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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청석골
1
이때 조선팔도에 도적이 없는 곳이 없으되 그중에 황해도가 우심하였다. 황해
도 일경은 변동도적의 소굴이었다. 황해도 민심이 타도보다 사나우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황해도 양반이 타도보다 드세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황해도
관원의 탐학과 아전의 작폐가 타도보다 더 심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건만 황
해도 백성은 양순한 사람까지 도적으로 변하였다. 양순한 백성이 강포한 도적으
로 변하도록 지방의 폐막이 가지가지 많은데 그중의 가장 큰 폐막은 두 가지였
다. 한 가지는 각색공물이니 나라에 진상하는 물품이 너무 많아서 민력으로 감
당할 수가 없고, 또 한 가지는 서도부방이니 평안도 변경에 수자리 살러 가는
것이 괴로워서 민정이 소연하였다. 황해도의 지광이나 토품이나 인구나 물산이
다 하삼도에 대면 어림없이 못한데 진상물품은 종목과 수량이 하삼도보다 훨씬
더 많고 또 까다로웠다. 가령 노루 진상으로 말하더라도 그저 노루면 다 쓰는
것이 아니고 사냥꾼의 말로 ‘수건부치’ 니 ‘대장’ 이니 하는 큰 노루라야
쓰는 까닭에 진상에 쓸 것을 몇마리 고르느라면 백여마리씩 잡을 때도 없지 아
니하였다. 그래도 노루는 흔하니 소산 이라고도 하겠지만 사슴으로 말하면 국초
에는 흔하였는지 모르나 당시는 거의 절종이 되어서 소산도 아닌데 진상 종목에
들어 있었다. 녹용 같은 약재와 녹포 같은 별미는 진상할 만한 물품이나 되지만,
녹미 ( 사슴 꼬리 ) 녹설 ( 사슴 혓바닥 ) 같은 약재도 아니요 별미도 못 되는
물품이 진상을 시키는 건 단초에 까닭 모를 일이었다. 소산이 아니라 할 수 없
이 서울 가서 사서 바치는데 전의 진상품이 밖에 나온 것을 되사서 바치니 우습
기 짝없는 일이건만, 진상품이 사옹원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또 들어가는 사이에
황해도 백성의 고혈이 마르니 웃기는커녕 통곡해야 좋을 일이었다. 일기 더운
때 생물을 진상하자면 서울 오는 동안에 빛이 변하고 맛이 가서 퇴짜를 안 맞을
수 없고 퇴짜를 안 맞자면 진상 받은 관원으로부터 하인에게 까지 인정을 안 쓸
수 없었다. 이 까닭에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는 속담까지 생
기었었다. 진상에 인정에 백성의 고혈이 말라드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
며 작청에서 관가에서 또는 감영에서 고혈을 빨아갈 수 있는 대로 빨아가니 백
성은 중병 든 것같이 피골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황해도의 군역은 서울 상번
외에 평안도 변경방비가 더 있어서 갑사 . 기병 2천 명 이 10월 초일일부터 이
듬해에는 다른 2천 명이 역시 번갈아서 의주 . 이산 . 강계같은 변경 요해지에
가서 수자리를 살러 가는 곳이 멀고 가깝고 낫고 못한 것이 있으므로 군무맡은
이속이 이것을 가지고 농간하여 인정받으면 가깝고 좋은 곳을 택하여 보내주고
인정을 못 받으면 멀고 좋지 못한 곳으로 몰아 보내니 인정 줄 것이 있고는 좀
하여 안 줄 사람이 없고 수자리 살 곳에 가서는 서도 사람 ( 평안도 사람 ) 들
이 황군이라 일컫는 것을 으레 먹을 감으로 여겨서 등골가지 빼어먹는 까닭에
수자리를 한번 살면 몸에 남는 것이 없고 두번 살면 집에 남는 것이 없고 세번
살면 목숨까지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목숨을 보전하려고 도망을 하면 침책
이 일가에 미치고 이웃에 미쳐서 일가 사람과 이웃 사람까지 못살게 되었다. 을
묘년 난리뒤에 나라에서 서도부방을 영폐하기도 결정하여 황해도 백성은 살 수
하나 난 줄 알았는데 불과 사 년 만에 평안도 감사 . 병사의 장계로 말미암아
다시 복구하게 되어 고역을 새삼스럽게 치르게 되니 민정이 소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해도 백성들 생각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일반이니 꺼
리고 사리고 할 것이 없다고 칼 물고 뛰엄뛰기로 도적들이 되었다. 명화적패가
밤에 불켜 가지고 촌에 들어오는 건 예삿일이고 대낮에 읍에 들어와서 옥문을
깨뜨리고 관문울 에워싸고 관예를 죽이고 관물을 뺏어가는 일까지 혹간 이었다.
황해도 24관 관하에 이런 명화적패가 여기저기 있었지만 그중에 청석골패가 가
장 기세가 무섭고 이름이 높았다. 청석골 본바닥 도적 오가는 텃세와 나이 덕과
언변 힘으로 은연히 괴수 대접을 받아왔으나 인끔과 역량이 괴수 재목이 못 되
는 줄을 오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아는 까닭에 기회 보아서 임꺽정이를
괴수로 떠받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꺽정이가 길막봉이와 곽능통이를 앉아
서 연석 배설할 것을 공론하는 중에 오가가 한판 차리고 나앉으며 “여러분께
내가 말씀 한마디 할 것이 있소.” 하고 한두 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 “우리가
이때까지는 작구 큰일을 여럿의 공론으루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중에서 대
장 하나를 뽑아서 위에 세우구 대장의 호령과 약속으루 일을 해가두룩 하면 좋
겠소.” 하고 여러 두령을 둘러보았다. 서림이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는 눈치
들
이 빨라서 오가의 마음을 알고 임꺽정이와 박유복이와 배돌석이는 요량들이 있
어서 오가의 뜻을 짐작하나 눈치 없는 곽오주와 요량 적은 길막봉이는 오가 자
기가 대장이 되고 싶어하는 줄로 여기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오주가 먼저 “
대장 노릇이 하구 싶소?” 하구 들이대듯이 말하니 오가는 껄껄 웃으며 “내가
하구 싶다면 자네가 뽑아 줄라나?” 대답하고 막봉이가 그 다음에 “아무리 급
한 일이기루 잠깐 공론할 틈이야 없겠소!” 하고 심사 틀린 말투로 말하니 오가
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공론이란 게 좋긴 좋지만 잘못하다간 신주 개 물려보내
는 법이니.” 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잔치 차릴 것을 이
야기하는데 별안간 대장 뽑을 공론을 내시니 대장을 뽑아놓구 아주 큰잔치를 차
리잔 말씀입니다그려.” 하고 말하니 오가는 손뼉을 치면서 “일등 모사가 다르
구려.”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대장을 뽑자면 어떻게 뽑으실랍니까?” “내
일 아침 도회청에 모여서 공론해 뽑읍시다.” “대장만 뽑구 중군은 안 뽑으실
랍니까?” “내 생각엔 중군은 따루 뽑지 않아두 좋을 듯하나 그것두 공론해 작
정합시다.” 오가가 서림이와 서로 수작하는 중에 오주와 막봉이는 “대장쟁이
가 나거든 도리깨나 하나 새로 치어 달랄까.” “도리깨가 있는데 또 치어 달래
서 무어하우. 아무것도 없는 나나 하나 치어 달라지.” “도리깨가 갖구 싶은가?
” “나는 굵은 철편을 하나 치어 갖구 싶소.” 하고 서로 주거니받거니 지껄이
는 것을 유복이가 오주에게 눈을 흘기고 돌석이가 막봉이에게 손짓하여 더 지껄
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튼날 아침에 여러 두령이 도회청에 모여서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오가가 좌중을 돌아보며 “자, 우리 대장 뽑을 공론들 하세.” 하고
말을 꺼내고 곧 다시 “공론할 것 무엇 있나, 임두령을 우리 대장으로 뫼시지.”
