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손빈 편-제3회: ‘감조지계’, 완벽한 복수
제3회 ‘감조지계’, 완벽한 복수
제위왕이 붕어하고 태자 피강(辟疆)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제선왕(宣王)이다. 그 해 한(韓)나라가 정(鄭)나라를 멸하고 도성을 형양(滎陽)으로 천도했다. 위혜왕은 한나라의 강대함을 두려워했고 그 기회에 방연이 요언을 퍼뜨렸다.
“한나라가 조(趙)나라와 한 통속이 되어 양쪽에서 우리 나라를 공격해 우리 국토를 이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손을 잡기 전에 선손을 써서 한나라를 멸해야 합니다.”
혜왕은 방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태자 신(申)을 상장군으로, 방연을 대장군으로 임명해서 위나라의 주력부대를 거느리고 한나라로 진군하게 했다.
위나라 대군이 압박해오자 한나라 군주 애후(哀侯)는 급히 사신을 제(齊)나에 보내 구원병을 불러오게 했다. 제선왕은 문무대신들을 불러 놓고 한나라에 구원병을 보내야 할지 여부를 논의했다.
상국인 추기(騶忌)가 먼저 말했다.
“위나라와 한나라의 다툼은 우리나라에 이롭습니다. 구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전기가 말을 받았다.
“위나라가 한나라를 멸하고 나면 반드시 그 위험이 우리 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한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선왕은 손빈이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자 입을 열었다.
“군사께서는 줄곧 말이 없으신데 저 사람들의 말이 틀렸소?”
“그렇습니다. 저 사람들은 모두 편파적입니다. 위나라는 스스로 아주 강대하다고 여겨 재작년에 조나라를 공격했고 올해는 한나라를 공격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우리 제나라를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위나라가 강대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나라를 구하러 가서 한나라 대신 위나라 군사와 맞선다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격이 되어 역시 옳은 선택이 아닙니다.”
선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소?”
“우리는 일단 출병을 약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나라는 전력을 다 해 위나라 군대에 저항하고 위나라도 전력을 다 해 한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위나라 군대가 지치고 한나라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한나라를 구하면 적은 힘으로 큰 성과를 거두는 사반공배(事半功倍)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손빈의 말에 선왕은 큰 소리로 손빈을 극구 찬양하고 나서 한나라 사신을 불렀다.
“돌아가서 한나라 군주에게 우리 제나라 군대가 곧 도착할 것이니 전력을 다해서 저항하라고 아뢰시오.”
한나라 군주는 제나라 군대가 한나라를 구원하러 온다는 것을 알고 전력을 다해서 위나라 군대에 맞서라고 군사들을 격려했다. 한편 제선왕은 이번에도 전기를 대장군으로, 손빈을 군사로 임명해서 한나라를 구원하러 가게 했다. 전기가 또 한나라로 가려고 하자 손빈이 말렸다.
“이번에도 핵심을 공격해야 하네. 위나라 도읍으로 직접 가세.”
방연이 한나라의 새 도읍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를 공격한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급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방연은 급히 한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군사를 이끌어 귀국길에 올랐다. 손빈은 위나라 군대가 뒤에서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는 것을 알고 전기에게 일렀다.
“용맹함으로 알려진 위나라 군대는 필히 제나라 군대를 경시할 것이니 우리는 이를 이용해 위나라 군대가 우리의 함정에 빠지게 해야 하네. 병서에는 백 리 급행군으로 이익을 챙기러 가면 반드시 장병을 손해보고, 오십 리 급행군으로 이익을 다투러 가면 도착하는 군사는 반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네. 먼 길을 걸어 위나라를 습격하러 가는 우리는 약함을 보여 방연을 유혹해야 하네.”
전기가 물었다.
“어떻게 약함을 보여주어야 하나?”
“감조(減灶)지계를 쓰세. 오늘은 조리병에게 10만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내일은 5만개로 줄이며 모레는 3만개만 만들어 우리의 병사들이 분분히 탈영한 듯 보이게 해야 하네. 방연이 줄어드는 아궁이 숫자를 보면 적을 경시해서 필히 속전속결을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쫓아올 것이니 위나라 군대는 더욱 피로해질 것이네.”
전기가 웃었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네. 방연은 필히 무모하게 공격할 것이니 우리는 편안히 기다리다가 지친 위나라 군대를 공격해서 이번에는 그들을 섬멸하세.”
한편 군사를 거느리고 귀국하는 길에 방연은 수차 무공을 세우고자 하는 자신의 기회를 손빈이 번마다 빼앗자 분노로 가슴이 훨훨 타올랐다. 그는 손빈이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하도록 애초에 손빈의 목숨을 빼앗아 화근을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위나라로 돌아가는 길에서 방연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위나라 경내에 진입한 방연이 제나라 군사의 숙영지에서 아궁이 수를 세어보니 10만개에 달했다. 방연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렸다.
