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篇---綜合文學

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주《산해경》서<注山海經序>

一字師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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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주《산해경》서<注山海經序>

 
 

주《산해경》서<注山海經序>

궈푸郭璞[1]

【原文】

世之覽《山海經》[2]者,皆以其閎誕迂夸[3],多奇怪俶儅[4]之言,莫不疑焉。

嘗試論之曰:莊生有云:󰡒人之所知,莫若其所不知。5)[5]󰡓吾于《山海經》見之矣。夫以宇宙之廖廓[6],群生[7]之紛紜,陰陽[8]之煦蒸[9],萬殊[10]之區分,精氣[11]渾淆[12],自相濆薄[13],游魂靈怪,觸象而構,流形[14]于山川,麗狀[15]于木石者,惡可勝言乎?然則總其所以乖[16],鼓[17]之于一響,成其所以變,混之于一象。世之所謂異,未知其所以異,世之所謂不異,未知其所以不異。何者?物不自異,待我以後異,異果在我,非物異也。故胡人[18]見布而疑黂[19],越人[20]見罽[21]而駭毳[22]。夫玩所習見,而奇所希聞,此人情之常蔽也。今略擧可以明之者,陽火[23]出于氷水,陰鼠[24]生于炎山[25],以俗之論者,莫之或怪,及談《山海經》所載而咸怪之,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不怪所可怪,則幾于無怪矣。怪所不可怪,則未始有可怪也。夫能然所不可,不可所不可然,則理無不然矣。案《汲郡竹書》[26]及《穆天子傳》:穆王西征,見西王母[27],執璧帛之好,獻錦組之屬[28]。穆王享王母于瑤池[29]之上,賦詩往來,辭義可觀。遂襲昆侖之丘,游軒轅之宮[30],眺鍾山[31]之岭,玩帝者之寶,勒石王母之山,紀迹元圃之上[32]。乃取其嘉木艶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金膏銀燭[33]之寶,歸而殖養之于中國。穆王駕八駿[34]之乘,右服[35]盜驪,左驂[36]騄耳,造父爲御,奔戎[37]爲右,萬里長騖,以周覽四荒[38],名山大川,靡不登濟,東升大人[39]之堂,西燕王母之廬,南轢[40]黿鼉[41]之梁[42],北躡積羽[43]之衢,窮歡極娛,然後旋歸。案《史記》說[44]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使造父御之,以西巡狩,見西王母,樂而忘歸。亦與《竹書》同。《左傳》曰[45]:󰡒穆王欲肆其心,使天下皆有車轍馬迹焉。󰡓《竹書》所載,則是其事也。而譙周[46]之徒,足爲通識瑰儒[47],而雅不平此,驗之《史考》以著其妄。司馬遷叙《大宛傳》[48]亦云:󰡒自張騫[49]使大夏之後,窮河源[50],惡賭所謂昆侖者乎?至《禹本紀》[51]。《山海經》所有怪物,余不敢言也。󰡓不亦悲乎!若《竹書》不潛出于千載,以作徵于今日者,則《山海》之言其幾乎廢矣。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52],劉子政辨盜械之尸[53],王頎[54]訪兩面之客[55],海民獲長臂之衣[56],精驗潛效[57],絶代[58]懸符[59],于戱,群惑者其可以少寤[60]乎?是故聖皇原化[61]以極變[62],象物[63]以應怪[64],鑒無滯[65][66],曲盡幽情,神焉瘦哉[67],神焉瘦哉!

蓋此書跨世七代[68],歷載三千,雖暫顯于漢,而尋[69]亦寢廢[70],其山川名號所在,多有舛[71]謬,與今不同,師訓[72]莫傳,遂將湮泯[73],道之所存,俗之所喪,悲夫!余有惧焉,故爲之創傳,疏其壅閡[74],闢其茀蕪[75],領其玄致[76],標其洞涉[77],庶幾令逸文[78]不墜于世,奇言不絶于今,夏后[79]之迹靡刊[80]于將來,八荒之事,有聞于後裔,不亦可乎!夫蘙薈[81]之翔,叵以論垂天之凌;蹄涔[82]之游,無以知絳虯[83]之騰;鈞天[84]之庭,豈伶人[85]之所躡[86];無航之津[87],其蒼兕[88]之所涉。非天下之至通[89],難與言《山海》之義矣。于戱,達觀博物之客,其鑒之哉!

