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상앙 편-제4회: 변법은 남고 상앙은 죽다
제4회 변법은 남고 상앙은 죽다
상앙은 상군(商君)으로 봉해진 후 당시의 양사지풍(養士之風) 영향을 받아 자신의 저택에도 많은 빈객(賓客)을 두었다. 어느 날 집에서 빈객들과 잔치를 베풀던 상앙은 취기를 빌어 득의양양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爲)나라 군주 서출의 자손에 불과하지만 이리(李悝)의 <법경(法經)> 한 권만 가지고 진나라에 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나의 신법 시행을 통해 진나라는 천하 제일의 강국이 되어 세상을 웅시(雄視)하고 있습니다. 나는 관직이 대량조에 이르러 지위가 가장 높고 열후(列侯)에 봉해져 15개 도시를 식읍(食邑)으로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대장부의 뜻을 이루었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빈객들이 목소리를 합쳐 축하했다.
“이 정도면 아주 성공한 삶입니다. 이는 최대의 뜻을 이룬 대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조량(趙良)이라는 빈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아부하는 천 명에 비해(千人諾諾) 대담하게 직언하는 한 명의 선비가 더 낫다(不如一士谔谔)’고 하지 않는가. 그대들은 어이하여 상군의 문하에서 살면서 아부하는 말로 주인을 해하려 하는가?”
상앙이 조량의 말을 받았다.
“선생은 어이하여 모두가 나에게 아부한다고 말하십니까? 진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설마 제가 오고(五羖)대부보다 못하다는 말입니까?”
오고대부란 진목공(秦穆公)이 양가죽 다섯 장으로 바꾸어온 현인 백리해(百里奚)를 말한다.
조량은 상앙이 스스로를 진나라 역사상 가장 현명한 백리해와 비하는 것을 보자 상앙의 체면을 전혀 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오고대부는 세 번이나 진나라의 군주를 옹립하고 20여개의 소국을 병탄하여 진목공을 패자의 위치에 세웠습니다. 하지만 오고대부는 아주 검소하게 생활해서 외출해도 차를 타지 않았고 날이 더워도 우산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고대부가 세상을 뜨자 백성들은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프게 울었습니다. 오늘날 상군께서 진나라를 다스리면서 신법을 시행하지만 형벌이 너무 가혹해 백성들은 위엄만 보고 인덕(仁德)은 보지 못하며 이익만 알고 도의는 모릅니다. 태자는 상군께서 자신의 사부를 벌한 것으로 인해 상군을 미워하고 백성들은 상군께서 자신들의 부모형제를 이별시킨 것으로 인해 상군을 미워합니다. 진나라 대왕께서 붕어하시면 상군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이슬처럼 사라지고 심연에 빠질 것입니다! 상군께서 부귀를 탐하지 않고 결연하게 물러나서 은둔하시면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량의 말이 끝나자 내시가 들어와 보고했다.
“진나라 대왕께서 붕어하셨습니다.”
상앙이 빈객들에게 말했다.
“국상 중에는 잔치를 금하니 모두들 그만 돌아가시지요!”
자리를 뜨는 빈객들을 보며 조량이 상앙에게 말했다.
“상군께서는 신 왕을 옹립하기 전에 빨리 진나라를 떠나셔야 합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대왕의 크나큰 은혜를 입은 내가 어떻게 이 때에 떠난다는 말입니까? ”
“그럼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시지요!”
이렇게 말한 조량은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공자 앙이 조량을 쫓아가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우리 함께 진나라를 떠나시지요!”
상앙은 공자 앙도 조량을 따라가자 마음이 슬펐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20년 동안 나는 한 마음으로 진나라를 다스려 왔는데 누가 나의 이 공을 부인하겠는가? 새로 옹립한 왕이 정말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때 떠나도 늦지 않다.”
상앙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를 증오하는 태자가 즉위하면 나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쉬울 것이다. 내가 정한 법률이 아무리 엄격해도 군주의 권리는 제약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앙은 생각을 바꾸어 궁궐 방향을 향해 삼배(三拜)를 하고 마차에 올라 어둠을 타서 진나라를 떠났다.
상앙이 마차를 타고 성을 나와 백 리 정도 달렸는데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수종이 말했다.
“새 대왕께서 보낸 병사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새 대왕이 즉위하자마자 과거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 것을 본 상앙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급히 관복을 벗고 졸병의 옷을 바꾸어 입은 다음 마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그야말로 그물에서 빠진 물고기, 상갓집의 개와 같은 신세였다.
상앙이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니 때는 황혼이라 날씨가 어둑어둑했다. 상앙이 한 객사를 찾아 들어가니 주인이 신분증명서를 요구했다. 상앙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신분증명서를 제시하지 못하고 떠듬떠듬 말했다.
“급히 집을 나오다 보니 신분증명서를 소지하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그 말에 주인이 대답했다.
“상군의 법에 의해 신분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법을 위반하면 우리 모두 참형(斬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손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상앙은 하는 수 없어 어둠을 타서 관문을 넘은 다음 위(魏)나라로 향했다.
상앙 때문에 서하지역을 잃었다고 여긴 위혜왕이 상앙을 받아 줄리 없었다. 위 왕은 오히려 상앙을 포박해서 진나라에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나라에도 발을 붙이지 못한 상앙은 이번에는 자신의 봉지인 상어로 갔다. 하지만 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상앙은 공손가(公孫賈)에게 잡혀 당장 함양으로 끌려갔다.
진효공의 뒤를 이은 진혜문공(秦惠文公)은 긴말 하지 않고 당장에서 상앙에게 오마분시(五馬分尸)의 거열형을 내리고 그의 삼족을 멸했다.
사람들은 상앙이 자신의 법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말한다. 오기(吳起)도 상앙처럼 오마분시를 당하고 삼족의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두 사람은 다른 점도 있다. 그것은 오기의 변법은 오기의 죽음과 함께 휴지화되었지만 상앙의 변법은 상앙의 사후에도 폐지되지 않고 계속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상앙의 선진적인 법률제도를 시행한 진나라는 제후국들 중 가장 먼저 봉건사회에 진입하여 국력이 날로 증대되고 빠르게 궐기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백 년 후 진나라는 잠식(蠶食) 정책으로 먼 나라와 연합해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면서 궁극적으로 최초의 중국 통일이라는 위업을 실현했다.
상앙은 선진적인 이념과 법에 의한 나라 관리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한 사람의 지혜로 한 나라 문명의 여정을 추진한 상앙은 과히 천고의 일인이라 할 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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