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임여해는 가우촌을 천거하여 다시 벼슬길에 오르게 하다 | 홍학연구 제8교시

一字師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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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해는 가우촌을 천거하여 다시 벼슬길에 오르게 하다 | 홍학연구 제8교시

 

[해석] :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법이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게 되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것도 당연지사이다. 홍루몽의 시작은 진사은과 가우촌 이 두 사람으로 시작된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가우촌은 진사은의 도움으로 벼슬길에 올랐지만 동료들의 미움으로 결국 파면 당하게 된다. 과연 가우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래에 계속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 : 홀몸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중 어느 날 가우촌은 유양(維揚 : 오늘의 강소성 양주) 땅에 이르렀는데 올해의 순영어사(巡鹽御史: 소금전매 사무를 맡아보는 관리)로는 임여해(林如海)란 사람이 임명되었다는 소문이 그곳에 돌고 있었다.

이 임여해는 성이 임씨요, 이름이 해표(海表), 자가 여해인데 일찍 탐화(探花: 제3위)로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그 뒤 계속 벼슬이 올라서 지금은 난대사대부(蘭臺寺大夫: 관리들에 대한 감찰을 맡아보는 벼슬)로 있었고, 본적은 고소였고, 순염어사로 부임한 지는 달포밖에 안 되었다.

여해의 집안은 대대로 제후으 직위를 이어받아 온 귀족의 문벌로서 여해의 대까지 5대째로 직위를 이어받아 오고 있다. 세습은 본래 3대에서 그치는 제도였으나 상감마마께서 전대에 없던 성덕을 베풀어 여해의 아버지가 한 번 더 세습하게 되었고, 여해의 대에 와서는 다시 과거에 의해 진사로 출세를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문벌이 높고 학문이 깊은 집안이건만 한 가지 불행이 있었다, 그것은 임씨 문중에 자손이 귀하여 가족이 붓지 못한 것이었다. 친척이 몇집 있기는 했으나 모두 여해와는 촌수가 멀고, 직계 자손은 없었다. 임여해는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신변에 겨우 세 살나는 아들이 하나 있을 뿐이었는데, 그마저 지난해 죽고 말았다. 여해는 첩도 여럿 맞아들였자만 아들 복이 없었던지 그들은 하나도 아들을 낳아 주지 못했다. 지금은 슬하에 본처 가(賈)씨의 몸에서 난 대옥이라는 다섯 살나기 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임여해 부부는 이 외동딸을 불면 날까 주면 꺼질까 애지중지 길렀다. 딸은 아주 얼굴이 예쁘게 생기고 천성이 영리하여 글을 가르치면 곧 깨우쳤다. 그들은 딸에게 정식으로 글을 가르쳤다. 그 심사인즉 딸을 아들맞잡이로 삼아 슬하에 대를 이어 줄 혈육이 없는 설움을 풀어보려는 것이었다.

가우촌은 마침 감기에 걸려 여인숙에 머무르고 있었다. 달포가 거의 되어서야 병이 차츰 나아갔다. 그러나 몸을 아직 추스르지 못했고, 또 여비마저 떨어져 알맞은 일자리를 얻어 숨이나 돌리려던 차였다. 그때 마침 이 고장에 이쓴 두 옛 친구를 통해 순염어사 댁에서 가정교사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그 친구들의 알선으로 우촌은 그 집에 들어가 잠시 몸을 붙이게 되었다.

다행히 가르치는 제자라고는 임대옥뿐이었고, 그 외에는 공부 시중을 드는 두 어린 시녀가 있을 뿐인데, 그 제자가 아직 매우 어린데다가 병치례만 하다 보니 글은 읽으며 말며 하는 터라 가르치기가 별로 힘들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한 1년을 가르쳤을까? 그런데 뜻밖에 대옥의 어머니 가부인이 대수롭지 않은 병이 원인이 되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대옥은 어머니가 앓는 동안 약시중을 들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몽상(夢喪)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가우촌은 이 기회에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달리 일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임여해가 몽상 동안에도 딸을 계속 공부시킬 생각으로 간곡히 만류하였으므로 마지 못해 눌러 있었다. 그러나 대옥이는 워낙 몸이 약해 병이 떨어질 새가 없었고, 어머니를 잃고 너무 비통해 하던 나머지 병이 도져 요즘은 공부를 전폐하고 있었다.

