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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련이가 무남독녀로 버룻없이 길린 까닭에 수줍은 태는 적고 주책없고 수다
한 그 어머니를 보고 배운 까닭에 말수는 많았다. 막봉이가 언제부터 친한 사람
이라고 막봉이를 보고 갖은 이야기를 다 묻고 또 갖은 이야기를 다하였다. 그리
하여 막봉이는 자기 집 형편도 대강 말해 주었거니와 귀련이 집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귀련이 부모가 가사리 큰집 이웃에서 살다가 귀련이 일곱 살 먹던
해에 놋박재 밑으로 이사갔는데 그때 이사는 대체가 귀련이의 백부 박선달의 탓
이었다. 박선달이 계수와 격이 나고 또 아우와 의가 상하여 귀련이 부모를 구박
하는 까닭에 성정 괴팍한 귀련이 아버지가 아주 무빈지경에 가서 혼자 살면 속
상하는 꼴을 보고 듣지 않는다고 재 밑예 터를 잡아 집을 짓고 떠나갔고 호젓하
고 외로운 것을참고 견디면서 팔년 동안이나 살다가 삼년 전 귀련 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지금 있는 집으로 다시 이사왔는데 이때 이사는 순전히 놋박재 도적
괴수의 탓이었다. 곽가 성 가진 그 도적 괴수가 자주 놀러와서 귀련이를 보면
계집아이 꼴이 박혔으니 고만 시집보내라고 실없은 말같이 말하더니 나중에 자
기 계집으로 달라고 말을 비치는 까닭에 귀련이 부모가 도적을 피하여 인가처
가까이 와서 살기로 의논하고 이 집을 새로 짓고 부랴부랴 들어왔었다. 귀련이
아버지는 논섬지기 밭날가리가 있어서 처자까지 합하여 세 식구가 먹고 살비 걱
정이 없는데 그 논이나 밭이 모두 귀련이의 조부가 죽을 때 둘째아들을 분배하
여 준 것이고 몇백 석 추수한다는 박선달이 아우를 떼어준 것이 아니었다. 박선
달은 아들을 삼형제나 두었지만 아들 없는 아우에게 양자 하나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 귀련이 부모 역시 양자 아니하고 데릴사위를 얻어서 의지하고 살 작정
이라 사윗감을 벌써부터 구하는 중인데 그 동안 여러 군데 말이 있었지만 그저
말뿐으로 그친 데가 많고 적가리 김풍헌의 맏손자와는 말이 착실하게 되어서 귀
련이 아버지가 김풍헌을 찾아가 보기까지 하였으나 김풍헌은 맏손자를 데릴사위
로 아주 주기 어려우니 혼인한 뒤에 두 집이 한데 모여 살자고 주장하고 귀련이
아버지는 본인한 뒤라도 한데 모여 살 것이 없다고 주장하여 주장이 틀려서 혼
인이 아직 완정이 못 되었는데 완정 못된 것이 지금 와서는 도리어 잘된 일이었
다. 귀련이 어머니가 김풍헌 손자를 탐내던 끝이라 막봉이를 보고 김풍헌 손자
만 못하게 여겨서 말썽을 부릴지 모르나 귀련이가 밥 한 끼만 굻을 작정하면 말
썽 없이 될 수 있고 귀련삐 아버지는 고집이 세지마는 귀련이 어머니 말엔 별로
고집을 세우지 않는 까닭에 어머니만 말썽을 안부리면 아버지는 걱정 몇 마디
하다가 고만두리라는 것이 귀련이의 추측이었다. 귀련이는 귀련이대로 걱정이
없고 막봉이는 막봉이대로 마음이 태평이라 둘이 윗방 좁은 자리에서 닭 울 녘
까지 웃고 지껄이다가 단잠들이 들었다. 막봉이가 자면서 돌아누우려다가 돌아
눕지 못하고 잠이 깨어서 눈을 떠보니 환한 빛이 방문에 비치어 방안이 희미하
게 밝은데 팔을 베고 자는 귀련이의 얼굴이 그림 같아 보이었다. 막봉이가 팔을
빼는 바람에 귀련이도 잠이 깨었다. "오시는 소리가 났소? “ "아니 날이 다 밝
았어. " "날이 밝기 전에 오실 텐데. " "문이 환하지 않아. " 하고 막봉이가 누
운 채 팔을 뻗어서 방문을 열어놓으니 지새어 가는 달빛이 방안으로 흘러들어왔
다. "동이 튼 줄 알았더니 달빛이로군. " "바람이 차오. 얼른 닫으오. " 막봉이가
방문을 닫으려고 일어서서 밖을 내다볼 때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
다. "옵시는 게로군. " 막봉이는 방문을 닫고 와서 다시 드러눕고 "오실 때 되었
어. " 귀련이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련아! " "삽작문 열어
라! " 삽작 밖에서 부모의 소리가 나는데 귀련이는 선뜻 대답 못하고 주저주저
하다가 살그머니 지겟문을 여닫고 아랫방으로 올라갔다. "귀련아! " "귀련아! "
부르는 소리는 차차로 커지고 ”녜. “ 대답하는 소리는 영별치 못하였다. 귀련
이가 방문 열고 나가서 신발을 신을 때 막봉이의 신발은 부엌 편으로 밀어치웠
다. 귀련이가 삽작문을 열어젖히니 그 어머니가 우선 "이것버텀 받아라. " 하고
제사 반기를 내어주고 나서 "아이구 치워. " 하고 새삼스럽게 몸서리를 쳤다. 귀
련이가 부모의 뒤를 따라 아랫방에 들어와서 반기를 싼 대로 끌러보지도 않고
방구석에 놓으니 어머니는 "왜 끌러보지 않니 ? 누르미 맛있더라, 먹어봐라. "
하고 먹기를 권하는데 아버지는 "자다 일어나서 무슨 맛이 있겠니. 두었다 식전
에 먹어라. " 하고 먹지 말라고 말리었다. "먹지 않을라면 가 자거라. 우리도 눈
좀 붙이고 일어나겠다. " 귀련이 어머니가 딸을 향하여 말하고 곧 남편을 돌아보
며 "어서 누우시오. 나도 좀 누워야겠소. 뜨뜻한 방에 와서 앉으
니까 꼬박꼬박 졸리구려. " 말하고 다시 딸을 향하여 "어서 내려가서 자. " 하고
재촉하니 귀련이 아버지도 안해 말을 뒤이어서 "내일 아침은 늦게 먹어두 좋다.
