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임꺽정 의형제편 황천왕동이 2

一字師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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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산 갔던 일행이 다 저녁때 돌아왔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급한 말
로 "장기가 어떻게 되었나, 이겼나?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아니. " 하고 고
개를 흔들었다. "못 이겼어? “ "두다 말았소. " "어째서? " "반 판쯤 두다가
고만 두자구 합디다. " "그럼 어떻게 되나. 내일 취재를 마저 보게 한다던가? "
"내일 또 오랍디다. " "그러면 되었네. 반 판은 고사하구 아주 안 두구라두 취재
를 잘 본 셈으루 쳐주면 고만이지. 잘 되었네. " "장기를 실컷 둘라구 갔다가 한
판두 다 못 두구 왔으니 분하지않소. " "분할 거 없네. 이담에 장인이 되거든 실
컷 같이 두지. ” 하고 유복이는 허허 웃었다. 손가가 유복이 다음에 나서서 "이
방 장기가 어떻든가. 반 산쯤 두었드라두 수는 대개 짐작할 수 있겠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가 "대단 세더군. " 하고 대답하였다. “서루 맞둘 장기야? " "
글쎄. ” "우리 동네 노인과는 어떻든가? " "그 장기버덤은 훨씬 세든걸. " "그럼
맞둘 만하겠군, 그런데 어째 두다가 말았을까? " "그건 나두 몰라. " "사윗감이
맘에 드니까 취재를 건정으로 보이는 게군. " 오가 마누라가 손가 뒤를 이어서 "
어제 내가 말하지 않든가베. 수작을 길게 할 때 벌써 이방은 사윗감으로 정한
게야. " 하고 말하니 유복이가 "아무리 골라두 저 사람만한 사위를 고르기가 어
렵지. " 하고 오가 마누라와 손가를 돌아보았다.
저녁밥들을 먹은 뒤에 약수산 갔던 이야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섞바꾸어 지
껄이던 끝에 내일은 동선관을 나가 구경하자는 의논이 났다. "내일은 나두 같이
갑시다. " 하고 천왕동이가 말하니 손가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내일 취재는 왜
고만둘 테야? 마저 가보지. " 하고 말하였다. "누가 안 간다구 그러기에. " "동선
관을 같이 가자니까 말이지. " "취재 보구 와선 같이 못 가나. " "내일 취재는 요
행두 바랄 수 없으니까 가기가 맘에 떨떠름할 껄. “ "염려 말아. " "잠근 궤짝
속 물건을 알아내는 수가 무슨 수야? " "혹 알아낼 수 있을는지 누가 아나? ”
"황도령이 당대 이인이신 걸 내가 몰랐구려. " "나를 빈정거리는 모양인가? " "
아니 빈정거리긴 누가 빈정거려. 이인 아니군 알아내지 못할 걸 알아낸다니까
말이지. " "이인은 못 알아내두 나는 알아낼는지 모르지. " "황도령이 히구저치는
군. " "쓸데없는 소리 그만 지껄이게. " 하고 유복이가 손가를 핀잔 주는 바람에
천왕동이까지 입을 다물었다.
오가 마누라는 피곤하여 먼저 누워서 잠이 들고 손가는 봉놋방으로 이야기하
러 나간 뒤에 유복이가 내일 취재의 어려운 것을 걱정하니 천왕동이는 "걱정 마
우. 장가는 들어놓은 게나 다름없소. " 하고 말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믿나? "
"믿는 구석이 있소. " "믿는 구석이 있거든 이야기 좀 하게. " "이야기는 이담에
하리다. " "참말 틀릴 염려 없겠나? " "염려 없소. " "그러기만 하면 내 속이 다
시원하겠네. " "내일 두구 보시우. " ”거기서 만일 혼인을 완정하자구 하면 어
떻게 대답할 텐가? “ "어떻게 대답하다니? " "형님 내외에게 말하구 와서 완정
하겠다구 대답하게. " "누님과 형님에게 말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 아니오. " "말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지만 혼인 같은 큰일을 형님 내외에게 말 안 하구 정하면
자네 맘엔 섭섭지가 않겠나. " "내일 가서 봐가며 뒤를 두구 오리다. " 유복이와
천왕동이는 그 뒤에도 한동안 다른 이야기들을 하다가 자리에 누웠다. 이튿날
식전에 이방은 조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밥을 재촉하여 먹
어치우고 안방에서 안해와 이야기하였다. "총각이 올 때가 되었지? " "어제는 이
만때 전에 왔었던가 보오. " "총각을 보았나? " "어제 문틈으로 내다보았소. " "
사람이 보기에 어떻든가? " "생기가 있어 보입디다. " "그 눈에 조화가 들었지.
