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임꺽정 의형제편 곽오주 3

一字師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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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가 유복이와 형제를 맺은 뒤로 거의 한 장도막 한 번씩 청석골 산속을 들
어다니는데 처음에 오주 오는 것을 진덥지 않게 알던 오가의 식구들도 강가의
풍파를 같이 치른 뒤부터 모두 한집안 식구같이 정다워져서 오주가 올 때쯤 되
면 유복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오가의 식구들이 음식까지 유렴하여 놓고 기다
리었다. 새해 된 뒤에는 오주가 정초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을 먹고 가고
또 보름 전에 와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고 유복이가 양주 꺽정이 집에 가서 칠팔
일 있다 오는 동안에 한 번 와서 다녀갔었다. 그때 와서 말이 계집 하나 생기게
되었으니 생기거든 데리고 오마 하고 갔는데 그 뒤 벌써 두 장도막이 지나도록
다시 오지 아니하렸다. 유복이가 날마다 식전이면 "오늘은 이 자식이 오려나. "
하고 종일 고대하고 저녁때면 "이거 웬일일까. 오늘두 아니 오네. " 하고 성사삼
아 말하였다. 유복이가 몇몇번 개래동으로 찾아가려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게.
" "오늘 내일간 올 겔세. " 오가의 말을 듣고 그만두고 그만두고 하여 사오 일
지낸 끝이
다. 이날도 한나절까지 오주 오기을 기다리다가 유복이가 오가를 보고 "이 자식
이 무슨 병이 난 거요. 그렇기에 이렇게 오래 안 오지. 내가 아무래두 개래동을
가보구 와야 속이 시원하겠소. " 하고 말하니 오가는 "가보려거든 가보게만 내
생각엔 병나서 못 오는 게 아니구 노총각 녀석이 계집맛에 반해서 헤나지 못하
는 것 같애. " 하고 웃었다. "그렇기만 하면 좋겠소. " “그럼 내 말이 틀리나 두
구 보게, 차부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나. " "장사는 병이 나지 말란 법
어디 있소? 하여튼 내가 가보구 오리다. "
유복이가해 질 무렵에나 온다고 가더니 보리밥 한 솥 짓기가 못 되어서 오는
데 뒤에 오주가 따라왔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오가가 먼저 보고 나서서 유복
이를 보고 "길에서 만났네그려. 큰길까지두 채 옷 나갔지? “ 하고 말한 뒤에 곧
오주를 향하여 "어째 그렇게 오래 아니 왔나. 어디 앓았나? ” 하고 물었다. "앓
기는 왜? “ "그럼 왜 아니 왔나? 자네 말투루 계집이 생겼나? ” "생겼어. " "
내 말이 어떤가. 맞지 않았나? “ 하고 오가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웃으니 유복
이는 오주에게 "네가 여편네에게 반해서 안 온다구 말씀하더라. 참말 반했니? ”
하고 말하며 웃었다. 안방에 들어앉았던 식구들이 어느 틈에 마루 끝에 나섰다.
"어서 올라들 와요. " 하고 오가의 마누라가 재촉하여 유복이와 오가가 오주를
중간에 끼고 마루로 올라왔다. 오가의 마누라와 유복이의 안해가 분분히 오주를
향하여 치하 인사를 마친 뒤에 여러 사람이 모두 안방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
으며부터 여러 사람이 오주의 장가 든 이야기 를 듣고자 하여 구변 없는 오주가
과부 차지하게 된 곡절을 뒤죽 박죽 이야기하고 또 오가에게 졸려서 첫날밤 광
경까지 대강 이야기하였다. "지금은 찬 샘물에 뛰어들어갈 염려가 없겠니? “ 유
복이 묻는 말에 "이젠 그런 염려 없소. " 대답하고 "얼른 좀 만나보았으면 좋겠
어요. " 유복이 안해 말에 "그러지 않아두 같이 오려구 했더니 오기 싫다구 합디
다. " 대답하고 "소문난 과부면 얼굴이 이쁘겠소? ” 오가 마누라 말에 "이쁘구
말구. 튼튼했더면 더 좋을 뻔했소. " 대답하느라고 오주가 이 사람 돌아보고 저
사람 돌아보고 할 때 이때까지 싱글싱글 웃고만 있던 오가가 "여게, 오주? “ 하
고 불러놓고 "자네는 지금 여편네 맛이 단 줄루 알 테지만 그것이 본맛이 아닐
세, 여편네는 오미 구존한 것일세. 내 말할께 들어보려나. 혼인 갓해서 여편네는
달기가 꿀이지. 그렇지만 차차 살림 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여편네가 장아찌 무쪽같이 짭잘해지네. 그 대신 단맛은 가시지. 이 짭
잘한 맛이 조금만 쇠면 여편네는 시금털털 개살구루 변하느니. 맛이 시어질 고
비부터 가끔 매운 맛이 나는데 고추 당추 맵다 하나 여편네 매운 맛을 당하겠
나. 그러나 이 매운 맛이 없어지게 되면 쓰기만 하니. " 하고 오가가 너덜거리는
데 오가의 마누라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었다.
오주가 오래간만에 올 뿐 아니라 장가 들고 처음 왔다고 오가는 그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말을 일러서 특별히 안주 장만하여 술대접을 하였다. 술상이
들어와서 순배가 도는 사이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고 "내가 이번에 양주 가서 술
을 많이 먹구 왔다. " 하고 말하니 오주가 "형님 술에 많이 먹으면 얼마나 먹었
겠소. " 하고 웃었다. "사람 셋이 사흘 안에 술 한 독을 다 들냈으니 무던히 먹
지 않았니. " "형님이 혼자 다 먹었다면 무던하까, 게다가 형님은 제일 적게 먹
었겠지. " "적게 먹은 게 다 무어냐. 아마 제일 많이 적었을 게다. 꺽정이 언니는
술이 고래지만 친환 핑계하구 몸을 사리구, 천왕동이는 술이 나만 못하니까 내
가 자연 많이 먹게 될 것 아니냐. " "나두 장 꺽정이란 이가 보구 싶은데 형님
왜 날안데리구가우. 이 담갈때는 꼭 같이 갑시다. " 유복이가 대답하기 전에 오
가가 말참례하고 나섰다. "양주 술을 먹어보구 싶은가? “ "양주 술은 별난 술이
오? ” "술 먹은 이야기 끝에 양주를 가구 싶다니 말일세. " "왜 내가 전엔 가구
싶단 말 아니했나? 지난번 형님 갈 때두 내가 알았더면 따라갔을 텐데. " "아닌
게아니라 꺽정이 봉학이 말은 박서방에게 하두 귀따갑게 들어서 나두 보구 싶
어. 이 담 자네들 갈 때에 나두 한몫 보세. " 오가의 말끝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
고 "꺽정이 언니가 너 잘 있느냐구 묻더라. " 하고 안부를 전하였다. "내가 보구
싶어한단 말두 했소? “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네 말이 많이 났었으니까. "
"형님, 대체 꺽정이란 이가 내 맘에 들겠소 어떻겠소? 나는 보구 싶어두 보구 나
서 맘에 안 들까봐 걱정이오. " "그건 만나봐야 알지. 그렇지만 맘에 들구 안 들
구 그 앞에선 고개가 절루 숙을게다. " "형님의 형님이니까 고개 좀 숙여줘두 좋
지 뭐. " "그가 이번에 나하구 같이 오려구 하다가 그 아버지 병이 더쳐서 병이
조금 낫는 걸 보구 한번 놀러온다구 했다. " "언제쯤 온다구 했소? ” "오게 되
면 그믐 초생 온다구 했다. " "두어 장도막만 더 있으면 오겠구려. 오거든 곧 내
게 알려주우. " "오기만 하면 알려주다뿐이냐. " "그가 여기 길을 알까? “ "탑고
개서 들어오는 길을 자세히 말하두 목표까지 다 가르쳐 주었으니까 오려면 찾아
을 수 있겠지. " 유복이가 오주와 수작하던 것을 그치고 오가를 돌아보며 "이번
술 해넣을 때는 좀 나우 해넣는 것이 좋지 않겠소? ” 하고 말하니 "자네의 약
삭빠른 장모가 자네 말을 기다리겠나. 벌써 며칠 전에 청주 술밑까지 해넣었다
네. " 하고 오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오지 아니하면 낭패로구려. " "무슨 낭패
? 우리가 두구 먹지. " 두 사람씩 서로 수작하는 중에도 가끔 세 사람이 함께 어
울려 말할 때가 없지 않았지만, 술기운들이 돈 뒤에는 세 사람이 서로 앞을 다
투어가며 지껄이어서 방안이 떠들썩하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술상이 끝이 났
다. 전 같으면 오주가 저녁까지 눌러 먹을 것인데 저녁을 먹지 않고 간다고 일
어서니 "이왕 늦었는데 저녁 먹구 가려무나. " 하고 유복이는 붙들고 "집에 가서
두 내외 재미있게 같이 먹게. " 하고 오가는 조롱하였다. 오가의 마누라가 "여보
게 박서방, 나 좀 보게. " 하고 유복이를 밖으로 불러내서 몇 마디 소곤소곤 말
하더니 유복이가 빙그레 웃으며 방으로 들어와서 "저녁은 안 먹드래두 잠간 더
앉았거라. " 하고 오주에데 말하였다. "왜 그러우? “ "우리 장모가 너를 주어
보낼 게 있다신다. " "무어요? ” "네가 새 살림에 장건건이두 군조러울 것이라
구 간장 된장을 좀 준다신다. " "그거 참 고맙소. "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의 인
정도 인정이려니와 유복이의 뜻을 살펴서 간장 장군과 된장 동이 이외에도 조금
조금한 살림제구까지 주어서 오주는 한 짐 꿈어지고 돌아왔다.
정첨지가 부모 산에 소나무를 가꾸기 겸 숯을 묻으려고 소나무 사이에 선 참
나무를 작벌시키었다. 정첨지 아들은 발매터에 나오는 것이 아비의 눈가림이라
공연히 빙빙 돌다가 꾀죄로 빠져 들어 가고 정첨지는 아들과 달라서 소나무 다
치지 않게 해라, 우죽 허실 안 되게 해라, 잔소리가 심하지만 칠십 넘은 늙은이
라 줄곧 서서 돌아다니지 못하므로 오주가 저의 일을 해가며 틈틈이 남의 일까
지 간검하느라고 분주하였다. 저녁때가 되어서 다른 일꾼들이 일을 마치고 각기
돌아간 뒤에도 오주는 떨어져서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까닭에 해 진 뒤에야 돌
아오게 되었다. 발매 시작되던 이튿날 저녁때 오주가 발매터에서 돌아와 보니
유복이가 정첨지 집 머슴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형님 오셨구려. 언제 오셨소?
