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소오강호 7-1 김용
소오강호 제 7 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영호충은 항산에 도착하였다. 산 아래에서 망을 보고 있던 항산파 제자들이 그를 보고 산 위로 달려왔다. 얼마후 다른 여러 제자들도 일제히 달려나와 맞이했다. 항산 별원에 모여있던 군웅들은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마중을 하였다. 영호충은 그간의 일들을 물어보았다.
조천추는 말했다.
[장문인께 아룁니다. 남제자들은 모두 별원에 묵었고 한사람도 봉우리에 올라가지 않았으며 규칙을 매우 잘 지키고 있었읍니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거참 잘 되었군요.]
의화는 웃우면서 말헹다.
[그들은 틀림없이 아무도 봉우리에 올라오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규칙을 잘 지켰다는 것은 과장된 것입니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어째서 그런말을 하는 것이요?.]
의화는 말을 했다.
[밤낮으로 통원곡에서 떠드는 소리에 우리들은 주암에서 하룻밤도 편할 날이 없었읍니다.]
영호충은 껄껄 크게 웃더니 말을 했다.
[그 친구들에게 잠시라도 조용히 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겠지요.]
영호충은 즉시 간략하게 임아행이 교주의 자리를 다시 되찼았다는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군웅들은 일제히 뛸듯이 기뻐했고 그 떠드는 소리가 계곡을 진동하였다. 모두들 생각하기를, (임 교주가 다시 교주 자리를 빼앗았으니 성고는 자연히 권력이 막강해지겠구나. 앞으로는 틀림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영호충은 견성봉에 올라 무색암에 이르러 정한 등 세분 사태의 영전에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나서 의와, 의청 등의 큰 제자들과 3월 15일의 숭산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항산파는 응당히 하남(河南)으로 떠나야겠다는 일들을 상의하였다.
의화 등은 모두 숭산파의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서 통원곡의 궁웅들을 데리고 숭산에 가는 것은 물론 크나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로인해 태산, 형산, 화산, 세파의 시비를 받을 수가 있고, 또한 좌냉선이 항산파를 반대할 수 있는 핑게 하나를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말을 하였다.
의화는 말했다.
[장문 사형의 검법은 좌냉선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읍니다. 따라서 오악 장문인의 직위를 맡는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통원곡의 여러 형제들을 데리고 가면 틀림없이 엉뚱한 일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우리들이 그곳에 가는 뜻은 좌냉선이 네파를 삼킬 수 없도록 하는데 있읍니다. 내가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 것도 어울리지 않는데, 오악 장문인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여러분들이 통원곡의 그 형제들을 데리고 숭산에 가지 말라고 하니 그렇게 하겠읍니다.]
그는 통원곡에가서 살며시 계무시, 조턴추, 노두자 세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계무시 등은 그에 동의했고 영호충이 여러제자들을 데리고 먼저 가면 나중에 세 사람이 군웅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에 영호충과 군웅들은 술을 만취되도록 마셔댔다. 원래 다음날 아침 숭산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술이 깨었을 때는 이미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모든 것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별수 없이 하루를 연기 하였다.
둘째날 아침에 영호충은 비로소 여제자들을 데리고 숭산을 향해서 출발하였다. 일행은 며칠동안 걷다가 한 읍에 도착하여 낡은 대사당(大祠堂)에서 휴식을 취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정악 등 일곱 여제자들은 밖에 나가 사방을 살펴고 숭산파 사람들이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가를 살펴보았다.
얼마 안 되어 정악과 진견은 날듯이 달려와서 외쳤다.
[장문 사형, 빨리 나와서 보세요!]
두 사람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 하였다. 틀림없이 무슨 재미있는 일을 본 둣하였다.
의화는 급히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예요?]
진견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사매, 내가 혼자가 서보아라.]
영호충 등은 그녀 두 사람을 따라서 함계 깊숙히 들어갔다. 서쪽 복도에 있는 한 방에 들어가자 방바박에 몇사람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도곡육선들이었다. 여섯사람들은 꼼작도 않고 포개져 쌓여 있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제일 위에 포개져있던 도근선을 안아서 내려놓았다. 그의 입에는 복숭아 한 개가 틀어박혀 있어서 영호충은 그 복숭아를 끄집어 냈다.
도근선은 즉시 욕을 하였다.
[이 제미랄놈 네놈의 조상들은 한 놈도 곱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손 대대로 모두가 똥구멍이 없는 놈들일 것이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 보시오 도근선 대형. 나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
도근선은 말을 했다.
[내가 어찌 당신을 욕할 수 있다는 말이요? 거 함부로 생사람 잡지 마시오. 이 개새끼 같은 놈! 내 이 어르신이 놈을 보면 여덟 조각 열여섯 조각 서른 네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당신은 누구를 욕하고 있오?]
도군선은 말을했다.
[제미랄놈, 내가 그놈을 욕하지 않으면 누굴 욕하겠오?]
영호충은 또 그 나머지 다섯사람 중에서 제일 위에 쌓여져 있던 도화선을 안아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입 속에서도 복숭아를 끄집어 내었다. 복숭아가 입에서 반절도 채 나오기 전에 도회선은 말을 하고 싶은 나머지 중얼중얼 말을 하였다.
[형님, 형님의 말이 틀렸읍니다. 여덟 조각의 배는 열여섯 조각이고 열여섯 조각의 배는 서른두조각인데 형님은 어째서 서른네조각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도근선이 말했다.
[내가 서른 네조각을 좋아해서 그런다 어쩔래! 나는 한배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속으로는 한배에다가 둘을 보탠다고 생각하였다.]
도화선은 말을 했다.
[어째서 한배에다가 둘을 보탤려고 합니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몸은 아직 혈도가 풀어지지 않아서 입만 자유로와 즉시 떠들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두 사람은 떠들지 마시오.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도화선은 욕을 하였다.
[불계와 불가불계 이 두놈의 중놈들이! 조상 대대로 썩어빠진 중놈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째서 불계대사를 욕하십니까?]
도근선은 말을 하였다.
[그를 욕하지 않으면 누굴 욕한단 말이오? 당신이 우리들에게 간다고 말도 않고 떠난 후 조천추가 모두들에게 설명하였읍니다. 우리 여섯 형제가 어째서 숭산에 가서 그 재미있는 장면을 보지 않을 수가 있겠읍니까? 그래서 뒤따라 왔지요. 우리들은 당신들 보다 먼저 가려고 했읍니다. 여기까지 당도하자 불가불계 이 중놈을 만났읍니다. 그놈은 거짓으로 우리들과 함께 술을 먹겠다고 했고 또 여섯마리의 개가 호랑이를 물어 죽였다고 말을 하고 우리를 속여 가서 보도록 했지요. 그런데 그의 대사부인 불계 이 썩어빠진 중놈이 이곳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방비하지 않은 틈을 타 우리 모두의 혈도를 찍어서 장작개비처럼 이곳에다 쌓아두었읍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만약에 숭산에 간다면 틀림없이 영호 장문인의 대사를 망친다나요. 제미랄놈, 우리가 어째서 당신의 대사를 망친단 말이오?]
영호충은 이제서야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번에는 도곡육선들이 이겼고 불계대사가 졌소이다. 당신들 여섯형제는 다음번에 그들을 만나게 되면 절대로 오늘의 사건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더우기 그들에게 손찌검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오늘의 사건의 원인을 묻게 되어 불계대사가 도곡육선에게 고통을 당했음을 알게 되면 그들의 체면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오.]
도근선과 도화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다음번에 이 두놈의 중놈들을 만나면 우리들은 아무일 없는 척하고 그들의 체면을 세워 줍시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빨리 이 형제들의 혈도를 풀어 주십시오. 그들은 아마 굉장히 답답했을 것이오.]
즉시 순을 내밀어 도화선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그들 여섯 형제가 또 한바탕 떠드는 것을 듣지 않기 위함이었다.
정악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대사형 그들은 무었을 하고 있읍니까?]
진견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들은 탑쌓기를 하고 있어요.]
도화선은 갑자기 욕을 하였다.
[이봐 비구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나 우리가 어째서 탑을 쌓는단 말이오?]
진견은 뭇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비구니가 아니에요.]
도근선은 말을 했다.
[당신은 비구니와 함께 있으니 마찬가지로 비구니지.]
진견은 말을 했다.
[영호 장문인은 우리와 함께 있으니 장문인도 비구니입니까?]
정악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도 우리들과 함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모두 비구니가 되었겠군요.]
도근선과 도화선은 할 말이 없었다. 서로 원망하고 서로 탓하며 서로가 잘못하여 자기들이 비구니가 돠었다고 원망하였다. 영호충과 의화 등은 방 밖에서 한참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도곡육선은 나오지를 않았다.
영호충이 또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도화선은 낄낄 대며 왔다갔다 하고 아직까지 다섯형제의 혈도를 풀어주지 않았다. 영호충은 깔깔 웃더니 급히 손을 내밀어 다섯사람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급히 방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서 치고 받고 하는 소리가 크게 나는 것으로 보아 한바탕 엉켜붙은 것 같았다.
영호충은 킥킥 거리면서 그곳을 나왔다. 모퉁이를 몇개 돌아 수장을 걸어가니 작은 논길 위에 당도하였다. 논가에는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꽃봉오리가 가득 열려 있었다. 봄바람이 불어오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활짝 필성 싶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 복숭아 꽃은 예쁘기 짝이 없는데, 도곡육선은 어째서 이렇듯이 엉뚱하고 해괴한 짓만 하는가! 도곡육선과 복숭아 꽃을 아무리 좋게 연관시켜보려 해도 어울리지가 않는구나.)
그는 한찬동안 한가롭게 산보를 한 다음 또 생각하였다.
(여섯형제는 지금쯤 싸움을 다 끝마쳤을 것이니 그들과 함께 술을 먹어도 되겠구나.)
갑자기 몸 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호 오라버니!]
영호충이 몸을 돌려보니 그것은 의림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가벼운 소리로 말을 했다.
[한가지 여쭤 볼 말이 있는데 괜찮겠읍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물론, 무슨 일이오?]
의림은 말을 했다.
[도데체 당신은 임소저를 더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그 악씨 성을 가진 소사매를 더 좋아하십니까?]
영호충은 멈칫하여 심히 난감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어째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오?]
의림은 말했다.
[의화, 의청 사매께서 나보고 좀 물어봐 달라고 하셨읍니다.]
영호충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돠었다. 약간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들이 어째서 그런 말들을 물어봐 달라고 할까?]
의림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신과 소사매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 한 적이 없읍니다. 그날 의화 사저가 악 소저와 다투어 쌍방이 모두 틈이 벌어졌읍니다. 의진, 의령 두 사저가 당신의 명을 받고 상처에 바르는 약을 갔다 두었는데 화산파는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 사저을 냉대하였읍니다. 모두들 당신이 화를 낼까봐 당신 앞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읍니다. 나중에 우수와 의문 사저가 또 화산에 가서 당신이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는다고 전갈하러 갔을 때에는 화산파 사람들이 그들을 억류까지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약간 놀라 말을 하였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의림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불가불계가 말한 것입니다.]
영호충이 말앴다.
[전백광이!]
의림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당신이 흑목애에 가신 직후에 사저는 그를 화산파에 보내어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전백광은 경공이 대단하니 염탐을 해도 그리 쉽게 그들에게 발각되지는 않았을것이오. 그들 두 사저의 소식을 가져왔소?]
의림은 말을 했다.
[네 그러나 화산파는 매우 엄중히 지키고 있어서 그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행이도 두 사는 고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에게 쪽지를 써서 절대로화산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지 말고, 더우기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쪽지를 써서 그에게 전해준 것은 사부님의 수법과 똑같군요.]
의림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을 했다.
[나는 견성봉에 있고 그는 통원곡에 있으므로 일이 있어 그에게 알릴 때에는 별수없이 쪽지를 써서 보냈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됐읍니다. 내가 농담을 했을 뿐입니다. 전백광은 뭐라고 합디까?]
[전백광은 경사가 난 것을 봤다고 합니다. 당신의 옛날 사부는 사위를......]
갑자기 영호충의 얼굴이 크게 변하였다. 그녀는 내심 당황하여 말을 멈추었다. 영호충은 목구멍이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씩씩 대며 말을 했다.
[계속 말을 하시오. 괜찬소......괜찬소.]
자기가 자기의 목소리를 들어도 자기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의림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했다.
[영호 오라버니, 괴로워하지 마세요. 의화, 의청 사저들은 모두 말하기를 임소저는 마교의 사람이지만 그 아름다움과 무공이 악소저보다도 몇백배 강하다고 했읍니다.]
영호충은 씁슬히 뭇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하나도 괴롭지 않소. 소사매가 의지할 곳이 생겼다니 내가 응당히 기뻐해야 될 일이오. 그는...... 그는...... 전백광이 나의 소사매를 보았다고......]
의림은 말을 했다.
[전배광은 화산 옥녀봉에는 휘황찬란한 청사초롱이 켜져 있고, 매우 떠들석했다고 합니다. 각 문파에서는 축하객들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악 선생은 우리 항산파에는 알리지도 않았읍니다.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림은 또 말을 했다.
[우수와 의문 사저는 화산파에 좋은 소식을 알리러 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물도 보내지 않고 축하인사를 파견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소식을 알려주러 간 사저들까지도 묶어 놓고 풀어주지 않는 것입니까?]
영호충은 멍해져서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하였다.
의림은 말했다.
[의화, 의청 두분의 사저가 말하기를 화산파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예의를 따지지 않으니 우리들도 예의로 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읍니다. 숭산에 가서 그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의 무례에 대해서 추궁을 하고 사람들을 풀어달라고 해야만 합니다.]
영호충리 또 다시 실망을 하고 정신이 나간 모양을 하고 있는것을 보고 의림은 한숨을 쉬더니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했다.
[영호 오라버니, 몸 조심하세요.]
하고 천천히 물러갔다.
영호충은 그녀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자 불렀다.
[사매!]
의림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나의 사매와 혼인을 한 자는 바로......바로......]
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임씨 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영호충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우측 소맷자락을 끌더니 말을 했다.
[영호 오라버니, 그 임씨 성을 가진자는 당신의 반도 따라가지 못해요. 악소저는 사리분별을 못 하는 사람이라 그에게 시집을 간 것입니다. 사저들은 당신이 화를 낼까봐 지금까지 당신에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도곡육선이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와 전백광은 바로 이부근에 있다고 합니다. 전백광이 당신을 보면 아마 그 말을 할 것입니다.설령 전백광이 말을 하지 않아도 며칠 뒤면 숭산에 가서 틀림없이 그 악소저와 그의 남편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이 그녀가 새색시 차림을 한 것을 보면 어쩌면......어쩌면 큰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임소저가 당신 옆에 있다면 좋겠다고 했읍니다. 그리고 나보고 당신께 가서 악소저를 마음에 새겨 두지 말도록 말 좀 하라고 시켰읍니다.]
영호충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들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내가 상심헤 할까봐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를 더욱 세심하게 보살폈구나.)
갑자기 손등에 몇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옆으로 하니 의림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당신......당신은 어째해서 그러시오?]
의림은 처량하게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고......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읍니다. 영호 오라버니 울고 싶으면 큰 소리로 울어 버리세요.]
영호충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내가 어찌서 울어야 한단 말이오. 영호충은 정처없는 떠돌이라 사부와 사모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문에서 내쫓았소. 소사매가 어떻게 나를......나를...... 아, 하하하하!]
큰소리로 웃고는 잽싸게 달려갔다.
단숨에 이십여 리를 달려간 것이다. 황령하고 이적이 끊긴 곳에 이르자 슬픔이 가슴속에서 치밀어올라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어서 땅바닥에 쓰러져 큰소리로 울었다. 한참 울고 나자 비로소 약간 마음이 풀어졌다. 내심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돌아간다면 두눈이 부어올라 의화 등 그녀들이 이 모습을 보고 나를 비웃을 것이다. 저녁때가 된 다음에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한편으로 또, 생각하기를, (내가 오랬동안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걱정 할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울면 운 것이고, 웃으면 웃은 것이지, 영호충이 악영산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은 천하가 모두 아는 일이 아닌가.)
즉시 걸음을 빨리하여 그들이 있는 낡은 사당으로 돌아왔다. 의화, 의청 등은 마침 사방에 흩어져 자기를 찾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탁자에는 이미 술과 요리가 파려져 있었다. 영호충은 자음자작을 하고 크게 취한다음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며칠 뒤에 숭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숭산대회까지는 아직 이틀이 남아 있었다. 삼월 십오일까지 기다렸다가 영호충은 여러 제자들을 이끌고 아침 일찍 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산허리에 이르자 네명의 숭산 제자들이 영접하러 나왔다. 그들은 심히 예의를 갖추고 말하였다.
[숭산의 후학들은 항산파 영호장문인께서 왕림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좌 장문인게서는 산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말하기를, [태산, 형산, 화산 세파의 사백 사숙과 사형들은 어제 이미 도착하였읍니다. 영호 장문인과 여러 사저들이 이렇게 오시니 숭산파의 여러 사람들은 감격하고 또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영호충이 산을 오르면서 보니 산길은 개끗이 쓸려져 있었고 몇리를 지날 때마다 몇명의 숭산 제자들이 차와 물 따위를 준비하여 빈객을 영접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만 보아도 숭산파가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이것으로써 좌냉선이 오악검파의 장문인에 뜻을 두고 있으며 그 야심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참 걸어가자 또 몇명의 숭산 제자들이 마중을 나와 영호충을 보고 인사를 하였다.
[곤륜, 아미, 공동, 청성 각파의 장문인들과 선배 어르신께서는 오늘 모두 숭산에 오셔서 오악파가 천거한 장문인의 대전(大典)에 참여하실 예정입니다. 곤륜파 청성파리 여러분들은 이미 도착을 하셨읍니다. 영호 장문인께서도 때마침 잘 오셨읍니다. 모두들 산 위에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이 몇사람의 안색에서 교만함을 엿볼 수가 있었고 그들의 말투를 들어보니 오악파의 장문님 자리는 그 누가 뭐라해도 숭산 좌냉선의 손바닥에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올라가니 갑자기 벼락과 같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두개의 푹포수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폭포수 옆으로 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길을 안내하는 한 명의 숭산파 제자가 말했다.
[이곳이 바로 승관봉(勝觀峯)입니다. 영호 장문인께서 보시건데 이곳의 경치와 항산의 경치와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항산은 영기가 살아있으며, 숭산은 웅장하고 힘이 넘치니 모두 멋집니다.]
그 사람은 말을 했다.
[숭산은 천하에서 가운데에 위치하고 한나라 당나라 때에는 경기(京畿)안에 위치했으며, 원래 천하의 뭇산들의 우두머리 산입니다. 영호 장문인께서 보십시오 이 기상을. 역대 제왕들은 모두 이곳 숭산 아래에서 왕도를 건립하였읍니다.]
그가 말하는 뜻은 숭산이 뭇산들의 우두무리인 것처럼 숭산파도 역시 여러파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잔잔히 웃고는 말을 했다.
[우리 강호이 인사들과 제왕, 관리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좌 장문께서는 관가의 사람들과 교분을 갖고 계십니까?]
그 사람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을 하지 못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산길은 갈수록 험악하였다. 길을 인도하는 숭산파 제자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이곳이 청강봉(靑岡峯), 저곡이 청강평(靑岡坪)입니다. 이곳이 바로 대철양협(大鐵梁峽)이고 저곳이 바로 소철(小鐵)양협입니다.]
철량협의 바위들은 모두가 과석이었다. 그 좌측은 만길의 깊은 계곡으로 밑이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의 숭산 베자가 큰 돌맹이를 하나 주워 계곡 아래로 던졌다.큰 돌맹이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면서 처음에는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나더니 나중에는 소리가 점점 작아져 결국은 들리지 않았다.
의화는 말을 했다.
[사형제 말씀 좀 여쭈어 보겠읍니다. 오늘 숭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읍니까?]
그 사람은 말을 했다.
[적게 잡아도 이천 명 정도는 될것입니다.]
의화는 말을 했다.
[손님 한사람 한사람이 이곳에 당도할 때마다 당신들이 돌맹이를 던져 시험을 한다면 얼마 안 있어 이 계곡은 당신들이 던진 돌맹이로 꽉 매워지겠군요.]
그 사내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모퉁이를 하나 도니 앞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였다. 산기슭에는 십여 명의 사내가 손에 각자 병기를 들고 길을 막고 서 있었다.
한 사람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영호충은 언제 이곳으로 올까? 친구들이 그자가 오는 것을 보면 이 눈먼 자에게 가르쳐 주게나.]
영호충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니 수염이 양쪽에 칼날처럼 나 있고, 안색이 음산하여 공포의 분위기였으며 한쪽 눈이 멀었다. 다시 나머지 사람을 보니 모두들 눈먼 봉사였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면서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영호충은 여기 있읍니다. 귀하께서는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영호충이 여기 있다는 말을 하자 몇명의 봉사들은 즉시 일제히 욕을 하고 병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모두들 욕하기를, [영호충, 이 못된 놈! 네놈이 우리들의 눈을 이렇게 멀게 했다.
오늘 네놈이 죽나 우리가 죽나 한번 결판을 내자.]
영호충은 갑자기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날밤 화산파가 낡은 사당에서 기습을 당했을 때 내가 새로 배운 독고구검의 검법으로 적지 않은 적들의 눈을 멀게 했다. 이 사람들의 정체를 줄곧 생각해도 알아내지를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숭산파가 파견한 자들이었구나. 오늘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눈앞의 길은 상당히 험준하여 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덤벼들면 발목만 잡혀도 단번에 수천 길의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았다. 또한 길을 안내하던 숭산 제자들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매우 고소하다는 눈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용천 주검곡에서 숭산파에 있는 놈들을 적지 않게 죽였으니 오늘 숭산에 오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많을 것이다.)
그리고 말을 했다.
[이 눈먼 친구들은 숭산파 문하의 제자들입니까? 귀하께서 그들로 하여금 길을 비키도록 말씀 좀 해주시오.]
그 숭산 제자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들은 우리 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가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영호 장문님께서 혼자 처리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일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어르신이 먼저 네놈부터 처치하고 그 다음에 다른 일을 하겠다.]
바로 불계화상이 도착한 것이다.
그의 몸 뒤에는 불가불계인 전백광이 따라왔다. 불계는 성큼 앞으로 달려가 단숨에 두 명의 숭산 제자들을 거머쥐고 눈먼 봉사들을 향해 던지며 외쳤다.
[영호충이 간다!]
눈먼 봉사들은 마구 병기를 휘둘렀다. 두명의 숭산 제자들은 무공이 높아서 몸이 허공에 떴어도 여전히 검을 뽑아 막으면서 크게 외쳤다.
[같은 숭산파 사람들입니다. 빨리 길을 비키십시오!]
눈먼 사람들이 급히 피하느라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불계는 앞으로 달려나가 또 두 명의 숭산제자들을 거머쥐고 일갈을 했다.
[네놈들을 이 봉사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이 어른께서 네놈들을 던져 버리겠다.]
두팔에 기를 집어넣어, 두 사람을 허공을 향해 던졌다. 불계화상의 완력은 대단하였다. 두 명의 숭산 제자들은 허공에서 똑바로 칠팔장 정도 날아갔다. 그들은 혼비백산되어 비명소리를 질렀다. 자기들이 수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순식간에 곤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계화상은 그들 두 사람이 땅바닥에 떨어지기를 기다려 두 팔을 일제히 내밀고 다시 두 사람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말을 했다.
[자, 어디 다시 한번 해볼까?]
한 명의 사내가 급히 말을 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른 한 명의 숭산 제자는 약아서 큰소리로 외쳤다.
[영호충 너는 어디로 도망가느냐? 여러 친구들이여 빨리 뒤쫓으시오! 빨리 쫓아가시오!]
십여 명의 봉사들은 그의 말을 듣고 정말인 줄 알고 급히 달려갔다.
전백광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영호 장문인의 존함이 너희들이 부르라고 만든 것이냐?]
팍팍 두빰을 때리고는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영호 대협은 여기 계시다. 영호 장문님은 이곳에 계시다. 눈먼 놈들 중에서 씨가 있는 놈은 영호 장문인에게 한수 배워봐라]
눈먼자들은 숭산 제자들의 사주를 받고 있었고, 또한 두눈을 영호충 때문에 잃어서 그 원한을 갚으려고 산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명의 숭산 제자들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간이 콩알만 해졌고, 또 산길에서 이리저리 한참을 뛰고 나자 두눈이 사물을 볼수가 없는 터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영호충, 불계화상, 전백광과 항산의 여러 제자들은 눈먼 사람들의 몸 옆을 지나 산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봉우리가 끊기며 천연의 문이 하나 나타났다. 바람이 그 문에서 불어 왔으며 구름과 안개가 바람과 함께 얼굴에 와 닿았다.
불계화상이 일갈을 했다.
[이곳은 뭐라고 부르는 곳이냐? 어찌 벙어리가 되었느냐?]
그 숭산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했다.
[이곳이 바로 조천문(朝天門)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여러 사람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또 다시 한참동안 산길을 올라갔다. 봉우리 정상의 넓은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있었다. 길을 인도하는 여러 명의 숭산 제자들은 먼저 달려나가 소식을 전하였다. 이어서 영호충을 환영하는 음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좌냉선은 황색의 옷을 입고 이십여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나와 공수를 하며 맞이 하였다.
영호충은 지금은 비록 항산의장문인이지만, 줄곧 지금까지 그를 좌 사백이라고 줄러왔으므로 필경 그의 후배였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며 말했다.
[후배 영호충이 숭산 장문께 인사드립니다.]
좌냉선은 말을 했다.
[오랬동안 못 만났더니 영호세형(令狐世兄)께서는 풍채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읍니다. 젊은 세형이 항산파 문호를 장악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정말 기쁘고 축하할 일입니다.]
그는 매우 냉혹한 사람이었다 이때 그의 표정에서는 축하하거나 기쁜 표정은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영호충은 그의 말투속에 뼈가 있음을 알았다. 무림 중의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한 것은 그가 남자로서 비구니의 우두머리가 된 것을 풍자한 것이고 젊다는 것은 더욱 나쁜 뜻이었다.
그래서 말을 했다.
[저는 정한사태의 유언에 따라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았읍니다.
항산 문호를 맡은 것은 두분 사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이지요. 복수를 하고 나서는 나 스스로 장문의 자리레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좌냉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좌냉선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거나 분노와 증오를 억제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좌냉선의 얼굴은 근육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좌냉선은 말했다.
[오악검파는 지금까지 동고동락을 하였고, 앞으로도 오파가 하나가 되면 정한, 정일 두분 사태의 피맺힌 원수는 단지 항산의 일만은 아니고 우리 오악파의 일이기도 합니다. 영호 형제의 뜻이 그러하니 거참 장한 일이군요.]
그는 또 한참 쉬었다가 말을 했다.
[태산 천문도형, 형산 막대선생, 화산 악선생과 그리고 축하하러 오신 적잖은 무림의 친구들이 모두 도착을 하였소. 저쪽으로 가서 만나보도록 하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소림의 방증대사와 무당의 충허도장은 오셨읍니까?]
좌냉선은 냉랭히 말을 했다.
[그 두분은 비록 가까이 계시지만 신분이 그러하니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증오의 눈초리로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영호충은 멈칫하였다. 그러나 금방 무엇인가 깨달았다.
(내가 장문인의 자리에 취임을 할 때 이 두분의 무림 선배님은 친히 오셔서 축하를 하였지. 좌냉선은 그들 두분이 오늘 오시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을 미워할 뿐 아니라 나 또한 굉장히 미워하고 있구나.)
바로 이때 갑자기 산길에 두명의 노란 옷을 입은 제자가 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오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급한 일인 것 같았다.
정상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달려오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얼마있자 두 사람은 좌냉선 앞에 당도하여 아뢰었다.
[사부님, 축하드립니다. 소림사 방증대사와 무당파 장문인 충허도장께서 문하의 제자들을 이끌고 지금 산을 올라오고 계십니다.]
좌냉선은 말을 했다.
[그 두분 어르신께서 오셨다고 그건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구먼. 그렇다면 지금 내려가서 영접을 해야겠다.]
그의 말투는 마치 이 일을 맘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영호충은 그의 옷자락이 약간 떨리는 것을 보고 그가 얼마나 마음속으로 기쁨을 감추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숭산에 모여 있던 군웅들은 소림 방증대사와 무당 충허도장이 함께 오셨다는 말을 듣고 모두가 웅성거렸으며 적잖은 사람이 좌냉선을 따라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과 항산파제자들은 길을 비켜주어 그들이 지나가도록 하였다. 좌우를 살펴보니 태산파 천문도인, 형산파 막대선생, 그리고 개방방주, 청성파 장문인 송풍관 관주 여창해(餘滄海) 등 선배들이 과연 모두 도착하였다. 영호충은 여러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갑자기 노란색 담장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바로 사부님과 사모님, 그리고 화산파의 사제사매들이었다.
그는 마음이 시큰해져 빨리 앞으로 달려가 땅바닥에 엎드려 말을 했다.
[영호충 두분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악불군은 몸을 한쪽으로 비켜서더니 냉랭하게 말을 했다.
[영호 장문인이 어찌 이런 큰 예를 다하는가? 정말로 해괴한 일이구먼.]
영호충은 절을 하고 길 한쪽으로 비켜섰다. 악 부인을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었다고. 앞으로 행동을 자제하고 절제한다면 편안하게 지낼 수가 있을 것이야.]
악불군은 냉랭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가 행동을 자제한다고, 그것은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구먼, 그가 장문인을 맡은 첫날에 항산파는 수천명의 좌도의 인물들을 거두어 들였소 그것도 행동을 자제해서 그러했을까? 그는 또 대마두(大魔頭)인 임아행과 함께 연합을 해서 동방불패를 죽이고 임아행이 마교의 교주자리에 다시 앉도록 도와주었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들리고 있소. 항산파의 장문인의 신분으로서 마교에 참여해서 그러한 큰일을 하다니 이것은 또한 어찌 설명을 하겠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 일에 대해서 더이상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었다.
[오늘 숭산대회에서 좌사백은 오악검파를 하나로 하여 한개의 오악파를 만들 모양인데 두분 어르신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너의 뜻은 어떠하냐?]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
악불군은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제자라는 말은 더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네가 만약 아직도 화산의 옛정을 잊지 못한다면 그럼......그럼......]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마치 계속해서 말하기를 주저하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화산파의 문하에서 쫓겨난 후 지금까지 악불군이 자기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한적이 없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어르신께서는 어떤 분부가 있으십니까? 제가...... 저는 어떤 분부라도 따르겠읍니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그리 부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나처럼 무학을 배우는 사람은 바른 것과 사악한것, 옳은 것과 그른것을 따지기를 제일 좋아하지. 그때 네가 화산에서 더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은 결코 나와 나의 안사람이 독해서 너의 잘못을 영서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야. 실제로 너는 무림에 큰 죄를 지었다. 나는 너를 어려서부터 키워 왔고 친아들처럼 대해 왔지만 사사롭게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영호충은 이말을 듣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목메인 소리로 말을 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의 은혜는 제가 비록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악불군은 어깨를 툭툭 치며 위안의 뜻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소림사에서 너와 내가 무기를 들고 싸움을 하였지. 내가 사용했던 그 검초의 초식 들은 사실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네가 마음을 다시 바꾸고 화산파 문 안으로 돌아오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네가 그 뜻을 따르지 않아서 나는 너무나 실망을 하였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였다.
