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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서광계 편: 제2회 벼슬, 그리고 <기하원본>

一字師 2024.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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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서광계 편: 제2회 벼슬, 그리고 <기하원본>

(사진설명: 서광계 기념관 일각)

제2회 벼슬, 그리고 <기하원본>

만력(萬曆) 31년(1603년), 서광계(徐光啓)는 마테오 리치를 만난 후 3년만에 남경(南京)에서 세례를 받고 온 가족이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 이듬해 서광계는 낙방을 계속하던 과거시험에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라 한림원(翰林院) 서길사(庶吉士)가 되었다. 20살에 향시(鄕試)에 급제하여 수재(秀才)가 된 서광계는 23년이 흐른 후 43살에야 전시(殿試)에서 급제한 것이다.

만력 33년(1605년), 서광계가 명(明) 왕조의 경성인 북경(北京)에서 한림원 서길사로 지낸 2년후에 마테오 리치도 북경에 이르러 만력황제에게 <성경>과 자명종을 진상했다. 만력황제는 자명종을 아주 좋아했다. 반(半) 시진(時辰, 1시진=2시간)이 지날 때마다 자명종에서는 인형이 튀어나와 시간을 알리는데 그 광경이 너무 신기해 만력제는 기쁜 김에 마테오 리치가 북경에서 선교하도록 윤허했다. 경성의 모든 백성을 하나님의 제자로 만들 포부를 가진 마테오 리치는 경성의 선무문(宣武門) 밖에 저택을 구입한 후 포교를 시작했다.

한림원에서 공문과 서찰을 관리하는 관직에 있던 서광계는 또 다시 여가시간에 마테오 리치에게서 서방의 과학지식을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서광계가 수학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서방의 명저인 고대 그리스 유클리드의 <기하원본(幾何原本)>을 교재로 삼아 서광계에게 기하지식을 가르쳤다.

그날 저녁 서광계가 흥미진진하게 논리적 추리로 기하문제를 푸는데 아들이 말했다.

“우리 여기서는 아버님 혼자만 이런 지식을 배웁니다. 함께 토론할 학우도 없이 외롭지 않으십니까? 재미 있으십니까? 저라면 재미가 없어서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멈칫 놀란 서광계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우리 사람들은 이런 학문을 모르지. 나 혼자만 배우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어야겠다. 그래야 중국인들의 학문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날이 밝은 후 그는 마테오 리치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리치 선생님, 중국인들은 기하 기초이론지식과 논리추리능력이 아주 약합니다. 저는 이 <기하원본>을 중국문자로 번역해서 중국인들이 읽게 하고 싶은데 동의하십니까?”

“이 책을 번역하려면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이 책은 라틴어로 씌어져 있어 라틴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어법과 단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번역하겠습니까?”

마테오 리치의 대답에 서광계가 반문했다.

“그러면 선생님의 구술은 제가 어떻게 알아 듣습니까? 선생님이 구술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테오 리치가 말했다.

“참 좋은 방법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구술할 테니 서 나리가 번역하십시오. 우리가 만약 이 일을 해낸다면 중국인들에게 좋은 일 하나를 한 셈이 될 것입니다. 사실 중국인들은 2천여년래 줄곧 성인의 문장만 읽는데 설마 자신의 사상이 2천여년 전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죠?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힙니다. 너무 황당무계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좀 두려워집니다. 이제부터 저는 중국인들에게 서방의 새로운 지식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으로 말하면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날부터 서광계는 마테오 리치와 함께 어려운 번역작업을 시작했다. 번역은 참으로 어려웠다. 서광계는 매일 낮에는 마테오 리치를 찾아가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오며 줄곧 번역문구만 생각했다. 당시 기하학의 그런 개념들이 중국에는 전혀 없었기에 번역이라기보다 창작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평행선(平行線)과 삼각형(三角形), 상사형(相似形), 대각(對角), 직각(直角), 예각(銳角), 둔각(鈍角)을 비롯해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기하학의 용어들은 모두 4백 년 전 서광계가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것이다.

‘기하(幾何)’라는 이 두 글자를 서광계가 어떻게 창작했는지 그 과정을 들어보자. 마테오 리치에 의하면 이 <기하원본>의 라틴어 명칭은 <유클리드 원본>이었다. 그대로 직역하면 수학저서 같지 않고 그렇다고 내용에 따라 <형학원본(形學原本)>이라 번역하자니 참신한 뜻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테오 리치가 말했다.

“형학(形學)은 영어로 ‘Geo’라고 말하고 그리스어로는 토지측량을 말합니다. 반은 음역하고 반은 의역해서 이와 비슷한 중국어 단어를 찾을 수 없겠습니까?”

서광계는 열 개가 넘는 단어를 생각했으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서광계는 침상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하고 계속 ‘Geo, Geo’만 되뇌었다. 그러는데 갑자기 머리 속에 섬광이 번득하더니 ‘기하(幾何)’라는 새로운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생각할수록 그 단어가 딱 맞고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서광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켜고 ‘기하’라는 새 단어를 적었다.

서광계와 마테오 리치는 1년의 노력을 통해 끝내 <기하원본> 6권을 번역했고 반복적인 수정을 거쳐 이 중국어 기하학 저서는 만력 35년(160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출간되자 세상을 들썩하게 했다. 그것은 이 책이 중국의 수천 년 문명사에서 종래로 없었던 참신한 책이자 서방의 대표적인 자연과학 저서의 중국어 번역본이기 때문이었다. <기하원본>은 즉시 당시의 자연과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어 중국의 근대 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그 해에 서광계는 한림원 검토(檢討)로 승진했고 바로 그 해에 서광계의 부친이 타계했다. 비보를 들은 서광계는 슬픔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기하원본>을 번역하느라 침식마저 잃었고 부친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까마득하게 잊어 부친이 위독한 때 시중도 들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니 서광계의 마음은 칼로 에이는 듯 아팠다. 그는 아들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급히 고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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