가우촌은 할일없이 그냥 방안에만 붙박혀 있기가 무료하여 날씨가 화창할 때면 식사를 마치고는 근처를 산책하는 버릇이 생겼다....(제2회)

 

[해석] : 가우촌은 정(情)에 기초한 인물들은 성(性)이나 계급을 초월하고 신분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앵앵, 홍불, 탁문군 등이 왕이나 은사(隱士) 등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취급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들은 모두 '정'의 소유자들이다. 선인인가 악인인가의 도덕적인 잣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던 당시의 평가방법과는 다르게 조설근은 가우촌의 말을 빌어 '감성(感性)'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를 제시한다. '정'의 세계에서는 가부(賈府)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선과 악의 도덕적인 잣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본문] : ... ...가우촌과 냉자흥은 술값을 치르고 객주집을 나섰다. 이때 문득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우촌 형 아니시오? 우선 축하를 드리는 바요. 그런데 이런 시골엔 어떻게 오셨소?"... ...(제2회)

 

... ... 가우촌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자기를 부른 사람은 다름아닌 지난날의 동료로서자기가 파면을 당할 때 함께 밀려나온 장여규(張如圭)라는 친구였다. 그는 본래 이 고장 사람으로 파면된 뒤 줄곧 고향에 묻혀 있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파면되었던 관리들을 복직시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팔방으로 연줄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곳에서 가우촌을 만나 먼저 축하의 말부터 했던 것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장여규는 얻어들은 소문을 우촌에게 알려주었다. 우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곧 총총히 헤어졌다.

"그렇다면 어물거리고 있을 게 못 되네. 자네 집주인인 임여해에게 청을 들여보게. 그 줄을 밟아서 서울에 올라가 가정대감에게 등을 대는 것이 상책일 것 같네."

옆에서 장여규와 주고받는 말을 듣고 난 냉자흥이 넌지시 가우촌에게 귀띔해 주었다.

"글쎄, 그것도 좋겠군."

우촌은 이렇게 대답하고 다시 냉자흥과도 헤어졌다. 그길로 임여해의 관소로 돌아와 관보를 뒤적여보니 과연 장여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다음날 가우촌은 직접 임여해를찾아 사정을 비쳐 보았다. 임여해의 대답은 아주 시원시원했다.

"이것도 운명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마침 잘되었습니다. 내가 상처했다는소식을 듣고 서울에 계시는 장모님께서 외손녀의 일이 안심치 않으신 모양으로 벌써부터 외손녀를 데리러 사람들과 배까지 보내왔군요. 다만 우리 애가 아직 몸을 추스르지 못해서 기다리고 있던 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우리 애를 가르쳐 준 선생의 은혜에 어떻게 하면 다소라도 보답할까 하고 생각해 오던 중이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에 어찌 진력으로 도와 그리지 않겠습니까? 자, 마음을 푹 놓으시오. 내 진작도 그런 생각이 있어 서울에 있는 처남에게 이미 편지로 선생을 천거한 터이오. 처남은 틀림없이 힘을 써드릴 거외다. 그래야 나도 성의를 다한 것이 되고 또 그 이상 다행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것저것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도 편지에 자세히 밝혀놓았으니 선생께서 구태여 심려하실 것이 없습니다."

가우촌은 연해 머리를 숙여 사의를 표하고 나서 말했다. 

"그런데 그 친척분께서는 지금 무슨 관직에 계시는지요? 저같이 보잘것없는 주제에 불쑥 찾아가 폐를 끼쳐도 될까요?"

