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화산논검 풍류여마 매초풍 2 김용

一字師 202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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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화산논검 풍류여마 매초풍 2 김용

 

                                               图片来源 | 群雄并起,工控安全之华山论剑 - it业界_cio时代网...

 

제5장 소녀공을 맏은 매초풍

자세를 바로잡은 매초풍은 진기를 단전으로 모았다.

약간 떨어진 곳에 진현풍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앉아 있던 매초풍이 살며시 눈을 떴다. 이때 매초풍의 체내의 진기는 젊은

여인의 등에 있는 독맥(督脈)과 서로 통하고 있었다. 매초풍의 마법에 사로잡힌 그 여인은

혼수상태였 다. 여인의 몸 속에 있던 진원(眞元)이 서서히 독맥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여

대추혈과 명문혈을 통해 매초풍의 두 손바닥에 있는 노궁혈(努宮穴)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매초풍과 진현풍이 스스로 만든 이 진원을 빨아들이는 법은 강호에서 소

문난 사파(邪派)의 흡성대법(吸星大法)과는 달리 직접 무공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양

신지술(養身之術)로서 자기 힘을 키우는 데에만 이용되었다.

"아―."

매초풍이 가볍게 소리를 내며 두 손바닥을 떨었다. 젊은 여인이 흠칫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었다.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오한이 몰려와 여인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매초풍은 왼손으로는 그녀를 틀어쥐고 다른 쪽 손은 천천히 위로 올렸다. 확 펴진 오른손은

허공에서 갈고리 모양으로 바뀌었다. 매초풍의 숨결이 차츰 빨라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녀와 얼굴색이 점차 붉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질린 듯이 하얗게 돌변했다.

달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싸늘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달빛에 드러난 매초풍의 창백한 얼굴

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 그리고 높이 쳐든 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갓난아기도 울다가 지쳐 울음을 그친 상태였다. 여소교는 그저 멍하니 매초풍에게 눈길을

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매초풍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곤 다시 거꾸로 내려오며 젊은 여

인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매초풍의 다섯 손가락이 그녀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다. 젊은 여인이 사지를 미친 사람처럼 떨어댔다. 매초풍은 다시 한 번

몸을 솟구쳐 뛰어올랐다. 내려오면서 왼손 손가락 다섯 개를 그녀의 두개골에 박았다.

"오호호호……!"

양손에 골수와 피를 흠뻑 적신 그녀가 일어서며 웃어젖혔다.

그녀는 젊은 여인의 두개골을 살펴보며 매우 흡족해 했다. 구멍만 열 군데 뚫렸을 뿐 다른

곳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공이 전보다 많이 향상되었다는 증거였다.

여소교는 매초풍이 구음백골조로 사람을 죽이는 걸 두 번째로 목격한 셈이었다. 그녀는 잔

뜩 겁에 질려 더욱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진현풍은 한쪽에서 최심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농사꾼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럴 때마다 뼈마디에서 뚝뚝 하는 소리가 났다. 진현풍은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뼈

마디 끊어지는 소리도 더 빨라졌다.

농사꾼 사내는 얼이 빠져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이때 진현풍이 농사꾼을 향해 두

손바닥을 내밀었다 거두었다를 반복 했다. 그럴 때마다 관절에서 그 뼈마디 소리가 요란하

게 났다.

여소교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두려움에 오금조차 제대로 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현풍이 오른쪽 손바닥을 세우고 왼쪽 손바닥으로 장을 뿌렸다. 가슴에 장

을 맞은 사내가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진현풍이 사내의 뒤로 가서 등에 대고 장을 날렸다.

이렇게 그는 사내의 앞뒤를 번갈아 가며 장을 날렸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위력도 맹

렬해졌다. 사내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진현풍이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진현풍이 동작을 멈추었다. 사내는 밑둥이 잘려 나간 나무처럼 쿵 하고 넘어졌다.

진현풍이 사내의 옷을 손으로 북북 찢고는 죽은 그의 배와 가슴을 잡아뜯었다.

매초풍이 다가왔다.

"어때요?"

진현풍은 죽은 사내의 내장을 하나하나 꺼내어 달빛에 비쳐 보았다. 심장과 간 그리고 폐,

신장 등이 모두 세 조각이나 네 조각으로 토막 나 있었다.

"실력이 좋아졌지만 역시 나보다는 못해."

매초풍이 그것을 들여다보며 한마디했다. 진현풍이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도화도에 있을 때 사부님께서 한 말씀이 생각나는군. 사매가 나보다 낫다고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이 왜 사매를 제자로 삼았겠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진현풍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선 네가 승부욕이 너무 강하여 앞으로 위험 에 빠질 때가 더 많다고 늘 걱

정하셨지. 사부님의 걱정이 무리는 아니야.'

진현풍은 사실 매초풍이 늘 걱정되었다. 언젠가 그들이 위험을 맞아 죽게 된다면 그녀 때문

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진현풍이 다음으로 고른 자는 시대였다.

그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시대관인부의 호걸이다. 네 놈이 날 감히 어쩔 셈이냐?"

시대가 큰소리를 치자 진현풍이 코웃음을 쳤다.

"흐흐, 난 그대를 데리고 무공 연마를 할 생각이다."

"시대관인이 무사들을 데리고 오면 너희들은 끝장이다!"

그러자 진현풍이 얼른 시대의 아혈을 눌러 버렸다.

"내가 죽는다고? 그전에 네 놈부터 죽여 주마!"

다시 손을 가슴 높이로 쳐든 진현풍이 장을 시대를 향해 날렸다. 진현풍의 무공을 보던 매

초풍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여소교에게로 다가갔다.

"무섭지?"

그녀가 피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여소교 코앞으로 내밀었다. 여소교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

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갓난아기를 감싸 안았다.

"오호호……!"

매초풍이 앙칼지게 웃기 시작했다.

"어서 말해 봐. 무섭지 않아?"

"무……무서워요."

"그래? 그림 어서 소녀공을 내게 넘겨. 그렇지 않으면……."

여소교가 숨을 길게 내쉬더니 갑자기 단호한 기색을 보였다.

"난 죽어도 그럴 순 없어!"

매초풍이 오른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갓난아기의 머리를 팍 움켜쥐었다. 갓난아기의 머리

에 구멍이 나면서 피가 튀어 여소교와 얼굴을 적셨다.

"아아……."

여소교는 그만 혼절을 하고 말았다.

매초풍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뺨을 몇 차례

때렸다.

정신을 차린 여소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갓난아기를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매초풍이 갓난아기를 빼앗더니 손으로 옷을 찢어발겼다. 그리곤 손끝으로 배를 갈라 아기의

내장을 꺼내 들었다. 심장과 내장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매초풍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그러더니 여소교를 매섭게 응시했다. 여소교가 뒤로 엉거주

춤 물러서려고 했다. 매초풍이 여소교의 옷을 잡아 찢었다. 백옥같이 희고 탄력 있는 여소교

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젖가슴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여소교가 울면서 사정을 했다.

"이러지 말아요. 제발……."

매초풍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소교의 치마를 걷어 올린 그녀는 속옷을 단번에 찢어 벗겼

다. 하얀 허벅지와 그 사이로 거웃이 무성한 국부가 보였다.

여소교는 다리를 오므리며 서럽게 울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흑!"

매초풍이 시대관인부에서 잡아온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어때, 이 계집을 갖고 싶은 생각이 없나?"

그러자 사내들은 매초풍의 속셈을 알 수 없어 멀뚱멀뚱 눈알만 굴려댔다.

"내가 이 계집을 너희들에게 맡기면 계집을 숨이 넘어가도록 만들어 줄 수 있냔 말이다!"

사내 중 하나가 히죽 웃었다.

"그거야 문제없죠. 우리는 무공은 그다지 쓸모 없지만 그거 하나만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습

니다."

그가 여소교의 젖가슴과 드러난 사타구니를 힐끔거리며 연신 누런 이빨을 내보였다.

"정말 저 계집을 우리에게 맡기겠습니까? 헤헤, 그렇다면 기꺼이……."

"좋다, 그럼 한 시간만 주겠으니 실컷 놀아 봐라!"

매초풍이 여소교를 주시했다.

"난 네가 부럽다. 이렇게 사내 둘이서 네게 반했으니 넌 얼마 나 좋으냐?"

여소교가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전 숫처녀랍니다. 그리고 소요공자님과 결혼을 해야 해요."

"그래서 저 사내들이 싫다는 게냐?"

매초풍은 그녀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아냥거렸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던 여소교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통곡을 했다.

"어머니, 불효 여식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몸을 지키기 위 해 하는 수 없이……."

매초풍이 그런 여소교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반색을 했다.

"옳지, 그럼 소녀공을 내놓겠다는 말이겠지? 진작 그럴 것이지."

그러는데 한 사내가 불쑥 끼여들었다.

"그럼 아까 한 약조는 어떻게 되는 거죠?"

매초풍이 그자를 발로 차버렸다. 사내가 멀리 날아가 아무렇게나 처박혔다.

"호호호, 분수를 알아야지. 이처럼 고운 백옥을 네 놈들에게 맡길 줄 알았더냐?"

사내들은 매초풍에게 조롱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매초붕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척척 맞아들어 가자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자신과 진현풍이 사람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것을 여소교에게 보여준 다음 협박을 해보

고 그것이 안 먹힐 때는 여소교가 안고 있는 아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두 남자를 시켜 그녀를 윤간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다 보면 여소교가 소녀공

을 내놓을 거란 계산이었다.

여소교의 입장에서는 다른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사내들에게 욕을 당하는 것만은

허용할 수가 없었다. 처녀의 몸을 지키는 것만이 그녀가 살아 남는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

고 있었다.

매초풍은 미리 준비한 종이와 붓을 꺼냈다. 그녀는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여소교가 외우는

대로 소녀공의 삼천여 자를 빠짐 없이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녀공을 모두 읊고 난 여소교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이젠 날 죽이세요. 소녀공을 다 털어놓고 나면 죽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말에 매초풍이 의외라는 눈길로 그녀를 응시했다. 부잣집 딸이라 죽기를 두려워할 줄 알

았는데 그 반대였던 것이다.

매초풍은 내심 갈등이 일었다. 원수의 집안인 여씨네. 그 집 딸을 온갖 고통을 받게 하다 죽

일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자 이상하게도 매초풍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죽이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지, 난 너를 소요공자에게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넘겨

주겠어."

'소요공자'라는 말이 나오자 여소교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정말 그 말을 믿어도 되겠죠?"

"물론이지!"

그러나 여소교는 속으로 칼날을 갈아대고 있었다. 두 마귀를 언젠가는 꼭 죽이고 말리라는

생각이었다. 언젠가 부모의 원수를 꼭 갚으리라는 결심을 숨기며 그녀는 한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어서 저를 풀어 주세요."

"강호가 얼마나 험악한 곳인지 모르는구나. 혼자 나다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여소교는 매초풍의 말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

었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아요."

"무섭지 않다고는 하지만 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너를 내 손으로 소요공자에게 넘겨준

다음이래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한쪽에서 장을 날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최심장으로 시대를 죽인 진현풍이 이번에는

시이를 잡아 세웠다.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던 그는 진현풍이 잡아 세우자 그만 오줌을 싸

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것도 사내라구!"

진현풍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시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봐, 사에. 또 무공을 연마할 생각이 있어?"

매초풍은 소녀공출 얻은 것에 만족하여 고개를 저었다.

"난 됐으니까 혼자서 해요."

여소교는 매초풍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탄식을 했다. 매초풍은 자신과 나이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여인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 살인마가 아니던가.

갑자기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던 매초풍이 크게 놀라는 표

정을 지었다. 나머지 사내들이 산 아래로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혈도가 풀렸는지 그들은 놀라운 경공을 쓰며 죽기 살기로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대가 흑풍쌍살이었기에 그들은 싸울 생각은 않고 도망치는 것에 목숨

을 걸었다.

매초풍이 급히 일어나 뒤쫓았다. 그녀의 경공은 그들보다 월등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

는 사내들의 꽁무니까지 따라붙었다.

사내들은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뒤에서 나는 소리에 누군가 가까이

쫓아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은 각자 옆구리에서 공같이 생긴 것을 두개씩 꺼내 공중으

로 던졌다.

펑―!

요란한 폭음과 함께 푸른 색의 구름과도 같은 연기가 퍼졌다.

이것이 강호의 문파들이 서로 연락하는 방법인 것을 눈치챈 매초풍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

는 사내들을 어서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가지 못해 결국 사내들은 매초풍에게 덜미를 잡히고야 말았다.

두 명의 사내 바로 등뒤까지 이른 매초풍이 손을 뻗었다. 그들의 등을 갈고리 같은 손으로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약삭빠른 그들이 얼른 좌우로 갈라져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흥, 어딜 도망치려고!"

매초풍이 그중 한 사내의 등을 겨냥해 최심장을 내쳤다. 진현풍보다는 못하지만 상대의 심

장과 폐를 조각내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헉!"

사내가 몸을 활처럼 구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즉시 다른 사내를 쫓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된 것을 깨달은 사내는

돌아서며 싸울 태세를 취했다.

"이 마귀 같은 년아, 대체 넌 누구나! 왜 우리를 괴롭히느냐?"

사내가 악을 썼다.

"우린 흑풍쌍살이다!"

그 말에 사내의 두 다리가 속절없이 후들거렸다.

"동시 진현풍과 철시 매초풍?"

"그렇다. 허나 우리 이름을 알았어도 이젠 소용이 없다. 당장 네 놈들은 죽을 목숨이기 때문

이다."

매초풍이 곧장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곤 거꾸로 떨어지면서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만들

었다. 사내의 머리를 움켜잡으려는 것이었다. 하얗게 질려 버린 사내는 피할 곳도 없어 그저

두 주먹을 쥐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매초풍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사내의 양손을 잡더니 비틀었다.

"아악!"

바드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사내의 손이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다. 사내가 주춤하는 순간

매초풍이 구음백골조를 써 그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려고 했다. 하자만 그녀는 무슨 생각

을 했는지 다시 땅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그러더니 사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사내는 부서진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

을 몰라했다. 순간 그녀의 손가락 다섯 개가 사내의 앞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커억……!"

매초풍의 손이 사내의 가슴에서 빠져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사내의 시뻘건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 동작은 번개와도 같았다. 사내가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

내는 자신의 심장을 보더니 눈알을 뒤집고는 쓰러졌다.

매초풍이 사내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구음백골조의 위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행여 사내의 두개골을 단번에 꿰뚫지 못할까 봐서

망설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어린아이나 여인들의 머리는 뚫어 보았지만 건장한 사내

들에게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사실 <구음진경>에는 이처럼 사악한 무공은 들어 있지 않았다.

문제는 흑풍쌍살이 <구음진경> 상반부에 있는 경의(經義)와 연공정법(練功正法)은 보지 못

하고 하반부에 있는 대목만을 보았다는 데 있었다. 거기에 적힌 '다섯 손가락으로 무공을

쓰면 뚫지 못할 게 없다. 적의 머리도 흙벽과도 같이 쉽게 뚫을 수가 있다'라는 부분만을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의 머리, 즉 수뇌(首腦)는 적의 급소를 말하는 것으로써 굳

이 머리에만 국한 시킨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흑풍쌍살은 다섯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뚫으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또

그렇게 해야지만 구음백골조 초수가 터득되는 것으로 믿었다.

진현풍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 두 놈이 신호를 보냈으니 얼른 피하자. 지체하다가는 놈들 의 패거리들이 몰려온다구!"

"여소교를 끌고 가야지요."

매초풍의 말에 진현풍이 언성을 높였다.

"소녀공을 알아냈으면 됐지, 뭣하러 끌고 가?"

"소용이 있어서 그래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할테니……."

매초풍이 급히 돌산 위로 날아갔다. 그녀는 여소교를 잡아 일으키려다가 시대관인부의 시사

가 아직 죽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발을 날려 시사의 귀 밑에 있는 예풍혈을

차서 죽여 버렸다.

매초풍은 서둘러 여소교를 끌고 진현풍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지체할 수가 없다고 판단

한 그들은 서둘러 동쪽 수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녘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대관인부에서 세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돌산 쪽으로 가고 있

었다. 그들이 쓰는 경공으로 보아 죽은 사내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매초풍이 아래로 내려오며 코웃음을 날렸다.

"흐흥, 세 놈밖에 없는 줄 알았다면 부랴부랴 숨지 않았을텐데!"

진현풍도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나 진현풍은 매우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어떤 문파에 속한 사람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들이 신호로 쓰

는 화염주(火焰珠)만 봐도 알잖아. 강호의 보통 문파에게는 없는 거라구."

"아니, 그림 우리가 무림 사람들을 모두 겁내야 한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무공

으로 겁낼 게 뭐 있다고 그래요?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은 많겠지만 한결같이 어찌 못하고

있잖아요?"

매초풍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는 여소교를 나무 위에 매놓고는 품에서 소녀공을 적은 종이말이를 꺼냈다. 그녀는 오

로지 소녀 공에만 관심이 있었다. 달빛 아래서 급히 쓴 것이기에 글자들이 제멋대로였다. 어

떤 글자는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매초풍은 알아보기 힘든 부분은 여소교에게 다시

물어 고쳐 쓰기도 했다.

진현풍은 밤새 최심장을 연마하느라고 기운을 많이 했으므로 가부좌를 튼 다음 눈을 내리감

고 운공양신(運動養身)을 하고 있었다.

사위는 조용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이따금 들리는 새울음 소리 외엔 적막하기 그

지없었다.

흑풍쌍살은 매우 흡족한 상태였다. 소녀공도 손에 넣었고 간밤에 맘껏 무공 연마도 한 터였

다. 그러나 여소교만은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알아주던 가문이 일순간에 몰락하고 가족들이

참살을 당한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그녀는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

며 하염없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매초풍이 자신을 악처후에게 데려다 주겠다

고 한 말을 상기 했다.

'내가 무사하게 되면 내 기어히 이 원수를 갚을 것이다!"

그런 여소교의 심정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매초풍은 연신 싱글벙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

지 않았다. 강호에서 알려지지 않고 있는 독문신공(獨門神功) 소녀공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

게 되자 세상을 얻은 듯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소녀공은 원래 서역 지역의 마공이었다. 그 후 북송(北宋) 때 중원

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때 무림인들은 이것을 사마왜도(邪魔歪道)로 여기고 소녀공을 수

련하는 사람만 보면 잡아죽였다. 그래서 거의 맥을 잇지 못하게 되었는데 당시 송나라의 대

문호이라 대학사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식은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도가의 내공에도 조애가 깊었다. 그는 소녀공을 통독한 다음

그 속에 심오한 현학(玄學)이 있음을 깨닫고는 다시 수정하고 정리하여 도가(道家)의 비耉

(秘功)으로 만들었다.

소동파의 수정을 거친 소녀공은 몸을 보양하며 장수하는 비법으로 탄생되었다. 거기에는 부

부간의 방사법과 음양을 어떻게 서로 보완하느냐 하는 비결도 들어 있었다.

도가의 훌륭한 무공을 흑풍쌍살은 전혀 엉뚱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구음진경>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그 들은 사악한 마법으로 수련에 임하게 되었다.

매초풍은 소식, 즉 소동파가 수정하여 만든 이 소녀공을 아무리 읽어도 그 내용을 얼른 파

악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마구 펼쳐 보다가 마

지막 뒷부분에 있는 문구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소동파는 소녀공 전부를 뜯어고쳐서 새로운 소녀공을 만들었다. 하지만 원래의 소녀공을 아

예 없애 버릴 수 없어서 마지막 부분에 부록처럼 남겨 놓은 다음 이렇게 해석을 달았다.

사파(邪派)의 음공(淫功)이기에 불태워 버리려고 했으나 그래도 여기에 선인들의 심혈이 스

며 있고 이치 있는 부분도 있음을 고려하여 남겨 놓는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참고는 하

되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소녀공 원본(素女功原本)'이란 제목이 씌어 있었다.

매초풍의 눈빛이 살아났다.

'앞의 부분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군. 그런데 소녀공 원본이 또 있다니……. 어

디 한번 읽어 볼까?'

매초풍은 흥분이 되어 '소녀공 원본' 삼백여 자를 세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그 내용을 완

벽하게 파악하게 되자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그녀의 가슴이 흥분으로 마구 뛰었다.

그녀는 흥분되어 벌개진 얼굴로 급히 그것을 말아쥐고는 주위를 살폈다. 여소교도 진현풍도

다른 곳으로 눈길을 주고 있었다.

매초풍이 손으로 자기 젖가슴을 쓸어 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그러다가 다시 '소녀공 원본'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 최초의 소녀공이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것은 그 내용이 거의 성(性)에 관한 것

이기 때문이었다. 즉 여인들이 어떻게 사내들과 성교를 하는가, 또 그 성교 중에 어떻게 사

내의 원(元陰)을 빨아내어 여인의 진기를 보충할 수 있는가, 그래서 채양보음(采陽補陰)으로

어떻게 여인이 무공의 힘을 키우는가, 하는 방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매초풍이지만 그녀 또한 절세에 가까운 미인이며 여인임이 분

명했다. 그녀는 진현풍과 살을 섞어 봤을 뿐 다른 사내들과는 인연을 가져 보지를 못했다.

또한 그럴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소녀공 원본'을 처음 보는 순간 음란하다고 여겨

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 버리고 픈 충동도 일었다.

'내가 사형에게 몸을 맡긴 이상 다른 사내와 정을 통할 수는 없지. 그리고 나를 그렇게 사

랑하는 사형 몸에서 진기를 빨아내 어 채양보음을 할 수는 더더욱 없어!'

매초풍은 이런 생각으로 그것을 찢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그럴 수가 없었다.

음탕하기 그지없는 내용들이었지만 그 유혹에 그녀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방법을 쓰

면 여인들의 무공이 매우 빨리 발전된다는 말도 한몫 했다. 그녀는 여러 번 찢어 버릴까 망

설이다가 끝내는 품속에 넣어 버렸다.

이때 운기를 끝낸 진현풍이 다가와 매초풍을 끌어안았다.

"소녀공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었소? 나도 한번 보자구."

그러자 매초풍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소녀공 안에 있던 여러 가지 음탕스런 구절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인들에 관한 것들인데 사내가 봐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대가 그렇게 큰 노력을 들여 얻어낸 건데 궁금하잖아. 대체 어떤 건가 궁금해서 미치겠

다구!"

"당신이 <구음진경>을 보여주지 않는데 내가 왜 이것을 보여 줘야 해요?"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눈까지 흘겼다.

매초풍을 끔찍히 사랑하는 진현풍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몹시 피곤했던지 매초풍은 살그머니 그의 팔을 베고 눕더니 곧 잠에 빠졌다.

얼마를 잤을까. 깨어나 보니 해가 이미 서산에 걸려 있었다. 벌써 저녁이 다된 시각이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커먼 물체에 화들짝 놀랐다. 진현풍이었다.

"뭘 그렇게 봐요.

매초풍이 얼른 일어나 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대를 보고 있었지. 그대는 참 아름다워!"

매초풍이 그 말에 픽하고 웃었다.