눈에서 반딧불 같은 불이 반짝반짝하데. ” "열기가 있습디다. " "가까이 못 봐
서 열기라구 하지만 그게 예사 열기가 아니야. " "그럼 눈 속에 참말 불이 있을
까요? " "그 총각이 백두산 속에서 났다니까 그것이 명산 정기겠지. " "백두산이
어디 있는 산이오? " "함경도와 오랑캐땅 어름에 있는 산이야. " "그 산이 명산
이오? “ ”명산이다뿐인가. 조선 팔도 산의 조종일세. 그 산에는 큰 짐생이 있
어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네. " "그 산속에도 사람이 사오? " "사는 사람이 있
단 말은 못 들었어. " "그럼 그 총각이 어떻게 그 산속에서 났단 말이오? " "그
총각의 부모가 무인지경 산속에 가서 살았다네. " 바깥 심부름꾼이 괭이 들고 광
채 뒤로 가는 것을 이방이 내다보고 "무얼 하러 가느냐? " 하고 물었다. "돼지우
릿간 시궁을 치러 갑니다. " "그건 지금 안 치면 못 치느냐? " "지금 마침 다른
일이 없습니다. " "고만두구 밖에 나가 있다가 취재 보러 오는 총각이 오거든 곧
데리구 들어오너라. " "총각이 올 때가 지났는걸요. " "올 때가 지나다니? " "어
저께 그저께 다 댁의 아침이 끝나기 전에 왔었습니다. " "오늘은 늦게 오는 게
지, 나가 있거라. " 심부름꾼을 내보내고 이방이 안해를 돌아보며 "늦더래두 오
긴 오겠지. " 하고 말하니 안해가 잠깐 동안 잠자코 있다가 "글쎄요, 오늘 취재
가 어려워서 고만둘라는지 모르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사윗감은 좋은데. " "
좋으면 소용 있소? “ "글쎄 말이야. " "객주로 사람이나 좀 보내보시구려. " "객
주두 모르거니와 알더래두 사람까지 보낼 건 없어. 사랑에 나가서 기다려 보지.
" 이방이 사랑으로 나왔다. 천왕동이가 전날 기다리던 대중을 잡고 늦잡도기는
것을 이방은 알 까닭이 없었다. 이방이 여러 차례 방문 밖을 내다보며 고대하는
중에 천왕동이가 심부름꾼을 따라 들어왔다. "오늘은 늦었네그려. ” "녜, 좀 늦
었습니다. " "무슨 일이 있었던가? “ "식전 일찍 일어나서 이때껏 치성을 드리
구 왔습니다. " "치성은 웬일이야? " "오늘 취재야 치성을 안 드리구 보러 올 수
있습니까? ” "치성을 어디다 드렸나? “ 천왕동이는 대답을 않고 싱글싱글 웃
었다. "대답하기 싫은가? " "이 다음 아시지요. " "고만 취재를 시작할까? " "그
리 하시오. " "우리가 사위 취재를 보이려구 용왕께 발원한 뒤 궤짝 몇 개 속에
몇 가지 물건을 너둔 것이 있네. " "들어서 압니다. " "그 궤짝의 갯수와 빛깔부
터 말하구 그 다음에 궤짝에 든 물건 들을 차례루 말해 보게. " 천왕동이가 단넝
히 앉아서 두 손길을 맞잡았다. 한동안 있다가 외면하고 혼잣말하듯 "흰 궤짝 하
나, 누런 궤짝 하나, 붉은 궤짝 하나 궤짝이 세 개로군요. ” 지껄이고 이방을
바라보며 "그렇습니까? " 하고 물으니 이방은 눈을 똑바로 뜨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천왕동이가 다시 외면하고 먼저와 같이 "붉은 궤짝에는 붉은 팥이
한 낱, 누런 궤짝에는 누런 콩이 아홉 낱, 흰 궤짝에는 목화가 열두 송이. " 하고
지껄이는 동안에 이방이 말은 고사하고 숨소리도 없이 듣고
만 있다가 천왕동이 입에서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 나서 안문을
박차고 맨발로 뛰어들어가며 "여보게 여보게, 사위를 얻었네. "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천왕동이는 혼인 완정을 뒷날로 미루려고 생각하고 왔었는데 말 한마디 할 사
이 없이 이방이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곧 사위를 얻었다고 뒤설레를 놓으니 이것
이 마음에 마땅치 못하여 열린 되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불쾌스러운 음성으
로 "나 좀 보십시오. 내가 말씀할 게 있습니다. " 하고 이방을 불렀다. 이방이 되
창문 앞에 와서 천왕동이의 눈살 찌푸린 것을 보면서도 눈치를 모르는 것같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의논한 말씀이 있으니 잠깐 들어오시지요. " "무슨 말인
가? 말하게. " "혼인에 대해서 의논할 말씀이 있습니다. " "암, 의논할 말이 있겠
지. 차차 의논하세. " "내가 의논할 말씀은 다른 게 아니라 혼인을 이번에 아주
완정하구 가지 못하겠단 말입니다. " "무엇이 어째? 완정된 혼인을 다시 완정하
지 못하겠다너 무슨 소린가? “ "누가 완정했어요? " "누가 완정하다니, 그게 무
슨 소린가? 자네가 취재만 보구 혼인을 하지 않을 테란 말인가? " "혼인하지
않을 테면 왜 와서 취재를 보겠습니까? ” “그러기에 말이지. " "내가 가서 누
님 내외에게 말하구 다시 와서 완정할랍니다. " "자네 누님 내외가 혼인을 말라
면 말 텐가? " "말랄 리가 없지요. " "여보게, 쓸데없는 잔소리 말구 이리 들어오
게. " 이방이 천왕동이의 손을 잡아끌려고 하였다. "왜 이러십니까? " "장모 될
사람 상면 좀 하게. " "이 다음에 하지요. " "그저 하라는 대루 하게. 이리 들어
오게. " "들어가더래두 신발이나 신어야지요. " "여기 있는 내 신 신게. " "내 신
발을 집어가지구 올 테니 손을 놓으십시오. " "그럼 얼른 집어가지구 오게. " 이
방은 천왕동이의 손을 놓고 자기로 신을 신었다. 이방이 천왕동이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오며 ”새 손님을 앉히게, 마루에 자리 좀 깔게. " 하고 소리쳐 말하
여 이방의 안해가 심부름하는 계집아이를 불러서 마루에 기직을 깔게 하였다.
