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한자원漢字源
《삼국지》(三國志)는 서진의 진수가 쓰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내용을 보충한 중국 삼국시대의 사찬(私撰) 역사서이다. 후한 말기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석 삼(三)은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指事字)다. 그러나 석 삼(三)은 단순히 ‘셋’을 의미(意味)할 리가 없다. ‘一’과 ‘二’를 합해 ‘三’으로 쓰는 것임에는 분명(分明)하다. 그렇다면 ‘一’과 ‘二’의 의미(意味)부터 살펴봐야한다. ‘一’은 ‘한 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있음’, 즉 존재(存在)를 의미(意味)한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一은 하늘을 뜻하고 二는 땅을 뜻하며, 애당초 도(道)는 一에서 나왔다(天一地二 惟初太始 道立於一: 천일지이 유초태시 도립어일)’”고 설명(說明)한다. ‘一’을 ‘태초(太初)의 시작’ ‘하늘’로 본 것이다. ‘二’에서 위에 있는 획(劃)은 하늘을, 아래에 있는 획은 땅을 뜻한다. ‘三’은 하늘과 땅 사이에 무언가 있음을 가로획으로 표시(標示)했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는 존재(存在), 바로 사람이다. ‘三’은 가로 획 세 개에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모두 담고 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혼자서는 아무 의미(意味)가 없다. 이 셋이 만난 ‘三’은 곧 만물(萬物)을 뜻한다. 이 안에서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 삼(三)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삼(三)은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字形)에서 보듯 일(一)과 이(二)가 짝을 이루어 삼(三)이 되었으니 완전수(完全數)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東洋學)에서는 3을 완전수(完全數)로 보고서 사물(事物)을 이루는 기본수(基本數)로 인식(認識)하고, 천지인(天地人) 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確立)하게 되었다. 석 삼(三)은 수(數)의 이름(名)으로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도(道)를 뜻하며, 문자(文字)는 일(一)과 이(二)가 짝하여 삼(三)이 되어 성수(成數)이다.
나라 국(國)의 구성(構成)은 에워쌀 위(囗)와 입 구(口) 그리고 창 과(戈)와 한 일(一)로 짜여 있다. 나라 구성(構成)의 요건(要件)은 먼저 국민(國民), 영토(領土), 국방(國防)이 필수적(必須的)인데 국(國)자에는 이 요건(要件)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즉 백성(百姓)을 뜻하는 것은 구(口)이며, 사람이 사는 거주지(居住地) 및 농경지(農耕地)를 뜻하는 땅은 일(一)이, 그리고 영토(領土)의 경계(囗)를 지키는 군사력(軍事力)은 무기(武器)를 뜻하는 과(戈)가 의미요소(意味要素)로 쓰이고 있다. 즉 나라 국(國)은 국경(口)을 무기(戈)와 울타리(口)로 보호하다. 이에 무기 들고 울타리를 지키다. 나라(國) 자에서는 모두 5개의 한자의 기본 글자들이 들어 있다. 첫째는 입구( 口)이다. 대개는 이 글자는 입과 관련(關聯)된 행동을 의미(意味)한다. 예로 말하다, 소리치다, 울다, 먹다, 그릇 등의 뜻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國’에 쓰인 ‘口’는 입의 개념(槪念)이 아니라 울타리의 개념이다. 울타리이므로 국경선(國境線), 성(城), 건물(建物), 집 등의 의미한다. 국(國)에서 바깥쪽의 큰 울타리(口)가 국경선이라면 안쪽의 작은 울타리는(口) 는 성이나 건물을 의미한다. ‘口’는 이밖에도 문(門), 통로(通路)의 개념이 있어 한자에서 ‘口’는 빈도(頻度)가 높게 쓰이는 중요(重要)한 글자이므로 그 정확(正確)한 뜻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두 번 째는 한일(一)이다. 하늘 천(天)이나 흙토(土), 방패 간(干)에는 수많은 한자에 ‘一’이 들어 있다. 이들 한자에서 (一)은 하늘, 땅, 으뜸, 성역을 뜻한다. 토(土)는 땅에서 뾰족한 것이 나오다의 뜻이고 천(天)은 으뜸으로 큰 것이라는 뜻이며 ‘干‘은 뾰족한 무기(十)을 막는(一) 방패라는 뜻이다. (干)은 방패의 뜻 외에도 성역(聖域), 임금, 막다의 뜻이 있다. 신라시대(新羅時代) 왕을 뜻하는 마립간에서도 이 간(干)를 쓰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一‘이 ’干‘에 들어가서 막다, 성역(聖域)의 의미를 부여(附與)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성역(聖域)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가로막는 막대나 금줄(一)등이 있다. ’一‘에는 막다 보호(保護)하다 머리 뚜껑 등의 뜻이 있는데 이것들도 모두 성역(聖域),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파생(派生)했다고 볼 수 있다. 