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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4-8

一字師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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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4-8

 
 

4. 지연재 비평의 해석 문제: 자서전설과 반(反)자서전설의 대립

3) ‘합전설(合傳說)’ 및 그 논증 방법

판중궤이의 ‘개작설[增刪說]’에 따르면 조설근은 《홍루몽》 ‘원본’의 작자가 아니며, 또 ‘암합설(暗合說)’에 따르면 조씨 가문의 일은 전혀 《홍루몽》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연구자 우스창(吳世昌: 1908~1986)은 판중궤이처럼 조씨 가문의 일과 《홍루몽》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부정한 적이 결코 없다. 하지만 ‘가보옥이 바로 조설근’이라는 저우루창의 자서전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저우루창과 더불어 《홍루몽》 연구에서 ‘이창(二昌)’으로 불리는 우스창이 영어로 쓴 《홍루몽 원류 탐색》에는 “소설 주인공의 원형으로서 지연재(Chih-yen as the Model for the Hero of the Novel)”이라는 절(節)이 들어 있다. 이 절의 가장 주요한 논점은 가보옥의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작자 본인에게서 소재를 취했고 일부는 지연재에게서 취했다는 것이다.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우스창이 인용한 예들 가운데 일부를 저우루창도 인용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평 내용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을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제2회: 지통사(智通寺) 대문에 걸린 “눈앞에 길이 없어지니 돌아설까 하는구나.[眼前無路想回頭]”라는 대련에 대해

[대련 아래 적힌 갑술본의 비평] 먼저 녕국부와 영국부 사람들 앞에서 일갈한 것은 오히려 나를 향한 일갈이었다. 先爲寧、榮諸人當頭一喝, 卻是爲余一喝.

저우루창은 이를 근거로 비평가가 “녕국부와 영국부 사람들(여인들)에 포함되지 않는다[不在寧榮之數]”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스창의 해석은 정반대이다. 그는 지연재가 소설 속에서 녕국부와 영국부 두 집안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돌아본다[回頭]’라는 표현은 “고해는 끝이 없지만 돌아보면 뭍[苦海無邊, 回頭是岸]”이라는 불교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며, 《홍루몽》 뒤쪽 이야기가 담긴 조설근의 잃어버린 원고에서 가보옥이 ‘벼랑에서 세상과 작별하는[懸崖撒手]’ 내용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연재는 “나를 향한 일갈”이라고 하고 가보옥이 나중에 출가하는 것을 보면 가보옥의 일각에 ‘지연재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위 비평에 대한 저우루창과 우스창의 해석은 바로 ‘상운설’과 ‘합전설’을 확립하기 위한 관건이다. 저우루창은 비평가를 ‘녕국부와 영국부 사람들(여인들)’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녕국부와 영국부 가족이 아닌’ 소설 속 등장인물을 찾아 비평가의 신분을 증명하려 했고, 그 결과 그는 사상운을 찾아냈다. 그에 비해 우스창은 비평가를 녕국부와 영국부 사람으로 간주하고 또 “돌아설까 하는구나[想回頭]”라는 구절에 대한 지연재의 반응을 가보옥이 출가한 일과 관련지었다. 이 때문에 그는 기보옥의 일각에 지연재의 성분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3회에서 가보옥의 용모를 묘사한 장면에 대한 갑술본의 미비는 다음과 같다.

‘젊은이의 고운 얼굴은 단단하지 못해 늙고[少年色嫩不堅老]’라는 말과 ‘요절하지 않으면 가난하다[非夭卽貧]’라는 말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제 이 부분을 읽으니 목 놓아 울게 된다. ‘少年色嫩不堅老’, 以及‘非夭卽貧’之語, 余猶在心, 今閱至此放聲一哭.

저우루창은 가보옥이 바로 조설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 비평이 “지연재가 조설근을 위해 통곡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스창은 이것이 지연재 스스로 상심하여 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이 회에 묘사된 가보옥의 형상이 바로 지연재의 유년 시절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언급되자마자 상심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경진본 제17회와 제18회(이 두 회는 나눠지지 않았음: 저자)에서는 가보옥이 “서너 살 때에 이미 가비(賈妃)에게 몇 권을 책을 배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여기에 두 줄로 된 측비가 붙어 있다.

