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제4권 리뷰 4)
조금씩 대관원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처음에 거대하게 느껴졌던 가씨 집안의 구조와 사람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것은 책의 분위기에 적응을 해가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책 속으로 스며들어 갈 때 비로소 생경했던 모습들과 풍경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이고 끈끈함으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책 속의 인물들과 친해지는 방법인 것 같다.
인물사전에 명시된 그들의 운명이나 특징들을 접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 많은 만남이 이루어질 터인데 그들과 친해지지 못했다면 책과 나, 인물들과는 동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4권째 그들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서서히 그들 각자의 특징이 표면에 떠오른다.
가옥과 대옥의 감정대립의 진부함에 별 흥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집안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처음엔 집안에서 행해지는 사치와 형식적인 면들이 바깥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 그들의 내부에 깊숙히 들어가지 못했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집안에서 대부분 생활해야 하는 그들의 고충이 조금씩 느껴져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워 지기도 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가씨 집안의 내부와 생활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지겠지만 그들은 바깥이 동경의 대상이 될 법도 한대 잘 버텨주고 있는 것 같다. 운명으로 받아들여 버리는 것인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은 넓을지라도 그들의 누릴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 한정된 가운데 살다 보니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밖에 없는데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보내는 법을 어느정도 아는 것 같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사회를 만든 것이다. 보옥과 가옥은 물론이고 보채,석춘,상운,이환,영춘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로 하고 처음으로 치뤄진 시사회는 인상 깊었다. 떠오르는 주제를 놓고 형식에 맞춰가며 시를 짓고 발표하고 시상까지 하는 모습은 어떻게 하면 시가 저렇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란 감탄을 터트리게 되었다.
중국의 시이고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보니 그들이 지은 시에 완벽한 수긍은 못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대단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였다. 어렸을 때 부터 귀한 집안의 자제들로 자라나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고 부유층의 사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이 있었기에 문학적인 요소가 깃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가씨 집안의 일상을 다루되 시대상이 묻어 있지 않거나 늘 반복되는 삶의 파편들만을 늘어 놓았다면 쉽게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삶의 질은 다를지 모르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모양은 비슷하기에 진솔하게 펼쳐지는 가씨 집안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문화가 다르고 인식의 차이가 나기에 그들의 전부를 이해하지 못할때도 많지만 세월의 흐름을 따라 뒤쫓아 가는 나의 모습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1/3 읽었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이 즐겁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소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거창함 보다는 이렇게 소소함에서 퍼져 나가는 삶의 향기가 더 진귀한 것 같다.
홍루몽 4권을 읽으면서 사람의 신분에 귀천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영국부의 사람들과 그들의 수발을 드는 시녀들,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일꾼들... 정말 가보옥네 가족은 호의호식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당시는 신분제가 엄연한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철없는 마마보이 가보옥이 이번엔 제대로 걸려들었다. 자신의 장난으로 어머니 왕부인의 시녀 ‘금천아’가 자결을 하자 아버지 ‘가정’에게 죽도록 얻어맞는다. 홍루몽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인데 이 집안의 남자들 중에 잘난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점이다. 주인공 가보옥 또한 보통의 모범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또한 여성들 일색이다.
4권에서는 대관원에서 열린 해당시사가 압권이다. 물론 한시에 문외한이라 한글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나 당시 상류층의 중국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관원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즉 시녀와 하인들의 존재가 부각된다. 또한 막대한 재원 조달의 문제 또한 성찰해 봐야 할 측면이다. 영화를 누리고 있는 영국부 사람들의 한 끼 식사비용이면 농촌의 일가가 1년간의 양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양극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현대와 어찌 이리도 비슷할까 싶다.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4권이 시작되었다. 세 주인공들의 관계 역시 더 이상 특별한 진전은 없다. 3권에서 습인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서 혹시나 큰 병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사실 하녀들 중 습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현명하기도 하지만 ‘가보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감싸주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옥의 어머니인 왕부인은 보옥이보다 죽은 큰아들 가주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녀의 그런 마음은 보옥이 가환의 거짓알림으로 인한 아버지 가정에게 몰매를 맞았을 때 나타난다. 그 사건의 발달은 왕부인의 시녀 ‘금천아’가 우물에 빠져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자살이 보옥이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가환의 거짓고자질을 확인도 하지 않고 믿어버린 아버지 가정에 의해 죽을 만큼 몰매를 맞게 되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시련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얼마나 삭막하면 아버지가 확인도 하지 않고 아들을 그토록 때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대부인의 만류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그 불통은 괜시리 설반에게까지 가게 된다. 물론 거짓고자질이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버릇없는 보옥이 조금은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4권에서는 볼만했던 것은 보옥, 대옥, 보채, 탐춘 등이 정식모임을 가지고 시회를 열였던 것이다. 각자의 별호도 짓기도 하고 첫 국화 시회에서 대옥이 장원으로 뽑히기도 하는데 화려한 모습들 뒤에 다가올 어두운 그림자가 있음을 아는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가부와 대관원의 화려하고 거대함을 마음껏 누려보아야겠다.