하고 말하니 꺽정이만 잠자코 앉았고 그 나머지 여러 두령들은 일제히 좋다고
소리치는데 오주와 막봉이는 오가를 돌아보며 고개까지 끄덕거리었다. 오가가
작은 두목을 불러서 미리 준비한 주홍칠한 교의를 갖다가 도회청 중간에 놓게
하고 오가와 서림이가 꺽정이 앞에 와서 교의에 가서 앉기를 청하고 곧 좌우에
서 부축하려고 하니 꺽정이가 손짓하여 말리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교의에 와
서 걸터앉았다. 새 대장이 교의에 앉은 뒤에 와가와 서림이가 여러 두령과 같이
줄을 지어서 군례로 보이고 그 다음에 작은 두목과 졸개들을 불러들여서 새로
현신을 드리게 하였다. 꺽정이가 대장 칭호를 받은 뒤에 오가의 말을 들어서 서
림이를 종사과능로 정하고, 또 서림이의 의견을 좇아서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대장 좌우에 시위할 군관으로 정하였다. 서장사가 서종서로 변하고 신시위와 곽
시위가 새로 생긴 외에는 칭호 갈린 사람이 없으니 여러 두령은 전대로 두령이
라고 일컫고 작은 두목은 그저 두목이라고 일컬었다. 도회청에 전좌하는 석차를
고쳐 정하고 매일 아침에 조사 보는 절차를 새로 정하였다. 도회청 정면에 교의
셋을 느런히 놓고 동편과 서편에 교의 셋씩을 마주 놓았는데 정면 중간에 놓인
교의 하나만 특별히 높고 그 나머지 교의들은 일매지게 낮았다. 높은 교의가 대
장 임꺽정이의 자리인 것은 말할 것이 없고 대장의 좌편은 늙은 두령 오가의 자
리요, 대장의 우편은 새 종사 서림이의 자리요, 곽오주와 세 두령은 동편 자리에
앉게 되고 배돌석이, 황천왕동이, 길막봉이 세 두령은 서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것은 고쳐 정한 석차이고 대장이 아침 일찍이 도회청에 나와서 자리에 앉은
뒤에 먼저 여러 두령이 대장 앞에 와서 국궁하고 자레에 가서 앉고 두 시위가
좌우에 뫼신 뒤에 두목들이 대청에 올라와서 국궁하고 내려가고 나중에 졸개들
이 마당에 들어와서 국궁하고 물러가는데 국궁 진퇴에 창까지 있었다. 이것은
새로 정한 조사 절차니 도회청 석차와 조사 절차만으로도 대장의 위풍이 나타나
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장이 여러 두령과 공론하고 싶으면 공론하고 그렇지 않
으면 종사관 하나만 데리고 의논하고 종사관과도 의논하고 싶지 않으면 혼자 생
각으로 결단하여 여러 두령과 두목에게 명령하고 지휘하게 되니 대장의 권력은
그 위풍에서 더 지났다.
꺽정이가 대장 되던 날부터 사흘 동안 큰 잔치가 있었고 잔치가 끝난 뒤에 돌
석이와 막봉이가 비로서 새살림들을 차리어 도회청 좌우 옆채가 비게 되어서 꺽
정이가 불출이와 능통이를 갈라들게 하였는데 불출이는 처자 없는 사람이라 전
날 돌석이나 막봉이와 같이 졸개 두엇을 데리고 홀아비 살림을 시작하였다. 꺽
정이가 불출이의 홀아비 살림을 걱정하여 계집 하나를 얻어주어야겠다고 말할
때 박유복이가 마침 옆에 있다가 “오두령집 기집아이년과 짝을 맞쳐주면 어떨
까요?” 하고 물었다. “그거 좋겠다. 그년이 나이 몇 살이냐?” “올해 열아홉
살인가 스무 살이지요.” “과년하구나.” “보기가 징하도록 큽니다.” “오두
령을 청해다가 말해 볼까?” 꺽정이가 오가를 청해 오려다가 그만두고 유복이더
러 “오두령 내외에게 다 말을 하는 것이 좋으니 네가 잠깐 오두령 집에 갔다오
너라.” 하고 일렀다. 오가는 청석골을 꺽정이에게 바치고 바로 한양하기를 청하
여 꺽정이가 조사 보는 것까지 면하여 준 까닭에 집에 들어앉아서 약국 하는 허
생원이나 또는 꺽정이가 붙들어 둔 관상쟁이를 불러다가 말벗삼아서 한담으로
소일하는 때가 많았다. 박유복이가 오가의 집에 갔다와서 “오두령 내외분이 다
형님 생각대루 하시라구 말합디다.” 하고 말하여 꺽저이가 곧 가까이 있는 불
출이를 불러서 의향을 물으니 불출이는 두 손길을 맞잡고 황감한 처분이라고 대
답하였다. 불출이의 혼인이 쉽사리 완정되어서 불일성례를 시키었다. 불출이 혼
인 뒤 불과 며칠 안 되었을 때 동쪽 기프내와 북쪽 수리미로 관군이 들어온단
소식이 들리더니 뒤미쳐서 남쪽 양짓말과 서남쪽 탑고개와 서쪽 금교역말에서
급한 보발들이 들어오는데 다같이 관군이 쳐들어온다는 기별이었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모아놓고 관군 막을 일을 의논하는데 의호 먼저 계책을 말할 서림
이가 여로 두령이 제각기 말마디씩 하도록 입을 떼지 아니하여 꺽정이가 서림이
를 보고 “서종사는 왜 말이 없소?” 하고 책망하는 기색으로 말하였다. “저는
지금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더 좀 생각해 보랴구 아직 말씀 않습니다.
” “아직 말 안하면 언제 말할 테요?” “낮에 더 좀 생각해 가지구 밤에 다시
와서 말씀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 앉았을 것 없이 집으루 가는 게 좋지 않
소?” “조용하게 혼자 누워서 생각하는 게 좋다뿐입니까. 지금 곧 집으루 갈랍
니다.” 서림이가 먼저 일어나 간 뒤에 박유복이가 서종사의 계책을 들어보고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으나 곽오주는 공연히 푸푸 하고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는 현연히 불만하여 하고 게다가 배돌석이가 서종사의 계책을 들어보
기 전인들 의논하여 낭패될 것이 무엇이냐고 말하여 여러 두령이 한동안 의논들
을 계속하였다. 그 의논은 대개 두 가지에 불과하였으니 한 가지는 여러 두령이
네 패로 나누어 일시에 사방으로 나가서 관군과 접전하자는 것이요, 또 한 가지
는 여러 두령이 함께 나가서 사방 돌아가며 차례차례 관군을 쳐물리치자는 것이
었다. 꺽정이는 처음부터 의논에 참례 아니하고 앉아서 듣기만 하다가 여러 두
령이 두 가지 의논의 우열 장단을 다투느라고 받고채기가 서로 떠들 때 “고만
들 떠들어라. 내가 서종사하구 상의해서 결정하겠다.” 하고 말하여 더 떠들지들
못하게 하였다. 저녁때가 거의 다 되어서 여러 두령은 모두 흩어져 가고 꺽정이
혼자 사랑에 앉아서 관군 막을 계책을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중에 서림이가 들
어왔다. “벌써 저녁을 먹구 왔소?” “먹었습니다.” “저녁이 일렀구려.” “
재촉해서 두어 술 떠먹구 왔습니다.”“아까 더 생각한다든 건 인제 말하게 됐
소?” “조용한 틈에 말씀하려구 급히 왔습니다.” “대체 무슨 좋은 계책이오?
” “안 뜰아랫방 같은 조용한 데 가서 말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밖
에 샐까 봐 염려요? 그럼 이 사랑에 딴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면 되겠구려.”
꺽정이가 밖을 내다보며 “불출이 게 있느냐?” 하고 소리치니 신불출이가 녜
대답하며 돋 쫓아와서 앞 툇마루에 양수거지하고 섰다. “능통이 밥 먹으러 갔
느냐?” “아직 안 갔습니다.” “능통이는 밥 먹으러 가라구 하고 너는 밖에
나가 서서 사랑에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그러구 너두 내가 부르기 전엔
들어오지 마라.” “두령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오리까?” “내가 사람을 금하랬
다고 말 못 한단 말이냐!”“녜, 잘 알았소이다.” 불출이가 미처 밖에 나가기
전에 오가가 사랑마당으로 들어왔다. 오가는 낮에 여러 두령이 모였을 때 빠진
까닭에 사과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불출이가 오가를 보고 한걸음에 쫓아내
려가서 앞을 막으며 “대장께서 사람을 금하라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꺽
정이가 방에서 듣고 툇마루에 나서서 “저리 비켜서라!” 하고 불출이를 꾸짖
어 한옆으로 비켜세운 뒤에 한자리에 박은 듯이 서 있는 오가를 내려다보며 “
무슨 일이 있어 오셨소?” 하고 물으니 오가는 “아니요, 낮에 못 와서 잠깐 보
입구 가려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다른 일은 없소?” “없습니다.”