비평가는 이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평을 쓰면서 끝내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내 누이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어찌 폐인이 되었겠는가! 批書人領至此敎, 故批至此竟放聲大哭; 俺先姐先[仙]逝太早, 不然, 余何得爲廢人耶!

저우루창은 이 비평을 인용하여 가비가 실존인물임을 증명했다. 우스창은 더 나아가 작품 속의 가비는 분명 조인(曹寅)의 딸이며, 가보옥은 바로 현실세계의 지연재라고 주장했다. 조인의 딸은 시집가기 전에 지연재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당시 조설근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스창은 “원래 ‘원춘(元春)’은 비평가 지연재의 ‘죽은 누이[先姊]’이며, 여기의 ‘가보옥’은 비평가 지연재 자신이다!” 라고 했다.

지연재 비평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을 바탕으로 우스창은 “작품의 주인공(가보옥)은 반드시 작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주인공의 이야기 또한 지연재 또는 기타 인물들에게서 소재를 취한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주장은 ‘합전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합전설과 관련된 우스창 논술은 모두 1961년의 영문판 《홍루몽 원류 탐색》에 들어 있다. 실제로 그가 인용한 예들은 모두 비평가(우스창은 지연재와 기홀수가 동일인이라고 여겼음)가 가보옥으로 자처했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1962년에 우스창은 《신화월보(新華月報)》에 〈나는 어떻게 《홍루몽 원류 탐색》을 썼는가?〉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홍루몽》의 자서전적인 성분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의 전기[他傳說]’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즉 “‘가보옥’은 조설근이 자신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작자가 소년 시절의 지연재를 모델로 삼아 썼다.”는 것이다.

우스창 외에도 자오깡 역시 ‘합전설’의 지지자이다. 1961년에 우스창이 영어로 쓴 《홍루몽 원류 탐색》이 출판되고 나서 1963년에 자오깡은 《홍루몽 고증 습유(紅樓夢考證拾遺)》를 간행하면서 “작품 속의 가보옥은 두 사람(지연재와 조설근)을 공동으로 반영해서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 인용한 “비평가가 이 가르침을 받았다.”는 비평의 내용에 대한 자오깡의 해석은 우스창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지연재는 형제가 없어서 어려서부터 큰 누이에게 가르침을 받아 글을 읽었는데, 나중에 큰 누이가 죽자 이 때문에 학업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합전설은 가보옥을 조설근으로 여기는 자서전설에 비해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앞서 인용한 비평에서 “작자도 나도 겪은 바 있다.”라든가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찌 나만의 경험이겠는가!”라는 비평을 해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전설 역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에 대해 ‘전기설(傳記說)’의 논리에 따라 분석해 보자.

우선 “비평가가 이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비평에 대한 우스창의 해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는 가비가 비평가의 ‘죽은 누이’이고, 그녀가 또 조인의 딸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평가는 분명히 ‘세상을 떠난 것[先(仙)逝]’가 너무 이르다고 했지 ‘출가[出閣]’를 너무 일찍 했다고 하지 않았으니, 비평가의 누이가 일찍이 죽었음(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을 알 수 있다. 비평가의 누이가 시집간 뒤라면 일찍 죽든 늦게 죽든 비평가의 학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시집을 간 뒤라면 더 이상 동생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조인의 딸의 경력과 들어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평가가 이 가르침을 받았다(혹은 받은 적이 있다).”는 말은 비평가의 경력도 작품 속 가보옥처럼 누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비평을 근거로 《홍루몽》에 담긴 전기적 성분을 확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를 향한 일갈이었다.[爲余一喝]”라거나 “내 마음에 남아 있다.[余猶在心]”라는 등의 구절에서 ‘나’ 또한 “비평가가 가보옥으로 자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고, 어느 비평가가 책 속의 묘사로 인해 편한 대로 자신의 과거를 연상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세상을 떠난 것[先(仙)逝]’과 ‘출가[出閣]’ 사이의 구별은 젖혀 두고, 소설 속의 가비가 비평가의 ‘죽은 누이’에게서 소재를 취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지연재가 바로 가보옥”이라는 견해에 대한 정답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스창은 “지연재와 기홀수가 동일인”이라는 전제 하에 논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스창은 영문판 《홍루몽 원류 탐색》에서 다음과 같은 비평들을 증거로 인용했다.

