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구천 편-제1회: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다
(사진설명: 구천의 화상)
와신상담의 군주 구천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은 군주의 신분으로 패전 후 기꺼이 마부가 되어 오(吳)나라 군주 부차(夫差)의 노복으로 3년을 살았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언젠가는 오나라를 정복하고 월나라를 국권을 회복해 자신의 치욕을 씻는 것이었다.
구천은 오나라로부터 식량을 빌리고 그 이듬해 삶은 종자를 오나라에 상환했다. 보기에 통통한 종자를 심었으나 아무 것도 자라지 않아 당해 오나라는 수확이 전무했으며 오나라의 식량부족은 구천의 오나라 멸망에 기반을 닦아주었다.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매일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치욕을 되살리며 부국강병을 도모하고 복수를 꾀했다. 그리고 끝내는 오나라를 멸하고 춘추시대의 패주(覇主)가 된다. 그야말로 “와신상담 끝에(臥薪嘗膽) 3천의 월나라 군사로 오 나라를 멸(三千越甲可呑吳)”한 것이다.”
와신상담의 군주 구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다
노년에 궁병독무(窮兵黷武)를 일삼은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고 월(越)나라 왕 윤상(允常)이 붕어하고 구천(句踐)이 왕위를 이은 기회를 타서 월나라 정벌을 시작했다.
상국(相國)인 오자서와 오 왕의 태자 부차(夫差)가 국도를 지키고 오 왕 합려가 백비(伯嚭)와 함께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월나라로 진군했다. 오나라 군대는 전리(隽李)에서 월나라 군대와 만나 각자 진을 치고 이튿날 싸울 준비를 했다.
이튿날 두 나라 군대가 마주하자 오나라 군대는 눈앞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웃통을 벗어 버리고 검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댄 약 300명의 월나라 병사가 세 줄로 나뉘어 정연한 보폭으로 오나라 군대의 앞으로 걸어와 멈추는 것이었다. 그 중 두령인 듯한 병사가 몇 걸음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우리 월나라의 대왕이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귀국에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여러분 먼 길을 걸어 우리를 토벌하러 오시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우리는 감히 목숨을 버려 우리의 죽음으로 우리의 대왕을 대신해 속죄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3백 명의 월나라 군사들은 모두 검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본 오나라 군대들은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서로를 쳐다보며 답을 구했다.
“이건 무슨 일이지? 월나라 사람들이 미친 건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살이라니?”
월나라 병사들이 귀신이 들렸나 부다 하고 생각한 오나라 병사들은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들을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는데 갑자기 우렁찬 북소리가 하늘땅에 울렸다. 오나라 병사들이 북소리를 따라 머리를 드니 한 손에 짧은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방패를 든 월나라 병사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며 외쳤다.
“돌격! 죽여라!”
그 바람에 당황해진 오나라 병사들은 어쩔 사이도 없이 맞서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 때 구천이 대군을 거느리고 오나라 군대의 진영으로 쳐들어와 큰 칼을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오나라 군사들의 머리를 베었다. 진중의 마차에 앉아 있던 오나라 왕은 갑자기 큰 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뒤로 피했으나 오른쪽 발에 칼을 맞아 발가락 하나를 잃었다. 마침 전의(專毅) 장군이 거느린 군사가 와서 오 왕 합려는 다행히 목숨을 구했으나 전의 장군이 중상을 입었다.
월나라 군대와의 혼전에서 오나라 군대는 반수가 죽거나 다쳤다. 군영으로 돌아간 오 왕은 즉시 징을 울려 군대를 철수시켰고 오나라로 돌아가는 도중 오 왕 합려와 장군 전의는 모두 숨졌다.
여기서 잠깐 월나라와 구천의 과거사를 돌아보자. 구천은 대우(大禹)의 후손이다. 당시 우 임금은 회계(會稽)에서 세상의 제후들을 만나 회맹(會盟)하면서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누고 정(鼎) 아홉을 주조해 구주를 대표했다. 우 임금은 사후 회계에 묻혔으나 하(夏)나라의 도읍이 안읍(安邑)인 관계로 회계는 점점 편벽해졌다. 하나라 소강(少康) 왕은 우 임금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을 것을 우려해 회계를 자신의 서자(庶子)인 우월(于越)의 봉지로 정해 우 임금의 제사를 돌보게 했다.
어획을 생계로 하는 월인(越人)들은 천 년에 달하는 하나라와 상(商)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이르러 회계에 성을 축조했다. 월인들의 자손은 주 왕에 의해 자작(子爵)에 봉해지고 봉지는 월나라로 불렸다. 그로부터 20여대를 거쳐 윤상의 재위 시 오 왕 합려와 원한을 맺어 두 나라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윤상부터 월나라의 군주는 왕이라 불렀고 구천은 바로 윤상의 아들이자 월나라의 두번째 왕이었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의 바닷가에 위치한 월나라는 중원에 비해 문명정도가 훨씬 낮았고 따라서 좋은 무기를 가진 정연한 오나라 군대를 이길 승산이 아주 적었다. 그 때 구천의 머리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감옥살이 중인 사형수 300명을 찾아 그들의 가족에게 중한 상금을 내리는 조건으로 오나라 군대 앞에서 자살극을 벌이게 했다. 그리고 월나라 군대는 오나라 군대가 괴이한 자살극에 놀라고 해이해진 기회를 타서 불의의 공격을 들이대서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단, 그 전투에서 오 왕 합려가 죽은 관계로 월나라와 오나라간의 원한은 더 깊어만 졌다.
합려의 뒤를 이어 오나라 왕이 된 부차는 즉위한 그날부터 매일 정원을 지키는 시종들에게 자신이 정원을 출입할 때마다 “부차여! 월 왕이 그대 부친을 죽인 원수를 잊었단 말입니까?”라고 외치게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부차는 눈물을 흘리며 “잊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오 왕은 이런 방법으로 부친의 원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오자서와 백비에게 태호(太湖)에서 수군(水軍)을 훈련시키게 하고 영암산(靈岩山)에서는 사격훈련을 하게 했다. 그렇게 3년 후 부친의 상이 끝나면 월나라를 공격해 복수하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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