"피, 싱겁기는. 이 다음에 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진현풍이 와락 그녀를 껴안고는 그녀의 입술을 마구 빨아댔다. 두 사람은 곁에 여소교가 있

다는 것도 잊은 채 함께 뒤엉켰다.

여소교가 낯을 붉히며 애써 외면했다.

"망측한 것들……."

진현풍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되었는지 매초풍을 안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자기 옷

을 벗어 땅에 깐 진현풍은 그 위에 매초풍을 눕혔다. 그리곤 서둘러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

작했다.

"이러지 마세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간지럽다는 듯이 매초풍이 몸을 비비꼬았다.

진현풍은 그녀의 회고 육감적인 젖가슴을 입술로 빨고 핥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서둘러

그녀의 속옷을 벗기고는 올라탔다. 매초풍이 진현풍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때 소녀공에 있는 방법을 약간 써볼까? 그렇다고 이 사람에게 화가 미치는 것은 아니겠

지?'

매초풍은 내심 그런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조금만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소녀공 처음에 나오는 방법대로 진기를 운행시키며 단전에 힘을 주었다.

진현풍은 온몸의 기운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전에 없던 쾌

감을 맛보았다. 그는 크게 숨을 몰아 쉬며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온몸이 축 늘어졌다.

곧이어 견 딜 수 없는 피곤이 엄습해 왔다.

진현풍의 진기를 흡수한 매초풍은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슬쩍 물어 보았다.

"어때?"

"좋았어. 난 그대와 사랑을 나눌 때면 항상 좋거든. 그런데 오늘은 내 몸 속의 기운이 모두

달아난 기분이야."

그 말에 매초풍은 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어 살짝 미소 지었다.

'다음부터는 이 사람에게 소녀공을 쓰지 말아야겠다. 그 효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두 사람이 서로 껴안은 채 사랑의 말들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깊은 숲 안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급히 일어나 옷을 입고는 여소교를 끌고 다른 쪽으로

달아나 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울창해서 경공을 마음놓고 쓸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여소교를 안고 있어서 걸음

이 더 부자연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뒤에서 따라오

는 사람들보다는 빨랐다.

세 사람이 어느 커다란 고목나무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숲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 섰거라!"

그러더니 곧 사내 넷이 손에 시퍼런 칼을 꼬나들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중 자색 옷

을 입은 사내가 가슴을 펴며 물었다.

"뭐하는 놈들인데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느냐?"

"흥, 그러는 넌 누군데 백주 대낮에 칼을 갖고 장난을 치느냐?"

진현풍이 뒤질세라 맞받아쳤다.

"형님, 기필코 저 놈들이 우리 사제 둘을 죽인 것 같습니다."

땅딸보 사내가 자색 옷을 입은 사내에게 말했다. 자색 옷을 입은 사내가 고개를 가로 저었

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 같은데?"

그러면서 그가 껄껄 웃었다.

진현풍은 그가 길을 비켜 주려고 그러는 줄 알고 앞으로 걸어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웃는 척하다가 칼로 진현풍의 배를 찔렀다.

진현풍이 반사적으로 몸을 띄우며 그자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자색 옷을 입은 사내도 몸

을 날리며 칼을 휘둘러댔다. 진현풍이 그자의 머리 위를 넘어 반대쪽으로 옮겨 갔다.

"이리 오너라!"

이번에는 땅딸보 사내가 진현풍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얏!"

진현풍이 얼른 몸을 구르며 쌍장으로 이랑담산 초수를 써 두 사람에게 돌풍을 퍼부었다. 진

현풍의 방장을 용케 파한 자색 옷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흥, 제법인데!"

뚱뚱한 사내가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다. 분명 네 놈들이 우리 사제들을 죽였지?"

다시 뒤쪽에서 여덟 명이 나타났다. 사내가 여섯이고 여인이 둘이었다. 모두 화려한 비단옷

을 입고 있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흑풍쌍살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먼저 흑풍쌍살을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저것들이 바로 흑풍쌍살입니다!"

바로 강금의와 반채의였다. 강금의가 대뜸 칼을 뽑아 들더니 얼굴에 핏대를 세웠다.

"저 놈들이 두 사제를 죽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악독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저들

뿐이니까요."

진현풍과 매초풍은 그제야 자신들이 쫓아가 죽인 두 사내가 오혈궁 문하생임을 알고는 내심

놀랐다.

원수를 만나게 된 오혈궁 제자 열두 사람은 한꺼번에 흑풍창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여

소교도 한패인 줄 알고 그녀까지 죽이려고 했다.

칼날이 여소교에게로 떨어지자 그녀는 대경실색하여 비명을 내질렀다. 매초풍이 여소교를

보호하면서 날아드는 칼을 물리쳤다. 그런 가운데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을 부렸다.

흑풍쌍살의 무공이 악독한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오혈궁 제자들은 함부로 덤비지를 못

했다. 그들은 흑풍쌍살을 에워싼 채 먼 거리에서 그저 칼만 휘둘러댔다.

그들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자 진현풍이 말했다.

"사매, 거추장스러운데 어서 그 계집을 죽여!"

여소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매초풍이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난 상관하지 말아요. 가고 싶으면 혼자 도망치세요!"

이를 부득 갈아대던 그녀가 양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었다. 손가락에서 요상한 소리가 울렸다.

그 바람에 오혈궁 제자 하나는 겁에 질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자색 옷을 입은 사내가 칼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흑풍쌍살에게 한 칼을 먹이는 자는 황금 열 냥을 주고 두 사람 중 하나를

죽이면 백 냥을 주겠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오?"

제자 하나가 물었다.

"나 이자의(李紫衣)는 말하면 꼭 지킨다. 궁주님께서 내놓지 않겠다면 대신 내가 줄 테니 걱

정 마라. 그러니 어서 저 연놈들을 잡아죽여라!"

오혈궁 제자들의 눈초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공격해 왔다.

땅딸보가 얼른 땅에 엎드렸다. 그러더니 일로지정도법(一路埴 刀法)으로 흑풍쌍살을 향해 빠

른 속도로 굴러왔다. 거의 가까이 다가온 땅딸보가 갑자기 칼로 흑풍창살의 다리를 내쳤다.

진현풍과 매초풍은 얼른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런데 그들이 땅에 내려서기도 전에 여러 개

의 칼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안 되겠다. 몇 놈을 죽여야 출구가 생기겠어!"

진현풍의 말에 매초풍이 눈을 흘겼다.

"죽일 수 있는데 왜 가만히 있었어요. 사정이라도 봐주자는 건 가요? 난 이 계집 때문에 자

유롭게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걸 잘 알잖아요.?"

진현풍이 소리를 지르며 최심장을 퍼붓기 시작했다. 또한 낙영신검장으로 상대를 후려쳤다.

그런 반면 그를 향해 날아오는 칼 두 개를 장으로 막았다. 그리곤 오혈궁 제자 한 사람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으아악!"

그자의 어깨에 구멍이 다섯 개가 뚫렸다.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오혈궁 제자가 어깨

를 감싸 쥐며 떼굴떼굴 굴렀다. 진현풍이 달려가 그자를 발로 멀리 차버렸다. 오혈궁 제자

셋이 일제히 칼을 뻗으며 달려들어 진현풍이 잠시 물러서는 틈을 이용해 바위에 부딪쳐 쓰

러진 그들의 동료를 끌고 갔다.

이때 땅딸보가 또다시 일로지쟁도법을 쓰며 굴러오기 시작했다. 그는 진현풍의 무릎을 노렸

다. 칼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현풍의 무릎으로 휘감겨 왔다.

"얏!"

진현풍은 이번에도 약간 솟구쳐 오르며 동시에 땅딸보와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컥!"

땅딸보가 피를 울컥 쏟아내며 자 달리 나동고라졌다. 그러자 다시 딴 사람이 조심스럽게 접

근해 와 그를 데리고 갔다.

이쯤 되자 오혈궁 재자들은 더는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주춤 한다. 순식간에 몇 사람이 당

하자 겁먹은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황금 때문인지 도망치지는 알고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흑풍쌍살을 노렸다.

진현풍아 매초풍의 치마가 찢어진 것을 보고는 놀라 물었다.

"다친 데 없어?"

"흥, 내가 저 놈들에게 당할 사람이에요?"

매초풍은 쌀쌀맞게 대꾸하고는 여소교를 돌아보았다.

"내 등에 업혀."

정신 없는 여소교는 시키는 대로 그녀의 등에 업혔다.

"저 놈들은 숫적으로 우세하나 아무래도 재적을 써야겠어요."

매초풍이 제의했다. 그리고 그녀는 얼른 독룡은편을 풀어 앞으로 세차게 후려쳤다. 넉 장 길

이나 되는 갈고리들이 달린 채찍이 힘차게 날아갔다. 오혈궁 제자들은 깜짝 놀라 옆으로 황

망히 도망쳤다.

진현풍도 독룡금편을 휘둘러댔다. 흑풍쌍살은 채찍 바람을 일으키며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

했다. 그럴 때마다 오혈궁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왜 넓은

공지까지 올 수 있었다.

흑풍쌍살은 조금 여유를 부리며 채찍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들은 더 이상 채찍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빽빽한 수림이 앞을 가

로막았던 것이다.

"이런……."

굵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채찍이 자유롭게 펼쳐지지가 않았다. 자칫하면 나무에 감기거나 부

러지는 나뭇가지에 오히려 당할 위험도 있었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채찍을 거두었다.

오혈궁 제자들이 다시 그들을 포위했다. 전의를 상실해 비록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자들은

없었지만 아직 그들의 집착은 여전했다. 한꺼번에 흑풍쌍살을 향해 돌진해 오는 날엔 끝장

이었다.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 많은 칼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뒤로 물러서며 채찍을 다시 휘둘렀다. 오혈궁 제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점

점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들은 흑풍쌍살을 에워싸고 사방에서 소리만 질러댈 뿐 당장 공격

할 태세는 취하지 않았다.

오혈궁 제자들은 지금 그들에게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 해도 섣불리 공격할 수는 없었다.

워낙 악독한 무공을 펼치는 것으로 이름난 흑풍쌍살이라 은연중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이제 곧 우리 오혈궁의 대부대가 도착할 것이다. 그땐 너희들에게 날개가 있어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이자의가 살쾡이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매초풍이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이 오합지졸 같으니라구. 그 많은 사람으로 우리 둘도 당해내지 못하는 게 영웅이냐?"

"히히, 누가 영웅이라고 했더냐? 난 영웅 같은 건 꿈도 안 꾸는 사람이야."

이자의는 무엇이 좋은지 계속 웃어댔다.

그런데 매초풍이 언뜻 보니 웃고 있는 이자의의 왼쪽 어깨가 수상했다. 곧 번뜩번뜩하던 그

의 어깨에서 무언가가 번개같이 날아왔다.

매초풍이 급히 독룡은편을 휘둘러 암기들을 막아냈다. 은룡광무(銀龍狂舞) 초수였다. 암기들

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암기들은 다름아닌 동전들이었다.

이자의가 다시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 채찍이 쓸 만하군. 내 이 표전은 실수할 때가 별로 없었는데 말이야. 하하

하……!"

"하하, 그까짓 재간으로 우쭐거리느냐?"

매초풍이 빈정거렸는데도 웬일인지 이자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음탕한 눈빛으로 매

초풍을 노려보면서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소저는 꽤 미인이야. 화를 내지 않을 때도 그렇지만 화를 낼때는 더욱 환장하겠거든. 그러

면 웃을 땐 또 얼마나 매혹적일까?"

"한번 웃으면 경성지색(傾城之色)이요, 두 번 웃으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겠지요. 히히히,

어서 저 년을 잡아 형님께 드려야지. 형님이 실컷 가지고 논 다음 이 아우도 잊지 마시오."

오혈궁 제자 하나가 턱을 길게 뽑으며 지껄여댔다.

순간 매초풍의 채찍이 바람을 갈랐다. 뒤에 지껄이던 오혈궁 제자가 급히 뒤로 물러섰다. 채

찍 끝에 이마가 스치는 바람에 심한 상처가 났다. 이마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으으……."

그는 섣불리 대들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

매초풍은 심기가 매우 뒤틀렸다. 그자의 입을 발기발기 찢어 놓고만 싶었다.

이렇게 양쪽이 서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악마구리들이 바글바글 끓어대고 있군. 제길, 이거 어디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안았으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심지가 강했다. 온몸

에 소름이 확 돋는 목소리였다.

교란하기 짝이 없는 오혈궁 제자들은 그 말에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이건 또 뭐야? 어서 나오지 못하겠느냐? 당장 나오지 않으면 네 놈의 귀싸대기를 갈기겠

다!"

강금의가 소리쳤다.

흑풍쌍살은 그 목소리가 고목나무 위에서 나는 것 같아 그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아무

리 살펴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큰 나무껍질 하나가 덜어졌다.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웬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는 마

치 커다란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형상이었다.

검은 머리칼과 창백한 얼굴, 핏기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사내였다. 눈빛이 빛나지

않았다면 분명 죽은 귀신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몰랐다.

그는 바로 절정공자 탁온백이었다.

흑풍쌍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객점에서 그들을 죽이지 못한 탁운백이 지금 다시 만

났는데 가만 있겠는가. 그마저 자신들을 죽이려 든다면 꼼짝없이 당할 게 분명했다.

'음…….'

흑풍쌍살은 최대의 위기라고 여겼다.

매초풍의 눈에 두려움과 함께 적의가 활활 타올랐다. 살아야 한다는 결의가 그녀의 눈동자

를 휘덮었다. 메초풍을 자신적 무공이 탁운백물 뛰어넘을 때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말

을 속으로 되뇌엇다.

흑풍쌍살은 탁운백을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그와 생면부지였다. 그래서 반

채의는 탁운백이 모습을 보이자 대뜸 욕설부터 퍼부었다.

"귀신 같은 놈, 어서 나와 목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탁운백은 반채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는 곧장 강금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내 뺨을 치겠다고?"

약간 주눅이 든 강금의가 대답했다.

"네 놈은 그 껍질 안에 숨어 있으면서 어떻게 내가 했다고 단정하느냐?"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서 내 물음에나 대답해. 정녕 내 뺨을 치겠다는 게냐?"

강금의는 탁운백의 말에 겁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동문들이 지켜보고 있고 또 반채의 앞이

라 그런 기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뭣이? 난 네 놈의 뺨이 아니라 가슴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금의의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탁운백이 그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오혈궁 제자들은 그제야 녹슨 칼을 찬 이 사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탁운백은 강금의의 귀뺨을 후려치긴 했으나 그다지 힘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금

의는 머리가 멍한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강금의가 비틀거렸다.

반채의가 걱정스레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강금의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사매뿐이군……."

강금의가 이런 말을 내뱉자 반채의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아가 치밀었다.

"이그, 아무때나 그런 말을 해요?"

그녀가 강금의를 확 밀어내며 눈을 흘겼다. 그 바람에 강금의는 다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지 반채의가 다시 그를 부축하려고 했으나 또 싱거운 소리가 그의 입에

서 나올까 봐 그만두었다.

탁운백의 번개 같은 손놀림에 이자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흑풍쌍살과 싸우기도 버거운데

이상한 괴인 하나가 나타나 방해 하니 더욱 난감하기만 했다.

이자의는 웃는 얼굴로 탁운백 앞으로 다가가 읍을 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오혈궁 이자의의 절을 받으십시오. 우리가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용서하시오."

탁운백은 그자가 오혈궁이라고 한 말에 순간 눈초리가 심하게 뒤틀렸다. 하지만 그는 한껏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오혈궁의 문하생들이다 이건가?"

이자의는 이 괴인이 자신의 오혈궁과 어떤 사이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강호에서 오혈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을 믿고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탁운백의 창백한 얼굴이 약간 핏기를 찾았다. 그러더니 곧 더욱 창백해졌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오혈궁 궁주 묘상이라는 자를 알고 있다. 그는 어여쁜 계집만 보면 환

장을 하는 소인이라고 들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혈궁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었다. 궁주를 감히 욕하다니 참

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자의가 얼른 그들을 제지하며 나섰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괜한 소리라면 우리 제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

다."

이자의는 탁운백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터라 그가 그의 연인 정아를 묘상이 빼앗아 갔다는

말을 하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것까지 너희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탁운백이 코방귀를 뀌었다.

이자의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지 그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 졌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탁운백과 묘상의 관계를 들어 알고 있는 매초풍이 재미있어 하며 끼여들었다.

"너희들이 오늘 절정공자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그러지 않아도 절정공자가 너희들

에게 버릇을 고쳐 주려고 했었다."

'절정공자'라는 말에 오혈궁 제자들은 오금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절정공자는 무공이 아주

뛰어나 순식간에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자의도 얼른 안색을 바꾸며 웃음을 처발랐다.

"하하하, 절정공자님이 오신 것도 모르고 저희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전 절정공자님 같은 분

과 친교 맺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정공자 오라버님은 네 놈들과 같은 무리를 질색을 하니 어쩌겠어?"

매초풍이 그를 오라버니라고 호칭했다.

탁운백은 메초풍을 돌아보며 입꼬리를 쪘었다. 그리고는 차디찬 음성으로 한마다 뱉었다.

"여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 보기는 처음이군."

매초충은 탁운백'의 반응이 좀 비위에 거슬렸다. 하치만 달리 생각해 보면 철정공자처럼 여

인을 질색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표현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탁운백이 오혈궁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원칙대로 한다면 네 놈들을 모조리 죽어야겠지만 가만있지를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동문들 앞에서 궁주를 목욕하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내가 누구든 우리 오혈궁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네 놈을 우린 죽여 버릴 것이

다.!"

그녀의 말에 오혈궁 제자들이 다시 칼을 꼬나들었다.

"저 놈을 당장 찢어라!"

그녀가 명령을 내렸다. 제자들이 탁운백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탁운백은 검도 뽑지 않고 맨주먹으로 나섰다. 칼을 요란하계 그어대며 달려드는 제자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그의 경공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위로 솟구쳤다 옆으로 몸을 길게 뉘

었다. 하며 자유자재로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탁운백이 잠시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그가 다시 날쌔게 공중

으로 뛰어올랐다. 몸을 괴상하게 회전시키며 오혈궁 제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순식간에 오혈궁 제자들이 들고 있던 열 자루의 칼을 모두 거두어 버린 것이다. 그가

다시 바닥에 내렸을 땐 칼 열 자루 가 차례대로 한곳으로 모아진 뒤였다.

"힉!"

오혈궁 제자들은 모두 퉁방울만한 눈을 만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

나 엄연한 사실이었다. 판지 경공만으로 상대의 칼을 빼앗을 수 있는 절기를 처음 보는 그

들이었다.

이때였다. 수림 속으로부터 스무 명의 사내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을 이끌고 온 사람은 얼굴이 개기름으로 번지르르하고 몸집이 퉁퉁한 사내였다. 그 뒤

에 바싹 따라오는 회색 옷을 걸친 거인 두 사람은 모두 험상궂게 생겼다. 그 나머지는 모두

가정(家丁) 차림을 했는데 저마다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산 아래 마을 시대관인과 시대관인부의 하인들이었다. 시대관인이 이자의에게 웃으

며 다가왔다.

"이 공자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공자님을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저 놈들이 바로 살인마들

입니까?

칼을 빼앗겨 잠시 겁을 먹고 있던 이자의는 그들이 온 것을 보고는 다소 용기를 얻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어서 이 다친 두 사제를 부중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자 시대관인은 즉시 하인 넷을 시켜 부상당한 탕딸보와 다른 한 제자를 수림 밖으로 데

리고 가게 했다.

시대관인이 수하들에게 호령했다.

"여봐라, 어서 저 놈들을 잡아들여라!"

시대관인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탁운백과 여소교 역시 살인자들로 알고 있

었다.

무공을 잘 모르는 시대관인의 하인들이 그들과 대적하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이 부리는 무공에 열 명에 가까운 사내들이 그대로 나자빠졌다. 그런가 하면 몇은 또

탁운백의 연환퇴(蓮環腿)에 차여 쓰러졌다.

흑풍쌍살의 앞에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시체 일곱이 쌓였다. 그것을 본 시대관인이 질

겁을 했다.

"이 공자, 그대들은 왜 한 사람도 나와 싸우질 않소?"

"저것들을 며칠 더 살게 놔둡시다. 저 놈들을 꼭 요절낼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요."

이자의는 시대관인에게 가만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리곤 천천히 탁운백에게 읍을 했다.

"탁 공자님, 또 만납시다!"

막 그가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목소리 하나가 날아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가시기오?"

탁운백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자의는 가슴이 움찔하여 더 이상 발걸음을 때지 못했다. 그가 얼굴에 웃음을 처발랐다.

"탁 공자님에서 무슨 분부라도 계시는지요?"

탁운백이 시대관인과 그의 하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들도 모두 오혈궁과 한패거리가 틀림없소?"

이자의는 그 질문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두 눈만 꿈벅이다가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좋다. 저것들까지 포함해서 너희들 모두가 내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세 번씩 조아려

라.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이 수림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음성은 부드러웠으나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렇게 되자 진현풍과 매초풍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 틈을 이용하여 슬그머니 달아나려

고 했다. 막 몸을 돌리려는데 탁운백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았다.

"너희들은 어딜 갈 생각이냐?"

"그럼 우리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말이오?"

진현풍이 돌아서며 발끈하여 소리를 질렀다.

"증인을 서란 말이다. 내가 오혈궁 문하생들을 무릎 꿇리고 절을 받더라고 증언을 해줄 사

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매초풍이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좋아요, 그런 증인이라면 얼마든지 서겠어요. 호호호……!"

시대관인의 심기가 몹시 뒤틀렸다. 생각 같아서는 합심해서 탁운백을 치고 싶었다. 이를 부

득 갈아대던 시대관인이 은연중 소리를 질렀다.

"건방진 소리! 오혈궁 사람들아 참는다 해도 나 시대관인은 그럴 수 없다. 우리 모두 달려들

어 네 놈을 찢어 버릴테다!"

탁운백이 히죽 웃음을 보였다.

"그럼 좋다……!"

탁운백이 갑자기 몸을 날려 시대관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대관인은 어느새 그에게 멱

살을 빼앗겼다.

"참을 수 없다구?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지?"

시대관인은 숨이 막혀 캑캑대며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제발…… 제발……."

탁운백은 그를 힘껏 밀쳐 버렸다. 그러자 시대관인은 뒤로 벌러덩 나동그라진 채 온몸을 떨

었다.

"네 이 놈, 아직도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네가 하인들에게 먼저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게

아니더냐?"

시대관인은 이미 겁을 먹은 상태였다. 그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얼른 무릎을 꿇더

니 이마를 땅에 찧었다.

주인이 그렇게 나오자 하인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도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절을 세 번씩 한 자는 물러가도 좋다!"

시대관인 하인들은 이젠 살았다는 얼굴로 하나 둘 내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절을 하지

않고 있던 회색 옷을 입은 거인 두 사람도 그 틈에 도망치려고 했다.

"네 놈들은 어딜 가느냐?"

탁운백이 크게 꾸짖으며 그들을 잡았다. 두 사람이 돌아서며 탁운백에게 매서운 눈길을 쏘

아댔다. 시대관인도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 걸음을 세웠다.

"어서 꿇어 엎드리지 못할까!"

