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대하소설 / 임꺽정 양반편3 - 홍명희

一字師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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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임꺽정 양반편3

- 홍명희

임꺽정 3: 양반편 | 홍명희 - 모바일교보문고

제 3장 익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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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이 난 뒤에 이 년이 채 지나지 못한 때다. 당시 부제학 벼슬을 가지고 있던 정언각이란 자가 전라도로 가는 딸자식을 전송하여 과천 양재역말까지 나갔다가 들어와서 익명서 한 장을 봉하여 위에 바치며 아뢰는 말이 "양재역말에 익명서 한 장이 붙어 있삽는데 국가에 관계되는 말씀이옵기에 도려다가 바치옵나이다. " 대왕대비가 정언각의 올리는 익명서 봉을 뜯고 펴서 보니 "여자가 정사를 알음하고 간신이 권세를 농락하니 나라 망할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다. 이것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랴. " 하고 주서로 쓴 것이었다. 대왕대비가 화가 나서 즉시로 삼공 이하 중신을 불러들이어 익명서 처치할 도리를 의논하라고 전교를 내리었다. 윤인경, 이기, 정순붕, 임백령, 허자, 윤원형, 민제인, 김광준 등이 빈청에 모여 앉아 익명서를 돌려보고 의논을 시작하였다. 윤인경이 멀저 입을 열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좋은 의견을 들읍시다. " 하고 좌우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코 앉았는데 임백령이 앞으로 나서서 "양재역 찰방부터 역졸들까지 모두 잡아올려서 엄형으로 국문하면 익명서 단서가 자연치 드러날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의견을 말하였다. 정순붕이 백령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일어서서 "역졸들을 국문하여 무슨 단서를 얻겠습니까? 재작년 옥사에

경하게 처단한 죄인들이 화근이 되어서 이런 익명서까지 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근래에 옥은 무옥이고 훈은 위훈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아다닌다니 이런 망상스러운 말을 지어 내는 자가 대개는 익명서를 써붙였을 것이고, 이런 흥한 문자를 쓰는 자가 대개는 죄인의 여당일 것인즉 경한 죄인을 고쳐 다스릴 뿐 아니라 죄인의 여당까지 함께 죄주면 화근이 자연히 막힐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말하자, 이기가 순붕의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연해 끄덕이었다. "그것은 너무 심한 말씀이오. " 하고 허자가 말하고 "한 번도 심하거니 두 번이야. " 하고 민제인이 말하다가 윤원형이 눈을 흘기는 바람에 고개들을 수그리고 다시 두말 하지 못하였다. 잠시 동안에 의논이 귀일하여 같이 머리를 모으고 앉아서 죄인과 죄인 여당의 성명 발기를 썩어 놓고 죽일 사람과 절도 안치할 사람과 및 원방 부처할 사람을 각각 구별한 뒤에 윤인경이 대왕대비께 회계하되 "죄인이 참죄인이 아니고 공신이 거짓 공신이라는 말이 근일에 떠돈다고 신들도 들은 일이 있사오나 언근을 알지 못하와 감히 주달하지 못하였삽더니 지금 익명서를 보온즉 떠돈다는 말이 바이 헛말지 아닌 줄을 알겠사외다. 또 이와 같은 익명서는 결코 용렬한 자의 능히 할 바이 아니외다. 지금 마땅히 죄줄 만한 자의 경중을 구별하여 아뢰오니 처분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그것은 익명서를 보고 비로소 청하는 것이 아니옵고 당초에 죄들을 정하을 때에 사정없이 율을 켜지 못하와 후환을 끼쳤삽기에 다시 청하려고 하던 차이외다. " 대왕대비가 죄인의 명록을 받아 보니 봉성군의 이름이 죽여 마땅한 사람의 첫머리에 있었다. 봉성군은 윤임 옥사에 간련된 까닭으로 평창에 귀양 가서 있는 중이라 이미 원방에 내쫓은 것이 족하니 가죄는 불가하다고 대왕대비가 봉성군의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하다가 양사 옥당에서까지 나서서 대의로 단정타라고 다투는 까닭에 마침내 봉성군도 사약하게 되었다. 이때 참판 송인수와 정랑 이약빙은 사약을 받고, 목사 임형수, 좌랑 정황, 정언 유희춘, 정언 김난상, 찬성 권발, 찬성 이언적, 헌납 백인걸, 장령 이언침, 지평 민기문 등은 혹은 안치 혹은 부처를 당하였다. 정언각이 독계를 올리되 "임형수는 윤임과 이웃하여 살았고 윤임의 심복이 되어서 주인 광좌에서 윤원형은 죽여 마땅하다고 대언장담하던 위인이오니 안치가 헐할 듯하외다. " 하고 임형수를 몰았더니 대왕대비가 "양재의 익명서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련만 너 홀로 가지고 와서 바쳤으니 너는 신자 된 직분을 다하는 사람이다. " 하고 칭찬한 뒤에 "임형수가 다른 사람과 죄는 같고 벌은 달라서 나도 괴이쩍게 생각하는 바이다. " 하고 그릇 논죄한 것을 말하고 곧 임형수에게 사약하라는 전지를 내리었다.

