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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창경험방(痘瘡經驗方)

一字師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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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창경험방(痘瘡經驗方)

두창경험방(痘瘡經驗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痘瘡經驗方 > 貫膿三日

〇此時, 或吐, 或瀉, 或吐瀉, 大危也. 急用定中湯. 方見寶鑑.

〇이 때 토하거나 설사하거나 구토와 설사를 함께 하거나 할 경우는 매우 위험하니 급히 정중탕(定中湯)을 쓴다. 처방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온다.

 

痘瘡經驗方 > 出痘三日

取溪邊大葉赤枝之楊剉之, 大旱不斷之長流水, 猛煮六七沸, 乘其水極熱, 以紬巾頻頻淋洗面部, 而久洗方有效. 故必以兩器遞易, 溫之, 日夜數十次, 多多益好. 此藥能引出毒氣, 故頂䧟者皆起, 如或黑䧟處, 則綿絮量其大小廣狹而裁之, 漬此水, 乘熱遞付, 焦黑者, 皆濕爛, 毒不入裏. 如倒靨之類, 尤見奇效, 外治之藥, 無過於此. 自此, 至落痂, 連日夜洗之. 但冬月浴之, 恐觸風寒, 只洗面上可也. 春夏用葉, 秋冬用枝.寳鑑曰, 春冬用枝, 夏秋用葉, 水一釡, 入楊五斤.

시냇가의 잎이 크고 가지가 붉은 버드나무를 꺾어두고 심한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늘 흐르는 물을 길러 강한 불에 예닐곱 번 끓인 뒤에 그 물을 뜨거운 채로 명주 수건에 적셔 얼굴을 자주 씻어주는데 오래 씻어야만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릇 두 개를 바꿔가며 데워서 밤낮으로 수십 번씩 씻는데 자주 하면 할수록 좋다. 이 약은 독기(毒氣)를 끓어낼 수 있기 때문에 두창의 끄트머리가 푹 꺼진 것도 다 부풀어 오르고, 혹시 검게 푹 꺼진 부위라도 솜 적당량을 잘라서 이 물을 적셔 뜨거운 채로 붙여두면 모두 축축하게 헐어서 독기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딱지가 지지 않는 부류일 경우 더욱 효과가 좋은데, 외용약으로 치료하는 방법 중에 이것 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때부터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연달아 밤낮으로 씻어준다. 단 겨울에 목욕을 하면 찬바람에 맞을까 우려되므로 얼굴만 씻는 것이 좋다. 봄ㆍ여름에는 잎을 쓰고 가을ㆍ겨울에는 가지를 쓴다.《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봄ㆍ겨울에는 가지를 쓰고 여름ㆍ가을에는 잎을 쓰는데, 물 1솥에 버드나무 5근을 넣는다."라고 하였다.

 

本草綱目拾遺 卷十 > 蟲部 > 水馬 > 治痔

治痔: 《東醫寶鑒》有水馬散:夏月三伏內, 於止水中採婆子, 一名水馬兒, 高脚水面跳走是也. 採取三十個, 用三個紙包, 每包十個, 於背陰處懸掛陰乾. 每包作一服, 硏爛, 空心酒調下, 良久乃吃飯. 三日連三服, 十日內效. 久痔膿血者, 二三十服絶根.

치질을 치료하는 방법: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수마산(水馬散)에서는 "여름철 삼복 기간 동안 물속에 있는 파자(婆子 물맴이)를 잡는데, 수마아(水馬兒)라고도 하며, 긴 다리로 수면을 뛰어다니는 것이다. 30마리를 잡아서 종이 3장에 10마리씩 싼 다음 그늘진 곳에서 말린다. 한 번 싼 것을 한 번 복용할 분량으로 삼아서 질게 갈고 빈속에 술에 타서 복용하고, 한참 뒤에 밥을 먹는다. 사흘 동안 연달아 세 차례 복용하면 열흘 내에 효과가 난다. 오랜 치질로 피고름이 있ㅅ을 때는 20-30번 복용하면 병의 근원이 끊어진다."라고 하였다.

 

歷代醫學姓氏 > 本國明醫 > 許浚

字淸源, 號龜巖, 陽川人. 性聰敏, 自幼好學, 博通經史, 尤精醫學, 深得其妙, 活人者不知其幾. 官至崇祿大夫陽平君 贈領議政. 撰《東醫寶鑑》一十五卷, 《諺解痘瘡集》一卷, 《諺解胎産集》一卷, 《諺解救急方》一卷, 《新纂辟瘟方》一卷.

자는 청원(淸源), 호는 귀암(龜巖)이니, 본관은 양천이다.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했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전과 사서에 두루 통하였으며, 의학에 더욱 정밀하여 깊이 그 묘리를 얻었기에 사람을 살린 것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벼슬이 숭록대부양평군(崇祿大夫陽平君) 증영의정(贈領議政)에 이르렀다. 《동의보감(東醫寶鑑)》 25권,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1권,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1권,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1권,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 1권을 지었다.

