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왕안석 편: 제2회 원성 높은 변법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왕안석)
제2회 원성 높은 변법
향로에 향은 다 타고 물시계 소리도 멎었는데(金爐香盡漏聲殘)
소슬히 부는 바람에 이따금 한기를 느끼네(翦翦輕風陣陣寒)
봄빛에 고뇌하며 잠 못 이루는데(春色惱人眼不得)
달빛은 꽃 그림자를 난간 위로 옮겨가네(月移花影上欄幹)
봄밤은 미묘하고 달빛은 매혹적이었다. 왕안석은 봄밤에 잠 못 이루고 길이길이 전해지는 천고의 절구 <춘야(春夜)>를 썼다. 이 시에 쓴 것처럼 왕안석은 봄빛 때문에 고뇌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한기를 느낀 것은 조정의 대신들이 변법을 악의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절친 사마광(司馬光)이 변법을 반대하는 것은 역사학자로서 그가 역사적 시각으로 변법을 보면서 변법 시행의 어려움과 위험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변법을 주도한 사람 중 유종의 미를 거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두려움에서이다. 나는 <답사마간의서(答司馬諫議書)>를 써서 그와 변론했지만 그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군자간의 논쟁을 벌였고 우리의 논쟁은 모두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지금 조정에서 변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혁신파(革新派)와 보수파(保守派)간의 논쟁은 패싸움이 되고 소인배들 간의 다툼이 되었다.”
이런 생각으로 낙담한 왕안석의 마음 속에서 한기가 스며 올랐다. 하늘가에 걸린 차디찬 달은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초췌한 왕안석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안석이 갑자기 몸이 따스해져서 머리를 숙여 보니 큰 외투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내가 묵묵히 서 있었다.
낮에 조정에서 발생한 일을 떠올린 왕안석이 아내의 손을 잡으며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지?”
아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오늘 조정에 나가니 폐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나에게 그림 한 장을 넘기시더군. 그 그림을 본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소. <유민도(流民圖)>라는 그 그림에는 유민이 개미떼처럼 그려져 있었는데 얼굴이 수척하고 피골이 상접한 그들은 옷차림도 남루하고 심지어 웃통을 벗은 사람도 있었소. 그림 속에서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나무껍질을 먹고 혹은 서로 부축하며 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고 있었소. 그리고 아전들은 집의 기와를 걷어내고 벽을 부수며 돈을 갚으라고 백성을 핍박하고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사람을 잡아 감방에 처넣고 있었소… 내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림을 보는데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건 안상문(安上門)을 지키는 아전이 그가 본 참혹한 장면을 그려서 보내온 것이오. 변법의 결과가 백성들이 살길을 잃고 고향을 떠나게 하기 위함이오?’내가 대답할 말을 준비하는데 변법을 반대하는 대신이 또 ‘천도를 거스른 변법으로 하늘이 노해서 가뭄이 들었습니다. 소출이 없는 농민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니 관가의 핍박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폐하, 백성을 해치는 법을 폐지하고 변법을 시행한 자를 응징하시옵소서.’라고 말하지 않겠소? ”
“그럼 폐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폐하께서는 여전히 나를 아주 신뢰하시어 변법을 방해한다는 죄목으로 <유민도>를 그린 정협(鄭俠)을 영남(嶺南)으로 좌천시키셨소. 하지만 폐하께서는 두 황태후 마마께서 변법이 천하를 교란하고 국가의 근본을 흔들었으니 나 하나만 파면시키면 하늘이 비를 내릴 것이라 말씀하셨다면서 청묘(靑苗), 면역(免役), 방전(方田), 보갑(保甲) 등 여덟 가지 법의 시행을 잠시 중단하라고 하셨소. 가뭄이 풀리고 나서 다시 보자고 말이오.”
왕안석의 말에 아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벼슬을 내려 놓으세요. 우리 같이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폐하께 말씀 드렸소. 폐하께서는 두 황태후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나더러 잠시 강령지부(江寧知府)를 맡으라고 하셨소.”
“당신에 대한 폐하의 은총이 대단하시네요. 우리 얼른 강령으로 내려 갑시다!”
