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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思想文化術語詞典 2-풍아송風雅頌

一字師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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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思想文化術語詞典 2-풍아송風雅頌

풍아송風雅頌

《시경》에서 체재와 음악에 의거해 시를 분류하는 유형이다. ‘풍’(국풍國風)은 여러 지역의 지방 음악으로 대부분 민가이고, ‘아’는 궁정 연회나 조회 때 쓰던 가곡으로서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로 나뉘며 대부분 귀족 문인들의 작품이다. 그리고 ‘송’은 종묘 제례 때 쓰던 무곡舞曲의 가사이다. 그래서 ‘풍아송’은 《시경》의 체재이며 동시에 고아高雅하고 순정純正한 함의를 갖고 있다. ‘풍아’는 나중에 전아하고 고아한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예) 그래서 《시경》에는 6가지 기본 내용이 있다. 바로 풍, 부賦, 비比, 흥興, 아, 송이다.
故《詩》有六義焉: 一曰風, 二曰賦, 三曰比, 四曰興, 五曰雅, 六曰頌. (《시대서詩大序》

《시경》의 ‘삼경三經’은 부, 비, 흥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작시作詩의 뼈대로서 모든 시에 다 있으며 없으면 시가 되지 않는다. 대체로 부가 없으면 비가 있어야 하고 비가 없으면 흥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풍, 아, 송은 시 안에서 횡적으로 연결하는 작용을 하는데, 시에는 모두 부, 비, 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풍, 아, 송을 ‘삼위三緯’라고 한다. 
‘三經’是賦比興, 是做詩底骨子, 無詩不有, 才無則不成詩. 蓋不是賦便是比, 不是比便是興. 如風雅頌却是裏面橫串底, 都有賦比興, 故謂之‘三緯’. (《주자어류朱子語類》 80권)

 

봉건封建

봉방건국封邦建國 혹은 봉토封土건국의 준말이다. 고대의 제왕은 작위, 토지, 인구를 친척과 공신에게 나눠주고 봉지封地 안에 나라를 세우게 했다. 각 봉국封國은 왕실 직할 영지보다는 규모가 작았고 왕실의 통치 질서를 따른다는 전제 아래 정치, 군사 영역에서 높은 자율성을 누렸으며 봉국끼리 상호견제하며 함께 왕실을 수호했다. 또한 봉국은 세습을 할 때 왕실의 확인을 거쳐야 했고 규정에 따라 왕실에 공물을 바쳤다. 일종의 정치제도인 봉건제는 황제黃帝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서주 시대에 완성되었다. 그것은 혈연 가문 제도를 바탕으로 형성된 종법제와 표리를 이루었고 등급 신분제 등을 파생시켰다. 나중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행했는데, 이때부터 청나라 시대까지 중국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중앙집권제 혹은 전제군주제였다. 그러나 ‘봉건’은 전제군주제의 일종의 보조수단으로서 음으로 양으로 계속 존재했다.

예) 봉건제는 상고 시대의 성현인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을 거치고서도 폐지되지 않았다.
彼封建者, 更古聖王堯, 舜, 禹, 湯, 文, 武而莫能去之. (유종원柳宗元, 「봉건론封建論」)

풍諷

문학 작품에서 일정한 사례나 사상을 빌려 함축적이면서도 완곡하게 백성들의 사정과 분위기를 알리고 정치를 비판함으로써 통치자로 하여금 그 의견을 받아들여 폐단을 제거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풍’은 충고, 권유를 뜻하는데 시문에서는 그 언어가 함축적이면서도 완곡해야 하며, ‘유諭’는 알리고 표명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풍’은 실제적으로 서로 분리되지 않는 두 부분을 포함한다. 하나는 문학의 표현 방식(‘풍’은 완곡하고 함축적이어야 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통치자를 일깨운다)이다. 이른바 ‘풍유설諷諭說’은 한나라 학자가 《시경》을 설명할 때 결론 지어 제시한 것인데 유가에서는 이것으로 문학의 조정에 대한 교화와 사회 풍속에 대한 관여 작용을 제창하고 그것을 문학의 특수한 사명으로 보았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많은 풍유시를 지어서 시 창작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고 그 문학 전통을 밀어붙여 후대의 문학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 어떤 작품은 아랫사람의 감정을 표현하여 군주에게 풍유를 전하고, 어떤 작품은 군주의 은덕을 선양하여 충효의 의무를 다한다.
或以抒下情而通諷諭, 或以宣上德而盡忠孝. (반고班固, 「양도부서兩都賦序」)