 

2

이보다 얼마 전에 윤원형의 수하 진복창이 사헌부 지평이 되며 원현의 뜻을 받아서 임형수의 부자가 윤임의 심복이니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주장하여 여러 대간들과 함께 나서 탄핵한 결과로 임동이는 삭탈관직을 당하고 임목사는 파직을 당하였었다. 이때 금부도사가 사약 전교를 받들고 나주로 내려가서 목사를 찾으니 목사는 마침 본집에 가고 판관을 물으니 판관은 공교히 병들어 누웠었다. 시골 가는 사약 도사가 사약 전교를 봉행할 때는 본토 관원 하나를 대동하는 법이라 목사와 판관이 모두 유고한 것을 안 뒤베 도사가 이방을 불러서 사정

을 말한즉 이방이 "교수 나으리가 계시니 같이 갑시면 될 것이올시다. " 하고 대답하여 교수를 청하여 사약하러 갈 것을 의논하였다. 이방은 임목사의 문하인과 다름없는 사람이라 도사가 나오기 전에 달음질을 쳐서 임목사 집에를 왔다. 임목사가 동리의 늙은 사람과 같이 바둑을 두는 중이라 정하에서 문안을 드리는 이방을 내다보고 "너 어째 나왔느냐? " 하고 말 한마디 묻고서는 "어서 두게, 자네같이 질감스럽게 들여다보아서야 재미가 있나. " “두지요. " "그렇게 놓아. 가만 있거라. 이러면 어쩔 터인고. " 하고 바둑에 재미를 붙여서 다시 내다보지도 아니하니 이방이 맘이 조급하여 몇 번 큰기침을 하다가 나중에 "영감마님, 급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 하고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임목사가 그제야 이방의 창황한 기색을 보고 수상히 생각하며 "무슨 말이냐? 말해라. " 하고 재촉하니 이방이 주저하다가 "잠깐만 조용히. " 하고 말하였다. 임목사가 줌에 바둑을 쥔 채로 일어서서 마루 끝으로 나왔다. 이방이 댓돌 위에 올라서서 나직한 목소리로 사약 도사가 내려온 것를 말하고 "곧 나을 것입니다. 어서 뒷일을 처리하십시오. 소인은 물러갑니다. " 하고 절하고 다시 댓돌 아래로 내려가니 임목사가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와서 바둑 두는 늙은이를 보고 "서을 손님이 나를 찾아온다네. 바둑은 고만 치우게. " 하고 줌에 쥐었던 바둑을 통에 넣는다는 것이 태반은 방바닥에 떨어뜨리었다. "자네는 가게. " 하고 임목사가 말하여 늙은이가 일어서 나간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금부도사가 교수와 같이 말을 타고 금부 나졸과 고을 하인들을 데리고 문간으로 들어왔다. 잠시 동안에 임목사 집은 안팎이 물끓듯하였다. 그러나 범 같은 나졸들이 잡인을 금하여서 안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바깥사람이 들어오지 못하였다. 임형수가 뜰 아래 꿇어앉아 전교 사연을 들은 뒤에 도사를 치어다보며 "노친이 계시니 하직할 틈을 주시겠소?“ 하고 물으니 도사가 처음에는 미간을 찌푸리고 허락하지 아니할 모양을 보이더니 어찌 생각하고 "특별히 허락하는 것이니 속히 하직하고 나오시오. " 하고 사정을 써서 임형수가 안으로 들어가는데 나졸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임뎡수가 안에를 다 들어가지 아니하고 중문 안에서 두 번 절하고 돌쳐서 나오니 도사가 이것을 보고 "자제에게 유언할 것이 있거든 자제를 불러 보고 하인에게 말이를 것이 있거든 하인도 불러 보시오. " 하고 관대하게 허락하여 팔구 세 된 임형수의 아들이 하인과 같이 나와서 아들도 울곤 하인도 우는데 임형수가 "울지 말고 아비의 얼굴이나 잘 보아 두어라. " 하고 말한 뒤에 "너는 글을 읽지 마라. " 하고 이르고 그만 들어가라고 말하여 아들이 절하고 돌아서서 엉엉 소리를 내서 울면서 몇 걸음 걸어가자, 임형수가 "나 좀 보아라. " 하고 말하여 그 아들을 다시 돌쳐 세워놓고 "글을 아니 읽으면 무식하니까 글은 읽되 과거를 보지 마라. " 하고 먼저 이른 말을 고쳐 일렀다. 그 아들이 들어간 뒤에 임형수는 "서산낙일에 명재경각이란 것이 나를 두고 한 말이구려. " 하고 빙그레 웃었다.