이방이 천왕동이를 끌고 마루에 올라와서 자리에 앉힌 뒤에 곧 안방을 향하여 "
어서 이리 나오게. " 하고 안해를 불러내서 천왕동이봐 상면을 시키었다. "장모
는 본래 초례 지낸 뒤에 상면하는 법이지만 사위를 못 봐서 성화하는 사람이라
우선 속시원하라구 상면을 시키네. 자네두 아냇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보아서
맘에 궁금할 테지. 궁금치 않게 보여줌세. " 이방이 다시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가 가서 건넌방 문을 열어놓았다. 처녀가 아랫목 방문 앞에 앉았는데 맞은
편을 향하고 앉아서 뒷모양만 보이었다. "이 편으루 돌아앉아라. " "아비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얼른 돌아앉아라. " 처녀가 조금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바루 앉아라. " "어서 바루 앉아. " 옆 모양이 보이었다. 처녀가 다시
몸을 움직여서 이편을 향하고 앉았다. 그러나 고개를 깊이 숙이어서 가리마가
바로 보일 뿐이었다. "병신성스럽다. 고개를 들어라. " "백년해로할 사람이다. 보
기 부끄러울 것 없다. " 이방의 잔소리에 처녀가 고개를 들어서 비로소 그 얼굴
이 다 보이었다. 이방이 자리에 와서 앉으며 "안햇감이 어떤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정신 놓고 처녀를 바라보며 건성으로 “녜. ” 하고 대
답하였다. 이방은 허허 웃고 이방의 안해는 빙글빙글 웃고 심부름하는 계집아이
와 드난하는 여편네들까지 입을 막고 웃었다. 천왕동이는 남들이 웃건 말건 돌
보지 않고 처녀만 바라보는 중에 처녀가 살며시 눈을 거들떠보다가 눈과 눈이
서로 한번 마주치기까지 하였다. 이방이 천왕동이의 어깨를 치면서 "여보게 나
좀 보게. " 하고 소리쳐서 천왕동이는 겨우 고개를 돌이켰다. "오늘 부엉사위 용
왕당에 노구메를 올리구 와서 사위 취재가 끝났다는 방을 써붙일 텐데 우리 내
외 가는데 자네두 같이 가세. " "노구메는 왜 올리시렵니까? " "용왕이 자네 같
은 좋은 사위를 지시해 주셨는데 노구메 한 그릇두 안 올려서 쓰겠나? “ 천왕
동이는 혼인 완정을 뒤로 미루려던 처음 생각이 그 동안에 가뭇없이 사라져서
노구메를 올리러 마자는 데도 싫단 말을 아니하고 "아무리나 하십시다. " 하고
허락하는 말로 대답하였다. 이방이 그 안해에게 용왕당에 나갈 준비를 차리라고
이른 뒤에 천왕동이를 보고 "우리는 바깥방으루 나가세. " 말하고 곧 먼저 일어
서니 천왕동이는 건넌방 바라보이는 자리를 뜨기가 싫어서 꾸물거리다가 가까스
로 몸을 일으켰다. 바깥방에 나와서 앉은 뒤에 이방이 천왕동이더러 "택일두 오
늘 아주 하세.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택일이라니 혼인할 날 말인가요? " 하
고 물었다. "그럼 물론 성례할 날 말이지. 택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두 좋지만 용
왕당에 가서 노구메 올린 끝에 내 손으루 하겠네. " "날 가릴 줄까지 아십니다그
려. " "조금 아네. 내게 좋은 책이 있어. " 하고 이방은 벽장세서 책 한 권을 꺼
내 들고 "이 책만 볼 줄 알면 무슨 택일이든지 다할수 있네. " 하고 천왕동이를
내어주니 "나 같은 까막눈이는 볼 줄을 알아야지요. " 하고 천왕동이는 책을 받
지 아니하였다. "자네 글을 못 배웠나? " "백두산 속에 글방이 있어야지 글을 배
우지요. " "장기는 어디서 배웠나? " "양주 와서 배웠습니다. " "거기 장기 잘 두
는 사람이 있나? " "장기를 두는 사람은 많아두 잘 두는 사람은 없세요. " "전에
과천에 오장기라구 장기 잘 두는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가서 두어 봤나? " "오
씨에게 배운 장기와는 더러 두어봤습니다. " "오씨에게 배운 사람이 오씨만한 장
기가 있을라구. " "제법 두는 사람이 한두엇 있습디다. 그렇지만 말 들으니까 다
오씨만 못하답디다. " "그럴 테지. 장기를 오씨만큼 두기가 쉽지 않거든, 오씨가
나버덤 좀 세었었네. " "장기 한번 두십시다. " "언제 장기 두구 있을 틈이 있나,
용추에 가야지. 이 다음에 두지. " "장기는 이내 한번 못 두어보구 가겠네요. " "
자네는 소문 없는 국수장기야. 자네 장기가 과천 오씨버덤 나면 낫지 못할 것
없데. ” 이방이 천왕동이와 장기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 중에 그 안해가 되창
앞에 와서서 "여보 좀 나오시오. " 하고 불렀다. "왜? “ 하고 이방이 곧 일어서
나가더니 얼마 뒤에 "여보게 잠깐 들어오게. " 하고 천왕동이를 불렀다. "점심은
좀 늦더래두 갔다 와서 먹구 술이나 한잔씩 먹세. " 이방이 천왕동이를 데리고
술을 먹고 난 뒤에 이방 내외는 노구메 제구를 심부름꾼 지워서 앞세우고 천왕
동이와 같이 부엉바위로 나갔다. 부엉바위는 읍에서 시오리 길이 채 못 되었다.