“ ”온 제 한참 되었다. 얼른 저녁 먹구 나하구 같이 가자. " "무슨 일이 생겼
소? “ "우리 언니가 오늘 왔다. " "같이 갑시다. 그렇지만 나는 내일 새벽 도루
와야겠소. " "왜 내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니? ” "주인집에서 엊그제부터 발매
를 시작했는데 와서 봐줘야지. " "주인더러 말하구 가자꾸나. 우리 언니두 바쁜
일이 있어서 모레는 간다니 내일 하루 같이 놀다 헤어지면 좋지 않겠니. " "그렇
게 속히 간다우? 내가 주인더러 말하구 나오리다. " 오주가 곧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밥 먹는 정첨지의 부자를 보고 "내가 의형님한테 갈 일이 생겨서 내일 하루
일 못하겠소. 내일
못 하는 오력으루 모레 와서 동값하리다. " 하고 말하니 정점지는 대뜸에 "자네
가 없으면 일이 되나? “ 하고 상을 찡그렸다. "젊은 주인이 하루만 잘 돌아보면
되지 않소. " 정첨지가 말하기 전에 그 아들이 선뜻 "그렇게 하게. " 하고 허락
하였다. "내가 가봐서 내일 밤에 오거나 모레 식전 오리다. " "어둔 밤에 올 거
무어 있나. 모레 오게 그려. " "그러면 더욱 좋소. " 정첨지는 아들을 홀겨보며 "
그 자식, 장이 선선하다. " 하고 나무라는데 오주는 "이런 때는 우리 젊은 주인
같이 좋은 사람이 없어. ” 하고 껄쩔 웃고 곧 부엌에 가서 저의 밥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인제 우리 집에 가서 밥 한술 떠먹고 갑시다. " "나는 시장하지
않지만 잠깐 가서 인사나 하구 갈까. " "암, 인사두 해야지. " 오주는 유복이를
끌고 저의 집으로 와서 큰소리로 "여게, 우리 형님 오셨네. " 하고 방문을 왈칵
열었다. 오주의 안해가 누워 있다가 깜빡 놀라서 일어나며 나직한 목소리로 "어
디 형님이 오셨소? “ 하고 물으니 "어디 형님이 무어여? 늘 말하던 우리 의형
님이지. " 하고 오주는 곧 뒤를 돌아보며 "들어 갑시다. " 하고 유복이와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주의 안해가 유복이에게 절인사를 마친 뒤에 곧 밖으로 나
가려고 하니 오주가 "어디를 갈라나? " 하고 물었다. "밥을 지어야지요. " "찬
밥 남은 거 없나? " "찬밥은 있소. ”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지구 온 더운밥은 형
님 드리구 우리는 찬밥 먹세. " "장찌개두 없는데 어떻게 하오? “ "있는 대루
먹지, 얼른 먹구 가야겠네. " ”어디를 갈라오? “ "형님하구 같이 갈 테여. 내일
모레나 오겠네. " 오주의 안해는 방구석에 덮어놓았던 반찬 그룻과 찬밥 그릇을
내놓은 뒤에 부엌으로 물 뜨러 나갔다. "네겐 과하두룩 얌전하다. " "나는 얌전
한 계집 데리구 살면 못쓰우? ” "누가 못쓴다나. 그렇지만 네게 대면 너무 약해
보인다. " "그래 약해서 탈이오. " 물까지 떠다 놓고 밥들을 먹게 되었는데 오주
의 안해는 오주가 "같이 먹세. " 하고 숟갈을 집어 줄 뿐 아니라 유복이까지 "나
는 조금 먹을 테니 더운밥을 같이 먹읍시다. " 하고 권하였건만 나중에 먹는다고
같이 먹지 아니하였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발에 익은 길이라 오주와 유복이는 거침 없이 걸어서
초경이 지나기 전에 청석골을 들어왔다. 오가의 집마당에는 화톳불이요, 마루 끝
에는 등롱이요, 안방에는 대심박이 촛불이 밝아서 한다하는 부자집에서 밤잔치
하는 것 같았다. 오가의 마누라는 마루에서 유복이의 안해와 계집아이년을 데리
고 주식을 준비하고, 오가는 안방에서 꺽정이와 천왕동이를 대하여 경력을 이야
기하는 중이었다. 오가의 마누라가 유복이와 오주가 대문 안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곧 고개를 방 편으로 돌리며 "인제들 오는구먼요. “ 하고 소리쳐서 선통하
니 오가가 아랫목 위쪽 바라지문을 열고 머리를 내어밀며 "어째 이렇게들 늦었
나? ”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유복이가 오가의 말에 대답하는 동안 오주는 오
가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인삿말을 마치고 유복이와 같이 윗목 지겟문으로
안방에를 들어왔다. 지겟문 편을 향하고 앉은 총각은 얼굴이 해사하고 아랫목에
오가와 느런히 앉은 사람은 얼굴이 영특하고 수염이 숱하였다. "저 털보가 꺽정
이란 이요? “ 하고 오주가 유복이를 돌아보니 "버룻 못 배운 사람이란 할 수
없네. 처음 뵈입는 터수에 면대해서 이름 부르구 게다가 별명까지 짓는단 말인
가. " 하고 오가가 웃으면서 오주를 책망하였다. "자, 오주의 절을 받으시우. "
하고 오주가 너푼 절 한번 한 뒤 바라지 앞에 모꺾어 앉은 유복이 옆에 자리에
와서 앉았다. 유복이가 맞은편 앉은 총각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황천왕동이다.
인사해라. " 하고 오주를 돌아보니 오주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자네가 걸음을
잘 걷는다지? ” 하고 말을 붙였다. "내게두 절이나 한번 하게. 나두 나이 자네
버덤 많아. " 하고 천왕동이는 나이를 자세하고 "나는 인제 어른이야. " 하고 오
주는 어른을 내세우다가 나이와 어른을 비겨버리고 두 사람은 곧 서로 너나들이
를 하였다. "요전에 들으니까 너두 총각이라더니 언제 상투를 끌어올렸니? 그건
박서방처럼 외자나 아니냐? " "오죽하니 외자상투를 올릴까? “ "어떤 팔자 험
한 여편네가 저런 쇠도둑놈 손에 잡혔을까. " 오주가 천왕동이 말을 대꾸하기 전
에 오가가 "아닌게아니라 오주 안해가 팔자 험한 사람이야. " 하고 말자루를 차
지하고 나서서 오주의 안해 얻은 곡절을 한바탕 늘어지게 이야기하였다. 오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유복이가 "참말루 얌전합디다. " 하고 오주 안해를 칭찬하니
오가는 "저 사람하구 같이 앉았는 것이 백로가 까마귀하구 짝지은 것 같든가. "
하고 웃고 오가의 말끝에 천왕동이는 "횐 비둘기하구 시커먼 곰 새끼하구 같이
앉은 것 같을 테지. " 하고 웃었다. 오가와 천왕동이가 받고채기로 오주를 시달
리는 판에 꺽정이가 "모처럼 서로 만나서 실없은 소리로 밤을 보낼 테야. "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고사하고 오가까지 움찔하여 입을 다물었다. 오주가 꺽정이
를 바라보며 "우리 형님이 형님이라니까 나두 형님이라구 하우. " 하고 싱글벙글
웃고 나서 "형님, 작년에 전장에 갔었다지요? ” 하고 물었다. “그래. ” "전장
이야기 좀 들읍시다. " "나는 구변이 없어서 이야기를 잘 못하네. 이 담 이봉학
이란 이를 만나게 되거든 이야기를 듣게. " "활 잘 쏘는 이 말이오? 그래 지금
어디 있소? “ "전라도 전주 감영에 있네. " "감영이라니 감사 있는 데지요? 거
기서 무엇 하우? " "벼슬 산다네. " "감사 노룻 하우? ” "감사 아래 있는 비장
이라네. " "난리 친 공으루 그런 벼슬 했소? “ "그런 셈이지. " "형님은 왜 벼슬
안 했소? ” "그런 벼슬은 주어두 싫다. " 이때 오가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술들
자시며 이야기합시다. " 하고 곧 바라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술상을 재촉하
였다.
술상이 굉장하였다. 집에서 잡은 도야지고기와 사냥해온 노루 고기와 벌이해
온 어물로 만든 진안주, 마른안주는 상 둘에 가득 놓이고 새로 뜬 독한 청주는
큰 양푼에 가득하였다. 갱지미 하나가 술잔으로 놓였는데 깊은 술잔 두어 곱절
이 넉넉히 들건마는 큰 그릇으로 마시기 좋아하는 오주 눈에는 너무 작아 보이
었다. 술이 첫순이 끝난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대접 하나 가져오라시
우. " 하고 말하여 계칩아이가 놋대접 하나를 가져오니 오주가 먼저 받아들고 "
이것으루 술을 먹었으면 좋겠소. " 하고 그 대접을 꺽정이 앞에 놓으려고 하였
다. "거기 놓지 말구 술을 뜨게. " "자, 받으시우. " "자네 먼저 먹게. " 오주가
사양 않고 들어 마신 뒤에 다시 떠서 꺽정이를 주니 꺽정이가 한 대접 술을 한
숨에 쭉 들이키었다. 오주가 물끄러미 이것을 바라보더니 "형님 술먹는 것이 내
비위에 꼭 들어맞소. " 하고 좋아하였다. 뒤바뀐 순이 다시 차례로 도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는 갱지미가 돌고 꺽정이와 오주 앞에만 대접이 돌았다. 술 양푼을
연해 갈아 들이는 동안 한 방에 가득한 술김은 무지개가 되고 여러 입에서 나오
는 이야기는 꽃이 피었다. 밤이 이슥하여 안식구가 아랫방에 가서 잠들 잔 뒤에
도 안방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강가의 풍파 이야기가 났던 끝에 오가가 흔감을 떨며 청석골 자리를 자랑한
까닭에 이튿날 아침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보고 자랑하는 자리를 한번 돌아다니
며 구경하자고 청하니, 오가가 두말 않고 허락하고 곧 유복이를 돌아보며 산에
가서 먹게 술병이나 가지고 가자고 말하였다. "산에 갈 바에는 아주 사냥질을 나
갑시다. " 유복이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좋지, 사냥질 좋지. " 천왕동이는 손
뼉을 치며 좋아하고 사냥질을 즐기지 않는 오가와 오주도 싫단 말은 아니하여
곧 사냥질 준비를 차리는데 오가가 자기 집에 본래 있던 환도들과 강가 패에게
빼앗은 병장기들을 모두 끄집어 내왔다. 꺽정이는 환소를 골라잡고 오가와 천왕
동이는 창
들을 나눠 잡고 유복이와 오주는 아무것도 잡지 아니하였다. 유복이는 표창이
있지만 오주만은 맨주먹이다. 오주를 시달리기 좋아하는 천왕동이가 가만히 보
고 있지 아니하였다. "너는 주먹으루 사냥할 테냐? “ "나는 몰이꾼 노릇 하마.
" "너 같은 것이 몰아주기를 바라다가 짐생 다 놓치게. " ”싫거든 고만둬라. " "
맨주먹 가지구 흔들흔들 따라오기 열쩍겠다. " "술하구 밥을 짊어지구 갈 테다,
이 자식. " "너두 사람 값에 갈라거든 재주 한 가지 배워라. " "나는 왜 재주가
없드냐? “ "무슨 재주냐? 밥먹는 재주냐, 기집 끼구 자는 재주냐. " "이 자식이
되지 못하게 사람만 만만히 보네. " 오주의 눈방울이 구를 때 꺽정이가 "오주.
” 하고 부르며 천왕동이 앞을 막고 나섰다. "자네가 남버덤 낫거니 생각하는 재
주가 무엇인가? “ 오주가 머리 뒤를 긁적거리다가 "씨름 재주. " 하고 무뚝뚝하
게 대답하였다. ”또? “ "나무에 오르는 재주. " "또? " "인제 없소. " "무슨 연
장은 남버덤 잘 쓰는 거 없나? ” "도끼. " "또? “ "도리깨. 도리깨질은 나만큼
잘하는 사람 별루 없소. "
꺽정이와 오주가 수작을 그친 뒤에 유복이가 사냥 가기를 재촉하여 여러 사람
들이 각기 사냥 제구를 들고 나서는데 오주는 점심함통이와 술 두루미를 지게에
지고 나섰다.
사냥 나선 일행 다섯 사람이 한동안 앞뒷산으로 돌아다니고 나서 짐승을 잡으
러 두석산 상봉 밑으로 들어왔다. 이 근처에 짐승 붙는 골을 잘 아는 유복이가
앞을 서서 샅샅이 뒤졌건만, 짐승 그림자 하나 구경하지 못하였다. 오가가 헛쫓
아다니기에 싫증이 나서 "오늘이 짐생의 대공망일일세. 점심이나 먹구 들어가세.
