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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과 해석 방법론-《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3-5

一字師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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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과 해석 방법론-《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3-5

제3장 《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 관통론, 유기설, 우열론, 구조학, 탐일학(探佚學)

3. 앞쪽 80회의 이문(異文) 연구에 관한 각종 문제

6) 텍스트의 우열과 진위에 배한 판별, 그리고 작자의 기능

주단원은 《홍루몽 논원(論源)》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에 대해 문헌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목적은 그 미학적 가치를 개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자 조설근의 생애가 가계, 홍루몽의 창작 배경, 줄거리와 소재, 인물의 원형, 작자의 창작 사상, 《홍루몽》의 형성 과정과 판본의 원류 등을 탐색하고 추적하여 재현하려고 힘쓰는 것이다. 이런 연구 방법은 연구자로 하여금 충분히 객관적인 입장과 태도를 취해 문헌적 증거를 중시하고, 그럼으로써 객관적 실제에 최대한 접근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에는 객관적 태도와 객관적 실제라는 두 가지 ‘객관’이 들어 있다. 다음에서는 일부 연구의 실제 정황을 검토하여 문헌학과 판본학 연구에서 ‘객관’이 가능한지 검토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객관적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학자들의 결론과 ‘객관적 실제’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지 살펴볼 것이다.

《홍루몽》 앞쪽 80회에서 판본의 상황이 가장 복잡한 것은 제67회이다. 일찍이 건륭 51년(1791)에 정위원과 고악은 〈《홍루몽》 인언(引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 왔기 때문에 서방(書坊)의 선본(繕本)들과 여러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소장한 필사본들 사이에 문장이 복잡하게 많거나(繁) 너무 간략하고(簡), 앞뒤에 착오가 있는 현상이 생겨났다. 제67회의 경우는 어떤 판본에는 들어 있고 다른 판본에는 들어 있지 않거나, 제목은 같은 데 본문은 다른 경우도 있어서 옥인지 평범한 돌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비교적 정리에 맞는 것을 골라 정본(定本)으로 만들었다.

이 회에서는 문장이 빠지거나 남아 있는 문제가 사람들의 추측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외에도 ‘진/위’, ‘번(繁)/간(簡)’을 판별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논쟁의 핵심은 ‘작자의 원고’ 문제이다. 논자의 관점은 대단히 극단적이어서 ‘절대 조설근의 문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부터 ‘번-간 두 계열 모두 조설근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제 각 판본의 문장이 빠지고 남아 있는 상황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판본에는 제64회와 제67회가 모두 빠져 있다.)

가. 문장이 빠졌는지 여부가 불명확함: 갑술본, 서서본, 정장본(鄭藏本). 세 판본 모두 40회가 넘지 않음
나. 제64회와 제67회가 빠져 있음: 기묘본, 경진본(저본에서 이미 빠져 있음)
다. 이 두 회가 들어 있음: 몽고본, 몽부본, 척정본(戚正本), 척녕본, 몽각본(夢覺本), 열장본

지금 보이는 갑술본은 제28회에서 끝나고 있으며, 서서본은 제40회에서 끝나며, 정장본은 단지 제23회와 제24회만 남아 있다. 이 세 판본의 원본은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테지만 뒤쪽 문장이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원문에 이 두 회가 들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없다. 기묘본과 경진본의 제61회부터 제70회까지를 묶은 책에는 제64회와 제67회가 빠져 있으며, 분책(分冊) 목록에 “제64회와 제67회는 빠져 있음”이라고 주석이 붙어 있다. 이로 보건대 그것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베껴 쓸 때의 저본에 이미 이 두 회가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회가 들어 있는 판본으로는 척정본과 척녕본, 열장본, 몽고본, 갑진본, 정고본(程高本), 몽부본(정고본을 베껴 쓴 것임)이 있는데, 여기서 제64회는 판본들마다 대체로 같지만 제67회 부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제67회의 문장은 번본과 간본의 두 계열로 나뉜다.