 

【우리말 옮김】

  세상에서 《산해경山海經》을 읽는 자들은 모두 그것이 황당하고 과장되었으며, 기괴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 많다고 여겼기에 이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 시험 삼아 논해 보건대, 장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은 그가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라고 하였으니, 나는 《산해경山海經》에서 그러한 사실을 보게 된다. 대저 우주의 공활함과 뭇 사물들의 다양함, 음양의 오묘한 조화, 갖가지 사물들이 서로 나뉘고, 정기가 뒤섞여 서로 요동치매, 떠도는 영혼과 영험한 요괴가 만물과 접촉함으로써 형체를 이루어 산천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고, 목석으로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로 연주되고, 변화하는 것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으로 뒤섞이는 것이다.

 

  이른바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 기이한 까닭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도 그 기이하지 않은 까닭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사물 자체는 기이한 것이 아닌데, 바라보는 주체인 나를 거친 뒤에 기이하게 되는 것이니, 기이하다고 여기는 것은 과연 나라는 주체에 달린 것이지 사물 자체가 기이한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호인들은 무명포를 보고서 삼베라 의심하고, 월인들은 모직물을 보고서 짐승의 털이라고 놀란다. 대저 익숙하게 보던 바는 좋아하고, 드물게 듣는 바는 기이하게 여기는 법이니, 이것은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폐단이다. 지금 잠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양화가 얼음물에서 나오고 음서가 염산에서 자란다고 하는 것[90]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면 혹 괴이하게 여기지 않던 것도 《산해경山海經》에 실린 것을 언급할 때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그것을 괴이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괴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괴이하다고 하지 않고, 괴이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다. 괴이하다고 할 만한 것을 괴이하지 않게 여기는 것은 거의 괴이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고, 괴이하다고 할 만하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애당초부터 괴이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저 옳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고,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면 이치에 그렇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생각해 보건대 《급군죽서》 및 《목천자전》에서는, 목왕이 서쪽으로 가서 시왕무西王母를 만나는데, 벽옥과 비단 등의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비단으로 된 띠와 같은 것을 바쳤다고 하였다. 목왕이 요지 가에서 시왕무와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지어 주고받았는데, 그 말뜻에 볼 만한 것이 있었다. 드디어 쿤룬의 언덕에 올라 헌원씨의 궁전에서 노닐고, 중산鍾山의 준령을 바라보며, 천제의 보물을 즐기고 시왕무의 산 돌에 글을 새기고 현포 위에 자취를 남기었다. 이에 그 아름다운 나무와 풀, 기이한 새와 괴상한 짐승, 옥돌과 진귀한 기물, 금고와 은촉의 보물을 취하여 돌아와 중국에 심어서 길렀다. 목왕은 여덟 마리 준마가 끄는 수레에 탔는데, 우복右服에 도려盜驪、좌참左驂에 녹이騄耳를 두었으며, 짜오푸造父를 마부로 삼고 번룽奔戎은 그를 보좌케 하여 먼 길을 달렸다. 두루 사방을 살피면서 명산대천을 오르고 건너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동쪽으로는 대인국의 산에 올랐고, 서쪽으로는 시왕무의 집에서 잔치를 열었으며, 남으로는 원타黿鼉를 다리삼아 수레로 건넜고, 북으로는 깃털이 쌓인 거리를 지났으니, 기쁨을 다하고 즐거움을 다한 연후에 돌아왔다.

 

