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임꺽정 의형제편 길막봉이 1

一字師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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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길막봉이
곽오주가 탑고개 쇠도리깨 도적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을 때 송도 사기장
수 손가 형제가 서흥 사기막으로 이사 가느라고 식구들을 데리고 청석골을 지나
가게 되었다. 손가 형제의 식구가 어른 아이 모두 일곱인데 어른 넷, 아이 셋이
었다. 큰 손가는 다섯 살 먹은 아들을 업고 형제의 안해 두 동서는 각각 자기의
젖먹이 딸들을 업고 작은 손가는 이삿짐을 졌었다. 청석골 골짜기길을 걸어 나
갈 때 두 동서가 가만가만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형님, 후미진 길이 어째
무시무시하오. ” "이런 데니까 대낮에도 도적이 나지. "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무슨 고개에서 난다지요? “ "탑고개 라네. " "우리가 탑고개를 지나가나요? "
”그럼. " "탑고개를 비키고 다른 길로 못 갈까요? " "다른 길이 없다네. " "쇠
도리깨 도적놈이 흉악하다는데 만나면 어떻게 하오? “ 큰 동서가 미처 말하기
전에 뒤에 오는 작은 손가가 저의 안해의 말을 귓결에 듣고 "그 따위 말 지껄이
지 말게. 호랑이 말하면 호랑이 온다네. " 하고 안해를 나무랐다. "걱정이 되니까
말이지. " "지껄이면 길 늦네. 입 닥치고 어서 가세. " "이야기하며 가야 발 아픈
줄 몰라요. 우리끼리 이야기하는데 왜 참견이오. " 하고 형수가 저의 안해를 거
들어 주려는 것같이 말하니 작은 손가는 증난 말씨로 "그럼 실컨 이야기하시우.
"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만 말에 골낼 것 무엇 있소? ” "누가 골냈소? " "지
금 골내지 않았소. “ 앞서 가던 큰 손가가 안해와 아우의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고 "무엇들을 그러느냐? ” 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야기들한다고 골을 내고
같지 않은 일에 골낸다고 말하니까 골 안 냈다고 잡아떼는구려. " 안해는 송사하
듯 말하고 "쇠도리깨 도적놈 말 말라구 개 어머티더러 이르는데 아주머니가 공
연히 탄하구 나서시우. " 아우는 발명하듯 말하는데 큰 손가는 이말 저말 다
듣기 싫다는듯이 한번 머리를 흔들고 "그 도적놈 만날까 봐 나두 은근히 속으루
걱정이다. " 하고 말하였다. "누가 아니라우? 만나기만 하면 제일 어린애들 때문
에 걱정이오. " 큰 손가가 아우의 말을 대답하려고 할 때 안해 등에 업힌 어린
딸이 울어서 안해를 보고서 "내려서 젖을 먹여가지구 가세. " 하고 말하여 일행
이 길가에 앉아 쉬게 되었다. "쇠도리깨 도적놈이 어린애 간을 잘 먹는다는구나.
" "간을 빼먹는지는 몰라두 어린애 잘 죽이는 것은 참말인갑디다. " "전고에 듣
지 못하던 흉악한 도적놈두 다 많지. " "송도 포도군사들이 이런 도적놈을 잡지
않구 놓아두니 아마 도적놈하구 통을 짰는지 모르겠소. " "설마 통이야 짰겠니.
놀구 자빠져서 잡으려구 애를 쓰지 않는게지. " "이야기를 들으니까 포도군사들
이 일쑤 도적놈의 등을 쳐서 먹느라구 일부러 잡지 않구 놓아둔답디다. " "그런
일두 많겠지만 쇠도리깨 도적놈은 무서워서 좀처럼 잡을 생의두 못할게다. " "날
구 기는 재주를 가진 도적놈일지라두 포도군사들이 참말 잡으러 들면 못 잡을
리 있겠소. " "작년에 송도 군관들이 댓가지 가진 도둑놈에게 큰 망신을 했다는
데 이때까지 잡지 못하는 걸 보면 참말 잡으러 들어두 별수 없는 모양이더라. "
"댓가지 도둑놈은 인명을 해친 일이 없다는데 쇠도리깨 도둑놈은 한 달 동안에
어린애만 해친 것이 셋이라나 넷이랍디다. " "그런 악착스저운 짓을 하는 놈이
제명에 죽을까. " "셋이나 넷이 다 우리네 같은 사람의 자식인갑디다. 그렇기에
그놈이 목숨이 붙어 있지요. " "왜? “ "양반의 새끼가 하나만 끼였드면 그놈은
벌써 잡혀서 능지를 당
했을 것 아니오. " 형제의 도적 이야기가 잠깐 동안이 뜰 때 작은 손가이 안해가
저의 남편을 바라보며 "남더러는 도둑놈 말 말라드니 자기는 신이 나서 지껄이
네. " 하고 오금박듯이 말하니 작은 손가는 안해에게 오금박히고 가만히 있지 아
니하였다. "여편네가 입이 싸면 못쓰는 법이야. " 남편은 안해를 나무라고 "사내
는 쓰는 법인가. " 안해는 남편을 뒤받아서 내외의 아귀다툼이 시작되었다. 큰
손가가 "고만 쉬구 일어나지. " 하고 먼저 아들을 업고 일어서서 아우 내외가 아
귀타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아우를 자기 앞에 내세우고 제수는 안해와 같이 자
기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일행이 한동안 말이 없이 길을 걸어서 탑고개 밑에까지
왔을 때 "인제 탑고개 다 왔소. “ "여기서 또 좀 쉬어가자. " "아무리나 합시다.
그런데 나는 아까부터 공연히 맘이 서먹서먹하오. " "쉬는 동안에 내가 한번 고
개 마루턱까지 올라가 보구 오마. " "형님 여기 있소. 내가 가보구 오리다. " "내
가 얼른 갔다 오께 그 동안 또 말다툼이나 하지 마라. " 형제가 의좋게 서로 말
한 뒤에 큰 손가는 아들을 내려놓고 홀몸으로 고개를 올라갔다. 고개 마루턱까
지 두어 행보 할 동안이 지나도 올라간 사람이 내려오지 아니하였다. "형님이 왜
이렇게 오래 아니 올까 내가 가봐야겠군. " 앉았던 작은 손가가 벌떡 일어서니 "
무슨 변고가 났으면 어떻게 하오. " 형수는 조바심을 하고 "마저 가서 아니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오? " 안해는 울상을 하였다.
작은 손가가 차츰차츰 고갯길을 올라오며 앞을 바라보니 길 한 중간에 머리를
이리 두고 엎어져 있는 사람이 곧 저의 형이라 한 달음에 뛰어와서 형의 머리맡
에 주저앉았다. 갓 부서이고 망건 짜개진 건 말할 것 없고 뒤통수가 깨어져서
골까지 비쭉이 드러났는데 목숨만은 다행히 붙어 있었다. 작은 손가가 형님의
깨어진 머리를 수건으로 싸 동이면서 "형님 형님. " 하고 불러보니 형의 대답하
는 소리가 다 죽어가는 사람의 소리와 같았다. "이거 웬일이오? " 하고 형에게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도적놈 쇠도리깨에 얻어맞은 것을 십분 짐작하고 작은 손
가는 머리를 들고 좌우쪽 언덕을 둘러보니 바른쪽 언덕 위에 나섰는 도적놈들
중의 하나는 늙은 도적이고 하나는 젊은 도적인데, 젊은 도적이 사람도 우악스
럽게 생겼거니와 짚고 섰는 쇠도리깨가 무지하게 굵었다. 작은 손가가 분이 복
받치고 악이 올라서 무서운 생각도 다 잊어버리고 앞으코 뛰어나가 언덕 아래에
서 두 도적을 손가락질하면서 "어떤 놈이 우리 형님을 쳤느냐? " 하고 소리를
지르니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아래로 쫓아내려오려고 하는데 늙은 도적이 붙들
고 귓속말을 수군수군하여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서서 "내다. 어쩔 테냐? “ 하
고 맞소리를 질렀다. "쇠도리깨 도적놈아, 내 말 들어라. 죄없는 어린애와 죽지
못해사는 우리 같은 사람이나 손쉽게 죽이구 가난뱅이의 장볼 밑천이나 떨어먹
는 너 같은 도둑놈은 개같이 더러운 도둑놈이다. 이놈아 세상에 죽일 만한 사람
이 씨가 져서 악착스럽게 어린애를 죽인단 말이냐. 세상에 빼앗을 재물이 그렇
게 없어서 가난뱅이 밑찬을 빼앗는단 말이냐. 너같이 못된 도둑놈이 천하에 또
어디 있느냐. 이놈아 이왕 도둑놈이 되었거든 된도둑놈 노릇을 해라. 우리 형제
는 행세두 못하구 천량두 못 가진 사람이다. 우리 형님을 무슨 까닭으로 해치느
냐 이놈아. " 작은 손가가 하늘이 얕다고 펄펄 뛰며 욕질하는데 늙은 도적이 젊
은 도적의 앞을 막고 나서서 "여게 자네 혼계 잘 들었네. 자네 형님은 서라구 하
는데 서지 않
구 도망하바가 도리깨 한번 얻어맞았네. 가엾세. 얼른 자네 형님 데리구 가서 치
료해 주게. " 하고 웃으며 말한 뒤 뿌루통하고 섰는 젊은 도적의 손목을 끌고 돌
아섰다. 작은 손가는 도적들의 뒤를 바라보며 "우리 형님이 죽어만 봐라, 원수
갚으러 올 테니. " 하고 벼르고 도적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곧 누워 있는
에게 와서 형을 업고 고개 밑으로 내려왔다.
손가 형제가 본래 광주 분원 사람인데 형은 사기를 구울 줄까지 아는 사람이
고, 아우는 사기짐 지고 다니는 도붓장수로 이골난 사람이다. 형제 같이 송도로
이사 오기는 아는 사람의 연줄도 있거니와 장사 자리가 좋을 줄 믿고 온 것인데
송도 와서 수삼 년 장사를 하는 동안에 형제가 다 딸 하나씩 낳아서 식구가 늘
뿐이지 장삿속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여 고향으로 도로 갈까말까 하던 중에
형이 서흥 사기막 사람 하나를 친하여 그 사람의 주선으로 서흥 가서 사기를 굽
게 되어서 아우의 식구까지 끌고 다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형이 죽고 보면
서흥 이사는 파의할 수밖에 없는 사세라 작은 손가가 형수와 의논하고 우선 송
도로 돌아가서 형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작정한 뒤 탑고개 동네에 가서 승교바탕
과 사람을 얻어가지고 와서 형은 승교바탕을 태우고 이삿짐은 다른 사람 지우고
작은 손가 자기는 형이 업고 오던 조카 아이를 업고 어린 딸들 업은 형수와 안
해를 데리고 떠났던 송도로 다시 들어왔다.
