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소오강호 4-4 김용

一字師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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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소오강호 4-4 김용

 

                                        图片来源 | 《笑傲江湖》为什么着意弱化时代背景?金庸内心深处有原因

 

상문천은 네 사람의 얼굴색이 굳어 있자, 영호충이 대장주와의 대결에서도 이겼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대장주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흑백자는 여전히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해도 독필옹과 단청생은 틀림없이 의기양양하여 자기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어 장욱의 붓글씨가 범관의 산수화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물었다.

 

[풍형, 풍형, 대장주께서는 한수 가르쳐 주었소?]

 

영호충은 말했다.

 

[대장주의 공력은 심히 높아 예측할 수 없더군요.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내공이 전부 소실되었으니 나를 상대로 요금에서 발산하는 내력은 힘을 쓸 수가 없었지요. 천하에 이같이 요행한 일이 어디있겠으니까?]

 

단청생은 눈을 부릅뜨더니 상문천에게 말했다.

 

[이 풍형의 사람됨은 진실하여 무엇도 숨기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은 이 풍형의 내공이 당신보다 높다고 했으니 우리 큰 형님께서 속으신 것이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풍형의 내공이 소실되어 않았을 때는 틀림없이 나보다 났다오.

내가 말한 것은 옛날이지. 절대로 지금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외다.]

 

독필옹은 흥 하고 코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오.]

 

상문천은 공수하며 말했다.

 

[매장 중에는 우리 풍형의 검법을 이긴 사람이 없으니 우리는 물러가겠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호충에게 말했다.

 

[자, 우리는 갑시다.]

 

영호충은 포권을 하고 고개를 숙여 말했다.

 

[오늘 네분 장수를 만난 것은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훗날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 보겠읍니다.]

 

단청생은 말했다.

 

[풍형, 당신은 술이 마시고 싶으실 때는 언제든지 오시기 바라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영주를 하나하나 맛보여 드리리다. 그런데 이 동형은 조금 곤란하오. 허허허! 허허허!]

 

상문천은 미소지었다.

 

[나는 주량이 작으니 다시 와서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겠소.]

그리고 공수를 하더니 영호충의 손을 끌고 나갔다.

흑백자는 등이 환송을 나왔다.

상문천은 말했다.

 

[세분 장수께선 멀리까지 나오시기 마십시오.]

 

독필옹은 말했다.

 

[흥, 우리가 당신을 환송나왔다고 생각하시오? 우리는 풍형을 환송하는 것이오. 만약 동형 혼자 이곳에 왔다면 우리는 한발짝도 환송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오.]

 

상문천은 웃으며 말했다.

 

[오, 그렇게 되는것이군요.]

 

흑백자는 대문밖까지 환송을 나오더니 그제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깊게 우정의 정을 나누었다. 독필옹과 단청생은 상문천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의 등 뒤에 있는 보따리를 빼앗지 못함을 분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상문천은 영호충의 손을 잡고 매장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버드나무 숲 근처에 와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 대장주의 금에서 튕겨져 나오는 무형검기는 대단히 무서운데 동생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

 

영호충은 말했다.

 

[원래 형님께선 모든 것을 알고 계셨군요. 나의 내력이 모두 소실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지요. 형님, 이 네분 장주와는 무슨 원한이라도 있읍니까?]

상문천은 말했다.

 

[아무 원한도 없네. 나는 그들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어찌 원한을 있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어떤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동형, 풍형 잠깐만 기다리시오.]

 

영호충이 보니 단청생이 손에 술이 가득 담긴 술잔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며 부르고 있었다.

 

[풍형, 내게 백년넘은 죽엽청(竹葉靑)이 있오. 이것을 맛보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니겠소.]

 

그러면서 술잔을 건네주었다.

영호충은 술잔을 들고 바라보았다. 술이 파랗기는 옥같이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그 향기도 강해서 칭찬했다.

 

[과연 명주이군요.]

 

한모금 마신 후 다시 탄성을 질렀다.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반잔의 술을 비운 후 말했다.

 

[이 술은 맛이 중후하군요. 과연 양주 진강(鎭江)의 명주올시다.]

 

단청생은 기뻐서 말했다.

 

[그렇소, 이것은 진강 금산사(金山寺)의 진사(鎭寺)의 보물이지요. 모두 여섯병이 있었는데 절의 대화상인 수계(守戒)께선 술을 마시지 않아 나에게 한병을 주었소. 나는 반병을 마신 후 아까워서 두었었다오. 풍형 나의 거실에는 좋은 술이 있는데 함께 가셔서 마시는게 어떻겠소?]

 

영호충은 강남사우에 대해서 퍽 친근감이 들었는데 좋은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는 고개를 돌려 상문천의 기색을 살폈다.

상문천은 말했다.

 

[풍형 사장주께서 청하시니 가보시구료. 나는 삼장주와 사장주께서 나를 보시면 화를 내실 것이니 나는...... 킥킥킥.]

단청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당신을 보며 화를 냈소? 다 같이 갑시다. 다같이 가요. 당신은 풍형의 친구이니, 내 당신도 청하리다.]

 

상문천은 계속 사양을 하자, 단청생은 왼손으로 상문천의 손을 잡고 오른손엔 영호충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갑시다, 가요. 다시 가서 술을 드십시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질 때 이 사장주는 안색이 굳어 있었는데, 왜 갑자기 친절하게 나오는 것일까? 그는 상형의 보따리에 있는 그림을 잊지 못해 다른 계책을 생각해낸 것일까?)

 

세 사람이 매장에 돌아오니 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필옹이 기뻐서 말했다.

 

[풍형, 다시 온 것을 감사드리오.]

 

네 사람은 다시 기실로 돌아왔다.

단청생은 여러가지 미주를 내놓고 영호충과 마셔대고 있었다. 흑백자는 시종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단청생과 독필옹은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듯 문밖을 자주 내다보았다. 상문천은 몇번씩 간다고 했으나 그 두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만류하곤 했다. 영호충은 거기에는 신경쓰지 않고 술만 사셔댔다.

상문천은 날이 어두워지자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우리를 잡아놓고도 날이 어두웠으나 밥도 주지 않으니 우리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독필옹은 말했다.

 

[녜, 바로 식사를 올리지요.]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정집사, 연회석을 차리게.]

 

정견의 대답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때 문이 열리며 흑백자가 걸어 들어왔다.

 

[풍형, 우리 매장의 또다른 사람이 당신과 검법을 논하고자 하오.]

 

독필옹과 단청생은 이 말을 듣자 몸을 뛸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큰형님께서 허락하셨읍니까?]

 

영호충은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길래 나와 검법을 대결하는데도 대장주의 허락을 얻어야 되는가? 이들은 우리를 불러놓고 이장주는 대장주의 허락을 받아내느라고 시간이 걸린 것이구나. 그 사람은 대장주의 집안사람이거나 문하에 속한 사람일게다. 그러면 그 자의 검법이 대장주보다 고명하다는 말인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아이쿠 큰일났구나. 이들은 나의 내공이 소실되었음을 알고 자기들의 신분과 체면을 살리려고 친히 손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후배나 아랫사람을 시켜 나와 대결할 때 내력으로 나를 제압하면 내 생명은 바로 없어지겠지.)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 네분 장주는 모두 광명정대한 호걸인데 그런 비굴한 짓을 하겠는가? 그러나 삼장주와 사장주는 그림을 미치도록 좋아하고 이장주는 냉정한 사람이니 그 바둑의 기보를 손에 넣지 못하면 절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 그림이나 기보때문에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지. 만약 어떤 사람이 내력으로 나를 해친다면 나는 먼저 검으로 그들의 관절 중요한 곳을 찔러야지.)

 

흑백자는 말했다.

 

[풍소협, 수고스럽지만 다시 가봅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진정한 공력으로 말해도 나는 삼장주나 사장주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더우기 대장주나 이장주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고산매장의 네분 선배께서는 무공이 탁월하신데 이 후배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 주셨지요. 저는 보잘것 없는 검술로 다시 비웃음을 사고 싶지 않군요.]

 

단청생은 말했다.

 

[풍형, 그 사람의 무공은 확실히 당신보다는 고강하오. 그러나 당신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소이다. 그는......]

 

흑백자는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우리 매장에는 한 분의 검술이 뛰어난 분이 계신데, 풍소협의 말씀을 듣고 꼭 풍소협을 만나뵙기를 바라고 계십시다.]

영호충은 다시 겨룬다면 누군가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그러면 강남사우와는 원수지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네분 장주께서는 후배에게 호의를 베푸셨지요. 만약 그분과 대결하여 상처를 입히거나 내가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단청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소, 그러진...... 그러진......]

 

흑백자는 또 그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우리 네 사람은 풍소협을 탓하지 않을 것이오.]

상문천은 말했다.

 

[좋소, 다시 한번 대결을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소. 나는 일이 있어 지체할 수가 없으니 먼저 가봐야겠소이다. 풍형, 가흥부(嘉興府)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독필옹과 단청생이 일제히 말했다.

 

[먼저 가시다니 말씀이나 되는 것이오?]

 

독필옹은 말했다.

 

[그 장욱의 붓글씨를 놓고간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단청생은 말했다.

 

[풍소협이 지게되면 어디가서 그림과 서예와 기보를 찾는단 말이오? 안 되오, 안 되오. 잠깐 기다리고 계시오. 정집사 빨리 밥상을 차려오게.]

 

흑백자는 말했다.

 

[풍형, 나와 함께 가시겠소. 풍형은 먼저 식사를 하고 계시오.

잠시후 우리는 다시 돌아와 반주를 해드리겠소.]

 

상문천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는 것 같구료. 그러나 우리 풍형께선 실전경험이 없지요. 그리고 당신들이 이형의 내력이 소실되었음을 알고 있소. 내가 옆에서 구경하지 않는다면 승복하지 않을 것이오.]

