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냉자흥이 가우촌에게 녕국부와 영국부를 알려주다 | 홍학연구 제7교시

一字師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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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자흥이 가우촌에게 녕국부와 영국부를 알려주다 | 홍학연구 제7교시

[해석] : 홍루몽의 무대는 금릉(지금의 남경)의 귀족 세가인 가씨 집안의 저택인 녕국부와 영국부를 중심으로 가보옥과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열두 명 여자)로 불리는 인물들을 에워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설근은 가우촌과 냉자흥의 대화를 통해 가씨 가문과 녕국부, 영국부의 구조와 내부갈등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수법을 이용했다. 물론 이는 앞으로의 이야기다. 잘 읽어보시기 바란다.

 

[본문] : ... ...이날도 우연히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이왕이면 시골 경치나 구경할까 하고 그는 발 가는 대로 걸어갔다. 얼마쯤 가자 한 줄기 맑은 시냇물이 에돌아 흐르는 산언덕에 울창한 수림과 무성한 대숲이 있고 한적한 절간이 하나 그 속에 묻혀 어렴풋이 눈에 안겨왔다. 가까이 가보니 산문은 기울어지고 담벽은 반나마 허물어졌는데 산문의 현판에는 '지통사(智通寺)'라는 세 글자가 드러나 있고, 양쪽 기둥에는 낡고 퇴락한 대련이 붙어있었다.

 

身后有馀忘缩手,眼前无路想回头。

 

넉넉할 때는 아낄 줄을 모르다가

앞길이 막혀서야 헛되이 후회한다

 

가우촌은 이 글귀가 표현은 아주 평범하지만 의미는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내 지금까지 명산대찰을 적지 않게 보아왔지만 이런 글귀를 써붙인 곳은 처음이 아닌가. 이 절에는 아마 도통한 스님이라도 있나보다. 어디 들어가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절문을 들어서니 다 늙고 초췌한 중이 솥에다 죽을 끓이고 있었다. 가우촌이 예사로 한두마디 말을 걸었더니 이 늙은 중이 눈이 멀고 귀가 먹은 병신에다 이마저 빠져 목탁 같은 입을 오물거리며 얼토당토 않은 소리만 웅얼댔다. 우촌은 입맛이 써 그만 절문을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술잔이나 기울이며 울적한 심사를 풀어보려고 부근에 있는 술집을 찾아갔다.

가우촌이 한 술집에 이르러 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웬 사람이 안쪽 술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너털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아, 이거 우촌 형이 아니요? 이런 데서 만날 줄이야... ..."

가우촌이 깜짝 놀라 쳐다보니 그 사람은 서울에서 골동품 장사를 하는 냉자흥(冷子興)이란 친구였다. 그들은 한때 서울에서 서로 막역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가우촌은 전부터 냉자흥을 앞으로 꼭 큰일을 해낼 재주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해 오던 터였고, 냉자흥은 또 가우촌의 문필 덕을 적지 않게 입어 온 터라 둘은 자연히 자별하게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가우촌은 반갑게 마주웃었다.

"아니, 언제 이곳으로 왔나? 난 통 모르고 있었군 그래. 아무튼 여기서 이렇게 만났으니 역시 인연인가보네."

"실은 지난 겨울에 고향엘 갔다가 지금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일세. 여기 있는 한 친구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어서 들렸더니 그 친구가 한사코 붙들고, 또 나도 별로 급한 일이 없고 하여 그럭저럭 며칠 묵게 되었네만 이 달 보름께는 꼭 떠나야겠네. 오늘 그 친구는 볼일이 있어서 나가고 나만 혼자 산책을 하던 중에 여기까지 나왔네. 그런데 정말 뜻밖일세.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냉자흥은 이렇게 말하며 가우촌을 자기 술상에 끌어다 앉힉 새로 술과 안주를 청했다. 그들은 천천히 잔을 기울여 가며 그 동안 겪어온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새 서울 소식 좀 들은 게 없나?"

가우촌은 우선 서울 소식이 궁굼하였다.

"글쎄 별로 이렇다 할 소문은 못 들었네만 자네 일가댁에 좀 변괴가 있었다고나 할까."