“먼 길을 걸어 피로에 지친 우리 군사가 10만의 제나라 군사에 대적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방연은 절망을 느꼈으나 곁에 있는 태자 신을 힐끗 쳐다보며 속생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튿날 제나라 군대의 아궁이는 5만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을 본 방연은 뜻밖의 기쁨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제나라 군사는 전쟁을 두려워해서 위나라 경내에 들어서자 반이나 탈영했구나. 두려울 것이 없구나.”
또 하루가 지나자 아궁이는 3만개 밖에 남지 않았다. 방연은 흥분해서 큰 소리를 질렀다.
“태자, 보십시오. 제나라 군사는 사흘만에 과반수가 탈영해 3만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태자 신이 대꾸했다.
“손빈이 모략이 많아서 장군께서는 너무 앞질러 가지 마시지요.”
“아궁이 숫자가 가짜일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반드시 손빈과 전기를 생포해서 계릉의 치욕을 씻어야 하겠습니다! 태자, 병귀신속(兵貴神速)입니다. 우리는 먼저 2만명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먼저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고 보병은 방충이 거느리고 뒤에서 따라오게 합시다!”
태자도 마음이 동해서 방연의 지휘를 따랐다.
척후병의 보고를 들은 손빈은 방연이 날이 어두워지면 마릉도(馬陵道)에 도착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양쪽의 산언덕에 숲이 무성한 마릉도는 복병을 배치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손빈은 병사들을 시켜 길옆의 큰 나무들을 모두 잘라 길에 가로 놓게 하고 큰 나무 한 그루만 남기게 한 후 그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글을 새겼다. 그리고 손빈은 원달(袁達)과 독고진(獨孤陳)에게 각자 5천명의 궁수를 거느리고 마릉도의 양쪽에 숨어 있다가 나무 아래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활을 쏘라고 지시했다.
손빈은 또 전영에게 1만명을 거느리고 마릉도에서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매복했다가 위나라 군대가 전부 지나가면 그들의 퇴로를 차단해 위나라 군사를 포위, 전멸하라고 지시했다.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전략이었다.
방연이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밤에 낮을 이은 급행군으로 마릉도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둑어둑하고 대지가 창망했다. 방연은 도로에 큰 나무들이 이리 저리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제나라 군대는 나에게 잡힐 것이 두려워 이렇게 서툰 방법까지 썼구나. 참으로 가소롭다.”
그러면서 방연은 도로의 나무들을 옮겨 길을 내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그 때 방연은 멀지 않은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줄기에 무슨 글자가 씌어 있는 듯했다. 그는 한 병사에게 횃불을 켜게 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순간 방연은 혼비백산했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 줄기에는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는다”라는 글자가 세로 씌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의 상단에는 ‘군사 손빈이 적다’는 의미로‘군사손시(軍師孫示)’이라는 네 글자가 가로 씌어져 있었다. 손빈의 계략에 빠졌다는 것을 안 방연이 한탄하며 급히 외쳤다.
“복병이 있다. 빨리 철수하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불을 밝히는 순간 마릉도 양쪽의 복병이 불빛을 향해 일제히 활을 쏘았다. 방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도로의 양쪽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위나라 군대는 아우성치며 뒤죽박죽이 되었다. 방연은 이제 마지막임을 알고 탄식했다.
“인과응보이구나! 아, 손빈만 유명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이렇게 외친 방연은 검을 빼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연의 아들 방영도 활을 맞아 죽었다.
화살공격이 거의 마감되자 손빈과 전기의 지휘로 밀려든 제나라 대군이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둘러 위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병사들의 시신이 마릉도를 덮었다.
뒤에 있던 태자 신은 앞쪽의 군사가 매복에 걸린 것을 알고 급히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퇴각하려 했다. 하지만 전영이 제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뒤에서 추격해와 태자 신은 손도 쓰지 못하고 생포되었다. 후에 태자 신도 자결했다.
개선가를 부르며 귀국길에 오른 제나라 군대는 사록산(沙鹿山)에서 방연의 뒤를 따라오던 방충의 보병과 조우했다. 손빈은 방연의 수급을 방충에게 보여주게 했다. 그러자 방충은 스스로 전차에서 내렸고 위나라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손빈은 태자 신과 방영의 시신을 방충에게 돌려주면서 위혜왕에게 전하라고 했다.
“위나라는 제나라의 신하가 되고 조공을 바치라. 그러지 아니하면 제나라 대군이 이르는 즉시 위나라 종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손빈의 말을 들은 방충이 머리를 조아리며 승낙하고 위나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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