 

흑백자는 말했다.

 

[동형의 말뜻은 무엇을 뜻하는거요? 우리가 사기라도 친다는 것입니까?]

 

상문천은 말했다.

 

[고산매장의 네분 장주는 호걸지사이오. 저는 오래 전부터 그 덕망을 흠모해오던 터라 믿을 수가 있지요. 그러나 풍형은 또 다른 사람과 대결한다고 하는데 저는 네분 장주 외에 또 다른 고수가 있었는지는 가맣게 모르고 있었읍니다. 이장주 그 사람은 누구요? 그 사람이 네분 장주처럼 광명정대한 영웅호한이라면 마음을 놓을 수 있지만.]

 

단청생은 말했다.

 

[그분의 무공과 덕망은 우리형제보다 높으니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무림중에 무공과 덕망이 네분과 비교되는 분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뿐인데 그렇다면 저도 그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독필옹은 말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당신에게 가르쳐 드리기가 어렵군요.]

상문천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옆에서 관전해야겠소. 그렇지 않다면 대결은 없는 것으로 하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당신은 왜 그리 고집만 부리시오? 당신이 참관하다면 당신께는 백해무익할 것이오. 그 사람은 은거한지 오래되어 다른 사람이 얼굴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그럼 풍형은 어떻게 그와 시합을 한단 말이오?]

 

흑백자는 말했다.

 

[쌍방은 모두 두건을 쓰고 복면을 한 다음 싸우게 된다면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네분 장주께서도 두건을 쓰시오?]

 

흑백자는 말했다.

 

[그렇소, 그분의 성품은 괴퍅해서 그러지 않는다면 시합을 하려하지 않으실 것이오.]

 

상문천은 말했다.

 

[그럼 나도 얼굴에 두건을 쓰면 될 것이 아니오?]

 

흑백자는 한참동안 주저하더니 말했다.

 

[동형의 뜻이 집요하시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러나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벙어리 노릇이라면 쉬운 일이 아니겠소?]

 

흑백자는 앞서 길을 안내했고, 영호충과 상문천이 그 뒤를 따랐소 단청생과 독필옹이 맨뒤에 서서 왔다. 영호충이 보니 그 길은 대장주의 석실로 통하는 길이었다. 대장주의 금당밖에 이르너 흑백자는 가볍게 문을 두드린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에는 한사람이 이미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는데 옷모양으로 보아 황종공인 것 같았다. 흑백자는 그의 몸 곁에 가서 그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뭐라고 했다. 그러나 황종공이 고개를 흔들며 낮은 소리로 뭐라고 했다. 아마 상문천의 참관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흑백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말했다.

 

[형님께선 이 대결은 작은 일이니 그분의 심기를 흐리지 않게 이 일은 여기서 끝내시자고 하십니다.]

 

다섯사람은 고개를 숙여 황종공에게 인사를 한 후 나왔다.

단청생은 화가 나서 말했다.

 

[동형, 당신은 정말 괴상한 사람이군요. 우리가 함께 달려들어 풍형을 못살게 굴까 걱정되오? 꼭 옆에서 구경을 해야만 하오. 일이 잘되었는데 물거품처럼 끝났으니 어찌 흥을 깼다고 하지 않겠소?]

 

독필옹은 말했다.

 

[둘째형님이 애걸복걸하여 형님의 허락을 받아냈는데 당신은 끝내 훼방을 놓았구료.]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좋소, 내가 양보하겠소. 그러나 당신들은 공명정대해야하오. 우리 풍형을 속이면 안 되오.]

 

독필옹과 단청생은 기뻐서 일제히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어찌 보시는 것이오? 어떻게 풍소협을 속일 수 있겠소?]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오? 풍형 그들이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모르니 정신 바작 차리고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매장중의 사람들은 모두 영웅호한인데 어찌 속임수를 쓰겠읍니까?]

 

단청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풍소협이 소인같은 당신과 같겠소이까?]

 

상문천은 몇발짝 가더니 고개를 돌리고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풍형 이리 와보시오. 나는 몇마디 해줄 것이 있소. 이 사람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오.]

 

단청생은 웃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상형님은 정말 소심하시군. 내가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나를 속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상문천 옆으로 갔다.

상문천은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영호충은 자기의 손바닥에 돌돌 말은 종이가 쑤셔들어옴을 느꼈다.

영호충이 만져보니 그 종이에는 딱딱한 물건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상문천은 싱글벙글 거리며 그를 잡아당기고 귓속말로 얘기했다.

 

[자네는 그 자를 보면 그의 손을 잡고 이 종이의 물건을 그 사람 손에 쑤셔넣게나 이 일은 중대하니 절대 소홀히 생각하지 말게나.

하하하.]

 

그가 이 말을 할 때는 몹시 신중했으나 표정은 시종 웃으믓띵 잃지 않았고 나중에는 큰 소리로 웃어제꼈다. 그의 말과 웃음은 아무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흑백자 등 세 사람은 그가 자기들의 흉을 본다고 느끼고 있었다.

단청생은 말했다.

 

[뭐가 그리 우습소? 풍소협의 검법은 고명한데 동형의 검법은 어떠하오? 우리는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했구료.]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의 검법은 평범하고 보잘것 없으니 가르쳐드릴 것도 없소이다.]

 

그리고 몸을 비비적거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단청생은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는 들어가서 다시 형님을 뵙시다.]

 

네 사람은 다시 황종공의 금당으로 들어갔다.

황종공이 그들이 나갔다가 되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머리에 썼던 두건을 벗어놓고 있었다.

흑백자는 말했다.

 

[큰형님 그 동형은 우리에게 설복당하여 참관하지 않기로 했어요.]

 

황종공은 말했다.

 

[좋다.]

 

그리고 검은 두건을 다시 뒤집어 썼다. 단청생은 나무꿰짝을 열더니 검은 두건을 꺼네 영호충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은 내 것인데 당신이 쓰시오. 형님, 나는 형님의 베갯닛으로 대신하겠어요.]

 

그는 내실로 들어가더니 잠시후 파란 베갯닛으로 눈만 내놓은 채 나오고 있었다.

황종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호충에게 말했다.

 

[잠시후 대결에선 두분 모두 목검을 사용하여 내력을 주입시키지 못하게 했오. 풍형이 손해를 보면 안 되지 않소.]

 

영호충은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 참 좋은 뜻입니다.]

 

황종공은 흑백자에게 말했다.

 

[동생, 두 자루의 목검을 가져오게.]

 

흑백자는 나무상자를 열더니 그 안에서 두자루의 목검을 꺼냈다.

황종공은 영호충에게 말했다.

 

[풍형제, 이 대결에서 누가 지고 이기든 밖에선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마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요. 먼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매장을 찾아온 것은 절대 이름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찌 밖에 나가 함부로 말하겠읍니까? 하물며 십중 팔구는 질텐데 어찌 입을 놀리며 다니겠읍니까?]

 

황종공은 말했다.

 

[꼭 그렇게 된다고는 할 수 없소. 풍형의 말을 믿겠소. 그리고 앞으로 보는 것은 절대 말씀하지 마시오. 동형 조차도 안 되오. 지킬 수 있겠소?]

 

영호충은 주저하며 말했다.

 

[동형조차 안 됩니까? 대결이 끝난 후 동형은 경과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내가 함구하고 있으면 친구의 의리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요?]

 

황종공은 말했다.

 

[그 동형은 강호의 밥을 오랫동안 먹은 사람이니, 풍형께서 이미 이 늙은이와 약속했다고 하면 대장주의 말은 무거우니 그것을 식언할 수 없지요. 그러나 억지를 써 묻지는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저는 약속을 지키겠읍니다.]

황종공은 공수하며 말했다.

 

[풍형의 후의에 감사드리겠소. 자 갑시다.]

 

영호충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단청생은 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 안쪽이오.]

 

영호충은 흠칫했다. 매우 이상했다.

 

(어째서 내실 안에 있는가?)

 

곧바로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군. 나와 시합을 하는 사람은 바로 여자야. 어쩌면 대장주의 부인이나 첩이겠지. 그러니 그들은 상형이 옆에서 참관하는 것을 허락치 않았고 나의 얼굴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내가 그녀를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이겠지. 대장주가 이곳의 모든 것을 함구하고 상형조차도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규방의 일이므로 그랬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동안 쌓였던 의문이 확연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손바닥에 작은 종이로 싼 물건이 만져지자 내심 생각했다.

 

(보아하니 상대형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은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만날 수 없으니까 내게 편지와 신물을 건네준 것이다. 이 속에는 틀림없이 애정문제가 관여되어 있겠지. 상대형과는 금란의 형제지교를 맺었고 네분 장주께서도 내게 잘해 주셨는데 어찌 이 물건을 건네줄 수 있겠는가? 네분 장주께 미안한 일이야 이 일을 어찌해야 좋담?)

 

또 생각했다.

 

(상형님과 네분 장주께서는 모두 오십여세 정도씩 되었으니 그 여자도 젊지는 않겠지. 설령 남녀의 정이 쌓이고 쌓였대도 옛날의 일이겠지. 이 편지를 건네준대도 그 여자의 정절과 명예에 손상을 입히지는 않겠지.)

 

한참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섯사람은 이미 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실내에는 침대와 서랍장만 있는 것이 장식이라곤 없었다. 침대에는 휘장이 쳐져 있었는데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단검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쇠로 만들었는지 시커맸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모든 것이 상형의 계산과 척척 맞아들어 가는 것 같다. 그의 정이 이렇듯 간절하데 어찌 그의 소원을 들어 주지 못하겠는가?)

그는 천성이 소탈하여 지금까지 예를 하는 것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이때 그는 마음 속에서 은은히 생각해 보았다. 그 여자가 바로 소사매인데 사제인 임평지에게 시집을 가버렸다. 자기는 상문천이다. 수십년 후 천방백계로 소사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으나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옛날의 정표를 건네주며 수십 년간 사모하여 온 정을 위안받으려는 것이겠지.