"원 별소릴 다 듣겠군. 우리 가문에 서울 사는 친척이라고는 한 집도 없는데 웬 일가댁이란 말인가?"

가우촌은 짐짓 모를 소리라는 뜻이 웃었다.

"참 같은 성씨지만 일가친척은 아니겠군."

냉자흥도 따라 웃었다.

"그래 대관절 뉘 댁인데?"

 

[해석] :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 (), ()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폭정들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그거야 영국부(榮國府) 가씨 댁이지 뉘 댁이겠나? 그러니 그 집과 일가라면 자네 가문에 욕될 거야 없겠지."

"허허, 난 또 누구네라고. 그야 가씨 문중의 일가친족을 다 합친다면 그 수가 이만저만이 아닐 걸세. 동한(東漢) 때 가복(賈復)의 대에서부터 자손이 번성하여 지금은 어느 성에나 다 가씨네 후손들이 널려있는 판이나까 누가 그 족보를 일일이 캐 보겠나? 혹시 영국부의 족보를 캐보면 우리도 한집 자손일는지도 모르지만 그 집은 한다하는 세도문벌이요, 우리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이라 어디라고 감히 그 집하고 족보를 따지고 있겠나. 이 꼴로 찾아갔다가는 문전 거지 대접을 받기가 딱 알맞겠지."

"그렇게 말할 것도 아닐세. 지금은 녕국부(寧國府)나 영국부도 점점 영락돼 옛날의 그 내노라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네."

"아니, 그처럼 식솔이 많고 번성하던 집안이 갑자기 영락되다니!"

"글쎄 말이네. 하긴 그 말을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네만..."(제2회)

 

[해석] : 여기서 잠간 ~~ "홍루몽"은 가씨, 사씨, 왕씨, 설씨 4대 가정을 배경으로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의 애정비극을 주선으로 하여 가씨 가문이 흥성으로 부터 쇠망(衰亡)해 가는 과정을 통해 청 왕조가 흥성하던 데로부터 붕괴되어가는 필연적인 역사적 운명을 보여 주었다. 또한 "홍루몽(紅樓夢)" 통치계급 내부 즉 황실과 귀족, 관료들 사이의 모순과 귀족 가정 내부 모순이 바로 그들 자체를 쇠망에로 이끈 중요한 원인의 하나임을 까밝혔다.

[본문] : "작년인가 내가 금릉 일대에 이르러 육조(六朝)시대의 유적들을 유람하던 중 하루는 석두성(石頭省: 남경성의 옛 이름)엘 갔었지. 그때 가씨 댁 대문 앞을 지나며 보니까 네거리 북쪽에 동쪽으로는 녕국부, 서쪽으로는 영국부가 들어앉았는데 서로 잇닿아 있는 그 두 저택이 그 거리의 태반을 차지했더란 말일세. 대문 앞은 비록 인적이 드물고 어딘지 모르게 찬바람이 돌고 있었지만 담장너머로 정원 안을 들여다보니 으리으리한 누각과 고대광실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겠지. 그리고 뒤뜰 안 화원도 갖가지 기암괴석으로 장식되고 온갖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그대로 생기와 윤택이 흐르는 것이 퇴락의 모습이라곤 전혀 엿보이지 않던데?"

냉자흥이 짐짓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얼굴에 냉소를 띠었다.

"아니, 진사출신인 우촌형이 그만한 문리도 모르다니! 옛사람들도 '왕지네는죽어도 굳어지지 않는다'고 했거든. 오늘의 녕국부나 영국부가 아무리 예날만 못해졌다 한들 그래 보통 여염집하고야 어떻게 비할 수 있겠나? 문제는 지금 녕. 영 두 댁에 식솔은 나날이 늘어가고 일감은 갈수록 불어만 가는데도 주인이건 노복이건 호화방탕하나 생활에만 눈이 어두워 누구 하나 정신을 차리고 기울어지는 가운을 바로잡을 생각을 않고 있다는 걸세. 그렇다고 날마다 드는 씀씀이를 줄이거나 먹새나 옷치레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판이라 겉보기에는 아직도 옛날의 위풍을 다 잃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안으로는 벌써 주머니끈이 조여들기 시작했거든. 한데 그건 그렇다치고라도 그 댁과 같이 명망과 문벌이 높은 가문에서 자손들이 대대로 점점 못해만 가니 이게 그래 큰일이 아니고 뭔가?"