" 하고 잔디밭에 주제앉으니 유복이도 발을 멈추고 서서 "오늘같이 토끼 새끼
하라 구경 못하는 날두 드물께요. " 하고 표창을 만지작거리었라. 여러 사람이
다 앉아 쉬는데 천왕동이만 꾸즌히 짐승 발자취를 찾아다니다가 여러 사람이 한
곳에 앉고 세고 한 것을 보고 늘정늘정 걸며왔다. "백두산 일등 사냥꾼이 나오신
다구 짐생들에게 선통이 있었든거야. 그렇기에 이렇게 피신들을 단단히 했지. "
하고 오가가 웃으니 다른 샤람은 교사하고 꺽정이까지도 빙그레 웃었다. 신명이
풀리지 아니한 천왕돋이는 입맛만 쩍쩍 다시다가 유복이를 보고 "사냥 고만둘라
우, 어떻게 할라우? “ 하고 의향을 물었다. "공론대루 하세. " "어디 다른 데 가
볼 만한 데 없소? ” "가볼 말한 데야 있지. 우선 제석산 줄기를 밟아 들어가면
큰 짐생두 잡을는지 모르네. " "큰 짐생이라니, 호랑이 말이지? 그런 데를 두구
왜 이레 왔소. 그리들 갑시다. " 하고 천왕동이가 여러 사람을 돌아보니 오가는
"가드라두 여기셔 쉬어가지구 아주 점심을 먹구 가세. " 하고 드러눕고 유복이는
"이왕 갈 테면 얼른 갑시다. 점심때 아직 멀었소. " 하고 해를 치며다보고 꺽정
이는 "여럿이 나왔다가 빈손으루 들어가기 챙피하니 가봅새다. " 하고 오가를 돌
아보고 오주는 말이 없었다. 천왕동이가 오주 옆에 와서 "너부터 일어나거라. "
하고 일어서기를 재촉하였다. "저 누운 이부터 일으켜세워라. " "네가 점심짐을
짊어지구 나서면 가기 싫어든 따라온다. " "그래 보까. " 오주가 읏으메 일어나
서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이애가 몸달았소. 우리 가줍시다. " 하고 곧 지게를
졌다. "독불장군이로군. " 오가가 일어나서 창을 집어들고 유복이와 둘이 길라잡
이로 앞을 서서 일행을 끌고 북으로 들어갔다. 제석산 높은 봉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서루 흩어지드라두 모일 데를 미리 하나 정해둡시다.
"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이 아래 있는 노송나무 밑을 점심 먹구 모이구 할
자리루 정하세. 노송나무가 멀리서 목표두 되구 좋지 않은가. "
오가는 잔솔밭 옆에 우뚝 섰는 큰 소라무 하나를 가리키고 곧 여러 사람을 끌
고 소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해도 한낮이 거의 다 되었으니 아주 점심을 먹어
치우자는 공론이 나서 호주는 두루미와 함통이를 재게에서 내려놓고 오가는 옷
고름에 차고 온 종구락을 놓았다. 술은 돌아갈 때 먹을 양으로 한 종구락씩 먹
고 남겨두고 밥들을 먹었다. 천왕동이와 유복이가 밥을 먼저 먹고 샘을 찾아가
서 물을 먹을 때 샘물에서 멀지 아니한 양달에 노루 한 마기가 엎드렸다가 인기
척에 놀라 일어났라. 창을 놓고 간 천왕동이가 한달음에 소나무 밑으로 뛰어와
서 "노루, 노루. “ 하며 황망히 창을 집어들었다. 망아지만한 놈이 꽁무니에 달
린 목화송이를 너털거리며 겅충껑충 건너편 비탈 위로 뤽어올라가는데 천왕동이
가 비호같이 뒤쫓아갔다. 유복이는 처음에 노루 뒤를 쫓아가 나중에 천왕동이
쫓는 노루의 가는 목을 앞질러 막아보려고 비탈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중에 자그
만 멧돝 한 마리가 앞에 달아 나는 것을 보고 노루목을 버리고 멧돝 뒤를 쫓아
가고, 오가는 물 먹고 양치까지 하고 나서 창을 들고 잔솔밭에 올라가서 이리저
리 돌아다니다가 토끼 하나를 튀겨놓고 토끼 뒤를 쫓아갔다. 오주는 남은 안줏
감과 종구락과 숟가락들을 거두어서 빈 함퉁에 넣어서 술 두루미와 함께 한옆에
치우고, 앉아 있는 꺽정이 앞에 와서 ”형님은 왜 안 가우? “ 하고 물었다. "밥
이 자위두 돌기 전에 쫓아다닐 맛 있나. " "나두 흔자 있기 심심한데 나하구 이
야기나 합시나. " ”나더러 자네 심심풀이 해주고 있으란 말인가? " "아니 그런
말은 아니오. " "아따, 발명은 고만두구 이리 와 앉게. “ 꺽정이와 오주 두 사람
은 소나무 밑에 느런히 퍼더버리고 앉았다.
꺽정이와 오주가 다같이 말수 적은 사람이라 별로 이야기도 없이 한동안 지났
다. "이 사람들이 멀리 갔나 부다. " "갈 때는 이리들 와서 같이 가겠지. " "그래
우리는 갈 때까지 이렇게 짬짬하네 앉았잔 말인가? " "형님 심심하우? 나하구
씨름이나 한번 해볼라우? " "싫어. " "형님이 아무리 천하 장사라둑 씨름 묘득을
모르면 내거 지우. " "내가 씨름을 할 줄 모르기루 설마 자네에게 지겠나. “ "
한번 헤봅시라. " "싫어. " "형님애 질 듯하니까 싫다지 뭐. ” "그예 한번 해보
군 싶은가? “ "심심풀이룩 좋지 않소. " "그럼 한번 해보세. " "옳다, 형님을 메
꽃아보자. " 오주가 껑청 뛰어 일에냐며 꺽정이도 일어섰다. 오주와 꺽정이가 서
로 바지 뒤 괴춤을 잡고 마주 구부리고 섰다. 오주가 발을 이리저리 떼어놓뜨며
꺽정이를 어르는데, 꺽정이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별안간 허리를 펴고 서며 괴
춤 잡은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오주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오주의 입에서 애
개개 소리가 나왔다. 오주의 육중한 몸을 꺽정이가 위로 치어들었다갸 도로 땅
에 내려놓으며 "왜 무거문 걸. " 하고 웃으니 오주는 열쩍어하며 "씨름을 법대로
해야지, 그렇게 해서 씨름이 되우? ” 하고 머리를 내둘렀다. "그만두세. " "싱겁
기가 짝이 없소. " "나를 한번 메꽃아야 재미나겠나? “ 오주가 픽 웃으며 주저
앉으니 꺽정이도 다시 앉았다. 두 사람이 한동안 잠자코 있던 끝에 오주가 ”형
님? ”하고 부르니 꺽정이가 말없이 돌아보았다. “술 먹구 싶지 않소? ” “
왜? ” “저 술을 우리 먹어버립시다. ” “이따는 어떡하구? ” “이따는 이따
지 우리 먹읍시다. ” 오주가 일어나서 두루미와 종구락과 안줏감을 가져왔다.
둘이 권커니잣거니 먹어서 두루미가 거의 다 들나게 되었을 때 “이따 와서들
보면 기막히겠네. "하고 꺽정이가 껄껄 웃으니 오주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따
들 묻거든 형님이 먹자구 했다구 합시다. "하고 한눈을 찌긋이 감았다. “왜 나
더러 여러 사람의 지청구를 받으란 말인가? ” “형님을 지청구할 사람이 없으
니까 말이지.“ “자네가 대단 의뭉스러워. ” 술이 끝난 뒤 오주는 거나하게 취
하여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걱정이가 이것을 보고 “어젯밤에 잠을 못 자
서 졸린 게군. 드러누워 자게. 나는 그 동안에 산으루 돌아다니다 옴세. "하고 곧
환도를 가지고 건너편 비탈로 건너갔다. 오주가 한번 드러누우며 곧 잠이 들어
서 한숨 곤히 자는 중에 얼굴에 물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눈을 뜨고 보니 얼룩
얼룩한 짐승의 꽁지가 도닥도닥 두드리는데 그 꽁지가 처끈처끈하였다. 호랑이
가 술취해 자는 사람을 깨울 때 의사스럽게 꽁지에 물을 축여다가 얼굴을 도닥
거리는 것은 두메 장꾼들이 혹간 당하는 일이다. 오주가 곁눈으로 보니 중송아
지만한 호랑이가 뒤로 돌아서 있다. 오주는 잠과 술이 일시에 다 깨었다. 손을
홱 내밀어서 두 뒷다리를 붙잡으며 곧 펄떡 뛰어 일어났다. 호랑이도 뜻밖에 놀
란 모양이라 대가리를 돌이키며 어흥 소리를 지르고 나서 뒷다리를 가지고 내흔
들기도 하고 뿌리 차기도 하고 또 앞으로 끌어당기기도 하였다. 뒷다리를 제 맘
대로 놀리지 못할 줄 안 뒤에는 도닥거리던 꽁지로 연해 후려쳤다. 오주가 그
후려치는 꽁지를 막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잔뜩 숙이고 호랑이의 뒷다리를 치켜
들고 날쳤다. 호랑이가 용쓰는 대로 기운을 쓰고 호랑이가 뺑뺑 도는 대로 따라
돌았다. 오주 생각에 호랑이를 이대로 붙잡고 날치기만 하다간 기운만 점점 빠
질 것 같아서 뒷다리를 비틀기 시작하였다.
오주가 호랑이 뒷다리를 바른편으로 비틀면 호랑이의 몸이 바른 편으로 돌고
왼편으로 돌았다. 호랑이가 늘어지게 어흥 어흥 하지 못하고 입을 딱딱 벌리며
앙앙 하는데 앙 소리에도 산골이 울리었다. 호랑이가 앞발로 땅을 후벼파고 흙
에 턱을 들비비었다. 오주가 여러 차례 한 편씩 번갈아 비틀어보았으나 다리가
잘 퉁겨지지 아니하여 마침내 양편을 한꺼번에 비틀려고 두팔에 다같이 힘을 올
렸다. 오주가 응 소리를 한번 되게 지르며 두팔을 밖으로 바짝 내어틀었다. 우지
끈 하고 두 다리가 일시에 퉁겨지며 호랑이는 묽은 똥을 확 내깔렸다. 오주가
장정 십여 명의 힘을 겸치어 가진 사람인데 이 사람이 죽을 힘을 다 들여서 비
틀었으니 호랑이 다리가 살과 뼈가 아니고 무쇳덩이라고 하더라도 성할 수 없는
일이라 호랑이는 고만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주도 힘을 과도하게 쓴 뒤
에 전신의 맥이 갑자기 풀려서 퉁겨진 호랑이 뒷다리를 놓는 줄도 모르고 손에
서 놓았다. 호랑이가 몇번 데굴데굴 굴다가 곧 주홍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성한
앞다리로 뛰어서 오주에게 대어들었다. 오주가 새 정신이 번쩍 나서 얼른 몸을
한옆으로 피하였다. 엉겁결에 피한 것이 술 두루미 놓인 곳이라 오주는 두루미
를 두 손으로 집어들었다가 뒷다리를 끌며 쫓아오는 호랑이 낯바닥에 내던졌다.
질그릇이 요란스럽게 깨어지며 호랑이는 눈을 감고 대가리를 흔들었다. 이 틈에
오주는 소나무 뒤로 뛰어가서 곧 나무 위로 올라갔다. 땅에서 서너 길이 넘는
가지 위에 오주가 올라앉게 되었을 때, 호랑이는 나무 밑에 와 엎드려서 사람을
치어다보며 으르렁거리었다.