3권에서 보옥이 그토록 중하다 하던 습인을 시건방진 시녀로 오인하고 발로 걷어차게 되는 장면에 본인은 무척 놀랐었는데, 그로 인해 4권의 첫 시작은 습인과 보옥의 모습을 다룬다. 피까지 토해내고도 보옥을 감싸주는 습인을 보니 측은해지기도 하고. 대부인의 사랑을 받는 보옥의 철없음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이내 씁쓸해졌다. 아직은 어리다고는 하지만 남자들보다는 여자들 속에서 소심해지고 여성화 되는 것 같은 그를 보면 왜 '옥'을 물고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청문이 옷을 갈아입혀주면서 부채살을 밟는다고 뭐라고 하는 부분이라던지, 보옥은 의젓해지기는 커녕 더 어려지는 것 같으니 왕부인과 가정의 속앓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그래도 주인공이라고 편애하는 본인의 모습이 어찌나 '대부인'과 같아보이던지.
대옥는 3권에서의 분위기를 몰아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나 원래가 소심하고 우울함이 자신의 삶 그자체라 느끼는 대옥과 보옥은 싸우지 않아도 될 문제로 아웅다웅 거리고 그러는 와중에 금천아의 죽음과 보옥이 잠시 만난 기관이라는 사람을 어디에 숨겼다고 확신한 총집사와 보옥을 시기한 가환의 고자질로 인해 그의 아버지 가정이 보옥을 매질한다. 들어보지도 않고 남의 말만 믿은 가정도 문제이지만 그런 상황을 겪고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보옥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렸다.
4권에서 역시 녕국부 영국부에서 일어나는 대소사가 주를 이룸과 함께 보옥과 대옥의 관계가 무르익어감과 보채와의 관계가 수면위로 떠오르듯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점차 그 목적지를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것은 대관원에서 해당시사를 열어 서로의 시를 견주고 어울리는 모습이었는데 게를 먹는다는 작은 제목을 가지고 세인을 풍자한 보채의 시, 아니 설보채라는 인물을 빌어 풍자의 시를 보여주고자 한 부분에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눈앞의 길은 가로 세로 분별이 없고
딱지 속 창자는 검을락 누를락
달 비치는 물가에 벼 향기만 가득하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음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세인과 세인들의 원칙 없는 행동을 게에 빚댄 제3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여서 몇 번이고 그 부분을 읽었던 듯 싶다. 나머지는 유노파가 희봉을 찾아와 대분인이 반기는 내용인데. 그 이야기는 5권으로 이어진다. 그럼, 다음회를 기대하시라.
4권에서 가장 큰 줄기는 보옥의 대옥을 향한 마음을 직접 표현한 앞부분과 가정에게 가환이 보옥을 헛되이 고자질함으로써 끔찍할정도로 매를 맞고 여러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부분과 보옥, 대옥, 보채, 상운, 영춘, 탐춘, 이환 등이 대관원에 모여 해당시사를 열고 마음껏 시를 짓고 나눔으로써 즐거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여러 등장인물이 나타나 책 속의 사람들과 독자를 즐겁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간간히 삽입되어 있는 그림도 자세히 보게 마련인데 항상 생각한다.
대옥이 조금만 더 혈색있고 활기찬 여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보옥과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심약하고 병약해서인가...싶으니 더 가슴이 아프다.
정신없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부질없는 생각한번 해봤다. 한국에는 박경리의 토지란 작품이 한국의 격동기이면서 치욕기라 할 수 있는 때를 배경으로 한 지주 집안의 흥망성쇠를 다루어 대작이란 평을 들은 것처럼 중국의 홍루몽이 그런 평을 듣는다 할 때, 대작이라 평을 들으려면 과연 그 나라의 배경을 전혀 무시하고는 멋진 작품이 나오기가 참 어렵겠구나 싶었다. 그러니 사람으로써 내실을 튼튼히 하려면 어찌 좋은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 너무 책을 많이 안읽으거야,,,앞으로 열심히 읽자. 나에게 홍루몽이란 작품을 읽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습인의 병이 큰 것이 아니어서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4권. 딴소리지만, 4권쯤 읽게 되니까 머리 속에서 보옥이의 명언록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명언록이라고 하기엔 조금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가보옥은 그 정도로 "~~한다면 난 머리깎고 중이 될거야" 라든가 "확 죽어없어져 혼백도 남지 않도록 하겠어"라는 말들을 많이 쓴다. 이게 요즘 식으로 따지면 "내가~~하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랑 비슷한 어감인가보다.
