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篇---綜合文學

이지李贄-분서焚書 동심설童心說

一字師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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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李贄-분서焚書 동심설童心說

 
 

동심설童心說

용동산농(龍洞山農)은 《서상기西廂記》의 서문 말미에서 “식자(識者)들은 내가 아직 동심(童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1]고 말했다.

 

그러나 동심은 ‘참된 마음’[眞心][2]이다. 만약 동심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면, 이는 참된 마음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심이란 거짓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一念)의 ‘본심’(本心)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사람’[眞人]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

 

아이는 사람의 처음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이다.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어떻게 동심을 갑자기 잃게 될까? 처음에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을 통해 들어오고, 그것이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자라면서 도리(道理)라는 것이 듣고 보는 것을 통해 들어오고, 그것이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오래 되면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더욱 많아지고, 그러면 지식과 지각의 범위가 나날이 더욱 넓어진다. 그리하여 훌륭한 이름을 떨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 이를 떨치는 데 힘쓰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심을 잃게 되고, 좋지 않은 명성이 추하다는 것을 알아 이를 감추는 데 힘쓰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심을 잃게 된다.

 

도리와 견문은 모두 책을 많이 읽고 의리(義理)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얻게 된다. 옛날의 성인이 어찌 일찍이 책을 읽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성인은 설사 책을 읽지 않아도 동심은 본디 저절로 존재했고, 설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역시 동심을 잃지 않도록 꼭 잘 지켰다. 이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고 의리(義理)를 많이 앎으로써 거꾸로 동심에 장애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렇듯 공부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고 의리를 알게 됨으로써 동심에 장애가 되는데, 성인은 또한 어찌 책을 많이 짓고 말을 많이 함으로써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로막았겠는가?

 

동심이 가로막히면,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오지 않고, 정치에 참여한다 해도 그 사람이 펼치는 정사에 뿌리가 없고, 저술을 한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적인 미(美)가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소박하고 진지한 가운데 빛을 발하지 못하여, 단 한 마디라도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찾아보려고 해도 끝내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심이 이미 가로막혀, 외적인 견문과 도리가 그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견문과 도리를 자기 마음으로 삼으면, 말하는 것은 모두 견문과 도리가 하는 말이요, 동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이 비록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어찌 거짓 사람이 거짓 이야기를 하고 거짓 일을 하고 거짓 글을 쓰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 사람이 이미 거짓이면 거짓이 아닌 것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거짓 사람에게 거짓 이야기를 하면 거짓 사람은 좋아하고, 거짓 사람에게 거짓 일을 말하면 거짓 사람은 좋아하고, 거짓 사람에게 거짓 글로 말하면 거짓 사람은 좋아한다. 거짓이 아닌 것이 없으며,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돌아가는 판이 온통 거짓일 뿐인데, 군중에 떠밀려 저 뒤에서 판을 구경하는 난쟁이[3]가 어떻게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비록 천하의 훌륭한 글이 있다 해도, 거짓 사람으로 인해 인멸되어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왜인가? 천하의 훌륭한 글은 일찍이 동심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동심이 항상 존재한다면, 도리는 행해지지 않고, 견문은 설 자리가 없어져, 언제든 좋은 글이 써지지 않는 때가 없고, 누구든 좋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떤 글이든 새로운 형태를 창작해도, 좋은 글이 아닌 것이 없다. 좋은 시(詩)를 왜 꼭 옛날 좋은 것을 골라놓은 것에서 찾아야 하며, 좋은 글을 왜 꼭 선진(先秦) 시대의 것에서 찾아야 하는가? 후대로 내려와 육조(六朝) 시대에 이르러 근체(近體)로 변화했고, 당대(唐代)에 이르러 전기(傳奇)로 변화했고, 송(宋)․금(金) 시대에 이르러 원본(院本)으로 변화했고, 원대(元代)에 잡극(雜劇)으로 변화했고, <서상기>(西廂記)로 변화했고, <수호전>(水滸傳)으로 변화했고, 지금의 과거(科擧) 시험 문장으로 변화하였으니,[4] 모두 고금의 훌륭한 글이어서, 그것이 나온 시대의 선후로 좋고 나쁨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동심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에 의해 스스로 글을 쓰니, 더 이상 무슨 《육경》(六經)을 말하겠으며, 더 이상 무슨 《논어》(論語)⋅《맹자》(孟子)를 말하겠는가?

