逸話傳---人物傳記

[비하인드 스토리] 담사동 편: 제1회 거문고를 좋아하고 팔고문장을 싫어하다

一字師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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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담사동 생가의 일각)

개혁의 急 선봉 담사동

박식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그는 과거시험을 혐오했고, 의협심이 강하고 검술을 정통한 그는 강호(江湖)의 협객들을 많이 사귀었으며, 굳센 기개를 보이면서도 다정한 그는 아내와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망국(亡國)을 바라보며 그는 변법으로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고, 민중의 각성을 위해 자신의 뜨거운 피를 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바로 청(淸) 후반의 정치가이자 사상사이며 혁명가인 담사동(譚嗣同)이다. 후세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그의 숭고한 인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바로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늘 향해 웃는다. 떠난 이나 남은 이나 모두 곤륜의 영웅이거늘’이다.

개혁의 급선봉(急先鋒) 담사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거문고를 좋아하고 팔고문장을 싫어하다

하늘은 높고 설야는 망망했다. 담사동은 말을 타고 3백 리(里, 1리=0.5km)를 달려 감숙(甘肅) 난주(蘭州)의 집에 이르렀다.

당시 담사동의 부친 담계순(譚繼洵)은 난주에서 감숙도태(甘肅道台)를 지냈다. 관아에서는 도련님이 사냥하러 갔다가 돌아온 후 얼굴도 씻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서재에 들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그 누구도 몰랐다.

담사동은 이번에 사냥하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 편벽한 산골 마을에 들어갔다. 원래는 목이 말라 물도 마시고 길도 물으려던 참이었는데 한 회민(回民)의 집에서 거문고를 발견했다. 거무스레한 그 낡은 거문고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아서 자세히 살피던 담사동은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거문고에는 이런 금명(琴銘)이 새겨져 있었다.

바다는 어둡고(海沉沉) 하늘은 적막한데(天寂寂) 파초에 내리는 빗소리(芭蕉雨) 얼마나 세찬가(聲何急) 외로운 신하의 눈물(孤臣淚) 흘릴 수 없어라(不敢泣)!

“세상에! 이건 문문산(文文山)의 초우금(蕉雨琴)이 아닌가! 이런 보기 드문 보물이 어떻게 이렇게 편벽한 하늘의 변두리, 땅의 끝에 오게 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또 어떻게 6백년 후에 망망한 천지 간, 광막한 설야의 끝에서 이 거문고와 만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는가!”

문문산은 남송(南宋) 때 원(元)에 맞서 싸운 영웅이자 시인인 문천상(文天祥)의 호(號)이다.

담사동이 가볍게 현을 튕기자 거문고는 흐느끼듯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담사동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는 머리를 들어 누추한 방을 훑어보다가 벽에 걸려 있는 검을 발견했다. 담사동은 벌떡 일어나 검을 끌러서 만지다가 칼집에서 검을 꺼냈다. 과연 짐작대로 살짝 녹이 쓴 검의 날에 ‘봉구(鳳矩)’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검도 문문산, 즉 문천상의 검이었다.

집 주인은 거문고와 검을 모두 담사동에게 선물했고 담사동은 몸에 지녔던 모든 은자(銀子)를 주인의 손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난주로 돌아가는 길을 물은 후 두 보물을 품에 안고 3백 리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담사동은 문천상의 초우금을 자신이 직접 만든 ‘잔뢰금(殘雷琴)’과 ‘붕정금(崩霆琴)’과 나란히 놓았다. 그러자 18살 때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 해 여름 소낙비가 내리며 호남(湖南) 유양(瀏陽) 고향집 정원의 오동나무 한 그루가 벼락을 맞았다. 그 광경에 나는 채옹(蔡邕)이 초미금(焦尾琴)을 만든 이야기가 생각나 벼락을 맞은 오동나무로 칠현금(七絃琴) 두 개를 만들었다.

나는 고심해서 거문고 이름을 지어주고 명문도 썼다. 그 중 하나는 ‘잔뢰’라 명명하고 ‘소리 질러 하늘 깨며 도끼 휘둘러(破天一聲揮大斧) 줄기 꺾이고 껍질 썩었네(干斷枝折皮骨腐). 좋은 재목 될 기회는 사라져(縱作良材遇己苦) 사라져(遇己苦) 흐느끼며 어제를 마감 짓네(嗚咽哀鳴莽終古)!’라는 금명을 지었다.

다른 거문고는 ‘봉정’이라 명명하고 금명은 ‘벼락이 그 처음을 만들고(雷經其始) 내가 그 마무리를 했는데(我競其工) 이 모든 것 거문고에 유익하고 오동에는 무익하네(是皆有益於琴而無益於桐)’라고 썼다.

아아, 오늘 문천상의 초우금 금명과 비교해보니 나의 경계는 참으로 너무 낮구나…

거문고를 마주하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담사동은 부친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었다.

부친이 말했다.

“사동아, 마냥 너의 그 검과 거문고만 만지고 있지 말거라. 네가 집에서 공부하기 싫다면 신강(新疆)의 유(劉) 순무(巡撫)에게 가서 1년 간 막료(幕僚)를 하거라! 유 순무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몇 년간 공부하고 향시(鄕試)를 보고 향시 후에 또 다시 공부하는 생활에 싫증을 느꼈던 차에 담사동은 신강으로 가려면 만 리 길을 걸으며 변방의 풍경도 감상하고 시야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해 기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정해주신 시간에 따라 언제든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여가 시간을 이용해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야 명년에 또 향시를 보지 않겠느냐.”

담사동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간신히 대꾸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과거제도를 꾸짖었다.

“이 썩을 놈의 팔고문장(八股文章)이여, 이 구린내 나는 팔고문장이여! 말도 안 된다!”

[비하인드 스토리] 담사동 편: 제1회 거문고를 좋아하고 팔고문장을 싫어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담사동 편: 제1회 거문고를 좋아하고 팔고문장을 싫어하다

(사진설명: 담사동 생가의 일각) 개혁의 急 선봉 담사동 박식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그는 과거시험을 혐오했고, 의협심이 강하고 검술을 정통한 그는 강호(江湖)의 협객들을 많이 사귀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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