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다사다난했던 진사은은 결국 도사와 함께 속세를 떠나다 | 홍학연구 제5교시

一字師 2022. 10. 10.
반응형

다사다난했던 진사은은 결국 도사와 함께 속세를 떠나다 | 홍학연구 제5교시

 

[해석] : 진사은(甄士隱)은 호로묘에 살던 가난한 선비 가우촌(賈雨村)이 과거시험을 보러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우촌은 진사은의 집 몸종인 교행(嬌杏)을 마음에 둔 채 서울로 과거보러 떠난다. 이후 진사은은 딸을 잃어버리고, 집도 불에 타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출가해버리고 만다. 이렇게 진사은은 사라졌다가 썩 후의 소설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다.

 

[본문]: 덧없는 세월은 빨리도 흘러 어느덧 그 해도 지나고 새해를 맞은 정월 대보름이 되었다. 그날 밤 진사은은 곽계(霍啓)라는 하인에게 영련이를 안고 거리에 나가 등불놀이나 구경시키라고 했다.

한밤중이 되어 곽계는 오줌이 마려워 어린 영련이를 어느 집 대문턱에 내려놓고 집 뒤로 가 오줌을 누고 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영련이 온데간데 없었다. 급해진 곽계는 밤새껏 찾아 헤맸으나 결국 허사였다. 죽을 죄를 진 곽계는 주인을 찾아갈 엄두를 못 내고 그 길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영련이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늙은 부부는 그제야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알고 급히 사람들을 풀어 원근 각처에 두루 수소문을 했으나 감가무소식이었다. 늘그막에 겨우 무남독녀 외딸을 얻어 애지중지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잃어버린 진사은 부부는 너무도 애가 타서 그만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밤낮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던 중 달포가 못 되어 진사은이 먼저 병석에 눕더니 뒤이어 부인 봉씨도 마침내 병이 나서 늙은 부부는 날마다 의원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던중 3월 보름이 되었다. 보름맞이 불공을 드리려고 중들이 튀각을 만들다가 잘못해서 그만 기름 가마에 불이 달아올라 그 불이 문에까지 옮겨 붙었다.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던지 이웃집들은 모두 참대를 엮어서 세운 벽들이라 호로묘의 불은 이내 옆집으로 번져 온 동네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숱한 사람들과 군졸들이 달려와 불을 껐으나 세차게 번지는 불길을 어쩔 수가 없었다. 불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꺼지기 시작했다. 이 화재로 집들이 타버렸고, 진씨 집은 절에서 제일 가까웠기 때문에 불이 제일 먼저 옮겨붙어 세간 하나 건질 사이도 없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그들 부부와 집에서 부리던 몸종들의 목숨만은 살아남았다. 졸지에 이런 일을 당한 진사은은 너무도 기가 막혀 그저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칠 뿐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은 일이었다. 그는 아내와 의논하여 우선 시골로 내려가서 조용히 소일하며 지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때 시골에는 연이어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들어 도처에서 도적떼가 일어나 논밭의 곡식을 털어가는 판이라 백성들은 마음을 놓고 살 수 가 없었다. 포도군사들이 밤낮 도둑을 잡는다고 소란을 피우지만 여전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진사은은 얼마 안 되는 논밭을 팔고 아내와 몸종 둘만을 데리고 처가로 가 의지하게 되었다.

