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여자는 식견이 짧아서 도를 배울 수 없다는 말에 답하다答以女人學道爲見短書
여자는 식견이 짧아서 도를 배울 수 없다는 말에 답하다答以女人學道爲見短書
어제 편지를 통해서 큰 가르침을 받았네. 그런데 여자는 식견이 짧아서 도를 배울 수 없다니,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여자는 문 밖을 나다니지 않고, 남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사방으로 활을 쏘며 돌아다니곤 하므로, 보는 것에 길고 짧음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일세.
그러나 보는 것이 짧다는 것은 식견이 안방과 집 사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요, 멀리 본다는 것은 드넓은 평원을 깊이 관찰한다는 것일세. 보는 것이 짧으면 오직 100년 이내만을 보고, 혹은 더 가까이 자기 자손만을 보고, 혹은 더 가까이 자기 한 몸만을 본다네. 보는 것이 멀면 형체의 밖으로 초월하고, 삶과 죽음의 껍데기를 벗어나, 백만 천만 억 겁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비유를 들 수 없는 범위를 본다네. 보는 것이 짧으면 단지 길거리에 돌아 다니는 말이나 저자거리의 어린아이들의 말만 듣고, 멀리 보면 대인을 깊이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감히 모욕하지 않고, 게다가 속세에 떠도는 애증(愛憎)의 말들에 현혹되지 않는다네.
보는 것의 길고 짧음을 따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저 여자가 보는 것은 짧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네. 그러므로 사람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보는 것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보는 것에 길고 짧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남자가 보는 것은 모두 길고 여자가 보는 것은 모두 짧다고 한다면, 이 어찌 말이나 되겠는가?
설령 몸은 여자라도 보는 것은 남자라서, 바른 말을 듣는 것을 즐기고 속세의 말은 들을 것이 없음을 알고, 출세간을 배우는 것을 즐기고 뜬구름같은 세상에 연연할 것이 없음을 안다면, 당세의 남자들도 이것을 보면 부끄러워하고 식은땀이 흘러, 감히 아무 말도 못할 것이네. 이런 사람은 성인 공자가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거꾸로 보는 것이 짧은 사람으로 여기다니, 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과연 이 사람이 억울하겠는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옆에서 보는 사람이 추하게 여기지나 않을까 염려될 뿐이네.
이제 살펴보면, 주나라 무왕(武王)의 왕후 읍강(邑姜)은 한 여자의 몸으로 아홉 사람과 함께 일컬어져,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太公) 등과 함께 주(周)나라를 흥성시킨 10대 명인으로 칭송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고, 문왕(文王)의 왕후 문모(文母, 太姒)1는 한 성녀(聖女)로서 주남(周南)․소남(召南)의 풍속을 바르게 하여, 산의생(散宜生)․태전(太顚) 등의 무리와 함께 ‘사우’(四友)2라고 칭송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네.
방금 말한 구구한 사례는 단지 세간의 본보기요, 천하에 잠시 태평을 가져온 공에 불과하다. 그래도 감히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보는 것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하지 않았다. 하물며 출세간의 도를 배워 석가․노자․공자의 조문석사(朝聞夕死)3를 실행하려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런 말을 길거리의 소인들이 듣게 되면, 마땅히 모두들 속좁은 견해로 책망하며, 여자가 정숙을 지키는 것이나 이롭게 여기고, 문모․읍강을 죄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이 어찌 매우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멀리 보는 것을 자부하는 사람은 대인 군자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아야 하고, 저잣거리 어린아이에게 환심을 사는 데에 급급하지 않아야 멀리 보는 자라 할 수 있다네. 저자거리의 어린아이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면, 이 역시 저자거리의 어린아이일 뿐이네. 과연 멀리 보는 것인지 짧게 보는 것인지 마땅히 스스로 판별해야 하네. 내 생각에 멀리 보는 이런 여자들은 그야말로 집안의 길조와 선(善)의 단서로, 수백 년 동안 덕을 쌓지 않고는 쉽게 태어날 수 없다네.
설도는 촉(蜀)에서 태어났네. 원미지는 그녀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서천(西天)으로 가기를 원하여, 결국 가서 만났다네. 설도는 이로 인해 <사우찬>(四友贊)을 써서 그의 뜻에 화답했고, 원미지는 과연 크게 탄복했네.4 원미지도 정원5 년간의 내노라하는 인걸인데, 어찌 쉽게 남에게 탄복했겠는가? 아! 설도처럼 글재주를 타고난 여자가 있어, 천 리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이 자신을 경모하게 하였으니, 석존의 도를 지니고 이 세상을 다니며 진실로 출세간을 얻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없다네.
방공6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방공은 자네가 있는 초(楚) 지방의 형양(衡陽) 사람으로, 그의 아내 방부인과 딸 영조(靈照)와 함께 마조7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세간의 도를 추구하여, 마침내 연이어 입적함으로써, 출세간한 사람들에게 고금의 자랑스런 일이 되고 있다네. 공(公)이 멀리 보는 것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나는 저자거리의 어린아이들과 한 번 상의해보겠다’고 한다면, 나로선 더 이상 모르는 일이네.(권2)
1읍강(邑姜)은 주 무왕의 태후이며, 태공망(太公望)의 딸이고, 성왕(成王)의 어머니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십란(十亂), 즉 치세를 보좌한 10명의 신하라면 일반적으로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태전(太顚)․굉요(閎夭)․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适)․문모(文母)를 일컫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주희(朱熹)는, 문모는 문왕의 왕비 태사(太姒)이기 때문에, 무왕이 모친 태사를 신하의 서열에 넣었을 리가 없다고 보아, 문모는 읍강(邑姜)을 잘못 넣은 것이라고 했다.(《四書集註》 《논어》 <태백> 참조) 이지도 이 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문왕의 네 벗은 일반적으로 굉요․태공망․남궁괄․산의생을 말하는데, 태전과 태사로 본 것은 어느 설을 따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예로부터 통설에 따르면,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은 주공과 소공의 채읍으로, 《시경》의 주남과 소남의 시는 문왕의 덕화에 의하여 지어진 시이기 때문에 주남은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것이요 소남은 제후의 부인의 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었다. 《시경》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주희도 이 설을 그대로 따라서, 예를 들면 주남 첫 편의 <관저>(關雎)는 문왕이 왕비를 구하다가 성녀 태사를 얻어서 신혼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했다. 이지도 주희의 설을 따라, 성녀 태사가 풍속을 바르게 했다고 말한 것이다.