 

《육경》⋅《논어》⋅《맹자》 등에 담긴 말은 그 당시 역사를 편찬한 관리가 지나치게 높이고 칭찬한 말이거나 또는 그 당시 신하가 극도로 찬미한 말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제자나 어리석은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기억으로 더듬어, 머리는 있는데 꼬리가 없거나, 뒤의 내용은 있는데 앞을 빠트리고, 그저 자기 소견에 따라 되는대로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후학들이 이것을 판별하지 못하고 성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지목하여 경전(經典)으로 결정하였으니, 그 중의 태반이 성인이 한 말이 아님을 그 누가 알겠는가?

 

설령 성인으로부터 나온 말이라고 해도, 요컨대 역시 뭔가 목적이 있어서 한 말들이어서, 병이 나면 약을 쓰되 그 때에 알맞게 처방하여 저 어리석은 제자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제자들을 구제하려고 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의약의 처방은 그때그때 병세에 따른 것이어서 한 가지 처방을 고집하기 곤란한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만세에 통하는 불변의 이치로 삼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육경》⋅《논어》⋅《맹자》 등은 도학자(道學者)의 구실이요 가짜 사람들이 우글대는 터전이다. 그들은 결코 동심에 대해 말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아아! 나 또한 언제나 일찍이 동심을 잃은 적이 없는 진정 위대한 성인을 만나 그와 함께 글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권3)

 

[1] 《서상기(西廂記)》는 중국 원대(元代)에 유행한 희곡 형식인 잡극(雜劇)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왕실보(王實甫)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이후 여러 차례 수정과 증보를 통하여 중간(重刊)되었고, 속편을 비롯한 수많은 아류 작품이 출현했었다. 당시 용동산농(龍洞山農)이란 사람이 《重校北西廂記》를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그 서문만이 별도로 전해진다. 본문의 내용은 그 서문의 말미이다. 서문의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 “사곡(詞曲)은 금(金)․원(元) 시대에 유행했는데, 북곡(北曲) 《서상기》와 남곡(南曲) 《비파기(琵琶記)》가 가장 유행했다. 후자는 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이른바 ‘어린이나 목동 중에 이에 눈을 빼앗기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漢書․東方朔傳》 참조)’고 할 정도였었다.……나는 전원 생활에 여가가 많아, 교정을 거쳐서 《비파기》와 함께 (《서상기》를) 간행한다.……식자(識者)들은 내가 아직 동심(童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 만력 10년(1581년) 여름, 용동산농 쓰다.” 여기서 ‘동심(童心)’은 당시까지만 해도 통속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식자층이 멸시했던 《서상기》나 《비파기》에 쉽게 빠져드는 어린이나 목동들의 마음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심은 이로 인해 역으로 가식없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2] ‘동심’(童心)이란 말의 정의가 약간은 막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지는 친숙한 철학적 용어인 ‘진심’(眞心)이란 말로 다시 설명한 것이다. 진심은 원래 불교 용어로, ‘묘명진심’(妙明眞心), ‘정주진심’(定住眞心) 등의 예와 같이,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말한다. 진심이라는 말은 유교에서도 사용되어, 정명도(程明道)는 “사람은 모름지기 진심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양명학의 ‘심즉리’(心卽理)의 학설 이후, 특히 명대 후반에 정명도의 이 말이 거론된 예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불가든 유가든 인간의 본래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진심이란 말이 사용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본래’(本來)란 후천적 작위가 없는 인간의 원초적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것이 선천․후천 등의 시간적 선후를 따진다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의 자연적 상태가 얼마나 표출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가 진심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동심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진심이란 말이 유교에서는 인․의 등의 도덕적 개념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일체의 인위적․작위적 상태를 벗어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3] 《속분서》 권2 <성인의 가르침에 대해>[聖敎小引] 참조.

