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4-5

一字師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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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4-5

 
 

3. 신홍학 시기의 지연재 비평 연구

2) 비평가의 신분과 비평의 권위 설립

(4) 저우루창의 ‘지연재는 사상운’설: ‘필요한 바를 취해’ ‘순환논증’하는 해석 전략

신홍학 연구자들 가운데 비평가의 신분에 대해 확실한 답안을 내놓은 사람으로 후스 외에 저우루창이 있다. 후스의 답안은 이전과 이후로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지연재가 조설근의 당형제라는 것이고, 둘째는 지연재가 곧 작자 조설근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저우루창도 처음(1948년)에는 후스의 ‘작자가 스스로 주석을 붙였다’는 주장을 깊이 믿었다. 그는 후스가 소장한 갑술본의 발문에 대해 더할 수 없이 긍정적인 어조로 “지연재 비평이 곧 조설근의 원래 비평”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 후스의 설명이 충분히 투철하지 못한 점에 불만을 품고 글을 써서 “그것을 더 넓히려[欲恢而廣之]” 했다.

그러나 나중에 저우루창은 또 다른 새 이론을 설립하여 지연재가 바로 사상운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 견해를 ‘상운설(湘雲說)’이라고 불렀다. 역대로 연구자들의 ‘상운설’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부분 ‘지연재’와 ‘사상운’ 자체 즉, 지연재가 작품에 등장하는 사상운인지 여부만을 집중적으로 살폈을 뿐이다. 그러나 ‘상운설’과 《홍루몽》 해석 문제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충분히 중시되지 못했다.

저우루창이 ‘상운설’을 건립하면서 인용한 비평은 항목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분석할 수 없고, 단지 요점을 정리하는 정도만 할 수 있겠다. 저우루창은 우선 류취앤푸(劉銓福)와 유서(裕瑞), 후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후스의 ‘당형제’설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상운설’을 위한 길을 마련했다. 그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 속에 몇 차례 서술된 여인들의 성대한 모임에 비평가도 모두 참여했는데, 거기에서 한 명의 ‘당형제’도 찾을 수 없다. 둘째, 비평가는 이홍원의 여자들의 자잘한 일까지 알고 있는데, ‘당형제’가 어떻게 그걸 알겠는가? 셋째, 비평가의 지위는 설보차와 임대옥에 상당하면서도 녕국부와 영국부 여인들에 속하지 않으며, 가정 배경도 조씨 가문과 다르지 않다. 넷째, 비평가는 부모를 모두 잃고 큰어머니와 살고 있다. 다섯째, 비평가는 사상운의 정보를 특별히 귀중하게 여기는 듯하다.

‘상운설’은 사실 지연재 비평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며, 이 문제는 또한 《홍루몽》의 해석(전기식의 소설인지 여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서 비평 가운데 여러 군데에서 ‘이홍원의 자잘한 일들’을 언급한 것은 사실 순전히 보통의 독자가 독서할 때 붙인 평어(評語)일 가능성도 있는데, 저우루창은 비평가를 작품 속의 인물로서 이홍원에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홍원의 자잘한 일들’을 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매우 중시하는 또 다른 비평은 《홍루몽》 갑술본 제2회의 다음과 같은 비평이다.

먼저 녕국부와 영국부의 여러 사람들 면전에서 꾸짖었지만, 그건 오히려 나를 꾸짖은 것이었다! 先爲寧榮諸人當頭一喝, 卻是爲余一喝.

저우루창은 이 비평을 근거로 비평가가 “녕국부와 영국부 여인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리하여 그는 작품 속에서 녕국부와 영국부에 속하지 않는 인물을 찾아 이 결론과 배합하면서 결국 사상운을 찾아냈다. 그런데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런 식의 해석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보통 독자도 “녕국부와 영국부 여인들에 속하지 않는”데 왜 굳이 사상운인가? 둘째, 이 비평에서는 여자의 어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어쨌든 이 비평을 근거로 조건을 설정하고 나서 녕국부와 영국부 이외의 여자를 찾아 그 자리에 끼워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의 예로 보건대 지연재 비평 가운데 상당수는 순전히 보통 독자의 반응일 가능성이 있는데도 저우루창은 비평가가 분명히 작품 속의 인물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서전설의 이론을 비평 연구에 응용하여 수많은 비평들을 모두 특수한 의미를 가진 것들로 만들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비평에 대한 이런 식의 해석을 수긍하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서 저우루창이 비평가가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다음의 비평 구절을 근거로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어려서 부모를 잃은 이들이여, 모두 함께 통곡하자! 普天之幼年喪父母者齊來一哭.

