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조19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글: 넉두리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내용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있다. 만일 허구를 벗겨내버린다면 가장 먼저 신화에서 끌어내려질 사람은 아마도 제갈량(諸葛亮)일것이다. 그러나《삼국연의》에서 신격화된 사람은 제갈량뿐이 아니다. 두번째로 허구가 많이 포함된 사람은 아마도 관운장 즉 관우일것이다. “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웅(華雄)을 베였다”는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또 관운장(關雲長)은 안량(顔良)을 죽인것은 사실이였지만 문추는 죽이지 못했고 “다섯 관문을 넘으면서 여섯장수를 베였다”는것도 허구였다. 그리고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를 붙잡았다가 풀어준 사실”도 없었다. 제갈량과 관운장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삼국연의》에서 신격화(神格化)되였으나 진면모에 대하여는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1. 미녀라면 사족을 못쓴 조조 미녀라면 사족을 못쓴 조조 글 : 넉두리 조조(曹操; 155~220년)는 미녀라면 사족을 못쓰는 위인이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출신성분도 가리지 않았다. 창기든 유부녀든 눈에 들기만 하면 방법을 대여 손에 넣고야 말았다. 후일 조비를 낳아 황후가 된 변부인은 창기출신이였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한 조조는 그녀의 신분이 천하다고 해서 꺼리지 않고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두부인의 경우는 더욱 한심했다. 그녀는 남편이 멀쩡히 두눈을 펀히 뜨고 살아있는 유부녀였다. 류비가 조조와 함께 하비성에서 려포를 포위했을 때의 일이였다. 하루는 관우가 조조를 찾아왔다. 조조는 느닷없이 찾아온 관우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관우는 조조를 보고 낮은 소리로 부탁했다. “려포의 부장중..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내용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있다. 만일 허구(虛構)를 벗겨 내버린다면 가장 먼저 신화에서 끌어내려질 사람은 아마도 제갈량(諸葛亮)일 것이다. 그러나《삼국연의》에서 신격화된 사람은 제갈량뿐이 아니다. 두 번째로 허구가 많이 포함된 사람은 아마도 관운장 즉 관우(關羽)일 것이다. “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웅(華雄)을 베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또 관운장은 안량(顔良)을 죽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추(文醜)는 죽이지 못했고 “다섯 관문을 넘으면서 여섯 장수를 베였다”는것도 허구였다. 그리고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曹操)를 붙잡았다가 풀어준 사실”도 없었다. 제갈량과 관운장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삼국연의》에서 신격화(神格化)되였으.. 千里眼---名作評論 2024. 2. 26. 조휴가 패배한 석정石亭전투를 삼국연의는 왜 언급하지 않는가? 조휴가 패배한 석정石亭전투를 삼국연의는 왜 언급하지 않는가? 图片来源 | 石亭之战:真的是周鲂断发赚曹休吗?贾逵是否有说周鲂投降是诈?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에 석정전투는 기실 아주 유명한 전투이다. 그리고 아주 멋진 전투이다. 당시 오(吳)나라의 총사령관인 육손은 주항, 전종, 주연등 저명한 장수를 이끌고 위나라의 조휴가 총사령관으로 가목, 주령, 왕릉이 이끄는 십만대군을 물리치고, 1만여명을 참하고 포로로 잡았다. 위나라의 총사령관인 조휴는 최종적으로 화병으로 죽었다. 당시, 육손이 만일 과감하게 주항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조위정권의 수도를 바로 취하고, 조위정권을 와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휘황하고 멋지며 보기 좋은 전투가 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확실히 이해가 되지 ..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20. 삼국지三國志 한자원漢字源 삼국지三國志 한자원漢字源 《삼국지》(三國志)는 서진의 진수가 쓰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내용을 보충한 중국 삼국시대의 사찬(私撰) 역사서이다. 후한 말기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석 삼(三)은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指事字)다. 그러나 석 삼(三)은 단순히 ‘셋’을 의미(意味)할 리가 없다. ‘一’과 ‘二’를 합해 ‘三’으로 쓰는 것임에는 분명(分明)하다. 그렇다면 ‘一’과 ‘二’의 의미(意味)부터 살펴봐야한다. ‘一’은 ‘한 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있음’, 즉 존재(存在)를 의미(意味)한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一은 하늘을 뜻하고 二는 땅을 뜻하..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9. 삼국연의 인물들의 실제 나이와 정사 삼국지 위서 삼국연의 인물들의 실제 나이와 정사 삼국지 위서 글: 희랄인(嘻辣人) 필자의 삼국인물에 대한 인상은 모두 영화와 드라마에서 왔다. 그런데, 사료와 대조해보니, 실제와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도원결의 는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사서에는 이를 기록하지 않았고, 그저 "세 사람이 형제같이 정이 두터웠다"고만 적고 있다. 184년, 유비는 고향에서 의군을 모아 황건적에 항거하려는데, 관우와 장비가 가담하여 유비와 알게 된다. 도원결의의 드라마에서의 모습은 모두 중년인인데, 실제로 184년 유비는 23세, 관우는 24세, 장비는 17세이다. 2. 삼고초려 영화드라마에서는 통상 도원결의후 곧 삼고초려로 넘어간다. 마치 둘 사이에 그다지 시간이 떨어져있지 않은 것처럼... 사실상 두 건은 23년의 ..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4. 