옛날 사람은 글을 써서 크게는 조정의 돈화와 백성의 풍속을 관련지어 나타냈으며 작게는 경계를 담고 풍유를 전달했다.
古之爲文者, 上以紉王敎, 繫國風; 下以存炯戒, 通諷諭. (백거이白居易, 《책림策林·육팔六八·의문장議文章》

 

부비흥賦比興

《시경》 창작의 3가지 표현 수법. ‘부’는 사물을 펼쳐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고 ‘비’는 공통적인 성질을 가진 두 가지 사물을 놓고서 하나를 다른 하나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은 먼저 다른 사물을 언급하여 읊고자 하는 바를 끌어내는 것인데 두 가지 함의가 있다. 하나는 즉흥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움직일 때 객관적인 경물을 빌려서 에둘러 어떤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부비흥’은 한대의 유가가 종합해 제시하였고 훗날 중국 고대문학 창작의 기본 원칙이자 방법으로 발전했다.

 

예) 부, 비, 흥은 《시경》 창작의 수법이고 풍, 아, 송은 《시경》 체제의 정해진 유형이다.
賦, 比, 興是《詩》之所用, 風, 雅, 頌是《詩》之成形. (《시대서》 공영달정의孔穎達正義)

부는 것은 사물을 펼쳐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고 비는 저 사물로 이 사물을 비유하는 것이며 흥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한 뒤, 다시 읊고자 하는 사물을 끌어내는 것이다. 
賦者,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比者, 以彼物比此物也; 興者,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也. (주희, 《시집전詩集傳》)

 

격格

시의 체제와 어조를 뜻하며 시적 사유와 음률의 형식, 두 측면을 다 포함한다. ‘격’은 시의 체제가 규범에 부합함을 가리켜 ‘조調’는 시의 어조와 운율을 가리킨다. 당송 시기의 몇몇 시론가가 격조를 제창한 것은 시의 바르고 우아한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서였으며 명청 이후의 격조설은 대체로 작품이 유가의 정통 사상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인의 감정 표현과 예술 창작에 영향을 주었다. ‘격조’는 나중에 다른 문예 영역에서도 사용되었다.

 

예)  고상하고 예스러운 것이 ‘격’이고 완곡하고 분명한 것이 ‘조’이다. 
高古者格, 宛亮者調. (이몽양李夢陽, 「박하씨논문서駁何氏論文書」)

강기姜蘷의 사는 청허함이 주된 특색인데 간혹 처량하고 적막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격조는 가장 높다.
白石詞以淸虛爲體, 而時有陰冷處, 格調最高. (진정작陳廷焯, 《백우재사화白雨齋詞話》 2권)

 

화하華夏

고대 중원 지역에 살던 한족 사람들이 스스로 일컫던 호칭. 가장 이르게는 ‘화華’, ‘제화諸華’, 혹은 ‘하夏’, ‘제하諸夏’라고 했다. ‘화하’가 실제로 표현하는 것은 한족이 주체였던 고대 중원 사람들의 자신들의 공통적인 생활, 언어, 문화적 특징에 대한 일종의 인정과 전승이다. 화하를 주체로 하는 통일된 다민족 국가인 진나라가 수립된 후로 화하는 비로소 비교적 안정된 집단이 되었다. 한나라 이후부터 화하는 또 ‘한漢’이라는 명칭과 함께 쓰였고 나중에는 중국 또는 한족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파생되었다.

 

예) ‘하’의 함의는 ‘크다’이다. 화하족은 예의가 풍부하고 위대해서 ‘하’라고 불렸고 옷이 아름다워 ‘화’라고 불렸다. ‘화’와 ‘하’는 같은 의미이다. 
夏, 大也. 中國有禮義之大, 故稱夏; 有服章之美, 謂之華. 華夏一也. (《좌전·정공定公 10년》 공영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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