번본 계열: 척서본(유정본), 척녕본, 열장본, 갑진본
간본 계열: 몽고본, 정고본, 몽부본

척서본과 정갑본을 두 계열의 대표로 삼아 통계를 내어 보면, 전자가 10,480자인 데에 비해 후자는 겨우 7,800자밖에 되지 않는다. 번본 계열의 일부 줄거리는 간본 계열에 없는 것들인데, 예를 들어서 가보옥과 화습인(花襲人)이 설보차가 임대옥에게 어느 정도의 예물을 보내야 맞는지 토론하는 장면과 화습인이 대관원 안에서 소운(素雲)을 만나 셋째 아가씨(가석춘)에게 물건을 전하는 이야기, 화습인이 왕희봉과 한담을 나누며 배두렁이[兜肚]를 만드는 이야기, 왕희봉이 사정을 알고 나서 평아(平兒)와 함께 가진(賈珍) 부부를 비난한 이야기 등이다.

이 회의 판본 문제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우열과 진위의 판별 측면. 둘째, 번본 계열과 간본 계열의 관계와 작자의 문제. 셋째, 근래의 교주본(校注本)에서 제67회에 대한 취사(取捨) 상황.

(1) 우열과 진위 문제

서전경(徐傳經: 1831~?)의 《신평수상홍루몽전전(新評繡像紅樓夢全傳)》 제67회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행간의 비평이 들어 있다.

옛날 필사본에는 “바깥에 집을 마련해 가련은 새 첩을 숨기고, 기밀이 누설되어 왕희봉은 음모를 꾸미다[置外舍賈蓮匿新寵, 泄機關熙鳳定陰謀]”라고 되어 있는데, 제목만 남아 있고 본문은 빠져 있다. 방각본(坊刻本)에 들어 있는 이 회는 아마 후세 사람이 보충한 것일 터이다.

여기서는 이 회가 “후세 사람이 보충”했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이후에 제76회가 판본에 따라 들어 있기도 하고 빠져 있기도 한 상황은 진위 문제에 대한 변론을 야기했다. 논자에 따라서는 번본이 원본에 가깝다고 하기도 하고 간본이 원본에 가깝다고 하기도 했다. “번본은 위작이고 간본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이들로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저우쉬량(周煦良)은 척서본 제67회를 위작이라고 했고, 송하오칭과 주단원은 정갑본(간본) 제67회가 조설근의 원고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간본 계열이 진짜이고 번본 계열은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에 비해 “간본이 진짜(또는 그에 가깝다)”라고 주장하는 이로는 한사오취앤(韓紹泉), 정칭산, 차이이쟝이 있다. 이제부터 그들의 논술을 검토하여 그들의 판단 기준과 전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번본 계열에 대한 공격이다. 저우쉬량은 네 가지 이유를 들어서 “번본 계열이 위작”이라는 의견을 지지한다. 첫째, 척서본에는 오직 제67회에만 회전총비(回前總批)가 없다. 둘째, 제67회의 서사가 무척 느슨하다. 셋째, (설보차, 가보옥, 화습인, 왕희봉 등) 주요 인물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 넷째, 문장에 빈틈과 졸렬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이상에 열거한 필사본의 단서와 인물 성격의 묘사, 줄거리상의 빈틈, 그리고 문장의 졸렬함을 근거로 척서본 제67회는 결코 조설근의 원고가 아니라 후세 사람의 위작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저우쉬량이 생각하는 ‘졸렬한 문장’은 모두 조설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또 다른 논자인 송하오칭 역시 같은 신념 아래 판별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척본의 ‘위작’ 부분을 ①임대옥과 자견(紫鵑)의 특징, ②앵아(鶯兒)의 형상, ③ 왕희봉의 성격 등을 들어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것들이 어찌 조설근에게서 나온 문장이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결국 저우쉬량과 송하오칭은 모두 척서본의 문장에 회의를 품었으며, 심지어 송하오칭은 척서본에서 간본 계열과 다른 문장은 후세 사람이 함부로 고친 문장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또 다른 비평가 홍사오취앤도 같은 방식으로 번본 계열의 판본(열장본)을 논의하면서 번본 계열의 문장 가운데 간본 계열과 다른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면서 각 등장인물의 언행이 심정(임대옥)과 특징(가보옥), 성격(왕희봉)의 측면에서 딱 들어맞기 때문에 ‘조설근의 진짜 문장[雪芹眞筆]’이라고 단정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설보차가 말했다.
“……동생, 이런 말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겁낼수록 귀신이 더 잘 보이는 거야.”
가보옥이 얼른 물었다.
“누나, 귀신이 어디 있어? 왜 난 하나도 못 봤지?”
그 말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저우쉬량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이런 말들은 저속할 뿐만 아니라 전혀 해학적이지도 않다. 가보옥이 정말 이런 말을 했다면 가환(賈環)과 똑같이 혐오스러운 인물이 되어 버린다.” 바꿔 말하자면 저우쉬량은 이 부분의 문장의 가보옥의 신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사오취앤은 “그것(위 인용문)은 가보옥의 ‘바보 기질[呆氣]’과 ‘가끔 미친 것처럼 멍한’ 성격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고 주장했다. 저우쉬량이 번본 계열이 위작이라는 주장의 증거로 제시한 것을 한사오취앤은 진본의 증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두 견해는 그야말로 첨예하게 대치되어 있다고 하겠다.