 

愚岑雜著 > 醫案5. 婦人中風

因刺絡經金穴間使, 陽明經土穴三里, 大膓經土原曲池合谷, 小膓經金穴少澤, 督脈天穴百會等, 以踈血脈之滯澁, 與臟腑中沸烝之火熱, 投劑淸陽湯, 合三化湯, 曰, "夜來必大便通, 流汗見止, 則幸有可治之望." 越明日, 果通便汗止, 小有知覺, 其聞聲應音之擧, 切非向日之瘖聾也. 於是, 更劑秘傳順氣散, 日二貼服之, 而子午流注, 逐日行針三日, 左右手始運用, 而語音完然. 乃以大接經 小接經方見醫鑑風門法, 而休兩日後, 施以火水未濟法針. 又劑加味大補湯, 日一貼用之, 以調養散失之氣血, 未過五貼, 喎斜之口眼反正, 而痱廢之兩脚, 起床步履, 淸盲之魚日 炳然得明, 如三五之月脫雲霾, 而揚輝於霽後光風也.

이에 낙맥과 경맥의 금혈(金穴)인 간사와 양명경의 토혈인 삼리와 대장경의 토혈과 원혈인 곡지와 합곡, 소장경의 금혈인 소택과 독맥의 천혈인 백회 등을 방혈하여 혈맥의 막히고 껄끄러운 곳과 장부 속의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을 소통시킨 뒤 청양탕에 삼화탕을 합하여 투약하고는 말하였다. "밤이 되면 반드시 대변이 잘 나오고 흐르는 땀이 멈출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다행히 치료할 수 있는 가망이 있는 것이오." 다음날이 되자 과연 대변이 잘 나오고 땀이 멈추더니, 약간 의식이 돌아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행동이 이전의 마치 귀 멀고 말 못하는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에 다시 비전순기산을 지어서 하루에 2첩을 복용하게 하였고, 자오유주(子午流注)침법으로 매일 3일 동안 침을 놓았더니 좌우의 손이 비로소 움직이고 말소리가 완전해졌다. 이에 대접경(大接經)과 소접경(小接經)처방은 《동의보감》〈풍문〉에 보인다침법을 사용하고 2일을 쉰 뒤에 화수미제(火水未濟) 침법을 시행하였다. 다시 가미대보탕을 지어서 하루에 1첩을 써서 흩어져버린 기혈을 조섭하게 하였더니, 5첩을 넘기지 않아 비뚤어졌던 입과 눈이 바르게 돌아오고 마비되어 쓸 수 없었던 두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으며 물고기 눈알처럼 흐릿했던 청맹과니의 눈빛은 환하게 밝아져 마치 보름달이 먹구름에서 벗어나 맑게 갠 화창한 하늘에서 빛을 떨치는 듯하였다.

 

醫鑑重磨 卷首 醫門入式 > 醫鑑重磨序

東方有東醫寶鑑書, 內醫許浚之所撰也萬曆中. 其書集合古今醫書, 上自農軒, 下至元明, 凡論病藥者, 靡不采輯, 以類相聚, 分門立例, 誠醫家之大都市也. 然散而無主, 雜而不精, 大率助陰剝陽, 認主爲賊, 與素問經旨有所反馳者, 十八九矣. 是以方士循墨, 有驗者十難二三, 而擧世矇矇, 莫知其由, 承襲之來, 殆千數百年矣.

동방에 《동의보감》이라는 의서가 있으니, 내의원이었던 허준이 지은 책이다만력 중. 그 책은 고금의 의서내용을 모은 것으로 신농씨와 헌원의 시대부터 원ㆍ명에 이르기까지 병이나 약에 대해 논한 것은 모두 모아서 종류별로 모아서 문(門)으로 나누고 차례를 만들었으니, 진실로 의학 집대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산만한 채 요지(要旨)가 없고, 잡다하여 내용이 정밀하지 않으며, 대부분 음기를 돕고 양기를 깎는 것으로 주(主)로 삼아야할 양기를 적대시 하니, 《소문》의 뜻과 상반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옛 방사들이 묵묵히 믿고 따랐지만 효험을 본 자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대부분의 의원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이어받은 것이 매우 오래 되었다.

 

醫鑑重磨 卷首 醫門入式 > 醫鑑重磨序

余於素問內經, 嘗有所節要者, 友人金善久, 復要余節約東醫寶鑑, 不使後人迷, 辭不獲, 乃就其書芟夷繁亂, 撮括要領, 唯取其有合於經旨者, 舊恰至五十卷, 今約得六卷冊, 如古鏡埋沒塵土, 晩得磨拭, 則本明猶存, 有可以監形而辨色矣. 旣畢以還于金友, 唯曰, 此乃素問之門隧也. 至於精微之奧則在經有之, 由是而入, 庶乎其不迷矣.

