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공자 편-제1회: 공자의 꿈
(사진설명: 공자의 동상)
영원한 스승 공자
공자(孔子)는 최초로 사학(私學)을 열어 관학(官學) 독점의 교육전통을 타파했고 이로부터 서민들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육 평민화의 발전을 추진했다. 공자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교육자임에 손색이 없다.
‘삼 천의 제자와 일흔 둘의 현자’를 둔 공자는 상대에 따라 다양한 교육방법을 사용하고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교육을 펼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10대 문화명인’ 중 제1인에 선정되었다.
공자가 수정한 <춘추(春秋)>는 중국 고대 유가 경전을 말하는 ‘육경(六經)’ 중 하나이다. 그는 또 <십익(十翼)>을 편찬해 <주역(周易)>을 해석했고 그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는 간결한 필치로 심오한 뜻을 설명해 중국인의 문화 사상과 성격적 기질에 영향을 주었다.
영원한 스승 공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공자의 꿈
사수(泗水)는 푸른 하늘이 강물에 내려 앉은 듯 맑고 푸르렀다. 어느덧 봄이 다가와 강가의 풀밭에는 천자만홍의 꽃이 점점이 피어나 화사함을 자랑했다. 몸집이 유난히 큰 젊은 남자가 꽃 속을 걸어왔다. 그의 입술은 좀 두텁고 정수리의 한쪽에는 혹이 나고 다른 한쪽은 움푹 패어 산구(山丘)를 방불케 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그에게 구(丘)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는 또 키가 너무 커서인지 허리가 구부정하기도 했다. 아무튼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지며 눈길이 예리한 그는 상(商) 나라 탕(湯) 왕의 후손 답게 미남자라 불릴 외모를 가졌다.
그가 바로 사람들이 공자라 존칭하는 공구(孔丘)였다.
공자는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한편 속으로 꽃의 모양과 이름을 기억했다.
“이 자미(紫微)는 6월에 피는 꽃인데 어이하여 5월이 갓 시작되자 이렇게 활짝 피어났지? 또 보라색 꽃만 핀 것이 아니라 빨간 색도 있고 진짜 신기하다…”
“장인(長人), 어서 와 보십쇼. 여기 무슨 꽃이오?”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공자는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한 농부가 푸른 풀잎에 피어난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한 붉은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꽃은 오취(烏吹)라고 합니다. 약으로도 쓰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노옹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듯 계속 물었다.
“핏빛처럼 빨간 꽃인데 왜 오취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거요? 그리고 무슨 약으로 쓰고?”
“이 꽃의 뿌리를 약으로 씁니다. 뿌리를 말린 다음 가루를 내면 아마도 검게 되지 않을까요? 그 가루를 목구멍에 불어넣으면 통증이 완화됩니다.”
“장인, 당신은 참으로 대단하오. 키고 엄청 큰데다 아주 박식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니 참으로 기인이네 그려! 계손씨(季孫氏)네 집에서 우물을 파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당신이 그건 강아지가 아니라 양이라고 말했죠. 그러면서 산에서 나는 괴물은 기(夔)라 부르고 물속에서 나는 괴물은 용(龍), 땅속에서 나는 괴물은 분양(羵羊)이라 부른다고 했는데 후에 정말로 양임이 증명되어 계손씨는 당신을 천종지성(天縱之聖)이라 칭찬했죠.”
공자가 겸허하게 말했다.
“제가 무슨 성인입니까? 다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열심히 배울 뿐입니다.”
공자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 기관씨(丌官氏)가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공자를 보자 아내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은 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출세도 못 하는데.”
“나는 이미 각 지의 민요를 <시삼백(詩三百)>으로 정리했소.”
아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죽간(竹簡)을 묶는 것을 보고 공자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귀족들만 책을 읽을 수 있고 평민들은 공부할 곳이 없소. 그래서 나는 사학당을 꾸려 많은 제자를 받기로 결정했소. 그렇게 되면 나의 지식이 쓸모가 있고 우리 집의 소득도 늘어나게 될 것이요.”
공자는 송(宋) 나라 양공(襄公)의 자손이고 그의 부친은 노(魯) 나라 대부(大夫)를 지냈으나 세 살 때 부친이 타계하면서 생활이 궁하게 되었다. 그 뒤 공자는 창고 관리원으로도 있고 목장도 관리했으나 모두 소득이 별로였다. 아내는 사학당을 차리면 소득이 있다는 말을 듣자 기뻐하며 물었다.
“수업료를 얼마나 받을 생각이에요?”
“차별 없이 가르칠 것이요. 누구든 공부하려는 사람이면 모두 제자로 받겠소. 수업료는 누구든 진심으로 배울 마음만 있으면 1인당 1년에 육포 10점만 받을까 하오. 수업료를 많이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게 되오.”
아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한 사람이 육포 한 점이면 열 명이면 백 점, 오십 명을 받으면 육포 오백 점이 생기겠네? 적지 않네요. 그럼 이제부터는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겠어요!”
즐거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공자는 오히려 마음이 허전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공자의 꿈은 사학당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벼슬길에 올라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삶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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