그 외에 4권에 나오는 주요 사건들이라면 보옥의 고백씬과 해당시사 결성이다. 우선, 보옥과 대옥의 애정전선이야 언제나 그렇듯이 밀고 당기며 그 와중에 튕겨주기도 하기 때문에 장차 한 10권쯤 다다르지 않고서야 어떤 확실한 결론에 다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그 두 사람 이외의 다른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에 해당하는 것이 4권에서는 역시 해당시사인데, 해당시사는 홍루몽에 등장하는 젊은이들끼리 모여 각자의 별호도 지어가며 매달 정기적으로 시를 짓고 감상하는 시회이다.
따라서 4권에는 (아마 이 시사가 계속 유지된다면 5권에서도) 한시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그 때문에 운을 따고 주제에 맞추어 시상을 전개시키는 등의 '전문적'인 대화가 종종 나오므로 나같이 한시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더듬더듬 같이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특히 이전부터 시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임대옥의 시들도 나오기 때문에 대옥의 시와 다른 탐춘, 보채들의 시를 비교해보는 것도 한 재미인 듯 하다.
실제로도, 이미 편견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옥의 시는 다른 이들의 시와 달리 시상의 전개나 정경을 그려내는 필치가 대범하고 시원하며 그러면서도 경박하지 않아서 좋았다.
4권 후반부에 나오는, 이 풋내기 시인들이 '국화'를 주제로 걸고 여는 시회에서 임대옥의 시가 1등으로 꼽히니 소설을 읽는 중에 그 시를 한 번 여유갖고 느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이번 홍루몽 4권에도 여러 굵직굵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보면, 왕부인의 시녀였던 금천아가 우물에 빠져죽은 이야기부터 철부지 보옥이 아버지 가정에게 제대로 곤장을 맞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보채, 대옥, 상운 등의 아가씨들이 '해당시화' 라는 모임을 만들어 각자의 시서를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국화꽃을 주제로 12가지 시제를 정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짓고 싶은 시제를 선택하여 창작을 하고 읊는데, 시의 내용이 처음에는 마음속에 잘 와닿지 않았지만, 다시 곱씹어서 읽을수록 멋들어진 풍류를 느끼게 했다. 말미에 등장한 유노파의 캐릭터 또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좌중을 웃기며 분위기를 휘어잡는 능력도 보여서 읽는 나로서도 절로 미소를 자아나게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올곧고 멋진 인물들이 슬슬 나타나고 있는데, 보채와 습인이 바로 그들이다. 하라는 공부는 뒷전이고 대부인의 품에 쌓여서 고생을 모르는 철부지 보옥을 위해 진심어린 조언과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게끔 하는 두 인물이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기에 앞으로의 활약상도 기대가 된다.
전반적으로 아직까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평이하고 무난히 흘러가는 것 같다. 평화롭고 안정된 삶에 앞으로 어떤 사건들과 반전이 있을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폭풍 직전의 고요함을 태풍전야라고 했던가?
꽃이 만개하고 난 직후의 화려함을 4권에서 엿볼 수 있었다. 방마다 그 방을 담당하고 있는 수많은 하녀들, 심부름 시키면서 자기의 기분 좋고 나쁨에 따라 심부름 값을 두둑이 얹어주는 마님(혹은 방주인)들. "이 방에 있는 개가 먹다 남은 것이라도 마님이 주는 것이면 고맙게 받을 테니까." 라는 어느 종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 방의 마님이 나눠주는 물건은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대부인 방에 열명, 보옥이 방에 몇 명, 하다못해 얹혀사는 대옥이-혼자 신분이 낮다고 고민하는 있는- 방에도 몇 명. 상운이 습인에게 가락지를 준비해서 주는 것처럼 아랫것(윗분이 특히 총애하는)들도 챙겨줘야 하고, 누구를 챙겨주면 또 누구를 챙겨줘야 한다.