나는 《황제내경소문》에 대해서 일찍이 《황제소문절요》를 지었는데, 이 《의감중마》 역시 나의 벗인 김선구가 다시 나에게 《동의보감》의 요지를 발췌ㆍ요약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혼미하지 않게 하라고 권유를 하여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동의보감》의 번잡한 부분을 제거하고 요지만을 골라서 《내경》의 뜻과 부합되는 부분만을 취하니, 처음에는 50권이었으나 지금은 요약하여 6권 3책으로 만들었다. 이는 예컨대 오래된 거울이 진흙 속에 묻혀 있다가 늦게라도 닦아 깨끗하게 해주면 본래의 밝음이 남아있어서 비추는 것의 형체를 볼 수 있고 색을 분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집필을 마친 후에 김선구에게 돌려주니, "이것은 《소문》이라는 문으로 통하는 길이다. 정미한 뜻은 《내경》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이 책으로써 들어간다면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增補醫門寶鑑 > 醫門寶鑑自序

世之攻乎醫者, 莫不有博施濟衆之志, 軒岐尙矣. 華扁以下, 仲景皇甫之賢, 生而有神術, 以救札瘥, 沒而有著書, 以詔後學. 古人之用心, 勤且摯矣. 但言不盡意, 書不盡言, 自非聞一知十之才, 有難默識而妙解. 故讀其書, 而學其術者, 猶不能盡傳其妙, 則向所謂博施濟衆之志, 雖能行於生前, 而未見功於身後矣. 降自魏晋, 以及元明, 良醫輩出, 著書愈多, 而詳略不同, 精粗各異, 間或有務爲發散, 而忽於補益, 又或有專言用藥, 而不及診證. 是故古人有言曰: 東垣升陽補氣, 丹溪滋陰降火, 互看而並取之可也, 此誠達論也. 我東陽平君許公, 纂集古今醫方, 著爲東醫寶鑑 , 庶幾集群賢之大成, 而顧其爲書, 帙固汗漫, 語多重複. 詳者甚詳, 略者甚略. 世以是病之. 余於壯年, 有志於斯, 脫略世事, 經營數十載, 勞神費精, 遍歷古今醫書, 撮其精要, 間亦竊附己意, 作爲此編. 而先論病源, 以分其所因, 次言治法, 終之以用藥, 又以古今名醫, 及己所經驗者, 尾附于下. 使學者開卷瞭然其視病根如指掌, 則雖今初學庸醫, 逐證尋方, 庶乎不差其銖寸, 而輕重得宜, 本末有序, 可以救萬世夭札, 札命, 而措斯民於春臺壽域之中矣. 苟有有志者, 恕其僣踰, 而廣其傳布, 以資診治, 則豈曰無補於世乎哉?

세상에 의학을 전공하는 자들에는 박시제중(博施濟衆)에 뜻을 두지 않은 이는 없으니,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와 기백(岐伯)이 가장 오래 되었다. 화타와 편작 이하로 현능(賢能)한 장중경과 황보밀은 살아서는 신묘한 술법으로 사람들의 질병을 구제하였고, 죽은 뒤에는 저서를 남겨 후학을 가르쳤으니, 고인의 마음 씀이 은근하고 진지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말로는 뜻을 다 말할 수 없고, 글로는 할 말을 다할 수 없으니, 본래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재주가 아니면 묵묵히 기억하여 정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 책을 읽고 그 술법을 배운 자들도 오히려 그 신묘함을 다 전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박시제중(博施濟衆)의 뜻을 비록 생전에는 행할 수 있었으나 사후(死後)에는 공로가 드러나지 못한 것이다. 세대가 내려오면서 위ㆍ진으로부터 원ㆍ명에 이르기까지 고명한 의사가 연달아 나와서 저서가 더욱 많아졌으나, 의서마다 자세하고 간략함이 같지 않고 정밀하고 거칢이 각각 다르며, 간혹 발산(發散)에 힘쓰고 보익(補益)에 소홀한 것도 있고, 또 오로지 용약(用藥)만을 말하고 진증(診證)은 말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에 "동원(東垣)의 승양보기(升陽補氣)와 단계(丹溪)의 자음강화(滋陰降火)를 서로 참고해 보고서 아울러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사리를 통달한 말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양평군(陽平君) 허공(許公)께서 고금의 의방(醫方)을 모아 《동의보감》을 지으셨는데, 이 책은 거의 군현(群賢)의 저술을 집대성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 책의 권질(卷帙)이 방대하고 말에 중복이 많아서 상세한 것은 너무 상세하고 소략한 것을 너무 소략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를 결점으로 여겼다. 나는 한창 나이에 의학에 뜻이 있어서 세상일을 벗어던지고 수십 년 동안 그 일을 연구하였다. 정신을 소모해가며 고금의 의서를 두루 열람하고서 그 중에서 정밀하고 중요한 것들을 뽑고, 사이사이에 나의 의견을 첨부하여 이 책을 지었다. 먼저 병의 근원을 논하여 그 원인을 분별하고, 다음에 치료법을 말하고, 약을 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또 고금의 명의와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말미에 첨부하여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책을 펴면 병의 뿌리를 마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듯이 분명히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렇고 보면 비록 지금 처음 배우는 용렬한 의원이라 해도 증세에 따라 처방을 찾아가면 거의 조금도 틀임이 없어, 경중이 알맞고 본말에 차례가 있어서 만세의 요찰(夭札)을 구제해 이 백성들을 춘대(春臺)의 수역(壽域)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일에 뜻이 있는 이가 있어서, 나의 주제넘음을 용서하고 이 책을 널리 반포하여 진단과 치료를 돕게 한다면 어찌 세상에 도움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醫門寶鑑 卷之七 > 外科 > 證餘方