탁운백이 호령했다. 하지만 그들 두 사람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린 그럴 수 없소"

그런데 두 사람의 서툰 말솜씨를 봐서 송나라 사람이 아닌 듯싶었다. 탁운백이 그 점을 눈

치채고는 물었다.

"네 놈들은 송나라 사람이 아니렷다?"

두 사람 중 좀 젊은 사내가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송나라 말로 대꾸했다.

"우린 대금국의 특사올시다."

"특사?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왔지?"

탁운백의 심기가 차츰 꼬이기 시작했다.

"송나라 황제에게 투항을 권유하러 왔다가 잠시 벗을 찾아 들린 길이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시대관인의 어깨를 토닥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시대관인도 아첨하는 웃

음을 기꺼이 두 사람에 건넸다.

그 꼴을 지켜보고 있던 탁운백의 가슴엔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 놈들, 우리 송나라를 침범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무참히 죽이고 또 송나라 땅에 뻔뻔스

럽게 들어와? 나 탁운백은 세상일을 불문하는 사람이지만 너희들 같은 도적놈들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 역적놈들은 뼈에 사무치게 증오한다! 난 네 놈들을 절대로 살려 둘 수가 없

다!"

순간 탁운백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 동시에 그의 녹슨 검이 바람을 그어댔다. 순간 시대관

인의 목이 달아났다. 그 머리가 허공에서 회전을 하더니 탁운백의 검에 꽂혔다. 그는 시대관

인의 머리를 다시 허공에 던져 그것을 검으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렇게 해야 다시는 환생할 수 없을 것이다!"

탁운백의 현란한 검법에 오혈궁 제자들은 아연실색하여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금나라 특사들 역시 마찬가지 꼴을 당하였다.

지금은 막강한 금나라가 송나라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을 때가 아닌가. 금나라 군사들은 사

기가 충천하여 보이는 게 없었다. 반면에 군기마저 황폐해진 송나라 군사들은 그저 도망치

기 일쑤였 다.

지금 이곳에 있던 두 사람은 금나라의 맹장들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야말로 용

감무쌍한 장수들이었다. 하지만 탁운백에게는 그들도 약간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알아주는 장수라는 점을 떠올렸는지 만도(彎刀)라는 칼을 뽑아 들고는 싸울 태세

를 취했다.

두 사람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탁운백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불과 일 합도 겨루어 보지 못하고 탁운백에게 칼을 빼앗겼다.

탁운백은 빼앗은 칼과 자신의 검을 그들 목에 갖다대고는 너털웃음을 토했다.

"우화하하하, 이래도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금나라 특사들은 끝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 금나라 특사들은 너희들 남방 오랑캐들에게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다. 송나라 관가에

서 알면 네 놈을 가만둘 것 같으냐?"

탁운백은 껄껄 웃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장단지를 걷어찼다. 두 사람이 앞으로 쓰러지며 자

연스럽게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런데 기를 쓰며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탁운백이 검으로 두

사람을 찍어 눌렸다.

탁운백은 두 사람이 쉽게 머리를 숙이지 않자 화가 났다. 그는 검과 칼을 지그시 누르기 시

작했다. 칼날이 두 사람의 살을 파고들면서 피가 뿜어졌다. 두 사람은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고 개를 숙였다.

"하하하, 이제 어쩌겠느냐? 금나라가 송나라에게 고개를 숙인 꼴이 되었으니 네 놈들은 돌

아가 무슨 낮으로 살아가겠느냐?"

탁운백이 빈정대듯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죽어도 굴복하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은 결국 무릎을 꿇게 된 셈이었다. 두 사람은 엎드린

채로 엉엉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탁운백이 칼을 들어 먼저 두 사람의 손목을 잘라 버렸다.

"아악!"

두 사람이 피를 뿜는 손목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렸다.

"아, 통쾌하도다. 금나라 도적놈들의 칼로 놈들의 손목을 베어 버리니, 이 어찌 통쾌하지 않

을 것이냐!"

그리고는 그는 또 두 사람의 발목을 내리쳤다.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탁운백 계속하여 두 사람의 사지를 차례대로 끊으며 고통을 주었다. 그러다가 단칼에 목을

잘라 죽여 버렸다.

오혈궁 제자들은 탁운백, 아니 절정공자가 흑풍쌍살보다 더 혹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는 혼비백산하여 다시 무릎을 꿇은 채 사정했다. 원래 세 번만 절을 하면 되었는데 그들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수십 번을 넘게 머리를 조아렸다. 오혈궁에 박혀 있던 그들이라 절정공

자의 애국심 따위는 모르고 그저 지독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금나라 특사를 죽인 탁운백은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는 다시 바람처럼 나무 위로 올

라가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살인에 이골이 난 흑풍쌍살은 탁운백의 행동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탁운백이 날

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매초풍은 그가 못내 부럽기만 하였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

려 버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사람의 무공을 따라잡으리라.'

그녀는 자기가 도화도에서 계속 무공을 닦고 있었다면 지금쯤 탁운백보다 더 나은 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그냥 남아 있었더라면 진현풍과 이렇

게 자유롭게 생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초풍은 자꾸만 사라져 버린 탁운백을 떠올렸다. 그는 냉혹하기는 하지만 큰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진현풍보다 영준하게 생겼고 소탈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무공이 뛰어나고 내공

역시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만약 소녀공으로 그의 체내에 있는 진기를 빨아들일 수만 있다

면……,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자 매초풍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녀는 곧 후회를 했다. 소녀공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 몸을 맡겨야 한다는 뜻임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상대가 탁운백이라고 여기니 온몸에 열기가 솟고 아

랫배가 갑자기 뿌듯해 오는 것이 아닌가. 가슴까지 방망이질을 해대고 있어 그녀는 남모르

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현풍은 그녀의 얼굴이 도화색으로 변해 가자 이상하게 여겨 이마를 짚어 보았다.

"사매, 몸에서 열이 나고 있어. 어디 아픈가?"

매초풍은 자신의 다리 사이가 어느새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열은 무슨 열이에요?"

창피한 심정을 감추려고 그녀는 짐짓 화를 냈다. 그리곤 앞으로 얼른 뛰어갔다.

"이 계집을 데리고 가야지?"

진현풍이 여소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난 싫으니 그냥 죽게 내버려둬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초풍이 앙칼진 소리를 던졌다.

"사매, 난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이젠……."

진현풍이 여소교를 죽이려고 막 손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정말 날 죽일 셈이에요?"

여소교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서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어쩌겠어. 할 수 없지."

여소교가 얼른 궁리를 짜냈다.

"언니가 한 말을 정말로 알고 있나요? 화가 나서 한 말이라구요. 저를 죽이고 나서 만약에

언니가 후회를 한다면 그땐 어쩔 셈이에요?"

여소교는 진현풍이 요즘 매초풍에 대한 사랑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매초풍을 무서워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여소교는 그런 말을 한 것이

었다.

역사 진현풍은 그 말에 주춤했다.

여소교는 속으로 이를 악물고 앞 옷섶을 풀어헤쳤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

었다.

진현풍은 여소교의 젖가슴을 보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매초풍과 같은 젊은 여인이었고

그녀 못지않은 탄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어쩐지 매초풍의 가슴보다 더 탐스럽고 매혹적

으로 보였다. 진현풍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욕의 불이 무섭게 붙기 시작했다.

그는 뜨거운 눈길로 여소교를 응시했다. 여소교가 몸을 비틀며 요염한 자세를 취했다.

"어때요? 이렇게 탐스러운 여인을 그저 죽이겠어요?"

진현풍이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어서 일어서!"

진현풍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소교는 얼른 옷을 여미며 일어섰다.

세 사람은 수림 속을 헤쳐 나가다가 큰길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멀리 인가가 보였다. 자

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삼십 리만 더 가면 태호(太湖) 부근이라고 했다.

흑풍쌍살은 여소교를 데리고 길 옆에 자리한 주루로 들어갔다. 다리도 쉴 겸 요기도 할 생

각이었다. 또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도 해야 했다.

이 마을은 인가도 꽤 많은 편이고 산도 높아 사람을 데려다 무공을 연마하기에 안성맞춤이

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점심 때라 주루엔 과객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타구봉(打拘捧)을 하나씩 들고 있는 거렁뱅이

들도 눈에 적었다. 거렁뱅이들은 모두 넷이었다.

거렁뱅이 네 사람은 흑풍쌍살을 몇 번 눈여겨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국수 한

그릇씩을 차지하고 앉아 열심히 먹기만 했다.

눈치 빠른 진현풍과 매초풍도 그 거렁뱅이들이 수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

고 술과 안주를 먹어댔다.

그런데 늙은 거렁뱅이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가 흑풍쌍살을 향해 읍을 했

다.

"가련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적선 좀 해주십시오."

진현풍이 빙그레 웃었다. 동전 몇 닢을 꺼내 늙은 거렁뱅이의 시커먼 손 위에 놓아 주었다.

늙은 거렁뱅이는 한 번 더 허리를 굽신거리며 물었다.

"고맙소이다. 헌데 공자님은 어디 분이신지요?"

"제주 사람이네."

진현풍은 거짓말로 둘러댔다.

"공자님의 호방한 성미로 미루어 봐서는 강호에 다니는 분 같은데요?"

"틀렸네. 우린 친척을 찾아온 길이네. 그 길에 장사도 좀 하고"

늙은 거렁뱅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탁자로 돌아갔다. 다른 거렁뱅이들과 뭐

라고 소곤거렸다.

'저것들이 우리 돈을 탐내고 있나? 흥, 그렇다면 좋다. 우리에게 어디 한번 당해 봐라.'

매초풍은 이렇게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문 입구에 중년의 남녀 도사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서른 살 안팎이

었고 회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얼굴이 백옥처럼 희고 눈썹이 길고 눈이 가는 편이었다. 턱

아래 수염은 세 갈래인데 선풍도골(仙風道骨)이었다.

반면에 여인은 사내보다 나이가 젊어 보였고 미인 축에 속하는 얼굴에 장청색(藏靑色) 도포

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모두 등에 보검을 메고 손에는 불진(拂塵)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탁자에 가 앉았다. 그들은 채소로 만든 요리 두 가지와

밥을 주문했다. 그들은 음식들이 나오자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영문이에요? 강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요? 어서 여기를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매초풍이 진현풍에게 속삭였다. 진현풍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곧 여소교를 데리고 밖

으로 나가려고 했다.

누군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전 그들에게 구걸했던 그 늙은 거렁뱅이였다.

"왜 이러나?"

진현풍이 노기 띤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막고 싶어서 막는 게 아니라 이 타구봉이 살인마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그런 것이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가?"

"동시 이 놈, 그래도 시치미를 떼겠느냐?"

늙은 거렁뱅이가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늙은 거렁뱅이가 자신의 별호를 부르자 진현풍은 곧 사태를 파악하고는 그에게 장을 날렸

다. 거렁뱅이 역시 그가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했다는 듯이 즉시 몸을 솟구쳐

공중제비를 하며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이 흑풍쌍살 놈들아, 어서 나와 목숨을 바쳐라!"

흑풍쌍살이 그를 쫓아 밖으로 날아갔다. 거렁뱅이 셋도 타구봉을 휘두르며 뒤따라 나왔다.

거렁뱅이 넷은 흑풍쌍살과 여소교를 순식간에 에워쌌다.

"너희들은 대체 어떤 놈이길래 우릴 건드리느냐?"

매초풍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우리는 정정당당한 개방의 제자들이다. 우리는 너희 같은 살인마를 죽이러 왔다. 잔말 말고

타구봉을 받아라!"

늙은 거렁뱅이가 타구봉을 진현풍에게로 향했다. 그 초식이 매우 날렵하고 빈틈이 없었다.

다른 세 명도 타군봉을 휘두르며 거리를 좁혀 왔다. 흑풍쌍살은 안간힘을 다해 그들과 맞섰

다. 하지만 여소교 때문에 자유자재로 몸을 쓸 수가 없었다.

흑풍쌍살이 산 사람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무림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개방에서도 이 소식을 접하고는 응징에 나섰던 것이다. 이 거렁뱅이

넷은 개방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에 속했다. 특히 늙은 거렁뱅이는 개방의 칠대 제자로서 이

름은 한대웅(韓大雄)이었다. 강북 통비권(通脣拳)의 우수한 제자이기도 했다. 그는 칠십이로

통비권(七十二路通臂拳)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강호에서 얼마간의 명성도 쌓고 있는 인물이

었다.

개방은 등에 지고 있는 자루의 수로 그 등급을 표시했다. 가장 높은 제자는 구대 제자인데

등에 아흡 개의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 다음이 팔대, 칠대로 그 서열을 두었다. 그리고 개

방에 갓 들 어온 제자들은 일대 제자라 불렀다.

한대웅은 비록 칠대 제자이긴 하지만 무공에 있어서는 어떤 제자들보다 뛰어났다. 다른 세

명의 거렁뱅이는 오대 제자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음……."

진현풍과 매초풍은 큰 낭패를 만난 셈이었다.

강호를 다니면서 흑풍쌍살은 무림의 정파와 사파가 원수지간임을 알기에 매번 개방이 활약

하는 곳은 피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흑풍쌍살의 신분을 알고 있는 한대웅은 자기 수하들에게 말했다.

"어서 타구진(打拘陳)을 쳐라!"

그러자 거렁뱅이 셋은 사방으로 흩어져 타구봉으로 땅을 딱딱 두드리며 동냥할 때 부르는

<연화락(蓮花落)>을 불렀다.

사실 무공을 놓고 보자면 흑풍쌍살도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개방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추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한대웅의 고함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거렁뱅이 넷이 타구봉을 동시에 앞으로 내밀며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도중에 타구봉으로 땅을 내리치며 그 끝으로 흑풍쌍살의 발목을 공격

해 왔다. 흑풍쌍살이 얼른 뒤로 피했다.

타구진은 개방이 강적을 칠 때 쓰는 진법이었다. 적으면 서넛이, 많을 때는 수백 명이 이 진

을 치고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그 기세가 엄청나서 웬만한 고수들도 다 당하고 말았다. 그

들은 수백 명의 타구진으로 금군 삼천을 이긴 적도 있었다.

한대웅은 오대 제자들을 지휘하면서 그 무서운 타구진을 펼쳤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숫적으로 약간 모자랐다. 타구진의 위력이 완벽하게 발휘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초수는 흑풍쌍살을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다.

한대웅이 또 소리쳤다.

"천층봉영구무로(千層捧拘無路)를 펼쳐라!"

이건 타구진에서도 가장 위력 있는 초수였다. 타구봉 네 개를 동시에 휘둘러 흑풍쌍살을 어

지럽히고는 다른 두 개로 동시에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한대웅과 나머지 거렁뱅이들은 조금 위축되

었다.

겨우 위기를 모면한 흑풍쌍살은 그들이 다소 위축된 것을 눈치채고는 여유를 부렸다. 달려

드는 타구봉을 손으로 가볍게 받은 진현풍이 힘껏 뿌렸다. 옆에 있던 매초풍도 독룡은편을

꺼내 한 대웅을 후려갈겼다. 채찍 끝이 한대웅에게로 날아갔다. 순간 한대웅이 타구봉으로

채찍을 막으며 동시에 매초풍의 옆구리를 찔렀다.

독룡은편은 뱀같이 휘어지며 날아가는 채찍에 속했다. 하지만 거렁뱅이들의 타구봉은 독사

를 잡는 데 능한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득룡은편은 한대웅에게는 큰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매초풍은 여소교를 보호하면서 연신 채찍을 휘둘러댔다. 그녀는 채찍이 별소용이 없음을 알

고는 구음백골조를 쓰기 시작했다.

다른 쪽에서는 오대 제자들이 진현풍에게 타구봉을 빼앗기고는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들

은 적수공원으로 진현풍과 맞섰다. 물론 그들은 진현풍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들로서는 공

격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방어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진현풍은 갈고리처럼 만든 손으로 그들 가운데 하나를 덮쳤다.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

을 빼앗겼다. 다행히 옷자락만 북 하고 찢어졌다. 진현풍은 한걸음에 달려들어 한 손으로 상

대의 주먹 공격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때 그의 뒤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급히 돌아보니 두 치 길이의 독사 한 마리가 화살

처럼 날아오는 게 아닌가. 진현풍이 급히 물러서며 비수를 꺼내 독사를 토막내 버렸다.

"어느 놈의 짓이냐?"

진현풍이 소리쳤다.

"하하하, 동시가 뱀을 다 무서워하더냐?"

매초풍과 싸우던 한대웅이 냉소를 보냈다.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자루에서 또 한 마리의 독

사를 꺼내 진현풍에게로 던졌다. 진현풍이 다시 비수로 독사를 물리쳤다.

이번에는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왔다. 날름거리는 독사의 혀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나머지 거렁뱅이들도 뱀을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

진현풍의 비수가 허공에서 요란하게 빛을 발했다. 조각 난 독사가 후드득 진현풍 발 아래로

떨어졌다.

"아직도 남았느냐? 어서 다 던져 봐라!"

그러자 거렁뱅이들이 잡히는 대로 독사를 꺼내 던졌다. 그들은 제독을 해독하는 약을 지니

고 있었기에 겁이 없었다. 진현풍이 번개같이 몸을 띄우며 날아드는 독사를 모두 조각 내었

다.

독사가 바닥이 나자 그들은 이번엔 몸에 지녔던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다. 비수를 거둔 진현

풍이 두 손을 들었다. 뼈마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렁뱅이들은 간담이 써늘해져서

잠시 동작을 멈췄다. 진현풍이 기를 모으더니 곧장 최심장을 날렸다.

강한 기류가 갑자기 몰려오자 오대 제자들은 뒤로 피하며 남은 단검을 던졌다. 진현풍이 달

려들며 그들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구음백골조로 손가락 열 개가 송곳같이 그들의 손목에

들어가 박혔다.

"악!"

거렁뱅이 둘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꺾었다. 그러면서도 주먹을 내뻗었다. 진현풍이 주

먹을 피하며 두 사람의 가슴을 향해 장을 날렸다.

이 순간 불진 두 개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진현풍의 두 손을 휘감더니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진현풍이 놀라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불진 두 개가 끊어졌다.

아까 그 한 쌍의 도사가 던진 것이었다. 그들은 진현풍을 차가운 눈길로 쏘아보고 한마디

던졌다.

"힘이 제법이군!"

거렁뱅이들이 그 도사에게 허리를 숙였다. 도사가 빙그레 웃었다.

"한편끼리 고마울 게 뭐 있소 나는 귀 방의 홍 방주를 매우 존경하는 사람올시다."

이때 매초풍이 한대웅을 놔두고 여소교를 끌고 진현풍에게로 급히 달려왔다.

"저것들은 또 어디서 굴러온 놈들이죠? 죽지 못해서 환장을 한 모양이에요."

"소저는 젊은 나이에 어찌 그렇게도 사람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으시나?"

여 도사가 말했다.

한대웅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도사들에게 읍을 했다.

"저는 개방 칠대 제자 한대웅올시다. 두 도사님께선 어디서 오시는 길인지요? 나중에 찾아

가 고마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사부님과 귀하의 사부님은 벗이오. 그런 말씀 마시오."

"그렇다면 그쪽의 사부님께선……?"

"저희 사부님은 전진교 왕 진인(王眞人)올시다."

한대웅은 놀랍고도 반가웠다.

"그렇다면 두 분은 전진교 문하에 계시는 분이시겠군요. 두 분의 법호는 어떻게 쓰시는지

요?"

"나는 마옥(馬鈺)이고, 이 사람은 내 사매인 손불이(孫不二)라고 하오."

마옥과 손불이는 도가에 입문하기 전에는 부부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사형과 사매로

부르고 있었다.

한대웅과 나머지 거렁뱅이들은 다시 한 번 절을 했다. 마옥과 손불이도 급히 답례를 했다.

손불이가 물었다.

"그런데 개방은 저 흑풍쌍살과 무슨 원수를 졌는지요?"

한대웅이 흑풍쌍살 쪽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저 동시와 철시는 살인자들입니다. 저 놈들은 생사람을 잡아 다가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을

수련하곤 했는데 그 바람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를 갈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 놈들을 얼마나 저주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오늘 저런 놈들을 만났으니 어디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매초풍이 그 말에 깔깔 웃어댔다.

"오호호호, 그럼 네 놈들이 그까짓 재간으로 우릴 죽이겠다는게냐?"

한대웅이 그 말에 타구봉을 틀어쥐며 매서운 눈초리를 만들었다.

마옥이 그를 제지하며 끼여들었다.

"동시와 철시의 악행은 나도 들었다만, 너희들은 본래 도화도의 제자들이 아니냐? 어떻게

되어 강호까지 나와 이런 짓들을 하느냐?"

마옥의 말에 손불이도 나섰다.

"장춘자 구처기 사형도 너희들이 소저 하나를 빼앗아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던데……. 그래

그 소저가 바로……?"

여소교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매초풍의 손에 잡혀 있는 여소교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녀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손불이의 말에 매초풍이 톡 쏘았다.

"그렇다! 어쩌겠느냐?"

제6장 소요공자와 그의 여인들

마옥은 순박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사내였다.

손불이는 성미가 좀 급한 편이긴 하지만 예전아 남편이었던 마옥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조

심성 있게 처신하는 여인이었다.

"우리 출가한 사람들은 자비를 우선으로 하기에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대신 저 소저를 내

놓아라!"

손불이가 한껏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매초풍은 여전히 냉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

"날 이겨야만 한다."

전진칠자에게 감히 도전을 하는 사람은 강호에서 불과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매초풍이 나

선 것이었다. 손불이는 부아가 치밀었다.

"좋다, 우리 전진교의 무공을 보여주마!"

손불이는 곧장 매초풍을 향해 장을 내뿜었다.

매초풍이 얼른 장을 피하며 갈고리로 만든 손을 높이 쳐들며 달려들었다. 손불이가 얼른 옆

으로 몸을 숙이며 매초풍의 아랫배를 질렀다. 매초풍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공중으로 어느새

치솟으며 손불이의 얼굴을 향해 장을 뿌렸다.

장이 터질 때마다 흙바람이 일었다. 매초풍의 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손불이는 조심하

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수십 합을 넘게 싸웠다. 차츰 매초풍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손불이의 무공은 구처기보다는 못한 편이었다. 구처기 무공은 악처후와 거의 비슷했다. 하지

만 악처후의 무공은 흑풍쌍살에 비하면 그다지 나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손불이가 매초

풍을 쉽게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매초풍은 소리를 연신 지르며 갈고리 같은 두 손으로 구음백골조를 쓰려 했다. 그녀는 손불

이의 머리를 움켜쥐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린 손불이는 겨

우 몸을 피했다.

참지 못한 손불이가 드디어 장검을 뽑아 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전진검법이었다. 바로 선인

지로(仙人指路)의 초수였다.

매초풍은 코웃음을 날리며 슬쩍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다른 병장기는 사용하지 않았

다. 오로지 양손으로 손불이의 두개 골에 구멍을 낼 심사였다.

손불이의 전진검법도 매초풍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마옥이 매초풍과 손불이 사이로 뛰어들었다. 마옥은 매초풍의 손을 노려 힘껏 차버렸다.

"사매, 어서 물러나!"