음식 하나를 먹으려고 해도 그렇다. 보옥이 난데없이 연꽃으로 된 요리가 먹고 싶자고 하자, 결국 희봉은 자기 몫의 재산을 털어 대부인부터 보옥 네에까지 집집마다 요리를 배달해야 했다. 체면치레든, 예의든 무슨 일이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부산스럽고 요란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꽃이 활짝 피고나면 지기 마련이란 것이다. 작가가 1, 2, 3권에서 내내 어두운 전개를 암시해 왔듯이 이 화려함이 내겐 전부 패가망신의 징조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달은 차면 기울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그러자 대옥이 매일 읊어대는 시마저 앞날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차 내가 죽으면 장례 치러줄 이 누구인가?’ 대옥이 얼마나 즐겨 노래하면, 대옥의 앵무새까지 따라 읊겠는가? 혹시 대옥의 불운한 죽음을 암시하는 시가 아닐까?
보옥도 이를 고민한다. '아아, 장차 나를 장사지내기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일까?' 비록 조금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말이다. “엊저녁에 내가 너희들의 눈물로 나를 장사지내 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틀린 말이었어. 나 같은 인간은 도저히 그 전부를 독차지 할 수 없는 거야. 앞으로는 각자가 자기의 눈물만으로 장사를 지내는 길밖에 없는 거야.”
보옥은 이때까지 한 사람이 한 사람과의 인연 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걸 몰랐다. 그걸 깨닫고 일순 충격 속에 빠진다. ‘세상 모든 여자가 나의 연인’에서 ‘내 운명의 상대는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보옥의 갑작스런 깨달음, 혼란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당연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라는 생각보다는 여자들 중에서 홀로 자란 남자아이,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라, 아가씨들도 보옥을 귀하게 대하고, 보옥을 모시는 습인이네들도 이리 저리 비위를 잘 맞추니 오히려 보옥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보옥은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이런 엉뚱한 보옥이 맘에 든다. 그의 시대를 뛰어넘는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마저도 사랑스럽다.
“사람이란 누구나 다 죽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죽는가 하는 거야. 문신은 간언에 죽고 무신은 싸움터에서 죽는다고 하잖아. 사내대장부의 절개 때문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다 공명에 죽으면 나라는 누가 지키겠어.”(보옥의 대사 요약)
습인은 이 말을 듣고 참으로 해괴하고 망측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은근히 그 당시 부조리한 중국의 사고관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읽히는 유쾌한 기분이다. 보옥과 작가가 또 어떤 엉뚱한 면모를 보여줄지, 5권이 기대된다.
보옥이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다. 그동안 습인이 마음졸이며 그토록 타일렀건만, 할머니와 여러윗분들의 치마폭에 싸여 자기 좋을대로 하더니 여러가지 사건이 겹쳐 일어나면서 그동안 가정의 마음에서 곪은게 터진셈이다. 그나마 습인이 곁에 있으니 안심이랄까. 무언가 보옥은 사람을 마음 졸이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 가씨집안에 시동호회가 결성되었다. 이름 하여 " 해당시사"
그들이 함께모여 시를 짓는 것을 보니 대학교 때들은 수업이 생각났다. 과목은 당송시사였는데 오언율시 칠언절구 등을 배우고 각자 시법에 따라 시를 지어오는 것이 과제였다.운을 맞추고 뜻을 맞추느라 꽤 골머리를 썩히다가 결국 약간 어색하지만 얼추 맞추어 과제를 냈다. 그 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재밌게 지어진 시를 발표하게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들고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한다며 오언율시를 지어와서 한바탕 실컷 웃었었다.
이미 열린 두차례의 시사에서 다들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는데, 앞으로 그들은 어떤 멋드러진 시를 지어서 보여줄지. 자 기대하시라~
홍루몽은 점점 화려해 지고 있었다. 마치 가씨집안의 융성함이 만발하듯. 그러한 융성함과 화려함에 반해, 아들들의 추태가 가지가지였다. 시녀를 나무랄 일에 나무라지 못하는 모습, 형을 모함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모함을 듣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력행사부터 하는 모습. 한심하기 이를때가 없었다.
가문의 융성함과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반해, 내적으로는 문제투성이의 모습이 이 집안의 망조를 가늠케하게 하였다.
물건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시녀 금천아는 우물에 빠져 자살을 하는 반면, 보옥의 부채를 망가뜨린 청문은 오히려 주인에게 대들고, 그런 청문을 달래기 위해 부채를 찢도록 주는 모습이. 극과 극의 잘못된 모습으로 웃지 않을수 없었다.