 

3

대체로 사약할 때 주는 약이 먹고 죽으라는 약이지만 인삼, 부자와 같은 준한 약이지 비상과 같은 독약이 아니므로 약 먹인 뒤에 뜨거운 방에 두거나, 약 먹인 위에 독한 술을 먹이거나 하여 약기운을 한껏 발작시키더라도 용이하게 죽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도사가 약사발을 연거푸 안기다가 진력이 나면 수건, 말고삐, 활시위 같은 물건으로 목을 졸라 죽이게 하여 사약이 교살로 변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었다. 이때 도사가 임형수의 소망을 좇아서 약을 술에 타서 한 사발 가득히 부어 주니 임형수가 공손히 받아들고 "이 술은 주인으로 촌님에게 권하지 못하는 괴상한 술이라 나 혼자 먹소. " 하고 허허 웃고 나서 한숨에 들이마시었다. 임형수는 본래 주량이 한정없는 사람이라 한 사발 술로는 술 먹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한사발 또 한사발약탄 술을 마시는데 옆에 가까이 있던상노아이가 어디 가서 포쪽을 가지고 와서 징징 우는 소리로 "안주나 잡수십시오. " 하고 내어놓으니 임형수가 "에끼놈, 저리 가져가거라. 중놈들이 벌주를 먹을 때도 안주를 먹지 못하거든 이 술이 어떠한 술이관대 안주를 먹는단 말이냐? 철없는 놈이로군. " 하고 웃고서 도사를 향하여 "사정 쓰려고 약 분량을 적게 타지 않았소? 어째 이렇게 무령하오? 벌써 몇 사발을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구려. " 하고 또 웃으니 도사의 악문 입술도 조금 터지는 것같이 보이었다. 다시 한 사발 두 사발을 거듭하여 약 탄 술을 도합 열여섯 사발을 먹고 그 위에 막걸리 전국을 두 사발을 먹었으나, 임형수는 숨결이 조금 가빠졌을 뿐이지 몸 가지고 말하는 것이 당초에 죽을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도사가 고을 하인에게 분부하여 장작불을 지피어 방을 뜨겁게 하고 몇 시각을 기타리었으나 방안에 누워 있는 임형수가 답답하여 하느니보다 방 밖에 지키고 있는 도사가 더 갑갑하였다. 마침내 도사가 고을 하인을 불러서 튼튼한 줄을 드리라고 말하여 하인이 얻어온 타락줄을 나졸에게 들리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누워 있던 임형수가 이것을 보고 일어나서 도사리고 앉으며 "그 줄은 무엇하시려오? “ 하고 물으니 도사가 "오래 고생하느니 이것이 나을 것이오. " 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나의 처지에는 나은 일과 못한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설혹 나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전교 사연에 틀리는 일을 도사 맘대로 하지 못할 것이 아니오? 사약하다 아니 되거든 교살하라는 전교를 물어 가지고 오셨소? 