○一曰跌打折傷之症, 不分何經之所傷, 皮不破而內損者, 必有瘀血, 或皮破而出血過多者, 必致亡血也. 治之大要, 有瘀者, 先當破血, 亡血者, 法宜補行. 其治有六. ○打撲墜落之後, 氣血錯亂, 昏迷不省者, 急取蘇合香元氣, 熱酒童便調灌, 或花蘂石散方見寶鑑諸傷. ○大小便不通, 心腹脹悶者, 通導散 桃仁承氣湯寒. ○胸腹結痛者, 當歸鬚散. ○血去多而煩燥者, 名亡血四物湯血, 加桃仁 紅花, 不應者, 獨參湯補之. ○骨碎者, 內服自然銅散, 外付二生膏 活血散. ○金刃傷血不止者, 血蝎末付之.

○넘어지거나 맞아서 부러진 경우는 어느 경락이 다쳤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피부가 찢어지지 않고 안으로 다친 경우는 반드시 어혈이 있고, 혹 피부가 찢어져 심하게 피를 많이 흘리면 반드시 망혈이 된다. 치료의 대요는 어혈이 있는 경우는 먼저 파혈해야 하고, 망혈의 경우는 보혈행기(補血行氣)해야 한다. 치료법은 여섯 가지가 있다. ○맞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진 후 기혈이 뒤섞여 정신이 혼미해서 인사불성한 경우는 급히 소합향원기문을 따뜻한 술과 동변에 타서 입에 넣어 주거나, 화애석산처방은 동의보감의 제상문을 보라을 먹인다. ○대소변이 나오지 않고, 가슴과 배가 창만하여 답답한 경우는 통도산ㆍ도인승기탕한문을 쓴다. ○가슴과 배가 뭉쳐 아픈 경우는 당귀수산을 쓴다. ○출혈이 과다하여 번조한 경우는 망혈사물탕혈문에 도인ㆍ홍화를 추가해 쓰고, 효과가 없는 경우는 독삼탕으로 보한다. ○뼈가 부러진 경우는 자연동산을 먹고, 겉으로 이생고ㆍ활혈산을 뿌린다. ○금속 칼에 베여 출혈이 그치지 않는 경우는 혈갈가루를 뿌린다.

 

依源擧綱 > 暑六 單方見通風下 > 暑 > 酒蒸黃連丸

黃連 淨剉一斤, 用好酒四盞, 浸瓦器中, 置甑上. 累蒸至爛取出, 晒乾爲末, 水丸梧子大, 每五十丸, 温水下. 《入門》 ○又治傷酒過度, 腸胃積炅, 或吐血下. 黃連四両, 酒淹一宿, 晒末粟米粒丸. 《東鑑本內傷方文》

황련(깨끗이 씻어 썬다) 1근을 질그릇 속에 넣고 좋은 술 4잔을 채워 시루 위에 놓는다. 여러 번 푹 쪄서 꺼낸 후 볕에 말린다. 이 약을 가루내고 물에 반죽하여 벽오동씨만하게 환을 만든다. 50알씩 따뜻한 물에 먹는다. 《입문》 ○과도한 음주로 장위에 열이 쌓여 토혈(吐血)하거나 하혈(下血) 하는 경우를 치료한다. 황련 4냥을 술에 담가 하루가 지난 후, 볕에 말리고 가루내어 좁쌀만하게 환을 만든다. 《동의보감 내상문》

 

《醫籍考》 卷三十四 > 方論 十二 > 《林氏瀾傷寒折衷》

毛奇齡《敕封永德郎雲南永昌軍民府通判林君墓表》略曰: 周ㆍ秦以後, 所可考按者, 獨東漢張機一人. 夫證之難理, 莫如傷寒, 言理之可信, 則莫如張機之書. 今《傷寒卒病》諸論, 具在人間, 雖前後倒置, 篇帙錯雜, 其中三陽ㆍ三陰, 以及太陽ㆍ少陽ㆍ太陰ㆍ少陰諸□, 皆有紕繆. 乃博搜典籍, 自《靈》ㆍ《素》而下, 凡元化《中藏》, 稚川《肘後》, 北齊褚氏ㆍ唐人孫思邈諸所著, 以至中朝《聖方》, 外夷《醫鑑》, 合數千卷, 彼此相訂, 因採擇而論辨之. 以法次證, 以方次證, 卽以說次方, 割塵析眇, 輯爲《傷寒折衷》一書, 取二十七篇, 證外合二百五十七法, 一百一十二方, 共十二卷. 加《類證》八卷, 鏤板行世, 世爭購其書, 以爲準的. 一時名流, 如卿子張氏, 亮辰沈氏, 子由盧氏, 易園陳氏, 夔師潘氏輩, 皆互相發明, 以昌大其說, 而於是醫學得大成焉. 《西河集》