  생각해 보건대 《사기》에서는, 목왕이 도려、녹이、화류 등과 같은 천리마를 얻어, 짜오푸로 하여금 이들을 부리게 하여, 서쪽으로 순행해 시왕무를 만나 즐기느라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고 했는데, 또한 《죽서》에 기록된 것과 같다. 《좌전》에 이르기를, “목왕이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천하의 모든 곳에 수레 자국과 말의 자취를 남겼다”라고 했는데, 《죽서》에 실린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챠오저우譙周와 같은 무리들은 학식이 통달한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이러한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사고》로써 검증함으로써 그 망녕됨을 드러내었다. 쓰마쳰司馬遷이 《대완전》을 서술하면서, 또 말하기를, “장쳰張騫이 대하국에 사신 갔던 이후로 황하의 근원을 탐구했으나, 어디에서 이른바 쿤룬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겠는가?……《우본기》, 《산해경山海經》에 있는 괴물에 대해서는 나는 감히 말할 수 없다“라고 했으니,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만약 《죽서》가 천년동안 감추어졌다가 세상에 나와 오늘날 증거가 되지 않았다면, 《산해경山海經》의 말들은 아마 거의 없어졌을 것이다. 둥팡숴東方朔가 필방畢方의 이름을 알아 맞추고, 류샹劉向이 도계시盜械尸를 식별해내고, 왕치王頎가 양면객을 방문하고, 어부들이 장비인의 옷을 획득한 것 같은 일들은 자세히 찾아보면 암암리에 부합되고 시대가 격절되었어도 부절을 맞춘 듯 합치될 것이다. 아아! 여러 의혹을 품은 자들이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성스러운 황제께서 사물의 변화를 탐구하여 그 변화를 다하게 하였고,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림으로써 괴이한 것에 대응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이 귀감이 되어 심오한 이치가 막혀 있지 않게 되었고, 그윽한 감정이 모두 드러나게 되었으니, 신묘함을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신묘함을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책은 7대의 세상을 뛰어 넘어, 삼천 년을 거쳐 비록 한대에 잠시 드러났다고 하나 얼마 안 있어 또다시 사람들에게서 버려졌다. 그 산천의 이름과 소재는 현재와 많이 어긋나고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앞선 시대의 학자들의 해석도 전해지지 않아 마침내 인멸되려 한다. 도를 담고 있는 것이 세속에서 없어져 버리다니, 슬프도다! 내가 그것을 두려워 한 까닭에 여기에 주석을 달아 그 막힌 것을 소통하게 하며 가려진 것을 열어 그 현묘한 이치를 깨닫게 하며 그 심오한 부분까지 드러내어 뛰어난 글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게 하고 기이한 말이 오늘날에 끊이지 않아 위禹 임금의 자취가 후세에까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노니, 사방팔방의 일들이 후세들에 들려지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겠는가? 대저 나지막한 수풀을 날아다니는 존재로는 하늘에 드리운 뛰어난 기상을 논할 수 없고, 짐승의 발자국에 괸 물에서 노니는 존재로는 붉은 용이 하늘을 오르는 것을 논할 수 없으니, 천제의 뜰에 어찌 일반 악공들이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며, 배를 댈 수 없는 나루터를 어찌 평범한 뱃사공 따위가 건너겠는가. 천하에서 지극히 통달한 이가 아니면 더불어 《산해경山海經》의 뜻을 논하기 힘들 것이다. 아아, 만물에 달통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볼 것이로다.

 

【해설】

  중국 소설의 발전 과정에서 고대의 신화, 전설은 최초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신화라도 모두 상상력을 사용하고, 상상력을 빌어 자연력을 정복하고 자연력을 지배하며, 자연력을 형상화한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 서언》)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크게 거짓되고 과장되었으며, 기괴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말이 많다其閎誕迂夸, 多奇怪俶儅之言”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사람들이 회의를 품는 것을 당연하다. 쿵쯔는 “괴이한 것과 힘센 것, 어지러움과 귀신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고 했고, 쓰마쳰司馬遷도 “《우본기》, 《산해경》의 괴물에 대해서 나는 감히 말할 수 없다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也”고 하였다. 이런 것을 볼 때, 신화, 전설에 존재하는 가치가 지켜지려면, 반드시 이것들이 묘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 ‘괴이’한 것들에 대해 해석과 비평을 해야 한다.

 

  궈푸郭璞의 이 서문의 중심은 곧 “사물 자체가 기이한 것은 아니다物不自異”, “괴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괴이하다고 하지 않는다不怪所可怪”는 말을 반복적으로 논증하는 데 있다. 그는 신화, 전설 속의 유치한 환상과 극도의 과장을 모두 진실한 기록으로 간주하였는데, 이것은 확실히 비과학적인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신화, 전설의 특징을 지적해냈고, 아울러 이 글의 “뛰어난 글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게 하고 기이한 말이 오늘날에 끊이지 않게 하기를逸文不墜于世, 奇言不絶于今” 희망했는데, 이것은 여전히 우리가 중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석]

[1]  궈푸郭璞(276-324년)의 자字는 징춘景純이고, 허둥河東 원시聞喜(지금의 산시 성山西省에 속함) 사람이다. 동진東晉 초에 저작좌랑著作佐郞이 되었고, 뒤에 왕둔王敦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을 맡아 보았는데, 나중에 왕둔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의 학식은 깊고 넓었으며, 시부詩賦를 잘했다. 《유선시游仙詩》, 《강부江賦》로써 이름이 전한다. 고문古文과 기이한 글자를 좋아하여, 일찍이 《이아爾雅》, 《초사楚辭》, 《목천자전穆天子傳》, 《산해경山海經》 등의 책에 주석을 달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중시하였다. 《산해경》의 현존본은 18권으로 작자는 알 수 없다. 원래는 선진시대先秦時代에 나왔는데, 진한시대秦漢時代에 다시 증보되었고, 고대 각지의 산천山川이나 도리道里, 부족部族, 생산물 등이 기술되어 있으며, 기이한 사물과 신기하고 영험하며 괴이한 것들이 많이 실려 있어, 고대의 신화전설이 보존되어 있다.