제22회 [경진본 미비]
왕희봉이 연극을 고르고 지연재가 붓을 들어 쓴 일은 이제 아는 이가 드물 것이다. 안타깝지 않은가? 鳳姐點戱, 脂硯執筆事, 今知者聊聊矣. 不怨夫?
[두 줄 건너의 미비]
이전의 비평은 아는 이가 드문데, 지금 정해년 여름에 진부한 물건 하나만 남았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은가? 前批書[知]者聊聊, 今丁亥夏只剩朽物一枚, 寧不痛乎?

후스의 견해에 따르면 작품 속의 인물과 작품 밖 인물의 관계는 이러하다.

작품 속 집필자 = 지연재 = 가보옥 = 작자 (조설근)

앞에서 우리는 이미 이런 해석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설명한 바 있다. 우스창의 방법은 후스와 달리 위 두 개의 비평을 함께 놓고 처리한다. 우스창은 ‘왕희봉이 연극을 고른’ 내용이 담긴 비평은 지연재가 쓴 것이고, 거기서 두 둘 건너 있는 비평은 기홀수가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홀수는 ‘진부한 물건[朽物]’이라고 자칭하는데, ‘이전의 비평[前批]’에서 ‘붓을 든’ 지연재는 바로 그 자신이다. 이 증거는 결정적인 것이다.

우스창은 《홍루몽 원류 탐색 외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때 연극을 본 이들은 모두 여자들이었고 가보옥만 남자였으니, 왕희봉을 위해 붓을 들고 글을 쓴 사람은 바로 가보옥이었다.”라고 했다. 자오깡도 《홍루몽 고증 습유》에서 이 두 가지 비평을 근거로 “지연재가 바로 기홀수”라는 주장을 확립했다. 하지만 천위피(陳毓羆)는 일찍이 1962년에 이미 기홀수와 지연재를 하나로 뒤섞어 얘기하는 데에 반대했다. 1965년 7월 25일에 저우루창은 홍콩의 《대공보(大公報)》에 〈홍루몽 판본의 새 발견〉을 발표하면서 난징(南京)의 마오궈야오(毛國瑤)가 필사한 정장본(靖藏本)의 비평을 인용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왕희봉이 연극을 고르고 지연재가 붓을 들어 썼다.”는 내용을 비평을 정장본에서는 이렇게 썼다.

1. 鳳姐點戱, 脂硯執筆事, 今知者聊聊[寥寥]矣. 不怨夫?
2. 이전의 비평은 아는 이가 드물다. 몇 년 되지 않아서 근계와 지연재, 행제 등 여러 선생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지금 정해년 여름에 진부한 물건 하나만 남았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은가? 前批知者聊聊[寥寥]. 不數年, 芹溪、脂硯、杏齋諸子皆相繼別去. 今丁亥夏只剩朽物一枚, 寧不痛殺?

이 비평이 나타나자 “지연재가 바로 기홀수”라는 주장에 대해 갑자기 의문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비평은 응당 기홀수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홀수는 늘 ‘진부한 물건[朽物]’이라고 자칭한다. 둘째, 정해년 여름은 바로 기홀수가 비평을 쓴 시기이다. 그런데 기홀수가 지연재가 이미 ‘죽었다[別去]’고 했으니, 지연재와 기홀수는 동일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자 저우루창이 제일 먼저 인정했다.

필자가 예전에 쓴 글에서는 각종 정황을 근거로 비평가가 두 군데에 ‘지연’과 ‘기홀’이라고 서명했지만 사실 동일인인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이 비평에 따르면 예전의 주장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정해년 여름’에 쓴 모든 비평이 기홀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이제 이 비평을 쓴 사람은 과연 기홀수였다. 그런데 기홀수는 지연재 또한 ‘연이어 세상을 떠난’ 여러 사람들 안에 포함된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둘은 동일인이 아닌 듯하다.