특히 4권에서는 사상운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데, 금기린을 옥으로부터 받을정도로 친한 사이며, 수 솜씨가 좋고, 남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발랄하고 명랑한 아가씨였다.
대옥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생각이 너무 많고 감성적인 대옥보다는 보채를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이 집안의 여자들은 대부분 설보채를 좋아하며, 그러한 모습이 대옥으로 하여금 더욱 보채와의 거리를 주고, 혼자 외로움을 타게 만든듯 하였다. 물론 성격탓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채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냥 말로만 좋은 성격이라 칭송받는 것만 보았지, 보채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또는 인품이 드러날만한 사건이 없어 보채는 미루기로 한다.
보채보다는 아니, 이 집안 어느 여자보다 사려깊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따로 있었다.
바로 습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여자들에 둘려싸여 학업을 게을리하는 보옥의 한심함을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습인이 왕부인께 보옥의 교육에 대해 직언을 하며, 대관원을 나가야한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역시 이 집안에 제대로 된 인물은 있구나 싶었다.
안타깝게 그것이 바로, 보옥의 종에 불구하다는 점이지만, 보채등이 보옥에게 직언을 하지만, 역시 그냥 말뿐. 어쩌면 목숨을 거는 일일수도 있지만, 보옥을 진정으로 위하는 습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왜 금릉십이채 우부책인지 모르겠지만, 습인은 정책에 들어서도 손색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집안의 앞날이 점점 걱정이 되어만 간다. 그래도 4권의 묘미는 탐춘이 제안한 해당시사이다. 이 시사가 계속되는 한 주옥같은 시들이 계속 탄생할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된다. 나도 사상운의 게를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
왕부인의 오해를 받아 금천아의 추방에 상심해 있던 보옥이 홧김에 습인을 때려 습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서 3권이 끝난다. 아무리 주종관계라고 하지만 이리도 심하다니... 그런 상황들이 과거에 비일비재했고, 더 심한 일도 나름 있었겠지만 무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자가 아니던가. 젠장! 빌어먹을... 욕설이 나온다. 긴장감과 함께 어느 때보다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다행히 습인은 무사하였고 그와중에서도 습인의 현명함은 발휘되었다. 보옥이 이로 인해 곤경에 처할까봐 곧바로 약을 얻지 않고, 다음날 사람들 몰래 약을 얻어온다. 자신의 몸은 추스리지 않고 왜 그렇게까지 보옥을 생각해 주는 것일까. 그저 놀랄 따름이다. 그 따위의 주인을 위해... (보옥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민이나 그런 감정따위 없다. 같은 남자로써 화가 날 뿐이다.)
쫓겨난 금천아는 누명이 억울하여 모질게 목숨을 끊고 가환의 시기와 고자질로 이 사실이 아버지인 가정에게 알려진다. 노한 가정은 보옥을 흠씬 두들겨 때리고...
'가정, 잘한다.' 가정을 응원했다. 누구의 편을 들 것이 아니지만... 보옥이 매맞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적인 대리만족을 느꼈다.
오해와 거짓으로 점철되었다고는 하지만 보옥의 장난으로 빚어진 일 아닌가. 그리고 이제 정신 차려야 할 게 아닌가. 어린 것도 정도가 있지. 물론 방법이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보옥아.'
대부인과 왕부인의 만류에 가정은 매질을 멈추고 보옥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습인, 보채, 대옥, 왕부인, 대부인 등을 비롯한 주위의 보살핌으로 이내 회복하게 된다. 습인이 보옥의 이후의 일로 왕부인에게 아뢰는데, 습인의 따뜻한 마음씨와 현명함, 냉철한 판단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흠모의 감정을 아니 품을 수 없을 것이다. (음... 나만 그런가? ㅋㅋ)
이후 별다른 진전없이 막을 내린다. 대단원의 터닝 포인트일까. (조금 께림직 하다. ) 아님 폭풍 속의 고요일까나.
4편은 귀족들의 생활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보옥,대옥,보채,상운,영채,석춘,탐춘.이환은 시사의 모임을 만들어 한달에 서너 번의 만남을 갖게 되는데 우리네의 친목모임에 비교를 하자면 이들의 모임은 운치가 있다. '운'자를 만들고 거기에 맞추어 시를 짓고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준다. 대관원에서 처음으로 해당시사를 짓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내게는 다가왔다. 나도 저 속에 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던 부분이니까..그래서 귀족은 그냥 귀족이 아니구나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를 감상하는 이들의 태도 또한 신사적이다. 모두들 보채의 시를 추천하는데 그 일부분을 적어보겠다.