전교 사연에 없는 일을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니 교살하고 싶거든 서울 가서 다시 전교를 물어 가지고 오시오. " 하고 임형수가 위엄 있이 말하는데, 도사는 어색하여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임형수가 도사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한번 허허 웃더니 "실없은 말을 노여워 마시오. 죽으라고 하신 전교를 받은 사람이 이 말저 말할것이 무엇 있겠소. 그 타락 줄을 이리 주시오. 목을 매리다. " 하고 나졸의 주는 줄을 받아들고 잠깐 들여다보다가 다시 도사를 치어다보며 "내 손으로는 차마 조를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이 잡아다려야 할 터인데 내가 숨이 그치기 전까지 잡아다리는 사람을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잡아다릴 사람도 목매인 사람 앞에서는 잡아다리기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이 벽에 구멍을 뚫고 목을 매인 뒤에 벽구멍으로 줄 끝을 내보낼 것이니 밖에서 잡아다리게 하시오. " 도사는 일을 얼른 마치게 되는 것만 다행하게 여기어서 "그렇게 하오. 좋소. " 하고 나졸을 시켜서 벽에 구멍을 뚫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뒤에 벽구멍으로 두겹진 줄 두 끝이 나왔다. 나졸들이 두 끝을 갈라 쥐고 잡아당기다가 '인제는 아무리 장사라도 숨이 그치었으려니. ' 하고 생각하며 그만 놓으리까 묻는 뜻으로 도사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도사가 놓으라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졸들이 줄을 놓으며 방안에서 탁 하고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사가 일 끝난 것이 시원하여 숨을 길게 쉴 때에 방안에서 낄낄 웃는 소리가 나서 도사는 고사하고 나졸들까지 놀래었다. 도사와 나졸들이 급히 방으로 쫓아들거와서 둘러보니 타락줄로 매인 목침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졌고 정작 목을 매일 임형수는 벽 건너편 방구석에 누워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도사가 화가 나서 임형수를 내려다보며 "점잖은 처지에 이것이 무슨 짓이오?“ 하고 책망하니 "처음 당하는 일이니까 잘될는지 몰라서 시험하여 보았소. " 하고 임형수는 다시 한바탕 기탄없이 웃었다. 임형수가 죽은 뒤에 권발은 삭주 배소에서 소식을 듣고 술을 양껏 마시고서 "이 사람도 죽었구나. " 하고 통곡하였고 이황은 임형수의 생각이 날 때마다 ”사수같은 희한한 기남자가 죄없이 죽은 것은 아깝고 원통하다. " 하고 긴 한숨을 금치 못하였다.