마옥이 소리쳤다. 손불이가 얼른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매초풍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두 사람은 금슬 좋은 부부였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부럽군. 그렇게

붙어다니니 정말 부러워."

진현풍도 비아냥거렸다.

"아무리 도사라고 하지만 어디 밤에는 도도하게 그냥 잘 수 있겠어?"

참을성 많은 마옥이었지만 그 말에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매초풍을 향해 장을

날렸다.

상대의 초수를 알지 못한 매초풍은 그저 평범한 장으로 알고 피했다. 그러자 마옥이 뒤를

이어 한 장 더 뿌렸다. 그것은 곧장 매초풍의 왼쪽 어깨를 향해 휘몰아쳤다.

매초풍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오른손으로 마옥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또 왼손으로는 마

옥의 가슴을 노렸다. 이때 마옥은 장을 쓴 손을 얼른 거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순간 매

초풍에게 당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마옥이 장을 내민 손을 당기며 매초풍의 오른쪽 팔꿈치의 곡지혈(曲池穴)을 쳤다. 매초풍은

마음을 놓으며 오른팔을 거두고 왼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마옥의 얼굴을 움켜쥐려고 했다.

두 사람은 사오십 합이 넘게 싸웠다. 매초풍의 무공은 사악하고 교활했다. 반면 마옥의 무공

은 깊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

한대웅이 외쳤다.

"저런 악마들에겐 강호의 도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요절을 내라!"

그러자 거렁뱅이들이 다시 타구봉을 휘저으며 진현풍에게로 돌진해 갔다.

손불이도 약간 망설이더니 검을 꼬나들고 매초풍에게 공격했다. 가뜩이나 마옥과 싸우는 것

이 생각처럼 되지 않던 차에 손볼 이까지 합세하니 매초풍은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진현풍은 개방의 제자들을 장으로 내치고는 얼른 손을 여소교의 목에 갖다 댔다.

"이 놈들, 또 달려들면 이 계집을 당장 죽일 것이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동작을 멈췄다.

진현풍은 여소교의 목에 손을 댄 채 그녀를 안고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매초풍도 그를

따라 자리를 옮기며 소리쳤다.

"한 발짝이라도 따라오면 이 계집을 죽일테다!"

한대웅이 안타까워 자기 가슴을 쳐댔다.

"저 사악한 연놈들을 그대로 보내다니……, 분하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도 어쩌지를 못하고 속수무책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매초풍이 안전하게 거리를 확보하자 이쪽에 대고 빈정댔다.

"이 거렁뱅이야, 그렇게 분하면 와 봐라. 우린 끝까지 개방과 전진교를 상대로 싸울 것이

다!"

그리곤 유유히 멀어져 갔다.

이때였다. 쌍지팡이를 짚은 젊은 사내 하나와 거인 하나가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멀리 사라

져 가는 흑풍쌍살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이 이를 바드득 갈아했다.

"어디 두고 보자. 네 놈들이 얼마나 더 그 짓거리를 하는지!"

한대웅이 읍을 하며 물었다.

"흑풍쌍살과 어떤 원한이라도……?"

"놈들은 우리와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들이오. 우리의 원수일 뿐 아니라 사부님을

배신한 놈들이오."

젊은 사내가 말하자 거인도 한마디했다.

"이 사람은 도화도 도주 황 선배님의 제자인 육승풍이고, 저는 막가권의 장문 막여인입니다.

우린 오래 전부터 저 흑풍쌍살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마옥이 육승풍에게 읍을 했다.

"그러고 보니 육세형(陸世兄)이 아니십니까?"

"아. 마 도장님! 잘되었습니다. 우진 힘을 모아 저 놈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한대웅도 그 말에 동조를 했다.

"우리 개방 사람들도 흑풍쌍살을 꼭 처단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육 공자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마 도장님, 전진교에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옥이 좀 머뭇거렸다. 대신 대답하고 나선 것은 손불이였다.

"물론 우리도 나서야지요 구차기 사형과 왕 사형도 이 일을 알면 꼭 찬성을 할 겁니다."

도를 닦는 사랑의 조용한 성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마옥도 그 말에는 잠자코 묵인을 했

다.

흑풍쌍살은 십 리 밖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태호 주변에 이르러서야 숨을 가다듬었다. 매초

풍은 여소교를 등에서 내려놓으며 입을 놀렸다.

"망할 계집, 내가 네 년의 말이 되었구나."

"피, 내가 언제 업어 달라고 했어요?"

풀밭에 길게 누우며 여소교가 투덜거렸다.

"개방 거렁뱅이와 전진교 놈들, 어디 두고 보자!"

매초풍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약이 올라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언니는 말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한 사람은 자청해서 할걸요."

여소교가 입술을 꼼지락대며 말했다.

"누구?"

"저분……."

여소교가 가리칸 사람은 진현풍이었다.

"허튼소리……!"

그러자 여소교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는 배를 움켜잡았다.

"저 사람은 날 업고 싶어도 언니가 시샘을 할까 봐 싫다고 할 거예요."

그러자 매초풍이 여소교의 뺨을 후려쳤다.

"요 발칙한 년, 또 그 따위로 주둥이를 놀려댔다가는 네 년의 간을 빼내 찢어발겨 버릴 거

다!"

여소교는 뺨을 감싸 쥐고는 훌쩍훌쩍 어깨를 들썩거렸다.

"사매, 그럴 것까지 없잖아?"

진현풍이 여소교를 두둔하고 나섰다.

"왜 가슴이 아픈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말은 그런 일에 화를 내면 몸만 상한다는 뜻이야. 그대를 생각해

서 하는 말인데……."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

"사매, 이제 태호만 건너면 소요관인데 여소교를 정말 악처후에게 넘길 셈인가?"

진현풍이 얼른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정이 깊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해야지요."

그 말에 뜻밖에도 진현풍이 탄식을 했다.

"소요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여인을 노리갯감으로만 아는 사람이라구. 그런

데……, 소요공자가 여소교를 실컷 데리고 놀다가 버리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틀렸어. 만약에

그가 정말로 여소교를 사랑하고 있다면 어쩌겠어?"

"그런 염려는 마세요. 소요공자가 한 계집을 석 달 이상 데리고 노는 걸 봤어요? 그가 여소

교를 사랑하는 척하는 목적은 따로 있다구요. 여소교를 데리고 재미 좀 보겠다는 것도 있지

만 원래 목적은 소녀공을 알아내려고 그런 거라구요."

"그렇다면 결국엔 악처후가 소녀공을 알도록 내버려두겠다는 거야?"

매초풍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속으로 그녀는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소녀공은 여인이 사내의 진기를 빨아내는 채양보음지술인데 악처후가 알아내야 무슨 소용

이 있단 말인가. 악처후가 여인으로 변한다면 또 모를까!'

푸른 태호의 수면 위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눈부신 오후의 태양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은

빛 주단을 깔아 놓은 듯했다.

진현풍이 일어서며 소리쳤다.

"사공, 배를 이리로 대시오!"

배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노를 젓는 사람은 반백의 늙은이였다. 몸엔 도롱이를 걸치고

불그레한 얼굴에 근엄함이 약간 있어 보였다.

"건강한 늙은이인데. 내가 저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몸이 좋을 수 있을까?"

진현풍은 노인을 부러워하며 중얼거렸다.

늙은 사공이 배를 기슭에 대고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태호의 경치를 구경하려고 그러십니까요?"

"아니오, 태호의 서안에 가려고 합니다."

늙은 사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창 안에 대고 소리쳤다.

"아생아, 어서 나오지 못해!"

그러자 선창 안에서 열일곱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년이 뛰어나 왔다. 잠방이에 위에는 소매

가 없는 등걸이만 걸친 소년은 근육이 제법 불거져 있어 건장해 보였다. 소년은 튼튼한 팔

로 널판지 하나를 들어다가 배와 기슭 사이에 놓았다. 그리고는 흑풍쌍살과 여소교를 보곤

하얀 이를 가지런하게 내보이며 히죽 웃었다.

세 사람은 널판지를 타고 배 위로 올라섰다.

"서안까지 이십 문(文)인데요."

늙은 사공이 뱃삯을 불렸다.

"돈은 염려 마시오."

진현풍이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는 태호를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넓은 수면을 보니 동해 도

화도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널판지를 올리고 소년이 삿대를 힘껏 밀자 배가 수면 위로 미끄러져 갔다.

"밖에 늪바람이 세니 선창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 안에서도 풍경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요.

창문이 있으니까요."

아은 사공의 말에 매초풍과 진현풍은 여소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서안에 가면 악처후를 만나게 될 게다."

매초풍의 말에 여소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이에요?"

"악처후가 있는 곳이 바로 소요관인데 바로 저기에 있거든. 어서 화장이나 좀 해라."

여소교는 가슴이 뛰었다. 악처후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매

초풍은 그런 여소교의 심정을 읽고는 입가에 보일 듯 말듯한 비웃음을 실었다.

배가 호수 중간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득 사공이 노를 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 진현풍

이 물었다.

"왜 배를 세우시오?"

늙은 사공이 헤헤 웃으며 딴전을 피웠다.

"소요관에 있는 소요공자님이 어떤 분인지 아시우?"

"그렇다면 노인도 강호 사람이군요?"

매초풍이 반색을 하자 늙은 사공은 수염을 내리쓸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눈치가 제법이군!"

흑풍쌍살은 늙은 사공의 어투가 변한 것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그런데 뱃머리에서 있던 소

년도 다가와 한마디 툭 던졌다.

"예쁜 계집이 둘씩입니다요. 꽃같이 어여쁜 계집이……."

"오늘은 복이 통째로 굴러들어왔어."

"늙은 자라, 당신은 여인이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사람이니까……."

"아직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놈이 감히! 작은 게, 넌 딴생각하지 마. 저 두 계집은 모두

내 차지라는 걸 명심해!"

"글쎄, 다른 계집이면 몰라도 저 두 계집은 안 되겠어요. 내가 왜 넘겨줘요?"

그들은 그들의 별명인 듯한 늙은 자라와 작은 게라고 서로를 호칭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은 솟구치는 화를 애써 참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들어 보니, 노인은 그런 일에 경험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째 저 소년은……?"

"그런 말 마시오. 나 작은 게는 이제 열일곱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여인들 배꼽 위에서 뛰오

논 지는 벌써 서너 해도 넘는다우."

소년이 이죽거리며 다가와 매초풍의 뺨을 만지려고 했다. 매초풍이 소년에게 살짝 눈을 흘

겼다. 소년, 아니 작은 게는 그만 그 자태에 정신이 아찔해져 히히 웃었다. 그리곤 얼른 매

초풍의 뺨에 손을 갖다 댔다. 순간 손목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아 소년은 얼른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어느새 매초풍의 매끈한 다섯 손가락 이 소년의 손목에 박혀 있었다.

매초풍이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죽었다. 그러자 소년의 손목이 끊어지면서 피가 솟구쳤다.

"어어……!"

매초풍이 소년을 옆으로 휙 밀었다. 소년은 어어 하는 소리만 내지르다가 호수에 처박혔다.

금방 호수가 피로 물들었다.

"이런 지독한 계집이 있냐!"

늙은 자라가 놀라 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순간 진현풍이 장을 한차례 날렸다. 눈치 빠른

늙은 자라는 얼른 몸을 날려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어느새 물 속으로 가라앉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출렁이는 물결 위로 핏물만 점점 엷

게 번져 가고 있었다.

"분명 물 속으로 달아난 것 같아!"

매초풍이 고개를 내젓고 있는데 갑자기 선창 안에서 여소교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 왔다.

"물이 새요!"

흑풍쌍살은 급히 선창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창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 물

이 무서운 속도로 들어왔다.

매초풍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구멍은 놈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해!"

"자기들 배일 텐데 아깝지도 않은가 봐!"

여소교가 그들을 따라 선창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배를 마음대로 가라앉혔다가 다시 끌어올리는 재간도 갖고 있어."

진현풍이 짐작되는 바를 얘기했다. 그러자 여소교가 눈웃음을 치며 그를 칭찬했다.

"오라버니는 아는 것도 많네요."

진현풍이 우쭐해서 헤헤 웃었다.

"강호에 다니는 사람인데 그쯤이야 기본이지. 내 언제 시간이 있으면 강호에 대한 여러 가

지 얘기를 들려주지."

"참, 우리가 저 구멍을 막으면 될 게 아니에요?"

여소교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매초풍이 가소롭다는 듯이 면박을 주었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난리군. 이런 도적놈들 배는 배 밑에 언제나 망치와 끌을 달고 다니지. 지

금쯤은 아마 그들이 망치와 끌을 풀어 지니고 있을 거야. 우리가 구멍을 막으면 놈들은 다

시 여러개의 구멍을 뚫을지도 몰라."

아닌게아니라 조금 후에 호수 위로 두 개의 머리가 튀어올랐다. 늙은 사공과 소년이었다. 그

들의 손엔 정말 망치와 끌이 쥐어져 있었다. 이쪽에 대고 그들이 고함쳤다.

"잘 봤겠지? 그래도 항복하지 않겠어?"

매초풍이 침을 탁 뱉었다.

"이 할미가 네깐 놈들이 무서워 항복할 것 같으냐? 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 내가 귀여워해

줄테니!"

그러자 늙은 자라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반백의 머리를 가로로 저었다.

"미쳤어. 너희들은 이제 물을 실컷 먹고는 쭉 뻗을 것이다. 그 때 가서 재미를 봐도 늦지 않

을텐데."

소년도 한마디 보탰다.

"나도 그때 재미를 봐야지. 안심하라구.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네 년들처럼 예쁜 계집들을

왜 죽여? 평생 데리고 놀아도 부족 할텐데."

선창에는 물이 자꾸만 차올랐다. 배는 점차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세 사람의 발목까지 물

이 차올랐다.

겁에 질린 여소교가 진현풍의 팔에 매달렸다.

"어떡해요?"

진현풍은 사내답게 여유를 찾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겁내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지 않느냐?"

매초풍은 두 사람의 수작에 배알이 뒤틀렸다. 그녀는 여소교의 팔을 확 비틀었다.

"망할 년,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 바람에 배가 뒤뚱거렸다.

"어어……."

순식간에 배가 뒤집혔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여소교는 사지를 내저으며 연신 물을 먹었다. 하는 수 없이 매초풍이

여소교의 사지 혈도를 눌러 등에 업고는 헤엄을 쳤다.

"이봐 작은 게야, 이거 난처하게 되었는걸. 저것들이 가라앉지를 않고 헤엄을 치고 있잖아?"

늙은 자라가 투덜댔다. 작은 게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저런 헤엄으론 얼마 못 가서 늘어진다구요."

그 말에 늙은 자라가 눈을 번쩍 떴다.

"하긴 네 말도 옳다. 물에서야 우리에게 당할 자가 없지. 저년이 네 손목을 끊어 놓았으니,

넌 저 년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려라."

두 사람이 서서히 흑풍쌍살에게로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진현풍이 말했다.

"놈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러게요. 우린 동해 바다에서도 나비처럼 헤엄치며 살았는데 이 정도야……!"

둘 사람은 크게 웃었다.

이때 늙은 자라와 작은 게는 물 속으로 헤엄쳐 두 사람에게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막 흑풍쌍살의 다리를 아래서 잡아당길 판이었다.

"난 여소교를 돌봐야 하니까, 당신 혼자서 저 두 놈을 처치하세요."

매초풍의 말에 진현풍이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짓더니 자맥질을 시작했다. 물 속으로 들어간

진혈풍은 늙은 자라와 작은 게를 찾았다.

진현풍의 능숙한 헤엄 솜씨를 본 늙은 자라와 작은 게는 몹시 놀랐다. 그래도 그들을 어렸

을 때부터 태호에서 자란 자신들의 실력을 과신했다. 두 사람은 양쪽에서 진현풍을 협공하

려고 슬슬 다가왔다.

진현풍이 기다리고 있다가 번개같이 작은 게를 덮쳤다. 작은 게는 뭐라고 욕을 퍼부으려다

가 얼른 잠수를 했다. 그 틈에 늙은 자라가 진현풍의 뒤를 쫓아왔다. 들고 있던 쇠망치로 진

현풍의 머리를 막 내리치려고 할 때였다. 진현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으로 쇠망치를 받

아 쥐었다. 그리곤 힘껏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늙은 자라의 몸이 이끌려 질현풍 앞으로 옮

겨 왔다.

그런데 이때 다시 헤엄쳐 온 작은 게가 왼손에 든 끌로 진현풍을 찔렀다. 진현풍이 급히 늙

은 자라를 방패로 삼았다.

"악!"

작은 개의 끌은 늙은 자라의 엉덩이에 박혀 버렸다. 작은 게가 급히 끌을 뽑은 덕분에 늙은

자라는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

댔다. 그 바람에 그는 많은 물을 먹게 되었다.

화가 난 진현풍이 쇠망치를 빼앗아 늙은 자라의 이마를 후려쳤다. 화들짝 놀란 늙은 자라는

급히 달아났다.

물 안에 있는 시간이 오래 되자 늙은 자라와 작은 게는 숨이 차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수

시로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었다.

하지만 내공이 센 진현풍은 물 속에서 한 시간도 버틸 수가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다리를

하나씩 거머쥐고는 천 근의 힘으로 잡아당겼다. 늙은 자라와 작은 게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

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에겐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연신 물을

먹었다.

진현풍은 두 사람에게 실컷 물을 먹인 다음 물 위로 끌고 올라왔다. 얼굴색이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시퍼렇게 변한 두 사람은 맥없이 축 늘어졌다.

그 꼴을 보고 매초풍이 고소해서 까르르 웃었다.

"오호호, 자라와 게도 물을 무서워하네."

두 사람이 먹은 물을 토해 내고 겨우 정신을 차리자 진현풍이 위엄 있게 말했다.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다. 어떤가? 따를텐가?"

"한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 아니 백 가지라도 해드리겠습니다요."

늙은 자라는 아직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사정을 했다. 작은 게도 마찬가지였다.

"꼭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손자 놈입니다."

매초풍이 한마디 던졌다.

"너희 같은 색마들을 손자로 삼을 우리가 아니다. 다른 일이 아니라 가라앉은 배를 다시 띄

워 우리를 태워 달라는 거다. 그러면 너희들을 살려 주겠다."

"두 분의 존함이……?"

늙은 자라가 읍을 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린 흑풍쌍살, 동시와 철시다!"

그러자 늙은 자라와 작은 게는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두말없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 가라앉

은 배를 찾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배는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흑풍쌍살을 알아본 두 사람은 숨도 크게 못 쉬며 설설 기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쥐도 새

도 모르게 죽는다는 것을 두 사람은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늙은 자라!"

매초풍이 그를 불렸다.

"예, 소인 여기 대령했습니다요."

늙은 자라가 급히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아까 넌 우리가 소요공자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지? 그래 너희들은 그자와 어떤 관

계냐?"

"소인들은 소요출자의 부하들인데 태호의 동정을 살피는 소임을 맡고 있사옵니다요."

"그래서 이따위로 순찰을 하는 게냐?"

진현풍이 코방귀를 날렸다. 그 말에 늙은 자라가 비위 좋게 히히 웃으며 번죽을 떨었다.

"예, 이따금씩 밑천 안 들이는 장사를 좀 하지요 다른 재미도 좀 보고오."

"나쁜 놈들!"

늙은 자라가 계속 히죽거리며 너스레를 떨자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부은 것은 놀랍게도 여소

교였다.

"아이구 죄송합니다요"

늙은 자라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여소교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여인은 장차 네 주인의 부인이 될 몸이시다."

진현풍이 설명해 주자 늙은 자라가 다시 한 번 여소교를 살펴 보았다.

"믿을 수가 없는뎁쇼. 소요공자님께서는 어떤 여인과도 사흘을 넘게 있어 본 적이 없는

데……."

여소교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냐?"

매초풍이 얼른 눈짓으로 늙은 자라를 나무랐다. 그리곤 여소교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소요공자가 풍류객이긴 하지만 마음씨는 비단결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언니가 너를 왜 이

곳까지 데리고 왔겠어?"

그러자 눈치 빠른 작은 게가 헤헤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물론이지요. 요사이 우리 공자님이 늘 우울하시던데 이제 보니 이분을 기다리느라고 그러

신 모양입니다."

이윽고 배가 태호 서안에 이르렀다.

청산녹수(靑山綠水)에 꽃들이 만개한 경치 좋은 곳이었다. 배에서 내린 흑풍쌍살은 걸어가면

서 소요공자가 아주 명소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붉은 담장에 둘러싸인, 처마가 아주 높은 기와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대문 위에 '소요관(逍遙館)'이란 세 글자를 금빛으로 써놓은 편액이 보였다.

대문 양옆에는 돌사자가 한 마리 씩 있었고 그 곁에는 위풍이 당당한 거인이 한 명씩 서 있

었다.

'소요관'이란 편액을 보자 여소교의 마음은 어느새 악처후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봐 늙은 자라, 오늘은 사냥감이 좋은데?"

문을 지키고 있던 거인 하나가 늙은 자라를 보고 물었다. 그의 시선은 매초풍과 여소교의

풍만한 가슴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늙은 자라가 대답하려는 것을 막고 진현풍이 소리쳤다.

"여씨네 가문에서 소저가 왔다고 소요공자께 알리시오!"

그러자 문을 지키고 있던 거인이 다른 거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약간 늙은 사내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늙은 자라는 진현풍의 매서운 눈초리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아 옴쭉달싹하지 못했

다.

"어서 이분 말씀대로 전하기나 해."

늙은 자라가 주눅든 목소리로 다그쳤다.

거인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악처후가 부하 여덟을 데리고 나타났다. 부하들은 각기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날카

로운 눈빛만은 한결같았다. 소요관의 팔대 금강(八大金剛)이라 일컫는 고수들이었다.

흑풍쌍살을 발견한 악처후가 흠칫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매초풍 곁에 서 있는 여소교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진 공자님과 매 소저가 오셨군요. 여 소저를 데리고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순간 여소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자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애닯은

가슴만 쓸어안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그동안 겪은 고생이 떠올라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

려고 했다. 여소교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악처후가 얼른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흑풍쌍살이 아무래도 무슨 계략을

숨겨 놓은 것 같아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소저, 왜 그러시오?"

매초풍이 여소교를 안으며 대신 대꾸했다.

"소요공자를 만나니 너무 좋아 안 그러나?"

악처후가 두 팔을 벌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 이리로 와요."

여소교가 겨우 눈을 뜨고는 매초풍을 바라보았다.

"정말 가도 돼요?"

"그럼, 물론이지."

여소교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이내 악처후에게로 달려갔다.

악처후도 앞으로 달려나오려 여소교를 안으려고 했다. 이때 매초풍이 번개처럼 날아와 여소

교의 앞을 가로막았다. 악처후가 사태를 짐작하고는 장을 날렸다. 매초풍도 재빨리 몸을 숙

이면서 장으로 맞섰다.

장과 장이 마주치며 사방에 흙바람이 일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장에 밀려 뒤로 멀리 미끄

러져 갔다.

여소교는 이미 매초풍의 손에 잡혀 있는 뒤였다.

"매초풍, 대체 어쩌겠다는 게냐?"