고운 꽃을 남이 볼까 낮에도 문을 닫고
정한 물 길어다 이끼 덮인 화분에 주네
연지로 씻어낸 가을 그림자 깨끗하여
빙설은 은근히 이슬에 젖은 혼을 불러오는 듯
담담한 극치에 피는 꽃이 더욱 고울진대
서글픈 그 마음 옥에 묻은 티와 같구나
깨끗함을 가지고 신령님의 은혜를 갚고저
말없이 고이 서서 저무는 해 바래다주네~~
'분'자와 '문'자를 집어넣어 시구를 짓은 것인데 여러 편의 시구를 읽다보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라 하면 금천아가 우물에 빠져 죽은 장면과 그리고 중순친왕이 찾아와 보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가정은 그때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쌓여 보옥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하며 왕부인이 쫓아와 통곡을 하고 대부인까지 알게되어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런 보옥을 습인은 온정성을 다해 간호를 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오니 등장인물이 이제는 술술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책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금천아의 경솔한 죽음은 요즘 뜨고 있는 사건들과 연관이 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일로 인해 보옥은 죽을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말이란 참 어려운거 같다. 차라리 하지 않는것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가보다. 화려한 그들의 문화가 점점 어색하지만은 않다...5편이 기대된다...기대하시라~~
3권에서서는 31회에서 40회까지의 이야기이다. 3권의 마지막에 습인이 보옥의 발길질에 차여 쓰러졌는데 다행스럽게도 타박상이어서 안도했다. 향후 보옥에게 습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드디어 보옥이 대옥에게 고백을 했다. 대옥을 향한 사랑의 표현
"대옥누이! 이 가슴속에 서리고 서린 심사를 지금까지는 고백해 볼 용기가 없었어. 그렇지만 오늘은 더 참고 있을수가 없어서 용기를 내어 고백했던 거야.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겠어. 사실은 나도 누이 때문에 몸을 상하고 있었어. 그저 아무한테나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일이라 지금까지 숨겨 왔을 뿐이야. 아마 대옥 누이의 병이 나아야 내 병도 나아질까봐. 잠을자도 그렇고 꿈을 꾸어도 마찬가지야. 난 한시도 대옥 누이를 잊고는 살 수가 없단 말이야..."
앞으로 두사람의 사랑 놀음이 어찌 진행될지 궁금하다.
중국의 4대가문 중 하나답게 참 시녀들도 많다. 이름이 너무 많아 누구 밑에 시녀인지 헷갈린다. 한 사람당 대충 8명의 시녀를 거느리고 있으니 아마도 어마어마한 식구들인 것 같다. 종들의 월급또한 만만치 않아 희봉은 그돈을 이용해 이자놀음을 해서 개인 사리사욕을 채운다.
왕부인의 시녀 금천아가 우물에 빠져 자살을 한다. 금천아의 죽음에 보옥이 연관된 걸 알고는보옥의 아버지가 크게 진노하여 보옥이 심한 매질을 당한다. 사실 내가 볼때는 맞아도 싸지만......철없는 아들을 보는 애비의 심정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맘이 든다. 보옥의 어미 왕부인과 대부인은 크게 상심했지만..
대관원의 식구들은 모여서 시놀음을 하는 모임 해당시사를 만들고 첫 모임인 국화시는 대옥이 장원으로 뽑힌다. 시. 노래. 연극 같은걸 즐기는 모습을 책속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인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풍류를 좋아하는 거 같다. 또한 대부인의 먼 사돈인 유노파가 다시 왕부인을 찾아와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중간중간 욕심에 눈먼 유노파, 재물을 향한 욕심은 지위고하를 떠나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사실 너무 아부를 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낮은 노인이라고해도 노인을 놀려서 그녀들의 웃음거리로 삼는건 좀 심한거 같다.
4권에서는 아직 뚜렷한 사건은 없지만 대관원에 사는 젊은 사람들의 놀음-시제를 정해 시를 짓고 어느 시가 우수한가 평가 하는 식의 놀이는 참 흥미로웠다.
특별한 사건도 없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홍루몽의 매력이 아닐까~
몰매 맞는 보옥
보옥은 시녀들에게 언제나 열성적이며 살뜰하다. 청문은 그러한 보옥의 마음을 아는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홍루몽 제 4편은 보옥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시작한다.
보옥의 주위엔 모든 이들이 여성이다. 대옥, 보채 상운, 습인 청문, 사월 그리고 수많은 시녀들 그런 그에게 시기하는 자가 없을 리 없지 않은가?
