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篇---綜合文學

이지李贄-분서焚書 <고결함에 대해高潔說>

一字師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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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李贄-분서焚書 <고결함에 대해高潔說>

 
 

<고결함에 대해高潔說>[1]

나는 천성이 ‘높은 것’[高]을 좋아한다. 높은 것을 좋아하면 거만하여 낮추지를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낮추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와 부귀만을 믿는 저 사람들에게 낮추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비록 노예나 하인일지라도 절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나는 천성이 ‘깨끗함’[潔]을 좋아한다. 깨끗함을 좋아하면 편협되어 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에 빌붙고 부귀에 아첨하는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설령 그 사람이 왕공대인(大人王公)일지라도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없다.

 

남에게 자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허’(虛)하고, 그 마음이 ‘허’하기 때문에 취하는 범위가 넓고, 취하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남에게 자신을 잘 낮춘다는 사람이란 본래 천하에서 가장 높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남에게서 잘 취하기 때문에 필시 빠트리는 사람이 없고, 빠트리는 사람이 없으면 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면 깨끗하지 않은 행실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남을 잘 포용한다는 사람이란 본래 천하에서 가장 깨끗함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깨끗함을 좋아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 세상의 속좁은 사람들은 모두 내가 편협해서 포용하지 못하고 오만해서 낮출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황안(黃安)으로 왔을 때 이후로 종일 문을 잠가 두었기 때문에, 방단산[2]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사방으로 좋은 벗을 찾아 다니라고 몇 차례나 꾸짖게 만들었다고 한다. 용호(龍湖)에서 묵기 시작한 때 이후로 비록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문까지 찾아왔는데 만나지 않았고, 혹은 만나더라도 예로 접대하지 않았고, 설령 한두 사람 예를 갖추어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역시 오래 되지 않아 싫증나서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들이 대체로 이렇다. 그들은 내가 종일토록 문을 닫고 있으면서 종일토록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나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한 해가 다 가도록 혼자 앉아서, 한 해가 다 가도록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한탄만 할 뿐인 나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이는 너희들과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중 그런대로 맞는 말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내가 눈이 없어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거나 공평하지 않게 편애함으로써 남들과 시종일관 한결같이 어울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거죽을 둘러싼 털을 헤치고 거죽을 보고, 털을 불고 구멍을 보듯이 치밀하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정확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도 세상의 속좁은 사람들의 말과 비교하면 오십보 백보일 뿐이다. 그런 것을 어찌 입에 담을 필요가 있는가?

 

텅 빈 골짜기에 있으면,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나 사람 비슷한 것만 만나도 반가운 법인데, 나더러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니, 이런 이치가 어디 있는가? 다만 혹시 정말 사람이 아닐까 염려될 뿐이다. 대략이나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그가 비천한 사람이라도 모두 잊고 당장 하배(下拜)할 것이요, 아무리 그가 고귀한 사람이라도 모두 잊고 당장 달려가 맞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왕왕 그 사람의 장점만 따질 뿐 단점을 잊으려고도 했다. 단점을 잊을 뿐만 아니라 융숭히 예를 차리고 스승으로 모시려고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하물며 편애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무엇 때문인가? 좋은 친구는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만약 내가 공경과 예의를 극진하게 차리지 않거나 스승을 섬기는 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총명하고 재능있고 현명한 인물이 무엇 때문에 나와 친구가 되려고 하겠는가? 반드시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나의 예의를 융숭히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하에 진정 재능있고 진정 총명한 사람이 사실 적다.

 

그리고 내가 공경과 정성을 다하여 모셨는데, 그 총명하고 재능있다던 사람이 결국 진실이 아니라면, 부득불 그와 멀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간사한 의도까지 있었다면, 이 또한 부득불 나날이 그와 멀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내가 눈이 없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눈이 없다면, 필시 끝까지 사람들과 멀어지지 못할 것이요, 내가 정말로 공정하지 못하고 편애한다면, 필시 종신토록 단점을 옹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편애하고 눈이 없다는 말들은 모두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지금 황안(黃安)의 두 스님[上人]이 이곳에 와 있다. 필시 사람들은 또 내가 편애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 스님은 나와 처음과 끝을 함께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눈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일이 없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스님은 나의 괴로운 마음을 진정 알고 있으며, 내가 외롭고 쓸쓸하여 하소연할 곳이 없음을 진정 알고 있으며, 내가 사람을 찾는 것이 다른 사람이 나를 찾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을 진정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두 스님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사실 두 스님의 덕 때문에 믿는 것이요, 그 총명함 때문이 아니라 그 독실함 때문에 믿는 것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독실하고, 독실한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다. 어찌 두 스님을 내가 싫어하겠는가?