악처후가 눈을 부라렸다. 매초풍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가지 묻겠소. 여씨네 가문은 모두 몰살당하고 이 소저만 남았는데 소요공자께선 어떻게

보살펴 주실지 궁금하오?"

"나 악처후를 세 살 먹은 어린아이로 아시오? 그 소저를 어떻게 보살피든 그건 내 일이니

간섭하지 마시오?"

"우린 잔칫술을 얻어먹을 일만 기다리겠소. 풍류객인 소요공자가 정말 한 소저에게만 정을

붙이는지 두고 보겠소."

매초풍이 여소교를 소요공자에게로 밀었다. 여소교를 급히 받아 안은 악처후가 부드럽게 물

었다.

"어떻소 괜찮아요?"

악처후의 품에 안긴 여소교는 너무 행복해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봄밤의 한 시각은 천금이라고 하던데 잘들 있으시오. 우린 이만……."

매초풍이 깔깔 웃으며 한마디 던지고는 진현풍과 함께 돌아섰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훌쩍

몸을 날려 그 자리를 떠났다.

"공자님, 바로 저것들이 흑풍쌍살입니다요. 어서 쫓아가서 죽여 버리든지 할 게 아닙니까

요?"

이때서야 늙은 자라가 호들갑을 헐었다.

"쫓아가 죽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저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네."

악처후가 웃으면서 여소교를 안고는 돌아섰다.

소요공자가 오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을 거라 예견했는지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각자 흩어졌다.

악처후는 여소교를 품에 안고 화원에 있는 누각으로 갔다. 악처후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

가 떠나지를 않았다.

아리따운 시녀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두 사람을 맞았다.

"공자님께서 또 미인을 얻으셨네. 축하해요. 호호호……!"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소리에 악처후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시녀들의 볼을 살짝 꼬집

었다.

"실없는 소리. 이 소저는 너희들 주인이 되실 몸이시다. 어서 정중히 모셔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려라."

"아니, 전……."

여소교가 부끄러움에 몸을 꼬았다. 악처후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여긴 안전한 곳이니 안심을 하시오. 어서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어요. 그런 다음에 우

리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눕시다."

비로소 안심을 한 여소교는 두 시녀를 따라갔다.

여소교가 몸을 씻는 모습을 상상하던 악처후가 하인들에게 분부했다.

"어서 누각에다 주안상을 마련해라!"

저녁에 악처후는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나온 여소교의 손을 이끌고 누각으로 갔다. 누각에

는 주안상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에 분홍색 명사옷을 입은 여소교의 한들거리는 자태는 아

주 매혹적이었다.

"자, 앉아요."

좀처럼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못하는 악처후가 권했다. 여소교가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악처후가 그녀 곁으로 옮겨 앉으며 시녀들을 물렸다.

두 사람은 술잔을 들어 만남을 자축하는 건배를 했다.

처음에는 서로 농을 주고받다가 차츰 침울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여소교는 그동안 흑풍쌍살

에게 겪은 고초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곤 서럽게 울었다. 악처후는 그녀를 위로하는 척하

면서 자꾸만 술을 권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소교는 취기로 눈앞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저, 전 취했나 봐요."

악처후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바싹 끌어안았다.

"나도 취했소. 난 그대를 보자마자 취했는걸."

부끄러움으로 여소교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양손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

굴을 감쌌다.

"공자님은 사람을 달아오르게 할 줄밖에 몰라요. 그런데 왜 흑풍쌍살이 날 못살게 굴 때는

가만히 계셨나요?"

"가만있다니?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찾아 다닌 줄 알아? 난 무림의 벗들을 모두 불러다

그들을 죽이고 그대를 구하려고 노력했었지. 그런데 그들이 그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올 줄

이야.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지. 그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하늘이 보살핀 거라구."

그의 입발림 말에 감동이 된 여소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지요?"

"물론이지. 하늘이 굽어보고 있는데 내가 거짓말을 할까 봐 그래? 나 악처후가 그대에게 다

른 마음을 먹는다면 천벌을 받을 거야. 벼락을 맞아 가루도 남지 않을걸."

여소교는 손으로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제가 믿으면 되잖아요."

그러나 여소교는 모르고 있었다. 소요공자 악처후가 자신에게 마음을 둔 어여쁜 소녀들에게

이런 맹세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이런 맹세쯤은 그에게 있어서 식은죽 먹기였다.

악처후는 여소교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는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을 마구 빨아댔다. 여소

교는 온몸이 짜릿해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런 일에 매우 숙달돼 있는 악처후는 혀끝을

그녀의 입 속에 넣고는 그녀를 마음껏 희롱했다.

악처후의 입술이 그녀의 볼과 귀를 훑었다. 여소교도 허리를 한껏 비틀며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저……."

악처후의 손이 서서히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우람한 손이 그녀의 봉긋한 젖가

슴을 움켜쥐었다.

"아……!"

그의 손길을 막으려면 여소교는 그만 포기를 하고 말았다.

악처후의 손놀림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그의 손과 입술은 여소교의 몸을 마음껏 주물렀다.

그녀의 숨소리가 자라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듯싶자 그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그녀

의 속옷 을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의 손을 잡으며 저항을 했다.

"이, 이러지 마세요……."

그러나 악처후의 손은 이미 그녀의 속옷을 벗겨낸 후였다. 여소교는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기분에 양팔을 휘저었다.

"정말 날 좋아하는 거죠?"

"물론이지."

그러면서 악처후의 손은 또 여소교의 아랫배를 타고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여소교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난 아직 숫처녀예요. 당신을 사랑하고는 있지만 화촉을 밝힌 다음에……."

여소교가 끝내 자신을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악처후의 눈빛이 확 돌변했다. 그러나 그는 곧 표정을 바꾸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

다.

"내가 싫다는 뜻이겠지. 그대의 마음엔 내가 없는 게 확실해."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여소교는 급히 악처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악처후가 얼른 여소교의 몸 위로 자신을 포갰

다.

"날 사랑한다면 내 말을 들어줘."

그리고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자신을 들이밀었다.

"아, 악……!"

그녀는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소요관을 떠난 흑풍쌍살은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

"사매, 소요공자가 정말 여소교를 사랑할까?"

길을 걷다가 진현풍이 불쑥 물었다.

"또 여소교 생각이에요? 당신 마음을 누가 모를 줄 알고?"

매초풍이 눈을 잔뜩 흘기며 톡 쏘아붙였다.

"내 마음이 어떻단 거야? 난 그대의 계략이 제대로 실현될까 걱정이 돼서 묻는 거야."

매초풍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거짓말은 하지도 말아요. 지난 몇 년 같이 지내면서 내가 당신의 마음을 다 읽었

다구요. 당신이 꿈을 꾸면 난 해몽부터 하는 사람이에요. 아까 태호 배 위에서 왜 그 계집을

그런 눈 으로 쳐다보았지요?"

태호에서 다시 떠오른 배를 타고 악처후가 사는 곳을 향해 갈 때의 일이었다. 그때 여소교

는 진현풍 곁에 앉아 있었다. 금방 물에서 나온 그들 셋은 모두 젖어 있는 상태였다. 젖은

옷에 감싸여 있는 매초풍과 여소교는 온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래도 매초풍은 진기를 운행하는 바람에 옷을 빨리 말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소교의 입

장은 달랐다. 거의 알몸으로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현풍은 누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돌아보았다. 여소교의 눈과 마주쳤다.

물에 젖은 옷 때문에 그녀의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진현풍은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에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젖가슴이 움직였고

아랫배와 허리 선이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의 아랫도리가 갑자기 묵지근해지는 것 같아 견

딜 수가 없었다.

이때 배가 출렁거렸다. 여소교가 진현풍에게로 쏠리면서 그녀의 젖가슴의 감촉이 전해졌다.

진현풍은 자신의 팔에 그녀의 젖가슴이 닿자 눈앞이 아찔했다.

한참 그 삼삼한 기억을 되새기고 있던 진현풍은 매초풍의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할말이 있어요?"

매초풍이 다시 진현풍을 노려보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그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는 시기와 복수의 빛이 함께 타올랐다.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

었다가는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듯했다. 머쓱해진 진현풍은 더 이상 아무

런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초풍은 화가 나서 저만큼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해가 서산으로 사라지자 사방은 서서히 어둠이 깔려 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깃

배에서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구성지게 들려 왔다.

두 사람은 여전히 길 양쪽으로 갈라져서 걸었다.

이때 멀리서부터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돌아보니 한 무리의 강호인들이 말을 몰고 달려오

는 중이었다. 말들이 흑풍쌍살 곁을 지나 앞으로 치달렸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길 옆으로 옴을 피했다. 두 사람은 영락없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말았

다.

"가뜩이나 부아가 치밀어 줄겠는데 저런 놈들까지!"

진현풍이 멀어져 가는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 말을 들은 강호인들이 말을 세웠다. 그들은 진현풍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네 놈은 누구인데 감히 욕을 하느냐? 죽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놈이로구나!"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그중 열 명 정도는 진현풍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금도채 채주 금도 임청과 그의 수하들

이었고 나머지 다섯 명은 생면부지였다.

임청도 진현풍을 알아보고는 놀라는 기색이었다. 한편으론 절정공자와 싸우던 자에기에 진

현풍을 잡아가면 절정공자가 좋아 할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현풍이 흑

풍쌍살의 한 사람인 것은 모르고 있었다.

"하하하, 누구신가 했더니 금도채 채준님이시군요."

진현풍이 속마음을 숨기고는 좋은 말로 인사를 건넸다.

임청이 대답하기 전에 수하 하나가 큰소리를 지르며 말을 몰아왔다. 임청의 신임을 받고 있

는 맹장 왕호(汪虎)였다.

몸이 거대하고 힘이 꽤나 있어 보이는 자였다. 그가 타고 있는 말도 다른 사람들보다 컸다.

그의 말은 별호가 코끼리였다. 왕호가 고삐를 잡아채자 코끼리가 앞발을 높이 들며 진현풍

을 깔아 뭉개려고 했다.

흑풍쌍살은 내공심법(內功心法)에 있어서 그다지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구음진경> 하반부

를 읽어 좀 늘기는 했지만 주로 외문(外門)을 수련했기에 온몸의 횡전(橫鍊)만 늘었을 뿐이

었다. 장을 내쳐 상대방의 내장을 파괴하거나 갈고리 같은 손으로 상대의 머리에 구멍을 내

는 무공은 모두 의문의 무공이었다.

그러나 진현풍은 코끼리라 불리는 그 큰 말이 앞발을 들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가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코끼리의 앞발을 하나씩 잡았다. 왕호까지 타고 있으니 그 말이 내

리누르는 힘은 천 근이 넘을 성싶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한순간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현풍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 저마다 감탄을 했다.

그런데 이때 진현풍이 으슥 하는 소리를 내며 코끼리의 발굽을 힘주어 비틀었다. 코끼리가

중심을 잃고는 한 옆으로 쿵 하고 나자빠졌다. 그러자 왕호가 급히 말에서 뛰어내리며 자세

를 바로 잡았다. 곰같이 미련하게 생긴 자였지만 몸은 생각보다 날쌨다.

왕호가 주먹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진현풍이 슬쩍 피하며 비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왕호가

다시 주먹을 뻗으며 마구잡이로 공격해 왔다. 진현풍은 그럴 때마다 힘들이지 않고 피했다.

왕호가 눈빛이 날카롭게 빛을 뿜었다. 그는 서우망월(犀牛望月)이란 초수를 쓰며 팔꿈치로

진현풍의 옆구리를 쳤다. 진현풍이 얼른 두 손으로 공격을 막고 앞으로 밀어 버렸다. 황호가

넘어질 듯하면서 비틀거리더니 몇 발자국 물러섰다.

왕호가 다시 공격해 왔다. 이번엔 주먹을 내지르는 동시에 오른발을 전현풍에게 곧장 날렸

다. 왕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그가 평생 익힌 무공을 총동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진현풍은 공격은 하지 않고 왕호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이렇게 십여 합을 싸우고 나니 진현풍은 왕호가 쓰는 주력을 만만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육합문(大合門)의 무적육 합신권(無敵六合神拳)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는 더 이상

싸울 흥미를 잃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왕초의 왼쪽 어깨를 겨냥하여 장을 날렸다. 왕호

의 어깨뼈가 일순 으스러져 버렸다.

"악!"

왕호가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두 사내가 말에서 뛰어 내려와 그를 부축했다. 그들이

임청에게 소리쳤다.

"채준님, 왼쪽 어깨가 박살이 났습니다!"

임청이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간단히 장을 날려 상대의 어깨를 부셔 놓다니……! 보통의 힘이 아니다!'

임청은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무공이 대단하시군요. 내 비록 둔재이긴 하나 한번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임청인 말에서 내리려고 했다.

이때 처음 보는 다섯 사람 중에 하나가 나서며 그를 만류했다.

"임 채주님, 우리 태호오교(太湖五蛟)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우리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 진현풍과 마주했다.

"이 놈, 넌 머리가 열 개라도 되느냐? 감히 금도채 호걸들에게 도전을 해!"

"넌 대체 누구나!"

진현풍이 되물었다. 그러자 상대가 앙천대소를 하였다.

"분명 넌 타관에서 흘러 들어온 놈이렷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모를 리 있느냐? 이 태호

삼백 리 주위에서 우리 태호오교를 모르는 놈이 없다. 넌 오늘 나 낭리교(浪里蛟) 주지청(周

志靑)이 어떤 인물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진현풍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몸은 가는 편이지만 왕호보다 내공이

센 자였다. 진현풍이 얼른 몸을 굴려 피했다.

흑풍쌍살도 이 태호 지역에 유명한 수적(水賊)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두

목들이 바로 태호오교인데, 그들은 낭리교 주지청, 농조(弄潮蛟) 서구광(徐九光), 번파교(飜

波蛟) 오비용(吳飛龍), 수상교(水上蛟) 하아모(夏阿毛), 교중교(蛟中蛟) 이명도(李明道)들이었

다.

자기가 내지른 주먹이 허탕을 치자 낭리교 주지청은 앞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교

미반법(蛟尾反法)의 초수로 진현풍을 쳤다. 그것은 일종의 뒷발질이었다. 이 초수는 상대방

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행해지므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누

구냐 하는 것이었다.

진현풍은 두 발을 굴려 솟아올랐다. 순간 왼손을 휘둘러 주지 청의 왼발을 거머쥐었다. 그런

다음 왼손을 뒤로 밀었다가 앞으로 획 잡아당겼다. 주지청은 옴쭉달싹 못한 채 그대로 넘어

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지청은 경공도 능숙한 편이었다. 그는 넘어지면서 두 손으로 재빨리 땅을 짚고 일

어섰다.

약이 바싹 오른 주지청이 다시 진현풍에게로 돌진해 왔다. 진현풍이 한차례 냉소를 보이더

니 슬쩍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어쿠!"

이번엔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주지청은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진현풍은 그를 아

예 발로 밟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농조교 서구광과 번파교 오비용이 달려왔다. 그들은 석자 길이의 쌍갈래 고기 작살

로 진현풍의 목과 등 그리고 머리를 각각 겨냥했다. 그들은 각자 고기 작살을 두개씩 들고

있었다.

진현풍이 옆으로 뛰어가며 그 작살 네 개를 피했다. 주지청이 이때 벌떡 일어나더니 작살

한 쌍을 들고 또 달려들었다. 주지청과 서구광 그리고 오비용이 진현풍을 에워쌌다.

그들은 진현풍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작살을 퍼부었다. 진현풍은 그럴 때마다 교묘하게

작살을 피했다.

다시 작살 하나가 진현풍에게로 날아들었다. 살짝 고개를 젖혀 피했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맞은편 사내가 작살에 꽂힐 뻔했다.

세 사람의 초수를 알게 되자 진현풍이 서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현풍은 오비용의 작살

대를 겨냥해 장을 뻗었다. 오비용은 그만 손이 감전이라도 된 듯 심하게 떨었고 그의 작살

은 두어 장 밖으로 멀리 날아갔다.

진현풍은 또 장을 써 제국광의 작살 가나와 주지청의 작살을 멀리 날려보냈다. 이렇게 되자

세 사람은 작살을 하나밖에는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작살 한 쌍을 쓰는 것에 습관이 돼 버

린 그들 로서는 영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상교 하아모와 교중교 이명도가 아우성을 치며 합세했다. 이 틈을 이용해 나머지 세 사람

이 작살을 다시 집어들었다. 다섯은 다시 작살 열 개를 만들어 진현풍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현풍의 몸에 구멍 백 개라도 내버릴 듯한 기세였다.

혼자서 다섯을 상대하는 진현풍은 처음과는 달리 점점 힘이 들었다. 그는 싸우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들판을 이리저리 돌며 경공으로 다섯을 흩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보

이면 장을 뿌렸다.

이렇게 반나절 가깝게 싸움을 벌이고 나니 태호오교는 진현풍의 장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팔다리를 다친 자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

았다. 금도채 호한들 앞께서 체면이 깎일까 봐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다.

진현풍의 절기를 본 임청은 상황이 위급함을 느꼈다. 그가 말에서 내려 금도를 쥐었다. 그는

진현풍과 태호오교 사이로 뛰어 들어 금도를 내리쳤다. 진현풍은 번개같이 그 칼을 피했다.

잠시 공격을 멈춘 임청이 태호오교에게 물었다.

"저자는 절정공자의 적이오 무공이 대단한 놈이니 어서 해치웁시다."

진현풍에게 애를 먹고 있던 태호모교들은 물론 그 말에 반대 할 리가 없었다.

"그럽시다. 놈을 해치우고 어서 객점으로 갑시다."

주지청이 숨을 몰아쉬며 대꾸했다.

임청이 가세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태호오교도 기운이 펄펄 나는 듯했다. 임청은 금도 일백

영팔식을 휘두르며 명렬히 공격했다. 태호오교의 작살 열 대도 진현풍의 전후좌우에서 틈을

엿보았다.

진현풍은 점점 수세에 몰렸다. 그는 독룡금편을 꺼내 사용했지만 상대가 모두 병장기를 들

고 있기에 큰 효력을 보지는 못했다.

다급해진 진현풍이 매초풍을 힐끗 돌아보았다.

'사매는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매초풍은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진현풍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애원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겠다는 표정

이 매초풍 얼굴에 역력했던 것이다.

진현풍은 궁지에 몰려 식은땀을 흘렸다. 금도채 무리들의 환성 소리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사매!"

급기야 진현풍이 매초풍을 불렀다.

"왜요?"

그녀는 뻔히 사정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순간 임청의 금도에 진현풍은 옷자락을 베이고 말았다.

"빨리 나를 좀 구해 줘!"

진현풍이 체면이고 뭐고 팽개치고 다시 외쳤다.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매초풍은 몸을 공중으로 높이 띄웠다. 갈고리처럼 만든 손으로 수

상교 하아모와 교중교 이명도의 뒷덜미를 노렸다.

하아모와 이명도는 강적이 뒤에서 기습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른 돌아섰다. 두 사람은

돌아서며 동시에 작살로 매초풍을 찔렀다. 매초풍이 손으로 작살을 거머쥐고는 힘껏 잡아당

겼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그들은 작살을 빼앗기고 말았다.

매초풍은 그 작살을 주지청과 서구광을 향해 던졌다. 이와 동시에 발길을 날려 오비용의 뒤

허리를 걷어찼다.

매보다 빠른 매초풍의 동작에 임청은 다시금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사내보다 더 강한 여인이 나타났지?'

주지청자 서구광은 날아오는 작살을 자기들 작살로 막아냈다. 그러나 손아귀가 얼얼하여 하

마터면 작살을 놓칠 뻔했다.

오비용은 뒤에서 나는 바람 소리에 옆으로 넘어뜨렸다. 다행히 매초풍의 발길을 피하긴 했

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양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그의 면상을 그어대려

고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서 달빛만 교교히 비쳤다. 낯색이 횐 매초풍이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 눈

을 부릅떴다. 매의 발처럼 구부러진 그녀의 양손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오비용이 기겁을 하며 작살을 버리고 달아나기에 이르렀다.

"저건 마녀다!"

이때를 이용해 진현풍이 그 긴 독룡금편을 내리쳤다. 독룡금편이 서구광의 작살을 때리면서

그 끝이 임청의 앞가슴을 후벼팠다. 임청의 옷 앞자락이 부욱 찢어지면서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놀란 임청이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고함을 질렀다.

"후퇴하랏!"

태호오교도 허둥지둥 말에 올라 임청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금도채의 다른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흑풍쌍살은 뒤쫓아가서 몇을 죽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들은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두 사람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서로 마주 바라보며 웃었다. 승리의 쾌감이 피어

올라 그동안 맺혔던 불만 덩어리가 일시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진현풍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매가 날 구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이 바로 내 제삿날이 되었을 거야."

매초풍이 눈을 가볍게 흡뜨며 웃었다.

"구경만 하려다가 청산과부가 되기 싫어 그랬어요. 그러니 오해 마세요."

진현풍도 따라 웃다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사매는 정말 아름다워. 달빛 아래서 보니 정녕 선녀 같군 그래."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목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진현풍의 손은 어느새 그녀의 봉긋한 젖가

슴을 더듬고 있었다.

"싸움을 하느라 온몸이 땀에 절었군."

그 말에 매초풍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자 진현풍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대는 땀냄새도 향기로워."

"아무리 여인이지만 땀냄새가 그럴까?"

매초풍이 살짝 진현풍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어딜 가려고?"

"난 몸을 좀 씻어야겠어요. 따라오면 안 돼요."

매초풍이 깔깔 웃으며 뛰어갔다.

진현풍은 갑자기 허전함을 느꼈다. 순간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가 목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매초풍은 한적한 곳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 관목들과 갈대가 가득 피어 있는 호숫가에 그녀는 발길을 멈추었다. 주위는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매초풍은 속옷만을 걸친 채 물에 들어갔다. 시원한 감촉이 온몸을 휘감았다.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그녀는 젖가슴과 아랫도리를 감싼 천마저 벗어 기슭으로 던져 버렸다. 알몸으로 헤엄을 치

며 그녀는 마음껏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에 누려 보는 평온한 기분이었다. 매초풍은 소녀로

돌아가 물장구를 치며 늘기도 했다.

문득 갈대 숲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 그녀는 얼른 물 속으로 몸을 감했다. 그녀는 몹

시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그녀가 다시 살며시 머리를 내놓고는 준위를 살폈다. 분명 치사한

사내 놈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그 놈이 눈에 띄면 당장 장을 날려 죽여 버리겠다고 생

각했다.

이때 갈대 숲이 후드득 떨리더니 시커먼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다른 사람이면 몰랐겠지만

눈이 밝은 그녀는 그것이 물오리라는 것을 한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긴장을 풀며 피식

웃음을 날 렸다.

물오리에게 놀란 자신을 꾸짖으며 그녀는 다시 유유히 헤엄을 쳤다. 한참 물 속에서 놀던

매초풍이 얕은 곳으로 걸어 나왔다. 밝은 달빛에 드러난 자신의 알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

다. 그리고 희고 보드라운 피부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네가 남들이 말하는 마녀 철시란 말이냐? 너는 이렇듯 아름답지만 납들은 너를 독사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알고 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뿐이지. 어떻게 해서 너

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마녀가 되었단 말이냐?"