십여 일 지난 뒤에 큰 손가가 상처는 합창이 되고 음식까지 잘 먹게 되었으나
행보를 잘 못하여 뒷간 출입도 남이 붙들어 주어야 하고 더욱이 총명이 전만 못
해서 모든 일을 선망후실하여 말하자면 정신은 다 빠지고 등신만 남은 것 같았
다. 형이 이 모양 된 것을 보고 작은 손가는 기막히는 중에 형제 벌어서 먹이던
식구를 혼자 담당할 일이 더욱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삼 년 살던 곳이라도 타
향인메다가 한번 파산하였던 살림이라 신접과 다름이 없고 또 의약의 소입이 적
지 않아서 이사 밑천을 다 잘라먹었다. 작은 손가가 도붓장사를 나가려고 준비
를 차릴 때 형수를 보고 형의 원수 갚을 일을 의논하였다.
"내가 형님이 죽으면 원수 갚으러 간다구 말했지만 형님이 살기는 살았어두
원수는 갚아야겠소. 우리 집이 망하게 된 첫이 쇠도리깨 도적놈의 탓이니까 그
놈을 잡아서 살점을 뜯어먹어두 속이 시원치 못하우. 생각할수록 분해 죽겠소. "
"포도 군사들에게 청을 해서 잡도록 해보구려. " "포도 군사 다 소용 없소. 형님
이 죽을 뻔한 것을 알구 와서 묻기까지 하지 않았소. 그 뒤에 두서너 번 청석골
가서 소풍들 하구 왔는갑디다. " "그러면 어떻게 원수를 갚을 테요? " "나 혼자
는 원수를 갚을 수 없구 동무 몇 사람을 얻어야겠는데 먼저 생각나느니 아주머
니 동생들이오. 이번 장사 나가는 길에 수원 가서 말해 볼 테니 아주머니 생각
에 어떻소? " "글쎄, 큰동생 둘쨋동생은 내가 남에게 맞아죽었대도 원수 갚아 줄
위인이 못 되니까 말할 것 없고, 셋째 넷째는 잘 말하면 올 것 같소. “ "선봉이,
작은봉이는 온대두 성가시우. 내가 가서 말해 보려는 것두 삼봉이, 막봉이 두 사
람이오. 그중에도 막봉이 같은 장사를 붙들어 와야 할 텐데 그 자식이 장사를
나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소. " "막봉이가 힘이 장사지만 쇠도리깨 도둑놈을 당
하겠소. " "당하다뿐이겠소. 내가 그 동안 도둑놈의 소문을 알아보았소. 쇠도리깨
도둑놈은 남의 머슴살이하던 톰인데 뚝심깨나 쓴답디다. 막봉이가 지금 나이 이
십이 넘었으니까 힘이 더 낫겠지만 그전 힘만 가지구두 뚝심 좀 있는 놈은 어린
애 다루듯 할 것이오. 그러나 댓가지 도둑놈이 쇠도리깨 도둑놈의 한패라는데
그놈이 던지는 댓가지가 활로 쏘는 화살버덤 더 무섭다니 그것이 좀 걱정이오. "
"포도 군사들도 잡지 못하는 도둑놈을 잡으려면 허술히 해서 안 될 게요. " "
허술히 안 헐라구 속으루 끙끙 앓구 있소. 지금 내 맘에 생각하구 있는 사람이
우선 막봉이 형제니까 막봉이 형제를 가보구 잘 의논하지요. 막봉이가 저 같은
장사 동무가 있어서 같이 오게 되면 댓가지 도둑놈두 어떻게든지 처치할 수 있
을 게요. " "막봉이를 끌어올라면 첫째 우리 아버지에게 말을 잘하시오. " "내가
내 말루 할 뿐 아니라 아주머니 말을 할 테요. " "아무리나 하오. 그래 이번 올
때 우리 동생들과 같이 올 작정이오? ” "그건 가봐야 알지요. 막봉이가 만일 장
사 나갔으면 기다려보구 올테니까 이번 행보는 전보다 좀 더딜는지 모르겠소.
그 동안 아주머니 걔 어머니 데리구 방아품이라두 팔아서 연명하구 지내시우. "
"그건 염려 마오. " 작은 손가가 형수에게 부탁할 말 부탁하고 형수의 부탁받을
말을 받은 뒤에 사기짐을 차려 지고 도붓길을 떠났다. 작은 손가가 사기짐을 지
고 이곳 저곳 들러서 당장에 곡식을 받고 팔기도 하고 또 다음날 받기로 하고
외상을 놓기도 하여 사기 한 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수원 발안이장터에 있는
형의 처가를 찾아왔다. 형의 장인 되른 늙은이가 마침 삽작 밖에 나선 것을 보
고 손가는 멀찍이서 사기 지게를 벗어놓는 중에 늙은이가 앞으로 나오면서 "이
게 누군가, 자네 얼마만인가. 장사 재미 보았나, 자네 형의 식구들 다 무고한가?
“ 하고 연거푸 말을 물어서 손가는 녜녜 대답하며 늙은이 앞에 와서 발 아래
코를 박듯이 절하였다. "오래 소식을 몰라서 궁금하더니 자에 잘 왔네. 어서 들
어가세. " 하고 늙은이가 앞서 돌아선 뒤 손가는 사기 지게를 들고 늙은이의 뒤
를 따라서 들어왔다. 늙은이가 손가와 같이 자기 쓰는 방에 들어와 앉은 뒤 "그
래 그 동안에 별 연고는 없었다지? " 하고 늙은이 묻는 말에 손가가 "연고가 없
지 않았습니다. " 하고 대답하니 "무슨 연고? " 하고 묻는 늙은이 얼굴에 놀라는
빛이 있었다. "월전에 서흥으루 이사를 가다가 청석골서 도둑놈을 만나서 형이
죽을 뻔했습니다. " "도둑놈에게 죽을 뻔했어? 자네 형같이 양순한 사람을 해치
는 도둑놈이 있더란 말인가. 그래 죽을 뻔하다 살긴 살았나? " "녜, 자세한 이야
기는 차차 하겠습니다. " "늙은 사랄이 갑자기 놀랄까 봐 죽은 것을 기이는 것
아닌가. 차차 이야기할 것 무엇 있나? " "아니올시다. 형이 죽었으면 죽었다지
살았다구 할 리가 있습니까. " "그럼 내 딸이 죽었나? " "아니올시다. 아주머니
는 도둑놈 낯바대기두 보지 못했습니다. " "이사 가는 길에 도둑놈을 만났다며?
" "형이 혼자 앞길을 살펴보러 갔다가 도둑놈에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자
세자세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사를 너무 다니면 그런 변두 당해 가지. 송도가
재미 없으면 고향으로나 다시 올 게지, 왜 또 다른 데루 이사를 간단 말인가. 그
렇게 이사를 자주 다녀서야 살림이 되나. " 늙은이의 사설이 더 나오기 전에 손
가가 얼른 "댁에는 아무 연고 없습니까? ” 하고 물었다. "늙은 사람 밥 잘 먹구
어린것들 장난 잘 치구 아무 연고 없지. " "그 동안 큰손자 장가들이셨습니까? "
"제 끝엣삼촌이 아킥 장가를 못 들었는데
제놈이 들 수 있나. " "나이는 장가들 나이 되었겠지요? " "올에 열다섯 살인데
숙성해서 장가들이면 사내 구실 훌륭히 할 겔세. “ "증손 보시기 급하지 않습니
까? " "급한 맘이야 고손주두 얼른 보구 싶지. 내가 백 살까지 살면 고손주 볼
수 있으렷다. " 늙은이가 껄껄 웃고 나서 "그래 송도 가서 천량이나 좀 모았나?
" 하고 물었다. "천량이 어디 그렇게 쉽게 모여집니까? " "모았다구 말해두 달라
지 않네. " "모았으면 형은 고사하구 저라두 달라시기 전에 드리겠습니다. " "좋
은 말일세. " "막봉이 여러 형제가 다 어디 갔습니까? " "막봉이만 장사 나가구
그애 형들은 다 집에 있네. " "막봉이가 언제 장사를 나갔습니까? 언제쯤 온다구
말하구 나갔습니까? " "나갈 제 한 달 말하구 갔으니까 일간 들아을 겔세. " "오
래간만이라 보구 싶구 또 보구 의논할 일이 있는데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만
오지 않으면 낭팬걸요. " "의논할 일이 무슨 일인가? ” "삼봉이, 막봉이 둘에게
의논할 일입니다. " "글쎄 무슨 일이여? 나더러는 말 못할 일인가? " "아니올시
다. 먼저 말씀하구 나서 막봉이 형제에게 의논할 일입 니다. " "대체 그게 무슨
일인가? " 하고 늙은이가 다그쳐서 작은 손가는 서흥으로 이사 가게 된 이야
기부터 쇠도리깨 도적놈 원수 갚으려고 수숙간 상의한 이야기까지 일장 다 말하
고 막봉이가 돌아온 뒤에 삼봉이, 막봉이 형제를 데 리고 가게 하여 달라고 늙
은이에게 청하였다. 늙은이가 손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한참 있다가 "삼봉이는
덜렁군이라 다른 말이 없겠지만 막봉이는 남이 바루 가라면 짓궂이 외루 가는
사람이니까 잘 갈라구 할는지 모르겠네. " 하고 말하였다. "저두 압니다. 더구나
집의 아주머니가 저더러 부탁합디다. " "무어라구 부탁하든가? " 사돈 어른이 안
드시면 막봉이는 안 올 게니 먼저 사돈 어른께 허락을 얻두룩 하라구 부탁을 합
디다. " "내 허락은 어려을 거 없네. " "막봉이 가구 안 가는 것은 사돈 어른께
달렸습니다. " "보아 가며 나두 자네 말을 거들어 줌세. " "그러면 되었습니다.
