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유비15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글: 넉두리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내용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있다. 만일 허구를 벗겨내버린다면 가장 먼저 신화에서 끌어내려질 사람은 아마도 제갈량(諸葛亮)일것이다. 그러나《삼국연의》에서 신격화된 사람은 제갈량뿐이 아니다. 두번째로 허구가 많이 포함된 사람은 아마도 관운장 즉 관우일것이다. “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웅(華雄)을 베였다”는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또 관운장(關雲長)은 안량(顔良)을 죽인것은 사실이였지만 문추는 죽이지 못했고 “다섯 관문을 넘으면서 여섯장수를 베였다”는것도 허구였다. 그리고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를 붙잡았다가 풀어준 사실”도 없었다. 제갈량과 관운장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삼국연의》에서 신격화(神格化)되였으나 진면모에 대하여는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1.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역사적 진실(眞實)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내용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있다. 만일 허구(虛構)를 벗겨 내버린다면 가장 먼저 신화에서 끌어내려질 사람은 아마도 제갈량(諸葛亮)일 것이다. 그러나《삼국연의》에서 신격화된 사람은 제갈량뿐이 아니다. 두 번째로 허구가 많이 포함된 사람은 아마도 관운장 즉 관우(關羽)일 것이다. “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웅(華雄)을 베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또 관운장은 안량(顔良)을 죽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추(文醜)는 죽이지 못했고 “다섯 관문을 넘으면서 여섯 장수를 베였다”는것도 허구였다. 그리고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曹操)를 붙잡았다가 풀어준 사실”도 없었다. 제갈량과 관운장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삼국연의》에서 신격화(神格化)되였으.. 千里眼---名作評論 2024. 2. 26. 삼국지三國志 한자원漢字源 삼국지三國志 한자원漢字源 《삼국지》(三國志)는 서진의 진수가 쓰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내용을 보충한 중국 삼국시대의 사찬(私撰) 역사서이다. 후한 말기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석 삼(三)은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指事字)다. 그러나 석 삼(三)은 단순히 ‘셋’을 의미(意味)할 리가 없다. ‘一’과 ‘二’를 합해 ‘三’으로 쓰는 것임에는 분명(分明)하다. 그렇다면 ‘一’과 ‘二’의 의미(意味)부터 살펴봐야한다. ‘一’은 ‘한 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있음’, 즉 존재(存在)를 의미(意味)한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一은 하늘을 뜻하고 二는 땅을 뜻하..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9. 삼국연의 인물들의 실제 나이와 정사 삼국지 위서 삼국연의 인물들의 실제 나이와 정사 삼국지 위서 글: 희랄인(嘻辣人) 필자의 삼국인물에 대한 인상은 모두 영화와 드라마에서 왔다. 그런데, 사료와 대조해보니, 실제와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도원결의 는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사서에는 이를 기록하지 않았고, 그저 "세 사람이 형제같이 정이 두터웠다"고만 적고 있다. 184년, 유비는 고향에서 의군을 모아 황건적에 항거하려는데, 관우와 장비가 가담하여 유비와 알게 된다. 도원결의의 드라마에서의 모습은 모두 중년인인데, 실제로 184년 유비는 23세, 관우는 24세, 장비는 17세이다. 2. 삼고초려 영화드라마에서는 통상 도원결의후 곧 삼고초려로 넘어간다. 마치 둘 사이에 그다지 시간이 떨어져있지 않은 것처럼... 사실상 두 건은 23년의 ..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4. 삼국명장들은 어떤 무기를 썼는가? 삼국명장들은 어떤 무기를 썼는가?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1. 여포(呂布) 척토마(赤兎馬)를 타고, 방천화극(方天畵戟, 畵杆方天戟)을 휘두르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여포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적인 기법으로 승화된 후의 모습이다. 사료의 기재를 보면, 적토마는 진실로 존재했다. 그러나, 방천화극은 후세인들이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은 '영웅기"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포가 동탁을 주살한 후, 왕윤이 서량군벌을 모조리 주살하려 한다. 그러다다 이각(李傕), 곽사(郭汜)가 장안에서 반기를 든다. 여포는 말을 타고 나가서 싸우는데, 그는 적진의 앞에서 곽사와 1:1로 싸우자고 요구한다. 그 결과, "(여)포는 모(矛, 세모진창)를 가지고 (곽)사를 찔러갔다. (곽)사의 뒤에 있던 기병이..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4. 무사 관우와 방덕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유사성격 충돌 무사 관우와 방덕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유사성격 충돌 글: 염호강(閻浩崗) 관우의 장점과 약점에 대하여는 의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얘기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관우성격의 최대특징은 바로 "지나친 자신감"이다. 이 특징은 그가 몇 가지 기적을 만들어내게 했다. 예를 들어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벤 것이나, 안량, 문추를 벤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창조한 것은 또 다시 그의 자신감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의 실제수준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실패를 불러온 핵심요소중 하나이다. 만일 무사로서의 관우의 평생을 본다면 가장 화려했던 때는 백마파에서 안량, 문추를 벤 때일 것이다. 