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중국과 문학 무송武松은 어느 지방 사람인가?

一字師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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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 무송武松은 어느 지방 사람인가?

 

 

: 오월(吳越)

많은 산동(山東) 친구들은 모두 무송이 그들과 동향이라고 얘기하고, 산동사람들은 산동에서 무송과 같은 영웅호걸이 나온 것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무송은 당연히 산동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마디만 물어보자. 무송은 산동의 어느 현() 사람인가? 아마도 산동친구들은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수호전>> 22회에서 이미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송강(宋江)이 염파석(閻婆惜)을 죽이고, 형제 송청(宋淸)과 두 사람이 창주 시진(柴進)의 장()으로 도망치다가 무송을 만난다.

 

송강은 그 사나이를 부축하며 물었다. "귀하는 누구이신지, 존성대명은?" 시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 이 사람은 청하현(淸河縣) 사림이며, 성은 무()이고 이름은 송()이다. 이미 여기에 온지 1년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다시 나온다. 청하현이 산동성에 속하는가?

지도를 뒤적여보면, 산동과 하북의 경계선은, 덕주(德州)에서 임청(臨淸)까지의 구간은 대운하를 경계로 하고 있다. 청하현은 대운하의 서쪽에 있는데, 청하현은 분명히 하북성에 속한다. 산동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산동사나이 무송이 산동사람이 아니라면, 이게 무슨 웃음거리인가? 만일 무송이 산동 양곡현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았고, 양곡현 지현이 그를 도두(都頭)에 임명하였으며, 무대랑도 이미 청하현에서 양곡현으로 이사와서 자리잡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산동 양곡현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약간은 억지가 아닌가?

 

역사를 살펴보면, 청하현은 수문제(양견)의 개황초년에 설치된다. 한고조시대에, 이곳에는 먼저 청하군을 두고, 나중에 여러번 바뀌어 청하국이 된다. 한원제이후에는 군()으로 정해진다. 관할지역은 오늘날의 하북성 청하현의 주변지역이며, 오늘날의 산동인근의 몇개 현, 시까지 포함된다. 동한이후에는 다시 청하국으로 개칭된다.

 

북위때는 여전히 청하군이라고 칭해진다. 수나라초기에 군이라는 행정구역을 없앴다가, 수나라 대업이후 다시 청하군으로 회복시킨다. 당나라초기에는 군을 없애고, 주를 설치했는데, 현은 주의 관할에 속했다. 당나라초의 청하현은 패주(貝州)에 속했고, 하북동로의 관할을 받았으며, 하북동로의 치소는 대명부(大名府)에 두었다.

 

송나라때에는 비록 산동성, 하북성의 건제를 두지 않았지만, 이미 "()" 건제(로는 성보다 적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호전>>에서 "산동호보의, 하북옥기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의 산동과 하북은 성()이 아니라 로()를 말한다. 나중에 원나라때 성을 만들어, ,송시대의 ""의 기초위에서 나누어 구분한 것이다. 대운하는 수나라때 만들었다. 대운하를 산동과 하북의 경계선으로 삼은 것은 당연히 수나라이후의 일이다. 이렇게 보면, 청하현의 역사상 계속 하북성에 속했고, 산동성에 속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수호전>>은 원나라때 쓰여져서, 명나라때 출판되었다. 산동인들이 무송을 동향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명나라이후의 일일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기로예(산동,하북,하남)지방의 경계선은 자주 바뀌어서 지금의 산동성 양곡현도 이전에는 하남성에 속한 적이 있었고, 청하현도 한번은 산동성에 속한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청하현지>>를 뒤적여보지는 않아서 아무렇게나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의 연혁으로 보면, 청하현은 주로 하북에 속했지, 산동에 속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실, 바로 당대에 방송되는 산동쾌서(快書)나 평화(評話)에서도 무송이 산동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고원균의 산동쾌서 <<무송전>>의 제1회에서 "그 무송은 집이 직예광부(直隸廣府) 청하현"이라고 한다. "직예"는 경사(京師)에 직속된 지역이라는 뜻이고, 일반적으로 경사주위지역을 의미한다. 광부(廣府)는 광평부(廣平府)를 의미하며, 부의 치소는 지금의 하북형 영년현이다.

