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초의원에게 답하다答焦漪園
초의원에게 답하다答焦漪園
편지를 받고 나서 《이씨장서》(李氏藏書)를 한 부 초록하여 사람을 통하여 보내 드립니다. 최근까지 세 가지 책을 썼는데, 그 중 이 책은 수천 년 역사의 시비를 논한 것으로, 거론된 사람이 8백 명을 넘나들고 분량도 많아서, 따져보니 2천 쪽이 훨씬 넘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불교에 대하여 친구들과 담론을 주고받은 것으로, 《이씨분서》(李氏焚書)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인연어(因緣語)․분격어(忿激語)1가 많아서, 보통 책의 상투적인 말과 다릅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혹시 괴이하고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분서》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태워 버려야 할 책이라는 뜻이지요. 현재까지 모은 것이 종이 백여 장 쯤 되어 보입니다. 계속 이어질 지 알 수 없고, 지금은 채록할 짬도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책은 학사(學士) 등이 문제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되는대로 편하게 몇 마디 써 주었던 것으로, 오래 쌓이니 책이 되어, 《이씨설서》(李氏說書)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도 아주 볼 만합니다.
만약 죽지 않고 몇 년 더 살게 된다면 《논어》․《맹자》를 구절을 따라 그 뜻을 밝히고 싶으니, 그렇게 된다면 또한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이름을 《장서》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깊이 감춰두어야 하겠지만, 그 논저가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것이 마음에 들어, 지음(知音)과 한 번 토론을 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보내 드립니다. 그 책에서 사람들의 잘잘못을 논한 것이 꽤 많은데, 모두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서》(晉書)․《당서》(唐書)․《송사》(宋史)의 잘못이지 내 책임은 아닙니다.
나는 위(魏)․진(晉) 시대 사람들이 남달리 멋있는 점이 아주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더러운 붓을 거치자 도리어 그 멋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영웅다운 사람을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놓고, 진정 풍류가 뛰어나 세상에 이름을 드날린 사람을 저속한 인물로 그려놓고, 실제로는 명성만 집어삼키고 아무 것도 제대로 못했던 사람을 뛰어나고 위대하게 그려놓았으면서도, 당당하게 으쓱으쓱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정말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로 인해 범엽2이란 사람이 오히려 인걸이며 그가 지은 《후한서》가 볼 만한 책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3
지금 감히 이 책의 내용이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시비 판단이 이전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부할 수 있으니, 절대 다른 세속 인물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됩니다. 형께서 자세히 한 번 읽어보시고, 만약 해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앞에 몇 마디 해제를 붙여 본래 뜻을 살려 편찬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단 반 마디 글자라도 그 사이에 끼워넣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지금 세상에서 이 탁오자(卓吾子)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직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형께서 짐작하여 하실 일입니다.
이 아우는 이제 먼 곳에 있으니, 멀리서 형세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 또한 이 책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해준다면 나를 아껴주는 것입니다. 중간중간 잘못되고 틀린 것이 아주 많습니다. 자세히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논저(論著) 같은 것은 고치면 안됩니다. 이는 나의 온갖 정성과 정신과 관계된 것이요, 모든 생각을 공정하게 그대로 전하는 책으로,4 그 옳고 그름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 상인(上人)과 함께 가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싶었는데, 남경(南京)에 기근이 심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중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지라, 보리가 익을 때까지 조금 기다리려 합니다. 어쩌면 배를 사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동안 서호(西湖)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어 하기도 했고,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편하고, 또 남경과도 아주 가까우니까요.
지금 속세 사람들과 가짜 도학을 일삼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를 이단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차라리 이단이 됨으로써 저들이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이단이라는 이름을, 이단이 아닌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상황을 면할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이미 출가하였고, 다만 얼마 안되는 머리카락만 남았을 뿐이니, 어찌 이런 머리카락을 아까워하여 이단이란 이름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혹시 한 번 형을 만나러 가게 될지, 아니면 만나지 못할지,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조만간에 어떤 사람이 남경에 가서 “흰 수염에 머리카락 없는 사람이 서호에 있다”고 알리면, 필시 나일 것입니다, 필시 나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열반하기 전까지는 늘 장경(藏經)을 읽는 것을 일삼을 것이며, 더 이상 유가(儒家)의 책에는 뜻을 두지 않겠습니다.