국(國)에 들어 있는 (一)도 성(口)을 보호하고 막는 금지선(禁止線)이나 성곽(城廓)으로서 적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선(防禦線) 역할(役割)을 한다. 세 번 째는 열십(十)이다. (十)은 풀, 손, 털, 나무 가지, 무기 등 뾰족하게 나온 것들을 의미(意味)한다. 네 번 째는 삐칠 별(丿) 이다. ’丿‘은 지도(指導)하다, 지시(指示)하다 방향(方向), 목표(目標), 무기(武器)의 뜻이 있다. 다섯 번 째는 점주(丶)이다. 丶은 포인트, 점을 찍다의 뜻이다. 뾰족하게 나오다 뜻이 있는 (十)에 무기를 의미하는 (丿)과 마무리하다, 점을 찍다 뜻이 있는 (丶)가 합쳐져서 창과(戈)를 이룬다. 그러므로 (戈)의 뜻은 초점(丶)를 향(丿)하여 찌르는 뾰족한 무기(十)로 해석(解釋)할 수 있다. 결국 나라 국(國)은 국경, 무기, 성, 막다로 구성(構成)되어 무기 들고 울타리를 지키다의 뜻이 된다. 울타리에 충성(忠誠)하는 동양의 국가관(國家觀)을 이 한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뜻 지(志)의 구성(構成)은 갈 지(之)가 변화된 선비 사(士)와 사람의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지(之)는 발 모양(模樣)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出發線)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거나 무엇을 한다는 의미(意味)를 담았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士(사)로 변화(變化)되었는데, 인문학적(人文學的)인 의미(意味)가 더해진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에 나타난 사(士)는 도끼의 모양(模樣)을 본뜬 자형(字形)으로 그려져 있지만, 후대(後代)로 오면서 인문학적(人文學的)인 의미가 부가(附加)된 사(士)는 ‘하나(一)에 열(十)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혜(智慧)로운 사람’, 즉 선비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志)의 전체적(全體的)인 의미(意味)는 본디 무슨 일을 하려 할 때(之) 마음(心) 속에 간직하는 것인 ‘뜻’을 의미(意味)하였지만, 士(사)로 바꾸어 선비(士)로서의 곧은 마음(心)이라는 데서 ‘뜻’이란 의미를 더욱 강조(强調)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본래의 표제는 위지(魏志), 촉지(蜀志), 오지(吳志)인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삼국지는 '사기', '한서'의 체계를 따라 기전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무제(武帝, 조조), 명제(明帝, 조예) 등의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여 기술하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은 훗날 습착치의 《한진춘추》나 주희의 《자치통감강목》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삼국지주》(三國志注) 또는 《배송지주》(裴松之注)는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문제가 역사학자 배송지에게 명하여 삼국지에 주를 단 것으로 “배주”(裴注)라고도 하고 원문과 함께 칭할 때는 “수지배주”(壽志裴注)라고도 한다. 진수가 참고한 자료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책을 수집하여 주를 달게 한 것이다. 본래 주(注)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는 것이나 배송지는 누락된 사료를 기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약 200여 권이 넘는 여러 사서를 인용하여 사실을 보충하고 고증하였으며 본문의 몇 가지 오류나 모순을 지적하고 시정하였다. 자신이 인용한 자료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진수의 인물평과 함께 자기 자신의 평을 넣기도 하였다. 현재 전해지지 않는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였기 때문에 그의 주는 사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삼국지와 더불어 삼국지 평화, 삼국지 연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배송지주의 양과 관련하여 20세기 양익양이 삼국지의 글자수에 대해 정문이 20만 자, 주(註)가 54만 자로 주가 세 배에 가깝다고 하여 삼국지의 주가 정문을 그 양에 있어 압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왕정흡과 오금화가 정확히 글자를 세어 본 결과 정문(본문)의 글자수가 약 36만 8천 자 주의 글자수가 약32만 2천 자로 본문의 글자가 약간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위서는 본문이 약 20만 7천 자 주가 약 21만 5천자, 촉서는 본문이 약 5만 7천 자 주가 약 4만 2천 자, 오서는 본문이 약 10만 3천 자 주가 약 6만 5천 자이다.