한숨 더 자구 일어나려무나. " 하고 말하였다. 귀련이가 대답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을 때 윗방에서 막봉이가 큰기침을 하였다. 귀련이 어
머니는 입을 딱 벌리고 귀련이 아버지도 눈이 휘등그래졌다. 어머니가 벌린 입
을 겨우 다물고 "웃방에 누구냐? " 하고 묻는데 아버지도 눈을 등그렇게 뜨고
귀련이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금장수요. " "소금장수라니? " ”어머니가
보내셨다며. " "누가 보내, 내가 보냈다고 그러더냐? 총각이지? " 귀련이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저런 숭한 놈이 어디 있어. 저놈을 죽이나 살리나
어떻게 하나. 아이구 치가 떨리네. " "여편네가 수다스러우니까 무슨 변이 안 나!
" "내가 가지 말라고 당부한 게 수다스럽단 말이오? " "길에서 오다가다 만난
소금장수를 보구 딸이 혼자 집에 있느니 딸 이름이 무엇이니 말하는 것이 수다
가 아니란 말이여. " "내가 부아통이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소? 잘못했다고 책
망하는 것도 때가 있지, 지금 총각놈을 어떻게 처치할 생각은 아니 하고 나를
책망하고 있소. " "임자가 저지른 일을 누구더러 처치하래. " "귀련이가 아비 없
는 자식이요, 나 혼자 낳은 자식이오? 어째 남의 자식의 일같이 말하오. " "입
좀 닥쳐. " "입을 닥치라니 말본새가 고뿐이오? " "입이 열 개라두 지껄일 입 없
겠네. " "내가 일부러 딸을 화냥질시켰소. 왜 내게다 이러오? " 귀련이 부모가
내외간에 말다툼을 시작하여 말다툼이 차차로 쇠어갈 때 귀련이는 목메는 소리
로 "아버지, 어머니를 책망 마시고 저를 죽여주셔요. 어머니, 고만 두셔요. 모두
가 제 탓이요, 어머니. " 하고 어머니 치마 앞에 엎드려서 소리내어 울었다. 귀련
이 아버지는 쓴입맛을 다시고 귀련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었다. "이애 일어나서
내 말좀 들어라. " 하고 어머니가 귀련이를 붙들어 일으키고 입을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소곤소곤 말한 뒤에 "그렇거든 그렇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거든 그렇지
않다고 말해라. " 귀련이 입을 치어다보다가 다시 "그렇지 않거든 고개만 가로
흔들어라. " 하고 어머니는 재촉하듯이 말하는데 귀련이는 고개를 흔들기커녕 까
딱도 하리 아니하였다. 어머니가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면서 "여보, 이
걸 어떻게 하면 좋소? “ 하고 물으니 귀련이 아버지가 상을 잔뜩 찡그리고 "우
선 총각을 불러내려다가 말이나 좀 물어보세. " 하고 말하여 귀련이 어머니는 귀
련이를 아랫목으로 밀어앉힌 뒤에 지겟문을 열어젖히며 "이놈아, 이리 내려오너
라!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막옹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인사 없이 쭈그리고
앉았다. "이놈아, 누가 너더러 우리 집으로 가라더냐? " 하고 귀련이 어머니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드는데 "나는 당신의 말을 듣구서 왔소. " 하고 막봉이는
넉살좋게 말하였다. "저런 놈 보게. " "이놈 저놈 않구는 말 못하우. " "너 따위
놈더러 이놈 저놈 못할 게 무어냐! " "귀련이 낯을 봐서 나두 참을 수 있른 데까
지 참을 테지만 당신두 말 좀 조심하우. " "이놈이 되잡아 시비할라나? 그래 이
놈아 내가 너더러 가라더내? " ”처음 보는 사람에게 딸의 이름까지 일러주구
또 두번 세번 가지 말라구 당부하는 것이 수상해서 나는 말을 뒤쪽으루 들었소.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오지 않을걸 온 모양이구려. " "너 같은 놈하고는
더 말하기 싫으니 지금 냉큼 가거라. 그러고 이 근방엔 다시 올 생각 마라. " "
귀련이 말을 들어보구야 내가 가겠소. " "무엇이 어째! 이놈아, 귀련이는 내 딸이
야. " "그게야 누가 모르우? " "그러면 잔소리 말고 어서 가. " "당신 딸에게는