삼봉이는 어디 갔습니까? " "제 형들은 나무 갔는데 저는 나무두 안 가구 집에
자빠져 있더니 심심해서 어디 놀러간 모양일세. " 손가가 늙은이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해가 저물어서 나무 갔던 선봉이와 작은봉이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놀러았던 삼봉이도 돌아왔다. 손가가 형제들이 쓰는 큰방에 와서 저녁들을 같이
먹은뒤에 삼봉이를 보고 쇠도리깨 도적놈의 원수 갚을 일을 이야기하니 삼봉이
는 대번에 "친형님이나 매형님이나 형님은 마찬가진데 자네가 형님 원수 갚는
것을 우리가 가만히 보구 있으면 의리부동해 못 쓰네. 그러구 우리들이 나서서
그까지 도둑놈의 원수야 못 갚겠나. 걱정 말게. “ 하고 말하면서 팔을 뽐내었
다. "예사 좀도둑놈 같으면 나 혼자라두 어떻게 하지만 쇠도리깨가 유명한 장사
도둑놈인데다가 댓가지 재주 가진 도둑놈이 한패에 있어서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는 까닭에 전위해서 자네 형제들과 의논하러 왔네. " "우리 형님들은 가지두
않을 게구 또 가두 소용이 없을 게니 말할 것 없구 막봉이는 가야 좋을 텐데 그
녀석이 무슨 딴소리나 아니할지 모르지. " "자네 형제만 같이 가두 넉넉하겠지만
도둑놈이 워낙 유명한 놈들이니까 튼튼히 차리자면 막봉이 외에두 몇 사람 더
있는 것이좋지 않겠나. 어디 같이 갈 만한 사람이 또 있겠나 자네 좀 생각해보
게.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 봐두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자네 형제는 장사루
이름이 났으니까 장사 친구들이 더러 있을 터이지. “ "힘꼴 쓰는 사람으루 말하
면 나두 더러 알지만. " "자네 아는 사람 중에 자네 아우만한 장사가 또 있나? "
"내가 힘을 겨뤄본 사람에는 내 아우만한 사람이 없어. 그런데 내 아우가 작년까
지는 적수가 없다구 흰소리를 하더니 올 정월 이 후루는 그 흰소리가 쑥 들어갔
으니. " "그건 어째서? " "정월에 양주를 갔다가 저의 윗수를 만났다네. " "그게
누구야? "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라나 천하 장사라데. " "힘을 겨뤄봤다나? " "
힘두 제법 겨뤄보지 못하구 고패를 뺀 모양이데. " "힘두 겨뤄보지 않구 어떻게
윗수인 줄 알았나? " "내 아우가 장기 둘 줄 아는 것은 자네두 알지. 작년 겨울
에 내아우가 과천으루 소금 지구 나갔다가 어느 집에서 장기 잘 두는 사람을 하
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황 무슨동이라나 임꺽정의 처남 되는 사람이래. 내 아우
가 그 사람과 서루 친분이 생겨서 장기 두 구 놀이 겸 임꺽정이를 만나볼 작정
으루 을 정월 보름께 양주를 갔더라네. 내 아우가 힘 이야기를 자꾸 자아내어두
임꺽정이는 대꾸두 잘하지 않더라네. 그래 내 아우가 힘을 좀 자랑해 보려구 맘
을 먹구 있는 중에 부럼으로 밤 호두를 내왔더래. 그 호두를 한 개 씩 집어서
두 손꾸락으로 눌러 깨었더라네. 임꺽정이가 이것을 보 더니 한번 빙긋이 웃구
호두와 잣을 있는 대루 내오라구 해서 호두, 잣 한 반가지를 앞에 놓구 아우와
같이 호두를 한 개씩 집어서 깨는데 나중에 아우는 손꾸락이 아파서 깨는 것이
처음 같지 못하건만 임꺽정이는 처음이나 조금두 다름없이 빨리 깨드라네.아우
가 와서 혀를 내두르데. " "그런 사람을 하나만 데리구 갔으면 쇠도리깨 도둑놈
은 손꾸락으루 눌러라두 죽이겠네. " "막봉이 오거든 의논해 보게. " 손가는 여
러 날 동안 삼봉이와 같이 놀면서 막봉이 오기를 기다리었다. 선봉이는 남의 밭
마지기를 얻어서 농사짓는 외예 집안에서 살림하고, 작은봉이는 형의 여름일을
거들어 주는 외에 삯 받고 품을 팔고, 삼봉이는 등짐장사하고, 막봉이는 소금장
사하여 사형제가 다 놀지 않고 벌어들이나 식구가 많아서 쓰임쓰임이 과할 뿐
아니라 오부자가 모두 술꾼이라 밥을 굻어도 술은 안 먹고 못견디는 까닭에 지
내는 형편이 항상 구차하였다. 손가가 온 뒤 며칠 동안 에 하루 한번 술대접을
안 받은 날도 없으나, 저녁 한 끼 죽을 안 먹은 날도 없었다. 손가가 내처 묵기
미안하여 남은 사기를 마저 팔고 가는 길에 다시 올까 하고 떠나려고 생각하던
차에 막봉이가 마침 돌아왔다. 막봉이는 엄장과 몸집
이 선봉이, 작은봉이보다 배나 크고 등근 눈과 가로 찢어진 입이 삼봉이와도 달
라서 사형제 중에 가장 거물스러웠다. 나이는 불과 스물하나밖에 안 되었건만
삼십 가까운 손가와 연 상약해 보이었다. 삼사 년 만에 만나는 손가가 막봉이의
더 노창한 것을 보고 인삿말 끝에 "인제 아주 노총각이 되었네그려. " 하고 말하
니 막봉이는 씽긋 웃는 웃음으로 말대답을 대신하였다. 손가가 온 까닭을 대강
아비에게 듣고 알았건만 막봉이는 손가를 보고 "어째 왔소? " 하고 물었다. "내
가 못 올 데 왔나? " "어기대지 말구 말하우. " "자네 보러 왔네. " "무슨 일루
날 보러 왔소. 혼인 중신해 줄 데 있소? ” "노총각이 장가들기가 급한가베그려.
" "장가가 급하기버덤 아들이 늦었소. " "자네가 실없는 말을 다 할 줄 아니 제
법일세. " "대체 무슨 일루 날 기다렸소? " "이따 밤에 이야기함세. " "밤에 할
이야기 낮에 못할 거 무어 있소. 지금 이야기하우. “ 막봉이의 말을 어기기 어
려워서 손가가 쇠도리깨 도적놈의 원수갚을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막봉이
는 이야기를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고 "자네 한번 나서 주게. "하고 청하는 손가
말에 "나는 싫소. "하고 고개를 외치더니 손가가 갖은 말을 다하고 삼봉이가 손
가 말을 거들어도 막봉이는 한결같이 고개를 외칠 뿐이었다. 손가가 막 봉이 형
제들과 큰방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늙은이의 기침소리가 방 밖에서 났다.
손가는 짐짓 큰소리로 "내 일두 아니구 우리 형님 일인데 자네가 이렇게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 하고 책망하듯 말하여 막봉이가 "뉘 일이구 내가 싫은 거야 어
떻게 하우. " 하고 대답할 대 늙은이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이애 막봉아,
매형의 원수는 갚아주기 싫드래두 매형을 한번 가보구나 오려무나. " 하고 말을
일렀다. "이담 가보지요. " "손서방하구 같이 가지 이담 갈 것 무엇 있니. " "안
성 소금 갖다 줄 데가 있어 손서방하구 같이 못 가요. " 막봉이가 늙은 아비의
말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손가는 "자네가 정 싫다면 할 수 없지. " 하고 쓴입맛
을 쩍쩍 다시다가 "자네 싫다구 고집하는 것이 무슨 까닭인가? " 하고 물으니
막봉이는 "까닭은 알아 무어하우? 싫으니까 싫다지. "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였
다. "까닭이나 좀 알면 좋겠네. " "맘이 쏠리지 않는 것을 억지루 어떻게 하우. "
"어째서 맘이 쏠리지 않나? " "성가시게 고지고지 캐어묻지 마우. " "쇠도리깨
도적놈이 호락오락하지 않은데다가 더구나 댓가지 재주 가진 도적놈이 붙어 있
다구 하니까 주니가 나서 그러나? ”막봉이가 손가의 말을 듣고 등근 눈을 더
둥그렇게 뜨고 "주니, 주니? " 하고 뇌더니 “나더러 도둑놈이 무서워서 못 간단
말 아니오? ” 하고 손가의 앞으로 대들다가 다시 물러앉으며 밖에 섰는 아비를
바라보고 "매형두 보구 도둑놈들두 보러 내가 가겠소. " 하고 말하였다.
막봉이가 같이 가기로 작정된 뒤에 손가는 양주 임꺽정이를 청해서 같이 가도
록 하자고 말하고 싶으나 막봉이의 비위가 틀리어 딴소리가 나올까 겁이 나서
넌지시 늙은이를 보고 이 뜻을 말하였 다. 늙은이가 일부러 아들 방에 와서 처
음에 막봉이에게 "도둑놈 잡으러 몇 사람이 가기루 작정했느냐? " 하고 물으니
막봉이는 "나 혼자 갔으면 제일 좋겠는데 셋째형이 같이 간다니까 형제 가지요.
" 대답힌며 아비를 바라보고 늙은이가 다음에 삼봉이에게 "너의 형제만 가서 도
둑놈을 꼭 잡을 수 있겠느냐? " 하고 물으니 삼봉이는 "가봐야 알지요. " 대답하
며 막봉이를 돌아보았다. 늙은이가 나중에 삼봉이, 막봉이 형제를 번갈아 보면서
"너희 매형의 일이 아니구 또 손서방의 간청이 아니면 내가 너희 형제를 가지
못하게 말렸을게다. 지금 가지 말라구 말리지 않는 대신에 너희에게 부탁할 일
이 있다. 너희 형제 외에 같이 갈 만 한 사람이 있거든 같이 가두룩 해라. " 하
고 말하니 삼봉이는 막봉이 오기 전부터 손가와 공론한 일이 있는 터이라 선뜻
"어디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있어야 같이 가지요. " 하고 대답하며 빙글빙글 웃었
다. "양주에 천하 장사가 있다지 않았니? 그런 장사하구 같이 가면든든하지야. "
"양주 임꺽정이 말입니까? 그 사람을 막봉이는 알지만 막봉이가 말해서 갈는지
모르지요. " "갈 때 양주를 들러서 같이 가자구 말해 보려무나. " 이때까지 잠자
코 있던 막봉이가 홀저에 입을 열어서 "임꺽정이은 고만두구 다른 사람하구라두
같이 가라면 나는 안 가겠소. " 말하고 아비와 형을 둘러보았다. "네가 남의 조
력을 받지 않구 도둑놈을 잡으면 네 직성은 풀릴 는지 모르나 그 동안 늙은 아
비의 조심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느냐? " "안 가면 고만이지요. " "간다구 말하
구 안갈 수 있니? " "다른 사람하구는 같이 갈 수 없소. " 막봉이의 고집을 늙은
이도 꺾기 어려워서 더 말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막봉이 형제만 작은 손가와 같
이 송도로 직행하게 되었다.