이에 임여해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처남은 선생과 같은 성씨고 영국공의 손주뻘이 되시는 분입니다. 큰처남은 지금 일등장군의 관직을 세습하고 있는데 이름은 가사이고 자는 은후(恩侯)하고 합니다. 작은처남은 이름이 가정이고 자는 존주(存周)라고 하며 지금 공부(工部: 토목건설과 치수사업을 맡아보는 관청)의 원외랑으로 임명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 작은처남은 성품이 너그럽고 겸손하여 조상의 유풍을 이이갈 만한 분으로 교만하고 경박한 여느 벼슬아치들과는 근본이 다릅니다. 그래서 나도 선생을 그에게 천거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선생의 깨끗한 지조를 더럽히게 될 것인즉 나로서도 떳떳지 못할 게 아닙니까?"

우촌은 임여해의 말을 듣고 전날 냉자흥의 하던 말이 과연 빈말이 아니였구나 생각하면서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정월 초엿새날 딸애를 서울로 보낼 예정인데 그때 선생께서 함께 가 주신다면 피차 편리하지 않을까요?"

"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촌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매우 흡족해 했다. 여해가 여러가지 예물이며 길에서 필요한 음식과 물건들을 내놓자 우촌은 두말없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임여해의 딸 대옥은 건강이 그럭저럭 회복되기는 했으나 아버지를 홀로 남기고 떠나자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굳이 오라고 사람까지 보냈고 또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딸을 간곡히 타이르는 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다 된 터에 다시 새사람을 맞아들일 생각은 없고 게다가 너는 아직 어리고 몸이 약하지 않니? 위로는 너를 돌봐줄 어미가 없고 아래로는 네 힘이 되어 줄 형제도 없구나. 그러니 네가 외할머니와 외사촌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만큼 내 걱정을 덜어주는 셈인데 안 가겠다고 하면 어떡하니?"

할 수 없이 대옥은 눈물을 뿌리며 아버지께 작별을 아뢰고 유모와 영국부의 할멈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가우촌은 두 시동을 데리고 다른 배에 올라 대옥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가기를 며칠. 일행은 무사히 서울에 닿았다. 가우촌은 의관을 단정히 한 다음 시동을 앞세우고 영국부에 이르러 같은 종문(宗門)의 조카되는 신분으로 명함을 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때 가정 대감은 이미 매부인 여해가 보내온 편지를 받은 뒤였으므로 곧 정중하게 가우촌을 맞아들였다.

우촌의 풍채가 늘름하고 언사가 속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정 대감은 워낙 글짓는 삶을 좋아하고 어진 선비를 존경하며 지체 낮은 사람을 돕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원해 주는데는 선조로부터의 피를 이어받은 인물이라 부탁도 있고 한 우촌을 대함은 여간 은근하지 않았다.

가정이 뒤에서 많이 애를 쓴 보람이 있어 상주서를 올리던 날 우촌은 아주 쉽게 복직이 허락되어 결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는 소식이 왔다. 그리고 그 뒤 두 달이 못 되어 금릉성(金陵省: 오늘의 강소성 남경시) 응천부(應天府)에 결원이 생겨 마침내 그 후임으로 들어앉게 되었다. 우촌은 가정에게 작별을 아뢰고는 곧 임지로 향했다.(제3회)

 

[해석] : 홍루몽 이야기는 처음부터 신비(神祕)의 색채가 농후하다. 도사와 중이 나오고, 기이한 돌이 말을 한다. 이런 신비로움은 이야기 몰입에 있어 긍정이 아니면 부정이 작용을 하게 된다. 특히 여기서 가우촌이란 등장인물에 비중(比重)을 두고 공력을 들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우촌은 가난한 선비이고 때를 잘못 만나 여기저기 떠돌이신세로 잠시 호로묘에 기숙하고 있다가 진사은의 도움으로 과거를 보고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을 한다. 그러다가 동료들의 미움을 사 파면 당하게 된다. 

후에 순염어사 임여해의 천거로 다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

여기서 알다시피 어떤 이야기든 그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등장인물이 과연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또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 역시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우촌의 앞날이 궁금하다면 뒷글을 기대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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