물어볼 말두 못 물어본단 말이오? " "물어볼 만한 말이 무슨 말이냐, 이놈아! "
"무슨 말을 물어보든지 그것까지 알려구 할 게 무어 있소. 둘이 웃방에 가서 이
야기 좀 하겠소. " "안된다. " "나두 안되겠소. " 귀련이 어머니는 기가 막히며
말문이 막히어서 말을 못하고 입술만 공연히 나불나불하다가 흘저에 고개를 뒤
로 돌이키고 "귀련아! " 하고 부르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앉은 귀련
이는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안 하였다. 이때까지
말이 없이 막봉이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가 막봉이 앞으로 나 앉으며 "여게 총
각, 나하구 이야기 좀 하세. " 하고 부드럽게 말하니 막봉이는 “녜. ” 하고 대
답하는 것부터 공손스러웠다. "자네 성명이 무언가? " "길막봉이올시다. " "어디
사나? " "수원 삽니다. " "부모 다 기신가? “ ”녜. “ "몇 형젠가? " "사형제의
끝이올시다. " "자네 남의 집에 데릴사위루 갈 수 있겠나? " 귀련이 어머니가 "
여보? " 하고 남편에게 눈을 흘기니 귀
련이 아버지는 "가만히 있게. " 하고 안해에게 손을 내젓고 다시 막봉이를 향하
여 "자네 부모가 허락하시겠나? " 하고 물었다. "내가 가구 싶다면 고만이지 부
모가 무어라겠소. " "자네가 불패천인 겔세그려. " "불패천이라니 못된 놈이란 말
인가요? " "혼인은 인륜대사인데 부모가 알은곳을 안한단 말인가? ”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스물한 살입니다. " "나이 스물한 살이여? " “녜. ”
"인제 그만큼 알았으니까 우리끼리 의논할 일이 있네. 자네는 가. "어데루 가란
말입니까? “ "어데든지 자네 맘대루 갈 것이지 나더러 물을 거 있나. 며칠 뒤에
한번 다시 오게. " 막봉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며칠 뒤에 다시 올 거 없지요.
지금 내가 웃방에 가 있을 께니 의논들 하시구려. " 하고 대답하며 곧 귀련이 아
버지의 말도 더 들어보지 않고 윗방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 "무
얼 어떻게 하면 좋으냐 말이요, 보내는 게지. " "내가 좋게 말해두 안 가는 걸
어떻게 하나. " "누가 사위나 삼을 듯기 말하랍디까. " "그렇게 말해서 보내놓구
보려구 그랬지. " "그러지 말고 곧 가라시오. " "가지 않는 걸 끌어배나 잡아내
나. " "귀련이 시켜 가래 봅시다. " "귀련아, 네가 가라구 할 테냐? " "너의 아버
지 말씀을 왜 대답 않니? " "아비 어미의 말을 들은 체 않는 법이 어디 있니? "
"이애가 환장이 되었나. " 귀련이 부모가 말을 그치고 서로 바라보는 중에 날이
활짝 밝았다. 낮에도 오는 사람이 없는 집에 새벽 손님이 찾아왔다. "박서방 일
어났나? 일어났거든 좀 나오게. " 하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귀련이 아버지가 삽
작 밖에 나가 보니 김풍헌 늙은이가 지팡이 짚고 서 있는데 기색이 좋지 않은
것이 시비하러 온 사람 같았다. "이게 웬일이시오? “ "자네게 ,치하 왔네. " "치
하라니요? " "장사 사위 얻은 치하 왔어. " "장사가 누구요? " "장사가 누군 걸
몰라서 묻나? 소금장수 , 똥장수 자네 사위 잘 얻었데. 그렇지만 남의 자익들을
병신이나 만들지 말라고 당부 좀 하게. ” “무슨 소리요? 당초에 영문을 모르
겠소. " "자네가 모르쇠루 잡아떼는 모양인가. " "무얼 잡아뗀단 말이오? " "소금
장수가 자네 집에서 자지 않았나? 왜 대답이 없나? 더 잡아뗄 뱃심이 없나? 고
르구 고른 사위 데려내다 구경 좀 시키게. ” "알지두 못하구 왜 시비요? " "무
얼 알지 못해, 자네가 장한 사위 얻은 것을 알지 못해! " "누가 사위를 얻었다고
말합디까? " "자네가 딸을 잘 두었으니까 소금장수 같은 사위나 얻어야 알맞
을 것일세. " "내 딸 걱정 마시오. 당신 손자하구 부득부득 흔인하자지 않소. " "
하자면 누가 한다던가? 내 손자를 총각으루 늙히더래두 자네 딸하구는 혼인하지
않네. " "나는 뒤가 급해서 더 말하구 있을 수 없소. " "나두더 할말 없네. 자가
네. " 김풍헌은 뿌르르 하고 돌아서서 지팡막대를 드던지고 귀련이 아버지는 삽
작 밖에 있는 뒷간으로 들어갔다.
