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해서의 석상)
제2회 관을 메고 직간하다
가정(嘉靖)제는 벌써 수십 년 동안이나 조정에 나가지 않고 서원(西苑)에서 단약을 조제하며 복을 기원하고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나라관리를 청사(靑詞)를 잘 쓰는 엄송(嚴崇)에게 맡겼다. 청사란 도교(道敎)에서 신에 제사를 지낼 때 읽는 제문을 말한다. 이런 제문은 주필(朱筆)로 청색의 등지(藤紙)에 쓴다고 해서 이름이 청사이다. 간신 엄숭은 바로 청사를 잘 쓰는 것으로 인해 가정제의 중용을 받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수보대신(首輔大臣)이 되었다. 명 나라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이 재상(宰相)직을 두지 않았지만 명 왕조에서는 수보대신이 사실상 재상이었다. 명 왕조 가정제와 융경(隆慶)제 때 사람들로부터 ‘청사재상(靑詞宰相)’이라 불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오랫동안 왕위를 지켜온 가정제에 이어 융경제도 ‘청사재상’ 서계(西階)를 중용했기 때문이다.
엄숭부자가 국정을 장악하면서 명 왕조의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덮이고 명 왕조의 조정도 암담하기 그지 없었다. 지방관리들은 무슨 가화(嘉禾)니 무슨 서수(瑞獸)니 하면서 온갖 상서로운 물건들을 찾아 황제에게 진상품으로 바치느라 갖은 애를 다 썼다. 심지어 껍데기에 글자를 새긴 거북이를 진상하는 관리도 있었다. 조정의 예관(禮官)은 이 기회에 현명한 군주라고 황제에게 아부하는 표를 올리기도 했다. 간신들의 꼬임에 든 가정제는 기분이 붕 떠서 자신이 정말로 성인군자이고 속세에 내려온 신선이라고 생각하며 우쭐거렸다. 태복경(太仆卿) 양최(楊最)와 어사 양작(楊爵)이 단약을 미신하지 말라고 황제에게 간언한 것으로 인해 죄를 받자 그 후에는 감히 단약의 피해를 밝히며 황제에게 직간하는 대신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 45년(1566년) 2월 가정제는 한 상소(上疏)문을 읽고 자신의 두 눈을 믿지 않았으며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 <직언천하제일사소(直言天下第一事疏)>라는 제목의 그 상소문은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직언은 이 세상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일로 현명한 군주가 지켜야 하는 이치이자 좋은 신하가 해야 하는 직분이며 만세평안을 위한 일입니다’라고 썼다. 이어 상소문은 가정제를 역대의 황제들과 일일이 비교하고 나서 ‘폐하께서 조정을 돌보지 않으시고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가리지 않으시며 상과 벌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시어 문관은 돈을 좋아하고 무관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가뭄과 홍수가 시도 때도 없이 닥치며 도적이 창궐함에도 폐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십니다’라고 예리하게 지적했다. 상소문은 또 지금 과세가 날로 가중되고 불교와 도교를 신앙하는 황제가 곳곳에 절과 암자를 짓는 바람에 백성들이 씻은 듯 가난해서 ‘가정, 가정, 가정마다 씻은 듯 가난하네’라고 황제를 욕한다고 썼다.
더 심한 것은 상소문이 ‘폐하께서는 어리석고 시비를 가르지 않으시며 신하들은 황제의 비위만 맞추고 아부하기에만 바쁘며 참 말을 하는 신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결과는 상상하기 조차 두렵습니다’라고 아예 가정제를 직접 질타한 것이다. 상소문은 또 ‘폐하의 잘못은 참으로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역대로 수많은 선현들 중 어느 누가 아직 살아 있으며 한(漢)과 당(唐)의 그 많은 방사(方士) 들도 다 죽지 않았습니까? 폐하께 불로장생술을 가르친, 폐하께서 가장 믿으시는 도중문(陶仲文)도 죽지 않았습니까?’라고 썼다. 물론 상소문은 ‘영명과 예지의 폐하께서 조정을 관심하면 요순(堯舜)과 같은 현명한 군주가 될 것입니다’라고 좋은 말도 적지 않게 하고 제언도 했다. 마지막에 상소문은 황제가 조정을 잘 관리해서 신하들의 공물을 받지 말고 조정의 풍기를 바로 잡을 것을 희망했다.