[저는 소림사에서의 못된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있읍니다. 다시 사부님의 문하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이제자의 평생 소원입니다.]
악불군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겠지. 너는 이미 한마디로 만군을 호령하고 대권을 휘두를 수 있는 항산일파의 장문인 신분이 되었는데, 그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우리 부부 문하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더우기 지금 너의 무공은 나보다 한수 위인데 내 어찌 다시 너의 사부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말을 하면서 악 부인을 쳐다보았다. 영호충은 악불군의 말투가 많이 수그러들고 또한 자기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자, 더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무릎을 땅바닥에 꿇고 말했다.
[사부, 사모님, 제자의 죄가 너무나 큽니다. 앞으로는 과거를 뉘우치고 다시 사부와 사모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읍니다. 저는 오로지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저를 다시 거둬들이고 화산 문하에 들어갈 수 있게끔 허럭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산길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군웅들은 서로 밀치며 방증대사와 충허도인과 함께 꼭대기로 올라왔다.
악불군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일어나거라. 이 일은 나중에 천천히 상의를 해도 늦지 않는다.]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며 또 한번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며 말했다.
[사부님, 사모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비로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악 부인은 기쁘고 슬펐다. 그래서 말하기를, [너의 소사매와 임 사제가 지난 달 화산에서 이미...... 이미 결혼을 하였다.]
그녀의 말투에는 걱정의 빛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이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화산에 돌아오려고 한 것은 오로지 악영산 때문인데 그녀가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크게 실망할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이때 씁씁한 모습으로 고개를 약간 돌려 악영산을 향해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미 신부 차림이었으며 옷차림이 퍽이나 화려했다.
그녀는 눈빛이 영호충과 마주치자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영호충의 마음은 마치 큰 쇠망치로 무겁게 맞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눈앞에 불빛이 반짝거리면서 몸이 기우뚱거리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귓가에는 은은하게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영호 장문, 당신은 멀리 있으면서도 나보다도 오히려 빨리 왔군요. 소림사와 준극선원(俊極禪院)은 바로 지척간인데 소숭은 이렇게 느즈막하게 왔읍니다.]
영호충은 누가 자기의 좌측팔을 부축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방증대사가 웃는 얼굴로 자기 몸 앞에 버티고 서 있어서 급히 말했다.
[녜, 녜.]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좌냉선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모두들 예의는 그만 차립시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몇천명인데 서로가 절을 한다면 내일까지 절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선원(禪院)안으로 들어가 앉읍시다.]
숭산의 정상은 옛날에는 준극(俊極)이라고 칭하였다. 숭산 꼭대기의 준극선원은 본시 불교의 큰 사찰인데 백년 전에 이미 숭산파 장문인의 거처가 되어 있었다. 좌냉선의 이름 중에는 선 자가 들어가 있지만 불문의 제자가 아니고 오히려 그의 무공은 도가(道家)에 가까웠다.
군웅들이 선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뜰 안에는 고목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대전에는 불상이 없었다. 대전은 비록 넓었으나 소림사의 대웅보전과 비교해 보면 미치지 못하였다. 들어온 사람은 천명이 되지 않았으나 이미 뜰 안에는 사람이 꽈차고 나중에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좌냉선은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오악검파의 모임에 무림의 친구분들께서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은 생각지 못했읍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 부족함이 많고 접대가 소홀했읍니다. 너무 야단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을 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읍니다. 단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곳에 서 있을 수가 없군요.]
좌냉선은 말했다.
[이곳에서 이백보 정도 올라가면 바로 옛날 황제들이 쓰시던 봉선숭산(封禪崇山)의 봉선대가 있읍니다. 그곳은 넓고 아주 좋지요. 그러나 우리 같은 백성들이 그 봉선대에서 일을 논의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우리들의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뜻있는 사람들은 비웃을 겁니다.]
고대의 제왕들은 자기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때때로 태산 또는 숭산에서 봉선을 거행하여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이들 강호의 호걸들이 어찌 봉선의 뜻을 알겠는가? 단지 이 대전이 너무 좁아 답답하기 짝이 없음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자, 너도나도 한마디 하였다.
[우리가 무슨 역적질을 하여 황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와 같은 좋은 장소가 있는데 왜 안 가는 것입니까? 남의 말을 하는 자는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둡시다. 제미럴!]
말하는 사이에 이미 몇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좌냉선을 모든일을 완벽하게 준비하였구나. 큰일을 성사시키려고 사람들을초대해 놓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이런 장소에 밀어 넣다니. 이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이치도 맞지 않는 일이다.
그는 벌써 봉선대를 생각해 놓고 그 스스로 말할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오도록 했구나.)
또 생각하기를, (이 봉선대는 무슨 짓을 하는 곳인지를 모르겠구나. 그는 그 무슨 황제와 관계가 있다고 말을 했는대, 우리 모두를 봉선대에 끌어다 놓고 혹시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는 것은 아닐까?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이 그는 야심이 너무나 커서 오악검파를 합병한 후 바로 일월교를 소멸시키고, 다시 소림 무당 등의 파를 삼키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지. 하하, 그와 동방불패와는 퍽이나 공통점이 있구나.)
그는 여러 사람들을 따라서 봉선대 아래 도착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사부님의 말투는 기꺼이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내가 다시 화산파 문하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투였다. 어째서 사부님은 옛날에는 매우 엄하셨다가 오늘 그런 좋은 낯으로 대해 주셨을까? 맞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항산에서의 행위가 바르고 항산의 문호를 더럽히지 않은 것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셨을 것이다. 또한 소사매를 임 사제에게 시집보냈으니 그 두 노인네는 나에 대해서 약간 미안한 감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사모님이 계속 나를 대신해서 간청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부님은 비로소 마음이 돌아서신 거야. 오늘 좌냉선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네파를 삼키려고 할 것이다. 사부님은 화산파의 장문인이니 틀림없이 있는 힘을 다하여 막으려고 할 것이다. 나와 사부님과의 관계가 약간 호전되었으니 나는 사부님과 협력할 수가 있고 그렇게되면 화산파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있는 힘을 다해서 나는 그 어르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자. 그렇게 되면 동시에 항산파를 보전시키는 것이다.)
봉선대는 대마석(大磨石)으로 만들어졌다. 돌 하나하나가 정성이 깃들여져 있고 반듯하고 잘 놓여져 있었다. 그 옛날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석공들을 동원해서 이렇게 큰 건축물을 만들어 놓았는가를 상상해 보았다.
영호충이 여기저기 자세히 살펴보니 돌맹이에는 끌 자국이 새롭게 나 있었다. 흙과 이끼를 발라 놓았지만 여전히 새로 보수를 한 자국이 역력하였다. 이 봉선대는 오래 전에 지었기 때문에 이미 낡고 파괴가 되어 좌냉선이 제자들을 시켜 보수를 해놓고는 자기의 의도를 감추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위장을 해 놓음으로써 자기의 속셈을 더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군웅들은 이 숭산의 맨꼭대기에 오르자 모두들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 봉우리는 천하에 우뚝 솟아 있으며 수많은 봉우리들이 그 발밑에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영호충이 북쪽을 내려다보니 멀리서 성고의 옥문이 보였고 황하(黃河)는 마치 한줄기 산과 같았다. 서쪽을 바라보니 은은하게 낙양의 이궐(伊闕)이 눈에 보였다. 동남 양쪽에는 모두가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들이었다.
세 명의 노인이 남쪽을 가리키면서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저곳이 대웅봉(大熊峯)이고, 이곳이 소웅봉(小熊峯)입니다. 두 봉우리와 마주 서 있는 것이 쌍규봉(雙圭峯)입니다. 세 봉우리 사이 구름이 끼여 있는 곳이 바로 삼천봉(三尖峯)입니다.]
세 명의 노인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영호충이 이 세 사람의 옷차림새를 살펴보니 숭산파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말투 속에 이런 말을 한 것은 산을 비유하여 숭산을 높이 추앙하고 소림을 얕보는 듯 하였다. 세 사람의 눈빛을 살펴보니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고 내공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좌냉선이 이번에는 적지 않은 고수들을 불러들여 만약에 어떤 변고가 있을 때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듯하였다.
좌냉선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에게 봉선대에 오를 것을 청하였다. 방증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 늙은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예식을 구경하고 축하하러 온 것이지 무대에 올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려는 것이 아니오.]
좌냉선이 말했다.
[방장대사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빈객들이 모두 다 도착한 것 같으니 좌장문은 우리 늙은이 하고만 있지 말고 원래 순서대로 일이나 보시지요.]
좌냉선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읍니다.]
두 사람을 향해서 포권을 하더니 봉선대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몇십 계단을 오르고 끝에서 몇장 정도를 남겨 놓고 그는 계단 위에 서서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이쪽으로 모이시오.]
숭산의 꼭대기는 바람이 심히 매서웠다. 군중들을 또 사방으로 흩어져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좌냉선의 이 한마디는 분명하게 귓속에 전달되었다.
여러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너도나도 가까이 다가와 봉선대 주위를 둘러쌌다. 좌냉선은 포권을 하며 말을 했다.
[여러 친구분들께서 이 좌냉선이라는 자를 중히 여기시고 숭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격을 했읍니다. 여러 친구분들께서는 이곳에 오시기 전에 이미 풍문으로 알고 계셨을 겁니다. 오늘이 바로 오악검파가 협동단결하여 한파로 맺어지는 좋은 날입니다.]
봉선대 아래 수백 사람들은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소! 그렇소!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좌냉선은 말했다.
[자, 모두들 앉아주시오.]
군웅들은 즉시 땅바닥에 앉았다. 각문 각파의 제자들은 장문과 함께 앉았다.
좌냉선은 말했다.
[우리 오악검파는 한줄기로서 지금까지 백여년 동안 서로 손을 맞잡고 결맹을 하여 마치 한가족처럼 지내왔으며 또한 제가 오파의 맹주가 된 지도 여러 해가 되었읍니다. 그런데근래에 무림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읍니다. 그래서 저와 오악검파의 선배사형들은 상의를 해봤읍니다. 상의를 한 결과 모두들 만약 한 개의 파로 형성이 되지 않거나 질서와 명령계통이 하나로 묶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큰일을 막아내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읍니다.]
갑자기 단 아래에서 냉랭한 소리가 들러왔다.
[좌맹주는 어느파의 선배사형들과 상의를 했는지 모르겠군요. 어째서 이 몸은 그 일을 모르고 있단 말이오.]
말하는 사람은 바로 형산파의 장문인 막대선생이었다. 그의 말투로 보아 틀림엇이 형산파는 합병에 관한 일을 찬성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좌냉선은 말했다.
[제가 조금전에 무림중에는 적지 않은 변괴가 발생했다고 말씀드렸고 오악검파는 반드시 하나로 묶어져야 한다고 말했읍니다. 그 중에 하나의 큰 사건은 바로 우리 오파 중의 한 사람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를 질시하여 동맹의 관계를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막대선생 나의 숭산파 제자인 대숭양수 비 사제는 형산성 밖에서 목숨을 잃었읍니다. 그런데 그 사제를 죽인 자가 막대선생이라고 본 사람이 말을 했는데 이 일이 정말인지 모르겠군요.]
막대선생은 멈칫하였다.
(내가 그 비씨 성을 가진 자를 죽인 것은 오로지 유 사제,곡양, 영호충, 항산파의 한 명의 비구니와 그리고 곡양의 손녀가 친히 보았을 뿐이다. 그 중에 세 사람은 이미 죽었고 혹시 영호충이 술을 먹고 나서 실언을 하지 않았을까?)
그때 봉선대 아래에 수천개 눈빛이 모두 막대선생 얼궁에 집중되었다. 막대선생을 낯빛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절대 그런 일이 없소. 나의 실력이 아직도 미천한데 내 어찌 대숭양수를 죽일 수 있단 말이오.]
좌냉선은 냉랭히 웃으면서 말했다.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웠다면 막대선생은 나의 비 사제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만약 갑자기 급습을 했거나 비겁한 수법으로 암살을 했다면 변화무쌍한 향산파의 검초뿐 아니라 더욱 강한 고수들도 살아남지는 못하는 법이지요. 우리들이 자세히 비 사제의 시체를 살펴보니 그 소행을 저지른 자가 의도적으로 자기의 신분을 삼추려고 시체에 난도질을 하였소.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부위는 감출 수가 없는 법이오.]
막대선생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런 증거도 없는 엉터리 추측으로 어찌 범인을 잡을 수 있소.]
내심 생각하기를, (알고 보니 그는 단지 비빈의 시체 상처 자국을 보고 추측을 하였지 결코 본 사람은 누설을 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는 끝까지 이 사실을 부인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형산파와 숭산파는 깊은 원한을 맺은 결과가 되었을 터이니 오늘 살아서 숭산을 내려갈 수 있을지 그것은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좌냉선을 계속해서 말을 했다.
[우리 오악검파가 하나로 되는 것은 우리 다섯파가 파를 이룬 이래 최대의 큰일이오. 막대선생, 당신과 나는 모두가 한파의 주인이니 당연히 큰일이 중하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원한을 접어두어야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오파에 이익이 된다면 개인적인 원한은 한쪽에 접어뒤야 합니다. 막형(莫兄) 그 일은 그리 걱정하지 마시오. 비 사제는 나의 사제이므로 내가 오파를 합병한 직후에는 막형과 나는 같은 사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옛날일을 들추어내면서 피를 볼 필요가 있읍니까?]
그의 이 말은 언뜻 듣기에는 상당히 온화하였다. 그러나 그 말투속에는 사람을 은근하게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뜻은 만약에 막대선생이 찬성을 한다면 비빈을 살해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청산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막대선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했다.
[막형 내 말이 맞지 않소이까?]
막대선생은 흥 하며 콧방귀를 뀌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
좌냉선은 음흉하게 한번 웃더니 말을 했다.
[남악(南嶽)의 형산파는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이 없지요. 그렇다면 동악(東嶽)의 태산파 천문도형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천문도인은 일어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태산파는 비조인 동영도장(東靈道長)께서 파를 창건한 이래로 삼백 년이 되었소. 빈도는 덕이 없고 무능하여 태산일파의 명성을 드높일 수가 없었소. 그러나 이 삼백 년 동안 쌓아온 업을 그누가 뭐라해도 내 손에서 끊어지게 할 수는 없소. 오늘 합병에 관한 일은 절대로 따를 수가 없소.]
테산파 중에서 수염이 하얀 노인이 일어나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천문사질(天門師姪)의 말은 어딘가 틀린 것 같소이다. 태산일파는 사대가 함께 살며 총 사백여식구가 있소. 절대로 당신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마음 때문에 전체 이익을 막을 수는 없소.]
이 하얀 수염을 한 도인의 안색은 비록 늙었지만 말투 속에는 기가 충만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는 낮은 소리로 말을 하였다.
[저자가 옥기자(玉璣子)입니다. 천문도인의 사숙이지요.]
천문도인의 안색은 본래 빨갰으나 옥기자의 이런 말을 듣고 더욱 쌔빨갛게 부어 올랐다.
[사숙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사질인 내가 태산문호를 맡은 이래로 본파의 명성을 위해서 하지 않은 일이 있었읍니까? 내가 오파의 합병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태산일파를 보전하기 위함인데 그 어찌 사사로운 욕심이겠읍니까?]
옥기자는 킥킥 웃더니 말을 했다.
[오파가 합병하면 오악파는 그 명성과 세력이 크게 번창할 것이고 오악파의 문하의 제자들은 그 명성을 등에 업고 어깨에 힘을 줄 수가 있을 것이오. 단지 서운한 것은 당신이 장문인을 못 하게 돤다는 사실이오.]
천문도인은 화가 머리끝가지 올라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이 장문인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소. 단지 태산일파를 그누가 뭐라해도 내 손에서 멸망의 길로 들어거게 할 수는 없소.]
옥기자는 말했다.
[말은 번지르 하나 마음속으로는 장문인의 자리가 아까울껄.]
천문도인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정말로 그러한 사심이 있다고 보시오?]
손을 디밀어 품속에서 한자루의 검은색이 나는 철주단검(鐵鑄短劍)을 꺼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 이 시간부터 장문인을 하지 않겠소. 당신이 하고 싶으면 당신이 가서 하시오.]
여러 사람들은 이 한자루의 단검을 보고는 놀래지 않았다. 그러나 오악검파 중에 나이가 든 사람들은 모두들 그것이 태산파의 창시자인 동영도인의 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삼백년 동안 대대로 물려 왔으며 이미 태산파 장문인의 징표가 되어 있었다.
옥기자는 뒤로 한발짝 물러서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아깝지 않겠소.]
천문도인은 화가 나서 말했다.
[무엇이 아깝단 말이오?]
옥기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걸 나에게 주시오.]
우측손을 잽싸게 내밀어 이미 천문도인의 수중에 있는 그 철검을 거머쥐었다. 천문도인은 그가 이렇게까지 검을 달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멍청하게 있는 사이에 철검은 이미 옥기자가 빼았아 가버렸다.
그는 심사 숙고도 하지 않고 허리의 장검을 뽑아들었다. 옥기자는 몸을 날려 뒤로 물러섰다. 두 개의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두 명이 검을 들고 일제히 달려나와 천문도인을 가로막고 일갈을 했다.
[천문, 당신은 하극상을 한 것이오. 어찌 본문의 계율을 잊었소이까?]
천문도이 그들을 보니 바로 옥경자(玉磬子) 옥음자(玉音子) 두 명의 사숙이었다. 그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두분 사숙님, 사숙님들도 집적 보셨지요. 옥기......옥기 사숙께서 조금 전에 무슨 짓을 하였는가?]
옥음자는 말을 했다.
[우리는 틀림없이 두눈으로 봤소. 당신은 이미 본파의 장문인 자리를 옥기사형에게 전해주고 물러났소. 그것도 좋은 일이지요.]
옥경자는 말을 했다.
[옥기 사형은 당신의 사숙이고, 또한 지금은 본파의 장문인인데 당신은 검을 쥐고 그에게 못된 짓을 하고 무례한 일을 하였소. 이것은 스승을 속이고 조상을 욕되게 하며 하극상의 대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오.]
천문도인은 두분의 사숙이 한쪽편만을 들고 오히려 자기더러 잘못했다고 실책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단지 순간적인 감정에서 그런 말을 하였소. 본파 장문인의 자리를 어찌 이렇듯이 허황하게 남에게 넘겨줄 수가 있겠소. 설령 내 자리를 남에게 양보한다 해도 그...... 그 제미럴놈에게 나는 절대로 장문인의 자리를 전해줄 수가 없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지기도 모르게 쌍소리를 했다. 옥음자는 일갈을 했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장문인의 자리에 어울리지가 않소.]
태산파의 무리 중에서 중년도인이 일어서더니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본파 장문인은 예날부터 우리 사부였소. 당신 몇분의 사숙조께서는 무슨 엉뚱한 짓을 꾸미고 있소.]
이 중년도인의 법명은 건제(建除)였으며 천문도인의 두번째 제자였다. 이어서 또 한사람이 일어나더니 일갈을 했다.
[천문사형은 장문인의 자리를 우리 사부에게 건네주었소. 이곳 숭산 정상에 수천 개의 눈이 확인을 했고 수천 개의 귀가 모두 그 말을 들었소. 그것이 거짓말이란 말이오? 천문사형은 조금 전에 말씀하시기를 '오늘 이 시각부터 장문인을 하지 않겠고 당신이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하시오'라고 하지 않았소. 당신은 듣지 못했단 말이오.]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옥기자의 제자였다. 태산파 중에 백여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외쳤다.
[구 장문인 물러나시고 신 장문인이 맡으시오. 구 장문인은 물러나고 새로운 장문인이 그 자리를 맡으시오!]
천문도인은 태산파의 장문제자(長門弟子)였다. 그래서 그의 명성과 세력은 본래 최고로 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오륙 명의 사숙들이 암암리에 결탁을 하여 갑자기 동시에 그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숭산에 온 태산파의 이백명 중에서 백육십여 명이 그를 반대하고 있었다. 옥기자는 높이 철검을 들고 말했다.
[이것은 동영조사의 신병(神兵)입니다. 조사야는 돌아가실 때 '이 철검을 보면 마치 동영을 보는 듯하라'라고 유언을 남기셨읍니다. 우리는 조사야의 우언을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백여 명의 도인들은 큰 소리로 말했다.
[장문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외쳤다.
[역도인 천문은 하극상의 죄를 범하였고 문규를 지키지 않았으니 응당히 처치를 해야만 합니다.]
영호충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이 모두가 좌냉선이 암암리에 꾸몃다고 짐작을 하였다. 천문도인은 성격이 급한 편이라 어떠한 자극이나 격함을 참지 못하고 한두마디에 그들의 함정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영호충이 눈을 들어 화산파의 사람들을 쳐다보니 사부는 뒷짐을 쥐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옥기자 그들이 이러한 수법을 쓰는데 사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구나. 그러나, 그 어르신은이 사태에 꺼들고 싶지 않아 잠시 추세를 관망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모든 행동을 저 어르신의 행동에 따라서 하자.)
옥기자가 좌측손을 몇번 휘두르자 태산파의 백육십여 명은 갑자기 흩어져 장검을 뽑아들고 그 나머지 오십여 명의 도인들을 에워쌌다. 포위를 당한 사람들은 물론 천문휘하의 제자들이었다. 천문도인은 일갈을 했다.
[너희들이 정말로 이렇게 나온다면 누가 죽고 누가 사는가 해보자.]
옥기자는 냉랭한 소리로 말을 했다.
[천문은 들어라. 태산파 장문인의 명령이다. 너는 검을 버리고 항복하라. 너는 동영조사의 철검의 유언에 승복하지 않느냐!]
천문은 화가 나서 말했다.
[쳇, 누가 너를 본파의 장문이아고 했느냐!]
옥기자는 외쳤다.
[천문휘하에 있는 제자들은 들어라. 이 일은 너희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두들 병기를 버리고 귀순을 한다면 죄를 추궁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엄벌을 내릴 것이다.]
건제도인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만약 조사야의 철검 아래서 절대로 조사야께서 이룩하신 태산파를 이 강호에서 없애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신다면 우리들은 당신을 본파의 장문인으로 옹립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장문이 되자마자 바로 본 파를 숭산파에게 팔아 넘긴다면 본파의 천고의 죄인이 되고 당신은 죽어도 조사야를 대할 면목이 없을 것이오.]
옥음자는 말했다.
[이 새까만놈이 무슨 힘을 믿고 옥자 돌림의 선배들께 요구를 하느냐. 오악파가 합병이 되면 숭산파도 어쨌든 그 이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오악파의 이 오악 두 글자 중에는 이미 태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어찌됐단 말이냐.]
천문도인은 말했다.
[네놈들이 암암리에 수작을 꾸미고 있는데 모두가 좌냉선의 꼬임에 빠졌구나. 흥, 나를 죽이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나보고 숭산에 항복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옥기자는 말을 했다.
[너희들이 장문인의 철검호령(鐵劍號令)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처참한 꼴이 될 것이고 죽어도 묻힐 곳이 없을 것이다.]
천문도인은 말했다.
[충직한 태산파의 제자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최후까지 싸우다 죽어 피를 숭산에 뿌리자.]
그의 주변에 서 있던 제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끝까지 싸우고 죽어도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숫자는 비록 적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에는 굳건하고 비장한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옥기자가 만약 공격을 한다면 단시간 안으로 그들을 모두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봉선대 주변에는 수천 명의 영웅호걸들이 운집해 있고 소림파 방증대사, 무당파 충허도인과 같은 사람은 절대로 그들로 하여금 동문을 죽이는 참사를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옥기자, 옥경자, 옥음자 등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금방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갑자기 좌측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어르신께서 온 천하를 돌아다니고 영웅호걸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자기가 한 말을 금방 뒤집고 오리발 내미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여러 사람은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다보았다. 삼베옷을 입은 사내가 큰 바위 옆에 비스듬이 기대어 좌측손에는 한 개의 범양두립(范陽斗笠)을 쥐고 부채처럼 얼굴에 부치고 있었다.이 사람의 몸체는 마르고 키가 컸으며 한쌍의 실눈을 하고 얼굴은 그저그러한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모르고 또한 그가 한 말이 누구를 묘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또 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분명히 장문인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했는데 설마하니 잠꼬대를 한 것은 아니겠지요. 천문도인, 당신의 이름 자 중에 그 천자를 방귀 비( )자로 바뀌놓는게 어울릴 것 같소.]
옥기자는 비로소 그가 자기 쪽을 두둔하고 있음을 알았다.
천문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것은 우리 태산파의 사적인 일이오. 다른 사람은 끼어들 필요가 없소.]
그 삼베옷을 입은 사내는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나는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별볼일 없는 일이라도 꼭 참견하는 성미요. 오늘은 오악검파가 합병하는 날인데 당신같이 별볼일 없는 자가 이곳에서 칼을 휘두르고 시끄럽게 떠들고 사람의 흥취를 깨어 버리는데 정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갑자기 여러 사람 눈앞에 무었인가 지나가는 듯하더니 이 마대옷을 입은 사람은 신속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옥기자 등이 만들어 놓은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좌측손으로 모자를 들더니 천문도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모자가 자기의 정수리응 향해서 내려오자 천문도인은 막지 않고 검을 들어 그의 가슴팍을 행해 내리찍었다. 그 사람은 갑자기 엎드리더니 천문도인의 바짓가랭이 아래로 뚫고 들어가 우측손을 땅에 집고 몸을 돌려 매섶게 천문도인의 등을 걷어찼다. 이 몇동작의 초식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봉우리에 모인 군웅들은 자기 나름대로 무예에 일가견이 있음을 자부한 터였다.
그러나 이 사내가 사용한 초식을 여러 사람들은 이제까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천문은 갑작스런 공격에 대비를 못하고 그의 발에 혈도가 찍혔다. 천문 몸 가까이에 있던 몇 명의 제자들은 장검을 거머쥐고 그 사내를 내리찍었다. 그 사내는 껄껄 웃더니 천문의 귓덜미를 거머쥐고 방패로 삼았다. 여러 제자들은 별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사내는 일갈을 했다.
[검을 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이 별볼일 없는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놓겠다.]
말을 하면서 우측손으로 천문의 정수리의 상투를 거머쥐었다. 천문은 공력을 쓸수가 없었다. 그에게 잡힌 후 꼼작도 할 수가 없었다. 본시 빨간 얼굴이 이미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상황을 보니 그 사내가 두 손에 힘을 써서 약간 비틀기만 하면 천문의 경골(頸骨)은 금방 부러질 것 같았다.
건제는 말했다.
[경고도 없이 갑자기 급습을 하는 것은 영웅호걸의 행동이 아니오. 각하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그 사내가 좌측손을 휘두르자 퍽하고 소리가 나면서 천문도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누가 나네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한다면 나는 이놈의 뺨을 때리겠다.]
천문도인의 여러 제자들은 스승이 능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각자 검을 쥐고 동시에 들어간다면 이 삼베옷을 입은 사내는 즉시 한마리의 고슴도치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천문도인이 그에게 잡혀 있으니 그 누구도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한 명의 젊은이가 욕을 했다.
[이 개 같은 놈......]
그 사내는 손을 들더니 또 천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놈의 제자들은 모두 다 이렇게 쌍소리를 잘 하느냐.]
갑자기 천문도인은 확 하고큰 소리를 지르면서 그 사내와 얼굴과 얼굴이 마주치며 입속에서 새빨간 피를 토해 내었다. 그 사내는 깜짝 놀라 손을 놓으려고 했으나 늦었다. 삽시간에 그 사내의 얼굴이 온통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바로 이때 천문도인은 두손을 돌리더니 그 자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러자, 우두둑하고 소리가 나면서 그 자의 경골이 끊어졌다. 천문도인이 우측손을 들어 그 자를 똑바로 날려보내자, 팍 하고 소리가 나면서 수장 밖으로 나뒹굴어져 몇번을 꿈틀거리더니 숨이 끊어졌다.
천문도인의 몸체는 본래가 장대했고순간 표정이 더욱 늠름하고 얼굴이 피로 범벅되어 있자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일으키기 충분하였다. 한참 지난 뒤에 그는 욱 하고 소리를 내면서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알고 보니 그는 이 사내에게 뜻밖의 기습을 당하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계속 능욕을 당하자 울화통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생명을 버리고 내공을 운행하여 경맥을 단절시켜 발에서 막혀있던 혈도를 뚫어 있는 힘을 다하여 적을 죽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경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살 수가없었다.
천문 휘하의 제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사부님!]
달려가 부축하였다. 그러나,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제자들은 통곡을 하였다. 무리들 가운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외쳤다.
[좌장문, 당신은 청해일요(靑海一요)와 같은 인물을 내새워 천문도장에게 상대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처사가 아니오?]
여러 사람들이 말한 사람을 쳐다보니 그 사람의 형색은 심히 초라한 늙은이였다. 어떤 사람은 그를 하삼칠(何三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늘 만두를 담는질통을 짊어지고 이곳저곳 시장을 다니며 만두를 파는 사람이었다. 천문도인의 일격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정체가 무었인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삼칠의 말을 듣고 그 자가 바로 청해일요라는 것만을 알수가 있었다. 청해일요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좌냉선은 말했다.
[참 그것은 해괴망칙한 말이군요. 형씨계서는 저와 초면인데 어째서 내가 내세웠다고 말하시오?]
하삼칠은 말했다.
[좌장문과 청해일요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쩌면 오래 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 사람의 사부인 백판살성(百板煞星)과는 교뷴니 상당히 깊을 것이오.]
이 백판살성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희미하게 여러 해 전에 사모님이 백판살성이라는 이름을 말한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그때 악영산은 여닐곱 살 정도로 무슨 이유인지 그녀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악부인은 그녀에게 겁을 주려고 말을 했었다.
[네가 계속해서 울면 백판살성이 너를 잡아갈 것이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백판살성이 무었입니까?]
악 부인은 말을 했다.
[백판살성이라는 사람은 전문적으로 울음을 그치지 않은 아이만 잡아가서 잡아먹지. 이 사람은 코도 없고 평편하여 마치 환자와도 같다.]