금천아의 죽음으로 보옥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거의 죽도록 아버지 가장에게 몰매를 맞는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서툰 행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가장은 보옥에게 갖은 죄를 물어 타박(?)을 한다. 이를 본 대부인과 왕부인의 하소연은 그지 없기만 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왕부인의 노력으로 가장은 결국 매를 내리지만 이미 보옥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가누기가 힘들 정도가 되고 만다.
이를 본 습인을 비롯한 가족의 마음을 찢어지기만 한다. 하지만 정성어린 가족의 돌봄을 본 대옥은 혈혈단신인 자신의 처지가 가엽기만 하다.
보채는 이러한 이면에 설반의 잘못이 있음을 알고 오빠를 꾸짖지만 설반은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한다.
시사
이환을 중심으로한 보옥의 가족들은 추상제에서 시사를 열기로 하고 형무원에서 국화를 시제로 정한다. 이들은 서로의 시에 추천과 감탄을 연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대옥의 시는 시회에서 장원으로 뽑히게 된다.
홍루몽 4권은 다난한 중국 가정의 문화와 시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애틋하기만 한 보옥과 대옥의 사랑 이야기는 서로에게 가슴 아픈 현실만을 전해줄 뿐 별다른 효과는 없지만 지금의 세대와는 다른 감미로움을 맛보게 해준다.
특히 시를 통한 자신의 처지를 그린 대옥과 가씨 가문 사람들의 시는 자체로서도 무척이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내면을 암시한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가정의 불편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가장의 행위에는 다소간의 눈살이 찟뿌려지는 듯 하지만 아버지에게만은 어쩔줄 몰라하는 보옥의 애처로움에 정만 더 할 뿐이다. 이제 5권은 어떤 이야기가 준비 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읽다보니 각 권마다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주요 스토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보옥의 집안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며 이들과의 갈등양상이 이번 이야기에서 주요 명제로 떠오르게 된다. 가보옥이 왕부인의 시녀인 금천아에게 다가가 농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를 좋지 않게 받아들인 그녀가 우물에서 자살하면서 보옥에 대한 좋지 않은 마음을 가졌던 가정에게는 보옥에게 더욱 큰 화를 표출하는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가정의 심한 매질에 보옥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주위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이내 그 힘든 시간도 잘 지나쳐 가게 된다. 이외에는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나 이야기의 움직임은 크게 보이지 않으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보옥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함께 모여 시를 짓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모임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시대에도 이런 학문적인 동기를 마련하고 함께 공부를 하고 그들만의 소통시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참 신선하게 느껴진다. 과거에도 그들만의 소통문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역시 예나 지금이나 배움의 기틀은 삶의 근본을 이루는 것인가 보다.
홍루몽4권에선 3권의 줄거리에 이어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조금의 진전이라면, 보옥의 대옥을 향한 마음이 정확하게 드러나게 되고, 대옥 또한 같은 마음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완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국부와 녕국부 젊은 이들의 놀이에 시선이 맞춰 있었다.
대관원에 자리를 잡고 시사를 하게 되고, 주인공들인 보옥, 대옥, 보채, 영춘, 상운 등이 모여서 한달에 한두번 시사를 갖게 된다. 사시를 맡은 사람이 손님 대접 또한 해야하는데, 상운이 가난해서 보채의 도움을 받는 부분등이 기억에 남는다. 소설 속에서 보채는 현숙하고,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가끔 보채의 대화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느낌도 약간씩 들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대옥은 고집도 쎄고 성격이 완만하지 못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늘 눈물이 많아서 여린 부분도 많이 느껴졌다.
부잣집인 만큼, 흥청망청 하는 경향이 짙어, 모든 음식과 집들의 묘사들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젊은이들 또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하지않고, 늘 모여 시를 짓거나 연극을 구경하고, 하녀들이 모두 시중을 들어주니 그 시대의 귀족들의 삶이 태평천하인듯 하다.
특히 주인공인 보옥은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났다고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서 귀하게만 자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여자들과의 장난을 즐겨하고 늘 노는 곳에만 집중하니, 남아로 태어나 실로 걱정되는 삶인 것 같다. 반면 보채와 대옥은 시도 잘 짓고, 책도 많이 읽은 현명한 여성으로 자라는 것 같다.
4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은 습인이었다. 보옥의 방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하녀인 습인은 현명하고, 마음이 좋아서 보옥을 잘 챙겨주고, 미리 말하지 않아도 보옥의 입신양면에 도움을 크게 줄 것 같다. 또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습인의 행동을 칭찬하니 월급 또한 올라갔다.
