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소오강호 6-1 김용

一字師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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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소오강호 6-1 김용

 

                                                                           图片来源 | 八版《笑傲江湖》,你最喜欢哪一版

 

소오강호 제 6 권

나뭇잎이 빽빽이 자란 곳에 몸을 숨겼다. 한참 지난 뒤 군웅들이 떠드는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결국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각자가 모고 흩어졌다. 즉시 발걸음을 옮겨 천천히 그 지하갱도의 입구쪽으로 와보니 과연 한 사람도 없었다. 출입구는 두 개의 바위 뒤에 은밀하게 있었고, 풀이 덮여 있어서 사실을 모르는 자는 바로 옆에 서 있을지라도 절대로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굴속으로 들어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가 달마당 안에 도착하였다. 달마당 앞에서 사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정교사람들은 일을 할 때 매우 신중하므로 천천히 조사를 하면서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아마 그들은 함정이나 암기를 염려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영호충은 두 팔에 있는 힘을 모아 달마석상을 천천히 원위치로 밀어 넣고는 내심 생각을 했다.

 

( 어디에 가면 정교의 우두머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하든 이 안에 영영이 갇혀져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소림사에는 방이 수천 수백개니 그들이 어느 방에서 모여 회의를 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

 

그날 자기가 정신을 잃고 소림사에 왔을 때 방생대사가 자기를 인도하여 방장을 만나보러 갔었는데 희미하게 방장의 선방이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났다. 그는 즉시 빠른 걸음으로 달마당을 나와 뒤쪽 길로 들어섰다. 소림사 절 안에는 방들이 너무 많아 한참 뛰어다녔어도 결국은 방장의 선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는 수십 명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한채의 편전(偏殿)이었는데 편전에는 한개의 금색 글씨로 씌어져 있는 나무액자가 하나 있었다. 액자에는 청량경계(淸凉境界)의 네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좌도 몸을 숨길 데가 마땅치 않아 몸을 날려 액자 뒤로 숨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리더니 일곱여덟 명이 편전 안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이 말을 했다.

 

[이 사악한 마교의 인사들은 재주도 용하구만. 우리가 사방에서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들은 몽땅 달아나 버렸으니.]

 

또한 사람이 말했다.

 

[보아 하니 소실산에는 비밀통로가 있어 산 아래로 통하는 것같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모두 도망칠 수가 있었단 말이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지하갱로나 비밀통로는 절대로 없읍니다. 소승이 소림사에 출가하여 이십 년이 됐는데 아직까지 비밀통로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먼저 말한 그 한 사람이 말했다.

 

[비밀통로이니 물론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을 것이오.]

그 소림사 스님은 말을 했다.

 

[설령 소승이 모를지라도 우리 소림사의 방장도 모를 리가 있겠읍니까? 절 안에 비밀통로가 있다면 방장께서는 먼저 각파의 수령들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어찌 사악한 마교들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겠읍니까?]

 

갑자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일갈을 했다.

 

[누구냐, 빨리 나오너라.]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아이고, 어머니! 나의 행적이 벌써 그들에게 발각되었구나.)

막 몸을 날려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동쪽을 나무액자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이 말했다.

 

[이 늙은이가 숨을 쉬다가 먼지를 불었는데 당신들이 결국은 발견을 했군요. 눈빛이 정말로 예리합니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맑은게 바로 상문청의 음성이었다. 영호충은 놀라고 기뻐서 내심 생각하였다.

 

(알고 보니 상 형님께서 벌써 이곳에 숨어 계셨구나.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숨어 있는 기술이 정말로 대단하다. 내가 이곳에서 한참 있었는데 발견할 수가 없었다니. 만약 먼지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이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를 못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탁탁 하고 소리가 들리며, 동쪽과 서쪽에서 갑자기 사람이 내려왔다. 곧이어 세 사람이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오......]

[당신은......]

[무엇을 하러......]

 

이 세사람의 외침은 단지 외마디만 질렀을 뿐 목에서 더이상 터져나오지 않았다.

영호충은 참을 수 없어 고개를 약간 내밀어 보았다. 전각 안에서는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한 사람은 상문천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몸집이 크고 키가 장대한 임아행이었다. 이 두 사람이 소리도 없이 장을 뽑아 일장을 가하니 전각 안에는 한 사람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전각 안에서는 여덟 사람이 땅에 쓰러졌다.

그중 다섯 사람은 바닥에 쳐박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세 사람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표정은 매우 공포의 분위기였으며, 얼굴의 근육들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틀림없이 임아행, 상문천 두 사람의 일격에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임아행은 두 손을 몸에 닦더니 말했다.

 

[영아(盈兒)! 내려 오거라.]

 

서쪽 문에 있던 나무액자에서 한 사람이 몸을 날려 떨어졌다. 언뜻보니 여자 같았는데 바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영영이었다.

영호충은 머리속이 아찔하였다. 언뜻보니 그녀가 몸에 입고 있는 옷은 약간 남루하였고, 안색이 창백하고 초췌하였다. 그는 막 내려가 만나보려고 했으나 임아행은 자기가 숨어있는 쪽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영호충은 생각을 했다.

 

(그들이 먼저 와 있었으니 내가 나무액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을 것이다. 임 선생이 나보고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무슨 뜻일까.)

 

그러나 이 찰나에 임아행의 의도를 알았다. 전각의 문으로 몇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뛰쳐들어왔다. 언뜻보니 사부, 사모님, 악불군 부부와 소림방장 방증대사,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더이상 계속 볼 수가 없어 바로 고개를 디밀어 액자 뒤에 몸을 숨겼다. 마음속은 두근두근 계속 뛰었다. 내심 생각하였다.

 

(영영 그들이 또닷 포위를 당했으니 내가...... 내가 몸이 가루가 되어도 그녀를 구해야만 된다.)

 

방증대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세분의 시주께서는 장력이 대단히 무섭습니다. 여시주께서는 이미 소림사를 떠나가셨을텐데, 어째서 다시 돌아오셨읍니까? 이 두분께서는 틀림없이 흑목애의 고수들인 것 같은데 이 소승은 알아 뵙지 못하여 정말로 죄송하군요.]

 

상문천이 말했다.

 

[이분이 바로 일월신교의 임 교주이고 저는 상문천이라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대단히 명성이 높아 상문천이 이렇게 소개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방증이 말했다.

 

[알고 보니 임 교주와 상 좌사(尙左使)이시군요. 오래 전부터 명성은 들었읍니다. 두분께서 이렇게 왕림해 주셨는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신지요.]

 

임아행은 말했다.

 

[이 늙은 몸은 세상사를 잃은 지 오래라 강호의 쟁쟁한 인물들을 알지 못하게 되었소. 이 몇분의 친구들은 다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군요.]

 

방증이 말을 했다.

 

[소승이 두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읍니다. 이분은 바로 무당파의 장문도장올시다. 도호(道號)는 충허라고 합니다.]

 

하나의 창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도의 나이는 어쩌면 임 선생님보다는 좀 많을 듯합니다. 그러나 무당파의 장문인을 맡은 것은 임 선생님이 은거한 직후의 일이라 쟁쟁하다는 말은 듣기가 좀 거북하군요. 하하하.]

 

영호충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 내심 생각하였다.

 

(이 무당파의 장문도장의 목소리가 상당히 익구나.)

 

바로 무엇인가 깨달았다.

 

(아이구, 내가 무당산 아래에서 세 사람을 만나지 아니했는가.

한 사람은 땔나무를 짊어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배추를 짊어지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나귀를 탄 늙은 사람이다. 이분은 검법이 정묘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알고 보니 무당파의 장문인이었구나.)

 

삽시간에 마음속에는 득의양양함이 깃들었고, 손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무당파와 소림파는 똑같이 수백년 동안 명성이 전해져 내려오고 각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충허도장의 검법은 지금까지 모든 이의 숭앙을 받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득의양양한 것은 충허도장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었다. 실로 뜻밖의 기쁨이었다. 임아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분이 바로 좌대장문이지요. 우리들은 옛날에 한번 만나본 적이 있었읍니다. 좌사부(左師傅), 근래 당신의 대숭양신장(大崇陽神掌)은 더욱 많은 정진이 있었겠지요.]

 

영호충은 또 약간 놀랬다.

 

(알고 보니 숭산파의 장문인 좌사백께서 오셨구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건대 임 선생께서는 부하들에게 감금되어 여러해 동안 침거하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정말로 기쁘고 축하할 일이군요. 저의 대숭양신장은 이미 삼십여 년 동안 사용아지 않아 거의 다 잊어버렸지요.]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강호는 정말로 적적했겠군요. 이 늙은이가 은거를 해버리자 그 누구도 좌형과 겨룰 자가 없었군요. 정말로 아까운 일이오.]

 

좌냉선은 말을 했다.

 

[강호에 있어서 무공은 임 선생하고 겨룰 수 있는 자들은 그수가 실로 적지 않소. 단지 예를 들면 방증대사, 충허도장과 같이 덕을 쌓은 자는 절대로 아무 이유없이 저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시지 않죠.]

 

임아행은 말을 했다.

 

[거 참 다행한 일이오. 언제 시간이 있으면 우리 다시 한번 당신이 새로 연마한 초식을 시험해 봅시다.]

 

좌냉선은 말했다.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시오.]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틀림없이 옛날에 한바탕 무예를 겨룬 적이 있었던 같았다. 그러나 말투를 들어보니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는 알 수가없었다.

방증대사가 말을 했다.

 

[이분은 태산파 장문인인 천문도장이고, 이분은 화산파의 장문인인 악 선생입니다. 이분은 악 부인인데 바로 옛날의 영여협입니다. 임 선생님께서 아마 소문은 들으셨을 것입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화산파의 영여협이라는 사람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악 선생이라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영호충은 내심 불쾌하였다.

 

(나의 사부의 명성은 사모님보다 훨씬 위인데 그들 두 사람을 다 모른다면 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영여협이라는 자만 알고 악 선생이라는 사람을 모른다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가 서호 밑바닥에 갇혀 있는 기간도 근 십년에 불과한데 그때 우리 사부는 벌써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틀림없이 그가 고의로 나의 사부를 약 올리는 것이다.)

 

악불군은 담담히 말을 했다.

 

[제가 너무 미천하여 임 선생님이 모르고 계신 것 같군요.]

임아행이 말을 했다.

 

[악 선생, 나는 악 선생에게 한 사람을 알아보고자 하는데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는지 모르겠소이다. 듣건대 이 사람은 옛날에 바로 당신 화산 문하에 있었다고 들었소.]

 

악불군은 말했다.

 

[임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자는 누구요?]

 

임아행은 말했다.

 

[이 사람의 무공은 높을 뿐만 아니라 인품 또한 이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자입니다. 어떤 눈뜬 장님들이 그를 질투하여 배척했는데 나 임씨 성을 가진 자는 그를 항상 친구로 대해 왔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나의 속을 다 빼주어도 아프지 않을 이 딸을 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영호충은 그의 말을 듣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리곤 이 일이 어디까지 발전되고 얼마나 많은 난감한 일이 앞에 닥쳐오고 있는가를 은은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임아행의 계속되는 말이 들려왔다.

 

[이 젊은이는 정도 있고, 의리도 있소. 듣건대, 이 보배 같은 딸이 소림사에 감금되었다는 말을 듣고 수천명의 영웅호걸들을 이끌고 소림사에 아내를 맞이하러 왔다고 들었소.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타나지를 않으니 장인이 된 나의 입장으로선 초조하기 짝이 없소. 그래서 당신에게 알아보는 것이오.]

 

악불군은 머리를 하늘로 젖히더니 껄껄껄 웃으면서 말을 했다.

 

[임 선생 같은 신통하기 이를데 없는 양반이 어째서 자기의 사위조차도 어디에 간 줄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임 선생께서 말씀하신 그 젊은이는 바로 저의 문중에서 쫓아낸 그 도둑놈을 말하는 것입니까?]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분명히 하나의 옥석인데 당신은 그를 돌맹이로 여기고 있군요.

노제의 안목이 정말로 형편 없소이다. 내가 말한 그 젊은이는 바로 영호충이오. 하하하, 당신은 그들 도둑놈이라고 욕했으니 이 늙은이를 강도라고 욕하는 것이 아니오?]

 

악불군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못된 놈은 행위가 단정치 못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소. 한 여자 때문에 이리떼 같고 개 같은 강호의 좌도인사들을 이끌고 이 천하무학의 원천지인 소림사에 와서 감히 휘젓고 다녔소. 만약에 숭산 좌사형의 계략이 아니었다면 수천년 동안 전해 내려온 고찰은 그들 손아귀에서 한줌의 재로 변할 뻔하였소. 그 죄는 어찌 천만번 죽어서 속죄할 수가 있겠소? 그 못된 놈은 왕년에 화산파문하에 있을 때 제가 가르침이 잘못되어 그 죄는 천만번 죽어도 속죄할 수가 없소. 나의 가르침이 잘못되어 정말로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소.]

 

상문천은 곧바로 말했다.

 

[악 선생의 말씀이 형편 없으시군요. 영호 형제가 이 소림사에 온 것은 단지 임 소저를 영접하려고 했을 뿐이며 절대로 이 절을 부실 생각은 아니었소. 당신도 보다시피 그 많은 사람들이 소림사에서 하루낮 하루밤을 지냈는데 소림사의 풀 하나 나무조각 하나 망치지 아니했소. 쌀도 한톨 먹지 않았을 뿐더러 물도 한모금 마시지 않았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개돼지 같은 친구들이 한번 오자 소림사에는 전에 없었던 것이 생겨났소.]

 

영호충은 이 날카로운 소리를 듣자 청성파 장문인 여창해라는 것을 알고 내심 생각하였다.

 

(이 사람도 왔구나!)

 

상문천은 말했다.

 

[여관주에게 묻겠는데, 소림사에는 무엇이 더 많아졌단 말이오?]

 

여창해는 말을 했다.

 

[소똥과 말 오줌들처럼 누렇고 하얀 것들이 온통 여기저기 널려 있소.]

 

즉시 많은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영호충은 내심 약간은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단지 많은 친구들에게 절대로 절에 있는 물건들을 훼손치 말라고만 했지 그들에게 아무데나 똥 오줌을 누지 말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이 머리가 돌지 않은 자들이 바지 구멍을 풀고 아무데나 똥 오줌을 누어 이 깨끗한 불교의 성전을 오염시켰구나.)

 

방증대사는 말을 했다.

 

[영호공자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이 소림사에 왔을 때 소승은 종일토록 염려하였읍니다. 불길이 타올라 처참한 꼴이 눈 앞에 연상되었읍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소림사에 와서 나무조각 하나 건드리지 않았읍니다. 틀림없이 영호공자의 그 자상하고 보살 같은 마음이 모두들에게 자제하라고 일렀을 것이오. 나는 물론이고우리 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감격해 하고 있읍니다. 앞으로 영호공자를 만나면 감사의 말을 전할 것이오. 여관주의 농담을 상 선생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상문천은 칭찬하여 말했다.

 

[수도를 하신 스님이라 마음이 넓으시고 정말 일반 사람과는 다르십니다. 그 무슨 위군자(僞君子)인지 또 무슨 진소인(眞小人)인지 하는 자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방증은 또 말하였다.

 

[그러나 소승은 한가지 물을 일이 있소이다. 항산파의 두분의 사태는 어째서 우리 절에서 눈을 감았는지 모르겠군요.]

영영은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 무엇이라고요. 정한, 정일 두...... 두 사태께서 죽었다고요.]

 

방증이 말을 했다.

 

[그렇소. 그 두부의 시체가 우리 절에서 발견되었소. 추측해 보건대 그 두분이 돌아가셨을 때가 바로 강호의 친구들이 이 절에 들어왔던 시각인 것 같소. 혹시 영호공자가 그 강호의 사람들을 타이르지 못해서 두분의 사태가 많은 숫자를 당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지 않았나도 생각이 되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이어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영영은 말하였다.

 

[이건...... 이건 정말 이상합니다. 그날 제가 소림사 뒷전에서 두분의 사태를 만나뵈었을 때 자비로우신 방장대사께서 이 두분의 사태의 체면을 보아 소녀를 이 절에서 떠나도록 놓아주신다고......]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또 한번 감격했고, 또 심히 괴로웠다.

 

(두분의 사태께서는 방장에게 부탁을 하였고 방장은 과연 그들의 부탁을 들어 영영을 풀어 주었구나. 그런데, 두분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그것은 나와 영영 때문에 돌아가신거다. 도대체 그 두분사태를 죽인 자는 누구일까? 나는 반드시 그 자를 찾아 내어 복수를 해야 한다.)

 

영영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요근래에 적지 않은 강호의 친구들이 나를 이곳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소림사에 와서 시끄럽게 떠들어 소림파의 사람들에게 백여명이나 잡혔었읍니다. 방장대사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와 그들에게 열흘 동안이나 설법을 하시고 가마를 준 뒤에 모두다 석방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오랫동안 구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이 절을 떠날 수가 있었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 방증대사는 정말로 좋은 분이시구나. 그러나 조금은 지나치고 멍청한 양반이 아닐까. 영영 수하의 그 강호의 협객들은 어찌 열흘 동안 설법을 들었다고 개과천선하고 마음을 돌릴 수가 있단 말인가.)

 

영영의 계속되는 말이 들려왔다.

 

[저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방장대사에게 엎드려 인사를 드린 뒤 두분의 사태와 소실산을 떠났읍니다. 삼일이 되는 날 영호...... 영호공자께서 강호의 많은 사람을 이끌고 소림사에 들어가 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읍니다. 정한사태는 말씀하시기를 하루빨리 돌아가 소림사의 여러 고승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날 저녁에 우리들은 또 한분의 강호의 친구를 만났는데 강호의 군웅들은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십이월 십오일에 소림사에 모이기로 한다고 했읍니다. 두분의 사태께서는 즉시 상의를 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소림사에 모이는 강호의 호걸들은 각기 파가 다르고 사방 각처에서 오니 영호공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읍니다. 정한사태는 저에게 분부하시기를 빨리 쫓아가서...... 그 영호공자를 만나뵙고 즉시 여러 사람들을 해산시키라고 하셨읍니다. 두분의 사태께서는 소림사를 아끼시고 방장대사를 위해서 약간의 힘을 쓰고 또한 불문을 보호하시려고 하셨읍니다.]

 

그녀의 계속되는 말은 목소리가 청아하고 실로 듣기가 좋았다.

그리고 두분의 사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말투가 매우 슬픈 듯 했고 영호공자라고 말할 때에는 약간은 부끄러운 듯이 말꼬리를 흘렸다.

영호충은 나무액자 뒤에 숨어서 그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어옴을 느꼈다. 방증은 말했다.

 

[아미타불, 두분 사태의 그러한마음에 이 소승은 정말로 감격을 했읍니다. 소림사가 재난을 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교 각문파의 사람들은 서로가 알든 모르든 함께 달려와 구원해 주셨읍니다.

실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다행히 쌍방은 그리 큰 싸움이 없었고 그래서 피비린내나는 혈전을 면할 수가 있었읍니다. 그 두분의 사태는 불법의 이치를 통달하시고 자비로우신데 우리 불문에서 이와 같은 두분을 잃게 되다니 정말로 애통하고 탄식할 일입니다.]

 

영영은 또 말을 했다.

 

[저와 두분의 사태가 헤어진 후 그날 저녁에 숭산파의 습격을 받았읍니다. 저는 혼자서 여러 사람을 당하지 못하여 좌 선생 문하에 잡혀서 또 며칠동안 감금이 되었지요. 아버지와 상 아저씨께서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강호의 친구들은 이미 소림사로 들어갔읍니다. 상 아저씨와 아버지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소림사에 온 지 아직 반시진이 채 못됐읍니다. 그리고 그 강호의 친구들이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갔으며, 더우기 두분 사태의 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었읍니다.]

 

방증은 말을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두분의 사태는 임선생님과 상 좌사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군요.]

 

영영은 말했다.

 

[두분의 사태는 이 소녀를 구해준 은혜가 있어 이 소녀는 오로지 그 은혜에 보답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만약에 저의 아버지와 상 아저씨께서 두분의 사태를 만나게 되어 일이 잘못될라치면 제가 중간에서 화해를 시켰을 것이고, 절대로 이렇게 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방증은 말했다.

 

[그 말 또한 일리가 있읍니다.]

 

여창해는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마교 사람들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과 정반대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덕으로 덕을 보답하는데 간악한 무리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여관주는 언제 어느때 일월신교에 입교를 했는지 모르겠군.]

 

여창해는 화가 나서 말했다.

 

[무엇이라고? 누가 내가 마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디까?]

상문천은 말했다.

 

[당신이 금방 우리 신교의 사람들은 은혜를 복수로 갚는다고 말했지 않소. 그리고 복건지방의 복위표국에 임 총표두가 그 옛날 당신 일가족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또한 해마다 당신에게 일만냥의 은을 보내주었는데 당신 청성파는 오히려 임 총표두를 죽이지 않았소. 여관주의 그러한 은혜를 복수로 갚는다는 소문은 이 천하에 퍼져 모르는 자가 없소. 그렇게 말한다면 여관주는 틀림없이 교우일 것입니다. 잘 한 일이오. 잘했소. 여관주의 입교를 환영합니다.]

여창해는 화가 나서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주둥이나 닥치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내가 환영한다고 말한 것은 호의에서 그런 것인데 여관주는 오히려 나에게 아가리를 닥치라고 욕을 해대니 이 어찌 은혜를 복수로 갚는다고 말하지 않겠소. 그러고 보니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본성은 고치기가 어려운 모양이오. 한 사람의 일생일대 은혜와 복수를 한마디 한 행동에서 나타나니 말이오.]

 

방증은 두 사람이 더 계속하다가는 쓸데없이 싸움을 할 것 같아서 말을 했다.

 

[두분의 사태는 도대체 누가 죽였단 말이오. 우리들이 영호공자에게 물어본다면 틀림없이 분명히 알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나 세분이 우리 소림사에 오시자마자 단숨에 우리 정교 문하의 여덟 명의 제자를 죽였는데 그것은 또 어찌된 연고요?]

 

임아행은 말을 했다.

 

[이 늙은이가 강호에 돌아다닐 때 그 누구도 감히 이 늙은이에게 버릇없이 굴지는 않았소. 이 여덟 명은 내가 숨어 있는데 나오라고 호통을 치지 않소. 그러한 행동은 백번 죽어도 남음이 있지 않소.]

 

방증은 말을 했다.

 

[아미타불, 알고 보니 그들은 단지 호통을 몇번 친 거에 불과한데 임 선생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그 어찌 너무 과분되지 않소이까?]

 

임아행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방장대사께서 과분하시다면 그건 과분한 거겠지요. 당신은 내 딸을 풀어주었으니 이 늙은이는 당신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겠읍니다. 감사한 것도 그만 끝나고 쌍방은 없는걸로 합시다.]

 

방증은 말을 했다.

 

[임 선생께서 없는걸로 한다면없는걸로 칩시다. 단지 세분께서 우리 절에 오셔서 여덟 명을 죽였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시겠소?]

 

임아행은 말했다.

 

[어떻게 해결을 하라니오. 우리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힘이 많소이다. 당신들이 재주가 있다면 그 중에 여덟 사람을 죽여 그 숫자를 맞추시오.]

 

방증은 말했다.

 

[아미타불, 아무 이유없이 아무나 죽인다는 것은 그 죄값이 너무나 크오. 좌 시주, 피해를 당한 여덟 사람 중에는 당신 문하의 사람들이 둘이 있으니 당신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말씀을 해주시오.]

 

좌냉선은 아직 대답을 하지 아니했는데 임아행은 나서서 말을 했다.

 

[사람은 내가 죽인 것인데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시는거요.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소이까? 당신의 말투를 들어보면 당신들은 숫자가 많으니 우리 세 사람을 죽여 복수를 해야겠다는 거겠지요.]

 

방증은 말을 했다.

 

[어찌 감히 그러겠소. 단지 임 선생이 다시 강호에 나타나셨으니 강호는 지금부터 시끄러워질 것이고 아마 장차 무수한 생명이 임 선생의 손에 사라지게 될 것이오. 소승은 세분을강제로 우리 절에 모셔두고 불경과 참선을 하도록 하고 싶소. 그렇게 되면 강호는 또다시 태평해질텐데 세분의 뜻은 어떻소?]

 

임아행은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참 묘안이오, 묘안. 그 생각은 정말로 고매합니다.]

방증은 계속해서 말했다.

 

[영애께서 우리 절에 묵고 계셨을 때 우리 절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예의로서 대했고 봉양을 소홀히하지 않았소. 소승이 이렇게까지 영애를 묶어둔 것은 우리파 제자의 복수를 하기 위함은 절대로 아니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끊이지 않는 법인데 어찌 불문의 제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겠소? 소림파의 그 몇명의 제자가 영애의 손에 죽은 것은 전생의 업보 때문입니다. 단지 여시주께서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 업보는 천겁만겁이오. 만약에 우리 절에서 마음을 쌓고 수신한다면 모두에게 이로움이 있읍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방장대사께서는 호의로 그런 행동을 하셨군요.]

 

방증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 강호에 풍파를 일으키게 하였소. 이러한 결과는 내가 애당초 생각지 못했던 것이오. 더우기 영애께서 그날 영호소협을 둘러매고, 우리 절에 와서 구원을 요청했을 때 분명히 우리 절에서 영호소협의 생명을 구해주기만 한다면 따님은 우리 절의 제자를 죽인 죄값을 달게 받겠다고 하였소. 소승이 말하기를 죄값은 필요가 없지만 소실산에 은거하여 소승의 허가없이는 절대로 산을 나갈 수 없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따님이 그 제의에 좋다고 하였소. 임 소저, 이 말은 틀림이 없지요?]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녜, 맞습니다.]

 

영호충은 방증대사의 입으로 그날 영영이 자기를 매고 이곳에 도착했던 상황을 듣자,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또 감격하였다. 이 일은 벌써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었지만, 그러나 방증대사가 친히 말을 하고 또한 영영이 그 일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다른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거와 또 달랐다.

 

영호충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여창해는 냉소하며 말했다.

 

[정말로 다정다감하고 눈물없이는 듣지 못할 사건이군요. 단지 애석하게도 영호충이라는 자의 품행은 너무나 못되먹었소. 그 옛날 형산성에서 여자들을 희롱하고 함께 잠을 잔 것을 제가 친히 눈으로 보았소. 임 소저의 그러한 크나큰 기대를 저버렸군요.]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과주께서 기생집에서 친히 보셨다구요. 그건 잘못 보지는 않으셨겠지요.]

 

여창해는 말을 했다.

 

[물론이오. 잘못 볼 수가 있겠소.]

 

상문천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관주, 알고 보니 당신은 그 사창굴에 자구 가시는 모양인데 저도 거기에는 일가견이 있소. 당신은 어떤 기생집에서 누구와 사이좋게 지내십니까?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고 괜찮겠지요?]

여창해는 대노하여 일갈을 했다.

 

[헛소리 말아라. 헛소리 말아!]

 

상문천은 말했다.

 

[헛소리를 하니 헛소리를 하지.]

 

방증은 말을 했다.

 

[임 선생, 당신 세분이 소실산에 은거하면 우리 모두가 사이좋은 친구가 되지 않겠소. 당신들 세분이 소실산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시지 않는다면 소승은 그 누구도 감히 세분을 찾아와 시비를 걸지 않는다고 보증을 하겠읍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을 지킬 수가 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방증대사의 말이 매우 진지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이 불문의 고승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셔도 보통 모르시지 않구나. 정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어. 이 세 사람은 사람을 죽여도 눈을 꿈쩍하지 않는데 그들 스스로 소실산에 구금되기를 원하시다니 정말로 해괴하고 엉뚱한 일이야.)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방장의 호의는 모두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응당히 그 명을 따라야겠지요.]

 

방증은 기뻐서 말을 했다.

 

[그렇다면 시주께서는 정말로 소실산에 머무르기를 원하십니까?]

 

임아행은 말을 했다.

 

[맞소이다.]

 

방증은 기뻐서 말을 했다.

 

[그러시다면 소승은 즉시 집을 짓고 관대하게 대접을 해드리겠읍니다. 앞으로 세분은 소림사의 귀한 손님이십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많이 머물러도 세 시진 이상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오.]

 

방증은 크게 실망하여 말했다.

 

[삼일도 아니고 세 시진이라니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읍니까?]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본래 몇일을 더 머물고 여러 친구들과 노닐고 싶읍니다만 단지 저의 이름을 잘못지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방증은 무슨 말인지 몰라 물어보았다.

 

[소승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어째서 시주님의 성함과 관계가 있단 말이오?]

 

임아행은 말했다.

 

[저는 성도 좋지가 않고 이름도 잘못지어진 것 같습니다. 저의 성은 임(任)이고 이름은 아행(我行)이라고 부릅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아행이라고 짓지 않을걸 그랬읍니다. 그러나 지금 내 이름이 아행이니 별 수 없이 내 임의대로 내 스스로의 성격대로 어디 가고 싶으면 어디를 가야만 되겠읍니다.]

 

방증은 몹시 화가나서 말했다.

 

[알고 보니 임 선생께서는 이 소승을 놀리고 계시군요.]

임아행은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이 늙은이가 현존하고 계신 인물 중에서 마음속으로 탄복을 하는 자는 그 몇명되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놓고 세어봐도 오직 세 사람 반인데 스님께서는 그중에 한분이십니다. 또 세 사람 반은 이 늙은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고 별볼일이 없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 몇마디는 심히 진지하였고 장난기가 섞인 뜻은 전혀 없었다.

방증은 말하였다.

 

[아미타불, 소승이 어찌 그 중에 하나이겠읍니까?]

 

영호충은 그가 현존하는 고명한 사람 중에서 탄복하는 사람이 세 사람 반이 있고, 탄복치 못한 사람이 세 사람 반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심히 호기심이 발생하였다. 그가 가리키는 자가 방증 외에도 어떠한 사람이 있는지 한시바삐 알고 싶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자의 말이 들려왔다.

 

[임 선생, 당신이 탄복을 하는 자는 그 누구누구이오?]