당시 악영산은 무서워서 더 이상 울지 않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옛날 생각이 떠올라 악영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먼 청산을 바라다보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양미간에는 근심이 일어나는 듯하였다. 틀림없이 하삼칠이 얘기한 백팔살성의 이름을 주위깊게 듣지 않은 듯하였다. 아마 어렸을 때 사모님이 말해준 이야기를 벌써 잊었는지도 모른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소사매는 이제 결혼을 하였고, 임사제는 그녀가 제일 사랑한 사람이라 응당히 기뻐야만 옳은 일인데, 무슨 여의치 못한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두 부부가 혹시 사랑싸운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임평지가 그녀몸 가까이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의 표정은 매우 괴이하기 짝이 없는데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영호충은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이런 괴상한 표정은 내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그러한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좌냉선의 말이 들려왔다.
[옥기도형(玉璣道兄) 도형께사 태산파의 장문인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오악파의 합병에 대한 도형의 의견은 어떻신지요?]
여러 사람들은 좌냉선이 하삼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된다면 백판살성과의 교분은 묵인을 한것이라고 여겼다. 백판살성의 악명은 이삼십 년 동안 전해왔지만 진정으로 그를 본 적이 있거나, 그에게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의 악명의 주요 원인은 그의 모습이 너무 누추하고 괴이해서 일어난 것이고 그의 제자인 청해일요의 행동거지로 보아 틀림없이 스승과 사제는 정파의 인물은 아닌 것이다.
옥기자는 손에 철검을 거머쥐고 득의 양양하게 말했다.
[오악검파가 하나로 합병되는 것은 우리 오파에게 오직 이익이 있을 뿐 나쁜 점은 하나도 없읍니다. 오로지 천문도인처럼 개인의 사심만을 중히 여기는 사람과 명예만을 소중히 여기고 공익을 돌보지 않는 사람만니 그 의견에 반대를 할 것입니다. 좌맹주, 제가 태산파의 문호를 지금 막 맡았는데 오파가 합병하는 대사는 아무 의견도 없이 찬성을 합니다. 태산파는 맹세코 당신의 휘하에 들어가 충성을 다할 것이며 어르신을 따라서 오악파의 문호를 널리 함양시키겠읍니다. 만약 이 일을 저지하는 자가 있다면 제일 먼저 우리 태산파가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태산파 중에 백여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였다.
[태산파의 모든 사람들은 합병을 찬성하고 어떤 자가 이 일을 저지하거나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다면 태산파는 맹세코 처단을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똑같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록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이구동성이 되어 산을 진동시켰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그들은 틀림없이 여기 오기 전에 연습을 하였구나. 그렇지 않다면 설령 모든 사람들이 찬성을 한다해도 절대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옥기자의 말투를 들어보면 좌냉선을 심히 공격하고 굽실굽실하는데 틀림없이 좌냉선이 암암리에 그에게 커다란 이익을 주었을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랄한 수단으로 그를 꼼짝하게 제압을 했을 것이다.)
천문도인 휘하의 제자들은 사부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자, 대세가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알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어떤 자는 입술을 깨물며 낮은 소리로 저주를 하였고 어떤 자는 주먹을 꼭 쥐고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하였다.
좌냉선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악검파 중에 형산, 태산 두파가 합병에 찬성을 했읍니다. 보아 하니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것 같습니다. 오악파의 합병이 이익을 주는 이상 우리 숭산파도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서 찬성을 합니다.]
영호충은 내심 냉소를 하였다.
(이 일은 전부 네놈이 혼자서계획을 해놓고 입으로는 깨끗한 척하는구나. 마치 다른 사람이 이 의견을 내놓아 네놈은 마지못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처럼 하는구나.)
좌냉선이 또 말을 했다.
[다섯파 중에 이미 세파가 합병에 동의하였읍니다. 항산파의 의견을 어떠하십니까? 항산파의 전장문인인 정한사태와 저는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합병에 관한 일은 그 어르신도 극히 찬성을 하셨읍니다. 정정, 정일 두분 사태도 같은 의견이었읍니다.]
검은 옷을 입은 항산파의 여제자 중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장문, 당신의 말은 맞지 않소. 우리 장문인과 두분 사백 사숙은 돌아가시기 전에 합병에 관한 일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셨고 강력히 반대하셨읍니다. 세 어르신께서 이렇게 불행하게 돌아가신 것은 모두가 합병의 일을 반대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당신 개인의 의견을 그 세 어르신들 핑계를 대십니까?]
여러 사람이 일제히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니 얼굴이 둥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말을 잘 하는 정악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른 파의 사람들은 그녀를 알지 못했다.
좌냉선은 말했다.
[당신 사부인 정한사태의 무공은 다른 일반사람들과 다릅니다.
실로 우리 오악검파 중에 대단한 인물이셨지요. 그래서 저도 평소에 심히 존경을 해왔던 터입니다. 단지 유감스럽게도 소림사에서 피살되었읍니다. 만약 그 어르신께서 아직 살아계신다면 이 오악파 장문의 자리는 틀림없이 그 분의 것이었을 겁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또 말을 했다.
[그날 제가 정한, 정정, 정일 세분의 사태와 합병의 일을 언급할 때 저는 강력하게 주장했읍니다. 합병을 하는 일이 안된다면 몰라도 만약 마음 먹은 대로 된다면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는 반드시 정한사태가 맡으셔야 한다구요. 당시에 정한사태는 겸손하셔서 물리치셨지만 제가 강력하게 추대를 하자, 나중에는 정한사태께서도 그리 물리치지 않으셨읍니다. 아! 통탄할 일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이 불문의 여협께서 큰 일을 이루지 못하고 소림사에서 그렇게 되셨다니 정말로 탄식을 금할길 없읍니다.]
그는 계속해서 두번이나 소림사를 언급하였다. 말투 속에는 은근하게 정한사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소림사에 떠 맡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설사 그녀를 죽인 자가 소림파 사람이 아닐지라도 소림사는 무학의 성지이므로 어떤자가 소림사에서 그 두분의 고수를 죽였다면 소림파가 일을 꾸미지 않었더라도 범인을 놓치고 방비를 소홀히한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목소리가 굵은 사람이 말을 했다.
[좌장문, 그 말을 너무나 틀린 것 같소. 그날 정한사태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 어르신은 본래 당신을 오악파 장문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소.]
좌냉선은 기분이 좋아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은 말상이었으며 쥐새끼 같은 눈을한 상당히 기괴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항산파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의 다섯사람 또한 모습과 옷차림이 같았는데 그들이 바로 도곡육선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내심 기뻤지먈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말을 했다.
[형씨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정한사태께서 당시 이러한 말씀은 하셨지만 저와 그 어른을 비교할 때 제가 따르지 못합니다.]
맨 먼저 말한 사람은 도근선이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도근선이오. 여기 다섯사람은 나의 형제요.]
좌냉선은 말했다.
[예전부터 익히 들었읍니다.]
도지선이 말했다.
[무엇을 익히 들었읍니까? 우리들의 무공을 익히 들었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견식리 비범하다고 들었읍니까?]
좌냉선은 내심 생각하기를,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놈들이 바로 이들이었구나.)
그러나 그는 도근선이 자기를 추켜 세운 정분으로 말을 했다.
[여섯분의 무공이 강하고 견식이 비범하다는 것을 일찌기 들었읍니다.]
도간선은 말을 했다.
[우리들의 무공은 별볼일 없소이다. 여섯사람이 일제히 달려들면 좌냉선보다 조금 낫고 일대일로 싸운다면 조금은 떨어지지요.]
도화선은 말했다.
[그러나 견식을 말할 것 같으면 좌장문 당신보다 한참이나 높소.]
좌냉선은 눈쌀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그렇소이까?]
도화선은 말했다.
[틀림이 없읍니다. 그날 정한사태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소.]
도화선은 또 말했다.
[정한사태와 정정사태, 정일사태 세분 어르신은 암자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눌 때 오악검파의 합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정한사태가 말씀하시기를'오악검파가 합병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약 합병을 한다면 반드시 숭산파의 좌냉선 선생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소. 당신은 이 말을 믿소이까? 안 믿소이까?]
좌냉선은 내심 기뻐하여 말을 하였다.
[그것은 정일사태가 저를 잘 보아주신 것이지요. 나야 어찌 그럴 수 있소이까?]
도근선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기뻐하지 마시오 정한사태께서 말씀하시기를, '현제 영웅호걸 중에서 숭산파의 좌장문은 역시 걸출한 인물임에틀림이 없다. 만약 그가 오악장문인을 맡는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선택이고 그자는 욕심이 많고 도량이 너무 좁아 사물을 용납하지 못하고 또한 그가 장문인이 돤다면 내 휘하의 여제자들은 남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도간선은 이어서 말을 했다.
[정한사태가 말씀하시기를 '공명정대하고 사심이 없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기 여섯 영웅이 있소. 그들은 무공이 높을 뿐 아니라 견문 또한 넓어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소.']
좌냉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섯영웅이라뇨? 어느 여섯분을 말하는 겁니까?]
도화선은 말을 했다.
[바로 우리 여섯형제들이오.]
이 말이 나오자 산의 수천명은 일시에 껄껄대기 시작하였다. 이사람들은 비록 태반이 도곡육선을 모르지만 그들의 괴상한 모습과 익살스런 표정에 더구나 자기 스스로 영웅이라고 칭하고 무공이 제일 높고 견문이 비범하다는 소리를 하자 더 참을 수 없어 껄껄 웃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도지선은 말했다.
[당시 정한사태가 우리 여섯영웅을 말씀하시자 정정, 정일 두분의 사태께서도 즉시 우리 여섯형제를 생각하시고 일제히 손뼉을 치며 갈채를 보내주었죠. 그때 정한사태가 무슨 말씀을 하셨더라. 이보게 동생 자네는 기억할 수가 있겠나?]
도실선은 말을 했다.
[녜, 물론 기억하지요. 그때 정한사태께서 말씀하기시를 '도곡육선은 소림사의 방증대사와 비교해 볼 때 견분니 못 미치고 무당파의 충허도장과 비교를 해볼 때 무공에 있어서 따르지 못하지요. 그러나 오악검파 중에서 그들을 따를 자는 없읍니다. 두분의 사저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정일사태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한사매의 무공과 견문이 도곡육선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애석한 것은 우리들은 여자이고 또한 출가한 사람이라 오악파의 장문인니 되어 오악파 수천명의 영웅호걸들의 웃어른이 된다면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무래도 도곡육선을 천거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도엽선은 말했다.
[정한사태께서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시기를 '오악검파가 만약 합병하게 되어 그들 여섯형제가 나서서 장문인을 맡지 않으면 스스로 자멸할 것이고 그 명성을 떨치지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들을수록 재매가 있었다. 도곡육선들이 고의로 좌냉선에게 훼방을 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좌냉선이 죽은 자의 입을 빌려서 거짓으로 일을 꾸미자 도곡육선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도곡육선이 이렇게 나오자 좌냉선은 아무런 대꾸할 방법이 없었다. 숭산에 모인 여러 군웅들 중에서 숭산일피와 그리고 좌냉선을 따르는 인물 외에는 오악파가 하나로 합병되는 일에 대해서 모두들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이 높은 방증방장, 충허도장과 같은 사람들은 심히 좌냉선에게 날개 하나가 달리면 그 즉시로 강호에 크나큰 화가 미칠 것입을 염려하였고, 어떤 자들은 눈앞에서 천문도인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또한 좌냉선이 강제적으로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증오하였으며, 더우기 어떤 자들은 오악팍 합병이 되면 오악파의 명성과 세력이 크게 확장되므로 자기의 일파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고 영호충 등 항산파 사람들은 정한 등 세분 사태의 죽음은 틀림없이 좌냉선의 짓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그를 죽여 복수할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적개심을 품고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도곡욱선의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듣고 쪼한 그들의 억지에 좌냉선이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하자 모두들 내심 고소하다고 생각했으며 젊은이들은 소리내어 웃었다.
갑자기 묵소리가 굵은 사람이 말을 했다.
[도곡육괴(桃谷六怪) 항산파 정한사태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있소?]
도근선은 말했다.
[항산파 몇십명의 여제자들은 친히 귀로 들었소. 정악 아가씨, 내말이 맞지 않소?]
정악은 웃음을 참으면서 정색을 하며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좌장문님,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사부는 오파가 합병하는 것을 찬성했다는데 그 말은 또 누가 들었읍니까? 여기에 모인 항산파 사저 사매들이여 좌장문의 말씀을 우리들 중에서 들은 적이 있읍니까?]
백여명의 여제자들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 말들은 좌장문님이 날조해낸 것 같소이다.]
또 한사람의 여제자는 말을 했다.
[좌장문보다 나의 사부는 그래도 도곡육선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고 추천을 많이 하셨읍니다. 우리들은 세분 어르신을 여러해 동안 따라다녔는데 어찌 그분들의 마음을 모를 리 있겠읍니까?]
여러 사람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도지선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보십시오. 우리들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소? 정한사태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오악파가 합병되면 장문인의 자리는 오로지 하나 뿐인데 도독육선은 여섯명이니 누굴 모시는게 좋을까요?' 형제들리여 정정사태는 어떻게 말하였소?]
도화선은 말을 했다.
[이건...... 음 맞습니다. 정정사태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파가 비록 하나로 합병이 된다 하지만 태산, 형산, 화산, 항산, 숭산이 동서남북의 오악(五嶽)은절대로 한군데로 모이게 할 수는 없읍니다. 좌냉선이 옥황대제가 아닐 바에는 어찌 다섯 개의 산을 한군데로 옮겨놓을 수 있겠읍니까? 도곡육선 중에 다섯형제들이 각각 다섯산에 주둔을 하고 나머지 한사람이 총 장문인이 되면 되겠지요.']
도엽선은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정일사태는 말씀하시기를 '사저의 견해가 옳은 듯 합니다. 알고 보니 도곡육선의 부모님은 심히 선경지명을 갖추고 계셨읍니다. 앞으로 좌냉선이 합병을 하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여섯형제를 낳으신 겁니다. 다섯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곱도 아닌 딱 여섯사람만 낳았지요.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군웅들은 이 말을 듣고 하늘이 떠나갈 듯 웃었다. 좌냉선은 이 오파가 합병하는 일을 계획할 때 원래 엄숙하고 정중하게 치루어 천하의 영웅들로 하여금 스스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여섯명의 억지를 부리는 자가 중간에 튀어나와 난장판을 만들고 성대한 예식을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여기고 있는 것을 보자, 내심 말할 수 없는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단지 숭산의 주인이므로 아무때나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억지로 울화통을 참고 암암리에 생각을 하였다.
(만약 이 여섯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좌씨 성이 아니다.)
도실선은 갑자기 방성대곡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 여섯형제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한발짝도 떨어지지 않았읍니다.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면 그로부터 오악에 나누어 살아야 하는데 그건 할 수가 없읍니다. 절대로 헤어져 살 수가 없읍니다.]
그의 울음은 마음에서 우러나고 진실처럼 보였다. 마치 오악파의 장문자리가 이미 정해지고 그 여섯형제들은 금방이라도 헤어지려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도간선은 말했다.
[동생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네. 우리 여섯형제는 절대로 헤어질 수가 없어. 동생이 헤어질 수 없다면 형님인 나도 헤어질 수가 없지. 그러나 여섯 사람의 의견이 모아지고 이 오악파의 장문인을 우리 여섯형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우리는 별수없이 오악파의 합병을 반대하면 되지 않나.]
도근선 등 다섯 사람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맞습니다 ! 맞습니다 ! 오악검파가 옛날처럼 지내면 합병할 필요가 있읍니까?]
도실선은 눈물을 거두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만약에 합병을 하려고 한다면 오악파 중에서 대 영웅호걸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사람은 우리 여섯형제보다 견문이 더욱 넓고 무공도 강하여 마치 우리 여섯형제들이 여러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추대를 받는 것처럼 돼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장문인이 된다면 그때 다시 합병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좌냉선은 이 여섯사람과 계속해서 질질 끌다가는 일이 엉망진창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즉시 그들의 화제를 바꿔야만 했다. 그래서 낭랑한 소리로 말하였다.
[항산파의 장문인은 당신 여섯형제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 있읍니까? 항산파의 일을 여섯 영웅들이 책임을 질 수 있읍니까 아니면 책임질 수 없읍니까?]
도지선은 말을 했다.
[우리 여섯영웅들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지요. 그러나 숭산파의 장문인이 바로 당신이므로 우리 여섯사람이 항산의 장문인을 맡으면 당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전락이 될 것이니 그래서...... 그래서......]
도화선은 말을 했다, [그와 같은 위치에 있다면 우리 여섯형제들은 물론 신분이 크게 낮아질 것이고, 그래서 항산파의 장문인을 하는 수 없이 영호충에게 맡겼읍니다.]
좌냉선은 화가나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그래서 말하기를, [영호장문, 당신은 항산파의 문호를 지키고 있으면서 아랫사람들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있군요. 그들이 천하영웅들 앞에서 함부로 말을 찌껄이도록 내버려 두시니 말이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여섯도형들의 말은 천진난만하고 정직해서 그러할 뿐 절대로 빈말이나 하여 사람들을 해치는 사람은 아니오. 그들은 전적으로 정한사태의 유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근거도 없이 지어낸 말보다 더욱 믿을 만하지요.]
좌냉선이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오악검파가 합병하는 일에 당신은 다른 의견이 있단 말이오?]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항산파는 혼자서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화산파 장문인인 악선생께서는 저에게 무예를 전수해 주신 은사입니다. 비록 오늘날 저는 다른파에 귀속이 되어 있지만 옛날 은사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읍니다.]
좌냉선은 말을 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화산의 악선생의 말을 따르겠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하였다.
[그렇소. 나와 항산파는 화산파와 어깨를 나란히 협력할 것이오.]
좌냉선은 고개를 돌려 화산파 사람들을 향해서 말을 했다.
[악선생님, 영호 장문인은 당신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영호 장문은 오파가 합병하는 일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당신을 따르겠답니다. 각하는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악불군은 말하였다.
[나는 비록 앞전에 이 일에 관해서 세심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지금 좌맹주께서 물어보시니 극히 타당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군요.]
일시에 봉우리에 모인 수천개의 군웅들의 눈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형산파는 세력이 약하고 태산파는 안에서 분열되었으니 숭산파와 대항할 수가 없고 지금 화산, 항산 두파가 연합하고 더우기 형산파가 끼어든다면 숭산파와 길고 짧음을 한번 겨뤄볼 수 있겠구나.)
악분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화산파가 창시된 지 이백여 년이나 되었소. 중간에는 기종, 검종의 분쟁 또한 있었읍니다. 여러 무림의 선배들은 모두 알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참상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집니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했다.
(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화산의 기종과 검종의 내분은 본파 문화의 수치이니 다른 사람에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없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지금 천하의 영웅들 앞에서 공고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
또한 악불군의 소리가 날카로와 목소리가 수리 밖에 전달되고 말 한마디가 멀리서 메아리쳐 돌아왔다. 그래서 내심 또 생각하기를, (사부님께서 연마하고 계신 자하신공은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셨구나. 말하는 소리와 내공의 운행은 옛날과 사뭇 다르구나.]
악불군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무림중에 종파문호(宗派門戶)는 분리되는 것보다는 합쳐지는게 옳다고 여기고 있읍니다. 수백년 동안 강호의 살생으로 말미암아 그 얼마나 많은 무림의 사람들이 비명에 죽었읍니까? 그 원인을 추적해 보건데 태반이 문호의 분쟁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읍니다. 저는 늘 생각을 해왔읍니다. 만약 무림중에 문파나 종파의 구분이 없이 천하가 한 집안이 되고 모두 한가족처럼 지낸다면 그러한 일과 참극은 열이면 아홉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웅호걸들은 젊어서 죽지는 않을 것이고 이 세상에 수많은 고아와 과부가 생기지 않게 되겠지요.]
그의 이말은 천하를 걱정하는 뜻이 충만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화산의 악불군은 군자검(君子劍)이라고 사람들이 칭송하고 있는데 정말로 그 명성이 헛되지 않구나. 정말 인자한 마음을 갖추고 있어.]
방증대사는 합장을 하고 말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 악거사(岳居士)의 말씀은 자비롭고 인자함이 가득 차 있읍니다. 모두가 악거사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천하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대사께서 너무 과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저의 이러한 미천한 견해는 소림사의 역대 고승들께서 벌써 생각을 하신 것들입니다. 무림에서의 소림사의 명성과 지위는 모든 각파의 고명한 인사들이 따르고 또한 도움받아 왔읍니다. 각파의 무술 윈류가 다르고 무공을 연마하는 방법이 다를진데 무학의 인사들에게 파벌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은 어찌 쉬운 일이겠읍니까? 그러나 무공이 다를 지라도 화기애애하게 지낼 수는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강호는 여전히 수많은 문벌로 나누어지고 드러내어 싸움을 하든가 아니면 암암리에 싸움을 하면서 무수한 생명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싸움에 희생이 되었읍니다. 역대 강호의 인사들은 모두 파벌의 분쟁이 크나큰 해가 되어 왔음을 알면서도 어째서 통쾌하게 결심을 하고 해소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점에 대해서 몇해 동안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보았읍니다. 그리고 비로소 몇일 전에 그 관권이 어디에 잇는가를 크게 깨달았읍니다. 이 일은 무림 전체 사람들의 생사레 관련된 문제이니 저는 혼자서 알고 지내기가 뮈해서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려 가르침을 청할까 합니다.]
군웅들은 너도나도 말을 하였다.
[말씀하시오. 말씀하시오.]
[악선생의 견헤는 틀림없이 매우 고명하실 겁니다.]
[어디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십니까?]
[문파의 파벌을 없앤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어려울 것입니다.]
악불군은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했다.
[제가 노심초사하여 생각해 본 결과 그 이치를 알고 보니 한개의 급(急)자와 점(漸)의 차이에 있음을 발견하였읍니다. 역대 무림중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문파의 파벌을 없애려고 갈망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때때로 너무나 조급하여 단숨에 천하의 종파문호의 담을 허물려고 했읍니다. 무림중에 종파는 큰 것은 수십개 작은 것은 수만개도 넘습니다. 모든 문호들은 모두가 수십년 내지는 천여년 동안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단번에 없애려고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이치지요.]
좌냉선은 말을 했다.
[악선생의 견해로는 종파문호의 파벌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씀이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악불군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제가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그 차이는 급하게 하느냐 천천히 하느냐레 달렸읍니다.
모든일이란 급하게 서둘면 되지않는 법이지요. 하나의 방침을 세우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협력해서 추진을 한다면 오십년 백년 후면 어찌 일이 성사되지 않겠읍니까?]
좌냉선은 탄식하며 말을 했다.
[오십년 백년 뒤라, 이곳에 모인 영웅호걸들은 열명이면 여덟아홉은 이미 목숨이 끊어지고 땅 속으로 들어가겠군요.]
악불군은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는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한다면 우리들 세대에 그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는 그리 따질 것이 못 된다고 봅니다. 앞 사람들이 심어놓은 나무가 성장해서 뒷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먹고 그늘 아래서 편히 지내게 되는 법입니다. 그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읍니까? 더우기 오십년 백년 뒤에는 우리의 계획이 모두 달성되는 것이고 만약 십년 팔년 후에는 우리들의 성의가 열매를 맺지 않겠읍니까?]
좌냉선은 말했다.
[십년 팔년 뒤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실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진행을 하시겠소?]
악불근은 약간 웃더니 말을 했다.
[좌맹주께서 지금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실로 우리 강호에 크나큰 일입니다. 우리들이 단숨에 문파의 파벌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각파들이 만약에 지역이 서로 가깝다든가 또는 무공이 서로 비슷하다든가 또 각파끼리 의기가 투합이 된 문파들부터 먼저 합병을 해간다면 십년 팔년 안으로 문호종파의 수는 반 정도가 줄어들 것입니다. 오악검파가 오악파로 합병이 되는 것이 그 봐은 하나의 예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써 각파는 우리를 따르게 될 것이고, 우리의 거사는 무림에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화산파는 오악합병을 찬성하고 있구나.]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사부께서 합병에 찬성하실 줄은 생각도 못하였는데, 나는 오직 화산파의 결정에 따른다고 말했으니 사부가 합병에 찬성한다면 나는 그 말을 번복할 수가 없구나.)
내심 초초하여 눈을 들어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흔들며 표정이 난감하였다.
좌냉선은 줄곧 악불군이 이 일에 이의를 달까봐 걱정하였다. 이자는 말도 잘 하고 강호에서 명성 또한 자자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지지를 하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화산파가 오파합병에 찬성을 하시니 실로 기쁘기 짝이 없읍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내가 맨 처음 이 일을 구상하게 된 것은 우리가 모이면 강해지고 흩어지면 약해진다는 원칙칙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악선생의 말씀을 듣고서 비로소 오파의 합병이 우리 오파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무림의 앞날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됨을 확연하게 깨달았읍니다.]
악불군은 말하였다.
[우리 오파가 합병을 한 다음 거대한 힘을 이용해서 각 문파와 좌웅을 겨룬다면 그건 오로지 무림에서 풍파만 일으키게 될 것이며 우이 오악파는 아무런 이익이 없을 뿐더러 강호에서는 또하나 크나큰 골치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병의 종지는 반드시 분쟁을 종식시킨다는데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건데 우리 오파가 합병한 이후에 혹시나 불리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계실 것 같은데 이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군웅들은 그의 이러한 말을 듣고 어떤 자는 마음이 놓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또 어떤 자들은 반신반의하였다.
좌냉선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화산파는 합병을 찬성하시는 겁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영호충은 바라보며 말을 했다.
[항산파 영호 장문인은 옛날에 화산문하에서 나하고는 이십여년간이나 사제의 정을 맺어 왔읍니다. 그러나 그는 화산문하를 떠난 직후에도 계속해서 나와의 정분을 잊지 못하고 함께 같은파에서 지내기를 갈망해 왔읍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에게 같은파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약속을 했소.]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 찼다. 영호충은 순간 깜짝 놀라 내심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다시 자기의 문하에 들어오라고 허락을 한 것은 알고보니 화산에 들어오라는 소리가 아니고 오파가 합병한 뒤에 나와 사부님, 사모님과 함께 같은 파에서 지내자고 한 것이구나. 그것도 좋겠지.)
그리고 또 생각하기를, (사부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시기를 오파가 합병을 한다면 그뜻은 응당히 분쟁을 해소하는데 둬야 한다고 했는데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오파의 합병은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은 아니다. 보아하니 앞날의 길흉은 오악파가 나의 사부에 뜻을 따라 행하느냐 아니면 좌냉선의 종지에 따라 행하느냐에 달려 있구나. 만약에 화산, 항산 두파가 협동단결하고 형산파 및 태산파 중에 일부 지지자들을 끌어들인다면 숭산파 및 태산파의 반수와 대항을 한다해도 그리 열세에 놓이지는 않겠구나.)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재어보았다.
좌냉선의 말이 들려왔다.
[악선생님과 영호 장문인에게 축하드립니다. 오늘부터 스승과 제자가 같은 파에 있게 된다니 그것은 크나큰 경사입니다.]
군웅들 중에 수백 사람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갑자기 도지선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 일은 합당치 않소. 합당치 않습니다. 크게 합당치 않습니다.]
도간선은 말했다.
[어쩨서 합당치 않단 말입니까?]
도지선은 말했다.
[이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는 본래 우리 여섯형제가 앉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간선 등 다섯사람은 일제히 대답했다.
[맞다!]
도지선은 말했다.
[우리들이 겸손하여 영호충에게 양보를 했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영호충에게 양보를 할 때 우리는 조건을 하나 달았읍니다 그 조건은 다름이 아닌 바로 그로 하여금 정정, 정한, 정일 세분 사태의 복수를 하라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이렇게 물어보자, 다섯형제는 일제히 대답을 했다.
[맞다!]
도지선은 말했다.
[정한 등 세분의 사태를 살해한 자는 바로 오악검파 중에 있읍니다. 내견해로는 아마 좌(左)씨 성을 가진자 아니면 바로 우(右)씨 성을 가진 자일 것입니다. 또는 좌씨 성이 아닐 수도 있고 우씨 성이 아닐 수도 있읍니다. 만약에 영호충이 오악파에 가입을 한다면 이 좌씨 성과 우씨 성을 가진 자와 동문사형제의 관계가 되니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고 정한사태의 복수를 할 수가 있겠소?]
도곡육선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한마디도 틀린 말이 없다!]
좌냉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내심 생각하기를, (여섯놈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을 주다니 네놈들을 오래 살려 둔다면 앞으로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더 나올지 모르겠구나.)
도근선이 또 말했다.
[만약에 영호충이 정한사태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될 수가 없소.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그가 항산파의 장문인이 아니면 항산파를 대표해서 의견은 말할 수가 없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가 항산파의 의견를 대표할 수가 없다면 항산파가 오악파에 가입해야 되는냐 마느냐를 영호충이 결정할 수는 없읍니다. 그렇지 않소?]
그가 한마디 물어볼 때마다 도곡오선들은 대답을 하였다.
[맞다!]
도간선은 말했다.
[문파에는 장문인이 없을 수는 없소. 영호충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될 수 없다면 다른 유능한 자를 추천해야 되지 않소. 우리 여섯 영웅들의 무공이 강하고 견문이 비범하다는 것은 그 옛날 정한사태께서 이미 평가를 내리셧고 오악감파의 좌먕주께서도 조금전에 '여섯분의 무공은 최강이고 견문 또한 비범하여 나도 추앙을 하고 있었소'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렇지 않소?]
도간선이 이렇게 물어보자 그 다섯형제는 일제히 대답했다.
[맞다, 맞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갈수록 우렁찼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름들은 대답할수록 힘이 생기는 듯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군웅들은 첫째로는 지금 전개되는 장면이 재미가 있었고, 둘째로는 숭산파가 꾸미는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이 있자 마움속으로 고소하녀 수십명은 도독육선들과 합세를 하여 일제히 외쳤다.
[맞다, 맞다!]
악불군이 오악파의 합병에 찬성을 한 직후에 영호충은 내심 크나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 도곡욱선들이 훼방을 놓는 소리를 듣자, 내심 다행스러웠고 퍽이나 기뻤다. 마치 이 여섯형제들이 자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터놓은 듯하였다. 그러나 계속 듣고 있으면서 무었인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곡육선들의 말은 원래가 앞뒤가 맞지 않고 엉뚱했었는데 숭산에 오고부터 그들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고 뼈가 있구나. 조금 전에 그들이 한 말은 언뜻 듣기에는 억지 같지만 먼저 치밀하게 짜여져 있었고 말속에는 예리한 칼날이 숨겨져 있어 반박을 못하게 하는구나. 그들의 평소 행동과 말투와는 사뭇 다르다. 혹시 암암리에 다른 사람이 지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도화선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항산파 중에 무공이 강하고 견문이 대단한 영웅은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은 멍청이가 아니니 생각을 해보면 알 수가 있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여 사람은 웃으면서 일제히 대답을 했다.