바위 위 솔밭 속에 있는 용항사당에 올라가사 용추를 굽어보고 다시 내려와서
용추물이 넘쳐 흘러나가는 냇가에서 새옹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할 때 이방이
흘저에 아차 소리를 질러서 그 안해가 까닭을 물었다. "택일할 책을 안 가지구
왔네. 언제 다시 가서 가져오나. " 이방이 한걱정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다시 가
서 가져오리까? " 하고 천왕동이가 말하였다. "아니 고만두게. 심부름꾼을 보내
지. " "그럴 것 없이 내가 잠깐 갔다오리다. " 천왕동이는 이방의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다시 읍내로 들어갔다. 새옹에 불 지피는 것을 보고 간 천왕동이가
새옹밥이 익기 전에 내왕 삼십리길을 다녀왔다. 이방은 처음에 거짓말같이 생락
하다가 천왕동이가 가지고 온 책을 보고는 안해를 돌아보며 "우리 사위가 축지
법두 할 줄 아네그려. " 말하고 내외 다같이 좋아하였다.
노구메 정성이 끝난 뒤에 이방이 용왕당 앞에 나앉아서 책을 가지고 택일을
하는데 천왕동이는 이방의 안해와 같이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방이 저고리
고름에서 필낭을 끄르고 단령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놓더니 행연에 먹을 갈아 초
필에 묻혀 들고 먼저 천왕동이의 생년월일을 천왕동이에게 물어서 적고 다음에
자기 딸의 생월생시를 안해에게 다지어 적은 뒤 책장을 이리 넘기고 무엇을 적
고 또 저리 넘기고 무엇을 적었다. 책을 한동안 뒤적뒤적한 끝에 이방이 "사윌
보름날 이날이 좋은데. " 하고 두동싸게 말하며 갚에 앉은 안해를 바라보았다. "
사윌 보름이면 지금 십여 일밖에 안 남았게. 너무 촉박해서 안되겠소. " "그 뒤
에는 팔월 스무날과 구월 초닷샛날이 좋구 그 안에는 좋은 날이 없네그려. " "그
럼 팔윌 스무날로 합시다. 햇곡식도 잡히고 그때가 좋겠소. " "글쎄 팔윌루 정할
까. " 이방이 의향을 묻는 눈치로 옆에 앉은 천왕동이를 돌아보았다. "팔월은
너무 늦지 않은가요? " "혼인 완정 안 하구 간다던 때와는 아주 딴판일세그려. "
"혼인을 이왕 정한 바엔 얼른 해치워버리는 것이 좋지요. " "얼른 해치우는 것이
좋지만 사윌 보름날은 날짜가 너무 촉박해. " "냉수 한 그룻 떠놓구 절 한번
할 작정이면 오늘두 할 수 있지요. “ "체면이 있으니까 초례를 초라하겐 할 수
없네. " "그래두 팔월은 너무 늦어요. " "될 수 있네. 혼인날두 용왕께 취품하구
정하세. " 이방의 안해가 "용왕께 취품할 도리가 있소? " 하고 물으니 이방이 "
도리가 있겠지. 가만 있게. " 하고 대답한 뒤에 한참 생각하다가 심부름꾼을 불
러서 냇가에 가서 납작한 돌을 둘만 집어오라고 하여 심부름꾼이 집어온 돌을
이방이 받아서 물기를 껏어버리고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하나큰 팔월 스무날이
구 하나는 사월 보름날일세. 이것을 가지구 용왕쩨 축원하구 나서 부엉바위에
붙여보세. " 하고 이방이 그 안해와 천왕동이를 돌아보았다. "둘 다 붙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테요? " 그 안해가 물으니 "그러면 구월 초닷샛날을 다시 붙여보겠네.