그는 또 생각했다.

 

(상형이 마교에서 탈퇴하여 교주와 교중의 형제들과 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몰라.)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황종공은 침대의 휘장을 걷고 서랍장을 열었다. 그 밑바닥에는 철판으로 만든 것이 놓여 있었고 그 철판에는 고리가 달려 있었다. 황종공은 고리를 잡고 위로 올렸다. 거기에는 길고 넓은 동굴이 나타났다. 그 철판의 무게가 심히 무거워 보였는데 당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사는 곳은 조금 이상하다로. 풍소협 자, 나를 따르시오.]

 

그러면서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흑백자는 말했다.

 

[풍소협 들어가시오.]

 

영호충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동굴입구로 들어섰다. 동굴 안에는 한개의 유등이 타고 있었으며 그 등에서는 노란 불빛이 흔들거렸다.

그는 황종공의 뒤를 따르고 흑백자 등 세 사람도 자기를 따라 들어왔다.

두장 앞에 이르자 앞쪽에 길이 막혔다. 황종공은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열쇠구멍에 대고 몇바퀴 돌리더니 안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꺽꺽 소리를 내면서 돌문이 천천히 열렸다.

영호충은 더욱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상문천에게 동정심이 갔다.

 

(이들이 그 여자를 땅속에 억지로 구금하고 있구나. 그러니 뜻을 못이루었구나. 이 네분 장주는 겉으로는 인자한 호걸들 같은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는 황종공을 따라 돌문을 들어서니 지하통로는 비스듬히 꺾여 있었고 수십장을 가자 다시 돌문이 나타났다. 황종공은 열쇠를 꺼내더니 문을 열었는데 이문은 철문이었다. 지하통로는 밑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었는데 땅속 백장 깊이는 도리 듯싶었다. 지하통로를 구불구불 몇번을 지나니 앞에 또다시 문이 나타났다.

영호충은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이 네사람이 바둑도 잘 두고, 그림도 글씨도 잘 쓰고 금도 잘타 우아한 인사들인줄 알았더니 어찌 이런 지하감옥을 만들어 여자를 가두어 놓았을까?)

 

그는 지하통로를 처음 내려올때는 방비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경계심이 일었고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들이 나와 대결을 하여 이기지 못했으니 나를 이곳에 데려와 구금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 비밀통로에는 비밀장치가 된 문이 겹겹이 있으니 날개가 있어도 도망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경계만 했을 뿐 앞에는 황종공이 있고 뒤에는 단청생, 독필옹, 흑백자가 다르고 더구나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세번째 문은 네겹으로 겹겹이 되어 있었다. 철문뒤에는 솜이 총총 박혀있는 나무문이 있었고 그 뒤에는 철문이 있고 또 다시 솜으로 싸여진 나무문이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왜 두 철문 사이에 솜으로 가득 찬 나무문이 있을까? 맞다 틀림없이 여기에 잡혀있는 사람의 무공이 대단히 고강하니 이 솜이 그녀의 장력을 흡수시켜 그녀가 이 철문을 부수는 것을 방비한 것이다.)

 

그뒤로 계속 십여장을 걸었다. 문은 없었고 가끔 유등이 켜진 채 있었고 유등이 꺼진데는 암흑같은 곳도 있었다.

영호충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다리밑에선 습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이쿠 그 매장은 서호의 곁인데 이렇게 멀리 왔으니 아마 서호 밑바닥인가 보다. 이 사람은 호수 밑바닥에 갇혀 있으니 도망 칠 수도 없겠다. 다른 사람이 구할 수도 없고 도망칠래도 호수의 물이 들어오니 뚫고 나가지도 못하겠다.)

 

다시 몇장을 걸으니 지하통로는 좁아지고 낮아져서 머리를 굽혀야 되었다. 수장을 더 가니 황종공이 부싯돌로 유등에 불을붙였다. 희미한 불빛아래 앞쪽에는 또다른 철문이 있었다. 그 철문 위에는 한치 정도의 구멍이 있었다.

황종공은 그 네모난 구멍으로 낭랑히 외쳤다.

 

[임(任)선생님, 황종공 네형제가 문안 인사드립니다.]

영호충은 멍청해졌다.

 

(어찌 임선생일까? 그러면 안에 있는 죄수는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황종공은 다시 말했다.

 

[임선생님, 오랫동안 문안인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한가지 큰일을 여쭐까 합니다.]

 

실내에서 묵직한 욕소리가 들렸다.

 

[제기럴 큰일이고 작은 일이고 헛소리를 말아라! 헛소리를 말아. 멀리 꺼져버려!]

 

영호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앞서의 공상은 모두 연기로 타버렸다. 이 말소리는 나이가 먹은 남자이고 말투가 저속하니 시종잡배임이 틀림없었다.

황종공은 말했다.

 

[우리는 오늘까지 이 세상에서 검법은 임선생이 제일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착각이었읍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매장에 왔는데 우리형제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지요. 임선생님의 검법과 비교 할때는 어린애장난같이 보입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황종공은 약을 올려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나와 대결을 하도록 유도하는구나.)

 

그 사람은 껄껄 소리내 웃더니 말했다.

 

[이 개잡종의 네놈아, 너희들이 이기지 못했으니 나보고 이겨달라 이거냐? 그렇지? 하하하 너희들 마음대로 주물러대지만 나는 이미 칼을 놓은지 오래되어 검법을 깨끗이 잊은지 오래다. 제미랄놈들, 싸가지없는 놈들아. 빨리 꼬리를 감추고 꺼져버려라.]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의 지혜는 무한히 높은 것 같다. 황종공의 말한마디로 훤히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독필옹은 말했다.

 

[형님, 임선생님은 절대 이 사람의 적수가 못됩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이 매장 중에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군요. 우리는 더이상 임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맙시다.]

 

그러자 임씨성을 가진 자가 일갈했다.

 

[나를 불러내는 이유는 뭐냐? 이 임가가 너희 네명을 위해 일을 해야겠느냐?]

 

독필옹은 말했다.

 

[이 사람은 화산파 풍청양선생에게 직접 전수받았다 합니다. 큰형님, 임선생께서 강호에 계실때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땅도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풍선생 한분은 무서워했다면서요? 임선생의 외호가 그 뭐더라 망풍이도(望風而逃)라고 부른 것 같은데 이 풍(風)자는 풍청양 풍선생님을 두고한 말 아닙니까? 그 말이 정말인가요?]

 

그 임씨성을 가진 자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다.

 

[헛소리 말아라. 헛소리를 말아. 이 멍청한 놈들아.]

단청생은 말했다.

 

[세째형님의 말씀은 틀렸소이다.]

 

독필옹은 말했다.

 

[어째서 내가 틀렸니?]

 

단청생은 말했다.

 

[형님은 딱 한글자를 틀리게 말하셨읍니다. 임선생님의 외호는 망풍이도가 아니고 문풍이도(聞風而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임선생님과 풍선생님이 만났다면 두 사람의 거리는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인데 풍선생님이 그를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겠읍니까.

풍선생님의 이름만 들어도 걸음아 나살려라하고 도망치는 것이 마치 초상집의 개새끼와......]

 

독필옹은 그말을 받았다.

 

[그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새끼 같았겠지.]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게 했으니 지금까지 머리통이 붙어 있었을 겁니다.]

그 임씨성을 가진 자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걸껄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녀석들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니 이 늙은이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구나. 제미랄놈들, 이 늙은이가 너희들 꾀에 넘아갈 것 같으냐? 그렇게 되면 나의 성이 임시가 아니다.]

 

황종공은 탄식하면서 말했다.

 

[풍형, 이 임선생님께선 당신의 풍자만 듣고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신 것 같소. 이 대결은 해볼 필요도 없겠소. 우리는 당신의 검법이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승인하겠소.]

 

영호충은 비록 그 사람이 결코 여자가 아니며 자기의 추측이 모두 틀렸으나 상황을 보니 그는 이 깊은 감옥에서 오랜세월을 보낸 것 같아 동정심이 일었다. 이 사람은 무림의 선배이고 무공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황종공의 말을 듣고는 말했다.

 

[대장주의 말씀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풍노선배가 저와 검법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분 임선생님을 극히 추앙하셨지요. 말씀하시길 당세의 검법에 있어 그는 임노선생님 한분만 추앙하여 당세에 임노선배 한분만 섬기신다고 하셨지요. 먼훗날 제가 인연이 되어 임노선배님을 만날 수 있다면 있는 정성을 다해 공경하고 그 어르신의 지도를 받으라고 하셨지요.]

 

이 말이 끝나자 황종공등 네사람은 아연실색했다.

그 임씨성을 가진 자는 대단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껄걸 웃더니 말햇다.

 

[이보게, 어린친구 자네의 말이 맞네. 풍청양이란 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네. 오히려 그 사람만이 나의 검법을 알 수 있을 뿐이네.]

 

황종공은 말했다.

 

[풍...... 풍노선생은 그가...... 그가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있오?]

 

그 말투가 떨렸고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생각나는대로 지껄였다.

 

[풍노선생께선 임선생님이 오직 명산승지에서 은거하고 계신줄만 아시지요. 그분께선 제게 검법을 전수하시면서도 늘 임선생님 얘기를 하셨지요. 제가 검법을 익혀도 임선생님의 전수자와는 대적할 수 있을 뿐이고 세상에 임선생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런 험난하고 어려운 검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요.]

 

그는 이때 네분의 장주에게 불만을 품고 조롱을 내포한 채 말했다. 이 임씨성을 가진 자는 선배이고 일대의 영웅인데 이런 음침하고 습기찬 감옥에 잡혀있는 것은 간계에 빠져서라고 생각했다. 그 네사람의 수단과 비굴함은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임씨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그렇다네, 어린친구 풍청양은 과연 견식을 갖춘자군. 자네는 이 매장의 네 멍청이를 모두 물리쳤구만. 그렇지?]