다시 송하오칭이 어떻게 정갑본(간본 계열) 제67회의 문장이 진본임을 논증하는지 보자. 그의 논리는 이렇다. ‘졸렬한 문장’은 분명 조설근이 쓴 게 아니고, 그 반대로 ‘사상성과 예술성’이 아주 고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면 조설근이 쓴 문장이니, 지연재나 기홀수, 고악 같은 무리가 속여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우쉬량이 갖가지 잘못된 부분들을 열거하며 척서본이 위작이라는 주장에 동의한 데에 비해 송하오칭은 갖가지 훌륭한 부분들을 열거하며 간본 계열이 조설근의 원고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설보차에 대한 평론과 서사 측면에서 쌍방이 각기 한 가지씩을 주장하고 있다. 저우쉬량은 제67회에서 설보차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면서 ①우삼저의 자살과 유상련의 출가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②전체적으로 하는 말들이 저속하며 ③반응이 과민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송하오칭은 간본 계열에 묘사된 설보차의 행위가 다른 회의 내용과 어울린다는 것을 예를 들어 ‘증명’한다. 즉 제67회에서 설보차가 토산품을 선물로 보내는 행위는 “설보차의 성격 발전 논리와 완전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저우쉬량은 제67회의 서사가 ‘느슨[鬆弛]’하다고 한 데에 비해 송하오칭은 “서사가 함축적”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송하오칭의 결론은 저우쉬량의 결론과 완전히 상반된다. “이 두 회(정본[程本]의 제64회와 제67회)는 사상 내용뿐만 아니라 예술 풍격상으로도 모두 조설근의 원작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주단원도 간본을 칭송했다. “양장본(楊藏本, 즉 갑진본)과 정갑본의 제67회 줄거리는 앞뒤 글과 융합되어 관통하고, 인물의 생동적인 묘사는 인물의 성격과 사상 발전 논리에 정확히 부합하며, 언어 풍격 역시 앞쪽 80회의 다른 회들과 같으니, 응당 조설근의 원고가 다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로 보건대 한 단락 문장의 우열은 우선 평론가의 평론 관점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렇다 할 객관적인 기준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평론가들은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종종 작자의 원고라고 단정하고, 평론가들이 보기에 졸렬한 문장은 위작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총괄하자면 “원작자는 졸렬한 문장을 쓰지 않았다.”라는 관념의 영향 아래 평론가들이 생각하는 우열론과 진위 판정 등이 똑같이 끝나 버린다. 서양의 판본학자 맥간(Jerome McGann)이 편찬한 《텍스트 비평과 문학 해석》에는 패터슨(Lee Patterson)의 〈텍스트 비평의 논리와 천재의 길〉이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에 들어 있는 천재의 길이란 바로 평론가들이 종종 원작자를 천재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저우쉬량과 송하오칭은 의심할 바 없이 모두 “원작자(조설근)는 천재”라는 관념 아래 진위 판별 작업에 종사했다.

