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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송악산
송악산은 송도의 진산이요, 국내의 서악이니 산신 송악대왕이 영검하기로 유
명하였다. 태조 개국 후 2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 전에 팔도 성황을 벼슬을
봉하는데 송악산 성황은 진국공을 봉하고, 화령, 안변, 완산 성황은 계국백을 봉
하고, 금성산, 계룡산, 감악, 백악, 삼각산 성황과 진주 성황은 호국백을 봉하고,
그외의 성황들은 몰밀어 호국지신이란 칭호를 주었다. 이로써 송악산 성황 중에
지위가 가장 높았다. 성황과 산신이 이름은 다르되 나라에서 봉한 진국공과 민
간에서 일컫는 송악대왕이 실상 한 귀신이건만, 진국공 위패를 받드는 성황당과
송악대왕 목상을 뫼신 대와당이 각각 따로 있고 그외에 출처 모를 귀신들을 위
하는 국사당, 고녀당, 부녀당이 있어서 송악산 위에는 신당이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었다. 다섯 신당에 매달려 사는 무당과 박수들은 서울 반연이 많아서 재상가
와 궁가는 고사하고 대궐 안에까지 셋줄이 닿는 까닭에 유수부 관속들이 함부로
침책할 마음을 먹지 못하였다. 대왕대비나 왕대비의 몸을 받은 내인들이 치성이
나 기도하러 내려와 있을 때는 유수사또도 끔쩍을 하지 못하니 그 아래 관속들
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궁중으로부터 여염간에까지 송악산을 위하는 것이 성
풍하던 시절이라, 다섯 신당의 굿 장고 소리가 사시사철 그치지 아니하는 중에
봄, 가을보다 여름, 겨울이 심하고 겨울보다 여름이 더 심하고 여름에는 오월굿
이 가장 많고 오월에는 단오날 굿이 제일 굉장하였다. 단오날은 다섯 신당에서
함께 모여 큰 굿판을 차릴 뿐 아니라 대왕부인이 그네를 뛴답시고 대왕당의 목
상을 들어내다가 그네 뛰는 시늉을 내게 하였다. 대왕부인이란 대체 무엇인가.
어느 때 어떤 무당이 대왕의 신이 내렸다 하고 홀아비로 지내기가 적적하니 부
인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여 대왕 목상 옆에 계집의 목상을 해 앉히게 되었
는데, 이것을 대왕부인이라고 일컬었다. 그네 뛰는 것은 사내, 여편네가 다같이
하는 놀음이라, 대왕부인이 그네를 뛴다고 말하지마는 대왕부인의 목상만 그네
를 뛰게 할 뿐 아니라 대왕의 목상도 그네를 뛰게 하고 더구나 대왕과 대왕부인
의 두 목상을 함께 쌍그네도 뛰게 하였다. 목상이란 나무토막이니 나무토막이
그네를 어찌 뛰랴. 목상을 그네 밑싣개 위에 올려 세우고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
매고 무당과 박수가 뒤에서 물을 먹이는 것이니 송악대왕이 염검한 귀신이라면
무당과 박수에게 벌역을 내릴 듯한 설만한 장난이다. 대왕부인과 대왕이 쌍그네
뛰고 난 뒤에 그 그네 위에 한번 올라만 서도 불화한 내외 화합하고, 무자한 사
람 생자하고, 또 다병한 사람 무병장수한다고 무당, 박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
는 어리석은 남녀들은 그네 맨 동구나무 아래 백차일치듯 모이어서 그네 참례하
려고 서로 떠밀다가 다쳐서 병신 되는 사람까지 생길 때가 있었다. 단오날 부중
에 편쌈이 있고 씨름판이 있어서 구경꾼이 더러 갈리지마는 대와당 그네 뛰고
큰굿 구경하고 또 사람 구경하려고 부중에서 쏟아져나오고 촌에서 밥 싸가지고
들어오고 원처에서 노자 써가며 전위해 와서 송악산이 사람산으로 변하도록 사
람이 들끓었다. 남녀가 뒤섞여서 비비대기치는 판에 난잡한 일이 생기는 건 예
이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일 년 전이 옛날로 해마다 점점 더 심하여 서로 눈이
맞은 젊은 것들이 으슥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훨씬 많아지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왈자패가 처녀와 유부녀를 우격다짐으로 욕보이는 일도 종종
생기어서 예법을 아는 선비님네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세가 다 된 것을 탄식들
하였다. 이 해에 나이 열 살 된 왕세자를 관례시키고 장차 세자빈을 간택하게
되었는데, 대왕대비는 귀중한 손주님을 위하여 오월 오일 천중절에 송악산에 큰
치성을 드리기로 작정하고 미리부터 분부를 내리었었다. 사월 보름께 내인 두엇
이 먼저 내려와서 송악산 신당들을 봉심하고 사월 그믐께 대왕대비의 신임을 받
는 늙은 상궁이 무수리, 각심이, 교군꾼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미곡, 과품, 포목,
여러 바리 봉물을 영거하고 단골무녀에게 내려와 앉아서 모든 준비를 정성껏 차
리었다. 송악산에서 나라 혼인의 여탐굿을 한다고 소문이 굉장히 높이 나서 경
향 각처에서 전에 구경 안 오던 사람까지 구경을 오려고 벼르게 되었는데, 부근
사람들은 단오날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원처 사람들은 오월을 잡아들며 벌
써 송도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청석골 꺽정이패 도중에도 송악산 굿구경을 가
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 배돌석이의 안해는 구경을 가면
반드시 오래 그린 동생도 만나보게 되고 아비의 데리고 사는 무당도 상면하게
될 터이라 기어코 몸을 달이었다. 대장의 허락을 맡아내라고 남편을 오복전같이
조르는 중에 그 동생아이가 아비와 계모를 따라서 송도를 온 길에
누이를 찾아보러 왔는데, 그 아비가 기별하기를 검은학골 대왕당 큰무당의 집
근처에 사처방까지 말하여 놓았으니 내외 같이 구경을 나오라고 하고 또 여러
두령댁 내권과 함께 작반하여 나온다면 널찍한 방 하나를 더 변통해 보마고 하
여 배돌석이의 안해는 동생의 얼굴 보니 반갑고 아비의 기별 들으니 좋아서 깡
충깡충 뛰다시피 하였다. 꺽정이 집 사랑에 여러 두령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배
돌석이가 김억석이의 기별한 사연을 말하고 자기의 의견으로 여러 두령집 안팎
식구가 다같이 구경을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즉, 맨 먼저 황천왕동이가 재치있게
“굿구경하구 떡이나 얻어먹으러 갈까? ” 하고 콧살을 짊어지고 그 다음에 곽
오주가 심술굿게 “나라 여탐굿은 무슨 별놈의 굿인가? ” 하고 입귀를 실쭉하
였다. 그 뒤를 달아서 다른 두령들이 구경가는 것을 좋으니 그르니 말하는데 꺽
정이는 잠자코 듣기만 하더니 남 나중에 “여러 집 식구가 다 간다면 사람이 여
간 많은가. ” 불쾌스럽게 말 한마디 하였다. 불쾌할 것도 없는데 불쾌스럽게 말
하는 것은 꺽정이의 버릇이고 그 어운으로 보면 꺽정이도 가고 싶은 마음은 없
지 않으나 동행이 많은 건 좋지 않아서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눈치 잘 채고 비
위 잘 맞추는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그렇지요. 여러 집 안팎 식구가 죄다
가면 사람이 좀 많습니까. 그렇지만 안 갈 사람두 있구, 못 갈 사람두 있을 테니
까 먼저 안식구들 중에 갈 사람이 몇이나 되나 물어보구, 그 담에 대장께서 몇
분 두령을 지정하셔서 데리구 가게 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 하고 말하니 꺽정
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황천왕동이가 안에 들어가서 대장의 명령이라고 뒤설
레를 떨어서 각 집 안식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굿구경 갈 생각이 있나 없나
각기 말하라고 하였더니, 공연히 긴 사설들만 늘어놓아서 한 사람씩 차례로 가
느냐 안 가느냐 다져보았다.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는 구경가고 싶은 마음
이 없지 않았으나 나이보다 숙성하여 제법 계집아이 꼴이 박힌 애기를 난잡한데
데리고 가기도 싫고 구경 좋다는 소문을 듣고 지각없이 가고자 하는 애기를 떼
어놓고 가기도 어려워서 자기까지 고만두고 안 간다고 하고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태기인지 병인지 자 먹지 못하고 시늠시늠 앓는 중인데 가겠다고 말하
여 가는 것이 부질없다고 애기 어머니가 타이르고 집에서 조섭하는 것이 좋다고
오가 마누라가 권하여도 그예 간다고 고집을 세우고 오가의 마누라는 한편 다리
가 불인하여 행보가 어려운 까닭에 안 간다고 하고 이봉학이의 소실은 아들아이
가 성치 않아서 못 가겠다고 하고 박유복이의 안해는 굿에 혼이 난 사람이라 굿
이란 건 꿈에도 보고 싶지 않다고 안 간다고 하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혹시 가지
못하게 될까 겁을 내는 사람이니 더 말한 것이 없고 황천왕동이 저의 안해는 시
누님이 가게 되면 따라간다고 하고 길막봉이의 안해도 간다고 하고 서림이의 안
해도 간다고 하고 이외에 또 곽능통이의 안해가 간다고 하여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모두 여섯이였다. 황천왕동이가 사랑에 나와서 안식구들의 가고 안 가는
것을 자세히 말한즉 꺽정이는 백손 어머니의 간다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여
“너의 누님은 가지 말라구 일러라. ” 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녜. ”
하고 대답하면 고만일 것을 “왜 누님은 가지 말라세요? ” 하고 물어서 꺽정이
의 비위가 거슬리었다. “가서 이르라면 이르지 무슨 잔소리냐! ” “애기 어머
니하구 오두령 부인이 조만이 말해두 자꾸 간다구 고집을 세우던데 내가 말해서
고만둘라구요. ” “내 말루 이르란 말이야. ” “그럼 형님이 친히 말씀하시오.
” “내 심부름을 못하겠단 말이냐! ” 꺽정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 뒤에 서림이가 꺽정이의 역증을 죽이려고 “태기시라구 말
들 하니 정말 태기시라면 근 이십 년 단산하신 끝에 희한한 일입니다. ”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서림이를 돌아보며 “태긴지 무언지 누가 아우? 그렇지만 잘
먹지두 않구 앓으니까 앓는 사람이 구경이 다 무어란 말이오? ” 하고 대답하였
다. “태기시든 병환이시든 좀 행기하시는 건 해롭지 않을 걸요. ” 서림이의 두
번째 말을 꺽정이가 대답 않고 한참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
왜 가지 말라느냐? ” “내가 가지지 말라우? 형님이 가지 말라지. ” “형님이
구 누구구 왜 가지 말란 말이야? ” “그야 낸들 아우. 형님더러 물어보시구려.
” “너 좀 가서 물어보렴. ” “난 싫소. ” “누이 말은 하치않으냐? ” 백손
어머니가 황천왕동이와 아귀다툼하듯 말하는 것을 애기 어머니가 딱하게 여겨서
가로막고 나섰다. “자네가 몸이 성치 않으니까 조심이 되어서 가지 말라는 게
지. ” “조심이오? 그런 성가신 조심 고만두라시오. ” “엊그제
내가 대장더러 자네가 태긴가 부다고 말하니까 대장이 좋아하면서 .” “고만
두어요. 다 알았세요. ” “무얼 다 알았어? 남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하게. ”
“태기가 무어요? 죽을 병이지. ” “글쎄. 내 말을 들어봐. ” “듣고 싶지 않
아요. ” “듣고 싶지 않다면 고만두겠네. ” 방문 밖에 섰던 졸개 계집들이 “
대장께서 듭십니다. ” 외치는 바람에 방안의 여러 사람이 일시에 모두 일어났
다. 혹은 윗간에서 대청으로 나가고 혹은 아랫간에서 윗간으로 내려갔다. 꺽정이
가 아랫간에 들어와 앉아서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각집 안식구들의 인사를 받은
뒤에 아랫간 한구석에 비켜 섰는 백손 어머니를 보고 말을 내었다. “자네는 구
경 못 가네. ” “왜 못 가요? ” 백손 어머니는 한바탕 시비를 차리려는 것같
이 앉아서 몸을 도사리었다. “아프다구 밥두 잘 안 먹는다며 구경이 무슨 구경
이여? ” “구경은 고만두고 쌈을 하려 나가래도 나갈 테니 염려 마시오? ”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 “글쎄, 내 몸은 염려 말아요. 그리고 그런 고
마운 염려는 두었다가 서울 기집년들이나 염려해 주시구려. ” 백손 어머니 말
에 강짜가 섞여 나오기 시작하였다. 꺽정이가 대번 불호령으로 윽박지를 듯한데
도리어 껄껄 웃고 “기집년의 소견이란 할 수가 없다. ” 말하며 보기 좋은 채
수염을 쓱쓱 쓰다듬었다. “소견 넓은 사내 다 보았소. ” “허 그거 참. ” “
나를 정히 못 가게 한다면 도망이라도 해서 갈 테니 그리 아시오. ” “어디 도
망해 보게. ” “어쨌든지 가고야 말 테요. ” “못 간다거든 못 갈 줄 알아. ”
“내가 따라가면 구경터에서 잡년들의 궁둥이를 쫓아다니기가 거북할 테니까 그
래 나를 못 가게 하지요. 나도 속을 다 알아요. ” “무엇이여? 별 우스운 년의
소리를 다 듣겠네. 자네만 가지 말라는 게 아니야. 나두 안 갈 텔세. 인제 더 할
소리 없지? ” “나는 꼭 한번 가야겠소. ” “꼭 갈 일이 무언가 말하게. ” “
꼭 갈 일이 있소. ” “공연히 악지를 부리느라구 자네가 그렇게 내 말을 어기
면 다른 사람까지두 다 못 가게 할 텔세. ” 꺽정이의 말 한마디에 구경을 간다
던 여러 여편네가 모두 낙심이 되었다. 꺽정이가 사랑으로 나간 뒤에 배돌석이
의 안해가 곧 울상을 하고 백손 어머니 옆에 외서 붙들고 매어달리다시피 하며
“우리들 구경 가고 못 가는 것이 형님 손에 달렸으니 형님 좀 생각해 주세요.
” 사정을 하고 평소에 말수 적은 박유복이의 안해까지 “대장께서 형님을 위해
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걸 그 말씀을 어기시면 됩니까. 형님이 고만두셔야
지요. ” 사리로 권하였다. 여러 여편네들이 입을 모은 것같이 다같이 백손 어머
니더러 구경 갈 생각을 고만두라고 권하고 달래는 중에 오직 황천왕동이 안해만
말이 없었다. 여러 입이 백손 어머니의 고집덩이를 녹이어서 시원치 않게나마
아니 갈 의사를 말하게 되었다. 백손 어머니가 안 간다고 하니 시누님을 따라간
다던 황천왕동이의 안해도 체면을 차리느라고 자기 역시 안 가겠다고 말하는데,
가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고 가자고 끄는 사람도 없어서 마침내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여섯이 넷으로 줄었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백손 어머니에게 치사하는
뜻으로 “저이들 이번 구경은 형님께서 시켜주시는 셈입니다. ” 하고 말하니
백손 어머니는 골을 내면서 “ 그런 소리 난 듣기 싫어. ” 몰풍그럽게 핀잔을
주고 마음에 안되었던지 뒤를 풀어서 “대왕당 그네를 꼭 한번 뛰어보려고 맘을
먹었는데 그만 것도 맘대로 되지 않으니 사람이 속이 상하지 않겠나. ” 하고
말하였다. “내년에 가서 뛰시지요? ” “신병 있는 사람이 효험을 본다니까 올
에 가려고 하지. ” “형님 병환은 아는 병이라는데 무얼 그러세요? ” “그런
당치 않은 소리 곧이듣지 말게. 이십 년 동안 단산한 사람이 물경스럽게 아이가
무어란 말인가. ”백손 어머니 말끝에 애기 어머니는 영락없이 아이니 두고 보
라고 우기었다. 이때 사랑에서는 안식구 데리고 구경갈 두령을 작정하게 되었는
데, 꺽정이가 누구누구 지정하지 않고 각각 의향을 물어보았다. 처음에 이봉학이
를 보고 “자네 갈라나? ” 하고 물으니 “가구 싶지 않습니다. ” 대답하고 그
다음에 박유복이를 보고 “너는 갈라느냐” 하고 물으니 “저두 안 가겠습니다.