서술이 간결하고 분명하여 명저라 일컬어져 왔다. 또한 위서의 마지막 30권인 위서 동이전(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순서별로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揖婁), 예(濊), 한(韓), 왜인 등의 동양 민족 고대사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혼란 때문에 사료의 수집이 어려워 많은 사료를 참고하지 못하였다. 진수가 주로 참고한 사료는 왕침(王沈)의 《위서(魏書)》, 위소(韋昭)의 《오서(吳書)》,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으로 알려져 있다.
부여전(夫餘傳)은 총 930자(字)이며, 중국 정사(正史) 중 부여에 관한 최초의 열전(列傳)으로 그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 내용은 부여의 위치와 강역을 비롯하여 관제·의식(衣食)·의례(儀禮)·풍속·산물(産物) 등 부여의 생활습속에 관한 상세한 상태기술과 현도군·후한(後漢)·공손씨(公孫氏) 등 중국의 제(諸) 세력과의 관계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문헌학적 연구에 의하면 기사의 1/3 정도가 《위략(魏略)》기사와 관련된 것인데, 진수가 참고한《위략(魏略)》은 배송지 주(注)에 인용된《위략(魏略)》과는 다른 이본(異本)이나, 원위략(原魏略)에 의존하였을 가능성이 크며, 《위략(魏略)》의 부여와 고구려 공통의 습속 기사는 생략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부여전은 종래의 과대한 평가와는 달리 전체적으로는 두찬(杜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위략(魏略)》이 멸실된 현재 부여전은 배송지 주(注)에 인용된《위략(魏略)》 기사와 함께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는 다른 어떠한 사서(史書)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삼국지 三國志
중국의 2세기 말~3세기 말의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서 정사 삼국지 혹은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크게 진수가 쓴 역사서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로 나뉜다.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정사(正史)는 말 그대로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이며 연의는 소설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토대로 쓴 역사소설'이다. 삼국지연의는 관우와 제갈량이 스타가 된 소설이기도 하며 연의 이후로 더욱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 취급을 받고 이미 민간 신앙에서 무신(武神)으로 불리며 '관왕'으로 통용되어 무속 신앙의 대상이 된 관우는 더욱 신격화가 된다. 여기에 다른 오호대장군도 정도는 다르지만 무속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근데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관우가 관제묘로서 신으로 추앙받고 백성들이 유비 등을 추앙하고 제갈량 등을 지혜의 화신으로 섬긴 것은 연의보다 훨씬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추가로 많이 착각하지만 조조는 연의 이전에도 악역이었다. 서주 대학살이나, 병역을 2년에서 평생으로 늘린 둔전제, 조위를 이은 서진의 적폐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즉, 연의 이전에도 이미 관우, 제갈량, 조조 등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연의에서는 그러한 평가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상 현대의 '삼국지 컨텐츠'는, 정사를 토대로 가감한 연의의 내용 위주이며 연의와 정사의 구분은 모호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실제 역사, 삼국지연의라는 소설, 각지의 민담, 그 후에 여러 창작 작품들에서의 모습이 뒤섞인 이미지인 것이다. 그래서 2010년 이후에는 정사, 연의 식으로 확실시 구분하는 미디어 믹스보다는 둘을 적절하게 섞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0년 드라마 삼국이나 2017년의 대군사 사마의같이 기존의 삼국지의 주제였던 "영웅들의 천하쟁패"에서 벗어나 한 세력의 내부 분쟁에 집중하는 등 파고파도 계속 소재가 쏟아지는 물건이기도 하다. 가끔 연의와 정사를 헷갈리고 연의의 인물과 사건들을 실제 역사로 알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연의는 삼국시대 이후 천년후에 쓰인 소설이다. 물론 완전 허구가 아니라 7실 3허라 할 만큼 역사에 허구를 덧붙인 정도. 