 

4

익명서 옥사가 있은 뒤에 연 삼년을 두고 연년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처음은 안명세의 옥사이고, 그 다음은 이홍윤의 옥사이고, 또 그 다음은 이해의 옥사이었다. 유관, 유인숙, 윤임 등의 죽은 일을 사관이 사초에 올리기를 “중종 소상이 지나지 아니하고 인종 상사 발인하기 전에 위에서는 빈전 옆에서 고명대신 세 사람을 죽이다. " 하고 적었고 또 이기 등의 행동을 사실대로 적었었다. 그때 소위 공신들이 저희의 한 짓을 옳은 일같이 꾸미어 후세 이목까지 속이려고 무정보감이란 책을 만드는데, 윤인경, 이기, 정순붕 등이 전에 없던 일을 특별히 청하여 사초를 보게 된 까닭으로 사관의 곧은 붓이 드러났었다. 소위 공신들은 사관이 붓을 굽히어 역적을 두둔하였다고 당시 사관이 누구이던 것을 고사하기 시작하는데, 홍문박사 안명세가 자수하고 나서서 그날로 능지처참을 하게 되었다, 안명세가 조복을 입은 채로 수레에 실리어 새남터로 나가는데 쇠갓 쓰는 사람으로 유명한 이지함이 죽는 친구를 작별하려고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금위 군사들의 밀막는 것을 불고하고 수레 옆으로 쫓아나와서 안명세의 손을 잡고 "욕으로 사는 사람들이 사람일 것 같으면 자네를 부러워할 것일세. 눈감고 잘 가게. " 하고 그 길로 도망하여 이기 등이 이지함을 잡으려고 할 때는 벌써 간 데를 모르게 되었었다. 며칠 뒤에 안명세의 친구 교리 윤결이가 능원위 구사안의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술끌 먹다가 죽은 친구를 생각하고 "안명세가 무슨 죄란 말인가? ” 하고 눈물로 옷깃을 적시기도 하고 "세상에 사관 죽이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들기기도 하였더니 당시에 대사간으로 있던 진복창이 구사안에게서 이 말을 듣고 윤결의 형제를 안명세의 동류로 몰아서 금부로 잡아 가두고 단련하게 되었다. 진복창은 독사라는 별명이 있던 위인인데, 윤결과 사혐이 있어서 평일에 미워하던 까닭에 국문할 때 형장을 혹독히 써서 한번 국문에 혈육이 낭자하게 되었다. 진복창과 같이 추관으로 있던 민제인이 이것을 보고 상을 찌푸리며 "옥이 부서진다. " 하고 탄식하는 것을 진복창이 듣고 역적을 비호한다고 탄핵하여 민제진까지 찬배를 당하였다. 안명세를 죽인 이듬해에는 이홍윤의 옥사로 충주를 도륙내었다. 이홍윤은 이약빙의 아들이요, 윤임의 사위라 그 부친이 비명에 죽은 것을 원통하게 여기고 그 장인이 참혹히 당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간신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고 싶은 맘이 없지 아니하므로 그 맘이 간혹 언사간에 발로될 때가 있었다. 홍윤은 충주에 귀양 와서 있고 그 형 홍남은 영월에 귀양 가서 있어 형제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나 연신이 잦았는데 홍남의 위인이 불사한 것을 홍윤이 모르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형이라고 믿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못할 만한 시휘에 걸리는 편지도 없지 아니하였다. 홍남이 저의 처남 원호변과 저의 동서 정유길에게 편지하여 아우의 일을 걱정한 것이 실상은 아우가 역적모의한다고 고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우가 위인이 완패하여 역모에 뜻을 두는 모양이니 만일 누가 고변이나 하게 되면 일문이 멸망할 터이라 이것을 어찌하면 좋으랴? 나는 눈물로 날을 보내는 중이노라. " 원호변과 정유길이 이 편지를 본 뒤에 사정이 덮어둘 수 없는 것을 공론하고 편지를 정원에 바치어서 마침내 옥사가 일어났다. 홍윤과 및 흥윤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능지처참을 당한 것은 말할 것이 없고 홍윤과 같이 있던 홍윤의 아우가 지각이 없어서 함부로 분 까닭으로 충주 사람이 거의 도륙을 당하다시피 많이 죽었다. 충주는 역적이 난 까닭으도 유신현으로 등이 내려지고 충청도는 충주가 없어진 까닭으로 청홍도로 이름이 변하였다. 이홍윤의 옥사가 나던 이듬해에 유신현의 최가 한 사람이 고변에 수 생길 것을 바라고 유신현에 사는 양반들의 계 문서를 가지고 역적도록이라고 고변하러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유신현에 붙잡히었는데, 현감 이치가 감사 이해에게 이것을 보하였더니 이해가 추문하라고 명하여 최가가 형장에 맞아죽게 되었다. 이홍남이 이것을 알고 이해와 이치가 역적을 두호할 맘으로 증거를 인멸하였다고 몰아서 이해와 이치는 함께 금부로 잡혀와서 형장 아래 맞아죽었다.

 

