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篇---綜合文學

동무를 사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一字師 2023. 5. 25.
반응형

동무를 사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图片来源 | 如何解读"勿用取女.见金夫,不有躬,无攸利"这句话?

 

: 이권홍

()는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이다. 우연히 상봉(相逢)하는 것이다. 만남은 인연이다. 찬스다. 좋은 기회이니 성공의 시작이다. 만남이 있어야 혈육 간의 정, 우정, 애정이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만남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만남이 늘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만남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식별(識別)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동무를 사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周易)은 우리에게 말한다. 만물에 두루 미치는 바람처럼 하라. 자신의 부드러움, 배려와 관심,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과 만나라.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된다.

 

만남은 인연이다. 소중하면서도 진귀하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인연이다.

인연(因緣)은 한 번 찬스가 주어지기도 하고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람사이에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삶에서 엮어지는 많은 사랑과 원망, 얽히고설킨 정 또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인과 관계다.

 

세상은 바둑과 같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고 알게 되며, 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면서 우연(偶然)이다. 어둠 속에 본래 인연이란 것이 있다.

 

나는 장강 상류에 살고

그대는 장강 하류에 산다네.

매일 그대를 그리나 보지는 못하고

같이 장강의 물만 마실 뿐이라오.

이 강물은 언제나 마르고

나의 한은 언제나 끝날까.

오직 그대 맘 내 맘과 같기를 바랄뿐,

그리워하는 이 마음 저버리지 마시라.1)

 

장강 상류에 사는 그대와 장강 하류에 사는 나는 같은 강의 물을 마신다. 지연(地緣)이다. 애모하기에 두 나뭇가지가 한데 붙어서 하나로 되니, 그것을 천 리의 인연도 실 한 오리에 맺어진다. 남녀 간의 연분(緣分)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인연이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결국 맺어지게 되지 않던가.

 

불가에서는 말한다. 같은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인연이다. 배를 타는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배 위에 올라 함께 있다가 아무 일도 없이 강기슭에 닿은 후 각자가 자기 길을 가면 인연의 끝이다. 그 인연은 얕은 것이다. 배가 기슭에 닿을 때 갑자기 비가 와서 허선(許仙)이 백낭자(白娘子)에게 우산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연분의 끈이 맺어지는 것이다. 인연이다.

 

백 년을 수양(修養)하여야 같은 배로 강을 건널 수 있고 천 년을 수양하여야 같은 베게로 잠을 잘 수가 있다.”

 

사람은 인연을 따라 세상에 왔다. 당신이 태어난 그 날부터 누구는 당신의 부모가 되고 누구는 당신의 형제가 된다. 이것이 친연(親緣)이요 혈연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다.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것이다.

 

이후에는 당신의 선생님, 동학, 이웃, 동료가 주마등(走馬燈)처럼 당신의 눈앞에서 흘러간다. 이 또한 인연이다. 물론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인연에 따라 모이고 인연에 따라 흩어진다.

 

어떤 때에는 당신이 주동적(主動的)으로 좋은 친구나 좋은 동료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것들은 당신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뿐이다. 찰라 사이에 당신 눈앞에서 사라진다. 길 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람 사이의 인연으로, 생활 중에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고 생활 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당신과 서로 마음이 통하기도 한다. 서로 붙잡아주기도 한다. 나중에 공간(空間)이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인연은 깊어지기도 하고 얕아지기도 한다. 얕아지면 결국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인연은 실리(失利)를 거절한다. 우정에 있어서는 진정으로 표현되고 애정에 있어서는 청순(淸純)함으로 표현된다.

 

인연은 가호(愛護)가 필요하다. 말 없는 계약이다. 심령의 부름과 같다. 인연이 있는 까닭에 세상의 공명 있는 사업이 성공한다. 애정이 충만한, 원만한 많은 혼인가정(婚姻家庭)이 존재한다. 사람끼리 왕래가 빈번해진다.

 

인연이 있어 함께 가기에 우리 감정의 별 속에는 영원을 맺어 마음을 합치는 승낙(承諾)이 생겨난다. 비익조(比翼鳥)와 같은 낭만이 생겨난다. 인연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에서 사람 사이의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다채로운 인생이 더 풍부해진다.

 

삶에 만남이 어찌 없을 수 있는가. 만남은 인연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 인연에 따라 오면 거절(拒絶)할 수 없고 인연에 따라 가면 아쉬울 일도 없다.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인정의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과 화목(和睦)할 수 있다.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아름다운 인연들을 넓게 만날 수 있다. 인정의 아름다움을 함께 얻을 수 있다.