그리고 정사 삼국지는 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고 오히려 그들이 죽은 이후 삼국시대가 더 비중이 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이는 진수가 삼국시대가 거의 끝날 때쯤 삼국지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사실, 삼국시대는 대중적으로는 대단히 유명한 시기지만,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을 기점으로 본다고 해도 100년, 실질적인 삼국시대는 50여 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에서 삼국시대만을 주로 다루는 경우는 별로 없다. 큰 그림에서 후한 말과 위진남북조를 이어가는 시대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정도. 이것은 혹자들이 하는 말처럼 무슨 삼국시대가 존재감이 없다는 이유보다는, 원래 전문적인 역사학에서는 인물 하나, 자잘한 사건 하나하나에 큰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학에서는 삼국시대보다는 황건적의 난을 더 깊게 연구한다고 한다.
이것은 일반 역사 팬덤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군담물식 역사관 때문에 생기는 괴리감 때문이다. 가령 초한쟁패기만 해도 일반인들은 한신이나 장량 소하 같은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지만, 역사 연구에서는 대체로 진한교체기의 역사적 흐름 중 하나로 묶어서 연구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수당교체기나 원말명초 시기만 해도 어디까지나 이 시기를 묶어서 연구할 뿐이지, 두건덕이나 진우량 이런 인물 하나 하나에 크게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실 역사적 연구보다는 설화와 민담의 발전사를 연구하는 자료로 쓰는 편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특히 정사에서 삼국지평화를 걸쳐 삼국지연의로 변화하는 과정과 당시의 시대상을 본다면. 역사상으론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진 몰라도 민담이나 민중문화의 발전에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란 텍스트는 1800년 동안 민담과 역사서들이 모두 버무려져 만들어진 내용이라 삼국지의 발전 과정을 보려면 민담과 경극 등을 보는 것도 좋다. 캐릭터들의 발전이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밌는데, 일례로 원나라 시기의 연극에서 제갈량은 난세를 종결짓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신선이지만 유비가 황제가 되고 3년밖에 못 산다는 걸 알고 출사를 망설이다가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출사를 결심한다. 이것이 명나라 시기에는 삭제되고 제갈량이 이상을 위해 망설임 없이 출사하는 것으로 바뀐다.
나는 『삼국지』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만큼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삶의 의미를 더욱 영원하게 만든 이야기는 없다.
― 권영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삼국지연의는 중국 문학의 4대 고전 소설 중의 하나로 매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총 80만 개의 단어와 거의 1,000명에 가까운 극적인 캐릭터들을 (대부분의 역사 인물) 120장에 담고 있다. 삼국지는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 중 하나이며, 이 지역에서 문학적인 영향력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문학에 대한 그것과 비교되어 왔다. 이 소설은 아마도 후기 제국과 현대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역사 소설일 것이다. 허버트 자일스는 중국인들 스스로 삼국지연의가 그들의 모든 소설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중국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게임, 애니메이션, 책,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 등등 가능한 모든 매체로 수도 없이 쓰여질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심지어 삼국지서 나온 지략과 전술 등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 및 회자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사대기서 중 필두로 꼽히며 실로 지난 몇 백 년 동안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권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놓친 적이 없는 명소설이다. 사실상 전 세계를 뒤져보아도 이 정도로 영향력있는 문학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포지션 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권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수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삼국지가 대충 천 년 정도 늦기는 했다.