귀련이 어머니가 손님이 누구인가 알고 싶어서 남편 뒤를 따라 나왔다가 남편
이 방에 없른 동안에 귀련이에게 말을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즉시 방으로
되들어왔다. 귀련이 옆에 와서 붙어 앉으며 "이애 귀련아, 나하도 이야기 좀 하
자. " 하고 말한 뒤 곧 귀련의 귀에 입을 대고 "총각이 네 맘에 드니? 네 맘에
들 것 같으면 숨기지 말고 말을해라. 너의 아버지하고 좋도록 의논할 테다. " 하
고 가만가만 말하였다. "인제 몸을 버렸으니까 죽어도 다른 데는 못 가요. " "소
금장수 총각을 사위로 얻으면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너희 큰
아버지 보기가 창피하지 않으냐! " "큰아버지가 절까지 했다오. " "큰아버지가
절을 하다니? " 귀련이가 막봉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강 옮기는데 귀련이 어머
니는 재미있게 듣고 나서 "참말 그렇게 봉변을 했으면 잘코사니지만 총각의 허
풍인지 누가 아니? " "나도 처음에는 곧이 안 들었더니 나중 보니까 도적놈을
혼냈단
말이 거짓말이 아닙디다. " “거짓말 아닌 줄을 무얼 노고서 알았니? " 귀련이
가 막붕이의 울 뛰어넘던 것을 이야기하고 나서 막봉이의 총각들과 싸우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귀련이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의 아버지도
들으시게 이야기하려무나. " "무슨 이야기야? " "어제 저녁에 총각난리가 났었더
라는구려. " "총각난리란 다 무어요? " "이애 네가 이야기해라. " 귀련이가 고대
를 다소곳하고 앉아서 눈으로 본 광경을 다 이야기하였다. "적가리 총각들이 왔
다가 혼나고 간 모양이지요. " 귀련이 어머니가 남편의 말을 자아내었다. "총각
놈들은 어떻게 알구 왔을까? " "저녁 전에 초군 아이들이 와서 보고 갔다니까
그 아이들이 가서 이야기한 게지요. " "내괴 김풍헌이 새벽에 쫓아와서 영문 모
를 소리를 지껄이더라니 김풍헌의 손자두 섞여 왔던 게로군. " "앞장섰기도 쉽지
요. " 귀련이 아버지가 딸을 돌아보며 "너는 나가서 아침이나 지어라. " 하고 말
을 일러서 귀련이가 말없이 일어설 때 "쌀이 웃방에 있으니까 내가 내주고 오리
다. " 귀련이 어머니가 말하고 딸과 같이 일어섰다. 이때 윗방의 총각은 개잠이
들어서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까지 났다. 막봉이는 개잠 자고 귀련이는 밥짓
는 동안에 귀련이 부모는 서로 의논하고 막봉이를 사윗감으로 정하여 성례까지
속히 하기로 작정하였다. 혼인이 말썽없이 되어서 막봉이도 좋아하고 귀련이도
좋아하였다. 귀련이 아버지는 딸의 행적을 덮어주려고 그대로 혼인을 정하였으
나 막봉이가 눈이 불량스러워서 마음에 탐탁치 못하였고, 귀련이 어머니는 막봉
이의 인물이 김풍헌 손자만큼 준수하지 못하여 부족한 중에 소금장수 사위가 종
시 창피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궁합도 잘 보고 택일도 잘 하는 사람이라 막봉
이의 정유생과 귀련이의 경자생이 간지 오행으로도 상생이라 좋고 납음 오행으
로도 상생이라 좋고 또 이 토랭으로는 어떻고 저 오행으로는 어떻다고 궁합 보
는 문서를 다 늘어놓은 뒤에 혼인을 하자면 이 달이 대리월이라 이 달 안에 작
수 성례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택일을 가깝게 하여 막봉이는 오륙 일 안에 발안
이 집에를 다녀오제 되었다. 이 날 아침 뒤에 막창이는 안성서 떠나서 이튿날
아침때 발안이로 돌아왔다. 그 동안 삼봉이도 송도서 손가의 집 이사를 보아주
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부모 형제 모여앉은 자리에서 막봉이가 데릴사위로 장
가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니 늙은 부모는 막내아들마저 성취하게 되는 것만 다
행하여 좋다고들 말하고 큰봉이와 작은봉이는 마음에 맞지 알는 막봉이가 따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 시원하여 좋다고들 하는데 오직 삼봉이만은 동생과 떨어지
기가 섭섭하여 막봉이를 보고 "네가 집에서 나가면 나두 집에 있을 재미 없다.
식구 끌구 타관
으루나 나가겠다. " 하고 말하였다. 타관으로 나간다는 딸이 아비 귀에 거슬렸다.