" 이방은 대답하고 "둘 다 붙지 않으면 다시나 붙이지만 만일 둘 다 붙으면 어
떻게 하나요? " 천왕동이가 물으니 "그건 정성이 부족한 탓이니까 새루 축원하
구 한번 다시 붙여 보지. " 이방은 대답하였다. 이방이 사당 앞에 나서서 무릎을
꿇고 한동안 입속말로 중얼중얼 지껄이고 부엉바위 위에 나와 앉아서 바위 앞이
마에 날짜 쓴돌 두개를 붙이는데 먼저 한개는 떨어지고 나중 한 개는 붙었다. "
용왕께서 사월에 혼인하라시네. " "아이구, 이거 근두박질할 일이 났구려. " "그
대루 지낼 수밖에. 내일부터 준비하면 그 동안에 대강 되겠지. ” "어떻게 된다
고 그러오? " "안 되더래두 할 수 있나. " 이방이 뒤에 와서 섰는 천왕동이를 돌
아보며 "자네는 바쁘지 않겠나? " 하고 물으니 "그 동안에 양주를 한번 갔다오
면 고만이지 바쁠 거 무어 있세요? “ 하고 천왕동이는 일이 소원깨로 되어서
벙글벙글 웃는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부엉바위 나왔던 일행이 읍에 들어을 때 길거리에서 동선관 갔다 오는 일행과
서로 만났다. 손가가 천왕동이를 보고 "이 사람아, 남들을 기다리라구 해놓구 어
디 다른 데를 간단 말인가. " 하고 책망하는데 천왕동이는 유복이를 향하고 "미
안하게 되었소. " 하고 사과하였다. 이방의 안배가 오가 마누라를 보고 "저 마누
라가 요전에 우리 집에 왔다 간 이 아니라고. " 하고 알은 체하여 서로 인사 수
작하는 동안에 이방이 천왕동이에게 "자네 동행들인가? " 하고 묻고 나서 유복
이와 손가를 차례로 인사한 뒤에 "우리 집으루 같이들 갑시다. " 하고 끌어서 두
일행이 함께 이방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천왕동이가 동행들까지 데리고 이방의
집에 와서 점심 저녁 두 끼를 대접받았다. 유복이와 손가가 이방에게 작별할 때
천왕동이도 역시 작별 인사를 말하려고 한즉 이방이 "자네는 내일 아침을 내게
와서 먹구 가게. " 하고 말하였다. "내일 식전 일찍들 떠난다니까 올 수가 없을
걸요. "아침을 일찍 시켜놓구 기다림세. " "그럴 것 없세요. 여럿이 같이 먹구 떠
나는 게 편하지요. " "그러면 여럿이 다같이 오게. " 유복이가 먼저 "천만의 말씀
이오. " 하고 고개를 외치고 또 손가가 뒤따라서 "오늘두 폐를 많이 끼쳤는데 내
일 아침 또 오다니 될 말인가요. " 하고 고개를 외쳐서 이방은 "그러면 내가 내
일 식전 조사 보러 가는 길에 객주에 들림세. " 하고 말하여 작별은 흐지부지하
고 객주로 돌아왔다. 이튿날 식전에 과연 키방이 일찍이 객주에 와서 오가 마누
라에게까지 잘 가라고 인사하고 천왕동이를 따로 보고 "혼인 날짜가 급하기두
하려니와 자네는 대사라구 발심 섭력해 줄 사람이 별루 없는 모양이니 미비한
것이 있더래두 그대루 오게. 내가 여기서 주선할 건 주선하구 변통할 건 변통해
줌세, 아무쪼록 열나흗날 전에 여기를 대어 오두룩 하네. 조사가 바빠서 떠나는
건 보지 못하구 가니 잘 가게. " 다정한 말로 작별하고 갔다. 봉산서 돌아오는
길에 천왕동이는 청석골을 들르지 않고 양주로 바로 가려고 하니 유복이가 "오
늘 우리게 가서 쉬어서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끌었다. "같이 가서 할
일이 있소? " "자네 혼행 떠나는 것을 보러 갈 텔세. " "볼 것두 없겠지만 보구
싶다면 내다 갈 때 잠깐 들러가리다. " "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보러 가겠네. "
오가 마누라까지 "오늘 하루 우리게 와서 묵어간다구 낭패되지 않을 테니까 고
세우지 말구 같이 가요. " 하고 끌어서 천왕동이는 청석골서 하룻밤 지내고 이튿
날 유복이와 동행하여 양주로 떠나오는데 유복이가 전에 없이 큼직한 보따리를
들고 나서서 천왕동이가 "크게 무슨 보따리요? “ 하고 물으니 유복이는 "양주
갖다 둘 것일세. " 하고 더 말하지 아니하였다.
양주 꺽정이 집에서는 천왕동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궁금히들 여
기던 차인데 의외에 봉산 가서 혼인 정하고 온 이야기를 듣고 꺽정이는 "내 근
심 하나가 덜린 폭이다. "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백손 어머니는 "우리 천왕동이
도 장나를 들 날이 있네. " 하고 펄펄 뛰다시피 좋아하고 애기 어머니는 "봉산
꾀꼬리가 머리 곱게 빗구 황도령에게로 시집을 초면 양주 꾀꼬리가 서운하겠네.
" 하고 조롱할 말을 잊지 아니하였다. "양주 꾀꼬리는 누구요? " "양주 죄꼬리는
뒤껼 느티나무에서 울던 꾀꼬리지, 누구는 다 무어야. " "나는 양주 꾀꼬리두 사
람이라구. " 천왕동이와 애기 어머니가 실없은 말을 주고받을 때 꺽정이가 옆에
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구 대사 치를 의논이나 하지. " 하고 나무라듯 말
하여 두 사람의 실없은 말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새옷은 한 벌 해 입혀야지.