 

송나라때 이미 직예라는 부현이 있었다. 그러나 광평부와 청하현은 모두 직예에 속하지는 않았다. 하북성은 청나라때 "직예성"이라고 칭해졌다. 이로써 볼 때, 고원균의 말은 바로 그의 청나라때 조사로부터 전해내려온 '당시'의 칭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왕려당의 양주평화 <<무송>>의 제1회에서도: "무송이 어떤 사람인가? 바로 북직광평부 청하현사람이다" "북직""북직예"를 말한다. 명나라때는 남경과 북경의 두 경사를 두었으므로, 오늘날의 강소성은 당시 "남직예"로 불리고, 지금의 하북성은 당시 "북직예"로 불리웠다. 이렇게 보면, 왕려당의 말도 아마도 그녀의 조사의 조사로부터 전해내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금병매>>의 제1회에서는 "대송 휘종 황제정화연간, 산동성 동평부 청하현에는 한 풍류자제가 있는데...복성으로 서문이며 이름은 외자로 경이다."라고 하여, 청하현을 산동성 동평부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산동인들이 무송을 동향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이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금병매>>는 명나라 숭정연간에 출판되었고, 작자는 명나라때 사람이다. 이미 ""의 건제가 있었다. 동평부는 송나라때 설치되었고, 원나라때는 ""로 개칭되고, 명나라때는 ""로 개칭되었다. 아래에는 지금의 산동문상, 동음, 동평, 양산, 비성, 양곡, 동아의 7개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청하현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이로써 보면 "난릉소소생"도 줄줄이 말은 잘 했지만, 고증을 거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청하현을 산동에 속하는 것으로 하였을 뿐아니라, 무송의 원적을 양곡현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호랑이를 때려잡은 장소를 청하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경양강(景陽岡)도 청하현으로 옮겨놓았다. 그는 창주에서 회고견으로 돌아오면서 형에게 들르는데, 길가는 도중에 청하현을 지나고, 그래서 우연히 호랑이를 때려죽인다. 난릉소소생(금병매의 작가)는 무송이 창주에서 청하의 고향집으로 가는 길에 양곡을 지나간 노선에서의 착오를 시정한 것이다. 그러나, 청하현을 산동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잘못을 범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청하현은 하북에 속하고, 산동에 속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무송(武松)은 수호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천상성(天傷星). 행자(行者). 무이랑(武二郞). 보군두령의 1. 경양강(景陽岡)에서 사람을 잡아먹고 다니는 호랑이를 때려잡아 그 공으로 양곡현의 도두가 된다.

 

친형 무대랑(武大郞)[1]이 형수 반금련(潘金蓮)과 서문경(西門慶)의 불륜에 의해 죽자 그 둘을 죽이고 자수한 뒤 맹주(孟州)로 유배가게 된다.

 

이후, 병마도감(兵馬都監) 장몽방 휘하에 있다 누명을 써 다시 은주 노성으로 유배간다.

 

유배 중에 장도감과 장문신, 장단련이 짜고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고는 모조리 죽인 후 도망치다 장청(張靑), 손이랑(孫二郞) 부부의 제안으로 스님으로 위장한 뒤 이룡산 보주사에서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와 한패가 되었다.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이 양산박에 토벌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양산박에 합류한다.

 

방랍(方腊) 토벌전에서 포도을에게 왼팔을 잃은 후, 난이 제압된 뒤 벼슬을 거부하고 육화사에서 출가해 여생을 스님으로 살았다.

 

무송의 형의 이름이 무대로 알려져 있으나 진짜 이름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작중 나오는 무대랑은 맏아들이라는 뜻일 뿐 이름이 아니다. 이는 완씨(阮氏) 삼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

 

무송

지역 주민들은 오송을 동정하고 그를 대신해서 탄원한다. 왕 할머니는 영치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오송은 멍저우로 유배되었다. 오씨 일행은 도중에 크로스 슬로프(Cross Slope; 현재의 허난성 판현)를 지나 손어량의 여관에서 휴식을 취한다. 우젠슝은 그 여자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약에 취한 술을 마신 척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Sun이 그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그는 쉽게 그녀를 제압합니다. 바로 그때, 쑨원의 남편 장칭이 돌아와 난투극을 막는다. 그 커플은 사과하고 우와 친구가 된다. 그들은 그를 멍저우까지 배웅하기 전에 얼마 동안 그를 접대한다.

 

멍저우 교도소장의 아들인 스언(()은 우송의 공적을 듣고 그가 번화한 교차로인 해피 포레스트(Happy Forest)를 다시 장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Shi"이익"의 대부분은 기업으로부터의 보호금과 그가 그 장소에 있는 레스토랑을 통해 모은 여행자들로부터 받는 통행료이다. 그러나 이 식당은 "문신의 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건장한 레슬러인 장중(江中)에게 시로부터 빼앗겼다. 장쩌민은 친족 민병대 교관 장()의 초청을 받아 석언(and)을 때려눕히고 해피 포레스트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오송의 도움이 필요한 시씨는 그의 아버지에게 새로 온 망명자들이 어떤 대상인지 구타하지 말라고 말하고 그가 감옥에서 편안한 삶을 살도록 보장한다. 우씨는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구타를 피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자신을 살해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우 씨는 쉬 씨가 식당을 되찾는 것을 돕기로 동의한다. 그러나 Shi Si는 며칠간의 시련 끝에 자신의 체력을 회복했는지 의심하고 있다.