"늙은 아비 어미는 내버리구 가두 좋단 말이야? " "형들이 있지 않아요? " "형들
은 형들이구 너는 너지. " "막봉이까지 없으면 형들의 되지 않는 잔소리를 저 혼
자 듣느라구 머리가 빠지게요. “ "형들이 잔소리를 한다구 치더래두 너같이 밤
낮 길루 돌아다니는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 "잠깐 잠깐 집에 와서 있는 동안이
라두 그렇지요. " 삼봉이 말대답에 홧증 난 아비가 "아무리 데릴사위루 가더래두
신부를 한번 데리구 와서 아비 어미 상면은 시키겠지. " 하고 막봉이에게까디 체
증기 있게 말하였다. "가서 의논해 봐야지요. " "만일 의논이 잘 안 되면 아비
어미는 며느리라구 꼴두 보지 못하구 죽겠구나. " "의논이 잘 안될 까닭이 있나
요? " "명색이라두 신부례라구 하자면 술잔이나 준비해야 할 거 아니냐. " 큰봉
이가 나서서 "신부례를 한다면 이번에 곧 하게 될까. " 하고 막봉이에게 묻는데
아비가 "그것두 가서 의논배 봐야겠지. " 하고 비꼬듯 말하여 막봉이는 불쾌스럽
게 "혼인날 곧 떠나오두룩 할 테요. " 하고 형의 말을 대답하였다. "첫날밤두 안
치르구? " "첫날밤은 길에선 못 지내우? " 큰봉이가 다시 말하기 전에 아비가 "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 하고 나무라는 것을 막봉이가 "법은 무슨 법이
요, 개 콧구멍같이. " 하고 뒤받아서 "나는 모르겠다. 다 너의 암대루 해라. " 하
고 아비는 삼봉이, 막봉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뒤에 막봉이가 성관하고 장가 들러 갈 때에 늙은 아비는 백리길 가기에
근력이 부치느니보다 화가 덜 풀려서 후행 갈 생각을 아니하였고, 큰봉이는 신
부렛날 준비할 것이 있어서 후행갈 수가 없었고, 작은봉이는 후행 손님 노릇을
하고 싶어서 다겠다고 말까지 하였으나 막봉이가 같이 가기 싫다고 하여 삼봉이
가 후행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귀련이 혼인날도 박서방 집은 별로 평일과 다름없이 조용하였다. 혼인을 지내
는 줄 알면 올 사람이 더러 있을 터이지만 구메 혼인하듯 소문없이 혼인하는 까
닭에 손님도 없고 구경꾼도 없었다. 전지를 부치는 작인 내외가 일 보아부러 왔
고 박선달의 아들 위로 형제가 인사 치르러 왔을 뿐이고 박선달은 병이 있다고
핑계하고 질녀의 흔인도 보러 오지 아니하였다. 초례를 지내는데 초례청은 마당
이요, 독좌상은 정화수상이요, 멍석 위에 덧간 기직자리는 화문등메 맞잡이였다.
기직자리 위에 신랑 색시가 마주 서서 큰절 한번으로 인륜의 대례를 순성하였
따. 색시 어머니는 말떡 용떡을 만들지 못하여 섭섭하고 청실 홍실을 늘이지 못
하여 섭섭하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여차요, 초례 전에 봉치를 제례한 것과 초례
후에 첫날밤은 제례할 것이 마음에 불쾌하여 초례 마치고 곧 상우례한 새사위를
보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함이나 하나 가지고 올 것이지 맨손으로 오는
법이 어디 있나. 봉치는 지금 와서 말했자 소용없지만 첫날밤은 치러야 하네. 첫
날 밤도 안 치르고 길을 떠나다니 말이 되나. " "안됩니다. " "안될 일이 무엇인
가? " "집에서 그렇게 말하구 왔어요. "
"누가 그렇게 말하고 오라나? " "그렇게 말하구 온 걸 지금 어떻게 해요. 그 대
신 곧 되짚어 떠나오지요. " "누가 얼른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인가. 첫날밤을 지
내고 가란 말이지. “ 색시 아버지가 옆에서 듣다가 "이 사람 쓸데없이 잔소리
말게. " 하고 핀잔 주고 나섰다. "어째 잔소리라오. 혼인하고 첫날밤 안 치르는
법이 어디 있소? " "미리 다 말해서 알구 지금 와서 무슨 딴소리야. " "미리 말
한 것은 다시 의논 못하오? 이러고져러고 간에 오늘은 못 떠나게 할 테니 그리
아시오. " "고만두구 어서 가서 국수상이나 차려서 먹게 하게. " "오늘은 못 떠나
요. " "그러지 마라. " 남편이 말다툼 아니하려고 수그러지니 안해는 점점 더 기
승을 부렸다. "그런 일은 못될 일이라고 딱딱 무질러 말 못하고 말하는 나더러
잔소리래. 혼인날 떠나온다고 말한 사람도 지각이 없지만 혼인 날 떠나오라는
사람들은 무슨 지각이야. " 사돈 마누라의 말이 저의 집에 피침한 것을 듣고 상
객으로 온 삼봉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제기 소리 한마디를 제법 크게 내놓
았다. "별 해괴한 일 다 보겠네. " 색시 어머니가 혼잣말하듯이 지껄이는데 삼봉
이는 증을 벌컥 내며 막봉이를 보고 "너는 가든지 말든지 나는 간다. " 하고 곧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형님 같이 갑시다. 나두 가겠소. " 막봉이가 붙들었다. 색
시 아버지가 사위 형제를 무마하여 놓고 다시 안해를 타일러서 점심 먹고 다같
이 떠나기로 되었는데 작인 내외는 집에 두고 조카 형제는 가사리 앞까지 동행
하고 딸은 읍내 가서 삯마를 태워따지고 가기로 하였다. 귀련이가 생외 처음으
로 말을 타보는 까닭에 조금만 빨리 가도 겁을 내서 아버지를 불렀다.