소를 다 본 가정제는 상소문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해서란 놈이 도주하기 전에 얼른 잡아오너라!”
곁에 있던 내시 황금(黃錦)이 아뢰었다.
“해서는 도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사전에 관을 마련하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조정에 상소를 올렸습니다. 지금 밖에서 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금의 말에 깜짝 놀란 가정제는 곧 이어 탄식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비간(比干)처럼 강직하구나. 하지만 짐은 주왕(紂王)이 아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가정제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를 잡아 들여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하라.”
해서는 어명으로 잡힌 죄인들이 전문 갇히는 감방 조옥(詔獄)에 하옥되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해서가 반드시 처형을 당할 것이라고 판단해 누구도 그를 대신해 변명하지 못하고 얼굴에 아쉬운 감정만 내비쳤다. 그 광경을 본 해서의 벗인 왕굉해(王宏海)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나라를 다스리는데 감초(甘草)만 쓰고 처세에는 향원(鄕愿) 한 가지만 쓴다던 해서의 말이 그른데 없구나.”
성질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약재인 감초는 질병을 치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람이 먹어서 죽는 약물도 아니어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다. 향원은 겉으로는 충성하고 근신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을 속이고 헛된 명예를 탐내는 것을 말한다. 해서는 감초와 향원 이 두 가지로 당시 조정의 암울함을 비유한 것이다.
이상하게 해서는 투옥되어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처형되지 않았다. 해서의 동료인 호부사무(戶部司務) 하이상(何以尙)은 가정제가 충신을 죽였다는 오명을 남기기 싫어서 해서를 죽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해서를 석방할 것을 간절히 바라는 내용의 소를 올렸다. 하지만 천자의 속마음은 참으로 읽기가 어려웠다. 가정제는 하이상의 상소문을 보자 화를 내면서 하이상에게 장형(杖刑) 백대를 내리고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엄하게 취조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해서의 죄도 사죄(死罪)로 정했다.
이 때 내각대신 서계(徐階)도 해서를 동정해 해서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언했다. 사실 가정제도 해서에게 잘못이 없으며 그가 충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정제는 해서에게 사죄를 물으면서도 그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며칠 후 나이 지긋한 옥졸(獄卒)이 해서에게 이왕과 달리 술과 고기를 곁들인 아주 풍성한 식사를 가져왔다. 해서는 죽기 전에 먹는 마지막 식사로 알고도 태연자약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 정도 먹은 후 옥졸이 귓속말로 해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붕어하셨습니다. 나리는 운이 좋습니다 그려. 나리께서 이토록 충성심이 강하고 명성도 이렇게 높으시니 신 황제폐하께서는 반드시 나리를 중용하실 것입니다.”
가정제가 붕어했다는 말에 해서는 목놓아 통곡하면서 남쪽을 향해 꿇어 앉아 금방 먹었던 음식물을 다 토해내고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바람에 옥졸은 너무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전통적인 유가의 교육을 받은 해서는 군자는 군자이고 신하는 신하라는 군군신신(君君臣臣), 부친은 부친이고 아들은 아들이라는 부부자자(父父子子)의 윤리적 도덕을 따랐기에 아무리 못난 황제도 부친과 같은 군주로 삼았던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황제에게 직간한 것은 잘못을 저지른 부친을 질타하는 아들의 충성심과 같은 발로였다. 그런데 지금 그 군주가 죽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군주라 해도 군주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신하는 없다는 것이 해서의 이치였다.
옥졸의 예상이 맞았다. 이 세상에 해서가 청렴하고 충성심이 강한 관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융경(隆慶)제는 즉위 즉시 해서를 무죄 석방시키고 원래의 관직에 복직시켰다. 그 후 내각 수보대신(首輔大臣) 서계의 천거로 해서는 곧 병부(兵部) 무고사주사(武庫司主事)로 승진했고 이어 황제의 옥새를 관리하는 상보사사승(尙寶司司丞)이 되었다. 또 억울한 사건과 잘못된 사건을 전문 바로 잡는 대리사승(大理寺丞)에 이어 남경우통정(南京右通政)으로 승진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해서 편: 제2회 관을 메고 직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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