오가가 토끼를 뒤쫓아가는데 토끼가 곧 잘힐 듯 잡힐 듯하여 정신없이 쫓아가
다가 마침내 토끼를 잡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나서 분하기도 하려니와 남보다 부
끄러울 생각이 나서 다른 토끼라도 한 마리 잡아가지고 가려고 사방으로 헤매었
다. 헤매는 중에 토끼는 다시 구경 못하고 여우 한 마리를 튀겼으니 여우를 뒤
쫓아갈 가망이 없어서 얼마 쫓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목이 컬컬하여지며 술 한
종구락 먹고 싶은 생각이 긴하여서 그대로 돌아서서 차츰차츰 오는 중에 장등에
서 소나무 밑을 내려다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
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꺽정이까지 사냥하러 가고 오주 혼자 있다가 호랑이
를 만난 모양인데 맨주먹밖에 없는 오주가 어찌 되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감히
내려가 볼 생각은 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갈 생각이 났다. 오가는 호랑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장등 너머로 내려가서 천왕동이가 노루 쫓아가던 편을 향하
고 가며 좌우쪽을 살펴보았다. 산마루 소나무 사이로 사람 하나가 내려오는 것
을 보고 마주 가며 소리를 쳤다. 꺽정이가 짐승 발자국을 살펴보고 다니다가 호
랑이 소리가 멀리서 나는 것을 듣고 호랑이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오가가 꺽정
이를 만나서 소나무 밑에 호랑이가 있고 오주가 없더라고 말하니 꺽정이는 깜짝
놀라며 “그래 오주가 죽었단 말이오?”하고 물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
겠소. " 오가의 말을 꺽정이가 듣자마자 곧 장달음을 놓았다. 소나무 밑에 가까
이 오며 자세히 살펴보다가 호랑이가 가끔 나무 위를 치어다보며 으르렁거리는
것을 수상해서 나무 위를 바라보니 높은 가지 사이에 흰옷이 보이었다. 꺽정이
가 환도를 빼어들고 호랑이에게 쫓아들어오며 “오주, 나 여기 왔네. " 하고 소
리를 질렀다. 호랑이가 꺽정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나오는데 앞다리만 가지고
뛰는 것이라 병신성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눔의 호랑이가 다리 병신이로구나.
" “내가 뒷다리를 퉁겨놓았소. " 오주가 나무 위에서 꺽정이 말에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한 칼에 호랑이를 요정내지 않고 하는 꼴을 두고 보았다. 호랑이가 뛰
면 따라 뛰고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면 같이 가만있고 또 호랑이가 대어들면 피
하다가 호랑이가 피하면 대어들었다. 호랑이가 내빼는 것을 장사로 생각하였던
지 산으로 도망질치려고 뒷다리를 끌며 뛰어가니 꺽정이가 얼른 앞질러 막아서
서 서리 같은 칼날을 내둘렀다. 호랑이가 오도가도 못하고 한곳에 주저앉는데
뒷몸을 눕히고 앞몸만 세우고 아주 죽이라는 듯이 눈을 딱감았다. 이 동안에 오
주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반 함통이를 들어다가 호랑이 대가리에 들씌워서 호랑
이가 함통이를 쓰고 한 바탕 곤두를 돌았다. 꺽정이가 이 꼴을 보더니 “아서라
불쌍하다. 얼른 죽여버리자. 아무리 짐생이라두 산중에서 제로라 하는 것을 개새
끼같이 놀리는 것이 우리의 잘못이다. " 하고 곧 칼을 높이 들고 있다가 호랑이
가 함통이를 벗어버릴 때 대가리를 겨누고 번개같이 내리쳤다. 호랑이가 앙 소
리도 한번 못지르고 땅에 쓰러져서 앞다리만 몇번 버둥거리었다. 꺽정이가 오주
를 바라보며 “자네는 상한 데나 없나?” 하고 묻다가 머리 동인 수건에 무슨
칠갑한 것을 보고 “머리수건에 그게 다 무언가?” 하고 물었다. 오주가 수건을
끌러 들고 “호랑이놈이 물찌똥을 내깔겼소. "하고 손으로 떨려고 하니 꺽정이가
“물에 빨게. 상투 끝에도 묻었네. 씻어 주께 이리 오게. "하고 오주를 불러서 수
건의 정한 끝으로 상투와 머리에 묻은 것을 씻어주며 오주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오주가 죽지 않았네그려. "하고 오가가 떠들며 와서 먼저 오주를 보고 “얼마
나 혼이 났나?”하고 인사하고 다음에 꺽정이더러 “씻어주는 게 무어요?”하고
물었다. 꺽정이가 고개를 돌이키며 “오주버덤 호랑이가 혼이 났다오. 이것 좀
보우. "하고 수건을 오가의 코밑에 들이미니 오가가 “호랑이똥 아니오?”하고
뒤로 물러서서 “여게 오주, 자네가 호랑이 밑으로 나왔네그려. "하고 한번 웃고
또 “두구두구 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네. 무섭구두 드러운 이야기 희한하지
않은가. "하고 다시 웃었다. 오주가 호랑이와 싸우던 것을 대강 이야기한 뒤 두
루미 깨어진 쪽을 집어치우는데 오가가 “남의 아까운 두루미를 깼으니 두루미
값 물어놓아야 하네. "말하고 곧 자기 말에 대답하듯이 “호피 한 장이 두루미
값은 되겠지.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수건을 오주 주고 나서서 “뱃심이 무던
하구려. "하고 오가에게 말하니 “그렇기에 도둑놈 아니오. "하고 점잖게 대답하
는데 그 대답보다도 대답하는 모양이 우스워서 꺽정이와 오주가 다같이 껄껄 웃
었다. 오주가 샘으로 수건 빨려 간 동안에 천왕동이가 죽은 노루를 끌고 돌아왔
다. 천왕동이는 노루 잡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호랑이 잡아 놓
은 것을 보고 뛰어가서 들여다보며 “이거 누가 잡았소? 형님이 잡았구려. "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니 “오주가 가만히 앉아서 큰 사냥을 했다네. "하고 오가가 대
답하였다. “거짓말 마우, 대가리에 칼을 맞았는데 누가 속겠소. " “오주가 초벌
잡아놓은 것을 자네 형님이 재벌 칼질하셨다네. "하고 오주가 곧 오주와 호랑이
가 싸운 것을 이야기하여 들리었다. “오주 지금 어디 갔소?” “똥수건 빨러
갔네. ” 오주가 수건을 빨아 널고 돌아온 때 천왕둥이는 오주더러 호랑이 똥
먹었다고 조롱하고 한바탕 웃고 떠들었다.
얼마 뒤에 유복이가 멧돝은 놓치고 여우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사냥들을
마치고 해 져서 땅거미 될 때 일행이 청석골로 돌아왔다. 이날 밤도 술타령으로
새우다시피 하고 이튿날 식전에 오주가 꺽정이 천왕동이와 함께 청석골을 떠나
서 같이 오다가 양짓말 앞에서 두 사람을 작별하고 개래동으로 들어왔다. 동네
어귀에서 오주가 젊은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이 사람, 이쁜 안해를 혼자 두구
어디 가서 이틀씩이나 돌아다니나. 어서 집에 가보게. " 하고 그 사람의 웃는 것
이 오주 눈에도 수상히 보이어서 오주는 정첨지 집에도 가보지 않고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정첨지 아들이 과부를 오주에게 내준 뒤에 죽네 사네 야단치던 과부가 말썽없
이 사는 것을 보고 오주 듣지 않는 데서는 “그년이 오주의 코 큰 것을 좋아하
는 거야. " “멀쩡한 잡년이 수절이나 할 것같이 사람을 속였지. " “화냥년이
별년인가. " 하고 갖은 욕설을 다하였다. 그러나 밉살스럽고 괘씸한 반면에 끌리
는 마음이 끈히 있어서 오주에게서 도로 뺏고 싶은 생각까지 날 때가 없지 아니
하였다. 오주가 청석골 가던 날 정첨지 아들은 오주 가는 것을 보고 혼자 속으
로 별 생각을 다하였다.
‘이년을 한번 욕이라두 잔생이 보여야 속이 시원할 텐데, 나중에 오주가 알
면 어떻게 할까. 계집의 맘이 과부로 있을 때와는 딴판 다를 것이니까 잘하면
오주가 알게까지 되지 않을 터이지. 설혹 알게 되더라도 주객간이고 더구나 내
가 준 계집이니까 설마 무슨 말썽이 있을까. 오주가 우악스럽기는 하지만 비위
만 맞춰주면 뒤가 없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별 염려 없겠지.’
생각을 제게 유리하도록 돌린 뒤에 정첨지 아들은 ‘이년 오늘 밤에 좀 견뎌
봐라.’ 하고 속으로 벼르면서 밤 되기를 기다리었다.
이날 밤에 정첨지 아들이 오주의 안해 혼자 자는 방에 뛰어들어 갔다. 오주의
안해는 치마도 벗지 않고 동그마니 누워서 잠을 설자던 중이라 방문이 열릴 때
벌써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오주의 안해가 오주에게는 몸을 버린 길이라 죽지 못
하고 그대로 같이 살지만, 이 사내 저 사내 볼 난잡한 여자가 아니라 다른 사내
라도 말을 들을 리 없는데 더구나 속에 원수 치부하고 있는 정첨지의 아들이랴.
정첨지 아들이 방에 들어설 때 “도적이야 도적이야!” 소리지르고 정첨지 아들
이 몸에 손을 댈 때 “살인이야, 살인이야!” 소리질러서 여편네의 새된 목소리
가 고요한 밤에 높이 울렸다. 정첨지 아들이 눈이 뒤집혔다. “살인? 옳지, 이년
죽어봐라. " 하고 식식거리며 덤비었다. 여편네가 죽을 힘을 다 들여서 막지마는
정첨지 아들이 전과 달라 조금도 사정없이 미친 것같이 날치는 판이라 여편네의
막는 것이 새발의 피 같았다. 정천지 아들이 여편네 입은 치마폭을 갈가리 찢어
서 우선 여편네가 소리 못 지르도록 아갈잡이하여 놓고, 그 다음 여편네가 치마
밑에 입은 옷은 바지 한 가지뿐이라 정첨지 아들이 그 바지에 손을 대면 여편네
가 몸을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고 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여편네를 발가벗기려
고 할 때 닫혀놓은 방문이 펄떡 열리며 저의 안해가 방문 앞에 와섰다. 정첨지
아들은 놀라서 일어서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다가 골이 나서 안해를 흘겨보
고 비위를 팔았다. “ 왔어?”“왜 왔어? 그래도 뻔뻔하게 말이 입에서 나와!”
“어서 집으루 가. " “누구더러 가래, 누구더러 가래?” “가라면 가지 무슨 잔
말이야!” “개새끼 행실하는 꼴을 보지 않고 어딜 가. " “이년이 미쳤나!” “
누가 미쳐? 미친 눈깔에는 성한 사람도 미쳐 보이남. " “죽지 못해 성화냐!”
“그래, 어서 죽여봐!” “이년아, 악쓰지 마라. 남 듣는다. " “밖을 좀 내다보
고 말해. 남 듣는다고 말할 나위가 있나. "
아닌밤중에 ‘도적이야’ 소리와 ‘살인이야’ 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잠이 깨
어서 정첨지의 아들이 오주 안해 방에 뛰어들어간 것을 정첨지 며느리까지 알게
된 것이라, 정첨지 며느리가 분김에 뛰어올때 동네 사람 여편네 사내 오륙명이
구경하러 따라와서 마당 안에 들어섰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섰는
것을 보고는 안해를 떠다박지르고 튀어나와서 머리를 싸안고 여러 사람 사이로
뛰어나갔다.
정첨지 며느리가 오주의 안해를 보호하느니보다 자기의 사내를 금지하려고 동
네 여편네 두어 사람을 얻어다가 오주의 안해와 같이 있게 하여 이튿날부터는
오주의 집에 밤낮으로 사람이 떠나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저의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열어보니 저의 안해는 누워 있고 그 옆에 동네 여편네가 앉아 있었다.