막봉이가 송도 와서 매부의 등신 된 꼴을 보고 또 누님의 고생하는 하소연을
듣고서는 작은 손가의 말에 분나서 올 때와 달라서 쇠도리깨 도적놈을 미워하는
생각이 없지 않은 중에 죄없는 어린 애를 악착스럽게 죽인다는 것이 종작없는
풍설만이 아닌 줄 알고는 쇠도리깨 도적놈을 기어이 잡아서 버릇을 가르치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막봉이 형제가 작은 손가와 공론하고 도적 잡으러 갈 준 비를
차리었다. 채롱 세 짝과 농삼장 세 벌을 빌기도 하고 사기도 하여 거짓짐을 만
드는데 짊어진 것이 가볍게 보이지 않도록 돌과 흙을 채롱에 담고 누가 보든지
물건짐으로 보이도록 농삼장을 겉에 쌌다. 거짓짐이 다 된 뒤에 연장 가지고 갈
공론이 났다. 칼을 좋아하는 삼봉이가 먼저 "칼이라두 한 자루 가지구 가야 하지
않나? " 하고 말을 내니 작은 손가가 "우리 집에는 식칼밖에 없구 칼을 어디 가
서 얻나. " 하고 고개를 비틀었다. " 식칼을 무엇에 쓰나. " "도끼를 갈아가지구
가면 어떻겠나? " "나무 패러 가나, 도끼를 가지구 가게. " "그럼 어떻게 하나? "
"글쎄, 맨주먹만 가지구 가잔 말두 안 되구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 ”여게 막
봉이 어떻게 할까? " “무얼 어떻게 해? " "아니 연장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는 말이야. " 없으면 못 가지구 가는 게지 어떻게 하기는 무얼 어떻게 하우? " "
연장이 없이 가서 위태하지 않을까? " "연장이 쓸데 있으면 도둑놈의 연장 빼앗
아 쓰지 걱정이오. " 손가는 고사하고 삼봉이까지 막봉이의 횐소리를 꼭 믿지 아
니하나 없으니 할 길 없어 연장은 못 가지고 가게 되었다. 금교역말 장날 도적
이 잘 나는 까닭에 장날을 기다려서 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짓짐을 한 짝씩
짊어지고 청석골로 나가는데 큰 손가의 안해는 시동생보다도 동생들 까닭에 걱
정하고 작은 손가의 안해는 남편 때문에 근심하나 등신 같은 큰 손가는 어린 아
들과 같이 시름 없이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막봉이 형제가 손가를 앞세우고
청석골로 오는 길에 "오늘 허행이나 아닐까? " "요담 장날 오지 걱정인가. " "
요담 장날 또 허행하면. " "담담 장날 또 오지. " "한 달 육장 청석골만 나오다
말게. " 삼봉이와 손가가 서로 지껄이는 말을 맨 뒤떼 오는 막봉이가 듣고 "당치
않은 소리 하지 마우. 그 동안 사람이 갑갑증이 나서 죽으라구. ” 하고 타박을
주었다. "그럼 어떻게 할 텐가? " 하고 손가가 뒤를 돌아보니 막봉이가 앞으로
나오면서 "그놈들의 소굴을 탐지해서 쫓아들어갈 생각을 하지 누가 한없이 나오
기만 기다리구 있겠소. " 하고 말하였다. "소굴을 탐지해서 알드래두 경선히 쫓
아뜰어가긴 어렵지 않아? " 하고 손가는 삼봉이를 보고 말하는데 "그런 걸 어렴
게 생각할 테면 애당초에 원수 갚을 맘을 먹지 말지 어렵긴 무에 어렵담. " 하고
막봉이는 손가를 몰아세웠다. 중간에 끼인 삼봉이가 "그건 가보구 나서 의논할
일이야. 고만두구 어서 가세. " 하고 앞에 섰는 손가를 재촉하고 자기도 걸음을
부지런히 떼어 놓으니 참봉이 옆에 나섰던 막봉이가 다시 뒤에 떨어져서 전과
같이 맨 뒤에 따라갔다.
일행 세 사람이 골 어귀 가까이 왔을 때 마주 오는 장꾼 하나를 만났다. 손가
가 "벌써 장이 파했소? " 하고 물으니 그 장꾼이 "아니오. " 하고 한마디 대답한
뒤에는 다시 말을 묻지 말라는 듯이 외면하고 세 사람 옆을 지나서 가며 흘낏홀
낏 뒤를 돌아보다가 남쪽 새래동 길을 들어가다 말고 돌쳐서서 여보 여보 하고
불렀다. 세 사람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중에 맨 뒤에 있는 막봉이가
자연 말을 묻게 되었다. "왜 그러오? " "댁들 어디루 가우? " “그건 왜 묻소? "
"탑고개에 곽오주 나섰습디다. 맨몸 같으면 모르지만 물건짐 지구는 갈 생각 마
우. " "곽오주가 누구요? " "곽오주 성명을 모르는 것 보니까 난데서 오는 이가
분명하오. 이 앞 탑고개에 쇠도리깨 가진 무서운 도둑놈이 나섰습디다. 쇠도리깨
도둑놈 곽오주라면 이 근방에서는 뜨르르하우. " 하고 장꾼이 말을 그치자마자
삼봉이가 나서서 "쇠도리깨 도둑놈이 나선 것을 지금 보구 오는 길이오? " 하고
묻고 손가는 그 뒤를 이어서 "참말 나섰습디까, 거짓말 아니오? " 하고 다져 물
으니 "거짓말이오? 내가 거짓말할 까닭이 있소. 곽오주는 나더러 오는 행인에게
말 말라구 합디다. 그래서 내가 말 안 하구 가려다 댁들의 물건 빼앗길 일이 딱
해서 일껀 말해 주는데 거짓말이라니 거짓말루 생각하거든 가보구려. " 하고 그
장꾼이 불쾌스럽게 말하였다. 손가가 "미안하우. " 하고 사과한 뒤에 "쇠도리깨
도둑놈이 혼자 나왔습디까? " 하고 다시 물으니 그 장꾼은 "오가란 늙은 도둑놈
하구 둘이 나왔습디다. " 하고 대답하였다. "댓가지 도둑놈은 나오지 않았습디
까? ”"댓가지 도둑놈을 아는 것 보니 청석골 도둑놈의 선성은 들었구려. 댓가지
도둑놈은 보이지 않습디다. " 손가가 장꾼에게 말을 더 묻지 않고 삼봉이와 막봉
이를 보고 "되었네 되었어. " 하고 허허 웃었다. "얼른 갑시다. " "어서 가세. " "
가세 가세. “ 세 사람이 서로 재촉하며 부리나케 걸어가니 그 장꾼은 세 사람
이 다 정신들이 온전치 않거니 생각하여 "멀정한 미친 사람들이로군. " 하고 혼
자 중얼거리었다. 손가가 장꾼에게서 쇠도리깨 도적의 소식을 듣기 전에는 은근
히 걱정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쇠도리깨 도적을 못 만나게 되면 막봉이가
적굴을 찾아가자고 고집을 세을 터이니 이것이 한 걱정 이요, 쇠도리깨 도적을
만나더라도 댓가지 재주 가진 도적과 함께 만나게 되면 막봉이 형제의 원력만
가지고 원수를 같게 될는지 모르니 이것이 또한 걱정이라 손가는 속으로 걱정하
느라고 걸음까지 느릿느릿 걸었는데 장꾼의 전하는 소식을 들으며부터 이 걱정
저 걱정이 봄눈같이 사라져서 속모르는 장꾼이 미친 사람으로 볼 만큼 싱글벙글
좋아하고 걸음도 선뜻선뜻 내디디었다. 얼마 동안 아니 가서 탑고개 밑에 다다
랐다. 손가가 걸음을 멈추고 "인제 고개에 다 왔으니 어떻게 할 것을 여기 앉아
공론 좀 하세. " 하고 막봉이 형제를 돌아보니 삼봉이는 대번에 "그렇게 하세. "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막동이가 고개를 외치면서 "지금 의논할 것 무어 있소.
내가 앞장설께 따라들만 오시우. " 하고 곧 손가 앞으로 나서서 주적주적 걸어갔
다. 삼봉이가 어이없어 하는 손가를 돌아보며 한번 웃고 겅중겅중 막봉이 뒤를
쫓아가니 손가는 하릴없이 그대로 삼봉이 뒤를 따라갔다. 막봉이 뒤에 삼봉이,
삼봉이 뒤에 손가 셋이 줄느런히 서서 고냇마루까지 거의다 왔을 때 쇠도리깨
가진 젊은 도적이 늙은 도적과 같이 언덕 위에 나서서 내려다보며 "이놈들 게
섰거라! " 하고 호통을 질렀다. 막봉이가 걸음을 멈추고서 삼봉이와 손가를 돌아
보며 도적놈이 쫓아내려오도록 도망질치는 시늉을 내자고 수군수군 말하여 세
사람이 일시에 돌쳐서서 오던 길로 달아나는데 짐들시 무거워서 가쁜 모양으로
일부러 허덕허덕하였다. "이놈들 도리깨 맞구 뒤어지구 싶으냐! " "목숨은 살려
줄 테니 진작 짐짝들 벗어놔라! " 도적의 뒤쫓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우르르 들
리니 세 사람은 모두 허둥지둥하는 체하였다. "이놈 죽어봐라. " 도적이 맨 뒤에
가는 막봉이를 노리고 쇠도리깨를 둘러멜 때 막봉이가 별안간 돌쳐서려 머리 위
에 떨어지는 쇠도리깨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이놈 봐라! " 도적이 도리깨를 확
잡아채었다. 예사 장정만 같아도 도리깨를 놓치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졌을 것
인데 막봉이는 끄떡 아니하고 꿋꿋이 서 있었다. "힘꼴이나 쓰는 모양이다. " "
주제넘은 놈 같으니. " "네가 안 놓구 배길 테냐! " "안 놓을 테니 어쩔 테냐? "
막봉이와 도적이 서고 쇠도리깨를 빼앗으려고 잡아당기기 시작 할 때 삼봉이와
손가가 짐들을 벗어버리고 대어들어서 막봉이를 거들어 주려고 하니 막봉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이놈은 내게 맡기구 늙은 놈이나 가서 잡우. " 막봉이의
말끝에 삼봉이와 손가가 산 밑에 내려와 섰
는 늙은 도적에게로 쫓아가니 늙은 도적은 물계가 좋지 못한 것을 쏘고 다시 언
덕 위로 올라가서 쫓아올라오지 못하도록 물박 같은 돌덩이를 내려굴렸다. 삼봉
이가 큰 돌덩이들을 집어서 언덕 위로 던지는데 조약돌로 팔매치듯 하여 늙은
도적 섰는 앞에까지 가서 떨어졌다. 늙은 도적이 돌도 내려굴리지 못하고 숨는
것을 보고 삼봉이가 손 가와 같이 아우성을 치며 쫓아올라가니 늙은 도적은 공
줄이 빠지 게 도망질을 쳤다. 삼봉이와 손가가 늙은 도적의 뒤를 얼마 쫓다가
말고 돌아와서 본즉 막봉이는 아직도 젊은 도적과 쇠도리깨로 줄을 당기는 중이
었다. 삼봉이가 가만가만 도적의 뒤에 가서 "이놈! " 하고 소리를 질러서 도적이
움찔하는 틈에 막봉이가 쇠도리깨를 빼앗아서 벼락같이 도적을 내려쳤다. 막봉
이의 내려치는 도리깨에 도적이 머리를 맞았으면 해골이 부서져서 더 맞을 나위
없이 요정이 났을 것이고 어깨를 맞았으면 죽지배가 으스러져서 적어도 팔병신
