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위청 편: 제2회 하투지역을 수복해 강토를 넓히다
(사진설명: 위청의 무덤)
제2회 하투지역을 수복해 강토를 넓히다
위씨 가문에 경사가 났다. 위청의 누이 위자부가 한무제의 장남 유거(劉据)를 낳았기 때문이다. 비범한 도량을 자랑하는 한무제는 가노(歌奴) 출신의 위자부를 황후로 책봉했다. 하지만 한무제의 속생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무제가 위자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청이 그대로 인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사실 그대가 위청의 복을 받은 것이오. 나에게 아들을 낳아 주어 그대에게 고맙고 나에게 위청을 알게 해줘서 특히 그대에게 더 고맙소. 나는 흉노 소멸의 희망을 위청에게 두고 있소!”
한무제는 과연 영웅을 알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위청은 혁혁한 무공을 세워 당시 한나라 군신들이 그를 다시 보게 하고 흉노들이 벌벌 떨게 했을 뿐만 아니라 후세 군인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위자부가 황후로 책봉된 그 해는 바로 원삭(元朔) 원년, 기원전 128년이었다. 이 해에 거기장군 위청은 3만 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안문관(雁門關)에서 출새(出塞)하여 흉노의 군대를 찾은 다음 흉노의 기마병을 대파하여 수천 명을 참수했다.
그 이듬해 가을이 되자 흉노가 총출동해서 남하했다. 흉노병들은 먼저 료서(遼西)에 진입해 료서태수(太守)를 죽이고 료서지역을 피로 물들였다. 이어 흉노군사는 어양(漁陽)을 공격해 한안국(韓安國) 장군을 패배시키고 2천 여명의 한인(漢人)을 노예로 잡아갔다.
대로한 한무제는 노장 이광을 우북평(右北平)에 파견했다. 하지만 교활한 흉노군사는 방어경험이 풍부한 비장군(飛將軍) 이광을 피해 몰래 안문관으로 변경을 범했다. 위청은 또 3만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안문관을 통해 변경을 나가 이식(李息) 장군과 앞뒤에서 흉노의 기마병을 공격해 수천 명을 생포했다.
그 동안 한나라의 변경을 범하는 것을 식은죽 먹기로 알던 흉노가 적수를 만난 것이다. 위청은 변경을 범하는 흉노군사를 타격함은 물론이고 먼저 번개같은 속도로 흉노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그로 인해 신속한 행동으로 한나라 군사를 골탕먹이던 흉노의 우세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흉노의 귀족들은 많은 병력을 집결해 상곡군(上谷郡)과 어양군을 공격했다.
위청은 이렇게 생각했다.
“너만 나의 변경을 범하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왜 나는 너의 본거지를 공격하러 가지 않겠느냐? 수초가 풍성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그 하투(河套) 지역은 진(秦)나라 몽염(蒙恬) 장군이 다년간 경영했던 곳인데 지금은 너희들이 수십 년 동안 점령하고 있어 장안(長安)을 위협하고 있구나. 만약 하투지역을 다시 수복한다면 흉노의 원기도 크게 저하시키고 강토도 확장하고 한나라의 위력도 펼칠 수 있겠다.”
생각을 마치자 위청은 4만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운중군에서 출발해 어양군으로 흉노병을 반격하러 가는 척 했다. 그리고 중도에서 갑자기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흉노의 후방으로 진군해 먼저 고궐(高闕)을 점령해 하투지역의 흉노와 선우 왕실간의 연계를 단절시켰다. 그리고 곧 롱서(隴西)에 진입해 하투의 백양(白羊)왕과 누번(樓煩)왕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어버렸다. 롱서의 두 흉노 왕은 한나라 군대가 갑자기 사면팔방에서 공격해오자 몇 천명의 흉노인과 백여 만 마리의 소, 양도 다 버리고 겨우 자신의 목숨만 살려서 도주했다.
한무제는 위청이 하투지역을 수복한 것을 알고 너무 기뻐서 당장에서 위청을 장평후(長平侯)에 봉하고 3,800가구를 식읍으로 내렸다. 또 이 작전에서 공을 세운 교위(校尉) 소건(蘇建)과 장차공(張次公)도 평릉후(平陵侯)와 안두후(岸頭侯)에 봉했다.
장안으로 돌아온 위청이 성은에 사의를 표하고 나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투지역은 가장 살찐 초원입니다. 흉노가 다시 빼앗으려 할 터인데 폐하께서는 만반의 대책이 있으신지요?”
“하투지역은 수초가 풍성하고 지세가 험준하오. 짐은 그 곳에 삭방성(朔方城)을 축조하고 삭방군과 오원군(五原郡)을 두겠소.”
“그 곳은 땅이 넓고 인적이 드물어 성을 쌓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위청의 말에 한무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한나라에 사람이 없겠소? 짐이 벌써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소. 장안지역의 토호들과 땅을 잃은 유민(流民)들을 그 곳에 이주시키겠소. 최소 10만 명이 될 것이요. 그래야 삭방성을 쌓을 수 있소. 또 군대를 그 곳에 파견해 주둔시키겠소. 그들은 둔전(屯田)과 동시에 몽염장군이 축조한 방어시설들을 복원할 것이오. 이런 일들은 평릉후 소건에게 맡기겠소.”
“폐하께서는 주도면밀하십니다. 이렇게 하면 하투지역은 진정으로 우리 한나라의 강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삭방성이 축조되면 장안에 대한 흉노의 위협을 제거하는 동시에 흉노를 타격하는 우리의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오. 삭방성은 흉노의 눈앞에 있는 검처럼 언제든지 흉노의 심장을 찌를 수 있소.”
한무제의 말에 위청은 심히 감복했다.
'逸話傳---人物傳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인문학 이야기] 낭비벽으로 평생 빚에 시달린 발자크… 글 쓸 때는 하루 열여섯 시간 몰두했죠 (0) | 2024.10.15 |
---|---|
[숨어있는 세계사] 히틀러에게 열광한 800만 청소년… '광기의 역사'에 이용됐죠 (0) | 2024.10.14 |
[비하인드 스토리] 현장법사 편: 제2회 보우를 받은 배움의 길 (0) | 2024.06.04 |
[비하인드 스토리] 현장법사 편: 제1회 어렵게 시작한 순례의 길 (0) | 2024.05.18 |
[비하인드 스토리] 왕안석 편: 제4회 실패로 돌아간 변법 (0) | 2024.05.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