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임꺽정 의형제편 11

一字師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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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장사 서쪽 산기슭 편편한 땅에 새로 세운 소도바가 한 개 있으니 이 소도바
에 들어 있는  한 줌 재는 팔십오 세 일생을  이 세상 천대 속에서 보낸 사람이 
뒤에 끼친 것이다. 그  사람이 초년에는 함흥 고리백정이요, 중년에는 동소문 안 
갖바치요, 말년에는 칠장사 백정중이라 천인으로 일생을 마쳤으나, 고리백정으로
는 이교리의 처삼촌이 되고  갖바치로는 조정암의 지기가 되고 백정중으로는 승
속간에 생불 대접을 받았었다. 생불이 돌아갈 때  목욕하고 새옷 입고 앉아서 조
는 양 숨이 그치었는데, 그날 종일 이상한  향내가 방안에 가득하고 은은한 풍악
소리가 공중에서 났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생의 복을 빌고 후생의  원을 세
우는 어리석은  사내, 어리석은 여편네들  중에 대웅전의 부처님을  두고 산기슭 
소도바 앞에 와서  치성하는 사람이 벌써 하나둘이 아니었다. 밥술  먹는 촌사람 
하나가 자식을 비느라고 내외같이 와서 절에서  묵어가며 사흘 동안 치성하는데, 
사흘 되는 마지막날 아침 노구메를 올리려고 소도바 앞을 정하게 쓸어놓았을 때 
, 속인 셋이 젊은 중 하나를 데리고 소도바  있는 곳에 와서 중은 서고 속인들은 
쓸어놓은 자리에 느런히 꿇어 엎드렸다. 촌사람  내외가 노구메를 짓다가 쫓아와
서 남이 쓸어놓은 자리에 먼저  와서 치성들 한다고 사설하니 젊은 중이 나서서 
치성하는 사람이 아니니  염려 말라고 타일렀다. 세 사람은 엎드려서  다같이 굵
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다가  한참 만에 일어들 났다. 촌사람 내외가  아들을 낳
으려고 치성하는 것을 젊은 중이  이야기하여 세 사람 중에 얼굴 해사한 사람이 
촌사람 내외를 보고 “임자네들 쓸어놓은 자리에 우리가 와서 엎드린 것이 노구
메 진상버덤  못할 것 없소. 우리  선생님이 알음이 기시면 영락없이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리다.” 하고 말하니 그 촌사람 내외  얼굴에 현연히 기쁜 빛이 나타
나며 여편네가 사내에게  귀뜸하여 사내는 세 사람  앞에 나와서 인사를 청하였
다. 먼저 말하던 해사한  사람은 “이서방이오.” 하고 수염 많은 무서운 사람은 
“나는 임가요.” 하고 나중  한 사람은 “나는 박서방이오.” 하고 통성들 하였
다. 인사가 끝난 뒤에 젊은  중이 세 사람을 보고 “고만 들어들 가십시다.” 하
고 말하여 세 사람은 젊은 중을 따라 절로 들어갔다.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가 대사의  상좌이던 젊은 중을 데리고 소도바 있는 
곳을 나가 보고  들어와서 대사의 거처하던 별당채 마루에 둘러앉은  뒤에, 젊은 
중이 들어가서 조그만 편지봉  하나를 가지고 나와서 “스님께서 두었다 주라구 
말씀하신 유서요.” 하고 말하며 꺽저이를 내주었다. 두 손으로 편지봉을 받아서 
속을 뜯어본즉 쪽지 종이에  진서 몇 줄이 쓰이었는데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
은 글씨라 진서 좀 아는 봉학이와 젊은 중더러 보아 달라고 하니 글이 어려워서 
뜻을 알 수  없다고 체머리들을 흔들었다.  꺽정이가 유서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
넣고 나서 마루 끝에 놓인 짐을 가리키며  “저것이 상목이오. 우리가 오다가 들
은즉 선생님의 사십구일재가  멀지 않다니 그때 써주우.” 하고 그  젊은 중더러 
말하였다. “재가 인제 한  열흘 남았으니 묵어서 보구 가시구려.” “우리는 바
쁜 일이 있어서 오늘 곧  가야겠소.” “저 무명이 몇 필이오?” “열 필이오.” 
“그러면 저것을 재에  쓰지 말구 스님 불상을 하나 뫼십시다.”  “불상을 뫼시
다니?” “지금 마침 불상을 잘 파는 사람이  절에 와서 있소, 그 사람더러 스님 
목상을 하나 파래서 아주 부처님으루 뫼시잔 말씀이오.” “좋소. 저것으루 부족
되지나 않겠소?” “그 사람이 수공을 얼마나 달랄는지 모르지만 만일 부족되면 
이절 대중과 의논해서 보태어 주지요.” “그럴 것 없소. 우리가 나중에 다시 와
서 부족한 것을  채워놓을 테니 우선 일을 시키시우.” “불상을  뫼시구 사십구
일재를 지내구룩 일을  시키리다.”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는  서로 돌아보며 
다같이 좋아하였다.
  젊은 중은 나이 어린 사미  때부터 대사의 상좌로 대사를 뫼시고 지낸 사람이
라 대사 생전에  한두 번씩 왔다간 봉학이와 유복이와도 면분이  있거니와, 자주 
오고 또  와서 한참씩 오래 묵은  꺽정이와는 특별히 교분이 있었다.  젊은 중이 
세 사람과 정답게 수작하는  중에 꺽정이를 보고 “그 동안 양주를 떠나셨지요?
”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그건 어떻게 알았소?”  하고 되물었다. “아무리 절
간 구석에서 세상  소문을 모르구 지내기로니 온세상이  다 아는 소문이야 설마 
못 듣겠소.” “내 집  이사한 것이 무에 그리 굉장해서 온세상이  다 알두룩 소
문이 났단 말이오.”  “여보 고만두시우. 기일 사람이  다 따루 있지 나를 기일 
까닭이 무어 있소. 봉물  뺏구 옥 깨구 큰 야단낸 것을  이야기 안하셔두 다들어
서 아우." "선생님 생전에 내  일에 대해서 혹 무슨 말씀을 하십디까?" "이삼 삭 
전에 허담 스님이 속리서 나오실 때 소문을 듣구 오셨는데 허담 스님이 우리 스
님을 뵈입구 밑두끝두없이  아무개가 호적놈이 됐답니다 하구  말씀하니까, 우리 
스님은 미리 아시구 기셔서 놀래시지두  않구 저 갈 길루 갔네 하구 말씀하십디
다." "그 뒤엔 다른 말씀이 없으셨소?" "그때 마침 내가 스님의 심부름으루 밖에 
나간 까닭에 뒤에  무슨 말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모르우." "허담 스님은 
지금 어디 있소?"  "금강산에 들어가셨소." "선생님이 돌아기시기 전에 금강산을 
갔소?" "아니오. 허담 스님이 떠나시려구 하는 것을 우리 스님께서 조금 더 있다
가 내 일을 보아 주구 가라구 붙드셔서 못 떠나시구 기시다가 마침내 스님 다비
가 끝나는 것까지 보구 떠나셨소. 다비가 무어냐구요?  다비란 것은 우리 불가의 
말인데 화장이란 말과 같소. 처음 스님께서 허담  스님을 붙드실 때 허담 스님이
나 우리는 무슨 일을 보구 가라시는지 몰랐더니 당신의 신후사를 보구가란 말씀
입디다그려." 유복이가 젊은 중의 말 뒤를 받아서 "우리 선생님은 점이 용하셨으
니까 자기가 언제 돌아갈 것을 미리 아셨겠지요." 하고 말하니 젊은 중이 유복이
의 말을 부족하게  여겨서 "육신보살이 그까지 점을  쳐가지구 앞일을 아셨겠소. 
가만히 앉아서 한번 둘러보시기만 하면 세상만사를  다 아셨지. 세상만사는 오히
려 여차요, 눈 한번  위루 뜨시면 천상일을 환히 아시구 눈  한번 아래루 뜨시면 
지하일을 환히 아셨소. 아시면서두 말씀을 잘 안  하시는 까닭에 아시는 걸 남들
이 모를 뿐이었소. 스님 불상을 뫼신 뒤에  보시오만 당장 영검이 다른 부처님과 
다르리다."
  스승의 도덕을 굉장히  칭송하여 말하였다. 밖에서 아침밥상을  들여보내 주어
서 젊은 중이 일어나서 상 놓을 자리를 치우는데 봉학이가 "우리가 조반을  먹구 
왔소." 하고 말하니  "조반 요기를 하셨더래두 아침들은 자셔야지요."  하고 젊은 
중은 일변  봉학이 말을 대답하며  일변 가져온 밥상을  받아들였다. 아침밥들을 
먹기 시작하여 거의 다 먹어갈 때 숙랭을 가지고 온 조그만 사미중이 세 사람을 
보고 "어떤 양반 한 분이 밖에 와서 생불 스님 제자 되는 이가 여기왔느냐구  묻
습디다."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봉학이와 유복이를 돌아보며 "우리가 여기 온 줄 
알 사람이 누구까? 괴상한 일이다." 말하고 나서 젊은 중더러 "어디서 온 사람인
가 좀 나가서 물어봐 주우." 하고 청하였다. 
  젊은 중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옳게 의관한 사람 하나를 데리고 들어오
는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곧  황천왕동이었다. 세 사람이 천왕동이 온 
것을 보고 다들 놀라서 "웬일이냐?"  "어째 왔나?" "무슨 연고가 있나?" 하고 줄
달아 물었다. 천황동이가  상글상글 웃으면서 "그저 왔소." 하고 간단한  말로 대
답하니 세 사람 중의  꺽정이가 증을 내며 "그저 오다니 무슨 소리냐?" 하고  꾸
짖었다. "혼자 있으려니 첫째 갑갑해서  어디 견디겠습디까." "갑갑하다구 뛰어나
올래서야 뒤를 맡겨놓구 온 보람이 무어냐?" "아무 일두 없는데  가만히 앉아 있
느니 여기 와서 한몫 보는 게 좋지 않소." "너 없는 동안에 혹시 무슨 일이 나면 
누가 기별할 테냐?"  "아무 일두 없을 테니 염려  마시우. 그러구 정히 궁금하면 
내가 며칠에 한번씩 갔다오리다." "올 때 여기 온다구 말이나 하구 왔느냐?" "그
럼 말 안 하구 왔을까  봐 그러시우? 오두령두 여기 일이 궁금해서 가보라구 말
합디다." 꺽정이는  쓴입맛을 다시는데 봉학이가 천황동이를  보고 "여기 사람이 
부족해서 걱정 중인데 잘  왔네." 하고 말한 뒤에 "어제 떠났나, 오늘  새벽 떠났
나?" 하고  물으니 "오늘 새벽에 떠나서  이만때 여기를 대어오는 수가  무어요? 
날러두 못 오겠소." 하고 천왕동이는  웃었다. "어제 떠난 겔세그려. 그럼 어젯밤
에 어디서 잤나?" "어제 여기까지 오기는 넉넉한 것을 혹시들  안성읍에 있나 하
구 슬슬 돌아다니다가 캄캄해져서 할 수 없이 잤소."  "오늘 오기를 잘했네. 우리
두 오늘 식전에 왔네." "여기  와 물어봐서 아니들 왔다면 며칠이든지 여기서 묵
을 작정하구  왔소." "안성읍에서 불출이를 못  만났나?" "불출이가 안성읍에 있
소? 못 만났소." "어물전엔  안 들어가 보았나?" "양반 행세가 깎일까 봐서 전방 
같은 데는 안 들어갔소."  "별 기급할 소리를 다 듣겠네. 또 신서방 노릇을  했네
그려." "배고파 말하기 싫소."  "잔 데는 아침두 못 얻어먹었나?" "아침을 설치구 
왔더니 참말루 시장하우."
  천왕동이가 전에 꺽정이와 애기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대사 생전에 누차 왔다
간 까닭에 젊은 중과  구면이라 스스럼없이 "나 밥 좀 줄라우?" 하고 말하니  젊
은 중은 선뜻 "남은 밥이 없으면 새루 지어서라두 드리지요." 하고 대답한 뒤 사
미중에게 말을 일러서  내보내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밥 상이  들어왔다. 천왕동
이 오는 통에 먹을 밥을 다 먹지 못하였던 유복이가 밀어놓은 밥상에서 먹던 밥
그릇을 옮겨다 놓고 천왕동이와 같이 먹었다.