왕안석은 풋잠이 들었다가 솨~하는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깼다. 왕안석이 창문을 여니 날이 밝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이렇게 변법과 맞서니 참지정사(參知政事) 풍경(馮京)과 그 무리들이 좋아하겠네.”
점점 커지는 빗발을 보는 왕안석의 마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조식을 마치자 왕안석이 키워주고 왕안석을 보필해 온 여혜경(呂惠卿)이 왔다. 여혜경이 자리에 앉자 왕안석이 입을 열었다.
“내가 떠난 후 변법은 당신들에게 맡기겠소. 먼저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시오.”
“벌써 알아보았습니다.”
“청묘법은 주로 사채업자를 상대로 한 것이오. 농민들이 고리대의 피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보릿고개에 곡식을 담보로 관가에서 저리자 돈을 빌렸다가 가을에 수확한 후 갚게 하는 것이오. 이렇게 하면 농민들이 고리대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고 관가의 소득도 증가하게 되는데, 나라와 백성에게 다 좋은 이런 변법이 어떻게 오히려 백성들이 살길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소?”
“변법은 좋지만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이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나리께서 이자를 2푼(分)으로 정하셨지만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농민들로부터 추가로 2푼을 더 받아서 챙겼습니다. 거기다가 농민들이 여러 수속을 할 때마다 또 갈취를 당하니 관가의 저리자 대출이 고리대보다도 더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관가는 돈을 빌리라고 돈이 없는 모든 농부들을 강요한 동시에 수중에 돈이 있는 지주(地主)나 부농(富農)도 돈을 빌리라고 강요했습니다.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 주지 못해 이자를 받지 못하고, 또 관가의 돈을 빌리고 이자만 내니 양쪽으로 밑지는 격입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지주와 부농도 모두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하늘도 도와주지 않아서 우리가 청묘법을 시행하면서 비가 내리지 않아 농민들의 소출이 없으니 무엇으로 빌린 돈을 갚겠습니까? 결과 관리들은 빚 독촉을 하고 농민들은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왕안석은 화가 나서 탁상을 내리쳤다.
“참으로 어이 없구나! 그런 탐관오리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다!”
“다른 변법도 거의 비슷합니다. 시역법(市易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인들도 농민들처럼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시역법은 상인의 파산을 막기 위해 관가에서 팔리지 않는 화물을 사들였다가 시장 가격이 균형되면 다시 정상 가격으로 되파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상인은 화물적체로 파산되지 않고 관가도 시장가격차이를 통해 소득을 올리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오? 그리고 모역법(募役法)은 상인들의 소득에 따라 관가의 인부 모집 비용을 받는 것인데 탐관오리들이 또 어떻게 잘못 시행한 것이오?”
여혜경이 길게 탄식하고 나서 말했다.
“관가의 돈으로 시장의 화물을 구입할 권리를 가진 관리들이 적체된 상품만 사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잘 팔리는 화물도 구입해서 쌓아두고 시장을 독점하는 바람에 상인들이 분분히 파산하고 사람마다 변법을 욕하는 것입니다. 모역법을 시행하면서 사찰과 암자, 미성년 가구, 외아들 가구, 여인 가구 등 기존의 병역 면제 가구들도 돈을 내라는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또 관리들은 이 기회에 상가들을 갈취하고 극빈가구들에게서도 돈을 받아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두 눈이 더 휘둥그래진 왕안석이 슬프게 외쳤다.
“과연 도(道)가 한 자 높아지면 마(魔)는 한 장 높아지는구나! 변법시행에만 신경 쓰지 말고 탐관오리를 단속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소. 안 그러면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해도 나쁘게 변하겠소!”
'逸話傳---人物傳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하인드 스토리] 왕안석 편: 제3회 끈질긴 변법의 꿈 (0) | 2024.05.11 |
---|---|
진시황(秦始皇), 그는 누구인가? (2) | 2024.05.08 |
[비하인드 스토리] 왕안석 편: 제1회 바야흐로 실행될 변법 (1) | 2024.04.24 |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4회 어렵게 전해진 활자인쇄술 (0) | 2024.04.23 |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3회 성공한 활자와 접착제 (0) | 2024.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