필자는 원작자가 천재일 수도 있지만 천재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작자의 재능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만약 간본 계열이 원작이라면 몇 가지 세부 줄거리가 충분히 타당성 있게 되어 있지 않다.

첫째, 화습인이 왕희봉의 거처에 문병을 가는데, 왕희봉의 하녀인 풍아(豊兒)가 차를 따라 받쳐 들고 오자 화습인이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동생, 앉아.” 하고 말한다. 풍아는 왕희봉의 하녀로서 지위가 아주 낮은데 화습인이 그녀에게 앉으라고 한 것이다. 간본을 쓴 사람은 가씨 집안의 위아래 신분에 따른 규범을 잘 모르는 듯하다. 가씨 집안에서는 심지어 제법 지위가 높은 유모도 상전 앞에서는 앉을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제16회에서 왕희봉이 가련의 유모 조씨[趙嬤嬤]에게 구들에 앉으라고 했을 때 조씨는 한사코 사양했다. 그리고 아래쪽에 걸상을 하나 놓아 주어도 감히 거기 앉지 못하고 결국 작은 발 받침대 위에 앉았다. 그러므로 간본을 쓴 사람이 화습인이 풍아에게 앉으라고 말했다고 쓴 것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

둘째, 왕희봉이 흥아(興兒)를 심문할 때 가련이 경사에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제67회와 제68회의 내용 사이에 모순이 있다. 간본의 편찬자는 문장을 꿰맞추는 과정에서 옷깃을 여미자 팔꿈치가 삐져나오는 듯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제67에 따르면 흥아를 심문할 때 가련은 이미 평안주(平安州)에 있었다. 자세한 상황은 이렇다.

가련이 평안주로 간 일은 앞부분에서 이미 분명히 서술되어 있다. 제67회에서 설반(薛蟠)이 연회를 벌였을 때 자리에 있던 이가 가련에 대해 묻자 설반은 이렇게 대답했다.

“연 서방님께서는 또 평안주로 가시게 되어서 한 이틀 후면 바로 출발하실 걸세.”

제67회에서 화습인이 왕희봉의 방을 방문하기 전에도 가련의 ‘외출’ 사실이 다시 거론되었다. 즉 “[화습인은] 갑자기 왕희봉의 몸이 좋지 않은데 요 며칠 동안 문병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게다가 가련이 외출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찾아가 함께 이야기나 나눌 좋은 기회인 셈이었다.” 라고 했으니, 제67회의 편찬자도 가련의 ‘외출’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간본의 제67회 마지막 부분에서 왕희봉은 흥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 넌 거기(우이저의 거처) 가지 마라! 내가 언제든 부르면 바로 달려오도록 대기하고 있어라. 한 걸음이라도 늦으면 어찌 되는지 봐라! 썩 물러가!”
그러자 흥아는 황급히 “예! 예!”하고 문 밖으로 물러났다. 왕희봉이 또 “흥아야!” 하고 소리치자 그는 황급히 “예!” 하고 돌아왔다.
“얼른 가서 서방님께 알리려 했지?”
“소인이 어찌 감히……”
“밖에 나가 한 마디라도 벙긋했다가는 가죽을 모조리 벗겨 놓겠다!”

이렇게 보면 마치 가련이 멀리 외출하지 않아서, 흥아가 ‘나가자’마자 바로 가련에게 일이 들통 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간본 계열에서는 왜 이 부분을 덧붙였을까?