  밥상을 치운 뒤에 꺽정이가  젊은 중더러 "선생님 불상이 어느 날쯤 될까? 우
리가 아주 알구 갔으면 좋겠으니  일할 사람을 불러서 물어봅시다." 하고 말하여 
젊은 중이 나가서 불상 장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젊은 중이 꺽정이부터 쭉 돌아 
가리키며 "지금 말씀한 시주님네요." 하고 인사를 붙여서 불상 파는 사람이 돌려
가며 인사를 다한  뒤 다시 상좌에 앉은  꺽정이를 보고 "불상은 돌루 하시렵니
까? 돌루 하시다면  졸일이 나무일버덤 더딜 뿐 아니라  우선 석재를 구해야 할 
테니 사십구일재 전에 될 수  없구요, 나무루 하신다면 넉넉히 될 수 있지요. 내
가 일전에 보니까 이 절 법당 뒤에 펐으면 훌륭할 나무가 한 토막 있습디다." 학 
말하였다. 불상 장인의 말을 꺽정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젊은 중이 무릎을 치
며 "스님께서 불상 뫼실 것을 미리 아셨구려." 하고 말한 뒤 "법당 뒤 처마 밑에 
있는 나무토막이 작년 이른 봄 뒷산 벌목할 때 난 것인데 그때 스님께서 보시구 
나무가 좋다구 집어두라구  하신 것이오." 하고 이야기하였다. 꺽정이가 불상  파
는 사람을 보고 "두말할 것  없이 그 나무루 팝시다." 말하고 "나무루 파면 며칠
이나 걸리겠소?" 하고 물으니 "나무일두 하기에 달렸지만  대개 열흘이면 넉넉하
지요."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일이 아주 속히  하면 며칠에 다할 수 있소?" "요
새 해가 기니까 하루 겉목  치구 하루 면상 파구 그 나머지를 하루에 다하면 사
흘에두 손뗄 수 있지요." "그렇게 속히 하면 일이 거칠지 않겠소?" "일이 속하다
구 반드시 거친 것은 아니오. 일에 신이 날  때는 속하게 해서 되려 잘되는 수두 
있습디다. 내가 재작년 여름에 양주 회암사 부처님  한 분을 이틀에 팠는데 파놓
구 보니 끌자국이 재법 생동하는 맛이 있어서 나루서두 놀랐소이다." "그럼 이번
에두 이틀에 파보시우." "어찌하다가  그렇게 속하구두 잘되는 수가 있단 말씀이
지. 지금 이틀에  파겠다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흘에는 장담하겠소?" "놀
지 않구 부지런히 하면 사흘에는 되겠지요." "기한은 사흘루 정하구 수공은 얼마
나 주리까?"  "나중에 처분들 해서 주시지요."  "우리는 일속을 모르는 사람이니 
아주 얼마라구 말하우."  "불상 파는 수공은 불상  개수루 셈하구 날짜루 셈하지 
않습니다. 외려 날짜가 촉박하면 수공이 더합니다." "글쎄, 얼마든지 맘에 차두룩 
말하구려." "쌀루 주시렵니까, 겉곡식으루 주시렵니까?" "무명으루 셈하면 어떻겠
소?" "무명은 더 좋지요."  "무명 몇 필 주리까?" "반 동은 주셔야겠는데요." "달
라는 대루 다 줄 테니 기한 어기지 말구  일이나 잘 해노시우. 우리가 와봐서 일
이 잘됐으면 그 위에  상급으루 얼마 더 주리다." "녜, 일심정력을 다  들여서 일
을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럼 오늘부터라두 곧 일을  시작하우." 젊은 중이 
꺽정이더러 "이 절 대중에게 초벌 공론은 돌렸지만 절의 막중 큰일을 그렇게  경
선히 하는 수 있소. 일 시키는 건 내게 맡기시우.“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하
여튼 우리는 모레 다시 올 테니 그 안에  다 되두룩 일을 시키우.“ 하고 당부하
는데 불상 파는 사람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일을 지금 시작한대두 오늘은 반
나절 일이라 모레 다  될는지 모르겠는걸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하루 물
려서 글피 올 테니 글피는 손이 떨어지두룩 하우.“ ”녜, 글피 저녁때 첫불공을 
드리시두룩 하리다.“ ”첫불공이라니!“ ”새  부처님을 뫼신 뒤에 첫불공을 드
리셔야지요.“ ”옳지, 그렇겠소.“ 하고 꺽정이가  젊은 중을 돌아보며 ”첫불공 
드리는데 두비두 우리가  가지구 온 무명에서 쓰두룩 하우. 불상  수공 모자라는 
건 나중에 가지구 오리다.“ 하고 말을 일렀다.
  꺽정이 외 네 사람이 칠장사에서 달골로 돌아오는 길에 유복이가 불상 장인의 
수공 줄 것을  걱정하여 꺽정이를 보고 “우리 행중에  가져온 무명은 몇 필 안 
남았을걸요.”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어떻게 되겠지.” 하고 걱정 없는 대답을 
하였다. “어떻게 된다니 무슨 턱이  있소?” “무슨 턱이 있어 아무 턱두 없지.
” “그럼  준다구 하구 안 줄  작정이오?”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안 주다니 
될 말이냐.” “없는  걸 주는 수가 무어요?”“능통이더러 금은붙이  가지구 변
통해 보라지.” “능통이가 변통한다면 좋지만 변통 못하겠다면 탈 아니오.” “
여기서 줄 수 없으면 청석골 데리구 가서 주지 걱정인가?” “그 사람이 우리를 
따라올는지 누가 아우?” “제가 안 와서 못  받는 게야 제 잘못이지.” 불상 수
공을 못 주면 주마고 허락한 꺽정이가 제일  창피를 볼 것인데, 꺽정이는 도리어 
조금도 걱정하지 아니하였다. 
  네 사람이 달골  능통이 집에를 와서 보니 읍에  가 있던 신불출이가 와 있었
다. 꺽정이가 불출이의 인사를 받고 “누가 데리러  갔든가?” 하고 물으니 불출
이가 옆에 섰는 두목 하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여기 사람들을 데리구 와서 
여기 사람들은  읍에 남아 있구  저희만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는데 능통이가 
나서서 “안성읍에 가서 관가 동정을 알아오는 데는 본곳 사람이 난데 사람버덤 
나을 것 같아서  제 사람을 보내두기루 했습니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능통
이의 등을 툭툭 치며 “잘했소.” 하고 칭찬하였다. 네 사람이 방에 들어앉아 마
침맞게 술상이 나와서  여러 두령이 함께 술들을  먹는 중에 꺽정이가 증통이를 
보고 “나를 무명 이십 필  변통해 줄 수 있소?” 하고 물으니 능통이가 “무명
을 그렇게 많이 무엇에 쓰시렵니까?” 하고 되물었다.  꺽정이가 새 부처님 뫼실 
작정한 것을 이야기하고나서 “불상 수공  외에 상급까지 주자면 한 이십 필 더 
있어야겠소”하고 말한즉 능통이는 망건  뒤를 긁으면서 “글피 쓰실 것을 갑자
기 어디 거서 변통하나.”하고 혼잣말하다가 “꼭  될는지는 몰라두 말해볼 데는 
한 군데  있습니다.” 하고 꺽정이에게 대답하였다.  “어디요?” “제 외사촌이 
지금 진천 이방인데 거기나 가서 말하면 혹시 될는지 그외에는 별루 말해 볼 데
두 없습니다.” “내가 금은붙이를 줄 테니 그것을  가지구 가서 바꾸어 달래 보
면 어떻겠소?” “그러면이야 꼭 되지요.” “그럼 그렇게 좀 해주우.” 
  꺽정이가 능통이에게 무명 변통할 것을  부탁한 뒤에 주머니 속에 든 유서 쪽
지를 꺼내서 서림이를 주며 “이것이 우리 선생님의  유서요. 무슨 말인가 좀 보
우.” 하고 말하여 서림이가 쪽지를 받아서 펴보니  칠언절구 한 수가 쓰이어 있
었다. 서림이가  한문 문리는 난 사람이나  두보의 시를 많이 보지  못한 까닭에 
이 글이 대개 두시를 모은  것인데 글자 몇 자 변통하였을 뿐인 것을 알지 못하
고 “유서가 아니라 시를  지어 주신 게로구먼요.” 하고 말하였다. “시라니 귀
글 말이오?” “녜, 귀글이 한수요.” “귀글 뜻이 무어요?”“삼년 저소리 속에 
관산달이요, 구월 병장기 앞에 초목바람일러라.” “관산의 달이 무슨 달이오?” 
“관산달이란 게  변방달이란 말이겠지요.” “또  그 아래는 무어요?”  “부상 
서편 가지가 단석을  봉하니 천자의 기가 안중에 있더라.” “부상은  무어구 단
석은 무어요?”  “부상이란 큰 뽕나무요, 단석은  나두 모르겠는걸요.” “대체 
그 글뜻이 무어요?” “나두 그 밖엔 모르는걸요.” “고만두구 이리 내우.” 
  꺽정이는 서림이에게서 쪽지를 뺏듯이 달래서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술 먹은 
후에 또 점심으로  밀국수들을 눌러먹고 뿔뿔이 밖에  나와서 거닐 때 서림이가 
꺽정이에게 와서 “잠깐  방으루 들어갑시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서림이를 
따라서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서림이가 입을  꺽정이 귀에 가까이  대고 한동안 
소곤소곤 지껄이는데, 꺽정이가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중에  “그거 꾀가 
됐소.” 하고 칭찬하였다. “그럼  그대루 속히 서둘러 보지요.” “그래 봅시다.
” “그러면 주인더러 사람을 속히 모아 달라구 말하시우.”
  꺽정이가 능통이와 여러 두령을 불러들여서 서림이의 꾀를 대강 말한 뒤에 능
통이더러 사람 모을 것을 부탁하니 “기일을 언제루 정하셨습니까?” 하고 능통
이가 물었다. “기일은 속할수록 좋소.” “이 동네와 용머리 아이들은 오늘이라
두 불러 쓸 수  있지요마는 메주고개 아이들을 불러오자면 하루이틀 걸리겠습니
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진천길을  어떻게 하우? 다른 사람을 보내서 되겠소.
” “진천은 제가 가야 합니다.” “그럼 진천을  갔다와서 메주고개를 갈 테요?
” “메주고개는 사람을 보내지요. 제 몸 받아  일보는 자가 거기 하나 있으니까 
그자에게 기별하면 일을 낭패없이 할 겝니다.”“그럼, 오늘이라두 곧 서둘러 해
주우.” “녜, 그럽지요.”
  이날 점심때 지난 뒤 능통이는 메주고개에 사람을 보내고 자기가 진천 갔다오
기 전에 메주고개서들  오면 뉘집에 갈라 재울것까지 지휘해 놓고,  꺽정이가 주
는 금은붙이를 받아서  몸에 지니고 졸개 두엇을 데리고 진천길을  떠나갔다. 다
음날 해질 무렵부터 어둡기까지  메주고개 사람이 두셋씩 패를 지어서 띄엄띄엄 
오는데 사람이 수십 명이 오고 또 그 다음날 점심때 지나서 능통이가 진천서 돌
아오는데 무명 이십  필을 졸개들에게 나누어 지워 가지고 왔다.  능통이가 가지
고 갔던 금은붙이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꺽정이에게 도로 주면서 진천 갔던 이
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저께 가다가 광혜원서 자구  어제 아침때 진천읍내 외사
촌 큰집에 가  앉아서 길청에 사람을 보내서  외사촌을 불러내다가 보구 무명을 
부탁했습니다. 관가에  바쁜 일이 있다구  총총히 도루 들어가면서  점심때 봐서 
나올 테니 기다리라구 하더니  점심때는 고사하구 저녁때두 지나서 캄캄하게 어
둔 뒤에야  겨우 나오는데 무명을  변통하느라구 늦었다구 합디다.  어젯밤에 그 
집안 건넌방에서 내외종 형제 단둘이 술잔을 먹으며 담화하는 중에 임두령 말씀
이 났었습니다. 외사촌 말이 내가 월전에 양주  사람 하나를 만나서 임아무개 이
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만  들어도 무서운 사람입디다. 그 동류 길가란  자가 지
금 안성에 잡혀  갇혔다니 안성 원님이 양주  원님같이 소조나 당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소. 형님은 임아무개처럼 크게 해볼 생각이 없소?  내가 전에 일껀 가르쳐
까지 주었는데 그대루 못한단 말이오? 형님은 담보가 작아서 천생 졸때기짓밖에 
못할 사람이오  하구 저를 비웃습디다. 연전에  제기 잠깐 피신을 한할  수 없이 
되어서 외사촌의  첩의 집에 가서 한  보름 동안 숨어 있었는데,  그때 외사촌이 
저더러 이왕 도적질을  할 바엔 놋박재 같은 데서  촌 장꾼을 못살게 하지 말구 
새재 같은데 가서 경상도, 청홍도 관원들이 건드리지  못할 만한 대적 노릇을 하
라구 권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외사촌에게 비웃음을 받구 무류한  바람에 바
꾸러 온 무명이 너 말하는 임아무개 소용이라고 말했더니 외사촌이 깜짝 놀라며 
안성 큰일났다구 하구  뒤에 무슨 말썽이 날는지  모르니까 무명을 못 주겠다구 
합디다. 그래 쌈쌈해서 뺏다시피 해서 가지구 왔습니다. 금은붙이는 주니까 한사
하구 받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도루  가지구 왔습니다.” 능통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 밀것에 탈이 나서 복통으로 두웠던 서림이가 반몸을 일으키고 “진천서 안성
으루 기별이나 하지  않겠소?” 하고 능통이를 바라보았다. 능통이가  서림이 말
을 듣고 자기  발명겸 외사촌을 두둔하여 “외사촌이 사람이 믿을  만합니다. 다
른 사람이 말한 것두  아니구 내가 말한 것을 말낼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
니 서림이가 고개를 외치며 “사람이 작사청 물을 먹으면 부지중 심장이 달라지
는 법이오. 그런데... .” 하고 말하다가 복통이  나서 배를 움켜쥐고 속에 끌려들
어가는 소리로 “더구나 작청 상주즘 되면 등치구 배 문지르는 수단이 영롱할게
요.” 하고  지껄였다. “어떻든지 진천서 일부러  안성으루 기별할 리는 없습니
다.”“기별 안 하면 작히  좋겠소. 그렇지만 무명을 한 줄라구 하구 금은붙이를 
안 받은 것이  수상하우.” 꺽정이가 서럼이를 보구 “내일 낮에  칠장사 갔다오
구 내일 밤에 일을 합시다.” 하고 말하니  서림이가 복통이 그 동안 너누룩하여 
움켜쥐었던 배를 놓고  “내일 밤두 늦어요. 오늘  밤을 넘기지  맙시다.” 하고 
말하였다. “하루 동안 늦어서 설마 낭패되겠소.”