하늘의 지극한 은혜를 어찌 보답할까? 어려서 부모를 잃은 이들을 통곡하게 하네!昊天罔極之恩, 如何得報? 哭煞幼而喪父母者.

부모를 잃지 않은 이들은 자세히 감상하고, 이미 부모를 잃은 이들은 통곡하라! 未喪父母者來細玩, 旣喪父母者來痛哭.

엄격히 말해서 이런 비평을 근거로 비평가가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평에는 이와 비슷한 부류의 표현 형식을 쓴 것이 적지 않다. 위의 예에서는 어떤 사건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통곡[哭煞]’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와 유사하게 ‘너무나 부끄럽게[愧煞]’ 한다는 표현도 있다. 예를 들어서 《홍루몽》 제1회의 갑술본 미비(眉批)에는 “요즈음 책을 읽는 가짜 도학자들을 너무나 부끄럽게 한다.[愧煞近之讀書假道學矣]”고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함께 통곡하자!”, “통곡하라!” 하는 표현과 유사하게 “보라!”, “함께 통곡하자!”, “다 함께 감상하자.” 라는 등등의 표현도 있다. 예를 들어서 《홍루몽》 제8회의 갑술본에는 “공부하지 않는 귀족 집안 자제들은 보라![不學紈褲來看]”라는 경진본의 미비가 들어 있고, 제21회의 경진본 비평에는 “대단한 평아(平兒)로다! 세상에서 아내를 무서워하는 모든 이들은 감사하라![好平兒, 普天懼內者來感謝]”라고 했다. 제24회의 경진본 비평에서는 “다투는 이들이여, 함께 보자![爭奪者同來一看]”, “명리를 다투는 이들이여, 함께 통곡하자![爭名奪利者同來一哭]”라고 했다. 또 제24회 갑술본 비평에서는 “벼락출세한 소인배들이여, 다 함께 감상해 보자![小人乍得意者齊來一玩]”라고 했고, 제39회의 기묘본 비평에서는 “교훈을 모르는 이들이여, 이 구절을 보라![不知敎訓者來看此句]”라고 했으며, 제41회의 몽부본 비평에서는 “아는 체하는 이들이여, 보라![好充憧得者來看]”라고 했고, 제44회의 경진본 비평에서는 “나약한 이들이여, 이 구절을 보라![懦夫來看此句]”라고 했다. 딩광훼이(丁廣惠)의 통계에 따르면 “XXX(者)來看[聽, 一哭]” 같은 형식의 비평은 21개 항목이나 된다고 했다. 억지로 자서전설의 논리에 따른다면 비평가 역시 ‘가짜 도학자[假道學]’요 ‘스승을 홀대하는 자[鄙薄師傅者]’, ‘벼락출세한 소인배’, ‘나약한 이’ 등등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이상과 같은 추론 방식은 엄격하지도 않고 신뢰성도 없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반응을 어려서 부모를 잃은 증거로 간주하는 것은 기껏해야 가능한 해석의 하나일 뿐이지, 비평가가 반드시 고아인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비평가가 고아라고 한다면 또 다른 비평 내용들과 서로 모순된다.

개괄하자면 저우루창의 이론은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건립되었다. 첫째, 비평가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분명히 고아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서전설에 따르면 비평가는 반드시 작품 안에 들어가야 하므로 작품 속 등장인물 가운데 실제 그 사람이 들어 있다.

우리가 보기에 첫 번째 가설은 비평 내용을 가지고 비평가의 신분을 규정하고 있으며, 두 번째 가설은 《홍루몽》의 본문을 가지고 비평가의 신분을 인증하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가설에 이론의 여지가 있음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은 확정적인 전제를 잃게 된다. 확정적인 전제가 없음과 동시에 비평가(지연재)가 작품 속의 인물(사상운)이라는 이론은 또 다른 가설(자서전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된다.

비평의 내용도 반드시 비평가가 어릴 적에 부모를 잃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홍루몽》 제23회에는 “갑자기 하녀가 와서 ‘나리께서 부르셔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가보옥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흥을 잃고 안색이 변했다.” 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경진본에는 이 부분의 본문 옆에 다음과 같은 비평이 들어 있다.