[2]  《산해경》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정재서 역주, 《산해경》, 민음사, 1996.
예태일,전발평 편저(서경호,김영지 공역), 《산해경》, 안티쿠스, 2008.
마창의 저(조현주 역), 《고본 산해경 도설古本山海經圖說》(전2권), 다른생각, 2013.
임동석 역, 《산해경》(전3권), 동서문화사, 2011.
박일봉 편역, 《산해경》, 육문사, 1995.
최형주 역, 《산해경》, 자유문고, 1996.
장수철 역, 《산해경》, 현암사, 2005.
이중재 역, 《산해경》(상.하), 아세아문화사, 2000.
그리고 연구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서경호 《산해경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3]  굉탄우과閎誕迂夸, 실제와 몹시 들어맞지 않는 크게 과장된 말.

[4]  숙당俶儻, ‘척당倜儻’과 같으며, 탁월하고 비범함.

[5]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편을 참고할 것.

[6]  요확寥廓, 텅비고 넓음.

[7]  군생群生은 중생衆生이라는 말과 같다. 모든 생물을 가리킴.

[8]  음양陰陽, 원래는 해를 등진 것을 음陰이라 하고, 해를 향한 것을 양陽이라 한다. 여기에서의 음양은 자연계의 두 가지 대립적인 물질세력과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자연현상의 변화를 가리킨다.

[9]  후증煦蒸, 화기롭게 흥성하는 모양.

[10]  만수萬殊, 여러 가지 다른 사물과 현상.

[11] 정기精氣, 고대인들의 경우에는 천지 만물의 원기元氣를 가리킴.

[12] 혼효渾淆, ‘혼효混淆’와 같으며, 뒤섞여 분명치 않은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원기元氣를 형용하고 있다.

[13] 분박濆薄, ‘분박’은 요동친다는 뜻이다.

[14] 류형流形, 형상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15] 려상麗狀, 형상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16] ‘괴乖’는 가지런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17] 고鼓, 《설문說文》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고는 곽이다. 춘분(봄)의 소리이다鼓, 郭也. 春分之音.”

[18] 호인胡人, 여기에서는 북방의 소수민족을 범칭한다.

[19] 분黂(fen墳)은 거친 삼베亂麻를 가리킨다. 《회남자淮南子》<설림說林>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분은 베와 같지는 않으나, 베를 만들 수 있다.黂不類布, 而可以爲布.”

[20] 월인越人, 여기에서는 남방의 쟝시江西나 저쟝浙江 일대의 사람들을 범칭함.

[21] 계罽(ji 計), 일종의 모직물.

[22] 취毳(cui脆), 날짐승의 가는 털.

[23] 양화陽火, 전설 속의 불의 일종.

[24] 음서陰鼠, 전설 속의 쥐의 일종.

[25] 염산炎山, 화염산火焰山을 가리킴.

[26] 급군죽서汲(ji級)郡竹書, 지 군汲郡은 전국시대의 위魏 땅에 속했으며, 관할구역은 지 현(지금의 허난 성河南省에 속함)에 해당한다. 《진서晋書》<무제기武帝紀>에는, 함녕咸寧 5년(279년, 일설에는 태강 원년太康元年, 혹은 2년, 곧 280년이나 281년이라 함), 지 군 사람이 위나라 시대의 묘를 발굴하여, “죽간, 소전, 고서 등 십만 여 언을 얻었다得竹簡小篆古書十萬餘言”는 기록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편년체 역사서가 한 부 있는데, 하夏, 상商, 서주西周, 춘추春秋 때의 진晋나라와 전국시대의 위魏나라의 역사적 사실들이 서술되어 있다. 이것을 《죽서기년竹書紀年》이라 칭하는데, 모두 13편이다. 이 안에는 주 목왕周穆王의 일을 서술한 것이 있다. 또 《목천자전穆天子傳》은 진晋나라 사람들이 위나라 시대의 묘를 발굴하여 얻었는데, 작자는 미상이며, 모두 6권으로 전5권前五卷은 주 목왕이 여덟 준마를 타고 서쪽에서 노닌 이야기를 기술했고, 후1권後一卷은 성지盛姬의 죽음 및 그가 돌아와 장사지낸 것을 싣고 있다. 그 가운데 목왕과 시왕무가 연회에서 화답하는 것과 성지의 사망을 기록한 부분은 소설로서의 의미가 비교적 있는 편이다. 주 목왕은 이름이 만滿이고, 주 소왕周昭王의 아들이다. 《목천자전》에서 낭만주의적으로 묘사된 뒤,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다.

