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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정서 담긴 탱고, 세계에 소개할 거예요”
- 2006년 04월호 글 : 박운미 TOPCLASS 객원기자
‘오리엔 탱고’ 성경선과 정진희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있다. ‘오리엔 탱고’의 멤버인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선 씨(여)와 피아니스트 정진희 씨다. 1976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본고장 탱고의 참맛을 제대로 알려 주고 있다. 2002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며 정기공연과 앨범 발매로 탱고 음악을 전한 이들에게 마니아 팬들이 늘어나 이른바 ‘오리엔 탱고 폐인’까지 생길 정도다. 인터넷 팬 카페에 들어가면 1,500여 명의 열성 팬들이 올려놓은 격려와 감동의 글들이 빼곡하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던 이들이 탱고의 매력에 빠져 든 것은 10여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면서다. 성경선 씨는 15세 때, 정진희 씨는 17세 때 음악 공부를 위해 아르헨티나로 건너갔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딪친 현지 생활은 막막하기만 했다. 경선 씨는 얼마 뒤 가족이 모두 이민을 오긴 했지만, 처음 몇 년간은 기숙학교에서 혼자 생활하며 눈물깨나 떨궈야 했다. 더 늦은 나이에 유학 간 정진희 씨의 고충은 더했다. 학교에서 정진희 씨의 별명은 ‘말 안 하는 아이’였다. 진희 씨는 “사실은 말 안 하는 아이가 아니라 말 못하는 아이였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경선 씨는 둘째 오빠의 후배인 진희 씨가 집에 놀러 오면 편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두 사람은 클래식의 정형화된 틀이 어쩐지 갑갑하게 느껴졌다. ‘좀 더 자유로운 음악을 해 볼 수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외로움에 젖어 사는 이방인들에게 탱고의 선율은 감미롭게 감겨들었다. 대학을 마친 후 두 사람은 “한번 저질러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2000년 ‘오리엔 탱고’를 결성, 현지인에게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두 사람이 탱고에 빠져 든 것은 이민자로 살아가며 느낀 절박함이 탱고의 정서와 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탱고는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이민 노동자들의 한이 묻어나는 음악에서 비롯됐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까지 아우르는 탱고의 세계에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접목해 보겠다는 의도로 듀오 이름도 ‘오리엔 탱고’라고 지었다. ‘오리엔털 탱고’라는 뜻이다.
2000년 7월 이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서 깊은 국립 음악홀에서 가진 데뷔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동양인으로서 이 무대에 선 것 자체가 최초였다.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명곡 ‘리베르 탱고’를 연주하자 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탱고 잘하는 코레아노가 있다”는 소문에 반신반의하던 콧대 높은 현지인들은 공연 후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특히 피아졸라의 미망인은 기립박수로 이들의 실력을 ‘인정’했다. 피아졸라 미망인은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라도 그냥 나가 버리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두 사람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공식 탱고 뮤지션’으로 지정됐다. 이 역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였다.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탱고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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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에는 고국의 무대에도 올랐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첫 공연을 이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탱고 단독 콘서트가 열린 것은 거의 처음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해 줄까’ 하는 걱정이 컸다고 한다. 경선 씨의 회고다.
“무대에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등장하니까 클래식 공연인 줄 알고 처음엔 점잔을 빼시는 관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탱고의 정신은 자유로움이다. 마음껏 자유롭게 즐겨 달라’고 주문했어요. 나중엔 다들 서서 춤도 추시고, 아주 재미있었어요.”
클래식 전공자답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세련되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의 이들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영화음악을 듣는 듯 눈앞에 영상이 펼쳐질 것 같다.
오리엔 탱고의 자작곡 ‘바이올린을 위한 탱고’나 ‘슬픈 열정’ 같은 경우는 파워풀한 연주로 인기다. 다이내믹한 신디사이저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숨막힐 듯 질주하는 이 곡이 연주되면 공연장은 금세 열기로 달아오른다. 그래서 공연 마무리 단골 레퍼토리다.
“서니(성경선)의 카리스마가 아주 잘 발휘되는 순간이죠.”
진희 씨가 웃으며 말하자 경선 씨는 “지니(정진희)의 현란한 피아노 테크닉은 감히 따라가기 힘들죠”라고 받았다. 오리엔 탱고는 탱고만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민요나 동요를 탱고풍으로 편곡해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아주 인기다. 한국인 관객들만 즐거워하는 게 아니다. 경선 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한 수녀원으로 자선 콘서트를 갔을 때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녀원에는 시각 장애인들이 여러 명 살고 있었어요.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고향의 봄’을 연주했더니, 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예요. ‘ 한국어 가사의 뜻은 모르지만 선율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었을 때는 그들도 눈물을 흘렸다. “원래 탱고가 외롭고 힘든 사람을 위로해 주던 음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희 씨가 말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는 자선 콘서트를 자주 연다. 아르헨티나에선 수재민 돕기 콘서트를 열어 티켓 대신 받은 각종 생활 물자를 시 당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선’이란 말이 어불성설이란다. 오히려 콘서트를 통해 자신들이 영감을 받고 에너지가 충만해 오기 때문이다. “외롭고 힘들었는데, 당신들의 음악이 삶의 활력소가 됐다”는 청중의 한마디가 그들을 계속 살아 있게 한다.
오리엔 탱고는 지난 2월 24~2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이별 공연’을 가졌다. 공연 제목이 ‘라스트 탱고 인 서울’이다. 당분간 국내 활동을 접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생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아르헨티나를 본거지로 해외 진출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일본에서의 활동 스케줄이 이미 잡혀 있고, 유럽 쪽 관계자와도 접촉 중입니다. 저희가 한국 사람인 것을 부인할 수 없듯이, 저희들 음악에도 한국적인 요소가 분명 들어 있을 겁니다. 한국적인 탱고, 동양적인 탱고를 들고 세계 사람들과 소통해 보고 싶습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 양쪽을 오가며 활동해온 두 사람은 “한국의 한과 탱고는 서로 통하는 게 많다”고 말했다. ■
“한국적 정서 담긴 탱고, 세계에 소개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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