좀전에 방증이 임아행 등에게 악불군 부부까지를 소개해 주고 계속해서소개를 하려고 했으나 쌍방이 계속 언쟁을 하자 그 나머지 사람을 소개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아래에서 호흡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방증등 모두 열 사람이었다. 방증대사, 사부, 사모님, 충허도장, 좌냉선, 천문도장, 여창해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이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사람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죄송하기 그지없지만 각하는 그 안에 끼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말을 했다.

 

[제가 어찌 방증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겠읍니까? 자연히 임선생께서 탄복치 않은 사람 중에 하나이지요.]

 

임아행은 말했다.

 

[내가 탄복하지 못한다는 세사람 반 중에서 당신은 그 안에 끼지도 못합니다. 당신이 삼십년 동안 공력을 연마하면 어쩌면 내가 탄복하지 않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일지도 모르지요.]

 

그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를 못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했다.

 

(알고 보니 당신에게 눈 밖에 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방증은 말을 했다.

 

[임 선생님의 말씀은 퍽이나 재미가 있군요.]

 

임아행은 말을 했다.

 

[큰 스님, 당신은 내가 제일 탄복하는 자가 누구이며, 제일 싫어하는 자가 또 누군가를 알고 싶지 않소?]

 

방증은 말했다.

 

[어디 시주님의 고견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임아행은 말했다.

 

[큰 스님, 당신은 역근경을 연마하시고 내공은 이미 무안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러나 마음씨가 자상하시고 겸허할 줄을 압니다. 이 늙은이와 그런 점에서는 좀 다르지요. 그래서 그점이 내가 제일 탄복하게 여기는 점입니다.]

 

방증은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으로 탄북하는 인물 중에서 큰 스님은 그 첫째는 되지가 못합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제일 탄복하는 첫번째 무림의 인물은 바로 나의 일월신교 교주자리를 찬탈한 동방불패이오.]

 

모두들 억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영호충은 억 하는 신음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는 동방불패에게 걸려들어 여러해 동안 구금을 당했으므로 틀림없이 원한이 골수에 파묻혔을텐데, 그 사람이 바로 마음속으로 탄복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니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임아행은 말했다.

 

[이 몸은 무공이 높을 뿐만 아니라 또한 총명함이나 기민함도 그 누구에 뒤지지 않소. 그래서 이 세상에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뜻밖에 동방불패의 흉계에 빠져 호수 밑바닥에서 하마터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뻔하였소. 동방불패는 이렇듯이 대단한 인물이니 이 몸은 어찌 그에게 탄복하지 않겠읍니까?]

 

방증은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소이다.]

 

임아행은 바로 말을 했다.

 

[세번째 내가 제일 탄복하는 자는 바로 지금 화산파의 최고의 고수입니다.]

 

영호충은실로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가 조금 전까지도 악불군에게 약간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에게 탄복을 하고 있다니 정말로 뜻밖이었다.

악 부인은 말했다.

[당신은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사람을 골탕먹이지 마시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악 부인 당신은 내가 말하는 자가 당신의 남편인 줄아셨소. 그는..... 그는 아직도 멀었소이다. 내가 탄복하는 자는 바로 검술이 신통한 풍청양 풍 선생올시다. 풍 선생의 검술은 매우 고명하여 제가 따르지 못하지요. 나는 충심으로 탄복하고 있으며 절대 거짓이 없읍니다.]

 

방증은 말하였다.

 

[악 선생, 설마하니 풍 노선생께서는 아직도 인간세계에 계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풍사숙께서는 십여년전에 이미.... 이미 은거에 들어가셨읍니다. 우리 화산파와 지금까지 아무런 내왕이 없는데 그 어르신께서 만약 이 세상에 살아계신다면 그건 정말로 우리 문하에 크나큰 행운이겠지요.]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풍 선생은 검종이고 당신은 기종입니다. 화산파의 검종과 기종은 절대로 양립될 수가 없는데 그 노인네가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계시다면 그 어째서 다행한 일이오?]

 

악불군은 그의 이 몇마디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영호충은 벌써부터 풍청양이 화산파의 검종의 인물이라는 것을 추측하였다. 지금 임아행이 이렇게 말을 하지 사부는 부인을 안 하시니 그렇다면 이 일은 틀림없고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마음을 놓으시오. 풍 노선생은 세외고인(世外古人)입니다. 당신은 아직까지도 그가 당신의 화산파 장문의 자리를 연연해하고 당신의 그 자리를 뺏을까봐 염려하십니까?]

 

악불군은 말하였다.

 

[저는 재능이나 덕을 갖추지 못한 인간입니다. 만약에 풍 사숙님의 명령과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건 정말로 기쁜 일이라 하겠읍니다. 임 선생, 임 선생께서 좀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풍 사숙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화산 문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감격하고 고마워 할 것입니다.]

 

말투는 상당히 진지하였다. 임아행은 말했다.

 

[첫째는 나는 풍 노선생이 어디 계신지를 모르고, 둘째로는 설령 안다고 해도 당신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읍니다. 앞에서 치는 것은 막을 수가 있으나 뒤에서 공격해오면 방비하기가 어렵지요. 정말로 소인배 같으면 상대하기 쉬우나 위군자는 정말로 머리가 아픈 법입니다.]

 

악불군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말하였다.

(나의 사부님은 정인군자라 절대로 임 선생님과 말장난을 하고 다투지는 않을 것이야.)

 

임아행은 몸을 돌리더니 무당파의 장문인인 충허도장을 향해서 말했다.

 

[이 늙은이가 네번째 탄복하는 이는 바로 소코같은 이 늙은이오. 당신 무당파의 태극검(太極劍)은 퍽 독특하고 오묘한데가 있소. 당신은 언제나 자기 주위를 깨끗이 하고 스스로 지킬 줄 알며 강호의 잡다한 일을 스스로 관여치 아니했읍니다. 그러나 단지 당신은 당신제자들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무당파 문하에서는 그리 걸출할 인재가 나오지 않지요. 당신이 학을 타고 저 세상으로 간다면 태극검법의 절며한 검술은 아마 사라질 것입니다. 더우기 당신은 태극검법은 미록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렇다고 이 늙은이를 이긴다고 볼 수는 없소. 그래서 나는 당신을 단지 반절만 탄복할 뿐이오. 그래서 반절이오.]

 

충허도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임 선생께서 반절이나마 탄복한다니 빈도는 크나큰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하오.]

 

임아행은 말을 했다.

 

[그리 예를 차릴 필요는 없소이다.]

 

고개를 돌려 좌냉선을 향해서 말을 했다.

 

[좌대장문 당신은 속으로는 약이 오르면서도 겉으로는 그리 웃는 표정을 하고 있군요. 그러나 실망은 마시오. 당신은 비록 내가 탄복하는 사람 중에는 끼지 아니해도 내가 탄복하지 않는 세 사람 반 중에서 으뜸가니까 말이오.]

 

좌냉선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제가 그렇게 총애를 받다니 놀래 자빠질 지경입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당신은 무공도 깊고 생각도 깊어서 이 늙은이의 입맛에 매우 맞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악검파를 합병하여 소림 무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니 의지는 가상하고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구료. 그런데 당신은 쥐새끼처럼 모든 일을 암암리에 꾸미고 흉계가 너무 많소이다. 그것은 영웅호걸이 행할 일이 아니지요. 정말로 나는 못마땅합니다.]

 

좌냉선은 말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세사람 반 중에서 아마 당신이 반에 해당 될것입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앵무새처럼 남의 지혜만 본따고 스스로의 주견이 없으니 그래서 당신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오. 당신이 배운 숭산파의 무공은 비록 정묘하지만 모두가 선배들이 전해준 것이오. 당신의 재능으로는 아마 근래에 어떤 새로운 무예를 창출해 내지 못했을 것이오.]

 

좌냉선은 콧소리를 내면서 냉소하였다.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니 그것은 시간을 끌자는 속셈이오. 그렇지 않으면 구원병을 기다리고자 함이오.]

 

임아행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의 말투를 들어보니 당신들의 숫자가 많다고 우리 세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좌냉선은 말을 했다.

 

[각하께서 소림사에 와서 선량을 죽였으니 오늘 온전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 우리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는 것이오. 당신이 우리가 많은 숫자로 대항해서 이겨도 좋고 무림의 규칙을 논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은 없소. 당신이 우리 숭산파 문하의 제자들을 죽였으니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오늘 당신에게 한수를 배워야겠소.]

 

임아행은 방증을 향해서 말을 했다.

 

[방장대사 이곳은 소림사입니까? 아니면 숭산파의 뜰입니까?]

방증은 말했다.

 

[시주께서는 알고 계시면서 왜 고의로 물어보십니까? 이곳은 물론 소림사이지요?]

 

임아행은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은 소림사의 방장께서 결정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숭산파의 장문인이 결정을 하십니까?]

 

방증은 말을 했다.

 

[비록 소승이 모든 일을 결정하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의 고견이 있으면 이 소승은 거기에 따를 것이오.]

 

임아행은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맞소이다, 맞소이다. 과연 고견이십니다. 일대 일로 싸우면 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달려들겠다는 거군요. 좌냉선, 네가 오늘 나를 막을 수가 있다면 나 임아행은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너의 면전에서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좌냉선은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 열 사람이 당신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나 당신 딸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방증은 말을 했다.

 

[아미타불, 살인을 할 수는 없읍니다.]

 

영호충은 좌냉선의 말이 그다지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두근두근 뛰었다. 아래 열 사람 중에서 비록 세 사람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생각해 보건대 필시 방증, 충허 등의 신분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일파의 장문은 아닐지라도 최고의 고수일 것이다. 임아행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겨우 자기 목숨이나 보존하고 물러설 것이고, 상문천은 생명을 보존하여 도망칠 수 있을까는 실로 어려운 일이며, 영영은 그러한 희망마저도 없는 것이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것 참 묘한 일이오. 좌대장문은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듣기로는 무공이 형편없어 죽이기가 퍽 쉽다고 하고, 악불군은 따님이 한분 계시고, 여관주는 아마 몇몇의 애첩이 있고, 또 세명의 아들이 있다고 하고, 천문도장은 자녀는 없으나 사랑하는 도제들이 적지가 아니하고 막대선생은 노부와 노모께서 계시고 곤륜파 건곤일검 진산자(震山子)는 외동 손자 하나가 있지요. 또 이 개방의 해대방주(解大幇主)는 어떠하오. 상좌사, 이 개방에서 혹시 아까운 사람이 있는가?]

 

영호충은 내심 생각했다.

 

(알고 보니 막대사백께서도 오셨구나. 임 선생은 방증대사가 소개 해주지 아니했어도 열 사람을 모두 알고 또 그들의 가족을 훤히 알고 있었구나.)

 

상문천은 말하였다.

 

[듣건데 개방중에는 청연사자(靑蓮使者), 백연사자(白蓮使者) 두분이 있다고 들었읍니다. 비록 성은 해(解)는 아니지만 모두 해방주의 사생아들들입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건 틀립없는 사실이겠지. 절대로 좋은 사람이나 상관없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

 

상문천은 말하였다.

 

[틀림이 없읍니다. 저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조사를 해보았읍니다.]

 

임아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령 잘못 죽였다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지. 우리가 개방 중에 삼사십 명을 죽인다면 그놈 중에서 몇명은 맞출수가 있겠지.]

상문천은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임아행이 각자의 가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좌냉선, 해방주 등은 그 누구도 깜짝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모두들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여러 사람이 그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의 딸을 죽인다면 그는 반드시 악랄한 수법으로 복수를 할 것이고, 자기들의 사랑하는 자식이나 친지들이 아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모두들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시에 전각 안에서는 정적이 흐르고 모든 이의 얼굴이 변했다. 한참 지난 뒤에 방증이 말했다.

 

[피는 피를 낳고, 복수는 끝이 없는 법입니다. 임 시주님, 우리들은 절대로 임 소저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세분께서 소실산에서 십년 동안만 머물러 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안 돼요. 나의 살기가 이미 동했으니 좌대장문의 아들, 여관주의 그 몇명의 첩과 아들은 함께 죽일 것이오. 악 선생의 따님은 더욱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깜짝 놀랬다. 이 희노애락을 점칠 수 없는 대마두(大魔頭)의 말이 그냥 귀로 흘려야 될지 아니면 정말로 그 말을 믿어야 할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충허도인은 말했다.

 

[임 선생, 그렇다면 우리가 내기를 합시다. 당신은 어떠하오.]

임아행은 말했다.

 

[이 늙은이는 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내기에는 자신은 없어도 살인을 하는데는 자신이 있소. 고수를 죽인다는 것은 자신이 없지만 고수의 부모, 자식, 마누라, 작은 마누라를 죽이는데는 퍽이나 자신이 있소.]

 

충허도인은 말했다.

 

[그들은 아무 공력도 없는데 죽여도 영웅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오.]

 

임아행은 말했다.

 

[비록 영웅이 아닐지라도 내가 제일 미워하는 놈들이 평생동안 상심을 한다면 이 늙은이는 만족할 뿐이오.]

 

충허도인은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도 딸이 없을테니 그리 유쾌하지는 못할 것이오. 딸이 없다면 사위는 어디 가서 찾겠소. 당신 사위는 다른 집의 사위로 가야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도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오.]

 

임아행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요. 나는 별 수 없이 그들을 몽땅 죽여 버리는 수밖에. 내 딸이 없으니 내 사위는 있어서 뭘 하겠소.]

 

충허도인은 말을 했다.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많은 숫자로 적은 숫자를 대항하지 않을 것이오. 허니 당신도 아무나 죽일 생각은 마시오. 모두들 공평하게 무공으로서 승패를 겨룹시다. 당신들 세 명과 우리들 중에서 세 사람이 시합을 벌려 삼판 이승제로 합시다.]

 

방증은 급히 말했다.

 

[그 참 좋은 제안이오. 충허도형의 고견이 실로 범상치가 아니하오. 그러나 시합을 하면 찍는 것으로 그치기로 합시다. 절대로 생명에 지장을 주면 아니되오.]

 

임아행은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만약 패한다면 반드시 소실산에서 십년 동안 머물러야 하고, 하산을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충허도인은 말을 했다.

 

[그렇소이다. 만약에 세분께서 두판을 이기신다면 우리는 우리가 졌음을 인정하고 세분께서는 하신을 하도록 하겠읍니다. 이 여덟 명의 제자도 죽음이 헛되게 되겠지요.]

 

임아행은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반절 정도 탄복하였는데 당신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역시 이치가 반정도 맞는 것 같소. 그렇다면 당신들 쪽에서는 어느 어느분이 출전할 것이오. 내가 고르면 아니 되겠소?]

 

좌냉선은 말했다.

 

[방장대사는 이곳을 주인이니 반디시 출전을 하실 것이고, 이 늙은이의 공력도 십여년 동안 쓰지 않았으니 녹이 슬었을 것이오. 그래서 몸이나 풀어볼까 합니다. 세번째 사람은 이 시합을 충허도장께서 생각해 내셨으니 이 어려운 문제를 내놓고 수수방관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태극검법을 우리가 한번 구경해 보는 것이 어떻소?]

 

그들 열 사람은 비록 하나하나가 무예를 모르는 졸개는 아닐지라도 필경 방증대사, 충허도인과 좌냉선 세 사람의 공력이 제일 막강하였다. 그는 단숨에 세 사람을 골라냈는데 그것은 패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영영은 단지 십팔구세의 어린 나이고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어떤 장문과 겨루어도 진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악불군 등은 일제히 좋다고 말을 하였다.

방증대사, 충허도인, 좌냉선, 세 사람은 정교 중의 삼대 고수로 누구 한 사람도 무공이 임아행보다 하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상문천과 비교를 할 때 아마 한수위일 것이고, 삼판 이승의 승률은 확실한 것이다. 심지어는 삼판 삼승의 국면까지도 끌고갈 수가 있는 것이다. 단지 임아행을 잡지 못하고 그가 도망쳐 버리면 그의 음흉하고 악독한 수법에 각자의 가족과 제자들이 피해를 당할까봐 그것이 염려가 되었다. 정정당당하게 겨룰 수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나 무서워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임아행은 말했다.

 

[삼판 이승제라 이것은 조금 합당치 않은 것 같소이다. 우리는 단 한판만 겨루기로 합시다. 당신들 쪽에서 한분이 나오고 우리 쪽에서도 한 사람이 나와 깨끗하게 한판으로 모든 일을 결판지읍시다.]

 

좌냉선은 말했다.

 

[임형, 오늘 당신들은 사람이 많지 않아 수세에 이미 몰려 있소. 여기 있는 열 사람은 이미 당신 쪽보다 그 숫자가 세배는 많고 그것은 고사하고서도 방장대사의 호령이 한번 나가면 소림파의 일류 고수 이삼십명 정도가 나오고 그 나머지 각파의 고수들은 그 안에 포함되지도 않소.]

 

임아행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많은 숫자로 우리를 이기겠다는 심판이군.]

좌냉선은 말했다.

 

[그렇소, 많은 숫자로 한판에 승부를 낼까 하오.]

 

임아행은 말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 구만.]

 

좌냉선은 말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바로 창피한 것도 모르는 것이오.]

[사람을 죽이는데 반드시 이유가 있소? 좌대장문 당신은 고기 따위의 비린 것을 먹소? 아니면 스님들처럼 소찬을 먹소?]

좌냉선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왜 스님들처럼 소찬을 먹는단 말이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당신은 죽일 때마다 죽이는 자가 반드시 그만한 죄가 있다고 해서 죽이는 것이오?]

 

좌냉선은 말을 했다.

 

[물론, 그렇지요.]

 

임아행은 말을 했다.

 

[당신은 소고기, 양고기를 먹는데 소나 양이 무슨 죄가 있소?]

방증대사가 말을 했다.

 

[아미타불, 임 시주의 이 말은 정말로 대자대비하신 말씀이오.]

좌냉선은 말을 했다.

 

[방증대사께서는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는 이 여덟 명의 무고하게 죽음을 당산 제자들을 소와 양으로 비교를 하고 있소.]

 

임아행은 말했다.

 

[벌레나 개미나 소나 돼지나 모두가 불성이 있고, 그 모두가 다 중생이오.]

 

방증은 또 말하였다.

 

[그렇소, 그렇소. 아미타불.]

 

좌냉선은 말을 했다.

 

[임형, 당신은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당신은 시합을 안 할 것 같구료.]

 

임아행이 갑자기 휘파람 소리를 내자, 지붕 위의 기왓장이 들썩들썩하였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열두 개의 초가 일제히 빛을 잃었다. 그의 휘파람 소리가 멈추자 촛불의 빛은 비로소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이 휘파람 소리를 듣자 모두가 마음속의 심장이 뛰었으며 얼굴색이 크게 변하였다.

임아행은 말했다.

 

[좋소, 좌 선생 그러면 우리 한번 겨뤄 봅시다.]

 

좌냉선은 말했다.

 

[대장부가 한번 뱉은 말은 사마난추이오. 삼판 이승이니 당신들 중에서 만약에 두판을 지면 세 사람은 모두가 소실산에서 십년 동안 머물러야 하오.]

 

임아행은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삼판 이승이니 우리들 중에서 만약 두판을 지면 우리 세 사람은 이 소실산에서 십년 동안 머무르겠소.]

정교의 사람들은 그가 좌냉선의 제의를 받아 머무르겠다고 대답을 하자, 모두가 기뻐하였다.

임아행은 말했다.

 

[내가 당신과 한판을 겨루고 상좌사는 여관주와 한판을 겨루고 내 딸은 여자이니 여자와 겨뤄야 할 것이오. 그렇다면 영여협께서 한판을 가르쳐 주시오.]

 

좌냉선은 말했다.

 

[안 되오. 우리 편에서 세 사람이 출장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천거할 것인 즉 당신편이나 당신이 고르시오.]

 

임아행이 말했다.

 

[자기 편은 자기 편이 골라야 하고, 상대편을 지정하면 안 되는 것이오?]

 

좌냉선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소림, 무당, 양대장문과 제가 나서겠소.]

임아행은 말했다.

 

[당신의 명성, 지위, 그리고 무공으로 어떻게 소림, 무당, 양대장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그러시오.]

 

좌냉선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소림, 무당, 양대장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당신과는 한판 겨룰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오.]

 

임아행은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방증대사, 제가 소림파에 소림신권을 한수 배워볼까 하니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소.]

 

방증이 말을 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무예를 놓은 지 이미 오래 되었소. 시주님의 맞수가 되지 못하오. 단지 소승은 여러분들을 잡아놓고 싶은 일념으로 이 늙어 꼬부러진 몸으로 시주님의 가르침을 받겠소.]

좌냉선은 임아행이 방증대사에게 도전을 하는 것을 보자 자기를 멸시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다. 암암리에 생각하기를, (나는 네놈이 나와 겨루고 상문천에게 충허도인과 붙으라고 하고, 네놈의 딸이 방증과 싸우라고 할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다. 충허도인이 약간의 소홀함이 있고 내가 또 네놈에게 진다면 그것은 큰일날 일이지.)

 

즉시 아무말 하지 않고 옆으로 살짝 몇걸음 비켜섰다. 나머지 사람들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덟 명의 시체를 한쪽으로 치우고 시합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넓혀 주었다.

임아행은 말했다.

 

[방증대사, 자!]

 

두 소매를 모아 포권을 하여 예의를 갖추었다. 방증대사 또한 합장을 하여 예를 하면서 말을 했다.

 

[시주께서 먼저 하시지오.]

 

임아행은 말했다.

 

[제가 사용하는 것은 일월도의 정종공부(正宗功夫)이고, 대사께서 쓰는 무예는 소림파의 정종무예(正宗武藝)입니다. 정종과 정종이 겨루는 한판의 멋진 승부입니다.]

 

여창해는 말을 했다.

 

[쳇, 당신과 같은 마교도 정종이라니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임아행은 말했다.

 

[방증, 내가 먼저 저 키 작은 여창해를 죽여놓고 다시 당신과 겨루겠소.]

 

방증은 급히 말을 했다.

 

[안 됩니다!]

 

이 사람의 손은 전기불과 같이 빠르고 만약에 벼락같이 일격을 가한다면 여창해는 정말로 그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방증은 즉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적에게 일장을 치면서 외쳤다.

 

[임 시주님, 자, 제 장을 받으시오.]

 

이 일장의 초식은 정말 평범하였다. 그러나 장이 중도에 오자, 갑자기 약간 움직이더니 삽시간에 일장이 이장으로 변하고 이장이 다시 사장으로 사장이 팔장으로 변하였다.

임아행은 외쳤다.

 

[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그의 팔장은 십육장으로 변하고 나아가 삼십이장으로 변화가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기합을 넣어 일장을 방증대사의 좌측 어깨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방증의 좌측장은 우측장 밑에서 뚫고 나오면서 여전히 약간 움직이더니 하나가 둘로 변하고 둘이 넷으로 변하여 난무하였다. 임아행은 몸을 날려 두장으로 방비를 하였다.

영호충은 높은 곳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방증대사의 장법의 변화는 예측할 수가 없고 일장이 나가다가 중도에 이르러 여러개의 방향으로 바뀌었다. 장법이 이렇게 기묘하게 변화가 되는 것은 실로 평생동안 보지 못했던 장법이었다. 임아행의 장법 또한 심히 질박하였다. 장을 내리치고 장을 거두는 행동이 마치 딱딱하고 질질 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증의 장법이 어떻게 변화를 하든지간에 임아행의 장력이 뻗쳐나오면 방증대사는 초식을 변화시켰다. 보아하니 두 사람의 실력은 엇비슷헹고 상대방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무예에 대한 기강의 조예가 심히 얄팍하였다. 그래서 독고구검 가운데 그 파장식(破掌式)에 일초식도 완전하게 배우지를 못했다. 상대방의 손과 발에서 빈틈을 찾지 못하니 그 허를 타고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양대 고수들이 전개하는 장법은 당세 최고로 오묘한 장법이기 때문에 그는 눈만 부릅 뜬 채 그 오묘한 진리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검법에 있어서 나는 충허도장을 이길 수가 있었고, 임 선생과 겨루어 본다 해도 그에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본 것처럼 이 두분과 같은 장력의 소유자를 만난다면 나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먼저 선제 공격리 해야 되겠구나. 풍 태사숙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십년 동안 연마를 해야만이 비로소 당세의 고수들과 장을 겨룰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파장식의 일초식의 연마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참 보니 임아행이 갑자기 양쪽 장을 평편하게 밀어치는 것을 보았다. 방증대사는 연신 뒤로 세 발짝 물러섰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암암리에 외치기를, (아이고 큰일났구나! 방증대사가 지겠구나.)

 

이어서 방증대사가 좌측장으로 몇개의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측장을 급히 내리쳐 우측에서 아래측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몇번치자 임아행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다시 몇번 치자 임아행은 또 뒤로 물러섰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잘 한다. 그래 잘 해!)

 

그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생각을 하였다.

 

(내가 어째서 방증대사가 지려고 하니까 이와 같이 놀래고 있는가. 그가 반격을 하지 내 마음에 안도감이 드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맞다, 방증대사는 덕을 갗춘 고승이다. 임 교주는 필경 좌도의 인사이니 내 마음속에는 아직까지도 선과 악의 개념이 남아 있구나.)

 

그러나 잠깐 사이에 또 생각하기를, (그러나 임 교주가 만약에 진다면 영영은 소실산에서 십년 동안 구금을 당해야 하는데 이 어찌 나의 바램인가?)

 

순간 자기조차도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마음 한쪽에서는 임아행이 딸과 상문천과 함께 강호에 나타나면 그로부터 풍파가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또 생각하기를, (풍파가 일어난다 한들 안 좋을게 뭐 있겠는가. 구경거리도 없으니 그러한 구경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는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영영이 나무기둥에 기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리따웁고 허약하게 생긴 모습이 눈쌀을 찌푸리며 마치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래서 갑자기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어찌 그녀가 십년 동안 구금을 당하고 있는 것을 차마 볼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또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이겨낸다는 말인가.)

 

그녀는 자기를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까지도 버렸지 아니한가. 자기의 일생동안 스승과 친구들에게는 적지 않는 대접을 받아왔지만 그러나 한 사람도 이렇듯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기를 도와주지는 않았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피가 용솟음쳤다. 영영이 마교 교주의 딸인 것은고사하고 설령 그녀가 천하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모든 사람들이 용서를 해주지 않을 지라도 자기는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그녀를 보살펴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눈초리들을 방증대사와 임아행의 장법에 촛점이 맞춰지고 모두들 내심 찬탄을 하였다. 좌냉선은 내심 생각하기를, (다행히 임이라는 저 늙은 괴물이 방증대사를 골랐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이 걸출한 장법을 내가 어찌 상대를 할 수가 있겠는가. 본문의 대숭양신장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파의 장법은 초식이 너무나 번거롭고 변화가 많지만 임아행의 일장도 막기가 급급했을 것이다.)

 

상문천은 생각을 하였다.

 

(소림파의 무공은 천년의 명성이 있는데 과연 다르긴 다르구나.

방증대사의 이 천수여래장의 장법은 비록 번잡하지만 그러나 공력이 흩어지지 않으니 정말로 대단한 장법이다. 만약에 내가 만났다면 있는 힘을 다해서 내력은 막아낼 수 있다손치더라도 장법은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악불군, 여창해 등은 각자 마음속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공과 임아행의 장법을 비교하였다. 임아행은 정신없이 한참동안 겨뤄보니 방증대사의 장법이 약간은 느슨해짐을 느껴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당신의 장법은 대단하지만 필경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오래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다.)

 

즉시 몇장을 공격하였다. 네번째 장을 내리칠 때 맹렬하게 우측 팔뚝이 약간 마비되어옴을 느꼈다. 내력을 운행해보니 편안하지가 못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자신의 내력이 방해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이 노화상이 연마한 역근경의 내공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장력이 내 장력과 부딪치지도 않았는데,나의 내력을 제압하다니.)

더 계속하다가는 상대방의 깊고 두꺼운 내력이 나와 자기가 수세에 몰린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방증대사의 좌측장이 공격해 들어오자, 큰 소리로 기합을 넣어 좌측장으로 신속하게 가서 막았다. `팍' 하고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장이 서로 부딪치자, 두사람은 각자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임아행은 상대방의 내력은 비록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러나 무섭기 짝이 없음을 알았다. 자기가 흡성대법을 사용하였으나 상대방의 내력을 추호도 흡수할 수가 없자, 내심 의아해 했다.

방증대사는 말을 했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어서 우측장이 공격해 들어왔다.

임아행은 우측장을 내밀어 맞부딪쳤다. 두 사람의 몸이 흔들거리더니 임아행은 전신에 피가 요동침을 느끼고 즉기 두발짝 뒤로 물러나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의 우측손은 이미 여창해의 가슴을 잡고 있었고 좌측장은 그의 천령개(天靈蓋)를 향해서 내리치려고 했다. 이런 행동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순식간에 일어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임아행과 방증대사가 격돌을 하고 있을 때 사태는 이미 임아행에게 불리해 갔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막아도 막지 못할텐데 몸을 돌려 여창해에게 공격할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를 못했던 것이다. 이 일장은 너무나 기묘하고 너무나 빠르게 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창해 역시 일대를 주름잡는 무학의 고수였으므로 임아행과 겨룬다면 비록 마지막에 가서는 패할망정 절대로 이 초식에 잡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사람은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방증대사는 몸을 날려 마치 새처럼 덮쳐 들어왔다. 쌍장을 일제히 뻗어 임아행의 뒷머리를 내리쳤다. 이것은 무학 중에 위위구조(圍魏求趙)의 방책이었다. 방증대사가 임아행의 뒷머리를 내리치는 것은 임아행이 여창해에게 내리치는 일격을 처리하여 그의 공격을 막게 하고자 함이었다. 여러 고수들은 방증대사의 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격에 대해서 모두 감탄을 하였고, 갈채를 보냈다. 여창해의 생명이 이로써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임아행의 이 일장은 처리를 하였지만 임아행은 방증대사의 공격을 막지 않고 단숨에 방증대사의 천중혈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우측손으로 방증대사의 가슴을 찍었다.