[27] 시왕무西王母, 여기에서는 전설 속의 선녀를 가리킨다.

[28] “집벽백執璧帛” 두 구절에 대해서는 《목천자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천자(목왕)가 시왕무를 방문하였는데, 백홀과 검은 벽옥을 받들고, 시왕무를 알현하였으며, 금조 백 둔과 □조 삼백 둔을 바쳤다.天子賓于西王母, 乃執白圭玄璧以見西王母, 好獻錦組百巡□組三百純.” 백규현벽白圭玄璧에서 ‘규圭’와 ‘벽璧’은 모두 고대의 옥기玉器이다. ‘규’는 긴 막대 모양으로 상단은 삼각형으로 되어 있고, ‘벽璧’은 평평한 원형으로 한가운데 구멍이 있다. ‘현玄’은 검은 색이다. ‘조組’는 허리끈으로 명주로 짠 넓은 허리띠이다. ‘둔純’은 필匹、단段을 뜻한다.

[29] 요지瑤池, 신화 전설 속의 연못 이름으로, 쿤룬산 위에 있는데, 시왕무가 사는 곳이다. 《목천자전》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천자가 요지에서 시왕무에게 술을 권하니, 시왕무는 천자를 위해 노래 불러 읊기를, ‧‧‧‧‧ 천자가 그에 답하였다天子觴西王母于瑤池之上. 西王母爲天子謠, 曰… 天子答之.” ‘상觴(shang傷)’은 술잔이다. 여기에서는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요謠’는 반주 없이 노래하는 것徒歌淸唱이다.

[30] “쿤룬지구昆侖之丘” 두 구절은 《목천자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천자가 쿤룬의 언덕에 올라 황제의 궁을 바라보았다.天子升于昆侖之丘, 以觀黃帝之宮.” ‘쿤룬의 언덕昆侖之丘’는 여기에서는 전설상의 신선이 사는 산을 가리키고, ‘황제의 궁黃帝之宮’은 궈푸郭璞의 주에, “황제(헌원)가 사해를 두루 다니다가 쿤룬산에 올라 그 위에 궁실을 지었다. 《신어》에 보인다.黃帝(號軒轅)巡游四海, 登昆侖山, 起宮室于其上. 見《新語》”라고 하였다.

[31] 중산鐘山, 충산舂山이라고도 하며, 전설에 의하면 이 산에는 진귀한 보물과 기이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32] “륵석勒石” 두 구절은 《목천자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천자가 5일째 되는 날, 충산 위를 바라보고, 셴푸 위에 자취를 새기고, 후세에 알리었다.天子五日觀舂山之上, 乃爲銘迹于縣圃之上, 以詔後世.”라고 실려 있다. 궈푸의 주郭璞注에는, “돌을 조각하여 공덕을 새긴 것을 말한다爲勒石銘功德也”라고 되어 있다. 위안푸元圃 쉬안푸玄圃, 또는 셴푸縣圃이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쿤룬산은 땅에서부터 높이가 일만 일천 리이고, 그 위에 아홉 겹의 층성이 있는데, 혹 그 배가 되는 것을 랑펑이라 하고, 또 그것의 배가 되는 것을 셴푸라 한다昆侖去地一萬一千里, 上有層城九重, 或上倍之, 是爲閬風; 或上倍之, 是謂玄圃”고 하였다.

[33] 금고은촉金膏銀燭, 궈푸의 주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금고는 또한 옥고와 같은 것인데, 모두 정교한 술잔이다. 은촉은 촛불과 같이 밝게 빛나는 은이다.金庫亦猶玉膏, 皆其精汋(通‘酌’)也. 銀燭, 銀有精光如燭.”

[34] 팔준八駿, 전설 속의 주 목왕이 탔다는 여덟 필의 준마로, 적기赤驥、도려盜驪、백의白義、유륜逾輪、산자山子、거황渠黃、화류華騮、록이綠耳(또는 ‘騄耳’, ‘騄駬’라고도 한다)이다.

[35] 우복右服, 일반적으로 중간에 있는 말을 복服이라 한다. 우복은 수레를 끌 때, 중간에서 오른쪽에 있는 말이다.

[36] 좌참左驂, 가장가리에 있는 말을 참驂이라고 한다. 좌참은 수레를 끌 때, 왼쪽 가장자리의 말이다.