  꺽정이가 다른 두령들을 돌아보니 어떤 두령은 막봉이가 나오는 길로 곧 떠나
가는 것이 좋으니 아주  내일 밤에 빼내오자고 말하고, 또 어떤  두령은 오래 갇
혀 있던 사람을 적어도 하루쯤은  편히쉬게 하는 것이 좋으니 오늘 밤에 빼내오
자고 말하는데 배돌석이가 좌중을 돌아보며 “준비가 다 못 되어서 날짜를 늦춘
다면 할 수 없지만 다른 일 땜에 하루라두 옥중 고생을 더 시킨다는 건 안될 말
이오.” 하고 말한 다음에 “내가 공론할 일이 한 가지 있소. 길두령을 데려내온 
뒤에 우리가 모두 함께 칠장사에  가서 새 부처님 앞에서 의형제를 맺었으면 좋
을 것 같은데 여러분 의향이 어떻소?” 하고  공론을 내었다. 돌석이는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가 서로 형님 동생  하는 것을 속으로 부럽게 여겨서 이런 공론
을 내게 된 것이었다.  서림이가 맨 먼저 좋다고 말하고 그  뒤에 다른 두령들도 
모두 “좋지.”“좋겠지.” 하고 말하는데 곽오주는 좋다 싫다 말이 없어서 돌석
이가 오주더러 “자네는  왜 말이 없나?” 하고 물었다. 이면  없는 오주가 서림
이를 빤히 바라보며 “서장사가 끼이면 나는  빠지겠소.” 하고 대답하여 서림이
는 한동안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내가 빠질  테니 염려 마우.”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결의할  공론이 끝나기 전에 안성읍에 가 있는  사림들이 돌아와
서 “읍에 기찰이  버쩍 심해져서 자칫 잘못하면 장채 손에  들려가겠습디다. 요
새 청석골패가 하나씩 둘씩 안성으루 모여든다구  소문이 났답니다.” 하고 능통
이에게 말하는 것을 여러 두령이  다같이 듣고 하루라도 시일을 늦추는 것이 불
리하겠다고 생각들  하여 이날 밤에  일을 버르집기로 작정하고  준비를 차렸다.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은 짐짝에  든 병장기들을 꺼내서  손모아놓고, 능통이는 
사람들을 내놓아서 달골  사람은 어디 가지 못하게  이르고 용머리 사람은 저녁 
전에 달골로 모이도록 일렀다.
  이날 밤, 밤이 이윽한 뒤  박선달 사는 가사리 동네에 화적이 들었다. 동네 개
들이 요란하게  짖을 때 화적떼는 벌써  박선달 집을 들이쳤다. 환도  든 두령이 
한 패를 데리고 사랑에 들어와서  사랑식구를 결박지우고 또 활 가진 두령이 한 
패를 끌고 안에  들어와서 안식구를 동이는데, 사랑 식구의 철없는  사람은 항거
하려다가 칼을 맞고 정작 박선달이  어디 가고 없어서 환도 든 두령이 일각문으
로 안을 들여다보며 “늙은 주인놈이 안에 있나?” 하고 물으니 활 가진 두령은 
일각문 앞에 쫓아와서  “안에 사내라구는 어린아이들밖에 없소.”  하고 대답하
였다. 환도 든 두령이 결박지운 사람들에게 와서  “주인놈은 어디 갔느냐?” 하
고 묻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모릅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놈아, 모르다니 
될 말이냐!” 하고 환도 등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내리쳤다.  “아이구 아이구!” 
“거짓말하면 죽일 테다. 바루 대라.”  “작은집에 가셨나 봅니다.” “작은집이 
어디냐?” “바루 옆집이올시다.”
 첩의 집에 가 있던 박선달이 큰집에 화적 든 것을 알고 급히 낭속과 동네 장정
을 불러모아서 몇은 읍내 관가에 좇아보내고 나머지는 도끼나 몽치나 있는 대로 
손에 들려서 큰집으로  들여보냈다. 미련한 촌것들이 천둥인지  지동인지 모르고 
선다님의 분부만 어려워서 한떼로  몰려들어오다가 바깥마당에 있는 화적 한 패
에게 혼들이 나는데, 그 패의 두령 둘이  하나는 쇠도리깨를 가지고 하나는 창을 
가져서 빨리 도망  못하는 쇠도리깨에도 얻어맞고 창에도 찔리었다. 환도  든 두
령이 밖에 나와서  쇠도리깨 가진 두령과 창  가진 두령을 사랑으로 들여보내고 
두 두령이 거느리고  있던 졸개들을 데리고 박선달의 첩의 집을  찾아왔다. 박선
달이 진작 물계를  알아차려던들 어리로 피신할 것인데, 첩의 집에  두었던 재물
을 마루 밑에도 집어넣고 검부나무 속에도 파묻느라고 첩하고 둘이 부산하게 돌
아다니는 중에 환도 든  두령이 삽작 안에 들어섰다. 삽작 밖에  세워둔 사내 하
인들은 말할 것 없고 집안에서 시중 들던 아이년들도 어느 틈에 다 도망하여 박
선달과 첩과 단둘이  남아있었다. 박선달이 그중에 떡국이 농간하여 환도  든 두
령 앞에 나와서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가는 소리로  “우리는 박선달 집에 붙여 
사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니 그  두령이 박선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번 껄껄 웃고 졸개들을 돌아보며 “이눔을 묶어라.” “저년두 묶어라.” “집
에는 불을  질러라.” 하고 연거푸 분부하였다.  졸개들이 숙마바로 박선달과 그 
첩을 묶어놓고 앞뒤 처마에 불을 질러서 불이 타기 시작한 뒤에 환도 든 두령은 
졸개들더러 “연놈을 끌고 가자.” 분부하고 졸개들의  앞을 서서 박선달의 큰집
으로 들어왔다. 안에 있던  활 가진 두령까지 나와서 네 두령이  느런히 사랑 툇
마루에 걸터앉아서 박선달을  주리틀리라고 거조를 차릴 때, 또 두령  하나가 단
신으로 밖에서 들어오는데  그 두령은 한편 손에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들었을 
뿐이고 다른 병장기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 두령이  환도 든 두령 앞에 와서 “
그 동안 읍내루  뛰어간 사람이 몇인지 수가  없소. 혹시 불급되리다. 얼른 가시
우.” 하고 말하니 환도 든 두령이 곧 활  가진 두령과 둘이 같이 밖으로 나가서 
졸개를 한 패 거느리고 동네  한복판을 짓치고 나가니 또 다른 한 패가 동구 밖
에 있다가 와서  합세하였다. 그 화적떼가 읍내를 향하고 몰려오는데  얼마는 중
간에서 떨어지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읍내 턱밑에까지 다 와서 어두운 속에 형적
들을 감추었다.  읍내로  간 두령들이 박선달 집에서 나간 뒤에  남아 있는 두령 
셋은 박선달  집 식구 처치할 것을  공론하였다. 손에 주머니 가진  두령이 “광 
하나를 치우고 안팎 식구를 다 집어넣은 뒤에  광문을 닫아 걸구 불을 질르세.” 
하고 발론하니  쇠도리깨 가진 두령은 대번에  “그거 좋군.” 하고 찬동하는데, 
창 가진 두령은 고개를 외치며  “박선달은 죽일 놈이지만 그 나머지 식구야 무
슨 죄가 있나.”  하고 찬동하지 않았다. “망할  놈의 씨알머리 남겨둘 것 무어 
있나.” “너무 말살스러운  짓 할 것 없어.”  둘이 옥신각신 말마디나 좋이 한 
끝에 박선달의 부자들만 광에 집어넣게 되었다.  광채에서부터 불을 지르기 시작
하여 안팎채에  다 불을 질렀다.  사랑마당에 남은 사내도  사람살리라고 악들을 
쓰지만, 안마당의 여편네와 아이들  우는 소리가 악머구리 우는 것 같았다. 두령 
셋이 잠깐 서로 의논하고 불꾸러미  든 졸개들을 각각 나누어서 거느리고 불 붙
은 박선달  집에서 몰려나왔다. 창 가진  두령은 맨 뒤에 나오다가  자기 거느린 
졸개들을 바깥마당에  멈추어놓고 혼자 다시 안마당에  들어가서 여편네들 동인 
줄을 창열로  툭툭 끊어주며 "산으루들 도망해라."  하고 말까지 이르고  나왔다. 
세 두령이 동네를 위 아래 중간 세 땀으로 갈라지고 각기 돌아다니며 불을 지르
는데, 불을  못 지르게 하는 사람들은  창도 맞고 돌팔매도 맞고  또 쇠도리깨도 
맞았다. 사내 아우성치는  소리, 여편네 악쓰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 온동에가 
물끓듯 하였다. 위땀의  창 쓰는 두령과 중간땀의 돌팔매치는 두령은  어른 사내
나 혹 해치지만, 아래땀의 쇠도리깨 쓰는 두령은  우는 아이를 만나는 족족 해치
웠다. 그  흉악한 두령이 나중에는 도리깨질에   신이 났던지 집에  불지를 것도 
잊어버리고 우는 아이만 찾아다니었다.  아래땀에서 중간땀으로 올라와서 돌아다
니며 죄없는 어린아이를 쳐죽이는 중에  위땀의 창 쓰는 두령이 위땀 일을 마치
고 중간땀으로 내려오다가  보고 붙들고 날쳐서 간신히 말리었다. 세  두령이 다
시 한데 합하여 동구 밖으로 나올 때는 가사리 사십여 호에 불 안 붙은 집이 없
어서 화광이 충천하였다.  읍내 가까운 가사리  동네에 화적 들었단 기별이 관가
에 들어왔을 때,  안성군수는 즉시 병마동첨절제사로 좌기하고 취군을 시키었다. 