방증대사의 몸이 부드러워지더니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여러사람은 깜짝 놀라 너도나도 소리를 치며 일제히 달려가 보았다. 좌냉선은 갑자기 몸을 날려 일장으로 맹렬하게 임아행의 뒤쪽을 향해서 내리쳤다. 임아행은 반격을 하면서 일갈을 했다.

 

[좋다, 이것은 둘째판이다!]

 

좌냉선은 주먹과 손바닥을 연신 사용하여 순식간에 십여 개의 초식을 썼다. 임아행은 갑자기 크게 공격을 받자, 일시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방어를 했다. 그가 조금전에 방증대사와 겨루었을 때 사용한 마지막 삼초식은 비록 머리를 썼지만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썼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림파의 장문인같이 내공이 심오한 사람이 어떻게 임아행에게 천중혈을 잡힐 수가 있었으며 가슴이 찍힐 수가 있겠는가. 이 몇초식은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실로 주사위를 던지는 도박이었던 것이다. 임아행이 방증대사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기였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이 자비로운 것을 알고, 갑자기 여창해에게 손을 쓴것은 첫째로는 나머지 사람들이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설령 구원을 해도 미치지 못했고, 둘째로는 각파의 장문들은 여창해와는 그리 교분이 깊지가 않아 절대로 목숨을 걸고 구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오로지 방증대사만이 손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소림방장은 오로지 자기가 공격해야만이 비로소 여창해를 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방증대사가 공격 해오는 일장을 막지도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혈을 잡았던 것이다. 이 일장은 또한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방증대사의 일장이 그의 뒷머리를 내리칠 때 손이 직접 와 닿지 않을 지라도 장풍의 위력만으로도 그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 그가 여창해에게 덤벼들었을 때 이미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하였던 것이다.

이 불문의 고승은 정말로 보살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바닥이 자기의 뒷머리를 내리칠 찰라에 장력을 거두어갈 것이라고 목숨을 걸고 내기를 했던 것이다. 또한, 방증은 허공에서 일장을 내리친 뒤에 바로 있는 힘을 다해거 거두었으므로 비록 최고의 고수지만 가슴 사이의 내력은 일시적으로 끊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벼운 동작으로 방증대사를 찍어 쓰러뜨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방증의 두꺼운 장력이 미치자 이미 그의 뒷골은 너무 아파 찢어질 정도였으며 단전의 힘이 일시적으로 끊겨서 운행이 되지 아니했다.

충허도인은 급히 방증대사를 일으켜 막혀져 있는 혈도를 풀며 탄식을 했다.

 

[방증사형의 자비로운 마음을 적이 이용해 버렸군요.]

방증은 말하였다.

 

[아미타불, 임 시주는 정말로 영리하고 비상합니다. 힘으로 겨루지 않고 지혜로 겨루다니 이 늙은이는 졌읍니다.]

 

악불군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것은 임 선생의 사기입니다.광명정대하게 이기지도 못했고, 또한 이것은 정인군자가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우리 일월신교 중에도 정인군자가 있읍니까? 임 교주가 정인군자라면 벌써 당신들과 함께 지냈을 것이고, 이따위 무술시합을 할 필요가 있겠소.]

 

악불군은 말문이 막혔다. 임아행은 나무기둥에 기대어 천천히 손을 써서 좌냉선의 공격을 하나하나씩 막아냈다. 좌냉선은 지금까지 자부해 왔다. 만약에 평소라면 절대로 임아행이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림파의 천번째 고수와 맞붙은 직후에 가서 도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 가서 도전을 한다는 것은 일파종사의 행위는 아니었고, 비판을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임아행이 조금전에 방증대사를 쓰러뜨릴 때 상대방의 자비로운 마음을 이용하여 간사한 사기로서 승리를 취했기 때문에 정교의 사람들은 모두들 애석해 하며 화가 났던 것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급히 공격을 하였다. 옆사람들은 모두 그가 너무 격분한 나머지 행한 행동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좌냉선은 지금이 바로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상문천은 임아행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을 보자 나무기둥 앞으로 달려들면서 말을 했다.

 

[좌대장문, 상대방의 약점을 간파하고 잽까게 달려들어 갔구나.

염치도 없는 놈, 내가 너의 공격을 받겠다.]

 

좌냉선은 말했다.

 

[내가 이 임씨를 쓰러뜨린 다음에 다시 너를 상대해 주겠다. 이 늙은이가 너 같은 놈을 무서워하겠느냐?]

 

일검을 내밀어 임아행을 향해서 일격을 가했다. 임아행은 좌측손으로 막아내더니 냉랭한 소리로 말을 했다.

 

[상 형제, 뒤로 물러서시게나.]

 

상문천은 교주가 극히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했다.

 

[좋습니다, 제가 잠시 물러나 있겠읍니다. 단지 이 좌씨 성을 가진 놈은 너무나 염치가 없는 놈입니다. 내가 그놈의 엉덩이를 한번 걷어차줘야겠읍니다.]

 

한쪽 발을 날리더니 좌냉선의 엉덩이를 향해서 찼다. 좌냉선은 화가나서 말했다.

 

[두놈이 하나를 치는구나.]

 

몸을 돌려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상문천은 발을 날리는 시늉만 했지 실제로 발로 차지는 않았다. 그는 좌냉선이 자기의 수에 넘어가자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엉덩이를 채이는게 그렇게 무서우냐?]

 

몸을 날려 뒤로 가서 영영의 옆에 서 있었다. 좌냉선은 이렇게 한번 비켜서자, 임아행에게 공격해 들어가는 초식이 한발 늦어졌다. 고수의 초식은 한순간이 결정 지어주는 것이다. 임아행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깊이 숨을 들이마셔 내식을 조절하였다. 정신이 맑아오면서 계속해서 삼장을 내리쳐 나갔다.

좌냉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막으면서 마음속으로 암암리에 깜짝 놀랐다.

 

(이 늙은이가 십년 동안 보지를 못했더니 공력이 크게 옛날보다 달라졌구나. 오늘 그를 이기려고 한다면 온힘을 다하여야겠구나!)

두 사람은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었고 이번에야말로 천하의 좌웅을 겨루는 일전이었다. 두 사람은 승부에 대해서 상당히 집착을 하였다.

조금 전 임아행과 방증대사가 시합을 할 때처럼 그렇게 평화스러운 장면은 아니었다. 임아행은 마음속에 살기가 등등하여 두개의 장은 마치 칼과 도끼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왔다.

좌냉선이 갑자기 주먹과 손에 장을 쓰니 그 변화가 실로 무궁무진하였다. 두 사람은 싸울수록 더욱 빨라져 영호충은 나무액자 뒤에서 그들의 손놀림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임아행과 방증대사가 서로 겨루었을 때 단지 두 사람의 초식에 있어서 정묘함의 소재를 몰랐을 뿐인데,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초식은 극히 빨라 일장일장이 어떻게 들어가는 것조차도 확실히 알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돌려 영영을 보니 그녀의 얼굴릉 눈처럼 하얗고 두 눈의 길다란 눈썹은 아래로 향하고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표정이 없어 보였다.

상문천은 얼굴이 갑자기 펴지고 갑자기 우울해지며 금방은 놀래고 금방은 애석해 했으며, 금방은 눈쌀을 찌푸리며, 눈을 부릅떴다가 잠시 후에는 입술을 깨물고 마치 자기가 친히 싸움에 임했을때처럼 긴박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상 형님의 견문은 영영보다는 높고 넓겠지. 그가 이렇듯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니 아마 임 선생은 이 일전을 이기기가 어렵겠구나.)

 

천천히 눈을 돌리니 한쪽 구석에 사부와 사모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옆에는 방증대사와 충허도인이 있었고, 두 사람 뒤에는 태산파 장문인인 천문도인이 있었으며, 또 한 사람 형산파의 장문인인 막대선생이 서 있었다. 막대선생은 이곳에 온 뒤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그의 삐쩍 마르고 작은 몸체를 보자 가슴속에는 삽시간에 따뜻한 느낌이 들어 내심 생각하였다.

 

(의림사매 그녀들과 항산파 제자들은 사부가 아니계시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청성파 장문인인 여창해는 혼자서 담 옆에 서 있었으며, 손에는 칼자루를 쥐고 온 얼굴에는 화가 난 표정이었다. 서쪽에 서 있는 사람은 머리가 백발인 거지였는데 틀림없이 개방의 방주인 해풍인 것 같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파란옷을 입고 있는데 차림새가 퍽이나 멋져 보였다. 틀림없이 곤륜파 장문인인 건곤일검 진산자였다.

 

(이 아홉 사람은 현재 정교중의 최고의 고수로서 만약 아홉사람들이 정신과 마음을 집중하여 관전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자기는 나무 뒤에 이렇듯이 오래 숨어서 비록 숨을 죽이고 꼼짝도 않고 있지만 아마 그들에게 벌써 발견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암암리에 생각하였다.

 

(아래 모여 있는 이 많은 고수들 가운데 특히 사부님과 사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방증대사, 무당 장문인, 막대선생, 이 세분은 내가 매우 존경하는 선배어르신이다. 내가 이곳에서 그들의 말을 훔쳐듣고 있다는 것이 실로 불경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그들이 뒤어 도착했지만 그러나 어찌되었든간에 내가 이곳에 숨어서 엿듣는 꼴이 되었다. 만약에 그들에게 발견이 된다면 나는 정말 아무런 염치가 없겠구나.)

 

단지 임아행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한판의 승리를 하면 삼판 이승이니 영영을 데리고 하산을 할 수가 있고, 방장대사 등이 이 전각에서 물러난다면 자기는 바로 쫓아내려가 영영을 만나리라고 생각했다.

영영과 만난다는 생각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며 귓볼조차 뜨겁게 달아 올랐다. 혼자 생각하기를, (오늘부터 나는 정말로 영영과 맺어져 부부가 되어야 하는가. 그녀는 나에게 정성을 다하였는데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이 며칠동안 비록 밤낮으로 영영을 생각하였다. 생각이 미칠 때마다 항상 그녀에게 자기를 구해준 은혜만큼 보답을 하리라고 작정을 하였다. 그녀를 도와서 탈옥을 한 다음 강호에 나가 자기 자신이 그녀를 사모하였지 절대로 그녀가 자기에게 그러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떠들어 댄다면 강호의 영웅호걸들은 그녀를 조롱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한 영영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거나 난감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번 영영의 그림자가 머리속에 나탄라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기쁨이나 따뜻한 감을 느낄 수가 없었으며, 그가 소사매인 악영산을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그런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영영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치 어떤 공포감이 스며 있었다. 그와 영영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나이 먹은 할망구로 여기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상당히 존경과 감격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후로 그녀가 사람을 죽이고 군웅들을 지휘하는 것을 봤을 때 존경하는 마음에서도 얼마간의 공포감이 스며왔던 것이다. 그녀가 자기에게 어떠한 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싫어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급기야는 나중에 그녀가 자기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소림사에 잡혀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감동의 의미는 비록 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친근하다는 마음이 든 것은 아니고 단지 그녀에게 어떤 은혜를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래서 임아행이 자기를 사위로 부르는 소리를 듣자 마음속으로 퍽이나 난감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그녀와의 거리가 너무나 멀고 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영영을 몇번 쳐다보고 감히 더 볼 수가 없었다. 상문천이 두손을 불끈 쥐고 두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눈빛이 임아행과 좌냉선을 보고 있을 때 좌냉선은 전각 구석으로 몰렸고, 임아행은 일장일장을 그를 향해 내리쳤다. 그 일장은 마치 산이라도 허물어뜨릴 듯한 기세였다. 좌냉선은 분명히 열세에 몰려 있고, 두팔의 초식이 극히 짧았으며, 한척도 공격하지 못하고 연신 뒤로 물러서며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임아행은 일성대갈을 하더니 두 개의 장을 질풍처럼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네개의 장이 부딪치자 펑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좌냉선이 등을 벽에 부딪치자 머리 위에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영호충은 몸이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숨기고 있는 그 나무액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생각했다.

 

(좌사백은 이번에 정말 큰일났구나. 두 사람이 내력을 겨루고 있으니 임아행이 흡성대법으로 그의 내공을 빨아들일텐데 시간이 길어지면 좌사백을 틀림없이 불리할 것이다.)

 

좌냉선은 우측 장이 들어가고 다른 좌측 손의 장으로 상대방의 장력을 막고 있었으며, 우측 손은 식지, 중지 두 손가락을 내밀어 임아행을 향해서 내리찍었다. 임아행은 괴성을 지르며 급히 물러섰다. 좌냉선은 우측 손으로 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가 연신 세번을 공격하자, 임아행은 뒤로 세발짝 물러섰다.

방증대사, 충허도장 등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평소에 듣기로 임아행의 흡성대법은 상대방의 내공을 흡수한다고 들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종종 그 두 사람으 내공이 부딪쳤을 때 좌냉선은 어째서 아무 일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숭산파의 내공은 흡성요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구경을 하고 있던 고수들은 물론 경이롭게 생각했지만, 임아행은 더욱 깜짝 놀랐다.

 

십여년 전에 임아행은 좌냉선과 극렬하게 싸움을 할 때 흡성대법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이미 우세에 놓여 눈 앞의 좌냉선을 제압할 수가 있었지만 갑자기 명치가 이상하게 아파오고 신력을 거의 쓰기가 어려워서 마음속으로 깜짝 놀랬던 것이다. 이것은 흡성대법을 수련할 때 생기는 반격의 힘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만약에 평상시라면 조용히 앉아 기를 운행시켜 천천히 반격의 힘을 풀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강력한 적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여유는 없었다. 당황하고 대책이 없는 상황하에서 갑자기 좌냉선 몸 뒤에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좌냉선의 사제인 탑탁수 정면과 대숭양수 비빈이었다. 임아행은 즉시 물러서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일대 일로 싸운다고 약속을 해 놓고 알고 보니 암암리에 사람들을 숨겨 놓았구나. 내가 앉아서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만나게 될걸세.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네.]

 

좌냉선은 자기가 이미 패색이 짙었으나 상대방이 뜻밖에 스스로 싸움을 끝내자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입방아를 찧고 싶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상대방을 욕하든지 약을 올려서 싸움을 걸었으나 지금은 상대방을 격하시키거나 약을 올리면 다시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고, 정면과 비빈은 끼어들어 도와주기가 불편하고 자기가 쌓아 놓은 명성은 어쩌면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화할 수가 있어 즉시 말을 했다.

 

[ 누가 당신 보고 마교의 사람들을 데려오지 말라고 하였소? ]

임아행은 냉소하며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 일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승부가 나지 않았으나 임아행, 좌냉선 두 사람은 자기들의 무공 중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실로 다행이었고, 그로부터 각자가 열심히 연마를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임아행은 흡성대법에는 마치 목구멍에 낀 가시처럼 큰 결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흡성대법으로 상대방의 공력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상대방이 문파가 다르면 공력이 달라 잡다한 공력을 몸에 빨아들이면 하나로 융합할 수가 없고,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없으며, 때때로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는 내력이 심히 강하여 다른 파의 내공이 이상한 발작을 일으키면 즉시 자기의 내공으로 제압을 시켜 아직까지는 위험한 경우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상대는 무예가 높은 고수이고 격돌할 때 자기의 내력의 소모가 심히 커서 체내에서 다른 파의 내공을 제압하기는 상대적으로 역부족이었으며 적이 눈앞에 있자 외환과 내우가 겹쳐 스스로 낭패한 꼴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로 심혈을 기울여 체내에 다른 파의 내공을 제압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정신을 한 군데로 쏟은 바 총명하기 그지없는 자는 자기 겨드랑이에 혹이 생긴 줄도 모르고 결국은 동방불패에게 잡혔던 것이다. 그는 서호의 호수바닥에서 십년 동안 갇혀 있자, 마음을 한 군데에 쓸 수가 있어 비로소 체내에 다른 파의 내공을 제압할 수 있는 적절한 이치를 깨달아 흡성대법이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좌냉선과 다시 부딪치자, 승기를 잡지 못하여 즉시 흡성대법을 운행하여 상대방의 장과 부딪칠 때 상대방의 내공을 빨아 들였으나 마치 상대방의 내공은 텅빈 것처럼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임아행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흡성대법을 썼을 때 상대방의 내력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내력을 한군데로 모았다면 별 문제였다. 그러나 흡성대법을 썼지만 내력을 온데 간데도 없이 꽁꽁 숨어 있고 그의 흡성대법이 빨아들이는 힘을 잃게 되자 이러한 사태는 평생 만나보지 못했고, 꿈 속에서도 이런 기괴한 일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연신 몇번이고 상대방의 내공을 빨아 보았다. 그러나 좌냉선의 내력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눈 앞에 좌냉선의 지법(指法)이 매섭게 달려들자 뒤로 세발짝 물러나 바로 초식을 교환하여 질풍처럼 내리쳤다. 좌냉선은 공격에서 수비로 자세를 바꾸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이삼십 초식을 썼다. 임아행이 좌측 손의 일장을 내리치자 좌냉선은 무명지로 그의 손목을 튕기고 우측 손의 식지로 그의 좌측 늑골을 찔렀다. 임아행은 그의 이 일침의 경력이 상당히 매섭자, 생각하기를

 

(설마하니 네놈의 손가락에는 내력이 없지는 않겠지?)

즉시 몸을 살짝 비틀었다. 마치 몸을 피한 것 같으나 사실은 고의로 빈틈을 노출시켜 그가 늑골을 찌르도록 했다. 동시에 흡성신공을 가슴에 밀집시켜 놓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네놈이 내공을 숨기는 재주가 있어 나의 흡성대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네놈이 손가락으로 나를 공격할 때 손가락에 내공이 없다면 내 몸을 찌른다 해도 내 몸은 단지 간지러울 뿐이다.

그러나, 만약 약간이라도 내공이 있다면 내가 그 내공을 모두 빨아 내고야 말겠다.)

 

바로 이 찰나에 퍽 하고 소리가 나면서 좌냉선의 손가락이 그의 좌측 늑골의 천지혈에 적중되었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신음소리를 냈다.

좌냉선의 손가락이 임아행의 가슴팍에서 잠시 머물렀다. 임아행은 즉시 온 힘을 다하여 공력을 운행시키자, 과연 상대방의 내력이 마치 제방둑이 터지듯이 자기의 천지혈에서 빨려 들어왔다. 그는 내심 기뻐 있는 힘을 다하여 상대방의 내력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천천히 뒤로 한걸음 물러나 한마다 말도 없이 좌냉선을 직시하였다. 몸이 떨리더니 손이 꼼짝도 않고 마치 혈도가 봉쇄된 듯했다.

영영은 놀래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달려나가 부축해보니 그의 손은 차가운 얼음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상 아저씨, 상 아저씨!]

 

상문천은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가 손바닥으로 임아행의 가슴팍을 몇번 쳤다. 임아행은 훅 하고 소리를 내면서 기가 되돌아왔다.

얼굴색은 파래져서 말을 했다.

 

[거 참 멋지구나 이 수야말로 나는 생각지 못했는데 자 우리 다시 한번 겨뤄 볼까?]

 

좌냉선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승패가 이미 결정됐는데 더 이상 시합할 필요가 있겠소. 임 선생은 조금 전에 좌장문에게 천지혈을 봉쇄당하지 아니했소?]

임아행은 퇘하고 침을 뱉으며 일갈했다.

 

[그렇다. 내가 그 수에 말려 들었어. 이 일전은 졌다고 치자.]

원래 좌냉선이 조금 전에 사용한 초식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십여년 동안 수련해서 쌓아온 한빙진기(寒氷眞氣)를 식지에 모아 두고 자기의 크나큰 내공을 계획대로 흡수해 가도록 하였다.

그가 흡수해 가자 좌냉선은 더욱 내력을 재촉하여 급속도로 상대방의 혈도에 주빙을 시켰던 것이다. 이 내공은 매우 차가운 것으로 일순간에 임아행의 전신은 동태가 되었다. 좌냉선은 그의 흡성대법이 막히는 순간을 틈타서 내공을 집어넣어 그의 혈도를 봉쇄했던 것이다.

혈도를 봉쇄하는 일은 원래 이류 삼류의 무림 인물들이 쓰는 수법으로 고수들이 맞붙을 때에는 절대로 이런 초식은 쓰지를 않았다. 좌냉선은 크나큰 공력을 버리면서 이 삼류의 수단으로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이 일초는 비록 약간의 사기성은 있었지만 만약 매서운 내공이 없다면 그 일을 성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상문천은 좌냉선이 비록 승기를 잡았지만, 그러나 이미 진원(眞元)이 크게 소모되어서 몇개월의 시간이 있어야만 다시 복원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즉시 앞으로 나와 말했다.

 

[좀전에 좌장문께서 말씀하시기를 임 교주님을 쓰러뜨린 후 다시 나를 쓰러뜨린다고 하셨는데, 자 그럼 지금 손을 쓰시오.]

방증대사, 충허도인 등은 좌냉선이 임아행을 쓰러뜨린 다음 안색이 창백하지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자 내력이 상당히 소모되어 지금 만약에 두 사람이 손을 쓴다면 좌냉선은 패 할 뿐만 아니라 수초 사이에 상문천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는 좌냉선이 조금 전에 틀림없이 말한 것이다. 상문천이 도전을 하자 그 말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주저하고 있는데 악불군은 말했다.

 

[우리들은 말을 했지 않소? 이 세번의 시합은 그 어느 누가 나오느냐는 자기편이 스스로 결정해야지 절대로 상대방이 지명할 수는 없다고 말이오. 이 한마디 말은 임 교주께서도 승낙을 하셨읍니다. 그렇지 않소이까? 임 교주는 대 영웅이고 대호걸이시니까 한번 하신 말은 분명히 지킬 것입니다.]

 

상문천은 냉소하며 말했다.

 

[악 선생은 말도 잘 하시는군요. 정말로 감탄했소이다. 단지 군자라는 칭호는 맞지 않는 것 같소. 이렇게 갖다 붙이고 저기서 살을 붙이니 실로 소인배와 다름이 없구료.]

 

악불군은 담담히 말을 했다.

 

[군자의 눈에는 천하가 모두 군자로 보이는 것이고, 소인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모두 소인만 눈에 띄는 법이오.]

 

좌냉선은 천천히 몇발짝 옮겨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그의 지금 상황으로는 서 있는 것 조차도 상당히 어려웠으며, 무예를 겨룬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무당 장문인 충허도인은 앞으로 두어 발짝 걸어오더니 말을 했다.

 

[평소에 상 좌사는 천왕노자(天王老子)라고 사람들이 칭하는 소리를 들었고, 또한 하늘을 뒤집고 땅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고 들었읍니다. 빈도는 무당 장문으로서 정교의 여러파와 당신의 교파가 다툴 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여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읍니다. 오늘 다행이 천왕노자의 상대가 될 수가 있다면 실로 영웅이라고 하겠읍니다.]

 

그는 무당 장문의 신분인데,상문천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너무 중히 보는 것이다. 상문천은 상황으로 보아 실로 거절할 수가 없어 말했다.

 

[말씀을 들으니 영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충허도장의 태극검법이 천하무적이어서 오랫동안 사모해 왔읍니다. 저는 목숨을 걸고 저의 기량을 한번 써보겠읍니다.]

 

포권을 하고 예를 행한 다음 뒤로 몇발짝 물러섰다. 충허도인은 넓은 소맷자락의 휘날리며 두 손을 모아 몸을 숙여 답례를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서서 상대방을 노려본 채 누구도 검을 뽑지 않았다.

임아행은 갑자기 말을 했다.

 

[잠깜만, 상형제는 잠시 뒤로 물러나시오.]

 

손을 내멀어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여러 사람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이미 두 사람과 계속해서 싸움을 하여 내공이 틀림없이 크게 소모가 되었을텐데, 다시 충허도장과 맞붙으려고 하다니.)

좌냉선은 더욱 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십여년 동안 쌓아온 한빙진기를 그의 천지혈에 주입을 시켰는데, 설령 무공이 그보다 열배 백배 높은 사람일지라도 서너시진이 지나야 비로소 풀릴 수가 있는데 이 사람은 이 짧은 시간에 나의 진기를 풀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축적했다는 말인가?)

임아행은 지금 단전에서 마치 수십 자루의 칼 끝이 마구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임아행은 있는 힘을 다 모아 비로소 몇 마디를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지금 겉으로는 아픈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충허도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임 교주님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시겠읍니까? 우리들은 싸움을 하기전에 쌍방이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는 쌍방이 결정하기로 약정을 했읍니다. 임 교주께서 만약 저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그런 약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빈도가 너무나 쉬운 상대와 만나는 것 같소이다.]

 

임아행은 말했다.

 

[저는 이미 두분의 고수와 겨루었고 다시 도장과 겨룬다는 것은 무당파의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명예와 심오한 검법을 너무 희롱하는 것이 되겠지요. 저는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충허도인은 내심 기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감사하군요.]

 

그는 임아행이 검을 뽑는 것을 보자 내심 크게 주저하였다. 이미 약해진 상대와 겨루어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고, 만약 싸움에 패한다면 무당파는 무림에서 서 있을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임아행이 출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임아행은 말했다.

 

[충허도장은 당신 편에서 보면 하나의 응원군이니 우리 쪽에도 새로운 응원군을 내야 되지 않겠읍니까?]

 

그리고 내서 고개를 들어 외쳤다.

 

[영호충, 이제 그만 내려오시게.]

 

여러 사람은 깜짝 놀라 모두들 그의 눈빛을 따라서 머리 위에 있는 나무액자를 쳐다보았다.

 

영호충은 더욱 깜짝 놀랐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고 낭패하기 짝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이상 숨어 있을 수가 없어 별 수 없이 몸을 날려 뛰어내려 방증대사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고 말했다.

 

[이놈이 마음대로 사찰을 들어왔으니 그 죄가 백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방장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방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영호 소협이시구료. 나는 소협의 고른 호흡소리를 듣고 있었소. 내력이 심후하고 그래서 나는 어떤 고인이 우리 절에 왕립하셨나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자,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이렇게 큰 예를 행하다니 받잡기 민망하구료.]

말을 하면서 합장을 하여 예로써 답례를 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벌써 내가 액자 뒤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개방 장주인 해풍은 말했다.

 

[영호충, 당신이 이쪽으로 와서 여기에 있는 글자를 보시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그가 가리키는 한 개의 기둥 뒤로 가서 보았다. 그 기둥에는 세줄의 글이 조각되어 있었다. 천번째 줄은 `액자뒤에 사람이 있소?' 두번째 줄은 `내가 끄집어 낼까요?' 세번째 줄은 `잠깐만, 이 사람의 내공은 정파이기도 하고 사파이기도 한데 적인지 우리 편인지 모르겠소?' 한 글자 한 글자가 기둥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방증대서와 해풍이 지력(指力)으로 기둥에 새긴 것이다.

영호충은 심히 놀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방증대사께서는 나의 이렇듯이 희미한 호흡을 듣고서 나의 무공 내력을 판별하시니 정말로 귀신이다.)

 

바로 포권을 하고 고개를 숙여 절을하며 말했다.

 

[여러 선배 어르신께서 이 전각에 오셨을 때 제가 너무 면목이 없어 바로 인사를 드릴 수가 없었읍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때 사부의 안색을 틀림없이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감히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해풍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나쁜 짓을 한 모양이구먼 면목이 없게. 소림사에서 뭘 훔치려고 하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임 소저가 이곳에 소림사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들어 감히 그녀를 마중하러 왔읍니다.]

 

해풍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마누라를 훔치러 왔구만, 하하하. 그것은 나쁜 일을 한 것은 아니야. 단지 면목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부끄럽다고 하는 것이야.]

 

영호충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임 소저는 저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읍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를 위해서 분신쇄골이 된다한들 기꺼이 달게 받겠읍니다.]

해풍은 탄식하며 말을 했다.

 

[아깝다 아까워. 착하고 좋은 청년 하나가 한 여자 때문에 앞 날을 망치게 되는구만. 자네가 만약 사악한 무리들과 있지 않다면 이 화산파 장문의 자리는 앞으로는 자네의 손아귀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은가.]

 

임아행은 큰 소리로 말했다.

 

[화산파의 장문의 자리가 무슨 대단한 자리요. 장래 이 늙은이가 물러서게 된다면 일월신교 교주의 자리는 나의 사위의 손바닥에서 달아난답니까?]

 

영호충은 깜짝 놀라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읍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됐다. 잔소리는 그만 하거라. 충아, 너는 이 무당 장문에게 신검의 가르침을 받아보아라. 충허도장의 검법은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제압하는 검법이니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검법이다. 그리고 몸조심하거라.]

 

그는 영호충을 충아라고 말투를 바꾸어 불렀으며, 정말로 영호충을 사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묵묵히 지금 상황을 살펴보았다. 쌍방은 각각 일승을 하여 세번째 승부가 영영을 구하여 하산을 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가 옛날에 충허도인과 겨뤄본 적이 있어서 검법에 있어서는 그를 이길 것 같았다.

영영을 구하려고 한다면 출전하지 않을 수 없어 즉시 몸을 돌려 충허도인을 향해 엎드려 절을 몇번 하였다.

충허도인은 급히 손으로 부축을 하며 말했다.

 

[어찌 이런 큰 예를 하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소인은 도장 어르신을 평소부터 존경해 왔읍니다. 일이 급박해서 충허도장에게 한수의 가르침을 청하지만 예가 아닌 것 같습니다.]

충허도인인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형씨는 예의가 바르시군요.]

 

영호충이 몸을 일으켜 세우자, 임아행은 장검을 건네 주었다. 영호충은 검을 손에 쥐고 검끝은 땅을 향하여 몸을 살짝 비켜 아래쪽에 섰다. 충허도인은 눈을 들어 전각 밖의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넋이 나간듯 마음속으로 영호충의 검초를 계산하고 있었다.

여러사람은 그가 꼼짝도 하지 않고 참선에 들어간 사람처럼 하고 있자,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한참 지난 뒤에 충허도인은 긴 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 일전은 시합할 필요가 없읍니다. 당신들 네 사람은 하산을 하시오.]