[맞소!]
도화선은 말했다.
[천하의 모든 일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대를 해야지요. 여러분께 물어조겠는데 이 여섯영웅들은 누구입니까?]
이백여 명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야 물론 도곡육선들이지요.]
도근선은 말했다.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시니 항산파의 장문님자리는 우리 여섯형제들이 별수 럿이 맡아야 되겠군요. 산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아래 있고 덕을 쌓고 명망이 두텁고 물이 모이면 큰 저수지를 만들고 물이 빠지면 돌맹이가 나오고 문호를 크게열어......]
그는 말을 할수록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군웅들은 모두 뱃가죽을 거머쥐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숭산파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큰 소리로 일갈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 여섯놈들은 여기서 무슨 훼방을 놓고 있느냐. 빨리 꺼쪄라!]
도지선은 말했다.
[이상하군. 너희 숭산파가 오파를 합병하려고 수많은 계략을 세웠기에 항산파의 여섯대영웅들이 숭산파에 와서 그 광경을 구경을 하려고 하는데 너희 들은 우리르 쫓아내려고 하는구나. 우리 여섯대영웅들이 떠나면 항산파의 그 나머지 소영웅들은 물론 우리를 따라서 숭산을 떠날 것이다. 너희들이 오파를 합병하려는 계략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좋다, 항산파의 친구들이여 그들 네파만이 합병을 하라 하고 우리들은 내려갑시다. 좌냉선이 사파(四派)의 장문이 되고 싶다고 하면 하라고 합시다. 우리 항산파는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소.]
의화, 의청 등 여제자들은 좌냉선을 뼈속 깊이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지선이 이렇게 말을 하자 즉시 너도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갑시다.]
좌냉선은 이말을 듣고 마음이 초초하였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항산파가 가버리면 오악파는 하나가 줄어 사파가 되어 버린다.
자고 이래로 천하는 오악인데 절대로 사악일 수는 없다. 설사 사악파를 합병하여 내가 사악파의 장문이 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단 위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림 중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항산파의 여러 친구들이여 할말이 있으면 천천히 상의를 합시다. 뭐 그리 급할 필요가 있소?]
도근선은 말했다.
[당신네 여우 같은 무리와 새우 같은 놈들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했지. 우리가 간다고 하지는 않았소.]
좌냉선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영호충을 향해서 말했다.
[영호 장문 우리는 무예를 배운 사람들이오. 말 한 마디가 마치 천금과 같소이다. 당신은 악선생의 결정에 따르기로 말을 하지 않았소. 절대로 번복할 수는 없소.]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악불군을 쳐다보니 그의 얼굴은 간절하게 무엇인가 바라는 눈치로 자기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충이 또 고개를 돌려 방증대사와 충허도인을 바라다보니 두 사람도 연신 자기를 향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악불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아 너와 나는 지금껏 부자처럼 지내왔고 내 안사람도 역시 너를 친아들처럼 여겨왔다. 너는 또 다시 옛날처럼 지내기를 바라지 않느냐?]
영호충은 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주저하지도 않고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사모님. 저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읍니다. 당신들이 오파에 찬성을 한다면 저도 그 명에 따르겠읍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그러나 세분 사태의 피맺힌 원한은......]
악불군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항산파의 정정, 정일, 정한 세분의 사태께서 불행하게도 살해가 되었는데 우리 동료들은 모두들 애통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오파로 합병이 된다면 항산파의 일은 역시 나의 일이다. 지금 눈앞의 급선무는 그 원흉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오파의 힘과 더우기 여기 모인 무림의 돌료들의 협조를 받아 그 원흉의 몸이 비록 부서지지 않는 금강석으로 되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를 난도질하여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충아 너는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이 원흉이 설사 우리 오악파중의 최고의 인물이라도 절대로 그냥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너무나 늠름하였고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서려있는 듯하였다.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순식간에 갈채를 보냈다. 의화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악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르신께서 우리 세분 사태의 원수를 갚아주신다면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그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악불군은 말하였다.
[이 일은 내가 맡겠소. 삼년 안으로 내가 세분 사태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무림의 동료들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굴한 소인이라고 욕을 할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이 나오자마자 항산파의 여제자들은 더욱 큰 소리로 환호를 질렀고 다른파의 사람들도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하기를, (나는 비록 세분 사태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시간을 정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들 죄냉선이 원흉임을 의심하고 있는데 어떻게 증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그를 잡아놓고 자백을 하라고 해도 그는 절대로 자백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부께서는 어째서 그러한 말을 공공연하게 하실까. 맞다, 그 어르신은 틀림없이 원흉이 누구인가를 알고 계시고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갖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삼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은 것이다.)
그는 먼저 악불군을 따라서 합병에 찬성을 하려 했어도 항산파의 제자들이 원하지 않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여제자들이 큰 소리로 환호를 지르며 반대하는 사람이 없자 내심 기뻐하여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좋겠읍니다. 나의 사부님인 악선생님께서 세분의 사태에게 나쁜 짓을 한 원흉을 찾아 설사 그가 무림중에 최고의 인믈이라 해도 절대로 그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좌장문께서도 이 말에 찬동을 하십니까?]
좌냉선은 냉랭히 말했다.
[그 말씀은 아주 옳은 말씀입니다. 내가 어째서 찬성을 하지 않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오늘 천하의 영웅들이 여기 모이고 모두들 들으셨읍니다. 세분의 사태를 죽인 자를 찾아내기만 하면 설사 그가 친히 못된 짓을 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시켜서 했든지간에 또는 그 자가 한 문파의 장문인일지라도 원흉임이 판명이 되면 그자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질 것이오.]
군웅 중에서 반수 이상의 사람이 찬성을 햐였다.
좌냉선은 사람의 목소리가 약간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가 말하였다.
[오악검파 중에서 동악 태산, 남악 형산, 서악 화산, 북악 항산, 중악 숭산 오파가 한마음 한뜻으로 합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소. 그렇게 된다면 오늘부터 오악검파의 이름은 이 무림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소. 오파의 무림제자들은 모두가 새로운 오악파의 문하의 사람이 되었소.]
그가 좌측손을 휘젓자 산 우측 좌 측에서 폭죽소리가 크게 일어나며 이어서 펑펑 굉음이 끊어지 않으며 많은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오악파의 탄생을 경축하고 있는 것이다. 군웅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하였다.
모두들 생각하기를, (좌냉선의 준비가 이렇듯 철저하구나. 오악검파가 합병하는 일은 반드시 되어야만 했어. 만약에 오늘 합병되지 않았다면 숭산은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고 일대 살육전장이 되었을 것이다.)
봉우리에는 연기가 가득 차고 종이조각이 휘날렸으며 폭죽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그 광경에 모두들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비로소 폭죽소리가 멈추었다. 즉시 여러명의 강호의 협사들은 서로 다투어 좌냉선에게 축하인사를 보내었다. 보아 하니 이들은 숭산파의 사람들이 제쪽으로 초청을 해놓은 사람들이 아니면 대세가 이미 기울어 좌냉선의 명성과 세력이 확장이 되자 즉시 다투어 그에게 호감을 사려고 하는 자들 같았다.
좌냉선은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고 겸손을 떨고 있지만 그 차가운 얼굴에도 기쁜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갑자기 도근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악검파가 합병이되어 한개의 오악파가 된 이상 우리 도곡육선들도 그 대세에 맞추어 찬성하기로 했소.]
좌냉선은 말하였다.
[당신 육괴들이 이곳에 온 뒤로 이제야 사람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군요.]
도간선은 말하였다.
[어느 문파이든 간에 장문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오악파의 장문인은 누가 맡아야 좋을지요. 만약 모두들의 의견이 일치되어 도곡육선을 천거한다면 우리들은 별수없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그 자리를 수락하겠소.]
도지선은 말했다.
[조금 전에 악선생께서 오파의 합병은 바로무림의 공익을 위해서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소. 정말 그렇다면 비록 이 오악파 장문인의 자리가 책임이 막중하고 할 일이 많지만 우리 여섯형제는 별수없이 그 어려운 일을 맡아야 하지 않겠소.]
도엽선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모두들 이렇게 열심인데 어째서 우리 여섯형제들은 강호를 위해서 힘을 쓰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읍니까?]
그들 여섯사람은 서로가 죽이 척척 잘 맞아들어갔다. 마치 여러 사람들이 그 여섯형제를 오악 장문인으로 천거한 것 같았다.
숭산파 중에 몸집이 큰 노자가 말하였다.
[누가 당신들을 오악파 장문인으로 천거를 하였소. 그 엉터리 같은 말은 집어치우시오. 말도 안되는 소리요.]
이 사람은 바로 좌냉선의 사제인 탁탑수 정면이었다.
숭산파 중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이 떠들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이 만약 오파합병의 기쁜 날이 아니었다면 당신들과 같은 미친자들의 열두개의 다리를 토막토막 분질러 놨을 것이오.]
정면은 또 말을 하였다.
[영호 장문, 이 여섯명의 미친 놈이 이곳에서 마구 떠드는데 왜 쳐다보고만 있으시오?]
도화선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영호충을 영호 장문이라고 불렀는데 당신은 그를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천거를 하려고 합니까? 좀전에 좌냉선도 항산파나 화산파의 이름들은 무림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소. 당신이 그를 영호 장문이라 불렀으니 마음속으로는 그를 오악파 장문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뜻이오?]
도실선은 말하였다.
[영호충으로 하여금 오악파의 장문인을 맡긴다면 우리 여섯형제보다 조금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만한 사람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니 별 수가 없지요.]
도근선은 목청을 높여 외쳤다.
[숭산파는 영호충을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천거하였소. 모두들 어떠시오.]
오로지 백여명의 여자가 찬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항산파의 여제자들인 것이다.
정면은 아무 생각없이 영호 장문이라고 불렀다가 도곡육선들에게 말머리를 잡혔다. 자기의 천지가 난감해지자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말하기를, [아니다. 아니다 난......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나는 영호충을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천거하지 않았다......]
도간선은 말하였다.
[당신이 영호충을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천거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도곡육선이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오. 귀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시니 우리 여섯형제들은 사양하자니 예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덥썩 주저앉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도지선이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우리가 먼저 일년이든 반년이든 그 자리를 맡아 질서가 잡히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어 그 자를 앉힙시다.]
도곡오선들은 말했다.
[맞다, 맞아 ! 정말로 절충의 묘안이다.]
좌냉선은 냉랭히 말을 했다.
[여섯분은 정말로 말이 많군요. 이 숭산에서 함부로 떠들고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안하무인격이니 다른 사람도 몇마디 하면 안 되겠소?]
도화선은 말하였다.
[됩니다. 됩니다. 왜 안 되겠소.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잠꼬대를 하려면 하시오.]
그가 잠꼬대를 하려면 하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자 순간 봉선대 아래는 정적이 흘렀다. 잘못 말했다가는 정말로 잠꼬대 같은 소리가 될까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지난 뒤 좌냉선이 비로소 말했다.
[여러 영웅들께서는 고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여섯명의 미친자는 안중에 두지 마십시오.]
도곡육선들은 입을 삐죽러이며 말을 했다.
[그놈의 잠꼬대 정말로 잠꼬대를 하고 있구나.]
숭산파 중에서 한 명의 삐쩍마른 노자가 일어나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오악검파는 한뿌리가 되어 지금까지 맹약을 지켜오고 있었으며 금년 이래로 모두 좌장문께서 맹주를 맡고 계셨읍니다. 좌장문께서 오파를 통솔한지 이미 오래 되고 그 덕망은 온 천하에 자자합니다. 오늘 오파가 합병되었으니 자연히 좌맹주께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 누가 승복을 하겠읍니까?]
그 당시 형산의 유정풍이 행한 금분세수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이자가 바로 육백(陸栢)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와 정면, 비빈 세 사람은 유정풍의 일문을 멸살했는데 그 수법이 심히 매서웠던 것이다.
도화선은 말했다.
[틀렸읍니다. 틀렸읍니다. 오파 합병한 것은 바로 옛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합입니다. 그러므로 장문인도 새로 세워야하고 새 사람으로 바뀌야 합니다.]
도실선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만약에 좌냉선을 그대로 않힌다면 그것은 썩은 것을 그대로 남겨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파는 합병 할 필요가 없읍니다.]
도지선은 말했다.
[오악파의 장문인은 그 누구도 될 수 있지만 좌냉선만은 될 수가 없읍니다.]
도간선은 말했다.
[나의 높은 견해로는 모두가 차례로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한 사람이 하루씩 맡아 하고 오늘 내가 하면 내일은 네가 하고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적극적이 되지 않겠소. 그것을 공평한 장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린애를 못 살게 굴지 않고 제 값을 받을 수 있으이 모두가 기쁜 일이 아니겠소?]
도근선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 방법은 참으로 멋집니다. 응당 나이가 제일 어린 아가씨부터 해야만 합니다. 나는 항산파의 진견 진사매를 추천하여 오늘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추천하겠읍니다.]
항산파의 여제자들은 도곡육선이 이렇게 말한 것은 좌냉선의 일을 훼방 놓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좋다고 외쳤다.
천여명의 사람들도 자기 일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덩달아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렀다. 순식간에 숭산꼭대기에는 또한번 한바탕 혼란이 일어났다.
태산파의 한 명의 나이먹은 도인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는 반드시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위엄과 존경을 받는 선배고인이 맡아야 합니다. 차례대로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이 사람의 말소리는 카랑카랑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그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중에서도 분명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도지선은 말했다.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위엄이 있는 자라, 이 말에 어울리는 사람은 무림중에 내가 보건데 오로지 소림사의 방장인 방증대사밖에 없읍니다.]
매번 도곡육선들이 말을 할 때 여러 사람들은 껄껄 웃어대기만 할 뿐 그 누구도 진실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도지선이 방증대사의 이름을 대자 순식간에 숭산 꼭대기에 모인 사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방증대사의 무공은 따를 자가 없고 또한 자비로워서 무림중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항상 공정하게 일을 처리 했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아왔다. 그리고 소림파의 명성과 세력은 너무나 거대했으며 또한 무림중에서도 첫번째 문파이므로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위엄을 갖추었다는 말에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가 없었다. 도근선은 큰 소리로 말했다.
[소림사 방증방장이야 말로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위엄을 갖추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수천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말을 했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읍니다.]
도근선은 말을 했다.
[좋습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대답을 했읍니다. 우리 도곡육선을 지지한 것보다 방증대사의 지지가 더욱 높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오악파의 장믄인은 방증대사에게 맡도록 청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숭산파, 태산파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소. 방증대사는 소림파의 장문인인데 우리 오악파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도지선이 말했다.
[조금 전에 이 도인께서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위엄을 갖춘 선배도인을 장문인으로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나는 가까스로 한분을 찾아내었소. 어디 이 방증대사께서 덕과 재능을 겸비하지 못했단 말이오? 위엄과 숭앙을 받지 않고 있단 말이오? 또 선배도인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당신들의 말투를 들어보면 방증대사는 덕도 없고 재능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위엄도 없단 말입니까? 어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읍니까? 또 다시 누가 그런 말을 하고 그가 장문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도곡육선은 그와 목숨을 걸고 한판 벌릴 것이오.]
도간선을 말했다.
[방증대사는 장문인을 이미 몇십년 동안 해왔소. 소림파에 장문인으로 있으면서 소림파를 잘 이끌어 오셨는데 어찌 오악파의 장문인을 할 수 없단 말이오. 오늘로써 오악파가 소림파를 넘어섰단 말이오? 그 어느 미친 자가 감히 방증대사가 장문인을 할 수 없고 장문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소이까?]
태산파의 옥기자는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증대사의 덕망은 모두들 익히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오악파의 장문인을 천거하려는 것입니다. 방증대사는 우리의 귀빈인데 어찌 그 어른을 결부시키려고 합니까?]
도간선은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 라면 방증대사께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소림파와 오악파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까?]
옥기자는 말하였다.
[그렇소.]
도간선은 말했다.
[소림파는 어째서 오악파와 아무런 관련이 없읍니까? 나는 관계가 너무나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악파는 어떤 오파입니까?]
옥기자는 말했다.
[각하께서는 알고 계시면서 고의로 물어보시는군요. 오악은 바로 숭산, 태산, 항산, 화산, 오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도화선과 도실선은 일제히 말했다.
[틀렸소. 틀렸소. 조금 전에 좌냉선도 말했듯이 오악검파가 합병한 뒤에 숭산파, 태산파와 같은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소.
어째서 당신은 또 다시 오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오?]
도엽선은 말하였다.
[이것만 봐도 당신은 원래 종파를 잊지 못하고 기회가 있으면 뒤집어 놓고 잘 되어가는 오악파를 허물어뜨린 다음에 또 다시 태산파를 설립해서 그이름을 천하에 떨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웅들 중에서 적지 않는 자들이 소리를 내어 껄껄 웃었다. 그리고 모두들 생각하기를, (저 미친 척하는 도곡육선들을 얕잡아 보지 말자. 만약 그 누가 한마디라도 입밖에 내어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즉시 그들에게 잡혀서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도곡육선들은 그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세살 때부터 서로가 말싸움을 해왔고 자기들끼리 말꼬투리를 잡아 수십년 동안 연습을 해왔으며 더우기 지금에는 여섯사람의 함께 머리를 쓰고 여섯개 입이 동시에 포문을 열자 다른 사람은 그 여섯형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기자는 얼굴이 울그락붉그락 하더니 말했다.
[오악파 중에 당신들과 같은 멍청이가 있으니 재수에 옴붙었소.]
도화선은 말했다.
[당신은 오악파가 재수에 옴붙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오악파를 얕잡아 보는 것이고 스스로가 오악파 중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처하는 것이오?]
도실선은 말했다.
[오늘이 바로 우리 오악파가 출범하는 첫날인데 당신은 저주를 하고 재수에 옴붙었다고 했소. 오악파는 장래에 문호를 크게 개방하고 힘을 모아 소림, 무당과 함께 천하를 지배하고 강호에서 추앙을 받는 대문파가 될 것입니다. 옥기도장, 당신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불길한 말을 하시오?]
도엽선은 말했다.
[이것만 봐도 옥기도인은 몸은 오악에 있으면거 마음은 태산에 가 있는 것이오. 오직 오악파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첫날부터 저주를 하고 있으니 그런 심보를 우리 오악파는 오찌 수용할 수있단 말이오.]
강호에서 무술을 배운 사람은 마치 칼날 위에서 지내는 거와 같아서 길흉을 따지고 금기로 여기는 것이 상당히 많았다. 도곡육선이 이런 말을 하자 모두 이 말이 맞다고 수긍을 하였다. 옥기자가 이런 좋은 날에 오악파가 옴이 붙었다고 하니 실로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좌냉선조차도 마음속으로 옥기자의 말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옥기자는 자기 스스로 말을 잘못했음을 알고 아무말 하지 않고 내심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도간선은 말을 했다.
[나는 소림파와 숭산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하고 옥기도인은 관계사 없다고 하는데 도데체 관계가 있읍니까 없읍니까? 당신이 옳습니까? 내가 옳습니까?]
옥기도인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관계가 있다면 관계가 있다고 칩시다.]
도간선은 말했다.
[천하의 모든 일은 정해진 이치가 있는 법입니다. 소림사는 어느 산에 있소이까? 숭산파는 또 어떤 산에 있읍니까?]
도화선은 말을 했다.
[소림파는 소실산에 있고 숭산파는 태실산에 있소이다. 소실, 태실은 모두가 숭산에 속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째서 소림파와 숭산파가 무관하다고 하십니까?]
이 말은 사실이 그러했고 억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군웅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였다.
도지선은 말했다.
[조금 전에 악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각파가 합병이 되면 강호에서 문파들끼리의 분쟁을 막을 수 있고, 그래서 그는 오파의 합병에 찬성 한다고 앴소. 그는 또 말하기를 각파들은 무공이 서로 유사하거나 지역이 가까우면 합병을 할 수가 있다고 하였소. 지역의 가까움을 말한 것 같으면 소림파 숭산이 그 좋은 하나의 예입니다. 두개의 큰 문파가 같은 산에 있으비낟. 소립파와 숭산파가 만약 합병하지 않는다면 악선생님이 말한 것은 잠꼬대......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군웅들은 그가 잠꼬대라는 말을 하자 모두들 껄껄 웃어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모두들 소림파와 숭산파가 합병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억지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도지선이 말한 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악불군이 앞에서 설명한 이치를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곡육선들이 다른 사람의 말꼬투리를 잡는 것은 그들의 장기이지만, 이런 이치가 그들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누가 옆에서 지시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도간선은 말했다.
[모든 사람들리 추천을 받아 본래 방증대사를 오악파의 장문인에 청하려고 했읍니다. 단지 어떤 사람이 방증대사께서 오악파에 속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하니 그렇다면 소림과 오악파가 합병하여 한개의 소림오악파로 만든다면 방증대사는 이 신파의 장문인이 될 수가 있소.]
도근선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날 방증대사보다 더 합당한 장문인을 갖아야 한다면 그건 누구도 찾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실선은 말했다.
[우리 도곡육선들이 방증대사에게 승복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승복을 안 할 까닭이 있겠읍니까?]
도화선은말했다.
[만약 불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어서시오. 우리 도곡육선들과 한번 겨뤄보고 도곡육선을 이길 수 있으면 다시 방증대사와 좀 겨뤄 봐도 괜찮을 것이오. 방증대사를 이길 수 있다면 소림파중에 달마당, 나한당, 계율원, 장격각에계시는 대사들과 겨루어 보시오.
소림파의 달마당, 나한당, 계율원, 장격각의 여러 대사를과 같은 고수들을 이길 수 있다면 다시 무당파의 충허도장과 겨루어 보십시오......]
도실선은 말하였다.
[다섯째 형님, 어째서 무당파 충허도인과 겨루어야 합니까?]
도화선은 말하였다.
[무당파와 소림파 두분의 장문인은 막역한 사이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사이들이오. 어떤 자가 소림파의 방증대사를 이긴다면 무당파의 충허도장이 어찌 나서지 않겠는가?]
도엽선은 말했다.
[그렇군요.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충허도장과 싸워 이긴다면 다시 도곡육선들과 싸워야 합니다.]
도근선은 말햐였다.
[어, 그는 우리들 도곡육선과 이미 겨뤘는데 어째서 또 겨루어야 한단 말이냐?]
도엽선은 말했다.
[첫번쩨 겨뤘다고 해서 도곡육선들이 어찌 기꺼이 졌다고 할 수가 있겠읍니까? 자연히 죽을 때까지 싸움을 하고 죽어서도 풀지 못한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싸워야지요.]
군웅들은 듣고 모두 깔깔 웃으며 어떤자는 괴성을 지르고, 어떤자는 같이 따라서 웅성대었다.
옥기자는 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더이상 억제할 수가 없었다.
몸들 날려 앞에 나서더니 손을 칼자루에 대고 외쳤다.
[도곡육괴들아! 나옥기자는 승복하지 못하겠다. 너희들과 한번 겨뤄보겠다.]
도근선은 말했다.
[우리는 무두가 오악파 문하에 있는 사람들인데 싸움을 한다면 그것은 골육상쟁이 아닌가?]
옥기자는 말했다.
[너희들은 말이 너무 많아 아마 귀신도 싫어할 것이다 오악파 문하에 너희들과 같은 놈들이 없어진다면 모든 사람들은 눈에 가시가 나간 듯 시원해 할 것이다.]
도간선은 말했다.
[어, 질하는군! 너는 손을 칼자루에 두고 마음에는 이미 살기가 동하였구나, 단지 검을 뽑아들어 우리 여섯형제들의 머리통을 부쉬놓고 싶겠지.]
옥기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묵묵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눈빛 속에 살기가 더욱 가득 찼다.
도지선은 말하였다.
[오늘은 바로 오파가 합병한 날인데 맨처은 너 태산파가 손을 써서 우리 항산파의 여섯고수들을 죽인다면 오악파는 어찌 서로 협력을 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느냐?]
옥기자는 마음 속으로 그의 말이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 만약 이 여섯눔을 죽인다면 앞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항산파에서는 아마 여섯형제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래서 즉시 화를 억제하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우리가 서로 협조를 해야 하고서로 협력을 해서 어려움은 뚫고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훼방을 놓고 말도 되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오. 앞으로는 말을 하지말고 훼방도 놓지 마시오.]
장검을 반절정도 칼집에서 뽑았다가 다시 칼집 속으로 검을 집어 넣었다.
도엽선이 말했다.
[만약 우리들의 말이 오악파의 앞날에 이익을 주고 전체 무림에 이익을 주는 좋은 말이라면 계속할 것이오.]
옥기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체, 당신들은 죽어도 그러한 말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화선은 말했다.
[오악파의 장문인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파의 앞날과 무림의 길흉에 크나큰 관련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우리 형제들은 노심초사하여 여러 사람들이 추앙하는 선배도인을 천거하여 장문인을 맡기려고 했는데 당신은 끝까지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키고 당싱에게 삼천냥의 황금과 내명의 아름다운 계집을 바친 사람으로 하여금 장문인을 맡기려 하는 것이오.]
옥기자는 대노하여 일갈을 했다.
[엉터리 같은 소리하지 마시오 누가 나에게 삼천냥의 황금과 네명의 계집을 주었소?]
도화선은 말했다.
[내가숫자는 잘못말했을지 모르나 아마 있을 것이오. 삼천냥이 아니면 틀림없이 사천냥일 것이오. 네명의 계집이 아니면 아마 세명 또는 다섯명이겠지요. 누가 당신에게 주었는가는 당신 스스로가 잘 알 것이오. 당신이 장문인으로 천거하려는 자가 바로 당신에게 뇌물을 준 사람입니다.]
옥기자의 칼집에 소리가 나면서 옥기자는 장검을 뽑아들고 일갈을 했다.
[당신이 계속해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인다면 나는 당신의 몸을 두동강으로 만들어 놓겠다.]
도화선은 껄껄 웃더니 앞가슴을 쭉 내밀어 그를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했다.
[당신은 비굴한 수법으로 태산파의 장문인인 천문도인을 죽였다. 그래도 부족해서 살생을 하려고 하느냐. 천문도인은 이미 당신에게 당해서 몸이 두동강이가 났다. 동문을 죽이는 것은 당신의 특기이니 어디 내 몸에 다시 한번 해봐라.]
말을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옥기자 앞으로 걸어갔다.
옥기자는 장검을 내밀어 매서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멈춰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온다면 더이상 참지 않겠다.]
도화선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지금하는 행동이 점잖은 행둥이오? 이 숭산은 당신 옥기자의 개인의 땅이 아닌데 내가 무엇이 두려워서 꼼짝 않고서 있겠소. 나는 앞으로 가고 싶으면앞으로 갈것이고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갈 것이니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오.]
말을 하면서 또 앞으로 몇걸음 걸어가 옥기자와 거리가 불과 수척에 지나지 않았다. 옥기자는 그가 추악하게 생긴 긴 말과 같은 얼굴에 누런 이빨을 드러내면서 히죽히죽 웃자 얄미운 생각이 더 들어 장검을 내리쳐 도화선의 가슴파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도화선은 급히 피하며 욕을 하였다.
[이 못된놈, 네놈이 정말로...... 정말로 찌르려고 하는 구나.]
옥기자는 이미 태산파 검술의 정수를 익히고 있어서 일검을 내리치자 또다시 일검이 뒤에서 내리치고 검초의 빠름이란 비할 데가 없었다. 도화선은 말하는 사이에 이미 그의 사검을 연달아 피하였다. 그러나 옥기자의 검초는 갈수록 더욱 빨랐다. 도화선은 어찌할 바를 몰라 꽥꽥 소리를 지르며 허리에 꽃혀 있던 단철검을 꺼내어 막으려고 했으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검광이 번쩍이는 사이에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도화선의 좌측 어깨에 검이 적중되었다. 바로 이때 옥기자의 장검이 손에서 떨어지며 허공에 나르고 이어서 몸이 땅에 떨어지더니 두손 두다리가 이미 도근, 도간, 도지, 도엽 사선에 의해서 각각 잡히었다. 이 행동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 신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노란 그림자와 한줄기 검광이 번쩍였다. 어떤 자가 검을 휘둘러 도지선의 정수리를 내리고 있었다.
도실선은 벌써 옆에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철검을 내밀어 그 칼을 막았다. 또 한 사람이 일검을 도근선의 가슴을 향해 내리찍었다. 도화선은 철검을 뽑아들어 막았다. 그 사람을 보니 숭산파 장문인인 좌냉선이었다.
좌냉선은 도곡육선이 비록 말은 함부로 하지만 몸에는 경이로운 무예를 지니고 있으며 그 옛날 화산에서 자기가 파견한 화산검종의 고수인 성불우(成不憂)가 몸이 여러 토막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옥기자가 그들 여섯형제에게 잡히자 약간 늦게 행동하면 옥기자는 몸이 찢어지는 액운을 당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는 비록 주인의 신분이라 손쓰기가 실로 불편했으나 너무나 위급한 나머지 하는 수 없이 검을 뽑아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연신 두검으로 맹렬하게 도지선과 도근선에게 공격을 한 것은 그 두사람이 급히 손을 풀고 뒤로 물러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 밖에도 도곡육선들은 손발이 척척들어맞고 한치의 빈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네 사람은 적의 손과 다리를 거머쥐고 나머지 두 사람은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좌냉선의 이 두검초식은 비록 예리하였으나 각각 도실선과 도화선에 의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때 옥기자의 생사는 한순간에 달려 있었다. 좌냉선이 도실선, 도화선 두 사람을 격퇴시키려고 한다면 최소한도 여섯개의 동작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동작을 할 때쯤이면 옥기자의 몸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시 장검을 휘두르자 검광이 번쩍하였다. 순간 옥기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모리통이 땅바박에 굴렀다. 도근선, 도지선의 손에는 각기 짤라진 팔이 잡혀져 있었고 도간선의 손에는 한쪽 남은 다리와 옥기자의 몸체가 들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좌냉선은 순식간에 도곡욱선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음을 알고 즉시 결단을 내려 옥기자의 두 팔과한쪽 다리를 잘라 도곡사선들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도마뱀이 자기 꼬리를 자르는 거와 같은 의미였다.
좌냉선은 그의 양팔과 다리를 절단한 후 도곡육선이 절대로 이 폐인을 더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냉소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도지선은 말을 했다.
[어, 당신은 황금과 미녀를 옥기자에게 주고 당신이 장문이 되도록 협조를 구해 놓고 어째서 그의 다리와 양팔을 잘라 놓았소? 그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오?]
도근선은 말했다.
[그는 우리가 옥기자의 몸을 네조각으로 찢어 놓을까봐 손을 썼던것이야. 그건 완전히 착각이야 착각.]
도실선은 말했다.