많은 진전이 있는 줄거리는 아니었지만, 귀족들의 삶을 많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노력없이도 아무런 걱정없이 잘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계속 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그들의 행복한 시절의 한 때를 보는 것 같은 내용이었다.
4권까지 읽으니 이제 등장인물들의 친척관계나 성격 등을 거의 알게 되었다. 철이 없는 보옥과 너무 예민하고 감상적인 대옥, 의젓하고 이해심 많은 보채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들을 잘 표현해 놓았다.
4권에서도 큰 사건이 몇 있었는데, 바로 금지옥엽 귀공자가 아버지께 두들겨 맞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보옥이 어머니 왕부인에게 놀러갔다가 왕부인의 시녀 금천아에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필 왕부인이 이를 듣고는 금천아를 쫓아버렸다. 그런데 금천아는 치욕 때문이었는지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이를 가환이 아버지 가정에게 과장되어 일러바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보옥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가정은 다른 사건과 이번 시녀 자살 사건으로 인해 보옥에게 매를 때린다. 얼마나 심하게 매질을 하였던지 “보옥은 얼굴이 백짓장같이 핏기가 사라지고 숨소리는 끊어질듯 말 듯 가늘었다. .... 엉덩이로부터 허벅다리에 이르기까지 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 있지 않으면 살갗이 터져 피가 시뻘겋게 범벅져 있었다. 몸이 성한 데라고는 한 곳도 없었다.”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아무튼 다행이도 어머니와 할머니가 와서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뼈가 몇 개 부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죽다가 살아난 보옥은 주위의 간호를 받으며 점점 기운을 차린다.
그래도 4권에서 가장 볼만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보옥과 대옥, 보채, 탐춘, 이환, 상운 등의 해당시사를 연 것이다. 이들은 한 달에 2번 정도 정식 모임을 가지면서 시회를 열기로 한다. 시를 짓고 서로 그것을 평가하고 장원을 뽑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별호도 지었는데 이환은 도향노농, 탐춘은 초하객, 보채는 형무군, 보옥은 이홍공자, 대옥은 소상비자라고 짓는다. 처음으로 연 국화 시회에서 대옥이 장원에 뽑힌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놀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으로 4권을 끝맺는다. 화려하고 풍요롭게 생활하고 있는 가씨 집안이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 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이제 5권은 어떻게 흘러갈까?
지금껏 달려온 이야기와는 다르게, 4권의 이야기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거나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기보다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나 "시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반 이후를 대부분 자리하고 있어, 이게 소설책인지 시집인지 혼돈스러울 정도다.
그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던 "가보옥"에게 시련의 시절이 찾아오니, 그것은 자신의 장난으로 인해 어머니인 왕부인의 시녀가 자살해버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노한 아버지 "가정"에게 매를 맞기도 하고.. 철없는 귀공자가 제대로 혼구녕이 나게 된다. 다만, 이로 인해 보옥의 거침없는 성격은 좀 나아지긴 할 것인가...
4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시사"이다. 보옥과 그의 여인(?)들(보채,대옥,탐춘,.....)이 모여 시를 짓고 그것을 평가하는 모임으로, 당시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주인공 외 모든 이들이 여자인 탓에.. 이해가 어렵기도 하지만>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시를 짓고, 또 그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평하고.. 실제 한문학을 전공하거나 이 부분에 소양이 깊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좀 힘든 부분이 이 부분이다. 물론 나 역시 주어진 문구에 대해 있는 그대로 느끼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중국인들이 홍루몽을 그렇게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싶다.(그 문화 특유의 스타일이랄까..) 수 십개의 시사들은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듯 보인다.
시사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이 바로 "화려함"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귀족가문들이 엄청난 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책속 부록에 표시된 것과 같이 대단한 "대관원"을 조성하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그 엄청남에 놀랄 수 밖에 없다.(한 집안에 공원 하나를 조성했다고 본다면..) 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느 가정의 1년 양식값을 한끼 식사로 사용하는 주인공 일가의 씀씀이는 이 집안의 기세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로 인해 집안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겠지만..
커다란 갈등도, 사건도 없이 지나간 4권.. 화려한 동양화 몇 점을 지켜본 느낌이다. 소설속 화려한 시사의 모습 속에 한편으로는 쇠락해갈 집안의 운명이 보이는 듯 하다. 여전히 철없는 보옥과 여전히 감성적인 대옥과 여전히 의젓한 보채.. 5권에선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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