[4] 옛날부터 중국의 각 시대마다 유행했던 문체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명․청 시대 문단은 과거의 시문(詩文)을 배우자는 의고파(擬古派) 및 복고파(復古派)와 과거의 시문을 답습하지 말고 글을 쓰는 사람의 시대에 적합한 문체 및 풍격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시문파(時文派)’(통용되는 호칭이 아니라 역자가 임의로 사용한 호칭임)가 논쟁을 벌이며 대립하는 형세를 보였다. 이지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의고파 및 복고파도 각기 모범으로 삼는 시대에 따라서 선진(先秦), 양한(兩漢), 당(唐)․송(宋) 등의 파별로 구분되기도 한다. 본문에서 말한 근체(近體)란 육조 시대에 정착된 성률(聲律) 및 율격에 따라 지은 5언시나 7언시를 일컫는다.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5언시․7언시라고 해도, 성률 및 율격을 지키지 않은 것을 고시(古詩)라고 한다. 근체시 창작은 당․송 시대에 극에 달했다. 전기(傳奇)는 당대에 유행한 중국적 특징을 지닌 ‘소설 형식’이다. 전기란 문체에 근대 이후 서구적 개념에 의거한 ‘소설’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많이 있다. 원본(院本)․잡극(雜劇) 등은 송․금․원 시대에 대두되기 시작하는 희곡 또는 종합 공연 예술 형식으로, 중국에서는 ‘속문학(俗文學)’으로 일컬어지는 본격적인 대중 문학 형식이다.

 

卷三 雜述 童心說

龍洞山農敘《西廂》未語云:“知者勿謂我尚有童心可也。”夫童心者,真心也。若以童心為不可,是以真心為不可也。夫童心者,絕假純真,最初一念之本心也。若失卻童心,便失卻真心,失卻真心,便失卻真人。人而非真,全不複有初矣。童子者,人之初也;童心者,心之初也。夫心之初曷可失也!

然童心胡然而遽失也?蓋方其始也,有聞見從耳目而入,而以為主于其內而童心失。其長也,有道理從聞見而入,而以為主于其內而童心失。其久也,道理聞見日以益多,則所知所覺日以益廣,于是焉又知美名之可好也,而務欲以揚之而童心失;知不美之名之可丑也,而務欲以掩之而童心失。夫道理聞見,皆自多讀書識義理而來也。古之聖人,易嘗不讀書哉!

然縱不讀書,童心固自在也,縱多讀書,亦以護此童心而使之勿失焉耳,非若學者反以多讀書識義理而反障之也。夫學者既以多讀書識義理障其童心矣,聖人又何用多著書立言以障學人為耶?童心既障,于是發而為言語,則言語不由衷;見而為政事,則政事無根抵;著而為文辭,則文辭不能達。蓋內含以章美也,非篤實生輝光也,欲求一句有德之言,卒不可得。

所以者何?以童心既障,而以從外入者聞見道理為之心也。

夫既以聞見道理為心矣,則所有言皆聞見道理之言,非童心自出之言也。言雖工,于我何與,豈非以假人言假言,而事假事文似文乎?蓋其人既假,則無所不假矣。由是而以假言與假人言,則假人喜。以假事與假人道,則假人喜;以假文與假人談,則假人喜。無所不假,則無所不再。滿場是假,矮人何辯也?然則雖有天下之至文,其湮滅于假人而不盡見于後世者,又豈少哉!何也?天下之至文,未有不出于童心焉者也苟童心長存,則道理不行,聞見不立,無時不文,無人不文,無一樣創制體格文字而非文者。詩何必古選,文何必先秦。降而為六朝,變而為近體;又變而為傳奇,變而為院本,為雜劇,為《西廂》,為《水滸傳》,為今之舉子業,大賢言聖人之道,皆古今至文,不可得而時勢先後論也。故吾因是而有感于童心者之自文也,更說甚麼《六經》,更說甚麼《語》《孟》乎?

夫《六經》《語》《孟》非其史官過為褒崇之詞,則其臣子極為贊美之語。又不然,則其迂闊門徒,懵懂弟子,記憶師說,有頭無尾,得後遺前,隨其所見,筆之于書。後學不察,便謂出自聖人之口也,決定目之為經矣,孰知其大半非聖人之言乎?縱出自聖人,要亦有為而發,不過因病發藥,隨時處方,以救此一等懵懂弟子,迂闊門徒云耳。藥醫假病,方難定執,是豈可遽以為萬世之至論乎?然則《六經》《語》《孟》,乃道學之口實,假人之淵蔽也,斷斷乎其不可以語于童心之言明矣。嗚呼!吾又安得真正大聖人童心未曾失者而與之一言文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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