말로 유익의 입장에서는 진정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성격 역시 남 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들 또한 일찍이 나를 미워한 적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나의 입은 험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말은 험하지만 그 뜻은 착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서 빨리 발전하기를 바라는 뜻에서라는 것이요, 뜻이 착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서 빨리 발전하려고 하지 않을까 염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나..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1. 이지李贄-분서焚書 <고결함에 대해高潔說> EDITORIAL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팔보 [1] 나는 천성이 ‘높은 것’[高]을 좋아한다. 높은 것을 좋아하면 거만하여 낮추지를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낮추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와 부귀만을 믿는 저 사람들에게 낮추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비록 노예나 하인일지라도 절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나는 천성이 ‘깨끗함’[潔]을 좋아한다. 깨끗함을 좋아하면 편협되어 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에 빌붙고 부귀에 아첨하는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설령 그 사람이 왕공대인(大人王公)일지라도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없다. 남에게 자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허..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20. 이지李贄-분서焚書 <정림암기定林庵記>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팔보 나는 오랫동안 산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만력(萬曆) 무술(戊戌) 년(1598)에 초약후(焦弱侯)를 따라 남경에 이르러 정림암(定林庵)에 갔다. 암자는 여전히 아무 탈이 없었다. 이는 정림(定林)이 살아있을 때 평소 약후(弱侯)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림이 제자를 받지 않아 암자를 지킬 후계자가 없었지만, 초약후가 승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이곳을 지키게 한 것이니, 지금 주지가 그 사람이다. 사실 그는 정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암자를 그저 정림이 창건했다는 것만으로 정림암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헛된 것이 아닌가? 정림은 암자를 창건하여 막 완성될 무렵, 이 곳을 버리고 떠나 우수(牛首)로 가서, 또 대화암각(大華..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19. 이지李贄-분서焚書 <‘허’와 ‘실’에 대하여虛實說>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팔보 도(道)를 배우려는 것은 허(虛)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도를 얻었다고 자임하는 것은 실(實)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허’하면 선(善)을 받아들이고, ‘실’하면 자신의 원칙이나 견해를 굳게 견지한다. ‘허’하지 않으면 선택하는 것이 정밀하지 않고, ‘실’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관을 유지하는 것이 견고하지 않다. ‘허’하면서 ‘실’하고 ‘실’하면서 ‘허’하며, 참된 ‘허’는 참된 ‘실’이요 참된 ‘실’은 참된 ‘허’이니, 이는 오직 참된 사람에게만 있을 수 있으며, 참된 사람이 아니면 있을 수 없다. 참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물론 ‘허’와 ‘실’은 있지만, 참된 사람의 ‘허’․‘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허’한 듯 하면서 그 속은 진정 ‘허’하지 ..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16. 이지李贄-분서焚書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說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說 팔보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說[1] 사람들과 함께 지키는 것을 예(禮)라고 하고, 나만 홀로 지키는 것을 ‘기’(己)라고 한다. 학자는 자기 한 개인의 고정된 견해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세속과 대동(大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예(禮)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된다. “예가 아닌 예”[非禮之禮]를 대인(大人)은 행하지 않으며, 진정한 ‘기’(己)는 개인의 편견인 ‘기’(己)가 없는 것으로, ‘기’(己)가 있으면 그것을 극복한다. 이것이 안회(顔回)의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이다. 이 ‘사물’(四勿)은 곧 ‘사절’(四絶)이요, ‘사무’(四無)요, ‘사불’(四不)이다. ‘사절’(四絶), 즉 “끊어야 할 네 가지”’란 자기의 잣대로..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15. 이지李贄-분서焚書 동심설童心說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동심설童心說 팔보 동심설童心說 용동산농(龍洞山農)은 《서상기西廂記》의 서문 말미에서 “식자(識者)들은 내가 아직 동심(童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1]고 말했다. 그러나 동심은 ‘참된 마음’[眞心][2]이다. 만약 동심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면, 이는 참된 마음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심이란 거짓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一念)의 ‘본심’(本心)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사람’[眞人]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 아이는 사람의 처음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이다.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어..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14. 이지李贄-분서焚書 잡설雜說 PHILOSOPHY焚書 이지李贄-분서焚書 잡설雜說 팔보 잡설雜說 《배월정》과 《서상기》[1]는 ‘천지(天地)의 자연스런 조화’[化工]의 산물이요, 는 ‘빼어난 기교’[畵工]의 산물이다. 빼어난 기교의 산물이란 그 기교나 너무 빼어나서 천지 조화의 기교마저 능가할 정도라는 말이다. 그러나 천지는 원래 기교를 부리는 것이 없음을 그 누가 알리오? 지금 저 하늘이 낳고 땅이 길러낸 온갖 꽃이 피어나면, 사람들이 보고 좋아한다. 그런데 그 기교를 찾아보려고 하면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의 지혜로는 본래 찾을 수 없다는 말일까? 그보다는 천지의 자연스런 조화는 기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신이 있다 해도 역시 천지의 자연스런 조화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그 누가 찾을 수 있으리오? 이로써 보자면,.. 硏究篇---綜合文學 2023. 4. 13. 이전 1 2 3 4 5 6 7 8 ··· 14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