옷감을 변통해 와야겠구나, 요새 옷감은 무엇이 좋은가? " 하고 꺽정이가 말하는
끝에 유복이가 가지고 온 보따리를 갖다가 풀면서 애기 어머니를 보고 "이것이
옷감이 될까, 누님 좀 보시오. " 하고 말하여 애기 어머니는 "웬 옷감이야? " 하
고 보따리를 푸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유복이가 보따리에서 명주 세 필과 모시
세 필을 꺼내놓으니 백손 어머니가 우선 꺽정이를 바라보면서 "이것만 가지면
옷감 걱정 없겠소. " 하고 좋아하였다. 애기 어머니가 명주와 모시를 번갈아 들
고 보면서 "명지도 좋거니와 모시가 곱고 좋군. 황도령이 호사하네. " 하고 웃으
니 백손 어머니가 그 뒤를 받아서 "무명것만 입던 사람이 갑자기 명지옷 모시옷
을 입으면 몸이 부르트겠소. " 하고 웃었다. "모시는 다듬어서 홑두루마기를 짓
고 명지는 쟁쳐서 바지저고리를 지으면 좋겠는데 날짜가 급하니까 다 될는지 모
르겠네. " "형님이 밤 새어가며 하시면 되겠지요. " "나는 밤새고 자네는 잠자
고? " "나는 무얼 할 줄을 알아야 하지요. " "바지 솔기도 호지 못하나? " "할
줄 아는 일은 형님이 하라시는 대로 할 테니 염려 마시오. " "바느질을 얼마나
많이 할 텐가? " "나는 바늘을 들면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 낫살 먹을수록
점점 더하니 별일이야. " "듣기 싫어. 갑갑증이 나면 깃 달다가도 열두 번씩 일
어서고 별 짓 다 하지. " "깃 달다가 일어서면 옷 임자가 명 짧단 말은 형님이
나를 못 일어나게 하느라고 지어낸 말이지 무어야. 내가 다 알아요. " "잘 알았
네. 고만두게. 좌우간 혼인 일을 자네가 한댔자 내 입이 달아야 할 테니까 나 혼
자 하다시피 할 텐데 여러 가지 일을 언제
다 하나. " "우리 동생을 형님이 장가들여 주시는 셈치고 애를 좀 많이 쓰시구
려. " "애플 써도 될 것 같지 않으니까 말이지. " "그럼 어떻게 하오. 이웃집에
부주일 좀 해달라까. " "누구더러 일을 해달래, 그대루 집에서 하지. " 하고 꺽정
이가 소리를 지르니 백손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애기 어머니는 꺽정이보고 "여
게 동생,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집에 있는 생명지로 겹바지 저고리를 짓고 이
모시로는 진솔두루마기만 하나를 짓세. " 하고 의논성으로 말하였다. "맘대루 하
시구려. 그렇지만 무슨 무색이든지 무색을 들여야지 건색은 보기 싫소. 그러구
일이 바쁘거든 바지는 고만두구 무명으루 고의를 지어 입게 하시오. " "혼인에는
흩껍데기 고의를 안 입는 법이라네. " "그런 법을 내가 아우? 알아 하시우. " "
지금부터라도 곧 일을 시작해야지. " 하고 애기 어머니가 백손 어머니를 돌아보
며 "여보게, 명지 모시 다 가지구 오게. " 말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꺽정이가 "
잠깐만 더 앉으시우. " 하고 붙들었다. "관례는 일간 곧 해야 할 텐데 관례보임
은 어떻게 하우? " "혼인옷두 급한데 관례보임을 어떻게 하나. 집에 빨아놓은
옷이나 갈아입게 하지. " "내 옷 새루 지은 것이 있지요. 그걸 줄여 입히면 어떻
겠소? “ "해놓은 옷플 뜯어 줄이기가 여간일 아니야. 그러고 위요로 가자면 새
옷 한벌 입어야지. " "내가 위요루 가더래두 새옷은 입어 무어하우. 의관을 갖추
지 못할 사람이 추레하게 입었다구 행세가 더 깎일 거 있소. " "참말로 위요는
다른 사람을 보냈으면 좋겠네, 위요 상객으로 가서 소인을 개올리긴 창피하겠어.
" "여느때는 창피하지 않소? " 하고 유복이싸 말깃을 다니 "여느때보다도 더 창
피하단 말이지. " 하고 애기 어머니가 대꾸하였다. 꺽정이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너 좀 위요루 가거라. " 하고 말하니 유복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언니가 가라시면 가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혼행에 인마두 여기서는 얻
기가 어려운데 청석골서 얻어줄 수 있겠니? ” "인마는 고사하구 잠과 함속까지
라두 청석골서 얻어을 수 있소. “ "함과 함속을 누가 빌려주나? " "송도 가서
사오지두 못해요. " "그거야 될 수 있니? ” "언니 말이면 늙은이 내외두 싫단
말 않을 게요. " "폐를 끼쳐볼까. " "폐가 무슨 폐요. 내가 가서 얻어가지구 오리
다. " "그러면 네가 먼저 가서 얻어놓구 기다려라. 여기서 열흘날쯤 가두룩 하마.