관속과
 읍내 장정 수백 명이 삼문  앞에 모인 뒤에 먼저 건장한군사 삼사십 명을 뽑아
서 옥을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 군사는 좌우병방을 주어서 가사리 가서 화적들
을 잡으라고 명령하였다. 좌우병방이 백여 명  군사를 거느리고 가사리로 나와서 
동구 밖에서 동네  안을 들여다보니 불바다 속에 개미새끼도 하나  없었다. 화적
들이 벌써 거쳐간 모양이라 그  간 곳을 탐지하려고 병방들은 산 위에서 피란하
는 동네 백성들을  불러내리었다. "화적들이 어느 편으루  가더냐?" 여러 사람이 
횡설수설 대답하는 중에 읍내 편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가 나올 때  어디들 숨었던 게지." “우리들 나온 뒤에  읍내 들어가서 파옥하는 
걸세.” “얼른 쫓아들어가세.”   좌우병방이 수어 지껄인 뒤에 곧 군사를 풍우
같이 몰고 읍내로 들어오는데, 중간쯤 왔을 때  길 옆 좌우편에서 별안간 함성이 
일어났다. 선봉으로 오던  우병방이 함성을 듣고 군사를 뒤로 물리고  후진에 오
던 좌병방과 서로 의논하고 급히 활 가진 군사를 뽑아내서 길 좌우편 아우성 나
던 곳을 향하여 세우고 활들을 쏘이는데 시윗소리는 한동안 요란하였으나 살 떨
어지는 곳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좌우병방이 건장한 군사 수십  명을 골라 
뽑아서 좌우편 길 옆을 나가  보게 하여 두 패가 각각 홰 든 군사들을 앞세우고 
길가의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는 중에, 바른편에서는  난데 없는 화살이 날아와서 
군사가 하나 맞고 둘  맞고 셋 맞으며 여러 군사들이 와  하고 도망하여 나오고, 
왼편에서는 한참이나  아무 소리가 없더니 나중에  군사들이 아이쿠지이쿠 하며 
뛰어나왔다. 군서 서넛은  한편 눈을 뜨지 못하는데 눈알 아니면  눈자위에 대꼬
창이가 꽂히고 군사 서넛은  목을 돌리지 못하는데 뒤통수나 뒷덜미에 쇠꼬창이
가 박혔었다.  안성 관속들은 길막봉이의 초사로  청석골 두령 인물의 성명과 재
주를 대개 다 짐작하는 터이라, 좌우병방이  대꼬창이와 쇠꼬창이를 보고 “청석
골 화적패에 박가  성 가진 놈이 무슨 창이라든가  줌 안에 드는 창을 백발백중 
잘 친다더니 그놈이  왔네그려.” “그놈 하나만 왔겠나? 돌팔매두  오구 쇠도리
깨두 오구  천하 명궁두 오구 천하  장사두 오구 떼서리가 다  왔겠지.” “우리 
안성 큰난리 났네.” 좌우병방이 서로 지껄일 때  나이 지긋한 장교 하나가 화살 
맞고 겨우  도망하여 나온 군사 셋을  데리고 앞에 와서 “이것들  좀 봅시오.” 
하고 살 맞은  자리를 가리키는데, 셋이 똑같이 인중이 뚫리고  앞니들이 부러졌
었다. “상처가  우연히 같은 건  아니겠지.” “천하명궁의  솜씰세.” “여기서 
지체 말구 얼른  읍으루 들어가세.” “얼른 가서 읍에나 못  들어오게 방비하는 
것이 상책이겠네.” 좌우병방이  읍내로 들어가려고 분분히 군사의  대오를 정돈 
시킬 때 뒤에서 또 함성이 일어나며 화적  한 패가 후진에 달려들었다. 좌우병방
은 급히 군사를  휘동하여 선봉을 후진으로, 후진을 선봉으로 뒤꾸며  가지고 화
적패를 막는데,  길 좌우편에 숨은  화적이 내달아서 앞뒤로  공격할까 염려하여 
활 가진 군사들은 따로 남겨서 길 양편  풀섶을 향하고 먼장질을 시키었다. 달려
드는 화적패의 사람수는 여남은 밖에 아니 되나,  그중의 하나는 창을 쓰는데 날
쌔기가 제비 같고 하나는 쇠도리깨를  쓰는데 우악하기가 황소 같고 그 외에 또 
돌팔매질을 하는  자가 하나 있는데,  우스운 돌팔매가 창이나  쇠도리깨보다 더 
무서워서 여러 십  명 군사가 잠깐 동안에 혹  면상도 터지고 혹 머리도 깨어졌
다. 좌우병방이 처음에 화적패의 수효가 얼마 못  되는 것을 넘보고 화적패를 둘
러싸서 잡으려고 군사들을  좌우로 벌리었더니, 바른편에 숨은  화적이 소리없이 
바른편 군사들 뒤에  와서 별안간 아우성을 치고  대어들고 왼편에 숨은 화적도 
마저 왼편 군사들 뒤에 와서  아우성을 치고 대전장을 치러 보지 못한 군사들이
라 한번 동요된 뒤에는 다시  정돈되지 못하고 마침내 와 하고 흩어져서 도망질
들을 치게 되었다. 우병방은 도망하는 군사를  금지하려다가 남나중 도망하고 좌
병방은 어느 틈에 활 가진 군사들과 같이  앞서 도망하였다. 도망하는 뒤를 쫓던 
화적들이 읍내 가까이 와서는 더 쫓지 아니하여 좌우병방은 비로소 서로 만나서 
공론하고 도망해 온  군사들이 거두어 모으기 시작하였다.  가사리로  나갈 때는 
여러 횃불이 길을 밝혔으나 홰잡이 군사들이 모두 홰를 내던지고 도망질친 까닭
에, 희미한 별빛 아래서 좌우병방이 군사를 수합하는  중에 멀리 향굣말 가는 길
에서 사람의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을  듣고 향굣말 사는 군사들이 어느 틈에 앞
질러 도망하여 집으로 가는가 생각하고 장교  몇 사람을 쫓아보내보았다. 장교들
이 향굣말 길로 오며 보니 그 사람들이  군사가 아니요, 백성들이라 앞장선 장교
가 “너희가 웬 사람들이냐?” 하고 소리질러 물었다.  백성들은 병장기 가진 장
교를
 보고 화적으로 여기는지 초간한 데서는 천방지축 도망질들을 치고 가까운 데서
는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들 하였다. 장교 하나가 어떤 여편네를  알아보고 “
자네 놋점거리 괴똥이네 아닌가?”  하고 물으니 그 여편네가 장교 앞으로 한두 
걸음 들어서서 뻔히 보다가  “아이구 이게 누구시오? 우리는 화적놈을 만난 줄 
알았소.” 하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대체 웬일들인가?” “아이구 웬일이라니
요. 장터에 화적  든 걸 모르시오?” 그제는 여러 사람이  장교들이 묻기를 기다
리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지껄이는데  그중에 “읍내 들어온 화적이 수가 얼만지 
모른답니다. 장터는 그 동안  도륙이 났을 겝니다.”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고 
“화적이 읍내 들어오며 바루 옥으루  가서 옥 앞에 관군과 접전이 났는데 관군
이 여지없이 패했답니다.” 곧이들릴 만한 소문을 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교들
이 피란꾼들에게 들은 말을 들은  대로 와서 옮기어서 좌우병방은 듣고 옥 앞에
서 접전 났단  말 외에는 준신하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혹시  원님이 도망하였나 
장터가 도륙이 났나  미심하게 생각들 하여 군사를  끌고 읍내로 들어오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보려고 영리한 장교를  두어 사람 고르는 중에 순령수 둘이 급
한 걸음으로 읍내서 나왔다. 그 순령수들은  좌우병방에게 급히 회군하란 군수의 
영을 받아가지고 가사리로 나가는  길이었다. 좌우병방이 번갈아가며 순령수들에
게 물어서 읍내 사정을 자세히 들었다.   좌우병방이 군사들을 끌고 가사리로 나
온 뒤 얼마 아니 있다가 화적 한 패가 파옥하러 들이닥쳐서 옥을 지키던 군사들
이 막으려고 한즉, 화적 중에 환도 가진  괴수가 단신으로 내달아서 순식간에 군
사 칠팔 명을 꺼꾸러뜨려서 군사들은 접전할 생의도 못하고 새떼같이 흩어져 버
렸었다. 화적들은 거침없이  옥을 깨치고 옥에 갇힌 도적들을 꺼내어  미리 준비
해 가지고 온 말들을 태우려다가  박가의 부녀는 말을 타나 길가는 장창이 심하
여 말을 타지 못하는 까닭에 환도 가진 화적 괴수가 졸개 몇을 데리고 동리존위 
집에 가서 동네 보교를  뺏어다가 길가를 태워가지고 읍내서 남쪽으로 풀려나갔
는데, 군수가 좌우병방에게  급히 회군령을 놓은 것은 화적의 뒤를  쫓으려는 것
이었다. 좌우병방이 즉시 읍내로 들어와서 군사는  삼문 밖에 머물러놓고 순령수
들과 같이 관가에  들어와서 군수께 패전한 전말을  아뢰고 정죄할 사이도 없이 
군수가 좌우병방더러 빨리 화적의 뒤를 쫓아가서 길가와 박가의 부녀를 도로 뺏
어도되 만일 뺏어오지 못하면 군율을  당할 터이니 그리 알라고  영을 내리어서 
좌우병방은 엄령지하에 두말 못하고 삼문 밖으로  물러나왔다.  좌우병방이 육칠
십 명 군사를 거느리고 홍살문  밖으로 나올 때 우병방이 좌병방을 돌아보며 “
화적패가 남쪽으루 갔다니 계촌 아니면 현암으루  나갔겠지.” 하고 말하니 “글
쎄 모르겠네. 먼저 계촌  나가서 물어보구 그 다음에 현암으루 올라가세.” 하고 
좌병방은 대답하였다. “우리가  물어보구 다니는 동안에 화적패가  멀리 가버리
면 어떻게  하나.”“간 종적이나 탐지해 가지구  들어오지 별수 있나.” “길가 
하나만이라두 도루 뺏어가지구 들어와야지 빈손으루 들어오면 우리는 죽는 사람
일세.” “설마?”  “설마라니, 이 사람  부슨 소린가. 패전한  죄에다가 죄수를 
놓친 죄까지 겸쳐 뒤집어쓰구  군율을 면할 수 있겠나, 생각해 보게.” “한칼에 
칠팔 명 군사를  무찔렀다는 화적패의 괴수가 장사요  검갱닌 꺽정이란 놈일 걸
세. 지금  우리가 뒤쫓아가서 길가를  뺏으려다가는 우리두 그놈의  칼에 죽기가 
쉽지 않겠나.” “군율에  죽느니버덤은 도둑놈 칼에 죽는 것이 잘  죽는 죽음일
세.” “제 명에  못 죽기는 마찬가지지. 잘 죽는 죽음이란  다 무엔가.” “우리
가 도둑놈 칼에 죽으면 처자는 살지만 만일  군율에 죽으면 처자까지 못 사네.” 
“그러구 보면 우리는  죽으러 가는 사람 아닌가. 집에들 가서  처자의 얼굴이나 
한번 다시 보구 가세.”  “우리가 집에 다니러 가면 군사들두 뿔뿔이  다 갈 테
니 그걸 어떻게 다시 모을 텐가. 그런 소리는 입밖에 내지 말게. 사중구생이라니 
죽을 작정하구 가보세.  혹시 살 도리가 있을는지  누가 아나.”  “아이구 나는 
모르겠네. 자네 요량대루 하게.”  좌우병방이 서로 지껄이는 중에 동리 장터 끝
까지 다 나왔아. 피란  안 가고 남아 있는 장터 백성 서너 사람이  어느 집 앞에 
몰려섰는 것을 보고 혹시 화적의 간 방향을  알까 하고 불러다가 물어보니, 서너 
사람이 다같이 가현으로  나갔다고 가리켰다. “계촌이나 현암으루  나가지 않구 
정녕 가현으루 나가드냐?” “개울  건너서 가현으루 가는 걸 저희들 눈으루 봤
습니다.” 좌우병방이 군사를 몰고 가현으로 나왔다. 가현 사람에게 화적의 종적
을 물어서 화적이 동네에들어오지 않고 개울물을 끼고 위로 올라갔단 말을
 듣고 개울 옆  작은 길을 횃불로 비춰본즉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다. 횃불
을 없애고 그 뒤로는 논틀밭틀을 헤아리지 않고 쫓아오기 시작하여 내동 앞길에
서 멀리 화적들의 떠드는 소리까지 듣고, 마침내  청량산 뒤 산상골 근처에서 화
적의 뒤를 가까이 쫓아오게 되었다. 화적이 뒤쫓기는  줄 깨달은 뒤에는 두 패로 
갈려서 한 패는 앞으로 나가고 한 패는 뒤로  돌아섰다. 칠 팔 명 화적이 우뚝우
꾹 선 것을 어렴풋이 바라보고 좌우병방은 곧 군사들을 길로부터 길 옆 논 속에
까지 벌려 세우고 활 가진 군사를 시켜서  활을 쏘이었다. 화적 한둘이 꺼꾸러지
는 듯 다른 화적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중에 화적 하나가 뛰어오는데 손에 휘
두르는 것이 분명히 칼이었다.  “쫓아오는 놈을 쏘아라.” 살이 맞지 않는지 칼
로 받아버리는지  그 화적은 별로  지체도 않고 뛰어오며  “이놈들 죽어봐라.” 
하고 호토을 질렀다.  좌병방보다 다기진 우병방이 먼저 창을 들고  내달으며 “
모두 함께 달려들어라.”  하고 소리치니 좌병방 이하 여러 장교와  군사들이 창
과 칼을 내두르며 전후좌우로 그 화적에게 달려들었다.  그 화적은 비호 같았다. 