”대답하고 또 그 다음에 서림이더러 “서종사는 어떻게 하겠소? ” 하고 물어
서 “대장께서 가라시면 가겠습니다. ” 대답하니 곽오주가 무릎을 치면서 “그
러면 그렇지. ” 하고 말하였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 “서종사는 가겠습
니다, 안가겠습니다. 그런 싱거운 대답을 안하려니 생각했더니 내 생각이 꼭 들
어맞았지요. ” “누가 너더러 남의 대답할 말 생각하라드냐? ” “누가 생각하
래요, 내가 생각했지. ” “주둥이 닥치구 가만 있거라. ”
꺽정이가 곽오주를 윽박지른 뒤에 의향 묻던 것을 다시 계속하였다. “돌석이
는 갈 테지? ” “녜. ” “천왕동이두 갈 테냐? ” “녜. ” “막봉이는? ” “
갈랍니다. ” “산이는?” “고만두겠습니다.”“그럼 자원하는 사람 셋하구 가
면 사람수가 꼭 안식구 마찬가지 넷이 되는군. 그렇게 넷이 가지.” “꼭 넷이
맛입니까? 하두 사람 더 가두 좋지 않습니까?.” 서림이가 물었다. “누구 더 갈
사람 있소?” “우선 오두령께서두 저더러 구경가게 되거든 같이 가자구 말씀
하든걸요.” “오두령은 늙은이가 무슨 구경이여? 내가 고만두랄 테니 염려 마
우.” “나는 사람값에 못 가우?” 곽오주가 꺽정이를 보고 들이대듯 말하였다.
“구경터에 어린 자식세끼를 뒤처업구 오는 여편네가 많을 텐데 그 어린 것들이
모두 울어두 네가 미쳐 날뒤지 않을 테냐?” “그까진 놈의 구경 갈 생각은 없
지만 나 하나만 쑥 빼놓구 수에두 쳐주지 않으니 내가 서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오. 나는 고만두구 형님두 다시 생각해 보면 서운하리다.” 곽오주의 두덜거
리는 말을 꺽정이는 웃고 들었다. 서림이다 먼저 말을 다시 이어내어서 “그러
면 오두령은 고만두더래두 대장께서는 가시겠지요?”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고
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무 일 없는 때니 소풍삼아서 가시지요?” “안 가겠소.
” 꺽정이의 말이 요개할 나위가 없이 보여서 서림이는 다시 더 권하지 못하였
다. 두령들 외에 대장 시위란 소임을 가진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대장이 가지
도 않고 또 보내지도 아니하여 가지 못하게들 되었다. 두령 넷이 안식구 넷을
데리고 단오 전날 송도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단오날 종일 굿구경하고 저녁때 돌
아오기로 작정한 것이 단오 전전날 일인데, 이튿날인 단오 전날 아침에 꺽정이
가 안에 들어와서 조반을 먹을 때 애기 어머니만 상머리에 와서 앉고 백손 어머
니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어디 갔소?” “생병이 나서 누웠어.” “생병
이라니?” “구경을 못 가서 병이 났대. 구경을 보내주었으면 좋겠어.” “글쎄,
무슨 병이란 말이오?” “구경을 가려고 골독하다가 못 가게 되는 데 애성이 나
서 어제 점심, 저녁 두 끼니, 물 한 모금 안 먹고 오늘도 머리 싸고 누웠으니 보
는 사람이 답답해 죽겠어. 제발 구경을 보내주어요.” “구경을 못 가서 굶어죽
을 작정하는 그런 못생긴 년은 굶어죽어두 좋소. 가만 내버려두오.” “사내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여편네가 아이 설 때는 공연히 성정이 까다로워져요.” “
정 그렇게 굿구경이 하구 싶다면 송악산 단오굿이 끝난 뒤에 무당년들을 붙잡아
다가 여기서 큰굿을 한번 시킬 테니 그때 실컷 구경하라구 이르시우.” “굿구
경은 여차고 대왕당 그네를 뛰러 갈라고 그 애야.” “그 그네는 무슨 별난 그
네요?” “단오날 대왕당 그네를 뛰면 내외간 의초도 좋아지고 귀한 아들도 낳
고 신병도 없어진대.” “난 모르우. 누님에게 맡길 테니 구경 보내든 말든 맘대
루 하우.” 꺽정이의 반허락과 애기 어머니의 온허락으로 백손 어머니와 황천왕
동이의 안해가 다시 가게 되어서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넷이 모두 여섯으로
늘었다. 청석골 도중의 사내 여편네 열 사람 일행이 단오 전날 저녁때 송도로
나왔다. 송도 부중에는 도중과 기맥을 통하는 관속도 있고 도중에 거래까지 하
는 상민도 있어서 하룻밤쯤 어디 가서든지 유숙할 수 있고 또 보은리 사는 김천
만이는 도중의 장물을 팔아들이는 사람이라, 이 사람의 집에 가면 하룻밤은 고
만두고 며칠이라도 편히 묵을 수 있지마는 김억석이가 전위해 청좌를 보냈을 뿐
아니라 굿구경을 하는 데는 무당집 반연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검은학골
로 오게들 되었다. 길 아는 황천동이가 앞서서 인도하여 일행이 대왕당 큰무당
의 집 앞에 와서 보니 삽작안에 사람이 들썩들썩하는데 그중에 눈선 복색이 더
러 섞여 있었다. 개떡쪽 같은 큰머리를 얹고 푸르둥둥한 큰 띠를 띤 여편네도
있고 털벙거지를 쓰고 송기떡 군복을 입은 사내도 있었다. 개떡쪽 큰머리가 무
수리요, 송기떡 군복이 무예별감인 것은 서림이가 안식구들에게 자상하게 일러
주었다. 김억석이를 찾아도 대답이 없어서 일행이 삽작 밖에서 서성거릴 때 하
루 먼저 내보낸 억석이의 아들이 옆집에서 뛰어나와서 “이리들 오세요.” 하고
그 옆집으로 인도하였다. 방은 그 집의 건넌방, 아랫방 둘을 얻어놓았는데 건넌
방은 간반이 좁고 아랫방은 한 간이 좀 넓어서 비슷비슷한 것을 간반이 명색만
이라도 한 간보다는 넓다고 억석이가 널찍한 방이라고 기별한 모양이었다. 널찍
하다는 건넌방은 안식구들을 주고 아랫방에 사내 넷이 들어앉았다. 억석이의 아
들만 공연히 왔다갔다 할 뿐이요, 억석이는 꼴도 볼 수 없었다. 아들놈의 말이
아비가 산 위 굿당에 가서 있는데 곧 내려오리라고 하더니 해가 다 지도록 오
지 아니하였다. 다담 대접을 바라다가 턱이 떨어질 뻔한 것은 고사하고 저녁밥
을 무당집에서 가져올 터이라는데 소식이 감감하여 몸 가벼운 황천동이가 동정
을 보러 갔다. 삽작안마당에 멍석을 연폭하여 깔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밥
들을 먹고 송기떡 군복은 마루 위에 따로 외상을 받고 앉았는데, 이 여편네가
술을 따라 올리고 저 여편네가 갈비를 구워 바치고 안방에도 또 어떤 귀빈이 있
는지 여러 여편네가 들락날락 시중들 하였다. 황천동이가 곧 쫓아들어가서 송기
떡 군복을 집어치우고 그 술, 그 고기를 뺏어먹고 싶은 것을 꿀꺽 참고 돌아왔
다. “모두 저녁들을 먹는데 우리만 안 주니 그것들이 먹던 대궁을 우리 줄라는
거야.” 황천동이 말 한마디에 여러 사람의 속에 있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
사람을 푸대접해두 분수가 있지.” “우리가 이게 무슨 꼴이람.” “망신이요,
착실한 망신이오.” “대관절 억석이놈을 낯바대기나 좀 봐야지.” “제가 일찍
못올 것 같으면 말이라두 일러두구 갈 게지.” “긴말 할 것 없이 우리 다른 데
루 갑시다.” “어디루 갈까?” “어디루가. 제일 친숙한 김천만이게루 가지.”
“처음부터 천만이 집으루 갈 걸 공연히 이리 왔어.” 다른 세 사람은 말할 것
없고 배돌석이까지 보은리로 가자고 말하여 네 사람이 함께 아랫방에서 나왔다.
건넌방에 가로 세로 드러누웠는 안식구들더러 일어나서 나오라고 말하고 기다리
고 섰는 중에 억석이의 아들이 “아버지 저기 옵니다.” 하고 소리치며 곧 억석
이가 급한 걸음으로 쫓아들어와서 “지가 이런 미안할 데가 없습니다.” “지가
이런 황송할 데가 없습니다.” 하고 이 사람에게 굽실하고 저 사람에게 굽실하
였다. 대답 한마디 아니하는 네 사람 중에 황천왕동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억석
이를 노려보더니 “이놈아, 이게 사람 대접이냐!” 하고 눈결에 대들어서 보기좋
게 뺨을 치는데 섣달 그믐께 흰떡 치는 소리가 났다. “그저 소인이 잘못했습니
다. 용서하심시오.” 김억석이가 전에는 두령들을 보고 제 말할 때 반드시 소인
이라고 하였지만 배돌석이의 가시아비 된 뒤로 소인보다 저라고 많이 하고 도중
에서 나와 살게 된 뒤로 소인은 아주 없애고 한껏하여 저라고 하더니 지금 다급
하여 소인을 개어올린 것이다. “내가 소인 소리에 허기들린 줄 아느냐! 골백번
소인을 개올려두 너는 용서할 수 없다.” 황천왕동이가 팔을 걷어붙이며 뒤로
피해 나가 섰는 억석이에게로 다가설 때, 버선발로 뛰어내려온 배돌석이 안해가
팔을 잡고 매어달리면서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 낯을 좀 보아주세요.” 하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배돌석이가 그 안해를 잡아제치고 황천왕동이의 손을 잡고
“여게, 요란스럽게 손찌검 말구 조용조용히 말을 들어봐서 고의루 우리를 망신
시켰거든 잡아가지구 가서 톡톡히 치죄하세.” 하고 은근히 말리니 “그럼 보은
리루 끌구 가서 말을 들어볼 테요?” 황천왕동이가 배돌석이를 돌아보며 물었
다. “글쎄, 여기서 잠깐 물어보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보은리가 여기서
초간한데 안식구들 데리고 가자면 캄캄하게 어둡소. 지체하지 말구 곧 가야 하
우.” “남의 집에까지 끌구 가는 건 재미없을 듯해서 말일세.” “그러면 물어
보구 말구 할 것 없이 고만두구 갑시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김억석이를 향하
여 “우리 속상한 걸루 말하면 너를 곧 박살해두 시원치 않지만 안면을 보는 데
가 있어서 고만둔다.” 말하고 걷어붙였던 소매를 도로 내리었다. 김억석이가 허
리를 굽실하면서 “황송합니다.” 하고 말한 다음에 배돌석이 옆으로 가까이 와
서 “지금 보은리루 가신다니 그게 될 말씀이오? 여러분 방으루들 들어가시게
하우. 곧 저녁진지를 내오두룩 하리다.” 넌지시 청하듯 말하는 것을 “우리가
빌어먹는 거진가. 대궁밥술을 얻어먹구 있게.” 배돌석이가 매몰차게 핀퉁을 주
었다. “대궁밥이라니 웬 말씀이오?” “다들 밥을 처먹구 우리만 안 주니 우리
를 대궁밥 먹이려는 게지 무어야!” “설마 남 먹던 대궁이야 드리겠소. 그런 말
씀은 공연한 말씀이오. 그저 내가 조금만 일찍 내려왔더라면 좋을 것을.” 김억
석이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배돌석이가 말끝을 채었다. “누가 일찍 내려오지
말라든가?” “일찍 내려올 수가 있으면 왜 이때까지 있겠소. 여기 대왕당 성관
이 중병을 앓구 난 뒤에 소성이 아직 다 못 돼서, 내 처 되는 사람이 저의 고모
대신으루 굿당일을 전부 주관해 보는데 그 뒤를 거들어 주느라구 요새는 노박
산 위에 가서 살았소. 내일 준비가 미진한 것이 많아서 오늘두 어떻게 바쁜지
점심때부터 내려온다는 것이, 막 내려올라구 하면 이것 좀 해다구 저것 좀 해다
구 일이 끝이 나야지요. 그래서 이렇게 늦었소. 일부러 한만하게 늦게 내려올 리
야 있소.” “바쁜데 미안해서라두 우리는 다른 데루 가야겠어.”
“이놈을 죽일 놈이라구 치도곤을 먹이시는 게 낫지, 다른 데루 가시다니 말이
되우? 그런 말씀 말구 여러분을 방으루 들어가시게 좀 하시우.” 배돌석이가 어
떻게 하려느냐 묻는 눈치로 다른 세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알구 보니 저
사람이 고의루 우리를 푸대접한 건 아니구려. 단지 주선이 좀 부족했지.” 서림
이는 주저물러 앉자는 의사로 말하고 “점점 더 어둬 가는데 어떻게 할 셈이오?
” 황천왕동이는 보은리로 가자고 재촉하는 의사로 말하고 길막봉이는 주저물러
앉자도 좋고 보은리로 가도 좋다는 의사인지 검다쓰다 말이 없었다. 건넌방 앞
에 나와 섰던 안식구들이 어느 틈에 다 도로 방으로 들어가서 무슨 공론을 하더
니 백손 어머니가 머리를 방 밖으로 내밀고서 “동생 이리 와!” 하고 천왕동이
를 불렀다. “왜 부르셨소?” “마전댁이 분해서 자꾸 울길래 네 대신 빌었다.”
마전댁이란 배돌석이의 안해 말이다. 아무 두령이니 아무 두령이댁이니 하는 칭
호는 도중 밖에 나와서 쓰기 어려운 까닭에 이번에 청석골서 나올 때 사내들은
모두 성밑에 서방을 붙여서 아무서방이 부르기로 하고 여편네들은 본집의 골 이
름을 따라서 아무댁이라 부르기로 하여,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봉산댁이 되고 길
막봉이의 안해는 죽산댁이 되었는데, 백손 어머니는 본집이 없는 사람이라 전에
살던 양주로 양주댁이라고 하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마전 무당의 집을 본집이라
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대로 마전댁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
지 대신 따님이 울구 동생 대신 누님이 빌었으면 고만 쓱삭 다 됐구려. 그래 그
말 할라구 부르셨소?” “마전댁 낯을 보아서 내가 다른 데로 안 가고 여기서
자겠다고 빌었으니까 그리 알란 말이야.” “대체 빌긴 무얼 잘못했다구 빌었
소? 난 잘못한 것이 없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늦게 왔나 말이나 들어보고
시비를 해야지 말도 안 들어보고 대번 손찌검한 것이 잘못 아니냐?” “그래 그
건 누님 말대루 잘못이라구 칩시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푸대접받구 잘 것이
무어 있소?”“나 하나뿐 아니라 우리 안식구들은 다 여기서 자기로 공론했다.