"아니, 그만큼 가풍이 엄한 집에서 자손들의 가르침을 등한히 할 리가 있나. 다른 집이라면 몰라도 녕국부와 영국부 두 댁에서만은 자손들의 가르침에 빈틈이 없다고 들었는데... ... "

"다들 그런 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이 두 집이 반드시 그렇지는 못하단 말일세. 어디 들어보겠나?"

 

[해석] :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폭정들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냉자흥은 여기서 말을 잠깐 끊였다가 다시 이었다.

"본래 녕국공과 영국공은 한 어머니가 낳은 친형제였네. 형 되는 녕국공에게 아들 4형제가 있었는데, 녕국공이 세상을 뜨자 맏아들인 가대화(賈代化)가 직위를 이어받았지. 이 가대화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가부(賈敷)는 8, 9세 때 죽고 둘째인 가경(賈敬)이 다시 직위를 물려받았네. 그런데 그분은 지금 괴상한 도락(道樂)에 빠졌달까. 불로장생하는 단약을 만드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일에는 일체 관심이 없다는 거야. 다행히 일찍 가진(賈珍)이라는 아들이 있어서 직위를 그에게 넘겨주고는 자기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이 언제까지고 서울 교외에 나앉아 무슨 신선이 된답시고 도인들과 어울려 쑥스러운 짓만 하고 있다네. 그리고 가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나이는 울해 열여섯이고 이름은 가용(賈蓉)이라고 부른다네. 그런데 가장 어른인 가경대감이 집안 일을 전혀 알은 체하지 않는데다 가진이란 양반 또한 글읽기를 약 먹듯하고 난봉질에 이골이 나서 녕국부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거든.

 

[해석] :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쓸모없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작은댁 영국부를 보더라도 또 그 모양이라네. 아까 내가무슨 변괴가 생겼다고 한 것도 실은 바로 이 작은댁 이야길세. 예전에 영국공이 세상을 떠나지 맏아들인 가대선(賈代善)이 작위를 이어받고 금릉에서 제일가는 명문인 사(史)씨 댁의 따님을 아내로 맞아들여 가사(賈赦)와 가정(賈政) 두 아들을 보았지. 가대선은 이미 세상을 떠나서 없지만 대부인 사씨는 아직도 정정하시네. 장남인 가사는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고 둘째인 가정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조부님은 끔찍이 그를 사랑하며 장래 진사로 출세시킬 생각이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가대선이 임종할 때 유서를 임금께 올렸다는데, 이에 임금은 옛신하를 어여삐 여겨 맏아들인 가사에게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주었을 뿐 아니라 가대선의 아들이 모두 몇인가 알아보시곤 둘째인 가정을 친히 불러 특별히 그분에게 주사(主事: 참사격인)의 벼슬을 내리시며 관소에 들어가견습하도록 하셨다네. 지금 가정대감은 원외랑(員外郞: 주사보다 높은 관직으로서의 오늘의 국장에 해당함)으로 승진이 되셨다네. 그의 부인 왕(王)씨의 몸에서 세 남매가 생겼는데, 맏아들 가주(賈珠)는 열네 살에 향학에 들어가 생원의 자격을 얻고, 스무 살 때 장가들었지만, 씨를 하나 남기고는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지. 둘째는 딸인데 아주 신통하게도 생일이 정월 초하루였다나. 그후 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글쎄 태어날 때에 입 안에 오색영롱한 구슬을 물고 있었더라는 거야. 그 구슬에는 또 기묘한 글자까지 새겨져 있었다는군. 그래서 이름도 '보옥(寶玉)'이라고 지었다는 거야. 그러니 신기한 일이 아니고 뭔가?"

 

[해석] :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 한데 그 귀공자가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지?"