[37] 짜오푸造父、번룽奔戎, 모두 전설상의 주 목왕의 마부이다.

[38] 사황四荒, 사황과 아래의 팔황八荒은 모두 사방의 먼 변방 지방을 가리킨다.

[39] 대인大人, 즉 거인巨人이다.. 《산해경山海經》<대황동경大荒東經>에 “‘파곡산’이라는 곳과 대인국이라는 곳이 있다. 이름을 대인당이라고 하는 거인들의 저자가 있다有波谷山者,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大人之堂”는 내용이 있는데, 궈푸의 주에는 “역시 산이름으로 그 형상이 집과 같다. 거인들이 때때로 그 위에 모여 저자를 이룬다亦山名, 形狀如堂室耳. 大人時集會其上作市肆也”라고 하였다.

[40] 력轢, 수레 바퀴가 굴러 지나간다는 뜻이다.

[41] 원타黿鼉(yuantuo元駝), 수중에서 생활하는 배갑背甲 동물로 양자악揚子鰐이라고도 한다.

[42] 량梁, 여기에서는 원타의 등껍질을 말한다. 《죽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37년에 초를 정벌하고 크게 구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구강에 이르러 원타를 호령하여 다리를 만들었다.三十七年, 伐楚, 大起九師, 東至于九江, 叱黿鼉以爲梁.”

[43] 적우積羽, 전설상의 북방의 날짐승의 깃털이 많이 쌓여 있다는 곳. 《목천자전》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시왕무의 나라에서부터 광야 근처에 이르면 날짐승이 깃털을 뽑아 놓는 곳이 있다.自西王母之邦比至于曠原之野, 飛鳥之所解羽.”

[44] 《사기》<조세가趙世家>를 참조할 것.

[45] 《좌전》<소공십이년昭公十二年>을 참조할 것.

[46] 챠오저우譙周, 자는 윈난允南이고, 촉한蜀漢때 관직이 중산대부中山大夫에 이르렀으며, 뒤에 광록대부光綠大夫가 되었다. 진나라 때에는 병으로 관직을 배수 받지 않았다. 일찍이 《법훈法訓》、《오경론五經論》、《고사고古史考》 등을 편찬했다. 《삼국지三國志》<촉지. 초주전蜀志譙周傳>에서는, 쟈오저우는 “옛것에 탐닉하고, 학문이 돈독했으며(耽古篤學)”, “육경을 깊이 연구했고 서찰에 특히 뛰어났다硏精六經, 尤善書札”고 하였다.

[47] 괴유瑰儒, 학문이 박식한 큰 유학자博學宏儒.

[48] 《사기》<대완렬전大宛列傳>을 참고할 것.

[49] 장쳰張騫(?-기원 전 114년). 서한시대 한중漢中의 청구成固(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청구成固) 사람으로, 관직이 대행大行에 이르렀고,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건원建元 2년(기원 전 139년)에 한 무제의 명을 받들어 대월지大月氏에 사신으로 나가 흉노를 협공하기로 서로 약정을 맺고 왔다. 그 사이에 직접 대하국大夏國 등을 돌아보았다. 뒤에 다시 명을 받들어 오손국烏孫國 사신으로 나갔고, 아울러 부사副使를 파견하여 대하국 등에 사신을 보냈다.

[50] 궁하원窮河源, 황하의 근원을 찾아 다닌 것을 말한다.

[51] 우본기禹本紀, 고서의 이름으로, 《열자》<탕문>列子湯問에는 《대우大禹》가 인용되어 있고, 《한서》<예문지>에는 《대우》 37편이 실려 있으며, 왕이王逸의 《이소離騷》 주와 궈푸郭璞의 《산해경》주에는 《우대전禹大傳》이 인용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 책인듯하다.

[52] 동방생효필방지명東方生曉畢方之名,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는 《상서고실尙書故實》을 인용하여, “한 무제때 다리가 하나인 학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여 괴이하게 여겼다. 둥팔숴가 아뢰기를, ‘이것은 《산해경》에서 말하는 필방이라는 새입니다.’라고 했는데, 조사해 보니 과연 옳았다.漢武帝時, 嘗有獨足鶴, 人皆不知, 以爲怪異. 東方朔奏曰, ‘此《山海經》所謂畢方鳥也.’ 驗之果是.”라고 했고, 《산해경》<서산경西山經>에서는 “그 모양이 학과 같은 새가 있는데, 다리가 하나이고 붉은 무늬에 바탕이 푸르고 주둥이가 흰 색으로 이름이 필방이다有鳥焉, 其狀如鶴, 一足, 赤文靑質而白喙, 名曰畢方”라고 하였다.