“그럼 가시우. 지금 서종사의 계책을 들을 참인데 계책이 밖에 새면 안된다구
해서 사랑에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금하라구 방금 영을 나린 끝이오.” “그
렇습니까. 그럼 바루 가겠습니다.” 오가가 돌아서 나간 뒤에 꺽정이는 “인제
밖에 나가 있거라.” 하고 일러서 불출이까지 내보내고 방에 들어와 앉아서 “
자, 인제 계책을 들어봅시다.” 하고 서림이의 말을 재촉하였다. 서림이가 저의
생가을 말하기 전에 “아까 저 간 뒤에 여러분이 더 의논들 하셨습니까?” 하고
물어서 꺽정이가 낮에 의논들의 골자 두 가지를 이야기하여 들린 뒤 “내가 서
종사하구 상의해서 결정하기루 했소.” 하고 말하였다. “두 가지 의논이 다 좋
습니다. 그러나 도대체루 말하면 이번 관군은 그다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관군의 속을 어떻게 알아봤소?” “별루 알아본 건 없지만 제 속에 요량이 있
습니다.” “요량을 좀 이야기하우. 어디 들러봅시다.” “지금 북쪽으루 내려
온다는 것은 분명 신계 군사일 게구 서쪽으루 들어온다는 것은 주장 평산 군사
일 게구 동쪽과 서쪽을 에워싼다는 것은 송도 군사일 텐데 이중에 혹 경군이 섞
였을지는 모릅니다. 늦은 봄에 황해감사가 갈리구 송도 도사가 새루 나지 않았
습니까. 사람 좋은 전 황해감사가 대간의 탄핵을 맞구 갈린 것두 우리네 때문이
구 남행짜리루 내려오던 송도 도사를 전에 없이 호반이 해온 것두 우리네 때문
이니까 황해감사와 송도유수가 협력해 가지구 우리를 치러 오는 것이 벌써 있음
직한 일이건만 황해감사나 송도 도사나 온 뒤 서너 달이 지나두룩 아무 소리 없
다가 인제 일으키는 것은 이번에 조정 명령이 내린 모양입니다. ” “그런데 염
려할 거 없다는 건 무얼 보구 하는 말이오?” “아무리 사면팔방으루 들어오드
래두 우리 힘으루 막을라면 막을 수 있구 피할라면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슬그머니 피해 주면 어디 가서 좀도적을 잡거나 아무 까닭 없는 백성을 잡아다
가 치도곤으루 두들겨서 대적을 만들어 색책하구 말 것입니다.” “피하다니
창피스러운 소리 하지 마우.” “앞으루 큰일을 하실 텝니까? 만일 큰일을 하실
테면 작은 창피는 참으셔야 합니다.” “창피를 참아서 될 일이 무어요?” “지
금 우리 힘으루 해주 감영 하나를 뺏어서 차지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 잘
하는 사람이 생각해 보구려.” “화내지 말구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앞으루 큰일을 하실하면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황해도를 차지하시구 그 다음에
평안도를 차지하셔서 근본을 세우신 뒤에 비로소 팔도를 가지구 다투실 수가 있
습니다. 그런데 황해도를 차지하기기까지는 아무쪼록 관군을 피하시구 속으루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꺽정이가 서림이 말을 들을 때 눈썹을 치어들리고 입
이 벌려지더니 몸을 움직여서 서림에게로 가까이 나앉으며 “황해도 하나를 차
지하두룩 되재두 졸개가 사오백 명 있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졸개
는 그리 많지 않아두 될 수 있을 겝니다.” “어떻게 해서?” “다른 패들을 쓸
테니까 우리 패가 많지 않아두 됩니다.” “다른 패라니 어떤 패 말이오?” “
황해도 땅에 있는 패만 치드래두 평산에 운달산패와 멸악산패가 있구 서흥에 소
약고개패와 노파고개패가 있구 신계 토산에 학봉산패가 있구 풍천 송화에 대약
산패가 있구 황주 서흥에 성현령패가 있구 재령에 넓은여울패, 수안에 검은돌패,
신천에 운산패, 곡산에 은금동큰고개패, 이외에두 각처에 여러 패가 있지 않습니
까. 한패가 적으면 삼사 명, 많으면 수십 명씩 될 터이니 이런 패를 우리 휘하에
넣은 뒤에 각처에서 일시에 일어나두룩 기일을 정해 주구 그 기일에 우리는 해
주 가서 삼영을 뺏구 들어앉으면 황해도가 우리 것이 될 것 아닙니까?” “그럼
이후루는 여러 패들이 손아귀에 휘어넣두룩 애를 써야겠소.” “우리의 성세를
가지구 조금만 애를 쓰면 우리 손아귀에 척척 휘어들 겝니다.” “지금 관군을
피하자면 어떻게 피해야겠소?” 하고 꺽정이는 그동안에 벌써 창피하다던 것도
잊어버리고 피할 계책을 믿게 되었다. 꺽정이가 관군 피할 계책까지 묻게 되는
데 서림이는 좋아서 싱글싱글 웃으며 “관군을 헛물 키일 계책이야 얼마든지 있
지요. 그런데 먼저 말씀할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슨
말이오? 어서 말하우.” “여기가 처녑 속같은 산중이라 자리가 좋긴 하지만 우
리가 힘을 기르는 동안은 여기 한 군데 붙박여 있는 게 좋을 것 없으니 강원도
땅, 평안도 땅 또는 함경도 땅에 이런 자리를 몇 군데 만들어 놓구 이
도, 저 도루 넘나들어서 종적을 황홀하게 하는 것이 좋구요, 우리의 힘이 엔간히
자란 뒤에는 황해도에 와서 어느 산성 하나를 뺏어서 웅거하는데 그것두 거사하
기 전까지는 해주 감영에서 가깝지 않은 산성이 좋을 것입니다.” “졸개들을
끌구 이 도, 저 도루 옮겨다니자면 그게 여간 큰일이오.” “졸개는 일일이 끌구
다닐 것 없이 각처에 묻어두지요.” “각처에 묻어둔다니, 어떻게 한단 말이오?
” “우선 이번으루 말씀하더라두 우리가 관군을 피해서 다른 데루 가는데 두목
졸개 백여 명을 어떻게 다 끌구 갈 수 있습니까. 강음 이방, 평산 이방 같은 우
리의 청을 잘 들을 사람이나 토산 좌수, 장단 호장같은 우리와 기맥 통하는 사
람한테 몇 사람씩 떼어맡겨서 읍촌간에 파묻어 두어 달라지요.” “떼어맡겼다
가 우리가 다른 데루 간 뒤에 관가에 내어바치면 어떻게 하우?” “졸개를 떼어
맡길 때 말마디나 뒤를 눌러두면 아무 일 없을 겝니다. 저의들이 언감생심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강원도, 평안도 등지에다가 이런 자리를
만들자니 좋은 자리를 더러 생각해 봤소?” “생각해 보구말구요, 제 생각에 좋
은 데를 말씀하면 강원도 땅에는 이천의 광복산이나 주음동이 좋구요, 함경도
땅에는 안변 황룡산 속이나 덕원 철관 근처가 좋구요, 평안도 땅에는 양덕의 고
수덕과 맹산의 철옹성이 좋구, 성천 회산 제물성 같은 데두 좋습니다.” “이번
에 관군을 피해 간다면 어디루 가는 게 좋겠소?” “제 생각에는 가까운 이천
광복으루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천을 가재두 한두 번 접적은 해야 할걸.
” “우리가 여기서 나가기 전에 서북쪽 두 군데 관군을 물리쳐서 길을 틔어놔
야지요.”“그렇기에 한두 번 접전은 해야 한단 말이지.” “서쪽이 평산 군사구
북쪽이 신계 군사인 것을 적확히 안 뒤에는 저의들이 제대루 물러가두룩 꾀를
써보지요.” “무슨 그런 묘한 꾀가 있겠소?” “평산부사 장효범이는 사람이
덩둘하니까 오죽지 않은 꾀에두 넘어갈 것이구 신계현령 이흠례는 사람이 좀 똑
똑한 편이니까 여간 꾀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나 어떻게든지 물러가게 할 수
있지요.” “동쪽 남쪽 관군까지 다 꾀루 물리쳐 버리면 성가시게 피할 것두 없
이 좋지 않소.” “꾀로 물리치는 것이 어디 오래 갑니까. 한번 물리치더래두 얼
마 안 돼서 곧 도루 올 게니까 우리가 아주 잠깐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
어느 틈에 벌써 어두웠구려. 불 켜놓구 다시 이야기합시다.” “저녁 진지를 아
주 잡숫구 나오시지요.” “저녁밥을 조금 먹구 왔다니 내다가 같이 먹읍시다.”