[스스로 총명한 체하니 정말로 가소롭고 애통하군. 우리들이 옥기자의 몸을 잡은 것은 단지 그와 장난을 치려고 했을 뿐인데 바로 오악파가 출범하는 좋은 날에 어찌 함부로 살생을 할 수 있소.]
도화선은 말을 했다.
[옥기자는 틀림없이 나를 죽이려고 했지. 그러나 우리들은 동문의 정분을 봐서 어찌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단지 우리들은 그를 허공에다 던져놓고 땅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으려고 했고, 그를 좀 겁을 주려고 했을 뿐이다. 좌냉선 당신은 헛다리를 짚었어. 이렇게도 생각이 없고 머리통이 텅 빈 사람봤나!]
도엽선은 한쪽다리만 남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옥기자를 질질 끌고 좌냉선의 몸 앞에 다가가 옥기자의 좌측다리를 풀더니 연신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좌냉선, 당신은 너무나 악독한 사람이오. 어째서 멀쩡한 옥기자를 이꼴로 만들었소. 그는 두손이 없고 한쪽다리 밖에 없는데 앞으로 그가 어찌 살아간단 말이오.]
좌냉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내심 생각을 하였다.
(조금 전에 내가 손을 조금이라도 늦게 썼더라면 옥기자는 벌써 그들에 의해서 네조각이 되었을 것이고 목숨이나 보전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에 와서 이 자들이 이렇게 떠벌이다니 핑계를 댈 수도 없고 정말 죽을 지경이군.)
도근선은 말했다.
[죽이려면 깨끗이나 죽일 것이지. 어째서 그의 두팔과 한쪽 다리를 잘라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옷하게 했는가. 정말로 잔인하고 인자한 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군.]
도간선은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오악파의 동문인데 상의 못 할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렇게 악랄한 수단을 썼는가? 정말 동문의 의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군.]
탑탁수 정면을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들 여섯 괴물들은 움직였다면 사람의 몸을 네조각으로 찢어놓는데 좌장문께서는 바로 동문의 의리를 보호하사 옥기도인을 구출한 것이오. 당신들은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집어치우시오.]
도지선은 말했다.
[우리들은 분명히 옥기자와 장난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좌냉선은 진짜로 믿고 있었소. 진짜 거짓을 구분 못하니 그것을 멍청하다는 증가가 아니겠소.]
도엽선은 말했다.
[사내대장부는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당신은 옥기자를 저꼴로 만들어 놓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리빼고 저리빼니 정말로 반푼어치의 용기도 없는 사람이오. 이 숭산의 꼭대기에 수천명의 영충호걸들이 눈을 뜨고 당신이 옥기자의 손과 발을 자르는 것을 보았소. 왜 끝까지 억지를 부리려고 그러는 것이오?]
도화선은 말했다.
[인자함도 없고 의리도 없으며 지혜롭지도 못하며 용감하지도 않은데 오악파의 장문인을 어찌 이런 사람에게 시킬 수가 있겠읍니까? 좌냉선 당신도 너무 생각이 엉뚱하오.]
말을 하고 여섯 형제들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좌랭선이 만약 정묘한 검법으로 옥기자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태산파의 장문인이 된 지 한시간도 되지 않은 옥기 도인은 그들에 의해서 갈기갈기 네조각으로 찢어졌을 것이다.
봉선대에몰려있던 일류고수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좌냉선의 검법이 정묘하고 대응이 신속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도곡육선들이 이렇게 말을 하자 옆의 사람들은 반박할 수도 없었다. 좌냉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걸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원인과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들 좌냉선의 이번 행동이 너무 경거망동했다고 여기고 또한 수법이 악랄하다 생각하여 얼굴에는 모두 불만의 빛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은 도곡육선들과 오랫동안 사귀어 왔으므로 그들의 사람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오늘 도곡육선들이 한 말은 구구절절이 좌냉선의 허를 찌르고 있다. 그들 여섯형제의 머리가 어째서 이렇게 똑똑할까. 아마 암암리에 다른 사람이 가프쳐 주고 있을 것이다.)
즉시 천천히 몸을 움직여 도곡육선들 가까이 다가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숨어서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곡육선들은 모두 함께 있었으며 몸 가까이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다섯형제들은 허둥지둥 대면서 도화선의 어깨에서 나오는 피를 막고 있었다.
영호충이 몸을 돌려 서쪽을 바라다보니 뒤쪽에서 갑자기 모기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충 오라버니, 당신은 나를 찾고 있읍니까?]
영호충은 놀라고 기뻤다. 목소리는 비록 가늘지만 분명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바로 영영의 목소리였다.
그가 약간 몸을 옆으로 하여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다보니 몸매가 부어 있고 얼굴에는 수염이 잔득 자란 사내가 바위 옆에 기대어 게으른 듯이 손을 내밀어 머리를 긁적긁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 숭산에는 이렇듯이 얼굴에 수염이 난 사내가 적게 잡아도 이백명 정도가 되었으므로 그 누구도 주의하지 않았다.
영호충이 정신을 집중하여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 사내의 눈빛 속에서 한줄기의 교활하고 어여쁜 눈빛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의 몸 쪽으로 다가갔다.
영영은 목소리를 전하여 말을 했다.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그들에게 정체가 탄로납니다.]
이 목소리는 너무나 가늘고 멀리서 전해져 귓속으로 들어오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기를, (내가 어찌 그녀에게 이러한 음을 전하는 공력이 있음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틀림없이 그녀 아버지의 비전(秘傳)이리라.)
즉시 무엇인가 깨달았다.
(도곡육선들이 말한 것은 알고 보니 모두 다 그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어쩐지 여섯명의 괴물들 입에서 그런 멋진 말이 나오더라니.)
내심 너무 기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다.
[도곡칠선의 말은 이치에 딱딱 맞는 말이오. 나는 원래 도곡은 육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또 한분의 총명하고 아름다운 칠선녀 도악선(桃 仙)이 있는 줄 몰랐읍니다.]
군웅들은 영호충이 갑자기 입을 열고 자기만 알고 있는 알송달송한 말만 하자, 모두들 아연실색하였다.
영영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이 일은 너무나 중대합니다. 당신은 항산파의 장문인이니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좌냉선은 지금 낭패하기 짝이 없는데 바로 당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멈칫하여 암암리에 생각하였다.
(영영이 분장을 하여 이곳 숭산에 와서 내가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도록 도와주고 있구나. 그녀는 일월교의 교주의 딸이니 이곳에 모인 정교문하의 사람들과는 천적이다. 만약에 그들에게 발견이 된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겠구나.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로지 내가 무림에서 이름이 나도록 도와주고 있구나. 나에게 이렇듯이 대해주니 난...... 난 어떻게 그녀에게 보답을 해야 될까?)
도근선의 말이 들려왔다.
[방증대사와 같은 분을 당신들은 원하지 않았소. 또 좌냉선은 의롭지도 못하고 인자한 점은 손톱만큼도 없으니 물론 장문이 될수도 없읍니다. 그래서 검술이 당세에 제일가는 소년 영웅을 천거하여 오악파의 장문인을 맡길까 합니다.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검법을 받아 보시오.]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좌측 손바닥을 벌려 영호충은 가리켰다.
도간선은 말했다.
[이분이 영호소협이시고 항산파의 장문인이시며, 화산 악선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형산파의 막대선생과는 좋은 친구사이입니다. 오악검파 중에 이미 삼파가 그를 옹립하기로 결정을 하였소.]
도지선은 말했다.
[태산파 문하의 여러 도인들은 다 멍청이들이 아닙니다. 물론 영호소협을 옹립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오.]
도엽선은 말했다.
[오악파의 사람들은 모두들 검을 사용할 줄 아오. 검법의 최고인 자가 바로 장문인의 자격이 있는 자이오.]
도화선은 어깨의 상처를 짓누르고 말을 했다.
[좌냉선, 당신이 만약 불복한다면 영호소협과 한번 시합을 해봐도 괜찮습니다. 누구든지 이기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비검탈수(比劍奪帥)라고 부르는 것이오.]
이번에 숭산에 모인 군웅들 중에서 오악검파의 문하사람들과 방증대사, 충허도인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 이었다. 오파가 합병되는 일은 이미 깨질 수 없는 사실이 되었고 오로지 구경거리라면 장문인의 자리를 두고 좌웅을 겨루는 것이었다. 이들 강호의 호걸들은 밑도끝도없느 말싸움을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였다. 조금 전에 도곡육선들과 좌냉선의 설전은 단지 도곡육선들이 말을 너무 재매있게 하기 때문에 별로 심심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만악에 악불군돠 같은 사람이 도리는 어쩌고 천하의 이치는 어쩌고 하면서 말을 했다면 그들은 심심해서 견딜수가 없었으리라.
그래서 여러 사람은 도곡육선이 검을 시합하여 좌웅을 겨룬다는 말이 나오자 삽시간에 웅성거리며 좋다고 외치었다. 군웅들이 산에 올라와서 천문도인이 죽음을 당하고 좌냉선이 두팔과 한쪽 다리를 자르는 것을 보고, 모두들 숨을 죽이고 구경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오악파 중에 고수들이 장문인의 자리를 놓고 일전이 곧 벌어지려고 하자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안달하며 구경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갈채를 보앴고 실로 열기가 더해 갔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나는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에게 무림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좌냉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돠는 것을 막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사부께서 장문인이 된다면 그 어르신께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분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승복을 할 것이다. 그어르신을 제외하고는 오악검파 중에 그 누가 그러한 중임을 맡을 자가 있겠는가?)
그래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제일 적합한 선배가 계시는데 어찌 모두들 잊으였소. 오악파중에 군자검 악선생이 장문인을 맡지 않는다면 어디 가서 그러한 분을 찾을 수 있단 말이오. 악선생은 무공이 높고 견식 또한 탁월합니다. 그 어르신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군자검이라는 칭호가 붙었겠읍니까? 우리 항산파는 악선생님을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추천합니다.]
그가 이러한 말을 하자 화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삽시간에 큰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갈채를 보내었다.
숭산파의 어떤자가 말했다.
[악선생은 비록 괜찮은 분이나 좌장문과 비교를 해볼 때 한수가 쳐집니다.]
또 다른 자가 말하였다.
[좌장문은 오악검파의 맹주가 되어 이미 오랫동안 맡으셨소. 그 어르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요. 다른 사람을 추천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또 어떤 자는 말했다.
[나의 견해로는 오악파의 장문인은 좌장문인께서 맡으시고 또 다른 네 게의 부수(副手)자리를 만들어 악선생, 막대선생, 영호소협 옥...... 옥...... 그 옥경자 또는 옥음자(玉音子)도장에게 그 직을 맡게 한다면 아주 합당하다고 봅니다.]
도지선이 외쳤다.
[옥기자는 아직 죽지 않았읍니다. 그의 두 팔과 다리가 잘라졌다고 당신들은 필요없다는 말이오?]
도엽선은 말했다.
[검으로 대결을 합시다. 검으로 대결을 합시다! 무공이 높은 자가 장문인이 되는 것이오.]
천여 명의 강호의 사람들은 따라서 외쳤다.
[맞소! 맞소! 검으로 결판을 냅시다! 검으로 결판을 냅시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오늘의 국면은 반드시 좌냉선은 쓰러뜨리고 숭산파의 기를 먼저 꺽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사부는 영원히 오악파의 장문인이 될 수가 없다.)
즉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가더니 외쳤다.
[좌선생, 천하의 영웅호걸들이이곳에 모여 있읍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보고 검을 시합해서 왕좌를 가리자고 하는데 우리가 먼저 본보기로 한번 초식을 겨뤄보는게 어떻습니까?]
암암리에 생각하기를, (좌냉선의 음한장력(陰寒掌力)은 상당히 매섭다. 나의 공력으로는 그와 겨룰 수는 없지만 검법은 절대 그에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좌냉선을 제압한 후 다시 사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그렇게되면 그 누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태산파의 두명의 고수는 하나는 죽고 하나는 상처를 입었으니 그들은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고설령 나의 검법이 좌냉선의 적수가 되지 못할지라도 나를 꺽으려면 천여합의 초식을 써야 한다. 그때 가면 그의 내력은 크게 소모가 될 것이니 사부가 그때 다시 그와 겨룬다면 승산은 얼마든지있다.)
그는 장검을 들어 공중에 두어번 휘두르더니 말을 했다.
[좌선생님 우리는 오악검파의 문하입니다. 모두들 검을 사용할 줄 아니 검으로 승패를 결정합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먼저 좌냉선이 권법을 겨루자는 말을 못 하도록 함이었다. 군웅들은 너도나도 갈채를 보내었다.
[영호소협은 정말로 화끈한 사람입니다. 바로 검으로 승패를 겨루시오.]
[승자가 장문인이 되고 패자는 그 휘하에 들어가는 것이오. 공평한 장사입니다.]
[좌냉선 빨리 검으로 시합을 하시오.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 있소. 질 것이 두렵소이까?]
[지금까지 말싸움을 해왔는데 무슨 승부가 있읍니까? 빨리 검으로 승부를 냅시다.]
순식간에 숭산의 꼭대기에 군웅들의 와침소리가 갈수록 더 떠들썩하게 들렸다. 사람수가 많아지자 모든 사람이 따라서 웅성댔으며 오직 좌냉선이 초청한 빈객들이었고 오악파 중에서 누가 장문인이 되든 간에 또 어떻게 장문인의 자리를 결정하든간에 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원래 끼어들거나 참견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승패를 가린다고 하니 어서 빨리 좋은 구경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여론이 모아지자, 결국은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 되어 만약 시합을 하지 않게 되면 장문인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뜻에 따라오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크게 기뻤다.
(좌선생, 당신이 나하고 검초를 겨루고 싶지 않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악파의 장문인을 맡지 않겠다고 선포하시오. 그래도 별 상관은 없소이다.)
군웅들은 너도나도 와쳤다.
[검 시합을 하시오! 검 시합을 하시오! 시합을 하지 않고 피하는 자는 영웅이 아니오. 꼬리를 감추고 도망치는 강아지와 다름이 없소.]
숭산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들 영호충의 검법이 정묘하여 좌냉선이 그를 이긴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좌냉선이 그와 시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면 어떤 정당한 이유를 들어야 하였다. 그래서 눈쌀을 찌푸리면서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떠드는 소리에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영웅들께서는 이구동성으로 옹가파의 장문 자리르 검으로 결정하지고 하시니 우리들도 여러분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군요.]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악불군이었다.
군웅들은 일제히 외쳤다.
[악선생의 말이 맞소. 검으로 좌웅을 겨루시오. 검으로 승패를 가리시오.]
악불군은 말을 하였다.
[검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은 그것도 한 방법입니다. 단지 우리 오악검파가 합병이 되어 하나가 되었읍니다. 오파가 합병한 것은각 문파의 분쟁을 감소시키고 무림의 사람들이 화목하고 우애를 다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합을 하되 살생은 금하고 상대방의 몸에 갖다대는 것으로 그치기로 합시다. 승부가 결정이 되면 즉시 동작을 멈추고 절대로 상대방을 죽일 수가 없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오파가 합병하는 본 뜻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오.]
여러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모두 조용하였다.
한 사내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서로 살생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검끝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앗습니다. 설사 죽는다 해도 그것은 자기가 재수가 없어 죽는 것이니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는 것이오.]
또 한 사람이 말을 했다.
[만약 죽거나 상처를 입는 것이 두려워한다면 집에서 숨어 애기나 보는 것이 나을 것이오.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를 빼앗을 필요가 있겠소?]
군웅들은 모두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악불군은 말을 했다.
[말은 그렇지만, 어쨌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이 제일 좋습니다. 저의 미천한 생각이니 여러분께서는 참고해 주십시오.]
어떤 자가 외쳤다.
[빨리 시작하시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습니까? 악 선생의 말이나 들어봅시다.]
먼저 말한 그 사람이 말을 했다.
[누가 잔소리를 하고 훼방을 놓는단 말이오? 당신이나 집에 가서 애기나 보시오.]
그 두 사람은 서로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악불군은 말을 했다.
[그 누가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가를 규정을 정해야만 합니다.]
그는 내공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말소리가 나오자 욕지거리를 하면서 싸우는 목소리를 제압하였다.
악불군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승패를 가리고 좌웅을 겨루는 것은 오악파의 일입니다. 그래 만약 오악파 문하의 사람이 아니면 설령 그가 하늘과 같은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이곳에 끼어들 수가 없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오악파의 장문인을 선출하는 것이 아닌 무공천하제일의 명칭을 다투는 꼴리 될 것이니까요.]
군웅들은 모두 말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
[모두들 한바탕 붙어 무공천하제일의 명칭을 다툰다 해도 뮈 나쁠 것은 없소.]
이자의 말은 말도 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악불군은 말을 했다.
[어떻게 시합을 해야만이 살생을 하지 않고 동문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는가를 좌선생께서 고견을 말씀해 주시오.]
좌냉선은 냉랭히 말을 했다.
[시합을 하는 마당에 인명을 해치지 않고 동문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악선생께서는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신지요?]
악불군은 말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방증대사, 충허도장, 개방의 해방주, 청성파 여관주 등과 같은 몇분의 추앙을 받는 무림의 선배들은 청해서 증인으로 삼는 것이 제일 좋을 것같습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를 그들 몇분이 평가를 내린다면 모두가 승복할 것이고, 목숨을 걸지 않아도 자연히 승부가 가려질 것입니다.]
방증은 말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악 선생의 말은 피비릿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좋은 의견입니다. 좌선생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좌냉선은 말했다.
[대사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시니 저는 그 말에 따르기로 하겠읍니다. 우리 오악검파는 본래가 다섯파이므로 한파에서 한 사람씩 내세워 시합을 하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고 한파에서 수백명이 나온다면 어느 세월에 승부를 가릴수가 있겠읍니까?]
군웅들은 한파에서 한 명만 출전시켜 싸움을 하게되자, 너무나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만약 오파의 장문인이 무두 나선다면 그 파의 아랫사람들은 절대로 자기의 장문인에게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숭산파 가운데 수백의 사람이 모두 그러자고 큰 소리를 외치자, 다른 사람들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도지선이 갑자기 말을 했다.
[태산파의 장문인인 옥기자는 잘라진 다리를 가지고 시합을 할 수가 있겠오?]
도엽선은 말을 했다.
[그가 손과 팔이 잘려졌다고 해도 어째서 시합에 참가할 수가 없읍니까. 그는 아직 한쪽 다리가 남아 있으니 날라서 사람을 찌를 수가 있지요.]
군웅들은 이 말을 듣자 모두들 껄껄 웃었다.
태산파의 옥음자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여섯 괴물, 네놈들이 우리 옥기자 사형을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 와서는 그를 비웃고 있구나. 내 너희들의 손과 발을 분질러 놓고야 말겠다. 씨가 있는 놈이라면 나와서 겨뤄봐라.]
말을 하면서 칼을 앞으로 하고 중간에 와서 섰다. 이 옥음자의 몸체는 크고 말랐으며, 실로 늠름하였다. 이렇게 앞에 나와 버티고 서있으니 위엄스러웠으며 도포가 바람에 휘날리자 더욱 신비스러웠다. 군웅들은 그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도근선은 말을 했다.
[태산파 중에서 네놈이 나와서 승부를 겨루어 보겠단 말이냐?]
도엽선은 말을 했다.
[당신들파가 공동으로 추천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용감함을 뽐내겠다는 것인가?]
옥음자는 말을 했다.
[그것이 네놈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도엽선은 말을 했다.
[물론 상관이 있지. 상관이 있어도 크게 있지. 만약에 태산파 사람들이 공동으로 너를 비검탈수에 내보내어 네놈이 패하면 태산파는 더이상 사람을 천거하여 시합을 임할 수가 없으니까.]
옥음자는 말을 했다.
[두번째 사람을 천거하여 시합을 할 수 없으면 없지. 그게 어쨌단 말이냐?]
갑자기 태산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
[옥음자 사제는 우리들이 천거한 것이아니오. 만약 그가 패한다면 우리들은 또 다른 고수를 파견하여 다시 시합에 임할 것이오.]
바로 옥경자였다.
도화선은 말을 했다.
[하하, 또 다른 고수가 있다고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겠지요.]
옥경자는 말을 했다.
[그렇소. 바로 나요.]
도실선은 외쳤다.
[모두들 보시오. 태산파는 또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읍니다. 천문도인이 죽고 옥기도인이 상처를 입자 이 옥경, 옥음 두 사람이 태산파의 새로운 장문인이 되고자 서로 다투고 있소.]
옥음자는 말을 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라!]
옥경자는 몇번인가 냉소를 하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도화선은 말을 했다.
[태산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시합에 임할 것이오?]
옥경자와 옥음자는 일제히 말을 했다.
[나다 !]
도근선은 말을 했다.
[좋다 그렇다면 당신들 형제끼리 먼저 시합하여 누가 강한가를 겨뤄봐라. 말로는 알 수가 없으니 시합을 해야 누가 이기고 지는지 알 수 있다.]
옥경자는 무리 속에서 나오더니 손을 휘저으며 말을 했다.
[사제, 뒤로 물러나 있게. 다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비웃겠네.]
옥음자는 말을 했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비웃는단 말이오. 옥기사형께서 몸에 상처를 입으셨으니 나는 그를 대신해서 이 씻을 수 없는 원수를 갚을까 합니다.]
옥경자는 말을 했다.
[자네는 복수를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시합을 하여 장문인이 되려고 하는가?]
옥음자는 말을 했다.
[당신이나 내가 오악파의 장문인에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망상입니다 망상. 우리 태산파 사람들은 벌써 한마음 한뜻으로 숭산 좌맹주를 오악파 장문으로 모시기로 결론을 봤지 않습니까? 우리 형제가 이렇게 나와 모든 사람의 비웃음을 살 필요는 없소이다.]
옥경자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뒤로 물러나 있게 태산파 중에서 내가 제일 연장자가 아닌가?]
옥음자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흥, 당신은 비록 연장자이지만 평소 당신의 소행으로 보아 누가 당신의 말을 듣는단 말이오.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말을 듣는다고 보십니까?]
옥경자는 안색이 변하여 엄한 소리로 말을 했다.
[자네, 그 말투는 무슨 의미인가? 자네는 장유유서를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 본파의 제일조 문규는 뮈라고 써 있는가?]
옥음자는 말을 했다.
[하하, 착각하지 마시오. 우리는 지금 이미 오악파 문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함께 오악파에 들어왔읍니다. 무슨 장유유서가 있읍니까? 아직 오악파의 문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무슨 제일조 제이조가 있단 말이오?당신은 태산파의 문규를 끄집어 내어 겁을 주고 있는데, 단지 애석하게도 오악파만 있을 뿐 태산파는 없소이다.]
옥경자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좌측 손가락으로 옥음자의 코를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넌...... 넌...... 넌......]
천여 명은 일제히 외쳤다.
[한번 붙어보시오. 누가 더 무공이 강하나 싸워봐야 알 수가 있는 법이오.]
옥경자의 손에는 장검이 계속해서 움직였으나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비록 사형이지만 평소에 주색에 탐익되어 무공의 검법은 옥음자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오악검파가 합병이 되어도 오악파 사람들은 여전히 오악에 나누어 살아야 하고 모든 명산(名山)에는 반드시 우두머리를 정해야만 햐였다. 옥경자, 옥음자 두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능력이 좌냉선에게 미치지 못한 것을 알고 오악파 장문인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본거지로 돌아갔을 때 태산의 우두머리 자리는 욕심이 있었다.
이때 군웅들이 부추기는 가운데 사형, 사제 두사람은 일촉즉발에 놓여 있었다. 옥경자는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천하영웅들 앞에서 옥음자에게 굴복이 되자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물며 좌장문은 틀림없이 옥음자를 태산파의 우두머리에 정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의 명령은 따라야 하고 평생토록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순간 사제, 사형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버티고 있었다.
갑자기 무리 속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보건데 태산파의 무공의 정수에 당신들 두 사람은 그 누구도 그 근처에 가지 못한 것 같소. 그러면서도 낯 두껍게 잘난 척하며 천하 영웅들의 아까운 시간을 소비시키고 있구료.]
많은 사람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쳐다보니 얼굴은 이쁘장하고 몸체는 호리호리하게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색은 창백하고 입가에는 냉랭한 비웃음을 치고 있었다. 바로 화산파의 임평지였다. 무리 중에서 그의 신분을 알아차리고 외쳤다.
[이 사람이 바로 화산파 악선생의 사위요.]
영호충은 내심 말을 했다.
(임사제는 평소에 신중하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많이 변했구나. 이렇듯 천하 영웅들 앞에서 이 두사람을 비웃고 있다니.)
조금 전 옥경자, 옥음자 두 노인과 옥기자가 서로 내통을 하여 태산파의 장문인인 천문도인을 죽여 좌냉선에게 잘 보이려 하자,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두 사람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임평지가 이 두사람에게 욕을 하니 내심 퍽이나 통쾌하였다.
옥음자는 말을 했다.
[나는 태산파의 무공의 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귀하께서는 문전에 가보았단 말이오. 그렇다면 귀하께서는 태산파의 무공을 몇수 보여 주시오. 좀 구경이나 해봅시다.]
그는 특별히 태산파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그 뜻은 너는 화산파의 제자이므로 아무리 무공이 강한다 한들 그것은 화산파의 무공일 것이고 절대로 태산파의 무공을 연마하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태산파의 무공은 넓고 오묘한데 그 어찌 당신과 같은 무례한 자와 동족을 살해하는 사람들이 깨우칠 수 있단 말인가......]
악불군은 일갈을 했다.
[평아. 옥음도장은 선배이니 절대로 무례하게 말하지 말아라.]
임평지는 대답을 했다.
[녜.]
옥음자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악선생, 당신은 제자 하나를 잘 길러 냈군요. 당신의 좋은 사위가 태산파의 무공이 어떻다고 지껄이니 말이오.]
갑자기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지껄인단 말이오.]
젊은 부인이 사람을 제치고 나왔다. 긴 치마는 땅을 스치고 옷띠가 바람에 휘날였으며 귀 위 머리부분에 작은 빨간 꽃하나가 꽃혀져 있었다. 바로 악영산이었다. 그녀의 어깨에 한자루의 장검을 매고 있는데 우측손으로 그 어깨에 찬 장검의 칼자루를 꼭 쥐고 말을 했다.
[내가 태산파의 검법으로 도장과 한수 겨뤄 보겠읍니다.]
옥음자는 그녀가 바로 악불군의 딸임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오파가 합병하는데 악불군의 역할이 상당히 컸으므로 좌냉선조차도 말투나 표정 중에서 그를 공손하게 대하고 있으므로 감히 그녀를 꾸짖을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잔잔히 웃더니 말을 하였다.
[악소저의 결혼식 때 빈도(貧道)가 축하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화가 났소이까? 귀파의 검법의 정묘함은 옛날부터 빈도는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있었소. 그러나 화산파 문인이 태산파의 검법을 할 줄 안다는 소리를 빈도는 오늘에야 비로소 듣는 이야기요.]
악영산은 눕썹을 치켜세우더니 말을 했다.
[나의 아버님께서는 오악파 장문인에 뜻을 두고 계셨읍니다. 그래서 오악검파 각파의 검법을 하나 하나씩 연구를 하셨읍니다. 그렇지 않고 설령 나의 아버님께서 각파의 장문인과 싸워 이기신다 해도 그것은 단지 화산파가 독불장군이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악파의 진정한 장문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요.]
이 말이 나오자 군웅들은 삽시간에 술렁거렸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하였다.
[악선생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신다고?]
또 다른 사람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설마하니 태산, 형산, 숭산, 항산 네파의 무공을 악 선생이 다할 수 있단 말이오?]
악불군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녀자의 말이니 그 말을 믿지 마시오.]
악영산은 말을 하였다.
[숭산 좌사백님, 만일 당신이 태산, 형산, 화산, 항산 네파의 검법으로 각각 우리 세파의 고수들을 싸워 이긴다면 나는 물론 당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된다고 해도 승복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숭산파의 검법하나만으로 천하를 통일시킨다면 단지 숭산파의 검법이 고명할 뿐이고 다른 네파와는 결국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오.]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만약에 오악검파 각파의 검법을 통달한 자가 있어 그 자가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다면 그 이상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오악검파 각파의 검법은 모두 수백년 동안 무수한 고수들의 심혈과 땀방울로 만들어진 것이다. 설사 이 다섯파의 스승에게 전수받은 자가있어 수십년 동안 연마한다 해도 이 다섯파의 모든 검법을 모두 배울 수가 없는 또한 각파의 비초(秘招)는 모두 자기파의 제자가 아니면 전수를 해주지 않는 것이 물문율이므로 한 사람이 동시에 오악파의 검법을 터득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으며,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좌냉선은 생각하였다.
(악불군의 딸이 어째서 이런 말을 했을까? 그안에는 틀림없이 무엇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설마하니 악불군이 정말로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이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를 놓고 나와 다투겠단 말인가? )
옥음자는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악선생께서는 이미 오파의 검법을 모두 터득하고 계시군요. 그건 정말로 오악검파가 생긴 이래로 없었던 큰 경사입니다. 빈도는 악소저에게 태산파의 검법을 좀 청하고자 합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좋지요.]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의 칼집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옥음자는 내심 불쾌하였다.
(나는 너의 아버지보다도 서열이 하나가 위인데 이 계집아이가 나에게 칼을 들이밀다니.)
그는 악불군이 틀림없이 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설령 정말로 싸움을 한다해도 화산파 중에서는 악불군 부부만이 자기의 적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악불군은 단지 고개를 흔들며 탄식을 하며 말했다.
[어린아이가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옥음, 옥경 두분의 선배는 태산파의 고수이시다. 네가 태산파의 검법으로 그들과 초식을 겨루겠다니 그것은 스스로 화를 자청하는 것이다.]
옥음자는 내심 멈칫하였다.
(악불긍은 정말로 태산검법으로 나와 겨루도록 내버려두고 있구나!)
눈을 들어 악영산을 살펴보니 악영산은 우측손의 장검을 비스듬히 아래로 향하게 하고 좌측손의 다섯 손가락으로 수를 세고 있었다. 일에서 다섯까지 다 세고는 주먹을 꼭 쥐고 또 다시 엄지를 내밀고 다음에는 식지를 결국은 다섯손가락을 전부 펼쳤다. 이어서 또다시 엄지와 식지를 접고 다시 중지를 접었다. 삽시간에 깜짝 놀랐다.
(이 계집에가 어떻게 이 대종여하(岱宗如何)의 초식을 안단 말이냐.)
옥음자는 삼십여년 전에 이 대종여하의 초식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일초는 태산파의 검법중에서 최고로 깊고 오묘하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 요지는 우측손의 검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측손의 계산에 있었던 것이다. 좌측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계산을 하는 것은 적이 놓여 있는 방향과 무공의 문파 몸체의 길이 병기의 길이 그리고 빛이 비치는 높이 등을 계산하는 것이다. 계산은 매우 복잡하나 일단 정확히 계산이 되어 검을 들고 공격을 한다면 적중시키지 못할 것이 없었다.]