[53] 유자정변도계지시劉子政辨盜械之尸, 류쯔정劉子政은 류샹劉向을 가리킨다. 샹의 자가 쯔정인 것이다. 《산해경山海經》<해내서경海內西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얼푸의 신하에 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얼푸와 함께 야위를 죽였다. 그래서 천제가 수수산에 묶어 두었는데, 오른발에 족쇄를 채우고 양손과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산 위의 나무에 매어 놓았다. 카이티의 서북쪽에 있다.貳負之臣曰危, 與貳負殺窫窳, 帝乃梏之疏屬之山, 桎其右足, 反縛兩手與髮, 系之山上木, 在開題西北.” 궈푸는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았다. “한나라 선제가 사람을 시켜 상군의 반석을 들어 올리게 했는데, 석실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옷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쳤으며, 묶여 있었고, 한쪽 발에 족쇄를 차고 있었는데, 여러 신하에게 물어도 알지 못했다. 류샹이 이 책에 의거해 말하니 선제가 크게 놀랐다.漢宣帝使人發上郡盤石, 石室中得一人, 徒裸被髮, 反縛, 械一足, 以問群臣, 莫知. 劉向按此言之, 宣帝大驚.”

[54] 왕치王頎, 《삼국지》<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을 참고할 것.

[55] 왕기방량면지객王頎訪兩面之客, 《산해경》<대황서경大荒西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대황의 한가운데, 산이 있는데, 대황산이라 한다.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얼굴이 셋인 사람이 있는데, 좐쉬顓頊의 아들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하나이다.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는다.大荒之中, 有山名曰大荒之山, 日月所入, 有人焉三面, 是顓頊之子, 三面一臂, 三面之人不死.” 궈푸는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았다. “사람의 머리 삼면에 각각 얼굴이 있음을 말한다. 쉬안투 태수 왕치가 옥저국에 이르러 그곳의 노인에게 물으니, ‘다시 한 척의 부서진 배가 물결에 밀려 해안에 이르렀는데, 그 배 위에 한 사람이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 또 얼굴이 있었다. 더불어 말하매 말이 통하지 않았고, 먹지 않아 곧 죽었는데, 이것이 양면인이다.’라고 대답했다.言人頭三邊各有面也, 玄菟太守王頎至沃沮國, 問其耆老云, ‘復有一破船, 隧波出在海岸邊上有一人, 項中復有面, 與語不解了, 不食而死, 此是兩面人也.’”

[56] 해민획장비지의海民獲長臂之衣, 《산해경》<해외남경海外南經>에, “장비국은 그 동쪽에 있는데, 물 속에서 고기를 잡아 양손에 각각 한 마리씩 들고 있다(長臂國, 在其東, 捕魚水中, 兩手各操一魚)”라 했다. 궈푸는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았다. “옛 이야기에 그 사람들의 손이 땅에까지 늘어져 있다고 한다. 위나라 황초 연간에 쉬안투 태수 왕치가 고구려왕의 궁을 토벌하여 끝까지 추격하매, 옥저국을 지나게 되었다. 그 동쪽 끝은 큰 바다에 임하여 해가 뜨는 곳에 가까웠다. 그곳 노인에게, ‘바다 동쪽에도 또 사람이 사는가?’라고 물었더니, ‘일찍이 바다 가운데서 한 벌의 베옷을 얻었는데, 몸 크기는 보통 사람만하나 양쪽 소매의 길이가 세 발이나 되니, 곧 이것은 장비인의 옷이다’라 하였다.舊說云, 其人手下垂至地. 魏黃初中, 玄菟太守王頎討高句麗王宮窮追之, 過沃沮國, 其東界臨大海, 近日之所出, 問其耆老, ‘海東復有人否?’ 云, ‘嘗在海中得一布褐, 身如中人衣, 兩手長三丈, 卽此長臂人衣也.’”

[57] 정험잠효精驗潛效, 자세히 추구하여 암암리에 부합됨.

[58] 절대絶代, 매우 오랜 옛날 시대.

[59] 현부懸符, 아주 오랜 뒤에 효험을 얻음.

[60] 오寤, 오悟와 통함. 깨달음, 이해함.

[61] 원화原化, 사물의 변화를 탐구함.

[62] 극변極變, 사물의 변화를 끝까지 탐구하다.

[63] 상물象物, 구체적으로 각종 사물을 묘사하다.