“미리 저녁을 두 번 먹어둘까요?” 서림이는 소리를 내어 웃고 꺽정이는 빙그
레 웃었다. 꺽정이가 불출이를 불러드려서 불을 켜놓고 저녁상을 내오라고 일렀
다. 불출이가 청심박이 대초에 불을 당겨서 촛대에 붙이는 중에 꺽정이가 불출
이더러 “그 동안에 어느 두령이 왔다 갔었느냐?” 하고 물으니 불출이는 초를
얼른 다 붙이고 일어나서 “그 동안에 황두령과 곽두령이 오셨는데 곽두령은 곧
도루 가시구 황두령은 지금 안에 기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외에는 왔
다 간 사람이 없느냐?” “대장쟁이 박가가 왔다 갔습니다.” “철편을 가져왔
더냐?” “철편이 아직 조금 덜 되어서 내일 갖다 바치겠다구 말씀 여주러 왔다
구 합디다.” “어제는 오늘 가져온다구 말하던 놈이 또 내일이야.” “너무 무
거워서 드다루기가 어려운 까닭에 일이 맘대루 되지 않는다구 중언부언하옵디
다.” “고만 안에 들어가서 밥상이나 내오라구 일러라.” “서종사 진지두 차려
내오라구 이르오리까?” 꺽정이가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얼마 뒤에 안팎
심부름하는 졸개들이 칠첩반상 옳게 차린 외상 둘을 내오고 또 반주상까지 따로
내와서 꺽정이와 서림이가 밥상은 각각 받고 반주 소주는 잔 하나로 돌려먹었
다.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리고 나서 꺽정이가 다시 불출이더러 “능통이가 오거
든 밖에 세워두구 너는 밥 먹구 박가에게 가서 철편을 내일 해안으루 가져와야
망정이지 만일 또 안가져왔다간 볼기에 살이 남지 않을 테니 알아 하라구 말을
일러라.” 하고 분부하였다. 불출이가 녜 대답하고 나간 뒤에 서림이가 “철편은
길두령 주실겝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막봉이더
러두 말 안한 것을 용하게 아는구려.” 하고 말하였다. “길두령이 철편 노래하
는 걸 수차 들은 까닭에 짐작으루 여쭈어 봤습니다.” “막봉이가 이번 같이 오
는 길에 저두 무슨 특별한 병장기를 하나 만들어 갖구 싶다구 말하기에 내가 철
편을 일러주었소. 내가 오던 이튿날 바루 박가를 불러서 만들라구 일렀는데 어
제 가져오마구 안 가져오구 또 오늘 가져오마구 안 가져오는구려.” “길두령이
힘은 장사지만 철편을 잘 쓸까요?” “곽오주 쇠도리깨 쓰듯 하
겠지.” “곽두령은 본래 도리깨질을 잘했답디다. 그러니까 법수 없이라두 능란
하게 쓰지만 길두령이 철편을 쓰자면 십팔반무예 아는 사람에게 좀 배워야 할걸
요.” “십팔반무예가 대체 무엇무엇이오? 알거든 좀 주워 쳐보우.” “제가 전
에 평양에 있을 때 진서위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그 동안 잊지나 않았는지 모르
겠습니다.” 하고 서림이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일궁 이노 삼창 사도 오검 육
모 칠순 팔부 구월 십극 십일편 십이간 십삼과 십사수 십오차 십육파두 십칠금
승투색 십팔백타.” 하고 무예 이름을 주워 외는데 간간이 떠듬떠듬하였다. “지
금 외운 것이 무슨 주문이요, 병장기 이름을 쳐보라니까 알아듣지두 못하게 그
게 무슨 소리요?” “저두 병장기 이름을 어디 잘 압니까?” “모르거든 진작
모른다구 하지.” 서림이는 무료하여 앉았고 꺽정이는 밖을 내다보며“거기 누
구있느냐?”하고 소리를 쳤다.꺽정이의 사람부르는 소리가 한번나자 곧 여러 대
답 소리끝에 불출이가 다시들어왔다.“능통이는 그저 안왔느냐?”“안 와서 부
르러 보냈읍니다.”“너 밥 먹었는냐”“능통이 온 뒤에 먹으려구 아직 안 먹었
읍니다.”“이두령께 사람을 보내서 얼른 오시라구 하구 다른 두령들두 오시는
대루 들어오시ㄱ게 하라.”“녜.”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부르러 보내는 것은 사람
소명한 봉학이에게 관군 피할 일을 상의하려는 것이거니 서림이는 지레짐작하고
“이두령두 관군과 접전되기를 바랄걸요.”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한참 만에 “
그렇기 쉽지.”하고 대답하였다.“이번 저의 계책을 여러 두령과 상의해서 결정
하시려면 말썽이 여간 많지 않을 것입니다.”“내가 한번 결정하면 고만이지 누
가 말썽을 부린단 말이오.”“만일 상의하신다면 말이올시다.”“상의할거 없는
걸 상의할 까 닭두 없구 상의하다가두 하기 싫으면 고만두지.”“그렇다뿐입니
까.한번 결정해서 말씀하시면 누가 감히 두말하겠습니까.그런데 이천 광복으루
가시겠단 말은 아직 뉘게든지 말씀 마십시오. 그말이 미리 밖에 나가면 재미 적
습니다.”“재미적으면 말 안하지.”얼마 뒤에 이봉학이가 와서 마루에 올라가
기침하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꺽정이는 가만히 앉아 있고 서림이는 일어나서 꺽
정이앞에 자리를 사양하고 아래로 내려앉았다.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바라보며“
내가 물어볼것이 있어서 불렀네.”하고 말하니“무얼 물어보실 것이 있습니까?
”하고 이봉학이는 꺽정이의 눈치를 살피었다.“십팔반무예가 무엇무엇인지 다
아나?”꺽정이의 묻는 말말이 이봉학에게만 뜻밖일뿐 아니라 서림이에게도 짐작
밖이었다.대체 꺽정이가 처지의 천한 것은 그의 선생 양주팔이나 그의친구 서기
나 비슷 서로 같이나 양주팔이와 같은 도덕도없고 서기와 같은 학문도 없는 까
닭에 남의 천대와 멸시를 웃어버리지도 못하고 안심하고 받지도 못하여 성질만
부지중 괴상하여져서 서로 뒤쪽되는 성질이 많았다. 사람의 머리 베기를 무밑동
도리듯 하면서 거미줄에걸린 나비를 차마 그대로 보지를 못하고 논밭에 선 곡식
을 예사로 짓밟으면서 수채에 나가는 밥풀 한낱을 아끼고 반죽이 눅을 때는 홍
제원 인절미 같기도 하고 조급증이 날 때는 가랑잎에 불붙은 것 같기도 하였다.
꺽정이가 서림이더러 십팔반무예를 물을때 서림이가 못 알아들을 글 외듯 하는
데 화가 나고 곧 조급증이 발작되어서 십팔반무예를 당장 알고 말려고 이봉학이
를 불러다가 묻게 된 것이었다.“십팔반무예는 왜 갑자기 물으십니까?”“자네
두 잘 모르나?”“왜 몰라요.”“알거든 말해봐.”“칼이 한쪽 날 양쪽날 두가지
요,창이 여느 창 삼모창 양지창 삼지창 네가지요, 도채가 여느 도채 긴자루도채
두가지니 칼창도채가 도합 여덟가지요,거기다가 활 쇠뇌 철편 철간 방패 작살
몽치 일곱가지를 넣구 또 올가미치는법,손질하는법,발길질하는법 세가지를 넣으
면 모두 여덟가지 아닙니까.그런데 작살과 올가미치는법과 발길질하는법을 빼구
그대신에 철퇴와 사슬낫과 총통이라구 불질하는 기계가 들기두 한답디다.”“인
제 잘 알았네.”하고 꺽정이는 곧 서림이를 돌아보며“서종사두 똑똑히 알았소?
”하고 껄껄 웃었다.그뒤에 황천왕동이가 안에서 나오고 배돌석이와 유복이가
작반해 와서 먼저온 이봉학이까지 두령이 넸이 모였다.꺽정이와 서림이의 밀담
한 이야기를 듣고 싶기는 네 두령의 마음이 서로 다를것이 없으나 꺽정이와 서
림이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것을 보고는 네 두령의 생각이 각기 같지 아니하
였다.‘구경은 우리에게 안 알리지 못하겠지.’생각하는것은 이봉학이요‘알려주
지 않는것을 지싯지싯 알려구 할것없다.’생각하는것은 배돌석이요‘알려줄때까
지 기다려보자.’생각하는것은 박유복이라,세 사람은 알고 싶어하는 눈치도 별로
보이지 아니하나 황천왕둥이는 얼른알고 싶어서 몸이 달 지경인데 곽오주와
길막봉이가 안와서 이야기를 못 듣거니 생각하여 “이사람들은 무어하느라구
아니오나.”하고 혼자 구노리마디나 좋이 하다가 나중에 꺽정이를 보고 “오주
하구 막봉이에게 사람을 안보내셨소?”하고 물었다. “안 보냈다”“그러니까
안 오지요.아까 오주가 왔다가 사랑에 사람 들이지 말라셨단 말을 듣구 두덜거
리며 갔어요.오주가 막봉이에게루 놀러갔으니 막봉이에게 사람을 보내봅시다.”