원래 제68회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왕희봉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가련이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나중에 곧 각종 장인들에게 동쪽 옆채의 방 세 칸을 정리하여 자신이 거처하는 본채와 똑같이 장식과 진열품을 늘어놓게 했다. (가련 몰래 우이저를 집안으로 데려오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러니 68회의 이런 서술에 따르면 제67회에서 흥아를 심문할 때 가련은 아직 평안주로 떠나지 않고 경사에 있었기 때문에, 왕희봉은 가련이 떠나면 바로 우이저에 대해 조치를 취하려 했다고 이해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67회 말미에 “얼른 가서 서방님께 알리려 했지?”라는 말을 넣은 것은 제68회의 첫머리와 호응하게 만들기 위한 안배인 것처럼 보인다. (가련은 평안주로 떠나기 전에 일이 이미 들통 났다는 것을 몰랐다.)

셋째, 계절 문제이다. 간본 계열에서는 “화습인이 막 심방교 근처에 이르렀을 때, 마침 때가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연못의 연잎들은 새잎과 시든 잎이 섞여 있었고, 붉은 꽃과 푸른 잎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앞뒤 문장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보면 제67회의 계절은 최소한 중추(中秋) 무렵이지 ‘초가을’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66회에서 이미 “8월 중에 유상련이 경사로 들어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상련 자신의 말로는 ‘이 달 안[月中]’이라고 했음.) 그리고 경사에 들어오고 나서 우삼저의 자살과 장례 등의 일이 벌어지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화습인의 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련이 다시 평안주로 간 시간으로 따져 보면 제67회의 이야기는 이미 10월에 가까운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앞 회(제66회)에서 평안주 절도사가 가련에게 “10월 전후로 다시 한 번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른바 ‘가을’이란 음력 7, 8, 9월에 해당하니 이 회는 분명 8월 이후의 일일 터이다. 그런데도 ‘초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상에서 살펴본 줄거리와 계절의 앞뒤 호응 문제는 모두 독자에게 의혹이 일게 하면서, 간본 편찬자가 앞뒤 줄거리에 호응에 대해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본 계열 가운데 간본 계열과 똑같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원작자와 관련된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2) 번본-간본의 관계와 작자 문제

제67회가 유발하는 또 다른 문제는 번본 계열과 간본이 작자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저우쉬량은 주로 척서본을 논의하면서, 척서본의 이 회는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정고본 역시 원고가 아니라고 했음.) 그에 비해 송하오칭은 정갑본의 이 회는 조설근의 원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척서본과 정고본의 관계에 주목했다. 사실 번본 계열과 간본 계열은 둘 중 하나가 진짜이고 하나가 가짜일 수 없으니, 이 회의 구조와 장면, 인물이 모두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토산품 선물을 보고 임대옥은 고향을 생각하다[見土儀顰卿思故里]” 부분은 더욱이 문장까지 비슷하다. 갖가지 비슷한 부분으로 보건대 이 두 계열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번본 계열에서 일부 줄거리를 빼서 간본 계열이 되었을 수도 있고, 간본 계열을 확충하여 번본 계열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모두 공통의 연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같은 부분이 현존하는 두 계열의 판본에서 그 정도로 많이 존재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제67회가 번본 계열을 간략화한 것인지 간본 계열을 확충한 것인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둘로 나뉜다. 간본 계열에서 번본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는 송하오칭, 펑치용, 쉬런춘(徐仁存)과 쉬여우웨이(徐有爲) 등등이 있다. 이들의 관점은 모두 간본 계열이 번본 계열보다 나으며, (척서본을 대표로 하는) 번본 계열에서 간본 계열과 다른 부분은 위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간본 계열에서 번본 계열로 바뀌는 효과는 무엇인가? (번본 계열이 졸렬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많다!) 송하오칭과 펑치용 모두 개작의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는데, 쉬런춘과 쉬여우웨이는 “개인의 습관과 기호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했다.