본고장인 중국은 물론이고, 같은 중화권인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 싱가포르와 화교 사회 등지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으며 당연히 2차 창작도 매우 활발하여 그동안 연극으로 수없이 많이 상영되었고 만화책이나 소설책 등으로도 수없이 많이 출간이 되었으며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물 미디어 믹스라고 봐도 부족할 정도다.
중화권은 아니지만 동북아시아의 한자문화권인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도 전근대 시기부터 인기를 끌었고 현대에 와서도 소설책이나 만화책으로 수없이 많이 출간된 데다 게임도 활발히 제작되기 때문에 역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다. 이미 수백 년 전에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는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소설과 민담 등에서 빈번하게 인용되었고 조선왕조실록 등지에서도 삼국지 관련 대화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언어의 장벽이 없을 경우 삼국지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생판 처음 만난 동아시아권의 사람들이라도 자연스럽게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삼국지의 높은 인지도는 어디까지나 한자문화권의 영향권인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하는 것에 비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권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서양에서는 와패니즈들이 일본 만화, 게임등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하기도 한다. 특히 높은 확률로 일본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와 SD건담 삼국전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경우가 많다. 삼국지를 읽어본 적이 없는 서양인들이나 와패니즈들은 일본 문화 컨텐츠에서 종종 삼국지 관련 비유나 드립이 나올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벙찌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삼국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경우도 있다. 서양의 학자들은 흔히 삼국지연의를 소개할 때 동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영향력을 끼친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2004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중고, 초등학생 전 범위에서 삼국지가 기억에 남는 도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 4명 중의 1명은 1년에 1권도 안 읽는 책맹임을 감안했을 때, "책을 읽는 한도 내에선 모든 사람이 거의 다 읽어봤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각종 신문 기사에서 뻑하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인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삼국지를 잘 모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자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문법만큼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십상시, 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군웅할거, 도원결의에 대한 주석이나 보충 설명 따위는 아예 없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누구든지 알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상식선의 어휘인 것이다. 이들 중에서 삼국지 내용을 몰라도 한자만으로 뜻을 알 수 있는 사자성어는 군웅할거, 고육지책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는 대충 뜻을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은유적인 의미가 들어간게 사실이다. 결국,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독자들이 전부 다 삼국지를 읽어봤고 상식선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전제로 기사가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 어휘들은 대부분 초등교과과정 한문 과목에서 다 가르치는 말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과과정을 이수한 사람' 을 전제로 한다고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다.
그뿐인가? 그 외에도 정당, 스포츠, 아이돌, 대기업, 음원 차트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3가지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천하삼분지계라는 표현이 나오고,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선거판에 출마 선언을 하면 "OOO 후보가 공개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야말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격이다" 등의 관용 표현이나 격언은 물론이며, 자주 쓰는 단어들인 계륵, 수어지교, 복룡봉추, 백미(白眉), 읍참마속, 왕좌지재 등도 삼국지에서 비롯된 말이다. 도시 이름도 아닌 장판파, 낙봉파, 적벽 등의 지명도 유명하며, 심지어, 본 뜻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동남풍' 같은 단어도 언론에서 종종 인용하곤 한다.
심지어, 중국의 지리를 뉴스 기사에서 설명할 때도 삼국지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한시에서 대유행한다는 뉴스를 보고 "우한이 어디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형주에 있는 강하였던 곳이요." 라고 대답했을 때 삼국지를 읽어봤다면 "아! 형주에 있는 강하가 우한이에요?" 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다. 삼국지를 읽어봤고 촉한과 손오의 세력구도를 잘 알고 있다면 현대 중국의 지리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국지 덕후나 역덕후 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형주역병(荆州疫病)' 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침 우한은 삼국지 시대 당시에는 '강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링크 이곳 근처에서 적벽대전이 일어났을 때 조조군이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로 패전하기도 했다.2020년 글. 이전부터 관우 관련 글이 인터넷에 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형주의 현대 이름인 징저우시에서는 '형주역병' 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다.