그녀는 자신의 몸매에 스스로 도취되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녀는 불현듯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떨어버리려는 듯 머리를 들고 밝

은 달과 가물거리는 별을 바라보았다. 매초풍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달과 별은 나를 좋아하고 있겠지. 그래서 저렇게 나를 보고 웃는 거야. 내가 사람을 죽이는

건 무공을 연마하여 강호에 이름을 날리려고 그러는 거다. 만약 내가 무공이 약하다면 사람

들은 나를 업신여길 게 아닌가?"

이때 뒤에 있는 관목 숲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가 황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며 소

리쳤다.

"누구니."

진현풍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매는 정말 아름다워……!"

진현풍은 숲 속에서 이제까지 매초풍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초풍은 잠시 빠졌던 상

념이 깨지는 바람에 발끈 화가 났다.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보지 말라고 했더니 왜 왔어요?"

그러자 진현풍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너무했다 싶은지 매초풍은 서둘러 기슭으로 올라와 옷을 입고 는 진현풍을 찾았다.

"내 말에 화났어요?"

진현풍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둠을 틈타 두 사람은 경공을 부리며 날아갔다. 눈앞에 등

불빛이 반짝거렸다. 제법 번화한 작은 움이었다.

두 사람은 주루 한곳을 찾아 들어갔다. 누 위에 올라 구석진 자리를 차지한 흑풍쌍살은 술

과 안주를 청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라 피곤하기도 하고 몹시 시장했다. 그들은 날라온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들 곁에 있는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무림의 동정을 떠드느라 왁자지껄하였다. 그들

은 천하에 모르는 일이 없는 듯 싶었다. 흑풍쌍살은 그들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얼마 후 흑풍쌍살은 문득 두 탁자 건너 창문가에 있는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자기네 이

름을 들먹이는 것을 들었다. 창가에 앉아 있는 그들은 술을 마시며 연신 한담을 나누고 있

었다.

그중 공자건(公子巾)을 쓰고 몸에는 회색 도포를 걸친 중년의 서생이 말했다.

"글쎄 흑풍쌍살이 태호에 왔다고 하더라구. 뿐만 아니라 태호서안 소요관에 있는 소요공자

를 특별히 찾아가 만나기 까지 했다더군."

흑풍쌍살에게 등을 지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등이 넓고 목소리가

우렁찬 것이 거구인 듯싶었다.

"흑풍쌍살이 왜 악처후를 찾아갔을까? 악처후는 기껏해야 계집질이나 하는 재주밖에는 없는

데……."

거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년 서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뿐인지 아나? 두 사람은 악처후에게 젊고 예쁜 소녀까지 바쳤다고 하더군."

"히히히, 아첨을 하는 걸 보니 악처후에게 무슨 이득을 보려는 모양이군."

"글쎄 그 점이 수상하다 이거야. 흑풍쌍살은 남에게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위인들인데

……."

그러면서 서생이 부채를 펼쳤다. 보통의 부채가 아니었다. 말을 하는 가운데 앞쪽의 거인이

그를 '하 공자'라 호칭하는 것 같았다.

매초풍이 그 소리를 듣고는 눈동자를 매섭게 굴렸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강호에서 일컫는 철선서생(鐵扇書生) 하종(何從)이란 말인가?'

그녀의 추측이 옳았다. 그 사람은 바로 하종이었다. 어려서 유명한 스승을 모시게 되어 '삼

십육로철선점혈(三十六路鐵點穴)'이라는 절기를 배웠으며 경공도 뛰어났다. 그래서 무림에서

그를 얕잡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종이 말했다.

"사흘 후 해검계(解劍溪)에서 무공을 겨를 때 악처후도 무슨 이득을 찾아 뛰어들지도 모르

지."

"이득이라니, 천 년 묵은 산삼 말이오?"

"쉿!"

하종이 급히 거한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주위를 한 번 살폈다. 흑풍쌍살이 시선을 피해 얼

른 고개를 숙였다. 하종이 다시 소곤거렸다.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 그렇지 않으면 시끄러운 일이 생긴다."

거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흑풍쌍살이 왜 그렇게 악처후에게 아첨을 했을까?"

흑풍쌍살은 그 말이 귀에 거슬렸다. 당장 그 놈의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

다.

하종이 입을 열었다.

"철시와 동시가 어떤 인물이라고 악처후에게 아첨을 하겠어? 악처후가 오히려 그들에게 아

첨을 하면 했지."

흑풍쌍살은 그 말에는 귀가 번쩍 뜨여 당장 달려가 술이라도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흑풍쌍살이 이번에 미녀까지 바친 걸 봐서는 분명 무슨 연유가 있긴 있는 것 같

아."

"연유?"

거한이 몸을 바짝 앞으로 가져가며 되물었다.

"악처후는 아주 수단이 좋은 풍류객이지. 그래서 이번에 또 성이 엽씨라는 오혈궁의 여인을

흘려냈거든. 그러니 그 처녀에게 해검계에서 무공을 겨루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냈을 거야."

"오, 알겠다. 그 무공을 겨루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내려고 흑풍쌍살이 미인을 악처후에게 바

쳤다 이거지?"

그런데 이번에는 흑풍쌍살 바로 곁에 있는 사내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난 오혈궁 궁주가 이긴다고 봐!"

"아냐, 난 탁운백이 이겨!"

"나도 오혈궁 궁주에게 건다!"

"절정공자의 절정검이 어떤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라구!"

그러자 뚱뚱보가 나서며 그들을 뜯어말렸다.

"자 이렇게 떠들지만 말고 내기를 걸려거든 정말로 걸라구. 사흘 후면 누가 이기든 결판이

날 거니까. 그때 가서 내기에 지는 사람들은 절대 생떼를 써서는 안 된다구."

"모두 이 고장에서 일하는 태호오교네 사람들인데 생떼를 왜 부리겠어. 그러면 개자식이지."

누군가 그런 소리를 하며 크게 웃었다.

창가쪽에 앉았던 거한이 놀라며 하종에게 속삭였다.

"이거 이상하네. 해검계에서 무공을 겨루는 일을 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잖아?"

하종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괴이하군. 누가 이 비밀을 누설했을까?"

내기를 하는 사내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뚱뚱보가 계산해 보니 오혈궁 궁주가 이긴다고

한 사람이 여섯이고 탁운백 편은 넷이었다.

그런데 이때 칼을 찬 사내 하나가 검을 등에 멘 사내와 함께 누에 올라왔다. 그들도 사내들

이 떠드는 소리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봐 황씨, 우리도 한번 낄까?"

칼을 찬 사내가 검을 멘 사내에게 말했다. 검을 멘 사내가 웃음을 띄며 말했다.

"전이(錢二), 그대도 손이 근질거리는 모양이군."

두 사람이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내기를 하시오? 우리도 끼면 안 되겠소?"

진현풍과 매초풍이 살펴보니 그 황씨와 전이는 모두 금도채 사람들이었다. 이 읍에 묵었다

가 심심해서 나온 듯했다.

"이건 우리끼리 하는 내깁니다. 사흘 후에야 이기고 지고가 판가름나지요. 같이 하시겠소?"

뚱뚱보의 말에 전이가 한 번 더 웃어 보였다.

"여긴 태호오교 지역인데다가 우리 형제는 태호오교 나리의 객인들이오."

"그럼 두 분은……?"

"금도채 사람들이오."

뚱뚱보가 반색을 했다.

"아이구 이거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한집안 사람이었군요 우리도 모두 태호오교 나리들의

수하입지요. 우린 지금 묘상과 탁운백 중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고 있던 중입니다."

"그래 어느 쪽이 더 많소?"

전이가 물었다.

"오혈궁 궁주가 이긴다는 사람이 여섯이고 절정공자 쪽이 넷 입니다."

"돈은 얼마씩 걸고 하는 겁니까?"

"한 사람이 은 다섯 냥입죠."

전이가 품에서 열 냥짜리 은괘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 두 사람은 절정공자 쪽이오."

"이렇게 되면 반반씩이 되는군요. 나도 탁운백 절정공자 편이지요."

이 순간 코방귀를 뀌는 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

았다.

층계로 올라오는 난간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서였다. 거기에 한 청년 하나가 붉은 장삼을

걸치고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청년의 외모는 깔끔하고 여인처럼 아주 곱상했다.

뚱뚱보가 투덜거렸다.

"젊은 사람이 그게 무슨 버릇인가?"

곱상한 청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술잔만 기울였다. 그의 앞에는 꽤나 비싼 술과 요리들

이 놓여져 있었다.

도대체 어느 집 자제인지 매초풍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청년의 외모에서 풍기는 고귀한 기

풍이 그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눈길만은 어딘가 싸늘하고 잔인함이 묻어 있는 듯

했다.

그때 누 아래서 심부름꾼이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서 오세요. 누로 올라가십시오."

가벼운 발걸음 소리에 이어 나타난 사람은 어여쁜 소녀였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

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얘기에 정신이 없어 미처 그 소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매초풍만

이 그녀의 출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란꽃의 화려함이나 수선화의 청수함이 아니라 한 떨기 백합꽃 같은 담백한 아름다움을 지

닌 소녀였다. 소녀는 새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색은 결코 수수하지가 않았다. 다른 소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허리에 유엽도(柳葉刀)를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 안의 사람들이 소녀를 주목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한눈을 팔지 않았

다. 그녀는 누 안을 한 번 둘러보다가 문득 층계 곁에 있는 곱상한 청년에게서 시선이 멈추

었다.

그녀가 갑자기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누 아래로 다시 내려가려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어느

새 날아왔는지 그 청년이 소리 없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여기에 있죠?"

소녀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기다렸지."

곱상한 청년이 간단명료하게 대꾸했다. 그리고는 잠깐 사이를 둔 다음 매우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소요관을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대의 경공으로는 방금 이곳에 도착했을 거라 여

겼지. 지치고 시장도 하니 이곳으로 올 거라 예상했던 거지."

소녀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날 기다렸다는 건가요?"

"그렇지."

"남을 뒤쫓는 재간은 당신을 따를 자가 없을 거예요."

"엽 사매, 날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걸 잊었나?"

"사형……, 죄송해요."

소녀가 고개를 힘없이 숙였다.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자, 앉아요."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소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날 데리러 왔으니 어서 가요."

소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청년은 그녀를 다시 앉혔다.

"왜 이리 급하지. 술도 아직 남았는데."

그는 술잔에 술을 부어 혼자 마시면서 연신 층계를 주시했다. 소녀는 무슨 걱정이 있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밤이 어두웠는데 어서 가요. 객점이라도 들어가 숙소를 마련해야지요."

"잠자리는 걱정 마오. 내가 이미 정해 놨소. 이제부터는 아무런 걱정 말고 앉아 있기만 하라

구."

청년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소작이었다.

"왜 이러는 거죠? 무슨 권리로 나에게 명령을 하는 거예요?"

"궁주님의 명이오 죽은 시체라도 좋으니 꼭 사매를 잡아오라는 명이었소."

청년이 층계 쪽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사매의 목숨이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아시오!"

그 말에 소녀는 움찔했다.

뒤늦게 그들을 발견하고 지켜보던 하종과 거한은 소녀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청년이

궁주니 뭐니 하는 말을 떠드는 것을 듣고는 오혈궁 사람들임을 짐작했다.

거한이 목소리를 낮추며 하종에게 말을 건넸다.

"저 소저는 소요공자 악처후에게 흘린 바로 그 엽……."

"바로 엽청청(葉靑靑)이지!"

곱상한 청년이 말을 가로챘다. 청년은 두 사람이 나누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거

한이 벌떡 일어서며 노려보는 청년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종이 얼른 부채를 펼치며 그를

막았다. 거한에게 가만 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녀도 연신 입술을 깨물며 안타깝게 앉아 있었다.

매초풍은 속으로 매우 흐뭇했다. 악처후가 오혈궁 소녀를 흘려 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흥

미로운 일이었다. 여소교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런 사실을 알면 마음이 어떨까? 매초풍은 상

상만으로도 고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때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 왔다. 곧 등에 숙동간(熟銅 )을 멘 사내가 올라왔다. 그를

본 소녀가 황급히 한쪽으로 돌아앉으며 얼굴을 감추려고 했다.

"왜 그래?"

청년이 소녀를 바로 앉히려고 애를 썼다.

숙동간을 진 사내가 소녀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사내는 소녀에게 허리를

굽신거렸다.

"소인 장이가 인사올립니다."

"왜 이러세요? 잘못 아셨어요. 난 모르는 사람이에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녀가 외면했다.

장이는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소인은 아가씨를 소요관으로 모시라는 명을 받고 왔는뎁쇼.

아가씨를 모시지 못하면 전 큰 꾸지람을 듣습니다요."

청년이 받아쳤다.

"소요공자가 우리 오혈궁을 우습게 보고 있군. 기껏 이런 노복 하나만을 보냈단 말인가?"

청년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제7장 소요관의 결투

장이란 사내는 곱상하게 생긴 청년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성난 어조로 물었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인데 감히 아가씨 곁에 앉아 있는 거냐?"

청년은 대꾸는 하지 않고 장이를 매섭게 쏘아보기만 했다. 청년의 성미를 잘 아는 엽청청은

불안한 기색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애원했다.

"사형, 저 사람은 소요관의 하인일 뿐이에요. 제발 용서해 줘요."

그러자 장이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그녀에게 캐물었다.

"아가씨, 저 사람이 정말 사형이시오?"

엽청청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래요. 이분은 내가 늘 말하던 오혈궁 세 사형 가운데 한 분 이신 여혈의(麗血衣)라고 하

는 사형이십니다. 궁주님 다음으로 제일 무공이 높은 분이지요."

장이는 소요관의 일개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숙동간을 잘 쓰고 더욱이 주인의 두터운 신임

을 받고 있는 터라 오만함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평소 같았으면 여혈의의 조소에

벌써 자신의 무기인 숙동간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엽청청의 사형이라는 말에 장이

는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 참았다.

"아가씨, 이젠 소인을 따라 어서 가시지요."

"누구 앞에서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야?"

여혈의가 그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왜 그러시오? 그래 기어코 날 막을 셈이오?"

장이도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발끈하여 언성을 높였다.

"그 말 한번 잘했다. 그렇다면 어쩌겠느냐? 잔말 말고 어서 돌아가 네 주인 악처후에게 전

해라. 우리 오혈궁에서는 이 아가씨를 내줄 수 없다고 말이다. 난 여기서 사람을 죽이기 싫

으니 어서 썩 물러가라!"

"죄송해요. 어서 돌아가세요."

엽청청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장이를 채근했다.

그러나 장이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주인을 실망시켜 드릴 수도 없거니와 배짱 있는 사

내로서 모욕을 참고 그냥 지나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장이는 순식간에 숙동간을 뽑아 들고 휘둘러댔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여혈의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바람에 곁에서 내기를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휘둥그래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숙

동간을 내리칠 때 나는 바람 소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을 한 방 맞기만 하면 그대로 가

루가 될 것만 같아 몸을 부르르 떠는 이들도 있었다.

여혈의는 앉은 채로 날쌔게 칼을 들어 자기에게 다가오는 숙동간을 쿡 찔렀다. 그의 칼이

얼마나 예리한지 숙동간에 세 치나 깊이 박혔다.

그곳에 있던 금도채 사람들과 태호오교 사람들은 물론 흑풍쌍살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다.

무게가 열일곱여덟 근이나 되는 숙동간을 그 가는 칼끝으로 막았는데도 칼은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장이의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여혈의의 내공이 너무 출중하

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이 역시 깜짝 놀라 두 눈만 끔벅거렸다.

여혈의가 앉은 자세로 태연스럽게 물었다.

"그래, 어떠냐? 이만하면 너희의 소요공자를 이길 만하겠느냐?"

장이는 굳어진 채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혈의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돌아가 전해라, 이 여혈의자 곧 찾아갈 거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여혈의는 숙동간에 꽂힌 칼을 쭉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장이의 비명

소리가 터졌다.

"아악……!"

칼끝이 장이의 손목에 있는 천정혈(天井穴)을 찔러 힘줄을 끊어 놓았던 것이다. 장이는 숙동

간을 떨어뜨리고 비명을 내지르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골두박질치며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왜 저 사람을……?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해요?"

엽청청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비난했다.

"왜, 가슴이 아픈가? 장이를 병신으로 만든 대가로 악처후가 사매에게 분풀이할까 봐 겁나

는가? 흐흐,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바야. 내가 이런 일을 해놓고 가려고 안 가고 있

었던 거야. 음, 이젠 다 됐으니 그만 가자구."

엽청청은 분노로 입술을 피가 맺힐 정도로 깨물었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음성으로 한마

디 내뱉었다.

"당신, 당신은 잔인한 사람이야!"

그 말에 여혈의가 그녀의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엽청청의 한 쪽 볼에 큼지막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잊지 말라구, 궁주님께선 꼭 산 엽청청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엽청청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싸쥐고 울기만 하였다.

그때 굵은 목소리 하나가 끼여들었다. 철선공자 하종이었다.

"여인을 못살게 구는 것도 영웅인가?"

하종 앞에 앉았던 거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거들었다.

"저런 놈은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놔야 해."

여혈의의 날카로운 눈길이 그들 두 사람에게 날아와 꽂혔다.

"오,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鐵拳覇王) 노위(魯威)이구만. 당신들이 연합하여 소항(蘇抗) 일

대를 통치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우리 오혈궁 일엔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소이다."

하종이 냉소를 던졌다.

"내가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해서 간섭하는 게 아니다. 동문사매를 대하는 그대의 태도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자 철권패왕 노위도 큰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동문수학한 사형제들간이 이 모양이니 너희들 오혈궁이 어떤지 알 만하다. 분명 모두 인정

없는 것들만 모여 서로 아웅다웅하는 곳이겠지."

"그렇다. 우리 오혈궁은 문규(門規)가 삼엄하다. 우리에겐 인정이란 필요 없다. 인정을 바라

는 자는 결코 들어올 수가 없지!"

뜻밖에 여혈의가 순순히 수긍을 하자 하종과 노위는 기가 막혀 말문을 잃고 말았다.

여혈의는 엽청청을 끌고 층계 어귀로 갔다. 그는 층계를 내려가기 전에 갑자기 몸을 돌리더

니 조금 전 내기를 걸었던 무리들을 향해 소리 질렸다.

"내 말 분명히 새겨들으시오. 탁운백이 이긴다고 한 사람들은 결단코 돈을 몽땅 잃을 것이

오!"

그러자 금도채의 전이네가 말을 받았다.

"탁운백이 진다구? 흥, 너희 궁주 묘상이나 지지 않나 잘 지켜 봐라!"

뚱뚱보도 자기 편이 숫적으로 우세하다는 것만 믿고 비아냥거렸다.

"암, 그렇지 않구. 히히……, 오혈궁 궁주는 지금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

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재자들을 내 보내 흰소리를 떠벌리게 하겠나? 하지만 흰소리 친다고

이길 수 있을까?"

그 순간 여혈의가 인상을 쓰며 뚱뚱보에게로 달려갔다. 뚱뚱보도 무공을 좀 할 줄 아는 자

이지만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그의 어째가 여질의의 두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여혈의는 뚱뚱보의 어깨를 힘껏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누마루에 구멍이 뚫리며 뚱뚱보

가 아래층 어느 주안상 위로 떨어졌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접시들아 박살이 나며 그 조각

들이 뚱뚱보의 온몸에 박혔다. 국물과 음식물들이 뒤범벅되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뭐야? 에퇘퇘……!"

뚱뚱보가 상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여혈의를 경계하며 저마다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제일 먼저

전의와 황씨가 검을 휘두르며 여혈의에게 달려들었다.

"얏!"

여혈의는 크게 소리 지르며 칼로 황씨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전의의 칼을 살

짝 피하면서 발을 날려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어헉!"

전의는 비명을 내지르며 저만큼 날아갔다. 그는 겁에 질려 서 있는 무리들을 덮치며 크게

나동그라졌다.

여혈의의 칼이 허공에서 번뜩였다. 순간 황씨의 검이 세 동강으로 끊어졌다. 황씨는 자루만

남은 칼을 던져 버리고 대들보 위로 날아갔다. 여혈의는 칼을 왼손으로 바꿔 쥐고는 황씨의

가슴을 향해 쑥 내밀었다. 황씨는 시뻘건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으으 으……."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칼과 창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며 여혈의에게 달려들었다. 여

혈의는 아주 간단하게 그들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더 이상 달려들 자가 없다고 판단한 여혈의는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는 엽청청을 데리

고 속히 그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엽청청이 보이지 않았다.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왕 노위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그 틈에 태호오교의 수하들이 또 그를 에워쌌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엽청청은 여혈의가 싸우는 틈을 타 살그머니 층계를 내려갔다. 그리곤 문밖으로 막 내달렸

다.

아래층 손님들은 한 어여쁜 처녀가 미친 듯이 달아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위층에서 뚱뚱보가 아래층 탁자 위로 난데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모두들 화들짝 놀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주루를 달려나온 엽청청은 북쪽을 향해 뛰어갔다. 그녀는 밤이 깊어 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여혈의보다 먼저 가서 악처후에게 오혈궁이 그를 오해하

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골목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와 엽청청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그 사람들의 품에 넘어 질 뻔했다.

"죄송합니다."

엽청청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그들의 옆을 지나가려 했다.

웬일인지 그들은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서서는 좀체로 움직일 태세가 아니었다. 그녀가 고개

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왕 노위였다.

엽청청이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칼자루를 바투 잡았다.

"왜 이러시는 거죠? 돈이 필요하신 거라면 내게 은 스무 냥이 있으니 다 가져가세요."

그녀는 은 스무 냥을 그들의 발치에 집어 던졌다.

하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은자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길을 비켜 주지 않았

다. 엽청청은 귀걸이와 옥으로 만든 팔찌 마저 던져 주었다. 하종이 그것을 받아 쥐고는 빙

그레 웃었다.

"이렇게 좋은 벽옥 팔찌를 그렇게 함부로 던지다가 흠집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그러시오? 이

런 벽옥은 잘 깨진다는 사실을 모르오?"

"이젠 갈 수 있겠지요?"

엽청청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하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홱 돌아섰다.

그녀가 몇 발자국을 떼었을 때였다. 노위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거기 서시오!"

건장한 체격에 십수 년 동안 권법을 수련하여 중기(中氣)가 강한 그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녀도 무림의 여인이 긴 하지만 흠칫 놀라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

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좀 전 주루에서 두 분이 저를 도와준 일을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러

시는 거죠?"

철선서생 하종이 노위의 어깨를 툭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아, 아가씨를 그렇게 놀라게 하는 법이 어디 있나?"

노위가 겸연쩍은 얼굴을 하며 빙긋 웃었다.

"글쎄 우리를 길 막고 노략질하는 도적으로 아니 기가 막히잖아……."

그리고는 엽청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저, 우릴 그런 놈들로 보지 마시오. 우린 비록 협객은 아니지만 그래도 옳게 살려고 애쓰

는 사람들이오. 소저의 사형처럼 아녀자를 업신여기는 그런 짓은 안 하오."