장인되는 이의 이름은 봉숙(封肅)이라 하며, 대여주(大如州)태생이었다. 비록 농사를 짓고 사는 처지였지만 지끔까지는 별로 군색스러운 일이 없어 넉넉하게 지내왔는데 갑자기 늙어가는 딸과 사위가 가산을 몽땅 잃은 채 처가를 의지삼아 얹혀살겠다고 무턱대고 찾아들었으므로 그는 속으로 매우 언짢게 여겼다. 진사은에게는 다행히 논밭을 팔아 지닌 돈이 아직 얼마쯤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돈을 전부 장인에게 맡기고 훗날의 생계를 위하여 그 값에 걸맞는 집과 땅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마음이 음침한 장인은 그 돈을 절반쯤은 속여먹고 사위한테는 찌그러진 초가집과 풀도 안 날 메마른 땅을 몇마지기 사서 떼안겼다. 진사은은 워낙 글방물림이라 장사나 농사 같은 데는 전연 어두었다. 이럭저럭 한두 해 지탱하고 나니 집안 형편이 쪼들릴 대로 쪼들려 더는 부지해 나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장인 봉숙은 사위 앞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만 뒤에 가서는 살림도 못 하는 게으름뱅이니 밥만 축내는 식충이니 하고 있는 흉 없는 흉을 다 퍼뜨리고 다녔다. 진사은은 그제야 장인을 믿고 온 것을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가뜩이나 늙은 몸이 이 몇해 동안 연이어 불행을 당한데다 가난과 병까지 겹쳐서 진사은은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이제는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날도 하도 울적한 터라 진사은은 바람이나 쏘이려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거리를 거닐고 있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절름발이 도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미치광이같이 머리를 풀어헤뜨리고 몸에는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발에는 밑창 떨어진 짚신을 끌먼서도 도사는 주제넘게 무슨 노래 같은 것을 계속 중얼대고 있었다.

 

世人都晓神仙好,惟有功名忘不了!

古今将相在何方?荒冢一堆草没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金银忘不了!

终朝只恨聚无多,及到多时眼闭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姣妻忘不了!

君生日日说恩情,君死又随人去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儿孙忘不了!

痴心父母古来多,孝顺儿孙谁见了?

 

신선이 좋은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오로지 공명출세 잊지 못한다

고금의 재상 장수 어디를 갔나

거친 무덤에 풀만 덮였다

 

신선이 좋은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오로지 금은보화 잊지 못한다

남편이 살았을 땐 하늘처럼 섬겨도

남편이 죽자마자 팔자 고친다

 

신선이 좋은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오로지 자식의 정 잊지 못한다

자식 사랑으로 눈먼 부모는 있어도

효도하는 자식들 그 누가 보았더냐?

 

진사은은 도사의 이런 넋두리 같은 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부르신 노래가 무슨 노래인가요? 그저 '도, 다', '도, 다'만 자꾸 되풀이하시는구려."

"당신 귀에 '도, 다' 소리라도 들렸다면 그 뜻을 해독하신 거나 다름없소이다. 세상만사란 모두 '도'가 '다' 아닌 것이 없고 '다'가 '도'가 아닌 것이 없는 게 아니겠소. '도'가 아니면 '다'가 아닌 게고 '도'가 되려면 '다'가 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나의 이 노래를 '도다'타령이라고 하는 거지요."(제1회)

 

[해석] : 이 시의 원문은 제, 5, 9, 13행의 마지막 자가 '호(好: 좋을 호)'로 끝나고 제2, 4, 6, 8, 10, 12, 14,16행의 마지막 자가 '료(了: 마칠 료)'로 끝났기에 '호료가(好了歌)'라고 하였다. 

역문에서는 마지막 자가 '도'와 '다'로 끝났기 때문에 '도다'타령이리고 한 것이다. 

여기서는 세상만사란 모두 좋은 것 같지만 좋은 일도 또 다른 좋을 성싶은 일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므로 결국엔 이것도 저것도 끝장이 나고 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문] : 진사은은 하나를 들으면 둘을 미루어 아는 영리한 사람이라 그 말을 듣자 대뜸 깨우쳐지는 바가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어디 내가 그 '도다'타령을 쉬운 말로 한번 풀이를 해 볼까요?"

진사은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풀이를 한다? 그거 재미있군. 어서 풀이를 해 보시오."

진사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듯 '도다'타령을 풀이해 나갔다.

 

陋室空堂,当年笏满床 ,衰草枯杨,曾为歌舞场。

蛛丝儿结满雕梁,绿纱今又糊在蓬窗上。

说什么脂正浓,粉正香,如何两鬓又成霜?