 

이 말이 나오자 여러 사람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여 고개를 숙였다. 해풍은 말했다.

 

[도장, 당신의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충허도장은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자의 검법을 깨뜨릴 자신이 없읍니다. 그래서 이 일전은 빈도가 졌읍니다.]

 

해풍은 말했다.

 

[두분은 아직 겨루지도 않았읍니다.]

 

충허도장은 말했다.

 

[수일 전에 무당산 아래에서 빈도는 그와 삼백여 합을 싸운 적이 있지요. 그때 내가 졌읍니다. 오늘 다시 시합을 한다해도 빈도는 여전히 질 것입니다.]

 

방증대사는 물어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읍니까?]

 

충허도장은 말했다.

 

[영호소협은 풍청양 풍 선배의 검법의 진수를 터득하고 있어 빈도는 그의 적수가 아닙니다.]

 

말하면서 천천히 웃고는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임아행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도장의 마음은 실로 깊고 헤아릴 수가 없군요. 정말로 존경합니다. 이 늙은이는 본래 당신을 반절 정도 존경을 했지만, 지금은 당신을 완전히 존경하게 되었읍니다.]

 

그는 방증대사를 향해서 공수를 하더니 말했다.

 

[방장대사, 우리는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사부와 사모님 면전에 들어가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악불군은 몸을 옆으로 돌려 냉랭히 말했다.

 

[그 예는 받지 않겠다!]

 

악 부인 마음속이 시큰하여 눈물이 눈에 가득 괴었다. 영호충은 또 막대선생에게 다가가서 절을 하였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지 세번절을 하였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임아행은 한쪽 손으로 영영을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영호충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가자!]

 

큰 걸음으로 문을 향해 나갔다.

해풍, 진산자, 여창해, 천문도인 등은 스스로 무공이 충허도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충허도인이스스로 영호충의 적이 아니라고 말을 하자, 그들의 마음은 비록 반신반의하였지만 감히 누구도 앞에 나서 손을 쓰려하지 않았고, 스스로 치욕을 맛보려 하지 않았다.

임아행이 막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악불군이 일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임아행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째서 그러시오?]

 

악불군은 말했다.

 

[충허도장은 현인이라 소인배들과 따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세 번째 시합은 아직 하지를 않은 것입니다. 영호충, 내가 너와 한번 겨뤄 보겠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떨려 왔다.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전...... 제가 어찌 감히......]

 

악불군은 태연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우리 화산파의 선배인 풍 사숙의 가르침을 받아 검술이 이미 화산파의 진수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보아 하니 나는 이미 너의 맞수가 아닌 것 같다. 비록 너는 화산파에서 좇겨났지만,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여전히 우리 화산파의 검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정교의 여러 선배들은 불초한 너 하나 때문에 고생을 하시고 고통을 받고 있다. 내가 손을 쓰지 않고 그 무거운 짐을 그들에게만 지우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너는 오늘 나를 죽여라.]

처음에는 말이 부드러웠으나 갈수록 엄하였으며, 싹 하는 소리를 내며 장검을 뽑아들고 일갈했다.

 

[너와 가는 이미 사제지간의 관계가 아니다. 자, 검을 뽑아라.]

영호충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말했다.

 

[제자는 그럴 수 없읍니다.]

 

악불군은 콧방귀를 뀌고 검을 들어 내리쳤다. 영호충은 몸을 살짝 피하였다. 악불군은 연신 두검을 내리찔렀다. 영호충은 또 피하였다. 장검은 그래도 땅을 가리키고 초식을 써서 검을 막지 않았다.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이미 나에게 삼초식을 양보했으니 어른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고 할 수가 있다. 빨리 검을 뽑아라.]

 

임아행은 말했다.

 

[충아, 네가 계속 반격을 않는다면, 너의 생명은 여기서 끝장이다.]

 

영호충은 대답을 하였다.

 

[네, 알았읍니다.]

 

검을 들어 가슴을 막았다. 이번 시합에 사부가 이기도록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부를 이겨야 할 것인가. 만약 고의로 양보를 하여 이 한판 시합에 진다면 자기의 몸이 중상을 당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임아행, 상문천, 영영 세 사람은 소실산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구금을 당해야 한다. 방증대사는 물론 덕이 높은 고승이지만, 좌냉선과 소림사의 다른 스님들이 영영 등 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보장을 할 수는 없다. 말이 십년동안 구금이지, 진정 생명을 보존하면서 십년의 세월을 보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어려서부터 혼자가 되어 사부와 사모님의 은총으로 가르침을 받아 마치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같은데 아직 그 은혜에 보답도 하지 않은 채 천하의 영웅 앞에서 사부를 쓰러뜨릴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사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고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가 주저하며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악불군은 이미 이십여 초식을 질풍처럼 공격하였다. 영호충은 단지 사부가 옛날에 전해준 화산검법으로 막았다. 독고구검의 검법을 쓰면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해야 하고 상대방에게 크나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감히 사용을 하지 못했다. 그는스스로 독고구검을 익힌 직후에 실력이 크게 증진되었고 또한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비록 평범한 화산의 검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검에서 생기는 위력을 옛날과는 사뭇 달랐다. 악불군은 연신 검을 휘두렀으나 결국은 그를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영호충의 이러한 검법을 보고 그가 의식적으로 양보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임아행과 상문천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모두 깊은 우려를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옛날 생각을 하였다.

그날 향주의고매산장에서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일월신교에 투신을 하면 그에게 광명우사라는 직위를 주고 앞으로 교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으며, 또한 그에게 흡성대법을 연마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풀 수 있는 비결을 전수해 중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영호충은 그 말에 단 한번도 동조를 하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사문에 대해서 충직한가를 알 수가 있었다. 또 그는 옛날 사부와 사모님을 대할 때 예를 다했으며 심지어는 악불군이 일검으로 그를 죽이려 하는 데에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초식은 모두 방어에 쓰는 것이고 이렇게 계속해서 겨룬다면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영호충은 절대로 감히 사부를 이기려 하지 않을 것이고, 더우기 많은 영웅들 앞에서 사부를 감히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가 이번 시합에서 지면 영영 등 세 사람이 소실산에 갇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십여 초식도 겨루지 않고 검을 버리고 졌다고 인정을 했을 것이다.

임아행, 상문천 두 사람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두 사람은 또 서로 쳐다봤다. 두 사람의 눈빛 속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내색이 역력하였다.

임아행은 고개를 돌려 영영을 향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는 저쪽 맞은 편으로 가거라.]

 

영영은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영호충이 옛날 사제의 정을 생각해서 이 시합을 고의로 양보하자, 자기에게 맞은 편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영호충이 자기를 본다면 자기가 그에게 대해 준 정분 때문에 더욱 힘을 써서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가볍게 대답은 하였으나 발걸음을 옮기지는 앗았다.

한참 지난 뒤에 임아행은 영호충이 계속해서 후퇴하는 것을 보고 더욱 초조하여 다시 영영을 향해서 말했다.

 

[맞은 편으로 가거라.]

 

영영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대답 또한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 주었는디를 너는 벌써 알고 있다. 네가 만약 나를 구해서 이곳에서 하산할 마음이 있다면 너는 스스로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너는 만약에 사부를 중히 여긴다면 내가 설령 너의 옷소매를 잡고 애걸한다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내가 너의 앞에 서서 너를 깨우쳐 줄 필요가 있겠는가?)

 

남녀간의 정이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고 진심으로 사랑해야 그것이 귀중한 법인데 만약 자기가 어떤 의사를 나타낸 후 영호충이 자기를 위해서 승리를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깊이 느끼고 있었다.

영호충은 곧바로 자세를 취하여 사부가 공격해오는 검초를 하나하나 물리쳤다. 사용하는 검초는 이미 화산검법에 국한 되지 않다. 그가 만약 반격을 한다면 벌써 악불군이 검을 버리고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었다. 사부의 검초에 너무 많은 빈틈이 나타났는데도 손을 써서 공격해 들어거지 않았다. 악불군은 벌써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자하신공을 발하여 화산검법의 정수를 있는대로 모두 사용하였다. 그는 영호충이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초식마다 자기의 기량을 다 발휘하였고 자기의 검법 중에 빈틈이 있나 없나는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검법의 위력은 보통 때보다 한배가 더 강하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악불군의 검법이 정묘하고 우세를 점하고 있으나 끝내는 영호충을 제압하지 못함을 보고 있었고, 또한 영호충이 사용하는 검초는 어떤 때는 초식이 있었으며, 어떤 때는 초식이 없는 무초로 대항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초식이 없는 무초를 사용할 때는 장검을 마구 휘두르는 것 같았으나 절묘하기 짝이 없었고, 가볍게 악불군의 교묘한 검초를 하나하나 풀어내자 모두들 생각하기를, (충허도장이 스스로 검술이 그보다 못하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구나!)

 

악불군은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자, 초조해져 내심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거 큰일났구나! 이놈이 배은망덕의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으려고 이렇듯이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구나. 그는 비록 나를 해치지는 않지만 나로 하여금 승기를 못잡도록 하고 있구나. 이곳에는 강호에서 이름난 자들이 두눈을 번쩍이고 쳐다보고 있는데 바로 이때 그들은 이놈이 나에게 고의로 양보해 주고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내가 부단히 마구 휘두른다면 무슨 체통이 서겠는가? 어찌 한파의 장문의 꼴이란 말인가. 이놈이 내가 스스로 힘에 겨워 물러나 스스로 졌다고 인정하기를 바라고 있구나.)

 

그는 즉시 자하신공을 검끝에 집어넣고 훅 하고 일검을 똑바로 내리쳤다. 영호충은 몸을 옆으로 하여 번개처럼 피했다. 악불군은 검을 위로 스쳐 지나갔다. 악불군의 장검은 반대로 치고 들어와 그의 뒷덜미를 향해 내리쳤다. 이 일검의 변초는 너무 빨라 영호충의 목덜미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상황으로 보아 실로 피할 수가 없었다.

여러 사람은 악 하고 소리를 일제히 질렀다. 영호충의 몸은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몸을 날릴 수도 없었으며, 검으로 막기는 때가 늦어서 그의 장검이 내리쳐 몸 앞에 수척 정도에 떨어진 나무기둥에가 닿자, 그는 그 틈을 이용해서 몸을 날려 나무기둥 뒤로 피했다. 퍽하고 소리가 나면서 악불군의 장검은 나무기둥에 꽂혔다. 검날은 예리하고 빨라 또한 그의 내공이 검 안에 주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장검은 나무기둥을 뚫고 들어가 검끝과 영호충과의 거리는 겨우 수촌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 속에는 기쁨과 위험과 찬탄이 충만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영호충을 위해 기뻐하였다. 그가 이 교묘한 초식을 피하자 탄복을 했으며 또한 악부군이 결국 그를 찌르지 못하자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악불군은 평생 갈고 닦아온 기로 연신 삼격을 가했으나 여전히 영호충을 어찌할 수가 없었고, 또한 영호충을 동정하는 듯한 탄성을 듣자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탈명연환삼선검(奪命連環三仙劍)은 화산파 검종의 절묘한 무예였다. 그래서 그의 기종의 제자들은 원래 모르고 있었다. 검종과 기종이 싸움을 할 때 검종의 제자들은 이 검법을 가지고 몇명의 기종의 고수들을 죽였다. 그후 기종의 제자들은 검종의 제자들을 살육하고 화산파의 장문자리를 빼앗아온 후 기종의 고수들은 자세히 이 삼식고초인 탈명연환삼선검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그날 싸움을 할 때 이 삼식연환의 위력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를 할 때 모든 사람들은 이 삼초의 검법을 마교의 검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검법이 정묘한 나머지 자기파에서 주장한 이기어검(以氣馭劍)의 변할 수 없는 이치를 망각하고 모두들 멋지다고 말을 했으며 마음속으로는 감탄을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악불군과 영호충 두 사람이 검을 들고 싸우고 있을 때 악 부인은 벌써 상심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이 삼초식을 쓰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해 검종과 기종의 동문들이 서로 싸운 것은 바로 이 기공을 중히 보아야 한다. 또 이 검법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각자의 주장 때문에 일어난 사건인데, 남편의 화산기종의 장문으로서 검종의 최고의 무공을 쓰다니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간파했다면 이 어찌 사람들이 멸시하고 입에 오르내리지 않겠는가. 아, 그가 이 초식을 쓴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러했지만 사실 그는 충아의 적수는 아니다. 확연한 사실인데 왜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지모르겠구나.)

 

앞으로 나아가 막고 싶었으나 이 일은 화산일파의 일일 뿐만 아나라 많은 것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려다가 멈추고 칼자루를 손에 얹고 걱정이 되어 마음이 활활 타는 것 같았다.

악불군은 우측 손을 들어 올려 나무 기둥에서 장검을 뽑았다. 영호충은 나무 기둥에 서서 몸을 돌려 나오지 않았다. 악불군은 그가 그대로 나무 기둥 뒤에 숨어서 더 이상 몸을 내밀어 접전을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무서워하는 꼴이고 자기의 체면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았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말했다.

 

[제자는 어르신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그만 그치는 게 좋겠읍니다.]

 

악불군은 흥 하고 콧방귀를 꿨다.

임아행은 말했다.

 

[스승과 제자의 사이라 승부가 오늘은 나지 않겠읍니다. 방장대사, 우리의 세판의 시합은 쌍방이 비긴 걸로 합시다. 내가 당신에게 사죄를 할테니 여기서 그만 헤어지는 게 어떻습니까?]

악 부인은 암암리에 한숨을 쉬고 내심 말을 했다.

 

(이번 시합은 분명히 우리 편에서 졌다. 임 교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바램이 없겠구나.)

 

방증은 말했다.

 

[ 아미타불, 임 시주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우리 모두들을 위해서 참으로 좋겠군요. 이 소승은 아무런 의견......]

의견이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냉선은 갑자기 말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이 네 사람이 하산하여 그로부터 강호의 위협을 주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라고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 네 명의 손은 수천 수만 사람의 피로 물들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천하의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방관하는 것이 아닙니까? 악 사형은 앞으로 화산파의 장문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방증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건......]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악불군은 기둥 뒤로 돌아가 검을 쳐들고 영호충을 향해서 내리쳤다.

영호충은 몸을 잽싸게 피하였다. 수초 사이에 두 사람은 다시 법당 가운데에서 겨루는 형국이 되었다. 악불군은 검을 빨리 휘둘러 공격을 하였으며, 영호충은 막거나 또는 피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이십여 초식이 지나자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시합의 승부는 결국 나기는 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가 배고픔을 견디느냐에 따라 구분이 되겠지요. 아마 칠팔일 정도 계속 싸운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승부가 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이 말이 비록 과장적이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싸운다면 아마 몇시간 안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아행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 악이라는 늙은이가 체면을 불구하고 이렇게 붙잡고 늘어진다면 그는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은 약간만 소홀히해도 그때는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오래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가 불리할 것이다. 내가 암시를 좀 해쥐야겠구나.)

그래서 말했다.

 

[상좌사, 우리는 오늘 이 소림사에 와서 눈을 뜨고 견문을 넓히게 되었소.]

 

상문천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림의 최고의 인물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 중의 한분은 더욱 대단한 사람입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어느 분 말씀이십니까?]

 

임아행은 말했다.

 

[이 사람은 하나의 신공을 연마했는데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네.]

 

상문천은 말했다.

 

[무슨 신공입니까?]

 

임아행은 말했다.

 

[이 사람이 연마한 신공은 금검조 철면피 신공이네.]

상문천은 말했다.

 

[저는 금종조 철포삼(金鍾?鐵布杉)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러나 금검조 철면피라는 말을 들어본 것이 없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금종조 철포삼의 공력을 연마하면 칼이나 창이 몸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 금검조 철면피의 신공은 단지 한 개의 얼굴가죽을 두껍게 하기 위해서 연마한 것이지.]

 

상문천을 말했다.

 

[이 금검조 철면피의 신공은 어느 문파의 공력인지 모르겠군요.]

 

임아행은 말했다.

 

[이 공력은 대단한 것이오. 그것은 서악 화산파 장문인인 강호에서도 이름이 쟁쟁한 악불군 선생께서 창안하신 거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제가 평소에 듣기로는 군자검 악 선생은 기공이 대단하시고 검술이 이 세상에서 당할 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 소문이 헛소문은 아니군요. 이 금검조 철면피 신공을 연마하면 얼굴 가죽이 두꺼워 검이나 창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걸 가지고 어디다 쓰는지요?]

 

임아행은 말했다.

 

[그 용도야 말할 수 없이 많겠지. 우리는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니 확연히 알 수는 없지.]

 

상문천은 말했다.

 

[악 선생이 창안한 이 신공은 그로부터 강호에 이름이 휘날릴것이고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물론 그렇지. 우리들이 앞으로 화산파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 철면피 신공을 정말 주의해야 되네.]

 

상문천은 말했다.

 

[녜, 저는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조심을 하겠읍니다.]

그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이 마치 광대들의 놀음 같았고 마음껏 악불군을 풍자하고 있었다. 여창해는 이 말을 듣고 계속해서 킥킥 대었으며, 악 부인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악불군은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못들은 척했다. 그가 일검을 내리치자 영호충은 좌측으로 잽싸게 피했다. 악불군은 몸을 비스듬히 하여 우측으로 향했다. 장검을 비스듬히 하여 갑자기 고개를 돌려 검끝을 맹렬하게 내리쳤다. 화산 검법 중에 낭자회두라고 부르는 묘수였다. 영호충은 검을 들어 막았다. 악불군의 검은 허공에서 나는듯이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창송여객의 일초였다. 영호충은 검을 휘둘러 막았다.

싹싹 악불군의 두검이 들어오자 영호충은 뒤로 두 발짝 물러나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외쳤다.

 

[사부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영호충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낭패한 모습을 띠자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그의 사부의 이 삼검은 평범하고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어찌해서 영호충은 그리 쩔쩔매고 있다는 말인가.)

 

여러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악불군이 사용하는 이 삼검은 바로 영호충과 악영산 두 사람이 검을 연마할 때 창안한 충영검법이라는 것을, 당시 영호충의 마음은 하나였고 장차 소사매와 한쌍의 원앙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악영산도 그에게 참 잘 대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때 마음속으로 아이들과 같은 유치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악불군 부부가 전해준 무공은 작들말고도 많은 문하의 동문들이 사용할 줄 알므로 이 충영검법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두 사람만 쓸 줄 알아 그래서 이 검법을 사용할 때 마음속으로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뜻밖에 이때 악불군이 이 삼초의 검법을 사용하자 영호충은 갑자기 손과 발을 어찌할 줄을 모르고 부끄러웠으며, 또한 상심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소사매와 나는 벌써 정이 끊어진 지 오래인데, 당신은 이 검법을 사용하여 나로 하여금 옛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마음에 혼란이 일어나게 하는구나. 자 죽이십시오.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럴 바에는 오히려 죽는 것이 상쾌할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악불군의 장검이어서 내리찔러 들어왔다. 이 일초는 바로 농옥취소(弄玉吹蕭)였다. 영호충은 이 초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서도 그 초식을 막을 수 있었다. 악불군은 이어서 다음 초식인 소사승룡(蕭史乘龍)을 썼다. 이 두개의 초식이 서로 어울리자, 사태가 매우 오묘하였다. 특히 소사승룡의 초식은 장검이 춤을 추듯 마치 용이 허공을 뚫고 날아가듯 아름다웠고 우아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춘추시대의 진목공(秦穆公)에게는 농옥(弄玉)이라고 부르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퉁소를 제일 좋아하였다. 용을 타고 내려온 소사(蕭史)라는 청년은 이 퉁소를 다루는 기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 농옥이라는 여자에게 퉁소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진목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딸을 이 청년에게 시집을 보내었다. 승룡쾌서(乘龍快壻)의 이 고사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나중에는 부부가 모두 신선이 되어 화산 중봉에 기거하였다.

화산 옥녀봉에는 인봉정(引鳳亭)이 있으며, 중봉에는 옥녀사(玉女祠), 옥녀동(玉女洞), 옥녀세두분(玉女洗頭盆), 소장대(梳裝臺)가 있는데 모두 이 전설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 장소들은 영호충과 악영산 두 사람은 셀 수 없을정도로 많이 가 보았으며, 소사와 능옥의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뜻을 새기고 또 새겼던 것이다.

지금 악불군이 이 소사승룡의 초식을 쓰자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무의식 중에 그 초식을 막았다. 단지 생각하기를, (사부께서는 왜 이 초식을 썼을까? 그는 내가 마음이 산란한 때를 틈 타서 나를 죽이려는 것일까?)

 

악불군은 이 일초식을 쓴 다음 또다시 낭자회두를 썼으며, 또 창송여객, 충영검법을 쓰고 바로 이어서 농옥취소, 소사승룡의 검초를 썼다. 고수들은 시합할 때 설령 수천합을 겨루더라도결코 초식이 중복됨이 없다. 초식을 써서 상대방이 그 초식을 깨뜨리면 더이상 그 초식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쓴다면 오히려 상대방이 그 초식을 알아 그 틈을 타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다. 악불군은 이 몇 초식을 쓰고 또 쓰고 반복하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실로 어안이 벙벙하였다.

영호충은 악불군이 두번째로 소사승룡의 초식을 쓰고 또다시 충영검법을 쓰자, 갑자기 뇌리에는 무엇인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 그 뜻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사부는 이 검법으로 나를깨우치고 있구나. 내가 사악함을 버리고 바르게 돌아온다면 떠돌이가 다시 고향을 찾듯 다시 화산문하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화산에는 몇 그루의 고송이 있는데 이 소나무의 잎사귀는 아래로 축쳐져 마치 두 발을 내밀어 산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듯 하여 이 소나무를 영객송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창송여객의 초식은 바로 이 몇 그루의 소나무 형상에서 변화된 것이다. 그는 생각하였다.

 

(사부께서는 지금 내가 다시 화산 문하에 들어온다면 동문들이 환영할 뿐만 아니라 산에 있는 소나무조차도 나를 환영항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속에서 번개같이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사부께서는 내가 화산 문하에 들어올 수 있을 뿐만아니아 자기 딸을 나에게 맺어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께서 그 충영검법을 쓰신 것은 분명히 그런 뜻을 내초하고 있는 것인데 단지 내가 멍청해서 깨우치지 못하자, 농옥취소, 소사승룡의 초식을 쓰신 것이다.)

 

화산에 들어가고 또한 악영산을 아내로 맞는다는 일은 그각 지금까지 품어왔던 최대의 소원이었다. 갑작스레 사부는 천하의 고수들 앞에서 이 두가지의 일을 허락하신 것이다. 비록 말로써 그뜻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이 몇 초식의 검법에서 이미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는 약속을 제일 중히 여기고 한번 한말은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자기에게 다시 문하로 들어오라고 허락하고 또한 딸을 주어 아내로 삼으라고 약속을 했다면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으며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삽시간에 기쁨과 희열의 정이 가슴 속애 충만되었다.

 

그는 악영산과 임평지의 애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자기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녀간의 결혼이란 모두 부모의 명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딸은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없는 것이 수백년 동안 내려오는 풍속인 것이다. 악불군이 딸을 그에게 중다고 약속을 한다면 악영산은 절대로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내가 다시 화산 문하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하늘과 땅에 감사할 일이고 더우기 소사매를 배필로 얻는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복이다. 소사매가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나 내가 그녀에게 순종을 하고 날짜가 지나면 틀림없이 나의 지성에 감동이 되어 천천히 마음이 돌아설 것이다.)

 

그는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자, 얼굴에는 웃음끼가 돌았다. 악불군은 또 낭자회두, 창송여객의 두 초식을 계속해서 썼다. 검초는 그때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영호충은 불현듯이 생각에 잠겼다.

 

(사부께서 나같은 떠돌이 부랑자에게 돌아오라고 하신 것은 틀림없이 조건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바로 검을 버리고 졌다고 인정을 해야만이 비로소 다시 문하로 거두어주실 것이다. 나는 화산에 가야 하고 소사매와 성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인생은 무엇을 더 구하겠는가? 그러나 영영, 임교주, 상형님은 어찌된다는 말이냐? 이 시합에 진다면 그 세 사람은 소실산에 머물러야 하고 어쩌면 죽음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르는데, 내가 나의 욕심만을 채우려하고 그들을 저버린다면 내가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기도 모르게 등에는 식은 땀이 주르르 흘렀으며 눈앞이 컴컴해졌다. 악불군의 장검이 자기의 가슴을 향해 들어오고 이어서 검끝이 밀려 들어왔다. 바로 농옥취소의 초식이었다.

영호충은 내심 또 동하였다.

 

(영영은 나를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나는 결국 그녀의 위험을 보고도 못본 체하는구나. 이 세상에 나와 같은 박정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아무리 어찌해도 영여의 나에 대한 정을 저버릴 수는 없다.)

 

갑자기 머리속이 혼미해지며 쨍강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장검이 땅에 떨어졌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자들은 일제히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영호충의 몸이 비틀비틀 하면서 눈을 떠 보자, 악불군은 마침 뒤로 물러나고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우측 팔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며, 다시 자기의 장검을 보자, 검끝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비로소 조금 전에 자기의 심기가 혼란할 때 무의식 중에 공격해 들어오는 검을 막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독고구검의 검법을 써서 악불군의 우측 팔을 찔렀음을 알았다. 그는 즉시 장검을 버리고 땅바닥에 꿇어 앉아 말했다.

 

[사부님, 저는 백번 만번 죽어 바땅합니다.]

 

악불군은 발을 날려 그의 가슴팍을 적중시켰다. 무섭고 매서운 다리가 날아오자, 영호충은 몸이 허공에 붕 뜨고 눈앞이 컴컴해지더니 곧바고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귓속에는 펑소리가 나면서 몸이 땅에 떨어져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호충은 몸이 점점 추워오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 앞에는 빛이 어른거렸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영영이 기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정신이 드셨군요.]

 

영호충은 다시 눈을 뜨자 영영의 눈이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호충은 일어나 앉으려 했다.

영영은 손을 흔들고 말했다.

 

[조금만 더 드러누워 쉬세요.]

 

영호충은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는 산 동굴 속에 있고 동굴 밖에는 불이 지펴져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가 사부에게 얻어 맞았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물어봤다.

 

[나의 사부와 사모님은 어디 있소?]

 

영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그래도 사부를 찾고 계시는군요.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염치없는 사부는 없을 겁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양보를 했는데 그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읍니다. 그자의 다리를 분질러 놓아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영호충은 깜짝 놀라 말했다.

 

[나의 사부는 다리가 끊어졌읍니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아직 흡성대법을 쓸 줄 모르신대요.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고 그러세요.]

 

영호충은 중얼중얼 말했다.

 

[내가 사부님을 찌르고 또 다리를 잘라놓다니. 정말로...... 정말로......]

 

영영은 말했다.

 

[당신은 후회하십니까?]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죄송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 만약 사부와 사모님이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죽었을 것이고, 오늘의 내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은혜를 복수로 갚았으니 정말 짐승보다도 못하다.)

 

영영은 말했다.

 

[그는 몇번이고 당신을 죽이려고 했읍니다. 당신이 이렇듯이 그것을 참고 양보하신 것은 이미 사부에 대한 은혜에 보답했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에 가서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악씨 부부가 당신을 키우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이 강호에서 거지가 되었을지라도 절대로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을 화산 문하에서 쫓아내어 사제간의 정은 이미 끊어졌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자 목소리가 작아졌다.

 

[오라버니, 당신은 나 때문에 사부와 사모님에게 죄를 지었군요. 난...... 난 마음속으로......]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뺨이 새빨개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계집아이처럼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하였으며, 동굴 밖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자 정말로 말할 수 없이 귀여웠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좌측 손을 꼭 쥐고 탄식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만 좋을지 몰랐다.

 

[당신은 어째서 탄식을 하세요? 당신은 나를 안 것을 후회하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가 어찌 후회를 하겠읍니까? 당신은 나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소림사에 바쳤는데 나는 이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당신의 은혜에 보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영은 그의 두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당신은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나를 다른 사람으로 여기시고 있군요.]

 

영호충은 내심 부끄러웠다. 마음속에는 확실히 그녀와의 어떠한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말을 잘못했읍니다. 오늘부터는 이 마음은 당신만을 위할 것이오.]

 

이 말이 입밖에 튀어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소사매는, 소사매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소사매를 잊어야 한단 말인가?)

 

영영의 눈빛 속에는 기쁨이 이글거렸다.

 

[오라버니, 당신의 이 말은 진심의 말입니까? 아니면 나를 놀리시는 겁니까?]

 

영호충은 이때 더이상 악영산에 대해서 생각을 않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래서 진심으로 말을 했다.

 

[내가 만약 당신을 놀린다면 밝은 대낮에 날벼락을 맞을 것이고, 또 곱게 죽지 못할 것이오.]

 

영영은 좌측 손을 천천히 뻗어 영호충의 손을 꽉 쥐었다. 일생에서 바로 이 시각이야말로 가장 귀중하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마음이 구름을 타고 훨훨 나는 듯하였다. 이 세상이 다하도록 영원히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를 빌었다. 한참 지난 뒤에 천천히 말했다.

 

[우리 무림 사람들은 운명적으로 곱게 죽지 못할 팔자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나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나는 당신이 벼락을 맞고 죽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내가...... 내가 차라리 내손으로 당신을 죽이겠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한참 멍 하니 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생명은 당신이 구해준 것이고, 벌써 당신에게 귀속되었소. 당신이 어느 때라도 가져 가시오.]

 

영영은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당신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아리고 하는데 과연 말하는 것이 점잖치 못하고 장난스럽군요. 그런데 나는 무슨 연분인지 내가 바로...... 바로 당신과 같은 떠돌이를 좋아하게 되었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당신에게 경박하게 굴었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정말로 당신에게 경박한 행동을 할 것이오.]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영영의 두발이 땅을 박차면서 몸은 수척 밖으로 날아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을 좋아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점잖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나를 분별없는 여자로 보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잘못본 것입니다.]

 

영호충은 점잖은 체 말을 했다.