 

만남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다. 어떻게 친구를 선택(選擇)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택권이다.

 

1) 我住長江頭,君住長江尾.日日思君不見君,共飮長江水.此水機時休,此恨何時已.只愿君心似我心,定不負相思意.(북송 이지의(李之儀), 복산자(卜算子))

2) 百世修來同船渡,千年修來共枕眠.(증광현문(增廣賢文))

 

친구가 가지고 있는 뜻은 대단히 넓다.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간단하지 않다. 친구는 잃음과 동시에 다른 친구를 얻을 수 있다. 가정처럼 보호하는 데에 진력(盡力)할 필요가 없다. 일단 교류하고 공통의 사상이 뜻하지 않게 통하게 되면 친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동료와 같이 작업 환경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인사 관계도 필요치 않다. 겹쳐 엇갈리는 일환(一環)이 없기에 더 쉽게 서로 자신의 업무, 가정, 그리고 자신의 고민(苦悶)을 털어놓을 수 있다. 친구는 가깝기도 하지만 멀어질 수도 있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피차간에 변화막측(變化莫測)한 올가미를 가지고 있다.

 

친구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동성 간에는 손과 발 같은 형제처럼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성 간에는 감정을 공유(共有)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 그것이 친구의 가장 높은 경지다. 그런데 피차간에 그러한 경지(境地)에 도달한다면 친구라고 부를 수 없지 않는가. 새로운 어휘를 가지고 형용(形容)해야 옳다 보지 않는가.

 

친구가 되는 과정에는 3가지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 물론 다른 요소도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우의(友情), 좋아함, 사랑이다.

 

우의(우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는 기본적 요소다. 사람 사이의 교류(交流), 사업 관계, 동료 관계, 모임 관계를 포함한다. 친구는 단지 그중의 일부분만을 뽑아내어 초기의 주춧돌을 형성한다. 좋아함은 어떤 사람 혹은 사물이 될 수 있다. 친구도 그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요소를 뽑아내 연속되는 연결체(連結體)로 삼는다. 사랑은 친구 중의 결과다. 남녀의 사랑, 장유의 사랑, 재화의 사랑, 능력의 사랑, 감상의 사랑을 포함한다. 여기에 이르면 이미 친구 사이의 관계가 끝이 나고 새로운 관계 유형이 형성된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난 이후 이야기를 나눠봐서 의기투합(意氣投合)하면 친구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친구는 단지 깊지 못한 교제일 따름이다. 그때 두 사람 사이에는 그저 어떤 방면이나 혹은 국한적인 몇 가지 방면에서 인식의 일치를 볼 뿐이다. 혹은 성격적인 면에서 서로 간에 어느 정도 가깝거나 경모(敬慕)하는 것일 따름일 수 있다. 그것은 일방적인 친구일 뿐이다. 상대방의 배경을 그리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서로 간에 계속 교류하려는 바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처음 단계다.

 

장래에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어쩌면 다음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더 광범위한 부분을 이해(理解)하는 상황에서 느낌이 좋지 않으면 더 이상 교류하지 않게 된다. 아니면 그저 서로 알고 지내는 친구로 지낼 뿐이다. 어쩌면 오로지 함께 먹고 마시고 노는 친구(親舊),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없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장래에 어떻게 진행되느냐를 봐야 한다.

 

계속해서 접촉하는 과정에 교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이것이 동료 중에서 친구가 되는 확률이 많은 이유다. (물론 동학, 어릴 때 같이 놀았던 벗을 포함한다) 피차간에 늘 만나면서 서로 쉽게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함께 할 기회도 비교적 많기에 그렇다. 이것이 좋은 친구가 형성되는 과도기(過渡期) 단계다.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좋은 친구로 발전되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해를 통해서 천천히 상대방의 더 많은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인정(感情), 인지상정이다. 최초의 단계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가장 우수한 면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교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은 적어지고 더 점점 상대방의 단점(短點)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이때에 자신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따져보게 된다. 상대방의 결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게 된다. 상대방의 결점(缺點)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친구와 계속해서 교류해 나간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면?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은 분명하다.

 

이때 둘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높이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후의 교류 과정에서 빈번하게 교류하던 빈도(頻度)는 감소하게 된다. 친구 사이는 이것저것 죄다 말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털어놓을 이야기가 적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한 덤덤함은 그저 형식일 뿐 감정적인 것은 아니다. 쌍방이 이미 상대방의 단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쌍방의 우의(우정)가 여전히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가장 견실(堅實)한 기초가 된다. 이때가 되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좋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옛 사람이 말했다.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

 

좋은 친구 사이에 서로 만나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 친구 사이의 담담함은 쌍방이 더 이상 털어놓을 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담담함이란 사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이다.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다면야 친구 사이에 계속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교류는 친구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일단 만나서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으면 서로 만난 시간이 길든 짧든 상관이 없다. 시간이 무슨 그리 중요(重要)하겠는가.

