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락의安心樂意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하려 하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寶釵道:“.......我看二嫂子如今倒是安心樂意的孝敬我媽媽,比親媳婦還强十培呢.” (第一百一十四回)
[해석문]
보채가 말했다:
“......... 제가 보기에 둘째 올케는 지금은 오히려 만족해하면서 어머님께 극진하게 효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 친 며느리보다도 열배나 나은 걸요.” (제 114회)
[명언고사]
어느 날 보옥寶玉은 보채寶釵에게 형수연邢岫烟과 설과薛蝌가 결혼하는 그렇게나 큰 일에 어떻게 친구들도 초대하지 않고 대강대강 끝냈느냐고 물었다.
수연은 형부인邢의 조카딸로 가정형편이 빈한하여 형부인에게 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형부인은 수연을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았는데, 심지어 수연에게 매달 용돈으로 주는 2 량의 은자까지도 남겼다가 그녀의 부모에게 주라고 했기 때문에, 수연은 할 수 없이 전당포에 옷을 전당 잡혀서 대관원大觀院에서 지내는데 나가는 지출을 유지했던 것이다.
나중에 설이마薛姨媽가 수연이 단아하고 침착하고 학문이 있고 예를 잘 지키는 것을 보고, 가모賈母에게 중매를 부탁하여 그녀를 설과에게 시집보냈다.
보채는 보옥에게 설명했다:
“서방님은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희 집 친척이 별로 없어서 고작 여기 있는 저희 식구와 왕王씨 댁이 가장 가까워요. 왕씨네는 별로 바른 사람이 없어요. 우리 집에서 할머님 초상이 났지만, 어떻게 청하겠어요? 그래서 가련賈璉 시아주버님 혼자 애를 쓰며 장례를 치렀잖아요. 다른 친척이 한두 집 왔지만, 서방님이 가서 만나지 않았으니, 어떻게 아시겠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둘째 올케도 팔자가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둘째 오빠에게 좋은 혼처가 정해졌을 때, 친정어머님께선 처음부터 혼례를 성대하게 하려고 잔뜩 마음먹고 계셨지만, 뜻한 대로 되지 못했어요. 첫째는 큰오빠 설반薛蟠이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작은 오빠가 요란하게 혼인을 치르는 것을 적극 반대했고요. 두 번째로는 이 댁 일 때문에도 그랬고요. 세 번째로는 둘째 올케가 큰 마님 댁에서 고생하며 지내고 있던 중에 집안이 몰수를 당한데다가 큰 마님께서 모질게 대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댁에 눌러 있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머님께 아쉬운 대로 간소하게 혼례를 올리자고 말씀드렸던 거지요. 제가 보기에 둘째 올케는 지금 만족해하고 있고, 저희 어머님께도 극진하게 효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 친 며느리보다도 열배나 나은 걸요. 작은 오빠에게도 아내의 도리를 다 잘하고 있고요. 향릉香菱이 하고도 매우 잘 지내고 있어요. 작은 오빠가 집에 없을 때면, 그 두 사람은 더욱 화기애애하게 지낸다고 해요.”
홍루몽이야기
어찌하여 『홍루몽紅樓夢』을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나?
『홍루몽紅樓夢』은 중국 봉건사회의 한 면을 비추는 거울인데, 그러나 이것은 역사 교과서는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면전에 한 무리의 사람과 그 사람들이 생활하던 시대를 전형적인 문학의 형상으로 빼다 박은 듯이 보여준다.
바로 이런 인물들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과 희로애락에 무수한 독자가 깊숙이 빠져들어, 각기 독자의 심령에 깊은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홍루몽』은 봉건사회의 본질을 심각하게 제시해서, 바로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한 이 인물 군상들을 보여주고 나타내고 있는데, 문학적인 형상미가 물과 젖처럼 같이 잘 융합되어 있다.
다른 의도를 품지 않는 한,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오진효烏進孝가 작성하여 제출한 세금 명세서에서 봉건지주가 매년 농민에게서 얼마나 착취하는 지를 다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듬해에 산동山東 지역으로 가서 떠돌이 도적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건륭乾隆 연간에 일어난 몇 차례의 농민봉기를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이런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청사고淸史稿』를 읽어 보면 되는데, 『홍루몽』의 범위 안에서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닐까?