 

[내가 어찌 감히 당신을 경박한 여자로 볼 수가 있읍니까? 당신은 나이가 지긋하고 덕망을 쌓고, 나로 하여금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 할머니이십니다.]

 

영영은 피식 하고 웃었다. 처음 영호충을 만났을 때 그는 계속해서 자기를 할머니라고 불렀고 진심으로 공경했던 정경이 머리에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오르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영호충과의 거리는 삼사 척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당신을 경거망동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니 앞으로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할머니라고 부르겠읍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 착하구나. 귀여운 손자야.]

 

영호충은 말했다.

 

[할머니, 내 마음속에는......]

 

영영은 말했다.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세요. 앞으로 육십 년 뒤에 가서 불러도 늦지는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만약 지금부터 육십년 동안 계속해서 당신을 그렇게 부른다면 이 일생을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영영은 마음이 흔들거려 깊이 생각하였다.

 

(정말로 그와 육십년 동안 지낸다면 이 세상에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영호충은 그녀의 옆 모습을 쳐다보았다. 코는 약간 치켜 세워지고 긴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은 아리따웠으며 피부는 부드럽고 온화하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정말로 귀엽고 아리따운 아가씨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천 수만의 강호의 호걸들과 억센 사니이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또한 두려워하는가? 또한 기꺼이 그녀를 위해서라면 불속에도 뛰어든단 말인가?)

 

물어보려고 했으나 지금 이 시간에 그런 말을 하면 너무 살풍경 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하려다가 우뚝 멈추었다.

영영은 말했다.

 

[당신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합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어째서 노두자, 조천추 등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하고 있읍니까?]

 

영영은 픽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도 당신이 그 말을 확실하게 물어보지 않는다면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읍니다. 아마 당신은 마음속으로 나를 요망한 계집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신통하고 착한 살아있는 신선으로 보고 있읍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말끝마다 장난끼가 섞여 있군요. 사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소워 못되지도 않고 떠돌이도 아닙니다. 단지 장난을 좋아하니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떠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할머니라고 불렀을 때도 내 말투가 그러했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평생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당신을 평생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라고는 부르지 않겠어요.]

 

영영의 얼굴에는 홍조가 띠었고, 마음은 심히 달콤하였다.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다라고 있었읍니다. 입속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번질번질한 것은 싫습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은 내 이빨에 기름이 묻을까봐 염려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당신이 평생 나에게 밥을 지어줄 때 반찬에는 기름을 넣지 마세요.]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밥을 지을 줄 모릅니다. 개구리 고기조차도 태워 먹었는걸요.]

 

영호충은 그날 두 사람이 황야의 벌판에서 개구리 고기를 구워 먹었을 때를 생각하였다. 지금 이 시각에 다시 그 옛날을 추억속으로 들어가자 마음속에는 끈끈한 그 무억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이 내가 밥 태우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동안 당신을 위해서 밥을 지을 거예요.]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이 지은 거라면 설사 날마다 태운 밥을 먹는다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소?]

 

영영은 가볍게 말을 했다.

 

[그렇게 장난을 좋아하시면 끝까지 한번 해보세요. 사실은 당신이 내가 재미있도록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도 마음이 펴지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교차되어 한참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 니난 뒤에 영영이 천천히 말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본시 일월신교의 교주입니다. 아마 당신은 벌써 알았을 것입니다. 후에 동방아저씨...... 아니, 동방불패, 나는 계속해서 그를 아저씨라고 불러 왔기 때문에 입에 습관이 되었읍니다. 그는 흉악한 흉계를 꾸며 아버지를 구금해 놓고 모두들에게 속였지요. 아버지가 밖에서 돌아가실 때 그가 교주의 자리를 맡도록 유언을 하셨다고 말을 했읍니다. 당시 내 나이는 아직 어리고 동방불패라는 자는 교활하고 영리해서 일을 아무런 빈틈도 없이 처리했지요. 나는 추호도 의심을 할 수가 없었읍니다. 동방불패는 사람의 이목을 막기 위해서 나를 아주 대단하고 예의바르게 접대해 주었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간에 그는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일월신교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았고 권력도 가질 수가 있었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 강호의 호걸들이 모두가 일월신교의 사람들입니까?]

영영은 말했다.

 

[그들은 정식적으로 가입한 교도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우리 교파에 편입이 되고 그들의 수령은 대부분 우리교의 삼시뇌신단(三尸腦神丹)을 복용하였지요.]

 

영호충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날 그가 고산매장에서 마교의 장로인 포대초와 진위방 등은 임아행의 그 빨간색 삼시뇌신단을 보자 금방 겁에 질리고 정신이 달아나는 듯한 그러한 정경이 눈앞에 선하자 자기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렸다. 영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삼시뇌신단을 복용하면 해마다 한번씩 약을 먹어 독을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이 발작을 하여 심히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지요. 동방불패는 그 강호호걸을에게 매우 엄격하게 대했읍니다. 약간이라도 그의 뜻을 거슬리기만 하면 바로 그 약을 거머쥐고 나눠주지 않았지요. 항상 내가 가서 애걸을 하여 그 해독약을 얻어다가 그들에게 주었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당신은 그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군요.]

영영은 말했다.

 

[ 은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그들이 나한테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애걸을 하니 내 마음이 약해져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읍니다. 알고 보니 이것 또한 동방불패라는 자가 사람들의 이목을 막기 위한 하나의 계책이었읍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가 그가 나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지요. 그렇게 되니 자연 그가 교주의 자리를 찬탈한 것을 의심하는 자가 없었읍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정말로 치밀한 자이군요.]

 

영영은 말했다.

 

[그러나 항상 나는 동방불패에게 가서 부탁하는 일이 너무나 번거러웠읍니다. 더우기 교파 안의 사정도 예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지요. 사람들은 동방불패를 보기만 하면 아첨하고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녔읍니다. 재작년 봄에 나는 더이상 교파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또 동방불패에게 가서 그들을 위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사질인 녹죽옹과 함께 산천경계를 구경하려고 나왔었읍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신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그녀는 영호충은 한번 쳐다보았다. 그 옛날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하자,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마음속에는 감회가 깊었다. 한참 지난 뒤에 말을 이었다.

 

[소림사에 온 수천 수만의 호걸들은 물론 그들 모두가 내가 얻어온 해독약을 먹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의 친지나 친구들, 문하의 제자, 그리고 그들이 속한 파 등은 자연히 나를 따랐지요. 더우기 그들이 소실산에 온 것이 나 때문에 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영호대협의 부름이 있자, 그 누구도 감치 거역하지를 못했겠지요.]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입을 막고 웃었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으면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농담하고 사람을 놀리는 재주는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읍니다.]

 

영영은 킥킥 웃어댔다. 그녀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일월 신교의 사람들은 그녀를 공주처럼 대해주었고, 누구도 그녀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으며, 나이가 먹은 사람일수록 더욱 잘 따라 주었고, 감히 한 사람도 그와 우스개소리를 하는 자가 없었다. 지금 영호충과 이렇듯이 농담도 하고 우스개소리를 하자, 평생동안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꼈다. 한참 뒤에 영영은 머리를 벽쪽으로 향하더니 말을 했다.

 

[당신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소림사에 나를 영접하러온 일에 대해서 나는 물론 내심 기뻐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자들은 배후에서 나를 비웃고 있었어요. 내가 당신을 한없이 좋아하는데, 당신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곳곳에서 염문을 뿌리고 마음 한구석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다.

 

[당신이 이번 일을 이렇게 하므로써 결국 나의 체면은 약간 세워졌읍니다. 나는...... 나는 설령 죽어도 그러한 은혜를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업고 소림사에 온 일을 나는 당시 조금도 몰랐읍니다. 나중에 서호의 밑바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빠져 나왔을 때에 항산파의 일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가까스로 사실을 알아내고 다시 당신을 마중하러 온 것입니다. 이미 당신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주었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나는 소림사 뒷산에서 별다른 고통을 받지 않았읍니다. 나 혼자서 한칸의 석실에 기거하고 십일마다 스님 한분이 나에게 쌀과 장작을 갖다 주었지요. 이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보지 못했읍니다. 그런데 정한, 정일 두분의 사태가 소림사에 도착하여 방장을 만나봤을 때 비로소 그가 당신에게 역근경을 전수해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지요. 나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화를 내고 그 늙은 중에게 욕을 해대었읍니다. 그때 정한 사태가 나를 달래고 당신이 편안하고 아무일 없다는 말씀을 해주었읍니다. 또 두분의 사태가 소림사에 온 것은 방장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 였다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은 사태의 그러한 말을 듣고 방장대사에게 욕을 하지 않았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소림사 방장은 내가 그에게 욕하는 소리를 듣자 단지 웃을뿐 화도 내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여시주 소승은 그날 영호소협에게 소림 문하에 들어온다면 나의 제자로 간주하고 우리 소림사 역근경의 내공을 전수하여 그의 체내에 진기를 없애주려고 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거절을 하여 더 이상 권할 방법이 없었읍니다. 더우기 당신이 그날 그를 들쳐업고 소림사에 오셨을 때는 숨이 금방이라고 넘어갈 듯하였으나 하산할 때는 비록 내상이 완전히 완치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이 회복되어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요. 소림사도 영호소협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읍니다.' 방장대사의 이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지요. 그래서 나는 말했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나를 이 산에다 묶어두고 있었읍니까? 출가한 사람들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사람을 속인 일이 아닙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속여서는 안 되었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 늙은 화상은 또 한바탕 이치를 떠들기 시작했읍니다. 나를 소실산에 머무르게 한 것은 불법의 이치로 나의 무슨 업보를 씻어 주려고 했다나요. 정말로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피치못할 업보가 있겠소.]

영영은 말을 했다.

 

[내 앞이라고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지 마세요.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업보가 있긴 있읍니다.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지요. 그러나 당신은 마음을 놓으세요.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 발작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께서 다른 눈으로 저를 보아주니 정말로 감사하기 짝이 없군요.]

 

영영은 말했다.

 

[당시, 나는 그 노승에게 말을 했죠. `당신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우리들과 같이 젊은 사람에게 기만을 하거나 속인다면 그 결과가 좋지는 않을 것이오.' 그 노승은 말씀하시기를 `그날 당신이 스스로 소림사에 와서 영호소협의 생명과 바꾸기를 원하지 않았소. 우리들은 비록 영호소협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손한번 쓴 적이 없소이다. 항산파 두분의 사태에게 듣기로는 영호소협께서 근래에 강호에서 실로 적지 않은 의로운 일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소. 그래서 소승도 그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오. 항산 두 사태 체면을 보아 당신을 풀어주는 것이니 당신은 바로 하산을 하시오.' 그는 또 나에게 백여명의 강호의 친구들을 석방해 주기로 약속을 하였지요. 나는 그가 나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하도 고마워 그에게 몇번이고 절을 했읍니다. 나중에 소림에서 내려왔을 때 만리독행 전백광이라는 자를 만났지요. 그 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수천 사람을 이끌고 소림사로 나를 구해주러 온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두분의 사태는 말씀하시기를 소림사가 곤란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수수방관 할 수가 없다고 하였읍니다. 뜻밖에 마음씨가 자상한 두 분의 사태께서 소림사에서 돌아가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읍니다.]

 

말을 하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왜 이렇듯 악랄한 수법을 썼는지 모르겠읍니다. 두분의 사태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고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어째서 상처의 흔적이 없을까요. 나와 아버지, 상 아저씨가 절안에서 두분의 사태 시신을 봤을 때 나는 그들의 옷을 벗겨 살펴보았읍니다. 두 사람의 가슴에는 바늘 크기 모양의 빨간 점이 있었읍니다. 틀림없이 강침(岡針)에 맞아 돌아가신 것 같았습니다.]

영호충은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말을 했다.

 

[독침에 맞았다고요? 무림 중에서 누가 독침을 사용할 줄 압니까?]

 

영영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버지와 상 아저씨는 견문이 매우 넓지만 그들도 모르고 있읍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이 침은 독침이 아니고 사실은 한개의 병기라고 합니다. 사람의 급소에 맞으면 치명상을 줄 수가 있다고 합니다. 단지 그 침은 정한 사태의 가슴에 약간 비뚤게 박혔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내가 정한사태를 봤을 때 그녀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읍니다. 이 침이 똑바로 박혀 암살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정면에서 겨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두분의 사태를 죽인 자는 틀림없이 무공이 높은 고수들입니다.]

 

영영은 말했다.

 

[아버님도 그렇게 말씁하셨읍니다. 이러한 단서가 있는데 범인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손바닥으로 산동굴의 벽을 힘껏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영영, 우리 두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두분 사태의 복수를 해줍시다.]

 

영영은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영호충은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러나 사지가 평상시처럼 활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가슴도 아프지 않아 마치 상처를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이건 이상하구만, 나의 사부가 나를 걷어찼는데 아무 데도 상처가 나지 않은 것 같아.]

 

영영은 말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이미 적지 않은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하여 내공이 당신 사부보다 월등하다고 합니다. 단지 당신은 내공을 운행시켜 사부와 겨루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내공이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아주 가볍다고 했읍니다. 상 아저씨는 당신이 혼절하고 있을 때 내공을 써서 당신의 내공을 운행시켜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도록 했읍니다. 그래서 아주 빠르게 상처가 치유된 것이지요. 사실 당신의 사부는 왜 다리가 부러졌는지 참 이상하기 짝이 없읍니다.

아버지께서는 한참 동안 생각하셨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의 내공이 사부가 걷어차자 감히 반격하여 사부의 발을 부러뜨렸는데 그게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오?]

 

영영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하면 비록 몸을 보호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반드시 스스로 내공을 운행해야만이 비로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군요.]

 

그는 그 안의 이치를 확실하게 몰랐으나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사부가 상처를 받고 많은 고수들 앞에서 체면이 깍였다는 생각이 들자 실로 마음속으로 죄스러울 뿐이었다.

순간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동굴 밖에서 나무가 탈 때 퍽퍽 하고 풍진이 터지는 소리가 날 뿐 이었다. 둥굴 밖에는 큰 눈이 펄펄 내리고 소실산에 있을 때보다 더욱 크게 내렸다.

 

갑자기 영호충은 동굴 밖에서 나는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즉시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봤다. 영영의 내공은 영호충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숨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영영은 그의 표정을 보고 물어보았다.

 

[무슨 소리를 들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좀전에 나는 숨소리를 들었읍니다. 아마 사람이 오는 것 같소이다. 그러나 숨소리는 급하고 짧아 그 사람의 무공이 심히 약한 듯하니 그리 염려할 바가 못됩니다.]

 

그리고 나서 물어 봤다.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영영은 말했다.

 

[아버지와 상 아저씨는 나가서 좀 거닐겠다고 하셨읍니다.]

이 말을 할 때 그녀의 얼굴은 붉혀졌다. 그것은 아버지가 고의로 피해 영호충이 깨어났을 때 그와 예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 주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또 몇번인가 숨소리를 들었다.

 

[우리 나가서 한번 살펴봅시다.]

 

두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갔다. 상문천과 임아행 두 사람이 눈을 밟은 발자국이 이미 새로 내린 눈에 덮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영호충은 두줄의 발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숨소리는 바로 저쪽에서 들려옵니다.]

 

두 사람은 발자국을 따라 십여 장을 걸어갔다. 산허리를 돌아보니 밭에는 임아행과 상문천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였다. 두 사람의 깜짝 놀라 동시에 달려갔다. 영영은 외쳤다.

 

[아버지!]

 

손을 내밀어 임아행의 좌측 손을 들어 당겼다. 막 아버지의 피부와 맞닿았을 때 온몸에 전률이 일어나며 찬줄기의 차가운 기가 그의 손으로 전달되어 왔다. 놀래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어째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으며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내심 무었인가 깨달았다. 아버지는 좌냉선의 한빙진기를 맞고 나서 억지로 자제를 했으나 지금에 이르러 차가운 기가 발작한 것이다. 상문천은 있는 힘을 다해서 그녀의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임아행은 소림사에서 어떻게 좌냉선의 흉계에 말려들고 혈도가 봉쇄당했는가를 하산을 한 다음 그녀에게 간략하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영호충은 아직까지 사태를 짐작하지 못했다. 흰눈에 반사되는 빛에서 임아행과 상문천 두 사람의 안색이 극히 신중한 것이 보였고 이어서 임아행은 깊이 숨을 몰아 쉬었다. 비로소 조금 전의 숨소리는 그가 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영영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고, 즉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좌측 손을 거머쥐자 금방 한줄기의 차가운 냉기가 몸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는 임아행이 적의 차가운 내력을 맞아 지금 있는 힘을 다하여 발산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서호 감옥 속에 갇혀 있을 때 철판에 씌여져 있는 산공지법(散功之法)의 방법을 따라 몸 속으로 뚫고 들어는 차가운 기를 천천히 완화시켰다.

임아행은 그의 도움을 받자, 마음속으로 안심이 되었다. 상문천과 영영의 내공은 그와 다른 길이었으며, 단지 차가운 기를 막을수 있을 뿐 완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 온힘을 동원하여 기를 운행시켜 온몸이 얼음으로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고, 차가운 한기를 발산시킬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힘이 들고 견딜 수가 없었다. 영호충의 이 운공지법(運功之法)은 마치 아궁이 속에서 타는 장작을 꺼낸거와 같았다. 한빙진기를 그의 몸속에서 한줄기 한줄기 꺼내어 바깥으로 발산시켜주었다.

네 사람이 손과 손을 잡고 눈바닥에 서 있으니 마치 얼어붙은 거와 같았다. 큰눈은 네 사람의 머리, 얼굴 위에 떨어져 점점 네 사람의 머리카락, 눈, 코, 옷 등에 쌓이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은 한편으로 기를 운행시키면서 내심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눈이 얼굴 위에 떨어졌는데도 녹지 않을까?)

그는 좌냉선이 연마한 한빙진기가 대단하고, 발산되어 나온 차가운 기가 얼음이나 눈보다도 더 차갑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때 네 사람은 오장육부의 혈액 속에만 따스한 기가 남아 있고, 피부는 마치 얼어붙은 얼음과 같았다. 눈이 몸에 떨어지자, 녹기는 커녕 땅바닥에 떨어진 눈보다도 더욱 빠르게 쌓여갔다.

한참 지나가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고 큰 눈은 여전히 계속해서 떨어졌다. 영호충은 영영이 몸이 약해 이 추운 날씨를 견디기 어려울까봐 걱정이 되었다. 단지 임아행의 체내에 차가운기는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고, 비록 숨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이때 손을 빼야될지, 빼고 나면 다른 변고가 생길지 그것을 몰라 그는 결정할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계속해서 그를 도와 공력을 운행 시켰다. 다행이 영영의 손바닥에서 그녀의 피부가 비록 차갑지만 몸은 떨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기의 손바닥으로부터 그녀의 손바닥에 맥박이 약간씩 뛰고 있음을 느꼈다. 이때 그의 두눈 위에는 벌써 많은 눈이 쌓였고 어렴풋이 날씨가 이미 어두워졌음을 느낄 수가 있었으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기를 운행시켜 한시라도 빨리 임아행의 체내에 쌓여 있는 차가운기가 몸 밖으로 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참 지나자 갑자기 동북 쪽에서 말굽소리가 들려왔다. 말굽소리가 점점 다가오자 말 한필은 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한 마리는 뒤에서 달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어서 한 사람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매, 사매! 내 말 좀 들으시오.]

 

영호충의 귀에는 흰눈이 쌓였지만 분명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바로 사부인 악불군의 목소리였다. 두 마리의 말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또 악불군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연을 모르면서 무작정 그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하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바로 이어서 악 부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스스로 기분이 나빠 그러는데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읍니끼?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러세요.]

 

두 사람의 외치는 소리와 말굽소리를 듣고 악부인이 타고 있는 말이 앞에 있었고, 악불군이 타고 있는 말은 뒤에서 쫓아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심히 이상하였다.

 

(사모님께서 매우 화가 나셨구나. 사부님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구나.)

 

악 부인이 타고 있던 그 말은 똑바로 달려왔다. 갑자기 그녀가 `워워' 하고 소리를 지르자 말이 뚝 멈추며 말 울음소리를 냈다.

틀림없이 그녀가 갑자기 말을 세우자 말이 앞발을 들고 요동을 치고 있는 듯했다. 얼마 있자 악불군이 말을 몰고 달려와 말하기를, [사매, 이 네 개의 눈사람을 보시오. 진짜 사람 같지 않소.]

악 부인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화가 아직 가라않지 않은 듯하였다. 이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도 없는 광야에 어떻게 이런 네 개의 눈사람이 있을까?]

영호충은 생각하였다.

 

(이 허허벌판에 무슨 눈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알았다.

 

(우리 네 사람의 온몸에 흰눈이 쌓여서 사부님과 사모님이 우리들을 눈사람으로 알고 계시구나!)

 

사모님과 사부님이 눈앞에 있자, 매우 난감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였다. 곧 바로 몸이 떨리고 공포감이 일어났다.

 

(사부께서 우리 네 사람을 발견하시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단칼에 우리들을 처치하실 것이다. 그가 지금 우리를 죽인다면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겠는가?)

 

악불군은 말했다.

 

[이 눈에 발자국이 없는 것을 보니 이 네 개의 눈사람은 며칠 전에 쌓아 만든 것 같소이다. 사매, 좀 보시오. 마치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같지 않소?]

 

악 부인은 말하였다.

 

[내가 모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남자 여자의 구분을 하고 있읍니까?]

 

한바디를 톡 쓰고 말을 재촉하여 가려고 하였다. 악 불군은 말 하였다.

 

[사매,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하시오. 이곳 사방에는 아무도 없으니 우리가 여기에서 계획을 짠다면 좋지 않겠소?]

 

악 부인은 말했다.

 

[내가 무슨 성질이 급하다고 그러세요. 나는 화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좌냉선이라는 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당신 혼자 숭산에 가십시오.]

 

악불군은 말하였다.

 

[누가 좌냉선에게 잘 보인다고 그럽디까. 내가 왜 화산파 장문의 자리를 놔두고 숭산파에 들어가 고개를 숙인단 말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래서 더욱 모르겠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좌냉선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지시를 받으려고 합니까? 비록 그는 오악검파의 맹주이지만, 그러나 우리 화산파의 일은 관여할 수가 없읍니다. 오악검파가 하나로 된다면 무림 중에 화산파의 이름이 남아 있겠읍니까? 그 옛날 사부님께서 화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당신에게 주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은사께서는 나에게 화산 일파의 문호를 널리 드높이라고 하셨소.]

 

악 부인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만약 좌냉선의 유혹에 빠져 화산파를 숭산에 귀속시키고 어떻게 지하에 계신 은사를 대하시려고 그럽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닭머리가 될망정 소꼬리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화산파는 비록 작은 파이지만 우리 스스로 문호를 지켜갈 수가 있는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불군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사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항산파의 정일, 정한 두분의 사태무공은 우리 두 사람과 비교할 때 누가 높고 누가 아래입니까?]

악 부인이 말했다.

 

[비교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내가 보건데 비슷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러한 말을 하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내가 보건데도 비슷할 것 같소이다. 두분의 사태는 소림사에서 화를 당했는데 틀림없이 좌냉선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일 것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본래 이미 좌냉선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은 그렇게 높은 공력의 소유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 무당 두파의 장문인은 비록 무공은 높지만 그러나 모두 덕을 쌓은 인사들이라 절대로 사람을 해는 작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숭산파는 여러 차례 항산파를 공격했으나 이루지 못하자 그래서 이번에는 좌냉선이 친히 나섰을 것이다. 임아행과 같은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도 좌냉선에게 패배를 당했는데 항산파 두분의 사태는 그의 적은 물론 아니다.

악 부인이 말했다.

 

[좌냉선이 그짓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게 어쨌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신이 만약 증거를 가졌다면 즉시 정교의 영웅들을 소집하여 일제히 좌냉선에게 죄를 물어 두분의 사태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만이 옳지 않습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그렇게 하자니 첫째로는 증거가 없고, 두번째로는 우리가 약해서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가 없소.]

 

악 부인은 말했다.

 

[우리가 왜 약하단 말입니까? 우리는 소림파의 방증방장과 무당파의 충허도장 두분을 모셔다가 지켜보게 한다면 좌냉선이 감히 어찌하겠읍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아마 두분을 모셔오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항산파 그 두분의 사태처럼 될 것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당신 말씀대로라면 좌냉선이 우리 두 사람을 처치한단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이미 무림에 발을 붙이고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것을 따질 필요가 있읍니까? 앞에 서자니 호랑이가 무섭고 뒤에 서자니 늑대가 쫓아올까봐 두렵다면 강호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읍니까?]

영호충은 암암리에 탄복을 하였다.

 

(사모님은 여자지만 그 호기야말로 어느 남자보다도 뒤지지 않는구나.)

 

악불군이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읍니까? 좌냉선은 암암리에 손을 써 우리 두사람을 영문도 모르게 죽여 놓고 결국은 오악검파를 하나로 만들고 말것입니다. 어쩌면 죄명을 날조하여 우리들 머리 위에 덮여 씌울 것입니다.]

 

악 부인은 아무말 하지 않니했다.

악불군은 또 말하였다.

 

[우리 부부가 죽으면 화산파 문하의 여러 제자들은 좌냉선의 도마 위에 고기가 되지 않겠읍니까? 어찌 반항할 여지가 있겠소이까? 어쨌든 우리는 딸아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 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이미 남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참 지난 뒤에 비로소 말하였다.

 

[우리들은 잠시 좌냉선의 음로를 파해치지 맙시다. 당신 말대로 겉으로는 그들과 친한 척하면서 기회를 보며 행동하기로 해요.]

악불군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안심이 되는 구료. 임평지의 집에서 전해내려오는 벽사검보는 영호충이라는 놈이 가져가 버렸고 만약에 그가 기꺼이 임평지에게 되돌려준다면 우리 화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그 벽사검보를 배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좌냉선이라는 자를 무서워할 필요가 있겠소. 우리 화산파는 지금에 이르러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당신은 어쩌자고 여전히 충아의 검술이 크게 진보한 것을 임평지의 집에서 내려오는 벽사검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소림사에서 방증대사, 충허도장 등의 고인들도 모두들 그의 정묘한 검법은 풍 사숙에게 전수받았다고 말을 하지 않았읍니까? 비록 풍 사숙은 검종이지만 어쨌든간에 그는 우리 화산파의 사람입니다. 충아가 마교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것은 틀림없이 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그에게 벽사검보를 삼켰다고 억울한 누명을 씌울 수는 없읍니다. 만약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의 말을 당신이 여전히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그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까?]

 

영호충은 이렇듯이 사모님이 자기를 위해서 변명을 하자 마음속으로 크게 감격하였다. 금방이라도 눈을 뚫고 나가 그녀를 껴안고 싶었다.

갑자기 그의 머리가 몇차례 울려왔다. 바로 어떤 사람이 손바닥으로 그의 정수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내심 생각하기를, (큰일났구나! 우리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임 교주는 아직 차가운 기를 바깥으로 발산하지 못했는데 사부와 사모님이 손을 써서 우리들을 처치하려 하시는구나. 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영영의 손에서 전해오는 내공이 떨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임아행도 역시 내심 불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수리에서 가볍게 몇차례를 친 후 더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악 부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어제 충아하고 겨루실 때 연속해서 낭자회두,창송영객, 농옥최소, 소사승룡의 네 초식을 썼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악불군은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이 놈의 풍행은 비록 단정치 못하지만 어쨌든 당신이 친히 가르치고 키웠읍니다. 눈앞에 그가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실로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읍니다. 그 떠돌이가 마음을 돌려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는 그가 화산 문하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것입니다.]

 

악 부인은 말하였다.

 

[그 뜻은 나도 알 수가 있었는데 또 다른 두개의 초식을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읍니까?]

 

악불군은 말하였다.

 

[당신은 벌써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또 물어본단 말이오?]

악 부인은 말하였다.

 

[만약에 충아가 기꺼이 기사귀정(棄邪歸正)을 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딸을 그에게 준다는 말입니까?]

 

악불군은 말하였다.

 

[그렇소이다.]

 

악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그러한 뜻을 나타낸 것은 일시적인 흉계입니까? 아니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입니까?]

 

악불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또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악불군은 한편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손으로 눈사람의 머리를 가볍게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네 사람이 그 안에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악불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부의 말은 그 무게가 산과 같은데 내가 이미 허락을 해놓고 반복할 수가 있소이까?]

 

악 부인이 말했다.

 

[그가 마교의 요녀에게 푹 빠져 있는 것을 당신이 모를리가 없을텐데요.]

 

악불군은 말했다.

 

[아닙니다. 그는 그 요녀에게 은혜를 입어 감동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옛날 그 자가 우리 딸에게 대하는 태도와 그 요녀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설마 당신이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악 부인은 말했다.

 

[나도 물론 알 수가 있었읍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는 아직도 우리 딸아이의 정을 못잊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읍니다. 그는 내가 그 몇초식의 검초를 사용한 의미를 알아차렸소. 당신은 그 자가 어떠한 꼴을 하고 있는지 보지 않았읍니까?]

 

악 부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당신은 딸아이를 미끼를 삼아 그가 그 미끼를 물도록 했읍니까? 그래서 그가 스스로 당신에게 져주기를 바라고 있었읍니까?]

 

영호충은 비록 쌓인 눈속에 있지만 사모님의 이 말투 속에 분노와 풍자의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사모님의 입속에서 그러한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악불군 부부는 그를 친자식처럼 대하고 평상시에 말할 때 스스럼없이 아무 말이나 다했던 것이다. 악 부인의 성격이 비교적 급해서 집안 일에 있어서는 어쩌다가 남편과 몇마디 다투고 그러한 적은 자주 있었으나 제자들 일에 관해서 그녀는 지금까지 남편이 장문의 위치에 있으므로 심히 존중하여 그의뜻을 어긴 적이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이렇게 말을 하자 충문히 그녀의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 쌓여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악불군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알고 보니 당신조차도 나의 뜻을 보르고 있구료. 내 작은 명성이 허물어지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화산파의 흥망성쇄는 큰 일이 아닙니까? 내가 영호충을 설득해서 그가 다시 화산파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일거사득이 아니겠소.]