귀련이 아버지와 막봉이가 양옆에서 붙들고 가노라니 길이 자연 늦어서 떠나
던 이튿날도 해질 물에 간신히 발안이를 대어왔다. 그 날은 사처에서 자고 그
이튿날 신부례를 지내는데 말이 신부례지 폐백까지 없는 신부례라 거북살스러운
예절을 차리지 아니하여 잠깐 동안에 끝이 났다. 막봉이 부모는 새며느리를 하
루라도 묵히려고 하였지만 막봉이가 고집을 세워서 혼인날 떠나오듯이 신부렛날
도 점심 먹고 되떠났다. 귀련이 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딸
내외더러 "형님은 반갑게 알거나말거나 우리 도리는 차려야 할 테니 이번에 아
주 가시리를 다녀가자. " 하고 말하였다.
귀련이가 그 동안 말에 익어서 갈 때보다 길이 좀 빨랐다. 발안이에서 떠나던
이튿날 늦은 점심때쯤 가사리를 당도하였다. 박선달 집 문앞에 와서 귀련이 아
버지는 딸을 말께서 내려 바로 안으로 들여보내고 사위를 데리고 사랑에 들어와
보니 박선달이 첩의 집에 가고 사랑에 있지 아니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조카
하나를 보냈더니 그 조카가 갔다와서 지금 곧 오신답디다 하고 말하여 곧 올 줄
알고 기다리었다. 오지 않는 형을 한동안 헛기다리던 끝에 귀련이 아버지는 "안
에나 잠깐 다녀오겠다. " 하고 막봉이는 큰조카와 같이 사랑에 앉혀두고 자기는
작은조카들을 앞세우고 안방에 들어와서 형수게게 인사하고 조카며느리들에게
인사 받는 중에 안중문간에서 큰기침 소리가 났다. "인제 오시지? " "녜, 오십니
다. " 귀련이 아버지가 조카들과 같이 마루로 나오는데 귀련이도 사촌 올케들과
같이 뒤를 따라나왔다. 박선달이 몸집이 뚱뚱한 것보다도 거드름 부리느라고 거
위걸음을 걸어 들어왔다, 마루에 섰는 사람들은 박선달이 잘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루로 올라오며 곧 안방으로 들어오는데 여러 사람이 다 그 뒤를 따라들어왔
다. 박선달이 안방에 들어와서 아랫목에 좌정한 뒤 먼저 귀련이 아버지가 절을
하니 골난 사람같이 뿌루퉁하고 앉아서 왔느냐 말 한마디 아니하
고 그 다음에 귀련이가 절을 하니 "음. "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퍽 컸구
나. 자식두 넉넉히 낳겠다. " 박선달은 가장 재미스럽게나 말한 듯이 싱글싱글
웃고 "네 남편이 수원 사람이라지? " 하고 귀련이보고 묻는데 “녜. ” 하고 귀
련이 아버지가 딸 대신 대답하였다. "성이 무언구? " "길 가랍니다. " "길가? 상
놈의 성이로군. " "반명은 아니겠지요. " "그럼 무얼 취해서 혼인을 했담? " "사
윗감 하나 보구 했어요. " "개천에서 용났단 말 못 들어. " "사위가 천하 장사랍
니다. 우리는 몰라두 팔도에 힘꼴 쓴다는 사람은 길막봉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
답니다. " "길막봉이? " 하고 박선달은 곧 미간에 주름을 잡는데 주름 사이에 불
쾌한 기색
이 현저히 나타났다. "사위 말은 형님을 전에 한번 보인 일이 있다고 합디다. "
"날 어디서 봐? " "지금 사랑에 있으니 나가 보시면 아시겠지요. " 박선달은 혜
음령에서 망신한 이야기를 아우가 들어 알려니 생각하면서도 "네가 본들 알 까
닭이 있나. " 딱 잡아떼고 나서 "네가 딸 혼인을 정하는데 어째 내게 의논 한마
디 없이 정하느냐. " 하고 시비를 시작하였다. 아우가 발명하려는 것을 가로막고
박선달이 "내게다 말하면 행세하는 집으루 여의어 줄 것인데 무지막지한 상것들
의 자식을 사위루 얻어서 아무개의 조카사위라구 내돌릴 모양이니 구경 내 낯을
깎잔 말이구나. "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너 같은 것은 본래 내가 동기
루 안 여긴다. 꼴두 보기 싫다. 냉큼 가거라! " 하고 호령호령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우는 딸을 데리고 사랑으로 나와서 사위더러 가자고 말할 때
막봉이가 귀련이의 우는 까닭을 물으니 "당신이 상놈이라구 우리 아버지가 호령
을 받았다오. " 귀련이가 울면서 대답하였다. "누가 호령을 해? " "누구야, 이 집
선다님이지. " "상놈이라구. " 하고 막봉이가 한번 뇌고 나서 귀련이 부녀가 붙
들 사이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막봉이가 안마루에 껑청 뛰어올라설 때