 

우젠슝은 한 손으로 무거운 항아리를 들어 올리며 체력을 과시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전투력이 술에 취했을 때 최고조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행복한 숲으로 가는 길에 들르는 여관마다 와인 세 그릇을 대접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그 식당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엄청난 양의 와인을 마셨다. he provokes jiang zhong into a fight and soundly beats him with a set of martial arts moves known as "jade circle steps and mandarin ducks kicks" (玉環步鴛鴦腳). 장쩌민은 사은에게 사과하고 해피 포레스트(Happy Forest)를 그에게 돌려주고 멍저우(Mengzhou)를 영원히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창피를 당한 장종은 장 교관과 수비대 사관 장멍팡(張孟 ()과 협력하여 오송에게 복수한다. 장 경감은 오송의 막강한 힘을 칭찬하는 척하며 오송을 자신의 장원에 머물게 한다. 우젠슝은 매복에 걸려 절도의 누명으로 감옥에 보내진다. 6개월 동안 수감된 후, 시엔트가 감옥에서 그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저지한 후, 우젠슝은 다른 곳으로 유배된다. Shi En은 그를 배웅할 때 그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실제로 장중은 우의 호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 두 명의 제자의 도움을 받아 도중에 그를 살해했다. 일행이 플라잉 클라우드 풀(Flighting Cloud Pool)에 왔을 때, 우젠슝은 그의 혀를 부러뜨리고 4명의 남자 모두를 죽인다. 그는 장 경감의 장원으로 돌아와 장 경감과 장 두 사람이 그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는 만다린 덕스탑(tower德石)으로 향한다. 그는 세 명 모두를 죽이고 사실상 장 경감의 가족 전체를 죽인다. 15명이 장의 집에서 살해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떠나기 전에 벽에 피를 묻힌 "살인자는 호랑이를 죽이는 우송이다"라는 등장인물을 쓴다.

 

멍저우에서 도망친 후, 오송은 다시 쑨얼냥과 장칭과 마주치게 되는데, 장칭은 그에게 그곳에서 무법자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쌍룡산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쑨양은 자신의 초상화가 적힌 지명수배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으니 인정받지 않기 위해 무보험 순례자로 위장할 것을 제안한다. 앞서 쑨양은 불교의 가운, 해골 목걸이, 머리띠, 검 한 쌍을 남기고 간 한 불교 순례자를 도살했다. 오송은 불교 순례자들이 하는 것처럼 가운을 입고 머리를 풀어 얼굴에 유배 문신을 가린다. 이후 그의 별명은 "순교자"이다.

 

오송은 길을 가다가 도사 왕()의 별명이 '날아다니는 지네'(e on)로 불리는 도사가 유괴된 여자를 성적인 쾌락을 위해 기르고 있는 절을 지나간다. 오송은 사제와 그의 신하들을 죽이고, 여인을 구하고, 절을 불태운다. 다음에 그는 여관에 들렀고, 공량이 그의 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자 공량과 싸운다. 그는 공 씨가 직접 재료를 공급했다는 여관 주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콩은 심하게 얻어맞았다. 이후 동생 공명과 부하들의 도움으로 공량은 오송을 추적하는데, 오송은 술에 취해 개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그들은 그를 쉽게 제압하고, 나무에 묶고, 때린다. 당시 콩족의 장원에 살고 있던 쑹장(宋江)은 우를 알아보고 형제들에게 그를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오송은 쌍룡산에 도착하여 노지선과 양지와 합류한다.

 

량산늪의 도적들에게 패배한 후, 황제의 장군 회암탁은 청주로 도망쳐 그곳의 도적들을 소탕하여 자신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수호지의 등장인물. 양산박의 108 두령 중 한 명. 별호는 행자(行者). 중이 되기 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천상성(天傷星)에 해당.

 

힘과 싸움 능력이 엄청난 인물로 작중에서 손꼽히게 뛰어난 무술가인데 무기도 없이 그냥 맨손으로 마을에서 식인으로 악명 높은 호랑이를 때려잡아서 장사(壯士)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무력을 갖춘 인물. 전략이나 계책이 아니라 그냥 주먹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수호지 내에서 노지심, 이규와 더불어 무력일변도의 이미지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무송은 공부따원 안한 티가나는 단순무식과격의 대명사인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머리를 활용할 줄 알기 때문에 사안에 대해 나름 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우는 치밀함도 갖추고 있으며 상대방의 책략을 꿰뚫어 보고 위기를 넘기는 장면도 꽤 나온다.

 

이처럼 나름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지만 술버릇이 나쁘고 건달 기질이 있어서 자주 폭력을 휘두르는 탓에 수호지 팬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린다. 특히 반금련을 잔혹하게 죽인 점과 쾌활림에서 하룻밤에 무려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그의 입장에 보면 정당방위에 가까운데, 반금련의 경우 착한 형을 박대하고 불륜을 한 것도 모자라 형을 독살하기까지 했고 쾌활림 사건은 누명까지 씌우고 죽이려 한 것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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