그리하여 위에서 인용한 “비평가가 이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비평을 결국 기홀수가 쓴 것인지 지연재가 쓴 것인지 역시 다시 고려해 볼 만한 문제가 되었다. 사실 자오깡은 1967년에 이미 이 비평을 기홀수가 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이부판 역시 기홀수 비평의 특징을 상세히 연구한 후 이 비평이 기홀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홀수와 지연재가 동일인이 아니라면 “비평가가 이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비평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보면 가보옥의 원형(우스창이 ‘모델’이라고 칭한)을 찾으려면 기홀수도 고려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이 비평에는 서명이 없기 때문에 다른 비평가가 쓴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전기설’의 논리를 억지로 따른다 할지라도 가보옥의 일각은 최소한 이미 ‘두 사람의 합전(合傳)’이라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합전설이 《홍루몽》 연구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홍루몽》 속의 등장인물은 도대체 누구에게서 소재를 취한 것인지 확인하는 데에 있다. 사실 지연재 비평은 결코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어서 갑술본 제2회의 미비를 보자.

나의 비평이 다시 나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연히 느낀 바를 바로 적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비평을 붙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연히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여러 선생들의 비평은 각자의 관점에 따른 것이고, 지연재의 비평 또한 지연재가 좋아하는 것을 취한 부분이 있다. 나중에 읽을 때마다 한 마디 반 구절이라도 본분 옆에 비평을 덧붙였기 때문에 또 앞뒤가 호응한다는 등의 비평이 들어가게 되었다.

余批重出. 余閱此書, 偶有所得, 即筆錄之. 非從首至尾閱過復從首加批者, 故偶有復[複]處. 且諸公之批, 自是諸公眼界;脂齋之批, 亦有脂齋取樂處. 後每一閱, 亦必有一語半言, 重加批評于側, 故又有于前後照應之說等批.

이를 보면 현존하는 비평 가운데는 ‘여러 선생들의 비평[諸公之批]’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우루창과 우스창은 지연재와 기홀수의 비평에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둘을 동일인으로 보았지만, 이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비평이 모두 한 사람(지연재=기홀수)에게서 나왔고 책의 제목에서 《지연재 중평 석두기》라고 밝혔다면 그(또는 그녀)는 애초에 비평 뒤에다가 다시 서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여러 선생들’이 모두 작품에다 비평을 썼기 때문에 지연재와 기홀수도 자신의 서명을 해서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006년 보충]: 저우루창은 2003년에 출판된 《홍루탈목홍(紅樓奪目紅)》에서 지연재와 기홀수가 동일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 293쪽에서 그는 “‘지(脂)’는 발음이 변하여 ‘기(畸)’가 되었고, ‘연(硯)’는 ‘홀(笏)’로 바뀌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문자 변환의 논증 방식은 사실 색은파와 같은 것이다. (전통적인 색은파는 파자[破字]와 해음[諧音]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깊은 뜻’을 해석해 냈다.)

다른 한 편, 우리는 지연재와 기홀수의 서명이 가장 많다고 해서 서명이 없는 다른 비평을 모두 그들이 쓴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결코 없다. 서명이 없는 비평 가운데 송재(松齋)나 매계(梅溪) 같은 ‘여러 선생들’의 글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작자와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이라는 등의 비평을 근거로 등장인물의 원형을 확인하려 할 때 지연재와 기홀수만 고려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비평의 각 항목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가보옥이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몇 명을 반영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합전설’은 이 부분에서 연구 방법상의 난제에 부딪치게 된다.

사실 지연재 비평 자체가 이미 ‘전기설’을 제시한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제19회에는 가보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비평이 들어 있다.

