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서광계 편: 제3회 사임, 그리고 고구마 재배
(사진설명: 서광계의 화상)
제3회 사임, 그리고 고구마 재배
만력(萬曆) 황제는 <감서소(甘薯疏)>라는 이상한 소를 받았다. 감서라는 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고 이 감서가 어떤 물건인지 모르면서도 만력황제는 한림원(翰林院) 관리 서광계(徐光啓)가 쓴 소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아쉽게도 서광계의 이 소가 실전되어 지금은 이 소를 직접 읽을 수 없지만 다행히 <감서소서(甘薯疏序)>는 지금까지 전해져 서광계가 이 소에서 황제에게 무슨 제언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서광계는 이 소에서 이재민들이 흉년을 잘 넘기도록 하기 위해 나라전역에서 고구마를 도입·재배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고구마만 있다면 흉년이 들어도 유리걸식의 백성이 없고 아사자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림원의 문관(文官)이 백성의 식량문제를 관심하고 몸소 천진(天津)에 가서 고구마를 시험재배하며 북방지역에서도 여름이면 고구마를 심을 수 있고 수확이 좋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에 감동한 만력황제는 즉시 이 일을 농사 담당관리에게 맡겨 시행하게 했다.
부친상을 당해 고향인 송강부(松江府)로 돌아간 서광계가 천진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고향에서 부친의 묘소를 지키는 동안 서광계는 과학저서 편찬으로 시간을 보냈다. 당시 강남에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추위와 기아에 시달렸으며 많은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당시 남양(南洋)에 가서 살던 복건(福建) 남부의 사람들이 번서(蕃薯)를 가지고 와서 고향에 심어 고구마라는 새로운 구황작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했다. 줄곧 농업을 중시하고 농업에 관심을 보인 서광계는 고구마 재배로 인해 산이 많고 밭이 적으며 인구가 많은 복건남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더는 배를 곯지 않고 유리걸식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송강부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고구마를 심어 좋은 소출로 흉년을 지내는 것을 보았다. 서광계는 이렇게 생각했다.
“번서는 추위에 약한 남방작물이라 봄과 여름에만 심을 수 있다. 만약 방법을 대서 서리를 맞지 않게 하면 겨울에도 재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서광계는 송강부에서 시험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겨울이 서리가 내리자 번서를 심은 밭에서 볏짚을 태워 그 연기로 서리를 막았다.
송강부에서 겨울철 고구마 재배에 성공한 서광계는 또 기상천외한 생각을 했다.
“북방은 땅이 그렇게 넓은데 오히려 남방에서 북방에 식량을 제공한다. 그래서 해마다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조정은 엄청난 돈을 수운에 쏟는다! 그것마저도 북경성 사람들이 먹는 데만 드는 비용이다. 소출이 적은 북방 농민들의 생활은 남방에 비해서도 더 어렵다. 북방도 여름에는 날씨가 더운데 번서를 심지 못한다는 법이 있겠는가? 번서는 재배도 용이하고 소출도 많이 나며 달짝지근하니 맛 또한 심히 좋다. 그래서 송강부 사람들은 번서를 감서(甘薯)라 부른다. 감서를 북방에 도입해서 그 넓은 땅에 심으면 얼마나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때면 북방의 농민들도 흉년에 더는 나무껍질이나 풀 뿌리를 먹지 않아도 되겠다. 일은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 나는 이 일을 반드시 해낼 것이다.”
3년 후 서광계는 시효를 끝내고 북경(北京)에 위치한 한림원(翰林院)으로 돌아와 여전히 그 무료한 문독(文牘)을 지내며 여가 시간에 과학연구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았다. 그는 마테오 리치와 함께 기하원리를 측량학에 활용하는 <측량법(測量法)>을 편찬했다. 이와 동시에 서광계는 또 기하원리를 건축학과 수리공정학 등 여러 분야의 학과에도 활용했다.
이는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과학의식이 부족했던 당시의 중국인들로 말하면 혁신적인 일이자 위대한 기여였다. 하지만 당시 명 조정의 문관들의 눈에서 서광계는 외국 선교사와 함께 싸돌아 다니며 이상한 시험이나 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책이나 펴내는 외국의 앞잡이였고 딴 마음을 품은 거나 다름 없었다!
서광계는 <측량법> 편찬을 마친 후 대신들의 물의에서 벗어나고 또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 둔 백성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큰 일을 하려는 생각에서 황제에게 사임서를 제출하고 천진으로 가서 그의 농업시험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천진에서 감서 재배에 성공하면 전역 13개 성에 모두 보급할 수 있을 것이다!”
명 왕조 때 중국의 행정구역은 13개 성(省)으로 나누었다. 천진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한 서광계는 황제에게 소를 올려 조정의 힘으로 전역에서 고구마를 심는데 성공했다. 남양에서 나던 이 구황작물은 서광계의 노력과 보급으로 점차 중국의 주요 작물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그리하여 중국이 많은 인구를 보유하게 된 첫 번째 공로자는 고구마 재배를 보급시킨 서광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광계는 천진에서 고구마 재배 외에 또 다른 한 가지 큰 일도 해냈다. 그것은 바로 평생의 농업과학연구 자료를 모아 <농정전서(農政全書)>를 편찬한 것이다. 비록 서광계가 후금(後金)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를 훈련시키느라 이 거작을 다 쓰지는 못했으나 후에 진자룡(陳子龍)에 의해 <농정전서>는 60권에 글자수 60만자로 정리되어 숭정(崇禎) 황제의 어명으로 출간되었다.
고대 농학을 집대성한 거작인 <농정전서>는 서광계가 후세에 남긴 소중한 농업과학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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