『홍루몽』의 창작에는 작가의 평생과 경력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그러나 이것은 조설근曹雪芹의 자서전은 아니다. 모든 성공한 문학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생활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고, 중요한 인물형상의 신상에다 작가 자신의 이상을 기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 남자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을 조설근으로 보고 창작하고, 책 중의 어떤 사람을 가부賈府의 어떤 사람으로 본다는 것은, 바로 『홍루몽』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의 사회적 내용이 풍부하게 잠재되어 있는 문학 거작을 절하하여 한 사사로운 가정의 자서전으로 한다는 것은, 『홍루몽』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홍루몽』은 거대한 예술적인 감염력으로 성공한 한 작품인데, 중국문학사상 아직까지 한 문학작품이 독자의 정신세계에 이와 같이 강렬한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 모든 독자는 이 책의 인물을 알고 나면 모두 책에 나오는 인물의 운명에 깊은 영향을 받아, 같이 살고 같이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데, 그렇지만 반드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들어간다는 것은, 물론 『홍루몽』의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한다는 것을 가리킨 것인데, 조설근의 글재주를 충분히 체험하여 문장의 기복이나 변화와 붓의 놀림새의 힘을 작중인물의 찡그림과 웃음에서 감지하게 된다. 문학미란 종종 자세하고 미세한 곳에서 탁자를 치며 훌륭하다고 소리치는 것이어서, 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체험할 수가 있겠는가?
소위 나온다는 것은, 바로 책 중에 표현한 모든 남녀의 정에 판단력을 잃고 휘감겨 빠지게 되지 말라는 말이다. 청대淸代의 어떤 상인의 딸은 『홍루몽』을 읽고 미혹되어, 결국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는데, 그녀의 부모가 책을 불살라 버리니, 그녀는 침상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나의 보옥을 어찌 불에 태워 죽일 수가 있나요!”
이것이 바로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비록 이렇게까지 미혹되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홍루몽』은 반드시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할 것이고, 들어가서는 나올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홍루몽이야기
통행본通行本의 후後40회回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1971년에 정갑본程甲本 『홍루몽紅樓夢』이 120회의 모습으로 세상에 출현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전前80회回와 후後40회回에 대해 차별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후40회는 조설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은 속서續書(심지어는 거짓의 저열한 속서까지도 있다)라고 이미 보편적인 인정을 얻은 바 있다. 그런데도 『홍루몽』은 여전히 후40회를 내던져버리고 독립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첫째로는, 응당 그것의 역사적 작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0년 동안 줄곧 사람들은 『홍루몽』을 언급해왔는데, 소설 전체가 80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으니, 후40회가 이미 역사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당시 120회본 『홍루몽』이 나오자, 80회본은 파묻혀서 알려지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이것은 독자가 전체를 보고 빨리 감상하고자 하는 심리에 영합한 것만은 아닌데, 그래도 속서에는 원서原書의 비극적인 분위기와 비극적인 결말을 보존했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과는 관계 없이, 각종 속서의 대단원의 결말을 비교하여 볼 때, 고악高鶚(혹은 장악張鶚, 이악李鶚, 이하동문)이 지은 후40회에는 광채光彩나는 일면이 있다.
모름지기 그때에는 몇 백 명의 필사가筆寫家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안건이 거의 매년 있던 시대여서, 필사가는 용기를 가지고 책을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게 되는데, 오늘날 그가 쓴 것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입을 열어 비평하면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을 쓴 노신魯迅은 비록 『홍루몽』속서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가부賈府가 결국은 좋은 자손들이 함께 가업을 다시 일으키려고 한 것은, 망망茫茫한 하얀 대지가 되어 아주 깨끗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후40회는 비록 횟수는 전80회의 절반에 불과하나,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퇴락으로 인해 사망이 잇달아서, 소위 말하는 ‘먹기를 다한 새가 날아가 버려 하얀 대지만 남았다’(食盡鳥飛獨存白地)에 자못 들어맞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노신은 비교적 냉정하게 의견을 표현했다.
두 번째는, 마땅히 그것의 존재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악의 속서는 확실히 잘 지은 것은 아닌데, 격조와 필체 역시 전80회와 비교하면, 이상하게 그것은 걸핏하면 흉사凶事가 발생해서 상당한 물의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정에 뛰어난 딸이 있으면 또 못난 남동생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부모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인 것이다.