" "그렇게 해두 좋겠지요. 그럼 가는 내일 도루 가겠소. " 이튿날 유복이는 청석
골로 돌아갔다.
천왕동이가 팔일에 성관하고 십일일에 청석골로 오고 십이일에 청석골을 떠나
서 십사일에 봉산을 대어왔다. 청석골 올 때는 꺽정이와 처남 매부 단둘이 걸어
왔고, 봉산 올 때는 유복이와 신랑 위요 둘이 다 말을 타고 견마잡이 두 사람
외에 함질 복수 한 사림까지 따로 테리고 왔다. 신부집에서 치워놓은 사처에 들
어서 밤에 봉치를 보내는데 백이방이 등롱도 한 쌍 얻어주었거니와 홰꾼을 십여
명 나눠주어서 홰싸움까지 있었다.
그 동안 이방의 집에는 혼인 준비에 안팎이 들썩들썩하였다. 밖에서는 재료를
얻어들인다, 제구를 빌어온다 심부름꾼들이 뻔질 들락날락하고 안에서는 혼인
바느질을 한다, 잔치 음식을 만든다 부조 일꾼들이 종일 버걱버걱하였다. 이방
상주의 기구도 있으려니와 이부자리 같은 대무한 것은 미리미리 준비가 있었던
까닭에 촉박한 날짜에 별로 미비한 것이 없이 다 되었다. 신랑편에서 쓸 혼구까
지도 낭패가 없도록 다 얻어놓았다. 이방이 신랑 타고 온 말이 절따마인 것을
보고 와서 부리나케 백따마까지 구해 보내면서 사모관대만은 빌어 들일 생각도
먹지 아니하였다. 이방의 안해는 신랑을 한번 사모관대 시켜보고 싶어서 이방에
게 청까지 하였으나 상사람은 혼인 때 사모관대를 못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이방
은 자기네 입는 단령을 입히기로 작정하고 자기의 새 단령 한 벌을 보내는데 술
띠만은 자기에 거먹빛 대신에 초록빛을 보내게 하였다.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사월 보름날 혼인날이다. 아침 뒤에 초례 때를 맞추어
서 신랑이 사처에서 떠났는데 사처가 이방의 집에서 끔찍이 가깝건만 길호사로
봉산읍내 장거리를 빙 한번 돌아왔다. 신랑이 문앞에 와서 전안을 마치고 팔밀
이의 뒤를 따라 들어좌서 초례청에 올라설 때 독좌상 옆에 계집아이의 앉고 섰
던 수탉이 한 번 꼬끼오 하고 울었다. 사람에게 붙들려서 날개도 못 치고 우는
것이지만 꼬끼오 소리가 제법 컸다. 마루에 섰는 이방은 유복이를 보고 길조라
고 좋아하고 안방에 있는 여러 여편네들은 이방의 안해를 둘러싸고 희한한 일이
라고 치하들 하였다. 신랑과 신부가 마주 섰다. 신랑의 복색은 이방의 의견을 좇
아서 초립을 쓰고 단령을 입고 발에 갖신을 신었고, 신부의 치장은 양반의 집
본을 떠서 화관을 쓰이고 원삼을 입히고 얼굴을 미선으로 가리어 주었다. 신부
의 사배와 신랑의 재배로 교배를 마치었다. 신랑 신부를 마주 앉히고 신부를 절
시키던 여편네 하나가 청실홍실 늘인 표주박으로 술을 돌리는데 갖은 덕담을 다
하면서 이편 저편으로 세 번씩 왔다 갔다 하였다. 초례가 이로써 끝이 났다. 신
방인 건넌방에 먼저 신랑을 들여앉히고 다음에 신부를 데리고 와서 방합례를 시
키었다. 신부를 잠간 앉혔다가 다시 데려내간 뒤에 신랑은 옷을 갈아입혀
서 데려내왔다. 이방이 아랫목에 앉아서 싱글벙글하면서 "내게부터 절 한번 해
라. " 하고 말하려 사위의 처음 절을 받고 나서 "이는 네 처당숙이구 이는 네 처
외삼촌이구 또 이는 가만 있거라. 내게 십촌, 네게 처 열한촌 숙항 되는 이다.
절 한번씩 해라. " "저기 앉으신 한호장, 박형방, 이병방, 최공방이 다 네게는 어
른이니 차례루 절하구 뵈어라. " 하고 사람을 일일이 가리키며 절을 시키었다.
천왕동이가 허리가 아프도록 꾸벅꾸벅 절인사를 마치고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
과 모조리 입인사를 하였는데 사람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를 잘 역량 할 수가
없었다.
점심 장국을 먹은 뒤에 유복이는 사처로 돌아가고 천왕동이는 신방에서 팔밀
이하던 젊은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며 반 나절을 보내었다. 저녁이 되어서 저녁
밥을 먹고 밤이 들어서 밤참을 먹은 뒤에 천왕동이는 꽃 같은 색시와 즐거운 첫
날밤을 같이 지내는데 신방 방문 밖에는 밤중까지 엿보는 사람들이 붙어섰었다.