당시 옥음자는 순식간에 이런 여러가지 수치를 정확하게 해야 하므로 자기 스스로 그러한 재주가 없음을 알고 그때는 특별히 연구하지 않고 귀로 흘렸던 것이다. 그의 사부도 이 수치의 계산에 그리 정통하지 못해서 말하기를, [이 대중여하의 초식을 너무나 어려워 겉으로 보기는 그리 실용적인 것 같지 않으나 그 위력은 대단하다. 네가 깊이 배울 마음이 없으니 그 초식과 너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은 것 같구나. 더구나 너의 몇명의 사형 사제들은 너보다 총명하지도 못하고 세심하지도 못하니 더더욱 연마를 못 할 것이다. 분파의 이 정묘하고 세상에서 필적할 수 없는 검초는 아깝게 실전이 되겠구나.]
옥음자는 자기 사부가 그리 억지로 자기에게 연마하라고 귄하지 않자, 암암리에 기뻐하였다. 그후로 태산파 중에는 그 초식을 연마하는 자가 없었다. 뜻밖에 수십년 뒤에 악영산과 같은 젊은 여자가 사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삽시간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줄줄 흘렀다. 그는 사부에게서 어떻게 이 초식에 대항할 것인가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자기가 연마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도 절대로 이 기괴한 초식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자기가 필요없다고 연마를 하지 않는다 하여 다른 사람도 그것을 연마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아니한가. 그는 너무 급한 나머지 모든 생각을 동원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급속하게 방향을 고치고 자세를 낮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할것이다.)
즉시 장검을 움직이면서 우측으로 세발짝 미끄러져 나가 낭월무운(郎月無雲)의 초식을 써 몸을 약간 낮추고 장검을 비스듬하게 내리찍었다. 악영산의 우측어깨와 다섯척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로 한바퀴 돌아 이어서 준령횡공(埈嶺橫空) 일초식을 써 몸의 움직임과 칼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였다.
악영산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우측손의 장검을 계속 움직이며 좌측 손가락은 여전히 폈다접었다 하였다. 옥음자는 검초식을 전개하여 몸이 칼끝을 따라 좌측에서 한바퀴 돌고 우측에서 빙글돌면 돌수록 더욱 급해졌다. 이 검법은 바로 태산십팔반(泰山十八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태산파의 한분의 고수가 창안한 것이다.
그 고수는 태산삼문하(泰山三門下)라는 곳에 십팔반(十八盤)이라고 부르는 고개가 마치 염소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고 지형이 험준한 것을 보고, 그 지세를 검법에 융합을 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팔괘문의 팔괘유신장(八卦遊身掌)과 비슷한 이치를 가지는 검초식이었다.
태산십팔반은 높고 꼬불꼬불하여 갈수록 험난하여 이 검초식 또한 돌수록 더욱 매서웠다. 옥음자의 일검은 마치 악영산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죽이려는 검초식은 쓰지 않았다. 그의 두눈은 악영산의 좌측손의 다섯 손가락을 떠나지 않았다. 그 옛날 사부의 말씀은, [이 대종여하의 초식은 우리 태산검법의 최고의 극치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한번 썼다 하면 적중시키지 못하는 것이 없고 사람을 죽이려면 두번째 초식을 쓸 필요가 없다. 검법이 이런 경지에 이르르니 이 초식을 쓰는 자는 실로 비범한 사람이다. 내가 이 검법에 대해서 아는 것은 태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수를 익히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부의 이런 말이 떠오르자, 등허리에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그 태산의 십팔반이라는 고개는 완십팔(緩十八) 긴십팔(緊十八)로 구분되었다. 열여덟군데는 비교적 완만했으며 또 다른 열여덟군데는 심히 가파르고 꾸불꾸불하여 갈수록 올라가기가 험난하였다. 태산파의 이 검법은 순전히 태산의 이 험난한 지형에서 변화 된 것이므로 검초 또한 느슨해졌다가 갑자기 급해졌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막지도 않고 피하지도 못하고 좌측의 다섯손가락을 폈다접었다 마치 숫자를 계산하는것 같은 모양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소사매, 조심하시오!]
하고 외치고 싶었다. 이 말은 목구멍까지 기어나왔으나 외치지 않았다.
옥음자는 이미 검법을 다 쓸 때까지도 장검을 악영산의 몸주위에 머물게만 할뿐 몸에 갖다대지 못하였다. 악영산의 장검이 갑자기 찔러들어가 단숨에 오검을 휘둘렀다.
옥경자는 실성을 하여 외쳤다.
[오대부검(五大夫劍)이다!]
태산에는 매우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데 진나라 때 오대부송(五大夫松)이라고 봉해졌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그 소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쭉쭉 뻗어 심히 올창하고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옥경자, 옥음자의 사백조(師伯祖)는 이 소나무를 보고 검법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래서 이 검법을 오대부검이라고 칭하였다.
변화무쌍함이 숨겨져 있는 이 검초식을 옥경자는 이십여 전에 이미 숙달되게 배웠었다. 그러나 눈앞에 악영산이 전개하는 초식은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자기가 배운 것과 사뭇 달랐으나 자기의 검법보다는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내심 놀라고 있는 찰나에 악영산은 갑자기 가느다란 허리를 구부리더니 검을 들어 그를 향해 쳐들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이 초식도 당신 태산파의 검법입니까?]
옥경자는 급히 검을 들어 막고 외쳤다.
[내학청천(來鶴淸泉)은 어찌 태산검법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이 일초식을 비록 막았지만 너무 놀라 어깨에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상대방의 검의 위치와 방향은 자기가 배운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 일검은 금방이라고 자기의 가슴을 뚫고 지나갈 듯이 날카로왔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태산검법이라니 다행이군요.]
싹 하고 소리가 들리더니 옥음자를 행해서 내리찍었다.
옥경자는 말을 했다.
[석관회마(石關廻馬)의 초식을 너는 사용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맞지 않아!]
악영산은 말을 했다.
[검초의 이름을 당신은 퍽이나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장검을 전개하여 양검을 휘두르자 옥음자는 악 하고 비명을 질렀었다. 거의 같은 찰나에 옥경자의 우측 무릎이 검에 찔렸다. 몸이 흔들거리더니 우측 다리가 구부러지면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급히 검을 땅바닥에갖다대어 몸을 지탱하였다. 그러나 힘을 너무 맹렬하게 썼고 검끝이 그때 마침 바위틈에 끼어 퍽하고 소리를 내면서 장검이 두동강났다.
옥경자는 중얼 중얼 혼자 말했다.
[쾌활삼(快活三) 그러나...... 그러나......]
악영산은 냉소를 하고 장검을 어깨의 칼집에 집어넣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군웅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잠깐 사이에 태산파의 검법으로 두명의 태산파의 고수들을 쓰러뜨리고 태산파의 검법의 오묘함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갈채에 산과 계곡이 쩌렁쩌렁 진동하였다.
좌냉선과 숭산파의 몇명의 고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의아심을 품고 염려를 하였다.
(이 계집아이가 쓴 것은 틀림없이 태산검법이다. 태산검법을 수렴하여 신속하고 날카롭게 연마를 하였구나. 그러나 절대로 이 계집아이가 그렇게 했을리는 만무하다. 틀림없이 악불군이 암암리에 그녀에게 전수를 해주었을 것이다. 이 검법을 연마하려면 많은 시일이 필요할텐데 악불군은 이렇듯이 오래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였구나. 그의 야심은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옥음자는 갑자기 외쳤다.
[넌...... 넌...... 너는 대종여하의 초식을 쓸 줄 모르고 있었구나.]
그가 쓰러지고 난 뒤에 악영산은 단지 대종여하의 초식에 있어 시늉만 냈을 뿐 진정으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일초식으로 승부를 냈을 것이고 계속해서 오대부검, 내학청전, 석관회마, 쾌활삼 등의 초식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기와 사형 두 사람은 수십년 동안 그 검초식을 익혀 왔으므로 자연히 그 검초식의 헛점과 막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태산파의 검초의 중요한 것을 변화시키고 그녀의 검의 방향이 갑자기 변하자 사형, 사제 두 사람은 그녀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다른파의 검법을 사용했더라면 그 초식이 아무리 정묘했을지라도 자기의 검술의 수양으로 보아 절대로 이 연약한 여자에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용한 것은 틀림없이 태산파의 검법이고 가짜는 아니었으므로 내심 부끄럽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며 또한 심히 당황하였다. 더우기 그녀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두눈으로 악영산이 몇초식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자 마음이 멍하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호공자, 이 몇초의 검법은 당신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까?]
영호충이 고개를 돌려보니 말하는 사람은 전백광이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화산의 정상에서 당신과 내가 싸움을 할 때 내 기억으로 당신은 내학청전인가 뭔가하는 초식을 썼었읍니다. 단지 그때 당신은 익숙하게 익히지 못했었지요.]
영호충은 망연실색하여 듣고도 못들은 척하였다. 악영산이 손을 쓰자마자 그는 그녀가 사용한 검법은 바로 화산 사과애 뒷동굴 석벽위에 조각되어 있는 태산파의 검법을 쓰고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뒷동굴 석벽에서 발견한 검초식에 관한 일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없고 그날 사과애를 떠난 직후 자기는 동굴입구를 잘 막아 놓았었다. 그런데 악영산은 어떻게 발견을 하였을까.
영호충은 또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 동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소사매라고 발견을 못할 리 없지. 하물며 내가 이미 동굴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소사매는 더욱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화산 사과애의 뒷동굴 석벽에 조각되어 있던 오악검법의 절묘한 초식을 보았고 마교의 여러 장로가 각파의 검법을 파괴 할 수 있는 법문(法門)을 보았었다. 비록 조각되어 있는 초식을 숙달되게 익혔으나 이 초식의 이름이 무었인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악영산이 마지막 장검을 사용할 때 흐르는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으며 말고삐를 잘 다루는 자가 가벼운 수레를 몰고 익숙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으며,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검초를 십분 발휘하여 삼검으로 태산파의 두 명의 고수를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또한 옥경자가 쾌활삼이라는 말을 하자, 그 옛날 사부를 따라 태산에 갔던 정경이 떠올랐다. 태산 수렴동(水簾洞)을 자나면 길고 가파른 산길이 나오는데 그 가파른 산길을 사람들은 쾌활삼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이 언덕이 완만하게 경사지어 한참동안 매우 경쾌하고 쾌활하게 걸을 수가 있기 때문에 붙여졌던 것이다. 뜻밖에 이 삼검의 초식이 그 가파른 언덕에서 변화돠어 왔음을 몰랐던 것이다.
한명의 삐쩍마른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오더니 말을 했다.
[악선생께서 오악검파 각파의 검법을 터득하고 계시니 실로 무림 중에 없었던 경우입니다. 이 늙은이가 본 파의 검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많은 대목에 이르러서 깨우치지 못하였소. 오늘 마침 악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할까 합니다.]
그의 좌측손에는 몹시 만져서 번쩍번쩍 윤이나는 호금(胡琴)을 들고 있었다. 우측손으로 검의 자루를 천천히 뽑아들자 한자루의 단검이 거기에서 나왔다.
바로 형산파의 장문인인 막대선생이었다.
악영산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막사백(莫師伯)님께서는 낮추어 대해주십시오. 질녀(姪女)는 아무렇게나 형산파의 검법을 몇수 배웠읍니다. 막사백께서 가르쳐 주시지요.]
막대선생은 말을 했다.
[오늘 마침 악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할까 하오.]
원래는 악불군에게 도전을 하였으나 뜻밖에 악영산이 중간에서 가로채고 또한 형산파의 검법을 쓰겠다고 분명히 말을 했던 것이다. 막대선생의 이름은 강호에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었다.
군웅들은 조금 전에 좌냉선이 숭산파의 고수인 대숭양수 비빈이 그의 검 아래서 무릎을 꿇었다고 말하였으므로 모두들 생각하였다.
(악영산이 태산검법으로 두명의 태산파 고수들을 쓰러뜨렸는데 설마하니 또 형산검법으로 그와 대적을 하겠단 말인가.)
막대선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대단해. 대단해!]
악영산은 말을 했다.
[질녀가 만약에 막사백님을 이기지 못하면 저의 어버님께서 나설 것입니다.]
막대선생은 중얼중얼 말을 했다.
[이길 수 있지. 이길 수 있어 !]
단검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고 갑자기 공중에서 몸을 움직이더니 웅 소리가 나며 이어서 두검을 내리쳤다. 악영산은 검을 들어 막았다. 막대선생의 단검은 마치 귀신이 들인양 악영산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악영산은 급히 몸을 돌렸다. 귓가에 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한 무더기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그것은 자기의 머리카락이 막대선생의 검에 베어져서 휘날렸던 것이다. 그녀가 당황한 때 무엇인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가 봐줬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 전에 그 일검은 나를 베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봐준 이상 당돌하게 공격을 해야 되겠구나. )
즉시 상대방의 검초식을 따지지 않고 두 검으로 막대선생의 아랫배와 이마를 내리쳤다.
막대선생은 약간 놀랬다.
(이 천명부용(泉鳴芙蓉) 학상자개(鶴翔紫蓋)의 두 초식은 분명히 형산파의 절묘한 초식이다. 이 어린 여자가 어찌 배울 수가 있었단 말인가?)
형산의 칠십이봉 가운데 부용, 자개, 석름, 천주, 축용의 다섯 봉우리가 최고로 높았다. 형산파의 검법 중에는 다섯개의 검법이 있는데 각각 이 다섯개의 봉우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막대선생이 본 악영산의 초식은 모두가 일초포일로(一招包一路)의 검법이었다. 이 일초 중에는 일로검법(一路劍法) 가운데 수십초의 정묘한 검초가 포함되어 있었다. 부용검법(芙蓉劍法)은 삼십육초식이였으며 자개검법(紫蓋劍法)은 사십팔초식이었다. 이 천명부용과 학상자개 두 초식의 검법은 각각 부용검법, 자개검법의 초식 중에서 요악하거나 간력하게 하여 하나의 초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일초 중에는 공격과 수비가 갖취져 있으며 위력의 강함이란 형산검법 중에서 으뜸이었다. 그래서 이 오초의 검법은 형산오신검(衡山五神劍)으로 불리워졌다.
여러사람들은 귓가에는 오로지 무기 소리만 들려왔으며 누가 공격을 하고 누가 수비를 하고 있으며 또한 두 사람이 몇 초식을 겨루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막대선생은 모든 일을 처리할 때 깊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시합을 하여 승부를 가린다는 위견이 결정되자,그는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더우기 자기는 영호충과 좌냉선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형산파의 장문인의 신분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옥경자가 간계한 수단으로 천문도인을 죽이자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본시 이 사람과 결판을 내고자 하였다. 그런데 태산의 세사람이 각각 무릎을 꿇고 들어가자 그의 적수는 오직 악불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림사에서 이미 악불군의 무공을 눈여겨봐 왔으므로 그에게는 패하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나온 사람을 악불군이 아니고 악불군의 딸이었다. 악영산이 형산파의 검법을 쓸 줄 아는 것에 그는 이미 한번 놀랐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것은 형산검법 중에서도 촤고의 검법인 일초포일로이자 그는 내심 당황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막대선생의 사조(師祖)와 사숙조(師叔祖)는 그 예날 화산의 정상에서 마교의 십장로와 결판할 때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때 막대선생의 사부의 나이가 아직 젊어 부용, 자개 등의 검법은 모두 배웠었다. 그러나 일초포일로의 천명부용, 학상자개의 그 오초의 형산검법은 단지 대충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막대선생에게도 사부가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른 파의 젊은 여자의 검끝에서 그렇게 절묘한 초식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다행이 악영산의 그 두 초식은 모양만 같추어져 있을 뿐 그 진수는 터득하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막대선생은 몸과 마음이 요동하고 있을 때이므로 도저히 그녀의 초식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가까스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악영산의 장검이 움직이더니 바로 석름서성(石름書聲)의 초식으로 변하였다. 이어서 또 천주운기(天柱雲氣)초식으로 변하였다. 이 천주검법(天柱劍法)은 구름과 안개에서 변화되어 나온 것으로 극히 기괴하고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손도 쓸 수가 없었다. 막대선생은 악영산이 천주운기를 사용하는 것은 보고 즉기 손을 놓고 막지도 않고 뒤로 물러섰다.
소위 막지도 않고 물러섰다는 말을 듣기 좋게 한 말이고 실은 싸우지 않고 도망친 꼴이었다. 단지 그의 검법이 변화가 복잡하고 도망칠 때 단검을 이쪽 저쪽으로 내리치고 후려쳤으므로 보는 사람은 뭐가 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이미 삼십육개 줄행랑을 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형산 오대신검 중에서 천명부용, 학상자개, 석름서성, 천주운기 이외에 제일 무서운 일초가 안축회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산의 다섯개 봉우리 중에서 축융봉(祝融峯)이 최고 높았으며 안축회용의 초식은 형산오신검 중에서 최고로 정묘한 것이었다.
막대선생의 사부는 그 당시 이 일초식에 대해서 언급을 할 때 말을 얼버무렸으며 자기도 확실하게 모른다고 하였다. 만약에 악영산이 이 초식을 쓴다면 자기는 설마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해도 크나큰 추태를 보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발을 급히 움직이며 단검을 급하게 휘둘렀다. 그리고는 내심 생각하기를, (그녀는 비록 벌묘한 초식을 배웠지만 보아 하니 시늉만 낼 줄 알 뿐 임기응변을 할 줄 모르는구나. 별수없다. 내필생의 명예를 걸고 모험을 해 보아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이 막대(莫大)는 앞으로 이 강호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
악영산의 발걸음이 약간 무너지는 것을 보고는 그녀가 지금 끝까지 뒤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금방 작정을 하지 못한 것을 알고 막대선생은 암암리에 외쳤다.
(아뿔사, 젊은 사람은 필경 젊은 사람이다. 이 애는 너무나 실전 경험이 없구나.)
악영산이 천기운주의 초식을 쓰자 막대선생은 막다른 골목에 놓여 몸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도망치고 있는 모습을 감추고 있었으나 무공이 고명한 인사들은 모두 그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추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악영산이 즉시 검을 거두고 절을 하면서, '막사백닐께서 양보를 해주셨읍니다. 제가 너무나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라고 말한다면 승부가 확실하게 나는 것이다. 막대선생의 신분과 지위로 그 어찌 한번 패한 직후에 다시 검을 들고 새파랗게 어린 여자와 시비를 걸겠는가. 그러나 악영산은 주저하였다. 실로 막대선생은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 좋은 기회를 포착하였다.
악영산이 보조개로 웃음을 지으며 앵두 같은 입술을 움직여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막대선생의 수중의 단검은 붕 소리가 나며 그녀를 향해서 똑바로 쳐들어갔다. 이 공격은 막대선생의 필생의 공력을 다모은 공격이었다. 그래서 검에서는 소리가 웅 거리고 검광이 원을 그리며 난무하였다. 삽시간에 악영산을 그 검광 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악영산을 놀라 비명을 지르며 연신 뒤로 몇발짝 물러섰다. 막대선생은 그녀가 또 다시 그 안축화용의 초식을 쓰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였다. 그의 수중의 단검은 갈수록 더욱 빨라져 백변천환 운무십삼식(百變千幻雲霧十三式)의 초식은 마치 구름이 일고 안개가 서려 있는 것 같아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눈이 부시었다.
만약 막대선생이 자기 또래의 비슷한 사람과 겨루었다면 군웅들은 벌써 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여자와 겨루고 있으므로 군웅들은 속으로만 혀를 내두를 뿐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악영산이 천명부용의 몇 초식을 쓰자 영호충은 더 이상 회의를 품지 않았다. 그녀는 이 검법은 화산 사과애의 뒷동굴 석벽에서 배운 것이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소사매가 어째서 사과애에 갔을까? 사부님과 사모님은 그녀를 심히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 황폐하고 위험한 절벽에서 좌선을 하라는 벌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녀가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 해도 사부님과 사모님은 단지 엄한 실책이나 내리셨을 것이다. 또한 사과애와 화산의 주봉과의 거리는 심히 멀고 지형 또한 험악하기 그지 없으니 그녀가 혼자서 그곳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임 사제가 벌을 받아 그 벼랑에 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사매가 날마다 옛날 나에게 했듯이 밥과 차를 날랐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화끈해 왔다. 또 생각하기를, (임 사제는 평소에 과묵한 편이고 문중의 법규룰 잘 지키고 있으므로 틀림없는 하나의 소군자검(小君子劍)이었다. 그는 바로 이런 좋은 행실 때문에 사부님과 사모님, 그리고 소사매의 환심을 얻었는데 어째서 사과애에 가서 벌을 받았을까?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
(설마하니 소사매가...... 소사매가......)
마음속 깊은 곳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생각은 너무나 황당무개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자기 스스로 말살시켜 버렸다.
바로 이때 악영산의 입에서 악 하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장검이 손에서 빠져나가 공중으로 날라가더니 좌측 다리가 미끄러지면서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막대선생은 단검을 쥐고 그녀의 좌측 어깨를 가리키며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일어나거라, 너무 놀라지 말라 !]
갑자기 팍 하고 소리가 나더니 막대선생의 손에 있던 단검이 부러졌다. 그것은 악영산이 땅바닥에서 두개의 돌맹이를 집어 막대선생의 검에 던지니 그 단검의 몸집이 심히 가늘어 부딪치자마자 즉시 두개로 끊어졌던 것이다. 이어서 악영산의 우측손으로 돌맹이를 좌측을 향해서 급히 던졌다. 막대선생은 병기가 부러져 깜짝 놀랐고 그녀가 돌맹이를 아무것도 없는 좌측으로 던지자 그녀의 향동이 심히 과상하여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 돌맹이는 방향을 바뀌어 날라오더니 막대선생의 우측 가슴에와 두딪쳤다. 퍽 하고 소리가 나면서 이어서 우드득 소리가 나더니 그의 가슴의 뼈가 삽시간에 몇개가 부러지고 입에서는 선혈을 내뿜었다.
이런 예기치 못한 행동 또한 놀라웠지만 악영산의 동작이 심히 빠르고 괴상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막대선생이선기를 잡은 직후 더 이상 초식을 쓰지 않고 공격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일어나거라 당황하지 말고'라고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이것은 선배와 후배가 시합을 하여 승부가 정해졌을 때 응당히 있어야 할 예의 였다. 그러나 이렇듯 돌맹이를 집어들고 던지는 초식이란 실로 귀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동작이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쓴 이 두 초식이 바로 마교장로가 형산검법을 와해시킬때 쓰는 절묘한 초식임을 알았다. 그러나 석벽 위에 조각되어 있던 무기는 한쌍의 동추(銅鎚)였다. 악영산은 둥그런 돌멩이를 동추 대신에 사용하였다. 돌멩이의 위력은 동추보다는 못하지만 던질 때 공력을 가미시키기만 한다면 돌멩이와 동추는 그리 별 차이가 없었다.
악불군은 몸을 날려 앞으로 나오더니 팍 하고 악영산의 뺨을 때리며 일갈을 했다.
[막대선생께서 분명히 너에게 양보를 해 주셨는데 너는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느냐.]
허리를 구부려 막대선생을 부추기며 말을 했다.
[막형, 딸년이 너무나 철이 없읍니다. 제가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막대선생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장군의 집안에 용이 나오는 법이오. 정말로 대댄하오.]
이 두마디를 말하고 왁하고 구역질을 하더니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형산파의 두 명의 사제가 달려나와 그를 부축해서 돌아갔다. 악불군은 화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영호충은 악영산의 좌측뺨이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뺨에는 다섯 손가락의 자국이 완연하게 드러나자 그녀의 아버지가 얼마나 심하게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악영산은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입가가 약간 움직일 뿐 표정은 여전히 굳세 보였다.
영호충은 그래서 생각하기를, (옛날 나와 그녀가 화산에 있을 때 그녕가 장난이 심해서 사부님과 사모님에게 욕을 얻어듣고 속이 상할 때 이러한 가련하고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어 그때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녀를 웃기곤 했지. 소사매가 제일 좋아하고 금방 화가 풀어지는 것은 바로 나하고 검시합을 하는 것였지. 나는 그때 실수를 한 척 가장하여 그녀에게 져주었지. 절대로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조금 전까지 어렴풋이 짐작을 했던 것들이 갑자기 맑고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녀가 어째서 사과애에 갔을까 그녀가 결혼한 다음 그 옛날 내가 그녀에게 쏟은 정을 잊지 못해서 혼자 사과애에 가서 옛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동굴의 입구는 내가 돌멩이로 잘 막아두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게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짧지도 않았으며 또한 한번만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임평지를 쳐다보고는 깊이 생각을 하였다.
(임 사제와 그녀응 신혼이므로 응당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일고 그늘진 구석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표정이 우울할까? 소사매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뺨을 얻어 맞아서 남편으로서 응당히 가서 위안을 해주어야 할텐데 어째서 저렇듯 무관심한 척하고 있을까. 너무 몰인정하구나.)
그는 악영산이 자기 생각을 하기 위해 사과애에 가서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었다고 생각하였다. 단지 그것이 허무맹랑한 추측인지도 몰랐지만 그는 희미하게 악영산이 그 벼랑에 가서 빗물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그리고 임평지와의 결혼을 후회하고 또한 자기의 사랑을 저버리고 한 없이 후회를 하고 있는 악영산의 모습을 실지로 보는 듯하였다.
고개를 들자, 악영산은 허리를 숙여 검을 집고 있었으며 눈물 방울이 풀에 떨어져 그 풀이 활처럼 휘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영호충의 가슴에는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당연히 그녀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거두게 해야 한다.)
그의 눈에 이 숭산의 봉선대는 이미 화산이 옥녀봉이 되어 있었으며 수천명의 강호의 사내들을 그 옥녀봉의 수많은 잡초와 나무들로 보였다. 또한 그의 눈에 악영산은 자기가 밤낮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 옛날 그는 그녀를 웃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엉뚱한 짓을 했는가. 어찌 오늘이라고 뒷손을 쥐고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그는 큰 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나오더니 말을 했다.
[소사...... 소사......]
그녀의 우울한 마음을 풀게 하려고 한다면 정말로 겨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두근두근뛰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당신은 태산, 형산 두파의 장문인을 이기셨소. 정말로 대단한 검법이오. 그러나 나 항산파는 거기에 승복이 되지 않소. 당신이 항산파의 검법으로 나와 함께 겨뤄보지 않겠소?]
악영산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였다. 한참 지나자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악선생님의 재주는 비록 대단하지만 오악검파 각파의 검법을 다 통달했다고 나는 믿지 않소.]
악영산은 고개를 들며 말을 했다.
[당신도 본래는 항산파의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었고 또한 항산파의 검법을 통달하지 않으셨읍니까?]
뺨에는 눈물이 여전히 줄줄 흘렀다.
영호충은 그녀의 말이 매우 부드럽고 우호적인 감을 주자, 내심 매우 기뻤다. 그래서 암암리에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진짜인 것처럼 가장을 해야 된다. 절대로 그녀가 내가 고의로 양보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말하기를, [정통했다는 말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소. 그러나 나는 이미 항산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므로 항산파의 검법을 자주 연마하였소. 그래서 나는 지금 항산파의 검법으로 가르침을 청하니 당신도 항산파의 검법으로 이에 응해 주시오. 만약 사용하는 검법이 항산일파의 것이 아니라면 승부는 거기에서 판명이 될 것이오. 내 의견이 어떻소.]
그는 이미 생각을 굳혔다. 자기의 검법이 그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모든 사람은 알고 있는 일이다. 만약 거짓으로 패한다면 다른 사람은 물론 악영산조차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마지막까지 겨루다가 스스로 무의식 중에서 갑자기 독고구검의 일초를 쓴다든가 화산파의 검법으로 그녀를 쓰러뜨린다면 그때는 비록 자기가 승리를 했지만 그것은 패하는 결과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절대로 의심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번 겨뤄 봅시다.]
장검을 들어 공중에 반원을 그리며 비스듬하게 영호충을 향해서 찔러 들어왔다.
항산파의 몇제자들은 동시에 억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군웅들은 항산파의 검법을 모르고 있었으나 이 몇제자가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또한 그 외마디 소리에 감탄의 뜻이 충분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악영산의 일초식은 틀림없이 항산의 검법임을 알았고 초식 또한 비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사용하는 것은 사과애의 뒷동굴에 조각되어 있는 초식이었다. 이 초식은 틀림없이 영호충이 항산파 여러 제자에게 전수해준 것이었다. 영호충은 검을 들어 막았다. 항산파의 검법은 둥그런 원이 하나의 형이 되고 매 일초의 검법 중에서 부드러운 힘이 내포되었으며 적과 대결할 때 열개의 초식 중에 아홉 초식은 공격을 막는 것이고 단지 일초식만이 공격형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항산파의 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고 또한 두눈으로 정정사태가 여러차례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에 이 때 그가 펼치는 초식은 모두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비록 통달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항산파 검법의 정수를 깊이 터득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방증대사, 충허도장, 개방방주, 좌냉선 등은 항산검법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항산파의 출신이 아니면서 항산파의 검법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고 또한 평범한 초식 중에는 암암리에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으며 항산파의 무공 면리장침(綿裏臟針)의 요결과 일치됨을 보자 모두 내심 혀를 찼다. 그들은 모두 수백년 동안 항산문하는 비구니가 주가 되고 출가한 사람들이라 자비로움을 그 근본으로 삼고 있었으며, 더우기 여자들이라 도검을 그리 가까이하지 않았고 무예를 배우는 것은 단지 몸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면리장침의 요결은 마치 한개의 손주머니에 바늘을 숨겨둔 것과 같았다.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으면 이 바늘주머니는 온순하고 또한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나 만약 손으로 꽉 쥐면 손주머니에 숨겨져 있는 바늘이 손바닥을 찌르는 것이다. 손바닥에 바늘이 찔리는 정도는 그 바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의 힘이 얼마나 써졌느냐에 달렸다. 힘을 작게 사용하면 상처를 깊게 받지 않을 것이고, 사용한 힘이 크다면 상처는 깊을 것이다. 이 무공의 요결은 불가의 인과응보 선과 악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는 이치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호충은 독고구검을 배우고 난 후로부터 모든 무공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검법은 본래가 그 정신이나 뜻을 중히 여기고 초식은 그리 중히 여기지 않았다. 이때 사용하는 항산검법의 방향과 변화는 원래 초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항산검의 그 정신을 충분히 펼치고 있었다.
각 파의 고수들은 비록 항산검법을 알지만 아는 것은 대충일 뿐 자세의 변화나 차이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호충의 검의(劍意)를 보고 나서 모두들 생각하기를, (이 청년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 것은 실로 우연이 아니구나.
알고 보니 벌써 정한, 정정 여러사태에게서 항산검법의 진수를 전수받았구나.)