엽청청은 반신반의하며 눈을 끔벅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저를 못 가게 막으시는 거죠?"

"내가 한 가지 묻겠소. 소저는 지금 소요관으로 가는 길이 아니오?"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아래로 부끄러워하는 엽청청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다. 소요관의 악

처후를 떠올리자 그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왜 말이 없소?"

하종은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부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요."

엽청청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노위가 뭔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악처후란 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알고나 있소? 그 놈은 재미만 보고선 소저를 헌신짝 버리

듯 할 사람이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그자에게 몸을 망치고 버림받은 줄 알기나

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분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엽청청은 매우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을 한마디로 묵살해 버렸다.

하종은 사랑에 빠져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그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는 엽청청의 은자와 귀걸이 그리고 팔찌를 그녀에게 돌려주며 말을 건넸다.

"그래, 소요공자의 엽색 행각을 소저는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엽청청이 고개를 가로 흔들자 하종은 말을 계속 이었다.

"악처후, 그자는 영준한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로 그동안 처녀들을 많이 흘렸다오. 비록 강압

적인 수단을 쓰진 않았지만 그자가 하는 짓거리는 말할 수 없이 비열하다오."

엽청청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

를 세게 흔들었다.

"그럴 수가…… 어떻게 그분이 그럴 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에요. 절대로!"

이때 웬 요사스런 여인의 웃음 소리가 불쑥 끼여들었다. 뒤이어 담벽 뒤에서 남녀 한 쌍이

가볍게 날아와 그들 앞에 섰다. 달빛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마치 귀신같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종과 노위 그리고 엽청청은 그들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면

서 그들은 한 쌍의 남녀를 경계의 눈길로 쏘아보았다.

"뭣하는 사람들이냐?"

노위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하종은 그들의 낯익음에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그들이 그주루 한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자들

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는 이 두 사람이 무서운 흑풍쌍살임은 모르고 있었다.

매초풍이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부부는 철선서생님과 철권패왕님을 존경한답니다. 두 분께선 최근 금나라 황제를 죽

이려다가 성공은 못하였지만 그 대 신 평장(平章 : 관명) 셋을 죽이셨다는 소문은 들었지요.

나라를 위 하는 애국지거에 우리는 숙연히 고개를 숙일 따름입니다."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왕 노위는 얼마 전에 금나라 황제를 암살하려고 금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금나라 황궁의 경비가 매우 삼엄한데다 중원 무림의 배신자들이 내궁의 시위를 서

고 있어 뜻을 이를 수가 없었다. 그때 하마터면 목숨까지 끊을 뻔했었다. 황제를 암살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어서 개방에서 한 개 분타의 사람들을 지원받았었다. 개방은 그 일로

고수 두 명을 잃고 말았다.

매초풍의 말에 하종이 대답했다.

"적을 죽이고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우리 백성 모두의 책임인지라 우린 다만 그 책임을 다하

려 했을 뿐이오. 그러니 과천은 마시오."

매초풍은 속으로 비웃었다.

'난 나라고 뭐고 상관치 않는다. 송나라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뭐 똑똑한 일이라

구? 그것 또한 바보나 하는 짓이지.'

"우리가 주루를 빠져 나와 예까지 온 것도 두 분과 같은 마음에서지요. 우리도 이 소저에게

몇 마디 권할 말이 있어서랍니다."

매초풍은 하종과 노위에게 한껏 정중하게 말하고는 엽청청을 돌아보았다.

"에그, 정말 안됐어. 이렇게 어두운 밤에 혼자 헤매고 다녀야 하다니……. 난 동생 같은 생

각이 들어서……, 동생이라 여겨도 될까?"

엽청청은 매초풍의 다정함에 약간 긴장을 풀며 살짝 미소를 띄웠다.

"무슨 말씀이신지 언니께서 어서 해보세요."

깊은 밤길에 두 남자가 가로막아 불안하던 차에 자기와 연령이 비슷해 보이는 미모의 여인

을 만나자 그녀는 각별히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다.

매초풍이 엽청청의 표정을 읽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예쁘게 생겼어. 소요공자는 참 복도 많지.'

"언니도 그분을 아시나요?"

순간 엽청청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분이 누군데?"

매초풍이 짐짓 모르는 체 능청을 떨자 엽청청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소요공자……."

매초풍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동생이 소요공자를 말한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래 본 거야. 소요공자는 우리와

친구간이지. 우린 지금 소요공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려던 참인데……."

"결혼? 누, 누구와 결혼……?"

엽청청이 휘둥그래진 눈으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매초풍은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입

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서찰에 성이 엽씨라는 처녀와 결혼한다고만 되어 있던데? 그 일로 번거로운 일이 많이 생

길 것 같다고 우리보고 좀 도와달라고 했어. 그러고 보니 그 엽씨라는 처녀가 바로 동생인

것 같군."

그 말에 엽청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하종은 매초풍의 말이 들을수록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쩌자고 이 순박한 처녀를 속이고 있는 게요?"

하종이 한마디하고 나서자 진현풍이 대신 말을 받았다.

"음, 소요공자가 난처하게 여기는 것을 알 만하군. 너희들이 일을 번거롭게 훼방을 놓고 있

는 모양이지?"

진현풍은 말을 마치자마자 하종과 노위를 향해 두 손으로 장을 날렸다. 상대방 장력이 보통

이 아님을 감지한 하종과 노위는 급히 옆으로 피했다.

이 틈을 타서 매초풍은 엽청청을 끌고 달아났다. 소요공자만 생각하고 있는 엽청청은 친구

라는 매초풍의 말을 믿고 기꺼이 그녀 뒤를 따라 뛰었다.

엽청청도 경공을 쓸 줄 알기 때문에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

다.

또 하나의 순진한 처녀가 악처후에게 유린당할 것을 생각하자 하종과 노위는 의협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얼른 매초풍을 쫓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진현풍이 앞을 가로막고

는 조금도 비켜 주지를 않았다.

진현풍이 최심장을 연달아 퍼부어대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달리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뒤로

계속 밀려나기만 했다.

조급해진 하종이 노위에게 말했다.

"여기서 저 놈을 붙들고 있게. 내가 저 년을 쫓아가겠네."

그가 옆으로 한 징(丈) 거리쯤 뛰쳐나갔다.

"가긴 어딜 가!"

진현풍이 소리를 내지르며 왼손으로 노위를 향해 장을 뿌리고 오른손으로는 하종을 향해 독

룡금편을 휘둘렀다.

넉 장이나 되는 긴 독룡금편은 하종의 목을 감으며 내려와 그의 두 다리를 걸었다. 대단한

힘을 가진 채찍인데다 그 끝에 무수한 갈고리들까지 있어 하종은 감히 그 채찍을 손으로 거

머쥘 수가 없었다. 그는 쇠부채로 채찍 중간과 끝을 탁탁 끊어냈다.

"순강(純綱)으로 만든 부챗살이군. 그래서 철선공자라 하는가? 철선점혈법도 그만하면 쓸 만

한데?"

진현풍은 한껏 비웃으며 금룡반주(金龍盤柱) 초수로 독룡금편을 휘둘렀다. 그 긴 채찍은 구

불구불 파도와 같은 물결을 이루며 날아왔다. 철선서생 하종은 일곱여덟 가지 초수를 썼지

만 독룡금편의 집요한 공격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철권패왕 노위도 삼사십 번이나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은 천 근의 힘을 자랑하는 것이

었다. 하지만 진현풍의 낙영신검장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한 이 장법

은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가 잘 구별이 안 가 노위는 번번이 헛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자 성미 급한 노위는 부아가 치밀어 씩씩거렸다.

이제껏 진현풍이 사용하는 장법과 채찍질을 본 절이 없는 하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불

쑥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나는 흑풍쌍살의 동시 진현풍이다!"

하종과 노위는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상대한 사람이 그 유명한 살인마들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 미모의 여인이 철시 매초풍이란 말인가!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동시를 놓치지 말게."

노위가 다짐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하종도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먼저 동시부터 요절내고 철시를 쫓아가 잡아죽이세. 이 무림의 쓰레기들을 기필코 제거하

자구."

진현풍은 독룡금편을 거두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하종과 노위는 그가 달아나려는 줄 알고

쫓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진현풍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두 손을 허리에 붙였다가 동시에

쑥 내밀 어 최심장을 뿌렸다.

하종과 노위 두 사람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진현풍은 그들이 물러서는 틈을 이용

하여 몸을 돌려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왕 노위는 다시 진현풍을 추격하려고 하였으나 어느새 사라졌는지

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철시 매초풍과 엽청청은 멀리 가지 않고 시가지 밖에서 진현풍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시 진

현풍은 곧 그들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그들은 함께 의논한 끝에 숲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기로 했다.

엽청청은 매초풍이 꺼내 준 간냥(干粮)을 먹고 나니 몸이 나른해져 나무에 기댄 채 잠이 들

었다.

진현풍이 매초풍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여보, 오늘 밤 엽청청을 소요관에 보내지 않으면 철선서생과 철권패왕이 사람을 빼앗아 갈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계속 쓸데없이 남의 일에 관여할까요?"

"철선서생과 철권패왕은 협객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협의를 지킨다고 자처하고 있거든.

그러니 그들이 우리 수중에서 엽청청을 빼앗아 간다면 그게 입신양명의 좋은 기회가 아니겠

소? 그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겠냔 말이오."

매초풍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웃어대기 시작하였다.

"당신, 지금 날 비웃는 거야?"

진현풍은 기분이 상해 언성을 조금 높였다. 그러자 매초풍이 눈을 흘겼다.

"내가 왜 당신을 비웃겠어요?"

그리고는 또 깔깔거렸다. 그제야 진현풍도 덩달아 웃으면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서 그래?"

"그 철선서생이란 자가 엽청첩을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난 믿어지지 않아. 엽청청은 악가한테 홀딱 반해 있는데 강호에서 이름이 자자한 철선서생

이 어찌 엽청청을 욕심내겠어? 더군다나 엽청청은 오혈궁의 제자가 아닌가?"

"당신이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철선서생이 짝사랑에 빠졌다는 건 엽청청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런 걸 난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매초풍이 눈을 살짝 흘기며 무안을 주었다.

"당신이 워낙 무디니까 그런 거죠. 그리고 여자들이란 이런 일에는 천성적으로 민감하거든

요. 하종은 처음엔 엽청청이 너무나도 연약하여 곳곳에서 남의 구속을 당하는 걸 보고 불쌍

히 여겼던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이렇게 훼방을 놓는 걸 보면 아마 연민이 사랑으

로 바뀔 걸요."

진현풍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자들이란 아무튼 되는대로 추측하길 좋아한단 말이야!"

매초풍은 진현풍의 말에 발끈했지만 꾹 눌러 참고 자기 생각에 잠겼다.

'세상일이란 이상야릇하단 말이야. 사나운 여인한테는 대체로 어리무던한 남편이 주어지고

철선서생처럼 강호를 질타하는 사내들은 꼭 엽청청 같은 불쌍한 여인을 좋아하거든…….'

진현풍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보, 엽청청을 소요관으로 보내자구. 내일 철선서생과 철권 패왕이 반드시 소요관 문밖에

서 길을 막게 될 거야. 그들은 패거리도 많고 무공도 우리보다 약하지 않은데 굳이 시끄러

움을 자초할 게 뭐 있어?"

"뿐만 아니라 여혈의도 그곳으로 갈 거예요 그 사람은 지금 하종과 노위를 찾아 그들의 뒤

를 밟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 그들 세 사람은 꼭 크게 맞붙고 말 거야."

"아니, 그건 불가능할 거예요."

매초풍이 말을 이었다.

"여혈의가 술집에서 부리는 성미를 보면 흉악하고도 교활하거든요. 그가 엽청청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장소에 하종과 노위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들이 엽청청의 행방을 알도록 강요하

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건 그가 철선서생과 철권패왕이 강포(强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엽청청이 나타날 때까지 그들의 뒤를 밟게 되는 거야."

매초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여혈의가 엽청청이 철선서생과 철권패왕의 수중에 있지 않고 우리 부부와 함께 나타

나는 걸 보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그들이 모두 엽청청을 빼앗으려고 덤벼들면 우린 정말 곤란에 빠지게 될 거야. 단독으로

맞서 싸운다면 여혈의는 우리보다 훨씬 강할 거라구!"

"소요공자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죠. 그가 살찐 고깃덩이를 보고 가만있겠어요? 그가 우

리 편을 들면 삼 대 삼인데 아마 승부를 가늠하기 어렵게 될걸요."

진현풍이 잠깐 생각해 보더니 숨을 크게 쉬며 말하였다.

"내 생각엔 그래도 오늘 밤에 엽청청을 보내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매초풍이 의아한 표정으로 진현풍을 쳐다보다가 냉소를 던졌다.

"난 대충 짐작했어요. 당신은 여소교가 악처 후한테 속아넘어가서 몸을 맡기는 걸 원치 않

는 거예요, 흥!"

그러자 진현풍이 머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임자가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죽인다면 난 반대하지 않을 거요. 내가 손수 죽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시집도 안 간 처녀를 시달리게 하는 건 너무……."

"너무 지독하단 말이지요?"

"엽청청이 불쌍하지 않소?"

그러자 매초풍이 쓴웃음을 지으며 비웃었다.

"살인을 하고도 눈 한 번 깜짝거리지 않던 동시가 여색은 꽤 밝히시는군. 나의 언니는 여소

교의 애비한테 유린당하여 죽었죠. 내가 엽청청을 이렇게 대하는 건 바로 그 복수에 잠시

이용하기 위해서예요. 난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 아주 철저하게!

그런데 만약 지금 엽청청을 데리고 소요관에 나타나면 여소교가 아직 몸을 망치지 않고도

악처후의 사람됨을 똑똑히 알아내게 된단 말이에요 당신은 여소교가 몸을 망치는 걸 원치

않겠지만 난 그걸 원해요!"

"임자도 여인이란 걸 잊지마."

"속임을 당해 몸을 망치게 하는 게 여인에 대한 복수 중에서 가장 훌륭한 방법이에요. 하늘

이 마련해 준 이 좋은 기회에 엽청청을 들이밀어야지요. 내일 여소교가 스스로 자기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악처후가 어린 처녀들을 농락하는 데 이골이 난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순간 그녀는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겠지요? 오호호호……!"

매초풍은 흥분하여 마치 여소교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보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여소교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여 미쳐 자살하거나 악처후와 결사적으로 싸울 거예요. 결

국 그 년은 아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예요!"

"우리가 도화도에서 도망쳐 나온 건 한평생 싸우기 위한 거고 <구음진경>을 위한 거였소.

그런데 임자는 단지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었단 말이오?"

진현풍이 질책하듯 말하자 매초풍은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억센 사나이가 결국은 이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이란 말인가? 이게 내 남편이란 말인

가?'

하지만 매초풍은 곧 눈길이 부드러워지더니 온순한 양새끼처럼 진현풍의 품에 안기며 속삭

였다.

"이봐요. 당신 날 싫어하기 시작한 건 아닐테죠?"

진현풍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소요관 정문 양쪽으로 오늘은 장승같이 몸집이 좋은 사내 넷이 파수를 보고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돌로 만든 한 쌍의 사자가 징그럽게 도사리고 앉아 있어, 웬만큼 무예가

있는 사람도 그 안으로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을 정도로 날씨가 맑고 좋았다.

철시 매초풍은 자기가 꾸미고 있는 이 일의 비극적인 현장을 당장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는 의심할 바 없는 하나의 희극이었다.

기분이 좋았던 탓인지 그녀는 파수를 보는 네 사내한테도 각별히 애교 있게 대하였다.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악 공자를 만나러 왔어요. 악 공자께선 계시나요?"

네 명의 파수꾼 중 두 사람은 어제 여소교를 데리고 왔던 흑풍장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

다. 그중 얼굴이 거무스름한 사나이가 물었다.

"세 분은 뭣하러 왔수?"

매초풍은 약간 긴장이 되어 쉰 냥은 됨 직한 은덩이를 쥐여 주면서 웃는 얼굴로 말하였다.

"안에 소식 좀 전해 주세요. 오혈궁 엽청청이 만나련다구 말이에요."

매초풍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에 서 있는 엽청청을 눈짓해 보였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엽청청이 결연히 고개를 쳐들며 입을 열었다.

"수고스럽겠지만 악 공자님더러 나와 달라고 말씀드려 주세요."

거무스레한 사나이는 엽청청을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이 여인도 악처후가 사귄 한 송

이의 들꽃[野花]이리라고 생각하니 그녀가 안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은자까지 받았는지라

안에 들어가 소식을 전하겠다고 쾌히 승낙하였다.

매초풍은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귓속말로 물었다.

"내가 어제 데려왔던 아가씨, 여소교 말이에요. 밤엔 어디서 잠을 자나요?"

그러자 거무스레한 사나이가 음융한 미소를 띄우며 귓속말로 대답하였다.

"그 아가씬 어젯밤에 우리 집 공자님한테 정조를 바쳤을 거요."

매초풍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연신 고맙다고 치하하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

를 한번 으쓱해 보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저 멀리서 두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보폭은 크지 않았으나 속도가 매우 빨

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문 앞까지 왔다. 그들은 다름아닌 철선서생 하종과 철권패왕 노위였

다.

노위가 소리를 질렀다.

"흑풍쌍살, 어서 엽청청을 풀어 놓아라.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주먹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엽청청이 겁이 나서 매초풍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매초풍이 엽청청을 안심시키며 말하

였다.

"겁내지 마. 언니가 여기 있으니 저 놈들이 감히 날뛰지 못할 거다."

철선서생 하종은 다짜고짜로 엽청청한테로 달려왔다. 그러자 매초풍이 그의 얼굴을 할퀴려

고 갈고리 손을 내뻗었다. 하종이 장으로 그 일격을 막았다.

매초풍이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훌륭한 초수로군."

그녀는 한마디 던지고는 갈고리 손으로 또 공격을 시도했다.

철선서생은 얼굴에 한 줄기 차디찬 바람기를 느꼈다.

'이게 전설로 들어 오던 구음백골조란 초수로구나. 저 손에 틀어잡히면 뇌장이 터지고 가슴

팍도 펑펑 뚫린다지?'

한쪽에선 진현풍이 노위와 싸움이 붙었다.

매초풍은 싸우면서도 부단히 발을 움직여 하종이 엽청청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하종은 삼십육로철선접혈절기(三十六路鐵扇点血絶技)를 쓰면서 매초풍의 몸에서 대혈을 노

렸다. 매초풍은 점혈술(点穴術)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통하지 못했지만 황약사한테서 무예를

전수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어할 줄은 알았다.

소요공자가 나오면 일이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철선서생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

다. 그늘 위 양명경선(胃陽明經線)을 따라 관문혈(關門穴), 천구혈(天柩穴), 귀래혈(歸來穴),

기충혈(氣沖穴)을 연거퍼 공격하였고, 연이어 쌍퇴비관혈(雙腿脾關穴), 복토혈(僕兎穴), 음시

혈(陰市穴), 양구혈(梁丘穴), 독비혈(獨鼻穴), 족삼리혈(足三里穴), 풍융혈(豊隆穴) 등을 공격

하였다. 그러다가는 또 족소얀담(足少陽膽經)의 환도혈(環跳穴), 풍시혈(風市穴), 슬양관혈(膝

陽關穴), 양릉천혈(陽陵泉穴), 그리고 족태음경(足太陰經)의 혈해혈(血海穴), 지기혈(地機穴),

음릉천혈(陰陵泉穴) 등 매초풍의 두 다리에 있는 대혈들을 줄곧 노렸다. 그는 철선으로 혈도

를 찌르기도 하고 철선을 활짝 펼쳐 칼로 삼아 두 다리를 내리깎기도 하였다.

하종은 매초풍의 발걸음을 교란시키다가 틈을 봐서 그녀의 몸 뒤에 있는 엽청청을 잡으려고

하였다. 매초풍은 하종의 이런 초수에 익숙하지 못한지라 발걸음이 문란해졌다.

바로 이때 소요관의 대문이 열리더니 악처후가 부하들인 팔대 금강들을 거느리고 나왔다.

그는 문 앞에서 흑풍쌍살과 두 고수가 격전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엽청청은 악처후를 보자 즉시 그한테 달려가 자기 신세를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었다. 하지만 처녀의 몸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경망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그녀는

그저 입 속으로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뿐이었다.

"악 공자님!"

악처후는 엽청청을 보자 아주 기뻐하였다. 어젯밤에 장이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 도망쳐 와

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엽청청과는 연분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었던 터였다. 단지 당

시 악처후는 여소교와 운우지정을 나눈 뒤라 마음이 온통 여소교한테 쏠려 있었으므로 그

일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엽청청이 나타나게 되니 악처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

앞으로 달려가서 입을 열었다.

"엽청청이, 난 그대를 잠시도 잊을 수 없었소."

매초풍이 의미 있는 눈길로 악처후를 바라보더니 엽청청을 부축하여 악처후한테로 다가오며

말했다.

"여봐요, 저 철선서생이 당신의 청청이를 빼앗아 가려 해요."

악처후가 멍하니 듣고 있을 때 철선서생이 달려오며 소리 질렀다.

"청청이를 내놓아라!"

그 말을 들은 악처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떤 놈이길래 감히 호랑이의 수염을 건드린단 말인가?'

악처후가 주먹으로 내지르니 철선서생이 왼팔로 막으면서 오른손에 든 철선으로 악처후의

왼쪽 가슴의 천지혈(天池穴)을 찌르며 물었다.

"네 놈이 악처후냐?"

악처후가 몸을 비키면서 장을 내질렀다.

"그렇다. 내가 악씨이다. 넌 누구냐?"

하종이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난 철선서생이다. 오늘 일부러 너 같은 풍류 건달의 버릇을 가르치려고 왔다. 네 놈은 추호

도 엽청청을 건드릴 생각은 말아라. 그렇지 않았다간……."

악처후는 하종의 뜻을 대충 알아차리자 더 대답하지 않고 팔대 금강 중의 네 금강더러 하종

을 포위하게 하고는 엽청청을 찾았다.

그런데 보니 매초풍이 엽청청을 끌고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파수를 보던 네 사나이가 어

쩔 줄 몰라하며 그대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악처후는 매초풍이 두 번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을 데리고 온 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지라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을 들여놓지 말란 말이야!"

그 말에 파수를 보던 네 사내와 나머지 사대 금강이 급히 쫓아 들어갔다.

매초풍은 엽청청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다가 등뒤에서 펄럭거리는 옷자락 소리가 들려 오

자 누군가 뒤쫓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매초풍은 옆으로 훌쩍 비켜서면서 몸을 돌리며

최심장을 한 대 먹였다.

펑!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매초풍은 쫓아온 사람과 맞장을 치고 나자 온몸에 진동을 받아 몇 걸

음 뒤로 물러났다.

자세히 상대방을 살펴보던 매초풍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앗!"

엽청청도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여 사형!"

뒤에서 기습해 온 사람은 바로 오혈궁의 세 사형 가운데 한 사람인 여혈의였다. 여혈의를

알아본 매초풍은 얼른 속으로 생각을 더듬었다.