동에서 번쩍 서로 닫고  서에서 번쩍 북으로 달았다.  사방에서  연해 나는 악소
리 중에 간간이 아이쿠 소리가 섞이어 나는데,  아이쿠 소리 나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 하나가  자빠지거나 꺼구러졌다. 화적의 칼에  찔리거나 찍힌 것이다. 여러 
사람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화적이 가까이 대어들지 못하도록 칼이나 창을 
내두르기만 하는데, 우병방만은  화적을 노리고 앞으로 나가면서 창끝을 놀렸다. 
여러 사람의 악소리들이 차차로줄어드니 우병방이 사기를 돋우려고 “이놈이 화
적 괴수 꺽정이란 놈이다. 이놈만  잡으면 길가 같은 놈은 백 명 놓쳐두 좋다.”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주제넘은  눔 큰소리 마라.” 그 화적 괴수가 우병방에
게로 달려들었다. 우병방은  창을 앞으로 꼬나들고 화적 괴수는 칼을  위로 치켜
들었다. 우병방이 화적  괴수의 가슴 복판을 노리고 창을 내지르니  화적 괴수는 
몸을 틀어 창끝을 한옆으로 흘리며 곧 한손으로  창목을 잡아 앞으로 채쳤다. 우
병방의 몸이 고꾸라지자, 칼이  번쩍 목이 떨어졌다. 우병방이 삽시간에 죽는 것
을 보고 좌병방은 뒤대어 나설 생각을 못하고 슬그머니 논으로 내려가서 도망질
을 쳤다. “좌병방 도망간다!” 어떤  군사가 외쳤는지 그 외치는 소리 한마디에 
군사들이 와  하고 떼도망을 치게  되었는데, 화적 괴수는  도마망하는 군사들을 
뒤쫓지 않고 한번 껄껄 웃은 뒤 돌아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꺽정이 이하 청석골 
두령들이 달골  곽능통이의 조력을 얻어가지고 안성옥을  깨치고 길막봉이와 그 
안해, 장인까지 구해냈다. 먼저 가사리 들어갈 때는 여러 두령이 다 함께 갔으니 
박유복이와 배돌석이는 능통이와 작은 두목들을 데리고  동구 밖에 남아 있었고, 
곽오주와 황천왕동이는 십여 명  졸개를 데리고 박선달 집바깥마당을 지키고 있
었고, 두 패로 박선달 집 안팎을 들이친 것은 꺽정이와 이봉학이었다. 읍내로 사
람이 많이 뛰어가는 것을 보고 돌석이가 들어와서 말한 뒤에 꺽정이는 돌석이와 
오주와 천왕동이더러 동네에  불을 지르라고 졸개 한 패를 주어서  뒤에 남기고, 
봉학이와 같이 나머지 졸개를 끌고 동구에 나와서 동구 밖에 있던 패와 한데 합
하여 가지고 읍내  편으로 들어오다가 봉학이와 유복이는  각각 졸개 칠팔 명씩 
데리고 중간에 떨어져서  길 좌우편 풀섶에 숨어 있게 하고,  꺽정이는 능통이와 
작은 두목들 외에 수십 명 졸개를 거느리고 읍내 턱밑에까지 와서 길 옆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좌우병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사리로 나간 뒤에 읍내 들어와
서 옥을 깨치고  갇힌 사람들을 구해냈었다. 가사리 박선달 집부터  불을 지르기 
시작하여 온동네에 불을 지른 것은 막봉이의 원수도 갚으려니와 읍내 관군을 가
사리로 끌어내자는 꾀요,  관군이 나올 때는 가만두었다가 들어갈 때  앞으로 막
고 뒤로 엄습한 것은  파옥하는 동안을 만들자는 꾀였다. 이와 같은  꾀를 낸 사
람은 서림인데, 서림이는 복통으로  달골 능통이 집에 누워 있었다. 서림이가 꾀
가 맞는지 틀리는지 몰라서  고시랑고시랑하며 기별 오기를 기다니는 중에 처음
에 떠들썩하며 곽능통이  패가 옥에 갇혔던 사람들을 호위하고 들어오고,  그 다
음에 왁자하게 떠들며 이봉학이 외  다섯 두령들 패가 함께 몰려오고 나중에 또 
떠들썩하며 꺽정이가 작은 두목 네 사람과 졸개  댓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여
러 두령이 방에 드러눕힌 막봉이 옆에 와서 둘러앉아 들여다보고 다리도 만져보
고 하는 중에 능통이가 방에  들어와서 여러 두령을 보고 준비해 놓은 술고기로 
졸개들을 호궤한다고 말하여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은 능통이와 같이 밖으로 나
가고 서림이 하나만 막봉이 옆에 남아 있었다. 여러 두령이 밖으로
 나간 뒤에 윗목에 누워  있는 서림이가 아랫목의 막봉이를 바라보며 “내일 칠
장사루 형제 결의들  하러 간다는데 길두령 어디 갈  수 있겠소? 만일 길두령이 
빠지게 되면 곽두령은 모두  형제들뿐이구 아우가 하나두 없어서 재미적어 하겠
지. 나는 도대체 의형제란 걸 재미적게 생각하는  까닭에 참례 않구 빠지기루 했
소.” 하고  이야기삼아서 지껄이니 막봉이는 말없이  큰 눈만 끔벅끔벅 하였다. 
서림이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인제는 가는 것이 큰일인데.  길은 멀구 
일행은 많으니 무슨 묘책이 있어야겠는데.” 하고  혼잣말같이 지껄일 때 능통이
가 머슴아이에게 미음상을 들려가지고 들어오고, 그  뒤에 또 꺽정이가 막봉이의 
장인과 안해를 데리고  들어왔다. 꺽정이와 능통이가 막봉이를  일으켜서 비스듬
히 벽에 기대어 앉힌 뒤에  미음을 마시라고 권하니 막봉이는 꺽정이를 보고 “
미음 고만두구 술을  주시우.” 하고 말하였다. “술을  먹겠나?” “왜 못 먹겠
소.” 꺽정이 옆에  와서 앉은 막봉이의 장인은 “어느새 술이  다 무어냐?” 막
봉이를 보고 말하고 그 아버지  곁에 붙어앉은 막봉이의 안해는 “약한 몸엔 술
이 해롭지요.” 아버지에게 빗대고 말하였다. 막봉이가 장인을 돌아보며 “나 땜
에 고생하셨지요.” 하고 비로소 인사 차려 말하니  그 장인이 “네게 대면 우리
야 고생이라구 할 것두 없지. 그러나 그런  이아기는 차차하구 어서 미음이나 먹
어라.” 하고 말하여 “녜 먹지요.” 하고 막봉이는 미음 그릇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마시었다. 윗목에 일어 앉았는 서림이가  “여보, 주인.” 하고 능통이를 부
르는데 능통이는 머슴아이 시켜 미음상을 내보내고  뒤늦게 “녜.” 하고 대답하
였다. “죽은  사람과 상한 사람이 모두  몇이나 됩니까?” “우리는  치지 말구 
졸개들만 마흔둘인데 그중에서 메주고개 아이가 하나 죽구 셋 상하구 용머리 아
이가 넷 상하구 이 동네 아이는 상한 놈두  한 놈 없소.” “그것쯤은 사상이 없
느니나 다름없소.” “그렇구말구요. 관군은 죽은 사람 상한 사람이 줄잡아두 삼
사십명 가량 될  것이오.” 꺽정이가 능통이더러 “우리는 여럿들 먹는  것을 또 
나가 봐야지.”  말하고 능통이와 같이 일어설  때, 막봉이의 안해가 인사성으로 
일어서는 것을 꺽정이는 같이  나가려고 일어서는 줄로 알고 “우리들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나 하구 기시우.”하고 말하였다. 낯선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 막봉이
의 안해가 거북하여 할 듯 짐작하고 서림이도  이번에는 “나두 좀 나가 보겠소.
” 하고 같이 일어섰다. 막봉이의 장인과 안해가  다 오래 앉았기 거북하여 막봉
이와 같이 느런히 누워 있는 중에 여러 두령이 졸개 호궤를 마치고 들어와서 막
봉이의 장인과 안해는 따로  치워놓은 바깥방으로 내보내고 결의할 일과 회정할 
일을 의논들 하기  시작하였는데, 서림이가 출반좌하고 말을 꺼내었다. 서림이는 
여러 두령이 알아듣도록 말하느라고 말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말의 요지는 불과 
한두 마디로 다할 수 있었다. 칠장사 가는  것은 파의하고 한시라도 바삐 회정할 
준비를 차리자는  것인데, 언변 좋은 서림이가  이유 서지 않는 말도  이유 서게 
할 수 있거든 하물며 이유가 서는 말이랴.  부처님을 새로 뫼시면 가근방에서 구
경꾼이 많이 올 것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중에 눈치빠른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라 여럿이  몰려갔다가 종적이 탄로되면 설혹  당장은 무사할지라도 반드시 
뒤에 탈이 나서 연락 혐의로 중들이 경을 치고 시주 관계로 부처님까지 누를 입
어서 일껀 새로 뫼신 부처님을 관령으로 없애게 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니 칠
장사 가는 것을 파의하자는 서림의 말이 이유가  서고, 안성 소문이 퍼지는 날이
면 여기서 서울 가기도 어렵고 서울서 청석골 가기도 어려울 것이라 안성군수의 
보장이 서울 올라가기 전에  서울을 지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울 관문이 
각처에 돌기 전에  청석골을 들어가야 할 것이니  한시라도 바삐 회정할 준비를 
차리자는 서림의 말의  이유가 섰다. 서림이의 말을 여러 두령이  반대할 생각도 
못하고 잠자코 있는 중에 박유복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칠장사를 다시 안 가
더래두 큰 낭패될 건 없지만  불상 수공을 어떻게 할 테요?” 하고 물으니 꺽정
이가 “갖다 줘야지.” 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곧 뒤를 받아서 “이왕 준다
구 말해 놓은 것을 안 줄 수 없으니까 사람 시켜 보내주는데 일 맡은 중에게 기
별해서 시주는 숨기두룩 하게 하시우.”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이었
다. 결의가 파의되는  데 심사가 틀린 배돌석이가 좌우를 돌아보며  “인제는 여
기서 더 볼일이 없지  않소. 지금 당장이라두 떠납시다.” 말하고 막봉이를 가리
키며 “저 사람은 벼슬한 양반이 타는 승교나  태워야 하지 않겠소.” 하고 특별
히 서림이를 보고 물었다. “승교를 태워가지구 가다가 중로에서 들키
면 낭패 아니오.” “말은 못 타니 승교  안 태우면 무얼 태우겠고?” “내가 상
중하 세 가지 계책을 생각한 게 있으니  들어들 보구 의논해 작정하시우.” 하고 
서림이가 여러 두령을 한번 죽  돌아본 뒤에 “상책은 상행을 하나 꾸미는 것이
니 길두령을 송장 대신 상여 속에 눕히구 우리가 상두꾼두 되구 상주두 되구 복
인두 되구 또 지관두  되면 일행이 다 함께 갈 수 있소.” 하고  말하니 우선 배
돌석이가 고개를 외치며  “승교 탄 사람은 들켜두  상여에 담은 사람은 들키지 
않소? 그나마 하룻길이나 같으면 모르지만 며칠길에 숙소하는 데서 들키기 첩경 
쉬울 것 같소.” 탈을 잡아서 말하고 그  다음에 곽오주가 빈정대는 말씨로 “멀
쩡하게 산 사람을 왜 송장을 만들어? 별눔의  꾀두 다 많군.” 하고 입을 비쭉거
렸다. 서림이가 결정지어서  말해 달라는 눈치로 꺽정이를  바라보는데 꺽정이가 
“또 두 가지 께책은 무어요?” 하고 서림이의  중책과 하책을 물었다. “우리는 
각인각색으로 꾸며 가지구 뿔뿔이 흩어져서 먼저들 가구 길두령은 여기서 잘 피
신해 가며 치료해 가지구  나중 오게 하는 것이 중책이구, 우리  갈 때 길두령을 
타향에서 병든 사람이 고향으루  가는 것처럼 하구 아주 드러내놓구 승교바탕에 
태워가지구 가는 것이 하책이오. 중책은 우리 일행이  다 함께 못가는 것이 험이
나 우리들만은 어떻게든지 기찰을 모면하구 갈 수 있지만 하책은 길두령을 포교 
손에 뺏길 염려가 많소.”서림이의  말이 끝나자, 이때껏 누워 있던 막봉이가 위 
반몸을 일으키며 “나를 물건처럼 뺏길  염려 할 것두 없구 송장같이 상여에 담
을 것두 없소. 나만 여기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갑시다.”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
였다. 돌석이가 탈잡고 오주가 빈정대는데 막봉이의  퉁명까지 받게 되어서 서림
이의 상책이 중책에 밀리는 판에  여럿의 말을 꺾고 누르고 결정을 지을 꺽정이
가 “각각 떨어져 가더래두 다들 잘 갈  수만 있으면 고만이지.” 중책을 취하는 
어취로 말하여 마침내 상책을 제치고 중책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박유복이가 나
중에 “제일 상책을 두구 안 쓸 까닭이 무어요? 상여가 사위스럽다구 그러우?” 