이 되었을 것이지만 도적이 마치 맞게 가로뛰어 피하여 도리깨가 허공을 내려치
고 떨어졌다. 삼봉이와 손가는 도적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뒤를 막아싸고 막봉이
는 다시 도리깨를 꼬나잡고 앞으로 대어들었다. 도적이 막봉이를 향하여 손을
내저으면서 "내 말 잠깐 듣구 나서 덤벼라. ” 하고 씩씩하며 말하니 "무슨 말이
냐 말해라. " 하고 막봉이가 발을 멈추었다. "오늘은 고만두고 내일 모레 이맘때
여기서 다시 만나서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번 해보자. 쇠도리깨는 그 동안 네
가 맡아라. " "내가 고만두기 싫은데 네 말 듣구 고만두랴? 해볼 맘이 있거든 시
방 해보자. " "보아하니 너두 사내자식이 시방 해보자구 말하기 부끄럽지 않느
냐. 너희가 셋이니까 나두 내일 모레 셋이 와서 해볼 텐데 그래 너희 셋이 나
하나하구 시방 해보잔 말이냐! 예끼순 뻔뻔한 자식 같으니. " "다른 사람은 얼씬
못하게 하구 나하구 너하구 단둘이 해보자. 이까지 놈의 도리깨 다 소용없다. 내
가 맨주먹으루 네놈을 때려 눕히지 못하면 성이 길가가 아니다. " 막봉이가 도리
깨를 내던지고 곧 삼봉이를 바라보면서 "형님은 손서방하구 저리 가서 구경만
하우. 아예 호성두 지를 생각 마우. " 하고 말하였다. "오냐 그래라. 등에 진 짐
이나 벗어놓구 해봐라. " "암, 짐은 벗어놓지요. " 막봉이는 형의 말을 듣고 그제
야 짐을 벗어버리었다. "더 할 말은 없겠지? " "그럴 것 없이 우리 씨름을 해보
자. " "이놈아 씨름은 다 무어냐? 너 같은 무도한 도둑놈은 주먹으루 때려죽일
테다. " "나하구 무슨 원수졌니? “ "네 도리깨에 병신 된 매형의 원수두 갚아야
겠지만 그버덤두 네 손에 죽은 어린애들 원수를 갚아줄테다. 이놈아 대체 어린
애는 왜 죽이니? " 막봉이가 말을 그치고 바로 도적메게 대어들어서 싸움이 시
작되었다. 이 동안에 삼봉이와 손가는 짐짝들과 쇠도리깨를 한옆에 치 워놓고서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였다. 황소 같은 사람 둘이 서로 달라붙어서 후닥닥거
리고 싸우니 싸움이 황소 싸움보다 더 무서 웠다. 주먹과 발길이 왔다갔다 하는
중에 막봉이는 도적의 상태기를 움켜쥐어 앞으로 끄숙이고 한두먹으로 등줄기를
우리는데 도적은 두 주먹으로 막봉이의 양편 갈비를 쥐어질렀다. 막봉이가 상태
기 쥔 손을 놓으며 곧 등줄기 우리던 주먹으로 도적의 복장을 되 게 내질러서
도적은 잠깐 비슬거리다가 마침내 뒤로 나가자빠졌다. 막봉이가 바로 도적의 복
장을 밟고 서서 ”이놈!“ 하고 내려다보니 도적은 눈을 스르르 감고 치어다노
지 아니하였다. 막봉이가 삼봉이와 손가를 손짓하여 불러온 뒤 "형님 원수를 어
떻게 갚을 테요. 맘대로 갚아보우. " 하고 도적을 손가에게 내맡기니 손가는 얼
른 가서 쇠도리깨를 들고 왔다. 그러나 쇠도리깨가 너무 무거워서 손가는 둘러
메려다가 못 둘러메고 지팡이삼아 짚고 서서 도적의 머리와 얼굴을 발로 짓밟았
다.
도적이 자빠질 때 일시 정신을 잃었더라도 내내 잡아잡수 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까닭이 없다. 도적이 일어나려고 허위적거리는 것을 삼봉이가 눌러서 꼼짝
못하게 하고 손가는 이를 악물고 쇠도리깨로 도적의 몸을 함부로 짓찧었다. 도
적은 머리가 깨지고 살이 터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도적이 사지 펴는
것을 삼봉이가 보고 "그러다가 아주 죽이겠소. " 하고 손가의 손을 붙잡았다. "
죽이면 어떤가? " "죽이면 어떻다니 여보 고만두우. " "자네 살인죄 당할까봐 걱
정인가. 화적을 등시타살한 것은 살인이 없다네. " 하고 가르쳐 주는 말본으로
말하니 막봉이는 증을 벌컥 내며 "고만두라거든 잔소리 말구 고만두어요! " 하고
손가가 쥔 쇠도리깨를 빼앗아 내던졌다.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할 셈인가. " "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이오. 고만 내버려두구 가지. " "그래 이 흉악한 도둑놈을
뱀 설죽이듯 하구 가잔 말인가? “ "그만하면 원수두 갚구 버룻두 가르쳤지. 아
주 죽일 맛이 무어요. " "자네가 오늘 식전까지두 무도한 도둑놈은 잡아 없애야
한다구 말하지 않았나. 홀저에 맘이 변한 걸세그려. " "맘이 변했소. 변했으니 어
떻단 말이오. "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삼봉이가 나서서 "이애 그럴 것 없이 도둑
놈을 묶어서 송도루 끌구 가자. " 하고 말하니 막봉이가 "송도 가서 어떻게 할라
우? " 하고 물었다. "금도군관인지 포도군관인지 도둑놈두 못 잡구 나라 요만 처
먹는 놈들을 갖다주어 보자. " "그러면 우리 상급 줄 것 같소? " "상급은 못 먹
더라두 우리 이름은 나지 않겠니? " 삼봉이의 말에 막봉이가 딴소리를 아니하고
또 손가도 좋다고 말하여 도적을 끌고 가기로 작정되었다. 세 사람은 거짓짐들
을 풀 어서 흙과 돌을 떨어버리고 채롱과 농삼장만 모아서 걸머지게 만들고 다
죽어가던 도적을 잡아 일으켜 앉히고 짐 동였던 밧줄로 뒷결박을 지웠다.
늙은 도적 오가는 한동안 정신없이 도망하다가 뒤에 쫓는 사람 이 없는 것을
보고 살금살금 돌아와서 언덕 위에 숨어 앉아서 삐끔삐끔 내다보며 세 사람의
의논하는 말을 한마디도 빼지 않고 들으려고 손을 쪽박같이 오그려서 귓바퀴에
대고 있었다. 아주 죽이 지 말잔 말과 내버리고 가잔 말에 눈살을 조금 펴다가
송도로 끌고 간단 말에 상을 다시 찌푸렸다. 곽오주가 송도로 끌려파면 필경 죽
게 될 것이라 끌려가기 전에 구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까. 늙
은 오가는 고개를 숙이고 죄를 생각하였다. 쫓아내려가서 아주 죽이지 말자던
사람을 붙들고 이왕이니 아주 살려달라고 빌어볼까. 오가는 곧 쫓아내려갈 것같
이 벌떡 일어섰다가 자기마저 묶어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나. 오가는 다시 주저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박서방이 있었으면 이런 변이 나지두 않구 나더라도 도
리가 있으련만 부전부전하게 양주를 왜 갔노. 가더라도 속히 올 것이지 간 제가
벌써 며칠이야. 왜 이렇게 오래 아니 온담. " 늙은 오가는 혼잣말로 지껄이고 하
늘을 치어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주가 묶여가는 꼴을 보고 있느니 집에 가서
집안 식구들과 같이 울기나 하겠다 생각하고 오가는 숨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는 일어났으나 발길이 차마 돌아서지 아니하여 한참 머뭇거리다 가 흘저에 길
아래를 향하고 섰다. "오주, 자네는 인제 영결일세. 자네 죽은 뒤에 박서방과 내
가 자네 원수를 갚아줌세. 우리 둘이 세 놈을 당할 수 없으면 임꺽정이 에게 조
력을 청하겠네. 어떻게든지 세 놈의 온 집안을 도륙내서 자네 원수를 갚아줌세.
" 오가가 염불하듯 중얼거린 뒤에 돌아서서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중간에서 갑자
기 길을 변하여 탑고개 밑에 있는 탑고개 동네로 내려갔다.
탑고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도적의 그늘에서 사는 까닭에 도적을 무이지 못
하였다. 이것은 탑고개 아래 있는 탑고개 동네뿐이 아니요, 잡고개 아래 있는 양
짓말이든지 탐고개 넘어 있는 게정골이든지 다 매일반이나 탑고개 동네는 도적
의 벌이자리 턱밑이니만큼 도적들과 교분 있는 사람이 다른 동네보다도 많았다.
청석골 붙박이도적 오가가 혼자서 구메도적질할 때에는 식전 나와서 저녁 때 들
어가려면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었는데 댓가지 도적이란 박유복이가 오고 쇠도리
깨 도적이란 곽오주가 와서 기세 있게 도적질 하게 된 뒤로 시장하면 동네에 들
어가서 술이나 밥을 달래서 먹었다. 동네 사람은 술이나 밥을 제공하는 대신 여
러 가지로 덕을 보는 까닭에 도적이 오는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말
하자면 청석골 여러 동네 사람은 대개 포도 군사 앞에 양민 노릇하고 도적 괴수
앞에 졸개 노릇하는 두길보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늙은 도적 오가가 산속으로 들
어가다 말고 탑고개 동네로 내려온 것은 식구를 보러 가지 않고 졸개를 찾아온
셈이다. 오가가 동네 와서 어느 집에 들어앉으며 곧 동네의 말주변이나 하는 사
람 서너 명을 불러다가 앞에 앉히고 곽오주의 봉변한 일을 대강 이야기한 뒤 "
지금 박서방두 집에 없구 나 혼자서는 구해낼 도리가 망연한데 자네들의 힘을
빌면 될 수 있는 꾀가 한 가지가 있으니 자네들이 힘 좀 써주게. " 하고 여러 사
람을 돌아보니 "될 수 있는 일이면 하다뿐이오. " 도적에게 긴하게 보이려는 사
람도 있고 "뒤에 탈이나 나지 않을 일인가요 ?" 미리 뒷일부터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의 가장 똑똑한 사람이 “우선 꾀를 말씀하시우. 어디 들어봅시다. "
하고 오가의 꾀를 듣고자 하였다. 이령게 이렇게 할 일이라고 오가가 자기의 생
각한 꾀를 말하고 나서 "자네들만 일없이 하면 뒤탈은 날 까닭이 없지 않은가?