3 조문석사(朝聞夕死)는 《논어》 <이인>(里仁)에 나오는 유명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말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명나라 말기에 이 말은 단순히 막연하게 ‘도(道)를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는 거의 숙어처럼 사용되어, ‘생사(生死)의 본원, 즉 성명(性命)의 본원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4 <설도시>(薛濤詩, 《翠琅玕館叢書》 제4집) 안에 있는 <십리시>(十離詩)의 해제에 따르면 원미지(元微之)가 촉(蜀)의 사신으로 갔을 때에 사공(司空)인 엄(嚴)아무개가 설도(薛濤)를 보내서 접대하였다. 뒤에 엄아무개와 설도와 사이가 나빠졌을 때 멀리 떠나보냈다. 그러자 설도는 그에게 <십리시>를 지어 바쳐서 둘은 다시 사귀게 되었다. <사우찬>(四友贊)은 위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본문의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설도는 당(唐)나라 때 장안의 명기였다. 자는 홍도(弘度 또는 洪度)이고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원래는 장안의 양가집 자녀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 촉땅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쇠락하여 기녀의 호적에 오르게 되었다. 원미지의 이름은 신(愼)이고 미지는 자이다. 대문호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원백’(元白)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문체를 원화체(元和體)라 부르면 사람들이 본받았다고 한다.
5 정원(貞元)은 당나라 덕종(德宗) 때의 연호로 785년에서 804년까지를 말한다.
6 방공(龐公)은 방온(龐蘊)으로 자는 도원(道元)으로 당나라 때 사람이다.
7 마조(馬祖)는 당나라 때 강서의 도인(道一)선사를 말한다. 속성이 마씨였으므로 마조라고 한 것이다.
卷二 書答 答以女人學道為見短書
昨聞大教,謂婦人見短,不堪學道誠然哉!誠然哉!夫婦人不出閫域,而男子則桑弧蓬矢以射四方,見有長短,不待言也。公所謂短見者,謂所見不出閨閣之間;而遠見者,則深察乎昭曠之原也。短見者只見得百年之內,或近而子孫,又近而一身而已;遠見則超于形骸之外,出乎死生之表,極千百千萬億劫不可算數譬喻之域是已。短見者祗聽得街談巷議、市井小兒之語,而遠見則能深畏乎大人,不敢侮于聖言,更不惑于流俗僧愛之口也。余竊謂欲論見之長短者當如此,不可止以婦人之見為見短也。故謂人有男女則可,謂見有男女豈可乎?
謂見有長短則可,謂男子之見盡長,女人之見盡短,又豈可乎?設使女人其身而男子其見,樂聞正論而知俗語之不足聽,樂學出世而知浮世之不足戀,則恐當世男子視之,皆當羞愧流汗,不敢出聲矣。此蓋孔聖人所以周流天下,庶幾一遇而不可得者,今反視之為短見之人,不亦冤乎!冤不冤,與此人何與,但恐傍觀者丑耳。
自今觀之,邑姜以一婦人而足九人之數,不妨其與周、召、太公之流並列為十亂;文母以一聖女而正《二南》之《風》,不嫌其與散宜生、太顛之輩並稱為四友。此區區者特世間法,一時太平之業耳,猶然不敢以男女分別,短長異視,而況學出世道,欲為釋迦老佛、孔聖人朝聞夕死之人乎?此等若使閭巷小人聞之,盡當責以窺觀之見,索以利女之貞,而以文母、邑姜為罪人矣,豈不冤甚也哉!故凡自負遠見之士,須不為大人君子所笑,而莫汲汲欲為市井小兒所喜可也。若欲為市井小兒所喜,則亦市井小兒而已矣。其為遠見乎,短見乎,當自辨也。余謂此等遠見女子,正人家吉祥善瑞,非數百年積德未易生也。
夫薛濤,蜀產也,無微之聞之,故求出使西川,與之相見。濤因定筆作《四友贊》以答其意,微之果大服。夫微之,貞元傑匠也,豈易服人者哉!籲!一文才如濤者,猶能使人傾千里慕之,況持黃面老于之道以行游斯世,苟得出世之人,有不心服者乎?未之有也。不聞龐公之事乎?龐公,爾楚之衡陽人也,與其婦龐婆、女靈照同師馬祖,求出世道,卒致先後化去,作出世人,為今古快事。願公師其遠見可也。若曰“待吾與市井小兒輩商之”,則吾不能知矣。
'硏究篇---綜合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지李贄-분서焚書 황안의 두 스님을 위해 쓴 글 세 편爲黃安二上人三首 (0) | 2023.04.07 |
---|---|
이지李贄-분서焚書 명인에게與明因 (0) | 2023.04.06 |
이지李贄-분서焚書 유초천과 이별하며別劉肖川書 (0) | 2023.04.04 |
이지李贄-분서焚書 증계천에게與曾繼泉 (0) | 2023.04.03 |
이지李贄-분서焚書 경사구에게 답하다答耿司寇 (0) | 2023.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