하고 상책을 거들어 말하였으나, 대세가 벌써   기울어진 뒤라 유복이의 말은 뒷
공론이 되고 말았다.  서림이가 상책 안 쓴것을 가석히 여겨서  한동안 쓴입맛을 
다시다가 꺽정이와 막봉이를 갈라보며  “우리들 떠나기 전에 박서방 부녀는 두
목들하구 먼저 보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한
번 막봉이를 돌아보고 나서 “좋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곧 떠나보내두
룩 준비를 시킵시다.” “능통이를 불러들일 테니  서장사가 알아서 준비를 시키
시우.” 꺽정이가  능통이를 방으로 불러들인  뒤에 서림이가 박서방  부녀 입힐 
의복과 박서방 부녀 태울 말을 준비하여 달라고 말하니 능통이는 한참 생각하다
가 “우리짐 안사람을  이번에 함께 보내면 안될까요?” 하고  물었다. 능통이가 
청석골로 같이 갈 것은 벌써  파옥하기 전에 여러 두령에게 말하여 허락을 얻은 
일이었다. “안될 것  없소. 아들 없는 박샌님이 하필 박샌님이라구  할 거 있나. 
김샌님이나 이샌님이라구 하지. 하여튼지 진위나 용인  사는 어떤 샌님이 큰따님 
작은따님을 데리구 장단이나 풍덕서  사는 형님의 환갑이나 진갑을 보러 간다구 
하면 중로에 거침이 없을  거요.” 하고 서림이가 웃으니 여러 두령  중에 이 사
람 저 사람이 “됐거니.”  “꾸며대는 말이 참말 같소.” “박서방이 샌님 노릇
을 잘할까.”  “천생 샌님이던데 샌님 노룻을  못하겠나.” 하고 지껄이며 다들 
같이 웃었다. 능통이가 밤을 새워가며 준비를  해놓아서 이튿날 아침때 신불출이 
등 작은 두목 네 사람이  능통이 수하 졸개 두 사람과 같이 막봉이의 장인과 안
해와 는통이의 안해를 배행하여 길을 떠나게  되었다. 막봉이의 장인은 능통이의 
행세옷을 얻어 입고  막봉의 안해는 여벌 옷을 얻어 입었는데,  체수들이 비슷비
슷하여 별로 얻어 입은 표가 나지 아나하였다.  막봉이의 장인은 고집 있는 사람
이라 변성은 죽어도 안 한다고  고집하여 박생원 행세할 작정하고 체양 넓은 갓
을 쓰고 소매 달린 큰옷을 입고 한손에  쥘부채를 들고 안장마를 타고, 막봉이의 
안해는 박서방의 외딸이 박생원의  작은딸로 변하여 양반댁 아씨 노릇 하느라고 
치마를 폭 써서 두 눈만 빠끔하게 내놓고  부담마에 올라앉고, 역시 부담마를 탄 
능통이의 안해는 박생원의  큰딸 노릇을 하기로 하고  머리에 치마를 쓰고 품에 
젖먹이 아들을  안았었다. 능통이에게 너울도  있었으나 시골 양반의  집 부녀가 
서울 시체 모양을  내면 도리어 보는 사람들  눈에 유표하다고 서림이가 너울을 
두고 치마를 쓰게 한 것이다. 작은 두목  세 사람은 견마잡이들이 되고 신불출이
는 남아서 하인이 되고 능통이의 졸개 두 사람은 짐꾼들이 되었다
. 짐꾼이 짐과 부담마의 부담에는 능통이 집  세간의 알천이 들고 길양식과 찬합
과 요강 망태는 견마잡이 된  두목들과 하인 된 불출이가 가벼운 잠 네 개로 갈
라졌다. 꺽정이가 청석골 가는 일행을 떠나보낸  뒤에 칠장사에 상목을 보내려고 
다른 두령들을 보고 보낼 사람을 의논하니, 다들  말이 일 맡아보는 중에게 시주
를 숨기라고 당부해 두려면 그 중과 낯익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여 꺽
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너  좀 갔다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천왕동이는 무명
짐을 지고 가는 것이 귀찮으니보다  새 부처님을 구경하고 오는 것이 마음에 당
겨서 꺽정이 말에 선뜻 네  대답하고 이십 필 무명을 졸개 둘과 셋이 갈라서 걸
머지고 곧 칠장사로 떠나갔다. 
 이날 저녁때 천왕동이가 데리고  간 졸개와 같이 돌아오는데 무명짐은 그냥 걸
머지고 왔다. 이때 몇 두령은 빈 안방에 와서  드러 누워 있고 몇 두령은 건넌방
에서 막봉이의 장창에  약을 붙여주고 있었다. 약은 오황산이니 청석골서  올 때 
허생원에게 물어서 아주 여남은 봉을 지어가지고 온  것이다. 지남 밤에 한번 붙
였는데 아픈 것이  적이 낫다고 하여 이날 벌써  두번째 새 약을 갈아 붙여주는 
중이었다. 약 붙여주는 것을 보고 섰던 꺽정이가  밖에서 나는 신발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너  벌써 다녀오느냐?” 묻고 대답도 듣기 전에 또다시 
“무명을 어째 도루  가지구 왔느나?”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무명짐을 걸머진 
채 봉당 앞에  들어와 서서 “쓸데없다구 받지 않기에 도루  가지구 왔소.”하고 
대답하였다. “쓸데없다구 받지 않다니 무슨  소리냐?” “죽산읍내 부자 양반의 
집 홀어머니가 시주루  나서서 불상 수공두 어제 벌써 다  치러주었답디다.” “
우리가 줄 것을 중간에서 앞질러 준 년이 어떤 년이란 말이냐?” “부자 양반의 
집 홀어머니라니까.”  “글쎄, 글 홀어머니년이  어떤 년이란  말이야?”"그렇게 
자세히는 캐어 물어보지  않았소.“ ”불상재이는 아직 절에 있지?“  ”절에 있
습디다.“ ”그럼 불상쟁이더러 먼저 받은 무명을  내노래서 발루 짓밟든지 아궁
에 처넣든지 하구 가지구 간  무명을 수고으로 받으라구 내주구 올 것이지 그걸 
덜레덜레 두루  지구 온단  말이냐?“ ”조용히 상좌중 갖다 주구 말 내지 말라
구 당부하구 오라지 않았소. 상좌중이 안 받는 걸 어떻게 한단 말이오.“ ”받지 
않으면 내던지구라두 오지 무얼 잘했다구 발명이냐.“  ”주구서 말 재지 말라구 
당부하느니 안 주게  된 것이 되려 잘되지 않았소.“ ”도대체  상좌놈이 맹망스
러운 놈이다.  내가 보내는 걸 기다리지  않구 더러운 년의 재물루  불상 수공을 
주었던 말이냐. 아무리 선생님을 뫼시구 있던 놈이라두 버릇을 가르쳐 놔야겠다.
“ 
  안방과 건넌방에 있던  다른 두령들이 다 봉당에  나와 섰는 중에 이봉학이가 
천왕동이더러 ”걱정을  듣더라두 걸머진 짐이나 벗어놓구  올라와서 걱정을 듣
게.“ 하고 웃으니 천왕동이는 골난 데 웃는 것을  보고 골이 더 나서 ”내가 걱
정 들을 일 한 게 무어란 말이오?“ 
  봉학이에게 들이대듯 말하고 졸개가 벗어놓은 짐 옆에 가서 짐을 벗어서 동댕
이치듯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두령들이 천왕동이의 뒤를  따라 안방에 
들어와서 앉은 뒤에 봉학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한강에서 빰맞구 서빙고 와서 
눈을 흘겨두 분수가 있지,  형님한테 걱정 듣구 내게다 골부림을 한단 말인가.“
하고 나무라듯  말하니 천왕동이는 ”형님이 공연히  사람을 야단치니까 그렇게 
말했지 골부림한 게 아니오.“ 하고 발명하였다. ”어쭙지 않은 발명은 고만두구 
칠장사 이야기나 좀  하게.“ ”무슨 이야기요?“ ”대관절  부상이 잘됐든가?“ 
”잘됐는지 못됐는지 그거야 내가 보니 아우. 하여튼지 보긴 좋습디다.“ ”어디
다가 뫼셨든가?“ ”별당마루에 뫼신답디다.“ ”아직  뫼시진 않았든가?“ ”뫼
실 자리를 만드느라구 한참 뚝딱거립디다.“ 
  천왕동이가 봉학이의 묻는 대로 칠장사 이야기를 하느 중에 건넌방에 있던 꺽
정이도 안방으로 건너왔다. 꺽정이가 방문 앞에  서서 방안에 천왕동이를 들여다
보며 ”절에 구경꾼이 많이 왔더냐?“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야단맞을 때 골난 
것이 아직 안 풀려서  ”많습디다“ 대답하는  말소리가 볼메어 나왔다. ”너 골
났구나?“ ”사람이 부처님이 아닌 담에 애매하게 야단  만나구 골 안 나겠소.“ 
”너는 잘못한 게 없으니 고만두어라.“ ”잘못한 것  없는 줄 은 형님두 아시는
구려.“ ”불상을 아직 뫼셔놓지 않았더라지?“ ”오늘 저녁때 뫼신다구 합디다.
“ ”이왕  갔으니 구경이나 하구  오지.“ ”그렇지 않아두  구경하구 오려다가 
상좌중이 요전과 딴판으루  쌀쌀하게 굴기에 골이나서 고만  와버렸소.“ ”내가 
오늘 밤에 절에  가서 그눔보구 말을 좀 물어봐야겠다.“ 꺽정이  말끝에 봉학이
가 ”물어볼 것두 없이  안성 소문을 듣구 겁이 난 게요.  사람이 많이 모였으면 
그중에 소문 이야기할  사람이 없겠소.“ 말하고 봉학이 말끝에 또  서림이가 ”
불상으루 보면  되려 잘된 셈이니 덮어  두시는 게 좋겠소.“   말하니 꺽정이는 
길게 ”음“ 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그럼 천왕동이보구 통정의 말이라두 
있어야지.“ 한번 다시 짧게 ”음“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저녁밥들을 먹은 뒤에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을 보구 잠깐 칠장사를 갔다 온다고 말하니 봉학이가 꺽정
이더러 ”형님,  이왕 갈 바엔 나하구  같이 갑시다.“말하고 나섰다.  ”나 혼자 
잠깐 갔다옴세.“ ”같이 가서 안패될 일은  없지 않소.“ ”낭패될 일이야 없지.