이 구절을 쓰는 데에 얼마나 큰 역량이 발휘되었는가! 나도 놀랐는데 하물며 가보옥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12, 3살 때를 돌이켜보면 나도 이런 병폐가 있었는데,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을 금치 못하겠다. 多大力量寫此句, 余亦驚駭, 況寶玉乎? 回思十二三時亦曾有是病來, 想時不再至, 不禁淚下.

이를 보면 비평가도 12, 3살 때에 엄한 부친을 무서워했던 경험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사상운은 “강보에 누워 있을 때 애석하게도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으니”(《지연재 중평 석두기》[경진본], p.116) 두 사람의 신세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논자가 비평가가 어릴 적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주장하려면 위의 비평을 소홀히 취급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비평가가 누구냐는 문제가 아니라 비평가의 신분 변화가 비평과 《홍루몽》 자체에 대한 연구자들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우루창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점(지연재가 바로 사상운임)을 인정한다면 이전에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던 많은 비평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가 든 예는 사상운이 등장한 장면인데, 비평가가 특별히 그녀를 거론한 것은 비평가 스스로 특별히 중시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운설’과 《홍루몽》 제80회 이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이다. 지연재 비평을 운용하여 제80회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는 것은 위핑보가 그 단서를 열었고 후스도 보충한 바 있다. 지연재 비평이 보여준 이야기의 흔적을 위핑보와 후스는 모두 조설근의 원고 가운데 잃어버린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우루창의 ‘상운설’은 ‘옛날 원본[眞本]’의 결말과 결합시켜 새로운 설을 건립했다.

‘옛날 원본’에 대해 위핑보는 《홍루몽변》에 들어 있는 〈이른바 ‘옛날 원본’ 《홍루몽》〉이라는 글에서 《구원필기(臞蝯筆記)》와 《속열미초당필기(續閱微草堂筆記)》에 언급된 ‘옛날 원본’을 논의했다. 이 ‘옛날 원본’에서는 녕국부와 영국부가 재산 몰수를 당한 이후 대단히 적막해져서 설보차도 일찍 죽고 가보옥은 가정을 이루지 못한 채 야경꾼[擊柝]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상운은 거지가 되었다가 나중에 가보옥과 부부가 된다. 사상운의 운명에 대해 위핑보는 세 개의 판본에 서술된 바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이 세 판본은 1) 정고본, 2) 유정본의 비평에 언급된 ‘속작’, 3) ‘옛날 원본’이다. 위핑보는 당시 유정본의 비평에서 언급하는 제 80회 뒤쪽의 이야기가 조설근의 잃어버린 원고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전혀 선입견이 없이 판단했다. 그는 유정본의 비평에 서술된 내용에 대해 비교적 만족했는데, 거기에는 가보옥과 사상운이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없이, 사상운이 나중에 위약란(衛若蘭)에게 시집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저우루창은 ‘예날 원본’을 아주 중시하여, 그것이 조설근의 진짜 원고라고 믿었다. 그는 이 ‘옛날 원본’에 서술된 가보옥과 사상운이 결혼하는 일을 자신의 ‘상운설’과 배합하여 소설과 역사를 서로 비교하여 참조했다. ‘옛날 원본’에서는 가보옥과 사상운이 결혼하는 것으로 서술했고, 자서전설에서 가보옥은 현실 세계의 조설근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기 때문에, 사상운 역시 현실 세계에 상응하는 인물이 틀림없이 있을 터이고, 그가 바로 지연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설근과 지연재 역시 작품에 묘사된 것처럼 분명히 부부 관계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저우루창의 방법은 ‘옛날 원본’ 소설의 줄거리를 이용해 역사 사실을 다시 구축한 것이기 때문에 약간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가 자서전설을 미리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작자가 틀림없이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소설에 썼을 거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런 논리 아래 소설을 다시 역사로 환원시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우루창은 본래 지연재 비평을 대단히 중시했으며 또한 지연재가 작품 속의 사상운에 대해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했다. 그러나 뒤쪽 이야기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도 지연재는 왜 가보옥과 사상운의 결혼이라는 큰일에 대해 왜 한 글자도 쓰지 않았을까? (저우루창의 이론은 조설근과 지연재 자신의 큰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억지로 해명했다.