이전 편지에서 말한 등화상(鄧和尙)5이란 사람은 과연 어떤 것 같습니까? 제1기(第一機)는 바로 제2기(第二機)로, 월천화상(月泉和尙)6은 여종을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제1기는 제2기가 아니니, 활거화상(豁渠和尙)은 하늘에 정말로 두 번째 달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7 이 두 노승은 과연 치허(致虛)가 지극하고 수정(守靜)이 돈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실(實)이 허(虛)가 됨을 알기 때문에 허(虛)가 극에 달하지 않습니다. 동(動)이 정(靜)임을 알기 때문에 정(靜)이 돈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경계(境界)이길래 추측하고 의론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자(孔子)는 ‘헤아리고 추측하면 잘 들어맞는다’[億則屢中]8고 말했습니다.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없다 할지라도, 헤아리고 추측하면 그 해가 깊습니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헤아리고 추측하지 않습니다. 헤아리고 추측하지 않으므로 들어맞지 않고, 들어맞지 않으면 도에 가까운 것입니다. 언제 만나서 머리 맞대고 함께 이것을 논증할 수 있을까요?
반설송(潘雪松)9이 북경의 관직에 추천되어 근무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북경에 가기 전에 부랴부랴 금화(金華)에서 《삼경해》(三經解)를 판각하여 찍었다고 하던데, 당신께 마땅히 보내드렸겠지요. 남은 것이 많이 있으면 내게도 한두 부 보내 주었으면 합니다. 내게 《남화》10에 대한 원고는 이미 없습니다. 당시 삭제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한창 추울 무렵 병이 들었을 때 너댓새 동안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노자해》(老子解) 역시 9일만에 완성했는데, 소동파(蘇東坡)의 주석이 미흡했기 때문에, 원본에서 몇 줄을 첨가하고 고쳤습니다. 《심경제강》(心經提綱)은 벗을 위해 《심경》(心經)을 모두 써주려는 것인데, 아직 한 폭이 남았습니다. 결국 계속 이어 메워 써서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그저 스스로 즐기고자 하는 뜻에서 대충대충 일을 마쳤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결국 나무에 재앙만 안겨준 꼴이 되었습니다.11 《장서》(藏書) 같은 것은 실로 정말 기분 좋게 하는 책입니다.
반신안(潘新安)12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울의 관직에 등용되어 언로(言路)에 있으면서 쟁신(諍臣)이 되었으니, 못난 이 사람이 어찌 이 노인을 아는 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는 그토록 나를 믿었는데, 이 어찌 진심으로 내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저 형의 말을 그대로 순순히 따라서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안목을 가지고, 겉모습의 빈모려황13만 따지지 않고 본질에서 나를 찾아내어, 이 탁오자(卓吾子)가 이 세상 밖의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다면, 지금 이 시대의 인재입니다. 사람들은 필시 반씨(潘氏)의 시야 밖으로 달아날 수 없으리니, 안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요.(권1)
1 인연어(因緣語)는 불가의 이치를 논하는 말을 뜻한다. 불교에서 만물이 생기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주요 조건이 인(因)이고 보조 조건이 연(緣)이라고 했다. 분격어(忿激語)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말을 뜻한다.
2 범엽(范曄)은 《후한서》(後漢書)의 저자로 진(晉)나라 때 사천 순양 사람이다.
3 《후한서》(後漢書)의 서술 방법과 관점이 옳지 않다는 당시 평가에 대한 반론이다.
4 원문에는 ‘법가전원지서’(法家傳원之書)라고 하였다. 고대에 재판관들이 판결을 신중히 하기 위해서 서로 죄인의 진술 기록을 교환하여 심리하게 하였다. 이 때에 죄인의 범죄사실을 기록한 진술서를 말한다. 《사기》 <혹리전>(酷吏傳)의 주석에 “위소(韋昭)가 ‘원이란 바꾼다는 뜻이다. 옛날에 중형을 내릴 때에 재판관의 개인적인 호오에 따라 판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진술서를 다른 재판관에게 바꿔 주어 사실을 심리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전원서라고 한다’라고 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5 등화상(鄧和尙)은 등활거(鄧豁渠)이다. 본래 유학을 배우다가 불교로 옮겨 갔다. 저서로 《남순록》(南詢錄)이 있다.
6 월천화상(月泉和尙)은 옥지법취(玉芝法聚, 1492~1563)이다.
7 월천화상이 등활거에게 다음과 같이 “제2기가 바로 제1기이다”, “이 하나의 기를 알면 제1과 제2란 없다”(등활거 《남순록》)고 지적하였다. 《명유학안》(明儒學案) 권32 <태주학안서록>(泰州學案序錄) 안의 ‘등활거조’(鄧豁渠條) 참조.
8 《논어》 <선진>(先進), “안회는 성인의 경지에 거의 올랐는데 항상 곤궁한 처지였고, 자공은 부자의 명을 타고나지 않았으나 재산을 잘 증식하였으니, 그가 헤아려 투자한 것이 항상 잘 들어맞았다.”[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9 반설송(潘雪松)의 이름은 반사조(潘士藻)이고, 자는 거화(去華)이며, 설송은 그의 호이다. 안휘성 무원 사람이다. 《명유학안》(明儒學案) 권35 <태주학안>(泰州學案) 4에 보인다. 이지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다.
