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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시보기: 사람(人)

一字師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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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시보기: 사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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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아포리아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산인해(人山人海) 중국에서 가장 난해한 화두는 사람(人)이다. 사람 많은 중국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계인들에게도 부담이다. 73억 인구 중에 15억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중국이 아무리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 세계의 금고 역할을 한다고 자평해도 변명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세계 생산량의 1/5 이상을 중국인이 먹어치우고 있다. 문제는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15억 중국인과 그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사육되고 있는 가축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계산해보라. 기상이변을 초래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세상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라고 믿고 있다. 사회주의 신중국을 연 마오쩌둥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구(人口)를 일꾼(人手)으로 계산하여 오늘날과 같은 인구대국 중국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많은 서방국가들이 GDP, GNP로 국가발전의 수준을 계산할 때 그는 수(數)를 기반으로 한 ‘세’(勢)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15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은 G20의 반열에 올랐고, G2의 일방으로 봉해졌다. 돌이켜 중간결산을 하면 인구를 생산력이라고 생각한 마오쩌둥의 발상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만약 중국의 인구규모가 15억에 육박할 정도로 확대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G2중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더 기상천외한 것은 현재의 중국정치인들이다. 마오쩌둥의 엉뚱함을 바이블로 삼아 그것을 중국정치에 응용하고 있다. 후진타오정부 시기의 이인위본(以人爲本)이 대표적인 ‘식구(食口)불리기, 식구 챙기기’정책이다. 내재된 의도를 들추면 이해가 쉽다.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이인위본이 사람(人)중심의 정책인 인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핵심은 ‘인(人)’이고, ‘인(人)’은 ‘중국인’을 지칭한다. 중국인을 적극적으로 위(爲)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또 다른 핵심은 ‘인’에 대한 해석이다. 종래 중국에서의 인(人)은 법적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공민(公民)에 한정되었다. 그런데 후진타오가 이인위본을 설파한 이후 중국 정부가 보호하고 관리해야 될 대상인 ‘중국인’의 범위에 화교, 화인, 화족이 망라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화교는 외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국적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고 화인과 화족은 민족개념, 혈연개념에서 분류되어지는데 이들을 포함시켜 중국인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사람 많은 것을 밑천으로 여기는 중국, 참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 식구 느는 것이 기쁜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어난 식구를 부양할 능력의 존재여부이다. 아직 중국은 총체적인 국민생활이 개발도상국 수준에 불과하다. 덩샤오핑이 설계한 온포(溫飽), 소강(小康), 굴기(崛起)의 3단계 가운데 소강단계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모든 식구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식구(食口)와 일꾼(人手) 사이에 모순이 상존(常存)한다. 설명은 간단하다. 정치가들은 민(民)을 근본으로 삼는다(以民爲本)고 말하고, 민(民)은 먹는 것이 하늘이라고 한다.(以食爲天) 서로가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그래서 중국정치가 아무리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여 인(人)을 민(民)이라 칭하고 민에게 일꾼(人手)이 되라고 현혹해도 민에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인 것이다.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배고파진 것이 중국의 민(民)이다. 왜냐하면 배고픔은 상대적일 때 더 혹독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산상설교를 마치고 이어오병(二漁五餠)으로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은 기적이 아니라 나눔의 정치이다. 고르게 나누고 예수 당신이 굶었기 때문에 군중들이 포만감을 느낀 것이다. 열등감이 상대적이듯 포만감도 상대적이다. 지금 중국의 민(民)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열등감이 일시적인 느낌이 아니라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는 과정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위험한 징조이다. 이때 중국정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공자의 ‘중용의 솥’이다. 공자가 학원을 열어 제자들을 교학할 때 늘 곁에 두었다는 ‘솥’이다. 낙수(落水)가 솥의 절반을 채우면 솥이 뒤집어지도록 만든 솥이다. 물의 양이 일정한 정도를 넘으면 쏟아지게 된다는 사실에서 공자는 중용의 도를 가르쳤다. 그리고 속 깊은 곳에 혁명론을 숨겨두었다. 33개의 성급 행정단위, 56개의 민족, 5,600여개의 성씨를 가진 중국, 민(民)의 저항과 분열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양(量)에 걸 맞는 질(質), 그리고 중용이 필요하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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