《구원필기》에 서술된 내용이 별로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지연재 비평에서 일의 흔적을 찾아 이 원본의 진실과 대조해 교감하는 것은 본래 쉽지 않다. 지연재 비평의 본래 의도가 나중의 애정사를 미리 보여주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거기에서 알 수 있는 자잘한 조각들은 우연한 필요에서 언급하는 와중에 정황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을 흘려 드러낸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연재 비평 안에도 사상운이 거지가 되고 가보옥이 야경꾼이 되었다가 둘이 다시 만나 부부가 되는 이야기가 반드시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다.

이런 설명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연재 비평에서는 가보옥과 사상운의 결혼에 대한 언급이 없이 그저 가보옥과 설보차가 결혼한다는 사실만 한 차례 언급했을 뿐이다. 경진본 제 31회 회전총평(回前總評)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금과 옥의 인연이 이미 정해졌는데 또 금기린에 대해 서술한 것은 간색법(間色法)이다. 그런데 왜 임대옥이 그 때문에 상심하는가? 金玉姻緣已定, 又寫一金麒麟, 是間色法也. 何顰兒爲其所感?

일찍이 1921년에 위핑보는 〈《석두기》의 풍격(風格)과 작자의 태도〉에서 ‘간색법’에 주목했지만, 이 비평이 ‘사상운의 결혼’을 나타낸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욍징위(王靖宇)는 〈지연재 비평과 《홍루몽》〉에서 ‘간색법’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색깔을 뒤섞는 것이 간색법이다. 이것은 작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글을 알기 어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쓰는 전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제31회에서 우리는 사상운이 금기린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임대옥이 안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언뜻 보기에 그녀는 사상운이 가보옥과 결혼할 운명(즉 金玉良緣)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작자의 의도는 사실 처음부터 설보차와 가보옥이 결국 결혼하게 만드는 데에 있었다.

이 외에도 천자오주안(陳詔撰)의 〈간색법〉에서도 이 비평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왕관스(王關仕)는 〈간색법론〉, 〈재론(再論) 간색법〉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논어(論語)》와 전기(傳奇) 《도화선(桃花扇)》의 용법을 인용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간색은 단지 주인공에 버금가는 인물일 뿐이다. ……사상운과 설보차를 비교하면 사상운은 부차적인 등장인물이니, 주인공[正色]에 버금가는 인물[間色]에 속한다.

왕관스의 이 견해는 논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지연재 비평의 작자가 김성탄(金聖嘆)의 비평을 언급한 적이 있음을 알고 있다. 평점의 전통에서 보면 ‘간색법’은 응당 김성탄이 《수호전》의 비평에서 쓴 다음 말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달(魯達)의 계도(戒刀)는 선장(禪杖)과 짝이 되고, 무송(武松)의 계도는 사람 뼈로 만든 염주와 짝이 되니, 이 또한 작자가 일부러 간색을 넣어 독자의 눈을 현혹한 것이다.(《제오재자서[第五才子書]》 총평) 魯達之戒刀也, 伴之以禪杖, 武松之戒刀也, 伴之以人骨念珠, 此又作者故染間色, 以眩人目也.

여기서 ‘간색’은 그저 ‘짝[伴]’에 속할 뿐이고, “독자의 눈을 현혹”한다는 것은 독자를 미혹한다는 뜻이니, 지연재 비평에서 “거기에 미혹된다[爲其所惑].”고 한 것과 비슷하다.

메이졔(梅節)는 사상운이 위약란에게 시집갔지만 나중에 혼인 관계가 지속되지 못해서 결국 박명사(薄命司)로 들어가야 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지연재 비평을 보자.

제20회의 경진본 두 줄로 된 협주(夾注): 가보옥은 오랫동안 정을 잊었기 때문에 반드시 설보차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데, 없어진 뒤쪽 글에서 그들을 부부로 만들었을 때 이야기할 만한 옛정이 없을 테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寶玉久坐忘情, 必被寶卿見棄, 杜絶後文成其夫婦時, 無可談舊之情, 有何趣味哉.

제21회의 경진본 두 줄로 된 협주: 다른 사람이 설보차 같은 아내를 얻고 사월(麝月) 같은 하녀를 얻는다면 어찌 그들을 버리고 승려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가보옥의 평생에서 편벽된 부분이다. 若他人得寶釵之妻, 麝月之婢, 豈能棄而而[爲]僧哉? 玉一生偏僻處.