이 유파의 주장에는 검토할 만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문장의 전승 과정이 간본 계열에서 번본 계열로 변했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번본에서 간본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또는 부정)한다. 둘째, 두 계열의 관계를 추론할 때 ‘원작자는 천재’라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텍스트 가운데 뛰어난 것을 진본(조설근의 원고)으로 간주하고 열등한 것은 위작(후세 사람이 함부로 고친 것)으로 간주한다.

간본 계열의 문장이 비교적 낫다고 인정하는 또 다른 학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우열의 차이를 진위의 차이와 동일시하지 않고 “뒤에 나온 것이 더 정밀해졌다.”라거나 각기 나은 면과 열등한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로는 저우쉬량과 쉬까오루안(徐高阮), 자오깡, 왕싼칭(王三慶), 쟝웨이탄(蔣維錟), 후원빈(胡文彬), 정칭산 등이 있다. 자오깡은 간본 계열에서 번본 계열로 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즉 만약에 이 사람(개정자)의 수중에 이미 이처럼 훌륭한 원고가 있었다면 왜 졸렬한 원고를 써서 그것을 대체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번본→간본’(화살표는 변화를 뜻함. 이하 같음.)이라고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후원빈은 《열장본 석두기에 대한 소견[管窺]》에서 번본 계열이 초고본이고 간본 계열은 개정본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두 계열 모두 조설근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번본→간본’의 추측은 상대적으로 정리에 맞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번본 계열의 원류가 무엇이냐 하는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후원빈은 번본 계열 제67회는 위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거는 열장본에서 나왔다. 즉 “이제 열장본이 발견된 것은 척서본의 내용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옮겨 적은 근거가 있었음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한사오취앤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단순히 내용이 특이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증거를 삼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것은 단지 똑같이 번본 계열에 속하는 척서본과 열장본이 공통의 원류(저본 또는 조본)을 갖고 있다는 혈통상의 관계를 설명할 뿐이며, 두 판본이 분명 작자의 원고라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리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정고본의 내용도 결코 특이한 것이 아니니(몽고본도 있음) 그것으로 대표되는 간본 계열도 진본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본이 원작에 가깝고 번본에서 일부 삭제되어 간본이 되었다.”라는 주장은 근래에 들어서 더 많은 연구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정칭산은 “총체적으로 보면 열장본이 정본(程本)보다 우수하며, ……열장본이 원문이고 정본은 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이이쟝도 마찬가지로 “정본은 지연재 판본의 토대 위에서 삭제하고 고쳐서 만든 것”이고 “번본 텍스트가 원작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 대체로 이런 주장들에는 여전히 “훌륭한 것은 원작”이라는 관념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사실 번본에도 마찬가지로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척서본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삼저가 자살한 후 그녀의 어머니와 우이저, 가진, 우씨, 그리고 가용과 가련 등이 그 소식을 듣고 모두들 말할 수 없이 비통해하며 상심한 것은 당연했다.

여기서 타당하지 않은 부분은 결코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아니다. 제66회에서 우삼저가 자살할 때 그녀의 어머니와 우이저, 가련은 모두 현장에서 그 일을 목격했는데, 번본에서는 “그 소식을 듣고”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번본에도 계절의 문제가 있다. 화습인이 대관원 안에서 축(祝) 할멈을 만났을 때 과일이 먼저 익었는지 늦게 익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축 할멈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막 7월로 들어섰으니 과일들이 모두 곧 익기 시작하겠지요.”

그런데 제66회에서 유상련이 경사로 들어온 것은 이미 ‘8월 중’이고, 또 우삼저가 자살하고 유상련이 출가한 일들이 있었는데 이제 제67회에 이르렀을 때가 “막 7월로 들어선” 때란 말인가?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첫째, 번본 계열에서 간본 계열로 변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두 계열의 판본에 똑같은 부분이 아주 많다는 사실로 보아 둘 중 어느 하나가 진본이고 하나는 위작일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두 계열 모두 작자에게서 나왔거나(즉 후원빈이 말한 초고본[初稿本]과 개정본)이 있으며, 아니면 두 계열 모두 작자의 원고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번본과 간본 모두 앞뒤 문장에 대해 그다지 잘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연속적으로 관통되지 않는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필자는 두 계열 모두 최종 원고[定稿]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작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보충해 넣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차잉쟝과 정칭산은 번본이 더 훌륭하고 그래서 원작에 가깝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들의 휘교본(彙校本)은 모두 번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3) 근래의 교주본에서 제67회의 취사선택