냉자흥은 얼굴에 냉소를 띠더니 잠깐 끊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 통에 할머니는 그 애를 눈에 넣어도 아픈 줄 모를 만큼 극성스레 귀여워하지만 실상은 그럴 것도 없겠더군. 한번은 그 애의 생일날이 되어 아버지인 가정대감이 그 애의 장래를 알아보려고 생일상 위에 이 세상의 별의별 물건을 다 차려놓고 집게 했더니 글쎄 하고많은 물건들 가운데서 집는다는 것이 모두가 분이니 비녀니 팔찌니 하는 여자들이 쓰는 물건뿐이더라나. 가정대감은 대번에 안색이 달라지며 장차 주색에 빠질 난봉꾼밖에 못 될 녀석이라고 욕을 햇다는 거야 그래서 식구들은 은근히 걱정들을 했지만 유독 사태군(史太君: 가사와 가정의 어머니임. '사'는 본가집 성이고 '태군'은 귀인의 어머니에 대한 칭호임. 이 책에서는 흔히 대부인이라고 번역했음)만은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시며 여전히 금이야 옥이야 명줄같이 싸고돈다네.

그건데 좀 특이한 것은 아직은 글쎄 7, 8세 밖에 안 되는 미소년인데 장난 심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머리가 남달리 영리하여 예사 사람으로는 당해 낼 수가 없다는 거네. 그래서 한다는 소리가 어린애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런 엉뚱한 소리뿐이라네. 그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여자는 물로 된 몸이요, 남자는 흙으로 돈 몸이어서 여자 곁에 가면 마음이 상쾌하지만 남자는 얼굴만 봐도 역증이 난다'는 게 아니겠나? 하하, 장차 천하 제일 색마가 될 거야 뻔한 일이 아니고 뭔가 말일세."

이 말을 들은 우촌은 당치않은 소리라는 듯이 낯을 붉히며 자흥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닐세! 그건 그 귀공자의 내력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모르긴 하겠네만 가정대감도 아마 잘못 속단을 내리고 색마니 색골이니 한 것 같네. 그런 일은 학문이 깊고 사물의 이치에 정통하며 사물의 근본을 따질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가우촌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냉자흥은 짐짓 웃음을 거두었다.

"무슨 말인지 난 잘 모르겠는데?"

 

[해석] :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고,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만을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대체로 조물주가 이 세상에 인간을 만들어 낼 때 아주 안자한 자와 아주 간악한 자의 두 부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어슷비슷한 사람으로 만들었지. 그런데 아주 인자한 자는 좋은 문수를 타고나고 아주 간악한 자는 나쁜 운수를 타고나거든. 그러니까 좋은 운수를 타고난 사람이 많게 되면 세상은 태평해지고 나쁜 운수를 타고난 사람이 많게 되면 세상은 어지러워지는 거네. 요, 순, 우, 탕왕, 문왕, 무왕, 주공, 소공, 공자, 맹자, 동중서, 한유, 주돈이, 정호 형제, 장재, 주희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좋은 운수를 타고난 아주 인자한 사람들이라 천하를 잘 다스렸지만, 공공, 걸왕, 주왕, 진시황, 왕망, 조조, 환온, 안록산, 진희와 같은 이들은 모두 나쁜 운수를 타고난 아주 간악한 인간들이라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니겠어? 대체로 깨끗하고 슬기로운 것은 천지의 정기로서 아주 인자한 사람들이 타고난 성품이요. 잔인하고 꼬인 것은 천지의 사기(邪氣)로서 아주 악착한 사람들이 타고난 성품일세. 오늘날은 바로 나라가 번영하고 세상이 태평스러운 때라 깨끗하고 슬기로운 기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민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다 가득하단 말이야. 그래서 그 남은 기운은 갈 데가 없어 필경엔 맑은 이슬이 되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 널리 세상을 적셔주고 감싸주는 거지. 그러나 저 잔인하고 꼬인 사기는 햇빛이 환한 밝은 세상에서는 함부로 나돌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엔 깊은 구렁터이나 골짜기 같은 데 숨어있거든. 그러다가 얼마간 잘못 새나온 것이 뛰어난 기운과 맞부딪치게 되면 정기는 사기를 용납하지 않고 사기는 정기를 시샘해서 서로 지려고 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바람과 비, 우레와 번개처럼 땅 속에서 일단 맞닥뜨리면 상대방을 없애버릴 수도 없고 양보할 수도 없어서 반드시 엉겨붙어 결판을 내고야 차츰 없어지는 거야. 그런데 그 정기와 사기가 어울려 생긴 이 기운은 또 반드시 사람에게 부여되어 그것이 전부 새 버리기까지는 흩어지는 법이 없거든. 그가 남자이든 여자이든간에 이런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제가 아무리 둔갑을 해봤자 성현이나 군자는 될 수 없고, 또 아무리 막되게 굴러먹는다 하더라도 흉악무도한 인간이 되지는 않는 법이야. 그래서 그것을 억만 사람들 가운데 두면 그 슬기로운 기운은 억만 사람들 위에 솟아나지만 그 꼬이고 인정에 벗어난 행실은 반드시 억만 사람의 밑에 깔려 있게 되지. 그러니까 그가 부귀나 공명으로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게 된다면 치정에 빠진 인간이 될 것이고, 가난하지만 학문이 있는 가문에 태어나게 된다면 훌륭한 선비가 되는 거야. 설사 신분이 낮고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절대 남의 발 밑에서 부림을 받는 신세가 되는 일은 없고 반드시 훌륭한 배우나 이름난 기생이 되게 마련이야. 이를 테면 옛날 사람들로는 허유, 도연명, 완적, 혜강, 유령, 왕도와 사안의 두 가문 사람들, 진나라의 무왕, 당나라의 현종, 송나라의 휘종, 온비경, 미남궁, 석만경, 유기경, 진소유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근세 사람들로는 예운림, 당백호, 축지산, 그밖에 또 이구년, 황번작, 경신마, 탁문군, 호불, 설도, 최앵앵, 조운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경우와 처지는 다르다 하더라도 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야."