박선달이 안방 머리맡 문을 열고 내다보며 "웬놈이 내정 돌입하느냐! " 하고 호
령하였다. 막봉이가 팔을 걷어붙이며 방문 앞으로 대어드니 박선달이 일변 윗간
으로 피하여 가며 일변 "얼른 하인들 불러서 저놈을 잡아내라! " 하고 고성을 질
렀다. 막봉이가 신발 신은 채 방으로 뛰어들어 와서 윗간 문 열고 도망하려는
박선달을 쫓아가서 뒤꼭지를 움켜잡았다. "양반 좀 구경합시다. " 하고 막봉이가
박선달을 떠밀고 방에서 마루로 나오고,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박선달의
큰아들은 사랑에서 들어오다가 도로 나가고, 둘째아들은 절굿공이를 들고 막봉
이게 덤비다갸 발길에 차이어 마당 한구석에 나가자빠지고, 끝에아들은 부리는
계집아이들과 같이 건넌방 모퉁이에 숨어 서서 발발발 떨고 있고 박선달의 마누
라와 며느리는 "아이구 이런 변이 어디 있나. " "아이구 저놈을 어떻게 하나. "
실성한 사람 군소리하듯이 지껄이며 마루 구석에 뭉치어 섰다. 막봉이가 다시
박선달을 떠밀고 사랑으로 나가려고 할 즈음에 박선달의 큰아들이 집안 사람과
동네 사람을 몰아가지고 들어오는데 어중이떠중이 수효는 십여 명이 넘었다. 막
봉이가 이것을 보고 박선달의 뒤꼭지를 잡은 채 여러 사람을 향하고 서서 "너희
놈들이 내게 덤비는 날이면 박선달부터 태기치구 너희놈들두 하나 성하게 두지
않을 테다. " 하고 박선달을 곧 태기칠 것같이 둘러메려고 하니 박선달은 죽어가
는 소리를 하고 여러 사람은 선뜻 대어들지 못하였다. 전에 마부로 송도 갔던
사람이 여럿 중에 섞여 있다가 막봉이를 달아보고 "아이구머니 큰일났네, 저 양
반이 혜음령서 도둑놈 혼내던 장사 아니라구. 여보게 우리 따위는 백 명, 이백
명 함께 덤벼두 소용없어. “ 하고 호들갑을 떨어서 여러 사람들은 구경하러 온
것같이 서서 보기만 하는데 박선달의 큰아들이 어느 틈에 도끼 하나를 찾아들고
슬그머니 막봉이 뒤로 돌아왔다. 귀련이 아버지는 처음부터 막봉이를 쫓아들어
오려고 하였으나 귀련이가 은근히 백부의 욕보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저의 아버지에게 울고 매달렸다. 사랑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쪽문 안에 귀련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서서 들여다보는 중에 사촌의 도끼가 남편 뒤에 가까아
가는 것을 보고 "아이구머니!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막봉이가 고개를 돌이켜 도
끼를 보고 박선달을 돌려세우며 곧 앞으로 떠다박지르니 아비가 엎어지며 아들
이 자빠지는데 도끼는 옆으로 떨어졌다. 막봉이가 곧 박선달과 큰아들을 잡아
일으키고 또 마당 구석에서 쩔쩔매는 둘째아들까지 끌어다가 삼부자를 느런히
앉힌 뒤에 한번 휘 돌아보다가 중문간에 있는 절구통을 한달음에 가서 들고 나
왔다. 막봉이가 박선달 삼부자 앞에 와서 절구통을 번쩍 치어들 때 귀련이 아버
지가 딸의 손을 뿌리치고 쫓아나왔다. ”이 사람 무슨 짓을 하려구 이러나? " "
삼부자를 박살낼라구요. " "이 사람이 미쳤나! " “왜 미쳐요? 상놈의 목숨 하나
를 양반의 목숨 셋과 바꿀랍니다. "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럴라면 나를 먼저 죽
이게. 이 사람 제발 좀 고만두게. " 막봉이가 박선달 삼부자를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던 까닭에 장인의 말에 못이기는 체하고 “고만두라시면 고만두어두 좋지
요. 그렇지만 박선달이 그런 버룻을 다시 안 한다구 맹세하는 말을 들어야겠으
니 그리 아시오. " 하고 절구통을 쾅 내던지고 박선달을 내려다보며 ”동생이 상
놈 사위 얻었다고 호령질하는 양반님네가 여간해서는 잘못한 줄을 모를 테니까
초죽음을 해놔야겠다. " 하고 팔죽지를 잡아 일으켰다. “아이구 팔 부러진다. 다
시 안할 테니 팔 놔라. " ”거무 싹싹한데. " "아이구 팔이야. " "다시 그런 버릇
못하지 ? “ "안 하마, 안 하마. " "어째 양반이 독하지 못해. " 막봉이가 코웃음
을 치고 박선달의 팔을 놓아주었다. 귀련이 아버지가 딸 내외를 데리고 나갈
때 등 뒤에서 "인제는 형제 아주 의절이다. " 하고 박선달의 소리치는 말이 들리
었다.