 

영호충은 말했다.

 

[후배의 검법은 풍선생님이 친히 전수해주신 것이라 임선생님이나 문하제자가 아니면 일반사람은 이기지 못하지요.]

 

그의 말은 공공연히 황종공등 네사람에게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지하감옥이 음침하고 습기가 차다는 것을 생각하자, 황종공등 네사람에게 화가 났다. 지금 조금 서있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이들은 무림의 고수를 이곳에 몇년을 감금시켰는지 모른다. 이들이 나를 죽이기밖에 더하겠는가?

황종공은 그의 말을 듣고 배알이 꼬였으나 검술에 졌으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단청생은 말했다.

 

[풍형 당신의 그 말은......]

 

흑백자는 그의 소매를 끌어당기자 단청생은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좋아, 좋아, 어린친구 자네가 나를 대신해 나의 마음 속을 깨끗이 씻어주었네. 자네는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었나?]

영호충은 말했다.

 

[매장 중에서 나와 제일 먼저 대결을 한 사람은 일자전검이라는 정견이라는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 사람의 검법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없지. 검의 빛을 빼면 아무 재주도 없는 것이네. 자네는 근본적으로 검초식을써서 그를 베지는 않았겠지. 검을 들고만 있어도 그는 스스로 손가락 손목 팔 등을 자네의 검끝에 스스로 대지 않았나?]

 

다섯사람은 모두 깜짝놀라 약속이나 한듯 악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이 물었다.

 

[왜 그러나? 내 말이 틀렸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마치 보신 것같이 말씀하시는군요.]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그는 다섯손가락이 잘려나갔나? 그렇지 않으면 손바닥이 잘려나갔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칼끝을 조금 피했읍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안 돼, 안 돼, 상대와 싸울 때는 객기를 부려서는 안 되네. 자네는 선하니 앞으로 큰 손해를 볼 것이네. 두번째는 누구와 시합을 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사장주이십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음, 그 네째는 일자전검보다는 조금 고명하지. 그러나 별 차이는 없어. 그는 자네가 정견을 이기자 틀림없이 자기의 절묘한 기술을 썼을게다. 흠흠, 그게 무슨 검법이더라? 맞다. 발묵피마검법(潑墨披麻劍法)이라고 부르며 또 백홍관일, 등교기봉(騰蛟起鳳) 또 무슨 춘풍양류(春風楊柳)라고 하는 것이지.]

 

단청생은 자기의 득의한 검초를 하나도 틀림없이 말하자, 더욱 놀랬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장주의 검법은 대단히 고명하지만 빈틈이 많은 것이 흠이지요.]

 

그 사람은 껄걸 웃더니 말했다.

 

[풍노인의 전수자라 다르군. 자네의 한마디로 그가 자랑하는 발묵피마검법의 취약점을 드러냈으니 그의 검법 중에는 자기 딴에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옥룡도현(玉龍倒懸)이라는 것이 있는데 검을 쥐자마자 내리치는 것이야. 그가 그 초식을 쓰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그가 그 초식을 사용해 풍씨의 전수자의 검과 부딪친다면 그의 장검은 칼끝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그의 다섯손가락을 잘리고 손에는 피가 낭자하여 붓에 먹을 찍은양 뚝뚝 떨어질 것이네. 그것을 바로 발혈파지검법(潑血披指劍法)이라고 부르네. 하하하 하하하.]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의 추측은 신기와 가깝군요. 저는 바로 그 일초식에서 그를 쓰러뜨렸어요. 그러나 그와 아무런 원한이나 이유가 없으며 사장주께선 맛좋은 술로 저를 환대해 주셔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읍니다. 그 다섯손가락을 반드시 자를 필요가 없었읍니다. 하하하.]

단청생은 화가 나고 치욕스러워 퍼래졌다 빨개졌다 했다. 정말 명실상부한 단청생(丹靑生)이엇다. 단지 머리에는 두건을 썼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대머리인 세째는 판관필을 사용하는데 그가 쓰는 글은 마치 세살먹은 어린애가 쓰는 것 같지. 자칭 풍류를 즐기며 무공에 무슨 명가의 필체를 결부시켰다고 하지. 하하하 이보게 어린친구, 적과 겨룰 때는 생과사의 두길뿐인데 온힘을 다해 싸워야지. 이기지 못한다면어떻게 한가롭게 풍류를 논할 여유가 있으며, 종옥비첩(鍾玉碑帖)을 따질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무공이 한참 뒤떨어진다면 어린애 장난삼아 하겠지만 상대방의 무공이 비슷하다면 자네가 다시 판고나필로 글을 쓰면 두 손으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꼴이 되네.]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삼장주와 겨루면서 보니 과장이 너무 심했읍니다.]

 

독필옹은 그 사람의 말을 듣자 화가 났으나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서예를 판관필의 초수에 융합하였다. 재미는 있지만 필의위력은 크게 감소하여 영호충이 봐주지 않았다면 열명의 독필옹이 있어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대머리인 세째를 이기려면 쉬운 일이지. 그의 판관필은 본래 상당히 가관이었는데 너무 거만하고 무공중에 필체를 넣은 것이 흠이라네. 허허허. 고수들과의 대결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데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거야. 오늘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야, 대머리 세째야, 근 십년동안을 너는 자라목처럼 움추리고 강호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지? 그렇지?]

 

독필옹은 흥하고 코소리를 냈으나 속으로는 여간 놀라지 않았다.

 

(그 사람의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내가 십여년간을 강호에 떠다녔다면 오늘까지 목이 붙어있을까?)

 

그 사람은 말했다.

 

[둘째의 무쇠바둑판을 쓰는 자의 공격은 대단하고 쓸만하지. 손을 쓰자마자 공격해 들어오고 초식을 쓸때마다 질풍같이 빠르고 번개가 치는 듯하니 손을 쓸 수가 없을거야. 이보게 어린친구 자네는 어떻게 파기했는지 말해보게. 어디 들어봐야겠네.]

 

영호충은 말했다.

 

[그 파기라는 말은 감히 입밖에 내기 부끄럽지만, 나는 대결을 하자마자 공격을 했지요. 제일초식은 그분이 수세에 처해 있었읍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멋지군, 두번재 초식은 어떻게 되었나?]

 

영호충은 말했다.

 

[두번째 초식도 제가 먼저 선수를 쳤지요. 이장주는 별 수 없이 또 수세에 몰렸지요.]

 

그 사람은 말했다.

 

[멋지군. 그럼 삼초식은 어찌 되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삼초식도 내가 공격했고 그가 수비를 했지요.]

 

그 사람은 말했다.

 

[대단하군. 흑백자가 강호에 있을 때는 실로 위풍이 대단했다네. 그때 그는 대철패(大鐵牌)를 사용했는데 그의 연속 삼초식을 막아내는 자가 있으면 흑백자는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네. 후에 그는 현철(玄鐵)바둑판을 사용했는데 병기로 한몫보니 더욱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네. 어린친구가 그가 수비만 하게 했으니 대단하군.

제사초는 반격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사초식도 여전히 제가 공격을 하고 이장주께서는 수비에 치중하셨읍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풍씨의 검법은 고명하여 흑백자를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의 사초식을 여전히 공격했다니 허허허, 정말 멋지군 멋져. 제오초식은 틀림없이 그가 공격을 했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제오초식의 공격과 수비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지요.]

그 임씨성을 가진자는 억 하고 소리를 내더니 한참 말이 없었다.

한참 후 그 사람은 말했다.

 

[자네는 총 몇초식을 공격했고 흑백자는 언제부터 반격을 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그건...... 초수는 기억할 수가 없읍니다.]

흑백자는 말했다.

 

[풍소협의 검법은 신기에 가까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초식도 반격할 수 없었읍니다. 그가 연속 사십여초식을 공격할 때 저는 스스로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고 바둑판을 버리고 패했음을 인정했읍니다.]

 

그는 여지껏 아무말도 없었는데 임씨성을 가진 자의 말을 듣자 공격스럽게 말을 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악 하고 큰 소리를 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풍청양은 화산파 검종의 뛰어난 인재이지만 화산검종의 검법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는 화산파 가운제 흑백자를 사십초식이나 공격하고 한번도 반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네.]

 

흑백자는 말했다.

 

[임선생님의 과찬이십니다. 이 풍형은 정말 청출어람(靑出於藍)입니다. 검법은 높아 화산파 검종의 범위를 이미 벗어났지요. 당세에 백년에 한명 나올까하는 임선생님 같은 고수라야 그와 한번 겨룰 수가 있지요.]

 

영호충은 생각했다.

 

(황종공, 독핌옹, 단청생의 말투는 심히 오만하지만, 흑백자는 공경스럽다. 그러나 그의 뜻도 같겠지. 모두 임선생과 내가 대결 하기를 바라고 있겠지.)

 

그 사람은 말했다.

 

[흥, 네놈은 아부를 하려고 하느냐? 같은 놈이다. 황종공의 무술 초수는 흑백자와는 오십보 백보이지. 그러나 그의 내공은 상당하다네. 이보게 친구 자네의 내력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상처를 입어 내력이 모두 소실되어 대장주의 칠현무형검이 저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그 사람은 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참 재미있는 얘기야, 멋져 멋진 얘기야. 이보게 친구, 나는 자네의 검법을 구경하고 싶네.]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 그것은 안 됩니다. 강남사우가 나와 선배님께 검법을 대결시키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지요.]

 

그 사람은 말했다.

 

[무슨 꿍궁이 속이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들은 내 친구와 내기를 했는데 만약 매장 중에서 어떤 사람이든 저의 검법을 이긴다면 내 친구는 몇가지 물건을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했지요.]