“저의들이 오구 싶으면 오겠지.”“우리는 언제까지든지 기다리고 있나요?”“
기다릴 일이 무어 있느냐?”“기다릴 일이 무어 있느냐?”“오늘밤에 이야기 안
하실테요?”“무슨이야기를 안 한단 말이냐?”“무슨 이야기라니요? 관군 막을
이야기를 낮에 중등무이하구마리 않았어요.”꺽정이가 대답을 아니하여 황천왕
동이는 또다시 다그쳤다.“형님이 서종사하구 상의해서 결정하신다구 말씀하셨
지요.”“아직 결정 안했다.”“서종사가 해 지기 전에 왔다는데 캄캄하두룩 상
의하시구 결정을 못하셨단 말이오? 한패루 나가느냐,네 패루 나가느냐 결정하기
가 그렇게 어려울까요.”“다른 계책을 이야기했다.”“다른 계책이 무슨 계책이
오?이야기 좀 하시우.사람이 속이 답답해 못 견디겠소.”황천왕동이의 조조히 구
는 것을 꺽정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우리가 이번에 관군을 피해서 어디루
가는것이 좋겠다구 이야기했다“. 하고 말하니 황천왕동이는 ”형님두 실없은
말씀 하시우.“ 꺽정이보고 말하고 이봉학이는 ”참말루 삼십육계의 상책을 생
각했소?“ 서림이보고 물었다. 꺽정이가 ”내가 너 데리구 실없은 말을 할 리
가 있느냐!“ 하고 황천왕동이를 나무라고 서림이가 ”삼십육계의 상책이라구
하는 것이 지금 우리게두 상책이 될 줄압니다“. 하고 이봉학이에게 대답한 뒤
네 두령은 서로 돌아보며 어이없어 하였다. 황천동이가 서림이의 앞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앉으며 ”서종사,종일 생각한 것이 그 따위 계책이요?“ 하고 시비
조로 말을내니 서림이는 천연스럽게 ”오늘 종일뿐 아니라 전부터 생각한 것이
요.“ 하고 대답하였다. ”관군 온단 말듣기 전부터 겁을 집어먹구 있었단 말이
요?” “겁나서 그런 계책을 생각한 것이 아니오.” “겁 안나면 왜 도망하자
우?” “얼마 동안은 관군을 슬슬 피하는 것이 좋을 줄 나는 믿소.” “대체 관
군을 슬슬 피하는 까닭이 무어요?” “이번 관군을 쳐서 물리친다면 우리힘으로
당할 수 없는 관군이 곧 뒤쫓아 대어들 것이오. 경기도·황해도·평안도·강원
도·함경도 오도 군사가 우리의 뒤를 짜르구 앞을 막구 좌우를 찌르면 우리는
물사죽엄하게 되거나 풍비박산하게 될 것 아니오.” “그게 겁쟁이 생각이 아니
구 무어요?” “우리 앞에 큰일이 있으니까 지금은 조심해야 하우.” “큰일이
란 게 무어요? 서울루 잡혀가서 능지당할 일이요?” 꺽정이가 별안간 화를 내며
“소견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고 소리를 꽥 질러서 황천왕동이가 고만
입을 다물뿐 아니라 다른 세 두령도 역시 입을 열지 못하였다. 이튼날 식전 조
사 끝에 꺽정이가 군령판을 들이라고 하여 군령을 내리는데 꺽정이의 말을 서림
이가 글로 받아 썼다. “대소인원은 3일 내에 타처로 반이하도록 일제히 속장하
되 속장할 물건은 경세한 것에 한하라. 너희 대소인원은 나 하나를 믿고 영을
순종하라. 영하에 고의로 헌화하거나 야료하는 자는 물론이요, 영의 가부를 의론
하는 자도 영을 순종치 않는 자라 마땅히 군율의 엄한 것을 알리리라.” 서림이
가 군령판에 쓰기를 마치고 한번 내려 읽어서 꺽정이는 말한것과 대의가 틀림없
는 것을 안 뒤에 영을 내돌리게 하였다.
곽오주의 길막봉이는 전날 밤에 황천왕동이를 만나서 관군을 피해 다른데로
가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날 새벽에 박유복이를 만나서 대장 말씀을 거스리
지 말라고 당부를 받은 까닭에 꺽정이가 군령을 내리는 동안 고개들을 푹 숙이
고 앉아 있었다. 도회청에서 흩어져 갈 때 황천왕동이가 넌지시 곽오주더러 “
아침 안 먹었거든 내게루 같이 가세.” 하고 말하니 곽오주는 고개를 끄덕이다
가 “어린애.” 하고 손을 내저었다. “어린것은 업혀서 밖으로 내보낼 테니 염
려말게.” “이쁜 아주머니에게 공연시리 미움 바치게. 어린애 없는 막봉이 게루
갈라우.” “그럼 내가 아침 먹구 막봉이게루 내려갈 테니 기다리게.” “그렇게
하우.” 곽오주가 길막봉이를 따라와서 꺽정이의 군령이 창피하다고 괴탄하고
앉았는 중에 황천왕동이가 와서 세 사람이 솥발같이 앉아 쑥덕공론을 시작하였
는데 그 공론은 서림이를 때려주자는 것이었다.꺽정이가 내린 군령은 어기지 못
하더라도 계책을 내바친 서림이는 가만둘 수 없다고 황천왕동이가 발론하여 곽
오주와 길막봉이는 다같이 찬동하고 서림이를 때려줄 소임은 곽오주가 혼자 맡
았다.
이날 점심때 곽오주가 서림이의 집 삽작문 앞에 와서 서종사를 부르니 안마루
에 들어와 앉았던 서림이가 곽오주의 목소리를 듣고 눈살을 잠깐 찌푸렸다가 도
로 펴고 딸아이를 손짓하여 불렸다. 이때 서림이의 안해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
디를 나가고 집에 없었다. “건너집 박두령께 가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만 오
시라구 말씀해라. 만일 박두령이 안 계시거든 그 옆집 오드령께 가서 그렇게 말
씀해라.” 하고 가만가만 일러서 울 뒤로 내보내고 삽작 밖에 나와서 “무슨 바
람이 불어서 곽두령이 네게를 다 오셨소.” 하고 웃으며 인사하였다. “못 올때
왔소?” “천민에 말씀이오.” “내가 청할 일이 있어 왔소.” “무슨 청이오?”
“조용하게 얘기 좀 해야겠소.” “그럼 잠깐 들어오시우.” “여기는 번라하우.
내게루 가서 얘기합시다.” “니는 점심 먹구 곧 대장께를 가야겠소.” “대장께
는 가두 내게는 못 가겠단 말이오?” “그럴 리가 있소. 틈나는 대루 가리다.”
“언제 틈나기를 기다리겠소. 지금 좀 갑시다.” “지금은 못 가겠소.” “일부
러 청하러 왔는데 못 간다니 그게 말이요 무어요?” “나는 점심두 아직 안 먹
었소.” “내게 가면 찬밥이라두 있을 테니 그대루 갑시다.” “대장께서 기다리
실 텐데 언제 등 너머를 갔다 오겠소. 나중에 가리다.” “대장만 네세우면 누가
찔끔하나.” 곽오주는 목자를 부라리고 “곧 잡으러 온 것 같구려.” “그래 잡
으러 왔다.” 곽오주는 해라를 내붙이며 곧 한손으로 서림이의 멱살을 잡고 “
쥐새끼 같은 놈, 주먹맛 좀 보구야 갈 테냐!” 하고 다른 손으로 서림이의 볼치
를 보기좋게 내우렸다. 서림이가 볼을 손으로 가리고 얼굴을 한편으로 돌리면
서 “곽두령 용서하시우. 내가 잘못했소. 같이 갈 테니 멱살을 놓아 주시우.”
하고 항복을 개어올리는데 곽오주는 들은 체 아니하고 서림이를 땅바닥에 메어
꼿고 앉았다. “이 불여우 같은 놈, 아무 데서나 좀 맞아봐라.” 곽오주가 서림
이를 패어주기 시작할때 박유복이가 쫓아와서 곽오주를 꺼들어 일으키고
“네가 미쳤느냐! 이게 무슨 짓이냐!”하고 꾸짖었다.곽오주가 박유복이게는 말
대답 한마디 아니하고 자빠져 있는 서림이를 내려다보며“이 다음 단둘이 만날
때가 있지. 어디 보자.”하고 벼르고 바로 어디로 가려고 하니“어딜 가느냐!게
있거라.”박유복이가 곽오주를 붙들어 세운 뒤에 서림이를 부축하여 일으켰다.서
림이는 입에서 피가 좀 나고 망건 뒤가 짜개지고 양편 어깻죽지를 맞아서 두 팔
을 들기 어려울 뿐이건만 꼼짝 운신 못 하는 사람같이 박유복이 팔에 온몸을 실
리었다.“상하신 데는 별루 없나 보니 다행이오.”“겉에 상한 데는 없는지 모르
지만 속으로 골병이 들었을 테니 살 수 있소?”서림이가 죽어가는 소리로 박유
복이더러 말하는데 곽오주가 옆에서 “이놈아 엄살 마라. 어디를 얼마나 맞아서
골병이 들었다느냐.”하고 다시 주먹을 부르쥐고 서림에게 달려들고 하다가 박
유복이에게 호령을 듣고 물러섰다.어디 나갔던 서림이의 안해와 아이들은 어느
틈에 와서 울상들을 하고 있고 서림이의 딸은 심부름을 똑똑히 하느라고 오가의
집에까지 가서 아비의 말을 전하고 오가와 같이 왔다.오가는 서림이의 몰골과
곽오주의 상호를 보고 대번 곽오주가 서림이에게 행패한 것을 짐작하고 “두발
부리들을 하더래도 집안에 들어가서나 하지 졸개들이 보면 창피하지 않은가. 여
기가 고샅길이라고 졸개들이 안 오는 줄 아나? 대체 종기는 곪으면 터지구 터지
면 합창이 되는 법이니 앙숙이란 종기가 싸움으로 터져서 응어리가 쑥 빠졌으면
둘 사이의 화해가 합창일세. 선손 걸은 사람이 누군가?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
게.”하고 입담 좋게 지껄이는데 곽오주가 박유복이에게“형님 난 고만 가겠소.