저우루창의 이론에서 지연재 비평은 물론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는 그 비평을 작자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썼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연재가 곧 사상운’이라는 생각과 ‘조설근과 지연재는 부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비평에 들어 있는 ‘설보차 같은 아내’라는 구절이 오히려 ‘상운설’의 장애이자 난관으로 변해 버렸다.

가보옥에게 ‘설보차 같은 아내’가 있었다는 난관을 피해 가기 위해 저우루창은 어쩔 수 없이 설보차가 일찍 죽고, 가보옥은 불문(佛門)에 귀의했다가 나중에 다시 ‘환속’하여 사상운과 결혼했다는 가설을 세워야 했다(저우루창의 《홍루탈목홍[紅樓奪目紅]》 참조). 그러나 경진본의 회전총평에서는 “기관(琪官)이 비록 배우이긴 하지만 나중에 화습인과 함께 돌 형과 설보차를 모시면서 처음과 끝을 함께한다고 서술한 것은 평범한 글이 아니”라고 했다. 이 비평에는 “돌 형과 사상운을 모시면서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는 말이 없다. “돌 형과 설보차를 모시면서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는 구절도 설보차가 먼저 죽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조설근과 지연재가 부부라는 관점에서 비평을 봄으로 인해 저우루창에게는 비평의 많은 부분이 모두 부부간의 말투인 것처럼 보였다. 그가 든 예를 보자.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쓰라린 눈물로 통곡하며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임진년 섣달 그믐날 밤, 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조설근은 눈물이 모두 말라 세상을 떠났다. 나도 그를 위해 통곡하다가 눈물이 다 말라 가는 참이었다. 언제나 청경봉을 찾아가 돌 형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머리에 부스럼 있는 승려를 만나지 못하는 것을 어찌 하랴! 아아, 슬프구나! ……갑오년(1774) 8월 눈물로 쓰다.

눈물로 빚을 갚을 줄 아는 사람은 대체로 작자 한 사람뿐일 것이다. 나도 이 뜻을 알지만 말할 수는 없다.

다섯 가지 사건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대성통곡을 금치 못했다! 30년 전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떠했겠는가?

‘젊은 시절의 고운 얼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하고[少年色嫩不堅牢]’와 ‘요절하지 않으면 가난하다[非夭卽貧]’라는 말을 나는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 이제 여기까지 읽으니 통곡을 금치 못하겠다!

이런 말들이 모두 남편을 위해 통곡하는 아내의 말로 간주되는 예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고운 얼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하고[少年色嫩不堅牢]”라는 비평은 유정본의 106쪽에 들어 있는 두 줄로 된 협비(夾批)이다. 저우루창의 견해에 따르면 “경진본과 척본[유정본]의 두 줄로 된 협비는 모두 먹으로 본문과 함께 베껴 썼는데 이것들은 응당 지연재가 쓴 것이며, 또한 《지연재 중평 석두기》 정본(定本)에 붙어 있던 원래의 비평”이라고 했다. 이 두 줄로 된 협비는 “바로 나중에 덧붙여진 비평”인 갑술본, 경진본의 미비(眉批) 및 측비(側批)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저우루창의 이런 관점은 합리적인데, 위핑보도 일찍이 그렇게 주장했고, 나중에 왕페이장과 자오깡, 천종이 역시 같은 주장을 했다. 문제는 경진년(1760)에 조설근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저우루창의 연구에 따르면 조설근은 계미년(癸未年) 즉 서기 1764년 2월 1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연재가 어떻게 그때 벌서 조설근을 위해 곡을 했겠는가? 그러므로 이 비평들을 ‘남편을 위한 아내의 통곡(즉 조설근을 위한 지연재의 통곡)’으로 이해하는 것은 선입견에 사로잡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중에 저우루창은 “지연재는 바로 작품 속의 사상운이고, 본래 이(李)씨 집안의 여걸(女傑)”이었다는 주장을 힘껏 피력하면서 가보옥과 사상운이 결국 부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紅樓奪目紅》에서 그는 ‘상운설’을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