” “그럼 우리 사내들두 다른 데루 못 가는 게지.” 황천왕동이마저 주저물러
앉게 되어서 사내 네 사람은 다시 아랫방에 들어앉았다. 김억석이는 네 사람이
아랫방에 들어앉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건넌방 앞에 있다가 관솔불을 가지
고 와서 두 방으로 다니며 등잔불을 당겨놓고 “밥을 새루 또 짓는데 곧 뜸이
들겠답니다. 시장들 하실 테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줍시오.” 말하고 다시 간 뒤
한동안 지나서 저녁상들이 나왔다. 건넌방에는 셋 겸상이 둘이요, 아랫방에는 겸
상이 둘이었다. 밥은 갓 지은 것이라 기름이 흐르고 찬은 상이 어둡도록 가짓수
가 많았다. 김억석이가 술 양푼을 들고 아랫방에 와서 반주를 권하는데 술맛이
좋지 않아서 서림이와 황천왕동이는 갱지미로 두엇씩 받아먹고 그만두고 청탁을
안 가리는 배돌석이와 길막봉이는 갱지미를 여남은 번 둘이 서로 주고받았다.
네 사람이 밥을 먹기 시작한 뒤 김억석이는 한옆에 앉아서 아까 다 못한 발명을
하였다. “지금 저의 처고모의 집은 서울서 오신 노상궁마마 일행이 통차지하다
시피 했습니다. 원채, 아래채에 방이 넷인데 안방에는 상궁마마가 기시구, 건넌
방은 상궁마마 뫼시구 온 여인네들이 쓰구, 아래채에 있는 방 하나두 역시 상궁
마마 뫼시구 온 사내 하인들이 쓰구 아랫방 하나 남은 것을 주인 성관이 엊그제
까지 쓰다가 의외에 또 서울서 무예별감 한 분이 내려와서 그 방마저 뺏기구 지
금은 안방에 가서 상궁마마를 뫼시구 있습니다. 몸이 부실하 주인 성관두 방 한
간을 따루 못 쓰니까 다른 식구야 더 말할 것이 있습니까. 굿당에 가서 일보는
사람은 게서 자구,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잘 때가 되면 모두 이웃집에 가서 붙
여잡니다. 원집안 사람은 몇 안 되지요만, 난데서 일 봐주러 온 사람이 많습니
다. 저 집에 사람 들끓는 것 보셨지요? 굿당은 더합니다. 먼데 사라므 이웃 사람
모두 와서 일한답시구 먹습니다. 그래서 종일 먹는 빛입니다. 우선 이 집의 여섯
식구두 넷은 굿당에 가 있구, 둘은 저 집에가 있습니다. 일하러 온 사람보다 먹
으러 온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일은 뒤죽박죽이에요. 여러분이 오시거든 서울 손
님과 층하 말구 대접하라구, 저는 말할 것 없구 주인이나 다름없는 제 처가 집
안 사람에게 미리 일러두었는데, 일러둔 보람이 뒤쪽으루 났습니다. 아까 가서
말을 들어보니까 서울 손님 대접하느라구 정신들두 없었지만 첫째 제 자식놈이
똑똑치 않아서 어떤 손님이 오신 것을 알두룩 잘 일러주지 못한 모양이에요. 그
러구 그 자식은 저녁 재축 한번 안 허구 아비 오기만 기다리구 있었답니다. 그
런 탯덩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억석이의 긴 발명이 아들 사살
로 변할 때 서림이가 “참, 자네 저녁은 어떻게 했나?” 하고 물었다.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우리하구 같이 먹을 걸 그랬네 그려. 지금이라두 밥 한 그
릇 더 내오래서 여기서 같이 먹세.” “아니올시다. 나중 먹겠습니다.” “그럴
것 무어 있나?” “저는 이따가 굿당에 가서 먹을랍니다.” “여기서 자지 않구
또 산 위에를 갈 텐가?” “오늘 밤에는 밤들을 새울는지 모르는데 가봐야지요.
” “어둔데 산에를 어떻게 올라가나?” “날씨가 익어서 불 없이두 다닙니다.
” 서림이가 일변 밥을 먹으며 일변 김억석이와 수작하는 동안에 다른 세 사람
은 거의 밥들을 다 먹어서 서림이도 수작을 그치고 수저를 부지런히 놀리었다.
아랫방과 건넌방에 저녁상을 다 물려내고 김억석이가 무당의 집에 간 동안에
서림이가 다른 세 사람을 보고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것을 김천만이에게 기별
만 하면 오늘 밤에 술을 먹게 될 테니 억석이 가기 전에 기별 좀 해달라구 부탁
합시다.” 하고 공론을 내어서 세 사람은 다 좋다고 찬동하였다. 김억석이가 굿
당으로 올라간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서림이가 보은리에 사람 하나를 보내달라
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자기가 분봉상시옆에 사는 김천만이의 집을 짐작한다고
그리 다녀서 굿당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밤이 이슥하였을 때 서림이의 요량과
틀림없이 과연 김천만이가 술방구리와 도야지 다리와 그외의 다른 음식을 큰 목
판에 담아서 사람을 지워 가지고 왔다. 건넌방의 안식구들은 밤참도 싫고 잠자
는 것이 달다고 일어나지를 아니하여 아랫방에서 김천만이까지 다섯 사람이 닭
이 두서너 홰를 치도록 술장을 보았다. 밤 지나니 단오날이다. 지난 밤에 김억석
이가 굿당으로 올라갈 때 딸보고 말하기를 구경할 자리는 미리 잡아두지마는 늦
으면 남에게 뺏기기 쉬우니 일찍들 나서시게 하라고 한 까닭에, 건넌방의 안식
구들은 첫새벽부터 일어나서 발동하고 아랫방의 늦잠 든 사내들은 안식구들의
성화 같은 재촉을 받고 할 수 없이 일어났다. 술 취하고 밤 깊어서 가지 못하고
한구석에 쓰러져 잔 김천만이는 저의 집에 가서 보고 나중 굿당으로 찾아온다
하고 일어나는 길로 바로갔다. 외인이 간 뒤에 안식구들이 잔소리를 퍼부어서
네 사람이 바쁘게 소세를 마치고 나니 조반상이 알맞게 나왔다. 안방에서 자고
나간 사람들이 건넌방의 일찍 서두르는 것을 보고 가서 말한 모양이었다. 조반
이 일러서 좋건마는 사내들은 입이 습사하고 안식구들은 구경에 들떠서 모두 조
반을 먹는지 만지 하고 상들을 내놓았다. 안식들이 청석골에서 나올 때는 행세
하느라고 일제히 삿갓을 썼지마느 구경을 가는 데는 삿갓이 말썽이 되어서 쓰자
거니 말자거니 두 패로 갈리었다. 사람 붐빈 구경터에 삿갓을 쥐고 다니기 주체
궂다는 건 쓰지 말자는 패의 말이고, 난잡한 구경터에 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창
피하다는 건 쓰자는 패의 날이었다. 마음이 사내와 같은 백손 어머니는 쓰지 말
자는 패의 괴수가 되고 꽃과 같은 황천왕동이 안해는 쓰자는 패의 괴수가 되어
서 나이 젊은 올케가 어머니 비슷한 시누님을 겨우 항거하는데 황천왕동이가 안
해를 버리고 누님에게 가담하고 다른 세 사내마저 황천왕동이를 조력하여 원래
힘이 기운 쓰자는 패가 다시 더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서 안식구는 모두 삿갓을
두고 맨얼굴로 나섰다. 햇살이 아직 퍼지기 전이라 풀섶의 이슬을 염려하여 검
은학골서 나섰으니 무던히 일찍 나선 폭이건만 진언문안을 들어오기 전부터 동
행이 띄엄띄엄 생기고 구융바위 동네 옆을 지날 때는 구경꾼이 앞뒤에 그치지
아니하였다. 송악산 산길을 잡아들었다. 사내들과 안식구 중에 배손 어머니는 평
지나 다름없이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걷지마는, 안시구 다섯 사람은 그렇지 못
하여 발을 떼어놓는 것이 차차로 더디어졌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맨 뒤에 떨
어지기를 잘하므로 황천왕동이는 올라간 길을 되내려와서 안해의 걸음을 재촉할
때가 많았다. 산 중턱을 채 오기 전에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다리가 아파서 한
걸음 떼어놓기가 약약한데 산꼭대기는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여 남편에게“인제
얼마나 남았소?” 남은 길을 물어보다가 “아직 멀었어.” 대답을 듣고는 다리
가 갑자기 더 아파져서 “난 다리가 아파 못 가겠소. 좀 쉬어나 갑시다.” 하고
길가에 주저앉았다. 황천왕동이가 웃으면서 “내가 업혀가 보지.” 안해를 조롱
한 뒤 앞서 가는 일행에게 쉬어가자고 소리를 쳤다, 한 굽이 위에 앉아 쉬기 좋
은 널으석바위가 있어서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끌고 더 올라와서 길 옆에 있는
반석 위에 일행과 같이 앉아 쉬었다. 일행 중에 여편네가 많고 여편네 중에 나
이 젊은 새댁네가 많고 새댁네 중에 얼굴 고운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여러 사람
의 눈이 반석 위로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옆으로 보며 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
보는 사람까지 더러 있었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길을 걸어올 때는 길만 보고
걸은 까닭에 남들이 자기를 보는지 안 보는지 잘 몰랐다가 앉아 쉬는 동안에 비
로서 아니, 여러 사람의 눈에 많이 자기 몸에 와서 실리는 듯 몸이 근지러워서
옆에 앉은 남편을 보고 “삿삿을 쓰고 왔으면 좋을 것을 공연히 쓰지 말라고 해
서 남들이 보는 것 창피해 못 견디겠소.” 하고 매원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속으
로 은근히 자랑할 일같이 생가되어서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데 백손 어머니가 올
케를 돌아보며“어떤 놈이 보든지 자네만 본체만체하면 고만 아닌가.” 하고 타
박을 주었다. 쉬고 일어난 뒤 한동안은 “아이구 길도 험해라.” “이런 데를 어
떻
게 밤에 올라다닐까?” “무서워 못 가겠소. 나 좀 붙들어 주우.” “먼저들 가
지 말고 같이 가요.” 이런 말들을 지껄이던 안시구 다섯 사람이 한참 동안 가
파른 길을 도두밟고 나서는 숨이 턱에 닿아서 말 한마디 지껄이지 모하고 땀을
철철 흘리고 걸음을 통히 걷지 못하였다. 사내 네 사람이 걸음 못 걷는 안식구
다섯 사람을 앞세우고 올라오면서 떠밀어 주기도 하고 붙들어 주기도 하게 되었
다. 그러자니 자연 내외끼리 손을 맞잡을 때가 많아서 곽능통이의 안해 하나만
외톨로 비어지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보고 “여게, 마누라 이리 오게. 우리도 손
붙잡고 가세.” 사내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하여 일행이 다 웃을 뿐 아니라 같
이 가던 다른 구경꾼까지 웃었다. 참내외 네 쌍, 거짓 내외 한 쌍 각각 쌍을 지
어서 붙들고 올라왔다. 서림이의 안해는 부끄럼이 없을 나이라 말할 것이 없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사람이 당돌하고 길막봉이의 안해는 사람이 어리무던하여 모
두 부끄런 줄을 모르나, 오직 황천왕동이의 안해만은 외모와 같은 고운 마음에
여러 사람 보는데 사내에게 손목 잡힌 것이 부끄러워서 걸어가는지 끌려가는지
발이 건공중에 놓이는 것 같았다. 올라가고 도 올라가고 올라 가는 길리 끝이
없는 듯 지루하여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오지 아니할 것을 공연히 왔다고
구경온 것을 속으로 후회까지 하였다. 앞서 가던 사람 중에서 누가 “인제 다
왔다!” 하고 외치는 소리에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귀가 번쩍 뜨이어서 줄곧 들
지 못하던 얼굴을 비로서 쳐드니 집체 같은 근 바위가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바위 아래 굽이진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건너편 산등갱 위에 당집이 여러 채 있
고 또 이편 이편 큰 바위 비슷 뒤에 큰 당집 앞 비탈 위에 둥구나무가 섰고 그
둥구나무에 그넷줄이 매어 이었다.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길은 그네터 옆에 층
층대요, 건너편에서 이편으로 다니는 길은 장등 위에 있었다. 장등은 좌우쪽으로
휘어서 활등 같고 장등 아래는 비탈이고 비탈 아래는 평바닥인데 평바닥도 물매
되지 않는 지붕만큼 지울어졌다. 기울어진 평바닥에 멍석을 죽 늘여깔고 차일을
높이 친것이 굿할 자리를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여러 당집에 사람들이 들락날
락하고 장등길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길 위의 잔디밭에 사람들이 웅긋쭝긋
섰기도 하고 또 퍼더버리고 앉았기도 하고 굿은 아직 시작이 안 되었는데 굿할
자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쌍을 지었던 내외들이 각각 떨어져서 서로 뒤
섞일 때 황천왕동이는 먼저 층층대를 뛰어올라가서 큰 당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김억석이와 같이 나오면서 층층대 아래에 모여 섰는 일행을
올라오라고 손짓하였다. 김억석이가 일행을 인도하여 여로 굿당을 잠깐잠깐 구
경시켜 주었다. 이편의 큰 당집이 곧 대왕당인데 대왕당 앞은 한편에 매로바위
가 있고 한편에 그네터가 있고 매로바위로부터 그네터까지 아래가 모두 낭떠러
지 아니면 비탈이라, 앞마당이 좁디좁아서 큰 당집에 어울리지 아니하였다. 건너
편에 있는 네 당집은 성황당 . 국사당 . 고녀당 . 부녀당인데 바로 북성문 안이
요, 북성문 밖으로 달리골이 내려다보이었다. 김억석이가 대왕당에서 가까운 비
스듬한 잔디밭에 미리 자리를 잡고 멍석 한 닢을 깔아두었는데, 멍석은 작고 사
람은 많아서 사내들이 안식구를 편하게 앉히려고 멍석 밖에 나가 앉으니 김억석
이가 이것을 보고 멍석 한 닢을 더갖다 깔아주어서 사내와 안식구가 모두 멍석
위에 다리들을 뻗고 앉았다. 조반을 설치고 왔단 말을 김억석이가 딸에게서 듣
고 요기할 떡도 가져오고 군입 다실 과실도 가져왔다. 김억석이가 뻔질 자주 올
뿐 아니라 억석이의 처 되는 무당이 그 바쁜 중에 일부러 와서 보고 또 억석이
의 아들이 심부름하려고 아주 옆에 와서 있었다.
해가 차차 늦아갈수록 구경꾼이 더욱 올려밀려서 굿당 근처에 사람이 와글와
글하게 되었다. 구경꾼에 여편네가 사내보다 더 많은 듯 푸른 나무 사이에 울긋
불긋한 무색옷이 꽃밭을 이루었다. 서울서 내려온 상궁 일행이 늦게야 비로서
올라오는데, 상궁 탄 보교가 사람을 헤치고 오는 품이 기구 있어 보이어서 누가
보든지 부러울 만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올라올 때 고생한 것을 돌리켜
생각하고 옆에 앉은 배돌석이의 안해더러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기구 있게 다
녀볼까?” 하고 한탄하여 말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어느 결에 듣고서 “나인이
되구 싶단 말이야?” 하고 빈정대어 책망하였다. 각 굿당의 무당과 박수들이 층
층대 아래오 몰여내려가서 상궁이 보교 밖에 나설 때 일제히 문안들을 드리었
다. 상궁은 좌우의 부축을 받고 층층대를 올라와서 대왕당으로 들어가고 상궁
일행과 같이 온 대왕당 큰 무당은 바로 굿할 자리에 가 서서 여러 무당 . 박수
를 지휘하여 차일 친 안에 기욋사람을 들어서지 못하게 금하고 전물상들을 날라
내다가 자리잡아서 벌여놓게 하였다. 이때 해가 벌써 아침때가 지나서 굿 시작
이 늦은 까닭에 전악들이 빨리 악기를 잡고 앉고 무당들이 지체 않고 복색을 차
리고 나섰다. 장고소리가 땅 하고 났다. 큰굿이 시작되었다.