" 하고 뒷걱정하던 사람을 바라보니 "이틀 밤이나 붙잡아 묵히자면 진창 먹여야
할 텐데 우선 우리 동네에 좋은 술두 없는걸요. " 하고 으 사람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술은 걱정 말게. 우리 집 술두 내오구 또 모자라면 탑거리나 금교역말
에 가서 사오지 걱정인가. ” 오가의 말끝에 긴하게 보이려는 사람은 "우리가
수단을 한번 내보세. " 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똑똑한 사람은 "일이 잘되면
상급들을 후히 주실 테지요? " 하고 오가를 바라보며 웃었다. "여부가 있나. 일
만 되게 하게. " 오가의 말에 뒷걱정하던 사람까지 직수굿하여졌다. 오가가 불러
온 사람들을 돌려보낸 뒤에 그 집주인 젊은 사람을 불러서 양주를 갔다오라고
일렀다. "오늘 밤에 임진나루까지 가서 강이 만일 풀렸으면 내일 식전 첫배 타구
건너는 게지만 아직은 강이 안 풀렸을 게니 등빙해서 내처 밤길루 가면 내일 점
심 전에 양주를 플어갈테구 곧 되짚어 떠나서 밤길을 걸어오면 늦어두 모레 아
침때는 돌아을 수 있을 것 일세. " "글쎄요, 일백 육칠십 리 길을 두 밤 하루
낮에 도다녀올 수 있을까요. " "곽오주의 목숨이 자네 걸음에 달렸네. 자네가 일
을 그르치면 나는 오히려두 용서할 테지만 박서방이 곧 자네를 죽이려구 할 것
일세. " "그럼 다른 사람 보내시지요. " "자네밖에 보낼 사람이 없어. 자네가 잘
만 갔다오면 자네는 오주에게뿐 아니라 곧 우리에게 큰 은인이니까 두구두구 잊
지 않음세. 시각이 바쁘니 지금 곧 떠날 차림을 차리게. 모레 아침때 늦어두 모
레 점심때는 박서방이 여기를 대어와야 하네. " "정 가라시면 할 수 있세요. 갔
다오지요. 박서방 가 있는 집이 찾기나 쉬울까요? " "양주읍내 가서 임꺽정이 집
은 두 번두 묻지 않구 찾아갈 수 있을 게니 걱정 말게. 그러구 임꺽정이 처남을
앞서 보내달라구 내가 말하더라구 박서방보구 말하게. " 젊은 사람은 이른 저녁
밥을 든든히 먹고 양주길을 떠나갔다. 양주 가는 사람이 떠나기 전에 동네 사람
대여섯이 큰길로 나갔다. 세 사람이 고개에서 내려와서 송도길로 가는데 앞선
총각은 결박지운 곽오주를 압령하고 중간에 든 사람은 쇠도리깨를 어깨에 엇메
고 뒤따르는 사람은 채롱짝을 걸머졌다. 동네 사람들이 쫓아 가서 서로 만나 걸
음들을 멈춘 뒤에 동네 사람 하나가 앞선 총각을 보고 말을 붙이는데 총각이라
고 말을 낮춰 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쇠도리깨 도둑놈 아니오? " "그렇소. " "이
도둑놈이 잡혔으니 인제는 우리가 살았소. 우리는 이 안동네 탑고개에 사는 사
람들인데 도둑놈 때문에 밤잠을 편히 못 잤소. " "그랬겠지. " "장사들이 어디서
오셨소? " "수원서 왔소. " "세 분이 다 수원 사시오? " "저 뒤에 있는 이는 송
도 사우. " "옳지, 한 양반은 가까이 사시는군. " 다른 사람 하나가 나서서 말을
물었다. "그래 이 무서운 도둑놈을 어떻게 잡으셨소? “ "주먹으루 때려잡았소.
" "참말 천하 장사시오. 그래 이 도둑놈을
수원으로 끌고 가실 테요? ” "아니요, 송도루 끌구 가우. " 또 다른 사람 하나
가 나서서 말하였다. “송도 들어가시자면 늦을 테니 우리 동네서 묵어가시우. "
"공연한 폐를 끼치느니 좀 늦더라두 가겠소. " "폐라니 천만의 말씀이오. 말하라
면 세 분은 우리 동네 은인이신데 하루 이틀은 고사하구 일년 이태라두 묵어가
시우. " "당치 않은 말씀이오. "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우리가 안 뵈었
으면 모를까 뵙구야 그대루 가시게 할 수 있소. " "보잘것없는 가난한 동네에 천
하 장사 세 분을 뫼셔가기가 황송한 일이나 우리들의 정성을 살펴서 같이 갑시
다. " "꼭 오늘 송도를 가셔야 한다면 우리가 홰라두 잡혀 드리겠지만 그럴 것
없이 우리 동네 와서 묵어가시우. " "날세가 늦지 않았더라두 동네 앞을 그대루
지나가시게 하면 우리의 도리가 아니오. "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말하
였다. 총각이 중간 사람을 보고 "형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 하고 묻고 또
뒤의 사람을 보고 "손서방 어떻게 할라우? " 하고 물었다. "여러분의 정을 막을
수 있나. 가서 하룻밤 폐를 끼치자. " "이왕 늦었으니 묵어가두 좋겠네. " 삼봉이
와 손서방이 각각 대답한 뒤 막봉이가 동네 사람들을 보고 "그럼 같이 갑시다. "
하고 말하여 동네 사람들이 세 사람을 동네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동네 안 그
중 큰 집, 그 집안 그중 큰 방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았는데 상좌에 앉은 세
사람은 손님이요, 그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동안에 날이 어두워서 마
당에는 화톳불을 질러놓고 방에는 등잔불을 당겨놓았다. 화톳불은 밝으나 등잔
불은 희미하였다. 아이 어른 여편네 사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장사 와
도적을 구경하려고 마당에 가득히 둘러섰는데 밝은 마당에서 어두운 방안에 있
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아니하여 장사의 얼굴을 잘 보여지라고 떠들어서 처음에
총각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고 그 다음에 총각의 형이 방문 앞에 나서서 이편 저
편 향하고 허리를 굽신거리다가 들어오고 나중에 손가가 잠깐 봉당 위에 나섰다
가 도로 들어왔다. 마당에 섰는 사람들이 장사를 구경한 뒤에는 도적이 있는 곳
을 찾았다. 도적은 윗간 한구썩에 묶인 채 누워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삐끔삐끔
들여다보는 틈에 늙은 오가가 섞여 가서 일부러 큰 소리로 "쇠도리깨 도둑놈아,
곽오주야. " 하고 부르고 간신히 눈을 뜨고 바라보는 오주에게 안심하라는 뜻으
로 눈을 끔적거리었다. 이날 저녁때 탑거리 주막에는 탑고개로 나갈 장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여러 장꾼 중에 가장 먼저 온 장꾼 하나는 탑고개 마루 까지
올라오다가 쇠도리깨 가진 사람이 자빠진 사람 짓찧는 것을 바라보고 쇠도리깨
도적이 행인을 죽이는 줄로 알고 무서운 바람에 가까이 가볼 생각도 못하고 탑
거리로 돌아온 사람인데, 이 사람이 탑고개로 나가는 다른 장꾼들을 보고 허풍
을 떨어서 모두 나가지들 못하고 탑거리 주막에 모여 있게 된 것이었다. "쇠도리
깨 도둑놈이 미친증이 났는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것 없이 만나는 족족 죽
인다네. " "전에 없던 일인데 그럴 리가 있을라구. " "그렇기에 미친증이 났는가
부다 말이지. " "곽오주가 본래 실성한 사람이니. " "그 사람이 개래동 정첨지 집
에 있다가 미쳐서 쫓겨났답디다. " "아니 그런 것은 아니오. 내가 잘 아는데 잠
깐 미쳤다가 낫습네다. " "아니오. 여보, 지금두 미친증이 남아 있어 어린애 우는
소리만들으면 당장에 다시 미친다우. " "그래서 어린애를 죽이거든. " "오늘 어
린애 우는 소리를 들은 게지. " "어린애 우는 소리를 듣구 어린애나 죽인다면 모
르지만 어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함부루 죽일까. " "아주 미쳤는지 모르지. "
"그래두 곧이가 잘 안 들리는데. " "곧이 안 들리거든 가보구려. " "이 사람아,
미친 사람의 맘을 성한 사람이 어떻게 요량하나. " "너더댓 사람 때려눕힌 것을
보구 온 사람이 저기 있소. " "여보, 곽오주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보구 왔소? " "
송장이 늘비하게 누운 것을 보구 나는 혼이 났소. " "댁은 어떻게 죽지 않구 살
아왔소? " "그렇기에 혼이 났소. 내가 빨리 도망질 안 쳤더면 쇠도리깨 맞구 벌
써 염라대왕을 보러 갔을 게요. " "우리들이 떼를 지어 가면 어떠할까? " "예사
사람두 미치면 무서운데 곽오주 같은 장사가 미쳤으면 떼지어 가두 소용 없네.
잘못하다 깡그리 맞아죽을는지 모르지. " "그럼 어느 때까지 여기서 이렇게 하구
있단 말인가. " "해 져서 땅거미 된 뒤에 고개를 넘어가자구 아까 몇 사람이 공
론했네. " "집안 식구들이 기다리겠는걸. " "잠깐 기다리는 것이 아주 못 보느니
버덤 더 위 아닌가. " "그거야 말할 것두 없는 일이지. " 여러 장꾼 중에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서로 뒤섞여서 중구 난방으로 지껄이며 해져서 어둡기를
기다리고들 있었다.
땅거미 된 뒤에 여러 장꾼이 한데 몰려서 탑고개를 넘어오는데 고개 마루턱을
넘어섰을 때 벌써 어두컴컴하벼 길이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여러 사람 중에는
공연히 두런거리는 사람도 있고 두런거리지 말라고 쉬쉬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거지반 길 바닥에 송장이 늘비하려니 믿고 오는 까닭에 앞엣사람이
무춤만 하여도 뒤의 사람은 송장인가 묻고 겁쟁이가 돌부리만 차고 아이 구머니
소리질러도 장력 센 사람이 송장인가 어디 보세 하고 들여 다보았다. 그러나 송
장 같은 것도 하나 보지 못하고 고개를 다들 내려왔다. 장꾼들 중에 탑고개 동
네 사람이 하나 끼여 있어서 고개를 내려오며 곧 다른 사람들을 작별하고 동네
로 들어왔다. 그 사람의 안해가 늦은 곡절을 물으니 그 사람은 탑거리서 지체한
까닭을 말하였다. "정말 미친 놈은 그 소문을 낸 놈이오. 곽오주가 사람을 때려
죽이는게 다 무어요. 제가 맞아서 죽을 지경이라오. " 하고 막봉이 일행이 곽오
주 잡아가지고 동네 와서 묵는 것을 이야기하여 그 사람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닫
히지 못하다가 나중에 "자네 말두 곧이 듣지 못하겠네. 이번엔 내 눈으루 가보구
오겠네. "하고 곧 막봉이 일행이 묵는 집에 와서 아랫간에 앉은 낯선 사람들과
윗간에 묶여 누운 오주를 눈으로 보고 나서 손님 대접하는 동네 사람을 보고 전
후 이야기를 하여 방안이 갑자기 웃음판이 되 었는데 그중의 몇 사람은 웃느라
고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밤에 동네 사람들이 막봉이 일행을 술대접하
는데 살찐 걸구를 일부러 잡아서 안주도 풍성풍성하려니와 술이 몇 동이로 들어
와서 술을 좋아하는 막봉이 형제는 먹기 전부터 마음이 흐뭇하였다. "가까이들
들어 앉으시우. " "손님들은 앉으신 대루 앉아 계시게 하구 우리들은 나이 차례
루 둘러 앉읍시다. " "나는 술을 못 먹으니 차례에 빠질 테요. " "나두 빠지겠네.
