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교연2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4회 <茶經>을 쓰고 茶神이 되다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4회 을 쓰고 茶神이 되다 (사진설명: 육우 문화원 일각) 제4회 을 쓰고 茶神이 되다 교연 스님이 입적한 후 육우는 상저옹(桑苎翁)이라 자처하며 소계(苕溪) 기슭에 지은 초막에서 편찬에 몰두했다. 그때까지 육우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많은 자료는 모았으나 이라는 대작을 써내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육우는 황막한 벌판을 홀로 거닐며 큰 목소리로 시를 읊거나 미친 듯이 달렸으며 혹은 목놓아 울었다. 혹은 미친 듯, 혹은 멍청한 육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경릉(竟陵)의 저 괴인(怪人)은 초(楚) 나라의 광인 접여(接與)가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가?” 당시 육우는 벌써 명성이 자자해서 호주(湖州)의 신임 자사(刺史) 이계경(李季卿)의 특별..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2.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당숙종(唐肅宗) 상원(上元) 원년(760년), 육우는 스승 추부자(鄒夫子)와 작별하고 화문산(火門山)을 내려 관중(關中)의 난민들과 함께 강남으로 갔다. 당시 19살의 육우는 나이는 어려도 가슴 속에 중국인들에게 차의 기원을 알려주고 제다법과 탕법, 음다법 등을 가르치고자 을 쓰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가 강남으로 향한 것은 찻잎의 생산을 돌아보고 차선별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기분파인 육우는 성격이 좋지 않았고 특히 자주 화를 냈다. 그럼에도 강남에 이른 그는 장원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명인 황보염(皇甫冉)과 망년지교를 맺어 그의 후원을 많이 받았으며 또 남조(南朝) 사령운(謝靈運)의 제10대..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1. 이전 1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