 

그 사람은 말했다.

 

[내기를 해서 몇 가지의 물건을 준다고? 음, 틀림없이 금보나 전대미문의 서예나 그림이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의 추측이 맞았읍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자네의 검법만 구경하고 싶지 사우고 싶은데 아닌데, 더우기 나는 자네를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이 저를 이긴다는 것은 십중팔구이나 네분 장주께 한가지 부탁을 받아내야겠읍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무슨 일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이 이 후배의 검을 이겨 그들이 네 가지 물건을 받게 되면 네분 장주는 이 옥문을 열어 선배님이 나올 수 있게 하십시오.]

 

독필옹과 단청생이 일제히 외쳤다.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오.]

 

황종공은 흥하고 코소리를 냈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린친구가 엉뚱하군. 그것도 풍청양이 가르쳐주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풍노선생께서는 선배님이 이곳에서 계신 줄 모르면 저도 선생님이 이곳에 계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흑백자가 갑자기 말했다.

 

[풍소협, 이 임노선생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리고 무림에서 친구들은 그의 외호를 뭐라고 부르오? 그는 어느파의 장문이며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 당신은 풍노선생에게 얘기를 들었소?]

 

흑백자가 이렇게 연신 질문을 하자, 영호충은 한가지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이 사십여초식을 공격할 때 사십여초를 막았으나 연신 네가지를 물어보자, 그것은 사초식을 공격하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일초도 막을 수 없어 우물쭈물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풍노서내께서는 아무말도 없으셨지요.

전...... 저는 모릅니다.]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소. 당신은 모를 것이오. 당신이 그 내용을 안다면 우리로 하여금 그를 풀어놓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오. 이 사람이 만약 이곳을 떠난다면 무림에 혼란이 일어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에 생명을 잃을지 모르며 강호는 편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오.]

 

그 사람은 껄껄 크게 웃엇다.

 

[맞다. 강남사우가 아무리 큰 간덩이를 지녔다해도 이 늙은이를 이곳에서 빼낼 수는 없지. 그들은 명을 받들고 이온을 지킬 뿐이며, 작은 옥졸일 뿐이니 어찌 그들이 나를 풀어줄 권한이 있겠는가? 이보게 친구, 자네의 그말은 그들의 신분을 너무 높인 것이 아닌가?]

 

영호충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 내막을 나는 조금도 몰랐다. 내가 말을 잘못해마각이 드러났구나.)

 

황종공은 말했다.

 

[풍형, 이 감옥이 습기가 차니 이 임선생에게 동정심을 느꼈구료. 그것은 당신의 의로움 때문이니 이 늙은이는 탓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한가지 알 일이 있소. 이 임선생이 나가시면 당신네 화산파만 하더라도 반은 죽어야 할 것이오. 임선생님. 이 말이 틀렸읍니까?]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맞네. 맞아. 화산파의 장문인은 아직도 악불군인가? 그 사람의 얼굴은 가자 인자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내가 술수에 걸려들지만 않았어도 그 사람의 가짜얼굴을 찢어놓았을 것이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사부는 자기를 화산파에서 내쫓고 전서를 돌려 정파의 무림인사들에게 공적을 세웠지만 사부와 사모님게서 어려서부터 자기를 키워준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고 이때 임시성을 가진 자가 이렇게 말하자 화가 나서 말했다.

 

[닥치시오. 나의 사......]

 

사부라는 말이 나올때 그는 말을 멈추고 말았다. 상문천이 이 매장에 들어올 때 자기를 사부의 사숙이라 했었고 상대방이 아직까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들인지 확실치 않아 진상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임시성을 가진 자는 그가 화낸 진정한 뜻을 모르고 계속해 웃었다.

 

[화산파 문중에 내가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기는 있어. 하나는 풍씨이고 하나는 자네이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화산옥녀(華山玉女) 영(寧)...... 뭐더라 맞다 맞아 영중칙(寧中則)이라고 불렀지. 그 아가씨는 퍽 호탕한 인물이지만 애석하게도 악불군에게 시집을 갔으니 예쁜꽃 한송이가 마치 쇠똥에 꽂혀있는 형상이 되었네.]

 

영호충은 그가 자기의 사모님을 아가씨라 부르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어찌되었든 그는 자기의 사모님을 호평하고 출중한 인물이라고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이보게 친구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성은 풍이며 이름은 이중이라고 하지요.]

 

그 사람은 말했다.

 

[화산파에서 풍씨성을 가진 자는 다 괜찮은 편이야. 들어오게나. 나는 풍선생의 검법을 배워야겠네.]

 

그는 본래 풍청양을 풍시라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풍선생이라고 불렀다. 영호충의 말이 그를 기쁘게해서인지 그는 풍청양을 조금 높여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호기심이 동해 이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고 무공이 어떻게 고명한지 알고 싶어 말했다.

 

[저의 미천한 검법이 밖에선 겁을 주고 다녔으나 선배님께선 웃으실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임선생은 인중용봉이니 이곳까지 와서 안 뵙고 갈 수는 없지요.]

 

단청생이 가까이 와서 그의 귓속에 대고 말했다.

 

[풍형, 이 사람의 무공은 지극히 높고 수단도 악독하기 이를데 없으니 당신은 절대 조심해야하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나오시오.]

 

그의 말은 매우 작았으나 자기를 염려하는 정이 담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마음이 동해 생각했다.

 

(사장주는 내게 퍽 잘해주는구나. 조금 전 나는 그들을 풍자하여 비꼬았는데 그들은 그 말에 개의치 않고 나를 걱정해주다니.)

그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 사람은 큰 소리로 말했다.

 

[들어오게나 들어와. 그들이 밖에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나 이보게 친구, 강남사추(江南四醜)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그들은 흉계만 있을 뿐이지 좋은 말이라도 반마디만 들으면 안 되네.]

 

영호충은 매우 난감했다. 어느측이 좋은 사람인지 몰랐고 누구를 도와야할지 몰랐다.

황종공은 품속에서 열쇠를 꺼낸 철문의 구멍에 대고 몇번 돌렸다. 영호충은 그가 열쇠를 돌린 후 문을 밀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옆에 서있고 흑백자가 나서서 또 다른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더니 몇 바퀴 돌렸다. 그리고 독필옹과 단청생은 각각 열쇠를 꺼내 다른 구멍에 넣더니 돌렸다.

영호충은 이 순간 무엇인가 깨달았다.

 

(알고보니 이 사람은 중요한 인물인 것 같다. 네명의 장주가 각각 열쇠를 꽂아야 철문이 열리는구나 이 강남사우는 형제이면서 한패인데 어지 서로를 믿지 못할까?)

 

그는 다시 생각했다.

 

(조금 전 이 선배가 말하기를 강남사우는 명을 받들어 감옥을 지키고 있는 옥졸이니 그를 놓아줄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들이 각기 열쇠를 지니고 있음은 이들을 판견한 자의 규정일게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건대 열쇠구멍에 녹이 많이 나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오랫동안 이 문이 열리지 않았을까?)

 

단청생은 열쇠를 뽑아낸 후 철문을 잡고 몇번 흔들더니 내공을 써서 문을 밀었다. 문소리가 끽끽나며 철문이 수초 정도 열렸다.

철문이 열리자 단청생은 뒤로 물러났다. 황종공 등 세사람도 뒤로 일장정도 물러났다. 영호충도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다.

그 사람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이보게 친구, 그들은 나를 무서워하지만 자네는 나를 무서워할 까닭이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리고 앞으로 나가 손을 내밀어 철문을 밀었다. 그 철문의 문은 녹이 잔뜩 나있어 힘을 들여서야 두척정도 열리는 것이었다.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청생이 앞으로 나와 두자루의 목검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영호충은 그검을 왼손에 받아들었다.

독필옹은 말했다.

 

[자 이 등을 가지고 들어가시오.]

 

그는 벽에 있던 유등을 건네주었다. 영호충은 오른손으로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사방이 일장정도 되었고 벽가까이 침대가 놓여있고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수염을 가슴까지 드리우고 얼굴은 온통 털이 나있어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모두 검정색이었으며 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호충은 몸을 숙이면서 말했다.

 

[제가 오늘 행운이 따라 임노선배님을 만나뵐 수 있었읍니다. 많은 지도 바랍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인사치레는 필요없네. 자네가 와서 나의 적막함을 풀었으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네.]

 

영호충은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이 등을 침대에 올려놓을까요?]

그 사람은 말했다.

 

[좋아.]

 

그리고 손을 내밀어 등잔을 받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안이 이렇게 좁은데 어떻게 검대결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즉시 침대로 가서 등을 내려놓고 상문천이 준 종이로 싼 물건을 가볍게 그의 손에 밀어넣었다.

그 사람은 섬칫 놀라더니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낭랑히 외쳤다.

 

[여봐라. 너희 네사람은 들어와 시합을 관전할 것인가?]

황종공은 말했다.

 

[그 안은 너무 좁아 들어갈 수가 없군요.]

 

그 사람은 말했다.

 

[좋아, 이보게 친구, 문을 닫으시게.]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는 몸을 돌려 철문을 밀었다. 그 사람이 몸을 일으키니 가벼운 쇳소리가 났다. 쇠고리가 서로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손에서 한자루의 목검을 잡아쥐며 탄식했다.

 

[이 늙은이가 십여년 무기를 잡아보지 못했는데 옛날 실력이 나올지 모르겠군.]

 

영호충이 보니 그의 손목에는 원으로 된 쇠가 채워져있었고 그 고리는 벽에 이어져 있었다. 다시보니 그의 다른 손과 양발은 모두 쇠사슬로 몸 뒤의 벽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방의 벽들과 푸른빛을 띄웠는데 그것은 강철로 만든 것이었다. 그의 손과 발을 묶은 쇠사슬도 강철로 만드어졌으리라.