 

좋은 친구가 된 후, 더 깊이 사귀게 되면 좋은 친구라는 형식(形式)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지기(知己)’. 하나는 남녀의 사랑이다. 그런데 대부분 친구 관계는 역시 보통 친구와 친한 친구로 맺어진다.

 

지기는 친구의 최고 경지다. 남녀의 사랑을 초월(超越)한 가장 깊은 우의(우정)의 경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말을 안 해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다. 서로 속으로 잘 알고 있어 밝히지 않는 묵계(默契). 우리의 세계는 바로 이렇다. 결국 가장 진귀(珍貴)한 것은 소수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물건은 흔치 않을수록 귀한 법이다.”

진정한 우정도 별반 다름없다.

또 이야기 한다.

막역한 친구는 구하기 어렵다.”

지기가 어디 쉬우랴!

 

어떻든 간에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친구가 없을 수는 없다. 친구가 있어야 영원히 행복(幸福)해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를 선택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는 여자가 건장하니, 여자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女壯,勿用取女.)

 

단전(單傳)에서 말하였다. ()는 만남이니, 부드러운 음이 굳센 양을 만난 것이다. “여자를 취하지 말아야 함은 더불어 오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만물이 모두 빛나고, 굳셈이 중정(中正)을 만나 천하에 크게 행해지리니, ()의 때와 뜻이 크도다!

 

【原文】

六三:勿用取女。见金夫,不有躬,无攸利。

象曰:勿用取女,行不顺也。

(一)释字(词)

金夫

指尊贵的男子。通常解释为刚强的男子或多金的男子,皆谬。《易》以乾为金、为玉,金玉喻指贵重、尊贵。如金口玉言,金玉良言,金科玉律、金童玉女等。

《说文》:“躬或从弓,身也。”本义:自身、亲自、本身。

“不有躬”,指失去了本性,迷失了自己,乱了方寸,或忘了自己的身份,行为举止失常。

(二)释象

 

《蒙卦》是由《观卦》变化而来的,《蒙卦》九二原为《观卦》九五。《观卦》是消息卦,根据消息卦特点可知,《观卦》上面刚消去的为一阳爻。《观卦》九五与上九以及刚消去的阳爻组成一个乾体,“乾为金”。《观卦》九五居尊位,身份尊贵,又居乾体,故谓之“金夫”。《观卦》六三与九五本无比无应,《观卦》变为《蒙卦》後,《观卦》九五成为《蒙卦》九二。《蒙卦》六三与九二由卦变前的无比无应变为近比关系,故曰“见金夫”。三位是武人之位,《蒙卦》六三乘于九二阳刚之上,且居位不中不正,象征六三近比“金夫”而举止轻佻,行为不逊,活脱脱一女汉子形象,故曰“不有躬”。且六三在坎体,“坎为沟渎”,这里言乎“渎”,渎即轻浮、不逊。见到尊贵的男子,却举止轻浮、行为不逊,这样没有任何好处,故曰“无攸利”。

女子轻浮、不逊,这是女子的大忌,尊贵的男子见之而惟恐避之不及,更不用说娶之为妻,故曰“勿用取女”。举止轻浮、行为不逊的女子缺乏坤道之顺德,“坤道其顺乎”,女子对尊贵的男子应当依顺,而不能不逊,故《象传》释曰:“勿用取女,行不顺也”。“勿用取女”的理由,就是该女子“行不顺也”。女子以顺德为要,无顺德而不逊,娶之“无攸利”也。

(三)义理

 

《坤卦·文言》:“坤道其顺乎!承天而时行。”《坤卦·文言》又曰:“(坤道者),地道也,妻道也,臣道也。无成,而代有终也。”“无成”就是要有顺德,不追求自我,配合乾道而成之。“有终”就是有好的结果;有终是坤道最好的结局和最高的境界。妻道属于坤道范畴,地生万物,乃顺承天;妇不逊于夫,悖天理也。妇之不逊,家道不兴,无攸利也,故君子不娶。

女子不逊,今谓之“女汉子”。男女平等是指人格上的平等,是指男女之间要相互尊重。男女有别,男尊女卑的古训还是要遵循的。女子轻佻、不逊,就是“蒙”的表现,就是缺乏教养,故社会舆论当力戒之,更不可误导之。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