5

인해가 처음 금부에 잡혀와서 국문을 당할 때에 정낭이뼈가 부서지도록 모진 형장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자기의 죄없는 것을 주장하였었다. 금부 나졸 한 사람이 불쌍히 보고 밤에 틈을 타서 "죄없다고 발명해야 소용이 없고 잘못하다가 맞아죽게 될 뿐이니 추관들이 묻는 대로 했다고 대답하시오. 한껏해야 귀양밖에 더 보내겠소. 또 죽더라도 형장 아래 죽는 것보다 더 무서을 것이 없소. " 하고 국문당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이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내가 구구히 목숨을 보전하려고 짓지 아니한 죄를 지었다고 무복할 사람이 아니다. " 하고 고집을 세워서 그 나졸이 혼잣말로 "고지식 한 양반일세. " 하고 혀를 찼었다. 이해가 금부에서 상소를 올리어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하려고 하였으나, 추관들이 이기를 꺼려서 그 상소를 받아올리지 아니하였다. 이기는 이해에게 탄핵당한 혐의가 있는 터이라 이해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일변으로 추관들을 시켜서 국문을 혹독하게 할 뿐이 아니라 또 일변으로 양사 간관을 충동이어 하루에 육칠 차 연거푸 죽이자고 계청하게 하였다. 대왕대비는 무슨 맘이든지 간관에게 청을 좇이 아니하고 이해와 이치를 모두 감사정배하라고 처분을 내리었다. 그러나 그 처분이 구경은 빈 처분에 지나지 못하였다. 이치는 장하에서 기절한 채로 소생하지 못하였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해는 목숨이 실낱같이 붙어 있었으나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귀양 갈 사람이 아무리 다 죽게 되었더라도 목숨 지기 전에는 귀양길을 아니 떠나지 못하는 법이라 압송도사가 이해를 승교바탕에 담아가지고 배소로 작정된 갑산 길을 떠났는데 첫날 양주읍이 숙소참이었다. 이때 칠팔월 늦더위가 심하여서 성한 사람도 길에서 병이 날 것 같았으니 이해가 양주 숙소에 와서 죽은 것은 도리어 오래 부지한 셈이다. 압송도사는 갑산까지 안 가게 된 것을 다행히 생각하며 양주 관아에 들어가서 목사를 보고 이해의 시신을 목사에게 맡긴 뒤에 서울로 회정하여 금부당상에게 사유를 보하였다. 양주목사는 팔자에 없는 송장 맡게 된 것을 불쾌히 생각하여 "그 시체를 찾아갈 사람이 오기까지 잘 맡아두게 해라. " 하고 만만한 아전에게 이르고 아전은 "시체를 찾아갈 사람이 오기까지 잘 맡아두게 해라. 관가 분부다. " 하고 성명 없는 객주 주인에게 일렀다. 객주 주인이 무슨 정성이 있어서 이해의 시체를 잘 보아 줄 젓이랴. 시체가 섹기 시작하여 시취가 집안에 풍기고 시즙이 방안에 흐르니 객주 주인이 시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공석으로 싸고 새끼로 동이어서 상여 곳간 근처에 내다두었다. "귀양 가는 길에 죽은 사람이 어디 감사를 지낸 양반이라지. " "충청감사로 있다가 죄에 걸렸다데. " "실상은 죄없는 양반이라네. " "객주 주인이 송장을 내다버렸어. " "여우밥이 되겠지. " 하고 양주읍내 사람들의 떠드는 말이 꺽정의 귀에 들어가자, 꺽정이는 불쌍한 사람의 송장이 여우의 밥이나 되지 않게 해주려고 그 부친을 보고 의논하였다. "관 하나를 짜이어서 송장을 넣어 둡시다. " "적선하려다가 득죄하지 말란 법 없지. 고만두어라. " "아무 죄도 없이 애매하게 간신들에게 맞아죽은 사람이니까 관 하나쯤 아까을 것이 없소. " 하고 꺽정이가 우기어서 어느 날 꺽정이 부자가 관과 상포를 가지고 와서 손을 댈 수 없이 된 시체를 둘둘 말아서 관에 넣어서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이해의 아우 이황은 안명세의 옥사가 났을 때 또다시 삭탈관직을 당하고 예안 고향에 가사 있던 중인데 그 형의 옥사가 났다는 기별을 듣고 하루바삐 서울로 올라왔으나, 기별을 늦게 들은 까닭에 그때 그 형이 죽은 뒤 십여 일이 넘었었다, 이황이 그 형의 시신을 찾으러 양주로 내려갔을 배 백정의 아들에게 은혜진 것을 알고 불러보려고 하다가 그 백정의 아들이 오란다고 올 사람이 아니라서 마침내 불러보지 못하고 운구하여 떠나던 전날 밤에 이황이 하인 하나만 앞세우고 그 백정의 집을 찾아와서 문간에서 백정의 아들을 만나보았다. "나는 너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특별히 찾아왔다. " 하고 찾아온 것을 은언이나 내리는 것같이 말하니 그 백정의 아들이 "누가 찾아오랍디까? 창피한데 오래 섰지 말고 어서 가시오. " 하고 거슬거슬하게 대답하여 이황이 속으로 '백정의 아들로는 완패 막심하다. ' 하고 생각하며 그 백정의 집 문앞에서 돌아섰다.