 

악 부인은 말하였다.

 

[무엇이 일거사득이란 말씀입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영호충의 검법은 오묘하기 이를데 없소. 나보다는 몇 수 위지요. 그가 검법을 벽사검보에서 배웠든 풍 사숙에게 전수받았든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만약에 다시 화산에 들어온다면 우리 화산파의 명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고 천하에 떨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번째 큰일이고, 좌냉선이라는 자가 화산파를 집어 삼킬 음모 또한 성사시킬 수가 없고 태산, 항산, 형산파조차도 온전하게 보존할 수가 있으니 이것이 두번쩨 큰일입니다. 그가 다시 정교의 문하에 들어온다면 마교는 강력한 오른팔 하나를 잃을뿐 아니라 오히려 적이 하나 더 생기게 되어 정교를 성할 것이고 사교는 쇠약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세번째 큰일이오. 사매, 내 말이 틀렸소이까?]

악 부인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네번째 일이란 무었입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이 네번째 큰일이란 우리 부부 슬하에는 자식이 없지 않소. 지금까지 충아를 친아들처럼 대하지 아니했소. 그가 나쁜 길로 들어서자 내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소. 내 나이도 이미 적지않소.

이 세상의 명성은 또 무엇에 쓴단 말이오. 그가 진정으로 바른 길로 들어오기만 한다면 우리 일가는 다시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소?]

 

영호충은 이 말을 듣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사부님, 사모님하고 부르고 싶었다. 악 부인은 말했다.

 

[딸과 평지는 의기가 투합되어 있읍니다. 설마하니 당신은 강제적으로 그 두 사람을 끊어놓고 평생토록 딸아이에게 원한을 심어줄 것입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나의 이런 행동은 모두가 딸을 위해서인 것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딸아이를 위해서라고요. 착하고 예의바른 평지는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평지는 비록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충아와 비교할 때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평생 말을 타고 쫓아간다 해도 쫓아갈 수 없을 것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무공이 강하다고 좋은 남편입니까? 나는 진정으로 충아가 마음을 바꾸고 다시 본문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고 경박하면서 술을 좋아합니다. 만약 딸아이가 그에게 시집을 간다면 틀림없이 평생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웠다. 내심 생각하기를, (사모님께서 나를 경박하고 술을 좋아하며 함부로 행동을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진정으로 소사매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악불군은 또 다시 탄식을 하며 말했다.

 

[어쨌든간에 우리는 헛고생을 하였소. 이놈은 이미 깊이 빠져 있으니 우리들의 말은 괜히 한 말이나 다름없소. 사매, 당신은 그래도 화를 풀지 못하였소?]

 

악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물어보기를, [당신 다리는 무척아프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그건 단지 외상일 뿐이니 괜찮소. 우리 곧바로 화산으로 돌아갑시다.]

 

악 부인은 대답을 하였다.

두 사람의 말굽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영호충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졌다. 되풀이해서 사부와 사모님이 주고받은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기를 운행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 갑자기 한줄기의 차가운 기가 손을 통해서 밀려들어와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차가운기가 뼛속에까지 스며들어 급히 내공을 운행하여 막았으나 단번에 너무 급하게 운행했기 때문에 내식은 좌측 어깨에서 막히고 더이상 통과를 하지 못했다. 그는 급히 기를 모아 공력을 운행하였다. 그러나 그가 연마한 흡성대법은 단지 그 쇠철판에 새겨진 요결에 의해서 스승도 없이 스스로 통달한 것으로 여러가지 세밀하고 정묘한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익히지 못했다. 이때 억지로 힘을 쓰자 내식에 오히려 해가 되었다. 먼저 좌측 팔에서 점점 굳어 오더니 이어서 마비의 감촉은 경맥을 통과하여 좌측 겨드랑이 좌측 허리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 좌측 다리가 마비가 되었다. 영호충은 당황한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 마셨다. 그러나 입술도 이미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또 두마리의 말이 질풍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

 

[이곳에 말발굽 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이곳에서 머무른 것 같습니다.]

 

바로 악영산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놀래고 기뻤다.

 

(어떻게 소사매가 이곳에 왔을까?)

 

다른 사람의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은 발에 상처를 입었으니 더 지체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우리 빨리 이 발자국을 따라갑시다.]

 

바로 임평지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맞다. 발자국이 선명할테니 소사매와 임사제가 사부와 사모님을 찾으려고 이 길로 왔구나.)

 

악영산은 갑자기 외쳤다.

 

[좀 보세요. 이 네 개의 눈사람은 퍽 재미있어요. 손과 손을 마주잡고 일렬로 서 있네요.]

 

임평지는 말을 했다.

 

[이 부근에는 인가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눈사람이 있을까요?]

 

악영산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눈사람을 만들어보면 어떻겠읍니까?]

 

임평지가 말했다.

 

[좋아요. 남자 눈사람 하나와 여자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손과 손을 잡게 합시다.]

 

악영산은 말에서 내려 눈을 모아 눈덩이를 쌓기 시작했다.

임평지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사부님과 사모님을 찾는데 긴요할 것 같습니다. 그 두 분을 찾아낸 후에 천천히 눈사람을 만들어도 늦지 않을거예요.]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은 항상 흥을 깨는군요. 아버지는 다리에 상처를 입으셨지만 말을 타면 상관이 없을겁니다. 어머니가 옆에 있으니 아무일 없을 것입니다. 그들 두분이 강호를 휘젓고 다녔을 때에는 당신은 아직 태어나기 전일거예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부님과 사모님을 아직 찾지 못했읍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논다면...... 어쨌든 불안하기 짝이 없읍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좋아요. 당신 말을 들겠읍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를 찾게되면 당신은 나와 함께 두 개의 멋진 눈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하겠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가 틀림없이 당신처럼 어여쁜 눈사람을 만들거예요 라고 말하든지 또는 당신처럼 어여쁜 눈사람을 만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거예요 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그는 단기 그건 물론이예요 라고 말하구 있구나.)

 

다시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임 사제는 신중하기 짝이 없구나. 나처럼 그리 경박하지도 않고 소사매가 만약 나에게 눈사람을 만들라고 했다면 설령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눈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사매는 원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임 사제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구나. 나와 같이 있을 때에는 내가 그러했다면 투정을 부렸을텐데, 지금은 투정도 부리지 않고. 아! 그런데 임 사제의 몸은 크게 나아졌구나. 어떤 자가 그에게 칼을 휘둘렀을까? 소사매는 그 일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지 않았던가.)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악영산과 임평지의 말을 듣고 있어 자기 몸이 굳어져 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렇게되자, 흡성대법의 요결인 무소용심 혼불착의(無所用心渾不着意)의 이치에 딱 들어 맞았다. 좌측다리와 좌측 허리는 마비 상태에서 점점 풀렸다.

악영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 눈사람을 만들지 못할바에야 나는 이 눈사람 위에 몇 글자를 쓰고 싶습니다.]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영호충은 또 깜짝 놀랐다.

 

(그녀가 검으로 우리 네 사람의 몸에 난자를 한다면 그것 참 큰일이구나!)

 

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저어 막으려고 했으나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고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삭삭삭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그녀는 이미 검끝으로 상문천의 몸 밖에 쌓여 있는 눈에 글자를 썼다. 계속해서 글자를 써오더니 영호충의 몸에 이르렀다. 다행히 그녀는 매우 얇게 글씨를 써 눈속의 옷이 드러나지 않았고, 영호충의 살점도 떨어지지 않았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하였다.

 

(그녀가 우리들 몸에다 무슨 글자를 썼는지 모르겠구나.)

 

악영산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도 와서 몇 글자를 쓰지요.]

 

임평지가 말을 했다.

 

[좋습니다.]

 

검을 받아들고 역시 네 개의 몸에다 글씨를 썼다. 역시 우측에서 좌측으로 오면서 영호충의 몸에 이르자 멈추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임평지는 또 무슨 글자를 썼는지 모르겠구나.)

 

악영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맞습니다. 우리 둘은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한참이 흘렀어도 두 사람은 묵묵히 아무 말도 없었다. 영호충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어쨌다는 말인가. 두 사람이 이곳을 떠나고 임교주의 몸에 차가운 기가 깨끗하게 사라져야 나는 비로소 이 눈덩이 속에서 나올 수가 있다. 아 참 큰일났구나. 내가 몸을 움직이면 내 몸에 쌓인 눈이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들이 나의 몸에다 쓴 글자는 부수져서 없어질텐데 만약 네 사람이 동시에 행동한다면 더욱한 글자도 볼 수가 없겠구나.)

 

한참 지난 뒤에서 멀리서 은은하게 말굽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상당히 멀었으나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말굽소리를 듣고 모두가 십여명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아마 화산파의 나머지 사제와 사매들일 것이다.)

 

말발굽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임평지와 악영산은 거기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였다. 그 십여개의 말이 동북쪽에서 달려오면서 수리 바깥에서 일곱여덟 개의 말이 서쪽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양쪽에서 포위를 하면서 들어오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말하였다.

 

(상황을 보아 하니 이 자들은 나쁜 마음을 먹고 있구나.)

갑자기 악영산이 놀래 외쳤다.

 

[어머, 사람들이 오고 있읍니다.]

 

말발굽소리는 심히 급했다. 십여 개의 말이 질풍처럼 달려오더니 이어서 슥슥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면서 두 개의 활이 날아왔다. 두 개의 활은 임평지와 악영산의 말에 적중되어 두 마리의 말은 처절하게 울부짖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말을 타고 온 자들은 무공이 강하구나. 또한 수법도 악랄하기 짝이 없어. 먼저 소사매와 임 사제가 타고 있던 말을 쏘아 넘어뜨린 다음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구나.)

 

열 몇사람은 크게 웃으면서 말을 달려 가까이 접급하였다. 악영산은 깜짝 놀라 뒤러 몇발자국 물러났다.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은 조그만한 사내이고 한 명은 조그마한 계집애구나. 너희들은 어느 파 어느 문하의 사람이냐?]

 

임평지는 낭랑한 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화산파의 문하인 임평지라고 하고, 이분은 나의 사저인 악 소저입니다. 여러분들과는 안면이 없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가 타고 있던 말을 쏘아 죽였읍니까?]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화산파의 문하라. 음, 너희들의 사부는 바로 그 검시합을 해서 제자에게 패한 그 무슨 군자검 악 선생이라는 자냐?]

 

영호충은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소림사에서 시합을 한게 바로 어제일인데 하루도 되지않아 온 천하가 다 알고 있구나. 내가 사부님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어. 정말 이 죄를 어찌해야 된단 말이냐?]

 

임평지는 말했다.

 

[영호충이라는 자는 소행이 단정치 못하고 매번 우리 문파에 문규를 어기어 벌써 일년 전에 이미 화산파 문하에서 쫓겨났소이다.]

 

이런 말을 하는 뜻은 사부는 비록 졌지만 단지 화산파의 제자에게 진 것이 아니다, 화산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에게 진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계집은 성이 악씨라고 했는데 악불군과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악영산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당신은 내 말을 쏘아 죽였으니 내 말이나보상하시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계집애 꼴을 보니까 아마도 악불군의 첩인 것 같은데.]

그 나머지 열 몇사람은 껄껄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깜짝 놀랐다.

 

(이 자들의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정파의 인물들은 절대로 아닌것 같다. 소사매에게 나쁜 짓을 하겠는데.)

 

임평지는 말했다.

 

[각하는 강호의 선배 같은데 어찌 그런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하십니까? 우리 사저는 바로 나의 사부의 따님이십니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 알고 보니 악불군의 따님이구만. 헌데 듣던거와는 영 딴판이야.]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물어왔다.

 

[노형님, 어째서 듣던거와 딴판이라고 하십니까?]

 

그 사람은 말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악불군의 딸은 얼굴이 예쁘고 보기드문 미인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지금 보니 그저 그러하구만.]

또 다른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계집은 평범하군요. 그런데 피부가 하얗고 고우니 옷을 싹벗겨서 본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하하하.]

 

열 몇사람은 또다시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에는 오묘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악영산과 임평지, 영호충은 이렇듯이 무례한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임평지는 장검을 뽑아들고 일갈을 했다.

 

[당신들이 더이상 무례한 말을 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소.]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자, 모두들 보시오. 이 두 명의 음흉한 년놈들이 눈사람 위에다 무슨 글자를 썼는지를.]

 

임평지는 크게 외쳤다.

 

[내가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영호충은 싹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임평지가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창창창 소리가 나더니 어떤 사람이 말에서 내려와 그와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악영산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일곱여덟 명의 사내가 동시에 외쳤다.

 

[내가 이 계집과 한번 겨뤄보겠소.]

 

한 명의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들 떠들지 마시오. 모두들 차례가 올 것입니다.]

병기가 부딪치고 악영산이 그들과 싸움을 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한명의 사내가 큰 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울부짖는 소리는 고통이 충만되었다. 아마 검에 상처를 입은 듯하였다.

다른 한명이 말했다.

 

[이 계집의 손이 무섭구나. 사노삼(史老三) 내가 당신을 대신해 복수를 하겠소.]

 

칼과 검이 격돌하는 소리에 악영산이 외쳤다.

 

[조심하시오.]

 

`창그랑' 소리가 크게 나면서 임평지가 `윽' 하고 소리를 냈다.

악영산은 놀래서 외쳤다.

 

[임평지!]

 

임평지가 상처를 입은 듯하였다. 어떤 자가 외쳤다.

 

[이놈을 없애 버릴까요.]

 

또 한 사람이 말했다.

 

[그를 죽이지 말게나. 산 채로 잡아버리게. 악불군의 딸과 사위를 잡아둔다면 그 위군자(僞君子)는 우리 말을 안 듣고는 못 배길걸.]

 

영호충은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보았다.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창그랑 창그랑 들려왔다. 갑자기 탕 하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 사내가 욕을 하였다.

 

[제미랄년, 이년!]

 

영호충은 갑자기 자기 몸을 사람이 기대고 있음을 느꼈다. 악영산이 급박하게 내쉬는 숨소리를 듣고는 바로 그녀가 자기 몸에 기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한명의 사내가 기뻐서 외쳤다.

 

[내가 너를 못 잡을소냐.]

 

악영산의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더이상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여러 사내가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여러 사람들에게 제압을 당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또 그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에 손대지 말아라. 나를 풀어 놓아라.]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민노이(閔老二) 당신은 이 계집의 피부가 하얗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것을 못 믿겠소. 우리가 한번 옷을 벗겨봅시다.]

여러 사람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임평지가 욕을 하였다.

 

[개 같은 놈......]

 

퍽 하고 소리가 나면서 사람에게 채여서 땅바닥에 굴렀으며, 이어서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임아행의 안부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눈속에서 몸을 날려 우측 손으로는 허리에 한 장검을 뽑아들고 좌측 손으로는 눈을 비볐다. 그런데 좌측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꿈쩍할 수가 없었다.

여러사람이 놀라 외치는 사이에 그는 우측 팔을 내밀어 두눈을 닦았다. 밝은 빛이 눈에 들어오자 장검을 내리쳐 한 명의 사내의 목덜미를 적중시켰다. 그는 몸을 돌려 싹싹 두 검으로 또 사람을 넘어뜨렸다. 눈앞에 한 명의 사내가 악영산의 두손을 잡고, 그녀의 두팔을 뒤로 휘감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사내는 그녀의 몸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영호충은 장검으로 그의 좌측 옆구리를 찌르고 우측 발을 날려 그자를 차서 넘어뜨리고 장검을 시체에서 뽑아낸 후 이어 뒷사람이 급습하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검을 휘둘러 두 사람의 가슴에 칼을 찔렀다.

곧바로 검을 쥐고 악영산의 몸뒤로 돌아가 똑바로 악영산의 두손을 거머쥐고 있는 자의 목을 내리쳤다. 그자는 두손이 부러지면서 `퍽' 하고 악영산의 어깨에 쓰러졌다. 목덜미에서는 피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일은 너무나 돌발적으로 일어나 영호충은 연신 아홉명을 살해했는데 극히 일순간의 일이었다. 그 우두머리인 자는 일성을 지르고 쌍철패를 휘두르며 영호충의 정수리를 향해서 찍어 내려왔다.

영호충은 장검을 움직이더니 그 두개의 철패 사이에 난 빈틈으로 칼을 집어넣어 똑바로 그의 좌측 눈을 찍었다. 그자는 크게 비명을 지르더니 뒤로 물러나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칼을 휘둘러 또 세 명을 죽였다. 나머지 네 사람은 겁에 질려 소리를 내더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영호충은 외쳤다.

 

[너희들은 나의 소사매를 능욕하려고 했지. 한 놈도 살아 돌아갈 생각을 말아라.]

 

두 사람을 쫓아가더니 장검을 질풍처럼 내리찍어 그 두 사람은 모두 목덜미에 칼을 맞았다. 두 사람은 급하게 달려가다가 검을 맞자 십여보를 가다가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나머지 두 사람은, 한 명은 동쪽으로 다른 한 명은 서쪽으로 도망쳤다. 영호충이 질풍처럼 동쪽으로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서 검을 던지자, 장검은 한줄기 빛으로 변하면서 그자의 허리에 깊숙하게 꽃혔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서쪽으로 도망치는 자를 뒤쫓았다. 십여 장을 달려가자 그 사람의 몸뒤에바짝 다가갈 수가 있었다. 손을 내밀자 비로소 손에는 아무런 병기가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손가락에 기를 운행시켜 그 자의 등허리를 짚었다. 그 사람은 등허리가 아파오자 검을 돌려 내리찍었다. 영호충의 주먹과 발의 공력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 전에 그의 손가락은 비록 적을 적중시켰지만 힘을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를 넘어뜨릴 수가 없었다. 그가 검을 들어 내리쳐오자 자기도 모르게 당황하여 급히 몸을 피했다. 그때 그의 우측 겨드랑이에 크나큰 헛점을 발견하고 좌측 주먹으로 똑바로 내리쳤다. 뜻밖에 좌측 팔은 약간 미동을 하더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적의 강도(鋼刀)는 자기의 얼굴을 향해 똑바로 들어왔다.

영호충은 깜짝 놀란 나머지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사내는 칼을 들고 맹렬하게 덮쳐왔다. 영호충의 손에는 병기가 없어서 감히 그와 대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악영산은 땅바닥에 떨어진 장검을 주워들고 외쳤다.

 

[대사형, 검을 받으세요!]

 

영호충은 우측 손을 휘저어 검을 받아쥐고 몸을 돌려 껄껄 웃었다. 그 사내는 강도를 쳐들고 금방이라도 내리치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영호충의 손에서 장검이 번쩍이자 깜짝 놀라 일도를 내리찍지 못하였다.

영호충이 천천히 다가가자, 그 사내는 온몸을 벌벌 떨면서 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영호충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네가 나의 사매를 능욕하려고 했지. 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장검을 똑바로 그의 목구멍으로 갖다댔다. 한발짝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어봤다.

 

[눈사람 위에 씌여져 있는 글자는 무슨 글자인가?]

 

그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녜, 녜. 해고(海枯)...... 해고...... 석난(石爛)양정(兩情)...... 불투(不偸)입니다.]

 

영호충은 멍청해지며 말을 했다.

 

[음,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을지라도 두사람 정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씁쓸해지면서 장검을 내리찍어 그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몸을 돌려 보니 악영산은 임평지를 부추켜 일어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의 얼굴에는 선혈이 낭자하였다. 임평지는 똑바로 몸을 세우더니 영호충을 향해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영호 형님께서 이렇게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상처가 깊지 않느냐?]

 

임평지는 말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영호충은 장검을 악영산에게 건네주고 땅바닥에 두줄의 말발굽 자국을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이쪽을 향해서 가셨다.]

 

임평지는 말했다.

 

[녜.]

 

악영산은 적이 남긴 두 마리을 말을 끌어다가 말을 타더니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으러 갑시다.]

 

임평지는 바둥바둥 대먼서 말에 기어올랐다. 악영산은 말고삐를 거머쥐고 영호충의 몸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을 세우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영호충이 그녀의 눈빛을 보자 악영산은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리더니 말고삐를 거머쥐었다. 두 마리의 말은 악불군 부부가 남신 말발자국을 따라 서북쪽으로 갔다.

영호충은 멍청하게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멀어지자 비로소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임아행과 상문천, 영영 세 사람은 이미 몸에 붙어 있는 눈을 털고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하였다.

 

[임 교주님 제가 피해를 주지는 않았읍니까?]

 

임아행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나에게는 아무일이 없네만 자네가 큰일났구만. 자네의 좌측 팔은 어떠한가?]

 

영호충은 말했다.

 

[팔의 경맥이 순하지 아니하고 피가 통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임아행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일은 약간 복잡하니 우리는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너는 악씨 집의 딸을 구해 결국 사문의 은덕을 갚았다고 볼 수가 있으니 지금부터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네. 상 형제 노노대(盧老大)는 어째서 갈수록 이렇게 못난 짓만 하는가? 이렇게 비굴하고 못된 짓을 하다니.]

 

상문천이 말했다.

 

[내가 이들의 말투를 들어보건데 아마 그 젊은 두 사람을 잡아다가 흑목애로 데리고 가려는 듯했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설마하니 동방불패의 생각일까? 그는 이 위군자와 무슨 원한이 있단 말인가?]

 

영호충은 땅바닥에 널려져 있는 시체를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이 사람들은 동방불패의 부하들입니까?]

 

임아행은 말했다.

 

[나의 부하이네.]

 

영호충은 고개를 끄떡였다.

영영은 말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의 손은 어떻습니까?]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착한 사위가 아버지를 위해서 노력을 했으니 이 장인 어른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그의 손목을 낳게 할 것이다.]

 

말을 하면서 껄껄 웃고 영호충은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가 자기를 쳐다보자, 심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영영이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아버지, 앞으론 그런 말을 절대로 하지 마세요. 오라버니는 어려서부터 화산의 악 소저와 함께 자라고 함께 커왔읍니다. 조금전에 오라버니가 그 악소저에게 한 행동을 보고서도 아버지는 아직 모르고 계십니까?]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악불군 위군자는 어떤 놈인가? 그의 딸을 어찌 나의 딸과 비교를 할 수가 있는가? 더우기 악 소저는 이미 벌써 마음속에 또 다른 남자가 있고, 그렇게 쉽게 변하는 여자를 우리 충아는 앞으로 절대로 마음에 새기지는 않을 것이야. 어렸을 때의 맹세는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영영은 말했다.

 

[충 오라버니는 나를 위해서 소림사에 들어갔읍니다. 그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고, 또 나를 위해서 화산에 들어가지도 않았읍니다. 이 두 가지의 일만으로도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감격하며 만족하고 있읍니다. 그 나머지 말은 더 이상 하지 마세요.]

임아행은 자기 딸이 매우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호충이 아직 구혼을 하지 않은 이상 더 계속 말할 필요가 없고 어차피 그것은 조만간 밝혀질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종신대사이니 천천히 이야기하자. 충아, 좌측 팔뚝의 경맥을 통하는 비결을 내가 먼저 너에게 전해주겠다.]

그를 한쪽으로 불러 어떻게 기를 운행시키고 어떻게 맥을 관통시키는지의 방법들을 말해주었다. 그가 다시 한번 반복을 하고 아무런 하자가 없자, 또다시 말을 했다.

 

[자네가 나를 도와 내 몸속의 한기를 발산시켜 주었고, 나는 자네에게 경맥을 뚫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네. 우리는 누구도 빚지지 않았어. 좌측 팔뚝의 경맥을 복원시키는데는 칠일이라는 시간이 필요로 하지. 절대로 시간을 다투어서는 안 되네.]

 

영호충은 대답을 하였다.

 

[녜.]

 

임아행은 손짓을 하여 상문천과 영영을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충아, 그날 고산매장에서 내가 일월신교에 입교하라고 권하였지. 당시에 자네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때와 사뭇 다르지. 내가 한번 더 권하겠다. 네가 더이상 물리칠 이유가 없겠지.]

 

영호충은 주저하며 대답하지 아니했다.

임아행은 또 말했다.

 

[자네가 이미 나에게 흡성대법을 습득했으니 앞으로는 그 후유증이 나타날걸세. 체내에 진기가 발작할 때면 정말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네. 이 늙은이는 한번 한말을 절대로 반복하지 않네. 자네가 만약에 우리 교에 입교를 하지 않는다면 설령 영영이 자네에게 시집을 간다해도 나는 절대로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네. 설령 내 딸이 평생토록 나를 원망한다 해도 내 뜻을 굽힐 수가 없네. 우리는 지금 큰일을 목전에 두고 있네. 우리와 함께 동방불패에게 가지 않겠나?]

 

영호충은 말했다.

 

[교주께서는 책망하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로 일월신교에 들어가지 않겠읍니다.]

 

이 두 마디는 굳건하고확신에 차 있었다. 임아행 등 세 사람은 그 말을 듣자 얼굴색이 변하였다.

상문천이 말하였다.

 

[그 이유는 뭔가? 자네는 일월신교가 못마땅한가?]

 

영호충은 땅바닥에 널려져 있는 십여 구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월신교에는 모두들 이런 자들만 있읍니다. 저는 비록 못났지만 절대로 이들과 한 무리가 될 수는 없읍니다. 더우기 저는 이미 정한사태에게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겠다고 약속을 했읍니다.]

임아행, 상문천, 영영 세 사람의 얼굴에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 나타났다. 영호충이 입교를 원하지 않은 것은 그리 이상 할 것이 없었으나, 그가 말한 마지막 한 마디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세 사람은 자기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임아행은 식지를 뻗어 영호충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너무나 커서 주위의 나무 위에 쌓여 있던 눈발이 우수수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한참을 웃고 나서 말했다.

 

[자네가...... 자네가...... 비구니붕이 되려고 하는가? 비구니의 장문인 자리를 맡겠다는 말인가?]

 

영호충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비구니가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항산에 가서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정한사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자기의 요구를 허락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만약 제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노사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하셨읍니다. 정한사태는 나 때문에 돌아가셨고, 또 이 일이 기괴하고 망측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거절할 방법이 없었읍니다.]

 

임아행은 여전히 웃음소리를 멈추지 아니했다.

영영은 말했다.

 

[정한사태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영호충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빛 속에는 감격의 뜻이 가득담겨져 있었다.

임아행은 천천히 웃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자네는 부탁을 받고 그 약속을 이행하려고 하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한사태는 저의 부탁을 받고 목숨을 잃으셨읍니다.]

 

임아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좋겠지. 나는 늙은 괴물일고 자네는 젊은 괴물이야. 상상을 초월하고 엉뚱한 일을 못한다면 어찌 큰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자네는 가서 그 비구니의 장문인이 되게. 그러면 자네는 지금 바로 항산에 가겠나?]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소림사로 가겠읍니다.]

 

임아행은 약간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바로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래서 말하기를, [아참, 그렇군. 자네는 그 두 비구니의 시체를 항산에 모시고 가려고 하나?]

 

고개를 돌려 영영을 향해 말했다.

 

[너도 충아를 따라 함께 소림사로 가겠느냐?]

 

영영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지를 따라 가겠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맞다. 너는 결국 항산에 가서 비구니가 될 수 없지.]

말을 하면서 킥킥킥 하고 몇번인가 웃었다. 웃음 속에는 씁쓸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땅까지 숙여 절을 하며 말했다.

 

[임 교주님, 상형님, 영영 여기서 헤어지겠읍니다.]

 

몸을 돌려 크게 발을 내디뎠다. 그는 십여 보를 걷다가 고개를 돌려 말하기를, [임 교주님, 임 교주님께서는 언제 흑목애에 가시렵니까?]

임아행은 말했다.

 

[이것은 우리 교파의 일이니 다른 사람이 신경쓸 필요는 없네.]

그는 영호충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때가 되면 같이 도와 동방불패와 싸우려 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땅바닥에서 한자루의 장검을 집어들고 허리에 차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저녁때가 되어서 영호충은 소림사 밖에 당도하였다. 손님을 접대하는 지객승(知客僧)에게 정한 정일 두분의 시체를 항산에 모시고 간다는 뜻을 전하였다. 지객승은 안에 들어가서 알리더니 한참 후에 와서, 두분의 사태 법체(法體)는 이미 화장이 되었고 스님들은 사태를 위해서 불경을 외고 있으며, 두분의사리(舍利)는 머지 않아 항산에 보내질 것이라는 방장대사의 말을 전해주었다.

영호충은 두분의 사태를 위해서 법사(法事)를 하는 편전에 당도하여 유골이 담겨 있는 항아리와 위패를 향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내심 축언을 하였다.

 

(영호충은 살아있는 동안 있는 힘을 다하여 항산 일파가 크게 번창하도록 돕겠읍니다. 절대로 사태의 부탁을 저버리지는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방증방장을 만나뵙지도 않고 지객승과 작별을 하고 소림사를 나왔다.

산 아래 당도하자 눈은 아직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 농가의 방을 빌려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또 북쪽을 향해서 여행을 하였다. 시장에서 한 필의 말을 사서 날마다 칠팔십 리를 가다가 주점에서 하루를 묵곤하였다. 임아행인 가르쳐준 법문대로 천천히 경맥을 뚫었다. 칠일이 되자 좌측 경맥은 평상시처럼 운행이 되었다.

며칠 동안 가다가 이날 점심때에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으며 심히 바쁜 듯하였다. 집집마다 설날을 지낼 채비를 하고 거리에는 기쁨이 넘쳐 있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내심 생각하였다.

 

(옛날 화산에 있을 때 사모님은 지금쯤이면 여러 사매사제들을 동원하여 집안팎을 청소시키고 쌀가루를 찧고 설날에 쓸 용품을 준비하고 새옷을 지었으며, 소사매는 각종 꽃들을 만들어 몹시 벅적댔었지. 그렇지만, 올해는 나 홀로 쓸쓸히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계단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목이 몹시 마르군. 이곳에서 몇잔의 술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설령 입이 마르지 않더라고 술 몇잔 먹으면 그게 어디가 나쁩니까?]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술마시는 것은 술마시는 거고 입이 마른 것은 입니 마른 것인데 어째 이 두 가지 일을 한데 묶어서 말합니까?]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목은 더 타는 법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절대로 하나로 묶어서 말할 수는 없읍니다. 물과 술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니까요.]