현재 『홍루몽』의 독자讀者 면전에 바로 이러한 못난 남동생이 있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대개는 그래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누나처럼 준수한 남동생이 될 수만 있다면 물론 좋지만, 그런데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유평兪平은 훨씬 전에 속서의 불가능을 지적했는데, 현대사회의 사상적 감정과 현대인의 언어습관으로 조설근의 소설을 쓴다면, 그 맛은 팔고문八股文(명·청 시대에서 과거의 답안으로 채택된 특별한 형식의 문체)과 같아서 과거시험장에서 쓰던 성현들의 훌륭한 말씀과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40회를 떼어버리고, 조설근의 전80회만 단독으로 존재하게 한다면, 아마도 안 될 것이다. 원인은 매우 간단한데, 독자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후40회를 진정한 속서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40회가 조설근曹雪芹의 원고가 아닌 바에야, 우리는 그것을 분할하여 속서로서 취급해야 할 것이지만, 다만 그것이 속서 중에서는 비교적 좋은 종류의 하나라는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후40회 그것이 어떻게 허위인 지를 지적하여 지워버리고, 또 전80회의 곳곳을 들춰내라고 요구하여, 조설근의 원저原著와 어떻게 부합되지 않는 지를 요구했는데, 기실 하기 어려운 것이 속서인 것이다.
문학창작이란 작가가 문학적인 언어와 문학의 형식으로 그 작가의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과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때로는 시기와 공간이 같아도, 작가의 생활에 대한 느낌은 같을 수가 없고, 더욱이 다른 작가일 때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고악이 계속 이어서 쓴 『홍루몽』은 다만 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홍루몽』이어서, 조설근의 것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조설근의 원래의 의도가 어떠어떠하다는 그런 말은 오로지 주해註解에나 쓸 수 있는 것이고, 문학작품 속에는 넣기 어려운 것이다. 설사 조설근이 고악과 당면하여 그가 전80회 이후에 대해 어떻게 구상을 했다고 자신의 창작의 대강을 고악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고 해도, 고악이 써서 내놓은 것은 여전히 고악 자신의 『홍루몽』인 것이다. 그래서 후40회를 완전히 고악의 속서續書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 가운데서 고악의 사상과 문학적 표현 능력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총체적인 의견은, 속서가 이왕에 존재하니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그것을 속서로 대우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모든 사람의 찬동贊同을 받을수는 없을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치심망상癡心妄想(허황된 망상을 하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如此看來,人生緣分都有一定,在那未到頭時,大家都是癡心妄想. (第一百一十三回)
[해석문]
이렇게 보면, 인생은 연분이 반드시 있는데, 그 연분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때는, 모두가 허황된 망상을 하기 마련이다. (제 113회)
[명언고사]
임대옥林黛玉이 죽은 뒤, 시녀 자견紫鵑은 보옥寶玉의 거처로 옮겼다. 이날 보옥은 자견에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려고 찾았는데, 보채寶釵의 시녀 사월麝月이 데려가고 없었다.
보옥의 부름을 받은 자견은 마음이 더욱 복잡하여 내내 한밤을 울며 지새웠다.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하고 앞날을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보옥 서방님의 혼사婚事는 병중에 있어서 도련님은 분명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어른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농간을 부려서 혼사를 치렀을 것이다. 나중에 이를 안 서방님은 다 나았던 병이 재발하게 되었고, 그래서 걸핏하면 울면서 대옥 아가씨 생각을 하셨으니, 그렇다면 서방님은 절대로 정을 잊거나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오늘 이렇게 하소연하시는 것을 보니, 내 심정도 점점 더 괴롭구나. 다만 가엾은 우리 임林 아가씨만 그 분과 함께 평생을 지낼 복이 정말로 없는 모양인가 보다. 그런 걸 보면, 인생에는 반드시 연분이 있는가보다.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모두가 허황된 망상을 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 그 어리벙벙한 사람은 몰랐을 지도 모르는데, 비록 정이 깊고 의기가 중한 사람이지만 바람이 불거나 달 밝은 밤에 눈물을 흘리거나 감상에 젖어 슬퍼하는 것이 고작이겠지. 가엾게도 죽은 사람은 알 리가 없고, 산 사람은 비애에 젖어 고뇌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결국은 우리는 생각이나 감정이 없는 초목이나 돌덩이보다도 못하구나. 그것들은 오히려 마음에 아무런 짓누름이 없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자견은 쓰라림으로 뜨거웠던 마음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그녀는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나중에 깨끗하게 가석춘賈惜春을 따라 출가하여, 평생을 석춘을 시중들며 지냈다.
『홍루몽紅樓夢』 통행본通行本의 후後40회回는 누가 썼을까? 홍루몽이야기
조설근曹雪芹의 원저原著 『홍루몽紅樓夢』은 전前80회回만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현재 120회의 통행본通行本 『홍루몽』의 후後40회回는 누가 지은 것일까? 『홍루몽』과 관련한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2 가지 이상의 다른 견해가 있다.