그 사람은 목검을 공중으로 한번 내리쳤다. 그 일검은 단지 아래로 두척정도 내리쳤을 뿐인데도 방안에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영호충은 말했다.

 

[노선배님께선 심후한 공력을 지니셨군요.]

 

그 사람은 몸을 돌려 영호충이 건네준 딱딱한 물건과 종이를 펼쳐보고있었다.

영호충은 한발짝 물러나 밖에 있는 네사람이 보지 못하게 네개의 열쇠구멍을 머리로 막았다. 그 사람은 몸을 가볍게 떠는지 쇳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조금 후 그는 몸을 돌리더니 눈에 빛을 발산하며 말했다.

 

[이보게 친구, 내 두 손은 불편하나 자네를 이기지 못하라는 법은 없네.]

 

영호충은 말했다.

 

[저같은 미천한 후배는 선배님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자네는 흑백자에게 사십여초식이나 연속 공격하여 반격할 틈을 주지 못했으니 지금 내게 시험해보이게나.]

 

영호충은 말했다.

 

[후배가 실례하겠읍니다.]

 

검을 들어 그 사람을 향해 뻗어냈다. 바로 흑백자와 상대할 때 쓰던 일초였다.

그 사람은 칭찬했다.

 

[멋지네.]

 

그리고 목검을 들어 영호충의 왼쪽 가슴을 내리치는데 공격하면서 방어하고 방어하면서 공격하는 일초는 공수를 겸비한 무서운 검법이었다. 흑백자는 구멍을 통해 안의 풍경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멋진 검법이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네놈들은 재수가 좋은 줄 알아라. 너희들 눈을 뜨게 해주마.]

 

이때 영호충의 제이검이 뻗어왔다.

그 사람은 목검을 휘둘러 영호충의 우측 어깨를 내리쳤다. 여전히 몸을 지키며 공격하고 공격하며 몸을 지키는 묘수였다. 영호충은 흠칫 놀랐다. 검중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요혈을 찌를 곳이 없었다. 그는 검끝을 아래로 뻗어내 상대방의 아랫배를 공격했는데 역시 공수가 겸비된 검초였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초식은 멋있었네.]

 

즉시 검을 뒤로 하여 막았다.

두 사람은 일검일검을 주고받으며 삽시간에 이십여초를 겨루었는데 두 자루의 목검은 시종 한번도 부딪치지 않았다. 영호충은 상대방의 검법이 변화가 복잡하기 이를데 없어 자기가 독고구검을 배운 이래 이렇게 강한 적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상대방의 검법 중에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식의 변화가 무쌍하여 그 빈틈을 헤집고 공격할 수 없었다. 그는 풍청양에게 전수받은 무초승유초의 요지를 임의로 변화시켰다. 그 독고구검 중의 파검식은 비록 단 일초식이었지만 그 중에는 천하각문파의 검법의 요의가 함축되어 있어 비록 무초(無招)이지만 그것은 온천하의 검법의초수를 그 근본으로 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영호충의 검초가 끊이지 않고 변화가 본적이 없는 초식이어서 단지 경험이 풍부하고 무공이 깊어 그것을 의지해 하나하나 헤쳐가고 있었다.

사십여초를 겨루자 검이 무디어졌다. 그는 내력을 목검에 운용해 일검이 나올때마다 은은하게 천둥번개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의 내력이 얼마나 깊든지 간에 독고구검의 정미한 검법 아래에선 모두 빈 것이었다. 단지 그 사람의 내공이 깊고 검술이 정묘하니 대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연속 수차례나 영호충을궁지에 몰아넣어 검을 버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영호충은 갑자기 이상한 초식을 펼쳐 어려운 곤경에서 빠져나왔고 또 선기를 잡아 반격해가도 있었다. 그 초수의 기묘함이란 상상 밖이었다.

황종공등 네사람은 철문 밖에서 구멍을 통해 안을 보고 있었다.

그 구멍은 너무 작아 두사람만 볼 수 있었고 두사람도 한사람은 왼쪽 눈으로 다른 한사람은 오른쪽 눈으로 봐아야 했다. 두사람이 보고나면 다른 두 사람이 교대하여 보곤했다.

처음에는 네 사람이 그 사람과 영호충이 승부를 겨룰때 검법의 정묘함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잠시후 두 사람의 검법이 전입가경에 이르자 검법의 이치를 깨우칠 수 없었다.

어떤때 황종공은 일초식을 본 다음 머리를 싸매고 그 일초식의 정수를 생각하곤 했다.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검초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두 사람이 또다른 십여초를 다루었고 이십여초식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놀라 생각했다.

 

(알고보니 풍형의 절묘한 검법은 이 경지까지 이르렀구나. 조금전 그와 내가 시합을 할때 그는 단지 삼사초의 공력을 사용했을 뿐이야. 그의 내공이 소실되어 나의 칠현무형검이 소용없었지만 설령 그의 내력이 충만되어 있어도 내 무형검이 그를 당할 수 있겠는가? 그는 삼초식을 사용하였지만 나는 금을 버리고 졌음을 승인했는데 목숨을 걸고 겨루었다면 그는 일초식의 옥소를 써서 내 두눈을 멀게 했을 것이다.)

 

황종공은 영호충의 검법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독고구검은 적이 강할수록 강해지고 무공이 높지 않다면 독고구검의 정수는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영호충이 만난 사람은 당금 무림중에 하늘을 놀라게 한 인물이고 무공의 강함이란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그의 손을 거치자 독고구검 중의 오묘하고 정묘한 부분이 비로소 모두 발휘될 수 있었다. 독고구패가 다시 소생하고 풍청양이 친히 이 광경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기뻐했으리라.

이 독고구검을 사용함에 있어 정묘한 검결과 검술을 제외하고 도검을 사용하는 자의 깨우침이 필요했다.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규범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검을 사용하는 자의 지혜와 총명이 높을수록 검법도 높아지고 시합을 할때마다 대시인이 영감을 잡아 한수의 시를 짓는 것과 같았다.

사십여초식을 겨루었을 때 영호충의 초수는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많은 것은 풍청양이 가르치지 않은 것이었고 정묘한 상대를 만나니 독고구검 중에서 자연히 거기에 상응되는 초수가 생겼던 것이다.

그는 무서움이 다 사라졌다. 온 마음을 검법에 치중하다보니 무서움이나 기쁨에 치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연속 여덟번의 검법을 변화시켰다. 어떤 공세는 무서웠고 어떤 초식은 연속 뻗어냈고 어떤 것은 작았으나 힘이 있었고 어떤 것은 맹렬했으나 심히 은은했다.

그러나 그의 어떤 초수를 막론하고 영호충은 결국 매일초식의 검법을 아주 여유있게 막아내고 있었다. 마치 이 여덟개의 검법 하나하나가 어려서부터 익히고 막아낸 것 같았다.

그 사람은 검을 들어 막더니 말했다.

 

[이보게 친구, 자네의 이 검법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풍노선생은 이런 재주가 없는데.]

 

영호충은 놀라며 말했다.

 

[이 검법을 풍노선생님이 전해주지 않았다면 어느 고인이 전해 주었읍니까?]

 

그 사람은 말했다.

 

[그 말도 그렇네. 자 다시 나의 검을 받게.]

 

그리고 휘파람소리를 길게 내더니 목검을 벼락같이 쳐내렸다. 영호충은 검을 비스듬히 하여 뻗어냈다. 그 사람은 검을 거두며 막아냈다. 그 사람은 연신 소리를 질러냈는데 마치 미친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더욱 급해졌고 검 또한 빨라졌다.

영호충은 이 검법이 특이한 점은 없으나 매소리가 들릴때마다 그의 두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으며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초식을 하나씩 풀어갔다.

갑자기 그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을 질렀다. 영호충의 귓속은 웅하고 울리며 귀청이 터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져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 모른다. 깨어나 보니 머릿속이 깨지는 것 같고 귓속에는 벼락치는 것 같은 소리가 끊이지 않고 웅웅거렸다. 눈을 떠보니 온통 시커멓고 자기가 어디 누워 있는지 몰랐다.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온 몸에 힘이 없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무덤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상심하고 한편으론 초조해져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두번째 정신이 들었을 때는 머리는 계속 아팠으나 귓속에서 윙윙거리던 소리는 많이 없어졌다. 등이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 마치 강철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만져보니 돗자리 밑에는 철판이 깔려있는 것 같았고, 오른손을 움직이니 챙그랑거리며 쇠부딪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손목에 차가운 물건이 동여 있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만져보려고 하니 그쪽도 역시 챙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왼손도 어떤 물체에 포박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놀라고 기뻤다.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온 몸은 포박된 채 있었다. 눈을 떠 보아도 아무 빛도 볼 수 없었다.

 

(내가 기절할 때 나는 임선생과 무공대결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 강남사우의 술책에 걸려 들었을까? 내가 호수밑바닥 감옥에 임노선배와 같이 구금되어 있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급히 외쳤다.

 

[임노선배님! 임노선배님!]

 

두번을 불러도 아무 기척도 없자 무서움이 더욱 가중되어 더욱 높이 외쳤다.

 

[임노선배님! 임노선배님!]

 

컴컴한 곳에서 자기의 흐느끼는 소리와 외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장주, 대장주 당신들은 왜 나를 이곳에 가두었소? 빨리 풀어주시오. 빨리 나를 풀어주시오.]

 

그러나 자기의 외침소리 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해 욕을 해댔다.

 

[비겁하고 간악하고 염치없는 소인배들아. 너희들은 이기지 못하니 나를 이곳에 묶어 놓고 풀어주지 않는구나.]

 

그는 임노선배와 같이 이 호수 밑바닥 감옥에서 일생을 지낼것을 생각하니 절망감이 엄습해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는 더욱 크게 외쳤으나 결국은 울음소리로 변했다. 언제부터 인지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고 목이 쉬어 있었다.