 

영호충은 이말을 듣자 도곡육선이 당도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내심 기뻐서 외쳤다.

 

[여섯분의 도형(桃兄) 빨리빨리 올라오시오. 나와 함께 술을 마십시다.]

 

갑자기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도곡육선은 일제히 올라왔다. 영호충의 몸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 팔뚝을 잡으면서 서로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그를 보았다.]

[내가 먼저 잡았다.]

[내가 제일 먼저 말을 해서 비로소 영호공자가 내 목소리를 들었다.]

[만약에 내가 이곳에 오자고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를 만날 수 있었겠읍니까?]

 

영호충은 심히 이상해서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당신들 여섯분은 또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도화선은 창쪽으로 달려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큰 스님, 작은 스님, 늙은 스님, 중간 스님, 이 도화선이 영호공자님을 찾아냈읍니다. 빨리 천냥의 돈을 가져오시오.]

도지선은 바로 따라가더니 외쳤다.

 

[나 도지선이 첫번째로 그를 발견하였읍니다. 큰 스님, 작은 스님, 빨리 돈을 가져오시오.]

 

도근선과 도실선은 각자 영호충의 한쪽 팔뚝을 잡더니 스스로 떠들었다.

 

[내가 찾아낸 것이다!]

[나다! 나다!]

 

거리 저쪽에서는 한 여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대협을 찾으셨읍니까?]

 

도실선은 말했다.

 

[내가 영호충을 찾았소. 빨리 돈을 가져오시오!]

 

도간선은 말했다.

 

[돈을 줘야만이 물건을 건네주겠소.]

 

도근선이 말했다.

 

[맞다, 맞다. 비구니들이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영호충을 숨겨버리고 그들에게 주지 말자.]

 

도지선은 물어보았다.

 

[어떻게 숨긴단 말이오. 그를 가둬놓으면 그 비구니들이 안 본단 말씀입니까?]

 

계단에서는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몇 명의 여자가 올라왔다. 제일 먼저 올라온 사람은 항산파의 제자인 의화였다. 바로 뒤에 네 명의 비구니가 따라왔고, 또 두 명의 젊은 아가씨가 있었는데 바로 정악과 진견이었다. 일곱 사람은 영호충을 보자마자 얼굴에는 기쁜 빛이 완연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영호대협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영호 오라버니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영호공자라고 불렀다. 도간선 등은 일제히 팔을 펴 영호충을 막고는 말했다.

 

[천냥을 주지 않는다면 사람을 건네줄 수 없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여섯 도형은 천냥을 달라고 하는데 그게 어찌된 영문입니까?]

도지선은 말했다.

 

[좀전에 우리가 이 여자들를 만났는데 이 여자들은 우리들에게 당신을 보았느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잠시동안 아직 보지 못했고 얼마 있으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진견이 말을 했다.

 

[이 사람은 눈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다.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아닙니다, 영호충을 보지 못했읍니다. 영호충의 몸에 다리가 달려 있는데 아마 그는 지금 하늘 어느곳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도화선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벌써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곳에서 영호충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을 계산하였읍니다.]

 

도간선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째서 다른 곳을 가지않고 이곳에 왔겠읍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 나는 알았읍니다. 몇분의 사제 사매들이 일이 있어 나를 찾으려고 당신 여섯사람들에게 어디 있는가하고 도움을 청했군요. 당신들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돈 천냥을 달라고 했지요. 그렇지요.]

 

도간선은 말했다.

 

[우리들이 단숨에 천냥을 달라고 한 것은 그들이 가격을 깍을까봐 그러했고, 그들이 만약에 장사를 할 줄 안다면 응당히 우리들에게 값을 깎아달라고 해야 옳았읍니다. 그런데 그녀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이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비구니가 이렇게 말했읍니다.

`좋습니다. 영호대협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들이 천냥의 돈을 주겠읍니다.' 이 말은 틀림없이 했지요?]

 

의화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말은 틀림이 없읍니다. 여섯분의 영호 오라버니가 어디 계신가를 찾아냈으니 우리 항산파는 천냥의 돈을 틀림없이 드릴 것입니다.]

 

도곡육선은 동시에 손바닥을 내밀어 일제히 말을 했다.

 

[그럼 돈을 주시오!]

 

의화는 말했다.

 

[우리는 출가한 사람인데 어찌 그 많은 돈을 지니고 있겠읍니까? 번거롭지가 않다면 우리와 함께 항산으로 가시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하면 도곡육선들이 번거러워 돈을 받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심리는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참 좋소. 우리는 당신들을 따라 항산에 갈 것입니다. 당신들은 억지를 부리지 마시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섯분이 큰 부자가 됐으니 축하해야 되겠군요. 이 보잘것 없는 몸을 그렇게 큰 돈으로 팔다니요.]

 

도곡육선의 귤껍질 같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였다. 일제히 공수를 하며 말했다.

 

[이 모두가 염려 덕분입니다. 염려 덕분입니다.]

 

의화 등 일곱 사람은 얼굴이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일제히 영호충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여러분께서는 왜 그런 큰 예를 하십니까?]

하고 급히 답례를 하였다.

의화는 말을 하였다.

 

[장문인께 인사드립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알고 있었군요. 빨리 일어나시오.]

 

도근선은 말했다.

 

[맞습니다. 땅바닥에 구부리고 있으면 말하기가 불편하니까요.]

영호충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섯분의 도형, 나와 항산파의 이 몇분들과 긴요한 일로 상의를 하고 싶으니 여섯분은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절대로 방해하지 마시오. 방해를 한다면 당신들은 돈 천냥을 받지 못할 것이오.]

도곡육선들은 본래 크게 한바탕 떠들려고 했으나 제일 마지막 말을 듣고 한쪽 귀퉁이로 가서 책상에 앉더니 술과 음식을 청하였다.

의화가 몸을 일으켰다. 정한 정일 두분의 사태가 참혹하게 죽은 생각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통곡을 하며 실성을 하였다.

도화선은 말했다.

 

[어! 이상하다, 이상해! 어째서 갑자기 울고 있는가. 당신들은 영호충을 만나자마자 울고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를 만나지 마시오.]

 

영호충은 그를 향해서 화난 눈으로 쳐다보았다. 도화선은 겁에 질려 손을 내밀어 입을 막았다.

의화는 흐느끼면서 말을 했다.

 

[그날 영호 오라버니...... 아닙니다. 장문인께서 언덕에 올라 가셔서 술을 드신 후 배에 오르지 않으셨지요. 나중에 형산파 막대사숙께서 당신이 장문사숙과 정일사태를 만나보기 위해 소림사에 가셨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셨읍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소림사에 가서 두분의 사숙과 당신을 만나자고 상의를 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았읍니다. 그런데 뜻밖에 중도에서 강호의 협객들을 만났읍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당신이 어떻게 여러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를 공격했으며 소림파의 수천 스님들에게 간담을 써늘하게 해 주었는가를 들었읍니다. 그중에 머리가 크고 뚱뚱한 노씨 성을 가진자가 말하기를 장문사숙과 정일사숙 두분이 소림사에서 변을 당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읍니다. 장문사숙께서 임종하실 때 당신에게 우리파 장문인의 자리를 맡으라고 하셨고, 당신은 이미 대답을 하셨다구요. 이 말은 우리 모든 사람의 귀로 친히 들었읍니다......]

그녀는 여기까지 말을 하자 설움에 북받쳐 말을 잊지 못했다. 그 나머지 여섯 제자들도 모두들 눈물을 훔치고 울고 있었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정한사태는 당시 틀림없이 그무거운 짐을 지라고 명하셨읍니다. 그러난 나는 젊은 남자이고 또한 내 명성이 극히 나빠서 모든 사람들이 내가 무례한 떠돌이인 줄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을 수 있겠읍니까? 단지 그때 상황이 너무나 위급하여 내가 대답을 안 했다면 정한사태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읍니다.]

 

의화는 말했다.

 

[우리들은...... 우리들은 모두가 당신이...... 당신이 우리 항산파의 문호를 지켜 주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정악은 말했다.

 

[장문사숙님, 당신은 우리들을 이끌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셨읍니다. 우리 제자의 생명을 한번만 구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들 당신이 정인군자(正人君子)라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비록 당신은 남자이지만 본문의 규칙 중에 남자가 장문인이 되지 못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읍니다.]

 

중년의 비구니인 의문(儀文)이 말했다.

 

[우리 모두는 두분의 사숙께서 입적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비통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장문사숙님께서 장문의직위를 맡는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안심을 하며 기뻐하고 있읍니다.]

의화는 말했다.

 

[나의 사부님과 두분의 사숙은 모두 살해를 당했읍니다. 항산파의 정(定)의 돌림자를 가진 세분의 어른들께서는 몇개월 사이에 입적을 하셨읍니다. 우리들은 그러나 범인이 누구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읍니다. 장문사숙님, 당신이 장문인을 맡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면 우리들은 절대로 세분 어르신의 복수를 할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분 사태의 한맺힌 원한을 내 두 어깨에 짊어지겠읍니다.]

진견은 말했다.

 

[당신은 화산파에서 쫓겨 나와 지금은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셨읍니다. 앞으로 당신이 악 선생을 만나게 되면 절대로 그를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그를 악 사형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씁쓸히 웃으면서 내심 생각하였다.

 

(나야말로 이 악 사형이라는 자를 만나볼 염치가 없다.)

정악은 말했다.

 

[우리들은 두분의 사숙이 변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림사로 향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도중에 또 막대사백님을 만나뵙게 되었읍니다. 막대사백께서는 소림사에는 당신이 계시지 않으니 우리보고 빨리 장문사숙이 어디에 계신가를 찾아보라고 말씀해 주셨읍니다.]

 

진견은 말했다.

 

[막대사백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을 한시라도 빨리 찾는 편이 좋고 만약에 한 걸음이라도 늦게 되면 당신은 마교에 입교를 하신다고 하셨읍니다. 정사(正邪) 쌍방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렇게 되면 항산파는 장문인이 없게 됩니다.]

 

정악은 그녀를 한번 흘기더니 말을 했다.

 

[진 사매는 입을 좀 다물어야겠어. 장문사숙께서 어찌 마교에 입교를 한단 말인가?]

 

진견이 말했다.

 

[녜 녜, 그러나 막대사백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막대사백님의 생각이 딱 들어맞았다. 내가 일월교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단발의 차이였어. 그날 임 교주가 만약 내공의 비결을 가지고 유혹하지 않고 진심으로 가입을 권했다면 나는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한 영영과 상 형님의 체면을 봐서 어쩌면 항산파의 일을 처리한 후 즉시 입교를 한다고 승락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말하기를, [그래서 당신들은 천냥의 상금을 걸고 곳곳에서 나를 잡으려고 했읍니까?]

 

진견은 눈물을 그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영호충을 잡으라고요. 우리가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읍니까?]

정악은 말했다.

 

[당시 우리는 막대사백의 분부를 듣고 나서 일곱 사람이 한무리를 이루어 한시라도 빨리 항산에 모시고저 곳곳에 장문사숙을 찾아나섰읍니다. 오늘 도곡육선을 보자 그들은 천냥의 돈을 요구 하였지요. 장문사숙을 찾기만 하면 천냥이 아니라 만냥을 달라고 해도 우리는 수단과방법을 다 동원하여 적선을 하여서라도 다줬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들의 장문인이 된다면 달리 좋은 것은 없고 탐관오리나 지방의 토호(土豪)에게 돈을 적선받는 그러한 재주는 일취월장하게 될 것입니다.]

 

일곱 명의 제자들은 그날 복건지방에서 백박피에게 적선 받았던 일이 떠올라 그 광경을 참지 못하고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일어났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들 걱정할 필요가 없읍니다. 내가 정한사태에게 대답을 했는데, 내가 한 말을 어길 수는 없지요. 항산파의 장문인은 내가 틀림없이 맡을 것입니다. 우리 밥을 배불리 먹고 바로 항산에 갑시다.]

 

일곱 명의 제자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영호충과 도곡육선은 같이 좌석을 하여 술을 마셨다. 여섯 사람에게 천냥의 돈을 어디다 쓸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도근선은 말했다.

 

[야묘자, 계무시는 가난하기가 짝이 없어 만약에 일천냥의 돈이 없다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우리들이 그에게 좀 만들어 주겠다고 대답을 하였읍니다.]

 

도간선은 말했다.

 

[그날 소림사에서 우리 형제와계무시는 내기를 하였소......]

도화선은 뛰어들어니 말했다.

 

[결국은 물론 계무기가 내기에 졌지요. 그놈이 어떻게 우리 형제를 이길 수가 있단 말이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너희들이 계무시와 내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틀림없이 너희들이 내기에 졌을 것이다.)

 

영호충은 또 물어보았다.

 

[어떤 일에 대해서 내기를 하였읍니까?]

 

도실선은 말했다.

 

[내가 한 일은 당신과 관계가 있읍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당신이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읍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당신이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는다고 생각을 하였읍니다.]

 

도화선은 말했다.

 

[야묘자는 당신이 틀림없이 항산파의 자리를 맡지 않는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사내대장부의 말은 신용이 있어야하며 당신은 이미 그 늙은 비구니 중에게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겠다고 말해놓고 천하의 영웅들도 모두 그러한 사실을 들어 알고 있는데 절대로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지요.]

도지선은 말했다.

 

[야묘자는 말하기를 영호충은 강호에 떠돌아다니다가 머지않아 마교의 성고(聖姑)를 맞이해서 마누라를 삼고 절대로 늙은 비구니 젊은 비구니들이 있는데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야묘자는 영영에게 매우 준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데 어찌 마교라 했겠느냐? 틀림없이 도곡육선들이 말을 거꾸로 한 것이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래서 당신들은 천냥의 돈을 내기로 했읍니까?]

 

도근선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시에 우리들은 틀림없이 이겼다고 생각을 하였지요. 계무시는 또 말하기를 천냥의 돈은 광명정대하게 벌어와야 하고 훔치거나 빼앗을 수는 없다고 했죠. 내가 말하기를 그건 당연하다고 말을 했지요. 도곡육선이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엽선은 말했다.

 

[우리는 오늘 몇 명의 이 비구니들과 마주쳤읍니다. 그들은 꽹과리를 치면서 곳곳에 당신을 찾으러 다니고 당신을 항산파의 장문인으로 모신다고 말을 했읍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기로 작정을 하였지요. 그래서 그 찾는 비용이 천냥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야묘자가 천냥의 돈을 잃게 되면 너무나 가련하다고 생각을 하고 천냥의 돈을 벌어서 그에게 주어 그가 당신들에게 기꺼이 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려고 했읍니까?]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말하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맞췄읍니다. 당신은 정말로 신통하군요.]

 

도엽선은 말했다.

 

[우리들 여섯 형제의 재주와 별반 차이가 없읍니다.]

영호충 일행은 항산을 향해서 출발을 하였다. 하루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산 아래에 당도하였다.

항산파의 제자들은 이미 소식을 듣고 일제히 산 아래로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영호충을 보자 일제히 절을 하였다. 영호충은 급히 답례를 하였다. 정한, 정일 두분의 사태가 돌아가신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슬퍼하였다. 영호충은 의림이 여러제자들 틈 속에 끼어 있음을 보았다. 안색이 심히 초췌하였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의림 사매, 근래에 몸이 좀 불편하오?]

 

의림은 눈가가 빨개지더니 말했다.

 

[아무 일도 없읍니다.]

 

한참 뒤에 또 말을 했다.

 

[당신이 우리 장문이 되었으니 저를 사매라고 부를 수는 없읍니다.]

 

오는 도중에 의화 등은 모두 영호충을 장문사숙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들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도록 타일렀으나 여러 사람들은 모두 듣지를 않았다. 지금 의림이 또 그러한 말을 하자,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여러 존경하는 사저사매님, 영호충은 본파의 전 장문인인 정한사태의 유언에 따라 항산파에 왔읍니다. 사실 저는 무능하고 아무런 덕이 없어 감히 맡기가 두렵습니다.]

 

여러제자들은 일제히 말을 했다.

 

[장문사숙께서 기꺼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신다하니 실로 본파의 크나큰 행운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나에게 한 가지의 일을 허락해주십시오.]

의화 등은 말했다.

 

[장문인께선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제자들은 기꺼이 따르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장문사형이 될 뿐이고 절대로 장문사숙은 되지 않겠소이다.]

 

의화, 의청, 의진, 의문 등 여러 큰 제자들은 낮은 소리로 몇번인가 상의를 하더니 고개를 돌려 아뢰었다.

 

[장문인께서 그렇게 자기를 낮추시니 우리들도 거기에 따르겠읍니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좋겠읍니다.]

 

즉시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항산에 올랐다. 항산의 주봉(主峯)은 심히 높았다. 여러 사람의 발은 비록 빨랐지만 항산의 주봉까지는 한나절이 걸렸다. 항산파의 주암인 무색암(無色庵)은 하나의 작은 암자였다. 암자 옆에는 삼십여칸의 기와집이 있었는데 거기에 각각 제자들이 나누어 기거를 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무색암을 앞뒤로 살펴보았다. 웅장하고 규모가 큰 소림사와 비교를 할 때 마치 개미와 코끼리 같았다. 암자에 들어와 보니 단상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이 모셔져 있었으며 사방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누추하기 그지없었으며,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항산파의 주암이 이렇게 질박하고 평범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영호충은 관음신상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우수(于嫂)의 안내를 받아 정한사태가 좌정을 한 장소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방 벽도 역시 아무 장식이 없었으며 땅바닥에 낡은 구들방석이 하나 있었을 뿐 나머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영호충은 떠들석하고 잘 마시고 노는 사람인데 어떻게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 곳에서 지낸단 말인가. 만약 술단지나 고기류 등을 이곳에 가져온다면 너무나 모독을 하고 더럽게 만드는 처사가 아닌가? 그래서 우수를 향해서 말했다.

 

[나는 비록 항산의 장문인이 되려고 왔지만, 출가를 하지 않을 것이고, 비구니 또한 되지 않을 것이오. 항산파 중에 사매, 사저등은 모두가 여자이고 나는 남자이니 이 암자에 살기가 불편합니다.

여기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빈 집이 있다면 나와 도곡육선은 그것에 옮겨가서 묵도록 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우수는 말했다.

 

[맞습니다. 봉서(峯西)쭉에 세 칸의 큰 방이 있는데, 본래는 손님방이었읍니다. 본시 본파의 여제자들의 부모가 이곳에 오시면 그곳에서 묵어가곤 했읍니다. 장문인이 만약에 그러하시다면 잠시동안 그곳에 묵는 것이 어떠한지요. 우리가 다시 장문인의 거처를 짓겠읍니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다고 다른 새집을 지을 필요가 있겠읍니까?]

 

내심 깊이 생각하기를, (설마 내가 한평생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적합한 사람이 생기면 골라 여러 제자들이 그녀에게 복종하고 따른다면 나의 장문자리는 즉시 그녀에게 불려주어야 한다. 그리고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테니 그때 강호에 나가 한평생 즐겨보자꾸나.)

우수가 말한 봉서쪽 손님이 묵는 방에 이르자 침대나 이불, 의자 따위들은 시골의 부자집 농가와 비슷하였으며,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무색암과 같이 텅비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우수는 말을 했다.

 

[장문인께서는 앉으시지요. 제가 가서 술을 좀 가져오겠읍니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이 산에도 술이 있읍니까?]

 

우수가 술 이야기를 하지 뜻밖이었다. 우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술이 있읍니다. 의림 소사매는 장문인이 항산에 오신다는 소식을듣고 저에게 만약 좋은 술이 없다면 장문인께서 오래 묵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날로 사람을 파견하여 수십단지의 술을 사와 이곳에 갖다 놓았읍니다.]

 

영호충은 약간 미안하였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하였다.

 

[본파의 사람들은 모두가 청빈한데 나 한 사람 때문에 너무나 과용을 한 것 같습니다. 그냥 넘길 수가 없군요.]

 

의청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날 백박피에게 적선해온 돈은 비록 반절은 없는 자를 위해서 구제하는 데 쓰였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읍니다. 또한 관가로 부터 빼앗아온 말들을 팔았읍니다. 장문사형께서 십년 이십년 동안 마셔도 술값은 충분합니다.]

 

그날 저녁 영호충과 도곡육선은 통쾌하게 술을 마셨다. 다음날 새벽에 우수, 의청, 의화 등 사람들과 어떻게 두분 사태의 유골을 모셔와야 하는지 상의를 하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세분 사태의 원한을 풀것인가를 상의하였다.

의청이 말했다.

 

[장문사형께서 본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으셨으니 무림의 사람들에게 공고를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음 파견하여 오악검파의 맹주인 좌 사백에게 알려야겠읍니다.]

 

의화는 화가 나서 말했다.

 

[쳇, 나의 사부님은 바로 그 숭산파의 악당들에게 살해가 되었는데, 두분 사숙의 죽음도 아마 그들의 소행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알릴 필요가 있읍니까?]

 

의청은 말하였다.

[예를 지킬건 지켜야지. 우리가 확실히 규명한 다음 만약에 세분의 사존께서 정말로 숭산파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다면 그 때 장문사형의 영도하에 우리는 대거 그들에게 문책을 합시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청 사매의 말씀이 맞는 것같소이다. 단지 장문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무슨 예의나 의식절차를 차릴 필요는 없는 것 같소이다.]

 

자기가 어렸을 때 사부가 화산의 장문 자리에 앉는 의식절차가 번거러웠으며 산에 올라와 축하하고 의식을 참관하는 무림의 사람들이 실로 적지 않았읍을 기억하였다. 또한 형산파 유정풍이 금분세수를 할 때 형산성에는 많은 군웅들이 운집하였음을 상기하였다. 항산파와 화산, 형산파 등은 똑같은 위치에 있는데 자기가 장문인 자리를 맡은 후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이 몇명 되지 않는다면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축하하러 왔다고해도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비구니들의 장문인을 한다는 것을 본다면 틀림없이 비웃을 것이다.

의청은 그의 마음을 알고는 말했다.

 

[장문사형께서는 무림의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지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그때 손님을 모시지 않으면 되겠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쨌든 정식으로 취임의 날짜를 장하여 사방에 알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영호충은 내심 항산파는 오악검파의 하나인데 장문인이 취임식 할 때 너무 지나치게 감소하고 누추하다면 항산파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였다.

의청은 한 권의 달력을 가져다가 한참 뒤적이더닌 말을 했다.

 

[이월 십육일, 삼월 초팔일, 삼월 이십칠일 등 이 모두 길일입니다. 장문사형께서는 어느 날이 적합하시겠읍니까?]

 

영호충은 평소 무슨 길일이고 아니고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내심 취임의 날짜를 빨리 당길수록 이곳에 와 참관하는 자는 적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낭패스럽고 난감한 장면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정월 달에는 좋은 날이 없읍니까?]

 

의청이 말했다.

 

[정월에도 길일이 적지 않게 있읍니다. 그러나 정월달의 길일은 여행을 떠나거나 흙을 판다거나 혼인 또는 개업하는데 적합한 날짜들입니다. 이월달이 되어야 접입좌아(接印坐衙)를 하는데 좋은 날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관청의 벼슬아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접인좌아가 무슨 필요가 있겠소?]

 

의화는 웃으면서 말했다.

 

[장문께서는 대장군이 되지 않으셨읍니까? 장문인을 맡는다는 것도 역시 접인입니다.]

 

영호충은 여러 사람의 의사를 물리치고 싶지 않아서 말했다.

 

[기왕 그렇다면 그럼 이월 십육일로 날을 정합시다.]

즉시 사매들은 소림사에 가서 두분 사태의 유골을 모셔오고 각 문파에 통지하라고 제자들을 나누어 파견하였다. 그는 하산하는 제자들에게 절대로 이 일을 사방 팔방에다 퍼뜨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또 말했다.

 

[너희들은 각파의 장문인들에게 장한사태께서 입적하였으나 아직 범인을 찾지 못해 복수를 하지 못하였고,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이 장례식 기간에는 장문인 취임식을 갖지 않을것이니 절대로 사람들을 파견하여 축하인사를 하시지 말라고 아뢰어라.]

제자들을 각지역으로 파견을 한 다음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항산의 장문이 되었으니 항산파의 검법무공이 어떠한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즉시 산에 남아 있는 여러 제자를 소집하여 각자 항산무공의 기초부터 펼처 보이게 하고 마지막에는 의화, 의청 두 명의 대제자끼리 겨루워 항산검법 최고의 초식을 펼쳐보라고 명하였다.

항산파의 검법은 면밀하고 신중하여 방어에 적합하고 때때로 사람들이 주의하지 못할 곳에서 살기가 품어 나왔으며, 검법은 너무나 면밀한 나머지 예리함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여자가 사용하는 무공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산파의 역대 고수들은 다행이 남자가 연마하는 무공처럼 그렇게 위력적이고 흉악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항산검법은 빈틈이 극히 적은 검법의 하나로 만약에 빈틈이 없는 수비로 말할 것 같으면 무당파의 태극검법과 견줄 수가 있으나 어쩌다가 뿜어나오는 공격의 초식은 태극검법보다는 위였다. 항산일파가 무림 중에서 한파를 이루게 된 것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호충은 내심 화산 사과애 공굴 석벽에서 항산검법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조각되어 있는 항산검법은 초식이 절묘하여 의화, 의청 등이 사용하는 검법보다는 훨씬 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검법은 역시 사람에 의해서 파헤쳐졌으니 항산파는 앞으로 이 무림에서 이름을 휘날리려면 그 기본검술을 잘 개진시켜야겠다고 생각되었다. 또 정정사태의 무공을 본 적이 있는데 내공의 깊이나 초식의 매서움 등은 의화 등의 여러 제자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정한사태의 무공은 더욱 높다고 들었는데, 보아하니 세분 사태의 공력은 채 반도 그들의 제자가 습득하지 못하였다고 생각을 하였다. 세분의 사태가 몇 달 사이로 세상을 떴으니 항산파의 많은 정묘한 무예가 여기에서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되었다.

의화는 그가 멍청하게 서서 여러 제자의 검술이 어떻다 평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

 

[장문사형님, 우리들의 검법은 하나도 눈에 차지 않으실 겁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항산파의 검법이 하니 있는데 세분의 사태께서는 당신들께 전해주셨는지 모르겠구료.]

 

의화 손에서 검을 받더니 석벽에 조각되어 있던 항산파의 검법을 일초일초 연기를 해보였다. 그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하여 여러 제자가 쉽게 이해하고 분명히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몇 초식을 하지 않았는데 여러 제자들은 모두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그의 매 일초식은 항산파의 검법의 정묘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검초의 변화의 다양함이란 그녀들이 옛날에 배웠던 검법보다는 상당히 높았으며, 일초 일식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들도록 하였다. 이 검초식이 석벽위에 조각되어 있을 때 그것은 죽은 것이었다. 영호충은 그 죽은 것들을 하나하나 엮어서 시범을 해보였으며, 그 중에 여러군데는 자기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을 삽입시켰다.

검법의 시범이 끝나자 여러 제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갈채를 보내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의화는 말했다.

 

[장문사형님, 이것은 분명히 우리 항산파의 검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읍니다. 아마 사부와 두분의 사숙께서도 모르실겁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것을 배우셨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동굴 석벽 위에서 본 것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보기를 원한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전수를 해드리겠읍니다. 어떻습니까?]

여러제자들은 기뻐하며 연신 감사의 말을 하였다.

이날 영호충은 그녀들에게 삼초식을 전해주었다. 이 삼초식 중에 오묘하고 난해한 부분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고, 여러 제자들에게 각기 연습을 하라고 명하였다. 검법은 비록 삼초식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이 삼초식은 심오하고 더구나 광대하여 설령 의화, 의청 등의 큰 제자도 칠팔일 정도 시간이흘러서야 비로소 그 정묘함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정악, 의림, 진견 등은 더욱 깨닫지 못하였다. 아홉째 날에 이르러 영호충은 또 그녀들에게 두초식의 검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석벽 위에 조각되어 있던 검법은 초식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대충 전수를 마치기까지는 한달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 검법의 이치를 통달하고 통달하지 못하는 것은 각자가 얼마나 수양을 쌓고 깨우치느냐에 달렸다.

한달동안 소식을 전하려 하산을 한 여러 제자들은 계속해서 산으로 돌아왔다. 여러 제자들은 대개 얼굴색이 좋지 않았으며, 영호충에게 보고를 할 때 말끝을 흐렸다. 영호충은 그녀들이 하산을 하여 각파의 장문인들께 소식을 전할 때 각파의 장문인들은 비구니들이 남자를 장문인으로 모셨다고 비웃거나 우롱을 하여 치욕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추궁을 하지않고 위로의 말을 해주고는 그녀들에게 각자 사저들에게 자기가 전수해 준 검법을 배우라고 시켰다. 만약 모르는 점이 있으면 친히 그녀들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화산파에 보내는 서찰은 신중하고 노련한 우수와 의문 두 사람이 가지고 떠났었다. 화산과 항산은 그리 멀지 않은데 이치대로라면 벌써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편지를 가지고 간 채 돌아오질 않고 있는 것이다. 이월 십육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수와 의문, 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즉시 의광(儀光), 의식(儀識) 두 제자를 그녀들을 마중하러 파견을 하였다.

여러 제자들은 각 문파에서 아무도 사람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어 손님을 위한 숙소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 모두들 풀을 뽑고 절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았으며, 옷과 새 신발을 만들었다. 정악 등은 영호충이 그날 취임식 때 입을 검정색의 장포(長袍)를 만들었다. 항산은 오악 중에 북악에 속하므로 복장은 검은 색이었다.