[64] 응괴應怪, 여기에서는 괴이한 사물을 표현하는 것을 가리킴.

[65] 체滯, 쌓여 머물러 있음.

[66] 색賾, 깊고 현묘함. 이 구절은 거울과 같이 환전히 반영해 내어 무슨 심오하고 밝히기 힘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

[67] 신神은 신기하고 오묘함, 평범한 것과 다르다는 뜻이고, 수瘦는 은닉되어 있다는 뜻이다.

[68] 과세칠대跨世七代,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는 보이伯益가 지은 것이라 한다. 보이는 우임금 때의 사람으로, 왕충王充의 《논형論衡》<별통別通>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임금은 물을 다스리는 것을 책임지고, 보이는 기이한 사물을 기록하는 일을 책임졌다. 바다 밖、산 바깥의 먼곳까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었고, 듣고 본 바로써 《산해경》을 지었다.禹主行水, 益主記奇物, 海外山表, 無所不至, 以所見聞作《山海經》.”

[69] 심尋, 오래지 않아 곧.

[70] 침폐寢廢, 차츰 사람들에 의해 버려지고 중시되지 않다.

[71] 천舛(chuan喘), 잘못되고 이지러짐.

[72] 사훈師訓, 선인들의 설명.

[73] 인민湮泯, 매몰되다. 닳아 없어지다.

[74] 옹애壅閡, 막히다, 저애하다.

[75] 불무茀蕪, 길을 막는 들풀.

[76] 현치玄致, 정미하고 오묘한 곳.

[77] 통섭洞涉, 깊이있고 투철하다고 할 만한 점.

[78] 일문逸文, 보통 문장과 다름.

[79] 하후夏后, 하우夏禹를 지칭함. 궈푸 주에 인용된 《개서開筮》 등에 보인다.

[80] 미靡는 불不과 같고, 간刊은 깎여 없어지는 것으로, 인신引申하여 흩어 없어진다는 뜻.

[81] 예회蘙薈, 초목이 무성한 모양.

[82] 제잠蹄涔, 잠涔은 빗물. 짐승의 발자국에 고인 물, 물의 수량이 극히 작음을 형용한다.

[83] 강규絳虯, 강색絳色(주홍색)의 룡, 양슝揚雄의 《해난解難》에서는, “저 비취색 용과 붉은 용이 장차 저 하늘에 올라 창오의 못에서 반드시 몸을 솟구치는 것을 홀로 보지 못했는가獨不見夫翠虯絳螭之將登夫天, 必聳身于蒼梧之淵”라고 하였다.

[84] 균천鈞天, 하늘의 중앙, 상제의 궁. 《사기》<조세가趙世家>에, “자오졘쯔……깨어나 대부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황제가 몹시 즐거워하였고, 여러 신들과 균천에서 노니는데, 매우 즐거웠으며, 아홉 가지 음악이 연주되고, 만 가지 춤을 추었는데, 삼대의 음악과 비슷하지 않았으나,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라고 하였다.(趙簡子……寤, 語大夫曰; ‘我之帝所其樂與百臣游于鈞天廣樂, 九奏萬舞, 不類三代之樂, 甚聲動人心”라고 기록되어 있다.

[85] 영인伶人, 고대 악공에 대한 지칭.

[86] 채踩, 답踏과 같다. 이 구절의 뜻은 상제의 궁은 춤추고 노래하는 일반 예능인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

[87] 무항지진無航之津, 배가 없는 나루터. 여기에서는 멍진孟津(지금의 허난 성 멍 현河南省孟縣 남쪽으로 옛날 황하진도黃河津渡의 이름)을 가리킴.

[88] 창시蒼兕, 전설에 나오는 괴물 이름. 《논형論衡》<시응是應>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상보가 주나라 사마가 되어 병사를 이끌고 주를 정벌하러 가는데, 멍진 가에 이르러 도끼를 들고 깃발을 잡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창시다, 창시! 창시라고 하는 것은 물속에 사는 짐승으로, 사람들의 배를 잘 뒤집는다. 신기한 조화를 부려 급히 물을 건너려 하면 급히 가지 못하게 하려고 창시가 너희를 해칠 것이다.師尙父爲周司馬, 將師伐周, 到孟津之上, 杖鉞把旄, 呼其衆曰: ’蒼兕蒼兕, 蒼兕者, 水中之獸也, 善覆人船, 因神以化, 欲令急渡, 不急渡, 蒼兕害汝.”

[89] 지통至通, 사리에 가장 통달한 사람.

[90] 《신이경神異經》<남황경南荒經>의 「화서火鼠」 조목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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