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강태공 편-제4회: 제후
(사진설명: 강태공의 동상)
4. 제후
강태공이 무왕을 배동해 구간전(九間殿)에 이르니 화재는 이미 진압되었다. 무왕은 대궐의 동쪽에 20개의 굵은 구리 기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강태공에게 물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저건 상왕이 포락지형을 내릴 때 사용한 구리 기둥입니다. 그는 구리 기둥을 벌겋게 달군 다음 죄인을 구리 기둥에 묶어 백골이 되어 죽게 했습니다. ”
“상왕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형을 받는 사람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보기만 해도 심장이 찢어지고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습니까?”
“혹형은 그 시간만은 사람을 두렵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로 인해 민심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혹형을 폐지해야 할 것입니다. ”
무왕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왕이 분신자살했으니 업보를 받은 셈입니다.”
강태공은 또 무왕을 적성루(適星樓) 아래로 안내했다. 채분(虿盆)에는 백골 사이로 독사와 전갈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강태공이 말을 이었다.
“상왕은 큰 대접에 독사와 전갈을 담아두고 궁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이 대접에 밀어 넣어 독사와 전갈이 뜯어먹게 했습니다. 이를 채분지형이라 합니다. ”
그 말에 무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강태공이 계속 말했다.
“독사와 전갈을 제거하고 백골을 매장하며 채분을 부숴 민심을 얻으셔야 합니다.”
강태공은 이번에는 무왕을 녹대로 안내했다. 무왕은 아스라니 높이 솟은 누각과 방안에 가득한 보물을 보며 탄식했다.
“상왕은 참으로 지나친 사치를 누렸군요!”
그 말에 강태공이 대답했다.
“고금을 보면 멸망한 자는 필히 사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모든 보물을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창고의 식량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하셔야 합니다.”
무왕은 강태공의 말을 일일이 따랐다.
이 때 누군가 천자의 예로 주왕의 장례를 치렀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이어 무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이 포박되어 무왕 앞에 끌려왔다. 여러 장군들이 입을 열었다.
“상 나라는 모두가 분노하는 무도함을 저질렀으니 상왕의 아들도 함께 처단해 후환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강태공이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이 때 주공 단이 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현재 상 나라는 이미 망했습니다. 우리가 상왕의 아들과 원수를 진 적이 있습니까? 선 군주께서는 하늘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고 죄인의 죄는 그 아내와 자식들과 무관하다 하셨습니다. 대왕께서 살인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보위에 오르면 그 때 무경을 제후로 봉하셔서 상 나라의 제사를 지내게 하심으로써 상 나라의 선왕이신 탕왕의 은덕에 보답하셔야 합니다.”
무왕은 주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말이 맞네. 자네 말을 따르겠네.”
강태공은 무공과 다른 생각이 있었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주 왕조가 세워지고 무왕이 국왕이 되었으며 호경(鎬京)에 도읍을 정했다. 주(周)의 천자(天子)는 공에 따라 상을 내리고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했다. 하지만 주 왕조의 건국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두 사람이 도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편벽하고 황량한 동해의 바닷가를 영지로 받았다. 강태공은 영구(營丘) 땅을 받고 제(齊) 나라라 하고 주공 단은 곡부(曲阜)의 땅을 받고 노(魯) 나라라 하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두 고수가 조정을 걸어 나왔다. 강태공이 억지로 할 말을 찾았다.
“노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생각이신지요?”
“천자를 존중하고 혈족을 중용할 것입니다.”
주공단의 말에 강태공은 “노 나라가 곧 약해지겠구나. 혈족을 중용하면 인재가 없고 친척들 간에 서로 비교할 터이니 내란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장래 노 나라가 쇠약해 지지 않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강태공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본 주공단이 되물었다.
“제 나라는 어떻게 다스리실 생각이십니까?”
“인재를 선발함에 출신을 불문하고 능력만 볼 예정입니다.”
그 말에 주공단은 “이제 제 나라에 군주를 시해하고 보위를 노리는 신하가 나타나겠구나. 훗날 제 나라의 군주가 태사에 미치지 못하면 필히 군주가 약하고 신하가 강해질 것이고 그러면 나라를 잃을 가능성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뒷이야기지만 역사는 이 두 고수의 말이 모두 정확함을 증명했다. 혈족을 중용한 노 나라는 줄곧 약국이었고 종친들 간의 내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궁극적으로 나라의 권력이 3대 종친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인재의 등용을 중시한 제 나라에는 관중(管仲)과 안영(晏嬰)과 같은 능력 있는 신하들이 있었고 나라가 줄곧 강함을 자랑했으나 나약한 강공(康公)이 즉위한 후 신하인 전씨(田氏)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강공은 바닷가로 추방되었다. 그로부터 제 나라는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바뀌었으니 신하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이라고 한 주공 단의 예언이 현실화 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강태공은 황량한 바닷가에 위치한 제 나라에 이른 후 짧은 시간 안에 제 나라를 동방에서 가장 강대한 제후국으로 다스렸다. 강태공은 모략에도 강하고 군사적 재능은 물론이고 경제적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제 나라를 한 번 둘러본 강태공의 머리 속에는 벌써 경제 발전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산에 살면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살면 바다에 의지한다는 말이 있다. 바다와 가까운 이 곳에는 알칼리성 땅이 많은 반면 인구가 적어서 먼저 인구를 늘리고 바다를 이용해 경제를 발전시켜야겠구나.”
강태공은 나라가 강해지려면 먼저 백성이 잘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일련의 경제정책을 출범해 여성의 방직을 권장하고 공법의 정교함을 요구했다. 또 백성들이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 소금을 제 나라의 특산물로 타 지역에 가서 파는 것도 격려했다. 이와 동시에 타 지역의 사람들이 제 나라에서 해산물이 나는 것을 알고 다른 화물을 가지고 와서 해산물과 소금을 바꾸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나라는 주 나라의 도읍처럼 흥성거리기 시작해 상인들이 줄지어 찾아 들고 여행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번창함을 이루었다. 그 뒤에는 여러 제후국들의 시장에서 모두 모자와 의류, 신발 등 제 나라에서 생산한 방직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제 나라는 잘 살게 된 것만 아니라 명성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해의 바닷가에서부터 태산(泰山)까지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예를 갖추어 제 나라의 도읍인 영구를 찾아와 제 나라 제후를 알현했다,
주무왕은 재위 2년 후 붕어하고 어린 성왕(成王)이 보위에 올랐다. 그러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난을 일으키고 동이(東夷)의 여러 제후들도 그 기회에 난을 일으켰다. 당시 성왕을 보좌하던 주공 단은 제 나라에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황하, 남쪽으로 목령(穆嶺), 북쪽으로 무체(無棣)까지 이르는 땅을 모두 관리하는 특권을 주었다. 또한 제후국이 이에 불복하면 그들을 정벌할 권리도 보유한 제 나라는 끊임 없는 강토의 확장으로 주 왕조 최대의 제후국이 되었다.
강태공은 제 나라 부국강병의 근본을 다졌으며 139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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