 

이월 십육일 새벽에 영호충이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사방의 건물 구석구석에는 등불과 오색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실로 경사스런 풍경이었다. 여자들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종이 한 장 실 하나를 정성스럽게 연결시키고 아주 아름답게 꾸몄다. 영호충은 부끄럽고 도 감격을 하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나 때문에 두분의 사태께서 참혹한 죽음을 당했는데 이 제자들은 나를 책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이렇게 중히 섬기고 있구나. 내가 만약 세분 사태의 원한을 풀어드리지 못한다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산허리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림, 의림아! 너의 아버지가 네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단다. 의림아, 너의 아버지가 왔단다.]

 

목소리는 우렁찼으며 산 계곡에 찌렁찌렁 울리고 메아리가 끊이질 않았다.

 

[의림아...... 의림아......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가......]

 

의림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급히 암자 밖으로 나오며 외쳤다.

 

[아버지!]

 

산허리에는 몸집이 대단히 큰 스님이 한분 나타났다. 바로 의림의 아버지님 불계화상이었다. 그의 몸 뒤에는 또 한 사람의 스님이 있었다. 두 사람의 걸음걸이는 빠르기 이를데 없었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왔다.

불계화상은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공자, 자네는 깊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죽지 않았구료. 또 내 딸의 장문이 되었으니 그 이상 좋은 일이 없구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 대사께서 염려해준 덕분입니다.]

 

의림은 앞으로 걸아나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고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오늘 영호 오라버니가 항산파의 장문인에 취임을 하는 줄 아시고 축하하러 오셨군요.]

 

불계는 웃으면서 말했다.

 

[축하할 필요도 없다. 나는 항산파에 살려고 왔어. 모두들 같은 가족인데 축하할 필요가 있느냐.]

 

영호충은 약간 놀래서 물어보았다.

 

[대사께서 항산파에 들어오시겠다구요.]

 

불계는 말하였다.

 

[그러네. 내 딸이 항산파의 사람이고 나는 그의 아버지이니 물론 나도 항산파의 사람이지. 제미랄! 나는 사람들이 자네를 비웃는 소리를 들었어. 바지를 입고 있는 사내가 비구니들과 계집애들만 있는 항산의 장문인이 되었다고 자네를 비웃더구만, 제미랄놈들. 그들은 자네가 얼마나 다정다감한 사람인가를 모르고 있는 거야......]

 

그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득 차 있었다.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불계는 딸을 한번 쳐다보더니 또 말을 했다.

 

[이 어르신깨서 한 주먹에 그자들의 이빨을 모조리 분질러놓고 일갈을 하였지. `네놈들은 무엇을 아느냐? 항산파는 어째서 모두 비구니들과 여자들만 있느냐. 이 어르신도 항산파의 사람이다. 이 어르신이 머리를 박박 깍았다고 네놈들의 눈에는 비구니로 보이느냐. 어르신께서 바지춤을 내려서 너희들에게 보여줘야겠느냐.' 내가 손으로 바지가랑이를 풀려고 하자, 이 놈들은 무서워서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쳐버렸지. 하하하.]

 

영호충과 의림도 역시 크게 웃었다.

의림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일을 너무나 경망스럽게 하시는군요.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비웃어요.]

 

불계는 말했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놈들은 이 어르신께서 비구니인지 아니면 중인지 모를 것이야. 영호 형제, 내 스스로 항산파에 들어오면서 또 제자를 한놈 데리고 왔네. 불가불계(不可不戒)야, 빨리 영호 장문인에게 인사를 올려라.]

그가 말을 할 때 그를 따라서 산을 올라온 그 스님은 계속해서 등을 돌리고 영호충과 의림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천천히 몸을 돌리자 얼굴에는 남감한 빛이 역력했으며 영호충을 향해서 잔잔하게 웃었다.

영호충은 그 스님의 모습이 매우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금방 누구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지난 뒤에 비로소 그가 바로 만리독행 전백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말했다.

 

[전...... 전형이 아닙니까?]

 

그 화상은 바로 전백광이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숙여 의림을 향해 절을 하면서 말했다.

 

[사......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의림 역시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출가를 했읍니까? 혹시 스님의 분장을 한 것이 아닙니까?]

 

불계화상은 의기양양해서 웃으면서 말했다.

 

[암, 사실이고말고, 사실이고말고. 틀림없는 중이다. 불가불계야, 너의 본명이 무엇인지 너의 사부님에게 말해 주어라.]

전백광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사부님, 태사부(太師父)께서 저에게 불가불계라는 불명을 지어주셨읍니다.]

 

의림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불가불계라니요. 그렇게 긴 이른도 있읍니까?]

 

불계는 말했다.

 

[넌 몰랐느냐? 불경 중에 보살의 이름은 길자면 얼마든지 길수가 있다.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은 길지 않느냐? 그의 이름은 겨우 네 글자인데 어째서 그리 길다고 하느냐.]

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그렇군요. 그런데, 그는 어떻게 출가를 했읍니까?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를 도제(徒弟)로 거두었읍니까?]

 

불계는 말했다.

 

[아니다. 그는 너의 도제이다. 나는 그의 조사야(祖師爺)이다.

그러나 너는 비구니중이고 해서 그가 너를 스승으로 받드는데 만약 중이 되지 않는다면 항산파의 명예에 많은 손상을 입을 것 같아서 내가 중이 되라고 권했다.]

 

의림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 권하셨읍니까? 아버지께서는 틀림없이 그를 강제로 출가시켰겠지요. 그렇지요, 아버지?]

 

불계는 말을 했다.

 

[그가 스스로 원한 것이다. 출가라는 것은 강제로 떠맡겨서 되는 것이 아니잖느냐. 이 사람은 다 좋은데 한 가지 안 좋은 버릇이 있지. 그래서 내가 그에게 법명을 불가불계라고 지어주었다.]

의림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전백광은 여자를 너무나 좋아하여 옛날에 수없이 아버지에게 잡혔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죽이지 아니하고 많은 이상한 형벌을 그에게 주었는데 이번에는 또 강제로 그가 중이 되도록 했던 것이다.

불계는 또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의 법명은 불계이므로 불문의 법계는 지키지 아니해도 된다.

그러나, 이 전백광은 강호에서 너무나 나쁜 일을 많이 하였다. 만약에 그 버릇을 고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너의 문하에 있겠느냐? 그리고, 또 너의 제자가 될 수 있겠느냐? 영호공자 또한 좋아하지 않을 것이야. 나는 장래에 나의 옷과 바릿대를 전해줘야 하는데 그래서 그의 법명 중에 불계라는 두 글자를 집어 넣었지.]

갑자기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계화상과 불가불계가 항산파에 들어왔으니 우리 도곡육선도 항산파에 들어갑시다.]

 

바로 도곡육선이 도착한 것이다. 말한 사람은 바로 도간선이었다.

도근선은 말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영호충을 보았으니 우리 여섯 사람은 대사형이고 불계화상은 우리의 소사제이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항산파에 불계대사와 전백광이 있으니 도곡육선을 더거둬들여도 괜찮겠지. 그렇게 되면 강호에서 내가 한 무리의 비구니와 여자들의 장문인이 되었다는 비웃음은 안 듣게 될거야.)

 

그리고 나서 말했다.

 

[여섯 도형께서 항산파에 기꺼이 들어온다면 우리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합니다. 사형, 사제 등 서열을 매기려면 한참 복잡하니 모두들 이대로 호칭을 부르지요.]

 

도엽선은 갑자기 대답했다.

 

[불계 제자는 불가불계라고 부르는데 불가불계가 장래에 제자를 거둬들인다면 법명은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구만.]

도실선은 말했다.

 

[불가불계의 제자는 법명 중에 반드시 불가불계라는 네 글자가 있어야 하므로 물론 당연불가불계라고 칭호를 붙여야 되겠지.]

도지선은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당연불가불계의 제자는 법명을 또 무엇이라 불러야 합니까?]

 

영호충은 전백광의 처지가 심히 난감함을 보고 그의 손을 붙잡고 말을 하였다.

 

[내가 몇마디 물어볼 말이 있읍니다.]

 

전백광은 말했다.

 

[녜.]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수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등 뒤에서 도간선의 말이 들려왔다.

 

[그의 법명을 이소당연불가불계(理所當然不可不戒)라고 부르면 되겠지.]

 

도화선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소당연불가불계의 제자는 또 무슨 법명이 좋단 말 입니까?]

 

전백광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영호 장문 그날 내가 태사부의 협박으로 화산에 와서 당신에게 소사태(小師太)를 보러 가자고 청하지 않았읍니까? 그 중간의 경과는 한마디로 그 사연을 다 말할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오직 그가 당신을 협박해서 독약을 복용하게 하고 또 당신의 사혈(死穴)을 찍었다고 속인 것만 알고 있읍니다.]

 

전백광은 말했다.

 

[그날 형산 군옥원 밖에서 여왜자(余矮子)와 싸움을 할 때 이곳 호남(湖南)에는 고수들이 너무 많아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북상을 하여 하남(河南)에 갔었지요. 그날 일어난 사건을 말씀드리기가 심히 부끄럽습니다. 저의 항상 가지고 있는 버릇이 발작하여 개봉부(開封府)에서 컴컴한 밤중에 돈 많은 집의 여자 규방에 숨어 들어갔었지요. 내가 그 규방에 숨어 들어가 침대휘장을 열어젖히고 손을 내밀어 만졌더니 손에 잡히는 것은 반들반들한 대머리였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그건 비구니가 아니었읍니까?]

 

전백광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비구니는 아니고 중의 머리였읍니다.]

 

영호충은 껄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의 이불 속에 잠자는 사람이 화상이라. 이 여자가 바깥 남자를 끌여들었는데 끌어드린게 중이었군요.]

 

전백광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 화상은 바로 태사부였읍니다. 알고 보니 태사부께서는 줄곳 나를 찾아다니셨는데 결국은 내가 개봉부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개봉부까지 쫓아오신 것이지요. 내가 낮에 바깥에서 그 집을 엿보고 있었는데 태사부가 아마 저의 행동을 보고계 셨던 모양입니다. 그 어르신께선 내가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집에 들어가 사정을 말하고는 그 아가씨를 숨기고 그 어르신이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전형께서는 이번에야말로 고생 꽤나 했겠읍니다.]

 

전백광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 어찌 말로써 다 설명할 수 있겠읍니까? 그 당시 태사부의 머리가 손에 만져지자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래서 막 도망가려소 하는데 아랫배가 마비되었읍니다. 이미 혈도가 찍혀진 것이지요. 태사부께선 침대에서 내려와 나보고 죽겠느야 살겠느냐고 물어봅디다. 나는 내가 평생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댓가를 치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죠. 그래서 즉시 `죽겠읍니다' 하고 말했지요. 태사부께서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니 나에게 물어보았지요. `왜 죽으려고 하느냐?' 내가 말했지요.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당신에게 잡혔는데 어찌 살기를바라겠읍니까?' 태사부께선 벌컥 화는 내시더니 말씀을 하셨죠. `너는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나에게 잡혔다는 말인데, 만약에 조심을 했다면 나에게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구나. 좋다' 그는 좋다는 말씀을 하시더니 나의 혈도를 풀어주었죠. 나는 앉아서 물어보았죠. `나에게 무슨 요구를 하시렵니까?' 그는 말하기를 `너는 칼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나를 내리찍지 않느냐? 너는 발이 있는데 창을 넘어 도망치지 않느냐?' 내가 말을 했죠. `이 전가는 사내대장부인데 어찌 그리 염치없는 소인배와 같은 일을 하겠읍니까?' 그는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읍니다. `네가 소인배가 아니라고? 너는 나의 딸을 스승으로 삼는다고 말을 해놓고 어찌해서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나는 크게 이상해서 물어보았읍니다. `당신 딸에게요?' 그는 말을 했읍니다. `그 술집에서 너는 화산파의 사람과 내기를 하지 않았느냐 내기에서 진다면 나의 딸을 스승으로 삼겠다고. 설마하니 그게 거짓이란 말인가? 내가 항산에 딸을 찾아갔을 때 내 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실을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말을 했읍니다. `알고 보니 그렇군요. 그 비구니가 당신의 딸이라니 정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군요.' 그는 말하기를, `뭐가 이상하단 밀이냐?']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일은 본래부터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딸을 낳고 중이 되는데 불계대사는 거꾸로 중이 된 다음에 딸을 낳았읍니다. 그의 법명은 불계라고 하는데 그건 바로 불문의 법규를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전백광은 말을 했다.

 

[녜, 당신에 내가 말을 했죠. `내기에 관한 일은 장난이었는데 어찌 그것을 진짜로 여기십니까? 그 내기는 내가 졌읍니다. 그건 틀림이 없읍니다. 나는 더이상 그 소사태를 괴롭히지 않겠읍니다.' 태사부는 말했읍니다. `그것은 안 되는 말이지. 네가 사부로 삼는다고 했으니 반드시 사부로 삼아야 한다. 너는 반드시 내 딸을 사부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딸이 사람들에게 기만을 당하면 안 되지. 내가 계속해서 너를 찾기 위해 실로 적지않은 고생을 했다. 네놈은 미꾸라지처럼 잘도 도망을 치더구만. 네놈이 또다시 여자를 범하려 하지 않았다면 정말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야.' 나는 그가 계속해서 붙잡고 늘어질 것 같아서 즉시 도채삼척운(倒採三척雲)을 써서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쳐 버렸지요. 나는 스스로 나의 경공이 대단하다고 여겨 태사부는 틀림없이 쫓아올 수 없다고 생각되었지요. 그러나 뜻밖에 등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리고 태사부가 똑바로 뒤쫓아 왔읍니다. 그래서 내가 외치기를 `큰 스님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아니 했으니 나도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계속해서 쫓아온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태사부는 껄껄 웃더니 말을 했읍니다. `네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검을 뽑고 몸을 돌려 그를 내리쳤읍니다. 그러나 태사부의 무공은 상당하였읍니다. 그는 손바닥으로 나의 칼과 대항을 했읍니다. 그리고는 나의 칼을 꼼짝도 못하게 막아내고 한 사십여 초식을 겨룬 후 그는 단숨에 내 뒷덜미를 잡고 나의 칼을 빼앗아 버렸읍니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기를 `승복을 하겠는냐?' 내가 말했읍니다. `승복하겠읍니다. 자, 죽이려면 죽이시오.' 그는 말을 했읍니다. `내가 너를 죽여서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내가 너를 죽인다고 해도 내 딸을 구하지 못하는데.' 나는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읍니다. `소사태가 죽었읍니까?' 그는 말을 했읍니다. `지금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곧 죽을 것이야. 내가 항산에 가서 딸아이를 보았을 때 딸아이는 피골이 상접하고 말라있었어. 나를 보자마자 울더구만. 나는 천천히 딸아이에게 전후사정을 물어보았지. 딸아이는 모든 것을 나에게 다 말을 해주었지. 알고 보니 모두 너의 소행이더구만.' 내가 말을 했읍니다. `자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전백광이라는 사람은 평생 광명정대하고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것은 없읍니다. 나는 본래 당신의 따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려고 했는데 화산파의 영호충이 구해 주었읍니다. 이 전백광은 당신의 딸에게 손을 대지 않았읍니다. 따님은 순결하고 깨끗한 몸입니다.' 태사부는 말을 했읍니다. `이 죽일 놈아, 몸이 깨끗하고 순결하면 무얼 하느냐. 내 딸은 상사병에 걸렸어. 만약 영호충이 내 딸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 딸아이는 살 수가 없을 것이야. 그래서 내가 그 일을 말하기만 하면 나를 욕했지. 출가한 사람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으며 그런 나쁜 마음을 가진다면 보살이 벌을 내려 죽어서도 십팔층 지옥에 떨어진다고 그랬어.' 그는 한참 말을 하더니 내 목덜미를 잡고 나에게 욕을 했읍니다.

`이 못된 놈아 모두가 다 네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날 네가 내 딸에게 그러한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영호충은 구하러 오지 않았을 것이고, 내 딸아이가 그렇게 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말을 했죠. `그건 그렇게 말씀하기는게 아닙니다. 소사태는 천사처럼 아름다워 그날 내가 그녀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호충은 다른 구실을 붙여 따님에게 말을 걸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형, 당신의 이 말은 조금 지나치지 않소이까?]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로 죄를 지었읍니다. 당신 사정이 너무 위급하여 내가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면 태사부는 절대로 나는 놓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태사부는 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환해지더니 말씀하셨읍니다. `이 못된 놈아 네 스스로 생각을 해 보아라. 네 평생동안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했는가를. 만약 네 놈이 내 딸에게 무례함을 범하지 않았다면 이 어르신은 벌써 네 머리통을 박살냈을 것이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말을 했다.

 

[당신이 그의 딸에게 무례를 범했는데 오히려 기뻐하다니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것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나의 안목이 있다는 것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는 좌측손으로 내 목덜미를 거머쥐더니 허공에 띄우고 우측 손으로 내 뺨을 수없이 때렸읍니다. 그래서 나는 기절을 했었지요. 그는 나를 강물 속에 집어 넣어 정신이들게 하더니 말을 했읍니다. `내가 너에게 한달이나는 기간을 주겠다. 영호충이 항산에 와서 내 딸아이를 보도록 하라. 설사 내 딸이와 결혼은 하지 못하더라고 그가 와서 내 딸아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아도 괜찮다. 내 딸아이의 생명은 그렇게 되면 안전하게 될테니까. 사부가 어려움이 있는데 제자된 몸으로 어찌 보고만 있느냐? 그는 나의 몸에 있는 혈도를 몇군데 찍었읍니다. 그리고는 사혈이라고 말을 했읍니다.

또 나에게 강제로 독약을 마시게 하고 만약 한달 안으로 당신을 모셔와 소사태를 만나도록 한다면 해독약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독약이 발작하여 어떠한 약도 듣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영호충은 비로소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 전백광이 화산에 자기를 찾아왔을 때 마음속 가득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 많은 사연이 있을 줄 생각도 못한 것이다.

전백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화산에 가서 당신과 맞부딪쳤을 때 당신에게 패해서 이번에야말로 생명을 보존할 길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지요. 뜻밖에 태사부께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친히 소사태를 데리고 당신을 찾으러 와서 또 나에게 그 해독약을 주었읍니다. 나는 당신의 권고를 듣고부터 선량한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전백광은 태어날 때부터 여색을 좋아했으므로 여자 없이는 살 수가 없었읍니다.

어차피 몸에는 금은보화가 잔뜩 있으니 음탕한 여자들이나 기녀들은 아부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읍니다. 반달 전에 태사부께서 또 나를 찾아냈읍니다. 당신이 항산파의 장문이 되었다는데 다른 사람이 등 뒤에서 당신을 비웃고 강호에서 명성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씀을 하셨지요. 그 어르신은 당신...... 사위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고......]

 

영호충은 눈쌀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전형, 앞으로 그런 말씀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전백광은 말했다.

[녜, 녜. 나는 단지 태사부의 말을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노인네는 항산파에 몸을 의탁하러 들어간다면서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요. 그래서 첫번째로 그는 딸 대신에 나를 제자로 삼으려고 했읍니다. 내다 대답을 않자, 그는 주먹을 휘둘렀지요. 나는 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어서 별 수 없이 스승으로 삼았읍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자, 눈쌀을 찌푸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사부로 섬긴다 해도 반드시 중이 될 필요는 없소. 소림파도 출가를 안 한 적지 않은 제자들이 있소이다.]

 

전백광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태사부는 태사부 나름대로의 이치가 있었읍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는 너무 여색을 좋아한다. 항산파에 들어가면 사백사숙들은 모두 아름다운 비구니이니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는 나를 잡아당기더니 내 바지를 끌어내려 칼을 들더니 이렇게 싹둑 나의 그것을 자라버렸읍니다.]

 

영호충은 `악' 하고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일은 지나치다고 느꼈지만, 그러나 전백광이 일생 동안 피해를 준 선량한 여자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인과응보라고 생각이 되었다. 전백광 역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시 나는 기절을 해버렸읍니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 태사부는 이미 나의 그곳에 약을 바르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읍니다. 나 보고 며칠 동안 몸을 돌보라고 했읍니다. 그리고 나에게 강제로 머릴 깎게 하고 중이 되도록 했읍니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불가불계하는 법명을 지어 주었읍니다. 태사부는 말하기를 `나는 이미 너의 그것을 잘라버려 너는 여자와 즐길 수가 없으니 중이 될 필요도 없지. 내가 너 보고 중이 되라 하고 불가불계라는 법명을 지어준 것은 사실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한 것이고 또한 항산파의 명성을 위해서이기도 하지. 본래 중과 비구니가 한데 섞여 있으면 좋은 일은 못돼. 그러나 불가불계라는 간판을 지니고 다니면 괜찮지.']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의 태사부는 생각이 참으로 용의주도하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는 나 보고 당신에게 이 일을 설명하고, 또 나에게 당신이 나의 사부님을 절대로 책망하지 말도록 부탁을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어째서 당신 사부를 책망합니까? 그런 일은 없읍니다.]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매번 딸을 볼 때마다 딸은 더욱 여위어 가고 안색도 나빠져서 딸에게 물어보면 딸은 항상 눈물만 흘릴 뿐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읍니다. 태사부께서 말씀하시길 틀림없이 당신이 따님을 못살게 굴었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래서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읍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강력하게 당신 사부에게 말한 적이 없읍니다. 더우기 그녀는 행실이 좋은데 내가 어찌 그녀를 책망할 수가 있겠읍니까?]

 

전백광은 말했다.

 

[바로 당신이 그녀에게 한 마디도 욕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사부가 우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또 왜 그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께서는 이 일 때문에 나를 또 때렸읍니다.]

 

영호충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이불계대사의 억지란 도곡육선과 하나도 다른 점이 없구나.)

전백광이 말했다.

 

[태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태사모(太師母)와 부부가 되고 난 후 아무 때나 말다툼을 하고 욕을 할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나요. 당신이 나의 사부를 욕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건...... 당신 사부는 출가한 사람이니 나는 그런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읍니다.]

 

전백광은 말했다.

 

[나도 그렇게 말을 했죠. 태사부는 크게 화를 내고 나를 또 한바탕 때렸읍니다. 그가 말하기를 `나의 태사모도 물론 비구니 인데 그는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중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출가한 사람이 부부가 될 수 없다면 이 세상에 어찌 나의 사부가 생길 수 있었겠읍니까? 만약 세상에 나의 사부가 없다면 또 어찌 내가 있을 수 있었겠읍니까?]

 

영호충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의림 소사매는 당신보가 나이가 훨씬 적은데 어떻게 소사매와 당신을 한군데다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고 내심 생각하였다. 전백광은 또 말을 했다.

 

[태사부께서 또 말씀을 하셨읍니다. 만약에 당신이 나의 사부를 맞이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항산파의 장문의 직을 맡았는가 하구요. 그는 말하기를 항산파는 비구니가 많지만 나의 사부보다 더욱 아름다운 비구니는 하나도 없다고 하셨읍니다. 당신은 나의 사부가 아니라면 어떤 비구니 때문에 장문인을 맡았읍니까?]

 

영호충은 속으로 아뿔사 하고 외쳤다. 내심 생각하기를, (불계대사는 그 당시 비구니를 아내로 삼으려고 중이 되었다. 그는 오로지천하의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줄 알고 있구나. 이 말이 퍼져나간다면 정말 큰일이겠구나.)

 

전백광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태사부는 나의 사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냐고 물어봤죠. 그래서 나는 말하기를 `최고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예쁩니다.' 그러자 그는 한주먹으로 나의 이빨 두개를 부러뜨리더니 화를 벌컥내면서 말했읍니다. `어째서 최고로 아름답지 않느냐? 내 딸이 아름답지 않다면 너는 왜 그때 무슨 의도로 내 딸에게 무례를 범하려고 했느냐? 영호충 이놈은어째서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내 딸을 구했단 말이냐?' 나는 급히 말을 했죠.

`최고로 아름답습니다. 최고로 아름답습니다. 태사부 당신이 낳은 따님인데 어찌 천하에서 제일 아름답지 않겠읍니까?' 그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안목이 높다고 칭찬을 하였지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의림 소사매는 본래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불계대사의 언지를 탓할 수만은 없읍니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도 나의 사부님이 상당히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시는군요.

거 참 다행입니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뭐가 다행이라고 하십니까?]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는 나에게 멋진 임무를 하나 주었읍니다. 나 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당신보고...... 당신으로 하여금......]

영호충은 말했다.

 

[나 보고 뭘 하라는 말이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이 나의 사부의 남편이 되도록 하라구요.]

 

영호충은 이 말을 듣고 멍하였다.

 

[전형, 불계대사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는 것은 알수 있소. 그러나 이 일은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을 당신도 확실하게 알고 있지 않소?]

 

전백광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도 이 일을 성사시키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을 했지요. 그리고 당신이 임 소저를 위해서 여러 사람을 이끌고 소림사에 갔다는 것까지 이야기했읍니다. 내가 말하기를, `임 소저의 얼굴은 나의 사부보다는 못하지만, 영호공자는 그녀와 인연이 닿고 이미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을 해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호공자, 태사부님 면전에서 나는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소. 이렇게 해야만이 몇게 남은 이빨이라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어서요. 당신은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일쯤이야 나도 알고 있소.]

 

전백광은 말했다.

 

[태사부는 이 일에 대해서 자기도 상세하게 알고 있고 이 일을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했읍니다. 어떤 방벙을 강구해서라도 임 소저를 죽이고, 당신이 알지 못하도록 한다면 만사가 다 끝난다고 했읍니다. 나는 급히 안 된다고 했지요. 만약 임 소저를 죽인다면 영호공자는 틀림없이 자살을 할 것이라고요. 태사부는 말하기를, `그 말도 맞기는 맞구만. 영호충 이놈이 죽는다면 내 딸은 과부가 될테니 그렇게 되면 큰일이 아닌가? 이렇게 하거라. 네놈이 가서 영호충에게 내 딸을 그의 첩으로 줄 수도 있다고 말해라.' 내가 말을 했지요. `태사부님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읍니까?' 그때 태사부께서는 탄식하며 말을 했죠. `너는 모른다. 나의 딸년이 만약 영호충에게 시집을 가지않는다면 곧 죽어버리고 말 것이고 산다고 해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야.'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눈물을 줄줄 흘렀읍니다. 아, 이것이 바로 부녀지간의 정이었읍니다. 하나도 가식이 없었읍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쳐다보며 모두 난감해했다. 전백광이 말했다.

[영호공자, 태사부가 나에게 부탁한 말을 나는 모두 당신에게 전하였소. 나도 실로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특히 당신은 항산파의 장문인이니까 더욱 난감한 처지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그런 나는 당신이 나의 사부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좀 기쁘게 해주기를 권하고 싶소. 그 나머지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이 될 것입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죠.]

 

이 며칠동안 의림을 볼 때마다 나날이 야위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다. 의림이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고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녀는 출가한 사람이고 나이 또한 어려 이런 일들은 세월이 지나면 거두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후로 선하령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고 지금까지 단독으로 그녀와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자기 소문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자기의 명성을 해치는 것에 대하서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항산파의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항산 여제자들에게 검법을 전수해 주는 것 외에는 잡담을 삼가했으며, 옛날과 같이 미친 척하고 떠들 때와는 영 딴판이 되어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전백광에게 지난 이야기를 듣자, 의림에 대한 정이 순식간에 가슴속에 밀려왔다.

먼 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갑자기 산길에서 한 무리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견성봉(見性峯)은 평소에 조용했으며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발걸음소리가 들려오며 수백명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맨 먼저 달려오는 자가 외치면서 말했다.

 

[영호공자님, 축하합니다. 오늘 큰 경사가 있다고요.]

이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하였다. 바로 노두자였다. 그의 뒤에는 계무시, 조천추 및 황백유, 사마대, 남봉황, 유신, 막북쌍웅 등 일행이 뒤따르고 있었다.

영호충은 놀라고 기뻐서 급히 앞으로 달려나가 말을 했다.

 

[저는 정한사태의 유명을 받들어 할 수 없이 항산파의장문인 직을 맡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초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오셨읍니까?]

 

이 사람들은 영호충과 함께 소림사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싸움을 했기 때문에 이미 떨어질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나오더니 그를 중간에 에워싸고 이말저말을 물어보았다.

노두자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모두들 영호공자께서 성고를 구했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내심 기뻐하고 있었죠. 영호공자께서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게 된다는 것은 이미 강호를 뒤흔들었읍니다. 모두들 이곳에 와서 축하를 하지 않는다면 백번 죽어도 마땅하지요.]

 

이 사람들은 호탕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사람들이라 너도 한마디 나도 한마디를 주고받자 금방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영호충은 항산에 온 직후 비구니와 여자들에게 말을 할 때 극히 조심하였다. 그렇지만 이때 갑자기 이렇게 많은 옛친구들을 만나게 되자, 실로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황백류가 말을 했다.

 

[우리들은 불청객이니 항산파는 우리들의 음식이나 잠자리를 준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 먹을 것을 가지고 왔읍니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을 했다.

 

[그것 참 잘하셨읍니다. 고맙습니다.]

 

내심 생각하기를, (마치 오패강에서 모였던 때와 같구나.)

 

말하는 사이에 또 수백명이 산으로 올라왔다.

계무시는 웃으면서 말했다.

 

[한가족이나 다름이 없읍니다. 당신의 여제자들은 우리같이 막되먹은 사람들을 초청하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알아서 하겠읍니다.]

 

이때 견성봉 위에서는 여기저기서 떠들썩하였다. 항산파의 여러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오자 모두들 흥분하였다. 그중 견문이 넓고 나이가 지긋한 제자들은 축하를 하러온 사람들이 비록 적지 않은 지명인사가 끼어 있지만 모두가 사파의 고수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항산파의 문규는 심히 엄격하여 여러제자들은 모두가 마음을 깨끗이 했으며 설령 정교의 인사들일지라도 내왕이 실로 적었던 것이다. 이들 좌도의 인물들은 마주쳐도 아는 체를 안 했다. 그러나 오늘 벌떼처럼 봉우리에 올라와서는 장문인과 껴안고 손을 잡아당기며 아주 친한 것을 보자 별 수 없이 마음속으로만끙끙 앓고 있었을 뿐이었다.

 

[출처] 소오강호 6-1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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