[기묘본의 두 줄로 된 협비] 생각건대 이 책에서는 한 명의 가보옥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가보옥의 사람됨은 우리가 책에서 보고 나서야 그런 사람이 있는 줄 알게 된 것이지 실제로 목격한 것은 아니다. 또 가보옥이 한 말은 매번 이해하기 어렵고, 가보옥의 타고난 성격은 모두 우습기만 하니,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직접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금의 소설과 희곡[傳奇]에서도 이런 문장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임대옥을 묘사한 부분은 더욱 심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속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 속에 또 논리적 맥락을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가보옥이라는 인물을 정말 만나 이런 말을 진짜 들은 것 같은데, 그걸 다른 사람이 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으며 또한 문장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석두기》에서 가장 기묘한 문장은 모두 가보옥에 대한 묘사와 임대옥의 지극히 바보 같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 그리고 시사(詩詞)와 수수께끼, 주령(酒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의복과 음식, 문장 같은 것들에 들어 있다. 그것들은 당연히 다른 책에서는 쓸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걸 비평하자면 오히려 별개의 저작이 되고 만다. 按此書中寫一寶玉, 其寶玉之爲人, 是我輩于書中見而知有此人, 實未目曾親睹者. 又寫寶玉之發言, 每每令人不解;寶玉之生性, 件件令人可笑;不獨不曾于世上親見這樣的人, 即閱今古所有之小說傳奇中, 亦未見這樣的文字. 于颦兒處更爲甚. 其囫圇不解之[中]實可解, 可解之中又說不出理路. 合目思之, 却如眞見一寶玉, 眞聞此言者, 移至第二人萬不可, 亦不成文字矣. 余閱《石頭記》中至奇至妙之文, 合[全]在寶玉颦兒至癡至呆、囫圇不解之語中, 其詩詞、雅[啞]謎、酒令、奇衣、奇食、奇文等類固他書中未能, 然在此書中評之, 猶爲二著.

[기묘본의 두 줄로 된 협비] 이것들은 모두 가보옥의 마음속에 담긴 확실한 생각이지 (화습인의) 면전에서 억지로 한 말이 아니다, 그러니 그가 고금에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의 말을 들어보고, 미약한 것에도 감격하는 그의 마음을 살펴보고, 쉽게 망상에 빠지면서 완곡한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모두가 고금의 유일한 인물이고 또한 고금의 유일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현명하다고도, 우리석다고도, 못났다고도, 착하다고도, 악하다고도, 광명정대하다고도, 못된 무뢰배라고도, 총명하고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도, 어리석고 평범하다고도, 여색을 밝히며 음란하다고도, 치정(癡情)에 빠졌다고도 할 수 없고 하필 임대옥하고만 짝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이 부질없이 평론한다면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어떤 마음과 어떤 육신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문장이 좋아서일 뿐이지 사실 나 역시 이 두 사람이 결국 어떤 인물인지 평할 수 없다. 나중에 “정방(情榜)”의 평을 보니 “보옥정부정(寶玉情不情)”, “대옥정정(黛玉情情)”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 두 가지 평은 그 자체로 ‘어리석음을 평한[評癡]’ 훌륭한 말이면서도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니 정말 오묘하도다! 這皆是寶玉心中意中確實之念, 非前勉强之詞, 所以謂今古未有之一人耳. 聽其囫圇不解之言, 察其幽微感觸之心, 審其癡妄委婉之意, 皆今古未見之人, 亦是今古未見之文字. 說不得賢, 說不得愚, 說不得不肖, 說不得善, 說不得惡, 說不得光明正大, 說不得混賬惡賴, 說不得聰明才俊, 說不得庸俗平[凡], 說不得好色好淫, 說不得情癡情種, 恰恰只有一颦兒可對, 令他人徒加評論, 總未摸着他二人是何等脱胎、何等心臆、何等骨肉. 余閱此書, 亦愛其文字耳, 實亦不能評出此二人終是何等人物. 後觀《情榜》評曰“寶玉情不情”, “黛玉情情”, 此二評自在評癡之上, 亦屬囫圇不解, 妙甚!

이 두 가지 비평은 경진본과 유정서국의 척서본(戚序本), 몽부본(蒙府本)에 모두 두 줄로 된 협비(夾批)로 수록되어 있으니, 바로 저우루창과 왕페이장(王佩璋), 자오깡 등이 말하는 ‘지연재가 직접 쓴 것[脂硯手筆]’이다. 《홍루몽》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연재는 작자와 그렇게 가까울 뿐만 아니라(저우루창의 의견에 따르면) 심지어 가보옥의 원형(우스창, 자오깡 등의 주장)인데 왜 가보옥의 일면에 대해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전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이제껏 이 비평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사실 가보옥의 일각은 당연히 작자 자신과 비평가에게서 소재를 취했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부인할 필요가 없지만, 위에 인용한 두 개의 비평에서는 “정말 본 적이 없는 것”이고 “고금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가보옥의 언행에 대해 비평가는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으니, 가보옥의 형상은 의심할 바 없이 비평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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