“ ”그럼 같이 갑시다.  선생님 불상을 이번에 못 뵈이면 언제  다시 와서 뵈입
겠소.“ ”같이 가세.“ 봉학이에게 동행을 허락하는 말이 꺽정이 입에서 떨어지
자 ”형님, 나두 선생님 불상을 뵈이러 가겠소.“하고 박유복이가 나서니 꺽정이
는 두말  않고 ”그래라.“하고 마저 허락하였다.  세 사람이 동행하기로 되었을 
때 배돌석이가 ”여럿이 같이 가면 어떻겠소?“  하고 꺽정이를 보고 묻는데, 서
림이가 꺽정이의 앞으로 나서서 대답할  말을 뚱겨나 주는 듯이 ”여렷이 두 갈 
건 없지요.“ 하고 말하였다. 돌석이가 서림이를 돌아보며 ”서넛이 가나 여닐굽
이 가나 마찬가지지, 여닐굽이 간다구 난장판을 벌리겠소.“하고 성을 내서 말하
니 서림이는 약한 말소리로 ”내 생각엔 여럿이 함께 우 물려가는 게 재미가 적
을 것 같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돌석이가 다시 꺽정이를 보고 ”이왕이니 
우리 여렷이 같이  가서 전날 작정했던 대루 결의형제하구 옵시다.“  하고 말하
여 꺽정이가 선뜻  ”아무리나 하세.“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러나  저 사
람은 어떻게 하나?“하고  누워 있는 막봉이를 가리켰다. 돌석이가  꺽정이의 말
을 듣고 막봉이  옆에 와서 ”자네 어떻게  할 텐가, 빠질 텐가?  자네가 빠지면 
재미없네. 교군이라두  타구 가세.“ 하고 말한즉  막봉이는 일어 앉으려고 몸을 
움직이었다. 돌석이가 막봉이를  거둘어서 일으켜 앉히는데 다른  두령들은 막봉
이가 일어  앉는 것을 보고 곧  갈 의향이 있는 줄을  짐작하였으나, 서림이만은 
막봉이에게 말해 둔  간이 있어서 일어 앉아서  가지 싫다고 말하려니 생각하였
다. 막봉이가 두 팔을  뒤로 짚고 비스듬히 앉으며 무거운 입을  열어서 ” 내가 
이번에 여러 형님들  덕에 살아나와 가지구 여러  형님들 결의형제하는 데 빠질 
수 있소. 칠장사가 여기서 몇십 리나 되는지  모르지만 가다가 다리루 걸어갈 수 
없으면 무릅으루 기어서라두  갈 테요.“ 말하고 여러 두령들의 얼굴을  죽 돌아
보았다. 서림이  하나만 시뚝하고 그외에는 다들  좋아하는 빛이 있는데, 그중에 
배돌석이와 곽오주는 싱글벙글  웃기까지 하며 좋아하였다. 여러  두령들이 막봉
이를 태워 가지고 가려고  공론하고 능통이를 시켜서 교군꾼을 얻어오는 동안에 
박유복이가 서림이를 보고 ”서장사두 같이 갑시다.“  하고 이끄니 서림이는 고
개를 가로 흔들며 ”나야  가서 무엇하우?“ 하고 말하면서도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눈치로 꺽정이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 눈치를  꺽정이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우리하구 같이 가서 결의하는  절차나 좀 일러주구려.“ 하고 말
하니 서럼이는 대번에  ”결의하는 절차는 나두 모르는  걸 어떻게 일러 드리겠
소.“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다시 ”모르는 대루 일러주어두  좋소.“ 하고 
말하는데 막봉이가 서림이를 보고 ”서장사는 결의가 재미없다구 빠지기루 했다
지요? 결의에 빠질바엔  같이 가잘 것 없지 않소.“ 하고  말하여 서림이는 갑자
기 앞이마에 손을 대며 ”나는 머리두 아프구 일찌거니 자겠으니 속히들 갔다오
시우.“ 말하고 뒤로 물러 앉았다. 여러 두령이 막봉이를 교군 태워 가지고 칠장
사로 오는데 수곡을 지나고 초당마을을 지나서 북전고개를 올라오는 중에
 앞채 멘 교군꾼이 어둔 데 실족하고 미끄러져서 주저앉는 바람에 교군 안의 막
봉이가 앞으로 쏠려나왔다. 여러 두령들이 쫓아와  붙들어서 막봉이는 별로 다치
지 않았으나 앞채 교군꾼이 미끄러질 때 발목을 삐어서 꼼짝 못하겠다고 엄살하
여 돌석이가 오주더러 ”교군꾼들 다 고만두구  나하구 자네하구 교군하세.“ 말
하고 곧 둘이 교군 줄들을  메고 나서니 막봉이는 걸어간다고 교군을 타지 아니
하였다. 꺽정이가 이것을  보고 ”여기서 절이 얼마  안 되니 내가 업구 감세.“ 
말하고 막봉이가 좋다  싫다 말할 사이도 없이 들쳐업었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
들의 앞을 서서 고개 마루턱을 올라올 때 뒤에 붙어오던 봉학이가 ”절 안이 조
용한가 누구 하나 보내봅시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황천왕동이를 먼저 보내
고 고개 위에서  잠깐 동안들 앉아 쉬었다. 꺽정이가 교군꾼들더러  고개에서 기
다리라고 말을 이르니 교군꾼들은 어둔 데 있기가 무섭다고 같이 가기를 원하였
다. 천왕동이가 와서  절 안이 조용하다고 말하여 꺽정이는 다시  막봉이를 업고 
다른 두령들과 교군꾼들을 앞뒤로 세우고 칠장사로 내려왔다.  
  꺽정이의 일행이 닫힌  절문을 열라고 하고 절  안에 들어서며 바로 별당으로 
향하는데, 중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여 제법 말  한마디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별당이 영당으로 변하고 마루 안침에 불상을 뫼셔놓은 까닭에 여러 사람은 마루 
앞에 와서 발을  멈추고 옹긋쭝긋 섰다. 꺽정이가 막봉이 앉힐  자리를 돌아보다
가 방앞 툇마루 위에  내려 앉힐 때, 방안에서 자던 젊은  중이 자다가 인기척에 
놀라 깨어서  방문을 여는 데 막봉이가  공교히 문짝에 얻어 맞았다.  모르고 한 
일에 골날 것이 없건만,  꺽정이는 젊은 중을 벼르고 온 판이라  골아 나서 대번
에 ”이눔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중은 잠이 덜 깬데다가 겁을 
집어먹서서 꺽정이의 목서리를 못 알아듣고 ”방에 들어와 봐서 가져갈 만한 것
이 있거든 다 가져가우.“하고 위로 물러서는  것을 꺽정이가 툇마루에 올라와서 
손목을 잡아  내끌었다. 방안에 있는  희미한 등잔불이 꺽정이를  비추어서 중이 
비로소 알아보고 ”이게  누구요?“ 하려고 ”이게.“ 할 때   몸은 벌써 마당에 
나가떨어졌다. ”아이쿠!“ 여러 사람  중에서 박유복이가 쫓아와서 중을 붙들어 
일으켜 주었다. 중이  꺽정이를 치어다보며 ”임서방 이게 무슨  짓이오?“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툇마루에 선 채 내려다보며 ”네눔은 버릇을 좀 가르쳐 놔야겠
다.“ 하고 불호령을 하였다.  ”내가 잘못한 일두 없거니와 잘못한 일이 있기루
서니 스님  생각을 하더래두 이렇게 막볼  법이 어디 있소.“ ”잘못한  일이 없
다? 불상 수공을 내가 말해  놨는데 네 맘대루 다른 년에게서 얻어다가 준 것이 
잘한 일이냐?“ ”그 일 때문에 화가 나셨소? 그건 스님 불상을 위해서 한 일이
오. 불상이 뒷말썽이 있으면  우리가 다같이 황송하지 않겠소.“ ”그럼 먼저 통
정이라두 해야지.“ ”어디 기신  데를 알면 내가 찾아가서 말씀을 했을 게요.“ 
”내가 보낸 사람에겐  어째 말 안 했나?“ ”여러  사람 보는데 수상하게 굴지 
않으려고 서름서름하게 대접했소.“  꺽정이가 한참 잠자코 섰다가  마당으로 내
려오며 ”다친 데나  없소?“ 하고 물으니 중은 ”나중 봐야  알겠소.“ 하고 대
답하였다.  
  꺽정이가 불상 앞에서 결의할 것을 중에게 말하니 중이 내심에는 반갑게 여기
지 아니하나 하릴없이 불전에 등불도 밝혀  주고 향롯불도 담아주었다. 꺽정이가 
봉학이와 의논하고 결의 절차를 정하여  꺽정이 이하 여섯 사람은 향탁 아래 엎
드리고 봉학이는 향탁옆에 꿇어앉아서  일곱 사람의 성명과 연령 적은 종이쪽을 
손에 들고 축문 읽듯  읽었다. ”임꺽정이 신사생 삼십팔 세.“ ”이봉학이 신사
생 삼십팔 세.“  "박유복이 임오생 삼십칠 세. “  "배돌석이 임오생 삼십칠 세. 
“ "황천왕동이 을유생 삼십사  세. “ ”곽오주 임진생 이십칠 세. “ ”길막봉
이 정유생 이십이 세. “ 봉학이가 종이에 적힌  것을 다 읽은 뒤 그대로 마치기 
심심하여 ”결의형제 사생동고. “  두 마디를 구고로 보태었다. 그 다음에 꺽정
이로부터 막봉이까지 한  사람씩 부처님 앞에 분향하고 절하고, 또  그 다음에는 
아우 되는 사람이 형 되는 사람에게 절을 하는데 꺽정이가 여섯 사람의 절을 받
은 뒤 차례로 한 번씩 줄어서 오주까지 한 사람의 절을 받고 길막봉이는 꾸벅꾸
벅 여섯  번 절을 할 때  여러 두령이 돌려가며 거들어서  시켜주었다. 꺽정이의 
칠형제 결의가 끝난 뒤에 젊은  중이 꺽정이를 보고 조용히 의논할 말이 있다고 
방머리에 붙은 누마루 으슥한  구석으로 끌고 갔다. ”전후 두 번  절에 오신 것
이 관가에 입문이 되면 필경 절이 조용치 못할 터인데 우리 중들만 탈을 당하구 
말두룩 되지 않구 스님 불상에까지  누가 미치게 되면 어떻게 하우? “ ”이 절 
중들은 다 한통이오? “ ”우리 중들은 공론한 일이 있어서 죽을 곡경을 당하기 
전엔 말 낼 리 없지만 우선 불상쟁이가 속을 다 알구 있으니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소? “ ”그 사람은  내가 데리구 갈 테니 염려 마우. 그외에는  또 말낼 듯한 
사람이 없소? “ ”마당에 섰는 교군꾼들은 어떤 사람이오? “ ”예사 교군꾼이 
아니구 우리 액내 사람의 졸개니까 아무 염려 없소.  “ ”제일 좋은 수가 한 가
지 있는데 여러분께 어떨는지? “ ”좋은 수가 무어요? “ ”오늘 밤에 절에 왔
다 가신 것을 우리가 의수하게  꾸며서 죽산 관가에 고발해 두면 절에는 대단히 
좋겠으나 여러분께는  어떨는지 모르겠소. “ ”절에  좋두룩만 하우. “ ”그럼 
뒤탈이 나더래두 우리 중들에게는 다소 짐책이 있을는지 모르나 스님 불상은 염
려 없을 게요. “ ”불상쟁이가  어데 있소? 불러 주우. “ ”불러 드리는 건 유
소혐의하나 판두방 옆에 붙은 작은 방에 가서  불러내시우. “ 꺽정이가 젊은 중
과 쑥덕공론을 하고 나와서 다른 두령에게 대강 말을 이른 뒤에 곧 일행을 끌고 
나서는데, 막봉이더러 절 문간까지 걸어가자고 말하고  다른 두령들 시켜 양옆에
서 부축해 주게 하였다. 판도방 앞에 와서  꺽정이가 불상 장인을 불러내어 수어 
인사말을 마치고 ”내가 다른 절에 가서 불상을 파게 해줄 테니 나하구 같이 갑
시다. “ 하고  말을 붙이었다. ”절 이름을 가르쳐 주시면  나중 가겠습니다. “ 
”나하구 같이 가야 하우. “ ”지금 같이  가잔 말씀입니까? “ ”그럼 지금 가
잔 말이지. “ ”지금 어떻게 갑니까? “ ”지금 못갈 일이 무어요? “ "절에 셈
두 해줄 것이 있구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 “못 간다면 잡아가지구 갈 테야. 
” “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이 죄다. 네가 아직 나
를 잘 모르겠지?  나는 어젯밤에 안성서 옥을 깨친 임꺽정이야.  지금 나하구 같
이 갈테냐? 얼른 말해라. ”  “가겠습니다. ” “너의 행장을 다 가지고 나오너
라. ” 불상 장인은 수이 떠나려고 불상 수공  받은 것을 여간 행장과 같이 꼭꼭 
묶어 짐을 만들어 놓았는데,  짐이 두 개라 한 개는 꺽정이가  오주를 시켜 걸머
지게 하였다. 꺽정이는  막봉이를 업고 다른 두령들은 불상 장인을  데리고 북전
고개까지 와서 막봉이를  다시 교군을 태우려고 하는데, 발목 삐인  교군꾼 까닭
에 오주는 뒤채 메었던 교군꾼을 앞채로 보내고 자기가 뒤채를 메겠다거니 돌석
이는 앞뒤채 교군꾼들을 다 그만두고 자기가 오주와 같이 교군을 하겠다거니 막
봉이는 자기를 붙들어만 주면  걸어가겠다거니 각각 자기의 말을 ㅈ장하여 여러 
두령이 다 함께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게 되었다. 한참들 서로 지껄이는  중에 누
가 먼저 “불상쟁이가  어디 갔어? ” 하고 깨우쳐서  여럿이 다 같이 살펴보니 
불상 장인이 어느 틈에 짐도 벗어버리고 어둠  속에 없어져 버렸다. 불상 장인이 
가뭇없이 없어진 것을 보고  꺽정이가 화증난 목소리로 “제눔이 도망하면 얼마
나 도망했겠느냐? 어서들 사방으루 찾아보자. ” 말하여  여러 두령들이 곧 손을 
나누어 가지고 전후좌우의 풀밭을 뒤지는데 막봉이만 교군꾼들을 데리고 고갯길
에 남아 있었다.  사방으로 나가는 여러 두령들의 기척이 막봉이가  앉은 자리에
서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바로 막봉이 눈앞에 사람의 길이
 넘는 억새가 흔들리는  것 같으며 조심스럽게 버스럭거라는 소리가  났다. 막봉
이 옆에 앉았는 교군꾼들은 바스럭거리는 것이 혹시 큰 짐승이나 아닌가 의심하
여 숨들도 크게 쉬지  못하는데, 막봉이가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떼어서 가만
가만 앞으로 옮겨나갔다.  억새 속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히 사람의  기척인 것을 
알고 막봉이는 “그놈 여기 있소!  ” 하고 고성을 질러 외쳤다. 억새 속에서 별
안간 사람이 뛰어나오며 곧 고개 너머로 도망하려고 하여 교군꾼들이 앞을 막았
ㄷ. 그 사람이 다시  뒤로 돌쳐서는데 그 동안 일어선 막봉이가  팔을 벌리며 “
이놈 어디루 도망할라구. ” 하고 호령하니 그  사람은 막봉이를 업혀 오던 병인
이라고 만만히 보았던지 “네깐놈이! ” 하고 발길로 걷어찼다. 막봉이는 발길에 
걷어채여서 펄썩 주저앉으며 어느 틈에 그 삶의  발목 하나를 움켜잡았다. 그 사
람이 발목을 빼치려고 애를 쓰는  중에 교군꾼들이 쫓아와서 그 사람의 좌우 팔
죽지를 붙들었다. 막봉이가  잡은 발목을 놓고 다시 얼어서서 주먹으로  두어 번 
복장을 질렀더니, 그 사람은  칵 하고 무엇을 토하는데 비리내가 코를 거슬렸다. 