”하고 말할 뿐 아니라 서림이도 박유복이더러 “내가 좀 누워야겠으니 방으루
데려다 주시우.”하고 말하였다. 박유복이가 먼저 곽오주를 보고 “내가 네게 할
말이 있으니 다른 데루 가지 말구 오두령댁에 가 있거라.” 하고 이르고 그 다
음에 오가를 보고 “오주를 데리구 먼저 가시우.” 하고 말하여 곽오주를 오가
에게 딸려보낸 뒤 서림이를 거처하는 방에 갖다 눕혀 주고 서림이가 목이 마르
다고 하여 그 딸아이가 냉수를 갖다 먹이는데 도로 일으켜 앉혀줄 뿐 아니라 냉
수 한 그릇을 먹고 난 뒤에는 다시 눕혀 달라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아서“박두
령이 조금만 늦게 오셨더면 나는 죽은 사람이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미욱
한 위인이란 소나 진배없소. 서종사,쇠게 뜨인 셈만 잡구 오주를 용서하우.”“
뜨는 소를 가만두면 여러 사람 구ㅊ히라구요.”“서종사 내 낯을 봐서 용서하우.
”“내가 용서하구 또 대장께서 용서하시더래두 군율이 용서 안 할걸요.”“군
율이 용서 않다니 무슨 소리요?”“고의루 야료하구 군율을 안 당할까요?”박유
복이는 서림이 말을 듣고 한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서 서림이를 내려
다보며“나는 오주를 도둑놈으루 끌어들인 죄가 있어서 오주가 만일 죽게 되면
같이 죽어야 할 사람이오. 내가 죽게 되는 때는 손때 먹인 하는 말을 남기고 뒤
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서림이는 꺽정이를 충동여서 군율로 곽오주에 앙갚
음하려고 생각하다가 박유복이 말에 여기가 질려서 망설이게 되었다. 곽오주를
군율에 몰아놓기는 쉬우나 군율을 켜도록 꺽정이를 충동이기가 쉽지 않고 밉쌀
맞은 곽오주는 아주 죽여 없애면 좋겠으나 다른두령은 고사하고 제일 정분 좋게
지내는 박유복이부터 척을 짓게 정이의 가까이 부리는 졸개 하나가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서림이는 꺽정이가 부르러 보낸 줄 짐작하고 얼른 자리에 드러누웠다
가 졸개가 방 앞에 와서 기척할 때 나직한 소리로 ”게 누구 왔느냐?“하고 물
었다.”대장께서 곧 오시랍니다.“”내가 지금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 있다나
봐서 가겠습니다구 가서 말씀해라.“졸개는 두말 않고 도로 가고 그 뒤에 신불
출이가 쫓아왔다. 방에 들어서는 신불출이를 서림이가 누운 채 바라보며 ”자네
가 또 어찌 왔나?“하고 물으니 신불출이는 온 사연을 말하지 않고 ”대장께서
지금 도회청에 좌기하신답니다.“하고 말하였다.”웬일인가?“”고대 박두령께서
곽두령하구 같이 오셨는데 서종사를 어째 때렸느냐, 서종사를 내 대신으루 때렸
단 말이냐 하구 호령하시더니 지금 좌기하신다구 영을 놓으셨습니다.“”곽두령
이 아직 대장댁에 있나?“”호령 듣구 가셨지요.“”박두령은?“”곽두령하구
같이 가셨습니다.“”그 말씀은 대체 누가 여쭈었나?“”박두령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갑디다.“”내가 몸이 아파두 가 뵈어야겠네.“”도회청으루 대령하란 분
부를 내가 받아가지구 왔습니다.“”그럼 자네가 날 잡으러 온 셈일세그려. 할
수 있나 같이 가세.“ 서림이가 일어나서 불불이 의관을 정제하고 신불출이를
따라서 도회청에 와서 보니 곽오주와 박유복이와 오가 외에 다른 두
령들은 모두 와서 앉았는데 서림이를 보고 본 체를 아니하였다. 서림이가 자리
에 가서 앉으려고 할 때 이봉학이가 신불출이를 불러다가 몇 마디 꾸짖더니 신
불출이가 서림이에게 와서 자리에 앉아서 대령하는 법이 없으니 밖에 나가 있으
라고 말하여 서림이는 다시 도회청 대뜰 위에 나와 서서 대장 좌기하기를 기다
리었다. 얼마 뒤에 박유복이와 오가가 곽오주를 데리고 와서 곽오주만 밖에 세
워두고 각각 자리에 들어와 앉고 다시 얼마 뒤에 꺽정이가 와서 전좌하였다.꺽
정이가 좌기하며 곧 서림이를 불러들여서 앞에 세우고 곽오주와 싸움하게 된 곡
절을 묻는데 서림이는 여러 두령 듣는데 곽오주를 쳐서 말하기 어려워서 “하치
않은 일 가지구 싸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치않은 일이 무어야?” “
곽두령이 놀러가자는데 실다구 하다가 언황설래에 싸움이 되었습니다.” “누가
손손을 걸었노?” “저는 손찌검 한번 못했습니다.” 서림이 다음에 곽오주가
불려 들어와서 싸움하게 된 곡절을 말하는데 서림이가 못된 계책을 내바친 것이
미워서 한번 때려주려고 벼른 것을 곧이곧대로 복하였다. “군령 내린 뒤에 야
료하면 군율 당할 줄을 몰랐느냐!” “그런 생각은 미처 못했소.” “군율에는
사정이 없다. 너는 죽는 사람이다.” “서린이놈은 죽이지 않구 나만 죽인단 말
이오?” “서림이는 죽일 죄가 없다.” “서림이놈이 아니면 나 혼자 야료할 까
닭이 있소.” 꺽정이가 좌우를 호령하여 곽오주를 끌어내라고 할 때 황천왕도이
과 길막봉이는 함께 나와서 곽오주와 공모를 한 것을 자복하고 곽오주와 함께
죽기를 원하고 박유복이와 배돌석이와 이봉학이는 같이 나와서 곽오주의 죄를
같이 논지하게 하여 달하고 청하고 오가는 일어나서 군령을 모르고 잘못 범한
것과 군령을 알고 짐짓 범한 것이 분간 있다고 말하여 꺽정이가 오가의 분간 있
단 말을 좇아서 곽오주를 가짜로 효수하게 한 뒤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는 중책
하고 서림이는 경책한 후에 각각 다 기과하게 하였다. 꺽정이가 타처로 반이한
다는 군령을 내린 뒤에 두령들은 거의 다 관군과 접전 한번 못하고 도망하는 것
을 불쾌하게 여기나, 졸개들 중에는 잇속 없는 접전을 안 하게 되어서 은근히
다행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고 두령의 안식구들은 거지반 피란 가는 것을
해롭지 않게 생각하나 졸개의 처자들 중에는 초막간이라도 의지하고 살던 데를
떠나게 되어서 속으로 심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을 좋다 글타 의론
하면 죄를 당한다는 까닭에 펼쳐놓고 의론들은 하지 못하고 쑥덕쑥덕 뒷공론들
을 하게 되어서 쑥덕거리는 소기가 졸개들의 초막 속에도 나고 두령들의 집안에
서도 났다. 우선 꺽정이 집에서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는 피란 가는 것을
좋다고 하고 하고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접전 않고 피란 가는 것을 좋지
않다고 하여 시누이 올케간에 조그만 말다툼이 되는 것을 꺽정이가 마침 안방에
들어와 앉았다가 듣고 안해를 눈이 빠지게 꾸짖었더니 백손 어머니는 둘이 말하
다다 혼자 야단 만나는데 속이 상하였던지 “여편네는 죽을 겐가, 입 두고 말도
못 하게.” 하고 중얼거렸다. “무얼 잘했다구 중얼거려! 군령이 좋으니 그르니
자껄여두 군율이야. 군율이 사정 있나. 아무리 대장의 기집이라두 군령을 범하면
군율당하지 별수 없어.” 백손 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빗대고 “형님하구 나한테
두 군율인지 막둑인지 쓴다니 큰일나지 않았소.” 하고 남편의 말을 빈정거렸다.
꺽정이가 화각 나서 쑥덕공론하는 사람의 본보기로 안해를 도회청에 끌어내다
가 혼구녕 내고 싶은 생각까지 났었으나 꿀꺽 참고 “소갈찌 없는 기집년이란
할 수 없다.” 하고 혀를 쩟쩟 차며 사랑으로 나왔었다. 안해에게 난 화가 채 가
라앉기도 전에 박유복이가 곽오주를 데리고 와서 곽오주와 서림이의 싸움질한
것을 이야기하여 꺽정이는 화가 벌컥 도로 나서 박유복이의 이야기도 다 들어주
지 않고 곽오주를 호령질하여 쫓은 뒤에 일변 서림이를 부르러 보내고 일변 좌
기령을 놓았었다. 그러나 꺽정이가 곽오주를 죽일 마음은 없던 까닭에 되회청에
나가기 전에 오가를 불러다가 문의하게 되었는데 와가의 이랴기로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의 간련 있는 것도 미리 알았고두 사람이 곽오주와 같이 죄를 당하려고
나서거는 어떻게 곽오주와 분간하여 결처할 것까지 대강 미리 작정하였었다.