 

두 스님은 이수암(李壽庵)을 스승으로 모셨고, 수암은 등활거(鄧豁渠)를 스승으로 모셨다. 등활거는 그 의지가 금강석처럼 굳고 담이 하늘같이 커서, 배운 것을 마음으로부터 깨우치고, 지혜가 스승을 넘어섰다. 그러므로 키운 그 제자 또한 그 스승과 같았고, 그 제자의 자손은 그 제자와 같았다. 이 때문에 나는 필시 두 스님이 의심할 바 없이 나를 위해 애쓸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므로 높은 것을 좋아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서 주노라.(권3)


 [1] <황안의 두 스님을 위해 쓴 글 세 편>[爲黃安二上人三首]중 세 번째 ‘실언’(失言) 참조.

 [2] 방단산(方丹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분서》 권2에 <방백우 간에게>[與方伯雨柬]와 《속분서》 권1에 <방백우에게>[與方伯雨]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방백우와 동일인이 아닌가 한다.

高潔說

予性好高,好高則倨傲而不能下。然所不能下者,不能下彼一等倚勢仗富之人耳。否則稍有片長寸善,雖隸卒人奴,無不拜也。予性好潔,好潔則狷隘不能容。然所不能容者,不能容彼一等趨勢諂富之人耳。否則果有片善寸長,縱身爲大人王公,無不賓也。能下人,故心虛;其心虛,故所取廣;所取廣,故其人愈高。然則言天下之能下人者,固言天下之極好高人者也。予之好高,不亦宜乎!能取人,必無遺人;無遺人,則無人不容;無人不容,則無不潔之行矣。然則言天下之能容者,固言天下之極好潔人者也。予之好潔,不亦宜乎!今世齷齪者,皆以予狷隘而不能容,倨傲而不能下,謂予自至黃安,終日鎖門,而使方丹山有好個四方求友之譏;自住龍湖,雖不鎖門,然至門而不得見,或見而不接禮者,縱有一二加禮之人,亦不久即厭棄。是世俗之論我如此也。殊不知我終日閉門,終日有欲見勝己之心也;終年獨坐,終年有不見知己之恨也,此難與爾輩道也。其頗說得話者,又以予無目而不能知人,故卒爲人所欺;偏愛而不公,故卒不能與人以終始。彼自謂離毛見皮,吹毛見孔,所論確矣。其實視世之齷齪者,僅五十步,安足道耶?夫空穀足音,見似人猶喜,而謂我不欲見人,有是理乎!第恐尚未似人耳。茍即略似人形,當即下拜,而忘其人之賤也;奔走,而忘其人之貴也。是以往往見人之長,而遂忘其短。非但忘其短也,方且隆禮而師事之,而況知吾之爲偏愛耶!何也?好友難遇,若非吾禮敬之至,師事之誠,則彼聰明才賢之士,又曷肯爲我友乎!必欲與之爲友,則不得不致吾禮數之隆。然天下之眞才眞聰明者實少也,往往吾盡敬事之誠,而彼聰明者有才者,終非其眞,則其勢又不得而不與之疏。且不但不眞也,又且有奸邪焉,則其勢又不得而不日與之遠。是故眾人咸謂我爲無目耳。夫使我而果無目也,則必不能以終遠;使我果偏愛不公也,則必護短以終身。故爲偏愛無目之論者,皆似之而非也。今黃安二上人到此,人又必且以我爲偏愛矣。二上人其務與我始終之,無使我受無目之名也。然二上人實知餘之苦心也,實知餘之孤單莫可告語也,實知餘之求人甚於人之求餘也。餘又非以二上人之才,實以二上人之德也;非以其聰明,實以其篤實也。故有德者必篤實,篤實者則必有德,二上人吾何患乎!二上人師事李壽庵,壽庵師事鄧豁溪。鄧豁溪志如金剛,膽如天大,學從心悟,智過於師,故所取之徒如其師,其徒孫如其徒。吾以是卜之,而知二上人之必能如我出氣無疑也,故作好高好潔之說以貽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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