그렇다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관우에게 사업의 전성기는 수엄칠군(水淹七軍)이다. 화웅을.. 千里眼---名作評論 2023. 5. 13. 유비의 시대, 법정의 시대 서성의 삼국지 강의 유비의 시대, 법정의 시대 이우재 나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곧잘 10년씩 끊어서 본다. 그러면 시대의 흐름이 더 잘 보인다. 이렇게 보았을 때 210년대의 10년은 유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적벽전(208)이 일어나기 전 유비는 유표 밑에서 신야에 주둔하며 군사 5천 밖에 없었지만 적벽전 이후 형주 사군을 얻고, 황충과 위연과 마량과 마속을 얻고, 211년 익주(사천성)로 들어가 214년 성도를 점령한다. 유비야말로 적벽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중으로 들어온 조조를 몰아내고 한중까지 점령하여 진령 이남의 사천을 온전하게 지배하며 한중왕을 선포한다. 그 결과 221년 황제에 오르니 이 10년은 정말 유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같은 시기의 .. 千里眼---名作評論 2023. 1. 31.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8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8 이우재 유비의 멋진 말 8 유비의 멋진 말 여덟 번째는 잘 알려진 일화에서 뽑았다. 진정인지 교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종의 교활한 일면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조직과 부하를 사랑하는 진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얘 때문에 장수 하나 잃을 뻔했구먼!”(제42회) 적벽대전의 전초전이랄 수 있는 당양 전투에서 조조군이 유비군을 덮칠 때 일어난 일이다. 당양 전투에서는 두 장수의 활약이 컸다. 곧 장비와 조자룡이다. 이중 유비의 두 부인과 아들 아두를 호송하기로 임무를 맡은 조자룡, 미부인은 우물에 빠져 자결하고 아두를 가슴에 띠로 묶고 창을 휘두르며 조조의 백만 대군을 휘젓고 나왔다. 우리말 속담에도 “조자룡 헌 창 쓰듯”이란 말이 있는데..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6. 서성의 삼국지 강의-무한과 형주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무한과 형주 이우재 무한과 형주 무한을 소개하면서 형주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형주는 고대의 구주(九州) 가운데 하나였으며, 한대 13개 주(州) 가운데 하나다. 그 크기는 한반도의 2배 이상이다. 동정호 위에 있는 호북성과 동정호 아래에 있는 호남성을 중심으로 하남, 귀주, 광서, 광동의 일부를 포함한다. 호북성과 호남성이 각각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이니, 행정구역으로서는 아주 넓은 셈이다. 동한 때 형주는 7개 군과 117개 현을 관할하였다. 7개 군은 남양군(南陽郡), 남군(南郡), 강하군(江夏郡), 영릉군(零陵郡), 계양군(桂陽郡), 무릉군(武陵郡), 장사군(長沙郡) 등이다. (동한 말기에는 남양..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5.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5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5 이우재 유비의 멋진 말 5 유비의 멋진 말 다섯 번째는 유비가 임종 때 남긴 말에서 뽑고 싶다. “만약 내 아들을 보좌해줄 만하면 보좌하고, 만일 재목이 아니거든 그대가 성도의 주인이 되시오.”(제85회) 때는 223년 유비는 이릉 전투에서 패하고 백제성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황건 봉기 이래 평생 말을 달리고 흙먼지를 마시고 깃발을 날리고 북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의 마지막 날이었다. 짚신과 돛자리를 엮어 팔다 24세에 전란에 뛰어들고 거의 40년이 지나, 이제 촉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지 2년만에 죽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지만 천명의 재촉을 받았던가. 임종의 자리에서 기억할 만한 많은 말을 했지만 위의 이 말이 유비를 잘 말해..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1.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4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4 이우재 유비의 멋진 말 4 “만약 나라면 나는 백 척 누각 꼭대기에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오.”(如小人, 欲臥百尺樓上, 臥君於地.) 유비의 멋진 말 네 번째로 뽑은 말은 소설 에는 없고 에 있는 말이다. 역사서에서 뽑은 것은 유비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배경은 유비가 유표 밑에 있을 때로, 대략 202년에서 207년 사이. 유비와 유표가 천하의 인물을 논하였다. 이때 여포의 참모였던 허사(許汜)도 함께 있었는데 그는 진등(陳登)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진등은 강호 출신으로, 거칠고 오만한 기운을 없애지 못했소.”陳元龍湖海之士,豪氣不除.) 원문에 나오는 ‘호기’(豪氣)라는 말은 여기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거칠..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20.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3 서성의 삼국지 강의 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3 이우재 유비의 멋진 말 3 내가 유비를 좋아하는 것은 부단한 자기 노력 때문이다. 예컨대 잘 알려진 “허벅지의 탄식”(髀肉之歎)이 그러하다.(제34회) 조조가 원소와 그 일당을 추격하던 200~207년은 형주에 있던 유비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절이었다. 한번은 유표와 술을 마시다가 측간에 다녀오는데, 허벅지에 살이 잔뜩 붙어 있는 걸 보고 저도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유표가 유비의 눈물 맺힌 얼굴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이에 유비가 길게 탄식하며 대답하였다. “저는 이전에 안장을 떠난 적이 없어(항상 말을 타서) 허벅지에 살이 붙을 여가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오랫동안 말을 안 타서 대퇴골에 살이 잔뜩 붙었습니다. 세월만 헛되이 .. 硏究篇---綜合文學 2023. 1. 19. 이전 1 2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