박선달이 망신당한 분풀이 하려고 속으로 원에게 청촉하여 놓고 겉으로 소지
를 바치는데 막봉이가 내정돌입하여 삼부자를 구타하였고 불량한 아우가 뒤에서
부추겼다고 사연을 꾸미어서 막봉이는 장인과 함께 안성 관가에 잡혀오게 되었
다. 공타 마당에 막봉이는 발명을 잘하지 못하였으나 막봉이의 장인이 전후사를
차근
차근 아뢰었다. 원도 속으로는 박선달이 봉변하여 싸거니 생각하면서도 박선달
의 뇌물 받은 값을 하려고 억지 공사를 하러 들었다. 안성 육방 관속에는 박선
달을 밉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때 형리도 그중의 한 사람이라
동헌 툇마루에 엎드린 채 원에게 넌지시 말을 아뢰었다. "박선달 형제 중에 형이
그악하옵구 아우가 무던하온 것은 경내 상하가 다 아옵는 일이온즉 소지를 준신
하옵시구 공사하옵시면 뒤의 청문이 사나울 듯하외다. " 원이 형리의 말을 듣고
이윽히 생각하다가 막봉이에게는 이타물구인성상자 조문을 켜서 태 40으로 경하
게 치죄하고 막봉이 장인에게는 형제 우애 있이 지내도록 힘쓰라고 훈계하여 공
사를 마치었다. 막봉이가 볼기 맞고 나오는 길에 가사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을 장인이 한사하고 말려서 바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막봉이가 데릴사위 노룻
하기 시작한 뒤로 달이 벌써 두서너 번 바뀌었다. 그 동안에 귀련이와 내외간은
의초좋게 지내었으나 장모와는 서로 뜻이 맞지 아니하여 말다툼인 여러 번 났었
다. 장모
의 잔소리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하여 막봉이는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는데, 장인
의 생일 전날 막봉이가 곡식말을 가지고 가서 반찬거리를 바꾸어 올때 장모가
떠먹듯이 일러준김 한톳을 잊고와서 장모는 화가 천등같이 났다. "그게 무슨 놈
의 정신이야. 까마귀고기 먹었나! " "잘못되었소. " "잘못되었다면 고만인가. " "
그럼 어떻게 해요? “ "북어 가지구 가서 김으로 바꾸어 오게. " "내일 가서 바
꾸어 오지요. " "당장 가서 바꾸어 오게. " "배가 고픈데 어떻게 또 장에를 갔다
온단 말이오? " "배가 고파 안 바러 오면 저녁은 못 먹을 테니 그리 알게. " "한
끼 굶어 죽지 않소. " "누가 굻겨 죽인다나, 우리 세 식구 하루 억을 밥을 한끼
에 다 먹는 위인이 그중에 큰소리까지 하네. 자네 온 뒤로 양식이 곱들어 잘난
사위 덕에 우리까지 바가지 차고 나서겠네. " "양식이 아까워서 나를 두구 먹이
지 못하겠단 말이오? " "무슨 유세야, 힘센 자센가. 소가 세도 왕노릇 못해. " "
나더러 소란 말이오? ” "그래 소라면 어쩔 테야. " "내가 소면 당신 딸두 소구
당신 딸이 소면 당신두 소지. " "저것 보게, 장모더러 욕하지 않나. " "내가 지구
고만두겠소. “ 막봉이가 사설하는 장모를 내버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밥짓던
귀련이가 "들어오지 말구 나가오. " 하고 독살스럽게 말하였다. "자네까지 구박
인가. 데릴사위 노릇 더러워 못하겠네. " "내 부모가 당신 부모지, 그렇게 욕하는
법이 어디 있소? ” "누가 욕을 해? " "나는 귀가 없는 줄 아오? " 골난 막봉이
가 골김에 귀련이 어깨를 한번 탁 쳤다. 귀련이가 죽는 소리를 하여 귀련이 어
머니는 말할 것 없고 방에 드러누웠던 귀련이 아버지까지 부엌으로 쫓아와서 귀
련이의 저고리를 벗기고 보니 한편 어깻죽지가 금시에 먹장 갈아 부은 것같이
되었었다. 귀련이 어머니는 곧 막봉이의 멱살을 잡고 매달리고 귀련이 아버지는
막봉이를 흘겨보며 딸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귀련이 어머니가 골김에 앞뒤
생각 없이 사위를 내보내자고 주장하여 막봉이는 데릴사위 노릇을 다하고 쫓겨
나게 되었다. 막봉이가 발안이 집에 돌아와 보니 삼봉이는 안해까지 끌고 등짐
장사를 나갔고, 큰봉이 , 작은봉이만 집에 있는데 막봉이 온 것을 보고 형제가
다 "네가 어딜 가면 조신하겠니. " 하고 냉대하여 막봉이는 부모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집에서 도로 나와서 매일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오가의 권으로 청석골
와서 같이 있게 되었다. 불과 반 년 전에 쇠도리깨 도적을 잡으러 왔던 사람이
우습게 쇠도리깨 도적과 한패가 되어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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