10 《남화》(南華)란 《남화진경》(南華眞經), 즉 《장자》를 가리킨다. 도교에서 장자를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고 신성시하면서 그의 저작인 《장자》도 존칭하였다.
11 자신의 부실한 원고 때문에 별 성과도 없이 판각에 쓰인 나무만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12 앞에 나온 반설송이다.
13 빈모려황(牝牡驪黃)은, 이지가 즐겨 쓴 성어 중의 하나이다. ‘빈’은 암컷, ‘모’는 수컷, ‘려’는 짙은 검은색 말, ‘황’은 누런색 말이다. ‘그저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암말․숫말․검은말․누런말 등의 특징’이라는 뜻으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표면적으로만 파악되는 특징’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황빈모(驪黃牝牡)로도 쓴다.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나오는 백락(伯樂)과 구방고(九方皐)의 고사에서 나왔다.
卷一 書答 答焦漪園
承諭,《李氏藏書》,謹抄錄一通,專人呈覽。年來有書三種,惟此一種系千百年是非,人更八百,簡帙亦繁,計不止二千葉矣。更有一種,專與朋輩往來談佛乘者,名曰《李氏焚書》,大抵多因緣語、忿激語,不比尋常套語。恐覽者或生怪撼,故名曰《焚書》,言其當焚而棄之也。見在者百有余紙,陸續則不可知,今姑未暇錄上。又一種則因學士等不明題中大旨,乘便寫數句貽之,積久成帙,名曰《李氏說書》,中間亦甚可觀。如得數年未死,將《語》、《孟》逐節發明,亦快人也。惟《藏書》宜閉秘之,而喜其論著稍可,亦欲與知音者一談,是以呈去也。其中人數既多,不盡妥當,則《晉書》、《唐書》、《宋史》之罪,非余責也。
竊以魏、晉諸人標致殊甚,一經穢筆,反不標致。真英雄子,畫作疲軟漢矣;真風流名世者,畫作俗士;真啖名不濟事客,畫作褒衣大冠,以堂堂巍巍自負。豈不真可笑!因知范曄尚為人傑,《後漢》尚有可觀。今不敢謂此書諸傳皆已妥當,但以其是非堪為前人出氣而已,斷斷然不宜使俗士見之。望兄細閱一過,如以為無害,則題數句于前,發出編次本意可矣,不願他人作半句文字于其間也。何也?今世想未有知卓吾子者也。然此亦惟兄斟酌行之。
弟既處遠,勢難遙度,但不至取怒于人,又不至汙辱此書,即為愛我。中間差訛甚多帷須細細一番乃可。若論著則不可改易,此吾精神心術所系,法家傳爰之書,未易言也。
本欲與上人偕往,面承指教,聞白下荒甚,恐途次有儆,稍待麥熟,或可買舟來矣。生平慕西湖佳勝,便于舟航,且去白下密邇。又今世俗子與一切假道學,共以異端目我,我謂不如遂為異端,免彼等以虛名加我,何如?夫我既已出家矣,特余此種種耳,又何惜此種種而不以成此名耶!或一會兄而往,或不及會,皆不可知,第早晚有人往白下報曰,“西湖上有一白須老而無發者”,必我也夫!必我也夫!從此未涅槃之日,皆以閱藏為事,不複以儒書為意也。
前書所云鄧和尚者果何似?第一機即是第二機,月泉和尚以婢為夫人也。第一機不是第二機,豁渠和尚以為真有第二月在天上也。此二老宿,果致虛極而守靜篤者乎?何也?蓋惟其知實之為虛,是以虛不極,惟其知動之即靜,是以靜不篤。此是何等境界,而可以推測擬議之哉!故曰“億則屢中”,非不屢中也,而億焉則其害深矣。夫惟聖人不億,不億故不中,不中則幾焉。何時聚首合並,共證斯事。
潘雪松聞已行取,《三經解》刻在金華,當必有相遺。遺者多,則分我一二部。我于《南華》已無稿矣,當時特為要刪太繁,故于隆寒病中不四五日塗抹之。《老子解》亦以九日成,蓋為蘇注未愜,故就原本添改數行。《心經提綱》則為友人寫《心經》畢,尚余一幅,遂續墨而填之,以還其人。皆草草了事,欲以自娛,不意遂成木災也!若《藏書》則真實可喜。潘新安何如人乎?既已行取,便當居言路作諍臣矣,不肖何以受知此老也。其信我如是,豈真心以我為可信乎,抑亦從兄口頭,便相隨順信我也?若不待取給他人口頭便能自著眼睛,索我于牝牡驪黃之外,知卓吾子之為世外人也,則當今人才,必不能逃于潘氏藻鑒之外,可以稱具眼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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