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의 삼국지 강의-유비의 멋진 말 7
유비의 멋진 말 7
유비의 멋진 말 일곱 번째 역시 멋지기보다는 상당히 미묘해서 뽑았다. 무심코 입에서 흘러나왔는데 유비의 진상을 드러낸 말이랄까, 천 이백 년이 지났어도 유비의 마음이 지금도 바로 엿보이는 듯한 그런 말이다.
“오늘의 연회가 즐겁지 않소?”(제62회)
일견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감안하여 보면 그 무게가 전혀 달라진다. 유비는 부성(涪城)의 남문 위 성루에서 한강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부수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말했다. 그것도 부수관(涪水關)을 점령하고 양회와 고패를 제거했으니 이제 부성 북쪽 가맹관까지는 유비의 영역이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싸움에서 이길 때마다 익주의 병사들이 들어와 병력은 계속 늘어났다.
때는 213년 부성(지금의 사천성 綿陽)에서 연회를 베풀 때였다. 부성은 부수가 사방을 휘감아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민국시대 찍은 사진을 봐도 상당히 넓은 강임을 알 수 있다. 강바람이 봄향기를 안고 가슴을 헤쳤다. 익주에 들어온지 2년만에 부성을 점령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바로 2년 전에도 이 자리에서 연회를 가졌다. 익주목 유장과 함께 형제의 우의를 다지며 조조를 막기로 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동안 많은 곡절이 있었는데, 유장이 만나자마자 장로가 위협하는 가맹관을 지켜달라고 해서 유비는 힘들이지 않고 가맹관을 차지했고 주둔하는 동안 군사 활동보다 언제나 현지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데 주력하였다. 또 1년 전에는 조조의 공격을 받는 손권을 도우러 간다면서 유장에게 군사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유장은 병력을 반(소설에서는 십분의 일)밖에 내어주지 않았다. 시종 급진적이던 방통은 무방비로 있는 성도로 바로 진격하는 상책을 권했지만, 유비는 부성 이북의 익주 세력을 제거한 후 성도로 진격하는 중책(中策)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가맹관에서 남으로 파죽지세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때 장송의 편지가 발각되어 유장이 모든 관문에 유비의 통행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져, 유비는 이후 전투를 벌이며 성도로 향하게 되었다. 결국 유비는 부수관에서 거짓으로 형주로 돌아간다면서 환송회를 차리고 백수관에 있던 양회와 고패를 불러 죽이고, 황충과 탁응을 이끌고 부성에 주둔하게 된다.
부수관을 점령한 다음날 병사들의 수고를 위로하며 현청에서 연회가 차려졌다. 유비가 술에 취하자 방통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의 연회가 즐겁지 않소?”
(次日勞軍, 設宴於公廳. 玄德酒酣, 顧龐統曰: “今日之會, 可爲樂乎!”)
그런데 방통의 대답이 날카로웠다. 약간 길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인용해보자.
방통이 말했다. “다른 나라를 정벌하면서 즐겁다고 하는 것은 어진 자의 군대가 아닙니다.”
유비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예전에 무왕이 주(紂)를 정벌할 때 음악을 작곡하고 승리를 춤으로 형상화하였으니 이 또한 어진 자의 군대가 아니오? 그대 말은 전혀 도리에 맞지 않으니 썩 물러가시오.”
방통이 크게 웃으며 일어나 나갔다. 좌우에서도 유비를 부축하여 후당으로 들어갔다. 한밤이 되어 술이 깨자 좌우에서 방통의 말을 유비에게 일렀다. 유비가 크게 후회하여 다음 날 아침 옷을 입고 당에 올라 방통을 불러 용서를 구하며 말했다. “어제는 술에 취해 저촉되는 말을 했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방통은 편하게 담소했다.
유비가 말했다. “어제 한 말은 내가 잘못했소.”
방통이 말했다. “군신이 모두 잘못했으니 어찌 주공만이겠소!”
유비도 크게 웃었다. 이후 두 사람은 이전처럼 허물없이 즐거워했다.
(龐統曰: “伐人之國而以爲樂, 非仁者之兵也.” 玄德曰: “吾聞昔日武王伐紂, 作樂象功, 此亦非仁者之兵歟? 汝言何不合道理? 可速退!” 龐統大笑而起. 左右亦扶玄德入後堂. 睡至半夜, 酒醒. 左右以遂龐統之言, 告知玄德大悔; 次早穿衣陞堂, 請龐統謝罪曰: “昨日酒醉, 言語觸忤, 幸勿挂懷.” 龐統談笑自若. 玄德曰: “昨日之言, 惟吾有失.” 龐統曰: “君臣俱失, 何獨主公?” 玄德亦大笑, 其樂如初.)
이 대화에서 방통은 유비의 군대가 “다른 나라를 정벌하는”(伐人之國) 군대이고, 그래서 “어진 자의 군대가 아니다”(非仁者之兵)고 보았다. 방통은 처음부터 유비에게 익주를 취할 것을 권유했고 유장을 만날 때는 살해하려고 하였다. 방통으로서는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유비이다. 유비는 유장과 형제의 우의를 내세워 연합하러 온 것이고, 자신의 병사를 “인의의 군대”라고 누차 강조하였다. 때문에 방통이 보기에 “다른 나라를 정벌하면서” “즐겁다”고 하는 것은 모순되기에 술자리에서 저도모르게 유비에 반발한 것이다.
유비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걸 방통이 지적한 셈이다. 유비는 이때 익주를 정벌할 꿈에 부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즐겁다”는 말이 진심에서 나왔다면 그동안의 “인의”는 거짓이 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익주 진입의 명분도 거짓이지만, 일생 동안 차린 어진 군주의 모양새도 의심스러워진다. 유비 스스로 이를 자각했기 때문에 무왕이 주를 정벌한 예를 급히 둘러댔을 것이다.
유비의 “번지르르한 말”은 사실 역사서나 소설이나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정치적’이기에 그 진정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더구나 조조 그룹이나 손권 그룹에서 보았을 때 유비는 결코 인자한 군주가 아니며 오히려 효웅(梟雄)으로 치부되었다. 효웅은 사납고 매서운 영웅이란 뜻으로, 조조의 간웅(奸雄)과 대비된다. 유비는 단순하지 않다.
두 사람은 무척 허물없는 사이임에 틀림없다. 조조나 손권 같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방통도 유비가 그만한 포용력이 있음을 알기에 유비의 폐부를 찔렀을 것이다. 유비도 자신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강변했을 것이다.
“오늘의 연회가 즐겁지 않소?”(今日之會, 可爲樂乎!)
그날 부성의 연회에서 유비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유비의 야망이 언듯 보이는 듯하다. 설사 유비가 승리를 기뻐하고 익주 정복의 야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인군(仁君)이 아니라거나 그동안의 선한 말이 위선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유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는 듯해 이 말이 자꾸 되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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