오직 항산파 문하의 제자인 의화, 의청 등만이 그가 사용하는 초식이 사부에게 배운 것과 약간 차이가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초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항산검법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더욱 깊게 발전시켰던 것이다.
영호충과 악영산 두 사람이 사용하는 항산파의 검법은 모두가 사과애의 동굴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의 검법의 밑바탕은 원래 악영산보다도 한수가 위었으며, 항산파의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므로 그가 알고 있는 항산파 검법의 범위는 악영산이 실로 미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시합할 때 영호충이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수초 사이에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을 것이다.
삼십여 초식을 맞붙고 난 후에 악영산은 그 석벽에서 배워온 검초식이 바닥이 났다. 별수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하였다. 다행이 이 검법은 정묘하고 복작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펼칠 수가 있으며 일초와 일초 사이에는 조금도 끊어지지 않고 일초식부터 삼십육초식까지 마치 한 줄기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끊어지지가 않았다. 그녀의 검초가 중복이 되었지만 석벽의 검법을 배운 영호충 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악영산의 검초는 너무나 치밀하였다. 영호충은 법식대로 하나 하나 풀어나갔다. 두 사람이 배운 검초는 똑같았으므로 항산파의 검법의 정수를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 하나씩 보여 주었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흡족해 하였으며 모두들 갈채를 보내었다. 어떤 자가 말을 했다.
[영호충은 항산파의 장문인이므로 그가 이리 멋진 검법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나 악씨 집안의 악소저는 분명히 화산파의 사람인데 어떻게 항산 검법을 할 줄 알았을까?]
또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
[영호충도 본래는 악선생의 문하의 사람이었고 또한 화산파의 제일 큰 제자 였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이 검법은 할 줄 알았겠읍니까? 만약에 악선생이 친히 전수를 해주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듯이 박진감 넘치는 묘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했다.
[악선생은 태산, 형산, 화산, 항산 네파의 검법에 정통하십니다. 보아 하니 숭산검법도 잘 알 것으로 생각이 되는 군요. 오악파 장문인의 자리는 틀림없이 그분의 것일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숭산 좌장문의 검법은 악선생보다는 한수가 위입니다. 무공이란 다양성보다는 얼마나 정통하게 깊이 터득하고 있느냐에 달렸지요. 당신이 설사 천하의 무공을 다할 줄 알아고 정통하지 못하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읍니까? 좌장문은 숭산검법 하나만 가지고 악선생의 오파의 검법을 능히 깰수가 있읍니다.]
먼저 말한 사람이 말을 했다.
[당신은 무엇을 안다고 그리 큰소리를 땅땅치시오.]
그 사람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내 말은 헛소리가 아니오. 만약 못 믿겠다면 오십냥의 은을 걸고 내기를 합시다.]
먼저 말한 사람이 말을 했다.
[째째하게 무슨 오십냥이오. 걸려면 백냥거시오. 지금 당장 현금으로 합시다. 져서 어거지를 부린다면 항산파 문하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말을 했다.
[좋소. 그렇다면 백냥을 겁시다. 그런데 항산파의 문하의 사람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먼저 말한 사람이 말을 했다.
[져 가지고 억지를 부린다면 항산파의 비구니보다도 못하다는 소리요.]
그 사람은 툇 하고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가래침을 뱉았다.
이때 악영산의 초식은 갈수록 빨랐다. 영호충은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를 보고는 그 옛날 화산에서 함께 무술 연마할 때의 정경이 생각났다. 점점 정신이 무뎌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멍청해졌다. 눈앞에서 그녀의 일검이 찔러 들어오자, 되는 대로 일초식을 써서 반격을 하였다. 금방 쓴 일초식이 항산파의 검법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를 못했다.
악영산은 멈칫하면서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청매여두(靑梅如豆)!]
그리고는 이어서 일검을 반격하여 영호충의 이마를 향해서 깎아 내려갔다. 영호충도 멈칫하더니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유엽사미(柳葉似眉)!]
그들 두 사람이 쓰고 있는 항산검법은 식만 알고 있을 뿐 그 명칭은 모르고 있었다. 조금 전에 교환한 두 초식은 항산검법은 아니었으며, 두 사람이 화산에서 같이 검을 연마할 때 창안해낸 충영검법(沖靈劍法)이었다. 충은 영호충의 충이고 영은 악영산의 영이었다. 두 사람이 놀면서 같이 연구해낸 검술이었다.
영호충은 타고난 재능이 사매보다는 영리해서 어떤 일을 하든간에 어떤 틀에 구애받기를 싫어하고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곤 하였다. 이 검법은 비록 두 사란이 함께 창안했다고 하지만 십중팔구 영호충이 생각해낸 것이다. 당시에 두 사람의 무공의 조예는 그리 깊지 않아서 이 검법은 그리 대단한 초식은 되지 못했다. 단지 두 사람이 항상 사람이 없는 곳에서 연습은 해왔기 때문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
영호충이 무의식중으로 청매여두의 초식을 쓰자 악영산 또한 우엽사미의 초식으로 대항하였다. 두 사람은 본시 아무런 의미없이 그 초식을 썼지만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의 손이 더 빨라지면서 무중초견(霧中初見)의 초식으로 반격하자 악영산은 바로 우후사봉(雨後乍逢)의 초식으로 대항하였다. 이 검법은 두 사람이 화산에 있을 때 수백번 연습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악선생과 악부인이 알면 힐책을 할까봐 염려되어 지금까지 제삼자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여 천하의 영웅들 앞에서 자기들이 창안해낸 검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은 십여초식을 전개하였다. 영호충은 벌써 옛날 화산에서 검을 연마하는 상황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악영산조차도 점점 자기가 이미 시집간 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수천명의 강호의 사내들 앞에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초식을 전개하고 있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행동의 구속을 받지않고 대사형과 두 사람이 창안해낸 멋진 검법을 연기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그녀의 얼굴의 안색이 갈수록 부드러워지고 눈망울 속에는 기쁜빛이 역력해지자 조금 전에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티를 깨끗하게 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오늘 나는 그녀가 줄곧 우울해 있고 안색이 심히 초췌해 있는 것을 봤는데 지금은 얼굴에 희색이 돌고 기쁜 표정이 되었구나. 아 이 충영검법이 천초 만초가 되었으면 소원이 없겠구나. 그렇게 된다면 언제까지도 이렇게 지낼텐데.)
그가 사과애에서 악영산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지금에야 비로소 소사매가 자기를 옛날처럼 대해주자 자기도 모르게 무한한 기쁨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또 이십여 초식을 맞붙었다. 악영산의 장검은 그의 좌측 다리를 향해서 들어갔다. 영호충은 좌측다리를 날려 그녀의 검신을 향해서 걷어찼다. 악영산의 검끝이 아래로 숙여지더니 그의 발바닥을 향해서 내리쳤다. 영호충의 장검은 급히 그녀의 우측허리를 공격했다. 악영산의 검날은 비스듬하게 돌더니 쨍그랑하고 소리를 내면서 쌍검이 서로 부딪쳐 검끝이 진동을 하였다. 두 사람은 검을 들어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질풍처럼 상대방의 목구멍을 향해 들어갔다. 초식은 신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쌍검이 부딪치는 기세를 보아 그 어느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 기세는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하는 것 같아 옆에서 구경을 하던 군웅들은 모두들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쨍그랑하고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쌍검의 검끝이 허공 중에 맞부딪쳐 불꽃이 튕기었다. 두 자루의 장검이 휘어져 호형(弧形)이 이루어졌다. 이어서 두 사람의 손이 쭉 뻗어 나오더니 손바닥이 서로 부딪쳐 동시에 그 힌을 빌려 뒤로 물러났다. 이 두 자루리 장검이 이렇듯이 교묘하게 변화를 이루게 될 줄은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질풍처럼 빠른 가운데 허공에서 서로만나 검끝의 날과 날이 서로 부딪치는 이런 상황은 수만 차례 검시합을 한다 하여도 그런 상황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칼날과 칼날이 서로 부딪쳤던 것이다.
쌍검이 이렇듯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은 수천 수만번 시도를 해도 한번 될까 말까 하였다. 그러나 그 두사람은 수천 수만차례 부딪치는 연습을 하여 결국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 검법은 반드시 두 사람이 동시에 사용하여야 하며 두 사람이 초식을 쓰는 방향과 힘은 반드시 정확해야만 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쌍검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에서 검끝이 서로 부딪치고 검신이 호형으로 구부러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검법을 다른 사람은 상대할 때 쓴다면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둘수 있는 효과는 적었다. 그러나 영호충과 악영산에게 이것은 하나의 어렵고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두 사람은 일초식이 숙달된 후에 한걸음 연마를 하여 검끝이 서로 부딪칠 때 불꽃을 튀기게 했던 것이다.
그 두사람이 화산에서 이 초식을 연마할 때 악영산은 이 초식을 어떻게 불러야 될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영호충은 말하였다.
[당신의 이 초식의 이름을 뭐라고 불렀으면 하오?]
악영산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쌍검이 빠르고 말카로우며 정말로 생명을 돌보지 않으니 동귀어진(同歸於盡)이라고 부르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동귀어진이라고 하니 당신과 내가 무슨 철천지 원수인 것같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신이 죽고 내가 살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떻소?]
악영산은 삐쭉거리며 말을 했다.
[왜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아야 합니까? 당신이 죽고 내가 살아야 한다고 해야 옳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내가, 본래 당신이 죽고 내가 산다고 하였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 무슨 네가 죽고 내가 죽고, 내가 죽고 네가 죽고 정말로 헛갈리는군요. 이 일초식은 그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 동생공사(同生共死)라고 부르면 좋겠읍니다.]
영호충은 손바닥을 치며 좋다고외쳤다. 악영산은 이 동생공사라는 말에 너무나 친밀감을 느껴 그래서 검을 거두고 몸을 돌려 뒤로 도망쳤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군웅들은 두 사람이죽음에서 빠져나오자 실로 위험 천만이었다. 손에는 땀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소리를 치며 갈채를 보내는 것도 잊어 버렸다. 그날 소림사에서 악불군은 영호충과 시합을 했을 때 그가 다시 화산문하에 돌아오기를 권하기 우해서 충영검법의 몇 초식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초식은 사용하지 않았다. 악불군은 비록 암암리에 두 사람이 검을 연마하는 것을 훔쳐보아 충영검법의 초식을 훤히 알고 있었으나 이 쓸모없는 동생공사의 초식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방증, 충허, 좌냉선조차도 이 일초식을 봤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랐었다. 영영의 놀라움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허공에서 뒤로 빠져나오더니 모두 입가에는 웃음기가 돌고 있었으며 표정과 자태는 마치 따뜻한 봄 바람에 휩싸여 있는 듯하였다. 두 사람은 검법을 펼쳐 다시 한몸이 된 듯 서로 엉키었다. 두 사람은 화산에서 이 검법은 창안했을 때 사형 사매간에 정이 투합되고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검초 중에는 장난기가 다분히 섞여 있었고 살생의 의미는 적었다. 지금 두 사람이 서로 검을 마주하고 있었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옛날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눈가에는 점점 그 옛날 어렸을 때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듯하였다. 두 사람은 말이 무술시합을 하고 있지 칼춤을 춘다는 것이 제격인 듯하였다. 이 칼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즐기는 그러한 칼춤이었다.
갑자기 사람 무리속에서 흥 하고 작게 냉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악영산은 이 작게 냉소하는 사람이 임평지의 목소리임을 알고 내심 멈칫하였다.
(내가 대사형과 이렇게 계속해 간다면 큰일나겠구나.)
장검을 한바퀴 돌리더니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리쳤다. 기세는 힘이 있고 질풍처럼 빨랐으며 그 자세는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그것은 바로 화산파의 옥녀검십구식(玉女劍十九式)중의 일초식이었다.
임평지의 그 차가운 냉소 소리를 영호충도 들었다. 악영산은 즉시 초식을 바꾸고 검의 기세는 상당히 날카로왔으며 조금 전의 충영검법을 사용할 때처럼 그러한 끈끈한 정이 없음을 보고 그는 마음속이 시큰해왔다. 여러가지 옛날 일이 삽시간레 마음속에서 꿈틀 거렸다. 자기가 사부님에게 벌을 받아 사과애에서 벽을 향해 면벽을 하고 있을 때 소사매는 날마다 자기에개 밥을 날라다 주었다.
언젠가 큰 눈이 내려 두 사람이 산동굴에서 하룻밤을 꼬박세웠던 생각들이 떠올랐으며 또 소사매가 병이 나서 두 사람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때 어찌된 영문인지 임평지가 그녀의 환심은 사 그로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그날 소사매가 사모님에게 옥녀검십구식을 배운 직후에 사과애에 올라와 자기에게 그 초식을 보여 주었던 정경 또한 떠올랐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이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이런 많은 생각들이 모두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때 악영산의 장검이 그의 가슴앞에 이르렀다. 영호충은 머리가 혼란되어 좌측손의 중지를 튕겼다. 쨍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면서 공교롭게도 그녀의 장검을 튕기게 하였다. 악영산은 손잡이를 거머쥐지 못하고 장검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와 똑바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영호충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암암리네 큰일났군 하고 외쳤다. 악영산의 표정이 울상이 되고 마치 억지로 웃으려고 하는 듯하였다.
당일 영호충이 사과애에서 바로 이런 행동으로 그녀가 아끼고 좋아했던 벽화검(碧火劍)을 튕기어 깊은 계곡 속으로 빠뜨렸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때부터 약간 틈이 생기었는데 뜻밖에 오늘 다시 그러한 일을 재현했던 것이다. 그 후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때 상황을 돌이켜 보곤 했는데 그때 자기가 악영산의 장검을 튕겨버린 것은 임평지에게 질투를 느껴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 임평지의 냉소하는 소리를 듣고 악영산의 표정이 즉시 변하자 자기 그 옛날 버릇이 다시 폭발했던 것이다. 그날 사과애에서 그가 손가락으로 이미 악영산의 손에서 장검을 튕겨서 날려 보냈는데 지금 그의 몸에는 내공이 충만되어 있어 그때와는 천영지차였다. 그 장검은 똑바로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한참동안 땅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순간 무었인가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본시 소사매에게 고의로 져주어 그녀가 웃도록 말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녀의 장검을 튕겨 빼 버렸으니 고의적으로 천하의 영웅들 면전에서 그녀의 체면을 깎이게 말들고만 것이다. 내가 이러한 비굴한 수단으로 소사매가 나에게 잘 해준 그런 정분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장검이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오자 몸을 비틀거리더니 외쳤다.
[참 멋진 항산 검법이오.]
마치 있는 힘을 다해서 피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고의로 자기몸을 그 검이 내려오는 쪽으로 다가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퍽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장검이 그의 좌측 어깨에 똑바로 박혔다. 영호충은 앞으로 꼬꾸라 졌다. 장검은 그를 마치 땅바닥에 다 박아 놓은 듯하였다.
이런 변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군웅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모두 깜짝 놀랬다.
악영산은 놀라서 외쳤다.
[대사형......!]
한 명의 수염이 난 사내가 달려와 다가오더니 장검을 뽑아내고 영호충은 껴안았다. 영호충의 어깨에 난 상처에는 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항산파의 십여명의 여제자들은 급히 그를 에워쌓다.
서로 다투어 약을 꺼내어 그에게 싸매 주었다. 악영산은 그의 생사가 궁금하여 달려가서 보려고 하였다.
검광이 번쩍이더니 두 자루의 장검이 그녀의 길을 막고 한 명의 비구니는 일갈했다.
[정말로 악독한 계집이구나!]
악영산은 멈칫하여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자기 자신도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다. 악불군의 허공을 가로지르는 웃음소리가 들려 오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영산아! 너는 태산, 형산, 항산 세파의 검법으로 세파의 장문인을 물리쳤으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악영산의 장검이 손을 빠져나가게 된 것은 분명히 영호충이 손가락으로 튕겨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군웅들은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영호충이 그녀의 장검에 맞아 쓰러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 초식이 정말 항산의 검법인가는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충영검법으로 격돌하고 있을 때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짐작도 못하였다.
마지막 이 일초식이 너무나 뜻밖이라 모두들 그런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이때 악불군이 세파의 검법으로 세파의 장문인을 격파시켰다고 딸을 칭찬하는 말을 하자 공중에서 떨어지는 검이 틀림없이 항산의 검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이 초식과 항산의 검법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러나 확실한 증거를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공공연이 악불군의 말을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악영산이 땅바닥의 장검을 집어들자 검신에는 핏빛이 역력하였다. 악영산의 마음 속이 두근 두근 마구 뛰었다. 단지 생각하기를, (그의 생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그가 죽는다면 나는...... 나는......)
군웅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산 일파는 악선생이 정진하고 연구하여 태산, 형산, 항산 등 여러파의 검법을 모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실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읍니다. 정말 찬탄을 금할 길이 없군요. 오악파의 장문의 자리를 악선생이 맡지 않는다면 이 천하에는 마땅한 사람을 고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옷차림새가 남루한 바로 개방의 해방주였다. 그도 역시 방증, 충허, 두 사람의 마음과 같이 벌써 좌냉선이 오악검파를 하나로 합병하려고 하는 심산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무림에 아무런 이익이 없을 뿐아니라 그 불똥이 개방의 머리에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점잖고 군자의 칭호를 받는 악불군이 오악파의 장문을 맡는다면 야심이 너무 큰 좌냉선보다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옛날 부터 개방은 강호에서 그 세력이 너무 강해서 개방의 방주가 이렇게 말을 하자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감히 나서서 이의를 제기 하지 못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음산하게 말을 했다.
[악소저가 태산, 형산, 항산의 검법에 정통한 것은 틀림없이 칭찬할 만한 일이오. 만약 숭산검법으로 내 수중의 장검을 넣을 수만 있다면 우리 숭산의 모든 사람은 기꺼이 악선생을 장문인으로 모실 것이오.]
말하는 사람은 바로 좌냉선이었다. 말을 하면서 가운데로 나서더니 좌측손으로 칼집을 누르자 싹 하고 소리가 났다. 장검이 칼집에서 튀어나오면서 푸른 빛을 발하더니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는 우측손을 내밀어 그 칼의 칼자루를 거머쥐었다. 그의 이런 동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좌측손으로 칼집을 누르자 내공의 힘에 의해 장검이 밖으로 튕겨져 나왔으니 그 내공의 깊이란 실로 예측할 수 없었다. 숭산 문하의 제자들은 큰 소리로 환호를 질렀을 뿐 아니라 역시 다른 파의 군웅들도 갈채를 보냈다.
악영산은 말했다.
[전...... 단지 십삼검(十三劍)만을 쓰겠읍니다. 십삼검만으로 좌사백님을 이기지 못한다면......]
좌냉선은 마음속으로 크게 진노하였다.
(이런 어린애 같은 계집아이가 공공연하게 나에게 도전을 한다는 것도 이미 방자하기 그지없는데 더우기 십삼초(十三招)로 한정을 그어 놓다니 네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나를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냉랭히 말하였다.
[만약에 네가 십삼초 안으로 내 머리를 갖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악영산은 말을 하였다.
[전...... 제가 어찌 좌사백님의 맞수가 될 수 있겠읍니까? 질녀는 단지 숭산파의 검법 중 십삼초를 배웠을 뿐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친히 저에게 전수를 해준 것이지요. 그래서 좌사백님께 한번 인정을 받고 싶었읍니다.]
좌냉선은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악영산은 말을 하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십삼초의 숭산 검법은 비록 숭산의 초수(招數)이지만 네 손에서 그 초식을 쓴다면 불과 일초도 쓰기도 전에 좌사백님에게 제압을 당하고 또한 두번째 초식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좌냉선은 또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처음에 말을할 때 목소리가 심히 떨렸다. 그것은 조금전에 결투를 했기 때문에 힘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좌냉선과 같은 무림의 큰 인물 앞에서 말을 하자니 자기도 모르게 무서워져 그러는지는 확실히 몰랐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목소리는 점점 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했다.
[제가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기를 '좌사백님이 숭산파의 첫번째 고수임에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악검파 중에 일류 고수라고는 믿지 못하겠읍니다. 무공이 아무리 높아고 아버지처럼 오악검파의 검법에 모두 정통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정통이라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네 애비는 단지 그 껍데기만을 만져봤을 뿐이다. 네가 만약에 믿지 못하겠다면 너의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그 고양이 재주 넘는 듯한 실력으로 천하에서 이름이 쟁쟁한 좌사백님의 숭산검법 앞에서 삼초식만 넘겨 보아라. 이렇게 된다면 나는 너를 대단하게 여기겠고 내 착한아이라고 인정하겠다.]
좌냉선은 냉소하며 말을 했다.
[만약 네가 삼초식 안으로 나를 격퇴시킨다면 너는 악선생의 착한 딸이 되겠구나.]
악영산은 말을 했다.
[좌사백님의 검법은 실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숭산파의 수백년 동안 보기 드문 인재이십니다. 질녀는 막 아버지로부터 전수를 받고 숭산파의 검법을 겨우 몇 수 배웠을 뿐인데 어찌 그런 망상을 하겠읍니까? 아버지께선 저보고 삼초식만 넘기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것 또한 망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좌사백님 앞에서 이십삼초의 숭산 검법만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제 소원은 충분합니다.]
좌냉선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 십삼초식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네게 삼초식만을 허용한다 할지라도 내 얼굴에 똥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좌측손에 엄지 식지 중지 손가락을 내밀어 검끗을 잡더니 우측손을 살짝 놓자 장검은 갑자기 튕겨오르더니 검자루가 앞쪽으로 향하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좌냉선은 말을 했다.
[자! 앞으로 봐라.]
좌냉선이 이런 초수를 선보이자 군웅들은 삽시간에 술렁거렸다.
좌측 손으로 검을 쓴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손가락으로 검끝을 거머쥐고 칼자루만으로 상대방을 격퇴시키려 하는구나.
이것은 맨손으로 칼과 대항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검끝을 거머쥐고 있는 이 상태에서 칼날이 약간만이라도 움직인다면 자기의 손가락이 다치게 되는 것인데 그 어찌 힘을 쓸 수가 있겠는가. 그가 이런 기법을 쓴다는 것은 물론 악영산을 십분 경멸하고 있었으며 내심 크게 진노하여 고의적으로 신공(神功)을 써서 현장의 분위기를 놀래주려고 했던 것이다. 악영산은 그가 이렇게 검을 거머쥐자 자기도 모르게 섬뜻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이게 무슨 무공인가! 아버지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마음속으로 약간 겁이 났다. 또 생각하기를, (일이 여기까지 으르렀는데 무서워한다고 방법이 없지 아니한가?)
이런 바쁜 와중 속에서도 그녀는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이 있는 곳을 흘끔 훔쳐봤다. 그들은 아직도 삥 둘러있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영호충의 상처는 그리 깊지 않고 생명 또한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즉시 장검을 세우더니 검을 들어 정수리를 지나 허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만악조종(萬岳朝宗)의 일초식을 썼다. 이 초식은 바로 숭산의 정통검법이었다. 이 일초식에는 심히 공손함이 배여 있었다. 숭산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 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퍽이나 만족해 하였다. 숭산제자들은 선배와 초식을 겨룰 때 반드시 이 초식을 써야 했다. 이 초식을 쓰는 것은 선배에게 용서를 구하고 가르침을 청한다는 의미였다.
좌냉선은 고개를 끄떡이며 내심 생각하기를, (네가 이런 초식을 쓰다니 그래도 약간의 예의가 남았구나. 이 초식을 썼기 때문에 내가 너를 너무나 추하게 만들지는 않겠다.)
악영산은 이 만악조종의 초식을 끝내자 갑자기 검광을 토해내면서 장검은 한줄기의 무지개로 변하고 좌냉선을 향해 똑바로 들어갔다.
이 일초식을 단정하고 엄하고 웅장하였는데 바로 숭산 검법의 정수었다. 좌냉선은 숭산파 검법의 내팔로외구로(內八路外九路)등의 십칠로의 길고 짧음과 빠르고 느린 강도의 검법에 대해 모두 통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초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내심 멈칫하여 생각하기를, (이 초식을 무슨 초식일까. 우리 숭산파 십칠로 검법 중에는 이같은 초식과 비슷한게 없는데 이상하구나.)
그는 숭산파의 종사(宗師)일 뿐 아니라 당대 무가의 대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기파의 기묘하고 웅장하고 오묘한 검초식을 보자 그 내력과 위력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였다.
눈 앞 악영산의 이 일검은 내공이 그리 강하지 않았으므로 자기 몸에 다가오면 손가락으로 튕겨서 즉시 그녀의 장검을 막고, 그리고 나서 분명하게 다음 초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악영산의 이 일검은 그의 가슴을 향해서 찍어들어오다가 한척 정도에 이르자 바로 거두면서 몸을 돌리더니 장검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그의 좌측 어깨를 내리쳤다.
이 일검은 숭산 검법 중에 천고인룡(千古人龍)과 같았다. 그러나 이 천고인룡의 초식은 청순함이 있을 뿐 질박한 점은 없었다. 또 마치 첩취부청(疊翠浮靑)과 같았다. 그러나 그 초식은 첩취부청과 비교할 때 날렵한 점은 있었으나 웅장한 맛은 없었다. 그리고 또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옥정천지(玉井天池)와 같았다. 그러나 옥정천지는 위엄과 정숙한 일면이 있다. 이 일초식이 악영산과 같은 젊은 여자의 검에서 뿜어 나오자 또 다른 아름답고 멋진그런 자태를 보여 주었다.
좌냉선의 안목은 너무나 민감하고 예리하였으며 또한 숭산파의 검법은 평생동안 연마하였으므로 모든 초식의 장단점을 훤히 꽤뚫고 있었다. 설령 아무리 미세한 부분일지라도 그의 머리속에 확연하게 들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악영산의 초식 중에 숭산검법 중의 장점이 숨겨져 있었고 또한 각 초식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이 뜨거워졌으며 놀라고 기뻐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배를 보는 듯하였다.
그 옛날 오악검파와 마교 십장로의 두 차례에 걸친 화산의 결투에서 오파의 고수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오파의 검법의 많은 정묘한 초식은 오파의 고수를 따라 사라졌던 것이다. 좌냉선은 자기파에 남아 있던 원로들을 모아 놓고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검초를 좋든 나쁘든 간에 모두 기록을 하여 한 개의 검보로 집대성하였다. 이 수십년 동안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솎아내고 부족한 것은 보충, 보안하여 하나 하나 수정을 가해 숭산파의 십칠로검초를 완전무결하게 해 놨던 것이다. 그는 비록 새로운 검로(劍路)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숭산 검법을 정리한 대공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뜻하지 않게 악영산이 사용하는 검법이 자기파의 검보 중에 기재가 안 된 것이었고 또한 지금 현존하고 있는 여러식의 검초보다 더욱 광대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 초식을 대하면서 기뻐하고 찬탄을 했으며 자기자신도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만약 이 검법이 임아행, 영호충, 또는 방증대사, 충허도인과 같은 강력한 적의 손에서 나왔다면 좌냉선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적을 맞았을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검초가 절묘하다한들 별수 없이 있는 힘을 다하여 대응해야 했으므로 적의 검법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영산의 내공이 미약하고 그리 날카롭지 못하였느며 아무리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아무 때나 그녀의 장검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히 그녀의 검의 기세와 법도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군웅들은 악영산의 장검이 춤추며 초식을 쓸 때마다 상대방의 몸에 한척 정도 들어갔다 머무르자 마치 고의로 양보하는 것 같거나 또는 마치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아 보였다.
좌냉선은 그러나 멍청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얼굴에는 갑자기 기쁜 빛이 떠올랐다가 갑자기 우울해졌으며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시합을 하는 광경을 군웅들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모두 이상하고 놀랜 표정을 지렀다. 오로지 숭산파 문하의 여러 제자들만이 한동작 반동작을 놓칠까봐 모두들 눈도 껌뻑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악영산의 이 몇초식의 숭산 검법은 바로 사과애의 뒷동굴 석벽에서 배워온 것이다.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초식은 총 육십칠초식이었는데 악영산은 상세히 연구를 한 후 그 중에 사십여 초식은 좌냉선이 구사를 할 줄 알고 또 다른 몇 초식 은 비록 심오하였으나 좌냉선의 눈에 차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녀는 오로지 이 십삼초만이 좌냉선으로 하여금 끝까지 자신의 검술을 쳐다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나름대로 판단하였다.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초식은 필경은 죽은 것이고 변화를 다할 수는 없었다. 악영산은 단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전개를 하였고 좌냉선이 보는 앞에서 모든 초식이 짜여져서 자기 나름대로 머리속에 보충을 시켜 점점 무궁무진하게 변화를 시켜 나갔다.
악영산은 십삼초식을 충분히 전개한 후 제십사초식부터 또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좌냉선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더 계속해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장검을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게 할 것인가?)
이 두가지의 일은 그가 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상당히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만약 계속해서 구경을 한다 해도 악영산의 검초가 그를 당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녀의 병기를 손아귀에서 빼았는다 해도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중에 한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그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생각이 흘러갔다.
(이 숭산 검법은 이렇듯이 기묘한데 이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는 더이상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 계집아이를 없애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나 이 검법을 어디 가서 다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악선생에게 다시 한번 시범을 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만일 내가 그녀를 계속 묵인해 준다면 내가 한명의 화산파의 젊은 여자도 어찌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테니 그렇게 되면 내 체면은 어찌되겠는가? 아이고 아뿔싸 이미 십삼초식이 지났구나.)
삼초식이 아니라 십삼초식이 이미 넘었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이를 호령할 수 있는 장문의 자리가 욕심 나 무술을 연마하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좌측손의 세 손가락을 돌리자 수중의 장검은 뒤집혀졌다. 쨍하고 소리가 나면서 악영산의 장검과 부딪쳐 우두둑 십여차례의 가벼운 소리가 들리면서 악영산의 손에는 손자루만 남아 있을 뿐 칼날은 마디마디 쪼개져십여 개의 조각으로 변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악영산은 몸을 날려 뒤로 몇발짝 물러서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좌사백님 질녀가 어르신 앞에서 이미 몇 초식의 숭산 검법을 사용하였읍니까?]
좌냉선은 눈을 딱 감고 악영산이 사용한 그 검초를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그리고 눈을 뜨더니 말했다.
[너는 십삼초식을 썼다. 참으로 멋지다. 쉽지 않은 일이야.]
악영산은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며 말했다.
[좌사백님의 넓은 도량으로 제가 십삼초의 숭산검법을 사용하였읍니다.공자 앞에서 문자를 쓴 격이 되었읍니다.]
좌냉선의 절세 신공이 악영산 수중의 장검을 뿌리치자 군웅들은 모두가 탄복을 하였다.