단오날 굿은 예전에는 다섯 굿당에서 각각 하던 것인데, 대왕대비가 왕비 적
에 몸받아 내려온 나인이 별비를 쓰는 데 공평치 못하여 굿당 사이에 말썽이 난
것을 왕비가 알고 이후는 굿을 한테같이 하라고 분부를 내려서 큰굿판 하나를
벌이게 되었고, 대왕부인의 그네놀음을 예전에는 점심 쉬는 동안에 하던 것인데
그네 덕을 입으려고 헛애쓰는 사람이 연년이 엄청 많아지는 까닭에 큰굿판을 벌
이던 첫해부터 그네놀음을 점심 전에 일찍 하기 위해서 굿을 두세 거리 마친 뒤
에 한 차례 길게 쉬는 동안을 넣게 되었었다. 굿을 처음에 늦게 시작하면 오뉴
월 긴긴 해에도 해동갑하여 겨우 열두거리를다하게 되므로 뒤를 몰아칠 때가 많
은데, 대왕대비의 치성굿을 겸친 특별한 큰굿은 함부로 몰아칠 수도 없는데다가
시작이 늦게 되었으니 굿판이 밤까지 걸리기가 쉬웠다. 굿판 근처 사람이 겹겹
히 둘러서서 평바닥에 선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장등 위에 산 사람들도 굿구경
을 잘하기가 어려웠다. 청석골 일행 앉은 자리에서는 무당의 노는 꼴이 잘 안
보이건만, 그래도 보려고 앞에 와서 서는 사람을 비키라고 야단치고, 무당의 지
껄이는 소리가 통 안 들리건만, 그래도 들으려고 옆에서 떠드는 사람을 조용하
라고 책망하였다. 무당이 바가지를 들고 돌아다니며 무엇을 뿌리는 것 같으니
부정풀이가 끝나가는 줄 생각하고 무당이 너푼너푼 절을 하는 모양이니 가망청
배가 시작된 줄 짐작하였다. 가망노래를 하는지 만수받이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래도 바라보고들 있는 중에 굿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대왕당 큰
무당이 여러 무당과 박수들을 데리고 구경꾼을 헤치고 층층대를 올라와서 대왕
당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에 기대는 장고를 메고, 전악들은 제각기 악기를 들고
올라와서 대왕당 앞마당에 모여섰다. “대왕부인이 그네 뛰신다!”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며 굿 구경꾼들이 그네터로 몰려들어서, 둥구나무 아래는 사람이 빽
빽하고 올라다니는 층층대도 사람에 묻히었다. 청석골 일행도 그네터 가까이 가
려고 잔디밭에서 길로 내려오는데 김억석이가 대왕당에서 올라오다가 보고도 사
람에 취하여 정신이 없는지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지나가려고 하여 일행의 앞
에 섰던 황천왕동이가 그 어깨를 툭 쳤다. “어디루들 가실라구 내려오십니까?
” “자네는 어딜 가나?” “저 건너 무엇 좀 가질러 갑니다.” “자네 바쁜가?
” “바쁘구말구요.” “바쁘더래도 내 말 좀 듣구 가게.” “무슨 말씀입니까?
” “그네를 대왕부인이 뛰고 난 다음에 곧 우리 누님이 뛰게 해드리게.” “그
건 제 수로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으면 고만두게. 우리가 해보지.” “상
궁마마가 그네를 뛰신다니까 그 양반이 뛰신 다음에야 다른 사람이 뛰게 될걸
요.” “마마구 별성이구 다 고만두라게. 순리로 말해서 안 들으면 집어치우구
우리 누님을 뛰게 할 텔세.”“그러면 큰일납니다. 대왕대비전 몸 받아가지구 온
상궁마마를 조금이라두 건드리시기만 하면 뒤가 무사할 리 만무합니다.” “뒤
가 무사하지 못하더래도 겁 안 나니 염려 말게.” “굿당은 결딴나구 저는 죽습
니다. 제발덕분에 고만둬 줍시오.” “바쁜데 고만 볼일이나 보러 가세.”“아니
올시다. 고만두시겠단 말씀을 듣지 않구선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고만두구
싶지 않은 걸 자네 말루 고만두어?” “나중 뛰시면 어때서 그러십니까. 그네
뛰는 보람은 대왕께서 굽어 살피시기에 달렸지 처음 나중에 달린 것이 아닙니
다.” “인제 잘 알았네. 고만 가게.” 황천왕동이는 그예 자기 누님을 상궁보다
먼저 그네뚜;게 할 생각이 있어서 김억석이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김억석이와 수작하는 동안이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적지 않은 일
행이 넓지 못한 길을 차지하다시피 하여 다른 구경꾼들에게 이아치고 부대껴서
가만히 섰을 수가 없으므로 길을 틔워놓고 대왕당 담 옆으로들 들어섰다. “이
야기가 길거든 이리 와서 이야기를 하게.” 배돌석이가 소리쳐 불러서 김억석이
는 먼저 오고 또 백손 어머니가 손짓하여 불러서 황천왕동이는 뒤에 왔다. 백손
어머니가 김억석이더러 “그네를 맨 첫번에 뛰면 보람이 더 날 것 같은데 참말
먼저 뛰나 나중 뛰나 매한가지요?” 하고 물어서 “아까두 말씀을 여쭸지만 보
람은 대왕의 영검이 내리시기에 달렸으니까 맨 처음에 뛴다구 보람 있으란 법두
없구요, 맨 나중에 뛴다구 보람 없으란 법두 없습니다.” 김억석이가 대답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옆에서 “그건 자네가 공연한 말일세. 먼첨 뛰는 것이 좋기
에 상궁이 맨첫번에 뛴다는 것 아닌가?” 하고 타박을 주니 “제가 공연한 말을
할 리가 있습니까. 작년에 국사당 성관의 사촌되는 속병 있는 아낙네가 맨 첫번
에 그네를 뛰었다는데 그 속병은 지금두 전이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러구
그 아낙네의 시누이는 십년 소박뜨긴데 나중에 뛰었건만 대왕의 영검이 내리셔
서 내외가 곧잘 살게 되었답니다. 지금 두 아낙네가 다 국사당에 와 있습니다.
만일 제 말이 미심하거든 그 아낙네를 대어 드릴께 친히 물어보십시오.” 김억
석이는 저의 말의 증거될 만한 사실을 들어서 주작부언 아닌 것을 구구히 발명
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대왕당 그네를 뛰려고 오기는 실상 신병 때문이 아니다.
남더러 말하는 신병을 내세웠지만 자기의 속생각은 따로 있었다. 남편이 원체
계집을 좋아하여 딴 계집 보는 일은 자기 알기에도 종종 있었지만 아주 들여앉
혀서 데리고 산 일을 한번도 없었는데 늦게 바람이 일었는지 서울 가서 계집을
들여앉힌 것이 첩도 아니고 안해라고 하고,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된다고 하니
남에 없이 된시앗을 본 셈이다. 그 뒤로 남편이 자기에게 하는 것도 전 같이 않
거니와 자기 역시 남편에게 대한 향념이 전만바이 못하여져서 어떻게 하면 내외
사이가 전과 같이 탐탁하여질까 살풀이도 하고 싶고 예방도 하고 싶던 차에 대
왕당 그네가 보람 있단 말을 듣고 머리악을 쓰고 온 것 이다. 일심정념으로 그
네를 뛰러 왔으니 보람은 남에게 앗기지 않도록 남들 뛰기 전에 먼저 뛰고 싶었
으나, 김억석이의 말을 듣고 본즉 그네를 나중 뛰고도 신통한 보람이 있다는 바
엔 구태여 말썽을 내가며 첫번 뛰려고 할 것이 없었다. “먼저 뛰려고 애쓸 것
이 없으니까 말썽을 부리지 마라.” 백손 어머니가 동생더러 말을 일렀다. 황천
왕동이가 누님의 말은 대답 않고 김억석이더러 “그럼 상궁이 뛴 담에는 아무가
뛰어도 좋은가?”하고 물으니 “상궁 일행의 뛸 사람이 다 뛴 담에, 인제 그네
들 뜁시오 하고 외친다니까 외친 뒤에 뛰시두룩 합시오.”하고 김억석이가 대답
하였다. “한 년이 뛰나, 두 놈이 뛰나 남이 먼저 뛰기는 매일반이니까 아무래두
좋지.” “저는 여러분이 말썽을 내시까 봐 겁이 더럭 났었습니다.” 김억석이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것같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앞으로 나
서서 “아버지 너무 지체되어서 지천구나 듣지 않으시겠소?”하고 말을 하니 김
억석이가 한번 웃고 “너두 그네를 뛸 테냐?”하고 물었다. “뛰게 되면 뛰지요.
”“참말루 여러분들이 그네 뛰는 법이나 다 아시나?” 김억석이가 딸에게 말하
면서 여러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뛰는 법이 무어예요?” “이 그네는 남
이 뛰는 그넷줄이 몸에 와서 다면 지궐을 입는다구 대기다. 굿당 식구들만 기하
지 않는데 그 대신 굿당 식구들은 그네를 뛰어두 보람이 없단다. 그래서 처음에
그네를 차지하려구 우들 달려들다가두 한 사람이 그네에 올라서면 다른 사람은
그넷줄이 몸에 닿지 않을 만큼 피해 서서 그 사람이 다 뛰구 내려오기를 기다리
구 오래 뛰면 고만 뛰라구 소리는 질러두 가서 붙잡지는 못한단다. 만일 질감스
럽게 오래 그네를 놓지 않으면 굿당 식구가 가서 말한다더라.” “그네를 서로
뺏지 못한단 말은 우리도 듣고 왔세요.” “응, 듣구 왔어?” 김억석이는 딸과
말을 다한 뒤에 여러 사람을 보고 “인제 고만 갑시다.”하고 건너편 굿당으로
건너가고 여러 사람들은 “그네를 맨 첫번에 뛰지 않을 바엔 일찍 가서 사람들
틈에 부비대기치느니 도루 자리에 가서 앉았다가 나종 갑시다.” 황천왕동이의
발론을 쫓아서 다시 멍석자리로 돌아왔다.
무당과 박수들이 그네터 가까이 들어섰는 사람들을 훨씬 뒤로 물리고 그네터
옆에 새 멍석을 깔고 멍석 위에 등메를 덧깔고 그리하고 풍악을 잡히면서 대왕
과 대왕부인의 목상을 조심조심 받들어 내다가 등메 위에 세워놓았다. 장고 멘
무당과 징 든 무당이 저, 피리, 해금 등속을 가진 악수들을 데리고 그네 뒤에서
멀찍이 둘러섰다. 장고소리로 풍악이 시작되며 대왕을 그네 위에 올려세웠다. 함
진아비의 질삐와 같고 내행 보교의 얽이와 같은 무명 끝으로 아래위를 동여매는
데, 아랫도리는 좌우쪽 그넷줄에 각각 따로 잡아매었다. 젊고 끼끗한 무당들이
그네 뒤에서 슬쩍슬쩍 물을 먹이면서 바로 세게 먹이는 것처럼 ‘이잇’소리들
을 질렀다. 얼마 동안 그네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 뒤에 징소리로 풍악이 그치며
대왕을 그네에서 끌러내렸다. 대왕 다음에는 대왕부인이 차례인데 장고소리 나
며 올려세우고 풍악소리 중에 동여매고 물먹이고 징소리 나며 끌러내리는 것이
다 똑같고 동안만 좀더 길었다. 건너편 굿당으로 가던 김억석이는 어느 틈에 돌
아왔는지 무명 여러 끗을 풀어주고 사려놓은 것으로 일 한 몫을 보고 있었다.
대왕과 대왕부인의 어우렁그네는 그네 너비에 두 목상을 어울려 세울 수가 없으
므로 몹쓸 장난꾼들이 부끄럼타는 신랑 신부를 마주 앉히고 한데 동이듯 두 목
상을 배 맞춰서 잔뜩 동인 뒤에 따로 유난히 크게 만든 밑싣개 위에 반을 타서
올려세우고, 위니 아래니 중간이니 할 것 없이 모두 좌우쪽 줄에 단단히 잡아
매었다. 어우렁그네를 사내끼리 뛰는 것도 좋고 여편네끼리 뛰는 것도 좋으나,
사내와 여편네가 섞여서 뛰는 것은 난잡한 짓이라 대왕과 대왕부인이 난잡한 짓
을 하는 까닭인지 풍악소리도 먼저와 달라서 간드러지고 자지러질 때가 많고 물
먹이는 무당들도 ‘이잇’소리 대신에 “잘 뛰신다. 어허 잘 뛰신다!” 말하는
것을 노랫가락 하듯 하였다. 한동안 지난 뒤에 대왕과 대왕부인의 어우렁그네가
끝이 났다. 두 목상을 그네에서 끌러내려서 등메 위에 세웠다가 당집 안으로 받
들고 들어갔다. 무명 끗을 거두고 멍석과 등메를 말고 그네 밑싣개를 바꾸어 끼
우느라고 분주할 때 벌써 한편에서 그테 뛰려는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무당과 박
수들이 결진한 듯 늘어서서 그네 앞을 막으며 그중의 한 박수가 큰소리로 “대
왕대비전 몸을 받아오신 상궁마마께서 뫼시구 상궁마마를 뫼시구 온 여러분이
뛰신 다음에 그네가 날 테니 좀 참으시오.”하고 외치었다. 대왕대비전 몸받은
상궁마마란 말 한마디에 밀려 들어오던 사람들이 겁이 났는지 모두 슬금슬금 뒤
로 물러나섰다. 그 뒤에 상궁이 여러 여편네의 옹위를 받고 그네 앞으로 나오는
데 사람은 늙었지만 복색은 젊어서 아래에는 남치마요, 위에는 옥색 삼회장 겹
저고리다. 그러나 시골서 다들 홑적삼을 입을 때에 겹저고리를 입은 것은 서울
풍속이 아니면 나이 늙은 탓일 것이다. 늙은이가 복색을 젊게 차린 것도 궁중의
항습을 모르는 시골 사람들 눈에 설거니와, 그보다도 더 눈에 익지 못하여 기이
하게 보이기는 머리에 쓴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개구리 달린 첩지이다. 젊은
무당 너덧이 상궁을 떠받들어서 그네 위에 올라서게 하고 한번 물을 먹이니 나
간 그네가 다시 들어오기 전에 주저앉으면서 “아이구 어지럽다. 내려다구.”하
고 소리를 질렀다. 무당 하나가 그넷줄을 붙잡고 또 무당 서넛이 상궁을 받들어
내린 뒤에 곧 좌우에서 부축하고 전후에서 호위하고 대왕당으로 들어갔다. 상궁
이 나올 때 옹위하고 나오던 무당 외의 여편네 너덧은 상궁의 뛰는 그네를 피하
여 한옆에 물러섰다가 상궁이 내려온 뒤에 한 사람씩 차례로 나와서 그네를 뛰
는데 제법 줄을 벌려가며 잘 뛰는 사람도 있고 그네터 아래가 비탈진데 겁이 나
서 어린아이들같이 앉은 그네를 뛰는 사람도 있었다. 여편네들이 다 뛰어갈 때
또 복색 다른 사내 서넛이 당집에서 나와서 여편네의 뒤를 대었다. 그네 나기를
고대하는 사람들 중에 여편네들만 뛰고 말기를 바라다가 사내들마저 뛰는 데 속
이 상하든지 “잠깐 잠깐 뛰구 그네 내노시우.” “다른 사람두 좀 뜁시다.”하
고 소리들을 지르니 그네 위에 올라섰는 송기떡빛 군복을 입은 사람이 소리나는
곳을 내려다보며 “소리들을 지르면 일부러 더 오래 뛸 테니 아무 소리 말구 가
만히 있거라.”하고 맞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외에 두 사람이 그네를 마저 다
뛰고 나자, 박수 하나가 여러 사람들을 향하고 “자, 인제 그네 났습니다.”하고
소리질러 외쳤다.