다만, 워낙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책을 읽는 사람들만 포함하면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이 꽤 많은지는 몰라도 전체를 따지면 내용이 너무나도 길고 방대하기 때문에 다 읽어보지는 못하고 조금씩 겉만 핥아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삼국지를 책으로 접하지 않고 만화나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기타 창작물로 접한 경우도 많은데, 삼국지를 다루는 만화나 게임 같은 경우도 고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전혀 거리가 멀고 대중적인 부분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대부분이다.
게다가, 정사 삼국지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번역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발번역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으니 안 읽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편이 맞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중매체 속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라서 원전을 읽지 않았어도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는 정말 많이 알려진 편이기 때문에 친구 몇 명만 모여 있어도 대화를 걸면 두세 명쯤 30분짜리 대화에 끼워넣을 수도 있다.
애초에 65권에 달하는 기전체 역사서를 일반적으로 통째로 다 읽는 사람은 없다. 이는 근대 이전에는 더욱 보편적이어서, 한국에서도 관왕묘가 지어졌고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인용구로 자주 이용되었다. 왕건은 신라 경애왕을 죽인 견훤을 삼국지의 동탁에 비유한 것이 삼국사기에 실려있고, 고려 초창기에 만들어진 서운사 요오화상비(了悟和尙碑)에서는 태조 왕건이 궁예와 견훤을 타도한 것을 조조가 유비를 격멸한 것에 비유하였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서림의 머리가 제갈공명 빰친다든가, 흥부전에서 나오는 '비요 비요 장비라' 같은 표현이 있다.
사서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각색하기도 매우 좋다. 관우가 대군 가운데서 일기토로 안량의 목을 따온다든지, 유비가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부분도 그렇고, 유비와 조조의 경우는 실제 역사상으로도 드라마틱한 세기의 라이벌 구도를 보여주었기에 사서를 조금만 찾아보면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유비와 조조가 대비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려서는 유비가 좋고, 성장하면 조조가 좋아지고, 나이가 더 들면 다시 유비가 좋아진다"는 말도 돌아다닌다.
사실 삼국지라지만 정작 삼국이 제대로 싸우는 것을 다루는 작품은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여러 군웅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조위의 조조가 패권을 쥐자, 이에 대립하는 촉한의 유비와 제갈량의 분투가 주 스토리 라인이다. 손오는 가끔씩 유비나 조조를 뒷치기하거나 훼방 놓는 게 대부분이며, 그나마 삼국지연의에 와서야 오나라가 주요 세력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인기야 말할 것도 없이 최하였다.
삼국지가 워낙 많이 유명한 작품인 만큼 소설, 사극, 만화, 애니, 게임 등 매체들이 많이 써먹는, 통칭 삼국지물이 형성된 작품군이기도 하다. 주로 여체화 모에 페티쉬 뽕빨물 양산형 게임에서 "유명한 삼국지 오리지널 캐릭터를 게임에서 직접 만나보세요"를 밀고 있지만 정작 현질을 해야 얻을 수 있는건 함정이다.
카드가 나오는 형태의 소셜 게임에선 거의 단골 메뉴급으로 자주 나온다. 특히 주로 게임 내의 카드 속성이 3가지로 구분되는 경우 그냥 세력별로 나누면 되기 때문에 매우 써먹기 좋기 때문.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온다. 캐릭터 짜느라 머리 깨질 일 없이 이름, 성격, 특기, 외형이 알려진 수백 명의 인물들을 저작권의 문제 없이 활용할 수 있으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하다.
게다가 캐릭터의 행동이나 스토리를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전달시키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삼국지 관련 게임이라면 "제갈공명 몰라? 적벽대전 몰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삼국지 관련 미디어 믹스가 수없이 많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수준과 질이 낮은 작품도 범람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극심한데 매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삼국지 관련 게임이 쏟아지고 또 망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괜찮은 작품이더라도 워낙 흔한 소재라서 묻히거나 잊히기 쉽다. 왠지 표절이나 한듯 중복된 인물들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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