" "나두 골치가 아파 술을 못 먹겠어. " 동네 사람 서넛은 뒤로 나앉고 그 나머
지 너댓 사람이 나이대로앉은 뒤에 동네 사람 중에 첫머리에 앉은 사람이 뒤에
빠져 앉았는 나이 젊은 사람을 돌아보며 "자네는 이리 나와서 술시중이나 들게.
" 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나더러 술장사 노릇하란 말씀이오? " 하고 웃으며 가
운데로 들어앉았다. "사발이 모두 몇 개나 되나? “ "꼭 세 개요. " "손님들
앞에서부터 돌려놓게. " 젊은 사람이 사발을 돌려놓고 구기로 술을 떠 부으려고
할 때 손으로 끝에 앉은 손가가 주인으로 첫머리에 앉은 동네 사람 앞에 사발을
밀어놓으면서 "손에게 술을 권하자면 주인이 먼저 맛을 보셔야지. ” 하고 말하
니 그 사람은 "촌사람이 술 권하는 법이나 아우? 자 내가 먼저 맛보겠소. “ 하
고 사발을 집어들고 구기 잡은 사람에게로 내밀면서 "내게 먼저 부어주게. " 하
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술을 들려고 할 때 다음 자리에 앉았는 사람이 "그럼 우
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이 사발 하나루 돌려먹을테니 손님들은 그 사발 둘루
돌려 잡수시오. 그래서 우리 하나에 손님 두 분씩 같이 먹읍시다. " 하고 손에게
술을 더 먹일 공론을 내었다. "우리는 곱배기루 먹는 셈이 되라구요. 꼭같이 돌
립시다. ” 하고 손가가 딴소리 하는 것을 "취하두룩 먹으면 고만이지 아무렇게
나 얼른 먹읍시다. “ 하고 막봉이가 가로막아서 술을 먼저 공론대로 먹게 되었
다. 주인 된 동네 사람들이 한 차례 돌려먹기 전에 윗간에서 오주가 "나두 한
사발 다우. " 하고 소리지르니 뒤로 나앉았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윗간을 내려다
보며 "네놈 줄 술이 있으면 개를 주겠다. ” "우리가 네놈의 살점을 얻어먹구 싶
은데 술을 줄 듯하냐. “ 하고 각기 꾸짖는데 술자리 첫머리에 앉은 동네 사람
들이 막봉이를 바라다보며 "아까는 다 죽어가던 놈이 그 동안에 술 생각을 하는
구려. ” 하고 웃었다. "저녁두 못 먹은 놈이니 술 한 사발 먹이시우. " 하고 막
봉이가 말하여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먹이지 말자고 우기다가 나중에 못이기는
체하고 뒤에 앉았는 사람 하나에게 술 한 사발을 주어서 갖다 먹이게 하였다.
오주가 입에 대어주는 술을 한 사발 다 마시고 나서 "한 사발만 더 다우. "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이 "이거 보게, 냥냥해서 한 사발 더 달라네. " 하고 핀잔 주는
것을 삼봉이가 듣고 "이왕이면 우리 셋의 몫으루 세 사발만 먹입시다. " 하고 말
하였다. 두 사발을 갖다 먹이고 세 사발째 가셔가려고 할 때 손가가 "내 몫은 고
만두우. " 하고 말하는 것을 "고만두는 건 다 무어요. " 하고 막봉이가 가로막아
서 세 사발까지 갖다 먹이게 되었다. 술기운이 돌아서 흥들이 난 뒤에 삼봉이가
웃으면서 구기 잡은 사람보고 실없은 말을 걸었다. "소리나 하나 하우. " "나를
아주 술장사 기집으루 여기시는구려. " "기집만 소리하우, 내 먼저 하나 따리다.
" 삼봉이와 구기 잡은 사람이 각각 한
마디씩 하고 나서 다른 사람 들을 졸라 소리가 토막돌림이 되었다. 뒤에 앉아서
슬 안 먹고 고깃념이나 먹던 사람들까지 모두 소리를 하고 한밤중이 지나도록
서로 웃고 떠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돌아간 뒤 삼봉이와 막봉이는 고만 쓰러져서 코를 곯았지만 손
가는 도적이 결박지운 것을 풀을까 염려하여 참참 이 윗간을 내려다보느라고
잠도 변변히 자지 못하였다. 날이 밝아 서 밖에 사람 소리가 날 때 일찍 일어나
는 버릇이 있는 삼봉이가 번쩍 눈을 떠서 벽에 기대어 앉았는 손가를 바라보고
"벌써 일어났나? “ 하고 물으니 손가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통히 잠을 못
잤네. " 하고 대답하였다. "왜 그랬어? ” "우리가 잠든 동안에 도둑놈이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니 맘놓구 잠을 잘 수가 없데. " "결박지운 것을 끊구 도망할까
봐서? " "도망질치는 것버덤두 우리를 와서 죽일는지 누가 아나. " "곤달걀 지구
성 밑은 못 가겠네. " "자네 일어날 텐가? 일어나면 내가 잠깐 눈을 붙이구 일어
남세. " 하고 손가는 누우며 곧 잠이 들어서 해정술 먹으라고 깨울 때도 일어나
지 않고 한숨을 실컷 잤다. 해정술은 동네 사람들이 장사들 대접하려고 특별히
구하여 왔다고 말하느니만큼 맛이 희한하게 좋아서 삼봉이 형제는 해정술에 다
시 취하여 배고픈 줄을 모르고 자는 손가가 제풀에 일어나도록 아침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었다. 늦은 아침밥이 끝난 뒤에 손가가 떠나자고 말을 꺼내어서 삼
봉이, 막봉이 형제가 대접하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떠나겠다고 말하 니 여러 사
람들은 갖은 말을 다하여 가며 붙들었다. 일부러 사온 술을 다 먹고 가라는 말
에 삼봉이와 막봉이가 마음이 끌리고 떡하려고 떡쌀 담갔다는 말에 손가까지 마
음이 솔깃하였으나 더 묵어 가라는 말에는 셋이 다같이 안되겠다고 고집을 세우
고 겨우 점심 먹고 떠날 것을 허락라였다. 동네 사람들은 점심 시킨다고 드나들
때 몰래몰래 딴 집에 들어앉았는 오가에게 와서 점심 뒤에 붙들 죄를 공론하였
다. 해가 한낮이 기운 뒤까지 점심상이 오지 아니하여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돌아
보고 한 사람을 점심 재촉하러 보내더니 그 사람이 갔다 와서 떡이 인제야 김이
오르기 시작하더라고 말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점심이 너무 늦어서 손님께 미안
하다고 그 사람더러 가서 지키고 서서 재촉하라고 말하는데 손가는 속으로 떡을
설릴까 겁이 나서 도리어 늘어지게 송도 부중을 해지기 전에 들어가면 고만이니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다시 한 식경이 지난 뒤에 겨우 점심상이 들어
와서 막봉이 형제는 술을 실컷 먹고 손가는 술보다도 떡을 달게 먹었다. 상이
거의 끝나갈 때 젊은 사람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좌중에 앉았는 사람 하나를
불러냈다. 그 사람이 나가서 한동안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들어오 는데 얼굴
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무슨 걱정이 생겼나? “ "지금 왔던 우리 집 머슴이 금
교 뒷장을 보러 갔다 오는 자를 만났는데 오가 말이 우리의 원수를 후대하는 놈
들은 곧 우리의 원수니까 오늘 밤에 우리가 가서 몇몇 놈은 식구까지 죽여 없앤
다구 벼르더라네. " 여러 동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근심하는 중에 전날
저녁때 길에 나왔던 사람들이 더욱 근심하였다. "몇몇 놈이란 건 우리들 말인 게
지. " "염탐꾼 놈이 우리네 성명을 알아다 바친 겔세. " "이거 큰일났네. "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은가? " 삼봉이가 근심하는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오가가 쇠
도리깨 도둑놈과 한패요? " 하고 묻고서 "그놈의 패가 오늘 밤에 와서 여러분
집안을 도륙낸다구 벼르더란 말이지. 그러면 우리두 가지 않구 여기 있다가 여
러분과 죽구 사는 것을 같이 하겠소. " 하고 말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뛰다시피 하는 중에 "장사들만 기셔 주면 우리네가 다 살았네. " 하고 말하는 사
람도 있고 "우리네 안식구는 이 집 안으루 모아놓구 우리는 이 방에서 장사들
뫼시구 밤을 지내세. "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막봉이 일행이 탑고개 동네
에서 하룻밤을 더 묵게 되었다. 오가 도적이 오려니 생각들 하고 밤에 동네 사
람들과 같이 술을 먹으며 도적 오기를 기다리는데 한밤중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손가가 막봉이를 보고 "오지두 않는 도둑놈을 기다리다가 오늘 밤도 잠 못 자겠
네. ” 하고 원망같이 말하니 막봉이가 "자구 싶거든 자구려. 누가 자지 말라우?
우리는 술이나 더 먹구 닭 울 녘까지 기다려 볼 테요. " 하고 볼멘 소리로 말하
였다. 손가는 그 뒤에 바로 한구석에 누워서 잠을 자고 막봉이 형제는 동네 사
람들을 데리고 앉아서 닭을 두서너 홰 울리었다. "도적놈이 이제는 안 오는 게
지. " "도둑놈두 오지 않는데 건밤 새울 것 없소. " "그럼 고만 잡시다. “ "우리
가 여기서 다 잘 수는 없으니 우리들 몇은 다른 데루 가겠소. " 다른 데로 갈 사
람이 간 뒤에 막봉이 형제는 남아 있는 두어 사람과 같이 잘 채비를 차리고 누
웠다. 막봉이가 자다가 잠결에 도적이 왔다꼬 외치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아 보니 동네 사 람들은 한잠이 들어서 코들을 고는데 손가가
잠꼬대로 소리를 지르며 사지를 옹송그리었다. 막봉이는 혀를 끌끌 차다가 삼
봉이가 눈뜬 것을 보고 "형님두 잠이 깼소? 나는 못생긴 사람 잠꼬대에 속았소.
" 하고 다시 누웠다. 막봉이 형제의 기다리는 오가는 동네 딴 집에서 묵으면서
사람을 기다리었다. 오가의 기다리는 사람은 황천왕동이였으니 천왕동이의 걸음
으로는 양주서 점심때 떠나더라도 밤 들기 전에 들어오려니 믿고 동네 개만 짖
어도 사람을 내보내 보았다. 천왕동이는 오지 않고 밤은 점점 깊어가니 양주 보
낸 사람이 일을 낭패시키는 줄로 생각하고 밤새도록 손바닥을 비비며 고시랑거
리다가 다 샐녘에 드러누워서 잠이 들었었다. "주무시오? 고만 일어나시오. " 깨
우는 소리에 오가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양주 보냈던 집주인이 방 밖에 와
서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혼자 왔나? " "왜 혼자 오기는. 박서방두 오시
구 박서방 가셨던 집 주인 어른두 같이 오셨소. " "다들 같이 왔어? 어디들 있
나? " 하고 오가가 벌떡 일어나서 내다보니 박유복이가 임꺽정이와 같이 봉당
위에 올라섰다. "박서방 왔나! 임서방두 오실 듯싶더니 잘 왔소. " 유복이가 방문
앞으로 들어서며 "오주가 죽지 않았소? " 하고 묻는데 오주 일에 열이 나서 눈
에서 불이 나는 것이 밤새도록 길을 걸어온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인제는 오주
가 죽지 않았네. 어서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세. " "언제 이야기하구 있겠소. 곧
가서 오주를 봐야겠소. " "이야기나 좀 하구 가세. 그놈들이 셋인데 둘은 천하
장사라네. " "오주가 봉변한 걸 보면 힘꼴이나 좋이 쓰겠지. 그렇지만 염려 없소.