대왕당 대왕부인의 그네놀음을 청석골 일행은 멍석자리에 편히 앉아서 구경들
하였다. 그 야단스러운 어우렁그네가 끝나고 상궁이 그네 앞으로 나올 때 백손
어머니가 “우리도 인제 고만 그네터로 내려가지.” 들떼어놓고 말하고 곧 먼저
일어섰다. 다른 사람들이 백손 어머니를 따라서 부산하게 일어서는데 황천왕동
이는 앉은 채 누님을 치어다보며 “나인 일행이 한둘이 아닐 테니 좀더 있다가
가두 좋소.”하고 말하였다. “잠깐 잠깐 뛰면 얼마나 걸릴라구 그래. 미리 가서
기다려야지 남에게 뺏기지 않지.” “첫번은 벌써 뺏겼는데 더 뺏길 거 있소?”
“잔소리 말구 어서 일어나.” “일어나라면 일어나리다.” 황천왕동이가 벗어놓
은 미투리를 발에 꿰면서 “그런데 여보 누님, 이따가 내가 어떻게든지 먼저 들
어가서 그네를 차지할 테니 누님은 내 뒤만 따라오두룩 하시우.” 말하여 백손
어머니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길막봉이가 불쑥 중간에 나서서 “그런 구차한
짓 할 거 무엇 있소? 우리 넷이 여러 사람 앞에 나가 섰다가 저기 저 사람들 하
듯이 팔을 벌려서 그네에 못 덤비두룩 막읍시다.” 말하니 여러 안식구들이 모
두 길막봉이의 말을 좋다고 하였다.
일행이 그네터에 가까이 와서 사람이 박히어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
내들은 억지로 틈을 뚫고 앞으로 나가서 사람이 많은 층층대 쪽에 힘이 센 길막
봉이가 서고 사람이 적은 대왕당 앞마당 쪽에 힘이 약한 서림이가 서고 황천왕
동이와 배돌석이가 그 중간에 띄엄띄엄 서고 안식구들은 사람 틈에 끼여서 꼼짝
을 못하다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대왕당 담 모퉁이에 여섯이 함께 뭉
쳐섰다. 안식구 중의 백손 어머니는 성미가 겁겁한 사람이라, 상궁 일행의 그네
뛰는 사람이 너무 많은 데 홧증이 나서 곧 대왕당 담을 상궁으로 보고 주먹질이
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나기까지 하였다. 그네 났다고 외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여러 사람이 와 하고 그네터로 달려드는데 사내 네 사람이 그네를 등지고 팔을
벌리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다. 사내 네 사람은 곧 청석골
사람들이니 길막봉이는 힘으로 내밀고 배돌석이는 악지로 막고 서림이는 뒤로
차차 밀리는데 황천왕동이가 의사스럽게 박수의 외치던 것을 본떠서 “먼저 일
행들 외에 또 그네 뛰실 행차가 기시니 잠깐만 더 참으시우.”하고 소리를 질렀
다. 여러 사람이 다 무춤하였다. 그 동안에 청석골 안식구들은 앞마당 쪽으로 들
어왔다. 그중의 백손 어머니가 제일 앞서서 거의 그넷줄 앞에 다 왔을 때, 그악
스럽게 아래 비탈로 기어올라오는 여러 여편네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서
그넷줄을 먼저 잡았다. 김억석이가 청석골 일행 까닭에 일부러 나와서 그네 앞
에서 돌다가 이것을 보고 얼른 그넷줄을 채쳐 뺏어 백손 어머니를 주었다. 백손
어머니가 그네 위에 올라서니 그네 아래로 올라오던 여편네들은 굴러떨어지듯
내려가고 그네 뒤로 들어오던 여러 사람은 등겁들 하여 비켜나섰다. 그러나 억
지를 쓰고 속임수를 써서 그네를 차지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마음이 좋을 까닭이
없었다. “행차가 무슨 기급할 놈의 행차야.” “대체 그놈들이 웬놈들인가?”
“그래 저놈들을 가만두어!” “다리뼈들을 퉁겨놨으면 좋겠다.” 이런 욕설이
여기저기 나던 끝에 층층대 쪽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막된 사내 하나가 사
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더니 다짜고짜로 발길을 날려서 길막봉이의 등판을 내
찼다. 길막봉이가 백손 어머니의 그네 뛰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심결에 이
것을 당하였으니, 여느 사람 같으면 반드시 앞으로 고꾸라졌을 것인데 막봉이는
아무 일 없는 것같이 예사로 돌아서서 그 사내를 보았다. 그 사내가 주먹을 부
르쥐고 달려드는 것을 막봉이가 한손으로 그 주먹 쥔 손목을 붙잡으니 그 사내
입에서 대번 아이구 소리가 나왔다. “쌈났다!” 다른 사람들 외치는 소리에 막
봉이는 창피한 생각이 나서 손목을 놓고 그대로 용서하기는 싫어서 괴춤과 허리
끈을 겹쳐서 움켜잡으며 곧 팔이 머리 위로 쪽 뻗치도록 치켜들고 걷어차려고
놀리는 두 팔을 다른 한손으로 제어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쫓아와서 “그깐 놈을
왜 하늘 구경을 시켜주나, 땅 구경을 시켜주지.”하고 부추겼다. “땅 구경이라
니?” “꺼꾸루 들면 땅 구경을 하지.” “어디 하늘 구경, 땅 구경 다 시켜줄
까.” 막봉이가 그 사내를 내려세우며 곧 허리춤을 비틀어 뒤잡고서 꺼꾸로 치
켜들고 다른 한손으로 그 두 손을 놀리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구 죽겠다.” 다
죽어가는 소리가 그 사내 입에서 나자, 곧 옆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살인이야!
” 아우성 소리가 났다. 장난꾼 한두 사람이 거짓말로 아이 났다고 떠들어도 사
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는 구경터의 일이라, 사람이 죽지도 않았는
데 살인났다고 헛소동이 생겨서 여러 사람들이 한참 술렁거리었다. 서림이와 배
돌석이가 급히 와서 공연한 소동을 내지 말라고 말들 하고 그네 뛸 차례를 기다
리던 막봉이가 자기 안해와 그네를 다 뛰고 내린 백손 어머니까지 쫓아와서 말
썽을 부리는 것이 부질없다고 말들 하여, 길막봉이는 그 사내를 내려 앉혀놓고
소위로 말하면 단단히 속일 것이지만 그만하고 용서하니 다시는 그런 버릇을 하
지 말라고 바로 점잖게 일러서 놓아주었다. 허위대 큰 장정을 어린아이처럼 다
루는 것을 목도한 여러 사람들은 무서운 장사니 천하 장사니 하고 떠드는데 그
중에 “저게 임꺽정이 아니까?” “임꺽정이는 수염이 좋다는데.” “수염을 몽
탁 잘르고 온 게지.” “구경을 오자구 수염을 잘라?” 이렇게 쑥덕거리는 사람
들도 있었다.
헛 살인소동이 났다가 가라앉는 동안에 그네는 처음에 백손 어머니가 실컷 뛰
고 그 뒤에 서림이의 안해와 곽능통이의 안해와 배돌석이의 안해가 잇대어서 뛰
고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배돌석이의 안해의 뒤를 받아서 뛰는 중인데, 여러 사
람들의 눈이 모두 그네판으로 쏠리게 되었댜. “선녀가 하강하지 않았나?” “
그네터가 홀저에 환한 것 같애.” “고 아주먼네 한입에 꼴딱 집어삼켰으면 좋
겠다.” “나하구 어부렁그네 좀 뛰지 않나.” 사내들 입에서 된 소리 안된 소리
칭찬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여편네끼리도 “저렇게 이쁜
사람 처음 보았어.” “참말 얌전한데.” 이와 같은 말로 칭찬들 하였다. 황천왕
동이의 안해가 뛰고 난 뒤 끝으로 길막봉이의 안해가 뛰어서 안식구 여섯은 모
조리 다 뛰고 사내 넷은 그네를 다른 여펀네에게 내주라고 하나도 뛰지 아니하
였다.
청석골 일행이 그네터에서 멍석자리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보라고 한 김억석
이의 아들은 어디 가고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어나지
아니하여 황천왕동이가 “이것이 임자네들 자리요?”하고 시비조로 말을 붙이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빈 자리에 누구는 못 앉겠소.” 말대꾸를 하였다. “빈 자
리엔 앉아두 좋겠지만 주인이 왔으면 내놔야지.” “앉았는 사람이 주인이지 또
따루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이오?” 말하는 꼴이 문문히 자리를 내놓을 것 같지
않더니 “임자들두 한 번씩 꺼꾸루 치어들려 보구 싶소?” 황천왕동이의 으름장
한번에 말대답하던 사람과 앉아 보던 사람이 모두 흘낏흘낏 눈치를 보며 슬금슬
금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한동안 지난 뒤에 김억석이의 아들이 와서 “
자리 안 보고 너 어디 갔었느냐?” 그 누이 배돌석이의 안해가 나무라니 “혼자
앉았기가 심심해서 굿자리에 갔었소.”하고 발명하였다. “아버지 거기 기시드
냐?” “아버지는 점심밥 짓는 데서 일 보시우.” “어기 대왕당 안에?” “아
니오. 대왕당 밖에 솥 걸어논 데가 있소.” “굿은 지금 몇 거리째냐?” “굿은
다시 시작한 뒤 한 거리 하구 지금 두 거리째 하우. 그런데 이번 거리 끝나면
점심들 먹을라구 또 쉰답니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됐나?” 배돌석이의 안해
가 해를 치어다보았다. “참말 해가 한나절이 다 되었구나. 열두거리굿에 겨우
네 거리하고 점심 먹으면 여덟 거리를 해 지기 전에 다 할까.” “다 하는 게
무어요? 밤까지 걸리겠답디다. 그래서 서울서 온 상궁마마란 이가 유규사또께
대초를 보내라구 기별하구 대왕당 성관이 홰하구 광솔을 많이 준비시키라구 이
릅디다.” “상궁이 어느 틈에 굿자리에를 내려갔든가?” “아까 살인났다구 떠
들 때 내려갔소.” “너는 그 전에 먼저 갔드냐?” “그래서 사람 공기놀리는
구경을 못했소.” “누가 사람 공기를 놀려?”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구
공기를 놀렸다며 저기선 모두 그렇게들 이야기합디다.” 여러 사람이 일시에 길
막봉이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애 우리 점심은 어떻게 하실라나 아버지께
가서 좀 여쭤 보구 오너라.” “그러리다.” 김억석이의 아들은 앉지도 못하고
바로 대왕당으로 내려갔다. “그네를 뛰어 그런가, 나는 벌써 배가 고파.” “그
네 안 뛴 우리두 속이 출출하우.” “우리가 조반을 설쳐서 그런 거야.” “그
대신 여기 와서 떡 먹지 않았소?” “그까짓 군음식 잠깐 요기밖에 더 되나.”
이와 같이 시장하단 말들이 나온 끝에 “이애가 가더니 오지 않네.” “이놈이
해망쩍게 또 어디 구경을 가지 않았나.” “점심 올 때 같이 오려고 기다리고
있는 게요.” “점심이 미처 인 됐으면 먼저 와서 말이라두 해야지.” 김억석이
의 아들이 오래 오지 않는 것을 말들 할 때 아이놈이 아니꼽게 뒷짐을 지고 아
실랑거리며 올라오더니 뒷짐진 채 자리 앞에 와 서서 “엿들 좀 잡수실랍니까?
”하고 뒷손에 들었던 큰 엿조각을 자리에 내놓았다. 황천왕동이가 자살궂게 “
이걸루 점심 요기하라드냐?”하고 물으니 김억석이의 아들은 시뜻하면서 “아버
지가 보낸 줄 아시네. 내가 사온 건데.”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무얼루 샀어?
” “공거예요.” “공거라니 엿장사한테 공히 얻었단 말이야?” “아니오.” “
그럼 훔쳤구나.” “별소리 다하시네. 저기 굿당 앞마당에서 땅에 떨어진 장두
하나를 주웠세요. 임자를 찾아줄 수 없구, 나는 가지기 싫구 그래서 엿을 샀지
요.” 여러 사람이 저고리 옷고름에 찬 장도가 있나 없나 보는 중에 서림이가
겉옷 위로 바른편 젓가슴께를 만지더니 부지런히 겉옷 자락을 헤치고 보며 “이
애 내 장두가 없어졌다.”라고 말하여 김억석이의 아들은 저더러 훔쳤다는 것처
럼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 주운 것이 칼집이 어떻드냐?” “새까만 나뭅디다.
” “끈은 무엇이드냐?” “다 해진 명지끈입디다.”“그게 틀림없이 내 것이다.
그 엿장수 어디 있느냐?” “엿을 다 팔구 빈 목판 가지구 내려갔는걸요.” “
내려간 지가 오래지 않거든 엿 가지구 쫓아가서 장두를 물러오너라.” “글쎄,
벌써 갔는데 지금 쫓아가서 될까요?” 김억석이의 아들이 머리 뒤를 긁적긁적하
였다. 황천왕동이가 어느 틈에 엿을 떼어서 먹어보고 “그 엿 만나다.”하고 깔
깔 웃었다. “지금 물르긴 어디 가 물르우. 내가 벌써 호닥했으니 고만 그대루
먹읍시다.” “자, 엿을 이리 내시우. 엿임자는 내니까 내가 노느리다.” 서림이
가 엿을 갖다가 사람 수대로 몫을 지어 나누는데 김억석이의 아들을 한 몫 주면
서 “옛다 이놈아. 이담엔 너의 아버지 장두 훔쳐다가 엿 사먹어라.”하고 우스
갯소리 하였다. 엿들을 다 먹고 난 뒤에 김억석이가 일꾼 한 사람과 같이 점심
국밥 열 그릇을 두 목판에 갈라 담아가지고 올라왔다.서림이가 김억석이
를 보고 바로 정색을 하고서 “자네 아들이 내 장두를 갖다가 엿을 사먹었으니
자네가 물어내게.”하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웃거니와 아들까지 픽픽 웃어
서 김억석이는 어리둥절하다가 장도로 엿 사먹게 된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웃으
면서 “저는 장두가 없으니까 환두루 대신 드릴까요?”하고 서림이의 말대꾸를
하였다. “그러면 내가 대리를 보게. 그렇지만 장두 대신 선선히 내놓는 달 젠
환두는 다 봤네. 내던져두 주워갈 사람이 없는 게지.” “참말 제가 이번에 여기
와서 환두 한 자루를 샀는데 물건이 제법 좋습디다.” “자네두 또 땅에 떨어진
걸 줍지 않았나?” “실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을에 벼 닷 말 주기루 하구 샀
습니다.” “자네가 지금 환두는 무엇에 쓸라구 샀나?” “전에 몸에 지녀보든
물선이라 공연히 탐이 나서 샀습지요. 여러분 숙소하신 집 주인이 들구 나는 것
이 있다구 살라느냐구 묻기에 실없이 가져오라구 말했더니 가져왔는데 물건이
탐나길래 그대루 차지했습니다.” “그럼 그 환두는 내 겔세.” “벼 열 말 주신
다면 드립지요.” “저런 욕심쟁이 보게. 앉아서 곱장사할 셈이야.” 서림이 말
끝에 황천왕동이가 손을 내저으며 “환두 흥정은 나중 하구 점심이나 먹읍시다.
” 말하고 국밥을 먼저 먹기 시작하였다.