그 여편네가 “곽서방 지금 왔소. 나는 인제 갈라오. " 하고 곧 일어서 나오니
오주가 길을 비켜주고 나서 방안에 들어섰다. 안해가 그 동안 일어나 앉았는데
머리는 쑥바구니 같고 면상에는 큰 생채기가 났고 눈에는 눈물이 듣거니맺거니
하였다.
오주가 안해 앞에 와서 펄썩 주주물러앉으며 “나 없는 새 무슨 야난을 냈어.
공연히 울지 말고 말을 해!”
삿대질하고 대드는 품이 곧 조련질할 사람 같으니 오주의 안해가 어이없어서
눈물을 거두고 오주의 얼굴만 빤히 보고 있었다. “왜 말을 못해!” “무슨 소리
를 어떻게 듣고 왔소?” “무슨 소리를 들어. " “그럼 왜 내게 골을 내오?” “
그럼 골이 안 나. 머리는 왜 저 모양이구 얼굴에 생채기는 왜 났어?” “그러니
어째서 내게 골을 내오?” “국으로 가만히 못 있구 동네가 왁자하게 할 것이
무엇이야?” “아니 여보, 날 화냥질시켜 먹고 살 작정이오? 난 죽어도 못하겠
소. 진작 죽어야 할걸 웬수의 목숨이 모질어서 죽지 못하고 살자니까 별 망칙스
러운 소리를 듣겠소. " “누가 화냥년 노릇 하래? 공연히 죽네 사네 할 까닭이
무어냐 말이지. " “죽네 사네 안하고 순순히 말을 들을 걸 잘못했단 말이오? 아
닌 밤중에 사내놈이 여편네 혼자 자는 방에 뛰어들어온 건 잘한 일이고, 죽네
사네 해서 동네 사람 알게 한 건 잘못한 일이란 말이오? 나는 말귀를 못 알아듣
겠소. 똑똑히 말 좀 하오.“ ”죽네 사네 하니까 사내가 자는 방에 들어왔지.“
”누가 그럽디까, 그놈이 그럽디까?“ ”그눔이 누구야?“ ”그럼 뉘게 말을 들
었소?“ ”무슨 말을 뉘게 들어. 내생각에 자네가 또 공연히 죽으려구 나없는
틈에 샘에나 들어갔나 해서 말인데.“ ”집에 있을때는 내가 샘에 나갈 틈이 없
어서 못 들어간 줄 아오? 부끄러움을 샘물로 씻을 수 있다면 하루 백 번이라도
들어가겠소.“ ”그럼 방에서 목을 맸는가?“ ”누가 목을 매어. 사람 귓구멍이
막혀 죽겠네.“ ”그럼 왜 사내눔이 밤중에 방에 들어온담.“ ”왜 들어왔겠나
생각해 보오. 당치 않은 생각은 잘하면서 그런 생각은 왜 못하오?“ ”아니 겁
탈하러 들어왔어, 어떤 눔이?“ ”그러나까 죽네 사네 야단을 쳤지, 미쳤다구 공
연히 죽네 사네한단 말이오?“ ”그눔이 누구야, 그눔이?“ ”날 이 꼴 맨든 놈
이 누구요?“ ”주인의 아들이야?“ ”그럼 그놈 아니고 누굴 듯싶소.“ ”응!“
하고 오주가 눈방울을 굴리더니 두말 없이 뻘떡 일어섰다. ”어디갈라오? 내 이
야기나 듣고 가오.“ 하고 안해가 붙잡으니 ”이야기는 두었다 들어두 좋아. 당
장가서 그눔을 찬아리를 터놔야지.“하고 오주는 안해의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나와서 한달움에 정첨지 집으로 뛰어왔다. 정첨지가 마침 바깥마당에 나섰다가
오주 오는 것을 보고 ”인제 오나?“ 하고 인사하니 오주는 인사 대답도 없이
”아들 어디 있소?“ 하고 불쾌스럽게 물었다. 정첨지도 그 아들의 한 짓을 들
어 아는터라 오주의 눈치를 알아채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고 ”왜 그러나?“
하고 도로 물으니 오주가 서슴치 않고 ”그 집안 망할 자식 없애버립시다.“ 하
고 말하였다. ”없애다니?“ ”내가 창아리를 터쳐놓을 테요.“ ”사람을 죽이면
죽인 사람은 성할까?“ ”자식 원수 갚을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 내 목숨을 영감
께 내주리다.“ ”여개, 안으루 들어가세.“ ”그 자식이 집에 있소?“ ”글쎄,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세.“ ”이야기는 듣기 싫소. 그 작식만 내주우.“ ”내줄
께 들어가세.“ 하고 정첨지가 오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와서 자기 거처하는 방
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방에 들어갈 거 없소.“ 하고 오주는 잡힌 손을 빼어가
지고 물러섰다. ”내가 내 자식을 불러주께 염려말구 방으루 들어가세.“ ”그럼
일꾼 방에 가서 기다릴 테요.“ ”아니 내 방에 들어가서 내 말 한마디만 들어
주게.“ ”할 말 있거든 여기서 말하구려.“ ”조용히 할 말이니 잠깐만 들러가
세.“ 하고 정첨지는 다시 오주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정첨지가 방에
들어와서 앉힌 뒤에 오주 앞에 마주 앉아서 ”내가 사정할 말이 있으니 좀 들어
주게.“ 하고 말을 붙이니 ”아들 두던하는 말이면 나는 듣지 않겠소.“ 하고
오주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까지 자식의 두던이 아니라 이 늙은 사
람의 사정일세.“ ”말하우.“ ”늙은 사람의 말이 혹 귀성스러워서 듣기 싫드래
두 주객간 정리를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주게.“ 하고 정첨지는 오주의 눈치를
살피고 ”그러우. 어서말하오.“ 하고 오주는 정첨지의 입을 바라보았다. ”집
안 망할 자식 하나 까닭에 내가 맘이 편한 날이 없는 것은 자네두 잘 알지. 내
가 자식더러 진작 죽어버리라구 야단칠 때두 많지만 실상 속으루는 혹시 죽을까
봐 겁을 내네. 자네 생각해 보게. 그 자식 하나 휘뚝하면 다른 식구두 살 수 없
지만 우선 이 늙은사람이 의지가 없어 살 수 있겠나. 그 자식이 더구나 비명에
죽는다면 나는 곧 그날이 죽는 날일세. 어미 없는 핏덩이를 외톨루 길러내서 의
지삼아 살다가 그 꼴을 보구 어떻게 살겠나.“ 정첨지가 숨을 돌리느라고 말을
한끈에 잇대지는 못하나마 오주말할 틈 없이 혼자 말하다가 끝에 와서 목이 메
었다. ”그러니 나더러 고만두란 말이오?“ ”아닐세.“ ”그
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 자식이 죽으면 여러 초상이 날 테니까 나를 자
식 대신 죽여주게.“ ”당치 않은 말두 다하우.“ ”내가 자식을 잘못 두었으니
까 죽어두 원통할 것 없네.“ ”고만두우. 듣기 싫소.“ ”듣기 싫으래두 끝까지
들어주마구 하지 않았나.“ ”왜 두던 않는다구 하구 두던하우?“ ”자식 두던
인가 내 사정이지.“ 오주가 입맛을 쩍쩍 다시는 것을 보고 정첨지는 말을 고쳤
다. ”달초에 어째 자네같이 직실한 사람이 그 자식하고 부동해서 남의 과부를
업어왔나? 나는 지금두 자네를 원망하는 맘이 아주 없지 않아.“ 오주가 슬쩍
외면하려는 것을 보고 말을 한번 더 고쳤다. ”그 자식이 겁탈하러 방에 들어
가긴 했지만 겁탈하지는 못했으니까 그것두 분간이 있지 않겠나. 자네두 들어서
알겠지만 내 며느리가 진둥한둥 쫓아가서 그 자식을 붙들어낸 까닭에 자네 안해
가 욕을 보지 않았다네.“ 오주가 고개를 돌이켜서 정첨지를 바라보면서 ”이러
구 저러구 내가 고만둘 테요”하고 말하니 “자네가 말썽없이 덮어둔다면 작히
고맙겠나. 여보게 고마워”하고 정첨지가 오주 앞으로 들어앉으며 오주의 손을
잡았다. “나는 오늘 영감 집을 하직하구 다른 데루 갈 테요”하고 오주가 곧
일어서려고 하니 정첨지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잠깐만 더 앉아 이야기하세”
하고 붙들었다.
“말을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있소?”, “우리 그대루 같이 지내지
다른 데 갈 것 무어 있나? 내가 그 자식을 단속해서 이 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니 염려 말구 같이 지내세. ”하고 정첨지는 오주를 달래었다. 오주가 위인이
만만치 않아서 휘어부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힘이 많은데다가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여 오주 하나면 장정 일꾼 몇 사람 폭을 당하는 까닭에 이런 머슴을 놓치
지 않으려고 정첨지는 중언부언 만류하여 놓고 나서 “내가 지금 그 자식을 불
러다가 자네 앞에서 사과시키구 또 장래 그런 일 못하두록 맹세시킴세. ”하고
곧 안에 와 있는 동네 여편네 하나를 불러다가 발매터에 나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일었다. 오주가 한동안 더 정첨지 방에 앉아 있다가 “난 고만 집에 가
보겠소. ”하고 일어서니 “그 자식이 오거든 자네를 부르러 보낼 게니 곧 오게
”하고 정첨지는 더 붙잡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사과를 받고 일을 씻서 덮었다. 오주의 안해가 태기가
있어서 그 뒤에 입덧이 났는데, 오주는 처음에 놀란 끝에 병이 났거니 여기다가
나중에 태기인 줄을 알고 남의 없는 일같이 좋아하였다.
꽃 피고 꽃 떨어지고 잎 피고 잎 떨어지는 동안에 세월이 물같이 흘러서 오주
의 안해의 산삭이 다 되었다. 가냘픈 몸에 배가 유착히 불러서 굼닐기가 가쁜
까닭에 오주의 안해는 만삭 되기 전부터 많이 누워 지내었다. 어느 날 저녁때
오주가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부엌이 쓸쓸한 것을 보고 “오늘두 저녁 안 해먹
구 누워 있나?”하고 중얼거리며 닫힌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안해는 누워 있
지 않고 아랫배를 부둥켜 쥐고 앉아 있었다. “왜 그래?”하고 오주가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의 머리를 만져보려고 하니 안해는 머리를 오주 가슴에 대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 “어디가 아픈가?” 몇 번 물어야 대답이 없던 안해가 한동안
머리를 들고 “아이고 죽겠소. ”하고 이마의 진땀을 씻었다. “대체 어디가 아
파 그래?”, “배가 아파요”, “아침밥이 체했나?”, “아니오”, “그럼 왜 아
파? 옳지 옳지, 애 날 때 배가 아프지. 애를 곧 날 것 같은가?”
안해가 대답 대신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보고 오주는 한번 허허 웃고 나서 “가
만히 누워 있어야 애기가 잘 나오겠지. ”하고 안해를 붙들어 눕히고 곧 윗목
벽에 매인 실겅 위에서 쌀과 미역을 내리었다. 산미와 산곽은 달 초생에 유복이
가 갖다 주고 간 것이었다. 오주가 쌀 한 바가지, 미역 한 오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안해가 누워서 “그건 어디로 가지고 가오?”하고 물으니 오주
는 서서 “주인집에 가서 밥 짓구 국 끓여달랄 테야”하고 대답하였다. “애도
낳기 전에 무슨 국밥이오?”, “국 끓이구 밥 짓는 동안에 애 낳겠지 뭐”, “언
제 날지 누가 아오?”, “곧 날 듯하다며 그래”, “그건 거기 놓아 두구 얼른
가서 저녁이나 먹구 오”, “나두 첫국밥 같이 먹을라네”, “제발 말 좀 들으
우. 첫국밥은 언제 먹게 될지 모르니 어서 가서 저녁 먹으우”, “그럼 밥을 갖
다 같이 먹세”, “난 못 먹겠소”, “하라는 대루 하까”하고 오주는 쌀과 미역
을 방구석에 놓아두고 정첨지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왔다.