가짜 효수란 것이 본래 효수 시늉인데다가 곽오주의 가짜 효수는 시늉의 시늉이
라 양편 귀 뒤에 화살을 찔렀지만 양편 팔죽지를 잡아서 끌어내가는 것은 양편
에서 부축하고 나가게 되고 사방에 회술에 시키는 것은 도회청 대문에 밖에 나
서고 말게 되었다. 그러나 곽오주가 가짜 효수의 시늉을 한번 당하는 것도 착실
한 본보기기 되어서 그렇게 많던 쑥덕공론들이 다 쑥 들어가 버리고 아무
소리 없이 군령대로 반이할 준비들을 차리게 되었다. 청석골서 속장들 하느라고
부산한 중에도 관군의 동저을 알아들이는 여텀꾼들은 사방에 뻔찔 떠 있었다.
개성 관군은 천마산 서편으로부터 청석골 탑고개까지 둘러싸고 차츰차츰 들어오
고 평산 관군은 강음 관군과 협력하여 두석산 북편과 서편을 막는데 평산 부사
장효범이 금교역말에 내려와 있고 신계 관군은 우봉,토산 두 고을 관군과 합세
하여제석산 서남편으로 내려오는데 신계현령 이흠례가 전군을 지휘하였다. 관군
의 동정이 자세히 알려진 뒤에 서림이가 이천 갈 노정을 정하고 길 틔울 계책을
세우려고 조용한 틈을 타서 꺽정이와 단둘이 이야기하였다. “이천 가는 길은
대개 우봉 토산 안협 세고을 땅을 지나서 가두룩 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신계 땅으루 해 가는 것이 길이 좀 가갑지 않을까.” “식구들을 끌구 가는 기
에 말썽스러운 신계지경을 지나가는 것이 부질없을 줄 압니다. 그리구 길두 별
루 가까울 것이 없습니다.” “우봉 땅으루 나간다면 어느 편으루 나가는 게 좋
겠소?” “고석골루 나가서 수리미를 지나 양수합금으루 가는게 길이 편할 듯
합니다.” “고석골루 나가자면 평산 가음 군사부터 물리쳐 놔야지.” “평산 군
사가 물러가게 되면 강음 군사는 따라서 걷혀갈 겝니다.” “평산 군사를 제대
루 물러가게 할 계책은 무어요?” 서림이가 꺽저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앉아서
귀에 입을 대다시피하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을 꺽정이는 다 듣고 나서 “관
상쟁이는 속을는지 모르나 평산부사가 관상쟁이 말을 듣구 잘 속겠소.” 하고
말하니 “먼저두 말씀했지만 장효범이가 위인이 덩둘해서 그런 우스운 꾀에두
넘어갑니다. 제 꾀가 안 맞을 리 만무하니 두구 보십시오.” 하고 서림이는 장담
하였다. “억석이가 관상쟁이와 친하기나 한가?” “그건 제가 다 알아봤습니다.
친해두 여간 친하지 않답니다.” “그럼 어디 그대루 꾀를 써보우.” “억석이더
러 제가 말을 이르오리까.” “황두령 신계 보낼 것두 아주 말해 두구려.” “황
두령에게 제가 말을 일러선 잘 듣지 않을 겝니다. 그러구 평산 군사가 물러가야
신계길이 터질 테니까 황두령 신계 보내는 것은 나중으루 돌려두 좋습니다.”
“요량대루 하우.” “저는 지금 가서 억석이를 불러다가 오늘 밤에라두 곧 꾀
를 쓰두룩 말을 이르겠습니다.” 서림이가 꺽정이에게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
다가 홀저에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서 뒷산 파수꾼의 패두 김억석이의 초막을 향
하고 오는데 억석이은 마침 파수막에 올라가려고 초막에서 나오다가 서림이와
마주쳤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자네 보러 오는 길일세.” “저를 보러
오세요. 무슨 일이이 있습니까?” “남 보지 않는 데서 조용히 좀 이야기해야겠
네.” “댁으루 뫼시구 갈까요?” “자네를 불러다 말하려다가 일부러 왔네.”
“그럼 누추한 방이나마 들어가시까요?” “자네 방에 다른 사람이 없는가?”
“자식 혼자 있습니다.” “어디 가서 놀다 오라구 내보내게.” “놀러나가라면
후딱합지요.” “자네게 관상쟁이가 자주 오나?” “가끔 옵니다.” “이맘때두
혹 오나?” “밤에 흔히 놀러오는데 낮에두 혹간 옵니다.” “내가 자네하구 이
야기할 때 관상쟁이가 와선 재미없으니 어디 다른 데루 가세.” “어디루 가실
까요?” “뒷산 으슥한 데 가서 이야기하세.” 서림이는 김억석이를 앞세우고
뒷고개를 넘어왔다. 서림이같이 평소에 도도한 체하는 사람이 하치않은 패두에
게 무슨 일을 말하러 왔을까. 서리이의 어운이 관상쟁이에게 상관되는 일 같은
데 관상쟁이가 무슨 말을 지망지망히 해서 무릎맞춤이 나지 않았나. 그런 일이
면 불러가든 잡아가든 할 터이지 서림이가 친히 물으러 올 리 없지 않은가. 김
억석이는 뒷고개를 넘어오는 동안에 궁금증이 나다 못하여 아니 날 의심까지 다
났었다. 서림이가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앞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여 김억석
이는 서림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 입만 치어다보았다. “이야기가 좀 길는
지 모르니 아주 퍼더버리고 앉게.” “좋습니다. 이아기하십시오.” “자네 관상
쟁이하구 무간하게 친하지.?” “관상쟁이가 감금을 당했을 때 제가 몇번 수직
하는 놈의 대를 봐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해서 가끔 상종은 합니다만 그는
유식한 하삼인데 조의 같은 무식한 놈하구 무간할 수 있습니까.”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도망질시켜 달라구 청했단 말이 참말인가?” 서림이 묻는 말에 김억석
이가 입으로는 “그게 웬 소립니까?” 하고 잡아떼는 대답을 하면서도 얼굴에
는 현연히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서림이는 김억석이의 놀라는 빛을 보고 빙그
레 웃으며 “내가 들은 대루 바루 말하면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같이 도망하자구
했다데.” 하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얼굴빛을 아주 변하고 “그런 말씀을
관상쟁이게 들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 이야기는 나중 하구 자네 이야
기부터 듣세.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무어라구 말하든가?” “청석골 있다가는 이
삼 년 안에 비명횡사하게 된다구 말합디다.” “그러니 진작 같이 도망하자구
말하든가?” “그런 말까지 합디다.” “그래 자네는 무어라구 대답했나?” “
잘못하면 큰일날 테니 그런 말은 아예 입밖에 내지 말라구 했지요.” “자네가
틈타서 같이 도망하자구 말했다던데 그건 거짓말인가?” “자꾸 조르기에 생각
해 보마구는 말했지만 같이 도망하자구는 말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줄 몰랐더
니 관상쟁이가 거짓말쟁입니다그려.” 김억석이는 서림이가 관상쟁이에게 이아
기를 듣고 말하는 줄로만 여기었으나 실상 서림이는 도망할 생각이 있을 듯한
관상쟁이가 파수꾼의 패두인 김억석이가 친하게 상종하는 중에 혹 그런 말도 비
쳐 보았으려니 어림치고 넘겨짚었는데 의심을 품고 있던 김억석이가 쉽게 넘어
박힌 것이었다. “대장께서두 아셨습니까?” “모르시네.” “만일 대장께서 아
시면 관상쟁이는 목이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관상쟁이가 물구 들어가는데
자네 목은 성할 듯한가.” “큰일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침
자네가 장공속죄라 수 있는 좋은 계제가가 있기에 그걸 내가 말해 주러 왔네.”
“좋은 계제가 무엇입니까?” “자네가 관상쟁이하구 같이 도망하는ㄴ 것처럼
일을 꾸며가지구 금교역말 평산부사 진중에 데리구 나가서 우리가 일간 평산 태
백산성을 치러 가려구 준비한다구 말을 시키게. 관상쟁이는 평산부사 장효범이
두 알구 금교찰방 강려두 안다니까 적굴에서 도망해 나와 적굴 소식을 알리는
것같이 말할 수 있을 걸세. 평산부사가 그 말을 곧이듣구 태백산성을 지키러 가
면 그 틈에 우리가 자무산성이나 철봉산성으루 옮겨갈 작정인데 이것만은 뉘게
든지 말을 말게.” “관상쟁이는 관원들하구 면분이 있다니까 살아나갈 수 있겠
지만 저는 십상팔구 관군의 손에 죽게 될 것 아닙니까?” “자네 부자두 적굴
에 잡혀와서 고생하던 사람이라면 죽을 리가 만무하니 조금두 염려 말게.” “
제 말을 누가 믿나요?” “관상쟁이하구 짜면 되지.” “제가 가더래두 자식은
딸에게 맡겨두구 갈랍니다.” “그러면 관상쟁이가 도망가는 걸루 믿지 않네. 시
집간 딸은 할 수 없지만 아들은 데리구 가게.” 서림이 말끝에 김억석이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닫가 “말씀하시는 대루 해봅지요.” 하고 말하였다.
