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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1회 전설적인 영웅의 서사시를 쓰다

一字師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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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1회 전설적인 영웅의 서사시를 쓰다

(사진설명: 이광 장군의 조각상)

비운의 비장군 이광

서한(西漢)의 명장 이광(李廣)은 백 명의 기마병으로 흉노의 몇 천명에 달하는 기마병을 퇴각시킨 비장군이며 흉노인들은 비장군 이광이 두려워 몇 년이나 한나라의 국경을 범하지 못했다.

이광은 무장의 가문에서 태어나 줄곧 변경을 지키며 평생 수차에 걸쳐 큰 무공을 세웠지만 끝까지 제후에 책봉되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명장이다.

때를 만나지 못해 재능을 펼 기회를 찾지 못한 주인공의 대표 이광은 일당백 영웅의 레전드로 후세에 널리 전해지며 역사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桃李不言) 그 아래에는 스스로 길이 나진다(下自成蹊)”라고 말로 그를 높이 평가한다.

비운의 비장군 이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1회 전설적인 영웅의 서사시를 쓰다 

한경제(漢景帝)가 붕어하고 태자 유철(劉徹)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무제(漢武帝)이다. 어린 무제에게 태황태후(太皇太后)는 이렇게 말했다.

“이광을 미앙궁(未央宮)의 위위(衛蔚)로 임명하거라. 이광과 같은 사람이 황제를 지켜야 이 할미가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구나.”

어린 유철이 천진하게 물었다.

“이광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할머님께서 그렇게까지 중시하실 정도로요.”

“이광은 무예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기도 하단다. 이런 사람이 위위에 가장 적합하다.”

“그럼 이광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한무제의 말에 태황태후는 이광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광은 키도 크고 힘도 세며 담도 크고 또 활도 잘 쏜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냥을 갈 때마다 그를 데리고 갔는데 맹수를 만날 때마다 그는 짐승이 가까이 다가온 뒤에 활을 날려 언제나 백발백중이었다. 그는 늘 홀몸으로 맹수와 격투를 벌여 가끔 다치기도 했으나 언제나 맹수를 잡았다. 너의 할아버지는 그 때 ‘이광이 고황제(高皇帝) 때 태어났더라면 만호후(萬戶侯)가 되는 건 떼놓은 당상인데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그가 아쉽다’고 늘 말씀하셨다. 너의 조부님은 이광을 높이 샀으나 그 때는 전쟁을 하지 않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나라의 원기를 회복해야 했기 때문에 그에게 손 펼 기회를 주지 못했다.”

“이광은 변경에서 태수(太守)로 있지 않나요? 싸움 이야기도 있지 않나요?”

“금방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나라는 원기를 회복하고 백성의 평안을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이광은 변경을 지키지만 방어만 하니 별로 싸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싸움 이야기가 있으나 말해주마!”

태황태후의 이야기는 한경제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해 겨울 흉노의 땅에 설해(雪害)가 들어 흉노 왕 선우(單于)는 몇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상군(上郡)을 습격해 식량을 빼앗고 많은 백성을 노예로 잡아 갔다. 너의 부친은 더는 참을 수 없어 흉노에 반격하기 위해 가장 신뢰하는 환관을 보내 이광의 군사 훈련을 돕게 했지. 한 번은 그 환관이 수십 명의 기마병을 데리고 사냥하러 갔다가 사막에서 세 명의 흉노인을 만났는데 그 흉노인들이 모두 명궁이라 활을 한 번 당기면 한 사람을 명중하는 바람에 부상당한 환관 혼자만 말을 타고 도주하고 나머지는 전부 목숨을 잃었단다.

환관의 설명을 들은 이광은 즉시 백 여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그 흉노인들을 쫓아갔지. 수십 리를 달려 그 세 사람을 따라 잡은 이광은 병사들을 양 옆에 열을 지어 세워 놓고 몸소 활을 당겨 두 흉노인을 사살하고 한 명은 생포했다.

그런데 이 때 사막 속에서 갑자가 몇 천 명의 흉노 군사가 나타났다. 그 바람에 이광의 부하들은 놀라서 사색이 되었지. 흉노 군사는 이광의 군대가 적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급히 모래 언덕에 진을 쳤는데 이광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모두 도망치지 마라. 우리가 도주하면 흉노 군사가 당장 뒤를 쫓아와 흉노의 화살 공격에서 살아 남을 자 하나도 없게 된다. 우리가 만약 이 곳에 남아 있으면 흉노 군사는 한나라 대군이 근처에 있고 우리는 적을 유인하기 위한 소부대인 줄 알고 감히 공격하기 못할 것이다.”

이광은 흉노의 군사를 향해 전진 명령을 내려 흉노 군사가 진을 친 곳으로부터 2리가 안 되는 곳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게 했지. 한 기마병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적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안장을 풀다니요? 만에 하나 긴급 상황이 나타나면 말에 오를 시간이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이광이 이렇게 대답했단다.

“우리가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면 그들은 우리가 적군을 유인하기 위한 군사라고 더 믿을 것이다.”

과연 흉노 군사는 감히 공격하지 못했지.

이 때 흉노의 백마(白馬) 장군이 대열에서 나와 군사를 감독했는데 그 기회에 이광은 십 여명을 거느리고 달려가 그를 사살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말 안장을 풀고 아예 모래 위에 누워 휴식하라는 명령을 내렸지.

날이 어두워지자 흉노는 이광 군대의 근처에 복병(伏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어둠을 타서 군대를 철수했고 이광도 날이 어스름이 밝자 퇴각했단다…

태황태후는 이야기를 마치며 감탄했다.

“보거라. 이광은 이렇게 위험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략과 긴급 상황에 태연자약하게 대응하는 지략도 갖추었느니라. 그래서 전속국공(典屬國公) 공손곤야(公孫昆邪)는 ‘이광의 재능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나 그는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 늘 적과 홀로 싸우니 언젠가는 이 맹장을 잃겠구나’라고 말했다. 그래서 너의 부친은 이광을 최전선에서 철수시켜 두 번째 방어선의 도시를 지키게 했단다.”

태황태후의 궁에서 나온 유철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모친에게 물었다.

“이광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난데 왜 지금도 제후로 책봉되지 못했나요?”

태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7국의 난을 평정할 때 이광은 효기도위(驍騎都尉)였는데 오초(吳楚) 반군의 군기를 탈취해 큰 공을 세우고 세상에 널리 이름을 날렸다. 양(梁) 왕이 그를 아주 중시해서 자신의 장군 인수(印綬)를 넘겼는데 이광은 그것을 받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황제가 아니면 인수를 받을 수 없는데 말이다. 그는 양 왕의 인수를 받지 말았어야 했어. 후에 그는 공로로 과실을 상쇄해서 벌은 받지 않았지만 결국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고 선 황제로부터 변강도시를 수비하라는 명을 받았다.”

무제는 그제야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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