'여혈의, 넌 정말 째째한 놈이로구나. 난 우리가 문 앞에서 혼전을 할 때 네 놈이 모습을 드

러낼 줄 알았었는데 미리 소요관에 잠입해 가지고 우리를 막다니…….'

여혈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엽 사매, 이리로 건너와!"

여혈의가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 오자 매초풍과 엽청청은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사대 금강과 네 파수꾼이 쫓아 들어왔다. 매초풍은 급한 중에도 한 가지 꾀가 떠올랐

다.

"저 놈은 오혈궁 문하에 있는 놈인데 명을 받고 엽청청을 붙잡으러 왔어요!"

엽청청이 악처후가 좋아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대 금강은 공로를 세워 볼 생각

으로 즉시 여혈의를 둘러싸고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네 명의 파수꾼들도 싸움에 끼여들었다.

여혈의는 용맹하기는 하였으나 그 포위 속에서 금방 빠져 나 올 수가 없었다. 그는 엽청청

이 소요관에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는 우선 소요관의 작자들을 몇 명 죽여 버림

으로써 악처후의 예기를 꺾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매초풍은 엽청청을 끌고 들어가려 하였지만 길을 잘 몰라 얼굴이 거무스레한 그 파수꾼을

싸움의 대열에서 끌어내었다.

"어서 우릴 안에다 숨겨 줘요."

낮이 거무스레한 사내는 매초풍이 자기를 닭 한 마리 끌어내는 것보다도 더 쉽게 끌어내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좋수다. 좋아요. 날 따라오시오."

세 사람은 총총히 소요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도처에 정자와 누각이 있었고 기이한 화초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매초풍은 이곳이 도화도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꼈다. 한편으로 소요공자가 정말 소요(逍遙)롭

다고 여겨졌다. 다만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도화도의 순수한 자연

적 풍경에 비하면 어쩐지 속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매초풍이 말하였다.

"우릴 여 아가씨한테로 데려다 주세요."

"미안합니다만, 누구든지 소요루(逍遙樓)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공자님의 분부가 계신데요?"

"여 아가씨가 소요루에 있나요? 좋아요. 당신은 우릴 소요루 앞에까지만 데려다 주면 돼요."

얼굴이 거무스레한 사나이는 약간 망설이다가 어쨌든 엽청청도 조만간 소요루에 들어가게

될 사람이니 별상관 없으리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굽이를 돌고 네 개의 관문을 지나면서 그 파수꾼이 허리춤에서 네 개의 다른 패쪽을

꺼내 보이고서야 소요루 앞에 당도 할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소요루입니다."

얼굴이 거무스레한 파수꾼은 알려주고는 곧장 되돌아 나갔다.

매초풍과 엽청청은 소요루 문으로 다가갔다.

문안에서 칼을 든 두 사내가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찌하여 이곳으로 뛰어들었느냐?"

매초풍이 엽청청을 가리키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분은 너희들의 공자님과 가까이 지내는 엽청청 아가씨다. 누가 이 아가씨를 잡으려 하므

로 부득이 이 소요루에 피신을 해야겠다."

"안 된다! 공자님이 내주신 패쪽이 없이는 누구도 이 소요루를 드나들지 못한다!"

엽청청이 손으로 매초풍을 잡아당겼다.

"언니, 이곳에 좀 앉아 있어요. 이곳의 규칙을 위반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자 매초풍은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나이한테로 걸어갔다. 두 사나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서라! 서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여기에 공자께서 주신 영패(令牌)가 있어요. 믿어지지 않는다면 보세요!"

매초풍이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두 사나이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으로 멍하니 쳐다보았

다. 매초풍은 괴춤에서 영패를 꺼내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하였다.

그녀는 갑자기 갈고리 손을 뻗어 그 두 사람의 목을 그러쥐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목

이 찢어진 채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언니, 그 사람들은 왜 죽이는 거예요?"

엽청청이 깜짝 놀라 달려와 물었다. 그러자 매초풍이 쌀쌀한 얼굴로 엽청청을 잡아 끌고 들

어가며 대꾸하였다.

"그 놈들이 길을 가로막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그까짓 졸개 놈 두엇쯤 죽이는 게

무슨 대수냐?"

"졸개는 사람이 아닌가요? 모두 저 때문이에요."

엽청청이 눈물을 머금었다. 매초풍은 별 이상한 애도 다 있다 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혈궁은 인명을 초개같이 여긴다던데, 넌 그래 오혈궁 문하의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전 사람을 죽여 본 일도 없거니와 죽이는 걸 본 일도 없어요.

이게 처음이에요."

이렇게 대답하는 엽청청의 머리 속에는 임종에 처하여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던 두 문지기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정말 햇병아리로군."

매초풍이 웃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언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어서 가잔 말이다. 이 언니가 너에게 어떤 미인을 만나게 해줄테니……."

"이곳에 무슨 미인이 있단 말이에요?"

"넌 악처후가 무슨 성인군자인 줄 아느냐? 넌 잘못 생각했어. 풍류인물인 그자가 얼마나 많

은 양갓집 처녀들을 짓밟았는지 몰라."

엽청청은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 소리쳤다.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을 하는 자는 바로 악처후 그자야. 그잔 달콤한 말로 사람을 꾀는 덴 명수지. 그자가

바로 어젯밤에 받아들인 미인을 보여줄 테니 잠자코 있어."

엽청청은 매초풍의 말이 미덥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그 말이 정말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층계 아래에서 두 계집종이 해초풍과 엽청청 두 사람을 보자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새로 온 아가씨들이죠?"

"그래, 우린 방금 왔어요. 공자님의 새 아씨 여 아가씨를 만나 보려고 해요."

"공자성은 그 아씨를 속이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런데 아씨들이 이렇게 오시면 한데 섞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다른 계집종이 참견을 하였다.

"오늘은 어제와는 달라. 어젠 속여야 했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어."

"그건 왜?"

"여 아가씨는 어젠 숫처녀여서 공자님은 여 아가씨 한 사람만 좋아하는 것처럼 꾸며댔지만

오늘부터는 이미 공자님의 사람이 되었단 말야. 공자성이 풍류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들 이

미 엎지러진 물인데 주워담을 수 있겠어?"

"하긴 그래.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어대는 여인들을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보았나. 여인이란

사내한테 한번 몸을 주기만 하면 한평생 끝장이란 말야.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는 고분고

분 말을 듣는 수밖엔 없어."

두 계집종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본 매초풍이 그 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우릴 여 아가씨한테 데려다 주세요."

두 계집종이 그러마고 대답하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엽청청은 비록 이런 일에 대해선 까막눈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매초풍이나 두 계집종이

말한 것처럼 악처후가 방탕한 자가 아니기를 바랐다.

"여 아가씨, 어떤 분이 아가씨를 만나러 찾아왔어요."

두 계집종이 문을 열고 들어가 고하고는 도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매초풍이 두 계집종

을 방안으로 떠밀어 넣은 다음 문을 잠갔다. 계집종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유, 웬 아씨가 힘이 이리도 셀까?"

"우릴 이 방에 왜 끌고 들어오나요?"

매초풍이 손으로 의자 한 개를 내리치자 그 의자가 즉시 부서 졌다.

"주둥아릴 닥쳐. 이 할미 부아를 돋우지 말란 말이야!"

두 계집종은 매초풍이 대단한 무공을 가진 여인임을 알고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

였다.

여소교가 소리를 듣고 안쪽 방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녀는 용모는 여전하였으나 하룻밤

사이에 순진한 처녀에서 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매초풍을 알아본 여소교가 깜짝 놀랐다.

"언니군요?"

"여봐 동생, 어젯밤 악 공자가 잘 대해 주었겠지?"

매초풍이 비웃는 투로 물었다.

여소교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지난밤에 찰거머리처럼 들러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던 악 공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일에 그렇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또 한사람이 왔으니 신경을 안 쓸래

야 안 쓸 수가 없단 말이야."

매초풍은 깔깔거리면서 엽청청을 여소교 앞으로 떠밀었다.

엽청청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여소교한테 물었다.

"당신은 악 공자하고 어떤 사이죠?"

"난 그이의 미혼처예요."

여소교는 교만한 어조로 대답하긴 했지만 좀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니에요. 그이는 저한테 장가들겠다고 했어요!"

엽청청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면서 부르짖었다.

여소교도 그녀의 말에 눈을 휘둥그래 뜨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악 공자성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매초풍은 그들이 한데 엉겨붙어 싸울까 봐 얼른 엽청청을 자기 쪽으로 잡아 끌면서 대신 말

하였다.

"여소교, 이 엽청청이야말로 악처후가 장가들려고 하는 여인이야. 임잔 속임수에 걸려든 거

야!"

여소교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계집종의 팔을 붙잡고 울부 짖었다.

"여봐, 저 여자가 왜 이런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

계집종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매초풍이 계집종의 어깨를 틀어쥐고 위협

하였다.

"지금부터 악처후가 난봉부리던 일을 낱낱이 말해 봐!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매초풍이 손아귀에 약간 힘을 주자 계집종은 너무 아파 소리를 내질렀다. 매초풍의 위협에

겁을 먹은 계집종은 하는 수 없이 악처후가 난봉부리던 일을 줄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악

처후가 난봉을 부린 일은 부지기수였으므로 계집종은 별로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이 얼

음에 박 밀듯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계집종의 말을 듣던 여소교는 점점 낯색이 창백해지고 손을 덜덜 떨더니 마침내 참지 못하

고 소리쳤다.

"악처후, 이 죽일 놈아!"

여소교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기절하고 말았다.

매초풍은 갑자기 등에 무슨 짐이 실리는 듯해 돌아다보니 엽청청이 자기 몸에 쓰러져 있었

다. 매초풍은 엽청청을 한쪽으로 살짝 밀어 놓은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아래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악처후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매초풍, 네 년을 죽여 버릴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악처후가 위층으로 올라왔다. 매초풍은 그와 싸울 생각이 없는지 얼른 복

도로 몸을 비키더니 나는 듯이 달아 났다.

악처후가 손에 검을 든 채 매초풍을 찾아다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바람기가 느껴졌다.

그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면서 이랑 담산 초수로 검을 뒤로 돌려 몸 뒤로 들어오는 병장기

를 막았다.

머리를 돌려보니 엽청청이 미친 듯이 유엽도로 내리찍으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릴테다!"

악처후가 검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 그녀가 물러서게 하려 하였지만 엽청청은 더욱 결사

적으로 달려들며 칼로 악처후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악처후는 깜짝 놀라 검으로 칼을 막고 나서 황급히 눈에 띄는 방안으로 뛰어들었는데 마침

여소교의 방이었다.

방안에서는 두 계집종이 여소교를 침상에 눕히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악처후는 무슨 일

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은 여소교 앞으로 다가갔다.

"소교, 어서 일어나라구! 난리가 났단 말이야."

그는 이런 북새통에도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 엽청청이 뛰어 들어오더니 칼을 들고 악처 후한테 달려들었다. 도망갈 곳 없이 방안에

갇힌 꼴이 된 악처후는 창문을 뚫고 아래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혈의가 이곳까지 쫓아 들어왔다. 그가 든 칼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악처후를 보자마자 무조건 피 묻은 칼로 들이찔렀다. 순식간에 공격을 받은 악

처후는 반격할 겨를도 없는지라 노려정곤(老驢 滾) 초수로 밖으로 나뒹구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땅바닥에서 뛰쳐 일어난 소요공자는 제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검을 들고 여혈의와 자

웅을 결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미처 똑바로 서기도 전에 여혈의가 칼로 연속 세 번을

들이 찔렀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악처후의 머리, 목, 옆구리를 거의 동시에 찌르는 것 같

았다.

악처후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검을 들어 겨우 여혈의의 칼을 막았다. 그는 여혈의와 싸우면

싸울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혈의가 오혈궁의 세 사형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았지만 그의 무공이 다른 두 사형들인 노로의와 초천의에 비해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던 것

이다.

악처후는 기를 쓰고 싸우고 싶지 않아 여러 차례나 도망가려 하였으나 여혈의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가 조급해 하며 틈을 보고 있을 때 두 금강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

왔다.

그들 두 사람은 온몸이 피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여혈의를 보자마자 마구 칼을 휘두르며 달

려들었다.

바로 전에 여혈의를 둘러싸고 공격하던 네 금강들 가운데서 두 금강이 여혈의의 칼에 맞아

죽었고 세 명의 파수꾼 모두 살아 남지 못하였다.

두 금강이 악처후에게 가세하여 여혈의와 싸웠지만 여전히 열 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들

은 거푸 열 합도 싸우지 못한 채 두 금강은 칼에 여러 곳을 찔려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

았으나 만 신창이가 되었고, 악처후도 어느새 옷자락이 두 자 남짓이나 찢어졌다.

악처후는 자기 옷이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얼굴빛이 백지 장이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도망칠 궁리를 하였지만 여혈의의 공격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잠시도 몸을 빼낼 틈이

없었다.

한편 엽청청은 칼을 들고 악처후를 죽이려 하다가 그가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자

기도 뒤따라 뛰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계집종들이 그녀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엾청청은 무공을 갖춘 여인이라 계집종들을 자기에게서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계집종들

이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자 엽청청은 기분이 몹시 상하고 불쾌하여 평소에 아주 온순하

던 것과는 달리 금라수법(擒拿手法)으로 계집종들을 휘어잡고 발로 차서 꺼꾸러뜨린 다음

나는 듯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소요루는 아주 높은 건물이라 이층 창문은 땅바닥에서 그 높이가 삼사 장이나 되었다. 소요

공자가 이 높이를 뛰어내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경공이 대단치 않은데다가 화가

나 심기가 불안정한 상태의 엽청청은 창문에서 뛰어내리자 즉시 거꾸로 떨어지기 시작하였

다. 그대로 떨어지면 죽지 않으면 팔다리가 부러질 판이었다.

하지만 엽청청은 분노에 못 이겨 앞뒤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창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소

리를 질렀던 것이다.

"악처후, 네 놈을 죽여 버릴테다!"

여혈의는 그 고함소리에 놀라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엽청청이 창문으로부터 거꾸로 떨어지

고 있었다. 여혈의는 사태가 위험한 것을 보자 연자삼초수(燕子三抄水)의 절기로 세 발자국

만에 창문 아래에 당도하였다.

여혈의는 거꾸로 떨어지는 엽청청을 직접 받지는 못하고 어깨로 그녀의 등허리를 가볍게 밀

쳐 가로 나뒹굴게 하였다. 엽청청은 여혈의의 어깨에 밀려 풀밭에 떨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혈의가 달려가서 엽청청을 부축한 뒤 머리를 돌리며 부르짖었다.

"악처후, 나의 사매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네 놈을 살려 두지 않겠다!"

하지만 악처후는 이미 그림자도 없이 꽁무니를 뺀 뒤였다.

두 금강은 고지식하게도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하려고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여혈의는 몹시

화가 나 있는 터라 마구 짓쳐 나가면서 두 칼을 들어 마파쌍랑(馬破雙浪)초수로 좌우의 두

금강의 두개골을 내리찍었다.

여혈의는 두 금강을 죽이고 나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엽청청을 흔들어 깨우며 안타깝게 말

하였다.

"사매, 정신을 차려. 절대 잘못되어서는 안 돼!"

여혈의가 엽청청을 안마해 주고 혈도를 찌르자 그녀가 눈을 떴다.

"오빠……, 난……."

"아무 소리도 하지 마. 널 나무라지 않는다. 네가 무사하니 기쁘다."

엽청청이 힘없이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난…… 그잘 미워해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꼭 그 놈을 죽여 버릴테다!"

그러자 엽청청이 다시 눈을 뜨며 당황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지 말아요. 그잔 절 다치게 하지는 않았어요."

"넌 역시 그 놈을 잊지 못하는구나."

여혈의는 한숨을 쉬면서 엽청청을 품에 안은 채 소요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진현풍은 공중으로 한 장이나 솟아올라 곤두박질을 치면서 철권패왕 노위한테 덮쳐들었다.

그는 갈고리 모양을 한 오른손으로 구음백골조를 쓰면서 노위의 정수리를 끌어잡으려 하였

다.

노위는 쌍포굉천(雙暑轟天) 초수를 쓰면서 두 주먹을 머리 위로 내밀어 진현풍과 자웅을 결

하려고 들었다.

구음백골조는 그 조력(爪力)이 뼈까지 꿰뚫을 수 있고 초수가 아주 기괴하여 가늠하기 어려

운 특점을 갖고 있는데다가 흑풍쌍살 두 사람의 각고의 노력과 연구로 더욱 위력이 대단했

다.

진현풍은 자기가 강하게 노위와 맞부딪치게 되면 노위의 주먹을 상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자기도 그 주먹에 적잖이 상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진현풍은 왼손으로 노위의

두 주먹을 피해 자기 머리를 막으면서 오른손을 약간 돌려 계속 그의 정수리를 노렸다.

노위는 구음백골조의 무공에 대하여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강하게 맞

부딪치지 않으려 했다.

동사 진현풍이 솟아올랐다가 허리를 굽히며 두 발을 땅에 내려 디디면서 왼손으로 장을 휘

둘렀다. 노위도 장으로 반격을 가했다.

빵!

두 장이 큰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진현풍은 한 발 물러서면서 동시에 오른손의 갈고리를 노위의 왼쪽 팔에 걸었다. 도저히 공

격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급작스레 공격을 받은 노위는 깜짝 놀라 급히 왼쪽 어깨를

피하였다.

쫙―!

그 바람에 노위의 옷소매가 절반이나 떨어져 나갔다.

노위가 급한 김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짜식, 솜씨가 날쌘데!"

노위는 '삼추관일(三錘貫日)'의 초수로 진현풍의 얼굴과 가슴에 연거푸 세 번이나 주먹을

안겼다. 진현풍이 얼른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머리를 숙이는가 싶더니 발길질을 하였다.

두 사람은 이렇게 왔다갔다하며 오륙십 합이나 싸웠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진현풍은 노위와 싸우면서 자신을 가다듬었다.

'이 동시는 강호를 누비며 다녔지만 별로 적수가 될 만한 자를 만나 보지 못했었다. 오늘

내가 너 따위 철권패왕을 죽여 버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강호에서 활개치며 다닐 수 있겠느

니?'

진현풍은 정신을 집중하여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쓰며 악전고투하였다. 노위 역시

힘겨운 상대를 맞아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철선서생은 네 금강들한테 둘러싸여 약간 수세에 빠지기는 하였으나 한동안 승부를 가

리지 못하였다.

이 네 금강은 소요관의 팔대 금강들 가운데서 무공이 가장 출중한 자들로서 소요공자 악처

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들도 흑도에서는 이름이 뜨르르한 인물들이었다. 진령

일대에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하여 관청을 깜짝 놀라게 한 수십 건의 무시무시한 사

건들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 네 금강은 형제간이었는데 각기 탈백도(奪魄刀) 정원(鄭元), 타

장편(打將鞭) 정건(鄭乾), 쌍창(雙槍) 정비용(鄭飛龍), 개산부(開山斧) 정비호(鄭飛虎)라 불렸

다.

쌍창 정비용은 음험하고 교활한 자라 좀 멀찌감치 물러서서 빙빙 에돌다가 틈을 보아 가며

갑자기 창을 내지르곤 하여 철선 서생은 다섯 번이나 찔릴 뻔한 고비를 넘겼다. 정비호 역

시 틈을 보아 도끼로 하종의 어깨를 내리쳤다.

하종은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이란 초수로 상대방의 병장기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정원의 탈백도와 정건의 타장편이 날아들었다.

하종이 철선으로 탈백도를 막으면서 발길을 날려 타장편을 든 정건의 오른손을 걷어차자 정

전은 얼른 팔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종은 뛰어난 경공 초수로 정비호의 등뒤로 후닥닥

돌아가서 장으로 등심을 후려갈겼다. 우람한 체구의 정비호는 그 장력을 견뎌 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정원의 칼끝 쪽으로 쓰러지려 하였다. 정원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정비용이 쌍창으로 가만히 하종의 양 옆구리를 찔렀다. 하종은 바람결을 느끼고 몸을 얼른

피했으나 오른쪽 옆구리가 창 끝에 긁혀 반 자나 찢어졌다. 하종이 분노하여 적성을 지르면

서 철선 으로 정비용의 중부혈과 천지혈을 찌르자 교활한 정비용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이때 철시 매초풍이 소요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문에는 십여명이 지키면서 누구도 마음대

로 드라들지 못하게 철저히 방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할 여인이 뚫고 나오려 하자 각기 병

장기를 치켜들고 가로막았다. 그들 줄에는 늙은 자라와 작은 게도 끼여 있었다. 매초풍이 무

서운 여인임을 알고 있는 그 두 사람은 옆으로 슬쩍 물러났다. 그런데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이 여인이 철시인 줄 모르고 소라를 지르면서 덤벼들었다.

매초풍와 주먹에 순식간에 두 놈이 나동그라지고 세 놈이 갈고리 손에 목에 찢어져 인후가

끊어졌는데, 그 동작이 어찌나 빨랐던지 그녀의 몸놀림을 재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매초풍은 문밖으로 나와 있었다.

멀리 진현풍이 노위와 고전을 치르고 있는 게 보였다. 매초풍이 서둘러 그쪽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노위의 덜미를 할퀴려 들었다. 노위가 다급해져 잠시 몸을 피하자 매초풍은 진현풍

의 손목을 잡고 말하였다.

"여봐요, 알아 다 되었으니 우린 그만 떠나요!"

노위가 대로하여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도망가려구? 쉽게는 안 될걸!"

하지만 흑풍쌍살이 주먹으로 일시에 공격을 가해 오자 노위는 놀라서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들 두 내외는 그 틈에 경공을 써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노위가 쫓아가져 하다가 갑자기 들려 오는 하종의 비명 소리에 멈칫하고 뒤를 돌아다보았

다. 놀랍게도 하중이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다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하 공자, 내가 도와주겠소!"

철선서생은 두 곳에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었고 피가 흘러 보기가 끔

찍할 따름이었다. 철권패왕이 하종을 도와 둘이 함께 맹공격을 가하자 네 금강은 견뎌 내지

못하고 연거푸 주먹에 맞거나 철선에 혈도를 찔렸다. 그렇지만 다행히 네 금강이 경험이 풍

부했던 탓에 요해처를 격중당하지는 않았다.

그때 작은 게가 소요관에서 일어난 일을 탐지해 가지고 대문 밖으로 와서 소리쳤다.

"큰일났어요! 공자께서 보이지 않아요. 네 금강께선 어서 돌아오시오!"

네 금강은 악처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당황하여 싸움을 제쳐놓고 대문 안으로 달

려들어갔다. 하종과 노위가 그들을 쫓아가다가 단도와 표창이 마구 날아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꽝―!

뒤이어 소요관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노위가 하종에게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아가씨가 아직 저 안에 있소 우리 담장을 넘어 들어가서 소요관을 한바탕 뒤집어 놓읍시

다."

그러자 하종이 머리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매초풍이 들어갈 때 가로막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분명 여혈의인 것 같소. 여혈의가 안

에 있는 한 엽청청은 아무 일 없을 거요."

"정말 저 안에 여혈의가 있다면 혼이 날 놈은 악처후지요."

 

―제17권에서 계속―

 

[출처] 화산논검 - 풍류여마 매초풍 2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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