점심이 끝난 뒤에 배돌석이가 사내들끼리만 편쌈을 구경하러 가자고 발론하였
더니 황천왕동이는 편쌈 구경 재미없다고 싫다고 하고, 서림이는 김천만이가 찾
아온다고 하였으니 다른 데 가지 말고 기다리자고 하고, 길막봉이는 처음에 갈
듯이 하다가 안식구들이 편쌈 구경은 무엇하러 가느냐고 말리는 데 쏠리어서 마
침내 고만둔다고 자빠졌다. 배돌석이는 동무 없으면 혼자 간다고 분분히 옷을
떨어뜨리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배돌석이 간 뒤 남은 사내 세 사람이 근처에서
돌아다니자고 말들 하고 함께 나서서 이리저리 다니는 중에 매로바위 뒤 한뎃솥
걸린 곳을 와서 보니 김억석이 부자가 그제사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마침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앞을 섰던 서림이가 먼저 “자네 부자는 인제 점심 먹나?”하
고 소리치니 김억석이가 한번 치어다보며 곧 밥그릇을 손에 든 채 일어섰다. “
어서 먹게.” “어째들 오십니까?” “왜 못올 데를 왔나. 자네 보러 왔네.” “
무슨 시키실 일이 있습니까?” “자네가 자랑하던 환두 좀 구경할라구.” “그
건 못하겠습니다.” “어째? 여기 없나?” “여기 있는 제 보퉁이 속에 들었지
만 안 보여 드릴랍니다.” “장두 대신 뺏을까 봐 겁이 나나?” “구경하신다구
아주 차지하시면 저만 낭패 아닙니까.” “안 먹을 의심은 먹지 말구 먹을 밥이
나 먹게.” 서림이가 김억석이와 실없는 수작을 하는 동안에 황천왕동이와 길막
봉이는 매로바위 밑에 와서 바위를 치어다보며 서너 길 되느니 못 되느니 눈어
림을 다투고 있었다. 서림이가 와서 치어다보고 “이 바위 높이쯤은 긴 바지랭
대두루 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잴 수 없다구 치더래두 망해도 법만 알면 대번
바위 높이를 알 수가 있소. 그 아는 법은 조그만 나무때기를 바위와 같은 방항
으로 세우구 그림자 길이를 재어보구 그 다음에 바위의 그림자 길이만 재어보면
바위 높이는 자연 알게 되우. 지금 가령 한 자 되는 나무때기의 그림자가 두 자
가 되었는데 바위 그림자는 스무 자라구 하면 바위 높이가 열 자가 아니겠소.”
수리를 알거냥하고 한바탕 잘 지껄이었다. 김억석이 부자가 먹던 밥을 다 먹고
옆에 와서 섰는데, 서림이의 수리 자랑이 끝난 뒤에 김억석이가 새삼스럽게 “
참말 환두 구경들 하러 오셨습니까. 지금 이리 갖다 드리리까?”하고 물어서 서
림이는 미처 대답하기 전에 황천왕동이가 웃으면서 “누가 환두 구경하러 왔단
말인가? 자네두 꽤 어리숙한 사람일세. 그런 말을 다 곧이듣나.”하고 말하였다.
“실없는 말씀인 줄 알면서두 혹시를 몰라서 여쭤봤습니다.” “사람을 한번 들
었다 놔두 살인났다구 야단치는 판에 환두를 번쩍번쩍 내둘러 보게. 송도부 군
관들이 줄달음박질하네.” “그럴 염려두 없지 않지요.” “환두 이야기는 고만
두구, 여보게 이 바위 위가 편편한가 어떤가?” “올라가 보지를 못했으니까 모
르겠습니다.” “여기 올라가 본 사람이 없나?” “아마 올라가 본 사람이 없을
걸요. 연전에 초군 하나가 동무들과 술내기하구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답니다.
” “내가 올라가께 자네 술 한턱을 낼라나?” “술은 달라시면 드릴 테니 위태
한 일 마십시오.” “이까지 데가 무에 위태하단 말인가?” 황천왕동이가 바위
위를 올라가 본다고 갓과 옷을 벗어서 김억석이 아들에게 맡기었다. 황천왕동이
는 백손 어머니와 두 남매가 백두산 속에서 자랄 때에 층암절벽에도 다람쥐같이
다니던 사람이라 매로바위쯤 여반장 올라가려니 생각하였더니, 수십 년 동안 팔
다리를 편히 놀린 까닭에 생각과 달라서 바위 위를 올라오는 데 힘이 들었다.
그러나 올라올 때 힘이 든 만큼 올라온 뒤 마음이 더 상쾌하였다. 이 세상이 혼
자 우뚝 높은 듯도 하고 또 이 세상에 홀로 외로이 남은 듯도 하였다. 편편치
못한 바위 위에 꼿꼿이 서서 휘파람을 휙휙 불었다. 이것이 남매 같이 산속에서
돌아다닐 때 서로 잃어버리고 서로 찾는 군호로 불던 휘파람이다. 휘파람 소리
크기가 여간 피리소리만 못지아니하였다.
매로바위에 사람이 올라간다고 여기저기서 바위를 바라볼 때 청석골 안식구들
도 죽 일어나서 바라보았으나 바위가 대왕당에 가려서 보이지 아니하여 다들 다
시 앉았는데 휘파람 소리가 풍편에 들려왔다. 백손 어머니가 홀저에 깜짝 놀라
면서 “그게 내 동생이야.”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나서 마주 휘파람을 불었
다. 휘파람 소리가 오고가는 동안에 백손 어머니는 아득한 아이 적 일이 생각에
떠올랐다. 아렴풋한 꿈자취와 또렷한 환조각이 한데 뒤섞여서 나타나는 듯 사라
지고 사라지는 듯 나타나서 정신 놓고 멍하니 서 있는데 다시 들리는 휘파람 소
리, 동생이 자기를 오라고 부르는 것만 같아서 허둥지둥 신발을 신었다. “어디
를 가실라고 그러세요?” “바위에 가실래요?” “아이 고만두시지, 거긴 가 무
어 하세요.” 다른 안식구들의 말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는 듣는지 만지 대답 한
마디 아니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멍석자리에서 길로 내려설 때 “우리 영감을
혼자 가시랄 수 있나, 내가 따라가야지.” “갈 테면 사람 없는 데로 해 갑시다.
” “아무리나.” 백손 어머니가 곽능통이의 안해와 같이 대왕당 뒤를 돌아서
매로바위께로 오면서 바라보니 천왕동이는 바위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저애
가 벌써 내려오네.” “황서방께서 의관을 벗고 올라가셨구먼. 보지도 않고 용하
게 아셨네.” “진작 올걸.” 백손 어머니가 공연히 맥이 풀리는 듯 바삐 걷던
걸음까지 저절로 늦추어져서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에 천왕동이는 땅에 내려서서
손과 몸에 묻은 이끼를 털고 의관을 다시 차리었다. “누님 어째 오시우?” “
나도 바위에 올라갈라고.” “누님은 못 올라가우. 보기엔 우스워두 꽤 힘듭디
다.” “너 올라가는데 내가 못 올라가?” “옛날 말씀이오.” “지금 나이 좀
많기로서니 설마 아주 그럴라고.” “나두 전과 다른데 누님이야 더 말할 것 있
소.” “어디 내 좀 올라가 보마.” “당치 않은 말씀 말구 고만두시우.” 천왕
동이 말끝에 곽능통이의 안해가 “망령이지. 어디를 올라간다고 그러시오.” 말
하며 손목을 잡아끌고 서림이와 길막봉이와 또 김억석이까지 모두 나서 말리어
서 백손 어머니는 바위를 올라가지 못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눈뜨고 꿈을 꾸며
동생을 쫓아왔으나, 꿈도 이미 오는 길에 깨졌고 동생도 벌써 바위에서 내려온
때 혼자 따로 올라가기는 점적한 생각이 나서 여러 사람이 말리는 데 못 이기는
체하고 고만두었다. “고만 자리루들 가십시다.” 서림이가 말하고 여러 사람의
앞을 서서 그네터 뒤를 지나 자리로 올라오는데 의관한 사내 하나가 자리 앞에
서서 남아 있는 안식구들에게 무슨 말을 묻는 모양이라, 서림이는 김천만이가
와서 자기네 간 곳을 묻는 줄로 생각하고 “인제 왔나?”하고 소리를 치니 그
사내가 한번 돌아보며 곧 빠른 걸음으로 건너편 길로 가다가 비탈 아래로 내려
가며 못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서림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괴상하다 생
각하며 자리에 왔을 때 백손 어머니가 먼저 “지금 여기 와 섰는 놈이 웬놈인
가?”하고 물으니 자리에 일어섰는 안식구 중에 배돌석이의 안해가 앞으로 나서
서 대답하였다. “글쎄, 모르겠세요. 나이 한 이십 남짓한 젊은 사람인데요, 처음
에 와서 청석골 임장사가 여기 왔다더디 어디 갔느냐고 묻습디다. 그런 사람 없
다고 대답하니까 우리들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면서 잼처 청석골서 오지
않았느냐고 묻습디다. 그래 마전서 왔다고 대답했지요. 또 무슨 말을 물으려고
하다가 여러분이 오시는 걸 보더니 온다간다 말도 없이 저 건너로 가버렸세요.
” 배돌석이의 안해가 말을 다한 뒤에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자기 남편에게로 가
까이 와서 나직한 말로 “염려스러운 사람은 아닐까요?”하고 물었다. “글쎄,
좀 수상스러우나 별 염려 없겠지.” 황천왕동이가 안해의 말을 대답하며 의견을
묻는 눈치로 서림이를 바라보니 서림이는 남들이 들어도 좋으라고 “청석골에
임가성 가진 유명한 장사가 있는 것은 세상에서 다 아니까 길서방을 그 장사루
잘못 알구 그것을 말거리 삼아서 안식구들에게 말을 좀 해보려구 한 것 같소.
말하자면 왈자겠지. 그렇기에 우리가 오니까 내뺐지요.”하고 요요하게 말하였
다.
김천만이가 늦게야 찾아왔는데 옳게 차린 음식 한 목판을 일꾼에게 지워 가지
고 와서 안식구들을 대접하고 사내들을 따로 술먹을 데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청하였다. 서림이는 김천만이가 오면 술대접을 받으려니 장대고 기다리던 터이
요,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도 술 먹으러 가자고 청하는 것을 배각할 사람들이
아니라 세 사람이 다같이 김천만이를 따라가려고 일어설 때 황천왕동이의 안해
가 “나 좀 보시오.” 남편을 불러가지고 “아까 그런 사람이 또 혹시 오더래도
우리 여편네끼리만 있으면 말대꾸하기가 거북하니 당신은 가시지 않는 게 좋겠
소.” 말하는 것을 황천왕동이는 갈 욕심이 있어서 “어째 그렇게 염려가 많아.
그러다가는 머리 시겠네.” 쓸까스르고 백손 어머니는 여편네의 기세를 올리려
고 “우리 여편네는 사람 아닌가. 못생긴 소리 하지 말게.” 핀잔을 주었다. 황
천왕동이의 안해가 말은 더 하지 아니하나 눈치는 더 할 말이 있는 듯하였다.
사내 세 사람이 김천만이를 따라서 송악산 중턱을 더 지나 내려왔다. 술 먹을
자리를 시냇가에 잡아놓았는데, 뒤에 수목이 울창해서 산에 올라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술 많고 안주 좋고 술 권할 계집까지 둘이 있었다. 김천만이
가 계집들을 가리키며 “다른 볼일두 있었지만 저런 미인들을 청해 오느라구 더
늦었습니다. 여기는 지금 기생이 씨가 졌으니까 더 말할 것두 없지만 설혹 있더
래두 저런 미인이 어디 있습니까. 저 기생들은 서울서 굿구경 온 것을 반계곡경
으루 길을 뚫어서 청해 왔습니다. 저 미인들이 큰 대접입니다. 그런 줄이나 아십
시오.”하고 말한 뒤 곧 다시 이어서 “배서방이 마저 오셨더면 좋을 걸 빠져서
섭섭하지만 언제 오실지두 모르구 기다릴 수 없으니까 나중에 사람이나 한번 올
려보내볼 작정하구 우선 우리 넷이 어젯밤 승부를 끝내 봅시다.”하고 말하였다.
맑은 물 푸른 숲 사이에서 기생들의 권주가를 들으면서 한잔 한잔 또 한잔, 잔
들을 기울였다.
사내 세 사람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안식구들만 남은 뒤 한동안 지났을 때,
갓을 삐딱하게 모로 쓰고 웃옷 소매를 거드쳐서 어깨에 붙인 어뜩비뜩한 젊은
사람 대여섯이 패를 지어가지고 멍석자리 앞을 지나서 건너편으로 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그 패가 되돌아오는데 사람 수가 늘어서 여남은이나 되었다. 먼저
와서 말 물어보던 젊은 사람도 그증에 끼여 있는 것을 말대답한 배돌석이의 안
해가 선뜻 알아보았다. 그 패가 멍석자리 앞에 와서 우뚝우뚝 서더니 말 한마디
않고 바로 신발들 신은 채 멍석 위에 올라와 앉았다. 백손 어머니가 두 눈썹을
거스르고 “남의 자리에 왜들 와 앉소?”하고 나무라니 그 패의 한 사람이 “이
게 멍석자리지 나무자리야?” 엇조로 게다가 반말짓거리로 대답하였다. 백손 어
머니가 자리를 걷어차고 일어서서 “되지 않은 것들 다 보겠다. 빨리들 일어나
가거라!” 통통히 꾸짖자, 그 패가 일시에 쫙 일어나서 “이년, 뉘게다 놈을 붙
이느냐?” “네년은 눈깔두 없느냐?” “이년, 양반을 몰라보구 괘씸한 년.” “
이년, 죽일 년 같으니.” 이런 욕설을 중구난방으로 지껄이며 백손 어머니에게로
대들었다. 백손 어머니가 이놈 치고 저놈 치고 죽을 힘을 다 들여서 여러 놈과
싸웠다. 백손 어머니의 마음은 열 사내 백 사내를 우습게 여기지만, 힘은 한두
사내도 당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바락바락 덤비다가 어떤 자의 발길에 배를 걷어
채여서 자리에 고꾸라졌다. 다른 안식구들도 다 가만히 있지 않고 혹 돌멩이로
때리고 혹 짚신짝으로 두들기고 혹 물고 꼬집어뜯었으나 한껏해야 백손 어머니
의 조력군들이라 백손 어머니가 한번 고꾸라지고 다시 꼼짝 갱기를 못하니 모두
백손 어머니 옆에 와서 매어달렸다. 그자들이 다른 여편네들은 다 놓아두고 황
천왕동이의 안해만 잡아 일으켜세우며 곧 힘꼴 든든한 자들이 양쪽 겨드랑 밑을
바짝 치켜들어서 오둠지진상을 하고 다른 자들이 전후에 옹위하고 산 아래로 몰
려내려갔다. 이것을 본 여러 구경꾼들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쩟쩟 차는
사람도 많고 “저런 죽일 놈들 봤나.” “저놈들이 벼락맞아 죽지 않나.” 이렇
게 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으나 붙들려가는 여편네를 구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왈자패가 청석골 안식구를 칠 때에 여편네들이라고 사렴도 두었겠지
만, 그보다 치고 달코 하는 것이 엄포에 불과한 까닭으로 손찌검들을 몹시 하지
아니하여 다친 사람은 백손 어머니와 서림이의 안해 둘뿐인데 백손 어머니는 얻
어맞아서 뺨이 부어오를 뿐 아니라 걷어채여서 뱃살이 꼿꼿하여 한동안 쩔쩔매
었고, 서림이의 안해는 신짝을 들고 얼쩡대다가 어떤 자에게 떠다박질려서 나자
빠지는 바람에 허리를 삐었었다. 그외의 다른 사람들은 혹 머리가 흐트러지고
혹 옷이 찢기어서 꼴들이 사나울 뿐이지 별로 다친 데는 없었다. 백손 어머니가
올케의 잡혀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려고 일어서다가 못 일어서고 배를 움켜쥐고
앉아서 김억석이를 불러오란 말인지 쫓아보내란 말인지 “억석이 억석이!”하고
이름만 불렀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대왕당에를 뛰어서 그 아버지를 보고 대강
이야기한 뒤 곧 쫓아가 보라고 말하니 “나는 바빠서 갈 수두 없지만 나 혼자
가서 아무 소용없다. 그자들 가는 데나 알구 오라구 네 동생이나 보내보자.” 김
억석이가 아들아이를 불러다가 말을 일러서 왈자패를 뒤쫓아가 보내고 백손 어
머니를 와서 보려고 딸과 같이 오면서 “네 동생 녀석이 너를 굿구경시키려구
애를 부등부등 쓰기에 동기간 우애가 기뜩해서 너더러 오라구 하고 이왕이면 네
낯을 좀 내주려구 같이들 오라구 했더니 내가 생각이 부족해서 당초에 안할 일
을 공연히 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속상한 것두 기가 막힌데 종말엔 이런 의외
일까지 생겨서 뒤가 조용치 못할 모양이나 어쩐단 말이냐? 후회막급이다.”하고
연해 쓴입맛을 다시었다. 김억석이가 백손 어머니 옆에 와서 위로 인사도 하기
전에 “빨리 쫓아가지 왜 이리 왔소?” 백손 어머니가 책망하여 “제 자식놈을
쫓아보냈습니다.”하고 발명하였다. “그까지 아이를 보내서 무어해?” “저는
가면 무어합니까. 그놈들 십여 명을 저 혼자 당할 수 있습니까.” “내 동생을
얼른 찾아가서 말 좀 하오.” “이 여러 인총 중에 어디 가 찾습니까? 만일 장
안으루들 내려가셨다면 더구나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해야 좋
소?” “제 생각엔 아무 별도리 없는걸요.” “그럼 그 사람은 죽는 사람이야.”