노총각인 신랑과 과년한 신부가 같이 자는 방을 신방이라고 엿보는 것부터 실없
은 사람의 일이거니, 더구나 엿본 광경을 누가 말로 옮기며 붓으로 적을 것이랴.
옛사람들이 단산에 봉황이 넘놀고 녹수에 원앙이 희동한다고 적은 것도 벌써 온
당치 않은 붓장난이라고 할 것이다.
천왕동이가 백이방의 집 사위가 된 뒤에 이방 내외의 간청을 받고 꺽정이 내
외의 허락을 얻어서 데릴사위로 처가살이를 하게 작정이 되었다. 신부례 일체로
새 내외가 한번 같이 양주를 갔다왔다. 사위 사랑 장모라 천왕동이가 이방 안해
에게 사랑받는 것은 말할 것고 없고 이방과도 옹서간에 의가 좋았다. 이방이 별
로 볼
일 없을 때는 집에 들어앉아서 천왕동이와 장기를 두었다. 천왕동이는 장기 두
라면 열일을 제치는 사람이고, 이방은 장기 두는 것도 싫지 않거니와 사위를 눈
앞에 보는 것이 더욱 대견하여서 밤낮 없이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가 많았다.
천왕동이가 가끔 곡경을 당하는 것은 이방이 사위를 이인으로 여기는 까닭인데
이방이 의심나는 일을 물을 때에 천왕동이가 "나는 모르겠습니다. " 하고 대답하
면 이방은 "네가 모를 리가 있나? "
하고 모른단 말을 믿지 않아서 천왕동이는 해혹시킬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내
아에서 구리수저 세 벌을 잃고 야단이 난 때 이방이 천왕동이를 보고 이야기하
고 나서 "그게 뮈 짓이냐? 너는 알겠지. " 하고 물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 "네가 알아두 말을 하기 싫다면 모를까, 어째 내게다가 모른다구 말을 하니? "
"정말을 거짓말루 아시니까 말씀을 할 수가 없세요. " "정말이래야 정말루 알지.
" "저렇게 말씀할 때는 속이 다 답답합디다. " "내 속이 답답하다. " "글쎄 제가
점쟁이에요? 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단 말씀입니까? " "궤 속 물건은 어떻게
알아냈니? " "제가 무슨 재주루 그걸 알아냈겠어요. " "알아냈으니까 재주 아니
냐? " "이때껏 제가 알아낸 줄로만 아십니다그려. 참말 딱하시오. " 천왕동이는
마침내 장모가 객주에 와서 가르쳐 준 것을 토설하여 이방은 듣고 어이가 없어
한동안 벌린 입을 닫히지 못하였다. "첫날 취재는 어떻게 된 것이냐? " "그건 제
가 눈치수 알았지요. " "눈치루 그렇게 용하게 알 수가 있나? " 이방이 손가락으
로 말한 뜻을 천왕동이에게 물어보니 천왕동이의 말하는 뜻이 자기의 뜻과 틀려
도 여간 틀리지 아니하여 다시 어이가 없는 중에 일곱을 셋으로 짐작한 것을 생
각하니 어이가 없다 못하여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구 보면 내가 취재 본
보람은 없다마는 그것두 막비연분이지. ” 하고 이방은 마음을 눙치고 말았다.
그 뒤로는 천왕동이가 곡경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천왕동이가 처가살이한 지 그
럭저럭 두어 달 된 때 하루는 이방이 천왕동이를 보고 "집에서 노느니 무슨 구
실을 다녀볼 생각이 없느냐?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무슨 구실이든지 다니
게 해주시면 다니겠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통인이 하나 궐이 났는데
넣어주면 다닐 테냐? “ ”다닐 테요. 넣어주시오. " 며칠 뒤에 천왕동이는 통인
으로 뽑히어서 다시 상투를 풀어내려서 머리를 땋고 통인 복색으로 관가에 들어
가서 현신을 하였다. 새로 통인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통방의 허참을 치르는 법
이다. 각골 통방의 허참이란 것은 마치 선전관청의 허참과 같은데 더 좀 무식스
러웠다. 원이 내아에 들어간 틈에 수통인이 상좌에 앉아서 다른 통인들에게 눈
짓하여 여러 통인이 천왕동이에게 달려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천왕동이가 처음
에는 "왜 이래 왜 이래! " 하고 별로 항거하지 않다가 방망이질을 당하게 되며
천왕동이는 분이 나서 수통인 이하 여러 통인을 치고 차고 하쳐 통방에 큰 야료
를 꾸며냈다. 야료가 너무 커서 원의 귀에 들어갔다. 원이 동헌에 앉아서 천왕동
이와 여러 통인을 잡아내어 낱낱이 치죄한 뒤에 이방을 불러들여서 "네 사위가
통인보다도 장교감이니 장교를 박도록 해라. " 하고 분부하여 천왕동이는 통인
행공 이틀 만에 장교로 옮아서 통방을 나가게 되었다. 털벙거지 남철릭에 복색
이 우선 천왕동이 마음에 들고 또 이방 상주로도 올라서지 못하는 동헌마루에를
올라 서는 것이 천왕동이 마음에 좋아서 장교 행공을 착실히 잘하였다. 이리하
여 천왕동이는 장인 장모에게 귀염을 받고 안해에게 사랑을 받으며 봉산서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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