" "천왕동이는 어째 아니 왔나? " 어디 가서 같이 못 왔소. " 유복이가 오가와
수작하던 것을 그치고 그 집주인을 돌아보며 "그놈들 묵는 집이 어딘가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말하니 "내가 떠난 뒤에 왔으니까 나두 모르지요. " 하고 유
복이에게 대답하고 "뉘 집에 들었나요? ” 하고 오가에게 물었다. 오가가 유복이
를 보고 "잠깐 들어와서 공론하구 같이 가세. " 말하고 또다시 꺽정이를 향하고
"어서 먼저 들어오시우. " 말하여 꺽정이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인제 급할 거 없
지 않으냐, 잠깐 들어가자. " 하고 먼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유복이
는 따라 들어가려다가 말고 "오주 산 것을 내 눈으로 보기 전엔 편하게 방에 들
어앉았을 수 없소. 내 먼저 갈 테니 형님은 차차 오시우. " 하고 돌아서며 곧 밖
으로 나와서 동네 사람에게 집을 물어보고 한 달음에 쫓아왔다.
막봉이 형제와 동레 사람들은 아직 잠이 깨지 아니하고 손가만 일어나서 오줌
을 누러 밖에 나와서 오줌장군 앞에 돌아섰다가 삽작문 열어젖히는 소리에 고개
를 돌이켜 보니 삽작 안에 들어선 사람이 낯이 설었다. 그러나 손가는 동네 사
람으로만 여겨서 "아직 다들 안 일어났소. " 하고 오줌 누며 말하였다. "이놈아!
" 하고 호령하는 소리에 손가가 깜짝 놀라서 다시 고개를 돌이켜보니 그 사람이
적의를 가진 것은 목자만 언뜻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알지두 못하는 사람더러
이놈 저놈 하는 게 누구야! " 손가가 겉으로는 거센 체하면서도 그 사람이 조그
만 쇠끝을 손에 든 것이 댓가지 재주 가진 도적인 성싶어서 속으로 겁이 났다.
손가가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막봉이 형제를 깨우려고 생각하고 괴춤을 치켜들
며 슬금슬금 옆걸음을 쳐서 방문 앞으로 가까이 들어 갔다. "게 섰거라, 이놈아.
" 손가가 말을 듣지 않고 별안간 돌쳐서서 화닥닥 방문을 열어 젖히다가 문지방
에 윗몸을 걸치고 고꾸라지는데 입에서 "댓가지 도둑놈! " 하고 외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막봉이 형제가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고 외치는 소리에 벌떡 일
어났다. 앞으로 고꾸라진 손가는 머리 뒤에 피가 흐르는데 피 솟는 곳에 쇠끝이
박혔고 동네 사람들은 잠이 곤히 들었는지 겁이 지레 났는지 쥐죽은 듯이 누워
서 눈도 떠보지 아니하였다. 막봉이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쇠도리깨를 집어들
며 곧 손가 옆으로 뛰어나와서 삽작 안에 섰는 사람을 보고 말도 묻지 않고 쫓
아가려고 할 즈음에 그 사람이 손을 한번 날리더니 쇠끝 한 개가 도리깨 쥔 팔
에 와서 박혔다. 막봉이가 도리깨를 내던지고 또 쇠끝을 뽑아버리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나갔다. 그 사람이 일변 삽작 밖으로 뛰어나가며 일변 또 쇠
끝을 던지려고 뒤를 돌아볼 때 어떤 사람 하나가 앞에 와서 그 사람의 손을 붙
잡았다. "형님이요, 왜 붙잡소? “ "잠깐 참아라. "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에 막
봉이가 쫓아와서 주먹을 두르며 쇠를 던진 사람에게 달려드니 손 붙잡은 사람이
"총각두 좀 가만 있게. ” 하고 중간을 가로막고 나섰다. 분이 꼭뒤까지 난 막
봉이가 "이놈은 또 웬놈이냐! " 하고 주먹으로 그 사람의 복장을 내지르니 그 사
람은 "이 사람이 눈이 없나? “ 하고 막봉이의 무지한 주먹을 한손으로 장난같
이 받아 막았다. 막봉이가 주먹 막는 것을 보고 한번 다시 보니 곧 양주 임꺽정
이라 "이거 웬일이요, 여기 어째 왔소? 뒤에 섰는 놈이 도둑놈이오. 저리 좀 비
켜나우. " "내가 오기는 자네 보러 왔구 자네가 도둑놈이란 사람은 내 동생일세.
" "동생이라니 도둑놈 동생이 있단 말이오? " "있구말구. 동생 하나는 자네들에
게 잡혀와 있네. " "쇠도리깨 도둑놈두 동생이오? " "그래. " "당신이 도둑놈의
접주요? " "접주라면 나까지 잡아갈 텐가? " 꺽정이는 껄껄 웃고 막봉이는 셈판
을 몰라서 눈만 두리번거리었다. 꺽정이 뒤에는 유복이와 오가가 둘러서고 막봉
이 옆에는 뒤쫓아나온 삼봉이가 붙어서서 다같이 두 사람의 수작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여러 사람의 얼굴에는 깡그리 괴상히 여기는 기색이 나타났다. 꺽정이가
여러 사람의 얼굴을 돌아본 뒤에 막봉이를 보고 "우리 들어가 앉아서 이야기하
세. " 하고 손을 끌고 앞을 서니 다른 사람도 다 그 뒤를 따라왔다.
댓가지 도둑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난 뒤부터 곽오주는 묶인 밧줄을 끊고 일
어나려고 용을 썼다. 그러나 워낙 무지스럽게 결박 지운 것을 기운 빠진 사람이
끊으려고 하니 잘 끊기지 아니하였다. 삼봉이가 손가의 머리 뒤에 박힌 쇠끝을
뽑아주고 방안에 끌어들여 눕힌 뒤에 곧 막봉이 뒤를 쫓아나가서 형제가 다 없
으니
그제야 동네 사람들이 일어나서 피신들 하러 나가는 길에 곽오주의 묶인 밧줄을
장도로 모조리 끊어주었다. 임꺽정이와 막봉이가 여러 사람의 앞을 서서 삽작
안으로 들어을 때 곽오주가 비슬거리며 마주 나오는데 피투성이 된 얼굴을 씻지
못하고 풀어진 머리를 거두지 않은 까닭에 꼴이 흉악한 귀신과 같았다, 꺽정이
가 보고 "오주야! " 하고 소리칠 때 뒤에 오던 박유복이가 앞으로 쫓아나와서 오
주를 얼싸안고 사내 울음을 내놓으니 오주 역시 어린애 울음으로 엉엉 울었다.
오가가 와서 둘의 울음을 그치게 한 뒤 유복이와 같이 오주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아랫간 아랫목에 눕히고 동네 사람 하나를 불러서 수건에 물을 축여다
가 얼굴을 씻어주고 또 머리털을 거두어서 시늉만이라도 상투를 쪼저주게 하였
다. 아랫간에 누워 있던 손가는 윗간으로 옮겨 눕히게 되었는데 삼봉이가 가서
버선복의 솜을 뽑아 상처를 누르고 수건으로 동여주었다. 꺽정이
가 삼봉이를 불러서 인사한 뒤에 자기가 중간에 앉고 한편에는 오가와 유복이를
앉히고 또 한편에는 삼봉이와 막봉이를 앉히고, 양편을 돌아보며 인사를 붙이어
서 서로 성명들을 통하였으나 양편이 똑같이 소 닭 보듯 하는 중에 유복이는 오
주를 돌아보다가 막봉이 형제를 노려보고 막봉이는 표창 맞은 팔을 만져보면서
유복이를 흘겨보았다. 꺽정이가 먼저 막봉이 형제를 돌아보며 곽오주와 싸우게
된 까닭을 물으니 막봉이는 "어린애 죽이는 무도한 도둑놈을 버릇 가르치려구
일부러 벼르구 왔소. " 하고 간단하게 대답하는데 삼봉이가 자기 형제의 벼르고
오게 된 전후 사연을 대강 이야기반 끝에 꺽정이의 조력을 청할 의논이 있어서
양주를 들러 올 뻔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하였다. 꺽정이가 삼봉이의 이야기를
듣고 막봉이더러 "자네가 나하구 같이 왔더면 바루 적굴을 들이쳤지. “ 하고 허
허 웃고 나서 ”어린애를 죽이는 것이 악착스러운 짓이지. 그렇지만 속을 알구
보면 그렇게 미워할 수도 없느니. " 하고 곽오주의 행럭을 한동안 꺾꺾거리며 이
야기하다가 갑자기 오가를 돌아보고 "내 대신 이야기 좀 하우. " 하고 말하여 오
가가 꺽정이의 뒤를 받아서 구변 좋게 이야기하였다. 밤중에 배고파 우는 갓난
애를 홀아비가 안고 달래다가 화가 치미는 바람에 눈이 뒤집혀서 안은 애 태기
치는 광경을 그려내듯이 이야기할 때 아랫목에 돌아누웠던 곽오부가 홀저에 황
소 영각 켜는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 일어나니 오가는 이야기를 그치고 유복이는
오주를 붙들어 다시 눕히었다. 막봉이가 곧 오주를 돌아보며 "내가 공연한 짓을
했소. " 하고 사과하는 의사로 말하니 오주는 대답이 없었으나 유복이는 마음이
좀 풀렸다. 유복이가 막봉이를 보고 "팔을 과히나 다치지 않았나? " 하고 물어서
막봉이가 "댓가지를 잘 던진다더니 댓가지가 아니라 쇠끝입디다그려. " 하고 대
답한 뒤 꺽정이가 막봉이 형제를 보고 이번에 같이 산속에 들어가서 며칠 놀다
가자고 말하여 탑고개에서 아침들을 먹고 청석골 오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
는데, 곽오주는 쇠도리깨를 짚고 걸어가고 손가는 삼봉이에게 업혀갔다.
오가가 뒤로 답고개 동네 사람들에게 상급을 후히 준 것은 다시 말할 것 없고
유복이가 삼봉이의 청을 받고 손가 형제를 탑고개 동네로 이사시키고 사는 것을
돌아보아 주마고 허락하여 작은 손가도 머리 뒤 상한 값에 일이 해롭지 않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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