 

[해석] : 대관원의 남성들이 대부분 무능력하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말하자면 잘 되면 왕이요, 못 되면 역적이 된다는 그 말이로군."

"그렇지. 자넨 아직 모를 걸세마는 내가 벼슬을 떼우고 2년간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던 중에 두 군데서나 이상한 아이를 보았네. 방금 자네가 그 보옥이란 귀공자의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벌써 속으로 역시 같은 유형의 인물이구나 했지. 굳이 먼뎃것은 그만두고 금릉성 내의 체인원(體仁院: 역사를 편찬하고 진사의 선발을 맡아보는 기구)총재인 진씨댁이라면 자네도 알겠군 그래."

"알다뿐이겠나. 그 진씨 댁과 가씨 댁은 옛적부터 친척인 관계로 여간 자별하게 지내는 처지가 아니거든. 하기야 나도 그 댁엘 출입하고 있는 지가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우촌은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참. 내가 작년에 금릉에 가 있을 때에 말이야.어떤 사람의 추천으로 진씨 댁에 가졍교사로 들어갔었다네. 그런데 그렇게 부귀한 집안치고는 예의범절이 아주 바르더군. 아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만한 가정교사 자리도 좀 드물걸세. 그런데 내가 가르치는 그 댁 귀공자 말이야. 가르치는 글이란 대체로 글자나 깨우쳐 주면 되는 것이었지만 이게 과거 공부를 시키기보다 더 힘이 든단 말이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네만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나? '난 처녀애들하고 같이 글을 읽으면 공부하는 재미도 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뒤숭숭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한단 말이야. 그리고 시중드는 하인 아이들을 보고는 한다는 소리가  '이 처녀애라는 말은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다. 저 아미타불이나 원시천존(原始天尊: 도교의 신의 이름)의 이름보다도 더 거룩하고 영예로우며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 구린내나는 더러운 입으로는 함부로 처녀애란 말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이야. 만일에 꼭 그 말을 해야 할 때는 맑은 물로 양치질을 한 두에 하란 말이다. 그렇지 않고 내 말을 거역했다가는 단번에 네놈들의 이빨을 부러뜨리고 주둥아릴 찢어 놓을 줄 알아라' 하는 거야. 평소에 그는 횡포하고 부랑지고 미련하고 또 고집이 세기가 이만저만이 아닐세, 그런데 이상한 것은 ... ..."