 

6

이황이 형의 옥사를 지낸 뒤로는 환로에 나설 맘이 찬 채 같이 사라지고 산림에 숨을 뜻이 반석같이 굳어서 예안 고향에 문을 닫고 들어앉아 학문을 힘쓴 까닭에 유림의 종장으로 이름이 일국에 떨친 것은 뒷날 이야기다. 꺽정이가 그 부친의 즐겨 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우기어 이해의 썩은 시체를 수시하여 입관한 것이 이해의 친족에게 덕을 보이려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이황이 앉아서 보자고 부를 때에, 또 찾아와서도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할 때에 덕 보인 값으로 욕본다는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양반과는 일체로 상관을 말아야지. 상관만 되면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이란 말이 제기. " 하고 꺽정이가 메어부치는 소리 하는 것을 돌이가 "양반이 우리네 집을 찾아오기가 조만한 일이냐? 찾아온 것만 해도 무던한 양반이다. " 하고 골낼 까닭이 없는 것을 타일렀건만 꺽정이는 "김덕순이 같으면 대번에 쫓아와서 우리를 보고 절이라도 했을 것이오. 김덕순이도 훌륭한 양반이랍디다. " 하고 맘이 종시 풀리지 아니하다가 양반의 절이 부자간의 논란거리가 되어서 "썩은 송장쯤 만지고서 양반의 절을 받아? 이 자식아, 양반의 절이 장목 한 동에 여남뜬 자루씩 한다더냐. " "아닌게아니라 양반의 절을 앉아 받게만 되면 내 속이 좀 시원 하겠소. " "하늘의 별을 따먹으면 배가 부를 게다. " "내가 양반의 절을 받거든 보시오. " "어리보기 양반이나 실성쟁이 양반을 속여볼라느냐? " "누가 그 따위 못난이 생각을 먹는답디까? “ "이 자식이 얼정하고 아비 욕하지 않겠나. " "아버지도 그 따위 생각을 먹으면 못난이지 무어요. " "아비더러 못난이라고 욕하는 자식이 잘난이냐? ” 하고 돌이가 먼저 웃으니 꺽정이도 따라 웃어서 부자의 논란이 웃음으로 그치 었다. 양주읍도 선비가 살고 양반이 사는 곳이라 이해와 같은 명망 있는 인물이 애매한 죄로 거리 송장이 된 것을 분하게 생각하는 선비도 있었고 가엾게 여기는 양민도 있었지만, 그 썩는 송장을 돌아볼 의기있는 사나이는 하나도 없었는데 백정의 부자가 있어 양주 사나이의 의기를 드러내니 선비와 양민들은 부끄러운 줄은 모르는 대신에 괘씸히 여길 줄을 알았었다. "백정놈이 주제넘다. " "꺽정인가 그놈이 버릇을 단단히 배워야 할 놈이다. " 하고 꺽정이 부자의 말이 선비와 양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끝에 양주 관가 삼문 밖에 언문 익명서 한 장이 붙었다. "백정이 도리질하니 양주는 걱정이다. " 하고 돌이와 꺽정이를 잡아 말한 익명서를 아전이 갖다가 목사에게 바치었더니 목사가 "돌이란 것이 관푸주 백정놈이냐? 꺽정이가 그놈의 자식이냐? “ 하고 묻고서 그놈의 부자를 잡아들이라고 분부를 내리었다. "너희놈의 부자가 죽은 죄인에게 관을 해주었다지? ” 하고 목사가 묻는 말에 "그런 일이 있소이다. " 하고 돌이가 대답하였다. "그런 일이 있것다, 이놈. 주제넘게 선심이냐? “ "선심이 아니오라 소인네가 딸자식의 집에를 왕래하려면 상여 곳간을 지나다니옵는데 썩는 냄새가 과하여 냄새 맡지 아니하올 생각으로 관을 짜다 넣었소이다. ” “관가에 와서 품하지 않고 자의로 외람한 짓을 하다니 죽일 놈들이다. " 돌이와 꺽정이는 옥에 갇히어 있으며 형장 몇 차례를 톡톡이 맞은 뒤에 "이번은 처음이라 특별히 용서하나 이 다음에 만일 또 그런 외람한 짓이 있으면 귀양 갈 줄 알아라. " 하고 목사가 특별한 처분을 내리어서 큰일 없이 옥에 떠나오게 되었다. 꺽정이가 옥에 있을 때, 분통이 터질 것 같아서 전후불고하고 옥을 깨치고 뛰어나가려고 하는 것을 돌이가 죽기로 말리어서 꺽정이는 억지로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목사를 미워하고 양반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하는 생각은 뼈에 깊이 새기어졌다.

 

[출처] 임꺽정 양반편 3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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