무사 관우와 방덕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유사성격 충돌 무사 관우와 방덕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유사성격 충돌 글: 염호강(閻浩崗) 관우의 장점과 약점에 대하여는 의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얘기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관우성격의 최대특징은 바로 "지나친 자신감"이다. 이 특징은 그가 몇 가지 기적을 만들어내게 했다. 예를 들어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벤 것이나, 안량, 문추를 벤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창조한 것은 또 다시 그의 자신감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의 실제수준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실패를 불러온 핵심요소중 하나이다. 만일 무사로서의 관우의 평생을 본다면 가장 화려했던 때는 백마파에서 안량, 문추를 벤 때일 것이다. 그렇다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관우에게 사업의 전성기는 수엄칠군(水淹七軍)이다. 화웅을..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3. 조조의 방식 서성의 삼국지 강의 조조의 방식 이우재 조조는 205년 1월 기주(鄴, 지금의 邯鄲시 臨漳현)를 점령한다. 200년 관도전 이후 원소의 본거지를 점령하는데 4년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 원소는 병으로 죽고, 하북에서 세력을 장악하고 있던 원소의 세 아들과 사위 등은 서로 연합하거나 배척하며 조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에는 조조의 특이한 모습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204년 년말에 원소의 장남 원담이 남피(南皮, 자금의 滄州시 남피현)로 도주하자 그를 추격할 때 일어났다. 겨울이라 강이 얼어 조조는 백성들을 징발하여 얼음을 깨고 배를 밀게 하였다. 백성들이 그 고초를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조조는 영을 내려 죽이라고 하였다. 달아난 백성 중에는 먹고 살기어려워서 그랬는지 죽음.. 千里眼---名作評論 2023. 2. 1. 유비의 시대, 법정의 시대 서성의 삼국지 강의 유비의 시대, 법정의 시대 이우재 나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곧잘 10년씩 끊어서 본다. 그러면 시대의 흐름이 더 잘 보인다. 이렇게 보았을 때 210년대의 10년은 유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적벽전(208)이 일어나기 전 유비는 유표 밑에서 신야에 주둔하며 군사 5천 밖에 없었지만 적벽전 이후 형주 사군을 얻고, 황충과 위연과 마량과 마속을 얻고, 211년 익주(사천성)로 들어가 214년 성도를 점령한다. 유비야말로 적벽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중으로 들어온 조조를 몰아내고 한중까지 점령하여 진령 이남의 사천을 온전하게 지배하며 한중왕을 선포한다. 그 결과 221년 황제에 오르니 이 10년은 정말 유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같은 시기의 .. 千里眼---名作評論 2023. 1. 31. 조조와 사마의의 첫대면 서성의 삼국지 강의 조조와 사마의의 첫대면 이우재 아래의 3분 짜리 동영상은 드라마의 일부인데 이를 본 사람 가운데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염려되어 몇 자 적어본다. 드라마를 혹애하는 사람조차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사마의(사마중달)는 한나라 때 태위(국방부장관)를 배출한 명문 집안 출인. 조조(47세)가 사마의를 처음 부른 것은 관도전이 일어난 다음해인 201년이었다. 사마의(23세)는 칭병하고 나가지 않았다. 젊은 사마의로서는 조조가 대단치 않아 보였던 것 같다. 영상의 장면은, 208년 적벽전 바로 전에 조조(54세)가 두 번째 사마의(30세)를 불러 만났을 때로, 이때가 첫대면이었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면서 불러서 오지 않으면 죽이라고 했으므로 사마의는 나가지 않을 수.. 千里眼---名作評論 2023. 1. 29. 사마의가 궁금하다 서성의 삼국지 강의 사마의가 궁금하다 이우재 1 나는 사마의가 싫었다. 그의 뛰어난 책략이, 자로 잰 듯한 빈틈없는 작전이, 용서를 모르는 가혹함이 언제나 마음에 걸렸다. 그는 냉정하고 정확했다. 그는 기다릴 줄 알았고, 일어날 때를 알았고, 공격할 때를 알았지만, 인정이 없고 용서를 몰랐다. 기계와 같았다. 영민하고 출중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출세 기계’와 같았다. 그것이 그동안의 나의 인상이었다. 소설이 제갈량의 북벌을 저지한 맞수로 내세워서가 아니라, 그는 확실히 공업에서는 탁월했다. 삼국은 결국 그의 손자 사마염이 서진을 세우고 통일하지 않았는가. 그 토대는 십년 동안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일으킨 고평릉 쿠테타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 이전에 조조와 조비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린 덕분..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8.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8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8 이우재 유비의 멋진 말 8 유비의 멋진 말 여덟 번째는 잘 알려진 일화에서 뽑았다. 진정인지 교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종의 교활한 일면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조직과 부하를 사랑하는 진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얘 때문에 장수 하나 잃을 뻔했구먼!”(제42회) 적벽대전의 전초전이랄 수 있는 당양 전투에서 조조군이 유비군을 덮칠 때 일어난 일이다. 당양 전투에서는 두 장수의 활약이 컸다. 곧 장비와 조자룡이다. 이중 유비의 두 부인과 아들 아두를 호송하기로 임무를 맡은 조자룡, 미부인은 우물에 빠져 자결하고 아두를 가슴에 띠로 묶고 창을 휘두르며 조조의 백만 대군을 휘젓고 나왔다. 우리말 속담에도 “조자룡 헌 창 쓰듯”이란 말이 있는데..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6. 이전 1 2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