가장 일찍이 120회의 『홍루몽紅樓夢』을 간행한 정위원程偉元과 고악高鶚 등과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홍루몽』) 중에 있는 후後40회回는 오랫동안 집액성구集腋成裘(백여우의 겨드랑이 가죽을 모아 갖옷을 만들다/ 태끌 모아 태산/ 여러 사람이 협력하면 큰일도 할 수 있다)하여 된 것으로, 원 작가 조설근曹雪芹이 쓴 본래의 원고를 더욱 고려했다. 전후를 대조하여, 조금 수정하고 편집하여서 내용을 잇는 데에 모순이 없게 했다. 그 원문은 함부로 고치려고 하지 않아서, 좋은 책이 될 수 있게 더욱 힘써서 그 본래의 진면목을 잃지 않도록 진력했다.”
그들의 말에 의거하면, 『홍루몽』에는 이미 120회의 회목이 있는데, 그 안에는 후40회 원고도 있어서, 그들은 다만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홍학파新紅學派 호적胡適과 유평백俞平伯 등은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연구를 거쳐서, 후後40회回와 전前80회回는 내용과 문체상에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많은 내용과 인물들의 결말이 조설근의 뜻과는 부합하지 않아서 후40회는 속서續書로, 속서를 만든 사람은 바로 고악인데, 고악의 처형 장문도張問陶의 문자文字를 증명으로 삼았다.
“전기傳奇『홍루몽』의 전前80회回 이후는, 구란서俱蘭墅가 모두 보충한 것이다.” 이런 설법說法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권위성이 아직도 있어, 1982년 인민문학출판사의 신교본新校本 『홍루몽』에는 여전히 작자를 “조설근曹雪芹, 고악高鶚 저著”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의 의견도 있다. 한 가지 의견은, 책을 속서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고악이 지은 것이 아니고, 어떤 이익을 꾀하려는 사람이 지어서 정위원을 속였다는 것이다. 건륭황제乾隆皇帝 때의 사람 유서裕瑞가 편찬한 『조창한필棗窓閑筆』에 이런 의견을 발표한 적이 있다.
“此書由來非世間完物也,而偉元臆見,謂世間當必有全本者在,無處不留心搜求,遂有聞故生心思謨利者,僞續四十回,同原八十回抄成一部,用以紿人,偉元遂獲贋鼎于鼓擔.”
(이 책은 세간世間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고, 정위원의 주관적인 견해로 한 것인데, 세간에는 필히 전본자全本者가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써서 여러 곳을 잘 찾아보지도 않고서, 이런 소문을 들고 이익을 꾀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가 허위로 속續40회回를 지어서, 원본 전前80회와 합쳐 책 한 벌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여서 보게 한 것으로, 정위원은 가짜를 가지고 앞장서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의 홍학연구자들은 비록 정위원이 기만당했다는 설을 그다지 믿지 않는데, 그러나 후40회가 고악이 저술자라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그 중요한 근거로는 정위원이 먼저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서, 사회에서는 이미 후40회 속서續書가 유행하고 있었고, 현존하는 초본抄本 『홍루몽고紅樓夢稿』는 바로 그중의 하나이다.
유서도 “모든 소장가의 필사본 전前80회回의 80회 뒤의 목록을 비교해 보면, 대동소이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위원이 서문序文에서 “책에 이미 120회의 차례가 있는데, 어찌 완벽하지 않은가”라고 말한 설법說法도 근거가 있어서, 결코 반드시 가짜를 만든 것은 아닌데, 정위원과 고악 두 사람은 단지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충하고”, “보유補遺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의 의견으로는, 조설근의 그 유고遺稿 안에는 확실히 후40회가 있었는데, 다만 훼손이 아주 심하여, 고악이나 혹은 기타의 사람이 비교적 크게 다듬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요 근거로는 후40회에는 전80회와 다른 부분이 뚜렷하게 많이 있지만, 만약에 위작僞作을 했다면, 위작자僞作者는 이런 다른 부분을 없애고 진품처럼 만들어야 마땅할 것인데, 지금까지 모두 그것들이 변함없다는 것은 유고가 바로 이와 같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수정자修訂者는 다만 연결하는 보수補修 작용을 한 것이고, 그래서 채 끝내지 못한 원고의 본래의 면목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설법을 종합하여 보면, 이런 결론을 얻을 수가 있다: 후後40회回는 전前80회回와 차이가 비교적 큰데, 여기에는 조설근의 유고가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그 중요한 것은 다른 한 사람의 사상적 면모와 문학적 교양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고악일 것이다. 유력한 증거 없이 후40회의 작가가 누구이냐를 증명하기 전에, 일반 독자는 그를 고악高鶚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인데, 그는 장악張鶚이 될 수도 있고 이악李鶚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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