“잡놈들은 욕만 보이지 죽이진 않습니다.” “욕보면 죽는 게지.” “보입기에
대단 괴로우신 모양이니 당집 아래채 마루방을 치어드릴께 가서 좀 누워 기시지
요. 그러구 여러분두 다 그리 가십시다.” 백손 어머니가 싫다고 고개 외치는 것
을 다른 식구들이 우겨서 마침내 백손 어머니는 배돌석이와 곽능
통이 안해의 좌우 부축을 받고 서림이 안해는 길막봉이 안해의 어깨를 의지하고
다같이 김억석이를 따라서 대왕당으로 내려갔다.
그 왈자패가 험한 산길에 발버둥이치는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느라고 빨리 가
지 못하여 김억석이 아들이 곧 뒤를 쫓아오게 되었다. 그자들이 송악산의 수풀
속 시냇가 으슥한 곳을 다 버리고 멀찍이 부산동까지 와서 어느 산모롱이 구석
진 곳으로 들어갔다. 산모롱이를 돌아 얼마 아니 들어가서 나지막한 언덕 아래
편편한 잔디밭이 있는데 아늑하기가 방안과 같았다.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듯
잔디밭에 기직이 서너 닢 깔려 있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아이들 마음에 그자들
하는 짓을 보고 가려고 산모롱이에 선 큰 소나무 뒤에 와서 은신하고 바라보았
다. 아무리 약한 여편네라도 죽기 한정 날뛰는 것이란 무서워서 여러 사내의 힘
으로 좀처럼 주저앉히지 못하였다. 죽이라고 악쓰며 날뛰는 황천왕동이의 안해
를 중간에 넣고 왈자들이 둘러서서 “아무리 악을 써두 소용없다.” “목청 떨
어질라.” “납뛰지 말구 가만 있거라.” “지랄발광 네굽질 다 해봐라.” 이런
말을 제가끔 지껄이는 중에 어떤 자가 저와 마주 선 얼굴 곱살스러운 자를 가리
키며 “저 양반이 이아의 아자제이시다. 이아 아자제께 수청을 들면 네게는 큰
호강이다.” 말하고 나서 “이아 아자제란 말을 너 알겠니? 지금 송도 도사 나
리 자제한 말이야.” 말하는데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기진맥진하여 악도 못 쓰고
가만히 있는 것을 도사 나리 자제의 위풍이 떨친 줄로 알았던지 얼굴 곱살스러
운 자가 앞으로 나와서 허리를 끼어안으려고 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그자
의 뺨을 찰싹 치면서 “이놈아, 나 죽여라!” 전보다도 더 모질게 악을 썼다. “
죽일 년 같으니, 양반의 뺨을 치구.” “죽여 달라구 지다위하는 년 죽여버리지.
” 그자들이 곧 죽일 것같이 서두르는 것을 보고 김억석이의 아들이 비로소 가
서 일을 생각하고 줄달음쳐서 오는데 “어 어디 갔다오느냐?”하고 붙드는 사람
이 있었다.
배돌석이가 편쌈터를 찾아갔더니 편쌈판이 한참 어울려드는 모양이나 큰 편쌈
판에서 전고에 없는 편쌈꾼으로 유명하던 배돌석이 눈에는 편쌈이라고 아이들
장난 쇰직하여 구경할 흥치가 없었다. 그리하여 도로 산 위로 올라가려고 오는
길에 처남아이가 정신없이 달음박질하여 오는 것을 보고 어디 갔다오느냐고 붙
들고 물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가쁜 숨을 돌린 뒤에 전후 사단을 얼추 다 이야기하였다. 배
돌석이가 듣고 나서 “산 위에 갈 것 없이 나하구 같이 부산동으로 가자.” 말
하여 처남아이를 앞세우고 오는 길에 팔매질하기에 알맞은 조약돌을 주워서 소
매에도 넣고 손에도 들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소나무 선 산모롱이를 가까이 왔
을 때, 뒤에 오는 자형을 돌아보며 “인제 다 왔세요. 요기만 돌아서면 고만인데
어떻게 하실 텝니까? 저 소나무에 가 붙어서서 엿보실랍니까? 그 동안에 그놈들
이 사람을 죽여놓구 내빼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니 배돌석이는
“가만히 있거라.” 대답하고 나서 소매 속에 든 조약돌을 따로 떠내놓고 소매
달린 거추장스러운 웃옷은 벗어서 “이 옷은 저기 어디 풀섶에 갖다 놔두구 돌
멩이는 네가 적삼 앞에 싸들구 내 뒤를 따라오너라.”하고 처남아이에게 맡기었
다. 배돌석이가 조약돌을 바른손에 한 개, 왼손에 댓 개 골라서 쥐고 소나무 선
곳에 와서 구석진 안침을 들여다보니 한 놈이 방장 황천왕동이 안해를 겁탈하려
고 서두는데 네 놈은 조력을 들고 대여섯 놈은 대가리들을 한데 모으고 낄낄거
리고 있었다. 배돌석이의 바른손이 번쩍 들리며 겁탈하려는 놈의 뒤통수를 돌이
들어가 맞았다. 그놈이 한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자, 잼처 쏜살같이
들어가는 돌이 양미간을 때려서 그놈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황천왕동이 안해
의 사지를 각각 잡고 있던 네 놈이 일시에 우 일어서는데 여기서 딱, 저기서 딱,
두 놈은 앞이마들이 깨지고 한 놈은 망건 뒤가 끊어졌다. 배돌석이가 처남아이
에게 손을 내밀어서 적삼 앞에 싸든 돌을 집을 때에 여닐곱 놈이 소리들을 지르
며 쫓아나왔다. 김억석이 아들은 겁이 나서 들고 뛰고 배돌석이는 일변 뒤로 피
해나오며 일변 돌팔매를 쳤다. 팔매질 댓번에 번번이 한 놈씩 맞았건만, 그중에
설맞은 놈이 있어서 쫓아오는 놈은 너댓이나 남고 손에 돌은 하나도 없어서 배
돌석이가 장달음을 놓아 처남아이를 쫓아왔다. 돌을 달라고 손을 내미니 처남아
이가 적삼 앞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적삼 앞섶을 붙잡았던 손이
뛰어오는 도중에 제풀로 놓여서 돌을 떨어뜨려도 몰랐던 것이다. 길에 돌이 많
더라도 박힌 것을 빼내거나 더욱이 손에 알맞은 것을 고르자면 자연 동안이 걸
려서 쫓아오는 놈에게 잡히기가 쉬운데 우거진 풀 속 외자욱길에 돌이 눈에 띄
지 아니하여 쫓아오는 놈들과 맨주먹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 열 개 있
으면 열 사람을 대적할 수 있고 돌이 백 개 있으면 백 사람 대적할 수 있지만,
돌 없이 맨주먹으로 대적하기는 너댓 사람도 힘에 벅차서 배돌석이가 도망질을
치러 들었다. 그 동안 쫓아오는 놈들이 벌써 가까이 다가와서 “이놈, 어디루 내
빼느냐!” “이놈, 게 있거라!” 소리들이 곧 등뒤에서 들릴 즈음에 배돌석이는
별안간 돌쳐서서 “이놈들, 돌 받아라!” 소리를 크게 지르며 빈손으로 팔매질치
는 시늉을 내었다. 그놈들이 벌써 돌팔매의 무서운 줄을 알아서 납작납작 풀 속
에 엎드렸다. 배돌석이와 김억석이의 아들이 이 틈을 타서 도망질을 하여 부산
동서 송악산으로 올라가는 원길까지 나왔다. 배돌석이가 길바닥에서 조약돌을
여러 개 주워 쥐고 한참을 기다려 보았으나 뒤쫓던 사람들이 그림자도 보이지
아니하여 되짚어 쫓아오려고 생각하고 처남아이더러 “너는 빨리 산 위에 올라
가서 너의 아버지더러 안식구 하나를 데리구 내려오라구 말해라.”하고 일러서
산 위로 올려보내고 배돌석이 혼자 차츰차츰 다시 오면서 앞을 바라보니 너댓
놈이 헛팔매에 속은 자리에 멀지 아니한 곳에 모여서서 무슨 공론들을 하는 모
양이었다. “어따, 인제 돌 받아라!” 배돌석이가 소리지르고 쫓아들어가며 팔매
질을 다시 시작하였다. 한 놈은 그 자리에 엎드러지고 한놈은 몇 걸음을 달아나
다가 쓰러지고 두 놈은 꿩의 병아리같이 기어서 풀 속으로 들어갔다. 황천왕동
이 안해가 어찌된지 궁금하여 배돌석이가 앞으로 더 들어오는 중에 풀 속에 가
뭇없이 숨었던 두 놈이 눈결에 뛰어나와서 바짝 가까이 대들었다. 배돌석이는
손에 남은 돌을 내던지고 주먹다짐과 발길질로 두 놈과 마주 싸웠다.
김천만이가 배돌석이의 오고 안 온 것을 알아보려고 먼저 음식 목판 지워가지
고 갔던 일꾼을 산 위에 올려보냈더니 그 일꾼이 내려와서 “자리에는 아무두
없구 옆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아낙네 한 분이 건달패에 붙들려 갔다고 합디
다.”하고 말하여 청석골 사내 세 사람이 모두 술자리를 마치지 못하고 급히 산
위로 올라오는데, 세 사람 중의 황천왕동이는 원래 빠른 걸음을 더욱 빨리 걸어
서 한달음에 올라왔다. 대왕당에 와서 김억석이를 부르니 마루방에서 배돌석이
안해가 뛰어나왔다. 자기 안해가 건달놈들에게 붙들려 가지 않았나 의심먹고 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고는 가슴이 내려앉으며 눈앞이 캄캄하였다. 자기 누
님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고도 울지 말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대로
돌아설 때, 배돌석이 안해가 “제 동생이 그놈들 간 곳을 알고 올 테니 여기서
좀 기다리시지요.” 말하는 것을 고개 외치는 것으로 대답하고 바로 나와서 층
층대를 몇 층 내려오다 말고 되올라가서 김억석이를 찾았다. “환두 좀 주게.”
“환두는 드리기 어렵지 않지만 환두를 가지고 가시는 게......” “못 주겠단 말
인가?” “드리긴 드리겠습니다.” 김억석이가 집안에 들어가서 환도를 가지고
나왔다. “혼뜨검들만 시키지, 아예 인명은 상하지 맙시오.” “잘 알았네. 이리
내게.” 김억석이 손에서 환도를 뺏듯이 받아서 손에 든 채 돌쳐서는데 김억석
이가 소매를 붙들었다. “왜 붙드나?” “여러 사람들 보는데 손에 들구 가시는
게 부질없습니다. 철릭 속으루 허리끈에 질르십시오.”하고 철릭 자락을 쳐들어
주기까지 하였다. 환도를 몸에 지닌 뒤에 조금도 지체 않고 나는 듯이 내려오다
가 길막봉이와 서림이를 오며가며 만났다. 길막봉이가 먼저 “어댈 가우?”하고
물었다. “예편네 찾으러 가.” “여편네를 찾으러 가다니?” “내가 여편네를
잃었어.” 서림이가 그 다음에 “어디루 간 것을 아셨소?”하고 물었다. “모루.
” “간 곳을 모르구 어떻게 찾을 작정이오?” “억석이 자식이 뒤를 밟아갔다
니까 가다가 만나면 데리구 가겠소.” “그럼 우리 셋이 같이 갑시다.” “뒤에
천천히들 오우. 나 먼저 가우.” 두 사람이 같이 가자고 붙들어서 더 지체시킬까
저어하여 일변 말을 하며 일변 걸음을 떼어놓았다. 빨리 걸으면서도 김억석이
아들이 어디서 나올까 연방 살펴보았으나 만나보지 못하고 산밑에까지 다 내려
왔다. 어디로 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입속의 침을 돌려서 왼손바닥에 뱉어놓고
바른손 지가락으로 한번 톡 쳐서 침이 많이 튀는 방향을 잡았다. 으슥한 곳과
후미진 곳을 유심히 보살피면서 구융바위 동네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송악산 속
에 숨어 있는 것을 못 찾고 지나 내려온 듯 생각이 나서 다시 되쳐 산을 향하고
올라오는 중에, 길막봉이와 서림이가 김억석이 아들을 만나서 데리고 산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달음질로 쫓아왔다. 서림이가 앞으로 나서서 “
어디루 가신지 몰라서 한시름이 되더니 잘 만났소.” 말한 뒤에 와서 귀에 입을
대고 “저애가 그놈들 가는 데까지 가보구 오다가 천우신조루 배두령을 만나서
같이 갔다는구려. 배두령 돌팔매에 여러 놈이 다 꺼꾸러지구 너덧 놈 남았는데
돌이 없어져서 쫓겨나오다가 배두령은 돌을 주워 가지구 도루 가시구 저애는 산
위에 말하러 가는 것을 우리가 바루 요 위에서 만나서 길라잡이루 데리구 오는
길이오. 배두령이 일찍 가신 까닭에 아주머니가 욕은 당하지 않았다니 불행중
다행이오.” 김억석이 아들의 소전을 대강 이야기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비로소
적이 안심이 되어서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내가 저애를 데리구 한 걸음
앞서 가보겠소.” 서림이더러 말하는 것을 김억석이 아들이 듣고 “달음박질을
어떻게 했든지 인제는 다리가 아파서 달음박질할 수 없세요.”하고 말하여 황천
왕동이도 먼저 갈 생각을 그만두고 두 사람과 같이 김억석이 아들을 앞세우고
부산동으로 넘어왔다.