오주는 저녁 먹을 동안에도 안해가 곧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아서 한 그릇 밥을
너댓 술에 다 떠먹고 부리나케 쫓아왔는데 안해는 배가 아프다고 자반 뒤집기할
뿐이라 안해가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려서 오주가 “왜 얼른 낳지 않구 고생이
여. ”하고 나무라듯 말하니 안해는 “나와야 낳지. ”하고 톡 쏘아 말대답하였
다. “왜 얼른 나오지 않을까. 그놈이 따듯한 데 들어앉아서 나오기가 싫은 게로
군. ”하고 오주가 웃으니 “놈인지 년인지 어찌 알고 놈이래. ”하고 안해도 웃
다가 곧 “아이구 배야. ”하고 상을 찡그렸다.
그날 밤새도록 오주의 안해는 아이를 비릊기만 하고 낳지 못하여 오주까지 밤
을 해뜩 새웠다. 동이 터서 밖이 환할 때 기운이 빠져서 늘어진 안해가 목안 소
리로 “여보 나 죽겠소. 우리 어머니께 좀 갔다와 주. ”하고 청하니 오주는 “
그래 내 가서 뫼시구 오지. 그러나 나 없는 동안에 혼자 어떻게 있나?”하고 걱
정하다가 “걱정 말고 지금 곧 좀 갔다오. ”하고 안해가 재촉하는 바람에 “그
래 그래. ”하고 대답하며 곧 일어섰다.
오주의 안해가 본집과 연신 있어 지낸지 오래다. 오주의 안해는 남의 이목이
부끄럽다고 신뱃골 간 일이 없지마는 오주의 장모는 불쌍한 딸이 못 잊혀서 개
래동을 한두 번 왔다 가기까지 하였다. 오주가 새벽 나서서 신뱃골로 장모를 데
리러 가는 갈 때는 줄달음을 치다시피 하여 아침 전에 들어가고 올 때도 늙은
장모를 업고 다리 힘 자라는 대로 빨리 온 까닭에 점심때 조금 지나 돌아왔다.
오주가 집에 들어오며 “장모 뫼셔 왔네. " 하고 소리지르고 방문을 열어서 장모
를 앞서 들여보내는데 그 장모가 “아이구머니. " 하고 방문턱에 주저앉으니 “
왜 그러우?” 하고 오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주의
안해가 눈을 홉뜨고 누워 있는데 그 눈이 숨지는 사람의 눈과 같았다. 오주가
장모를 떠밀다시피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 옆에 가서 펄썩 주저앉으며 곧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여보게, 정신 차리게. " “여보게, 장모님 오셨네. " “
장모님 오셨어. " 오주가 연거푸 큰소리를 질러도 오주의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장모가 이것을 보고 눈자위를 붉히면서 “저리 좀 비켜나게. 나 좀 보세. " 하고
오주의 비켜주는 자리에 들어앉아서 입을 딸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이애 이애
정신 좀 차려라. 이애 이애. " 하고 목멘 소리로 부르니 대답은 여전히 없으나
바로 섰던 눈동자가 돌기 시작하며 걷어들렸던 눈꺼풀이 내려덮였다. 오주의 안
해가 참없이 잦치르는 아픔을 배기다 못하여 까물치듯이 정신을 잃었다가 귀에
익은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서 거북스럽게 눈을 뜨고 “어머니!” 하고
손을 잡으려고 더듬었다. “옳지, 인제 정신이 았구나. " 하고 어머니가 딸의 손
을 쥐고 “살아났군 살아났어. " 하고 오주의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오주의
안해는 “아이구머니 아이구머니. " 하고 앓는 소리 하다가 “어머니 물 좀 주.
" 하고 마른 입속을 벌려 보이었다. “더운물이 있겠나?” “찬물은 먹여 못 쓰
우?” “찬물 못 먹네. " 오주가 장모의 말을 듣고 부엌으로 물 데우러 나가는데
장모는 방바닥에 손을 대어 보며 “방이 차니 불 좀 나우 넣게. " 하고 부탁하였
다. 오주가 물을 한 솥을 붓고 때는 중에 장모가 나와서 “물이 그저 안 더웠
나?” 하고 솥을 열어보더니 “무슨 물을 이렇게 많이 부었나. 에 사람두. " 하
고 간신히 거냉된 물을 사발에 조그만치 떠가지고 들어가며 “어서 불이나 많이
때게. " 하고 오주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불을 더 때는 중에 안해의 앓는 소리가
높아져서 오주가 가서 방문을 열고 “왜 더 아프다우?”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고 하니 장모가 손을 내저으며 “얼른 문 닫히게. 그러구 자네는 들어오라기 전
엔 들어올 것 없네. " 하고 말을 일러서 오주는 다시 부엌에 와서 잎나무를 아궁
이에 그러넣고 앉아 있었다. 한동안 뒤에 안해의 낑낑 애쓰는 소리와 장모의 어
차어차 힘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오주는 궁둥이에 좀이 쑤시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여러 차례 방문 밖에 가서 기웃기웃하였다. 해가 거의 다 져
갈 때 방안에서 “으아 으아” 갓난애의 소리가 났다. 부엌에서 잎나무를 깔고
퍼더버리고 앉았던 오주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방문 밖에 가서는 고지식하게
방문을 열지 않고 방안에 있는 장모에게 말을 물었다. “났지요?” “났네. " “
무어요?” “딸일세. 섭섭한가?” “딸이라두 낳았으니 좋지만 딸이 아들만 하
겠소. " “그렇지. " 장모의 웃는 소리를 듣고 오주가 “왜 웃소?” 하고 물으니
장모는 그저 “아닐세. " 하고 대답하면서도 역시 웃었다. “인제 좀 들어갑시다.
" “조금 더 기다리게. " 오주가 장모의 들어오란 말을 기다리다 못하여 나중에
“고만 들어갈라우. " 하고 곧 방문을 버썩 여니 “얼른 들어오구 문 닫게. " 하
고 장모는 바람을 막느라고 갓난애 모자를 몸으로 가리었다. 오주가 황망히 문
을 닫고 들어서서 눈감고 누워 있는 안해를 내려다보다가 장모 옆에 와 앉아서
홑옷가지로 싸 동여놓은 갓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얼굴이 보기 싫게 생
겨서 이쁜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데가 없어 보이었다. “못두 생겼소. " “자네
닮았는데. " “기집애가 날 닮아 쓰겠소. " “기집애로 못 쓰겠거든 사내로 쓰게
나. " 오주는 장모가 실없은 말 하거니 생각하였다. 말하는 장모와 듣는 오주가
다같이 웃을때 오주의 안해가 영채 없는 눈을 뜨고 보았다. “어머니. " “왜?”
“참말 기집애요?” “기집애면 섭섭하겠니?” “아니. " 안해가 기운 없는 말을
그치고 다시 눈을 감을 때 오주가 아이 싸놓은 것을 밑으로 걷어치고 들여다보
고 “자지 달렸네, 멀쩡한 사낼세. " 하고 소리쳐서 안해를 알려주고 곧 장모를
돌아보며 “왜 속였소?” 하고 책망하듯 말하니 “그러면 명이 길다네. "하고 장
모는 웃었다. 오주의 안해는 얼굴에 별로
기쁜 빛이 없었지만 오주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장모가 방구석에 있는 미역과
쌀을 가지고 나가서 국 끓이고 밥 짓는 동안에도 오주는 줄곧 그대로 앉아서 모
자를 번갈아 보며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장모가 국밥을 퍼가지고 들어온 뒤 오
주가 안해를 일으켜 앉히려고 하니 장모가 가만히 뉘어두라고 말리었다. “왜
그러우?” “아직 앉지 못하네. "“앉을 기운이 없으면 장모님이나 내나 안구 앉
읍시다. "“아니야. 아파서 못앉아. 아이가 저렇게 크니 어미가 성할 수 있나. "
“어디가 아파서 앉지를 못하우? 앉혀 봅시다. "“고만두고 얼른 이거나 받게. "
장모가 집어주는 국그릇 밥그릇을 오주가 누운 아내 앞에 받아놓고 장모와 같이
권하였다. 정작 아이 어머니는 국 한 모금 마시다 말고 오주가 첫국밥을 달게
먹었다. 후산하고 삼 나가고 아이 어머니가 국밥을 조금씩 먹은 뒤에 오주의 장
모는 신뱃골로 돌아갔다. 해산에 지위진 오주의 안해가 조금씩 갱생하여 가다가
한이레가 지난 뒤부터 새삼스럽게 부기가 생기고 신열이 생기더니 불과 며칠 안
에 수족까지 똥똥 붓고 밤이면 열에 뜨이어서 헛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여보,
나하고 같이 가잔 말이오?”“저놈의 늙은이 왜 데리고 왔소?”“고모부가 다
무어요, 원수지. "이런 똑똑한 말보다 똑똑치않은 소리가 더 많았다. 밤새도록 신
열이 오르고 내리지 않다가 식전이면 조금씩 내리는데 하루 식전에는 오주의 안
해가 정신기가 훨씬 낫게 돌아서 오주를 보고 평일과 같이 수작하였다. “나 때
문에 여러 날 잠을 못자서 눈이 부숙부숙하오. 낮잠이라도 좀 자오. "“내 걱정
마라. "“주인집 일이나 밀리지 않았소?”“그까지 일은 밀려두 상관없네. 자네
병이나 얼른 낫게. "“나는 아무래도 죽을까 보오. 눈만 감으면 죽은 사람들이
보이오.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위에 가끔 꿈에 보여두 고뿔 한번
아니 아니 앓네. "“예사때 꿈과 달라요. 내야 죽어도 아까울 것 없지만 핏덩이
가 불쌍하오. "하고 말할 때 마침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오주의 안해는 곧
우는 아이를 앞으로 끌어다가 젖을 물리고 알아듣는 것에게 말하듯이 말하였다.
“어미 죽기 전에 어미 젖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아모쪼록 병없이 잘 자라서
수명 장수 오래 살고 불쌍한 어미 생각해라. 어미가 세상에 났던 표적이 너 하
나뿐이다. 어미 명이 남은 것 있으면 너게 이어주마. 죄없는 어린것이 어미 없이
도 잘 자라도록 도와 줍소사. 어미가 죽어 혼만 남더라도 신명께 축수하마. 어미
대신 오래오래 살아라. 그러나 너 같은 없는 사람의 자식을 누가 젖을 먹여주랴.