막봉이가 다리에는 힘이 없을망정 철퇴 같은 주먹에는 명치를 질러서 사람을 죽
일 힘이 남아 있었다.
  여러 두령들이 돌아와서 불상 장인이  죽어 자빠진 것을 보고 송장 처치할 것
을 공론하는데, 고개에 버리고 가자는 사람이  많았으나 꺽정이는 혹시 칠장사에 
침책이 더할까 염려하여 가지고 가자고 말하였다.
  막봉이의 교군은 돌석이와 오주가  앞뒤채를 메고 교군꾼들은 불상 장인의 짐
을 지고  불상 장인의 송장은 꺽정이가  옆에 끼었다. 수곡길 어름까지  왔을 때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더러 “나는 이  송장을 죽산 관문 앞에 갖다놓구 갈 테니 
먼저들 가라. ” 하고  말하니 여러 두령 중에 봉학이가 “왜  하필 관문 앞에다
가 갖다놓으실라우? ” 하고  물었다. “죽산현감더러 끌어 묻어주란 말이지. ” 
“만일 되살아나든지 하면  탈이니 달골루 하지구 갑시다. ” 꺽정이가  한번 다
시 생각한  뒤 “그러지. ” 하고  봉학이의 말을 좇아서 송장을  달골까지 끼고 
왔다.
  이튿날 식전에 칠장사 중이 죽산 관가에 들어와서 현감을 뵈입고 “어제 밤중
에 화적패가 절에 들어와서 절을  뒤진 끝에 새 부처님 뫼신 것을 보구 무슨 맘
으루들 부처님께 젓수려구 하옵는  것을 중 하나가 밀막솝다가 얻어맞아서 지금 
굴신 못하구 누웠솝구, 절에 와 있던 불상쟁이더러  불상 수공 받은 것을 내라구 
하옵는데 선뜻 안 주고  앙탈하옵다가 끌려가서 이내 돌아오지 않았솝는데 날샌 
뒤에 나가 보온즉 절 뒤 북전고개 위에 낭자한 피 흔적이 있사와 불상쟁이를 고
개에서 죽이구  갔나 의심이 드옵기루 전후좌우  두루 찾아보았사오나 화적들의 
짓빠댄 형적만 처처에  있을 뿐이지 불상쟁이의 시체는 어디구 없솝디다.  ” 하
고 아뢰어서 현감은 일변 형리를  내보내서 실지 형적을 검사하게 하고 일변 장
채를 내놓아서 화적의  종적을 수탐하게 하였다. 절에 도적 왔다간  형적과 고개
의 피흔적은 모두  확실무의하다 하나, 혹시 중들이 불상 장인의  재물을 빼앗으
려고 꾸민 일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 현감은 칠장사 중들을 많이 잡아다가 장
방에 구류를 시키었다.
  칠장사 중들이 잡혀 갇히던 이튿날 새벽에 죽산 관속이 조사를 보려고 관가로 
들어오는데, 바로 관문 앞에 거적 송장 하나가 가로놓여 있었다. 관문에 송장 갖
다놓은 것은 전고에 없는 변괴라 육방관속이 들어오는 대로 떼떼이 모여서서 쑥
덕쑥덕하는 중에 이방이 작청의  어른값을 보이려는 듯이 관노를 시켜서 거적을 
풀어제치게 하고 수형리를 불러서 타살인가 보라고  하였다. 살옥 검시에 이골난 
수형리가 송장의 눈뜨고 입 벌린 것을 보고 벌써 타살인 주 알면서도 말을 경하
게 않느라고 타살같이 보이나 검시해  보지 않고는 확적히 알 수 없다고 말하였
다. 조사 끝에 이방이 현감께 사연을 아뢰고  현감의 분부를 물어가지고 즉시 검
시 준비를 차리었다. 인명에 관한 중대한 일이라  현감이 친히 관문 밖에 나와서 
검시를 하는데, 우선 법물 없이  건검을 시작하였다. 시신을 젖혀놓고 양면을 보
고 엎어놓고 합면을  보니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두 손도 벌리고 목에 줄매인 
자국이 있고, 심감에서 흉당에 걸쳐서 큰 손바닥  넓이 만큼 살빛이 검붉고 그외
에는 앙면, 합면에 별반 상처가 없었다. 목에 잇는 줄자국이 살에 묻히도록 깊이 
박혔으나 목배에 죽은 시신은 아닌 것이 혀가 입 밖에 나오거나 이에 닿지 않고 
그대로 놓였고,  줄자국이 푸르거나 붉지 않고  희었다. 치명상은 구경 심감인데 
필사, 속사의 심감을 몹시 걷어채였거나 무식하게  얻어맞았거나 한 것이 분명하
였다. 원고도 없고  원척도 없는 이 시신이 혹시 칠장사에서  도적에게 잡혀갔다
는 불상 장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현감은 장방에 있는 칠장사 중 두엇을 데려 내
오라 하여 시신을  보인즉, 어떤 중은 시신을 향하여 합장하며  나무아비타불 찾
고 어떤 중은 현감께 향하여 합장하며  불상장이가 틀림없다고 아뢰었다. 적도에
게 죽은 사람은 면검도 하는 법이라 현감은 인읍 수령에게 복검을 청치 않고 상
사에만 보할 작정하고 시장에 현록을 마친 뒤에 시신을 초빈하여 주라고 이방에
게 본부하고 동헌으로 들어왔다. 현감이 보장을  꾸미려고 책방을 불러서 의논하
는 중에 이방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와서 “홍살문 설주 위에 난데 없는 화살 한 
개가 백혀 있솝기에  빼내려다 보온즉 도둑놈의 글발이 살 위에  매에 있솝디다. 
”  하고 아뢰고 난  뒤에 “그 글발을 감쪼시게 하옵기가 황송하돈데 어찌하오
리까?  ” 하고 취품하였다. “글발이란 게 무어란 말이냐? " "안전께 고목한 꼴
이온데 사연이  망유기극이옵니다. ” “그대루 이리  올려라. ” 이방의 바치는 
종이쪽과 화살을 급장이와 토인이 손이어 받아 올려서 현감이 화살은 옆에 놓고 
종이쪽을 펴서 보니 이방이  고목이라고 말하던 것이 고목이 아니요, 곧 배지다. 
첫머리에는 겉봉쓰는 일체로 죽산현감  즉견이라 하고 그 다음에 사연의 대지는 
“내가 불상 장인을 쓸데  있어서 칠장사에서 데려가는데 그자가 길에서 도망하
려고 하야 버릇을  가르친다는 것이 죽이게까지 되었노라. 죽인 것은  본의가 아
니라 측은한 마음이  없지 않으므로 장사나 후히  지내주고 싶으나 지금 총총히 
회군하는 까닭에 그런  일을 알음할 겨를이 없어서  이 지방의 주인인 현감에게 
부탁하니 아무쪼록 장비를  많이 들여서 안장하여 주기 바라노라. ”  한 것이고 
끝에는 관함을 두는  것같이 청석골 대두령 임이라고 쓰이어 있었다.  청석골 두
령 임이라니  바로 일전에 안성와서  변을 일으킨 임꺽정이라,  현감은 어이없는 
한편에 송구한 마음이 있어서  상사에 신보하는 조장은 즉을 발송하고 송장이나 
또 갖다 안길까 겁이 났더지 읍내 각동에 밤으로 순경을 돌리게 하였다.
  임꺽정이는 작은 고을  장채를 가지고 근포할 수 없는 대적이라,  현감이 임꺽
정이를 근포시킬 생각은 당초에  염두에도 두지 못하고 도리어 임꺽정이가 읍에 
와서 무슨 변이나 내지 아니할가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아무 일 없이 며칠 동
안 지난 뒤에 현감은 생각하기를  살인 흉범이 경내에 들어온 것을 알고 그대로 
덮어두면 관성이  좋지 못할 것이라,  꺽정이의 종적이나 탐지하여  보리라 하고 
뒤늦게 비롯 장채들을 내놓았다. 현감의 생각이  벌써 색책에 그치니 상탁하부정
으로 장교들은 한층 더 심하여  변변히 돌아다니며 탐문도 하지 않고 입들을 모
아가지고 들어와서 “꺽정이가 경내에 와서는 묵은  형적이 없습디다. ” “안성
서 왔다가 안성으루 도루 간 것 같소이다. ” 하고 안성으로 밀어붙였다. 현감은 
칠장사 중들이 살인에 관련 없는  줄도 알고 칠장사 새 불상이 꺽정이와 사제간
이던 백정 중인 줄도 알아서, 중들을 내놓을  때 새 불상을 집어치우라고 이르고 
집어치우는 것을 보고 오라고 장교 두엇까지  안동하여 내보냈다. 중들은 관령을 
거역할 길이 없어서 백 년 천 년 길이길이 공양할 불상을 새로 뫼신 지 불과 며
칠 만에 들어내는데, 상좌중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중들도 모두 허우룩 섭섭하
여 마음을 지향하지 못하였다. 안동하여 나온  장교들을 후대하여 들여보낸 뒤에 
상좌중이 별당 누마루  한구석을 정하게 치우고 들어낸  불상을 남 안보게 뫼셔 
두었다.
  칠장사 불상을 집어치우게 한 뒤 현감이 백성들에게 칭원을 받고 늙은 어머니
에게 책망을 받아서 속으로 뉘우치는 마음이 없지  않던 중에, 남에 없는 것같이 
귀히 아는 외아들 여남은 살 먹은 아이가 어느 날 자다가 잠꼬대로 소리를 지르
고 이내  병이 났었다. 현감의 늙은  어머니가 현감을 보고 “그애  병이 심상치 
않은 품이 칠장사  부처님의 동티인 것 같다. 그 부처님이  영검스럽다는데 함부
로 들어내게 했으니 어째 동티가 없겠느냐. 도로  뫼시게 하고 불공을 드려 보았
으면 좋겠다. ” 하고 말하니 현감은 “글쎄요. ” 하고 어머니의 말을 좇으려고 
생각하다가 한번 결처한 일을 뒤집는 것이 체모에 손상될 염려가 있어서 “잘했
던 못했던 한번 해논 일을 지금 와서 다시 어떻게 합니까? ” 하고 고쳐 대답하
였다. “부처님을  다시 뫼셔놓으라구 네가  이르기 난중하면 내가  뒤로 사람을 
보내서 이르겠다.  그러고 불공을 드릴 때  내가 친히 가서 부처님께  저쑵고 올 
테다. ” “불공을 드리라고 사람을 보내시는 건 몰라도 몸소 가실 건 없습니다. 
” 내아 대부인  마님의 말씀으로 칠장사의 새  불상을 다시 들어내서 뫼셔놓게 
되었다. 부처님의 영검이든지  의약의 효험이든지 또는 병이 절로 날  때가 되었
던지 현감의 아들 병이 공교히 새 불상에 불공 드리던 날부터 낫기 시작하여 며
칠 후에 씻은 듯 부신 듯 다 나았다.  칠장사 새 부처님의 영검스러운 소문이 더
욱 높아서 병  있는 사람은 병 낫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고 자손 없는 사람은 
손 보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려서 한참 당시에는  일년 삼백육십오일에 불공 안 
드는 날이 며칠이  안 되었다. 이 영검스러운 부처가 별명이  백정부처니 백정부
처는 지금까지  칠장사에 남아 있다. 백정부처의  몸에 칼자국이 있는데, 중들의 
전설을 들으면 어느 때 술취한  양반 한 분이 백정부처를 와서 보고 ‘백정놈의 
부처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칼로 찍고 곧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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