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산지니2 장길산 7 장길산 7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 비평사 봉사자:김선용, 임흥태 제 1장 황민(계속) 4 경조를 중심으로 하여 이전부터 행정의 그늘 아래서 여기저기 사는 터전 나름으로 패거리 를 가져오던 천류와 무뢰지배자들은, 드디어 조정이 혼란해지고 왜국이 재침한다는 소문으 로 양반들이 동요하자, 제각기 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모여들게 되었던 것이다. 검계에서도 한양에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의 모임은 따로이 살략계를 이루었다. 난리 때에 왕궁에 불을 지르고 부잣집을 습격하던 난민들이 실상은 다 이러한 무리들이었으니, 고금에 대처 저자란 모두 이러한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었다. 겉으로는 눌려서 눈도 제대로 치뜨지 못하고 대청 아래에서 설설 기며 죽는 시늉을 하고는 있으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태어나..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7. 장길산 6 장길산 6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민형석,최의성 제3부 잠행(상) 제1장 황민 1 곡산 수안 방면에서 뻗어 내려오는 큰 산령이 서흥 봉산을 지나서 황주 극성진에 이르러 끝나는데 서흥 쪽의 북방로는 절령을 지나고 봉산 방면의 길은 동선령으로 향하여 있었다. 원래가 절령의 통로를 국도로 썼으나 너무 험준하고 여름 장마철과 겨울의 강설기가 되면 행로에 매우 곤란하여 결국은 동선령으로 옮겨 절령역은 봉산의 검수역말과 합치게 되니 자 연히 절령길이 두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절령은 봉우리가 높고 험하며 골짜기가 깊어서 병마가 접근하기 어려운 오새지였으니 그야 말로 일부당관 만부막적의 고장이었다. 이곳이 자비령으로 불려지게 된 것은 절령 북쪽에 나한당으로도 일컫는 자비사라는 절이 있었던 때문이었..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6. 이전 1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