네가 밥 먹게 되기까지 살다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만 젖 한번 배불리 못먹여보
니 어미 맘이 어떠하랴. 어미가 죄 많아서 너를 핏덩이로 두고 죽는다. " 오주의
안해가 나중에는 목이 메어 말은 못하고 눈물만 흘리었다. 의약 없는 두메 형세
없는 집에 약한 몸에 중한 병이 들면 죽을 사람으로 칠 수밖에 없다. 오주의 한
해가 약 한 첩 못 얻어 먹고 앓는 중에 정신 좋던 날 낮 후부터 신열이 훨씬 더
하여서 정신 잃은 채 며칠 동안 고통하다가 나중에 고통이 가라앉는 듯 신열이
갑자기 내리고 신열이 내리며 숨이 따라 그치었다. 아들 낳은 뒤 세이레가 겨우
지나고 오주와 같이 산 뒤 일 년이 채 못 되어서 오주의 안해는 박명한 미인으
로 일생을 마치었다. 초상 때 동네 인심도 있거니와 정첨지가 도와주고 유복이
가 힘을 써서 오주 안해의 초종 범절은 과히 마련 없지 아니하였다. 유복이 안
해와 오가 마누라까지 초종중에 한 번씩 넌지시 왔다갔는데 오주의 장모는 장삿
날까지 한번 오지 아니하였다. 신뱃골에 마마가 들어서 오주의 처남 아이가 걸
린 까닭에 오주의 장모는 아들마마시키느라고 딸의 초종을 와서 보지 못한 것이
었다. 오주가 급히 장모보고 할 말이 있어서 바로 장사 이튿날 신뱃골로 장모를
보러 갔다. 오주가 장모의 잡 삽작 안에 들어서려고 할 때 봉당 정화수 상 앞에
앉았던 장모가 등겁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손짓하였다. 오주가 영문을 목라서 주
춤하고 서자, 장모가 쫓아내려와서 삽작 밖으로 같이 나왔다. 부정하다고 집안에
못 들어서게 한 것을 안 뒤에 오주는 밖에 서서 이야기하는데 일기 좋아 장사
잘 지낸 것부터 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어린것 말 좀 할라구 급히 왔소. "하고
장모를 바라보니 “어린것이 어미의 한세상 났던 표적인데. "하고 장모는 손등으
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였다. “죽기 전에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이
없더라도 잘 길러야 할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자네가 형세가 있으니 유
모를 대나, 어떻게 하나?”“아무리 생각해두 장모가 좀 길러주어야겠소. "“내
가 젖도 없이 어떻게 기르나?”“젖을 얻어먹여서라두 길러주시우. 내가 버는
일 년 사경은 모두의 젖값으로 데밀 테요. "“차
차 의논해서 좋도록 하세. "“차차가 다 무어요? 지금 참젖으루 연명을 시키는데
하루가 급하우. " “이 동네 마마가 끝난 뒤에 내가 데려옴세. "“언제 마마 끝
나기를 기다리구 있소. 곧 좀 데려와야겠소. "“집의 마마 배송이나 내야지. "“
언제 배송내우?”“댓새 후에는 내게 되겠네”“그럼 댓새 뒤에 내가 어린것을
데리고 오겠소. "“지금 자네가 데리고 있나?”“어디 맡길 데 있소. 그럼 댓새
뒤에 오리다. "하고 오주는 총총히 장모를 작별하고 돌아섰다. 오주는 안해 죽은
설움보다 어린애 살릴 걱정이 더 많았다. 낮에는 어린애를 폭 싸서 가로 안고
젖 있는 여편네를 찾아다니는네, 한 차례 가고 두 차례 가면 벌써 토심들이 없
지 아니하여 오주는 성정을 참고 비위를 부리었다. 낮은 오히려도 낫지만 밤이
큰 일이었다. 밤에 어린애가 배고파 울면 오주는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오주가
신뱃골 갔다온 후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어린애가 자다 깨어서 울기 시작하여 오
주는 어린애를 끼고 누워서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뚜덕뚜덕 달래도 어린애가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일어나서 가로 안고 둥둥이를 쳤다. 어린애가
울음을 그칠 듯하다가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가로 안은 채 방안으로 돌아다니
며 우애우애 하고 얼러보았다. 전에는 엔간하면 그치던 어린애 울음이 도리어
점점 더 쇠었다. 오주는 젖을 얻어먹이러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밤중에
누가 일어나서 젖을 주랴 돌쳐 생각하고 어린애를 다시 눕혀놓고 숭늉 떠다 둔
것을 조금씩 입에 흘려넣었다. 어린애가 사레가 들려서 캑캑하다가 다시 울음을
내놓으니 오주는 상을 찡그리면서 숭늉 뜨던 숟갈을 내던지고 손가락 하나를 입
에 대어주었다. 어린애가 손가락을 빨아보느라고 잠깐 동안 그쳤다가 또다시 울
음을 내놓는데, 불에 데인 것같이 울어서 오주는 다시 가로 안고 일어서서 정신
없이 들까불었다. 어린애는 악패듯이 울고 오주는 미친 사람같이 중얼거리었다.
오주의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오주의 상호가 험하여졌다. 오주의 입에어 제에기
소리가 한마디 나오자마자 어린애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깩 소리 한번에 어린애
울음이 그치었다. 이튿날 식전 해가 높이 뜬 뒤까지 오주가 집에서 나오지 아니
하였다. 정첨지가 아침밥을 먹을 때 며느리를 보고 "오늘 식전에 오주를 볼 수
없으니 웬일이냐? 밥을 가져갔느냐?" 하고 물어서 며느리가 "아니오. " 하고 대
답한 뒤 "요즈막같이 나무 한 짐 안 해오군 남의 밥 먹기 염체없겠지. " 하고 혼
자 말하니 "그 사람이 그런 염체나 차릴 줄 아나. " 하고 정첨지 아들이 안해의
말 뒤를 이었다. "요새는 어린애 젖 얻어먹이러 다니는 게 일인 모양이야. " "어
린 목숨이 불쌍해서 젖모금 먹여주는 사람도 한두 번 말이지 누가 번번이 먹여
준답디까. " "그러니까 왼동네를 다 돌아다니게 되지.“ ”남에게 간구한 소리
하는 사람이 고분고분이나 해야지요. 아까 돌쇠 어머니가 와서 말하는데 곽서방
이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을 먹여달라는데 한두 번은 장 먹여주었지만 어제 저
녁때 세번째라나 네번째 왔더래. 그래서 곽서방네 유모요? 내 자식 먹일 젖도
없소 하고 소리를 좀 질렀드래요. 그랬더니 버쩍 앞으로 대어들며 안 먹여 줄
테요? 유모 아니래두 좀 먹여주 하고 어린애를 막 갖다 안기더라오. 안 받으면
곧 주먹다짐을 할 것 같아서 받기는 받아가지고 돌쇠 동생 작은쇠에게 막 다 빨
리고 난 빈 젖꼭지를 한동안 빨려서 돌려보냈다고 하고 웃습디다.“ ”빈 젖인
지 부른 젖인지 젖통만 보면 대번 알 테지만 오주같이 데면데면한 군이야 빈 젖
꼭지라두 오래만 물려 두면 젖을 많이 먹이는 줄루 알구 좋아했을걸.“ 하고 내
외가 받고채어 가며 지껄일 때 정첨지가 ”어린애는 일간 외가에 갖다 맡긴다더
라. 어린애만 맡기구 오면 그 동안 일 못한 오력을 낸다구 말하더라.“ 하고 오
주에게 들은 말을 옮긴 뒤에 ”오늘 이때까지 꿈쩍 아니하면 혹 병이 나서 누웠
는지두 모르니 밥 먹구 좀 가봐라.“ 하고 아들에게 말을 일렀다. ”황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소?“ ”너무 상심되어서 병이 났는지 누가 아니? 잠깐
가봐라.“ ”녜,가보지요.“ 정첨지 아들이 밥 먹은 뒤에 오주의 집에 와서 방문
을 열고 보니 어린애를 방 한중간에 눕혀놓고 오주가 그 앞에 앉아서 울지도 않
는 것을 뚜덕거리고 있는데 머리는 상투가 풀려서 범벅이 되었었다. 정첨지 아
들이 방문 앞에 서서 ”일어나 앉았네그려.“ 하고 소리치며 곧 ”왜 밥 안 먹
나?“ 하고 물으니 오주가 대답도 없이 흘끗 돌아보는데 눈알이 허공에 달린 것
같았다. ”왜 밥 안 먹어? 배고프지 않은가?“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별안간 어린애를 끌어안고 일어서며 ”옳지 옳지, 배고프지. 젖 먹으
러 가자. 울지 마라. 젖 먹으러 가자.“ 하고 방문 앞에 와
서 정첨지 아들이 문 막고 섰는 것을 보도 말도 없이 발길로 동가슴을 내질었
다. 정첨지 아들이 마당에 나가자빠진 것을 오주는 본 체 아니하고 휘황스럽게
걸음을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정첨지 아들이 어이없는 중에 오주의 행동을 수
상히 생각하여 오주의 방을 한번 자세히 둘러보니 어린애 덮개, 오주의 머릿수
건, 숭늉 그릇, 숟갈 들이 어질더분하게 널려 있는데 오주 앉았던 자리 앞에는
뜯어놓은 머리털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정첨지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그 아비
에게 이야기할 때 돌쇠 누이 열댓살 먹은 계집애가 뛰어와서 정첨지를 보고 ”
영감님 우리 집에 큰일났어요.“ 하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왜그러느냐?“ ”
곽서방이 죽은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 먹여 달라고 야단치는데 우리 어머니 머
리채 드는 걸 보구 왔어요. 그 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영감님 좀 가
서 말려주세요.“ ”너의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 ”새벽에 나무 갔어요.“ ”
오냐, 너 먼저 가거라.“ ”같이 좀 가셔요.“ 하고 계집애가 졸라서 정첨지가
계집애를 앞세우고 돌쇠 집으로 가는데 정첨지 아들도 아비 뒤를 따라갔다. 머
리를 풀어 흩뜨린 돌쇠 어머니는 앞서 도망하여 오고 어린애를 한 팔로 끼어안
은 오주는 뒤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돌쇠 어머니가 ”미친 사람, 미친 사람.“
하고 정첨지 품으로 대어드는데 오주보다도 돌쇠 어머니가 더 미친 사람같이 보
이었다. 정첨지가 돌쇠 어머니를 한옆에 비켜세우고 앞으로 나서서 ”오주, 이거
웬일인가?“ 하고 소리를 지르니 우뚝 서서 물끄러미 정첨지를 보면서 ”어린것
젖 좀 얻어먹일라구 나왔소.“ 하고 대답하는데 하는 말은 모르겠으되 보는 눈
은 성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우리 집으루 가세.“ 하고 정첨지가 부드럽게
말하며 오주의 손을 끌려고 하니 오주가 손을 뿌리치고 곧 돌쇠 어머니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안 먹여 줄 테야!” 하고 눈알을 부라렸다. 돌쇠 어머니는 간신
히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걷어서 틀어얹는 중에 오주 오는 것을 보고 질색하여
정첨지 아들의 뒤로 몸을 피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앞으로 대어들며 비
켜 세우려고하니 정첨지 아들이 “이 사람이 참말 미쳤나?” 하고 두 손으로 오
주를 벌컥 떠밀었다. 오주가 황소 영각 켜는 소리를 하고 정첨지 아들에게 덤비
어서 한손으로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정첨지 아들이 머리를 송충이 대가리같이
흔들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혀 캑캑하였다. 정첨지가 보다가 못하여 “여보게, 오
주 고만 놓게. " 하고 말리니 오주가 정첨지를 보며 한번 싱끗 웃고 두어 번 고
개를 끄덕끄덕하고 멱살 쥐었던 손을 탁 놓았다. 정첨지가 이것을 보고 곧 “옳
지, 인제 우리 집으루 가세. 젖을 먹이더라두 길에서야 먹이는 수 있나. 돌쇠 어
머니하구 같이 우리 집으루 가세. " 하고 오주의 눈치를 살피고 “잠깐만 우리
집으루 같이 갑시다. " 하고 돌쇠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정첨지의 말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정첨지 집으로 올 때 어머니는 치마꼬리에 달라붙어 섰는 딸
을 작은쇠 보아주라고 집으로 보내고 정첨지 뒤를 따라왔다.
오주가 공연히 혼자 중얼중얼하며 정첨지 집을 향하고 오다가 홀저에 돌아서
서 뒤에 오는 정첨지를 보고 “이 애가 어디 병이 났나 보아주시우. " 하고 어린
애를 앞으로 내밀었다. 정첨지가 어린애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오주를 덧들
이지 아니하려고 “우리 집에 가서 보세. " 하고 달래어서 집에까지 데리고 왔
다.