배돌석이의 돌팔매를 맞은 왈자들이 모조리 죄다 면상을 맞아서 혹은 이마가
깨지고 혹은 볼이 터지고 혹은 입술이 짜개진 위에 앞니까지 부러지고 처음에
뒤로 설맞아서 망건 뒤만 끊어진 자도 나중에 앞으로 쫓아나가다가 삭은 코를
맞아서 코피로 옷을 물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 지난 뒤에는 고꾸라지고 엎
드러진 자들이 거진 다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서 상처들을 서로 보아주고 만져
주고 하였다. 그중의 영수격인 도사의 아들만은 뒤통수에 한번, 양미간에 두번
되게 맞고 고꾸라질 때 까물친 채 이내 피어나지 아니하여 여럿이 모두 와서 구
원들 하였다. 반듯이 눕혀놓고 띠, 옷끈 다 풀고, 버선, 행전 다 벗기고 중간에서
가슴을 문지른다, 갈빗대를 문지른다, 옆에서 손바닥을 비빈다, 발바닥을 비빈다,
한동안 좋이 애들을 쓴 뒤에 도사의 아들이 겨우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인제
는 빨리 부중으로 내려가자고 공론들 하였으나 이아 아자제가 걸어갈 가망이 도
저히 없으므로 준비를 차리러 한 사람이 먼저 부중에 내려가기로 작정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여러 왈자가 억지로 자빠뜨리고 사지를 지지누를 때 어
진혼이 다 나가서 수족을 마음대로 놀리게 된 뒤에도 한동안 자빠진 채 꼼짝 아
니하다가 어떻게 정신이 돌아서 일어나려고 움직이는 것을, 먼저 기신을 차린
왈자 하나가 발길로 몇 번 차서 못 일어나게 하고 그 뒤에는 여럿이 이놈 와서
걷어차고 저놈 와서 걷어차서 이리저리 굴리고 그리고 또 위아랫도리를 함부로
짓밟았다. 그자들 하는 짓이 보기 좋은 꽃을 꺾어서 내던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짓밟아 망가지르는 것과 같았다. 이런 몹쓸 짓을 돌팔매 맞은 분풀이로 한 자도
있었을 것이고, 또 남이 하니 덩달아 한 자도 있었을 것이나 대개 속에 불 같은
욕심이 있는데 경황 없어 욕심을 풀지 못하고 배짱 없어 욕심을 채우지 못하여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심사로 한 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먼저 부중으로 내려가
려고 나가던 자가 즉시 도로 뛰어들어오며 “팔매질하던 놈 저기 잡혔으니 어서
들 나오게.”하고 소리를 쳐서 운신을 못하는 도사의 아들 외에는 모두 다 뛰어
나갔다. 배돌석이가 왈자 두 놈과 싸워 한 놈은 다시 대들지 못하도록 꺼꾸러뜨
리고 한놈은 마저 해내려고 힘을 갖은것 다 쓰던 중에, 에닐곱이 전후좌우로 에
워싸고 달려드는데 돌팔매 원수에 눈들이 발갛게 뒤집혀서 작은 환도만한 큰 장
도로 찔러 죽이려고 덤비는 놈까지 있었다. 배돌석이는 당차고 다부진 사람이지
만 형세가 도망 못하면 죽을 판이라 그중 만만하여 보이는 놈을 발길로 동가슴
을 내질러 자빠뜨리고 에워싼 속에서 뛰어나올 즈음에 어떤 놈이 눈결에 발을
걸고 덜미를 짚어서 자빠뜨린 놈 옆에 와서 엎드렸다. 배돌석이가 목숨이 위태
하게 되었을 때 “이놈들!” 난데없는 큰소리가 들리더니 황천왕동이가 큰 환도
를 빼어들고 비호같이 달려와서 닥치는 대로 내리찍었다. 서너 놈은 칼 맞고 꺼
꾸러지고 네댓 놈은 칼 무서워 들고 뛰었다. 배돌석이가 일어나는 것을 황천황
동이가 와서 거들어 주었다. “다친 데 없소?” “나는 괜찮으니 아주머니나 어
서 가보게.” “어디 있소?” “저 안에.” 배돌석이가 산모롱이 안을 가리켰다.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와서 보니 참혹한 꼴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다 죽
은 사람인데 이따금 코로 나오는 안간힘 쓰는 소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표이
었다. “나 여기 왔어.” “눈 좀 떠보오.” 황천왕동이가 안해의 몸을 만지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흐르는 눈물을 씻어가며 들여다보고만 있는 중
에, 김억석이 아들이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서림이와 길막봉이와 배돌석이가
다같이 들어왔다. 서림이가 약낭에서 사향소합원을 꺼내서 황천왕동이를 주며
씹어서 입속에 흘려넣으라고 하고 또 무엇을 한참 생각하다가 한 옷고름에 한
갓모를 끌러서 김억석이 아들을 주며 갓모로 물을 떠오라고 하여 찬물을 얼굴에
끼얹게 하였다. 얼마 간에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감았던 눈을 떠서 남편을 한참
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 웃고 다시 얼마 만에 손으로 입을 가리켜서 찬물을 한
모금 받아마시고 남편의 손을 더듬어 만지면서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이게
저승이오?” 묻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안해가 완구히 정신을 돌린 뒤에 황천왕동이가 비로소 안해 옆을 떠나서 배돌
석이를 와보고 다시 새삼스럽게 “겉이구 속이구 다친 데 없소?”하고 물으니
“더러 살 터진 데두 있구 멍든 데두 있지만 아무렇지두 않아.” 배돌석이가 대
답하고 나서 한옆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도사의 아들을 가리키며 “저놈이 아
주머니를 겁탈하러 덤비든 놈일세.”하고 말하자, 김억석이 아들이 말끝을 달아
서 “저 사람이 송두 도사 나리의 아들이랍디다.”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칼집에 꽂아놓았던 환도를 다시 빼서 손에 들고 도사의 아들 옆에 와서 발끝으
로 찍신찍신 건드렸다. 도사의 아들이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뜨고 보더니 힘없
이 두 손을 마주 붙여서 비는 뜻을 보이었다.“봐하니 버릇은 톡톡히 배운 모양
인즉 만일 네가 부중 장사치의 자식이라면 그대루 용서해 주겠다. 그렇지만 도
사의 자식은 용서할 수 없다. 너같이 못된 놈이 이 다음에 네 아비처럼 도사가
되거나 어디 원이 되거나 하면 백성에게 갖은 못된 짓을 다할 테니 너 같은 놈
은 진작 없애는 게 좋다.” 황천왕동이의 불호령이 끝난 뒤, 그 사람이 “나는
도사 아들 아니오.”하고 말하는데 말소리는 똑똑치 못하나마 알아들을 만하였
다. 그 거짓말에 의심이 생긴 황천왕동이가 멀리 섰는 김억석이 아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이놈이 분명히 도사의 자식인 줄 너 아느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을 도사 나리 자제라고 말하구 아주머니더러 수청을 들면 호강이라구까
지 말합디다. 이 사람이 아주머니를 끼어안으려구 하다가 보기좋게 뺨을 얻어맞
았습니다. 아주머니께 물어보십시오. 내 말이 거짓말인가.” 황천왕동이가 다시
그 사람을 내려다보며 “인제두 도사의 자식이 아니라구 할 테냐! 어디 또 말
좀 해봐라!”하고 꾸짖으니 도사의 아들이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황천왕동이 손에 든 환도가 한번 번쩍하며 도사의 아들은 머리가 몸에서 떨어졌
다. 이 동안에 서림이는 배돌석이, 길막봉이 두 사람과 같이 청석골로 나갈 일을
공론하였는데 배돌석이는 사내 네 사람을 둘씩 두 패로 나누어서 한 패는 황두
령의 안해를 번갈아 업어가며 먼저 나가고 또 한 패는 산 위에 올라가서 한식구
들을 데리고 뒤쫓아 나가자고 말하였으나, 서림이가 말하기를 두 패로 나누는
것보다 한데 모여 가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산 위에서 북성문 밖으로 나가 달
리골로 내려가면 길에서 군관을 만날 염려가 없어서 좋다고 다같이 산 위로 올
라가자고 하고, 산 위로 올라가는 데는 길두령이 황두령의 안해를 업고 가는 데
좋겠다고 하여 길막봉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배돌석이도 자기 말을 고집하지 않고
서림이의 말대로 작정들 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나중에 세 사람의 작정한 것을
서림이가 말하여 듣고 바로 좋다고 찬동하였으나,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남의 사
내에게 업히려고 하지 아니하여 하릴없이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업고 길막봉이가
뒤에 붙어가며 거들어 주기로 하였다. 안해 업는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가 앞서
간 뒤 또 배돌석이는 잔디밭에 벗어놓는 왈자들 갓을 하나 골라서 자기의 부서
진 갓과 바꾸어 쓰고 나오다가 풀섶에 놓아둔 웃옷을 찾아 입어서 찢어진 적삼
을 엄적하였다. 배돌석이가 의관을 차리는 동안 서림이와 김억석이의 아들이 기
다리어서 어른 아이 세 사람이 같이 오는데, 앞서 간 사내 여편네 세 사람은 벌
써 어디만큼 갔는지 송악산을 한참 올라오도록 눈에 보이지도 않더니 산중턱을
다 못 와서 위에 올라가는 것이 멀리 바라보이고 중턱을 지나온 뒤 얼마만에는
뒤를 바짝 따라오게 되었다. 뒤떨어졌던 어른, 아이 세사람이 앞서 올라와서 대
왕당 마루방에서 안식구들과 이야기를 일장 늘어지게 하는 중에, 사내, 여편네
세 사람이 겨우 올라오는데 황천왕동이는 땀을 어떻게 흘렸던지 고의 적삼이 물
에 담가낸 것 같았다.
백손 어머니와 그외의 다른 안식구들이 황천왕동이 안해를 보고 눈물을 흘리
며 반기는 동안에 사내들은 마루방 밖에 모여앉아서 걸어가지 못할 안식구 세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가면 좋을까 공론들을 시작하였는데, 김억석이더러 사람
을 몇만 얻어달래서 번갈아 업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의논이 될 때에 안해를 업
고 오는 데 진력이 난 황천왕동이가 승교바탕과 교군꾼을 얻어달래서 태워 가지
고 가자고 극력 주장하였다.
무당과 박수들은 거지반 굿판에 내려가 있고 일보는 사람들은 저녁밥들을 준
비하느라고 한뎃솥 걸린 곳에 나가 있고 혹간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볼일 보
고 곧 도로 나가고 가외의 다른 사람은 당집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여 청
석골 안팎 식구가 대왕당을 차지하다시피 한 까닭에 공론들을 마음놓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황천왕동이의 승교바탕 주장을 길막봉이는 대번에 좋다고 찬동하고 배돌석이
는 승교바탕을 한 채도 아니요, 세 채씩이나 김억석이 수로 얻지 못할 테니 부
탁해야 쓸데없다고 우기다가 김천만이더러 부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황천왕동
이 자기가 청석골 나가서 가져온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될 수 있다고 굽히었으나
유독 서림이가 내처 고개를 외치면서 “지금 천만이를 찾아서 부탁해야 천만이
가 여기저기서 얻어서 장안에서 이 산 위루 올려보내자면 동안이 얼마나 오래
걸리며, 또 청석골을 나가신다니 나가시는 동안은 얼마 안 되겠지만 교군꾼들
들어오는 동안이 있지 않소. 그 동안에 금도군관이 우리 뒤를 밟아서 여기를 들
이치면 낭패가 아니오. 늦잡도리다가는 낭패 볼 테니 한 시각이라두 바삐 나갈
도리를 차립시다.”하고 이승하게 말하여 황천왕동이도 자기 주장을 더 고집하
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 마침 김억석이 아들이 밖에서 들어와서 보은리 사는 사
람이 밖에 왔다고 연통하여 황천왕동이가 반색하고 쫓아가서 김천만이를 맞아들
이었다. “자네 지금 어디서 오나?”하고 서림이가 먼저 말을 물었다. “여러분
올라오신 뒤에 보낼 사람 보내구 치울 것 대강 치우구 여기를 쫓아올라왔더니
한 분두 안 기십디다. 그래서 공연히 이리저리 바장이다가 집으루 내려가는 중
에 부산동서 살인이 났단 말을 듣구 여러분 일이 궁금해서 집에두 못 가루 도루
올라온 길이오.” 김천만이 말이 끝나자, 곧 황천왕동이가 부산동서 일 저지른
것을 대충 이야기한 다음에 걸어가지 못할 안식구가 세 사람인 것을 말하고 승
교바탕 세 채를 교군꾼 껴서 얻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교군바탕은 세 채 아니
라 여섯 채라두 얻어 드릴 수가 있지만 나중에 발설이 나면 나는 송두서 못살게
되지 않소.” “송두서 못살게 되거든 청석골루 들어오지.” “가만히 기시우.
내가 집에 내려가서 어떻게 잘 해보리다. 그러구 나는 다시 안 올 테니 그리 아
시우.” “교군꾼 보내면 우리를 찾아올 수가 있을까?” “이 대왕당 앞마당에
교군바탕 세 채가 와 놓이거든 어디서 왔느냐 누가 보냈느냐 묻지두 말구 그대
루 태워 가지구 가시구려.” 김천만이가 총총히 돌아서 나갈 때, 서림이가 뒤를
따라나오며 늦어서는 소용 없으니 그저 아무쪼록 속히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하였
다.
이때 해가 거의 다 져서 매로바위에는 아직 햇발이 남아 있으나 층층대 아래
굿판에는 벌써 땅거미 다 되었다. 그네 뛸 사람도 훨씬 줄고 굿구경하던 사람도
많이 빠졌다. 굿은 점심 전 세 거리, 점심 후 일곱 거리, 모두 열 거리를 마치고
앞으로 두 거리가 남은 것을 저녁들 먹고 마저 하기로 되어서 상궁이 굿판에서
대왕당으로 올라오는데 당집 안에 잡인을 금하였다. 청석골 사내들은 김억석이
의 말을 좇아서 안식구들만 마루방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서 매로바위 맡에 와
모여앉았다. 길막봉이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평이고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도
별로 염려하는 빛이 없는데, 서림이만 혼자 조바심을 하였다. “천만이가 산밑에
다 내려갔겠지?” 조금 있다가 “천만이사 제 집에 갔을까?” 또 조금 있다가
“교군꾼이 지금쯤 여기 올라왔으면 좋겠다.”하고 연해 혼잣말을 지껄이었다.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 두 사람에게 참혹하게 봉패한 왈자들은 관덕정 한량패
인데 총수효 열두 사람 중에서 칼에 죽은 사람이 하나요, 칼에 중상을 받은 사
람이 셋이요, 돌팔매에 면상만 상한 사람이 여섯이요, 칼도 안 맞고 돌팔매도 안
맞은 사람은 둘이나 하나는 아랫배를 발길에 걷어채여서 거의 다 죽게 되고 오
직 하나만 별로 상한 데 없이 성하였다. 죽은 사람은 도사의 아들이요, 성한 사
람은 도사의 문객이요, 그 나머지 한량들은 도사에게 활을 배운 사람이니 말하
자면 도사의 제자들이었다.
임꺽정이가 청석골을 웅거하고 있는 까닭에 지난해 삼월에 나라에서 송도 도
사를 특별히 호반으로 보내게 되었었는데, 호반도사가 송도에 내려온 뒤 사정에
드는 부비를 자기 녹미로 쓰고 활 쏠 줄 모르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가르쳐서
관덕정 한량들을 길러놓았다. 이날 도사의 아들이 자기 집 문객 한 사람과 동무
한량 중에 나이 젊은 장난꾼 열 사람을 데리고 굿구경을 나왔었는데, 굿구경보
다 계집 구경에 반하여 예쁜 계집만 듣보고 다니다가 큰 벌집을 모르고 건드려
서 아까운 목숨을 맹랑하게 버리게 된 것이었다.
상한 데 없는 문객과 상처 중하지 않은 한량들은 도사의 아들이 죽어자빠진
곳을 다시 가서 보고 즉시 육각가리 이아에 뛰어와서 도사를 보고 참혹한 변이
생긴 것을 고하는데, 변이 생기게 된 시초만은 젊은 계집 하나를 두 패가 서로
뺏으려고 하였다고 모호하게 말한 뒤에 변을 당한 것은 대강 다 사실대로 말하
고 끝으로 그 패가 흉기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필시 적당이라고 붙이어
말하였다. 도사가 눈물도 안 내고 말도 안 하고 한참 동안 넋잃은 사람같이 앉
았더니 별안간에 “원수를 갚아 줘야지.” 듣는 사람이 초풍할 만큼 큰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났다. 도사가 통인 하나만 데리고 걸어서 유수아문으로 간 뒤
얼마만에 원문 안에서 불시에 긴 대답 청령 소리가 야단스럽게 나며 곧 군관청
의 군속들이 근두박질 뛰어들어가고 서리청의 이속들이 썰썰 기어들어갔다. 한
동안 지난 뒤에 금도군관 서넛이 십여 명 군졸을 거느리고 송악산으로 살인범인
을 잡으러 나가는데, 그 뒤에는 관덕정 한량과 이아사령이 십여 명 따라나갔고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유수가 도사와 비장과 검률, 형리, 사령, 기타 검시장에
청령할 관속과 도사의 문객, 부상한 한량 기타 검시장에 등대할 사람들을 거느
리고 부산동으로 친히 검시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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