악영산이 시합을 하기 전에 좌냉선의 면전에서 십삼초식의 숭산검초를 전개해 보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좌냉선 앞에서 겨우 삼초식은 전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십삼초식은 절대로 전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뜻밖에 좌냉선이 정신이 나간 듯 했고 그녀가 십사초식을 쓸 때 비로소 손을 쓰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암암리에 깜짝 놀랐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좌냉선이 원래 호색가이므로 상대방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이자 그녀에게 넋이 빠져 혼비백산하였다고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숭산파 가운데 한 명의 마르고 늙은 노인이 나왔다. 바로 선학수(仙鶴手) 육백이었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좌장문의 무공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읍니다. 또한 도량이 넓은 사람입니다. 이 악소저가 우리 숭산파의 검법을 약간 배워서 어른 앞에서 추태를 보이자 좌장문님께서는 그녀의 기량이 다할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일격에 제압하였읍니다.
이것만 봐도 무학의 이치란 잡다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통한 것에 있다고 하겠읍니다. 어떤 문파의 무공이든간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고록 연마를 한다면 무림에서의 위치는 독보적일 것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예기를 하자 군웅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와 닿았다.
이 강호의 사내들은 극소수의 고수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단지 한파의 무공만을 배웠을 뿐이었다. 육백이 무학의 이치란 잡다함에 있지 않고 정통함에 있다고 말을 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 의견에 찬동을 하였다. 이 사람들은 단 한파의 무공도 정통하게 익히지 못했기에 다른 파의 무공이나 여러개의 무공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심히 저항감이 있었다.
육백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이 악소저는 약간 총명해서 다른 파가 검술을 연마할 때 암암리에 훔쳐보고 약간의 검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그래 놓고 자칭 오악검파의 검법에 정통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읍니다. 사실 각파 무공은 모두가 비전되는 사문심법(師門心法)이 있는 법인데 외형적인 초식을 훔쳐봐 놓고 정통했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읍니까?]
군웅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생각하였다.
(다른 파의 무공을 훔쳐본다는 것은 무림에 있어서 하나의 크나큰 금기이다. 이 잘뭇은 당연히 악불군이 책임을 져아 된다.)
그 노자는 또 말을 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전개하는 몇개의 정묘한 초식을 보고 배워와서 자칭 한파의 무공을 정통하게 익혔다고 자만한다면 무림 중에 그 어떤 비급이 있을 수 있으며 무슨 정묘한 절초(絶招)가 남아 있겠읍니까! 서로가 서로의 것을 훔친다면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읍니까?]
그가 여기까지 말을 하자 군웅 가운데 많은 사람이 폭소를 하기 시작했다.
악영산이 형산검법으로 막대선생을 물리치고 항산검법으로 영호충은 패하게 했을 때 상대방이 약간 양보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태산의 검법으로 옥경자와 옥음자를 꼼짝 못하게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전개한 석벽검초는 옥경자, 옥음자가 배운 것에 비해서 더욱 정묘하였다. 단지 하나의 흠이라면 옥경자와 옥음자를 쓰러뜨릴 때 쓸 줄도 모르는 대종여하의 초식을 써서 사기적인 수법을 사용했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태산파중의 소수의 고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짐작을 못했다. 그러나 군웅들은 다른 사람이 각파의 무공을 휜히 꽤뚫어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사람 마음은 비슷해서 육백이 이렇게 말하자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의견에 따르고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육백은 자기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자 매우 의기양양하여 더욱 소리 높여 말했다.
[그래서 이 오악파의 장문의 자리는 좌장문인이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읍니다. 모든 것을 정리헤 볼 때 한 사람이 잡다한 여러개의 무공을 배우는 것보다는 한 가지에 정통하고 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육백의 말은 악불군을 지칭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숭산파 가운데 수십명의 젊은 제자들은 그의 말에 따라서 같이 비양대기 시작하였다.
육백은 말하였다.
[오악검파 중에서 그 누가 자신있게 무공으로 좌장문을 이길자가 있다면 나오시오, 나와서 솜씨를 보여주시오.]
그는 이와 똑같은 말을 두번이나 반복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말에 대꾸를 못했다.
본래 도곡육선은 틀림없이 나와서 한바탕 소란을 떨었을텐데 이때 영영이 영호충을 치료하는데 급해서 더이상 도곡육선들로 하여금 나가서 숭산파 사람들과 한바판 설전을 벌이도록 가르쳐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도근선 등 여섯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만 볼 뿐 어찌해야 될지 작정하지 못하였다.
탑탁수 정면은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 아무도 좌장문인에게 도전을 할 사람이 없는 이상 좌장문인을 여러 사람의 희망대로 우리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모십시다.]
좌냉선은 거짓으로 겸손을 떨며 말했다.
[오악파에는 인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덕도 없고 무능하여 그렇게 무거운 중임을 맡을 수 없읍니다.]
숭산파의 제칠태보 탕영악(第七太保湯英 )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악장문의 자리는 그 소임이 막중한 자리이니 반드시 좌장문에게 청해서 그 어려운 자리를 맡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 오악파 문하의 천여 제자들을 위해서 힘을 쓸 것이며 또한 강호의 여려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좌장문인께서는 등단을 하십시오.]
북과 꽹가리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폭죽이 또 계속해서 터지기 시작하였다. 모두 숭산의 제자들이 벌써 준비를 해놓은 것들이었다.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가운데 숭산파의 여러 제자들과 좌냉선이 불러다 놓은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큰 소리를 쳤다.
[좌장문께서는 등단하십시오!]
[좌장문께서는 등단하시오!]
좌냉선은 몸을 날리더니 가볍게 봉선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몸에는 요란스레 옷을 입고 있어서 석앙에 노을을 받아 그 빛이 몸에 비치자 금색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으며 그의 기상을 더욱 드높이게 해 주었다. 그는 포권을 하고는 몸을 돌리어 봉선대 아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사방으로 읍을 하며 말을 했다.
[제가 여러분들의 추천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계속 대답을 않고 어려운 자리라고 거절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자기자신만을 위하고 무림의 동료들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되겠지요.]
숭산문하의 수백 사람들은 천지가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갑자기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사백님, 당신이 나의 장검을 부러뜨려 놨는데 이렇게 하면 바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입니까?]
말하는 사람은 바로 악영산이었다.
좌냉선을 말을 하였다.
[천하의 엉웅들이 모두 이곳에 계시고 모두들 검으로 승자를 가리기로 하였소. 악소저가 만약 내 수중에 있는 장검을 부러뜨렸다면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악소저를 오악파의 장문인으로 추대를 했을 것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좌사백님을 이긴다는 것은 제가 힘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오악파 중에 무공이 좌사백님보다 강한 자가 없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좌냉선이 오악파의 인물 중에서 진정으로 무서워하고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영호충 한사람뿐이었다.
영호충은 악영산과 시합을 할 때 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벌써 그런 생각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때 악영산이 이렇게 말을 하자 즉시 반박했다.
[악소저의 견해로는 오악파 중에서 무공의 기량이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아버지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어머니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남편이란 말입니까?]
숭산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악영산을 말을 했다.
[나의 남편은 아직은 어리니 좌사백님보다는 한 수 아래일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의 검술은 좌사백님과 견줄 만하고 나의 아버님은 반드시 좌사백님보다는 한수가 위일 것입니다.]
숭산의 여러제자들은 괴성을 질렀다. 어떤 자는 휘파람을 불렀고, 또 어떤 자는 발을 동동 굴렀다.
좌냉선은 악불군을 향해 말했다.
[악선생, 귀하의 따님은 귀하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어린아이의 넋두리니 좌형께서는 진실로 여기지 마십시오. 저의 무공의 검법은 소림사의 방증대사, 무당파의 충허도장 그리고 개방 해방주 등의 여러 선배들과 견주어 볼 때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좌냉선의 얼굴은 삽시간에 변하였다. 악불군은 방증대사 등 세사람을 언급하면서도 끝끝내 좌냉선이라는 이름은 거론을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말투는 분명히 자기의 무공이 좌냉선보다는 위라는 암시를 준 것이라고 모든 사람은 간파하였다.
정면은 말했다.
[그렇다면 좌장문인과 비교를 해 볼 때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좌형과는 오랬동안 교분을 맺어왔고 서로가 존중을 하고 있읍니다. 숭산, 화산 두 파의 검법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그래서 수백년 동안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을 해왔읍니다. 정형의 그 말씀은 참으로 듣기가 민망하군요.]
정면은 말했다.
[악선생의 말을 들어보건데 마치 자기 스스로 좌장문인보다는 위임을 과시하는 것 같군요.]
악불군은 말을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서로 다툴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시합을 해보라고 하지 않았소? 무공의 높고 낮음을 견주는 데는 옛 현인들도 물리치지 못하였소. 나는 오래 전부터 좌사형에게 가르침을 청할 마음이 있었소. 단지 오늘은 오악파가 새로 출발하였고 장문인은 아직 천거가 되지 앗았으므로 제가 만약에 좌사형과 겨룬다면 마치 오악파의 장문인을 노리는 꼴이 되지 앗겠소?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가 되기 싫어서 그래서 지금까지 참아왔읍니다.]
좌냉선은 말을 했다.
[악형이 나를 제압하기망 한다면 오악파의 장문인은 당연히 악형에게 돌아갈 것이오.]
악불군은 손을 흔들고 대답했다.
[무공이 높다고 하여 인품 또한 높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설사 좌형을 이긴다 하더라도 오악파의 다른 고수들을 이긴다고 볼 수는 없읍니다.]
그의 말투는 겸손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그 말투는 시종 자기가 좌냉선에 비해서 한 수 높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였다.
좌냉선은 들을수록 화가 복받쳤다.
그래서 냉랭히 말을 했다.
[악형, 군자검(君子劍)의 세 글자는 천하에 그 명성이 자자하오. 군자 두 글자는 모두들 알고 있지만 이 검은 도대체 어찌된것인지 모두들 귀로만 듣고 있었을 뿐 눈으로 본 사람들은 적습니다. 오늘 천하의 영웅들이 이곳에 운집하였으니 악형께서 그 고매한 검법을 한번 보여주시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의 안목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자 한번 해보시오, 구경이나 해 봅시다.]
[말만하고 실제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무슨 영웅호걸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시합을 해서 승부를 가리시오. 자기 스스로 자기가 잘난 체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악불군은 손을 뒤로 하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얼굴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으며 양미간에는 약간의 걱정의 빛이 나타났다.
좌냉선은 오악검파를 합병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을 때 네파 고수들의 무공의 바탕을 이미 마음속 깊이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이 네파 고수들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파들 중에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에비로소 이런 계획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만약에 무공이 자기를 능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악검파를 합병한 직후에 장문인의 자리는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될텐데 그렇게 되면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악불군의 검법은 고명하고 또한 자하신공(紫霞神功)에 대해서는 그 조예가 얕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평소에 알고 있었다. 그는 봉불평(封不平), 성불우(成不憂)등과 같은 검종(劍宗)의 고수들을 화산에 보냈었고 또 십여명의 다른파의 고수들을 약왕묘(藥王廟)에 가서 습격하라고 파견한 바가 있는데 비록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악불군의 무공에 바탕을 이미 대충은 알고 있었다. 또한 소림사에서 그와 영호충이 서로 대결하는 것을 보고 더욱 마음이 놓였다. 그의 검법은 비록 고명하나 필경 자기의 적수는 아니었다. 악불군은 영호충을 걷어 찼으나 오히려 자기의 우측 다리가 분질러졌으므로 그의 내공 또한 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영호충은 나이도 어린놈이 갑자기 검법이 크게 증진되어 그 일이 심히 마음에 걸리었었다. 그렇다고 그 어린애를 걱정하느라고 몇 십년 동안 계획해 놓은 대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영호충의 장기는 검술에 있고 권법의 공력은 평범하기 짝이 없으므로 만약 진짜로 겨루어 본다고 했을 때 검초에서 이길 수 없다 하더라도 권장(券掌)을 쓴다면 즉시 그의 생명을 손아귀에 집어 넣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영호충이 악영산의 검에 스스로 상처를 입자, 천하의 모든 일은 걱정이 없었다.
좌냉선은 이때 악불군 부녀의 입에서 자신에 찬 소리를 듣자, 내심 생각하기를, (네놈이 어디서 어떻게 배워왔는지는 모르지만 오악검파의 실전된 검초를 배워와서 드렇게 큰소리를 치고 있구나. 네가 만약 나와 겨룰 때 그 초식을 썼다면 깜짝 놀랐겠지만, 너의 딸이 먼저 썼기 때문에 나는 이미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초식을 다시 쓴다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너는 나보다 이미 한 수가 뒤지고 있다.)
또 다시 생각하기를, (이 자는 생각이 깊고 치밀한 자이다. 만약 많은 호걸들 앞에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이 자를 나의 오악파에 남겨 놓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을 했다.
[악형, 천하의 영웅들이 당신의 묘기를 보고싶어하는데 어째서 다른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이오?]
악불군은 말했다.
[좌형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그 말에 따르겠읍니다.]
즉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갔다.
군웅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으므로 모두들 좋다고 하였다.
악불군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좌형, 당신과 나는 오늘 이미 동문이 되었으니 우리가 이런 시합을 하는 것은 각자 혈도를 찍는 것으로 만족합시다. 어떻습니까?]
좌냉선은 말했다.
[동생은 마음을 놓으시오. 될 수 있는 대로 악형을 해치지 않겠소.]
숭산파의 여러 사람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 수작을 부리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좋겠소.]
[칼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아 싸우다보면 해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소?]
[만약 무섭다면 빨리 졌다고 인정을 하고 내려오시오. 아직 늦지 않았소.]
악불군은 잔잔히 웃으면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칼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서로 겨루다보면 몸을 다칠 수도 있을 것이오. 그 말은 맞소.]
고개를 돌려 화산파의 제자를 향해서 말을 했다.
[화산 문하의 여러 제자들은 들어라. 나와 좌사형은 단지 무예를 겨루는 것뿐이고, 절대로 원한이 있어 이러는 것은 아니다. 만약 좌사형이 실수를 하여 나를 죽이거나 내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은 격돌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니 절대로 좌사백을 미워하거나 원수로 여기지 말아라. 더우기 숭산문하 사람들과 일을 벌리지 말지니라. 그렇게 하면 우리 오악파의 의기가 상하게 될 것이니라.]
악영산 등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좌냉선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뜻밖이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악형께서 본파는 의리가 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니 그것 참 좋은 말씀이오.]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오파가 하나로 합병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큰 일입니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검을 겨루다가 화목함을 깬다면 오악파의 동문들은 큰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합병한 의미가 없어지게 되지요.]
좌냉선은 말했다.
[그렇소이다!]
내심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이미 겁을 집어먹었다. 이 틈을 이용해서 단숨에 그를 제압해 버리자.)
고수들이 시합을 할 때 내공과 초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승패의 갈림은 때때로 일시적인 기세에 성쇄가 있는 것이다. 좌냉선은 그가 나약함을 보이자 암암리에 기뻐하였다. 싹 하고 소리를 내면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검이 칼집에서 나올 때 소리가 진동되어 계곡을 뒤흔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공을 운행하여 장검을 뽑을 때 검의 날과 칼집의 안벽이 부딪쳐 거대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숭산문인들은 또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악불군은 장검을 칼집채 허리에서 풀더니 봉선대 한쪽 귀퉁이에 내려놓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두 사람의 검을 뽑는 자세와 기세를 보니 이번 시합은 이미 승부가 난 듯했고, 시합을 해볼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영호충의 어깨에는 장검이 들어가 등 뒤에서 앞으로 관통되어 상처가 심히 중하였다. 영영은 그러한 상황을 보고 너무나 급한 나머지 자기가 신분을 감춘 것을 돌보지 않고 달려나가 장검을 뽑아들고 그를 껴안았다. 항산파 여러 제자들은 서로가 다투어 에워쌌다. 의화는 백운웅담환(白雲熊膽丸)을 꺼내어 단숨에 여러 알의 환약을 영호충의 입속에 털어넣었다. 영영은 벌써 손가락으로 그의 앞가슴과 그의 사방의 혈도를 눌러서 피가 흐르는 것을 막았다. 의청과 정악은 각각 천향단속교를 꺼내어 그의 상처부위에 발랐다.
장문인이 상처를 입었는데 여러제자들이 어찌 태만하고 인색할 수가 있겠는가. 약이 모자랄 때라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영약을 마치 흙처럼 그의 상처부위에 두껍게 쳐발랐던 것이다.
영호충은 깊은 상처를 받고 있지만 정신은 여전히 말짱하였다.
영영과 항산의 제자들이 화급을 다투어 걱정하고 있는 것을 보자 삽시간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소사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영영과 항산의 여러 사저 사매들을 이렇게 놀라게 하고 걱정을 끼쳤구나.)
즉시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여 이렇게 상처를 입었구료. 괜...... 괜찮소. 이렇게까지......이렇게......할 필요는 없소.]
영영은 말했다.
[말을 하지 마세요.]
그녀는 비록 목소리를 감추고 있지만 필경 여자이므로 감정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항산의 여러 제자들은 수염난 사내의 말투가 심히 가늘었으므로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는...... 나 구경 좀 합시다.]
의청은 대답했다.
즉시 그의 몸 앞에 있는 두 명의 사매들을 제쳐 그로 하여금 악영산과 좌냉선이 시합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후로 악영산이 숭산의 검법을 전개하고, 좌냉선이 그녀의 검을 산산조각으로 만들고 좌냉선과 악불군이 함께 봉선대에 올라가는 광경을 그는 희미하게 모두 볼 수가 있었다.
악불군은 장검으로 땅을 가리키고 몸을 돌려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더니 좌냉선과의 거리는 두 장 정도였다. 그때 군웅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기침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순간 숭산의 정상에는 정적이 흘렀다.
영호충은 은은하고 극히 낮은 소리로 경을 읽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맹수들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공격을 한다면 관음의 힘으로 퇴치를 해주시고, 구렁이와 전갈 같은 독충들이 독기를 품고 달려든다면 관음의 힘으로 소리없이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천둥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고 큰 비가 오면 관음의 힘으로 모두 그치게 해 주십시오. 중생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무한한 고통을 당하고 있읍니다. 관음께서 그 지혜를 발휘하셔서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십시오......]
영호충은 그 불경 소리 속에 경건함과 열정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듣고는 의림이 또 자기를 위해서 관세음에게 기도를 하여 자기의 고초를 구원케 해달라고 기원하는 것임을 알았다. 여러 해 전에 형산성 밖에서 의림은 그를 위해 이런 경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고개를 돌리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의림의 따스한 눈초리와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이 지금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의 마음 속에는 부드러운 정이 일어 났다.
(영영뿐만 아니라 의림 소사매는 나를 자기의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내가 설령 몸이 가루가 된다고 해도 그들의 은혜에 보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좌냉선은 악불군이 검을 거머쥐고 가슴을 막고 있었으며 좌측손에는 검결이 쥐어져 있는데 마치 붓 한자루를 쥐고 글자를 쓰는 것처럼 하는 것을 보고는 이 초식이 화산검법의 시검회우(詩劍會友)라는 것을 알았다. 이 초식은 화산파 사람들이 강호의 사람들과 초식을 견줄 때 사용하는 첫번째 초식이었다. 그 뜻은 문인은 벗을 사귈 때 붓으로사귀고 무인들은 벗을 사귈 때 무예를 겨룬다는 뜻이었다. 이 일초식을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과 아무런 원한이나 적의가 없으며 시합을 하는 것은 오로지 승패에 있고 생명을 노리지 않는다는 뜻을 표명하는 것이다.
좌냉선은 그의 이 초식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을 했다.
[그렇게 예를 따질 필요는 없소이다.]
내심 생각하기를, (악불군은 군자라고 칭호를 붙이는데, 내가 볼 때 군자보다는 위군자의 성분이 다분히 농후하다. 그가 나에게 적의가 없다고 표명을 하는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닌 것 같다. 첫째로는 내심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고. 둘째로는 나로 하여금 마음을 놓이게 하여 내가 경계를 늦추는 틈을 타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우측손을 밖으로 펼치고 좌측 손의 장검을 바깥으로 하여 숭산파의 검법인 개문견산(開門見山)을 전개하였다. 그가 이 초식을 전개하는 것은 싸우려면 싸우지 거짓으로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었으며, 다분히 상대방이 위군자라는 뜻을 풍자하고 있었다.
악불군은 한숨을 내쉬더니 장검을 중궁(中宮)을 향하여 바로 찔러 들어갔다. 검끝은 계속해서 떨렸으며, 검이 중도에 이르자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위로 향했다. 그것은 화산검법의 청산은은(靑山隱隱)의 일초식이었다.
좌냉선을 일검은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들어갔다. 마치 하늘을 가를 듯한 기세였다. 옆에서 관전하던 군웅들은 모두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본래 숭산 검법 중에는 이런 초식이 없었다. 좌냉선은 귄법 중에서 하나의 초식을 빌려, 검을 손바닥 삼아 갑자기 전개했던 것이다. 이 독벽화산(獨劈華山)의 초식은 심히 평법하여 검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초식이었다.
오악검파는 수백년 동안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숭산검법 중에 이런 초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해도 그 초식이 화산파의 이름과 같기 때문에 사용을 하지 않거나 그 형태를 변화 시켰을 것이다. 이때 좌냉선이 의식적으로 이 검초식을 전개한 것은 악불군의 화를 돋우게 하려는 것이다. 숭산 검법은 원래 그 기세가 웅장했으므로 이 독벽화산의 초식은 평범하기 그지 없으나 훅 하고 소리가 나면서 공중에서 질풍처럼 내려오자 산을 가르는 듯한 기세가 담겨져 있었으며, 숭산 검법의 모든 장기를 한순간에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악불군은 잽싸게 몸을 피하여 옆으로 일검을 내리쳐 고백삼삼(古栢森森)의 초식으로 반격을 하였다. 좌냉선은 그의 태도가 근엄하고 단숨에 승부를 내려고 조급하게 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수를 인정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는 바로 이 싸움을 지구전으로 끌고 가려는 책략임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의 개문연산과 독벽화산 두 초식네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색이 없어 보이자, 내심 이 사람은 정말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그를 경멸하여 초식을 함부로 사용한다면 그에게 선기를 잡힐 것이다.
즉시 장검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급히 휘둘렀다. 바로 숭산파의 정종검법인 천외옥룡(天外玉龍)의 초식이었다.
숭산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가 이 초식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렇게 기세가 웅장하고 날카로운 초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한 자루의 장검을 허공에서 가로지르더니 검신이 마치 구부러진 것 같기도 하고 똑바로 된 것 같기도 하여 장검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변화가 되었다.
갑자기 갈채소리가 크게 났다.
다른 파의 군웅들은 숭산에 온 뒤로 숭산파의 사람들이 북을 치고 폭죽을 터트리며 좌냉선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갈채를 보내고 뭇사람들이 거기에 화합을 하자 내심 좋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숭산 제자들이 큰 소리로 갈채를 보내는 소리를 듣고는 그 갈채가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고 있다고 생각을 하여 그들도 따라서 갈채를 보내었다.
좌냉선의 이 천외옥룡의 초식은 한 자루의 뻣뻣하게 굳어 있는 장검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 용처럼 자유자재로 구사를 하였다. 그래서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산, 형산 등의 일류 고수들은 이 초식을 보자 모두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지금 봉선대에서 겨루고 있는 자가 악불군이고 내가 아니구나!)
좌냉선과 악불군은 각기 자기파의 검법을 구사하였다. 숭산검은 그 기상이 근엄하였으며, 마치 천군만마가 달려오면서 긴 창이 하늘을 뒤덮고 황사(黃沙)가 천리를 덮는 기세였다. 화산검은 가볍고 영민하였으며, 마치 봄날에 두 마리의 제비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휘젓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악불군은 아직까지는 그렇게 열세에 놓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봉선대 위의 검기를 보아 숭산 검법이 팔할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했다. 악불군의 장검은 될 수 있는 대로 상대방과의 접촉을 피하고 단지 몸을 재빨리 움직여 겉으로 빙빙 돌았다. 그의 검법은 정묘하지만, 그러나 정묘한 것만 같고는 숭산 검법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이 두 사람과 같은 무학의 종사들은 시합을 할 때 어떤 일정한 초식에 구애를 받지는 않는 듯하였다. 좌냉선은 십칠로의 숭산검법을 섞어 사용하였다. 악불군이 사용하는 검법은 비교적 적었으나 화산검법은 평소 변화가 복잡한 것이 장점이므로 초식의 수는 끊임이 없었다. 두 사람은 또 다시 이십여 초식을 맞붙었다. 좌냉선은 갑자기 우측손으로 장검을 들고, 좌측 장을 맹렬하게 내밀었다. 이 일장은 상대방 몸통의 서른 여섯군데 요혈을 겨누고 있었다. 악불군이 만약 급히 피한다면 즉시 검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자주색 기운이 크게 성하더니 역시 좌측장을 내밀어 좌냉선과 장을 맞부딪쳤다. 펑 하고 소리가 나면서 두 손바닥이 서로 부딪쳤다. 악불군의 몸은 뒤로 튕겨졌으며, 좌냉선은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악불군은 외쳤다.
[이 장법은 숭산파의 무공입니까?]
영호충은 그 두 사람의 장이 맞부딪치자, 악 하고 소리를 내면서 심히 염려가 되었다. 그는 좌냉선의 음산한 내공이 무섭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아행의 내공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그의 내공의 공격을 받고 삽시간에 위험한 상황으로 빠져 네 사람이 모두 눈사람이 될 뻔하였던 것이다. 악불군은 비록 오랬동안 기공을 연마했지만 결국 그의 실력이 임아행에게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계속해서 장으로 격돌하게 되면 설령 당장 뻣뻣하게 얼지는 않는다 해도 견디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좌냉선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은 제가 홀로 창안한 장법이오. 앞으로 오악파 가운데 뛰어난 제자를 골라 나의 모든 것을 전수시킬까하오.]
악불군은 말했다.
[알고 보니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좌형에게 몇초식의 가르침을 더 청할까 합니다.]
좌냉선은 말했다.
[좋소.]
내심 생각하기를, (그의 화산파의 자하신공은 퍽이나 다양하구나. 나의 한빙신장의 공격을 받고도 말소리조차 떨리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즉시 장검을 흔들어 악불군을 향해서 내리찍었다. 악불군은 검으로 막아내고는 수초 뒤에 펑 하고 소리가 나면서 또 다시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맞부딪쳤다. 악불군은 장검을 빙빙 돌리면서 좌냉선의 허리춤을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좌냉선은 검을 아래로 하여 막고는 좌측 장의 내공을 운행시켜 그의 두눈을 향해서 똑바로 내리쳤다. 이 일장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했기 때문에 그 기세야말로 심히 대단하였다.
악불군의 잽싸게 좌측장을 치켜 세우니 팍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장이 세번째 격돌을 하였다. 악불군은 몸을 숙이고 바깥으로 물러섰다. 좌냉선은 좌측 손바닥에서 아픈 느낌이 들었다. 손을 들어 보니 손바닥에는 작은 바늘 모양의 구멍이 약간 나 있었다. 그 곳에는 은은하게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놀라고 화가 나서 욕을 하였다.
[이 되먹지 않은 놈!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내심 악불군이 손바닥에 독침을 숨겨 두고 자기가 방비하지 않은 틈을 이용해서 자기 손바닥에 일침을 가했다는 것과 손바닥에 흐르는 피가 검은 색이자, 그 바늘에는 독이 묻혀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를 군자검이라고 사람들은 칭하고 있는데, 이렇듯이 비굴하게 행동하고 있구나.)
그는 긴 숨을 내쉬더니 우측손을 내밀어 자기의 좌측 어깨에 혈도를 세 군데 찍어서 독이 혈도를 타고 올라와 퍼지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내심 생각하기를, (이 작은 독침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지금은 빨리 속전을 해야겠다. 잘대로 그에게 시간을 질질 끌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즉시 장검을 들고 질풍처럼 공격해 들어갔다. 악불군은 검을 휘두르며반격을 했다. 검초 또한 맹렬하고 매섭게 변하였다.
이때 저녁 노을이 짙게 깔렸다. 봉선대 위에 두 사람은 더이상 자기들의 실력을 겨루는게 아니라 생명을 걸고 싸움을 하고 있었다. 봉손대 아래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방증대사가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살기가 도는 것일까?]
두 사람은 수십초를 격돌하였다. 좌냉선은 상대방이 몸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자, 손바닥에 독이 퍼져 나갈까봐 염려되어 검을 더 빠르고 강하게 사용을 하였다. 악불군은 멈칫하여 막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검법이 변하더니 검날이 수축되고 퍼지면서 초식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봉선대 아래의 군웅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다투어 서로가 낮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무슨 검법이오?]
묻는 사람은 많았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영호층은 영영의 몸에 기대어 사부가 사용하는 검법이 빠르고 이상하며 화산 검법과 너무나 상이함을 보고 내심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순식간에 좌냉선의 검법이 변하더니 좌냉선이 사용하는 검법 또한 사부와 매우 흡사하였다.
이때 두 사람의 공격과 수비, 물러섬과 나아감이 서로가 발을 맞춘 듯 마치 동문 사형 사제가 수십년 동안 같은 검법을 연마하여 서로가 겨루고 있는 것 같았다. 이십여 초식이 지나자 좌냉선은 공격을 하였으며, 악불군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영호층은 다른 사람의 무공에서 빈틈을 잘 찾아내었다. 눈앞의 사부의 검초 중에 빈틈이 갈수록 커져 상황이 급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좌냉선의 승리가 굳어지자, 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하였다.
좌냉선의 일검은 갈수록 빨라 상대방의 검이 흩어지자, 십초안으로 상대방의 검을 땅에 떨어뜨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내심 기뻐하였다. 과연 그의 일검이 옆으로 펼쳐지자 악불군은 검으로 막았으며 손의 힘은 퍽이나 미약하였다. 좌냉선이 검을 돌려 질풍처럼 내리치자, 악불군은 검을 잡지 못하고 장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갑자기 악불군의 빈손이 몸을 따라 올라가더니 두 손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 공격의 자세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몸놀림이란 마치 귀신에 홀린 양 몇바퀴 돌더니 걸음을 서쪽으로 옮겼고 손의 동작은 너무나 빨라 모든 사람들은 생각밖이었다. 좌냉선은 깜짝 놀라 외쳤다.
[이건...... 이건......]
검을 휘둘러 초식을 써서 막았다. 악불군의 장검이 땅바닥에 떨어져 봉선대에 꽃혔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쳐다보지 않았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동방불패다!]
영호충의 마음 또한 같았다. 이때 사부가 사용하는 것은 그날 바로 동방불패가 수를 놓는 바늘로 자기들 네 사람에게 공격을 하던 것과 똑같았다.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상처의 아픔도 잊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옆에 한 개의 작은 손이 들어와 자기의 겨드랑이를 바치고 있는 것초자도 느끼지 못하였다. 한쌍의 야릇한 눈빛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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