"무언데?"

"그렇게 사납던 아이지만 일단 공부를 마치고 처녀애들 곁에만 가면 갑자기 온순하고 상냥해질 뿐만 아니라  총명하고 점잖아져서 아주 딴 사람이 된다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몇번이나 매를 들고 호되게 때려주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봊 못했다네. 어디 그뿐인가? 매를 맞을 때 아파서 참기 어려우면 '아이고, 누나!' '아이고, 누나!' 하며 소리를 질러 댄다네.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처녀애들이 '매를 맞으면 맞았지 누나를 부를 건 뭐예요? 남자 체면에 부끄럽지도 않아요? 하고 놀려주면 그의 대답이 또 아주 묘하단 말이야. 뭐라고 하는가 하면 '매를 맞아서 아플 때마다 어쩐지 누나, 누나 하고 불러보면 덜 아플 것 같아서 한번 시험삼아 불러봤더니 정말 아프지 않겠지. 그래서 이런 비결을 안 다음부터는 아주 아플 때마다 그렇게 부르곤 하는 거야.' 한다네. 정말 소가 웃다가 꾸러미 떠질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 할머니는 손자를 지각 없이 귀여워하는 터에 손자 역성만 들며 스승인 나를 나무라거나 아들을 꾸짖기가 일쑤지. 그래서 나도 비위가 상한 김에 가정교사를 그만두었네만 그런 자손이고서야 선조의 위업을 이어나가기는 아예 틀린 거고, 또 스승이나 친구의 올바른 충고도 받아들일 리가 없는 거네. 다만 아까운 것은 그 댁의 따님들이야. 모두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처녀애들이지."

하기야 가씨댁 아가씨들도 역시 뛰어난 인물들이지. 가정대감의 맏딸인 원춘은 효성이 지극하고 재덕으르 겸비하여 궁중으로 뽑혀 들어가 있고, 둘째는 가사대감의 따님으로 소실의 몸에서 난 영춘, 셋째는 가정대감의 누이동생 석춘이지.손녀들을 무척 귀여워하시는 그 집 노마님께서는 그들을 옆에 두고 함께 공부를 시키는데 용모나 재덕이 모두 놀랍다는 소문이야."(제2회)

 

[해석] : 원춘, 영춘, 탐춘, 석춘 이 네 사람의 이름의 첫자는 '원응탄식(元應嘆息: 원래 탄식하는 것이 마땅하다)'이라는 말과 음이 같다. 여기서는 이 네 사람이 모두 탄식으로 나날을 보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춘의 '영(迎)' 자와 원응탄식의 '응(應)'자는 중국어에서 음이 같다.

 

[본문] : "그런데 방금 말한 진씨댁에서는 별스럽게 여자들의 이름을 다른 집과는 달리 전부 남자 이름처럼 지어 보통 여자 이름에 쓰는 춘이니, 홍이니, 향이니, 옥이니 하는 따위는 쓰지 않네. 그런데 가씨댁 같은 지체높은 집에서 왜 그런 속된 이름을 지어 세상의 천한 풍속으르 따르는지 모르겠군?"

"그건 세상의 천한 풍속을 따르고자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맏딸이 정월 초하루 태생이기 때문에 원춘이라고 이름을 지은 터라 동생들이 그 '춘'자를 따르게 된 것뿐이지. 그 앞대의 여자들 이름은 역시 상류계급의 습관대로 남자 형제들의 이름자를 따랐거든. 그 증거로 지금 우촌형의 주인집인 임씨댁의 부인을 들 수 있지. 우촌형도 알다시피 그 부인은 영국부의 가사대감과 가정대감의 누이동생이 아닌가. 그분의 시집오기 전 이름이 바로 남자 이름 같은 가민(賈敏)이었거든. 믿어지지 않거든 돌아가서 알아보게나."