오주가 어린애를 돌쇠 어머니에게 안겨주려고 하는데 정첨지가 가로 나서서
“거기 놓게. 무슨 병이 났나 어디 좀 보세. " 하고 말하여 오주가 곱게 내려놓
는 어린애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는체하다가 “어린애 병이 급한 병일세. 지금 시
각이 위태한걸. " 하고 섰는 오주를 치어다보았다. 오주가 말을 뇌듯이 “급한
병 급한 병. " 하고 중얼거리며 어린애 옆에 주저앉았다가 별안간 정첨지의 소매
를 잡고 매어달리며 “영감, 내 아들 살려주시우. " 하고 전신을 불불불 떨었다.
정첨지가 한동안 미간에 주름을 잡고 생각하다가 “오주, 나 하라는 대루 할 텐
가? 그러면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줌세. " 하고 말하니 오주는 정첨지의 얼굴을
뻔히 치어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지금부터 자네 아들을 내게 맡기구
자네는 다시 아랑곳 말게.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서 이 돌쇠 어머니더러 신뱃골
외조모에게 데려다 두라구 할 텔세. 어떤가? 그렇게 할 텐가? 여기 있는 동안
자네가 보자든지 외조모에게 보낼 때 자네가 같이 가자든지 하면 자네 아들을
살릴 수 없네. " 하고 정첨지가 소리를 꽥꽥 질러 말하니 오주는 멍하고 있었다.
정첨지가 “내 말대루 할 테면 어린애는 여기 두구 자네는 저 방에 들어가있게.
"하고 일변 오주에게 말하며 일변 옆에 섰는 자기 아들에게 눈짓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오주를 앞세우고 머슴방에 들어가서 슬슬 달래어 쓰러 눕히고 나온 뒤에
정첨지는 급히 사람을 불러서 죽은 어린애를 갖다 묻게 하고, 또 늙은이의 다심
으로 오주 장모에게 사람을 보내서 어린애 죽고 오주 상성한 것을 자세히 기별
하고 이 다음 혹시 오주가 가서 어린애를 보자고 하더라도 말을 잘 꾸며서 속이
라고 부탁하여 두었다.
오주가 병이 났다.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인사 정신을 못차리고 앓는 중
에 “우네. "“아이고 또 우네. " 하고 가끔 앞을 더듬을 뿐 아니라 “자꾸 우네.
젖 얻어먹이러 가야겠다. " 하고 여러 차례 뛰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십여 일
동안 오주가 되게 앓고 머리를 들고 일어난 뒤에도 오주의 귓속에는 가끔 어린
애 울음소리가 징하게 울려서 남이 보기 괴상하도록 오만상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은 이것을 보고 오주의 병이 아직 다 낫지 아니했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주는 병 후에 본정신이 완구히 돌아서 정첨지보고 어린애 말을 묻지 않을뿐더
러 신뱃골 장모를 보로가서도 어린애 이야기는 입밖에도 내지 아니하였다. 오주
의 언어와 동작은 성한 사람이 다 되었으나 전에 없던 성미가 한 가지 새로 생
겨서 어린애를 좋아 아니하고 더욱이 우는 어린애를 싫어하였다. 어린애 우는
소리가 멀리 들릴 때는 상을 찡그리고 귀를 막을 뿐이지만, 어린애 우는 것을
눈앞에 볼 때는 곧 상열이 되어 가지고 눈이 뒤집혔다. 어린애를 태기치려고 팔
이 절로 움직움직하였다. 오주 자기도 흉악한 일로 알고 억제하려고 맘을 먹건
만 어린애 우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만 해도 맘이 수상스러워지는데 더구나 우는
상호가 눈앞에 보이기까지 하면 오주의 먹은 마음은 홍로점설같이 사라지고 미
친 마음이 왈칵 나왔다. 오주는 우는 어린애를 멀찍이서 보면 휘황스럽게 달음
박질을 쳐서 다른데로 피하였다.
어느 날 다 저녁때 오주가 산더미 같은 나뭇짐을 지고 정첨지 집 못미처 있는
우물 옆을 지나오는데 물동이를 내려놓고 섰는 여편네들과 쌀을 씻고 앉았는 여
편네들이 참새같이 지저굴거리던 중에 여편네 하나가 내달아서 “곽서방 마침
잘 오는구려. 여보 나뭇짐 버티어놓고 두루박 좀 건져주오. " 하고 오주를 붙잡
았다. “여보 귀찮소. " “이녁 주인네 집 두루박을 내가 얻어가지고 왔다가 우
물에 빠뜨렸소. 좀 건져내오. " “빠뜨린 사람이 건지구려. " “내가 건져낼 수
있으면 이렇게 청할라구. 여보, 그러지 말고 좀 건져주구려. " “성가시어 못살겠
네. 내가 나뭇짐 갖다 두구 바지랑대 가지구 오리다. " “바지랑대 저기 있소. "
오주가 그 여편네에게 붙잡혀서 나뭇짐을 버티어놓고 바지랑대로 두레박줄을
건지는 중에 우물 가까이 사는 동네 소임의 안해가 돌전 어린애를 업고 물을 길
러 나왔다. 여러 여편네 중에 체신 없는 젊은 여편네 하나가 어린애를 귀애한답
시고 하다가 도리어 울려놓았다. 오주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두레박줄을 끌어
올리느라고 애 업은 여편네가 온 줄을 몰랐다가 뜻밖에 애 우는 소리를 듣고 깜
짝 놀라서 거의 손에 잡히게 되었던 두레박줄을 도로 떨어뜨리게 되었다. 오주
가 바지랑대를 내던지고 돌쳐서서 소임의 안해를 흘겨보다가 우르르 쫓아가서
옆에 섰는 다른 여편네들을 잡아제치고 우는 애를 어머니 등에서 빼앗으러 들었
다. 애어머니는 질겁하여 새된 소리를 지르고 여러 여편네들은 혹은 덩달아서
소리를 지르고 혹은 오주를 붙잡고 날치었다. 오주가 제미 소리를 지르며 곧 애
어머니를 우는 애 업은 채 번쩍 들고 우물에 가서 텀벙 집어넣고 속이 시원한
듯이 껄껄 웃고 나뭇짐도 내던지고 정첨지 집으로 뛰어갔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와서 우물 속의 여편네를 건져냈다. 물이 깊지 않고 빠질
때 별로 다친 데가 없어서 다행히 애 어른 다 목숨은 보전하였느나, 그 여편네
의 친정과 시집에서 오주를 때려죽인다고 들고 나섰다. 정첨지가 동네의 유력한
사람이라 소임을 불러다가 오주의 미친 병을 말하고 “병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죈가? 천행으루 이왕 모자가 다 무사했으니 요란스럽게 굴지들 말게. 오주를 섣
불리 건드리면 여러 인명을 상할 테니 동네에 큰일일세. 나두 오주를 집에 두었
다가 무슨 누를 받을는지 모르니까 차차 봐가며 내보낼 작정일세. "하고 타일러
서 오주의 저지른 일을 무사 타첩시키었다.
오주가 앓고 나서 신뱃골 갈 때 청석골을 들렀지만 유복이가 꺽정이와 같이
칠장사 선생에게 새해 세배하러 가고 집에 있지 아니하여 서로 만나보지 못하였
었다. 소임의 떨거지의 말썽이 끝이 나서 오주가 소임과 화해하던 날 저녁때 정
첨지 아들이 밖에 있다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쇠죽 쑤는 오주를 보고 “여게 오
주, 자네가 형님이라구 하는 사람 밖에 왔네. "하고 일러주었다. 오주가 쇠죽을
쑤다 말고 뛰어나와서 삽작 밖을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형님 어디
있소?”하고 큰소리를 질러서 찾으니 “나 여기 들어앉았다. "하고 유복이가 머
슴방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오주가 한달음에 방문 앞에까지 뛰어와서 “
형님 오래 못 봤소, 벌써 왔소?”하고 유복이를 들여다보니 유복이는 벌써 왔다
는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들어오너라. "하고 문길을 비키어 주었다.
오주가 방안에 들어와서 유복이와 마주 앉으면서 “죽산 갔다 언제 왔소?”하고
물으니 유복이가 “어제 왔다. " 대답하고 곧 “너 그 동안 몹시 않았다지?”하
고 물었다. “그랬소. " “집에 와서 네가 앓았단 말은 들었지만 무슨 병으로 앓
았는지 몰랐더니 지금 너의 젊은 주인에게 말을 들어보니 병이 괴상하구나. " “
지금 다 나았으니까 괜찮소. " “아직두 다 낫지 않았다며?” “아니 다 나았소.
" “병이 다 나은 사람이 공연히 남의 집 여편네나 어린애를 우물에다 집어넣는
단 말이냐?” “내가 앓구 난 뒤부터는 당초에 어린애가 보기 싫소. 더구나 우
는 애는 박살을 내놓구 싶소. 남의 집 어린애를 우물에 집어넣은 것이 잘못한
일인 줄 알지만 이 담에 다시 그런 일을 안 하게 될지 내 일이라두 내가 장담
못하겠소. " “병 꼬투리가 남아 있어 그런 것 아니냐?” “그런지 모르겠소. "
“너 이 집 머슴살이 고만두구 내게 가서 같이 있자. " “산중에 어린애가 없어
좋기는 하지만 이 집 첨지 영감이 잘 들어줄는지 모르겠소. " “아까 그 아들의
말 눈치는 그럴 것 같지 않더라. 또 설혹 붙잡더래두 네가 떼치구 가면 고만 아
니냐. " “그는 그렇지요. 그러나 내가 청석골에 가서 무어 하우?” “무어 하다
니. 나하구 사냥이나 다니자꾸나. 꺽정이 언니가 너준다구 굵은 쇠도리깨를 일부
러 만들었더라. 이번에 내가 갖다 집에 두었다. 그 도리깨 가지구 사냥질 다니면
좋지 않겠니?” “그렇게 하겠소. " “그럼, 속히 머슴살이 고만두두룩 해라. "
“오늘 고만두구 같이 갑시다. " “여러 해포 있던 집을 그렇게 졸창간에 떠날
수 있겠니?” “간다구 말하구 사경이나 찾으면 고만 아니오. 잠깐만 여기서 기
다리시우. "
오주가 곧 안에 들어가서 정첨지 식구에게 머슴살이 고만두고 나갈 뜻을 말하
니 정첨지의 아들과 며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첨지까지 힘지게 만류하지 아니
하였다. 오주는 그날로 정첨지 집을 하직하고 유복이를 따라가서 청석골 오가의
집의 한식구가 되었다.
수삭 지난 뒤부터 탑고개에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흉악하
기로 소문이 났다. 댓가지 도적이 나온 뒤에 오가가 여차가 되고 쇠도리깨 도적
이 나온 뒤에 댓가지 도적이 여차가 되었다. 댓가지 도적은 물건이나 빼앗고 말
지마는 쇠도리깨 도적은 사람의 팔뚝이나 정강이를 장난삼아 분질렀다. 그래도
어른은 대개 목숨을 보전하여 보내지만 어린애는 보기만 하면 곧 박살하여 죽이
었다. 쇠도리깨 도적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개래동 정첨지 집에서 머슴 살던 곽
오주인 것은 다시 말할 것 없고 곽오주가 청석골 두령 한 사람으로 화적질할 때
각처에서 어린애들을 무지스럽게 죽여서 “곽오주 온다. " 소리 한마디가 우는
어린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도록 무서운 사람이 된 것은 뒷날 이야기다. 오늘날
까지도 지각없는 부녀자들이 우는 어린애를 혼동할 때 “곽쥐 온다, 곽쥐 온다.
"하는 것을 보면 곽오주 이름이 당시에 어떻게 무서웠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망우당 곽재우의 아버지 곽월이가 오형제인데 그 오형제 이름이 모두 달아날
주 변이라 곽쥐란 말이 곽월 오형제로부터 났단 말이 있으나 이것은 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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