한마디로 총괄하자면, 조설근의 붓끝과 가보옥의 의중에는 오직 사상운만이 본처의 신분과 품위에 맞았기 때문에 결코 ‘후처[續弦]’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연재 비평에서 가보옥과 설보차가 “뒤쪽 이야기에서 부부가 된다[後文成其夫婦].”고 한 말은 원래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설보차는 ‘본처의 품위’가 없다는 것인가? 임대옥에 대해서 저우루창은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단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반감이 들기도 한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홍루몽》 제1회의 본문에 “얼마나 많은 애정의 원수들이 만들어졌는가?[勾出多少風流寃家來]”라는 부분에 대한 갑술본의 협비에는 “나머지는 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작품 전체의 주인공은 오직 ‘두 옥(玉)’ 즉 가보옥과 임대옥 두 사람뿐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당연히 저우루창은 이 비평의 대용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도 지연재 비평은 당연히 아주 중요했지만, ‘상운설’과 모순되는 비평은 그에게 중시되지 못했다. 이렇게 지연재 비평에 대해 취사선택을 하는 그의 방식은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나를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는 태도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저우루창은 많은 기력을 기울여 ‘나무와 돌의 옛 맹서[木石前盟]’을 사상운과 가보옥 사이의 ‘맹서’로 해석한다. 그는 여기서 ‘나무’는 ‘이(李)’를 가리키니, 사상운의 ‘모델[原型]’이 된 이의 성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홍루몽》에 들어 있는 《홍루몽곡(紅樓夢曲》 〈평생의 오해[終身誤]〉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都道是金玉良緣 모두들 금과 옥의 아름다운 인연이라 말하지만
俺只念木石前盟 난 그저 나무와 돌의 옛 언약만 생각할 뿐.
空對着 공허하게 마주보네,
山中高士晶瑩雪 산 속 고고한 선비의 수정처럼 맑은 눈을.
終不忘 끝내 잊지 못하리,
世外仙姝寂寞林 세상 밖의 선녀가 사는 적막한 숲을.

이전까지는 ‘설(雪, 즉 薛)’과 ‘임(林)’을 함께 거론했는데 저우루창은 마지막 ‘적막한 숲[寂寞林]’에 들어 있는 ‘임(林)’자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그가 일부러 언급을 회피한 게 아니라면 왜 못 본 체 했을까? 그는 해석에서 독자들이 가보옥과 사상운의 ‘나무와 돌의 옛 맹서’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나무’에 대해 공을 들여 해설했다. 이른바 ‘사상운의 모델의 성인 이씨’의 ‘이(李)’자는 상반부가 ‘목(木)’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독자들이 보기에 임대옥의 ‘임(林)’자도 구조상 ‘나무와 돌의 옛 맹서’에 들어 있는 ‘목’자가 들어 있는데, 저우루창은 왜 거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가 해명하지 않으니 우리로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이것은 어떤 해석 전략인가? 일반인들이 보기에 저우루창이 지연재 비평과 《홍루몽》 본문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선택적’ 중시인 듯하다. ‘독자 반응 비평’의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텍스트 가운데 ‘선택 행위와 조직 행위(activities of selection and organization)’이다.

저우루창이 ‘상운설’을 설립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론이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리처드 팔머(Richard Palmer)는 《해석학: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 그리고 가다머의 해석 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구조적 통일체, 또는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순환을 형성한다. 그 순환은 전체적으로 개별적인 부분들을 규정하며, 부분들은 모여서 그 순환을 형성한다. ……전체와 부분은 양자 사이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서로에게 각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이해는 순환적이다. 이 ‘순환’ 속에서 의미가 생겨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쳰종수(錢鍾書: 1910~1998)는 《관추편(管錐編)》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것을 축적해 큰 것을 밝히고 또 큰 것을 들어 작은 것을 관통하며, 말단에서 추측하여 본질에 이르고 다시 본질을 탐색하여 말단을 궁구하면서 서로 왕복하여 의미 해석이 원만해지면서도 불균형을 피하기 바란다면, 이것이 이른바 ‘해석의 순환(der hermeneutische Zirkel)’이다.