우촌은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그래서 그 따님이 '민'자를 그냥 '밀'자로 발음했었군. 글자를 쓸 때도 '민'자만 나오면 꼭 한두 획을 빼먹곤 해서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 은근히 이상하다 하던 차인데 오늘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 까닭을 알겠네. 아닌게아니라 그 따님의 말하는 품위나 행동거지가 어쩐지 여느 여자애들과는 다르다 했더니 그런 내력이 있었군. 하긴 범속치 않은 그 어머니로 미루어 보니 별로 놀랄 건 없군.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네."(제2회)

 

[해석] : 홍루몽(紅樓夢)중의 인물 형상들은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浮刻)되었다. 홍루몽중의 인물은 400명이 넘는데 그중 전형적(典型的)인 인물이 백 명도 더 된다. 조설근(曹雪芹)은 여성, 특히는 청소년 여성의 미묘하고 복잡(複雜)하며 민감하고 변덕스러운 심리상태와 정감세계(情感世界)를 파헤치면서 그들의 염원과 기대, 특히는 사랑에 대한 그들의 갈망(渴望)을 잘 보여주었다.

 

[본문] : 냉자흥은 눈이 둥그래지며 놀란다.

"아니, 그래? 딸형제 네 분 가운데서 그분이 제일 막내였는데 그분마저 세상을 떠났고 보면 늙은 세대로는 자매가 한 분도 안 남게 되었군 그래. 이젠 젊은 세대들만 남았는데 그들의 사위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는지... ..."

"글쎄 말이네. 그런데 방금 이야기 중에 가정대감에게는 옥을 물고 나온 아들이 있고, 또 큰아들이 남긴 손자가 있다는데 가사대감에게도 아들이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

"가정 대감에게는 옥을 물고 나온 아들 외에도 첩의 몸에서 난 아들이 또 하나 있지만 그 애의 됨됨이는 잘 모르겠네. 지금까지는 아들들에 손자 하나가 있는 셈인데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있나? 가사 대감에게도 아들 형제가 있기야 하지. 맏아들인 가련(賈璉)은 올해 나이가 스무 살 가량 되었는데 이태 전에 벌써 작은어머니인 가정대감의 부인 왕씨의 조카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지. 이 가련이란 사람이 지금은 동지(同知: 부윤의 보좌관)의 벼슬감투를 돈을 주고 사서 썼는데 학문과는 담을 쌓고 있지만 말솜씨가 좋고 교제가 넓어 처세에 아주 능하다네. 그래서 지금까지 작은 아버지인 가정의 집에 얹혀 있으면서 집안 일을 돌봐주고 있다네. 헌데 이 사람이 장가를 들며부터 상하를 막론하고 그의 부인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는 판이라 가련 쪽에서 오히려 짝이 안 맞게 되었지. 그 부인은 얼굴만 빼어난 것이 아니라 말쏨씨며 거동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또 얼마나 섬세한지 몰라. 한다하는 사내대장부들도 그 발치에 가기가 어렵다니까."

이에 우촌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보라고! 아까 내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지.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이 몇사람들은 다 그 정기와 사기를 함께 타고난 사람들인지 모른다니까!"

"아따 정기면 어떻고 사기면 어떻고 상관할 게 있나. 남의 집 족보 캐기에 해가 저물겠네. 그만 술이나 드세."

"허허,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그만 술이 과했는걸."

"아니야. 남의 집 뒷공론에 주량이 는다는데 좀 많이 마셨기로 그게 별일인가!"이렇게 말하며 냉자흥이 껄껄 웃자 가우촌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죽 비우고 나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어느새 날도 저물었군. 성문을 닫기 전에 우리 천천히 가 보세. 이야기야 차차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그들은 술값을 치르고 객주집을 나섰다....(제2회)

 

[해석] : "홍루몽" 사상성(思想性)이 높을뿐더러 탁월한 예술적 성과로 중국 고대 장편소설가운데서 사실주의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작품이다. "홍루몽" 예술적 성과는 우선 전형적인 인물형상을 부각한데 있다. 가보옥(賈寶玉), 임대옥(林黛玉), 설보채(薛寶釵), 왕희봉(王熙鳳) 등 인물형상은 널리 전해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홍루몽" 언어는 세련되고 성격화(性格化)되었으며 표현력이 강하다. "홍루몽" 후세에 와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거작(巨作)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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