청나라 모기령(毛奇齡:1623-1716)의 《칙봉영덕랑 운남영창군민부 통판 임군 묘표(敕封永德郎雲南永昌軍民府通判林君墓表)》의 대략이다.

주진(周秦)시대 이후로 고찰할 수 있는 바는 오직 동한시대 장기(張機:張仲景) 한 사람뿐이다.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증세는 상한병이고, 이치를 말한 책은 장기의 책이 가장 믿을 만하다. 지금 《상한졸병론》의 여러 논의가 세상에 갖추어져 있다. 비록 앞뒤로 순서가 뒤바뀌고 편질이 뒤섞여 있기도 하거니와 그 가운데 3양과 3음으로부터 태양ㆍ소양ㆍ태음ㆍ소음 등 여러 부문에도 모두 오류가 있다. 그래서 그는 널리 전적을 수집하여 《영추》와 《소문》 이하로 화원화(華元化:華佗)의 《중장경(中藏經)》, 갈치천(葛稚川:葛洪)의 《주후방(肘後方)》, 북조시대 북제의 저씨(褚氏)와 당나라 손사막(孫思邈)의 여러 저서로부터 중조(中朝:北宋)시대의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외국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이르기까지 도합 수천 권에 대해 피차 서로 참고하여 내용을 정정한 뒤에 선택ㆍ논변하였다.

증세ㆍ법도ㆍ처방ㆍ설명의 순서로 편집하고 하나하나 상세히 분석하여 《상한절충》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27편을 취했으니 증세 이외에 도합 257개의 법, 112개의 처방으로, 모두 12권이다. 《증류(類證)》 8권을 합하고 판각하여 세상에 유통하자 세상에서 다투어 이 책을 구매하여 표준으로 삼았다. 장경자(張卿子:张遂辰), 심양신(沈亮辰:沈晉垣), 노자유(盧子由:盧之頤), 진이원(陳易園), 반기사(潘夔師) 등 한 시대의 명사들이 모두 상호 이 책의 의미를 밝혀 그의 학설을 풍부하게 하였으니, 이에 의학이 집대성될 수 있었다. 《서하집(西河集)》

 

醫宗損益 卷之一. 子集 > 凡例

一, 寶鑑爲東醫之習熟, 而名目頗詳, 今次如之, 以便臨症之指南.

1.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의 의사들에게 익숙한 의서로서, 그 목차가 자못 상세하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도 《동의보감》과 같게 함으로써 임상에 편리한 지침서가 되게 했다.

 

醫宗損益 卷之一. 子集 > 凡例

一, 群書之採錄於寶鑑等諸書者, 必先立引用本書, 而後註採錄家, 不敢得魚忘筌, 而近世名言及古書中新採者, 本文下亦註出處, 恐掠古今人已成之美也.

1. 《동의보감》 등의 여러 책에 인용된 책을 재인용할 때는 반드시 인용된 본래 책의 이름을 밝히고, 뒤에 주석으로 그 책을 인용한 책을 밝혔다. 이는 감히 생선을 잡았다고 통발을 잊어버리는 폐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한, 근세의 명언과 고서에서 새로 뽑은 글 역시 본문 아래에 출처를 주석으로 밝혔는데, 이는 고대와 현대의 사람들이 이미 이룩한 공적을 빼앗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宜彙 卷之一 > 痢疾 > 諸痢

○休息痢, 老人或年少, 年久者, 補中益氣湯, 或蔘苓白朮散.見寶鑑內傷氣血虛而不斂, 八物湯, 加陳皮 阿膠珠 芩連 各少許用. ○積痢, 同郡人下痢, 如魚腸色一陣, 痛一陣, 泄則痛減, 衆治.衆治 余用感應丸, 數日瀉出靑筋, 人皆危之曰, "久病骨立, 此藥得無太峻乎?" 余曰, "陳積盤白腸胃, 非一經推蕩, 不效." 不過五六服, 得效又見第五卷.