저우루창은 개별적 비평(부분)으로부터 ‘상운설’(전체)을 구축하고, 다시 ‘사상운=지연재=조설근’이라는 관점(전체)으로부터 개별적인 비평(부분)을 해석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것을 축적해 큰 것을 밝히고 또 큰 것을 들어 작은 것을 관통”함으로써 양자가 서로 의지하며 인과관계를 이루게 하고 있다. 하지만 쳰종수가 얘기한 것처럼 “의미 해석이 원만해지면서도 불균형을 피하기 바라는” 것은 저우루창의 ‘상운설’에서는 이루지 못했다. 실제로 비평의 내용은 이미 이 순환을 넘어서 있다. (즉 ‘상운설’과 완전히 들어맞기 어렵다.)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 외에도 우스창과 자오깡, 천종이 등이 모두 ‘상운설’의 파탄에 대해 자세히 논한 바 있으니 우스창의 《홍루몽 탐원》, 자오깡과 천종이의 《홍루몽 연구 신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저우루창은 ‘상운설’이 “평생 《홍루몽》을 연구하면서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중요한 고증”이라고 자부했다. ‘가장 만족스러운’ 이 ‘근본’ 때문에 기타의 ‘말단’들은 모두 별도의 해석(또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백수쌍성(白首雙星)’에 대해서 저우루창은 그것이 가보옥과 사상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사람과 연관된 인물[綰合人]인 위약란(衛若蘭)과 풍자영(馮紫英)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위약란과 풍자영은 모두 남성이지만 ‘쌍성’은 중국문학에서 줄곧 견우와 직녀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이에 저우루창은 나중(1979년)에 다시 “가보옥, 사상운과 연관된 인물은……한 쌍의 부부”라고 주장을 바꿨다. 그러나 ‘백수’는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1981년에 그는 다시 구체적으로 “이 ‘백수쌍성’은 아마 풍자영이나 위약란 같은 인물들의 부모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2003년에 이르러 그는 《홍루탈목홍》에서 “가보옥과 사상운도 결국 ‘백수쌍성’이 되었”(p.163)으며, 그들이 “결합하여 ‘쌍성’이 되었다.”(p.270)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련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쌍성’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가보옥과 사상운인가, 위약란과 풍자영인가, 아니면 풍자영과 위약란 같은 이들의 부모인가? 저우루창이 전후로 제기한 주장은 너무 머뭇거리면서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다. 일찍이 저우루창의 특징이 《홍루몽》을 ‘사실의 기록[實錄]’이라는 견해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연구자도 있지만, 그의 이 ‘가장 중요한 고증’을 놓고 보면 그는 결코 ‘실록파’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앞뒤의 주장이 자주 바뀌게 되면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만들지도 모른다.

저우루창의 ‘쌍성관합론(雙星綰合論)’을 염두에 둔 어느 연구자는 ‘쌍성’이 가운(賈芸)과 소홍(小紅, 즉 林紅玉)을 가리키며, ‘백수’는 유 노파[劉姥姥]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 이 ‘금기린 인연’ 이야기는 다시 ‘발전’하여 거기에 관련된 등장인물들도 1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위약란과 풍자영, 그리고 그들의 부모 외에도 유 노파, 가교저, 판아, 가운, 소홍, 천설[茜雪], 예이[倪二], 마판자[馬販子], 왕단퇴[王短腿], 장옥함[蔣玉菡], 유상련[劉湘蓮]까지 포함된다.) 거기서 다시 ‘탐일(探佚)’이 발전하면서 ‘금과 옥의 인연’에는 묘옥(妙玉)과 진보옥(甄寶玉)까지 포함되었다.

관련된 인물이 이렇게 많은지 여부는 잠시 논외로 치고 ‘백수쌍성’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만 살펴보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연구자들의 판단이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방관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이들은 사실 이른바 금기린 인연을 ‘구상’하기 위해 심력을 쏟고 있기 때문에, 그 밖의 크고 작은 인물들(말단)들은 모조리 이 ‘혼사’(본질)를 위해 ‘봉사’하도록 끌어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연구자들이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 할수록 이 주장이 ‘애써서 만들어진’ 것임을 더욱 잘 드러내게 된다. 좋은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 혼사의 세부 상황이 많아질수록 금기린 인연은 더욱 ‘완벽’을 향해 치달리지만, 나쁜 측면에서 말하자면 세부 사항이 많아질수록 추측을 대표하는 것도 많아져서 반대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하나의 ‘과학’(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며 조설근의 원본을 찾아내려는 정신)이라고 한다. 이런 큰 방향에서라면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작업의 의의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사실 그들이 추측하거나 억측한 성분이 적지 않다. ‘금기린 인연’의 수많은 세부 사항들 가운데 조설근의 구상이 대체 얼마나 차지하는가? 또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연구자들의 ‘공로’는 얼마나 차지하는가? (관점을 바꿔 말하자면 당연히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연구자’가 아닐 경우 그런 창조적인 ‘지혜[靈心慧性]’이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설근의 고차원적인 정신문화 활동’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들이 찾아낸 ‘일어버린 원고’의 세부 사항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의혹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작업이 세밀해지면 이런 곤란한 처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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