昨日黄土陇头送白骨,今宵红灯帐底卧鸳鸯。

金满箱,银满箱,展眼乞丐人皆谤。

正叹他人命不长,那知自己归来丧!

训有方,保不定日后作强梁。

择膏粱,谁承望流落在烟花巷!

因嫌纱帽小,致使锁枷杠;

昨怜破袄寒,今嫌紫蟒长:

乱烘烘你方唱罢我登场,反认他乡是故乡。

甚荒唐,到头来都是为他人作嫁衣裳!

 

실그러진 집이언만 화려한 때 있었고

황량한 페허에도 풍악소리 높았으리

대들보엔 얼기설기 거미줄 치고

청실홍실 창가엔 쑥대가 우거졌네

꽃 같은 얼굴에 분 향기 풍겼던가?

어느새 머리에는 흰 서리 내렸구나

어제는 북망산에 백골을 묻더니

오늘밤엔 즐겁다는 원앙새 한 쌍

황금백은을 주체 못 하던 큰 부자도

한 번 실수에 거지되면 차디찬 세상

이웃사람 죽었다고 구슬피 조상하지만

제 몸에 닥친 죽음은 보지 못하네

글과 덕을 가르쳐도 탕자되기 일쑤요

좋은 신랑 얻었대야 노류장화일세

아전 지체에 큰 감투 쓰려다가

쇠고랑에 발목 묶여 감옥 신세 일쑤로다

어제는 누더기 감고 발발 떨더니

오늘은 비단옷도 성에 차지 않는다네

세상 만사의 흥망이란 이렇듯 뒤죽박죽

믿지 못할 고향보다 타향이 그립도다

아아, 인생놀음이란 야속도 해라

결국은 남 좋은 혼수 흥정인 것을

 

그 거지꼴의 도사는 듣고 나서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풀이를 참 잘 했소. 아주 그럴 듯하오."

이에 진사은은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는 짐짓 도사의 어깨에서 바랑을 벗겨 메고 그 길로 도사와 함께 표연히 사라졌다. 진사은이 이렇게 종적을 감추자 동네에서는 한동안 그에 대한 풍문이 자자했다.(제1회)

 

[해석] : 한편, 가우촌은 진사은(甄士隱)의 도움으로 과거를 보고 급제하여 벼슬을 얻은 뒤, 옛날 진사은이 살던 곳으로 부임해 와서 교행을 소실로 들인다. 나중에 가우촌은 동료들의 시기로 강등되어 유양(維揚)을 떠돌다가 냉자흥(冷子興)을 만나 대화하면서 가부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또 임대옥의 글선생이 되어 마침내 대옥을 가부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 줄거리는 진사은(甄士隱), 가우촌(賈雨村) 에피소드로 이어지고, 진사은, 가우촌 에피소드가 가부의 등장으로 연결된다. 요컨대, 이런 내용의 두 사람의 에피소드가 축약되어 “진사은은 꿈길에서 기이한 옥을 알아보고, 가우촌은 속세에서 꽃다운 여인을 그리다.”라는 홍루몽 제1회의 제목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진사은과 가우촌은 홍루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두 사람은 가부의 흥망이나 가부의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게 되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진사은의 경우, 잃어버렸던 딸 영련이 나중에 설반(薛蟠)에게 시집을 가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가부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또한 가우촌 역시 비록 가부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그는 가부의 먼 친척이 되며, 관리가 될 때 가부의 도움을 받는다-- 가부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는다. 그들이 비록 가부의 비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소설의 전체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홍루몽은 진사은, 가우촌 두 사람으로 시작되어 진사은, 가우촌 두 사람으로 끝나는데, 작가는 진사은과 가우촌이라는 두 상징적인 인물을 사용하여 소설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사실과 허구와의 관계, 즉 ‘진가(眞假)’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준다.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