○휴식리(休息痢)가 노인이나 아이에게 생겨 오래되었을 때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나 삼령백출산(蔘苓白朮散)을 쓴다《동의보감》 〈내상편〉에 나온다. 기혈(氣血)이 허하여 수렴되지 않을 때는 팔물탕(八物湯)에 진피 아교주 황금 황련을 각각 약간씩 더하여 쓴다. ○적리(積痢)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설사를 하였는데, 물고기 내장 같은 색이 한 차례 나오고 통증이 한 차례 있었고 설사를 할 땐 통증이 줄어들었으나, 온갖 처방이 듣질 않았다. 내가 감응환(感應丸)을 썼는데 며칠 동안 퍼런 힘줄 같은 것이 섞인 설사를 하자 사람들이 모두 불안하게 여겨 "오랫동안 병을 앓아 뼈만 앙상한 사람에게 이 약은 너무 세지 않은가?"하였다. 나는 "오래된 적(積)이 장위(腸胃)에 똬리를 틀고 자리하고 있어 일관되게 몰아내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5-6첩을 복용하기 전에 효과를 보았다5권에도 나온다.

 

宜彙 卷之一 > 黃疸 > 三十六黃疸

○黃疸. 勞極曰疸, 有三十六黃疸方, 則黃病之多般, 可知矣. 又發黃數十年生者, 而仲景以十八日爲期, 何也? 古今絶異而然歟? 仲景曰, "小便黃赤色者, 當以濕熱治." 寶鑑曰, "黃病, 脾受濕熱而鬱不行, 亦多有腹脹之候."又見第五卷

○황달. 노극(勞極)을 달(疸)이라고 하는데, 달(疸)에 36가지의 황달(黃疸)처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황병(黃病)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황병(黃病)이 발생한 채로 수 십년 동안을 산 경우가 있는데, 그대[張仲景]는 18일로 기한을 잡았으니 어째서인가? 옛날과 요즘의 병이 판이하게 달라서 그러한가?" 장중경이 말하길 "소변이 누렇거나 붉을 때는 당연히 습열을 치료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의보감》에는 "황병은 비가 습열을 받아 몰려서 운행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대부분 배가 불러 오르는 증상을 보인다"고 하였다권5에 나온다.

 

宜彙 卷之二 > 厥疾 > 厥疾

陽厥者, 是熱甚則厥, 蓋陽極則發厥. 宜六一順氣湯. 陰厥者, 身冷脈沈, 四肢厥逆, 足踡臥, 唇口靑, 或手冷, 自利不渴, 小便色白. 宜四逆湯, 理中湯, 灸關元百壯. 凡初得病, 身熱頭痛, 大小便澁, 或惡寒, 或飮水, 或揚手擲足, 煩躁, 不得安臥, 譫語昏憒而厥, 此陽厥, 宜大柴胡湯, 六一順氣湯, 治之. 渴者, 白虎湯主之. 得病後, 四肢厥冷, 脈沈而細, 足攣臥, 而惡寒引衣自覆, 不飮水, 或下利淸穀而厥者, 陰厥也, 四逆湯. 厥脈不止者, 通脈四逆湯. 手足指頭微寒者, 理中湯用之. 無熱症而厥者, 當歸四逆湯. 喘促脈伏而厥者, 五味子湯. 吐利, 手足厥冷, 煩燥欲死者, 吳茱萸湯ㆍ六一順氣湯ㆍ四逆湯ㆍ大柴胡湯ㆍ理中湯方見醫鑑. 中寒, 白虎湯方見傷寒. 諸方, 俱在東醫寶鑑.

양궐(陽厥)은 열이 심하여 싸늘하게 된 것인데, 양이 극에 달하여도 싸늘해진다. 육일순기탕(六一順氣湯)을 써야 한다. 음궐(陰厥)은 몸이 차고 맥이 침(沈)하며, 다리를 굽혀 눕고 입술이 푸르거나, 손이 차고, 설사가 나고 갈증은 없으며, 소변이 희다. 사역탕(四逆湯), 이중탕(理中湯)을 쓰고 관원혈에 뜸을 100장 떠야 하다. 처음 병이 들었을 때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며,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오한이 있거나, 물을 마시거나, 팔다리를 흔들고, 번조하며, 편하게 눕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싸늘해지는 것은 양궐이므로 대시호탕(大柴胡湯), 육일순기탕으로 치료해야 한다. 갈증이 날 때는 백호탕(白虎湯)으로 주치한다. 병을 앓은 뒤에 팔다리가 싸늘하고 맥이 침세(沈細)하며, 다리를 구부려 눕고, 오한으로 옷을 당겨 덮으며, 물은 마시지 않거나, 혹은 먹은 그대로 설사하면서 싸늘해지는 것은 음궐이므로 사역탕을 쓴다. 궐맥이 멎지 않을 때는 통맥사역탕(通脈四逆湯)을 쓴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부분이 약간 차가울 때는 이중탕을 쓴다. 열증이 없는 궐증에는 당귀사역탕(當歸四逆湯)을 쓴다. 숨을 헐떡이고 맥이 잡히지 않는 궐증에는 오미자탕(五味子湯)을 쓴다. 토하거나 설사하며 손발이 싸늘하고 번조하여 죽을 것 같을 때는 오수유탕(吳茱萸湯)ㆍ육일순기탕ㆍ사역탕ㆍ대시호탕ㆍ이중탕을 쓴다처방은 《의감(醫鑑)》에 나온다. 중한에는 백호탕을 쓴다처방은 상한에 나온다. 여러 가지 처방은 모두 《동의보감》에 있다.