서림이가 김억석이에게 관상쟁이를 데리고 수작할 말부터 금교어물전에 가서 의
탁할 방편까지 모두 자세히 일러준 다음에 “오늘 밤 곧 나가두룩 하게.” 하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대답을 선뜻 아니하였다. “자네가 관상쟁이를 새루 놀려내
는 것이 아니구 관상쟁이가 먼저 자네를 꾀이는 판이니까 같이 가자구 끌구 나
서면 고만 아닌가.” “제가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하직두 여쭙구 작별두 해야
할 텐데 오늘 밤은 너무 촉박합니다.” “이 사람 보게. 도망질할 사람이 하직
작별이 다 무언가. 도섭스러운 소리하 지 말게.” “적어두 딸은 보구 가야지요.
” “그저 가보는 건 말리지 않네. 그렇지만 작별은 혼자 속으루 하게.” “딸더
러두 말 말란 말씀입니까?” “말 말아야지. 대체 무슨 일이든지 드러내놓구 말
하게 되기까지는 제 그림자를 보구 말해두 못 쓰는 법일세.” “인정에 좀 박절
한걸요.” “이번 일이 잘 되면 자네는 두목으로 올라설 테니 이 다음 두목된
뒤에 웃구 이야기하게그려. 제잡담하구 오늘 밤을 넘기지 말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 먼저 갈 테니 자네는 뒤에 오게.” 서림이 간 뒤 한참
만에 김억석이는 뒷산 파수막을 돌아서 집으로 내려갔다. 이날 밤에 여러 두
령이 꺽정이 집 사랑에 모여앉아서 이야기들 하는 중에 뒷산 파숫꾼 하나가 거
래도 없이 뜰 앞으로 들어와서 “사산 총찰두령께 아룁니다. 지금 패두 억석이
가 제 자식과 상쟁이를 데리구 어디루 가옵는데 가는 데를 물으온즉 장령을 물
어가지구 어디 잠깐 갔다온다구 말하옵디다. 장령 물었단 말이 거짓말이 아니온
지 빨리 곧 뒤쫓으면 등성이 서넛 안에서 붙잡아 올 수 있을 줄 아옵니다.” 하
고 아뢰는데 방안의 사람들은 듣고 놀라지 않을 뿐외라 서로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때 사산 파수를 총찰하는 두령 이봉학이가 파수꾼을 내다보며 “잘
알았다. 오늘 밤에는 서산 패두가 너의게까지 갈 것이다. 고만 가거라.” 하고
말을 일러서 파수꾼이 나간 뒤에 서림이가 이봉학이를 보고 “장령이라구 핑계
하구 참말 도망하는 놈이 생기면 탈이니 이 다음에는 붙들어놓구 와서 보하두룩
사산에 일어두시지요.” 하고 말하니 이봉학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수일 후에
서쪽으로 나갔던 여탐꾼들이 돌아와서 평산 군사가 갑자기 걷혀갔다고 보하였다
. 서림이가 마침 이봉학이, 박유복이 두 두령들과 같이 꺽정이 사랑에 앉아 있다
가 여탐꾼의 보하는 말을 듣고 “그것 보십시오. 장효범이가 그만 꾀에두 넘어
가지 않습니까.” 하고 꺽정이와 및 두 두령들을 돌아보니 꺽정이는 “서종사
일 요량하는 게 무던하우.” 서림이를 칭찬하고 이봉학이는 “평산부사가 얼뜬
자식이오.” 장효범이를 비웃고 박유복이는 “김가 부자가 무사하게 되었을까.”
억석이를 염려하였다.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인제 황두령을 신계 가라구 이
르시지요.”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지금 곧 불러다가 이르겠소.” 하고 사람을
보내서 황천동이를 불러왔다. 황천동이가 와서 평산 관군의 걷혀간 이야기를
들은 뒤에 곧 서림이를 돌아보며 “강음 관군두 걷혀 들어가게 됐소?” 하고 빈
정대는 말투로 물으니 서림이는 “가만두면 제대루 걷혀 들어가겠지요.” 하고
가볍게 대답하였다. “그렇겠지. 몇 해가 되든지 종당 걷혀 들어가구 말 테지요.
” “강음 관군은 걷혀 들어가지 않더라두 수효가 적어서 여러 길목을 지킬 힘
두 없구 또 우리게 저려서 나가는 사람을 막을 주제두 못 되는데 염려할 거 무
어 있소?” “청석골 안 염려를 서종사가 도맡아 하는데 우리가 염려할 까닭있
소.” 황천동이의 말을 서림이는 더 대꾸하지 아니하였다. 곽오주는 본래 서림
이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다시 말할 것도 없고 황천동이와 길막봉이는 중책을 당
한 뒤로 서림이와 사이가 좋지 못하게 되었는데 황천동이가 소견이 좁으니만큼
더 심하여 서림이와 말할 때면 으레 비위를 긁으나 서림이가 지고 참아서 겨우
말썽 없이 지내는 중이었다.꺽정이가 눈을 곱게 뜨지 않고 황천동이를 바라보다
가 "쓸데없는 소리 고만 지껄여라." 하고 꾸짖은 뒤에 "인제 신계길이 터졌으니
곧 떠나두룩 해라." 하고 이르니 황천동이는 두말 않고 "네" 하고 대답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황천동이가 건장한 졸개 세 사람과 같이 각각 괴나리봇짐 하나씩
가뜬하게 해 지고 신계길을 떠나는데 꺽정이가 황천동이더러 "이천 건천역말서
우리를 기다기기가 거북하거든 먼저 광복으로 가는데 건천역말 앞에 큰 동구나
무가 있으니 그 동구나무에 칼자국 하나를 큼직하게 내놓구 가거라. 우리가 가
서 칼자국만 보면 네가 먼저 간 줄 알구 찾지 않을 테다." 하고 말을 일렀다.
황천동이의 일행 네 사람이 청석골서 떠나던 날 해 진 뒤에 신계읍에 당도하여
사직단 아래 사람 안 보이는 곳에서 괴나리봇짐들을 끄르고 흰무리 덩이를 내서
요기들 하고 짧은 환도를 내서 몸에들 지니었다. 이날 밤에 두령 졸개 네 사람
이 함께 몰려다니며 맡아가지고 온 일을 하는데 한밤중에는 읍 근처에서 반명의
집을 치고 닭 울 물에는 우봉 접경에서 술장수의 집을 치고 또 새벽녘에는 토산
접경에서 농군의 집을 쳐서 세 군데에서 사람 육칠 명을 죽이고 이천 땅으로 넘
어갔다. 이흠례가 제아무리 벼락방망이라도 치하에서 서너 군데 살인 소동이 나
면 환관 안 하지 못하리라 서림이가 생각하고 이 꾀를 낸 것인데, 황천동이를
보낸 것은 급한 경우에 빠른 걸음으로 도망하란 뜻이요, 우봉 토산 접경에서 살
인하게 한 것은 우봉현령과 토산현감에게 으름자을 놓는 셈이었다. 신계현령은
대당이 경내에 들어와서 횡행하여 살인한 기별을 받고 감영에 첩보를 띄우며 곧
총총히 환관하는데 우봉현령과 토산현감도 다같이 경내가 염려된다고 뒤에 남아
서 적굴을 치려고 하지 아니하여 할 수 없이 다시 모이기를 기약하고 각각 군사
들을 거느리고 흩어져 가게 되었다. 강음현감이 고단한 형세로 잘못하다가 도
적에게 욕보기 쉽다고 읍으로 들어간 것은 신계 우봉 토산 세 고을 관원이 흩어
져 가기 전이라 청석골 서북쪽에는 관군의 그림자도 없고 오직 동남쪽에 개성
관군이 남았는데 동쪽 맡은 도사와 남쪽 맡은 경력이 다 같이 군사를 동독하여
길 없는 산중에 행진할 만한 길을 만드는 중에 서북쪽의 황해도 군사들이 퇴진
하게 된 기별을 듣고 도사와 경력이 서로 만나서 의논한 뒤 기프내와 탑고개 두
곳에 각각 유진하고 적굴의 동정을 기다리었다. 개성 관군이 산 밖에 유진하고
있는 동안에 청석골 산속에서는 장단 토산 강음 각처로 졸개들을 나눠 보내는데
장단도 뒷길로 떠나가도록 하고 여벌 병기와 남은 양식과 무거운 세간을 처치하
는데 땅속에 묻기도하고, 굴속에 넣기도 하고, 또 다른 데 옮겨다가 감추기도 하
여 빈집들만 뒤에 남도록 하고 그 뒤에 두령과 두목 십여 명과 남은 졸개 이십
여 명과 여러 집 식구 이십여 명을 다섯 패로 나눠서 말에 교군에 기구 있는 행
차 다섯을 꾸며 가지고 띄엄띄엄 사이를 두고 이천 광복산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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