 

[이 매장중의 네명...... 이 네명의 비굴하고 개같은 놈들아. 나 영호충은 아무때고 이곳을 탈출한다면 너희들...... 너희들은...... 너희들은 두 눈을 파내고 너희들의 두 손과 발을 잘라놓겠다...... 잘라놓고 말겠다. 내가 이 감옥을 나가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한 음성이 마음 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컴컴한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겠는가? 임노선배 같은 인물도 나갈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절망감이 또 엄습하자 욱하고 선혈을 토해내고는 다시 기절을 했다.

혼미한 중에 끅하는 소리가 들리며 한줄기 햇살이 들어와 눈을 비추었다. 그는 정신없이 몸을 일으켰으나 일척정도 뛰어오르다 다시 나뒹굴었다. 사지와 모든 뼈마디가 모두 부셔지는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컴컴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햇빛이 비추니 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나한줄기 빛이 금방 사라지고 나면 탈출 할 기회도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자 두 눈이 가시가 찔린듯 아파왔지만 있는 힘을 다해 두 눈을 떠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보았다.

빛은 일척정도 되는 네모난 구멍에서 비춰오고 있었다. 임노선배가 거처하는 감옥도 철문위에는 이렇게 네모난 구멍이 있었는데 그것과 똑같지 않은가? 다시 살펴봐도 자기는 컴컴한 감옥에 눕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나를 풀어줘하. 황종공, 흑백자, 이 비겁한 개 같은 놈들아. 씨가 있는 놈이라면 빨리 나를 풀어줘라.]

 

네모난 구멍으로 큰 목판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목판 위에는 큰 밥그릇과 그 위에 반찬이 놓여져 있었고, 또 다른 그릇에는 국과 물이 담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이것을 보자 더욱 화가 나서 생각했다.

 

(너희들이 밥과 반찬을 내게 주는 것은 나를 이곳에 장기간 구금하겠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네명의 개 같은 놈들아. 나를 죽이려면 빨리 죽이고, 살을 오려내려면 빨리 오려내거라. 이 어르신을 웃기지 말고 장난치지 말아라.]

 

그 나무목판은 천천히 들어오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가 손을 내밀어 받으라는 뜻이었다. 그는 화가 나서 손을 내밀어 힘껏 쳐 버리자 챙그랑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밥그릇과 등이 땅바닥에 떨어져 가루가 되었다. 밥과 찬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목판은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영호충은 화가 나서 구멍을 덮치자 머리가 하얗게 쉰 늙은이가 왼손에는 등을 들고 오르손에는 목판을 들고 천천히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 노인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었으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너는 빨리 가서 황종공을 오라고 해라. 흑백자도 오라고 해라.

그 네명의 개 같은 놈들이 씨가 있다면 이 어르신과 한판 결전을 하자고 해라.]

 

그 늙은이는 들은체도 않고 등을 구부린채 한걸음 한걸음 멀어져 갔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내 말이 들리지 않소?]

 

그 늙은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 버렸다.

영호충이 보고 있으려니 그의 뒷모습이 지하통로 구부러진 곳에서 사라지자 불빛도 사라지고 다시 칠흙 같은 어둠이었다.

한참 후 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면서 나무문과 철문이 순서에 다라 닫히는 소리가 났다. 지하 속은 다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빛도 없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영호충은 침대에 누워 어지러워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밥을 배달하던 늙은이는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겠지. 내가 그에게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는 짓이야.)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 감옥은 그 임노선배가 사는 곳과 똑같구나. 매장 중에는 이런 감옥이 적지않이 있겠지.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들이 이곳에 갇혀 있을까? 내가 임노선배와 신호를 보낼 수 있고, 또 이곳에 갇힌 친구와 연락을 취할 수 있다면 동심합력하여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손을 들어 벼글 두드렸다.

벽을 텅텅 두드렸으나 되돌아 오는 소리는 묵직하고 가라 앉았는데 벽 저쪽은 방이 아니라 흙인 것 같았다.

다시 다른쪽 벽을 쳐보아도 전해오는 소리는 무거울 뿐이었다.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몸 뒤에 있는 벽을 두드렸다. 소리는 똑 같았다. 그는 벽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세심하게 삼면의 벽을 보았으나 철문이 장치되어 있는 벽면을 제외하고는 마치 이 컴컴한 감옥이 깊은 땅 밑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 밑에는 다른 감옥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임씨성을 가진 노인의 방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느 방향에 있으며 자기 방과는 얼마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기절하기 전의 상황들을 상세히 생각해 보았다. 단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늙은이가 검초를 갈수록 빨리 휘두르며 외치는 소리가 갈수록 크게 울려 갑자기 하늘이 부서지는 듯한 큰소리가 들리면서 자기는 정신을 잃었는데 어떻게 강남사우에게 잡혔는가? 어떻게 이 감옥에 잡혀 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 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날마다 풍류나 즐기며 바둑이나 글씨나 그림으로 소일하는 것 같은데 암암리에 이런 비굴한 짓을 하고 있구나. 무림중엔 이런 소인배들이 심히 많으니 놀랠 일은 아니다. 이상한 것은 그 네 사람은 그림이나 바둑이나 서예를 진실로 즐기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가장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독필옹은 벽에다 쓴 배장군시의 글자는 절대로 평범한 무인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또 생각했다.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진정으로 사악한 무리는 총명하고 지혜가 높은 인사이다' 그 말이 정말 틀리지 않는구나. 강남사우가 꾸민 흉계는 예방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갑자기 아이쿠 하고 외쳤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형님이 어지 되었을까? 그들의 마수에 걸려 들지는 않았는가?)

 

그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상형님은 총명하시어 임기웅변에 능하시니 강남사우의 사람됨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았고, 강호의 경험도 많고 마교의 광명우사(光明右使)이니 그들의 흉계에 걸려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내가 땅속 백장 깊이에 있다고 하나 상형님의 능력으론 나를 구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놓여 껄껄 소리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영호충아! 영호충아! 너는 사람이 소심해서 쓸모가 없도다 조금전 그렇게 울어대는 것을 누가 보았다면 너는 어디다 몸을 숨겨야 옳았겠느냐?]

 

그는 마음을 놓자 갈증이 나고 배가 고픔을 느꼈다.

 

(아깝구나 아까워. 조금전 화가 나서 밥과 물을 모두 엎어버렸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힘이 없다면 상형님이 나를 구해낼 때 내어찌 강남사구(江南四狗)를 죽일 수 있겠는가? 하하하 그래 맞아 강남사구에게 어찌 강남사우라는 명칭이 어울리겠는가? 강남사구 중에서 흑백자라는 놈이 내색을 않고 제일 음험한 놈이야. 모든 간계가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겠지. 내가 이곳에서 빠져나간다면 제일 먼저 그 놈을 죽여 버리겠다. 단청생은 그래도 착해보이니 그 개 같은 목숨을 한번 봐주자. 그 놈은 술을 소장하고 있으니 내가 나가 그 술을 모두 마셔버린는 거야.)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큰일났네. 상형님의 무공으로는 한 사람씩 상대해 강남사우를 물리치기는 쉬우나 그들 네명이 합공을 하면 상형님은 승산이 적다. 만약 상형님이 신통력을 발해 네 사람을 죽인가면 상형님은 이 지하통로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이 감옥이 황종공의 침대 밑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 몸이 피곤해지자 침대에 누워 생각을 했다.

 

(임노선배의 무공은 상형님보다 고강하고 지혜나 능력도 상형님 위에 있을 것이다. 그같은 인물도 이곳에 갇혔으니 상형님이 이긴다고는 보장할 수 없겠구나. 자고로 광명정대한 군자는 소인배들의 암산에 빠져들기 쉬워 옛어른들이 말하기를 명창이타(明槍易?) 암전난방(暗箭難防)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상형님이 이렇게 늦게까지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상형님도 예측할 수 없는 화를 당하였겠구나?)

 

그는 자기의 처지는 생각지 못하고 상형님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것 저것 생각하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잠이 갰을 때는 여전히 어둠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내 능력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상형님조차 불행하게 암계에 빠졌다면 누가 나를 구하러 올 것인가? 사부님은 나를 화산파에서 축출하고 전서를 돌리셨고 정파의 인물 중에는 나를 구하러 올자가 없구나. 영영 영영......)

영영을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들어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나를 보기만 해도 죽여 버리라고 노두자에게 말했으니 그것은 강호에 다 퍼졌을 것이니 좌도의 인물들도 나를 구하려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는 내가 이곳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안다. 틀림없이 구하러 올 것이다. 좌도의 인물들은 그녀의 호령에 극히 벌벌 떠니 그녀의 말한마디라면 히히히......)

그러나 웃음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이 두껍지가 못해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있어. 그녀가 나를 구하러 온다고는 해도 혼자서 올 것이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대로 청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녀가 나를 구하러 온다는 것을 안다면 그자는 생명을 보전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 여자의 마음이란 정말 헤아릴 수가 없구나. 예를 들면 소사매......)

 

그는 악영산을 생각하자 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이 나를 구하러 온다고 생각하고 있으까? 지금쯤 소사매는 임사제와 결혼을 했을 것인데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 무슨 의미로 살아간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감옥에서 한평생을 지내며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겠구나.)

 

이 조그만 감옥에 있는 것도 퍽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초조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져 왔다.

그러나 그 생각도 얼마가지 못했다. 목이 말라오고 배가 고파왔다. 그 옛날 주루에서 술을 마시며 고기를 뜯던 생각이 나자 이곳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사제와 소사매가 결혼을 했으면 어떤가? 어찌되었든 나는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내 내력은 모두 소실되어 폐인이나 다름이 없고 나는 얼마 살지 못한다고 평대부가 말했지 않은가? 소사매가 나에게 시집을 온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맞을 수가 없다. 그녀를 평생 과부로 있게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마음속 깊이는 악영산이 자기에게 시집을 온다면 그는 절대 대답을 안하겠다고 생각들었으나 악영산이 임평지와 결혼을 한다면 마음이 몹시 아플 것이었다. 제일 좋은 것은...... 제일 좋은 것이 어쨌단 말이냐?