 

宜彙 卷之二 > 腰痛 > 腰痛腎虛

○腰痛. 種杏方云, "腰痛豈止屬腎虛, 以風濕痰血爲祟, 然要之, 皆是腎虛所致. 若腎元實, 則外邪豈能干邪." ○牛膝湯, 治諸般腰痛. 牛膝酒洗二錢, 當歸 白茯令 杜沖 補骨脂鹽水炒 熟地黃 各一錢, 桂心 甘草 各五分. 濕加蒼朮 五加皮. 風加防風 威靈仙. 痰加陳皮 半夏. 瘀血加倍當歸, 加桃仁 五靈脂 蘇木. 又服加味靑蛾丸見寶鑑腰門. 常以手摩腎兪穴. ○又見第五卷.

○요통. 《종행서(種杏書)》에서는 "요통이 어찌 신허에만 속하겠는가? 풍(風)ㆍ습(濕)ㆍ담(痰)ㆍ혈(血)이 빌미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신이 허하여 발생한 것이다. 만약 신의 근원이 실하다면 외부의 사기가 어찌 끼어들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우슬탕(牛膝湯)은 여러 가지 요통을 치료한다. 우슬(술에 씻는다) 2돈, 당귀 백복령 두충 보골지(소금물에 축여 볶는다) 숙지황 각 1돈, 계심 감초 각 5푼을 쓴다. 습(濕)에는 창출 오가피를 더한다. 풍(風)에는 방풍 위령선을 더한다. 담(痰)에는 진피 반하를 더한다. 어혈(瘀血)에는 당귀를 배로 하고 도인 오령지 소목을 더한다. 또는 가미청아환(加味靑蛾丸)을 복용한다《동의보감》, 〈요(腰)〉에 나온다. 늘 손으로 신수혈을 문지른다. ○또한 권5에 나온다.

 

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 卷第二十三 > 果部三品總五十三種 > 橘柚

《衍義》曰橘柚, 自是兩種, 故曰一名橘皮, 是元無柚字也. 豈有兩等之物, 而治療無一字別者, 卽知柚一字爲誤. 後人不深求其意, 謂柚字所惑, 妄生分別, 亦以過矣. 且靑橘與黃橘, 治療尙別, 矧柚爲別種也. 郭璞云, 柚似橙而大於橘, 此卽是識橘柚者也. 今若不如此言之, 恐後世亦以柚皮爲橘皮, 是貽無窮之患矣. 去古旣遠, 後之賢者亦可以意逆之耳. 橘惟用皮與核. 皮, 天下甚所須也, 仍湯浸去穰, 餘如《經》與注. 核皮二者須自收爲佳. 有人患氣嗽將朞, 或敎以橘皮ㆍ生薑焙乾ㆍ神麴, 等分爲末, 丸桐子大, 食後夜卧, 米飮服三五十丸. 兼舊患膀胱, 緣服此偕愈. 然亦取其陳皮入藥, 此六陳中一陳也. 腎疰腰痛膀胱氣痛, 微炒核, 去殼爲末, 酒調服, 愈.

《본초연의》에서는 "귤과 유자는 본래 두 종류이므로 귤피라고도 하는데, 이는 원래 유(柚) 자가 없다. 어찌 두 종류가 있는데도 치료하면서 한 글자를 구별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곧 유 한 글자는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이 그 의미를 깊이 궁구하지 않고 유 자에 현혹되어 함부로 구별을 하였으니 또한 잘못되었다. 또 청귤과 황귤도 치료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데, 더군다나 유자는 다른 종류이다. 곽박이 '유자는 등(橙)과 비슷하면서 귤보다 크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귤과 유자를 식별한 것이다. 지금 만약 이와 같지 않다고 말한다면 후세에 또 유피를 귤피로 여겨 끝없는 근심을 끼칠 것이다. 과거가 이미 멀어졌으니, 후세의 학자 또한 의미를 거스를 수 있을 뿐이다. 귤은 껍질과 씨만 쓴다. 껍질은 세상에서 매우 필수적으로 쓰이니, 뜨거운 물에 담가서 속을 제거하고, 나머지는 《신농본초경》이나 다른 주석과 같다. 씨와 껍질 두 가지는 스스로 채취한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기침을 하였는데, 혹자가 '귤피, 생강(불기운에 말린다), 신국 같은 양을 가루 내고 벽오동씨만 한 환약을 만든 다음 식후와 잠잘 적에 미음으로 30환을 복용하라.'라고 알려 주었다. 아울러 오랫동안 앓던 방광기(膀胱氣)도 이것을 복용하자 모두 나았다. 그렇지만 또한 오래된 껍질〔陳皮〕을 취해 약에 넣었으니, 이는 육진(六陳) 육진(六陳); 오래 두었다가 써야 좋은 6가지 약재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낭독(狼毒), 지실(枳實), 진피(陳皮), 반하(半夏), 오수유(吳須萸), 마황(馬黃)을 말한다. 가운데 한 가지이다. 신주(腎疰), 요통, 방광기로 아플 때는 씨를 살짝 볶고 껍질을 제거하여 가루 낸 다음 술에 타서 복용하면 낫게 된다."라고 하였다.