제67회의 상황이 아주 특수하기 때문에 이 회에 대한 교주(校注)를 할 때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삼을 것인지는 고려해야 할 문제가 된다. 예전에 학계에서는 간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줄곧 간본을 저본으로 삼아 왔다. 위핑보의 《홍루몽 80회 교본(校本)》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 책은 “척본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사실 이 책의 제67회는 척본의 것이 아니라 간본 계열의 문장을 채택했다. 위핑보는 주석에서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제67회는 경진본에 빠져 있고, 유정본과 갑진본은 대체로 서로 비슷해서 하나의 원고에서 나온 것이지만 아주 질이 나쁘다. 정갑본과 정을본은 또 다른 판본이고, 기묘본에도 이 부분이 빠져 있어서 정을본의 내용을 베껴 써서 채웠다. 각 판본을 비교해 보면 그래도 정갑본이 조금 낫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채택했다.

《홍루몽》 연구소에서 교주한 《홍루몽》은 필사본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해서 경진본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거기에 제67회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간본 계열의 판각본을 채택하여 저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척서본과 갑진본, 열장본 등의 필사본은 채용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차이이쟝이 교주한 《홍루몽》(1994)는 처음으로 번본의 문장을 채택했다. 그는 번본에서 흥아를 심문하는 내용에 훌륭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흥아가 궁리를 하고 왕희봉에게 찾아왔다가 우물쭈물 핑계를 냈을 때 왕희봉은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 말을 끊지 않았는데, 간본에서는 왕희봉이 끊임없이 호통을 치고 욕하고 냉소를 퍼부었다고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판본에 두 가지 왕희봉이 존재한다. 하나는 계략이 치밀하여 속내를 짐작할 수 없고, 다른 하나는 권세를 부리며 성품이 경박하다.”고 했다. 차이이쟝은 결국 원작은 개성을 창조하는 데에 치중하면서 정리에 맞게 했는데 개작은 서사의 긴박함과 줄거리의 요란함을 추구했다고 총괄적으로 평가했다. 이 외에도 정칭산의 《지본휘교 석두기》 역시 번본을 계열의 열장본을 저본으로 채택했다. 간본을 버리고 번본을 채택한 것은 《홍루몽》 연구 역사에서 일대 역전이라 할 만하다.

각 논자의 주장을 통해 보면 《홍루몽》의 판본과 문헌학 연구에서 작자 관념은 실제로 분류 기능(classificatory function)을 하고 있어서, 연구자는 작자의 이름을 빙자하여 텍스트의 성질을 구분할 수 있었다. 논증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어찌 조설근의 손에서 나왔겠는가?”라는 등의 판단이 전혀 드물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결론은 증명이 필요 없이 자명하다.”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수사법(반문)을 이용해” 논거로 삼거나 심지어 결론을 지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의 진위 판별에서 우리는 학계의 일반적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즉 훌륭한 것은 진짜(원작)이고 졸렬한 것은 가짜(위작)이라는 것이다. 번본과 간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간본→번본’을 주장하는 이도 있고 ‘번본→간본’을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논자들은 대부분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 즉 훌륭한 작품은 원작이고 더 훌륭하게 고친 것도 작자에게 공을 돌려야 하지만, 더 나쁘게 고친 것은 대부분 후세 사람이 함부로 고친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진위 판별’이나 ‘번본과 간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우열 판별’이며, ‘우열 판별’은 또 학자의 호오(好惡)와 작자의 형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홍루몽》 텍스트 연구에서는 앞서 얘기한 ‘객관’에 도달하기가 대단히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면 《홍루몽》 판본학에서 이루어지는 해석 활동을 살펴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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