 

(제일 좋은 것은 예전처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소사매와 폭포에서 검을 연마하고 임평지는 화산으로 오지 않고 나와 소사매는 영원히 한평생 즐겁게 지냈으면 아 전백광, 도곡육선, 의림사매......)

 

그는 형산파의 비구니 의림이 생각나자 얼굴에 미소를 떠 올렸다.

 

(의림사매는 지금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그녀는 내가 이곳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매우 초조해 하겠지. 그녀의 사부님이 편지를 받은 다음 그녀가 나를 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 불계화상을 졸라 구해달라고 할 것이고, 어저면 도곡육선과 함께 올지도 몰라. 그러나 그 일곱명의 엉터리들은 아무런 일도 해낼 수가 없어. 그러나 안오는 것보다 나을거야.)

 

그는 도곡육선의 엉뚱한 짓들이 생각나자 킥킥 웃음이 나왔다.

그들과 함게 있을 때는 그들을 경시했으나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들의 알쏭달쏭한 행동과 우스갯말이 이곳에 있다면 얼마나 신선하겠는가? 그는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컴컴한 감옥 안, 시간도 알 수 없는 곳, 그곳에 네모난 구멍으로 은은히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영호충은 크게 기뻤다. 가슴이 통통 뛰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누가 나를 구하러 왔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기쁨도 얼마가지 못했다. 바로 그 느릿느릿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밥을 나르는 노인의 발소리인 것이다.

그는 의기소침해하며 누워 버렸다.

 

[그 네 명의 개새끼들을 빨리 오라고 해라. 그놈들이 나를 볼 염치가 있는지 보아야겠다.]

 

발걸음 소리가 더욱 가가이 들려왔고 불빛도 더욱 밝아지며 구멍으로 목판이 들어왔다. 그 위에는 여전히 밥과 찬 등이 놓여 있었다.

영호충은 배가 고프고 목이 몰랐다. 잠시 주저하더니 목판을 받았다.

그 노인은 목판을 놓더니 몸을 돌려 가 버렸다.

영호충은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천천히 가시오. 내가 할 말이 있소이다.]

그 노인은 못들은 체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남기고 사라졌고 불빛도 따라서 멀어져 갔다.

영호충은 한참 욕을 해댄 후 그릇에 입을 대고 마셨다. 그 그릇 속에는 맑은 물이 들어 잇엇다. 그는 단숨에 반그릇의 물을 비우고 난 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컴컴한 중에도 반찬들을 식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무우와 두부 종류였다.

그는 감옥에서 칠팔일을 보냈다. 그 노인은 하루씩 밥을 놓고 전날 먹었던 그릇들을 가져갔으며, 우줌통을 받아가곤 했다. 영호충이 무슨 말을 해도 그의 표정은 항상 같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불빛이 새어들어오자 영호충은 목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은 왜 말을 못하오? 내말이 들리지 않소? 말좀 해보시오.]

 

그 노인은 한소능로 자기의 귀를 가리키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는 귀머거리며 벙어리였던 것이다.

영호충은 멍청해졌다. 그가 보니 그 노인의 혓바닥은 반은 잘려 나갔는데 모양이 심히 공포스러웠다. 그는 아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신은 혀가 잘려 나갔군요. 이 매장의 네명의 장주가 한 짓이오?]

 

그 노인네는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목판을 구멍에 집어 넣었다. 그는 영호충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들었다 해도 혀가 잘려 나갔으니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영호충은 너무 놀래 그 노인네가 멀리 갔어도 마음을 가다듬고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노인네의 잘려나간 혀바닥의 가공스런 모양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독살스럽게 말했다.

 

[이 강남의 네명의 개새끼들은 이렇게 악독하구나. 영호충은 평생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할 수 없지만 아무때나 이곳을 바져 나간다면 이 네명의 개같은 놈들의 혓바닥을 하나하나 잘라 버릴 것이고 쇠꼬챙이로 귀를 찌르고 눈알을 뽑아낼 것이다....

..]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확연히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아닐까?......]

그날 저녁 약왕묘(藥王廟)에서 정체모를 열다섯명의 눈을 찌르지 않았는가?

 

(설마 그들이 나를 이곳에 가두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여지껏 마음 속에 샅아 두었던 여러날의 감정이 삽시간에 반정도는 사라졌다.

 

(내가 열다섯명의 두 눈을 찔러 버렸으니 그들이 복수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화가 풀리고 마음이 평온해지자 날짜 보내기가 쉬워졌다.

컴컴한 곳에 있으니 아침과 밤을 몰랐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는 지도 몰랐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더워지자 이미 여름이 온 것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작은 방은 공기가 유통되지 않아 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이날은 더할 수 없이 덥자 영호충은 옷을 다 벗고 깊었으나 쇠사슬때문에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바지를 내렸다. 또 철판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자 땀이 사라지며 시원함을 느꼈다.

한시간 정도 잠을 잤는데 철판이 더워지자 잠결에도 시원한 쪽으로 누워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때 철판 위의 왼손에 무슨 무늬가 있는 것 같았는데 잠에 취해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포만했다. 얼마 후 그 노인의 신세가 동정되어 그가 목판을 들이밀때마다 그의 손을 잡거나 그의 손등을 몇번 쳐주어 감사의 표시를 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의 손을 잡고 있는데 그가 목판을 받고 팔목을 거두자 갑자기 희미한 등빛 아래서 자기의 왼손등에 글자의 흔적이 보였다. 아주 정확하게 '나는 이곳에서'라는 글자였다.

그는 뜻밖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네 글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는 갑자기 목판을 내려 놓고 침대 위의 철판을 더듬었다.

알고 보니 그 철판 위에는 글자가 가득 차 있었다. 조밀조밀하게 얼마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엇다. 그 철판의 글까가 오래전에 조각되어 있었던 것인데 돗자리가 깔려 있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제 저녁 옷을 벗고 철판에 누워 잠을 자니 손등에 이 글자들이 찍혀 나왔던 것이다. 손잔등에 엉덩이에 손을 대보고 그는 대경실색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요철로 글자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모든 글자는 동전 크기로 조각이 매우 깊었으며 글자는 초서체였다.

그때는 이미 밥을 나르는 노인은 멀리 사라졌고, 실내는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몇 모금의 물만 마시고 손을 내밀어 철판의 글자들을 더듬어 천천히 한글자씩을 짚어 내려가며 읊었다.

 

[이 늙은이는 평생 은과 원한을 쫓아 사람을 밥먹듯 죽였으니 이렇게 호수 밑바닥에 갇힌 것은 인과 응보이다. 단지 나 임아행(任我行)은 이곳에서......]

 

여기까지 읽어 내려가자 그는 생각했다.

 

(원래 '나는 이곳에서'라는 글자들은 여기에서 찍힌 것이구나.)

그는 계속 더듬어 내려갔다.

 

[...... 나 임아행은 하늘을 뚫고 땅을 뚫는 신공을 쌓았는데 그 신공은 이 늙은 몸과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 늙은이의 능력을 모를 것이니 그것이 유감이다.]

 

영호충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생각해 보았다.

 

(임아행, 임아행, 이 글자를 조각한 사람은 틀림없이 임아행일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성이 임시이구나. 그 임선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는 또 생각했다.

 

(이 감옥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나 이 조각을 한 사람은 이미 수십년 수백년 전에 죽었는지 모른다.)

 

그는 계속해 더듬어 내려갔다.

 

[이 늙은이가 신공의 정수의 요지를 이곳에 남겨두어 후세의 사람들이 이것을 배운다면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이 늙은이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첫째 좌공(坐功)......]

 

아래에 적혀 있는 것은 모두 조기행공(調氣行功)의 법문(法門)이었다.

영호충은 독고구검을 배운 뒤에는 무공 중에도 검법을 좋아했다. 자기 몸의 내력이 이미 소실되어 좌공이라는 두 글자가 손에 짚히자 실망했다. 자기는 이 철판에 조각되어 있는글자 중에 기묘한 검법이 씌어져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이 컴컴한 곳에서 그 검법이나 익히며 소일하며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단지 그 뒤에 짚히는 글자들은 모두 호흡 의수단전(意守丹田) 기전금정(氣轉金井) 임맥(任脈) 등등의 내공을 쌓는 용어였다. 철판 끝까지 더듬었지만 검(劍)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크게 실망했다.

 

(무슨 뚱단지 같은 신공인가? 이것은 나와 농담을 하자는 것인가? 어떤 무공도 다 좋지만 나는 내공만은 연마할 수는 없다. 내식만 하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오를텐데 내공을 수련하다는 것은 내가 고생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밥을 먹고 생각했다.

 

(이 임아행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말투는 매우 광적이었구나. 무슨 하늘을 뚫고 땅을 둠고 천하를 주름잡는 다는 것이 마치 이 세상에 자기의 적수가 없는 듯하고 있지 않은가? 원래 이곳은 무학이 뛰어난 고수들만 감금하는 모양이구나.)

처음에 글자를 보았을 때는 크게 흥분되었으나 지금은 의기소침해져 생각했다.

 

(하나님도 사람을 놀리고 있군. 내가 이 글자를 찾기 전까지는 기분이 괜찮았는데.)

 

그는 또 생각했다.

 

(그 임아행이라는 사람이 자기 말대로라면 어째 이곳에서 감금당한 채 탈출하지 못했을까? 이 감옥은 정말 엄밀하구나. 일단 이곳에 들어오면 죽을날만 기다려야 되다니.)

 

그는 철판에 쓰인 글자를 더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출처] 소오강호 4-4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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