 

春鑑乾 > 春鑑序

本道觀察使柳逢春氏, 方薦御醫, 而屢辭不就, 乃於雲林之下, 蒐集春鑑一秩, 寔爲醫家之指針, 活局之明燭也. 其旨倣於《寶鑑》, 而臨勢斟酌, 其用類於《活套》, 而隨症加減, 要使世之濟衆者, 明暸易曉, 實萬病回春之寶也. 於此, 可見君子之用心, 而仁堂之號, 永不朽矣. 然近來此書之散在諸家者,, 誤錄訛傳 徒揭虛名, 不合正本. 故先生之傍孫周榮與圭東甫, 深庸慨歎, 恐墜先聲, 故揆其家藏之舊本, 將事鋟梓而囑余以序. 辭不獲已, 姑敍平昔所觀聽之萬一, 以弁篇首云爾.

본도(本道)의 관찰사인 류봉춘(柳逢春) 씨가 여러 번 어의(御醫)로 천거하였으나 누차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고 곧 은거하여 《춘감》 1질을 찬집하였으니 정녕 의가(醫家)의 지침이요, 활국(活局)의 밝은 등불이다. 그 취지는 《동의보감》을 따르되 상황에 따라 더하거나 줄였으며, 그 처방은 《의방활투》와 유사하게 하되 증상에 따라 가감하였다. 요컨대 세상에서 뭇 백성을 치료하는 자들이 명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니 실로 만병회춘(萬病回春)의 보배인 것이다. 이로써 군자의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으니 인당(仁堂)이라는 호는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여러 집안에 퍼져 있는 이 책이 잘못 기록되고 와전되어 그저 허명(虛名)만 걸어놓았을 뿐 정본(正本)과 합치하지 않았다. 때문에 선생의 방손인 주영(周榮)과 규동(圭東)이 개탄해 마지 않았고, 조상님의 명성을 실추시킬까 깊이 우려했기 때문에 집에 소장되어 있던 옛 판본에 근거하여 장차 책을 찍어내기로 하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사양하였으나 그럴 수 없어서 우선 평소에 보고 들은 것의 극히 적은 부분을 서술하여 서문을 쓴다.

 

韓客治驗 > 緖言 > 自序

延享四年夏五月, 承官命, 治韓客於無㞍川舡中, 韓客始疑本邦醫藥. 予爲之辨曰, 本邦醫流皆軒岐之徒也, 不曾出張劉李朱之藩圍也. 藥品選用國産之佳者, 凡人參ㆍ五味子之類, 用貴國之産, 地黃ㆍ當歸ㆍ黃連之類, 用本邦之産, 其餘品選用中華及諸番之佳者. 診察法無他, 以望聞問切爲要, 其外按腹候背, 又考口鼻之氣息, 以三部九候分六淫七情之病. 藥劑大小, 煎法多少, 服法緩急, 則以貴邦所撰東醫寶鑑爲䂓矩, 然則何疑之有矣. 好生之士臨病生猶豫, 怠修養必有妨生路云爾. 韓客終解疑, 請治療, 其治驗如左.

엔쿄(延享) 4년 5월 여름에 관명(官命)을 받고 나시시리가와(無㞍川)에서 배 안의 조선 손님을 치료하였습니다. 조선 손님들이 처음에 우리나라의 의약(醫藥)을 의심스러워하여, 저는 다음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의학은 모두 헌원(軒轅)과 기백(岐伯)을 따르고, 장중경(張仲景)ㆍ유하간(劉河間)ㆍ이동원(李東垣)ㆍ주단계(朱丹溪)의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약품은 각 나라에서 나는 좋은 것을 선택하여 쓰는데, 인삼(人參)과 오미자(五味子) 등은 귀국에서 나는 것을 쓰고, 지황(地黃)ㆍ당귀(當歸)ㆍ황련(黃連)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을 쓰며, 그 외에 약품은 중국과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사용합니다. 진찰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아서, 망진(望診)ㆍ문진(聞診)ㆍ문진(問診)ㆍ절진(切診)을 핵심으로 삼고, 그 외에는 배와 등을 살피고 또 입과 코의 숨을 관찰하며, 삼부구후(三部九候)로 육음(六淫)과 칠정(七情)의 병을 감별합니다. 약재의 용량, 달이는 시간, 복용하는 방법은 귀국에서 만든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심이 있겠습니까. 의원(醫員)이 병을 보아 생명을 유지시켰더라도 수양을 게을리하면 반드시 삶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조선 손님들이 결국 의심을 풀고 치료를 청하였다. 당시 치험(治驗)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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